'학교'에 해당되는 글 65건

  1. 2011.03.05 실종신고 - 제대로 된 교육과 학생인권을 찾습니다! (2011.03.19.) (5)
  2. 2011.02.17 [참세상] 학생인권조례 시대, 교사의 소통 방식은?
  3. 2011.01.17 학교를 허가된 독재구역으로 만들고 싶은가? - 교과부의 반인권적 시행령 개악 시도를 반대한다
  4. 2010.12.21 온라인게임셧다운제 반대와 좌파적 도그마, 혹은 소비와 금욕에 대한 단상
  5. 2010.11.17 사랑은 19금이 아니다 - 청소년학생 연애탄압 (2)
  6. 2010.11.08 참을 수 없는 체벌 논의의 가벼움 - 체벌 금지, 대안이라거나 (12)
  7. 2010.10.16 서울 학생인권조례 주민발의안 공청회 (10/18) (2)
  8. 2010.07.20 [청소년인권활동가네트워크 논평] 체벌금지, 뒤늦었지만 꼭 필요한 조치다
  9. 2010.02.10 [인권교육, 날다] ‘교권’이 뭔가요? 교권에 낚이지 말고, 교권을 낚자! - 교권의 재구성
  10. 2010.01.21 공청회 갔다 와서 : 학생인권조례 반대는 인종주의 (??????) (5)
  11. 2010.01.07 학생인권조례는 가장 교육적인 조치 - 두발자유 한다고 나라는 망하지 않는다 (7)
  12. 2009.12.19 학생들이 교원평가제가 띠꺼워야 하는 이유-랄까...; (4)
  13. 2009.12.14 강제 명찰 부착은 학생인권 침해로 사라져야 한다
  14. 2009.12.10 교복폐지 반대에 대한 반대 (11)
  15. 2009.10.24 경제재생산과 문화재생산 이론 정리한 거...
  16. 2009.09.15 [이프 : 김신명숙의 편지] 교권이 문제라구요? (5)
  17. 2009.08.31 휴대전화금지조례는 인권침해를 정당화해주겠다는 것! (9)
  18. 2009.08.06 ‘19세 미만’은 왜 ‘미성년자’가 되었나 (6)
  19. 2009.06.30 근대 교육 속의 전근대
  20. 2009.04.15 교원평가제 관련 자료와 제 의견입니다. (1)
걸어가는꿈2011. 3. 5. 00:06



실종신고

제대로 된 교육과 학생인권을 찾습니다.

<우리는 이런 것을 찾습니다>

중간기말부터 수능까지 시험을 폐지하라!
1년에 몇 번씩 학생들을 전전긍긍하게 하는 시험, 그리고 오직 시험을 위한 교육.
이명박 정부 이후 시험지옥은 나아지기는커녕 대놓고 더 심해지고 있습니다.
시험을 위한 교육, 경쟁을 부추기고 등수에 목매게 하는 시험이 아니라
자신이 과거보다 얼마나 성장했는지를 보는 평가와 진단이 필요합니다.
 
대학 안 가도 먹고 살 수 있게 하라!
획일적 경쟁을 부추기는 줄세우기 없이 모든 학교는 평등해야 합니다.
대학 나와야 사람 대접 받고 그나마 먹고 살 수 있는 사회는 잘못된 것이지 않을까요?
학생들이 미래에 대한 불안에 떨지 않도록 학력·학벌로 인간을 평가하고 차별하지 않고
누구나 사람답게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사회를 만들어야 합니다.

교육예산 확보하여 누구나 쾌적한 학교를!
한국의 교육예산은 너무 짭니다. 학생들은 누구나 쾌적한 학교에서 공부할 권리가 있습니다.
또 돈 문제로 배움을 포기하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됩니다.
교육예산을 늘려서 쾌적한 학교를 만들고, 초중고대학까지 무상으로 교육해야 합니다.
 
학생에겐 권력을, 학교에는 민주주의를!
민주시민을 양성하는 학교의 운영은 그 어떤 곳보다 민주적이어야 합니다.
형식적인 의견수렴이나 공청회 정도로는 학생들의 의견을 반영할 수 없습니다.
학교 운영과 교육정책에 대해 학생들에게 실질적인 참여권과 결정권이 있어야 합니다.
 
규제와 폭력 대신 자유와 소통을!
학생은 존엄한 인간이기에, 하교는 때리거나 억압하는 것이 아니라 소통을 통해 교육해야 합니다.
학생들의 인권을 침해하는 체벌, 두발복장규제, 강제야자 등
그 외에도 셀 수 없이 많은 불합리하고 반인권적인 억압들은 모두 사라져야 합니다.
학생들을 먼저 인간으로 생각해야 제대로 된 교육이 가능합니다.

본 적도 들은 적도 없는 제대로 된 교육, 행방불명된 학생인권을 함께 찾으러 가요!

3월 19일 토요일 오후 3시 청계광장 옆 서울파이낸스센터

주최 : 청소년인권행동 아수나로(www.asunaro.or.kr) / 후원 : 학생인권조례제정운동서울본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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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공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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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초등학교는 중간고사가 없어졌어요 그런데 더욱 힘든건 매달 단원평가를 해서 평가한다고 하니 더 고달프다는거죠

    2011.03.05 00:10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 저 "중간기말부터"는 하나의 대유적 표현이고 ^^;
      여하튼 점수 매기고 등수 매기는 시험을 없애자는 거죠

      2011.03.11 09:57 신고 [ ADDR : EDIT/ DEL ]
  2. 도대체 누구를 위한 교육인지 모르겠습니다.

    2011.03.05 01:46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3. .

    의무교육으로 강제되지 않을 뿐, 유치원도 교과부가 관리 감독하는 학교입니다. 생애 초기교육 질의 중요성을 고려할 때, 초중고등학교 뿐만 아니라 유치원 또한 무상교육이 실시될 수 있다면 좋겠네요.

    2011.03.11 10:13 [ ADDR : EDIT/ DEL : REPLY ]

흘러들어온꿈2011. 2. 17. 21:08

학생인권조례 시대, 교사의 소통 방식은?

“교사 체벌에 학생 응대했다면 ‘정당방위’ 맞잖아”

김도연 기자 2011.02.17 02:16



“교권이 무너지고 있다.”
경 기도의 학생인권조례 공포, 서울의 체벌금지 시행 이후 각종 매체들이 연일 ‘대드는 학생’ ‘매맞는 교사’ 등 ‘교사들의 수모’를 비중 있게 다루고 있다. 이들은 한국사회가 이렇게 교사들의 ‘권리’에 관심 가졌던 적이 있던가 싶을 정도로 혼신의 힘을 다해 ‘교권의 추락’을 우려했다.
‘체벌이 금지’된 ‘학생인권조례 시대’, 교권은 정말로 추락하고 있는가. 교사들이 직접 입을 열었다. 16일 학생인권조례제정운동본부 주최로 흥사단 강당에서 열린 ‘학생인권조례 시대, 교사가 말하다’ 토론회에서 교사들은 가장 먼저 자신들의 목소리를 왜곡하고 있는 언론에 대한 불신과 불만을 토해냈다.


“‘체벌금지’를 ‘체벌금지’라 말했을 뿐인데 언론은 ‘싸가지 없다’ 하네”


이기규 교사(서울 수송초)
체벌 하던 교사들도 ‘금지’를 강조하니까 체벌 안 하고 있다. 그동안 다른 방법은 안 해왔으니까 힘들어하긴 한다. 그래도 생활지도를 아예 못하겠다는 분위기는 아니다. 이 부분에 대해 조금씩 고민하는 게 사실이다. 근데 언론은 생각이 좀 달랐던 거 같다. 체벌금지 시행 이후 나에게도 몇몇 기자들에게 전화가 왔었다. ‘체벌이 금지됐는데 학생지도에 어려움이 없느냐’고 묻더라. 그때마다 별 문제 없다고 답하면서 우리학교 사정을 설명해드렸는데 그들이 원하는 말이 아니었던지 한 번도 인용되지는 않더라.


조영선 교사(서울 경인고)
언론보도 보면서 제일 불편했던 점은 애들이 교사를 때리고, ‘싸가지’ 없게 군다고 지적하는 거다. 우리학교에도 비슷한 사례 있었다. 어떤 교사가 체벌을 했고 거기에 대해 애가 격한 반응을 보이는 과정에서 약간의 터치가 있었던 거다. 나중에 그 친구하고 얘기할 기회가 생겼는데, 자기 행위에 대해 ‘정당방위’ 아니냐고 그러더라. 폭력 자체가 정당화되지 않는 상황에서 자기가 맞았으면 방어차원에서 그럴 수 있다는 거다. 근데 그건 사실 ‘팩트’다. 때리려는 교사 앞에서 ‘체벌금지 아니에요?’라고 말하는 것. 체벌금지를 체벌금지라고 하는 게 팩트가 아니면 뭐냐. 근데 언론에서는 이걸 ‘싸가지 없다’고 말한다. 아버지를 아버지라고 말하지 못하는 느낌이 든다. 언론이 웃기는 서사를 만들고 있다.





이 들은 ‘체벌 금지’와 학생인권조례 시행 과정에서 교사로서 소외감을 느낀 것은 사실이라고 말했다. 교육주체로서 논의 과정에 참여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교사들은 충분한 논의가 진행되지 않은 상태에서 진행된 ‘위로부터의 개혁’에 아쉬움을 나타내기도 했다.

이기규 교사(서울 수송초)
“학생인권에 대해서만큼은 얘기하는 과정도 되게 ‘인권적’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교사들 대부분은 체벌을 하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체벌금지’를 선언하면서 마치 모든 교사들이 체벌을 해왔다는 분위기로 말하니까 여기저기서 푸념이 있었다. 체벌을 하냐 안하냐와 상관없이, 체벌금지를 스스로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강요하는 것 같아서 체벌금지 이후 교사들이 약간 위축감을 갖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교사들의 의견 공유되면서 결정됐으면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있다. 조례 하나 만들고 따라야 한다가 아니라 이 문제를 교사 스스로 생각하고 성찰하는 기회 마련해주는 것, 천천히 가더라도 교사와 공유하고 같이 이야기하는 부분이 있어야 할 것 같다. 이건 교육청, 교육단체 모두에게 요구되는 부분이다.



“인권조례와 체벌금지, 학교문화 변화의 계기로 삼아야”


하 지만 그럼에도 이번 학생인권조례, 체벌금지 시행이 무척 ‘유의미’한 일이며, 이를 오히려 생활지도 방식의 전환 계기로 삼아야 한다는 데에는 교사들도 이견이 없어 보였다. 교사들은 억압적인 학교문화를 교사 스스로 벗어나야 한다고 지적했고, 혹자는 ‘체벌 교사’였던 자신의 감동적인 ‘체벌 탈출기’를 들려주기도 했다.

오혜원 교사(경기 호계중)
언론에서 경기도 학생인권조례 발표 후에 ‘당하는 여교사’ ‘맞는 여교사’ 등 교권 추락의 대표사례로 약한 여교사를 거론하고 있다. 곰곰이 생각해 보니 젊고 약한 여교사만의 문제 아니라 학생들과 인간적 관계 형성하지 못하는 대다수 교사들의 문제인 것 같다. 억압적이고 남성적인 학교 구조에서 억지로 애들을 통제해서 지식을 전달하는 교사 역할을 맡아왔던 이들은 인권조례가 발표되고 나서 오랫동안 수행해온 여교사 역할을 이제라도 버려야 하는 건지 혼란에 빠진 건 사실인 거 같다. 그중 일부는 때리지 말라고 하니까 대신 벌점을 강하게 주는 사람도 있는데 오히려 더 우스워지더라. 그런 역할을 과감히 포기하고 아이들과 관계 맺기를 시도해야 폭력적인 방법이 아니어도 아이들과 소통이 가능하다. 이번 인권조례 시행을 교사와 학생이 새로운 관계를 형성하고 학교에서 새롭게 만나는 계기로 삼았으면 좋겠다.


김현석 교사(서울 당산초)
나는 서울시교육감이 체벌금지를 발표하기 전까지 체벌을 많이 하는 교사였다. 우리 반에 지각을 잘 하는 친구가 있었는데, 처음엔 왜 지각하니 물어보다가 하루 늦을 때마다 한 대씩 맞자고 했다. 연속 30일 지각해서 30일 동안 때렸다. 그렇게 때리면서도 나는 그 아이를 정말 사랑하기 때문에 때리는 거고, 체벌이 벌점보다 인간적이라고 생각했다. 근데 체벌금지가 되고 주변인들과 얘기 많이 하면서 그런 생각을 하게 됐다. 어른이 무단횡단을 했는데 경찰이 ‘당신은 법을 위반했으니까 비인간적으로 벌금 물리지 않고 인간적으로 세 대를 때리겠다’고 하면서 횡단보도 앞에 엎어놓고 때린다면 정말 비인간적인 것이었겠다, 나는 그걸 여태 사랑이라고 착각하면서 우리 반 아이들을 때려왔구나. 그런 생각이 드니까 아이들에게 정말 미안해지더라. 그래서 2학기 때 아이들에게 그동안 내가 때려온 것을 진심으로 사과했다. 매 때문에 너희들에게 정말 줘야 하는 것이 무엇인지 모르고 착각하고 살아온 것 같다고. 그러니까 아이들이 나를 다른 눈으로 바라보고, 마음을 열더라.
사실 내가 체벌 교사였어서 체벌금지 이후 처음에는 불만이 많았다. 교사한테 연수도 좀 시키고 교사 동의도 좀 얻고 그런 다음에 차근차근 갔어야 하는 거 아닌가. 근데 이건 정말 야만이 인간다움으로 가는 거라 무조건 해야 하는 거다. 나의 경우 체벌 금지가 아이들을 다른 눈으로 보는 좋은 계기가 되었다.



“결국 학교를 바꾸는 것은 학생들의 힘”

한 편 이날 토론회에서는 학생인권을 존중하는 학교문화를 만들기 위해 애쓰는 학교들의 사례가 공유되기도 했다. 다양한 학교 사례들이 있었지만 그중에서도 열패감을 갖고 입학한 아이들에게 신뢰와 미래에 대한 꿈을 실어주려 노력하는 흥덕고, 학생인권조례를 이해하기 위해 학생, 학부모, 교사들이 조례를 강독했고 올해는 학교문화를 근본적으로 변화시킬 고민을 하고 있다는 원종고, 학교규정을 개정하는 과정에서 학생들의 직접 행동이 있었던 소사고의 드라마틱한 이야기가 특히 눈길을 끌었다.

이만주 교사(경기 흥덕고)
입학식 할 때 아이들을 만났는데 눈에 불신과 분노가 가득하더라. 우리를 어떻게 대할 것인가 의심을 가진 거다. 이런 아이들이 학교와 선생님들을 신뢰하게 만드는 게 가장 큰 과제였다. 그래서 제일 먼저 학생들을 제약하는 요소로 작용하던 생활규정을, 용의복장규정을 빼고 학생들의 인권, 권리를 보장 쪽으로 개정했다. 그리고 고등학교이다 보니 진학의 문제나 학력의 문제가 역시 주요 관심사 될 수밖에 없는데, 우리가 선택한 건 ‘진학문제가 진로문제’라는 거다. 이 아이가 고등학교 과정에서 어떤 자기 비전을 갖고 또 자존감을 지키게 할지 고민했다. 그리고 학교에서 지속적으로 진로교육이나 성취를 높이는 역동적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투입하려고 했다. 그럴 때 아이들은 선생님과 학교가 진짜 우리를 생각해준다는 믿음 갖고 아이들 내면의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다. 그리고 이런 과정 속에서 그들의 인권이 보장되고 자존감도 회복된다.


이용석 교사(경기 원종고)
우리 학교가 작년에 학생생활규정을 개정하면서 초점을 둔 건 학생, 학부모, 교사가 조례를 이해하도록 하는 거였다. 아이들이 학생인권조례 내용을 전혀 모른다. 그래서 현관에 조례 내용을 크게 뽑아서 전시회도 하고 기말고사 끝나고는 인권주간을 둬서 일주일 동안 인권조례를 활용한 가위바위보, 보물찾기 등을 진행하기도 했다. 학부모총회에서 조례 내용을 강독하기도 하고 교사들도 매주 수요일마다 인문학강좌 연수를 60시간 진행했다. 올해 화두는 학교문화의 변화다. 학생, 교사, 학교 구성원이 같은 인간으로 똑같이 바라볼 수 있어야 한다. 머리는 자율화해놓고 교실에서는 ‘이 새끼 저 새끼’ 해서는 인권문화라고 이야기할 수 없다. 그래서 주안점 두는 게 학생자치 활성화다. 아이들이 자기 목소리 갖고 인권 이야기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에. 학생회와 동아리활동 강화를 지원하는 제도화가 필요하다. 그리고 그런 과정들을 통해 교실 내에서 작동하는 미세권력을 해체해야 한다. 무엇보다 학생인권은 교육제도, 교육정책과 무관하지 않다. 학생인권을 보장하려면 대학입시 문제들도 다 손봐야 한다. 그러기 위해 교육제도, 교육정책에 전면으로 맞서는 것도 잊지 말아야 한다.


김성애 교사(경기 소사고)
우리 학교 같은 경우, 경기도에서 학생인권조례가 제정됐더라도 반드시 현장에서 무력화시키겠다는 강한 의지를 가진 분들이 학교규정개정심의위원회에 학부모 대표로 많이 참석했다. 위원회에서 학생들의 자기결정권을 존중해야 한다는 입장과 규제해야 한다는 두 입장이 4대 7로 매번 부딪쳤다. 학생 대표도 규제가 어느 정도 필요하다는 입장이었다. 지리한 싸움이 계속됐다. 이를 돌파하기 위해 몇몇 위원들이 학생공청회를 제안했는데 이 공청회에서 많은 얘기가 나왔다. 교사들이 소사고 근무하는 기간 동안 가장 행복하고 아름다운 순간이었다고 할 정도로 학생들이 멋진 말들을 많이 했다. 공청회 뒤에 분위기가 뜨거워졌다. 학생들이 회의 참관도 요구했고, 참관을 거부당하자 다음날 바로 아침 교문 앞에서 행동에 돌입했다. 아침 8시 20분 종이 치니까 아이들이 다 같이 운동장에 뛰어나가서 줄 맞춰 서더니 ‘근조 인권, 정의’라고 쓰인 피켓 앞에서 묵념을 했다. 그걸 마치고 들어가는 학생들 얼굴이 너무 행복해 보였다. 정말 ‘해냈다’는 표정이 역력했다. 그 이후에 학생들과 이야기를 해봤는데 지금까지 11년 학교 다니는 동안 이렇게 학교가 오고 싶었던 적이 없었다, 너무 즐겁고 재미있다고 하더라. 그게 터닝포인트가 됐다. 학생들은 개학 이후 회의에 참관했고, 위원들 간에 이견은 끝내 해소되지 않았지만 비밀투표에서 6대 5로 이겼다. 학부모들은 변하지 않은 것 같고, 아무래도 학생 대표들이 대표성의 문제를 많이 고민한 것 같더라.
결국 생활인권규정을 만든 주인공들은 위원들도 아니고 교사도 아니고 정말 이렇게까지 몰입해서 인간이라는 것을 주장해낸 학생들의 힘이었다. 학생들 스스로 자기가 존엄한 인간이라는 것을 느끼고 그런 인권을 스스로 얻어나가는 과정이 소중했다. 이 힘이 올해 어떻게 발현될지 궁금하다.

 



Posted by 공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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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어가는꿈2011. 1. 17. 19:17

학교를 허가된 독재구역으로 만들고 싶은가?

- 교과부의 반인권적 시행령 개악 시도를 반대한다

 

  오늘 오전 교육과학기술부(이하 교과부)는 학교문화선진화 방안을 발표했다. 결국 우려했던 일이 현실이 되었다. 학생인권조례를 무력화하고, 학생인권 침해를 노골적으로 허용하는 시행령 추진을 공식화한 것이다. 이미 예전부터 학생인권조례제정운동 서울본부와 여러 교육․사회․시민․청소년단체들은 수차례의 기자회견을 통해 교과부의 초․중등교육법 시행령 개악 시도의 문제점을 지적했고 시행령 개정안에 대한 반대의사를 분명히 밝히기도 하였다. 그럼에도 시행령 개악을 공식화하고, 강행하는 교과부의 뻔뻔한 작태에 대해 우리는 차마 공식적으로는 다 표현할 수 없는 분노를 느낀다.

  오늘 교과부에서 발표한 내용은 ① 학교장의 학칙 제정 등 권한 강화 ② 학칙준수 서약식 실시 ③ 출석정지 도입 ④ 이른바 ‘간접체벌’ 허용 등이다. 이미 예전부터 문제점에 대해 누누이 언급했었지만 다시 한 번 하나하나 지적해보고자 한다.

 

  하나, 학교장에게 학칙 제정권을 전면 부여하고 학생들의 권리를 제한할 수 있게 한 것은 학교를 허가된 독재구역으로 만들겠다는 것과 같다. 본래 인권의 제한은 엄격한 조건과 절차에 의해서만 가능하다는 것이 상식이고 원칙이다. 그러나 학교장이 자의적으로 인권을 제한하고 침해하는 것을 허용하는 이러한 내용은 마치 군사독재 시절 유신헌법을 연상시키는, 학교의 시계를 무려 40년은 거꾸로 돌리려는 만행이다.

  학칙은 어디까지나 학교 구성원들의 인권을 보장하고 존중하며 함께 살아가고 교육에 참여하는 학교를 만들기 위한 목적과 한계 속에서 민주적으로 만들어져야 한다. 학교장의 독재적 학교 운영이 어떻게 학교 구성원들을 괴롭게 하는지 우리는 이미 충분히 보고 있지 않은가? UN아동권리협약 또한 제28조에서 학교 규칙이 아동의 인권을 존중하고 보장하도록 운영되는 데 필요한 조치를 정부가 취해야 할 것을 명시하고 있다. 한국 정부는 자신이 비준한 법적 효력이 있는 협약조차 정면으로 위반하는 조치를 당당하게 내놓을 셈인가?

 

  하나, 출석정지 제도의 도입과 징계 수위의 강화는 학교 현장에서 악용될 소지가 큰 독소 조항이다. 이미 학교 현장에서는 학교에 밉보인 학생들이나 ‘찍힌’ 학생들을 사회봉사나 특별교육이수 등의 징계를 계속 줘서 밖으로 돌리고, 강제로 전학을 보내거나 가벼운 사안만으로 퇴학을 시키는 등 징계를 부당하게 악용하는 사례가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다. 그런데 징계 받은 일수가 출석일수로 계산되지 않는 ‘출석정지’ 제도를 도입하는 것은 이런 학생들을 합법적으로 ‘유급’ 혹은 ‘퇴학’시킬 방법만 제공하는 꼴이다. 또한 이미 학교폭력예방법에 다른 학생을 괴롭히거나 폭력을 행사한 학생에 대한 ‘출석정지’ 제도가 있음에도 새삼스레 시행령에 출석정지 제도를 도입하려는 것은, 이 제도가 교사나 학교에게 밉보인 학생들을 격리하고 낙인 찍는 데 남용될 가능성이 높음을 시사한다. 교장이 자의적으로 학생들의 인권을 침해할 수 있게 한 내용과 함께 생각해보면 그런 위험은 더더욱 높아진다.

  현재 학교 현장에서는 징계가 학생들의 회복과 복귀, 지도를 목표로 하기보다는 ‘문제 학생들’을 낙인 찍고 배제하는 데 남용되는 경우들이 많이 있다. 지금 시점에서 필요한 것은 오히려 징계 제도가 과연 교육적인지 학생들의 인권을 존중하고 있는지 또한 징계 절차가 공정하고 민주적인지를 점검하고 이를 개혁하는 일이다. 징계의 수위를 강화하고 학생들을 더욱 강하게 찍어 누르려고 하는 것은 전혀 교육적이지 못한 태도이다. 출석정지 제도 등의 징계가 학교의 보복 수단이나 학생 배제 수단으로 악용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는 징계의 공정성과 민주성을 보장하기 위한 방안이 먼저 마련되어야 할 것이다.

 

  하나, 학칙 준수 서약식을 개최하도록 하여 학생들의 준법 의식을 고양하겠다는 발상은 역시 학교를 독재구역으로 만들려는 발상의 연장선상에 있다. ‘준법 의식’은 그 법이 민주적이고 정당한 내용을 담고 있다는 것을 전제로 하고 있다. 그러나 많은 학생들이 학칙이 학생들의 인권을 과도하게 침해하고 있으며 민주적이지도 않았다고 말한다. 입학식에서 학칙 준수 서약식을 하라는 것은 이제 막 학교에 들어온 학생들 전원에게 이미 존재하는 학칙을 무조건 지키겠다고 서약하라고 강요하는, 양심의 자유 침해에 지나지 않는다. 지금 학교들에게 필요한 것은 ‘학칙 준수 서약식’이 아니라 민주적이고 인권적인 학칙의 제정이다. 학교장이 학생의 인권을 마음대로 규제할 수 있게 해놓고서 일방적으로 학생들에게 학칙 준수를 요구하는 것은 독재의 논리이다.

  교과부는 이에 대해 학생생활과 밀접한 학칙을 제개정할 때는 학생의 의견 수렴을 의무화하고, 또 학생자치활동을 활성화하겠다고 한다. 분명 교과부가 학생자치활동에 비로소 관심을 기울이고 학칙 제개정시 학생들의 의견을 듣는 것을 의무화하는 것은 긍정적인 일이다. 그러나 학생자치활동 활성화에는 정작 그 알맹이라고 할 수 있는 학생회의 독립적 권한 보장과 학교 운영 참여 보장은 제대로 포함되어 있지 않다. 학칙 제개정 시 학생의 의견을  반영하는 방식이나 절차 또한 학교별로 마음대로 하도록 맡겨두었기 때문에 그 실효성이 심히 의심스럽다. 형식적인 의견 반영, 학생을 들러리로 만드는 상황이 여러 학교에서 벌어질 것이 뻔하다. 이는 학생들에게 민주주의에 대한 불신과 회의만을 학습시킬 반교육적인 것이기도 하다. “민주주의를 해라. 하지만 그 방식은 마음대로.”라는 것은 말이 안 된다. 우리는 그런 논리야말로 독재를 민주주의의 거짓 이름으로 정당화하는 데 동원되곤 했다는 교훈을 역사에서 배웠다.

 

  하나, 학생들을 직접 때리지 않고 고통을 주는 이른바 ‘굴리는’ 체벌을 허용하겠다는 것은 꼼수로 인권침해를 계속하겠다는 선언에 지나지 않는다. 정부에서는 이미 수년 전, 체벌을 “학생에게 신체적 고통을 주는 벌”로 스스로 정의한 적이 있으며, 직접 때리는 체벌과 학생들에게 ‘기합’, ‘얼차려’ 등을 주는 굴리는 체벌 사이에는 특별한 구분을 두지 않았다. 갑자기 '때리는‘ 체벌과 ’굴리는‘ 체벌을 나누고 ’굴리는‘ 체벌만 허용하겠다는 해괴한 논리에는 정당한 근거가 없다. 교과부는 “간접체벌”을 “반복적․지속적으로 신체에 고통을 주는 체벌”이 아니라고 밝히고 있으나 정작 그 바로 앞에서는 대표적 ’기합‘인 “팔굽혀펴기” 등을 예로 들고 있으며, 시행령 개악안 또한 직접 때리는 행위만 금지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는 결국 직접 ’가격‘하지만 않으면 학생에게 어떤 신체적 고통을 주는 체벌이더라도 허용된다고 해석할 수밖에 없다.

  우리는 2007년 부산에서, 2010년 김포에서, 학생들이 ’오리걸음‘, ’앉았다 일어서기‘ 등의 체벌로 목숨을 잃었던 사건을 기억하고 있다. ’때리는‘ 체벌이든 ’굴리는‘ 체벌이든 학생들에게 폭력이고 인권침해이며 반교육 반인권적이라는 점은 별 차이가 없다. UN아동권리위원회 역시 “신체적인 처벌은 항상 굴욕적”이라고 밝히며 “불편한 자세를 유지하도록 하는 것”을 비롯하여 모든 체벌의 금지를 요구하고 있다. ’굴리는‘ 체벌이든 ’때리는‘ 체벌이든 모든 체벌은 금지되어야 한다. 교과부는 체벌에 ’직접‘, '간접’ 이름을 붙이며 체벌을 허용하려는 해괴한 시도를 할 시간과 노력을, 체벌 없는 교육을 만들기 위해 적극적으로 노력하는 데 쏟아야 할 것이다.

 

  교과부는 이번 발표를 “학교문화의 선진화”라고 이름 붙였지만 그 내용의 실상을 보면 학생인권의 무력화, 학교독재 강화를 위한 꼼수일 뿐이다. 일부 긍정적인 내용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전체적으로 볼 때 이는 거의 생색내기에 지나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이미 교과부의 꼼수는 초․중등교육기본법 개악을 시도하다 국회의 통과가 어려울 것이라 보고, 행정부 독단으로 진행할 수 있는 시행령 개악으로 방향을 바꾼 것에서부터 이미 드러났다. 또한 학생인권에 적대적 부정적 입장을 내온 단체 일색이었던 ‘학생권리 신장방안 마련 관계자회의’로 시행령의 의견수렴 절차를 대신하려 했던 점에서도 나타난다. 이번 시행령 개악의 추진과정은 형식적 절차마저도 충족했다고 볼 수 없으며, 무엇보다 법률적 근거 없이 학생인권을 제한하고, 학교현장에서 학생인권 침해를 강화한다는 점에서 위헌적인 문제점을 가지고 있다.

  우리는 교과부의 시행령 개악 시도 철회를 강력히 요구한다. 교과부가 할 일은 어떻게 하면 학생인권을 더 세련되게 잘 침해하고 학교를 허가된 독재구역으로 만들 수 있을지 연구하는 것이 아니다. 학생들의 인권을 잘 보장하고, 어떻게 하면 인권을 존중하고 존중받는 좋은 교육이 이루어질 수 있을지 연구하고 힘을 실어주는 일이다. 정부가 학생인권조례를 지지하고 국민들의 인권을 보장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제한하고 침해할 방법을 찾는 데 골몰해 있다는 것이 말이 되는가? 우리는 교과부의 학생인권조례 무력화를 위한 제도 도입 및 시행령 개악을 막기 위해 법률적인 부분을 포함해 할 수 있는 모든 조치를 취할 것을 밝히는 바이다.

 

  교육과학기술부는 반인권 반민주 반교육 시행령 개악을 철회하라!

 

 

2011117

학생인권조례제정운동 서울본부

(건강세상네트워크, 공익변호사그룹 공감, 관악동작학교운영위원협의회, 교육공동체 나다, 군인권센터, 대안교육연대, 대한민국청소년의회, 동성애자인권연대, 문화연대, 민주노동당 서울시당, 민주노총서울본부,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불교인권위원회, 서울장애인교육권연대, 서초강남교육혁신연대모임, 어린이책시민연대, 원불교인권위원회, 인권교육센터 들, 인권운동사랑방, 전교조서울지부, 전국공무원노동조합 서울지역본부, 전국지역아동센터협의회 서울특별시지부, 종교자유정책연구원, 즐거운교육상상, 진보교육연구소, 진보신당서울시당, 참교육을위한전국학부모회 서울지부, 청소년다함께, 청소년인권행동 ‘아수나로’ 서울지부, 청소년인권활동가네트워크, 평등교육실현을위한서울학부모회, 학교급식전국네트워크, 학벌없는사회, 한국게이인권운동단체 ‘친구사이’, 흥사단교육운동본부, 21세기청소년공동체 희망)


Posted by 공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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딱딱한꿈2010. 12. 21. 16:41


- 예전에 한 번 쓰려고 기획했지만 결국 쓰지 못한 리포트랄까, 소논문 중에 이런 주제가 있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소비와 금욕은 과연 배타적인 것인가. 소비하는 소비자와 금욕적 노동자 이 모순적인 둘을 짜맞추는 것이 자본주의의 인간 교육은 아닌가?" 뭐 이런 문제의식인데, 굳이 제목을 붙인다면 "자본주의 사회에서 욕망하는 소비 주체와 금욕적인 노동 주체의 형성에 관한 사례 분석"이라고 해야 할까.


- 주로 휴대전화 문제 관련해서 했던 생각인데,
스스로 좌파적이라고 하는 교사들이나 활동가들 중에서는 "청소년에게 휴대전화 사용을 규제하는 것을 반대한다."라는 요구가 휴대전화 이동통신 자본의 손에 청소년들을 무책임하게 던져주는 것처럼 생각하는 경우들이 많았다. 즉 그 사람들은 "휴대전화를 규제하는 것은 소비를 절제할 줄 알게 하는 것이고 이것은 반자본주의적/대안적인 것이다."라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근데 진짜 그럴까?


- 금욕적이고 자기 절제를 할 줄 아는 인간은 근대 자본주의가 요구한 참고 절약하고 축적하고 노동하는 노동자 상에 가깝다.
물론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소비'를 많이 하는 소비자들이 필요하게 되었기 때문에, 어떤 장면에서는 이런 금욕적 존재는 그리 바람직하지 않은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공장이나 직장에서는 이러한 금욕적 자기 통제(노동시간 중에는 휴대전화나 메신져 등을 제한적으로 사용할 것, 시간을 엄수할 것 등등)가 요구되고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그렇다면 이렇게 생각하면 어떨까? "학교에서 휴대전화 사용을 규제하는 것은 공장에서 노동자들을 규제하는 것과 닮아 있다."
즉 학교의 휴대전화 규제나 학생 통제는 전혀 대안적이지도 반자본주의적이지도 않다. 그건 오히려 "일터에서는 묵묵히 규율을 지키며 일을 하고 일터를 벗어나면 소비자가 되는 노동자인 동시에 소비자인 자본주의적 시민"의 모습과 일치한다.



- 온라인게임 셧다운제에 관해서 그것이 결국 "게임 소비의 자유"를 외치는 것이며 게임업계나 자본주의적 욕망에 편승하는 것 아니냐는 식의 비판을 보았다. 그러나 그 비판이 받아들여질 수 없는 것은, "그럼 청소년을 (게임에서든 휴대전화에서든) 규제하고 통제하는 것은 대안적/반자본주의적인가?"라는 질문을 던지지 않으면서 '소비'='자본주의적'이라는 단순한 도식만을 적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청소년들을 그런 식으로 통제하는 것은 외려 자본주의 사회가 유지/재생산되기 위한 지극히 자본주의적인 훈육은 아닌가?? 온라인게임 셧다운제 도입이야말로, 아동/청소년을 구분하고 억압하고 차별하고 보호해온 자본주의의 역사에서 지극히 자본주의적인 방식 아닌가??



- 사실 모든 인간은 소비하고 향유해야만 살 수 있다. 그것이 자본주의적인 방식이든 뭐든지 간에 먹고 일하고 노는 등 모든 것들은 소비되고 향유되는 것이다.
그 소비가 다만 화폐로 거래되느냐 안 되느냐의 차이는 있을지 몰라도.

원론적으로 접근하면 게임은 놀이의 일종이다. 인간은 놀지 않고는 인간답게 살 수 없다. 그렇다면 자본주의 사회라서 돈을 내야 한다는 이유로 놀이를 하지 않고 살 수는 없다. 대안적 방식으로 돈을 쓰지 않는 다른 놀이 문화를 개발하고 보급하는 것은 바람직하겠지만 말이다.



- 상품이 좋은지 나쁜지 바람직한지 그렇지 않은지 판단해서 규제할 수 있다는 건 부정할 수 없는 일반적 사실이다.
무조건적인 판매와 소비의 자유를 주장할 사람은 없다. 당연히 사람에게 해로운 상품은 규제될 수 있다.

하지만 왜 그게 굳이 일반적인 모든 시민들이 아니라 '청소년'인가? 또, 게임에 관해서라면 게임의 내용이 과연 인류 보편의 가치-인권이나 평화 등-에 부합하는지를 판단하고 검토하는 것이 아니라 왜 게임을 밤에 하는 것을 규제하는 것인가? 게임은 그 자체로 마약이나 독극물 등등 만큼이나 유해한가? 청소년의 경우에 밤 시간에 하는 게임은 일반적으로 유해하단 말인가?

청소년의 문화적 자기결정권을 다시 한 번 강조하고 청소년들의 참여와 주체 형성을 통해서, 혹은 대안적 문화와 놀이가 가능한 조건을 만드는 것을 통해서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하는 게 "청소년에 대한 교육적 책임의 방기"라는 언설은, 역시 청소년들의 입장은 무시하는 꼰대의식을 보여주고 있다.


만일 "단순히 온라인게임 셧다운제 반대에 그치지 말고 청소년들을 위한 대안적 놀이 문화나 시설, 제도, 여건을 요구해야 한다."라고 지적한다면 그건 당연히 옳은 말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도 강제야자/보충수업에 반대하고 학원과 사교육을 비판하고 입시경쟁교육을 폐지하려고 하고 청소년 문화에 관한 예산과 정책에 그렇게 힘을 기울이고 있는 것 아닌가?
하지만 온라인게임 셧다운제 반대 자체가 소비의 자유를 옹호하고 기업의 이해관계에 부합하는 것이며 자본주의적 입장이라는 식의 주장은 청소년의 인권 문제와 자본주의 문제 사이의 상호작용을 무시한 단견이다.



- 다른 사람이 어떤지는 몰라도, 나는 '분류적으로는 좌파'에 속하겠지만, 어떤 좌파적 도그마("소비는 나쁘다"거나)가 우선한다고 생각해본 적은 없다. 나의 경우에는 어떤 사회가 인간이 행복할 수 있는 사회인가, 어떤 사회가 자유로운 개인들의 공동체를 실현시킬 수 있을 것인가, 모든 사람들의 자유와 평등 그리고 행복할 기회가 보장된 사회인가 등등을 고려하는 것이 우선이며 그런 생각들이 결과적으로 좌파적인 것으로 분류되고 있는 것일 뿐이다. 나는 처음 운동을 시작한 때부터 지금까지 청소년인권활동가일 뿐이다.



- 게임업계의 이해관계와 청소년들의 이해관계가 갈리고 있는 부분에 대해서는
http://gonghyun.tistory.com/806   여기에서 지적하고 있다.
그밖에 2010년 12월 22일 토론회에서 발표될 한국예술종합학교 이동연 교사의 발제문 또한 일독해보신다면 청소년보호정책의 노림수와 문제에 관해 좀 더 선명하게 알 수 있을 것이다.


- 문화 영역에서 자본주의적 문화를 극복하는 방식은 '공략하기보다는 낙후시키는 것' 아닐까 하는 생각이 문득 드는 오늘.
Posted by 공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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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어가는꿈2010. 11. 17. 15:57



아수나로에서 어제 발표한 거구요
담당한 분이 쓰러지셔서 도중에 제가 땜빵으로 밤새가며 자료 정리를 했던 ㅠㅠ




http://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448998.html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011171213131&code=940401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1479115

http://www.newscham.net/news/view.php?board=news&nid=59269

http://www.suwon.com/news/articleView.html?idxno=60054


관련기사들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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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은 19금이 아니다!


우리 사회는 청소년들의 사랑에, 성에 인색하다. 청소년들의 성 문제를 우려하는 목소리는 높으면서도 청소년들의 올바른 성적 권리를 보장하기 위한 논의는 부족하기만 하다. 이번 조사 결과에서도 단편적으로 알 수 있듯이, 학교들은 학생들의 사랑과 성을 금지하고 처벌하기에만 급급하다. 때로는 입시공부를, 때로는 학생다움을 내세우며.


그러나 사랑할 권리는 하나의 인권이다. 사랑하는 감정, 성적인 행위와 마음은 사람이 사람답게 살기 위해 보장되고 존중되어야 하는 자연스러운 것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헌법 제10조에서 보장하고 있는 행복추구권이자, 성적 자기결정권이며, 사생활의 자유이다. 「2008청소년인권선언」에서는 제8조에서 “청소년에게는 나이와 성적 지향(동성애, 이성애 기타 등등), 성정체성에 상관없이 짝사랑하고 연애하고 성적인 생각과 행동들을 하거나 하지 않을 권리”를 명시하고 있다. 유엔아동권리협약도 제16조에서 아동은 사생활에 대해 자의적이거나 불법적인 간섭을 받지 않는다고 밝히고 있다.


이러한 문제의식은 최근 여러 지역에서 만들어지고 있는 ‘학생인권조례’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시민단체들이 추진한 바 있는 광주 학생인권조례안에는 사생활과 개인 정보의 보호 부분에 “학생은 자기가 원하는 사람과 관계를 맺고 그 관계를 둘러싼 감정을 존중받을 권리를 가진다.”라고 하여 청소년들의 사랑할 권리 보장을 꾀하고 있다. 서울 학생인권조례 주민발의안 역시 사생활의 자유에 관한 조항에서 “학생의 교우관계에 간섭하는 행위”를 금지하는 내용을 포함하고 있다.


사랑할 권리, 성적 자기결정권은 성폭력과 부당한 간섭으로부터 자유로울 권리인 동시에 실현을 위해 경제적 사회적 능력이 필요한 사회권이기도 하다. 학교의 연애 탄압에 문제제기하는 것은 청소년 성적 자기결정권 실현을 위한 첫 걸음일 뿐이다. 사랑이 ‘19금’이 된 현실을 바꾸기 위해서는 청소년들이 성적 자기결정권을 누릴 수 있는 정신적․경제적 능력과 사회적 여건이 마련되어야 한다. 청소년들이 법적․경제적 이유로 숙박시설을 이용할 수 없는 안습 상황, 성에 대한 올바른 지식과 책임감을 기르지 못하는 상황을 바꾸어야 한다.


때문에 우리는 청소년들의 성적 자기결정권을 보장하기 위해 다음과 같이 요구한다.


◆ 교육청들, 학교들은 청소년의 성적 자기결정권을 침해하는 학칙들을 폐지하라.

◆ 학교와 가정에서 실효성 있고 인권적인 성교육을 실시하라. 청소년들이 성에 관한 정보와 지식에 접근할 수 있도록 개방하라.

◆ 정부는 청소년의 성적 자기결정권에 관한 사회적 캠페인 및 교육을 실시하라.

◆ 정부는 임신․출산을 한 청소년이 출산․양육을 할 수 있도록 사회적 지원을 마련하라.

◆ 정부는 청소년들이 실질적으로 성적 자기결정권을 누릴 수 있도록 경제적 지원을 마련하고 사회적 제도를 개선하라.

Posted by 공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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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저도 이 기사들이 매우 안타깝더군요. 갈길이 너무 멉니다.

    2010.11.18 15:59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2. 나를 가만히 두란말이야~ 나도 생각하고 판단할 수 있다고 !
    그들이 하고싶은 말이 아닐까요.. 전 왜 그때 당당히 말하지 못했을 까요.

    2010.11.21 05:13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걸어가는꿈2010. 11. 8. 15:30



참을 수 없는 체벌 논의의 가벼움
- 체벌 금지, 대안이라거나


청소년인권행동 아수나로 공현



서울, 경기 등부터 시작해서 체벌 금지가 속속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십수년 동안 이어져온 체벌 반대 운동이 맺은 성과라는 생각에 조금은 기쁩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체벌 금지에 대해 공격하고, 대안이 없다는 식으로 이야기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또 한편으로는, 체벌은 금지되었는데 그걸 대체하는 '상벌점제'(그린마일리지, 생활평점제)가 더 힘들다고 호소하는 학생들도 있습니다.

뭐 이미 체벌이 왜 금지되어야 하는지에 관해서는 숱하게 다루어왔으니, 이 글에서는 체벌 금지가 지향하는 그 의미랄까, 체벌의 대안이랄까, 그런 이야기를 짧게 정리해보려고 합니다.




원론적으로 : 체벌과 체벌 금지 사이



체벌과 체벌 금지를 다루면서 교육관료들(쉽게 말해 교육청 공무원들이라거나, 교장 교감이라거나, 아니면 때로는 교육감이나 교사들 등도...)이 쉽게 저지르는 실수는, 체벌을 단지 일종의 '행위'로만 본다는 것입니다. 즉 그 사람들은 곧잘 이 문제를 '때리느냐 안 때리느냐', '기합 주느냐 안 주느냐' 정도의 문제로만 봅니다. 그 결과 체벌 금지를 앞두고 "그럼 때리는 것보다 더 약발이 잘 받는 통제 수단이 뭔가?"에 골몰하는 것, 지금 그들이 말하는 '체벌의 대안' 논의입니다.

그러나 체벌과 체벌 금지 사이의 차이는 단지 '때리느냐 안 때리느냐'의 차이가 아닙니다. 그 사이에는 좀 더 많은 문제들이 있습니다.

체벌은 학생들을 일방적으로 통제할 대상으로 보는 데서 시작됩니다. 자발적으로나 주체적으로 뭔가를 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니라고 보는 것입니다. 학생이 어떤 행동을 했을 때 그 행동에 대해 칭찬을 해주거나 보상을 해주면 이 행동이 좋은 행동이라고 학습하고, 그 행동에 대해 벌을 주거나 고통을 주면 이 행동이 나쁜 행동이라고 학습한다는 식입니다. 교육은 사회화가 덜 되어서 뭐가 좋은 행동이고 나쁜 행동인지 구별할 줄 모르고 좋은 행동이 몸에 배지 않은 미성숙한 학생들에게, 질서를 지키도록 사회의 틀 안에 넣는 과정이라고 봅니다. 그 과정에서 '벌', '고통'으로 체벌을 적절하게 사용하는 게 필요하구요.
(대개 이런 걸 '행동주의'라고 하는데요. 뭐 행동주의의 이론이나 방법론이 전적으로 틀린 것은 아니고 행동주의가 딱 이런 내용인 건 아닙니다. 이런 식의 사고방식은 행동주의를 극단적으로 적용한 거라고 이해하시면 됩니다. -_-)

체벌을 반대하면서 학생들의 인권 보장을 지지하는 입장에서는, 학생들을 좀 더 주체적으로 봐야 한다고 말합니다. 교육은 힘과 지식과 도덕을 가진 교사가 미성숙한 학생에게 일방적으로 전달, 주입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학생들은 사회 속에 살며 삶의 과정에서 경험을 쌓으면서 스스로 인격적으로나 지식적으로 성장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교육은 학생들의 그러한 성장을 도와서 학생들이 더 좋은 성장을 이룰 수 있도록 하는 것입니다. (비고츠키이론 등등) 이러한 관점에서는 학생들의 자발성과 참여가 좀 더 중시됩니다.


이에 따라 교육 방식에서도 차이가 생깁니다. 체벌을 옹호하는 쪽은 교육에서 어떤 가치관이나 지식을 주입하는 게 좋다고 믿습니다. 배우기 싫어하는 학생에게도 강제로라도 지식을 외우게 해야 합니다.(한국에서는 입시를 위해서인 경우가 많지요.) 그런 과정에서 체벌 등의 폭력이 동원되겠지요.
반면 체벌을 반대하는 쪽은 어떤 가치관이나 지식을 주로 경험하고 참여하는 활동을 통해서 익히도록 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믿습니다. 교육에 참여하기 싫어하는 학생이 있다면 그 학생이 필요성과 흥미를 느낄 수 있도록 설득하고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사실 체벌을 얼마나 중요하게 보느냐 자체 또한 이러한 교육적-철학적 입장 차이에서 비롯됩니다. 체벌을 옹호하는 사람들에게 체벌은 여러 가지 '벌' 중 하나의 수단일 뿐입니다. 어쨌건 학생들이 잘못된 행동을 했을 때 고통을 느끼고 그런 행동을 하지 않아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만드는, '부적강화'나 '처벌'의 수단이면 되는 것입니다. 하지만 체벌을 반대하는 사람들은 학생들이 체벌에서 어떤 경험을 하는지에 더 주목합니다. 체벌을 당하거나 혹은 체벌을 당하는 것을 목격하는 학생들은, 체벌로 인해서 사람의 몸에 대한 존중이 약해지고 폭력에 익숙해지며 자존감이 낮아집니다. 때문에 어떤 교육적 목적을 위해 체벌을 하든 체벌은 반교육적이라는 것입니다. 어떻게보면 오히려 체벌을 '중요하게' 보는 사람들은 체벌을 반대하는 사람들일 것입니다.





구체적으로 : 체벌의 대안?



체벌의 대안을 이야기할 때는 이러한 교육철학적인 문제의식이 없어서는 안 됩니다. 예컨대 상벌점제는 앞서 이야기한 체벌을 옹호하는 입장의 철학이 반영된 대표적인 제도입니다. 학생들을 '상점'과 '벌점'으로 통제하고 학습시키겠다는 거지요. 자기 행동의 의미 등은 생각하지 않고 단지 행동이 점수로 환산되는 비교육성이나 사소한 규정 위반들이 누적되어서 퇴학까지 이를 수도 있는 제도라는 점에서 상벌점제의 폐해는 이미 여러 번 지적되었습니다.

체벌이 없어졌지만 체벌을 대체할 만큼 학생들에게 공포와 폭력을 행사하는 다른 수단이 들어선 학교. 이건 전혀 '대안적인' 모습이 아니고 체벌에 반대하는 학생들이 원하는 학교의 모습도 아닙니다. 그럼 체벌의 대안은 무엇일까요?


중장기적인 대안은 사실 그동안 여러 차례 제시되었습니다. 학급당 학생수를 줄여야 한다든가, 입시교육이 아니라 좀 더 학생들의 삶에 맞는 교육을 해야 한다든가, 수업시수를 줄인다든가 하는 것들 말이지요. 굉장히 중요하고 또 필요한 이야기인데도 왠지 '비현실적인' 주장 취급 받는 것 같습니다만. 이런 대안은 우리 교육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알려준다는 점에서 결코 무시해선 안 되는 이야기입니다.



일단은 지금 당장의 요구에 따라 더 구체적이고 단기적인 대안을 이야기해봅시다. 우선 체벌이 일어나는 가장 직접적인 이유는 뭘까요? 중고등학생들의 경우 2010년 수도권 중고등학생들을 대상으로 참교육연구소가 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체벌의 주된 이유(복수응답)로 "과제나 수업태도"가 56.8%, "두발복장문제"가 41.0%, "지각/결석"이 33.2%가 나왔습니다. 사실 두발복장 문제나 지각 문제 등은 '어떻게 처벌하냐' 차원이 아니라 반인권적인 두발복장규제를 폐지하고 등교시간을 좀 더 학생들의 의견을 반영해서 조정해야 할 문제라고 생각됩니다.(-_-) 학교 생활규정이 최소한의 인권을 존중하는 내용으로 개정되기만 해도 체벌의 절반은 없어질 겁니다.(또한 같은 조사에서 학교의 생활규정이 잘 지켜지지 않는 이유에 대해 중고등학생들 중 53.4%가 규정이 학생들의 생활 실정과 맞지 않아서 그렇다고 답했다지요.)

여하간, 이 설문조사 결과를 보면 체벌에서 가장 중요한 문제는 역시 수업 운영인 걸 알 수 있습니다. 즉 수업 중에 떠들거나 수업에 잘 참여하지 않는 학생들(과제 포함)을 어떻게 할 것이냐 라는 점이지요. 두발복장규제 등이 없는 초등학교의 경우는 특히 수업 운영이 문제가 됩니다. 그래서 체벌을 옹호하는 사람들은 뭐 수업 중에 떠들어서 다른 학생의 학습권까지 침해하는 학생들을 어떻게 할 거냐고 이야기하곤 하지요.


*
일단, 그 대안은 어렵지 않습니다. 애초에 체벌 문제를 단기적으로 풀기 어려운 건, 모든 학생들이 그 수업에서 담당 교사의 감독과 통제 아래에 있어야 한다는 고정관념 때문입니다. 그 고정관념을 버리면 대안이 보입니다. 하루 중에 최대 몇 시간 정도는 학생들이 자기 컨디션이나 상태에 따라 수업을 듣지 않아도 되게 하는 것입니다. 수업에 참여하지 않는 학생들은 휴게실에서 휴식을 취하거나 다른 대체교육 프로그램에 참여할 수 있습니다. 물론, 수업 중에 한두 번 떠들거나 잠시 수업에 잘 참여하지 않는 학생들의 경우까지 모두 그래야 한다는 건 아닙니다. 정 그날 그 수업에 참여하기 어렵고 싫은 학생들만 선택하는 겁니다. 사실 학생들이 일부러 악의적으로 수업을 방해하고 싶어서 수업 시간에 꾸역꾸역 교실에 남아서 떠들거나 한다고 생각하십니까? 그런 학생들은 거의 없습니다.(-_-)

이렇게 하면 학생들이 다 싫은 수업은 듣지 않을 거라구요? 일단은 한 수업에서 그렇게 할 수 있는 학생들의 수를 제한하거나 시간을 제한하는 등의 방법이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만일 어느 학생이 이 제도를 이용해서 반복적으로 특정 수업을 듣지 않는다거나 너무 많이 수업에 들어가지 않는다면 그 학생에게 어떤 문제가 있는지 상담을 하고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노력해야 할 일입니다. 문제는 해결되지 않았는데 강제로 수업에 참여하도록 한다고 해서 그 학생이 그 내용을 배울 것 같나요? 떠들거나 딴짓을 하겠지요. 만일 그 수업의 방식 등에 문제가 있는 것이라면 그 수업이 좀 더 학생들에게 흥미를 불러일으키고 참여하고 싶어지도록, 학생들과 같이 이야기해서 수업을 개선해야 할 것입니다.(교사들에게 점수를 매겨서 줄 세우는 교원평가제 따위보다 이게 수업 개선에 훨씬 효과적일 겁니다.)

대체교육 프로그램은 교육적으로 의미 있는 영화나 다큐멘터리를 보거나, 체육활동 혹은 예술활동을 하거나, 시사적인 내용에 대해 토론하거나, 인권교육이나 놀이교육을 하거나, 사회적인 문제 해결 능력, 민주적 운영 능력 등을 향상시킬 수 있는 여러 프로그램들을 마련하면 됩니다. 수업 진도를 잘 못 따라가서 이해가 안 가서 흥미를 잃은 학생이라면 보충 수업을 선택할 수도 있겠지요. 이런 대체교육 프로그램에조차 참여하기 싫어하는 학생들은 하루에 1시간 정도는 휴게실에서 쉬거나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쉴 수 있게 하면 됩니다.

아니면 정 문제를 일으키는 학생은 상담교사와 면담하거나 상담을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프로그램에 참여할 수도 있겠지요. 실제로 2010년 참교육연구소 조사에서 교사들은 68.9%가 "학생에게 맞춘 특별교육, 전문가와의 상담 및 치료"가 문제를 일으킨 학생들을 지도하는 데 있어 체벌을 대체하는 좋은 지도 수단이라고 답했습니다.

이건 그렇게 어려운 대안도 아닙니다. 현실적으로 필요한 건 여분의 교실 3-4개와 교사 수를 좀 더 늘리고 외부 강사를 고용하면 됩니다. 정부가 의지를 가지고 예산을 편성하고 추진하면 몇 개월이나 1년 안에 자리잡을 제도입니다. 굳이 이름을 붙인다면 "휴게 제도"라고 해도 좋고, 학생들이 마냥 쉬고 노는 것 같아서 이런 이름이 싫은 분들은 "대안교실제도" 뭐 이런 식으로 이름 붙여도 좋습니다.

 여기서 좀 더 근본적인 대안이 되려면 학생들이 자기 시간표를 직접 의견을 반영해서 짤 수 있도록 하고 매년마다 커리큘럼을 만드는 데도 학생들의 의견을 반영해서 만드는 등의 내용이 들어가야겠죠. 학교에 있는 시간 자체를 줄이거나요. 아니면 교과 지식 전달보다 이러한 사회적으로 서로 다른 사람들의 요구를 조정하고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 자체가 더 중요한 교육라는 믿음으로 수업에 참여하지 않고 방해하는 학생들의 욕구와 수업을 듣고 싶어하는 학생들 사이에 즉석 토론/회의/협상에 들어갈 수 있을 정도로 자율적인 교실 정도는 되어야 근본적 대안이라고 부르는 겁니다.

이건 그냥 "지금과 같은 수업과 학교 시스템을 크게 바꾸지 않는 속에서 어떻게 수업에 참여하기 싫어하는 학생들을 교육적으로[인권적으로] 지도하고 관리할 것인가" 정도 수준의 이야기일 뿐입니다.

이미 이와 같은 사고방식에서 출발한 제도들은 드물지 않습니다. 예컨대 미국의 한 학교에서는 수업 중에 수업에 참여하고 싶지 않은 학생들은 제한적으로 아무것도 하지 않는 방에 가서 시간을 보내다가 올 수 있습니다. 핀란드 같은 곳은 수업 중에 딴 짓을 해도 처벌 대상이 되지 않고, 수업이 어렵거나 집중하지 못하는 학생들 등은 특별지원교육을 받거나 대체 프로그램을 받기도 합니다.(책 『핀란드 교실혁명』을 통해 수학 수업 시간에 뜨개질을 하는 아이 등등 여러 모습이 알려져 있죠.) 애초에 중고등학교인데도 자기 수업 시간표 자체를 학생들이 스스로 편성하면서 중간에 쉬는 시간을 두거나 하는 나라들도 얼마든지 있어요.
(사실 학생들이 학교에 있는 시간이 세계 최장시간을 기록하는 한국적 상황의 특수성부터가 심각한 문제입니다.)

서울시교육청에서 체벌의 대안으로 발표한 '성찰교실제도'도 기본 취지로는 이와 유사하다고 생각합니다. 현실적으로 저는 이 성찰교실제가 좀만 교사들 눈밖에 나는 학생들을 가둬두고 격리시키는 용도가 될까봐 우려하고 있지만요. 하지만 어쨌건 "1명의 교사가 이 반의 모든 학생들을 책임져야 하고 수업에 강제로라도 참여시켜야 한다"라는 생각을 깨는 방향이라는 점에서는 의미가 있습니다. 이 글은 '성찰교실'을 처벌의 의미가 아니라 학생들이 직접 원해서 갈 수 있는 곳, 그리고 가서 그냥 갇혀 있다가 오는 곳이 아니라 유익하고 재밌는 대체 교육 프로그램을 받는 곳으로 바꾸자고 제안하는 셈입니다.
(근데 성찰교실을 운영하면 교장, 교감 등이 학생들을 책임지는 게 늘어나는데, 이를 꺼려하는 교장, 교감 등은 성찰교실제는 별로 안 좋아하고 상벌점제로 때울 가능성이 높습니다.)



*
이를 보충할 다른 대안으로 학생 자치의 활성화 같은 것도, 의외로 단기적인 대안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여기서 학생 자치는 추상적이고 원칙적 이야기가 아니라, 구체적으로 학생들의 자치적인 질서를 의미하는 겁니다.

예를 들면 이미 지금 교실에서 종종 볼 수 있는 풍경입니다만, 수업 시간 중에 과도하게 떠들거나 수업을 방해하는 학생들에 대해서는 다른 학생들이 제지하거나 화를 내곤 합니다. 말하자면 자신들의 '학습권'을 적극적으로 지키려는 모습일까요?

학생 자치를 통해서 학생들의 민주적 조직화가 이루어진다면, 어느 정도 일탈적인 학생들은 학생들 내부에서 억제시키는 풍토가 뿌리내리게 됩니다. 학생들이 무력하게 자기 권리를 침해당할 때도 교사가 해결해주길 바라며 침묵하는 게 아니라, 스스로 힘을 가지고 자기 권리를 지켜나가는 능력을 가지고 그런 문화가 자리잡히면 학교 현장에서 문제 해결은 쉬워질 것입니다. 학생들은 학교나 교사의 인권침해에 대해서도 저항하고 바꾸려고 하겠지만, 동시에 같은 학생끼리의 인권침해나 불합리한 행동에 대해서도 저항하고 제지할 테니까요. '폭력'을 독점한 소수의 교사가 수백명 수천명의 학생들을 일방적으로 통제하고 지배해야 한다는 관념은 학생들이 스스로 가지고 있는 힘과 가능성을 무시한 독재적 발상이라는 걸 깨달아야 합니다. 통제할 수 없고 원자화된 수많은 학생들과 그 학생들에게 무한대로 책임을 지는 교사들이라는 모델이 아니라, 함께 책임지고 함께 민주적 자치 능력을 가진 학교 모델을 만들어가야 합니다.





마치며 : 참을 수 없는 체벌 논의의 가벼움

이미 몇 차례 공개 토론회 등에서 언급된 것이니 부담 없이 밝히자면, 이미 조선일보 등의 '보수언론'들은 체벌 금지에 찬성하는 입장으로 내부 논조를 결정했습니다. 체벌을 금지하고 교육을 '선진화'해야 한다구요. 저는 그게 한편으로는 체벌 금지의 당위성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그들이 "체벌을 금지하는 대신 상벌점제 등으로 더욱 비인간적으로 통제되는 학교"를 지지한다고 생각해서 그리 기분이 좋지는 않습니다. 우리가 체벌에 대해 논의하면서 빠지지 말아야 할 함정이 바로 그런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지금 이루어지고 있는 체벌에 대한 논의는 너무 '가볍'습니다. 체벌이 아니면 뭘로 학생들을 통제하고 억누를 거냐, 라는 식의 논의로는 학생들은 별로 행복해지지 않습니다. 교육이 별로 바뀌지도 않을 거구요.

교사 임용은 줄이고 교육 예산은 줄이는 정부에 대해서는 별 이야기도 하지 않으면서, 교사들 수가 부족하고 교육환경이 열악하니까 체벌 없는 학교가 비현실적이라고 하는 사람들에게도 화가 납니다.

그동안 교육이-학교가 가지고 있던 모순과 구조적 문제들 등에 대해서는 별 소리도 안 하다가 "현장을 모른다"느니 하며 현재 상대적 약자인 학생들을 통제하는 권력을 계속 가져야 한다고 하는 비겁한 일부 교사들(교총이라거나?)에게도 화가 나구요. (사실 체벌 금지는 교사 개인의 폭력과 책임 속에 학생들을 맡겨놓던 상황에서 학교가 제도가 같이 책임지는 것으로 변하기 위한 것이니까 평교사들에게는 이익이라고 봅니다.)

체벌에 대한 대안을 이야기하면서 아주 구조적, 근본적인 곳까지 뜯어고치진 못하더라도 최소한 학교생활규정의 개정, 예산의 확보, 학교가 학생들을 같이 책임지는 여러 프로그램들의 도입은 피해갈 수 없는 과제입니다. 그런 것들은 이야기하지 않으면서 학교에 학생들을 정학시키고 퇴학시킬 수 있는 권한을 줘야 한다느니 하는 건 피상적인 사고방식이고 또 더 큰 사회 문제를 잔뜩 낳을 방법입니다. 적어도, 정말로 적어도, 예산과 인력 충원 정도까지는 이야기하지 않으면, 체벌 논의는 너무 '가벼운' 게 되고 말 겁니다.

체벌의 대안은 얼마든지 있습니다. 중장기적인 것에서부터 단기적인 것까지요. 상벌점제나 퇴학처럼 대안 같지 않은 대안들을 쳐내더라도 얼마든지 가능한 것들이 많이 있습니다. 우리 사회의 관점과 의지의 문제일 뿐입니다.





추신 : 그런 의미에서 교사 임용을 늘리라거나 교육예산을 늘리라는 요구는 단지 사범대생/교대생들의 요구가 아니라 학생.청소년들의 이해관계이기도 합니다. 현재로서는 역량이 없어서 청소년운동이 거기까지 개입하지 못하고 있을 뿐이지요.




나중에 든 생각을 추가로 남깁니다 ::
 1) 교사 임용을 늘려서 수업 시간 중에 한 교실에 교사를 2명 정도 배치해서 1명은 수업을 하고 1명은 학생들의 수업 참여를 독려하고 수업을 방해하는 학생을 제지하도록 하는 것도 충분히 단기적 대안입니다.

2) 상벌점제의 경우에, 정 도입을 막을 수 없다면, 수업 시간 중 수업과 관련된 것으로 그 대상, 항목 등을 엄격하게 제한해서 도입해야 합니다. 최소한 상벌점제가 학생들의 생활에 대한 통제가 되지 않게 하려면요.
(2011년 2월 24일)
Posted by 공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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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사라

    정말 잘 읽었습니다
    속이 시원한 글이군요
    '체벌'속에 들어있는 통제의식, 민주화의 퇴행의 의미를 살펴본다면
    결코 체벌금지를 반대할수 없을것인데 말입니다..

    2010.11.08 19:19 [ ADDR : EDIT/ DEL : REPLY ]
    • 감사 ^^;
      체벌 외의 다른 방식으로 그런 통제를 구현하려고 하는 것도 비판해야 한다는 취지로 썼습니당

      2010.11.09 18:02 신고 [ ADDR : EDIT/ DEL ]
  2. 어쩌다

    트랙백타고 흘러들어온 사람입니다.

    일단 글이 너무 길군요. 누구를 대상으로 하는 글인지는 알 수 없으나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읽히고 싶은 글이라면 문단정리를 좀 하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이글을 보면서 한가지 분명하게 확인하게 된 것은 체벌금지를 찬성하는 입장에서는 좀더 설득력있는 근거나 대안을 가져올 필요가 있다는 것입니다. 현재까지도 논의가 제자리에만 머무는 까닭은 찬성 측 입장의 논거나 대안이 설득력을 가지기에 부족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던 제 예상을 크게 빗나가지 않는 글이었습니다. 게다가 그 대안들이란 것도 대부분은 체벌금지를 찬성하는 입장에서 차선책으로 내놓은 것들을 받아적는 수준일 뿐이었습니다. 제대로 된 비전이나 대안을 제시하지 못하여 참패한 정치인들의 일례를 굳이 이 자리에서 하나하나 열거하진 않겠습니다.

    그 동안 찬성측이 내놓은 근거는 사실상 한가지 뿐이라고 보입니다. 체벌은 언제나 폭력이기 때문에 정당화될 수 없고 인격권을 침해하며 막연히 그로 인해 사회의 폭력적 성향을 가중시킨다는 추측 하나 뿐이었습니다. 그러나 이는 틀린말입니다. 이미 근대국가가 공공연하게 법률로서 폭력행사를 정당화하고 있고 그건 다른 근대국가들도 다르지 않기 때문입니다. 근대국가에 대하여 정의해 놓은 막스 베버의 말을 참고해 보더라도 확실히 깨달을 수 있을 겁니다. 법률에 의해서 신체의 자유나 인격권을 제한하는 것도 현행 헌법상으로는 원칙적으로 가능합니다. 유럽이나 미국은 체벌을 금지하는 것이 아니라 학생들에게 그만큼 철저하게 상벌제도나 수업권 박탈, 부모의 소환 등 폭력을 대체하는 대안들을 마련하고 있으므로 체벌을 가할 필요성이 우리보다 적을 뿐입니다. 만약 그런 대안들이 모두 효과를 거둘 수 없을 경우에도 과연 그들이 체벌을 폭력이라는 이유만으로 금지할 지는 의문이죠.

    현행법상 부모에게 주어지는 친권 속에는 징계권(체벌권)도 포함되어 있고 교사 역시 부모와 마찬가지로 일정 범위 내에서는 민법상 감독자책임을 집니다. 교사(구체적으로는 학교장이겠지만)에게 부모와 마찬가지로 체벌권(권리)을 주는 이유는 그 사람들이 결국 최종적으로 금전적인 배상을 지는 책임(의무)주체들이기 때문입니다. 대법원도 (논란의 여지는 있으나) 사립학교법상 징계권이나 민법상 친권에 근거해서 상해가 아닌 한 체벌(폭력)을 정당하다고 인정하고 있습니다. 다만 헌법재판소에서 이를 문제삼아 위헌으로 가져간 바는 아직 없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한마디로 체벌은 (다소 불분명하나) 현행법으로 정당화되는 범위 내에 있는 기본권 제한인 상황입니다. 따라서 체벌에 의한 제한이 과도하냐 과도하지 않느냐의 문제만이 다른 대안들과의 관계에서 남을 뿐이죠.

    많은 학생들이 체벌금지=내 멋대로 행동하더라도 통제받지 않을 자유라고 생각하나 실제로 자유란 그에 따르는 책임을 지는 것입니다. 체벌권을 박탈하는 자유를 얘기하면서 그로 인해 발생하는 일들에 대해 어떠한 책임을 지겠다는 대안없이는 논의를 진전시킬 수가 없습니다. 특히 체벌의 주된 원인인 과제나 수업태도 불량에 따른 책임을 어떤식으로 지겠다는 적극적인 대안을 내놓음없이 어떠한 논의를 하던 차이는 좁혀지지 않을 것입니다. 소극적으로 상벌제도는 이런 문제가 있으니 이래서 안되고 대안교실은 재정적인 문제가 있으니 우리의 논의대상이 아니라는 식으로 피해가기만 해서는 체벌이 폐지되면 교권이 붕괴되고 말 것이라는 공포에 가까운 두려움을 제거하는 것은 광우병 소고기에 대한 두려움을 제거하는 것만큼이나 불가능에 가까워보입니다. 그 불가능을 해내려면 지금 이 글에서처럼 권리만 주장하기 보다는 현행 법을 바꿀 입법자들에게 제시할 타협안에 대한 고민이 더욱 필요할 것으로 보입니다. 그리고 그 타협의 내용은 현재 재정적인 상황을 감안하여 청소년들이 주체적으로 할 수 있는 '체벌을 대신할 책임의 내용'에 관한 것이 되지 않으면 안된다고 봅니다.

    권리와 의무는 바라보는 측면만 다를 뿐 사실상 동의어라고 보아야 합니다. 권리에 대해서 얘기하면서 의무에 대해서 얘기하지 않는 것은 기만일 뿐입니다. 체벌금지에 대한 권리의 이야기는 지금까지 한 이야기로도 충분해 보입니다. 이제는 그 이면에 어떤 의무를 질 것인지에 대한 생각을 좀더 듣고 싶다는 것이 이글에 대한 저의 감상입니다.

    덧) 민주화가 민주공화국처럼 민주주의나 공화주의를 합쳐 의미하는 것이라면 시민이 가진 권리의 크기와 의무의 크기가 정확히 일치하며, 시민의 다수결로 공동체의 의사를 결정했던 아테네만큼 민주화에 걸맞는 모범적인 사회는 없을 것입니다. 아테네에서 시민권을 가지지 않은 자는 의무가 없는 노예나 여자들뿐이었으니까요.

    권리만 크고 의무는 한없이 적다면 권리만 있고 의무는 없는 군주들만 존재하는 군주국으로 공화주의가 퇴행함을 의미할 것입니다. 또한 상대를 설득하여 다수결을 이끌어낼 수 없는 것은 민주화의 퇴행이 아니라 단순히 민주주의를 수행할 능력의 부족이 아닐까 합니다.

    2010.11.08 22:18 [ ADDR : EDIT/ DEL : REPLY ]
    • 1/ 이 글은 체벌금지 대안이 뭐냐고 묻는 청소년 활동가 분들을 위해 쓴 글이니까 좀 길어도 된다는 마음으로 썼습니다. 만약에 다른 용도로 널리 퍼뜨린다면 더 줄여야겠죠.

      2/ 이 글은 체벌금지의 당위성이나 정당성을 주장하는 글이 아닙니다. 제일 앞에 분명히 썼을 텐데요 ^^;
      그리고 근대국가가 행사하는 제도적 폭력과 신체적 폭력은 비슷한 걸로 간주하기 힘듭니다. 왜냐하면 근대국가에게 허용된 폭력 자체에도 직접적으로 신체적 폭력을 가하는 데는 커다란 제한이 걸려 있기 때문입니다. 예컨대 고문이나 태형 등이 대부분의 나라에서 금지되어 있는 걸 보면 알 수 있습니다.

      3/ 현재 한국의 판례로 볼 때 체벌은 분명히 완전히 금지되어 있지 않습니다. 이는 정확히 말하면 초중등교육법 시행령 등에 비춰서 사법부가 내린 판단이죠. 그리고 저는 그런 법이 정당하지 않다고 주장하며 바꾸기 위해서 운동을 하는 입장입니다만 ^^; 어떤 법이 인권에 비추어볼 때 정당하지 않다면 그걸 바꾸라고 요구하는 게 당연한 것 아닐까요?

      굳이 법적 근거를 원하신다면, 형식적으로는 국내법과 동일한 지위를 가진 유엔아동권리협약, 사회권협약, 자유권협약 등이 가정, 학교, 사회 전체에서의 체벌 금지를 요구하고 있다고 말씀드릴 수는 있겠군요.


      4/ 만일 어떤 학생들이 체벌금지를 통제받지 않고 멋대로 행동할 자유라고 생각한다면, 그건 그만큼 체벌이나 기타 억압적 시스템이 학생들에게 책임지고 자율적으로 살 기회를 주지 않고 체벌-폭력으로 통제하고 억눌러 왔기 때문에, 그렇게 통제하는 데 사용된 수단 하나가 금지된 걸 그렇게 받아들이는 것이겠지요.
      저는 충분히 타협안을 제시했습니다. 재정적 상황은 정치적, 정책적 판단의 대상이지 고정불변의 상황이 아닙니다.


      5/ 어쩌다님은 국가로부터 부당한 구금이나 고문을 당하지 않기 위해 어떤 의무를 하시는지 궁금하군요. 기본적 인권은 의무 없이도 보장되고 보호받기 때문에 기본권이고 인권이라고 불리는 겁니다.


      6/ 아테네에서 여성이나 노예가 '의무'가 없었다구요? ^^; 강제로 노동하고 가사노동을 하는 등의 것들은 '의무'가 아닌지요. 자유가 없지만 의무만 있는 대표적 사례일 듯합니다.
      (저는 '책임'과 '의무'는 다른 맥락의 말이라고 생각합니다.)
      책임과 자유는 같이 다니긴 합니다만, 어디까지나 자유가 행사되는 속에서 그 자유에 대해 책임이 생기는 거지요.
      "교사에게 맞거나 신체적 고통을 당하지 않는다"정도 수준의 소극적 자유를 가지고 뭘 거창하게 공화주의나 민주공화정까지.

      2010.11.09 17:13 신고 [ ADDR : EDIT/ DEL ]
  3. 어쩌다를 보고

    윗글을 보고 한마디 남깁니다.

    '체벌은 언제나 폭력이기 때문에 정당화될 수 없고 인격권을 침해하며 막연히 그로 인해 사회의 폭력적 성향을 가중시킨다는 추측 하나 뿐이었습니다.그러나 이는 틀린말입니다. 이미 근대국가가 공공연하게 법률로서 폭력행사를 정당화하고 있고 그건 다른 근대국가들도 다르지 않기 때문입니다.'

    라고 말씀하셨는데 참 재미있는 소재거립니다만 간단하게 이야기해서 근대 타국가가 비슷하다고 해서 잘못된 행위가 바른 행위가 되지는 않습니다.

    '많은 학생들이 체벌금지=내 멋대로 행동하더라도 통제받지 않을 자유라고 생각하나 실제로 자유란 그에 따르는 책임을 지는 것입니다.'

    또 위와 같이 말씀하셨는데 제가 볼 때 이글에는 전혀 근거가 없으며 단순히 글쓴이의 타인에 대한 시각에 불과합니다.

    '권리와 의무는 바라보는 측면만 다를 뿐 사실상 동의어라고 보아야 합니다. 권리에 대해서 얘기하면서 의무에 대해서 얘기하지 않는 것은 기만일 뿐입니다. 체벌금지에 대한 권리의 이야기는 지금까지 한 이야기로도 충분해 보입니다. 이제는 그 이면에 어떤 의무를 질 것인지에 대한 생각을 좀더 듣고 싶다는 것이 이글에 대한 저의 감상입니다. '

    마지막으로 위와 같이 말씀하셨는데 참 교과서적인 말씀이십니다.
    우린 교과서적 이야기에 대해 좀더 본질과 현실적으로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무엇을 위한 법이고 무엇을 위한 교육인가?

    여기에 대한 시각을 달리한다면 그건 제각각의 시각 차이입니다
    반드시 상대의 시각에 맞는 대안을 제시해야 하는 것이 아닙니다.

    권리와 의무는 참 좋은 말입니다 정치적으로 이용하기에 말입니다.
    그렇다면 당신은 무슨 권리를 누리고 있으며 무슨 의무를 지고 있습니까?
    인간이 반드시 누려야하는 권리에 부여해야할 의무는 타인에게 그 권리를 누릴수 있게 하는 것 정도입니다.

    마치 학생이 마땅히 더 나은 교육 분위기를 만들어야하는 것처럼 의견이 진행된 느낌이 드는데
    그렇다면 성인은 더 나은 국가를 이루지 못하는한 마찬 가지 취급을 받아 마땅한 것입니까?

    옳은 길은 지향의 대상이지 의무로서 얽매는 순간 본질이 달라지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덧> 체벌은 인권을 침해하는 수준의 행위입니다. 윗 댓글분의 의견은 마치 살아 있어도 되는 권리를 얻고 싶다면 세상에 이로운 행위를 해라와 같이 들리는군요.

    2010.11.09 08:19 [ ADDR : EDIT/ DEL : REPLY ]
  4. 위에서 언급한 헌재의 각하판결의 내용입니다.

    2004헌마739 초·중등교육법시행령 제31조제7항위헌확인 [2004.10.05] [각하(2호),각하(4호)] [결정문 ] [지정재판부]

    이 사건 심판대상 조항에 대해 권리보호이익이 인정되기 위해서는 이 사건 심판대상조항에 대하여 위헌이 선언된다면 청구외 김○호의 폭행에 대한 법적 평가가 달라질 수 있어야 한다. 그런데, 청구외 김○호에 대해서는 이미 폭행 혐의가 인정된다는 전제에서 기소유예의 불기소처분을 받았다. 그렇다면, 이 사건 심판대상 조항이 위헌으로 선언된다고 하여 청구외 김○호의 폭행에 대한 법적 평가가 달라질 것은 아니다.

    청구외 김○호의 "폭행이 정당화될 것인가는 법률차원의 문제다." 즉 청구외 김○호의 폭행이 형법 제260조 제1항의 폭행죄의 구성요건을 충족한다는 점에 대해서는 이론이 없다. 다만 위법성조각사유로써 형법 제20조의 정당행위에 교사의 체벌이 포함될 것인가 하는 점이 문제로 된다. 그런데, 초ㆍ중등교육법 시행령에 불과한 이 사건 심판대상 조항이 위헌으로 선언된다고 하여 바로 교사의 체벌이 정당행위가 아닌 것으로 인정되는 것은 아니다. (설사 초중등교육법상 체벌이 위헌이 되어도 형법 제20조에 의해서 위법성이 조각될 여지가 있기 때문에 판단의 필요성이 없다는 취지로 보입니다. 헌재는 형법 제20조에 의해서 체벌이 정당화될 수도 있다는 입장으로 보이기 때문에 대법원과는 좀 다른 입장으로도 보이네요.)

    그렇다면 청구인의 이 사건 심판청구는 권리보호이익이 없다는 점에서도 그 부적법함을 면할 수 없다.

    법률에 의해서도 폭행이 정당화 될 수 없다는 생각은 본인만의 고견이신 듯 합니다. 형법 제20조의 정당행위에는 의사의 치료행위(상해)나 교사의 체벌(폭행) 및 기타 친권자의 체벌(폭행) 현행범 체포(폭행)이 대표적입니다. 만약 교사의 체벌이 형법상 정당행위에 포함되어서 안된다고 보는 특별한 근거가 있다면 그에 대해서 나름의 논지를 듣고 싶습니다.

    가볍게 제 논의를 정리하겠습니다. 1. 교육의 목적없이 손이나 발로 때리는 행위는 이미 체벌이 아닙니다. 그건 학생들도 성인과 마찬가지로 형사고소로 해결 가능합니다. 2. 교육목적을 가지고 적정한 방법내에서의 행위는 현행법률로 정당화되는 폭행이라고 보는 것이 특별한 반대의견 없는 의견으로 보입니다. 3. 따라서 법률로 정당화 되는 폭력 속에 체벌이 포함되어서는 안되는 까닭을 구체적으로 듣고 싶군요.

    2010.11.09 13:55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 - 현행법에 의해 폭행이 정당화되더라도 그 현행법이 인권의 기준이나 정의 등에 어긋난다고 판단될 때는 그 법을 바꾸라고 요구하는 건 얼마든지 할 수 있는 일입니다. 이미 인권활동가들이든 학생들이든 국제기구이든 체벌 금지를 요구/권고하는 일은 여러 차례 있었구요.
      법을 바꾸라고 요구하는 사람에게 현행법에 의해 정당화되고 있다고 말씀하시는 게 얼마나 이상한 말인지는 이해하시겠는지요? ^^;
      교사의 체벌이나 친권자의 체벌 모두가 정당행위에 포함되어서는 안 된다고 보는 입장입니다. 사실상 이미 국제법상 금지해야 한다고 여러 차례 명시된 사안들이고, 인권을 제한할 수 있는 요건들을 만족하지 못하는 경우이기 때문입니다. 청소년-아동을 인권을 가진 인격체로 본다면 정당행위로 봐선 안 되겠지요.

      2010.11.09 17:30 신고 [ ADDR : EDIT/ DEL ]
  5. 픽션들

    학생들에게 수업권이 인정되기 때문에 그에 상응하여 교사들에게 교육할 의무가 주어지고 그 의무를 이행하기 위해서 교육목적 범위 내에서 체벌권이 주어지기 때문에 학생들은 어느정도 체벌을 수인할 의무가 나오는 것입니다. 교사들의 수업권은 학생들의 수업권을 위해 제한되기 때문에 교사들의 수업권(수업이 방해된다는 이유로)만을 가지고 학생들의 수업권을 박탈할 수 없습니다. 아직은 그런 법률도 없구요.

    굳이 체벌을 폐지하고 싶다면 수업권을 박탈하는 식으로 상응하여 나가야 하지 않을까 하는게 제 생각입니다. 학생들이 학습태도 불량들을 이유로 지적을 받으면 수업권이 박탈되고 부모 역시 자녀교육권을 박탈되더라도 학교측에 항의하거나 교육비반환을 청구하지 않겠다는 학생과 학부모의 합의서를 모아서 교육청에 제출하여 설득해 나가는게 어떨까 하네요. 권리와 의무가 일치하여야 한다는 말은 그런 뜻에서 한 말이었습니다.

    2010.11.09 14:23 [ ADDR : EDIT/ DEL : REPLY ]
    • - 요약하면 학생들의 교육권을 실현하기 위해 학교와 교사가 존재하는 게 맞지만, 체벌을 교육의 범주나 교육의 정당한 수단으로 볼 수 없기 때문에 체벌권은 교권에 포함되지 않는다는 주장입니다.

      - 법에 대해 잘 아시는 듯한데, 오히려 말씀하신 그런 조치들이 과잉 조치입니다. 법익의 균형이 맞질 않아요 -_-; 단지 학습태도 불량을 이유로 교육권이 쉽게 박탈될 수 있다는 건 교육권을 너무 가벼운 법익으로 보는 거지요.
      현재 서울시교육청이 학습태도가 반복적으로 불량해서 다른 학생들의 수업 참여에까지 피해를 주는 학생을 제한적으로 '성찰교실'에 보내는 방법을 제시하고 있는데, 굳이 법적으로 따진다면 그 정도가 균형이 맞겠습니다.
      하지만 저는 교육권은 인권이기 때문에 침해하지 않고 실현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면 강구하는 것이 옳다고 보고, 성찰교실보다 모두의 교육권을 더 잘 보장할 수 있는 방안을 이 글에 대안으로 쓴 겁니다.

      --- 근데 이 글은 체벌 대안 등에 대한 글인데 왜 체벌의 정당성을 묻는 댓글이 이렇게 많이 달리는지 잘 이해가 안 가는군요. 다들 글을 잘 안 읽으시나.

      2010.11.09 17:34 신고 [ ADDR : EDIT/ DEL ]
  6. 한가지 혼동하시는 것이 있는 듯 합니다.

    흔히들 교사들이 교육적 목적 없이 손이나 발로 때리는 것은 이미 체벌이 아닙니다. 폭력일 뿐이죠. 그건 형사사건으로 고소되면 처벌되는 상황에 있습니다. 이미 그런 식으로 처벌된 사례들도 판례가 많이 쌓여있구요. (인천지방법원 2009.04.23 선고 2009고단1010 판결) 특별히 학생들이라는 이유로 성인에 비하여 그런 모든 폭력까지 감수하라고 요구하고 있지 않습니다. 그런 까닭에 학생들이기 때문에 유난히 인권침해가 심하게 된다는 말에 대해서는 공감하기가 어려운 것은 사실입니다. 피해자의 재정적 능력때문에 고소나 소송이 불가능하냐의 문제는 딱히 학생에게만 한정된 문제는 아니라고 봅니다.

    그러나 목적이 정당하고 방법이 적정하다면 법에서 그것을 체벌이라는 이름으로 정당행위로 분류하고 있습니다. 여기에 대해서는 저 역시 딱히 이것까지 헌법에 위반된다고 보는 입장을 만나본 적이 없습니다. 헌법재판소도 다른 정당행위가 성립될 여지가 있다는 식으로 보고 있는 것 같구요. 심지어 위헌 여부를 판단해줄 필요도 달리 없다고 보는 것 같은 입장으로 보입니다.

    전자의 문제는 체벌금지가 아니라 개별적인 형사고소를 통해서 해결될 문제라고 보이며, 후자의 문제에 대해서라면 다시 학생들의 책임이 문제됩니다. 교사의 체벌권이 필요없다는 것을 설득하기 위해서는 다른 대안으로도 충분히 그 교육목적을 달성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야 하지 않습니까? 모든 폭력이 정당화 될 수 없다는 것이 그쪽의 주장이라면 그에대한 근거를, 체벌만이 그렇다면 법률에서 정당화되고 있는 폭력과 체벌이 어떠한 점에서 다르다는 것인지 구별지어 설득할 필요가 있어보입니다.

    2010.11.09 17:23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 - 음? 전 딱히 이 글에서 "교육적 목적 없이 손이나 발로 때리는 것"까지 체벌로 보고 쓴 적은 없습니다만. 여기서 다룬 건 대개는 "교육적으로 필요하다고 여겨져서 이뤄지는 체벌"에 대한 거죠.

      - 말씀하시는 체벌의 정도가 어느 정도까지인지는 모르겠으나 현실의 학교에서는 학생이라는 이유로 많은 폭력들을 감수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것들은 일탈적인 폭력이 아니라 '허용된 체벌'의 연장선상에 있는 것들이라고 생각합니다. 체벌 때문에 죽는 학생들도 거의 매년마다 1명씩은 보는 것 같은데, 개중에는 단지 사고로만 판단하는 경우들도 꽤 됩니다.

      물론 각각의 사건들은 혹시 고소하거나 하면 이길지도 모르는 사건들이 많지만, 소송이란 게 그렇게 쉬운 것도 아니고 말이죠.

      그리고 단소로 손바닥을 때리거나 발바닥을 때리거나 엎드려뻗쳐놓고 큐대로 엉덩이를 때리는 등, 판례상에서 정당하다고 인정한 체벌의 경우에도 '학생청소년이기 때문에 감수해야 하는' 폭력인 게 맞습니다.


      - 제가 아는 헌법학자나 법학자 중에서는 체벌 허용 자체가 헌법에 위배된다는 입장을 가진 분들도 꽤 됩니다만 ^^; 대표적으로 오동석 교수라거나. 뭐 곽노현 교육감도 법학자 출신이죠.

      굳이 법적 근거를 원하신다면 헌법 뿐 아니라 국내법과 동일한 지위를 인정받는 한국 정부가 비준한 국제협약 등에서도 체벌 금지를 요구하고 있습니다. 국제법을 법원(法原)으로 잘 삼지 않는 국내 법조계의 풍토 탓에 판결에 잘 반영되지는 않습니다만.


      - -_-; 현재 학교 현실에 대한 고려 없이 순전히 법적으로만 말씀드린다면-

      공권력에 의한 체포나 혹은 정당방위 등으로 행사되는 폭력과 체벌은 분명히 성격이 다른 폭력입니다.
      경찰 등 공권력의 경우이든, 정당방위를 하는 개인의 경우이든, 구체적이고 긴급한 침해를 방지하기 위해서, 폭력의 행사가 불가피할 때에만, 제한적으로 폭력의 사용이 가능합니다.
      따라서 오히려 체벌을 옹호하는 쪽이 특정 상황에서 체벌이 불가피하다는 걸 입증해야만 할 책임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미 체벌이 없이 교육하는 것이 충분히 가능하다는 것이 다른 나라의 사례이든 체벌 없이 교육을 하는 학교들의 사례이든 입증되어있으며, 체벌로 달성할 수 있는 교육적 효과에 관해서도 많은 이견들이 제시되어 있습니다.
      ---- 신체적 폭력을 사용하는 것이 불가피한 특정 상황이라면, 싸움을 뜯어말리는 과정에서의 물리력 행사나 자기를 해하려 드는 학생에 대한 정당방위 정도겠지요.

      2010.11.09 17:35 신고 [ ADDR : EDIT/ DEL ]
  7. 위 댓글에도 이미 언급했었는데, 제 댓글을 잘 안 읽으셨나봅니다. 체벌의 대안 등에 관하여 소극적인 부정만을 하고 있기 때문에 답답한 마음에서 적은 것이었습니다. 체벌의 정당성을 부정하기 때문에 체벌은 금지하고 대신 다른 대안을 취하자는 입장 아니셨습니까? 그러나 현재까지 나온 대안이 모두 마음에 들지 않는다, 재정적 제약이 있다는 식의 부정만으로는 그 어떤 현실적인 소득도 얻을 수 없고 가장 기본적으로는 이 글을 읽는 사람들을 설득하기도 어렵습니다. 그래서 넌 어쩌자는건데? 그게 얼마나 효과가 있는데? 이런 의문이 반드시 따라오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1. 체벌이 정당한지 2. 교육목적 달성을 위해 제한이 필요한지 3. 그 제한수단으로 체벌이 지나치다면 다른 대안으로 어떤 것이 필요한지의 순서로 논의가 진행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1. 법률로 체벌(폭행)이 정당화 될 수 있는지 : 헌법 제37조 2항에 의해서 법률에 의해서 모든 기본권의 제한이 가능합니다. 헌법에 근거한 법률에 의해서 기본권 제한이 가능하기 때문에 법률에 의해서 폭행(위에서 말한 허용범위 내의 신체의 자유 제한)도 정당화될 수 있다는 것이 기본적인 헌재의 헌법해석에 대한 입장입니다. 저 역시 그 논지에서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따라서 체벌에 의한 제한이 과잉이냐 아니냐의 문제만 남는 것이라고 설명한 까닭은 그런 이유에서입니다.

    그러나 공현님께서는 저와는 달리 폭행은 어떤 사유(법률)로도 정당화 될 수 없다고 하셨으나 실제로는 헌법재판소는 헌법에 근거한 법률로 정당화 될 수 있다는 논지를 펴고 있고 저도 그 의견에 찬성합니다. 그렇다면 남들과 다른 주장을 하실 때는 그에 대한 마땅한 근거를 제시해주기를 요구하는 것입니다. 가령 비교법적으로 다른 나라의 헌법은 어떻게 되어 있다는 식의 내용말입니다. 그러나 제가 알고 있기로 법률에 의한 기본권제한(신체의 자유 포함)을 부정하는 나라는 그렇게 흔하지 않을 것으로 보입니다. 개헌으로 제37조 2항을 삭제하자는 설득도 얼마나 공감을 얻을지 모르겠습니다.

    게다가 고문과 체벌을 비슷하게 보시는 듯 한데;; 고문이 금지되기 때문에 체벌도 금지된다고 보는 것은 체벌의 개념을 위에서 말한 것처럼 현행법상 허용되지 않는 범위까지 포함되는 것으로 보시는 것 아니십니까?

    2. 교육목적 달성을 위한 제한이 필요한지 : 교육목적 달성을 위해 일정한 제한이 필요하다는 것에 대해서는 어떤 나라든지 공감합니다. 미국이나 유럽등도 체벌을 대신하는 대안들을 여러방면으로 간구하여 그 목적을 달성하고 있는데 그런 측면에 보면 그들도 기본적으로 교육목적 달성을 위해서 학생들에게 일정한 페널티를 가해야 할 필요성이 있다는 것을 부정하지 않습니다. 단지 그 페널티로서 다른 대안들이 너무 잘되어 있기 때문에 체벌이 필요없는 상황일 뿐이지요. 그러니 남는 문제는 우리의 상황에서도 그 페널티가 꼭 체벌이어야 하냐? 이것뿐입니다. 한마디로 그 수단으로서 체벌이 적합하냐 혹은 너무 과중하진 않느냐의 문제가 남을 뿐입니다.

    3. 체벌을 대신할 다른 대안은 없는지 : 체벌 존치를 주장하는 교사들의 주된 근거는 (다른 수단이 없다면 비례원칙상 법률로도 정당화되는) 체벌을 대체할 만한 대안이 부족하다는 것입니다. 이 상황에서 그나마 제시한 대안들의 헛점을 꼬집어보았자 사실 체벌 존치를 주장하는 교사들이나 학부모들을 설득하기 보다는 그들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근거(그러니까 체벌만이 유일무이한 수단이다)을 더욱 공고히 할 뿐입니다. 체벌이 꼭 폐지되어야 한다면 체벌을 대신할 대안을 적극적으로 모색하고 그들이 지적하는 대안의 헛점을 어떤식으로 보완해 갈것인지를 탐색하여 제시하는 것이 의미있는 행동일 것인데 아쉽게도 체벌금지를 찬성하는 입장 중에서 이에 대하여 구체적인 제시안을 내놓은 바가 없다는 것입니다.

    또한 수업을 방해하거나 친구의 수업권을 침해하는 학생에게 체벌을 금지하는 대신 다른 식으로 제한을 가해야 하는데 성찰교실은 제한이라기 보다는 수익에 가깝지 않습니까? 그것 역시 상대를 우롱하는 짓이죠. 상대는 그럼 어떤 제한을 감수하겠냐고 묻는데 우리는 성찰교실에서 성찰이나 하며 있겠다라고 하면 저라도 그런 곳이 있다면 기꺼이 수업권 포기하고 그리로 갈것 같군요. 그 제도를 남용하는 학생들이 그리 적진 않을 듯 하네요. 덧붙여 위에서 말한 수업권 박탈은 독일에서 인정하고 있는 것입니다. 독일은 일반적으로 우리나라보다 기본권 보장이 잘된 선진국이라고 보는데 아직 독일 연방헌법재판소에 의해서 위헌을 안 맞은걸 보면 법익형량에 어긋난다는 그 주장 역시 독자적인 견해가 되겠군요. 사실 우리나라 헌법재판소 판례들은 대부분 독일 연방헌법재판소 판례를 고대로 갖다 베낀다는 그런 뒷다마(?)들이 있습니다. 독일에서 위헌판결 받으면 그땐 그 주장이 설득력을 강하게(?) 어필할 수 있겠죠.

    게다가 말씀하신 것처럼 그런 교실은 재정적인 제약(상담원이나 지도선생)이 따릅니다. 말안듣는 놈 떡하나 더준다는 속담처럼 기꺼이 지갑을 열 생각이 있는 관대한 상대방을 만난다면 그런 배짱도 나쁘지 않겠지만 아쉽게도 상대방이 관대한 인물인지 인색한 인물인지 정도는 파악을 해가면서 절충안을 만들어 제시해야 그 쪽도 구미가 당기겠죠.

    사실 체벌 존치론자들도 항상 말끝마다 다른 수단이 없으니까, 라는 단서를 답니다. 그들 대다수가 체벌같은 변태적 쾌락을 즐기는 자들이 아닌 이상 체벌을 꺼림직하게 생각한다는 증거로 제게는 읽힙니다. 그렇다면 보다 구체적으로 진지하게 그들이 받아들일 수 있을만한 다른 수단을 찾는게 진심으로 체벌금지를 바라는 입장에선 현실적으로 낫지 않습니까.

    어찌되었건 논의가 제 생각보다 너무 길어지는 듯 하여 이쯤에서 저는 퇴장하겠습니다.

    그리고 문단 나누어 주신 것 감사합니다. 읽는데 눈이 좀 아팠거든요.

    덧) 입증책임은 잘못 알고 계신 듯 하여 적습니다. 책을 참고하여 덧붙이느라 좀 늦어진 점 양해부탁드립니다.

    입증책임이란 주장한 사실이 불분명하다고 판단되는 경우에 그로 인해 패소위험을 부담할 책임입니다. 민사소송법적으로 보통 입증책임은 주장을 하는 자가 집니다.

    체벌보다 효과적인 다른 대안이 있기 때문에 체벌이 위법하다고 주장하는 자가 다른 대안을 구체적으로 제시하고 그 대안이 체벌보다 더 효과적인지(이 경우에는 우리나라에서 아직 체벌보다 더 효과적인 대안이 성공한 바가 없으니 그 성공가능성 및 재정적인 수단까지)를 제시해야 하는 겁니다. 그 대안이 효과적이거나 실효적이라고 판단되지 않을 경우에 그로 인해 불분명한 사실(효과적인 대안이 존재하는지 불분명)이 되면 그로 인한 불이익은 주장한 자가 집니다. 결국 다른 효과적인 대안은 없는 것이 되어서 체벌만이 유일무이한 수단으로 되는 겁니다.

    입증책임은 법정에서 판사들이 어떻게든 판단을 내려야 하는 경우에나 하는 말이고 실생활에서 입증책임을 적용하는 것은 사실 좀 웃기는 일이긴 합니다만 이건 법학과 상관없이 상식적으로 법개정을 주장하는 자가 구체적인 입법안을 조사하고 그 입법의 성공가능성을 분석하여 보고서로 제출해야지 법을 내버려두자는 자가 입법개정금지이유를 제시하겠습니까?

    말씀하신 곽노현 법학자의 글을 찾아보았으나 그 분도 체벌이 위법한 이유는 다른 수단이 있는데도 체벌은 선택했기 때문에 과잉제한이라고 본다는 점에서 사실상 다른 수단이 없다면 체벌이 정당화된다는 것까지 부정하는 입장은 아니라고 보입니다. 그러나 그 다른 수단은 다른 나라에서 성공한 사례이기 때문에 우리나라에 도입시에 성공가능성에 의문을 제시하기 때문에 다들 긴가민가 하는 것이겠죠.

    2010.11.10 14:31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걸어가는꿈2010. 10. 16. 15:21


서울 학생인권조례 주민발의안 공청회

때 : 2010년 10월 18일 월요일 2시
곳 : 한국건강연대 3층 강당 (경복궁역)



"교육의 중심에 사람을! 가장 인권적인 것이 가장 교육적이다!"
이런 믿음으로 서울에서도 학생인권조례를 만들고자 합니다.
시민들의 힘을 모아 학생인권의 시대를 열기 위해 주민발의운동을 시작합니다.
주민발의안 초안을 발표하고 의견을 듣는 자리를 마련했으니 함께해주세요!



인사말씀 홍세화 (주민발의 청구인 대표)

발 제 윤지영 (공익변호사그룹 공감) - 주민발의안 초안 발표

토 론

오동석 아주대 헌법학교수, 경기도학생인권조례제정 자문위원

학생
홍인기 좋은교사운동 정책위원장
김혜정 학부모
이복균 신도림중학교 교장
서울시교육의원
Posted by 공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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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비밀댓글입니다

    2010.10.17 11:35 [ ADDR : EDIT/ DEL : REPLY ]

걸어가는꿈2010. 7. 20. 12:07


체벌금지, 뒤늦었지만 꼭 필요한 조치다


서울시교육청이 2010년 2학기부터는 체벌을 전면 금지한다고 발표했다. 이른바 ‘오장풍’ 교사 사건으로부터 촉발되어 교사에 의한 폭력 사례들이 속속 언론에 이슈화되면서 취해진 조치다. 체벌을 금지하라고 인권단체들, 청소년단체들이 요구해온 세월과 2003년 UN아동권리위원회나 2002년 국가인권위원회의 권고 등을 생각하면 매우 뒤늦은 조치다. 하지만 일상적으로 체벌이란 이름의 폭력이 일어나고, 체벌을 당하다가 학생들이 다치고 죽는 사건이 발생해도 수수방관 하고 있는 다른 지역의 교육청들, 그리고 교육과학기술부가 본받아야 할 일이기도 하다. 청소년인권활동가네트워크는 서울시교육청이 체벌금지를 발표한 것을 환영하는 바이다.

체벌은 명백한 폭력이고 인권침해다. 폭력에 익숙해지게 하고 인권감수성을 무디게 한다는 점에서 체벌은 반교육적이기도 하다. 신체적 폭력을 동원하는 체벌의 부작용과 위험성을 생각한다면, 체벌의 교육적 효과를 얘기하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일이다. 체벌은 청소년들을 인격체로 보고 소통하고 존중하려 하지 않고, 다스리고 억압해야 하는 대상으로 보아야만 가능한 비인간적인 폭력인 것이다. 설령 폭력의 가해자가 좋은 의도를 가지고 있더라도 그 효과가 안 좋게 나타날 가능성은 다분하다. 그렇기 때문에 ‘과잉 체벌’이 문제가 아니라 ‘체벌’ 그 자체가 문제이며, 체벌을 전면 금지하는 것만이 최소한의 정답이 될 수 있다. 일각에서는 체벌 금지를 반대하며 단계적, 점진적, 학교자율적으로 폐지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으나, 지난 수년 간을 돌아볼 때 이는 전혀 체벌을 근절하는 데 효과를 내지 못한 비현실적인 정책이다.

일부 교사들이 체벌금지에 반발하는 것도 앞을 내다보지 못한 근시안적인 것이다. 지금까지 교육현장은 교사들에게 충분한 노동환경과 학생, 교사들을 위한 좋은 교육환경을 보장하지 않은 채 입시교육에 매몰되어 있었고, 체벌과 같은 폭력적인 장치들을 동원하여 이런 어려움을 어거지로 덮어왔다. 우리는 체벌금지 조치가 이런 현실의 문제를 드러내고 교육환경, 노동환경을 개선하고 소통하는 교육, 함께 책임지는 교육, 인간적인 교육을 실현하기 위해 꼭 필요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교사들이 요구해야 할 것은 학생들을 “때리게” 해달라는 것이 아니라 체벌 없이 교육할 수 있도록 지원하라는 것이어야 하지 않은가?

우리는 곽노현 서울시교육감의 학생인권조례 공약과 함께 서울시교육청의 이번 체벌금지 발표가 학교에서 빈번하게 일어나던 일상적인 학생인권침해들을 개선하려는 의지의 표현이라고 믿고 싶다. 그리고 이것이 단지 의지의 표명에 그치지 않고 학교현장에 자리잡아 뿌리깊은 학생인권침해를 개선하려면, 교육청 등 교육계와 시민사회의 지속적이고 성실한 노력이 필요함을 강조한다. 우리도 이런 조치들이 실효성을 가진 것이 되게 하기 위해, 그리고 전국 모든 학교들에서 학생들의 인권이 보장되고 가정, 학원 등지에서의 체벌도 근절되게 하기 위해, 인권을 주장하는 학생.청소년들과 함께하며 앞으로도 활동을 게을리 하지 않을 것이다.



2010년 7월 20일

청소년인권활동가네트워크
Posted by 공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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흘러들어온꿈2010. 2. 10. 01:40

[인권교육, 날다] ‘교권’이 뭔가요?

교권에 낚이지 말고, 교권을 낚자! - 교권의 재구성

고은채

종종 단어의 애초 뜻이 무엇인지 헷갈리는 경우가 있다. 또 시간이 지나며 의미가 변해서 처음과는 다른 뜻으로 쓰이는 말도 숱하게 많이 있다. 어떤 사람은 이런 의미에서 ‘교권’이라는 말을 쓰지 말자고 주장하기도 한다. 교권이라는 말은 이미 오염돼 있다는 것이다. 교권이라는 말에 대해 학생, 학부모, 혹은 어떤 교사들이 느끼는 거부감 앞에 교권의 새로운 의미든, 교육의 진정한 의미든 찾기 어렵다는 것이다. 굳이 ‘교사의 권리’를 말하는데 있어, 교권을 이야기해야겠냐는 주장이다. 또 어떤 이는 “교권이 땅바닥에 뒹굴뒹굴하고 있어도 아무도 주우려하지 않더라.”며 자괴감 가득한 말을 던지기도 한다. 그 옛날 있었는지는 몰라도 지금은 찾아 볼 수 없고, 설령 있어도 한 줌도 안 되는 앙상한 뼈다귀만 남아 있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교권은 종종 우리를 주목시키는 실체를 띠고 있다. 이따금씩 학교에서 벌어지는 교사/학생간의 그 어떤 ‘문제들’은 ‘교권침해’로 정리돼 뉴스든 인터넷에서든 보여 지곤 한다. 이렇게 등장하는 교권은 이때 마다 무척 심각한 표정을 지으며 전 사회를 향해 개탄하기 때문에, 좀처럼 간과할 수도 없다. 수업 시간에 학생들을 꼼짝 못하게 하는 ‘잡는’ 권위가 교권의 실체는 아닐텐데, 지금의 교권은 외면할 수도, 버릴 수도, 이대로 받아들일 수도 없다. 그. 래. 서. 진짜 교권이 무엇인지 파헤쳐보기로 했다.

지난 1월 18일부터 20일까지 인권교육센터 들에서 마련한 교원 인권감수성향상 연수에서 교권을 파헤쳐 보는 기회를 가졌다. 교권이 무엇인지 혹은 무엇이 되어야하는지 살펴보는 정말이지 보기 드문 자리였다. 교사그룹이나 학교, 사회에서 교권과 관련한 사건이 등장하지만, 교권이 무엇인지 깊이 이야기하는 자리는 흔하지 않기 때문에 연수 정원을 넘어서며 관심을 모으기도 했다.



날개달기

연수는 교권이 무엇인지 살펴보는 첫 시간을 시작으로, 무엇이 교권을 침해하는지 살펴보면서 교권을 재구성하는 두 번째 시간으로 옮겨졌다. 교권을 구성하는 중심적 내용인 가르칠 권리의 맞은편에 위치한, 그렇다고 생각되어온 배울 권리와의 관계, 그리고 두 가지를 모두 존중하는 방안을 모색하는 시간을 통해 또다시 교권을 재구성했다. 이외 여교사의 눈으로 보는 교권, 비정규 교사와 함께 찾는 교권, 교권보장을 위한 조건을 탐색하는 생생토크로 이어졌다. 교권을 바라보는 다양한 시각과 더불어 발걸음을 함께해야할 사람들을 확인케 하는 시간이 되었다. 여기서는 무엇이 교권을 침해하는지 살펴봤던 두 번째 시간의 내용을 담기로 한다.


징계위기에 처한 6명의 교사가 등장한다.

- 교사 시국선언을 한 이유로 징계를 당할 상황에 처한 교사
- 수업부교재를 제작했는데, 내용이 국가보안법을 위반하고 있다고 하여 처벌 상황에 놓인 교사
- 작품으로 찍은 자신의 나체사진을 홈페이지 올려 징계 상황에 처한 교사
- 일제고사 때 학생들에게 안내장을 발송하고 체험학습을 간 이유로 징계 상황에 놓인 교사
- 교육감선거에서 선거운동을 한 이유로 징계에 처한 교사
- 연가를 냈는데 교장이 허가하지 않아서 근무지이탈로 징계에 처한 교사


사연은 실제 이야기를 바탕으로 조금 더 내용이 담긴 이야기쪽지로 만들어 모둠별로 나눠준다. 해당 모둠에서는 교사의 사연을 보고, 교사 징계위원회의 입장에서 논리를 마련한다. 교사를 징계할 수 있는 논리, 교사의 잘못을 추궁하는 논리를 만든다. 모둠별로 해당 사연에 대해서는 징계위원회의 입장에서 논리를 구성하고, 모둠별로 순차적으로 발표를 한다. 이때 나머지 다른 모둠은 징계에 처하게 된 교사의 입장에서 변론을 한다. 다른 모둠에서 변변한 변론이나 논리가 마련되지 않으면 해당 교사는 정말 억울한 징계를 당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설정한다.


더불어 날개짓

덕만의 역사수업은 학교에서도 인기가 남다르다. 바로 지난해부터 만들어 사용한 수업 부교재에 대한 뜨거운 반응이 그것이다. 학생들의 눈이 이처럼 초롱초롱했던가? 스스로 놀랄 정도이다. 특히 시험에도 잘 나오지 않아 뭐가 있는지도 모르고 지나기 일쑤였던 현대사 시간에 아이들이 질문을 하는 놀라운 일이 벌어지기도 했다. 심지어 어떤 반에서는 자기들끼리 토론을 하는 정말이지 보기 드문 장면이 연출돼 학교 선생님들 사이에 회자되기도 했다. 덕만은 현대사를 다양한 시각에서 좀더 꼼꼼히 챙겨볼 요량으로 인터넷과 출판된 자료에서 몇 가지 사건과 기록을 옮겨 자료를 만들고, 그것을 내용으로 수업을 했을 뿐인데 기대이상의 아이들 반응에 이것저것 의욕이 샘솟던 참이었다.
하지만 최근 덕만에게 불어 닥친 ‘국가보안법 위반’이라는 칼바람에 초롱초롱 눈빛도, 샘솟던 의욕도 오간데 없어져 버렸다. 국가보안법이 위반이라니…?? 이 무슨 난데없는 일인지.
바로 덕만이 만든 수업 부교재 때문이었다. 제주 4.3항쟁과 광주 5.18 항쟁에 대한 내용이 문제라는 것이다. 적을 찬양·고무’한다는 감정서를 들이밀며 검찰에서 덕만을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기소했다. 이미 두 사건 모두 국가가 잘못을 인정하고, 피해자들에게 보상까지 한 역사적 사건이건만.. 국가보안법 위반이라니. 게다가 덕만이 사용한 자료는 인터넷과 책을 통해 쉽게 구할 수 있는 사진과 글들로 공개되어 있는 것이다. 검인정 교과서 그대로 일점일획도 틀림없이 교육해야 한다면, 교사는 대체 어떤 존재란 건지.



* 사연 중 부교재 제작으로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기소된 사례는 현재 재판 중에 있다. 재판 대신에 학교 징계위원회 상황으로 바꿔 이야기를 꾸며봤다.

발표를 맡은 모둠은 실제 징계위원회 위원처럼 해당 교사의 문제를 조목조목 지적했다.
▷징계위원회, ▶덕만 교사를 지지하는 사람들


▷ “교사가 학교장의 허가도 없이 마음대로 부교재를 만들어 사용해도 됩니까? 교사로서의 성실의 의무를 다하지 않은 것이에요. 그것도, 이처럼 불순한 내용을 가지고! 아이들을 교육하다니.. 보세요. 이걸!”

▶ “5.18과 4.3항쟁 같은 사건은 이미 교과서에서도 다루고 있는 내용이에요. 게다가 덕만 교사가 만든 교재 내용은 인터넷이나 책을 통해 구할 수 있는 내용이라고요. 덕만 교사를 징계한다면 이런 책과 인터넷의 글도 처벌받아야하는 것 아닌가요?”

▷ “문제는 학생들이라는 것이죠. 학부모들의 항의가 빗발치고 있어요. ‘판단력이 부족한 학생’을 의식화하는 것 아니고요. 괜히 아이들한테 갈등과 혼란만을 조성하고 있다고 야단들입니다. 이건 교사가 학생들의 학습권을 침해는 것이에요. 미성숙한 아이한테 교사가 맘대로 교육하고 있는데, 아이들 귀를 막을 수도 없고 어떻게 합니까! 교사를 그만두게 해야지.”

▶ “학생들이 미성숙하다니요. 학생들도 생각하고 판단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일방적으로 주입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 토론해서 의견을 나누는 것인데, 다양한 의견을 접할 기회를 제공하고 토론하게 하는 것은 오히려 학생들의 학습권을 보장하는 방식이라고요.”

▷ “그런 얘기 더 이상 필요 없습니다. 제가 쭈~욱 지켜봤는데, 덕만 교사는 연가투쟁에도 참여하고, 지난 4년간 지각을 5번이나 했습니다. 그리고 제 작년 봄인가? 교직원회의도 불참했던 것 같고, 교사회식도 잘 참여하지 않아서 교사간의 화합을 이루지 못하고 있어요. 사사건건 불란을 일으켜 온 교사라고요.”

▶ “교장선생님은 본 사건과 관련 없는 내용에 대해서 그만 말씀하시죠? 그리고, 다시 한 번 말씀 드리는데 광주 5.18 운동 이제 학교에서 교육하라고 하는데, 왜 덕만 교사를 징계하려고 그럽니까?”

▷ “아이고, 이보세요! 정권이 바뀌고 나서 요즘 이 교육 못하게 하는 거 몰라요? 선생님은 어떤 학교에 계신 겁니까?”


외부상황과 조건에 따라 변하는 학교의 많은 붙임 현상을 표현하는 참여자들의 재치가 돋보이는 대목이라고나. 상황극은 이렇게 씁쓸한 웃음을 불러내기도 했다.

“애들의 귀를 막을 수 없지 않느냐”는 교장의 발언에서 수동적으로 학생을 대하는 관계의 흐름을 읽을 수 있다. 학생을 수동적으로 보는 관점에서는 교사의 다양하고 자유로운 수업도 허용할 수 없는, 무척이나 위험스러운 것일 수밖에 없다. 하지만, 수직적 관계가 아니라 학생과 교사가 동등한 관계가 된다면, 상황은 달라지지 않겠는가.

학생이 자신의 주장을 자연스럽게 펼치고, 판단할 수 있는 상황과 조건이 마련된다면 교사의 자유로운 수업권도 가능해야하는 것이다. “그건 아니라고 생각하는데요!”라는 학생의 주장이 자연스럽게 나올 수 있는 동등한 관계 형성은 교사의 수업권, 그리고 학생은 학습권 보장에 일차적 조건이 된다는 것. 학생을 미성숙한 존재로 보는 시각이 변하지 않고서는 교권의 이름으로 교사의 자유로운 수업권도 보장되기 어렵다. 학생과 교사의 ‘물고물리는’ 아주 밀접한 관계가 다시 확인되는 찰라다.

재구성 되는 교권에는 이처럼 교사/학생의 관계를 다시 읽으며 짚어본 가르칠 권리 외에도 노동자로 인정받지 못해서 빼앗기는 것, 시민으로 누리지 못하고 박탈된 권리들도 이야기 되었다.


머리를 맞대고

학교의 업무 분장, 휴가처리, 수업수당의 문제는 교권이라는 말로 이야기된다. 현재 학교나 교사그룹에서 주요하게 제기되는 교권 침해의 내용이기도 하다. 어떤 교사는 “정말 이렇게 한 줌이냐? 수호하자고, 힘주어 애써 골몰하지 않아도 법적으로, 행정적으로 처리될 수도 있는 그런 것이 교권의 전부인 것이냐”고 되묻는다. 아니, 재구성된 교권에서는 이것이 전부가 아니라고 말한다. 교사로서의 권리, 혹은 교사로서의 지위를 위협하고 침해하는 것들이 이것만이 아니지 않은가. 교권을 바라보는 눈은 깊고 넓게 뜨는 것이 필요하지 않을까.

덧붙이는 글
고은채 님은 인권교육센터 '들' 상임활동가 입니다.
수정 삭제
인권오름 제 190 호 [기사입력] 2010년 02월 09일 22:12:53
Posted by 공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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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어가는꿈2010. 1. 21. 12:13

레쓰가 찍은 사진.


- 학생인권조례 공청회에 갔다 왔다. 1월 19일 화요일, 경기도교육청.


- 4시간이나 앉아 있었더니 매우 힘들었다;;


- 들으면서 들었던 생각 1
:  일단 몇몇 패널들의 경우 학생인권조례 초안을 꼼꼼히 읽은 건지 잘 모르겠다.
예컨대, 어느 패널은 학생인권조례 전반을 지지한다면서도, 학생인권조례 안에 학생들이 다른 학생들의 인권을 존중하여야 한다는 내용도 명시되어야 하지 않나 라는 식의 발언을 했는데
실제로 이미 경기도 학생인권조례 초안 4조 3항에는 "학생은 인권을 학습하고 자신의 인권을 스스로 보호하며, 교사 등 타인의 인권을 존중하기 위하여 노력하여야 한다."라고 되어 있다. 그걸 실현할 방법은 인권교육이면 되는 것이고...
이런 류의 내용들이 패널들 발제 중에도 꽤나 많았다. 좀 제대로 읽고 하자구 -_-;



- 들으면서 들었던 생각 2
: 학생인권조례에 대해 얼마만큼의 지지를 보내야 할까?
사실 경기도 학생인권조례는 곳곳이 타협의 산물이다.
두발복장규제 부분이나 집회의 자유 등에서는 특히 두드러진다.

제12조(개성을 실현할 권리) ① 학생은 복장, 두발 등 용모에 있어서 자신의 개성을 실현할 권리를 가진다. 특히 학교는 두발의 길이를 규제하여서는 아니 된다.
② 학교는 정당한 사유와 제19조의 절차에 의하지 아니하고는 학교의 규정으로써 제1항의 권리를 제한할 수 없다.

제17조 (의사 표현의 자유) ② 학생은 수업시간 외에는 평화로운 집회를 개최하거나 참여할 수 있는 권리를 가진다. 다만, 학교의 장은 교육목적상 필요한 경우 집회의 자유를 본질적으로 침해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일정한 조건을 부가할 수 있다. 

12조는 일부러 양면적으로 해석될 수 있는 여지를 두고 만들어진 조항이다.
순수하게 논리적&인권적으로만 해석하면, '두발복장의 자유는 보장된다. 특히 학교에서의 길이 규제는 확실하게 금지한다." 즉 두발복장의 완전한 자유를 선언하고, 그 중에서도 문제점이 심각한 사안인 길이 규제를 특별히 명시한 걸로 볼 수 있다.(경기도 학생인권조례가 초안대로 만들어진다면, 우리는 이렇게 주장하며 써먹을 거다.)

그러나 부정적인 방식으로 해석하면 이 조항은 두발복장의 완전한 자유화가 아니라 두발길이만 자유화하되, 그 외의 조항에 대해서는 학교가 민주적 절차를 밟아서 제한 규정을 둘 수 있다는 내용이다. 학생들이 학교 안에서 현재 차지하고 있는 지위를 생각하면 이런 조항은 결국 두발복장규제를 정당화해주는 내용으로 전락할 가능성이 있다.

어쨌건 두발길이 자유를 확실히 명시한 것만으로도 논란이 이는 조항이지만 -_-

17조도, '수업시간 외'로 명시한 것은 사실 집회의 자유에 대한 부당한 침해이다. 학생들은 수업시간에도 집회의 자유를 당연히 가진다. 다만 수업을 빠짐으로써 생기는 개인적 불이익(결석처리, 수업 내용을 듣지 못함 등)을 감당해야 할 뿐이다. "교육목적상 필요한 경우... 일정한 조건을 부가할 수 있다." 와 같은 내용도 집회의 자유에 대한 법률 외의 부당한 제한을 정당화해주는 것이다.

이 조항은 다만 학교 안에서 수업시간 외에 평화적 집회의 자유를 보장하는 것 자체가, 학내 시위/집회 자체를 불온시하는 현재 학교 실정에서는 커다란 진보이기 때문에 의미가 있다.

그밖에는 뭐 "제15조(정보의 권리)  ① 학생 또는 보호자는 학생 본인에 관한 학교 기록을 언제든지 열람할 권리를 가진다." 정도만 뺀다면,(왜 보호자가 언제든 열람할 수 있는 거임?) 크게 불만스러운 조항은 없는데...

경기도 학생인권조례 초안에 드러난 한계를 명확히 인식하고 있으면서도, 정세와 전선상 적극적으로 비판하지 못하는 것은 스스로 좀 짜증나는 일이다. 뭐 경기도 학생인권조례가 초안 내용대로만 제정되면 그 자체로도 훨씬 낫긴 하겠지만. 이번 공청회에 나왔던 개그 발언 중 하나를 인용하자면, "마시멜로를 한 입에 먹지 마라."?????




- 들으면서 들었던 생각 3
학생인권조례 반대는 인종주의다.(笑)
그날 토론회에서 학생인권조례를 반대하는 패널들이 가장 많이 한 말이 '미성숙'이었다. 특히 뭐 학교운영 참여나 교육정책에 의견 반영이나 두발복장 자유 등에 대해서 이야기할 때 그랬다.
(예컨대 이런 기사도 그렇고 )
그런데 생각해보자. 이미 유럽이나 미국 등지에서는 학생인권조례에 보장된 내용들이 이루어지고 있다. 독일의 예를 들면, 독일은 초등학생 때부터 학교운영에 학생 대표가 참여한다고 알고 있다. 초등학교-중학교-고등학교 때의 차이는 대표 수의 차이 정도?
그렇다면 왜 유럽 미국 등지에서는 이미 이루어지고 있는 일인데 한국의 청소년들은 특별히 '미성숙'해서 불가능하다고 하는 것인가?? 한국의 청소년들이 특별히 국민성이 저질이고 지능이 떨어지거나 발달이 느리다는 말밖에는 되지 않는다.
(한국 실정은 외국과 다르다...는 류의 말이 1-2회 나왔으나 그러면서 구체적으로 뭐가 어떻게 다른 건지 언급된 건 '입시경쟁'밖에 없었다. -_- 결국 "한국 실정은 다르다"라고 참 쉽게 말하지만 구체적으로 뭐가 다르고 그게 어떻게 연관이 되는지 논증한 사람은 없었다.)
그렇다면 한국의 청소년들이 특별히 지능이 떨어지거나 발달이 느린 사회적 이유를 설명할 수 없다면, 이는 매우 인종주의적이거나 지역주의인 발상이다.
한국인은 열등해서 청소년들이 다 미성숙해요 우와아아앙??
아니면 유럽에서는 물이 좋아서 청소년들이 빠르게 성숙해지는 것인가?!?!?!
(사회적 이유로 설명 가능한 경우에도, 그러한 사회적 이유를 바꾸도록 노력하자는 게 결론이어야 하지 참여시켜선 안 된다가 결론이 되진 못한다.)





- 좀 더 힘을 내서, 학생인권조례에 들러 붙어 보자.



Posted by 공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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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마치 김상곤..을 막까지 못하는 그런 ㅁㄴㄹㅇ

    2010.01.21 12:48 [ ADDR : EDIT/ DEL : REPLY ]
    • ㄴㄴ
      김상곤보다는 학생인권조례 초안이 훨씬 나음.

      2010.01.21 14:28 [ ADDR : EDIT/ DEL ]
  2. 저번에 했던 이야기가 이거군. 아무리 생각해도 학생인권조례는 산넘어 산일듯ㅡ.ㅡ

    2010.01.22 14:29 [ ADDR : EDIT/ DEL : REPLY ]
  3. 미성숙이란 건 결국 자연의 상태에서 사회화가 덜 되었다는 소리인데 사회화가 되게 하려면 사회 참여를 열어줘야(응?)

    2010.01.22 19:30 [ ADDR : EDIT/ DEL : REPLY ]
    • 저 분들(중 일부)은 학교에 가둬 놓고 국영수를 집중적으로 주입하고 두발규제를 열심히 시키고 체벌을 하면 사회화가 된다고 믿는 거 같아요

      2010.01.23 00:06 신고 [ ADDR : EDIT/ DEL ]

걸어가는꿈2010. 1. 7. 13:41

 

 

학생인권조례는 가장 교육적인 조치

[기고] 두발자유 한다고 나라는 망하지 않는다

공현(청소년인권행동 아수나로)  / 2010년01월07일 11시03분


너무 쉽게 망하는 나라?


대한민국은 참 쉽게 망하는 나라다. 화물연대나 철도노조가 며칠만 파업해도 나라가 흔들린다고 난리다. 국가보안법을 폐지하면 친북 좌파들의 발호로 나라가 망할 거라고 한다. 참, 국가보안법 따위가 국가안보의 ‘최후의 보루’라니 이런 막장스런 취약 국가를 봤나. 드디어 이제는 학생들에게 두발자유를 ‘허용’하고 인권을 보장하여 마음대로 하게 내버려두면 나라가 망할 거라는 식의 소리까지 나오고 있다. 이번에 경기도교육청이 발표한 학생인권조례 이야기다. 학생들에게 두발복장의 자유를 주는 것만으로 나라가 흔들린다니, 불안해서 이딴 나라 못 살겠다. 역시 이민을 가야 하나? -_-

학생인권조례에 대한 반발이야 익히 예상된 바이지만, 학생인권조례를 놓고 조중동문(조선일보, 중앙일보, 동아일보, 문화일보)이나 좋은학교만들기 경기학부모모임, 한국교원노동조합, 자유교원조합, 대한민국교원조합 같은 데들이 보여준 반응은 상식을 뛰어넘는 것이었다. “김 교육감의 ‘행복한 학교’ 운운은 교육 황폐화의 둔사(遁辭)”(문화일보 사설) “운동권에서 주장하는 것과 비슷해 학부모들은 우리 아이들을 모두 운동권으로 만드는 것이 아닌가 불안해하지 않을 수 없다”(일부 학부모 단체들의 기자회견 내용) 등을 비롯하여, 자문위 구성에 대해 좌편향 색깔론을 제기하는 동아일보 등등. 이런 말들 속에서는 현재의 학생인권의 현실과 교육의 문제에 대한 책임감 있는 논의나 우려는 보이지 않고 막연한 색깔론 및 음모론과 ‘자유’, ‘다양성’, ‘인권’에 대한 두려움만이 난무한다. 그들은 학생인권조례가 무책임한 정책이라고 비난하지만, 정작 무책임하고 별 근거 없는 말들을 내뱉고 있는 것은 그들이다.

학생인권조례가 전교조와 좌익의 음모라고?

사실 학생인권조례에 대해서 가장 어이가 없었던 이야기가 “학생인권조례는 전교조의 획책”이라는 투의 음모론이다. 전교조가 그렇게까지 학생인권에 우호적이고 적극적이었다면, 참 나를 비롯해서 청소년인권활동가들이 이렇게까지 고생을 하고 있을까? 내가 장담컨대, 그렇게 전교조의 음모랍시고 들이대는 ‘집회의 자유 보장’에 대해서도 전교조 조합원들 중에 좀 떨떠름해하는 사람들이 다수일 것이다. 학생들의 학교운영 참여나 학생회 활성화에 대해 반대하는 전교조 조합원들은 많지 않겠으나, 집회시위의 자유에 대해서는 거부감을 가지는 것이다. 두발복장자유나 체벌금지 등 다른 논란이 되고 있는 부분에 대해서도 그렇다. 전교조가 일부 지도부나 간부의 립서비스가 아니라 전교조 조합원들 다수가 공감하는 성의 있고 실질성 있는 활동으로서 체벌금지나 두발복장자유를 외친 적은 별로 없다. 일단 전교조는 학생인권조례를 대체로 지지할 것이라고 생각되긴 하지만, 그 세부 내용으로 들어가면 얼마만큼 그 내부에서도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을지 의문이다.

학생인권조례는 전교조의 음모가 아니라 학생인권 보장을 열망하는 많은 학생들과 인권활동가들, 개념 있는 학자들의 요구와 견해를 담은 것이다. 그리고 국제적으로 제시되어 있는 여러 가지 보편적인 인권의 기준들을 학교에 적용해놓은 것뿐이다. 학생인권조례 제정 과정에서는 연구팀이 많은 국제기준이나 외국 사례들, 헌법이나 국가인권위 결정 등을 분석하고 면접조사, 설문조사 등을 통해 예시 안을 제출했으며, 발표된 초안은 이를 기초로 많은 인권전문가나 교육현장의 교육자들이 참여하여 합의한 내용이다. 이러한 근거들 위에 만들어진 학생인권조례를 비판하면서 자기들은 정작 제대로 된 근거도 제시하지 않고 막연한 음모론과 색깔론으로 일관하고 있고 보수적인 편견과 감정에 호소하는 말들만 가득하니, 이 얼마나 개념 없는가?

학생인권조례가 전교조나 좌익의 음모라고 말하는 사람들에게 묻고 싶다. (하승수 씨가 오마이뉴스에 썼듯이) “유엔도 좌파라고 우길 텐가?” 학생들의 집회결사표현의 자유나 참여권은 UN아동권리협약에 아예 조항으로 명시되어 있다. 오히려 현재 발표된 학생인권조례 초안에서 집회의 자유를 학교장이 제한할 수 있게 명시해놓은 것이 인권침해 소지가 있는 조항이다.(이 부분은 옥외집회의 경우 그냥 집시법에 따라 경찰에게 신고하여 하게 하면 될 텐데, 현재 한국 경찰들이 집회의 자유를 보장하기보다는 금지하는 쪽으로 대하고 있기 때문에 고육지책으로 나온 합의점으로 보인다.) 또한 체벌금지나 인권에 부합하도록 학칙을 개정할 것 등은 UN아동권리위원회 등이 한국 정부에 매번 권고해온 사안이다. 이런 내용들을 놓고 전교조의 음모라느니 좌익의 망국이라느니 설레발치는 것은 “우리 우익은 인권 개념도 없고 국제 감각도 없습니다.”라고 자폭하는 꼴이다. 만약 학생인권조례를 지지하는 세력 중에 정치적 성향이 좌파인 사람들과 단체들이 많다면, 그건 한국에서는 좌파들이 인권감수성이 더 뛰어나고 국제 감각이 더 훌륭한 탓일 것이다.


인권은 교육의 전제조건이자 목표이다

학생인권조례가 학생들의 교육에 해가 된다는 주장도, 교사들의 교권을 침해한다는 주장도 해괴하기 그지없다. 학교는 본래 쩌는 입시 공부를 하는 입시 학원이 아니라 민주주의와 인권의 가치를 교육하는 곳이다. 교육기본법을 봐도 그렇고, UN아동권리협약을 봐도 교육의 목표는 그렇게 명시되어 있으며, 교육의 방식이나 학교의 운영, 규율도 학생의 인권을 존중해야 한다고 되어 있다.(UN아동권리협약 제28조, 29조) 이러한 가치들을 도외시해가면서 학생들의 면학분위기를 조성하겠다는 이야기는 학교의 본래 목적을 배반하는 일종의 ‘패륜적’ 드립인데, 대놓고 ‘학교는 공부하는 곳이므로 강제성이 필요하고 그 과정에서 학생들의 인권을 보장할 수 없다.’라고 당당하게 말하는 꼴을 보니 이게 얼마나 무개념한 발언인지 스스로 알지도 못하는 것 같다.

학생들에게 규칙을 지키는 것을 가르치기 위해 불합리한 교칙도 필요하다는 주장은 참으로 독재정권스럽다. 학생들이 배워야 할 것은 무조건적 준법, 부당한 규칙이라도 닥치고 따르는 것이 아니라 규칙이 옳은 것인지 스스로 판단하고 비판적으로 사유할 능력이다. 인권을 개무시하고 학생들을 개고생시키는 잘못된 규칙은 없어져야 한다는 것, 그리고 인권을 지키며 민주적인 방식에 따라 스스로 함께 만든 규칙을 함께 지키는 것을 배우게 해야 제대로 된 인권교육이요 민주주의 교육이라고 할 수 있다.

학생인권조례가 책임감 없는 사람을 만들 것이라는 말도 비논리적이다. 자유와 인권이 보장되지 않은 상태에서 책임과 의무를 강요하는 것은, 진정한 의미의 ‘책임’을 지게 하는 것이 아니라 남이 정해놓은 대로 말하는 대로 따르는 노예를 만드는 일이다. 자유가 없이 책임을 요구하는 것은 공허한 일이요, 진정한 책임을 교육할 수 없다. 자기 머리카락이나 옷 입는 것 하나 스스로 결정하고 책임지는 경험이 없는 학생들이 자기 인생에 대해서는 얼마나 책임감 있는 결정을 내릴 수 있을 것인가? 스스로 책임을 지는 삶을 살게 하기 위해서는 먼저 기본적인 자유가 인권이 보장되어 있어야 한다.

학생인권 보장은 교사들의 권리에도 친화적이다. 학생들의 두발복장규제 등 교육에는 별다른 의미가 없는 소모적인 싸움을 벌이면서 과중하고 불합리한 생활지도 업무에 노출되었던 교사들의 노동조건이 더 나아질 것이기 때문이다. 학생인권조례가 명시하고 있는 학교의 교육환경 개선 등은 동시에 교사들의 노동환경 또한 개선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인권을 보장하며 필요최소한의 규제만을 가지고 운영되는 학교가 교육에 더 효율적일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런 맥락에서 나는 교권조례도 같이 만들라고 하는 교사들의 주장을 어느 정도 지지한다. 학생인권조례에 대항하고 균형을 맞추는 의미에서의 교권조례가 아니라, 학생인권조례와 시너지 효과를 내며 함께 더 잘 학생들의 인권과 교사의 권리를 보장하는 조례로서 교권조례는 바람직할 수도 있지 않겠는가? 학생들을 교사들의 원수보듯이 하고 학생인권과 교권이 대립하는 걸로 파악하는 인식은 교권이 보장되지 않고 학생인권이 무시당하는 학교 현실이 일으키는 착시현상이다.


다양성과 자율, 인권이 보장되지 못한 한국의 교육 현실에서 학생인권조례는 좀 더 교육다운 교육을 만들어가려는 의미 있는 시도이다. 인권은 교육의 전 과정에서 실현되어야 할 조건이자 교육의 목표이기 때문이다. 가장 교육적인 것이 가장 인권적인 것이다. 경기도지역 학교의 안습적인 학생인권 상황(내가 학생들로부터 들은 체벌 때문에 뼈가 부러져서 입원한 이야기나, 두발규제 과정에서의 강제이발 사례, 복장규제 과정에서의 변태스런 규제 등등을 다 열거하자면 끝이 없다.)을 굳이 하나하나 말하면서 독자들의 그로테스크한 취미를 만족시키지 않더라도, 200대 체벌이 언론을 타지 않더라도(200대를 때리든 1대를 때리든 체벌은 폭력이다. 폭력의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체벌은 완전히 사라져야 한다.), 학생인권조례는 교육을 위해서 필요하다. 대한민국이 두발자유 보장으로 망하는 빈약하고 괴상한 사회가 되지 않게 하기 위해서라도 말이다.
Posted by 공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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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두발자유 한다고 나라가 안 망해서야 쓰나!
    하긴, 두발자유만으론 망하진 않겠지만 나라를 멸망시키기 위한 초석이야.
    가장 중요한 건 더 이상 그런 걸로 고통받는 사람들이 그런 걸로는 고통받지 않게 된다는 거겠지만.
    (더 열심히 해서 다른 것들도!)

    2010.01.07 14:16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 어머 본문을 읽어보렴. 난 두발자유 해도 나라가 안 망한다고 쓰진 않았어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제목은 참세상에서 편집하면서 붙인 거고;
      두발자유로 안 망할 만큼 다양성 있고 인권이 보장되는 사회를 만들기 위한 조건이라고 결론에서 언급했을뿐

      2010.01.07 16:44 [ ADDR : EDIT/ DEL ]
    • 장난삼아서 단 댓글에 뭔 다큐로 받고 그러시나 ㅋㅋㅋㅋ

      2010.01.08 21:43 신고 [ ADDR : EDIT/ DEL ]
    • 그니까 나도 장난으로 단 거지. 어머.

      2010.01.08 23:36 [ ADDR : EDIT/ DEL ]
    • 우히히히
      장난 치곤 진지해보였어.

      2010.01.09 23:02 신고 [ ADDR : EDIT/ DEL ]
    • 아프다더니, 이런 댓글 달 수 있는 걸 보니, 소식지도 만들 수 있겠네? ^^ 얼른 좀 만들지?

      2010.01.10 08:54 [ ADDR : EDIT/ DEL ]
    • 어느새 소식지 내용이 된ㅋㅋ 그러고보니 소식지는 어찌되는 것인가?

      2010.01.11 21:10 [ ADDR : EDIT/ DEL ]

걸어가는꿈2009. 12. 19. 21:03



청소년인권행동 아수나로 서울지부 교육정책팀에서 만들고 있는 소책자에 들어갈 글 내용.








  교원평가제라는 건 풀어서 설명하면  ‘교사들을 평가하는 제도’라는 뜻입니다.
  교원평가제라고 하면 학생들은 학생들이 교사들을 평가할 수 있다고 하니까, 교사들을 견제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 거 같습니다. 학생들 막 대하고 수업 대충 하고 이런 교사들을 학생들이 직접 낮은 점수 줘서 쫓아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 거죠.
  그렇지만 지금 정부, 한나라당이 추진하고 있는 교원평가제를 보면, 1년에 한 번씩 교사에 대해서 정해진 항목에 점수를 매기는 일밖에는 할 수 없습니다. 심지어는 학생과 학부모(친권자, 보호자 등)는 참고자료 삼아 ‘만족도조사’만 하고, 교장, 교감, 다른 교사들만 교사들을 평가할 수 있습니다. 그거 참. 학생들을 학교의 주인, 교육의 주체로 만드는 제도라기보다는 그냥 만족도 점수만 몇 점 매길 수 있는 존재로 만드는 제도인 셈입니다.

  교원평가제는 달콤한 독약일 수도...
  정부에서는 교원평가제를 도입하는 목적이 공교육의 질 향상이라고 합니다. 특히 사교육을 줄이기 위해 공교육의 질을 향상시킨대요. 학생들이 사교육을 받는 이유는 뭐죠? 보통은 입시 성적을 올리기 위해서입니다. 그렇다면 사교육을 대신하려면, 학교에서 입시 성적을 잘 올리는 수업을 하게 되는 거가 ‘공교육의 질 향상’이겠군요! 이런, 그러면 학생들에게 보충수업 빡세게 시키고, 학생들을 때려서라도 성적을 올리는 교사들이 공교육의 질을 향상시키는 거겠네요?
  물론 교원평가제를 하면, 그냥 수업 들어와서 자습서 펴고 줄줄 읽는 몇몇 교사들은 없어질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것보다 손해가 더 클 수도 있습니다. 특히 입시경쟁은 더 빡세지는 상황에서 이런 식의 교장, 교감의 평가 권한이 강하고 학생들은 들러리 취급하는 교원평가제로는요. 자율학습 많이 시키는 교사, 일제고사 성적 많이 올리는 교사, 좋은 대학 많이 보내는 교사, 교장 말 잘 듣고 학생들 용의복장단속 잘 하는 교사가 좋은 점수를 받기 쉬울 거라는 겁니다.
  사실 학교교육 자체가 입시경쟁과 차별에 찌들어 있고 교육예산은 부족하고 교사들은 교육부, 교육청이 시키는 대로 안 하면 짤리는 상황에서 교사들만 평가하면 교육이 나아진다는 건 좀 말이 안 되는 거 같습니다. 교육부장관, 교육감들은 학생들이 평가 안 하나요? 참 이런 식의 교원평가제라면 학생들은 성적과 상벌점(그린마일리지;)으로 줄 세워지고 경쟁하고, 교사들은 교원평가점수로 경쟁하고, 학교들은 일제고사 성적과 대입 실적으로 경쟁하는 무한경쟁 점수 매기기 교육이 완성될 뿐일 것 같습니다.
 
  학생들에게 참여권을~ 학교를 민주화하면 되는데?
  사실 교원평가제를 학생들이 환영할 이유가 조금이라도 있다면 그건 수업에, 학교운영에, 교육에, 학생들의 의견을 반영할 수 있을 거라는 기대 때문 아닌가요? 그렇다면 경쟁시키는 교원평가제 말고 아예 좀 더 확실하게 합시다. 학생들이 ‘만족도 조사’란 이름으로 1년마다 교사들을 점수 매기는 요상한 방식이 아니라, 학생들의 인권을 무시하고 침해하는 교사들은 학생들이 직접 징계할 수 있게 하면 됩니다. 교육정책 결정, 교육감 선거, 학교 운영에 학생들이 직접 참여할 수 있게 하면 됩니다. 교장 독재 학교가 아니라 민주적인 학교를 만들면 됩니다. 학생들에게 참여할 권리, 정당한 권력을 주면 됩니다.
  이렇게 하면 될 일을, 왜 이런 요상한 교원평가제를 하려고 할까요? 더군다나 학생회는 아무 권한도 없고, 학생들이 교육정책에 대해 학칙에 대해 목소리를 내려고 하면 다 때려잡으면서 말이죠. 정부에서 삽질한다고 교육예산도 깎았던데 정말 교육의 질을 향상시킬 의지가 있는 걸까요?? 설마... 교사들을 더 잘 통제하고 말 잘 듣게 해서, 학생들을 더 빡세게 공부시키고 잡으려는 음모인 건 아니겠죠?? ^^



Posted by 공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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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교원평가 자체가 문제란건지, 교원평가를 Peer survey로 한다는데에 문제가 있는건지?;

    2009.12.21 09:52 [ ADDR : EDIT/ DEL : REPLY ]
    • 항목에 대한 점수 평가 식으로 1년마다 하는 교원평가는 반대임.
      차라리 사전에 학생들의 수업과정, 교육과정 편성, 학교운영 참여와 수업에 실시간으로 피드백하고 폭력 등이 심각한 교사는 즉각 징계 요구하는 시스템을 원하지 @_@

      2009.12.21 10:51 [ ADDR : EDIT/ DEL ]
  2. 학생한테 교사를 평가한다는거 자체가 잘못됬다고 봐요

    2010.02.18 00:55 [ ADDR : EDIT/ DEL : REPLY ]

걸어가는꿈2009. 12. 14. 14:03

논평 초안으로 썼던 것;;;;;;





강제 명찰 부착은 학생인권 침해로 사라져야 한다

- 학교의 명찰 제도 개선을 권고한 국가인권위 결정을 환영한다 -


  국가인권위원회는 교복에 꿰매어서 학교 밖에서도 달고 다녀야만 하는 명찰이 인권침해이며 탈부착이 가능한 형태의 명찰 등으로 개선할 것을 권고했다. 일단 우리 청소년인권활동가네트워크는 이번에 국가인권위원회에서 붙박이형 명찰을 강제로 달고 다니게 하는 것은 인권침해라는 결정이 나온 것을 환영한다. 이러한 결정이 청소년들을 감시하고 통제할 대상으로만 보는 이 사회의 시선에 인권의 이름으로 문제제기하는 한 걸음이라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와 학교는 학생들을 감시하고 통제하는 일에 익숙하다. 학생들에게 명찰을 달고 다니도록 강제하는 것은 그러한 감시의 일부이다. 자신의 소속과 이름을 항상 드러내고 다녀야 한다는 것은, 그들이 일상적으로 감시를 받으며 누구에 의해서건 자신의 이름을 불릴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학생들은 어떤 행동을 하건, 어떤 교사나 어떤 어른의 눈에 띄건, 교복을 입고 명찰을 달고 있기만 하다면 교복과 명찰의 색깔이나 명찰에 표시된 숫자와 이름으로 어느 학교 몇 학년 누구인지를 파악당할 수 있다. 자신의 의사와 무관하게 자신의 정보를 강제로 까발리고 다녀야 하며 그 정보를 근거로 통제당할 수 있다는 것, 그것이 명찰의 진정한 의도인 것이다.


  명찰을 달고 다니는 것이 교복 분실을 막기 위한 것이라는 일부 학교의 주장은, 다분히 핀트가 어긋난 주장이다. 분실을 막기 위해서 이름을 써놓는 것이라면 교복 안감에 이름을 크게 적어놓거나 별도의 표시를 하면 될 일이며, 그것이 모두에게 공공연히 이름 등의 정보를 드러내고 다녀야 할 사유가 되지는 못한다. 또한 학교 안에서 교복 분실이 자주 일어나는 것은 모든 학생들이 똑같은 구별이 안 가는 옷을 강제로 입어야만 하는 학교의 반인권적이고 획일적인 문화에 그 원인이 있다. 반인권적인 문화에서 일어나는 부작용을 막기 위해 또 다른 인권침해를 강제하는 셈이다.


   학생이 학생의 본분에 맞는 행동을 하도록 유도하기 위해 명찰이 필요하다는 주장도 자세히 살펴보면 말이 되지 않는다. 학생들은 경찰이나 군인, 공무원처럼 국가 권력을 대변하는 사람도 아니고 직무상 이름과 소속을 드러내고 다니면서 자기 행동에 책임을 져야 하는 사람이 아니다. 단지 공교육기관에서 교육에 참여하고 있는 사람들일 뿐이다. 결국 이러한 주장은 학생을 통제와 감시의 대상으로 보는 시선을 노골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학생들이 자발적으로 다른 사람의 인권을 존중하고 공공의 질서를 지킬 수 있도록 교육하지 않고 명찰 등으로 감시를 내면화하게 하는 방식을 취하는 것은 반인권적이고 비교육적이다. 뒤집어서 말하면 학생들에게 교복과 명찰만 벗으면(감시에서 벗어나면) 타인의 인권과 질서를 무시해도 좋다는 메시지를 전달하는 셈 아닌가?

   또한 ‘학생의 본분에 맞는 행동’이라고 말할 때 그 내용 자체가 인권침해적 요소가 있는 경우도 존재하는 것이 현실이며, ‘학생의 본분’과 같은 모호한 사유가 학생들의 인권을 침해하는 명찰을 정당화할 만한 것도 되지 않는다. 만약 명찰이 이런 이유에서 필요한 거라면, 시민들이 법을 지키게 하고 ‘국민’의 본분에 맞게 행동하게 하기 위해서는 모두 거주 지역에 따라 색깔이 구별된 옷을 입게 하고 이름과 주민등록번호를 적은 명찰을 다니게 하면 되는 것인가? 이렇게 ‘학생’을 ‘시민’이나 ‘국민’으로만 바꾸어봐도 이것이 얼마나 잘못된 발상인지 알 수 있다.


  이처럼 국가인권위가 탈부착이 불가능하도록 교복에 꿰맨 명찰이 인권침해라고 결정한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국가인권위가 이번 결정에서 학교 안에서의 명찰 부착의 필요성을 인정한 것은 유감스럽다. 국가인권위는 “단체 생활을 하는 학교 내에서 학생 생활지도 및 교육에 필요한 경우로서 합리적 이유가 있다”라고 말하고 있다. 이는 구체적으로 ‘학생 생활지도 및 교육에 필요한 경우’가 무엇인지는 입증하지 못하고 있으면서 인권침해를 정당화해준 잘못된 결정문이다. 명찰과 같이 감시를 내면화시키고 일방적인 권력 관계를 만드는 제도로는 민주적․인권적인 교육을 할 수 없고 인권에 대한 둔감함을 학습시킬 뿐이다. ‘생활지도’를 위해 학생의 이름을 까발리고 다녀야 한다는 것도 이상한 논리로, 명찰을 통해 감시하고 통제하는 관계는 제대로 된 생활지도가 아니라고 봐야 한다. 학교 규율이 인권을 존중하는 내용으로 운영되어야 한다는 것은 유엔아동권리협약도 명시하고 있는 사항이다. 

  학교 안에서도 당연히 학생들은 자신의 개인정보를 까발리고 다닐 것을 강제당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 인간으로서 보장받아야 할 인권이다. 국가인권위가 학교의 인권적 변화를 요구하기보다는 학생들의 인권을 무시하며 학생들을 통제하고 감시할 대상으로 보는 시선에 손을 들어준 듯하여 매우 아쉬운 부분이다.


  청소년인권활동가네트워크는 대부분의 학교에서 학생들의 개인정보를 함부로 취급하며 학생들을 통제하고 감시하는 수단이 되는 명찰 부착 강제가 학생인권침해임을 다시 한 번 확인하며 이를 없앨 것을 요구한다. 또한 그 첫걸음으로라도 국가인권위가 이번에 내린 고정명찰 부착 개선 권고를 전국의 학교들이 진지하게 고려하여 성실히 이행할 것을 촉구한다.


청소년인권활동가네트워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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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식 발표한 것은 아니고;; 그때 뭔가 시간과 날짜가 이래저래 안 맞으면서 결국 시간 맞춰 못 냈던 거예요 ㅠㅠ ㅠㅠ

청소년인권활동가네트워크에서 낼 초안이었던 셈이지요-

정 학교가 교육공동체가 아니라 어느 한 쪽이 감시당하는 곳이라고 생각한다면, 명찰은 오히려 국가 권력을 대리하여 공교육에서 권한을 가진 학교 관리자, 교사 등이 달아야 한다... 뭐 이런 이야기를 쓸까 하다가 쓸데없이 길어지는 면도 있고 해서 뺐습니당. 논지가 복잡해지는 것도 있고





 명찰 논란은 그냥 나오고 말 줄 알았는데 여전히 논란 중이군요-_-
나온 지 꽤 됐는데도 언론 기고글이나 블로그 글도 좀 올라오고 있고

그래서 청소년 한 명이 기고글을 써서 언론들에 기고하기로 했답니다.

어차피 묻히게 된 논평 초안이니까....







개의 본분을 잊은 개에게 견복과 명찰을.... 달 수야 없지 않은가 -_-
(그나저나 흡연과 음주가 '본분을 벗어난' 행동이라는 것 자체가 자의적인 주장이다.)
Posted by 공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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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어가는꿈2009. 12. 10. 02:28




  학생들은 흔히 '두발규제'에 대해서는 많은 반감을 가지고 두발자유를 외치곤 하지만, (물론 이 두발자유 또한 염색, 파마 같은 거에 대한 이야기로 들어가면 태도가 달라지는 사람들이 있으나) 중고등학교에서의 복장규제 - 가장 대표적으로 교복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는 그 반감이라는 게 상대적으로 덜해지는 것 같다.(뭐 그렇다고 해도 학생 10명 중 최소한 4-5명은 교복을 싫어하는 거 같지만)

  왜 학생들은 교복에 대해서는 비교적 덜한 반감을 가지는 것일까? 집단에 대한 소속감이니 제복 특유의 '멋있음'이니 하는 것들을 들먹이며 사이비 심리 분석을 해볼 수도 있겠지만, 지금 굳이 그런 이야기를 주워섬기는 게 생산적인 이야기가 될 것 같지는 않다. 그런 건 전문가 분들이 잘 연구해주실 테니까.
  이 글에서는 그저 교복폐지(또는 교복 강제 폐지)를 반대할 때 맨날 나오는 몇몇 이야기들에 대해서 반박하려고 한다. 이 글을 읽으면서 '교복 없는 중고등학교'를 꺼려하는 사람들이 다시 한 번 자신의 감정, 생각을 돌아보길 바란다



1. '학생다움'

  교복은 최소한의 학생다움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의 논리는 결국 두발규제를 주장하는 사람들의 논리와 다를 바 없다. 이 '학생다움'이라는 걸 대체 누가 규정하는 것인가? 두발복장에 대한 규제, 외모에 대한 규제를 하면서 들먹이는 '학생다움'이라는 것은 결국 일부 꼰대스런 어른들(다수일까 소수일까?), 그리고 이 사회의 고정관념과 편견 외에는 없는 것 같다. 게다가 그것이 폭력을 동원해가면서 옹호될 만한 가치인지부터가 의문이다.

  자신의 외모를 꾸미고, 자신이 원하는 나 자신을 표현할 권리, 두발이나 복장을 스스로 선택하고 결정할 권리는 굉장히 기본적인 인권에 해당한다. 이러한 인권을 제한하기 위해서는 구체적이고 긴급하고 불가피한 사유가 필요하다. 학생다운 모습으로 교장선생님과 일부 지역주민(어른)들의 눈을 만족시켜주는 것이 인간으로서의 기본적 권리를 제한할 만큼 구체적이고 긴급하고 불가피한 사유인가? 국가안보나 공공질서 유지(여기서 공공질서란 모호하고 폭넓은 개념이 아니라 굉장히 구체적이고 필수적인 질서만을 뜻한다. 인간 생명에 대한 존중이라거나, 폭력에 대한 예방이라거나...)를 위해 교복을 강제로 입힐 필요가 있는가? "학생다움"이라는 이유는, 개인이 추구하는 취향이나 가치는 될 수 있을지 몰라도, 학생들 모두의 인권을 제한할 만한 사유가 되지 못한다. (사실 옷을 홀라당 벗고 나체로 다니거나 타인에 대한 명백한 심리적, 신체적 침해의 위험이 있지 않는 한 (이 경우 성폭력적 행위가 될 수 있다.) 복장규제 자체가 정당화되기 어렵다.)

  학생다움을 위해서 교복을 입혀야 한다는 주장은 결국 이런 소리다. "누군가 힘 있는 사람들의 외모에 대한 취향을 만족시키기 위해 우리는 그 사람들이 단정하다고 생각하는 제복을 모두 똑같이 입어야 한다." 아니 이게 말이 되는 소린가? 우리는 광고에 놀아나는 의류자본의 바비인형어서도 안 되겠지만, 꼰대들의 폭력에 놀아나는 학교의 바비인형이어서도 안 될 것이다.


2. 통일성

  교복을 입히는 게 그 학교 학생들에게 통일성을 갖도록 하기 위해서라는 말이 있다. 확실히 똑같은 옷을 입고 있는 학생들의 모습을 보면 누가 누군지 언뜻 알아보기가 쉽지 않은 게, 참으로 획일적이기는 하다. 그런데, 왜 '통일성'이 필요하지? 모두가 비슷비슷한 모습으로 단정하게 있는 게 보기 좋으니까? 누군가의 눈에 보기 좋아보이는 통일성을 갖추기 위해서 인권을 제한할 수는 없다. 결국 이것도 학생다움과 비슷한 이야기로 귀결되고 만다.

  교복을 강제하는 이유로 '통일성'을 이야기한다면, 그건 오히려 학생들을 모두 획일적인 모습으로 만드는 교복은 폐지되어야 마땅함을 시인하는 꼴이다. 학교는 군대도 아니고 반드시 통일된 제복을 입어야 할 실용적 필요가 있는 곳도 아니다. 그런데 학생들을 획일적 모습으로 만드는 교복과 두발규제는 다양성과 인권을 억압하는 폭력에 지나지 않는다. 솔직히 복장규제만 사라져도 학교 분위기가 좀 더 숨통이 트일 것이라고 예상한다.

  사실 한 학교의 학생들은 모두 같은 옷을 입어야 한다는 말 속에는 '그래야 통제/관리하기 쉽다.'라는 말이 숨어있다. 교복만 보고도 어느 학교 학생인지 알 수 있어야 그 학생을 관리하고 통제하기 쉽다는 것이다. 이렇게 교복이 학생들을 통제하기 관리하기 위한 수단이라면, 더욱 없어져야 할 일이다. 학생들을 잘 교육하고 학생들에게 인권의식과 판단력을 심어주기보다는 교복이라는 장치로 획일적으로 관리하고 통제하는 것이 학교 교육의 이념인가? 만일 소풍 같은 것을 가서 학생들의 안전 문제 때문에 어느 학교 학생인지 알 필요가 있는 경우가 있다면, 따로 통일된 뱃지를 단다든지 손수건을 가진다든지 아주 작은 공통의 표식을 가지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어떤 특별한 의식(장례식이라거나?)이 있을 때만 통일된 복장을 문화적으로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일상적으로, 규정과 폭력을 통해 통일된 복장을 요구하는 것은 실로 괴악한 일이다.


3. 경제적 차별

  교복 이야기를 할 때 가장 난관은 아마도 경제적인 차별의 문제일 것이다. 요컨대, 교복을 폐지하게 되면, 옷에서부터 빈부격차가 확연하게 드러나게 되고, 이것이 빈곤한 학생들에게 상처가 될 것이라는 것이다. 교복을 아무리 입혀도 가방, 외투, 평소의 소비, 성적 등등의 부분들에서 이미 빈부격차는 뻔히 드러나고 있으며 교복이 그런 부분에서 얼마나 효과가 있는지 의문이기는 하다. 그러나 어쨌건 교복이 빈부격차가 겉으로 드러나는 것을 막는 효과가 조금은 있다고 쳐볼 수는 있겠다.

  그러나 그렇다고 하더라도 뭔가 이상하다. 학교는 사실 성적이나 옷차림이 사람의 가치를 결정하는 기준이 되지 못한다는 것을 적극적으로 교육하고, 자유와 평등과 개성과 공공성이 실현될 수 있도록 하는 기구여야 한다. 그런데 지금의 학교는 그런 내용의 교육을 거의 하지 않고 있다. 그러면서 교복을 입혀서 겉으로 확 드러나는 경제력 차이만 좀 숨기겠다고?

   나는 학교가 학생들의 눈을 현실에서 돌리게 하는 눈 가리개가 아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엄연히 존재하는 빈부격차를 손바닥으로 하늘 가리듯 교복 입힌다고 얼마나 가릴 수 있을지도 다소 의문이긴 하지만, 그 이전에 과연 그 하늘을 가리는 것이 옳은 일인가 고민이 든다. 학교는 사회에 불평등이 존재하며, 그 불평등을 해소하기 위해서 어떻게 노력해야 할 것인지 가르쳐야 한다. 사람들은 자신의 가치가 입고 있는 옷의 가격이나 삐까번쩍함에 의해 정해지지 않는다는 것도 배워야 한다. "그런 교육을 하려고 노력을 열심히 했지만 어쩔 수 없네요, 교복이라도 입힙시다..."도 아니고 자기 본래의 역할은 전혀 수행하지 않으면서 교복 입히는 핑계로만 경제적 불평등을 대고 있다.

  백보양보하여 경제적 불평등의 문제 때문에 복장에 대한 규제가 필요할 수 있다고 하자. 그러나 그런 경우에도 '귀금속 악세서리'나 '수십만원 넘는 메이커 티 팍팍 나는 옷' 등에 대해서만 제한적으로 규정을 두고, 빈곤 학생들에게는 충분한 복지를 보장하여 좋은 의생활을 누릴 수 있게 하면 될 일이다. 굳이 교복처럼 폭력적이고 획일적인 방식을 취할 필요는 없는 것이다. 불가피하게 인권을 제한해야 할 때도 필요최소한만 제한해야 하기 때문이다. 복장의 자유가 인권인 이상 이 원칙은 지켜져야 한다. 또한 이런 경우라 하더라도 지속적으로 경제적 불평등의 문제에 대해 인권적 교육을 하면서 복장규제가 불필요한 상태를 지향하는 것이 옳은 태도일 것이다.

(# 그리고, 빈부격차, 경제적 불평등을 비판하는 사람들은 불공평한 빈부격차를 해소하자고 주장한다. 실제의 격차는 그대로 둔 채 백만장자건 서민이건 옷만 같은 거 입고 차 같은 거 타고 다니게 하자고 주장하지는 않는다.)


4. 귀차니즘

  사실 학생들이 교복폐지 이야기를 할 때마다 가장 흔하게 하는 이야기가 이것인 것 같다. 교복을 강제로 입고 다녀야 할 때는 교복 그냥 입고 다니면 됐는데, 교복 강제가 없어지면 아침마다 무슨 옷 입을지 골라야 할 것이라는 거다. 이런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나는 "이것이야말로 교복의 효과"라는 생각이 든다. 자기 스스로 자기 마음에 드는 옷을 선택해서 입는 것조차 귀찮아 하고, 남이 강제해주는 옷을 수동적으로 입는 '노예' 상태에 익숙해져있다는 소리기 때문이다.

  정 그렇게 귀찮으시면 당신만의 교복을 한 벌이나 두 벌 정해서 그 옷만 줄창 입고 다니시면 된다. 그게 교복처럼 한 종류의 옷만 강제로 모든 학생들이 입고 다녀야 할 이유는 절대로 될 수가 없다. 그리고 강제로 교복을 입게 하는 게 사라지고 모든 학생들이 자신의 취향과 개성에 따라 옷을 입고 다닐 수 있게 된다면 이내 이런 귀차니즘 소리는 사라질 거라고 믿는다. 자기가 생각하기에 적당한 옷을 골라 입고 다니는 것, 초등학생이나 대학생이나 많은 어른들이 하는 일이다. 그러나 그 초등학생이나 대학생이나 (직장에 제복 안 입고 가도 되는) 어른들이 귀찮으니까 교복/제복/국민복 같은 걸 만들자고 하지는 않더라.




  교복은 사라져야 한다. 교복을 강제로 입히는 중고등학교의 문화는 두발규제보다 더 획일적인 문화를 만들어내고 있으며 학생들의 개성과 다양성을 짓누르고 학생들을 길들이고 순응시키고 있다. 교복은 두발규제와 함께 여/남 성역할 고정관념을 만들어내고 있기도 하다.(여성은 치마 교복, 남자는 바지 교복 등등) 교복이 없는 학교는 전세계적으로 많이 있으며, 한국에도 많은 대안학교들이(대안학교 아닌 학교들도 소수 있다.) 대부분 교복이 없는데도 잘 돌아간다. 교복이 없고 두발규제가 없는 학교를 상상해보라. '유토피아'까진 아니더라도, 지금보다는 훨씬 더 아름다운 학교 모습일 것이다.




추신 : 경제적 차이를 은폐하려고 교복을 입힌다는 것은 이상한 논리다, 라는 주장을 놓고, 우연히 인터넷에서 어떤 분이 "그럼 성적도 공개해야겠네. 엄연히 존재하는 성적 차이를 왜 숨기려고 하나."라고 말한 것을 보았다. 그러나 성적 문제와 교복 문제는 좀 다른 면이 있다.

첫째, 교복을 없애고 복장의 자유를 보장하는 것은 학생들의 인권과 개성을 존중한다는 매우 긍정적 의미가 있다. 그러나 성적을 공개하는 것에는 이처럼 인권을 보장한다는 의미는 전혀 없다. 학교간 학생간 성적 경쟁을 조장하는 효과가 있을 뿐이다. 즉, 교복폐지에는 경제력의 차이가 드러나는 부정적 효과보다 더 앞서는 긍정적 가치가 존재하는 데 비해, 성적 공개에는 그러한 긍정적 가치가 별로 없다.

둘째, 성적은 학교에서 만들어지는 서열화, 차별 시스템이다. 학교 교육은 마치 성적이 그 인간의 능력과 가치를 나타내는 것처럼 이야기하며, 이는 학력/학벌에 대한 차별로 구체화된다.(능력주의 신화) 경제력의 차이는 학교 밖에서 사회적으로 주어지는 조건이며 학교가 대처해야 할 외부 요인이지만, 성적은 학교가 적극적으로 만들어내는 요소인 것이다.





- 옛날에 쓴 '교복폐지론'의 후속작일까 보완작일까 뭐 그런 거
Posted by 공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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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정현

    초공감하고가요!

    2009.12.10 18:26 [ ADDR : EDIT/ DEL : REPLY ]
  2. ehdjkwjd

    대박공감ㅋㅋㅋ

    2010.05.12 23:44 [ ADDR : EDIT/ DEL : REPLY ]
  3. 헤움

    빈부격차에 관한 반박이 와닿네요 ㅎㅎ
    잘 읽었습니다.

    2010.06.10 11:13 [ ADDR : EDIT/ DEL : REPLY ]
  4. 갈리프레이

    정말 초공감입니다.
    아주 잘 읽었습니다. 그리고 글좀 퍼갈게요^^

    2010.06.18 17:55 [ ADDR : EDIT/ DEL : REPLY ]
  5. 진짜공감ㅋ

    학생이라서 그런지 진짜 대박 공감가요! 진심 대박 불편하고 살찌거나 키크면 재활용 불가..ㅋㅋㅋㅋㅋ
    스마트나 아이비 그런건 원단부터 티나서 쟤는 잘산다 못산다 그런소리 다나옴.


    솔직히 교복 "불편"해요. 왜 입는지 모르겠음.

    2010.10.29 21:20 [ ADDR : EDIT/ DEL : REPLY ]
  6. 초초공감

    맞어요. 전 교복 입기 싫어서 사복입고 엄청 일찍 등교해요

    2012.04.06 19:55 [ ADDR : EDIT/ DEL : REPLY ]
  7. 어... 너무 좋은 글이네요....
    교복좀 사라지면 좋겠네요

    2014.03.30 22:55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8. wa

    틀린말이 하나도 없네요. 굉장히 예전 글인데 정말 공감하고 갑니다. 우리나라.. 언젠가는 꼭 교복과 외향적 규제가 모두 폐지되었으면....!

    2016.06.27 00:58 [ ADDR : EDIT/ DEL : REPLY ]
  9. ㅇㅁㅇ

    와.. 진짜 초공감입니다! 교복 사라졌으면...!

    2017.10.06 11:51 [ ADDR : EDIT/ DEL : REPLY ]
  10. 비밀댓글입니다

    2017.10.19 11:24 [ ADDR : EDIT/ DEL : REPLY ]
  11. 너거메보지가랑이

    초딩들

    2017.10.19 11:25 [ ADDR : EDIT/ DEL : REPLY ]

딱딱한꿈2009. 10. 24. 22:49



아수나로에서 공부모임 할 때 쓰려고 정리한 겁니다.
이것 외에도 탈학교(deschool이라고 해야 하나) 이론 쪽도 다른 사람이 정리...

『교육과 이데올로기』를 가장 많이 참고했고 인터넷에서 검색도 하고 해서 정리한 겁니다.





경제재생산

  경제재생산 이론은, 요컨대 학교 교육이 경제 구조를 재생산하는 역할을 한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이 이론에서는, 우선 자본주의에서 경제적 성공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은 개인의 능력이라기보다는 그 개인의 사회경제적 지위라는 것을 지적한다. 이런 사회에서 교육제도는 경제적 성공이 개인의 능력과 자격증, 교육적 성취에 의해 좌우된다고 이야기함으로써 계급구조와 불평등을 정당화하는 역할을 한다. 쉽게 말하면 “난 엄마 아빠가 부자니까 나도 잘 삼 ㅋ”이면 사람들이 기분이 매우 나쁘겠지만, “난 (엄마 아빠가 부자라서 이것저것 지원을 받아서) 학교에서 공부를 잘했으니까 능력이 있는 거고 능력이 좋은 내가 잘 사는 건 당연함” 식이라면 사람들은 일단 표면적으로는 크게 분노하기가 어렵다. 이렇게 되면 학교 교육이라는 과정을 거쳐서 계급이 대물림되고 재생산되는 것은 정당성을 부여받게 되는 것이다.
  다음으로 경제재생산 이론에서 중요하게 지적하는 것은 학교가 누구에게 무엇을 가르치는지 하는 문제이다.(보울즈와 진티스(긴티스?)라는 학자들이 주장한 건데, 미국 교육을 주 모델로 한 분석이다.) 학교 교육을 살펴보면, 어떤 학교냐에 따라서 다른 교육 방식을 가지고 있다. 예를 들어 중고등학교에서는 강한 규율을 강조하고, 대학교는 자율성을 강조한다. 상류층이 다니는 사립고등학교 등에서는 상대적으로 규율이 약하다. (한국 학교의 경우는 반례가 많이 발견되긴 한다. 이런 맥락에서 한국의 대학이 자율성이 줄어들고 규율이 강화되어가는 것은 전 고등학생의 80% 이상이 대학에 진학하게 되면서 상류 고등 교육을 담당하는 성격이 약화되었기 때문일지도.)
  규율과 통제, 감독을 강조하는 교육에서 학생들은 지위와 권위에 복종하도록 유순함을 배운다. 반면에, 지배계층을 양성하는 학교나 대학에서는 자율적 판단을 강조함으로써 지도력을 개발한다. 학교의 수준이나 종류에 따라 학교 안에서의 사회적 관계는, 사회의 위계적 역할 분업을 옮겨놓은 것이다. 그 결과 학생들은 학교 졸업 후 자신이 사회에서 가지게 되는 위치(노동자, 관리자, 자본가, 전문직 등등)를 더 쉽게 받아들이고 적응하게 된다.
  형식적으로 학교교육은 모든 사람들에게 개방되어있고 사회는 누구에게나 능력과 업적에 따라 높고 권위 있는 지위까지 진출할 수 있는 기회가 개방되어 있는 것으로 가르치고 있다. 그러나 학생들에게 평등한 기회가 주어지고 능력에 의한 사회이동이 가능하다는 것은 하나의 신화에 불과하다. 한국에서도 특목고-자사고 및 서울대 진학률 등의 통계는 그런 현실을 선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또한 이는 한국의 교육이 어째서 그토록 경쟁적인가에 대해 사회학적 해답을 준다.

 

요약 : 자본주의 사회에서 학교교육은 노동계급의 자녀는 노동계급으로, 자본가계급인 자녀는 자본가계급으로 재생산하는 역할을 함. 그리고 불평등한 구조를 은폐, 정당화함.

비판 : 경제재생산 이론이 말하는 것처럼 딱 학교의 형태와 사회경제적 구조가 대응하지는 않음. 경제적 불평등과 체제가 학교 교육을 일방적으로 결정하지는 않음. 반례들이 많음. 학생들의 능동적 역할이나 교육, 문화의 자율성 간과 (폴 윌리스의 저항이론. 노동계급 학생들의 반항이 어떻게 역설적으로 계급 재생산으로 이어지는지 ‘간파’와 ‘제약’ 개념으로 분석...) (문화재생산 이론 등)

 



문화재생산

  이러쿵저러쿵 비판이 있어도 경제재생산 이론은 학교를 비판적으로 분석하는 데 기초를 제공한 이론이다. 문화재생산 이론은 경제재생산 이론에 대한 비판, 보완의 성격이 있다. 문화재생산 이론을 쉽게 간추리면, 경제재생산 이론의 기본 성격을 공유하면서도 “잘 사는 애들이 어떻게 학교에서 잘 성공하게 되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이라고 할 수 있겠다.
  우선 문화재생산 이론은 학교에서 가르치는 내용, 문화에 주목한다. 학교에서 가르치는 공식적인 지식, 문화는 지배계급 내지는 중류계층의 지식이고 문화이다. 지배계급의 학생들은 가정에서 어릴 때부터 이런 형태의 지식, 문화를 습득하며 익숙해져 있다.(독서라는 이름이든 교양이라는 이름이든 뭐든...) 이런 것을 ‘문화자본’이라고 부르는데, 이 문화자본이 불평등하기 때문에 학교에서의 학업성취가 계급에 따라 달라진다. 잘 사는 집의, 전문직 부모를 둔, 지배계급의 학생들은 이미 유리한 문화자본을 가지고 학교에 들어오는 것이다.
  쉬운 예를 들면, 학교에서는 클래식이나 가곡을 가르칠지언정 대중가요나 힙합을 가르치지는 않는다. 그런데 클래식이나 가곡 등에 더 익숙한 쪽은 좀 사는 애들일 가능성이 높다. 음악 뿐 아니라 활자화된 지식들, 교과서에 사용된 단어 등 거의 모든 교육내용에서 그런 자본의 불평등이 있을 수 있다. 한국은 자본주의의 역사가 짧은 탓에 문화자본의 불평등이 경제자본의 불평등과 차이가 나는 경향이 있었지만, 90년대 이후로는 점점 일치하고 있다. 서울대에 가는 학생은 돈이 좀 있는 전문직 부모를 둔 아이들이 많다는 통계 등.
  학교의 기준이 되는 문화나 지식 자체가 계급적인 것이지만, 과학/학문 등의 언어를 사용함으로써 이는 잘 알아차릴 수 없다. 이런 식으로 학교교육에서의 문화재생산은 계급간의 불평등을 인식하지 못하게 하며 정당한 것으로 받아들이게 하는 기능을 수행한다. 학교에서 좋은 학생, 나쁜 학생을 판단하는 기준 또한 지배계급의 문화가 제공해준다.
  문화재생산 이론은 경제재생산 이론에 비해 교육의 상대적인 자율성을 인정한다. 경제적 성공과 학문적 성공이 반드시 일치하는 것은 아니다. 좀 잘 사는 집 학생이라고 해도 학교에서 실패할 수는 있다. 교육체제는 그 자체의 논리에 따라 성취를 가늠한다. 이런 면이 있기 때문에 능력에 따라 성공할 수 있다는 신화는 더욱 정당화된다. 그러나 또 한편으로는 학업 성취가 100% 경제적 성공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지배계급의 자녀는 동일한 졸업장의 가치를 극대화할 수 있는 배경을 가지고 있다.

 

요약 : 제도교육에서 가르치는 문화는 잘 사는 사람들의 문화와 친함. 이 문화는 학생들에 대한 판단 기준을 제공해줌. 그래서 특정한 학생들이 다른 학생들보다 학교교육에서 더욱 성공함. 교육에서의 성공은 가정에서 얻은 교양이니 배경지식이니 그런 것의 영향을 받음. 교육에서의 성공/실패가 꼭 경제적 성공/실패로 이어지지는 않는데, 잘 사는 애들은 이런 성공을 더 잘 써먹을 수 있고 실패해도 어느 정도 커버 가능.

 

# 경제재생산과 문화재생산 모두가 공통으로 지적하는 것 중 하나. 학교 교육은 사람들이 지금의 사회체제와 제도를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고 그 이외의 것을 잘 상상하지 못하게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학교 교육은 사람들이 지금의 사회에서 군말없이 살아갈 수 있도록 하는 기능을 한다.
# 재생산이론은 학교의 역할, 기능을 의심하는 데서 출발한다. 경제재생산과 문화재생산 이론을 공부함에 따라, 우리는 학교에서 당연한 것으로 주어지는 수업, 공부, 규율 등이 사회적으로 어떤 역할과 기능을 하고 있는지, 그것이 정당하고 중립적인 것인지 의심하게 된다. 우리는 이러한 이론들을 살펴봄으로써, 단지 “교육은 ~~해야 하는데 현실은 이렇지 않다.”라는 관념을 벗어나서 교육이 사회적으로 어떤 기능을 수행하는가, 도대체 불합리해 보이는 이런 경쟁과 규율들은 왜 있는 건지에 대해 통찰력을 얻을 수 있다.
# 이는 음모론은 아니다. 재생산 과정은 불평등한 사회를 유지하기 위해 필요한 조건이며 ‘자연스럽게’ 관련되고 있는 것. 특정한 사람들의 의식적인 의도나 계획에 따라 움직이는 것은 아니다.

 

“우리들이 중립적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활동조차도 중립적이 아닐지도 모른다. 우리들의 활동은 이미 이데올로기적인 이해관계에 봉사하고 있다. 그리고 우리들은 이러한 상황에서 벗어나기 어렵다.”(『교육과 이데올로기』 中)



Posted by 공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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흘러들어온꿈2009. 9. 15. 12:46
http://onlineif.com/main/bbs/view.php?wuser_id=letter_news&category_no=&no=536&u_no=85&pg=





[김신명숙의 편지 30]
교권이 문제라구요?
이프



<title>idsu.net</title>

처음 보는 순간 가슴이 탁 막히는 것같았습니다. 드디어 올 게 왔구나 하는 느낌과 함께 머리 속이 소용돌이치면서 복잡해지더군요. 이 일을 어찌 해야 하나.....
제 목을 보고 이미 짐작하셨겠지만 최근 큰 물의를 일으킨 여교사 성희롱 동영상에 관한 얘깁니다. ‘선생님 꼬시기’라는 제목으로 인터넷에서 유포된 이 동영상은 다음과 같은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이미 많이들 보셨겠지만 짧은 동영상보다 그 상황을 글로 옮긴 내용이 더 분명하게 사건의 실상을 보여주는 것같아 조선일보에서 이 사건을 다룬 기자 칼럼-“여교사 성희롱, 죄와 벌”-의 일부를 인용합니다.


“45 초짜리 동영상에는 수업이 끝난 고등학교 교실의 모습이 담겨 있다. 건장한 체격의 한 남학생이 시험지처럼 보이는 유인물을 걷는 여교사의 어깨에 손을 올리며 다가선다. 여교사가 인상을 찌푸리며 자리를 옮기자 "누나 사귀자"라고 소리친다. 다른 학생들이 "한 번 더, 한 번 더"를 외치고, 카메라를 보고 "도망가는데요"라고 말한 남학생은 다시 여교사의 뒤로 다가가 어깨에 손을 올린다. 다른 남학생이 여교사의 손목을 잡고 있는 모습도 잡혀 있다. 여교사가 동영상을 찍는 학생을 향해 '찍지 말라'는 듯이 손가락질을 하는 모습을 마지막으로 동영상은 끝난다.”이 글을 읽고 어떤 느낌, 혹은 단어가 떠오르시나요? 그렇습니다. 언론에서는 애써 ‘성희롱’으로 축소하고 있지만 이 동영상은 전형적인 포르노의 프레임을 따르고 있습니다. 유사 포르노, 혹은 포르노 동영상의 도입부를 구성하고 있는 것이지요. 그렇다면 백주대낮의 교실에서 학생들이 자신을 가르치는 선생님을 상대로 그런 동영상을 찍는 이 현실을 우리는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요?


언 론은 이를 두고 ‘추락한 교권’을 떠들고 있습니다만 이 동영상이 생산된 핵심적인 권력관계의 맥락은 교권보다는 ‘남성권력’입니다. 교사와 학생이라는 권력관계 위에 존재하는 남성권력의 실체를 그대로 보여주고 있는 것이지요. ‘알파걸’이니 ‘여풍’이니 하는 말들이 요란스런 한국사회에서 페니스의 권력은 아직도 굳건한 것이고 그 권력은 인터넷에 범람하는 포르노물들을 통해 지속되고 있습니다. 단지 페니스가 달려 있다는 이유만으로 여성을 지배하는 일이 가능한 포르노 세상은 현실이 아닌 가상이지만 클릭 하나로 언제 어디서든 전세계 사람들과 연결되면서 현실에 강력한 영향력을 미치고 이같은 사건까지 만들어냅니다.


이 제 더 이상 숨어있는 하위문화가 아니라 일상문화, 더 나아가 대중문화의 한 부분이 돼버린 포르노는 현재를 사는 우리들, 특히 십대들의 섹슈얼리티를 구성하는 데 절대적인 힘을 행사하고 있습니다. 포르노에서 보여지는 섹슈얼리티, 즉 상호존중의 아름다운 교감이 아니라 지배와 복종의 섹슈얼리티, 정신과 영혼이 함께 하는 온전하고 소중한 몸이 아니라 부위별로 소비되는 살덩어리에 바탕한 천박한 섹슈얼리티가 십대들을 포함한 우리들의 성생활, 나아가 여남관계를 형성하고 있는 것이지요. 이런 상황에서는 ‘섹슈얼리티는 신의 축복’이라는 파울로 코엘료의 말이나 ‘삶의 동반자적 관계’같은 여남관계의 지향은 들어설 자리가 없습니다. 대신 성적 괴롭힘과 강간, 지배와 소외, 차별이 횡행하기 마련이지요.


포 르노의 시선에서는 눈에 띄는 모든 여자들, 권력관계에서 아래에 있는 여자들은 물론 선생님, 상사, 친구엄마 심지어 친엄마까지 성적 대상물로 포획돼 버리고 맙니다. 이번 사건도 그렇게 포르노에 길들여진 아이들이 포르노의 시선으로 젊은 여선생을 바라보다가, 마침 시간강사라는 약점까지 겹쳐 겁 없이 그런 행동을 벌인 것같습니다. 언론에서는 문제학생들에 대한 처벌만 솜방망이니 뭐니 시비를 걸고 있지만 정작 중요한 것은 그게 아니라 그들을 그렇게 만든 ‘포르노 천국’일 것입니다. 이 문제에 제대로 대응하지 않는다면 어느 순간 우리는 ‘친구 엄마 꼬시기’ 더 나아가 ‘차마 입에 올릴 수 없는’ 제목의 실제 동영상들을 인터넷에서 만나게 될지도 모릅니다.

 

이 번 사건이 말해주는 문제 자체도 두렵지만 그에 못지 않게 막막한 건 우리 사회가 이 문제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거나 아니면 짐짓 외면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앞서 인용한 기자 칼럼의 경우 심지어 ‘'장난'으로 만든 동영상일 가능성도 아주 배제할 수는 없을 듯했다’고까지 했더군요. 물론 학생들의 잘못을 분명히 인정하고는 있지만 명백한 성적 괴롭힘을 ‘장난’이라는 가해자의 용어로 표현하고 있는 그 칼럼을 보자니 도대체 우리 사회가 어디쯤에 와 있는 것인지 가슴이 답답해졌습니다.


보 도에 의하면 그 여교사는 학생들의 처벌도 원치 않고 더 이상의 어떤 다른 조치도 현재로서는 요구하고 있는 것같지 않습니다. 이번 사건도 여교사는 없었던 일로 하려고 했는데 학생이 인터넷에 올려 문제가 된 것이라고 하지요. 그러고 보면 이번처럼 사건화되지 않고 묻혀버린 유사사건들이 얼마나 많을지요? 또 앞으로도 같은 성격의 사건들이 얼마나 다양한 변종으로 생겨날지요? 교단에 선 자신의 몸을 포르노의 시선으로 훑어보고 있는 학생들을 가르쳐야 하는 여교사의 심정은 어떤 것일지요?


자 료를 찾아보니 이미 미국에서는 학생들에 의해 교사가 성적 괴롭힘을 당한 사건들이 법정에서 다뤄진 케이스들이 여럿 있더군요. 한 연방법원은 4년전 교사에 대한 학생들의 성적 괴롭힘에 학교의 책임을 인정하는 판결을 내렸고, 지난 8월에는 뉴욕시 한 공립고등학교 여교사가 시 교육당국을 고소한 사건이 있었습니다. 학생들에게 성적 괴롭힘을 당한 사실을 알렸는데 교육당국이 그에 대해 적절한 조치를 취하지 않고 오히려 자신에게 잘못을 지적했다는 것이지요. 그녀는 금전적 피해보상과 함께 교육당국이 학생들의 교사에 대한 성적 괴롭힘을 다룰 성문화된 정책을 만들 것을 요구했습니다. 충격적인 건 그녀를 성적으로 괴롭힌 건 남학생들만이 아니었다는 것이지요. 한 여학생도 그녀가 ‘성적으로 좌절돼 있어 남자가 필요하다’는 둥의 언어폭력을 썼다는 것입니다. 포르노적 상상력은 여남을 불문하고 포르노 소비자 모두에게 작동한다는 증거겠지요.


바 라건대 이번 사건이 일과성 공분(公憤)으로 끝나지 않길 바랍니다. 절대로 일부 남학생들의 ‘과도한 장난’으로 한번 따끔하게 혼내고 말 문제가 아니니까요. 포르노 천국이 만들어내고 있는 왜곡된 섹슈얼리티와 여남관계, 여교사들이 전방위로 당면하고 있는 ‘성적으로 적대적인 근무환경’, 체계적이고 효과있는 성교육 등 결코 만만치 않은 문제들과 우리가 현재 마주하고 있다는 걸 간과해서는 안됩니다.  한국사회가 당면한 이 심각한 병리적 현실에 어떻게 대처해 나가야할지 당사자인 여교사들, 여성단체, 교육단체들 모두가 함께 머리를 맞대고 고민해야 하지 않을까 합니다. 무엇보다 먼저 학생들에 의해 성적 괴롭힘을 당했거나 당하고 있는 여교사들의 폭로가 이어졌으면 합니다. 이번 사건이 그대로 묻히지 않고 그 ‘의미’를 찾을 수 있기를...... 

 

김신명숙







공현 추신
: 학생들에 의해 + 교직원, 상사들에 의해 성적 괴롭힘을 당했거나 당하고 있는 여교사들+여학생들의 폭로가 이어졌으면 합니다.




Posted by 공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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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ㅇㅅㅇ

    피해 망상에 빠져 지내는 김신명숙씨는 여전하군요.^^;

    이 사람은 기본적인 인격조차 갖추지 못한 사람이다보니 글에도 신뢰가 안 갑니다.

    2009.09.17 20:39 [ ADDR : EDIT/ DEL : REPLY ]
    • 김신명숙 씨 개인은 잘 모르지만.
      이 글의 기본적 내용에는 동의합니다 ^^

      메신져와 메시지가 어느 정도는 구분되어야죠.
      그리고 어느 정도는 신뢰할 만한 활동가라고도 생각해봅니다.

      (김정명신 씨랑 헷갈려서 잘못 말했었네요. 수정)

      2009.09.24 17:00 신고 [ ADDR : EDIT/ DEL ]
  2. 1

    이글을 보고 3곳에다 2번 않올리면 부모님 돌아가심 아무서워 젠장

    2010.04.04 13:57 [ ADDR : EDIT/ DEL : REPLY ]
  3. 2

    이글을 보고 3곳에다 2번 않올리면 부모님 돌아가심 아무서워 젠장

    2010.04.04 13:57 [ ADDR : EDIT/ DEL : REPLY ]
    • 삭제할까 하다가 얼마나 무서웠으면 이렇게 올렸을까 싶어서 그냥 남겨둡니다 ^^;

      2010.04.04 20:38 신고 [ ADDR : EDIT/ DEL ]

걸어가는꿈2009. 8. 31. 17:55





   학교에서 휴대폰 금지하고, 걷어가고, 압수하고... 많이 짜증나지 않으세요? 학생들이라면 공감할 겁니다...

  그런데 이젠 그런 휴대전화규제를 조례(시, 도 등 지방자치단체에서 정하는 법)로 하게 해주겠다고 하네요?! -_-
  지금 경상남도, 서울시, 제주도 등에서 ‘휴대전화금지조례’가 추진되고 있습니다.
  그 내용은 ‘면학 분위기를 위해’ 학생들이 휴대전화를 가지고 등교하는 것을 학교장이 금지할 수 있게 정당화해주는 것입니다.
  경상남도의 박종훈 교육위원이 낸 법안을 보면,
  휴대전화를 가져가서 그 내용을 보거나 하는 것은 안 된다고 하고 있긴 하지만,
  휴대전화를 금지하고 압수하는 것을 모두 정당화하고 있습니다. 바로 ‘면학분위기’를 위해서....
  지금 경남에서도 학생들이 반대운동을 하려고 하고 있습니다.(http://cafe.naver.com/antimile)



  휴대폰을 학교에서 일괄적으로 금지하고 규제하고 압수하는 것에는,
  학생들을 공부만 하는 기계로 보는 것과 다름 없는 생각이 담겨 있습니다.
  공부에 방해가 되고 딴 짓을 하게 되는 휴대폰을 학교에 가져오지 말라는 거죠.
  학생들에게는 학교에서 다른 친구들과 휴대폰을 이용해서 이야기를 나누거나 딴짓을 할 자유가 전혀 없다는 것입니다.


  수업시간에 휴대전화가 울리거나 휴대전화로 딴짓을 하게 된다구요?
  그건 재미도 없고 왜 하는지도 모르겠는 시험 보기 위한 공부와 수업을 강제로 받아야만 하고 강제적으로 교사에게 집중해야만 하는 교육의 문제를 먼저 따져봐야 하는 것 아닐까요?
  수업에 대해 학생들과 교사들이 충분히 서로 이야기를 나눌 수 있고 좀 더 학생들을 존중하는 교육을 할 수 있다면 학생들이 그렇게 딴짓을 많이 할 일은 없을 것입니다.


  또한 수업시간에 휴대전화가 울려서 다른 학생들에게 방해가 되는 일이 일어난다면, 그건 서로의 예의를 어긴 것이기 때문에 사과하고 휴대전화를 끄거나 치우면 될 일입니다.
  그런 일이 일어난다고 해서 휴대전화를 압수하고 금지하는 것은, 폭력을 동원해서라도 수업을 과도하게 보호(??)하려는 것입니다. 이런 것은 보통 예의의 문제이지 금지하고 압수할 문제가 아닌데 말입니다.
  여러분은 친구랑 둘이 이야기를 나누는데 친구가 휴대폰으로 딴짓을 하면 그 친구의 휴대폰을 압수하고 혼내시나요?
  극장에서 휴대전화가 울리거나 하면, 그 사람 휴대전화를 극장에서 압수하나요?



  학교에서 휴대전화를 완전 금지시키고 압수하는 짓은 인권침해라고 국가인권위원회도 인정한 적이 있습니다. (관련기사)
  이건 정말 우리의 통신의 자유, 사생활의 자유, 행복추구권을 쌩까는 짓입니다.

  그런데 이런 인권침해인 휴대전화 규제를 막지는 못할 망정 시/도의회, 시/도교육청에서 조례로 정당화해주겠다니요??
  청소년들은 인권을 존중받을 수 있는 시민/도민/교육주체가 아니라는 걸까요? 그냥 통제할 대상일 뿐...
  휴대전화금지조례를 만들면서 청소년들의 권리나 자유, 의견에 대해서는 제대로 고려해봤는지 의문입니다.




  휴대전화금지조례에 반대하는 학생들의 목소리를 들려줘야 합니다...
  작은 행동이라도 일단 해봅시다... 
  다른 학생들에게 이런 뷁스러운 게 추진되고 있다는 걸 알리는 문자메시지를 날려주세요...
  그리고 교육청, 의회에 항의하는 행동을 같이 합시다... (서울은 9월 5일 토요일 저녁 8시입니다)



(문자 돌리기 행동은 이렇게! 플래시몹 날짜 같은 걸 넣어도 좋겠죠?)
(* 정확히는, 서울시의회에서 서울시교육청에게 휴대전화금지조례를 발의할 것을 요청함.
서울시교육청은 아직 이렇다할 입장을 안 냈음.)



나는 핸드폰 없어 (원곡 : 심장이 없어)

나는 핸드폰 없어

나는 핸드폰 없어
내 폰은 교무실 서랍에 있어
휴대전화금지조례 이렇게 통과시킨대
학교에선 공부만 해야된대

돌려달라 말하면 졸업 때 줄 것 같아서
왜 뺏냐고 말하면 벌점 줄 것만 같아서
그냥 냈지 그냥 냈지 그냥 냈지
공부시키려고 참 별짓을 다해 (이렇게 힘든데)
>


Posted by 공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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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resh8323

    이런 조치들은 사과하고 말로 풀수있는 학생들이 아닌
    일진이니 뭐니 하면서 지도 교사 말안듣고 뻣대는 학생들을 위한 사항입니다.

    현실적으로 말로하면 안듣는 남고에서 체벌또한 금지되고 있는 마당에....
    인권 운운하면서 선생님 말 안들을 학생들 생각하니... 학교 교육 정상화의 길은 요원해 보이는군요.

    땅에 떨어진 교권에서 어떻게 양질의 교육이 나올수 있을지 참으로 암담합니다.

    2009.09.01 11:47 [ ADDR : EDIT/ DEL : REPLY ]
    • 제가 본문에 썼다시피, 그런 경우에 대해서 저는 애초에 왜 모든 청소년들이 학교를 다니고 똑같은 수업을 강제로 받아야 하는가, 그리고 지금의 교육-수업은 왜 이토록 재미가 없고 비자발적인가, 에 대한 고민을 먼저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학생들을 모두 학교 밖으로 쫓아내야 해, 라는 이야기가 아니라요.
      그 학생들이 수업시간에 휴대폰을 가지고 놀고 치우라고 요구해도 듣지 않는다지만, 애초에 그 학생들도 거기에 앉아서 수업을 듣고 싶은 건 아닐 것입니다.

      역으로 말해서 교사는 학생들이 재미 없고 당신 수업을 존중하지 않겠다, 라고 수업하지 말라고 요구를 하는데 그걸 무시하고 수업하고 있는 무례한 짓을 하고 있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수업을 일시적으로 듣고 싶지 않거나 듣기 싫은 학생들이 휴식을 취하고 놀 수 있는 공간이나 제도가 학교에 따로 마련되어 있지도 않고,
      현재와 같은 학교 수업을 장기적으로 듣고 싶어하지 않는 학생들을 위한 다양한 교육들이 제공되지도 않고 있습니다. 오직 비슷비슷한 방식과 비슷비슷한 과목, 내용의 수업들이 강제되고 있을 뿐이지요. 문제풀이를 위한.
      (그리고 남고에서 체벌 금지된 곳 거의 없습니다. 전체의 10%도 안됩니다. 모든 학교 다 따져봐도요.)

      교권 운운하면서 학생들에게 폭력을 행사하고 교육을 강요하는 교사들을 생각하니, 학교 교육 정상화의 길은 요원해보입니다.
      학생들의 상태와 의견, 인권을 존중하지 않고 획일적, 강제적, 경쟁적, 차별적인 학교에서 어떻게 양질의 교육이 나올 수 있을지 참으로 암담합니다.

      2009.09.01 14:01 신고 [ ADDR : EDIT/ DEL ]
  2. ^^

    이글을 보니 요즘 청소년들에 대한 실망감이 크네요..

    학교라는 곳은 공동체생활이기 때문에 규제가 있는 것이고 그것을 지키는 법을 배우는 곳이 학교라는 곳입니다.
    학생이라는 신분에서 교육에 대한 의무가 있고 권리가 있습니다.
    휴대폰 사용자로 부터의 학습권을 박탈당한것에 대한 학습권은 요구하지 않는 것이 의문이군요??
    요즘 애들을 인권이라는 명목하에 자신의 권리만을 내세우게 만들고 의무에 대한 책임감을 배우지 못하는 것을 보면 요즘 학교라는 곳은 뭐하는 곳인지 참 한심스러워집니다.

    특히 이부분은 더 가관이군요..
    수업중에 핸드폰이 울리면 사과하면 그만이라는 생각...
    선생의 수업을 존중하지 않으니 수업 안 받겠다...
    쉬고싶을때 쉬고 싶다.

    중학교까지는 학습에 대한 의무가 있으니 당연히 지켜야 겠지만
    고등학교에는 그런 의무가 없으니 관두시던지 좋은 학교로 전학가시면 됩니다.
    그것도 싫으시다면 대안학교도 많으니 그 곳으로 뜻을 두시면 되지 않나요??
    아니면 검정고시를 보시면 됩니다.
    여러가지 선택이 있는 데 자신의 선택에 따라 학교를 가고 있는 것이 아닌가요?
    부모님의 강요? 그것도 자신의 권리를 내세우세요.. 인권침해라고..

    그리고 쉬고 싶을때 쉬고 싶으시면 중고등학교도 휴학제도가 있습니다. 이용하세요!

    학교에 가고 있기 때문에 규제라는 것이 있고 대한민국을 살아가고 있기때문에 법질서가 있는 것이며 자신의 권리와 함께 의무가 지워지고 그것을 지켜야 하는 것이죠. 그것이 싫으시면 학교를 나오시는 권리를 행사하시면 됩니다.

    개인적으로 두발규제와 같이 쓰잘때기 없는 규제는 반대하는 입장이지만
    핸드폰에 대한 규제는 정말 불합리한 규제가 아니라 학생들의 학습권을 존중해서 만드는 불가피한 규제가 아닐까 한번 생각해보시기 바랍니다.

    2009.09.01 14:44 [ ADDR : EDIT/ DEL : REPLY ]
    • 저 한 명, 또는 이 활동하는 청소년들 몇 명 때문에 '요즘 청소년들에 대한 실망감'씩이나 느끼실 필요는 없습니다.

      a. 공동체이고 공동체의 운영에는 규칙이 필요하다는 것에 얼마든지 동의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규칙이 옳은지 또한 그 정도가 적절한지라는 것이 우선적으로 따져져야 하느 ㄴ것입니다.

      b. 휴대전화 사용으로 불쾌감을 느끼거나 수업에 다소 방해를 받는 정도로 '학습권 박탈'이라고까지 표현하는 것은 매우 심각한 오버입니다. 수업이 조금이라도 방해받거나 분위기가 흐트러지면 그게 곧 학습권 박탈이라는 논리는 수업을 과도하게 신성불가침의 영역으로 보는 것처럼 보이기까지 하는군요 -_-
      학습권이란 말이 기존의 수업-교육을 전제로 하고 너무 남용되는 경향이 있는 용어이긴 합니다만.

      c. '의무교육'은 아동에게 부모가 교육권을 박탈하지 않고 의무적으로 교육을 받게 보장해야 한다는 이념, 그리고 국가가 의무적으로 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보장해야 한다는 이념에 가깝지, 아동의 의사를 존중하지 않으며 강제로 교육을 시키는 게 '의무교육'이라고 보기 어렵습니다.

      d. 네 대안학교도 그리 나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만, 현재 대안학교의 수는 절대적으로 부족하고 또한 제도권 공교육이 교육의 권위를 대부분 독점하고 있는 상황에서 대안학교라는 선택지의 어려움은 명백합니다. 그리고 대안학교의 경우도 현재 그리 다양한 교육을 원하는 만큼 제공하지는 못하고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예산의 부족 때문이건, 그 학교의 교육이념의 문제이건, 아니면 뿌리깊은 '학교화'의 문제이건.

      e. 선택지가 매우 제한적으로 주어진 상황에서 '선택'이란 말을 그렇게 쉽게 쓸 수 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네, '선택'이라는 걸 부정할 생각은 없습니다만, 그 선택의 선택지 자체를 늘리라고 요구하겠습니다.

      f. 여기서 말하는 쉬고 싶다, 라는 건 휴학처럼 1년씩 쉬는 제도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라 일상적인 욕구에 대한 존중입니다. 그저 아주 인간적인 교육운영을 요구하는 것뿐입니다.
      ^^님의 말씀은 마치 주6일에 10시간씩 일하는 회사에 다니면서 회사에서 피곤할 때도 전혀 쉴 수가 없다, 휴게실도 없다, 노동자 복지가 엉망이다, 라고 말하는 노동자에게 그럼 회사 휴직하세요! 아니면 회사 퇴직하세요! 라고 말하는 것 같은 괴악한 소리로 들리네요.

      g. 휴대전화에 대한 '불가피한 수준의 규제'는 전면 금지나 압수가 아니라 자제가 가능하도록, 그리고 자발적으로 사용을 제한하도록 권하는 규제입니다. 그리고 휴대전화 등 수업시간에 '딴짓'을 하는 것 자체의 문제에 대해서 시스템적인 해결방식은 위에 덧글에 적었으니 생략합니다.

      h. 휴대전화 금지, 압수가 정말로 불가피한 규제인 걸까요? 제가 교사들 인권연수도 많이 다녀보고, 교사들이나 다른 '어른'들과도 많은 회의를 해봤지만, 교사들이나 어른들이라고 해서 인권연수 때 휴대전화가 전혀 안 울리거나 전혀 딴 짓을 안 하면서 수업에 집중하지는 않습니다. 대학교 수업도 마찬가지지요. 대학교 수업의 경우는 학생이 강의실 밖으로 나가서 전화를 받거나 전화를 끄거나 하는 게 보통입니다.
      그런데 초중고등학교의 경우에만 유독 그런 상황에 대한 해결책이 휴대전화를 금지하고 압수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집니다. 왜일까요? 그게 불가피한 규제라서? 오히려 학생들이 권력관계에서 절대적으로 불리한 위치에 있고, 그 공간의 문화가 반인권적이고 억압적이기 때문 아닐까요?

      2009.09.02 13:34 [ ADDR : EDIT/ DEL ]
  3. ㄹㄹㄹ

    실제로 학교현장에서 학생들,교사들,학부모들의 목소리를 듣고 글을 쓰는것인지 궁금해지네요.

    휴대폰소리를 들을 권리 말고, 선생님의 말소리를 듣지못하게 되는 학생들의 권리침해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합니까?

    교실에서 다른사람의 전화벨소리,통화소리를 듣고 싶지 않습니다. 공부에 집중할 권리를 박탈당하는 학생들의 인권은 어떻게

    호가 되어야 하나요?

    그리고, 개개인이 창의성있는 교육을 받아야 할 권리라는것은 수월성교육,차별화된 교육을 하자는 말씀이죠?

    2009.09.19 09:28 [ ADDR : EDIT/ DEL : REPLY ]
    • 교사들 이야기는 많이 안 들어봤지만, 교사들 중에서도 휴대전화 통제를 반대하는 교사들은 제법 있습니다.
      http://1318virus.net/modules/news/view.php?id=10378

      그리고 학생들 중에서는 휴대전화 금지나 압수에 대한 불만이 상당히 높습니다. 여론조사 결과도 그렇고, 제가 학교 현장들을 다니면서 학생들의 불만들을 들어봐도 그렇구요.
      뭐 모든 학생들이 다 휴대전화 금지나 압수에 반대한다고 볼 수는 없습니다만, 당연히.

      교실에서 다른 사람의 전화벨소리, 통화소리를 듣고 싶지 않다면 듣고 싶지 않다고 요청을 하거나 부탁을 하셔야겠지요. 제가 다른 사람의 숨소리나 말소리가 듣기 싫다고 그 사람이 숨을 못 쉬게 하거나 말을 못하게 금지시킬 수 없는 것처럼요.

      지금까지 "공부에 집중할 권리"나 "학습권"을 과도하게 강조하고 수업이나 교실, 학교를 거의 신성불가침의 영역으로 오직 학교가 요구하는 입시공부와 학습에만 특화된 공간으로 보는 시선이 팽배해있었습니다. 학생들의 교육권은 분명히 보장되어야 할 것이고, 공부하고 싶은 학생 - 또는 학생들이 공부하고 싶을 때 거기에 맞는 여러 시설들도 제공될 필요가 있습니다. 그러나 수업 중에는 전혀 딴짓이나 산만함, 조용히 교사 말에만 집중하는 수업 분위기에 해가 되는 그 어떤 행동도 용납할 수 없다는 것이야말로 오히려 인간성에 대한 폭력일 수 있습니다.'

      // 제가 말하는 개개인에게 맞춰서 다양하게 보장되는 교육은 현재의 교육 틀 안에서 수준별/차별 교육을 하자는 내용이 아닙니다. 수준별/차별 교육은 이런 맥락에서는 학생들에게 더 억압적일 수 있습니다.
      차라리 탈학교 이론이나 적성교육에 더 가까운 구상이겠습니다만.

      2009.09.19 12:27 신고 [ ADDR : EDIT/ DEL ]
  4. 지나가던 학생1

    휴대전화 금지에 대한 찬반 의견을 조사하다가 글쓴이님의 의견을 접하게 되었습니다. 학생으로서 어느정도는 공감하는 내용입니다. 인권 침해에 대한 부분도 이해가 가구요. 하지만, '애초에 왜 모든 청소년들이 학교를 다니고 똑같은 수업을 강제로 받아야 하는가, 그리고 지금의 교육-수업은 왜 이토록 재미가 없고 비자발적인가'라는 내용은 휴대전화 소지에 대한 의견과 관련은 있지만 조금 관점을 벗어난 듯 싶네요. 또한, 수업의 흥미에 대한 부분은 개인차가 있겠지요.

    '수업시간에 휴대전화가 울려서 다른 학생들에게 방해가 되는 일이 일어난다면, 그건 서로의 예의를 어긴 것이기 때문에 사과하고 휴대전화를 끄거나 치우면 될 일입니다. '-> 물론 그렇다고 볼 수도 있겠지요. 하지만 예의에 신경쓰지 않고 사과도 하지 않는 학생들이 많습니다. (실수로 켜져있지 않는 한) 방해하지 않으려는 노력조차 하지 않으려는 학생들이 있다는 말입니다. 이런 경우가 끊임없이 발생한다면(그런 학생들이 노력하지 않는다면), 다른 학생들은 계속 피해를 입을 것입니다.
    '여러분은 친구랑 둘이 이야기를 나누는데 친구가 휴대폰으로 딴짓을 하면 그 친구의 휴대폰을 압수하고 혼내시나요? 극장에서 휴대전화가 울리거나 하면, 그 사람 휴대전화를 극장에서 압수하나요?' 이 예시는 열외의 경우 같습니다. 조건이 달라지니까요.

    또한, 휴대폰 게임 중독에 걸리면 헤어나오지 못해 수업시간에도 멈추지 못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자기 자신이 통제하기 어려운 상황이 되는 것이죠. 저희 학교에도 수업시간마다 문자에, 게임을 쉬지않고 하는 학생들이 꽤 있습니다. 그러면 선생님들께서 그 친구들에게 혼을 내시는 동안 많은 시간이 소비되며, 벨소리에 수업이 방해가 되기도 하지요. 게다가 누구 핸드폰이냐며 그 휴대폰의 주인을 찾는 경우에는 꽤 오래걸립니다. (물론, 이제는 묵인해버리는 선생님들도 계십니다.)

    의견은 다르지만 마음에 드는 글을 읽고 짧은 소견 올려봅니다.^^

    2010.05.27 01:45 [ ADDR : EDIT/ DEL : REPLY ]
  5. 지나가던 학생1

    휴대전화 금지에 대한 찬반 의견을 조사하다가 글쓴이님의 의견을 접하게 되었습니다. 학생으로서 어느정도는 공감하는 내용입니다. 인권 침해에 대한 부분도 이해가 가구요. 하지만, '애초에 왜 모든 청소년들이 학교를 다니고 똑같은 수업을 강제로 받아야 하는가, 그리고 지금의 교육-수업은 왜 이토록 재미가 없고 비자발적인가'라는 내용은 휴대전화 소지에 대한 의견과 관련은 있지만 조금 관점을 벗어난 듯 싶네요. 또한, 수업의 흥미에 대한 부분은 개인차가 있겠지요.

    '수업시간에 휴대전화가 울려서 다른 학생들에게 방해가 되는 일이 일어난다면, 그건 서로의 예의를 어긴 것이기 때문에 사과하고 휴대전화를 끄거나 치우면 될 일입니다. '-> 물론 그렇다고 볼 수도 있겠지요. 하지만 예의에 신경쓰지 않고 사과도 하지 않는 학생들이 많습니다. (실수로 켜져있지 않는 한) 방해하지 않으려는 노력조차 하지 않으려는 학생들이 있다는 말입니다. 이런 경우가 끊임없이 발생한다면(그런 학생들이 노력하지 않는다면), 다른 학생들은 계속 피해를 입을 것입니다.
    '여러분은 친구랑 둘이 이야기를 나누는데 친구가 휴대폰으로 딴짓을 하면 그 친구의 휴대폰을 압수하고 혼내시나요? 극장에서 휴대전화가 울리거나 하면, 그 사람 휴대전화를 극장에서 압수하나요?' 이 예시는 열외의 경우 같습니다. 조건이 달라지니까요.

    또한, 휴대폰 게임 중독에 걸리면 헤어나오지 못해 수업시간에도 멈추지 못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자기 자신이 통제하기 어려운 상황이 되는 것이죠. 저희 학교에도 수업시간마다 문자에, 게임을 쉬지않고 하는 학생들이 꽤 있습니다. 그러면 선생님들께서 그 친구들에게 혼을 내시는 동안 많은 시간이 소비되며, 벨소리에 수업이 방해가 되기도 하지요. 게다가 누구 핸드폰이냐며 그 휴대폰의 주인을 찾는 경우에는 꽤 오래걸립니다. (물론, 이제는 묵인해버리는 선생님들도 계십니다.)

    의견은 다르지만 마음에 드는 글을 읽고 짧은 소견 올려봅니다.^^

    2010.05.27 01:45 [ ADDR : EDIT/ DEL : REPLY ]
    • 지금 학생들에게 학교 수업은 상호간의 존중이나 예의라는 룰이 적용될 수 있는 성격의 것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다분히 강제적이고 비자발적이며 수직적인 관계가 지배하고 있는 게 현재의 학교교육이지요. 그 예시는, 결국 학교 또는 학교수업이라는 조건이 얼마나 강제적 강압적인 속에서 이루어지고 있는지를 그런 것들과 비교하면서 이해하시라는 겁니다.

      저는 근본적으로 학교교육의 방식 자체가 바뀌어야 하긴 하지만, 그렇지 않더라도 지금 시점에서 약간만 소통하고 룰을 손본다면 학교교육의 원활한 진행과 휴대전화 사용은 공존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경기도학생인권조례에 나온 정도의 선이 그런 조건에서 가능한 타협점이겠지요.

      중독 같은 경우도 왜 중독되고 또 무엇이 그 중독을 지속시키는 걸까요? ^^;

      그런 식으로 질문을 던져보시기 바랍니다.

      2010.05.31 09:58 신고 [ ADDR : EDIT/ DEL ]

걸어가는꿈2009. 8. 6. 04:32

다 쓰고 나서도 세상에 뭔 캠프 자료집으로 A4 7페이지짜리 글을 쓰나... 싶었던a
그냥 혼자 쓰다가 불 붙어서 마구 써버린...





‘19세 미만’은 왜 ‘미성년자’가 되었나

공현 (청소년인권행동 아수나로 활동가)
청소년인권캠프 별세상(2회) “별을 낚다!”



  청소년들에게는, 법적으로 붙어 있는 다른 이름이 있습니다. “미성년자”라는 이름이죠. 민법에서는 만 20세 미만, 청소년보호법에서는 만19세(사실상 연20세) 미만, 공직선거법에서는 만 19세 미만 등등으로 그 기준을 정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은 “미성년자”라는 말을 듣고 기분이 나쁘지 않으세요? 미성년자라는 말은 ‘아직 성년이 아닌 사람’, ‘아직 완성된 나이가 아닌 사람’, ‘미성숙한 나이의 사람’이라는 뜻이잖아요. 이건 마치 장애인을 “비정상인”이라거나 “부족한 사람”이라고 이름 붙이는 것 같은, 괴악한 센스라고 할 수 있습니다. 뭐, 한 마디로 차별적인 말이란 거죠.


‘미성년자’라는 굴레

  어떤 사람들을 “미성년자”로 이름 붙이고 “미성년자”로 대한다는 건 어떤 것일까요? “미성년자”라고 불릴 때 그 사람들은 미성숙하고 불완전한 사람들이 되고 맙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은 자기 삶에 대해서 자기 스스로 결정할 수 없고, 다른 성숙하고 완전한 사람들의 강요를 당해야 합니다. 학교에 다니며 교육받아야 하고 가르침을 받아야 합니다. 정치 참여 같은 문제에서는 전사회적 왕따를 당합니다. 그들은 학교의 교육과 가족의 보호·통제 속에서 살아야 합니다.
  불완전하고 미성숙하니까, 성숙한 사람들이 그들을 두들겨 패서라도 잘못을 고치려 하는 게 이상한 일이 아닙니다. 반항은 있을 수 없죠. 왜냐하면 미성숙하고 불완전한 사람들이 어떻게 감히 성숙하고 완전한 사람들에게 이의를 제기할 수 있겠습니까? 성숙하고 완전한 사람들이 항상 더 옳을 텐데. 그러니까 학교를 운영하든 자기 삶의 진로를 결정하든 정책을 결정하든, 그들은 쏙 빼놓고 성숙하고 완전한 사람들끼리 알아서 하는 게 당연한 겁니다.
  그들은 혹시 무슨 사고를 저지르거나 무슨 사고를 당할지 모르니까 밤에는 돌아다니면 안 됩니다. 보호자의 허락 없이 돌아다니거나 외박을 하거나 하면 안 되죠. 돈을 주거나 돈을 벌 수 있게 했다간 잘못 쓸 수도 있으니까 조금씩조금씩 용돈만 주거나 돈을 주지 말아야 합니다.
  미성숙한 그들을 위해 사회가 그들을 ‘보호’해야 합니다. 그들이 원하건, 원하지 않건. 미성숙하고 불완전하니까 혹시 책이나 그림이나 영화 같은 걸 보거나 음악을 듣다가 잘못된 걸 따라하거나 이상한 행동을 할 수도 있으니까 그런 것도 다 미리미리 금지해둬야 합니다. 성행위? 섹스하다가 덜컥 임신이라도 하거나 하면 어떻게 책임을 지겠습니까? 당연히 다 금지해야죠! 그렇게 미성숙한 사람들에게 성욕이나 성적 자유? 택도 없는 소리입니다. 청소년의 섹스할 자유? 그게 뭐임? 먹는 거임? 우걱우걱.
  특히 한국에서 더 두드러지는 건데, 이 그들에게는 한 가지 더 무거운 짐이 지워집니다. 입시경쟁, 취업경쟁이라는 짐이죠. 미성숙하고 불완전한 미성년자들이 사회에 잘 적응하게 하기 위해서 그리고 그들을 국가에 도움이 되는 ‘인재’로 만들기 위해서, 경쟁은 옵션이 아닌 필수입니다. 한국처럼 먹고 살기 힘든 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당연한 일입니다.


‘미성년자’는 자연스러운 걸까?

  그런데 정말로 당연한 일일까요? 이렇게 어떤 사람들에게 ‘미성년자’라는 이름을 붙이고 법적으로나 사회적으로나 꽤나 깐깐한 제한을 가하고 학교에 반드시 다녀야 하게 만드는 등의 일이 꼭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일은 아닙니다.
  일단 지금 당장 다른 나라들을 봐도 서로서로 다른 점이 많습니다. 정치 활동을 하는 데 나이에 따른 제한이 별로 없다던가, 선거권이 만 16세라던가, 15~16살만 되어도 원한다면 독립해서 살 수 있다던가, 12살에 애를 낳아도 너무 큰 부담 없이 양육할 수 있다든가…. 학교나 교육제도가 다른 것은 말할 것도 없겠죠.
  최근에 좀 뜬 『88만원세대』라는 책이 있는데 혹시 아실까 모르겠습니다. 주로 한국 20대들의 현실을 다룬 책인데요, 심심찮게 10대들 이야기도 나옵니다. 그런데 이 책의 첫 챕터 제목이 「첫 섹스의 경제학 - 동거를 상상하지 못하는 한국의 10대」입니다. “동거를 상상하지 못하는 한국의 10대”. 이 말 속에는 한국이 아닌 다른 나라에서는 “동거를 상상할 수 있는 10대”들이 있다는 의미가 숨어 있습니다. 한 번 읽어보세요. 실제로 다른 몇몇 나라들에서는 16~18세만 되어도 섹스·동거·독립을 비교적 자유롭게 큰 부담 없이 할 수 있다는 이야기들이 소개되어 있습니다.

  ‘미성년자’를 구분하고 차별하는 제도들은 사회가 만든 것입니다. 역사를 꼼꼼히 살펴보면 지금과 같은 ‘아동’, ‘어린이’, ‘청소년’, ‘미성년자’ 같은 개념과 제도들이 생겨난 건 500년도 안 된 일입니다. ‘학교’처럼 거의 모든 아동·청소년들이 꼭 다녀야 하는 교육기관이 생긴 건 그보다도 더 가까운 과거의 일입니다. 한국의 경우에는 100년도 안 되는 일입니다. 그 이전에도 나이가 적은 사람들이나 아이들을 다르게 대하는 게 전혀 없던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그것도 지금과는 상당히 다른 모습이었고, 대체로 지금보다 더 이른 시기에 ‘성인’이 될 수 있었습니다.

  물론 우리는 청소년들의 뇌가 어쩌구저쩌구 호르몬이 어쩌구저쩌구 하는 소리들을 많이 듣습니다. “주변인”이니 “질풍노도의 시기”이니 “자아정체성 확립”이니 하는 말들을 사용해가며 청소년들을 규정하려는 심리학자들의 이야기를 교과서에서나 책 속에서 배우기도 합니다. 그러면서 청소년들은 충동적이고 미성숙한 것은 과학적으로 증명된 사실이라고 이야기하지요.
  그러나 사실 이런 얘기들은 100% 과학적인 것은 아닙니다. 문화가 다른 여러 사회들을 살펴보면, 아이와 어른의 구별이 별로 없는 사회,  ‘질풍노도의 시기’ 같은 것 없이 아주 평화롭게 아이들이 어른이 되는 사회 등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어떤 심리학자들은 ‘10대’들이 판단력이나 책임감이 부족한 듯이 보이고 사회적 문제를 일으키는 것은, 사회가 그들을 어른들과 격리시켜 행동을 통제하기 때문이라고 주장하기도 합니다. 엄격한 규율을 강요하고 권리를 박탈하기 때문에 청소년들이 더 문제행동을 일삼는 것처럼 보인다는 분석도 있습니다. 청소년들은 사회에 참여할 권리, 경험을 쌓을 기회를 빼앗겼기 때문에 더 의존적으로 살 수밖에 없는데, 능력이 부족하고 의존적이기 때문에 권리와 기회를 주어서는 안 된다고 하는 식의 뷁스런 악순환이 계속됩니다.
(오히려, 정말로 ‘과학적’으로 말한다면, 성욕이나 성적인 활동력이 가장 왕성한 시기라고 하는 15~16세부터 섹스, 결혼 등이 가능한 게 ‘자연스럽지’ 않을까요?)

  그렇습니다. 이 글이 하고 싶은 말은 분명합니다. 청소년들이 인권침해를 당하며 통제 속에 살아야 하는 것은 청소년들의 뇌가 아직 덜 익었다거나 그들의 몸 속에서 충동적이고 미성숙한 감정과 행동을 조장하는 호르몬들이 마구 분비되고 있기 때문이 아닙니다. 만 18세까지는 판단력도 없고 멍청하고 비합리적이다가, 만 19세가 넘으면 판단력이 갑자기 짠하고 생기고 삶과 사회에 진지해지고 합리적으로 변하기 때문도 아닙니다. 우리가 이딴 사회에 살고 있기 때문이고, 이 사회가 그따위로 생겨먹은 탓입니다.


왜?

  그럼 왜 이 사회는 이따위로 생겨먹은 것일까요? 설마 특별히 어른들이 못돼먹어서, 성격이 안 좋아서, 변태라서 그런 것은 아닐 텐데 말입니다. 역사적으로 아동·청소년들의 노동이 금지되기 시작한 때, 청소년들에게 학교에 다닐 것을 요구하고 학교를 ‘의무교육’으로 만들어갔던 때를 살펴보면 대충 답을 알 수 있을 것도 같습니다. 학교 제도는 아동·청소년들의 삶을 억누르고 ‘배워야 하는 존재’인 ‘미성년자’들을 만들어내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으니까요. 실제로도 초등학교가 생겨나면서 아이, 어린이에 대한 개념이 사람들의 마음 속에 자리 잡았고 중등학교가 생겨나면서 청소년기가 보이게 되었거든요.

  처음 유럽에 도시가 생기고 공장이 생기던 때는, 참 비참하고도 끔찍한 노동 착취가 흔하고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특히 많은 공장들이 적은 돈을 주고 아이들을 고용했습니다. 아이들이 임금이 적었던 건, 아이들은 신체적으로 약한 입장이었고, 따로 기술을 가지고 있지도 숙련되지도 않은 노동자로 주로 단순한 업무에만 고용되었기 때문입니다. 그 당시에는 노동자들 대부분이 하루에 최저 10시간 최대 19~20시간씩(!) 일을 하는 끔찍한 생활을 해야 했습니다. 그 결과 많은 아동·청소년들이 과도하고 위험한 노동에 목숨을 잃었고 노동자들의 평균 연령이 10대 후반일 때도 있었습니다.(즉, 노동자들이 20살이 되기 전에 죽었단 이야기!) 빈민이나 노동자 계급에 속했던 많은 아동·청소년들이 과도한 노동 속에 몸을 망치고 범죄자가 되었습니다.
  이런 현실에 대응하여, 일정 나이 이하의 아동 노동을 금지하고, 의무교육을 받도록 하는 법률들이 18세기 이후에야 만들어졌습니다. 학교에 다닌다는 취학 증명서를 가져오는 아동·청소년만 일을 할 수 있도록 하는 법률 같은 게 만들어지기도 했죠. 그런데 이런 아동 노동 금지, 의무교육 도입 등이 이루어진 데는 두 가지 다른 이유가 있었습니다. 하나는 이런 끔찍한 현실을 바꾸고 (아동을 포함해서) 노동자들이 조금이라도 더 인간답게 살게 해야 한다는 노동자들 자신과 양심적인 지지자들의 목소리 그리고 교육을 받는 것은 모든 사람의 권리이며 평등한 기회가 보장되어야 한다는 권리 사상의 발전이었습니다. 참 바람직한 일이죠? 물론 직접 노동 착취를 없애고 사람들이 굶어죽을 걱정 없이 살게 하지는 못했다는 점에서 한계가 분명한 궁여지책일 수도 있지만요.
  반면에 다른 하나의 이유는, 산업구조가 바뀌면서 더 효율적이고 지속가능한 노동력이 필요해졌다는 것, 학교 교육을 통해 더 순종적이고 규율을 잘 따르며 생산성 좋은 노동자를 만들 수 있으며 사회 불안을 줄일 수 있다는 것, 그리고 국가들 사이의 전쟁 등으로 인해 국가의 말을 잘 따르고 군사화된 국민들이 필요해졌다는 것이었습니다.
  사실 우리가 지금 가지고 있는 학교의 모습은 많은 부분이 1800년대 프러시아(지금의 독일지역)에서 시작된 국가주의·군사주의 교육에서 온 것입니다. 당시 프러시아는 중앙집권화된 학교 교육의 목표를 다음과 같이 정했습니다. ▲ 명령에 복종하는 군인 ▲ 고분고분한 광산노동자 ▲ 정부 지침에 순종하는 공무원 ▲ 기업이 요구하는 대로 일하는 사무원 ▲ 중요한 문제에 대해 비슷하게 생각하는 시민들. 프러시아의 교육은 순종적인 군인·노동자·공무원을 만드는 교육이었고 복종과 규율을 가르치는 교육이었습니다. 독일 민족주의 교육의 대표자인 얀이라는 사람은 민족부흥을 위해 의무교육이 필요하며, 민족주의적 의미가 없는 교과목의 폐지 등을 강력하게 주장하기도 했습니다. 프러시아의 이런 교육이 있었기 때문에 1차 세계대전이 일어났다는 지적도 있지요. 그밖에도 그 시대에는 많은 저명한 사람들이 학교 교육이 아동·청소년들을 위한 것이라기보다는 국가·정부에 복종하는 인간을 길러내고 생산성 좋은 노동자를 만들어내기 위한 것이라는 것을 노골적으로 이야기했습니다.

  한국은 어떨까요? 한국에서 학교교육이 도입되고 ‘아동’이나 ‘청소년’이나 ‘소년’ 같은 이야기들이 나오기 시작한 건 근대 문물이 막 들어오던 1800년대 후반~1900년대입니다. 그 이야기들이 국가주의·민족주의적인 색채를 띠던 것은 한국에서도 별로 다를 것은 없었습니다. 특히 조선-대한제국-한국에서는 청소년, 학생들을 민족의 전사이자 조국의 근대화를 이루고 위기를 극복할 새로운 세대로 만들려고 했습니다.
  일제강점기가 끝나고, 한국전쟁까지 거치고 난 이후 한국에서도 큰 차이는 없었습니다. 1954년 문교부(지금의 교육부) 장관이 쓴 글을 보면 “여러분이 학교에서 학업을 닦는 목적이 여러분 자신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여러분이 태어난 국가와 민족을 위하는 일을 하기 위한 것이기도 하다는 점입니다.”라고 쓰고 있습니다. 한국에서도 ‘미성년자’ ― 청소년, 아동들을 따로 구분하고 학교 교육을 받게 한 것은 국가를 위한 것이었단 겁니다.
  박정희가 대통령이던 때에도 큰 차이는 없었습니다. “우리는 민족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띠고 이땅에 태어났다.”라는 말로 시작하여 “나라가 발전하며 나라의 융성이 나의 발전의 근본임을 깨달아, 자유와 권리에 따르는 책임과 의무를 다하며, 스스로 국가 건설에 참여하고 봉사하는 국민 정신을 드높”이는 것이 국민으로서 청소년들의 의무라고 밝히고 있는 ‘국민교육헌장’을 청소년들에게 달달 외우게 했던 때입니다. 청소년들, 학생들은 조국을 근대화시키기 위한 인적 자원으로 생각되었습니다. 한편, 그 당시 청소년들은 반공 이데올로기를 주입해야 할 대상이었고 그 때문에 정치적인 사건들에 대해 알고 판단을 할 기회가 주어졌습니다. 반공주의와 애국주의를 벗어나는 것은 용납되지 않았지만 말이지요. 그건 청소년들을 정치적 주체로 인정했다기보다는 청소년들에게 획일적 의식을 강요하기 위해서였습니다.
  또, 프러시아 교육과 마찬가지로 한국의 교육에서도 군사주의·군국주의적인 모습들을 많이 찾아볼 수 있습니다. 불과 십 년 전까지도 있었던 ‘교련 과목’도 그렇고, 우리가 체육 시간이나 운동장 조회 때 하게 되는 줄 맞춰 서는 훈련 등도 그렇습니다. 두발복장규제는 특히 군사주의적 냄새가 많이 나는데, 때로는 남자들이 군대에 가는 것을 미리 준비시키는 건 아닌가 하는 의심도 듭니다. 교육에서 경쟁이 심한 것 또한 청소년들을 이 사회에 순응하게 하고 불평등을 정당화하는 효과가 있지요.
  그리고 한때는 한국에서는 청소년 노동에 대한 착취가 심각했습니다. 섬유, 옷, 봉제 등이 주력 산업이던 1960~70년대에는 평균 15~18세 나이의 청소년들이 어두운 공장에서 하루 15시간씩 재봉틀을 돌리고 마름질을 하고 바느질을 했습니다. 이런 노동 현실에 분노하여 항의하다가 분신하여 돌아가신 노동자 분이 바로 전태일 씨(본인도 17살부터 일을 했던)였습니다. 이러한 아동 노동이 실질적으로 금지되고 줄어들기 시작한 것은 산업 구조가 바뀌고 민주화가 진행되기 시작한 1980년대에 들어서였습니다. 이런 패턴은 어느 나라 어느 지역이나 비슷한 것 같습니다.
  한국·동아시아만의 특색도 없진 않습니다. 우리가 흔히 유교 문화라고 이야기하는 것들인데요. 독특한 ‘가족주의’라거나 교사에 대한 독특한 존경, 나이에 따라 존댓말 반말이 갈리는 등 나이 구별/차별이 쩌는 나이주의 등이 바로 그것입니다. 이런 것들도 한국 ‘미성년자’들의 삶을 괴롭게 하는 원인 중 하나가 되고 있지요.
  시간이 흐르고 1990년대가 되면서 청소년들의 노동이 줄어들고, 청소년들이 사회에 참여할 이유(반공, 애국, 근대화 등)도 줄어들면서 청소년들은 자연스레 사회에서 왕따가 되어갔습니다. 1920년대에는 그렇게 흔하던 중고생들의 동맹휴학이나 학교 점거, 시위 등이 지금은 별로 없는 것에는 이런 역사적인 이유가 있는 것입니다. 지금의 청소년들은 사회의 주체라기보다는 의미있는 소비계층, ‘알 수 없는’ 젊은 세대 정도로 생각되고 있습니다. 그나마 최근에 촛불이다 뭐다 하고난 뒤에야 사회적 주체로서 청소년들에 대한 좀 진지한 얘기들이 오가고 있는 편이지요.

  어쨌건 결론을 정리해봅시다. “왜 이 사회에서는 ‘미성년자’를 따로 나누고 통제하고 학교를 보내고 사회에서 왕따시키는가?” 지금까지 살펴본 그 이유를 대략 요약하자면, ①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아동·청소년들이 착취를 당하기 쉬웠는데 이를 막기 위한 궁여지책 ②국가와 기업(자본)이 아동·청소년들을 사회에 순응적이고 명령에 잘 따르고 생산성 좋은 국민·군인·일꾼으로 만들기 위해서 였습니다. ①번 이유는 의미가 없지는 않지만 지금 학교나 한국 사회가 돌아가는 모습을 보면 큰 영향력은 없는 것 같습니다.

  아이들에 대한 통제는 어른들이 못돼먹어서도 아니고 변태라서도 아니었습니다. 그건 지금처럼 국가가 사람들보다 더 우선시되고, 기업이 돈을 잘 벌고, 지금 같은 가족제도가 유지되도록 하는 등, 이 사회를 계속 꾸려나가기 위해 생겨난 제도인 것입니다. 학교는 우리들이 똑똑해지고 훌륭한 인간이 되게 하기 위한 게 아니라 국가와 기업(자본)에 도움이 되는 사람을 만들어내기 위한 제도였습니다. 지금은 다른가요? 너무 음모론처럼 들린다구요? 하지만 역사를 봐도, 그리고 지금 있는 여러 정책들의 결과를 봐도, 충분히 그럴 듯해 보이지 않나요?


‘미성년자’도 인간이라는 외침

  그래서 우리가 “미성년자도 인간이다.”라거나 “청소년도 인간이다.”, “청소년에게도 인권이 있다.”라고 외치는 것은 단지 나쁜 어른들의 편견을 바꾸는 일이 아닙니다. 그것은 지금의 이 사회에 도전하는 일이고, 사회의 문화와 제도와 구조를 바꾸려고 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생각을 바꾸고 말을 바꾸고 학교를 바꾸고 가족·가정을 바꾸고 법을 바꾸고 사회를 바꾸는 일입니다. 그건 어쩌면 자본주의, 국가주의 사회에 대한 혁명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니까, 뭐 쉽게 말해서 굉장히 어려운 일이란 거죠.
  어려운 일이더라도 ‘만 19세 미만’의 사람들이 좀 더 행복하게, ‘미성년자’가 아닌 인간답게 살기 위해서는 꼭 필요한 일이기도 합니다. 상상하기가 좀 어려울 겁니다. 지금 같은 학교, 지금 같은 가족·가정이 없는 사회는 어떤 세상일지. 그럼 14살짜리 청소년이 임신이라도 하면 어떻게 애를 낳아서 기르라는 건지. 8살짜리 아이에게도 투표권을 주자는 건지. 청소년들이 사회경제적 약자가 아니게 만드는 사회는 어떤 사회인지. 어쩌면 청소년들 스스로도 사회경제적 약자의 지위에서 자유와 권리를 제한당하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하고 안주하려고 하는지도 모릅니다. (저는 교복이 없어지면 아침에 뭐 입고 나갈지 고민해야 해서 싫다는 청소년들을 보면 이런 생각이 듭니다. 통제와 타율과 귀차니즘이 자유나 개성이나 인권에 대해 거둔 씁쓸한 승리.)

  구체적으로 그런 사회가 어떤 사회인지에 대해서는 더 곰곰히 생각해보시길 바랍니다. 누가 정답을 제시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니니까요. ‘미성년자’도 인간이라고 말하는 외침은, 청소년인권을 이야기하는 것은, 그토록 많은 것을 변화시킬 것입니다. 지금 이 글을 읽는 여러분을 포함해서 말이죠. ^^






* 참고문헌
『바보만들기 - 왜 우리는 교육을 받을수록 멍청해지는가』 존 테일러 개토
『이팔청춘 꽃띠는 어떻게 청소년이 되었나 - 청소년 만들기와 길들이기』 고미숙, 권인숙, 김현철, 나임윤경, 박노자
「근대 자본주의 사회와 아동」 배경내


Posted by 공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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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별캠때 이 글 받고 읽어봐야겠다 생각했었는데 정작 챙겨 읽지 않고 이렇게 허겁지겁 공현씨 블로그를 찾아 읽었네요. (아수나로에서 찾아봤지요.) 쉽고 재미있는 게 딱 제 타입입니다. 한국이 '특이한 케이스'였다는 것에는 조선말-대한제국초 서툴은 근대화와 그 이후 일제의 폭압이 한 몫을 하지 않았을까요. 아이러니하게 일제의 폭압에 저항하기 위한 민족교육도 한 몫을 했고요. 뭐 이런 과정을 통해 뿌리깊게 새겨진, 군인 출신 대통령들을 통해 확고화된 파시즘적 사고가 말씀하신 부분일테고요. 무튼 재미있는 글입니다. '진청모'와 제 블로그에 퍼가도 될런지요?

    2009.08.09 23:52 [ ADDR : EDIT/ DEL : REPLY ]
    • 그런데 공교육이 민족주의, 국가주의 성향이 강했던 건 한국이나 프러시아나 프랑스나 미국이나 큰 차이가 있지는 않습니다. 저항적 민족주의적 맥락에서의 특색이 없는 건 아니지만요. 한국적 특색이라면 유교적인 문화나 가족주의 특색을 봐야 하지 않을지 싶기도.
      사실 이 글에서는 핵가족의 형성, 가족주의의 문제는 분량상-시간상 거의 쓰지 못해서 좀 아쉽습니다.

      네 얼마든지 퍼가세요 ^^

      2009.08.10 00:05 신고 [ ADDR : EDIT/ DEL ]
  2. 유교와 가족주의의 문화 역시 한국의 특색이라기 보다는 역시 동아시아 유교문화권의 공통점이죠. 무튼 잘 퍼가겠습니다. 아, 캠프 때 받았던 배경내 씨의 글은 어디서 찾아볼 수 있을까요? 그 역시 저의 주체할 수 없는 띨띨함에 의해 잃어버렸지요 ㅠㅠ

    2009.08.10 08:47 [ ADDR : EDIT/ DEL : REPLY ]
  3. Cts

    음... 통제하기 편한 국민을 만들기 위한 시스템... 그런 '목적'으로 여러 세대 쌓여온게 지금의 상황인것 같아요

    2011.06.24 18:47 [ ADDR : EDIT/ DEL : REPLY ]
  4. KTX 부다

    엄밀히 말해서 청소년을 미성년으로 분류한 역사는 100년정도에 불과하고 초등학생 아동기의 노동금지도 이보다 조금 전인 19세기 후반에서야 나타나게 됩니다. 그러니 초등학교 의무교육탄생은 길어야 19세기 중반이전을 상회하지 않습니다. 중학교이후의 의무교육이나 청소년기에 대한 미성년규제는 대략 1차대전이후로 정립하게 됩니다.

    2018.11.04 13:57 [ ADDR : EDIT/ DEL : REPLY ]

걸어가는꿈2009. 6. 30. 11:28

근대 교육 속의 전근대

 


*

  지극히 근대적인 공간에서 우리는 때때로 전근대적인 것들과 마주치게 됩니다. 예컨대 최근에는 많이 감소한 추세라고는 하지만 얼마 전까지만 해도 군대나 감옥 안에서는 구타 등이 문제가 되었으며, 최근에도 완전히 근절되었다고는 보기 어렵습니다. 근대적인 공교육 공간인 학교에서의 체벌이나 두발규제, 용의복장 단속등도, 이처럼 근대적인 곳에 있는 전근대적인 요소 중 하나라고 할 수 있습니다. (태형을 연상해주세요.)

  어째서 이처럼 상반된 듯한 요소가 공존하게 되는 걸까요? 그것은, 근대적인 통제와 규율의 입장에서 볼 때 전근대적인 통제 방식이 부분적으로는 쓸 만하기 때문입니다. 즉, 근대적인 통제의 기본 정신은 유지하되, 그 수단으로 전근대적인 방식을 차용한다는 것입니다. 분명 신체에 고통을 주는 행위가 국제적으로 선언된 ‘세계인권선언’이나 다른 여러 기준들에 위배되는 인권침해라고 해도, 여하간 체벌로 직접 고통을 주는 것은 즉각적인 반응을 얻어낼 수 있는 게 사실입니다. 실제의 교육적 효과가 어쨌든, 근대적인 공간인 학교를 유지하는 데 어느 정도 유용성을 보여주기 때문에 전근대적인 체벌이 계속 존속되는 것입니다. 여기에는 대한민국의 압축적 근대화와 같은 요인도 분명히 한 몫 했겠지요.

 


*

  교육기본법 제2조를 보면 교육의 목적이 민주시민을 양성하고 홍익인간을 실현토록 하는 것이라고 나와 있습니다. 그러나 근대적인 교육의 도입은, 이런 민주시민의 문제나 인품 도야가 직접적인 목적이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영국에서 처음으로 근대적인 형태의 공교육을 도입한 것(영국의 경우 1870년대)은 노동자들이 너무 무식하여 일을 시키기 어려웠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1850년대를 전후해서 도시 외부로부터 노동력 제공이 감소하자 자본가들이 노동자들의 건강이나 생활을 어느 정도는 챙겨주기 시작했지요. “자 이 기계를 돌려서 일해라.”라고 말하면서 설명서를 건네줘도, 상당수의 노동자가 문맹이었기 때문에 기계를 돌리거나 명령을 서류로 받거나 하는 업무를 제대로 처리할 수 없었던 겁니다. 그리고 돈이나 상품의 수량계산을 제대로 수행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덧셈뺄셈 계산도 학교에서 가르쳐야 했습니다. 무엇보다 시간엄수나 규율에 순종하는 습관이 몸에 밴 노동력이 필요했습니다. 후발자본주의 국가의 경우, 선발자본주의 국가들을 따라잡기 위해 생산성을 높여야 했고 의무교육은 더욱 강력하게 도입되었습니다. 본질적으로 선택할 권리여야 할 “교육권”이, “의무교육”이라는 것 때문에 “권리인 동시에 의무”라는 모호한 위치를 가지게 된 것도 사실 이런 근대적 교육의 기원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습니다.

(* 옮겨오면서 별첨 : 아, 다른 한 이면에는 의무교육이 아동에 대한 부모-보호자의 방임을 방지하기 위한 것이라는 맥락도 있음.)

 


  아까 저는 근대가 전근대적 요소를 차용한다고 말했습니다. 대부분의 경우, 학교에서 정말 직접적이고 잔인한 인권침해를 일으키는 것은 전근대적 요소입니다. 두발규제, 용의복장검사, 체벌 등등... 그리고 그것들은 즉각적으로 인권감수성을 자극하는 성격을 띠고 있기도 합니다. 신체의 자유와 같은 근본적인 부분을 침해하기 때문이지요. 물론 인권감수성이란 게 사람마다 천차만별인지라 어떤 사람들은 사랑의 매로 인식하는 것을 어떤 사람들은 폭력으로 인식하기도 합니다.(바로 이런 차이 때문에 체벌을 금지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폭력으로 느끼는 소수를 묵살하고 무시해도 좋을까요?) 그러나 인권감수성의 차원에서 지극히 근대적인 억압을 인식하는 것은 전근대적인 억압의 경우보다 좀 더 어렵습니다. 근대적인 억압은 주로 경쟁체제에 학생들이 ‘자발적으로’ 편입하게 만듦으로써 교묘한 방식으로 작동하는데, 이는 학생들 자신의 욕망을 컨트롤하기 때문에 그것이 인권침해라고 느끼기 어렵게 만듭니다.

  전근대적 억압이 비록 가시적으로 인권을 침해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근본적으로 그 전근대적 억압을 차용하는 근대적 교육을 소홀히 여겨서는 안 됩니다. 그러므로 저는 근대 교육과 결합한 전근대적 억압을 인권감수성 차원에서 인식하고, 그 인식을 결국 의식적인 차원에서 근대 교육의 문제점, 예를 들어 입시경쟁체제의 문제점과 같은 것을 비판하는 데까지 발전시켜야 한다고 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불만을 인권의 원칙과 체계적인 비판으로까지 승화시킬 깊은 고민이 필요합니다.

 

 

 

 

 

 

 

 

 

무주푸른꿈고에서 청소년인권강의한다고 2006년인가에 끄적인 글인데... (인권운동사랑방 개굴 쫓아갔음)

실제로 가보니 이딴 딱딱한 내용 이야기할 분위기가 아니라 그냥 내 경험 위주로 갔다지요-_- 결국 이 글은 그냥 묻혔다~

Posted by 공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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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어가는꿈2009. 4. 15. 15:59


추적60분 인터뷰 요청 때문에, 거기 참가할 학생 분들에게 드리기 위해 모은 자료.

학부모단체 성명서 안에 법안 자료 포함되어 있으니 그걸 먼저 보시길...

그리고 전교조대안이라고 쓴 파일은 2006년에 전교조에서 교원평가제 정부안 반대하면서 대안으로 내놓은 자료. 현재 입장과는 좀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청소년인권활동가네트워크에서 2006년에 발표한 교원평가제 관련해서 청소년-학생인권 관점에서 접근한 성명서와 토론문이 핵심입니다만 ㅎㅎ 학부모단체 성명서도 내용이 그리 나쁘진 않네요.






일단 제 개인 의견을 첨부하자면...

학생과 학부모의 교원평가제가 필요할 수는 있습니다. 교육 민주화와 교육과정에 학생참여라는 맥락에서.
(그런데 교육과정에 학생참여나 교육감선거에 학생의견 반영 등의 장치 없이 교원평가제 하나만 달랑 얘기하는 걸 보면, 그리고 법안을 보면, 정부-한나라당 안은 전혀 그런 맥락은 아님.)
그리고 주로 교장과 교감들의 권력을 강화시키는 근무평정을 없애면서 학생들 중심의 교원평가제가 자리잡는 건 바람직한 일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현재 한나라당에서 낸 안을 보면 교장과 교감, 동료 교사들도 평가 주체로 되어 있고... 아무래도 근무평정제도와 엮이면 교감과 교장, 교육청에 의한 교사 통제가 강화되는 방식으로 흐를 개연성이 높습니다.
그 리고 교원평가제가 교사들과 학생들 사이의 실질적인 소통을 보장하기보다는 점수화되어 있는 형태로 되어 있습니다. 수업만족도 0.9점. 학생존중 2.4점. 이런 식으로 된 평가서를 받게 되면 그게 실질적으로 교육에 학생들 의견을 반영하는 게 될 수 있을까요? 거기다가 학생서열화 학교서열화에 이어 교사서열화까지 시키는 셈인데요 =_=;
현재 인사(승진 등)에는 반영 안 할 거라고 떠들고 있지만 실제로는 연수 등이 필요하면 강제할 수 있게 되어 있으니, 인사 반영이 어느 정도 되는 셈이고, 이후 인사 반영을 할 거라는 이야기도 나오고 있습니다.

학생들이 워낙 뷁스런 교사들한테 많이 당했기 때문에 저런 교사는 인사 반영해서 불이익을 주고 해야 한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실제적으로 학생인권을 많이 침해하는 교사들은 1년에 한 번 뭐 이렇게 하는 교원평가제가 아니라 인권침해가 고발되는 즉시 조사해서 징계하는 게 맞습니다. 교원평가제 할 때까진 그냥 맞고 성폭력 당하고 지내란 겁니까? -_-;
교원평가제는 좀 다른 맥락에서 생각해야 할 것 같습니다. '부적격 교사' 어쩌구 하는 데 휩쓸리지 말구요.
학생들이 교육에 참여할 권리, 민주적인 교육을 만들 권리, 의견을 반영할 권리... 이런 문제로 접근해야 하지 않을까요? 교사들한테 점수 매기는 건 학생들 입장에서 쾌감일지도 모르지만 (ㅎㄷㄷ) 그리 실익이 될 것 같진 않습니다.

Posted by 공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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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행인

    좋은 정보 감사드립니다^^

    2009.05.25 23:22 [ ADDR : EDIT/ DEL : REPLY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