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인권'에 해당되는 글 239건

  1. 2011.08.29 잘못된 교육을 거부하고, 잘못된 사회를 바꾸는 93/고3들의 대학입시거부선언과 행동을 제안합니다.
  2. 2011.08.12 학생회는 학생 '조합'! 학생들에게 민주적인 권력을! (3)
  3. 2011.08.10 학생인권 종결자 - 『인권, 교문을 넘다 - 학생인권 쟁점탐구』
  4. 2011.08.10 청소년인권, ‘먼저’를 정하는 기준
  5. 2011.07.25 경기도 학생인권 캠프 "학생인권, 밀어서 잠금해제!"(2011/8/2~8/4)
  6. 2011.07.18 학생인권이 던지는 질문과 교사의 역할 (2)
  7. 2011.06.23 『인권, 교문을 넘다』 (인권오름 서평) 어느새 나도 꼰대랍니다
  8. 2011.06.18 학생인권조례, 보호와 인권이 대립되지 않는 교육을 꿈꾸다
  9. 2011.06.15 서울학생인권조례 주민발의, 보정기간을 앞두고
  10. 2011.06.09 『인권, 교문을 넘다 : 학생인권 쟁점탐구』
  11. 2011.06.02 학생인권조례는 착한 어른들의 선물이 아니다 (1)
  12. 2011.06.01 6/4 부천 학생인권 집회 "학생인권조례를 아십니까?"
  13. 2011.05.23 [참세상] “학생인권조례 주민발의, 전교조도 안 될 거라 했었다”
  14. 2011.05.18 “사람이 되어라”와 “학생도 사람이다”
  15. 2011.04.28 ‘체벌의 교육적 효과’라는 말의 모순과 본질 (10)
  16. 2011.04.12 서울 학생인권조례 주민발의 기자회견 때 주옥같은 발언들
  17. 2011.03.30 학생인권조례제정운동서울본부 두 번째 소식지 (2011/03/30)
  18. 2011.03.25 [출범선언] 시민의 힘으로 학생인권조례제정을 향한 힘찬 항해를 시작한다 (1)
  19. 2011.03.24 [인권오름] “제대로 된 교육과 학생인권을 찾습니다” 청소년 집회 “실종신고”에서 본 청소년운동의 현재
  20. 2011.03.14 학생인권, 여전히 열악합니다. 서울 학생인권조례, 여러분들의 작은 노력을 보태주세요 (16)
걸어가는꿈2011. 8. 29. 04:25



잘못된 교육을 거부하고, 잘못된 사회를 바꾸는

93/고3들의 대학입시 거부선언과 행동을 제안합니다.


더 좋은 성적, 더 좋은 학교, 더 좋은 직장, 더 안정적인 삶, 더 행복한 삶을 얻기 위해 달리고 달리는 경쟁 속에서 허덕이며 언제 벗어날지 모를 쳇바퀴를 돌리고 있는 우리들. 그 안에 우리의 행복, 다양성, 상상력 그리고 오늘은 존재하지 않는다. 교육은 자신이 배우고 싶은 것을 배우는 것이 아니라 오직 진학과 취업을 위한 것으로 전락한 지 오래고, 입시정보를 쑤셔 넣는 와중에 '비효율적인' 토론과 소통은 존재하지 않는다. 의지와 열정이 아무리 크다 한들, 능력이 아무리 뛰어나다 한들, 인서울․SKY 이른바 ‘명문대’ 간판이 없으면 기회 한 번 제대로 주어지지 않는다. 그렇게 거대한 학벌의 벽에 좌절하고 자신의 무능력과 의지부족을 탓하며 또 다시 무한경쟁의 쳇바퀴를 돌린다.


우리는 너무나 불안하고 불행하다. 88만원 비정규직 쓰나미와 학벌의 벽이 가로막은 미래에 어른들이 약속한 더 나은 삶과 행복이 존재하는지, 우리는 너무나 불안하다. 그래도 더 좋은 미래를 위해서는 오늘의 행복 ‘따위’는 포기해야한다는 압박에 쫓겨 살아갈 수밖에 없는 현실. 오늘도 쳇바퀴를 돌린다. “내가 무엇을 위해 이렇게 살아야 하는 거지?” 질문할 시간도 이유도 없이 우리는 달린다. 모두가 달리는데 나만 혼자 멈춰서면 나의 삶도 멈춰버릴 것만 같은 두려움에 쫓겨….


하지만 우리는 용기를 내본다. 입시에 학벌에 쫓겨 교육의 목표도 인간관계의 기준도 점수가 되어버린, 무한경쟁의 쳇바퀴에서 벗어나 대학입시를 거부한다. 우리는 어른들과 이 사회기득권층이 말하는 ‘미래 성공’의 환상을 버리고 불행하고 불안한 우리의 오늘과 내일을 바꾸고자 한다. 그리고 이 글을 읽고 있는 전국의 93/고3들이 함께 용기를 내주길 감히 제안해본다. 이 사회가 이 교육이 그리고 우리들이 더 이상 경쟁과 학벌에 미쳐버린 괴물이 되기 전에 이 쳇바퀴를 벗어던지자!


이 견고한 학벌사회에서 대학을 거부한다는 것은 말도 안 되는 무모한 행동일 수도 있다. 가방끈 짧은 우리들을 향할 차별적 시선과 편견을 감당해야 할 수도 있다. 그럼에도 우리는 용기 내어 이 불편한 길을 걸어가려 한다. 이 길이 어른과 사회기득권층이 말하는 거짓된 장밋빛 성공스토리보다, 우리의 오늘과 내일을, 나아가 우리가 함께 살아가는 이 사회와 교육을 좀 더 행복하고 의미 있는 것으로 만들 수 있으리라 믿기 때문이다.


입시와 취직을 위한 교육이 아니라 학생을 위한 교육, 돈이 없어도, '명문'학교가 아니어도 누구나 자유롭게 배우고 싶은 것을 배울 수 있는 교육, 주입과 강요가 아닌 토론과 소통이 꽃피는 교육, 학력/학벌로 사람을 단정 짓고 차별하지 않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우리는 목소리를 낼 것이다. 잘못된 교육과 사회에 침묵하지 않는 우리의 작은 용기와 실천은 우리 사회를 지금보다는 조금 더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곳으로 바꿔낼 혁명이다. 주저하지 말자, 침묵하지 말자, 잘못된 교육을 거부하고, 잘못된 사회를 바꿔보자!


2011년8월27일

제안자 : 공기, 다영, 둠코, 따이루, 쩡열



<이렇게 함께해보아요>


1. 9월3일(토) 낮2시30분부터 서울서대문에 위치한 민주노총본부회의실에서 '대학입시거부 런칭기념회의'가 열립니다. 관심 있는 누구나 자유롭게 참여 가능합니다. 함께 무엇을 외치며, 어떻게 잘못된 교육과 사회에 저항할 것인가 수다도 떨고 계획도 세우고 요구안도 만들어봅시담!


2. 93,고3들의 대학입시거부선언과 행동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9월3일 런칭회의후에 공지될 예정입니다! 카페와 트위터를 확인해주세요



카페: cafe.daum.net/wrongedu1 / 트위터: @wrongedu / 문의: 010-7270-1900(따이루)


Posted by 공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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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어가는꿈2011. 8. 12. 18:38


학생회는 학생 '조합'! 학생들에게 민주적인 권력을!




학교에 민주주의가 있긴 한가?

  모든 사람은 자기결정권을 가집니다. 자기결정권은 자기 일을 자기가 스스로 결정할 권리입니다. 예를 들어서, 지금 제가 오늘 점심밥으로 무엇을 먹을지 결정하는 것은 제 권리입니다. 물론, 사람은 사회적 동물이기 때문에 '완전히 혼자서' 하는 결정이라는 건 별로 없기 마련입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내 문제를 결정할 기본 권리는 나에게 있는 것입니다.

  그럼, 이게 저 개인의 일이 아니라 저와 여러 사람들이 같이 관련되어 있는 공동의 문제라면 어떨까요? 그런 경우에 자기결정권은 '참여권'이 됩니다. 자기 의견을 이야기하고, 반영하는 등, 여러 의사 결정 과정에 참여할 권리인 거죠. 일종의 집단적인 자기결정권이라고 부를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 권리를 소수의 사람들만 가지는 게 아니라 누구나 가질 수 있다는 것, 그것이 바로 '민주주의'의 원리입니다.

  민주주의라고 하면 흔히 투표를 떠올리게 되고, 투표권이 있는 어른들의 문제로 생각하기 쉽습니다. 하지만 투표권이 없다고 해서 참여할 권리 자체가 없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다른 다양한 방법으로 의견을 표현하고 참여할 권리가 있으니까요. UN아동권리협약 제12조에서는 이에 관해 "자신의 의견을 형성할 능력을 갖춘 아동에게는 본인에게 영향을 미치는 모든 문제에 대해 자유롭게 의견을 표현할 권리를 보장하고, 아동의 나이와 성숙도에 따라 그 의견에 적절한 비중을 부여해야 한다."라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또한 민주주의는 단지 국가 차원에만 적용되는 게 아닙니다. 지역사회에서, 학교에서, 일터에서도 민주주의가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왜 민주주의를 가르친다는 대한민국의 학교에는 민주주의가 눈 씻고 찾아봐도 없어 보일까요? 학교에서는 학생들의 삶에 영향을 미칠 여러 결정들을 하지만, 그런 결정에 학생들이 참여할 길은 없어 보입니다. 심지어 학생들의 자유로운 의견 표현을 검열하는 일도 일어납니다. 재작년 경기도 성남의 한 고등학교에서는 학생회장 후보 한 명이 학생인권조례를 지지하는 연설문을 썼다고 학교가 그 내용을 삭제하라고 압력을 주었지요. 작년, 서울의 한 중학교에서는 학생회가 학교의 체벌실태를 고발한 신문을 발행하려 하는 것을 교장이 막았습니다. 이런 일이 몇몇 특이한 경우가 아니라 당연한 일상입니다.


특히 학생회, 학생회, 학생회!

  특히 학생회는 학생들의 참여권에서 중요한 문제입니다. 그거 아시나요? 학생회를 가리키는 영어 단어는 "Student Union" 또는 "Student goverment"입니다. 학생 조합, 또는 학생 정부인 거죠. 조합은 그 조합 구성원들의 권익을 위한 단체입니다. 정부도 비슷합니다. 한국 정부가 대외적․국제적으로 하는 일이 바로 한국 사람들의 권익, 자국의 이익을 증진시키기 위한 활동이지 않습니까? 즉 학생회는 원래 학생들의 권익과 이익을 위해 활동하는 학생들의 조직인 것입니다.

  아니, 그런데 학생들의 권익을 위한 학생들의 조직에서, 왜 그 조직의 대표나 간부를 뽑을 때 학생들이 아닌 교사들의 추천이 필요하다고 하는 걸까요? 왜 성적 같은 기준이 출마 자격에 있는 걸까요? 학교 눈으로 보기에 '품행이 단정'한 학생이어야 한다는 조건은 왜 붙는 거죠? 이건 마치 서울시장 선거에 출마하는데 대통령 추천이 필요하다거나 출마 자격에 재산이 얼마 이상이어야 한다거나, 아님 인천시장이 보기에 모범적인 사람이어야 한다는 거랑 비슷한 소리입니다. 기업의 노동조합에서 노동조합을 대표할 위원장과 대의원 등 간부들을 뽑는데 출마하는데 사장님의 추천이 필요하다면 뭥미? 할걸요.

  더군다나 학생회는 제대로 된 권한도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화장실에 휴지 놓는 것조차 교사들의 눈치를 봐야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회의할 때 안건을 정하는 일이나, 학생회 자체 예산을 쓰는 일조차 교사들의 감독 속에서 하게 되죠. 법적인 문제도 걸려 있습니다. 초중등교육법에서는 학생회가 학교운영위원회에 참여하는 것을 막고 있고, 교육부의 지침에서는 학생회가 학교 운영에 관한 일에 관여할 수 없도록 규정하고 있거든요.

  사정이 이렇다보니 학생회는 학생들에게도 '우리들의 권익을 위한 우리들의 기구/조합'이 아니라 몇몇 학생들의 스펙을 위한 조직 정도로 생각되고 있습니다. 심할 때는 학교 편에 서서 학생들을 억누르는 모범생들의 조직으로도 여겨집니다. 서글픈 일입니다. 한국의 학생회는 과거 학생들이 요구하고 싸워서 그 존재와 자치권을 인정받았던 조직이기 때문에 더욱 그렇습니다. 예컨대 우리가 당연하게 생각하는 학생회장을 학생들이 직접 뽑는 '학생회 직선제'도, 1988년 중고등학생들이 "대통령부터 반장까지 직선제로!"라는 구호를 내걸고 여러 학교에서 싸운 끝에 쟁취해낸 것이었는데 말입니다.(그 전에는 반장들끼리 모여서 간접선거를 하거나 심한 경우 교장이 지명했다는군요.)


'들러리' 말고 진짜 민주주의를!

  꼭 학생회가 아니더라도 모든 학생들은 학교운영에 실질적으로 참여할 수 있어야 합니다. 생활규정은 이렇게 바뀌어야 한다, 이 수업은 이런 식으로 하는게 좋다, 등교시간이 너무 이른 것 아니냐, 수학여행은 어느 장소로 언제 가는 게 좋을 것 같다, 등등 학생들은 자신이 다니는 학교의 운영에 참여하여 의견을 내고, 결정을 할 권리가 있습니다. 학교의 예산 등을 심의하는 학교운영위원회에 학생들은 동등한 권한을 갖고 참여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일본 등 몇 나라들을 제외하면 선진국들은 대부분 학생들이 학교운영위원회에 참여합니다. 독일 등의 유럽 나라들에서는 초등학교 때부터 학생들이 학교운영에 참여하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합니다. 거기에서는 초중고의 차이는 학생들의 참여 비율 차이일 뿐입니다.

  지금의 학생들의 모습을 보고 학생들에게 학교운영 참여할 권한을 줘봤자 학생들이 별로 관심도 없고 참여도 하지 않으려고 한다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다수의 학생들은 "얘기해봤자 반영도 되지 않는다."라고 생각하고 지레 포기하고 무관심한 경우가 많습니다. 자기가 이야기하는 게 학교 생활규정에, 등교시간에, 급식에, 학교 시설에 실제로 영향을 미친다면 관심을 가지지 않을 사람이 드물지 않겠습니까? 문제는 지금까지 참여시킨다, 목소리를 듣는다, 하면서 '들러리', '장식품' 취급만 한 학교와 우리 사회에 있는 거지요. 학생들에게 진짜 권력, 민주주의를 보장해야 참여할 맛도 나지 않을까요?

  또한 학생들의 참여를 보장하기 위해서는 단순히 법을 개정하는 것 이상으로 학생들에게 실질적으로 참여하고 토론할 '시간'을 보장하고, 회의안건이나 예산안 등을 학생들이 알아보기 쉽게 자료를 만들고 공개하는 등의 일들이 필요합니다. 학생들 사이에서의, 학생회 운영 안에서의 민주주의가 이루어져야 하는 건 당연하구요. 이것저것 과제가 많습니다. 자, 그럼 어떻게 하면 학생들이 학교 안에서 진짜 '권력'을 가지고 학교 운영에 참여하도록 만들 수 있을까요? 그 '어떻게'를, 같이 이야기해보고 실천으로 만들어 갔으면 합니다.
Posted by 공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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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안녕하세요...

    혹시 이 글을 오마이뉴스 e노트에 소개를 해도 좋을지 문의를 드립니다.

    저는 e노트는 링크라고 생각하는데 많은 분들이 외부 사람들에게 알려지는 것을 좋아하지 않으셔서 문의를 드립니다.

    오마이뉴스의 e노트에서는 깡통이라는 이름을 사용합니다.

    2011.08.16 05:34 [ ADDR : EDIT/ DEL : REPLY ]
  2. 이광흠

    감사합니다^^

    조금 전 e노트에 올렸습니다.

    2011.08.17 12:01 [ ADDR : EDIT/ DEL : REPLY ]

걸어가는꿈2011. 8. 10. 18:21


학생인권 종결자
『인권, 교문을 넘다 - 학생인권 쟁점탐구』



"두발자유는 머리카락의 자유인가?"

  두발규제에 맞서서 두발자유를 외치는 학생들이 아마 한 번씩은 들어봤을 법한 말. "머리카락 같은 사소한 거에 신경 쓸 시간에 공부나 해!" 그런 개념 없는 소리에 맞서기 위해 두발자유 시위 때 이런 표어도 나왔더랬다. "잘리는 건 단순히 머리카락이 아니라 인권입니다." 하지만 좀 더 발칙하게, 이렇게 질문으로 답해보면 어떨까? "그게 그렇게 사소한 거면 왜 그렇게 열심히 규제하고 단속하세요?"

  새로 나온 학생인권 책, 『인권, 교문을 넘다 - 학생인권 쟁점탐구』(한겨레에듀. 인권교육센터 들 기획. 공현, 박민진, 배경내, 오혜원, 정주연, 조영선 함께 씀.)는 바로 그런 발칙한 질문과 그 질문에 답을 찾는 과정의 결실이다. 왜 학교에서는 그렇게 학생인권을 규제하고 침해하는 데 열을 올릴까? 학생들이 이런 인권을 보장받게 되면 대체 어떤 일이 일어날까? 이 권리에는 어떤 의미가 있는 걸까? 이런 질문들을 던져나가면서 학생인권의 여러 쟁점을 탐구하는 것이 이 책의 중심 내용을 이루고 있다.

  책의 본론 격인 2부, 그 중에서도 첫 장의 소제목, "두발자유는 머리카락의 자유인가?"는 그런 책의 성격을 잘 보여주고 있다. 그렇다. 두발규제는 단순히 머리카락을 규제하겠다는 것이 아니요, 두발자유는 단순히 머리카락의 자유가 아니다. 독재자 박정희 대통령은 왜 장발단속을 했는지 보수적 억압적 정부가 들어선 이슬람권에서는 왜 사람들에 대한 두발복장규제가 강화되는지, 1987년 노동자 투쟁 때 현대중공업 노동자들의 첫 번째 요구사항은 왜 임금 인상이 아닌 두발자유였는지, 풍부한 사회적 비유와 대조를 통해 두발자유 쟁점의 의미를 탐구한다. 이 책은 두발자유의 당위성을 주장하기보다는 두발규제와 두발자유의 의미를 비교하고 탐구하는 형식을 취한다.

  이와 같은 방식으로 『인권, 교문을 넘다 - 학생인권쟁점탐구』 2부는 두발규제, 체벌, 강제야자, 교복․복장, 휴대전화, 양심의 자유, 집회의 자유, 연애, 총 8가지 학생인권의 뜨끈뜨끈한 주제들을 꺼내서 요리한다. 그 목차는 다음과 같다.

① 두발 자유는 머리카락의 자유인가? | 한낱 머리카락에 학교가 그토록 목매는 이유
② 맞을 짓 한 자? 맞아도 되는 자! | 체벌과 폭력 사이
③ 우아한 거짓말과 구차한 양심 | 양심의 자유, 사뿐히 지르밟고 가시더이다!
④ 접속 금지, 발신 금지 | 휴대전화와 함께 추방되는 것들
⑤ 교복은 메시지다 | 복장 단속, 무엇을 단속하는가?
⑥ 도둑맞은 시간과 비어 있는 시간 | 강제 보충과 야자는 누구를 울리나?
⑦ 중립이라는 감옥, 정치적 미성숙의 감옥 | 집회의 자유는 학생의 삶을 어떻게 바꿀까?
⑧ 사랑은 아무나 하나 | '연애질', 금지된 것을 꿈꾸다


"화장실"에서부터 질문은 시작된다

  서론 격인 1부도 가볍게 읽어 넘기기에는 좀 만만치 않다. 1부는 화장실 이야기부터 시작한다. 교직원 화장실을 몰래 쓰는 재미로 학교 다니는 학생 이야기다. 그냥 시설이 좋아서 몰래 훔쳐 쓰는 게 아니다. 쓰고 나오면서 꼭 이런 것들을 붙여놓는다. "우리 학교 교사 수는 50명인데 화장실은 3개! 학생 수는 1000명이 넘는데 화장실은 몇 개일까요?" 같은 질문에서부터, "3층 남자 화장실 변기가 고장난 지 2개월째인데 수리도 안 해주고 있다!" 같은 고발까지.

  『인권, 교문을 넘다』는 어떤 화장실을 쓰느냐, "똥 쌀 권리"를 얼마나 어떻게 보장받고 있느냐, 거기에서부터 인간의 존엄성의 한 모습을 살펴볼 수 있다고 이야기한다. 그렇다. 화장실 뿐 아니라 중앙현관 학생 출입금지 같은 사소한 곳, 교무실 청소를 왜 학생들이 하느냐 하는 작은 불합리에서부터 학생들의 자기 처지에 대한 인식은 시작된다.

  이처럼 화장실로 시작한 1부에서는 동방신기 팬클럽 이야기, 무상급식과 학생인권조례 사이의 간극에 대한 이야기, 개학반대 시위 이야기 등을 거쳐서 학생인권의 봉인을 풀어나갈 질문들을 던진다. 그 질문들을 스스로 자문하다보면 어느새 학생인권에 대해 자기가 가지고 있던 '프레임'(생각 틀)들이 변화해가는 것을 깨달을 것이다.



학생인권이 넘어설 것들



  마지막 3부 "학생인권 논리탐구"에서는 학생인권을 이야기할 때 흔히 맞닥뜨리게 되는 여러 이야기들에 관한 논리들을 모았다. 부모 문제(친권), 미성숙, 법치주의, 보호주의, 교권 등등. 그리고 마지막에는 학교 안의 소수자와 차별 문제까지. 학생인권을 이야기할 때 우리가 넘어서야만 하는 것들, 좀 더 근본적인 관점에서 다시 이야기해야 하는 것들을 큰 틀에서 짚어주고 있다.

  긴 말 필요 없이, 다음과 같은 구절들을 직접 읽어 보자.

"미성숙은 말 그대로 성숙하지 못하다는 뜻이다. 그런데 사람은 달걀 프라이가 아니니 어디까지가 반숙인지 완숙인지 구분하기란 불가능하다. 겉으로 완벽해 보이는 사람도 어딘가 미숙한 구석이 있게 마련이고, 오히려 정신이 성숙하지 못한 사람들이 겉으로는 센 척, 성숙한 척하는 일도 많다. … 중요한 것은 우리 사회에서 어떤 사람을 성숙하다고 여기고 어떤 사람을 철없는 사람으로 여기느냐, 곧 성숙을 판가름하는 기준이 무엇이냐를 살펴보는 일이다."(pp.243-244.)

"보호의 반대말은 방임이 아니라 '자유'가 아닐까? 청소년이 자기 힘을 기르고 자기 삶의 주인이 될 수 있도록 하는자유 말이다. 그런데 자유는 단순히 '간섭이 없는 상태'가 아니라 '지원을 요구할 수 있는 상태'를 말한다. … 보호주의를 넘어서자는 말은 청소년에게 홀로서기를 강요하는 것이 아니다. 청소년들을 울타리 안에 꽁꽁 가둬 두는 보호주의에 묶여 있는 한, 청소년에게 정말 필요한 사회적 지원이 뭔지를 보지 못하게 된다는 이야기다."(p.260)

"교육이 전투가 될 때 교사의 전투력을 떨어뜨리는 듯 보이는 학생인권이 환영받을 수 있을까? 학생의 인권보다 더 중요한 것은 교사의 통제력이라는 생각이 힘을 얻는 것 아닌가?"(p.264)

"학생인권을 주장하는 것은 학부모가 가진 것을 빼앗아 오자는 것도 아니고, 학부모를 학생의 삶에서 밀어내고 간섭하지 말라고 외치는 것도 아니다. 그것은 학부모의 위치를 제자리로 되돌려 놓아야 한다는 이야기이고, 학생과 학부모가 같이 살아가기 위해 어떤 관계를 맺어야 하는지에 대한 문제제기이다. … 학부모가 주인공으로 나설 무대는 자신의 삶이어야 한다. 학생인권은 이렇게 자녀의 삶에만 붙잡힌 채 자기 무대를 잃어버린 학부모도 자유를 되찾아야 한다는 이야기를 함께 건네고 있다."(p.293)

"학교에서 인정하는 능력은 공정한 경주와 노력의 결실로 이야기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은 경우가 대부분이다. 승패가 이미 예정되어 있는 경주를 공정하다고 말하고, 뒤처지거나 패배한 이들이 자기 탓을 하도록 만드는 것이야말로 폭력이고 숨겨진 차별이 아닐까? 학교에서 인정하지 않는 능력, 돈이 되지 않는 능력을 가진 이들을 무능력하다고 얘기해도 될까?"(p.302)



학생인권 종결자


  현재 시점에서, 『인권, 교문을 넘다』는 "학생인권 종결자"라는 칭호가 아깝지 않을 만한 책이다. 적어도 지금까지 학생인권에 관해 논란이 되었던 이야기들을 모두 그러모아서 이토록 넓고 깊게 파헤친 책은 이제껏 없었다. 물론 앞으로 학생인권이라는 사회의제가 더 많은 내용, 더 풍부한 이야깃거리를 가지게 되면 이 책도 부족한 부분을 많이 드러내게 될 것이다. 하지만 그때까지는, 이 책이 학생인권을 이야기하는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읽어야 할 바이블(Bible)이자 교과서 역할을 해줄 것이라고 기대한다.

  나 역시 책의 공저자 중 한 명으로서 더욱 그런 기대를 가지고 있다. 이 책의 내용을 뽑아내기 위해 워크샵을 하고 집필을 하는 데는 대략 1년 정도의 시간이 걸렸지만, 사실 이 책에 담긴 내용은 6년, 아니 10여년의 세월 동안 학생인권을 이야기하고 발로 뛰어온 사람들이 궁리해내고 토론하면서 만들어낸 것들이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교사들이나 학생들, 학부모들이 수능 문제집을 풀 시간, 취업 준비를 할 시간, 입시전형을 알아볼 시간 중 아주 조금만 할애해서 이 책을 읽는다면 학생인권 현실은 좀 더 나아질 수 있을 것이다. 또 중간중간에 제시하고 있는 더 이야기해봐야 하는 토론거리들을 가지고 같이 토론을 한다면 학생인권에 대한 더 풍부한 논의가 가능해질 것이다. 그 토론 페이지 역시 뻔하게 "두발규제가 필요할까?" 같은 게 아니라 "연애할 자유를 보장하면 여성 청소년들이 차별을 당하거나 피해를 겪는 일이 늘지 않을까?" 같은 섬세한 질문이나 "남을 모욕하는 말을 내뱉는 것은 양심의 자유 차원에서 어떻게 볼까?" 같은 어려운 질문까지, 학생인권에 대해 좀 더 앞으로 나아가고 구체화해야 할 고민지점들을 짚고 있다.

  이 책을 읽어야 하는 사람들은, 당연하게도 학생인권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학생들이다. 책 디자인 자체도 학생들이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일러스트와 만화 등을 풍부하게 실으려고 노력했다. 학부모 분들도 읽으시면 좋다. 그렇지만 집회의 자유 보장이 빨갱이들의 음모라는 식의 무개념하고 얕은 소리가 버젓이 한국 1, 2위를 다툰다는 '정론지'에 실리는 현실에서는, 일단 그런 칼럼을 쓰는 기자들이나 교수들 먼저 이 책을 읽혀야겠다 싶다. 마지막으로 한 가지 제안하자면, 학교를 졸업할 때,(재학 중에는 싸움 거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으니까) 학생들을 '잡는' 교사들에게 이 책을 졸업 선물로 선물해보는 건 어떨까? 이명박 대통령이나 이주호 교육과학기술부 장관, 그밖에 교육감들이나 장학사들, 교장들에게도 읽히고 싶다. 자기가 하는 일이 무슨 의미인지, 학생인권이 뭔지, 개념 탑재가 좀 될 수 있도록.

추신 : 책이 오탈자가 좀 많다. 급하게 편집, 디자인을 하다 보니 생긴 문제 같다. 1쇄가 다 팔리고 2쇄가 나올 땐 가능한 한 고쳐져 있길!
인권, 교문을 넘다인권, 교문을 넘다 - 10점
공현 외 지음, 인권교육센터 ‘들’ 기획/한겨레에듀

http://gonghyun.tistory.com2011-08-10T09:21:400.31010
Posted by 공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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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어가는꿈2011. 8. 10. 18:11



청소년인권, ‘먼저’를 정하는 기준




  학생인권에 대해서 교육에 대해서 신문을 보고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다보면, 이런 질문을 마음속에 품곤 한다. “학교는 누구를 위해, 무엇을 위해 있는 걸까?” 교사들의 교권 때문에 학생인권을 눌러야 한다는 말을 들을 때, 국가경쟁력을 위해, 입시를 위해 성적으로 학생들을 차별하는 교육은 어쩔 수 없다는 말을 들을 때, 뭔가 심각하게 앞뒤가 뒤바뀌어 있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아, 이게 교과서에서 나왔던 바로 그 “가치전도현상”인가 싶으면서.
  학교는 기본적으로 학생들의 교육권을 실현하기 위해 존재하는 제도이다. 여기에서 교육권은 학생들의 인권 중 하나이며, 교육권을 올바른 실현을 위해서는 학생들의 기본적 인권이 보장되어야만 한다. 그리고 교권은 학생들의 교육권을 더 잘 실현하기 위해 필요한 것이다. 그런데 교사의 교권을 위해 학생들의 인권을 침해해야 한다는 것은 수단과 목적의 전도이며, 학교가 학생을 위한 곳이 아니라 교사를 위한 곳이라야 겨우 말이 될 것이다. 입시를 위해, 국가경쟁력을 위해 학생들에게 폭력과 차별을 가해도 된다는 소리는 또 어떠한가.
  이런 이야기를 하면 현실을 무시한 이상론이라는 대답이 돌아올 때가 많다. 그렇다. 청소년인권을 이야기하는 일은 곧잘 그렇게 현실과 동떨어진 이상론, 원칙론 취급을 받곤 한다. “청소년인권도 중요하다. 하지만…”하면서. 그러나 그런 식으로 말하는 사람들은 사실은 청소년인권을 전혀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반대하고 있거나 아니면 적어도 우선순위에서 한참 뒤에 있어서 줘도 되고 안 줘도 되는 ‘옵션’ 정도로 생각하는 것이다.
  원래 ‘인권’은 무엇이 ‘먼저’인지 정하기 위한 개념이다. 왕권보다, 종교적 권한보다, 사람들의 보편적․기본적 권리가 먼저라고 말하기 위해 인권이라는 개념이 나온 것이었다. 다른 무엇보다도 인간으로서의 보편적․기본적 권리를 보장하고 실현하는 것을 사회운영의 목적이자 원칙으로 해야 한다는 것이 인권이라는 말이 가지고 있는 무게다. 때문에 무언가를 인권이라고 인정한다는 데서부터 우리는 이미 그것이 ‘먼저’ 우선시되어야 한다는 것을 인정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청소년인권도 중요하다.”라고 하면서 그것을 한참 나중의 것으로 미뤄두는 사람들은 사실은 청소년인권에 반대하는 것과 다름 없는 것 아닐까?


인권의 기준으로 보기

  청소년인권이 ‘먼저’라는 것은 예를 들면 이런 것이다. 종교계 사립학교에서 예배나 종교의식 참여를 강요하는 것 등에 문제제기를 하면, 종교재단에서는 자신들의 종교활동을 할 권리와 선교할 자유를 이야기하곤 한다. 그리고 자신들이 학교를 설립할 때부터 그 종교를 건학이념으로 삼았기 때문에 학교에서 건학이념에 따라 학생을 가르치는 것은 당연하다고 주장한다. 최근, 전주의 한 개신교계 사립학교에서는 학생인권조례에 대해 의견을 내면서 “종립학교는 종교의 자유가 예외”라는 문구를 넣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학교의 건학이념이 무엇이든, 그 내용을 학생들에게 가르치는 과정에서 인권침해가 일어나선 안 된다. 학교설립자의 건학이념도, 인권 보장을 전제하고 난 다음에야 자유롭게 교육할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학생들의 종교의 자유, 종교를 강요받지 않을 자유가 더 우선시되어야 한다. 물론, 타인에게 강요하지 않는 범위 안에서 종교활동이나 선교를 할 자유 역시 인권으로 보장될 필요가 있다.
  오히려 학교에서는 교사 개개인이나 학생 개개인 차원에서 일어날 수 있는 종교 강요나 부당한 차별을 방지하기 위한 노력도 필요하다. 특히, 학교는 종교계 사립학교가 아닌데도 교사 개개인의 신념이나 성향에 따라서 학생들에게 특정 종교를 반강권하거나 종교를 이유로 학생들을 차별하는 경우가 심심찮게 있다. 만약 교사들이 자신들의 권한(평가권 등)을 남용하여 학생들에게 특정 종교를 믿으면 가산점을 준다거나 하는 식의 행동을 한다면,(실제로 많은 제보가 들어오는 사례 중 하나이다.) 학생들의 인권을 보장하기 위해서라도 그런 교사들의 자의적 권한 행사를 제어하기 위한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 한 발 더 나아가면 이 문제는 결국 학교와 교사가 ‘선’을 학생들에게 일방적으로 전달하고 강요하는 현재 학교 시스템 속에서 일어나는 문제이며, 교사와 학생 사이의 그런 비대칭적 관계를 어떻게 개선할 것인지에 대한 방안 모색도 필요하다.

  또 한 가지 뜨거운 쟁점 중 하나인 청소년들의 성적 자기결정권 문제를 예로 들어보자. 청소년들이 섹스할 권리, 성관계를 맺을 권리, 연애할 권리를 가지고 있다는 주장은 보통 잘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그래서 청소년들의 경우에 “성적 자기결정권”이라는 말은 그저 성폭력으로부터 자유로울 권리 같은 소극적 개념만을 지칭할 때가 많다. 그러나 청소년도 인권으로서 성적 자기결정권을 가지고 있으며, 그 안에 성관계를 맺을 권리, 섹스할 권리, 연애할 권리 등이 포함된다는 것은 분명하다.
  이런 권리를 주장하면 돌아오는 대답은 항상 비슷비슷하다. “아직 어린 것들이”, “공부에 방해된다” 같은 것에서부터 “그러다가 덜컥 임신이라도 되면 책임질 수 없지 않느냐” 하는 짐짓 염려스러운 눈빛까지. 그러나 이를 인권으로 이야기한다는 것은, 청소년들의 성적 자기결정권을 보장하기 위해 뭐가 필요한지를 생각하고 마련해보자는 것이다. 예컨대 “덜컥 임신이라도 되면 책임질 수 없지 않느냐”라고 말하기 전에, 그럼 청소년들이 임신을 하더라도 아이를 낳아서 잘 기를 수 있도록 사회가 함께 책임지고 지원하는 시스템을 갖추자고 제안할 수는 없는가? 즉, 성적 자기결정권을 무슨 줘도 되고 안 줘도 되는 ‘옵션’ 정도로 여기지 말고 보장해야만 하는 ‘목적’이자 ‘원칙’의 자리에 놓고 현실적으로 그걸 어떻게 보장할지 논의해야 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많은 선진국들이 아동수당과 같은 제도를 가지고 있고 또 비혼모나 10대 20대의 젊은 부부가 아이를 낳아 기르는 일, 독립하는 일 등을 지원하는 다양한 제도들을 가지고 있다.
  인권을 ‘먼저’ 생각하기 시작하면 이처럼 많은 것들이 다른 관점으로 보이기 시작한다. 인권의 기준에서 볼 때 미시적인 의식에서부터 거시적인 시스템까지, 바꿔야 할 것들이 많이 보인다. 이런 이야기를 하면 사람들은 흔히 그럼 지금 당장은 어떻게 하자는 말이냐고 묻는다. 너희가 말하는 건 먼 미래에 실현될 법한 것 아니냐고. 맞다. 청소년인권 실현을 위해 주장하는 것들 중에는, 먼 미래일지는 어떨진 몰라도 적어도 바로 당장 내일이나 다음 달에 실현될 일이 아닌 것들도 많다. 그러나 그것을 실현하기 위해 그 방향으로 나아가려는 노력을 시작했는지 아닌지의 차이는 크다. 그러한 인권 보장의 책임을 사회가, 우리 모두가 함께 지고 있다고 생각하는지 안 하는지의 차이는 크다.
  그리고 지금 당장 연애를 하고 있고 성관계를 맺고 있는 청소년들은 어떻게 해야 하냐는 교사들/학부모들의 질문에는 이렇게 대답하고 싶다. 우선 그 청소년들이 문제인 게 아니라 그 청소년들에게 이 권리를 충분히 보장하지 못하고 있는 우리 사회가 문제라는 식으로 문제의식을 바꿔보자고. 그리고 그 다음에, 그 청소년들에게 우리 사회의 현실이 안타깝게도 이렇고 그래서 이런 한계가 있을 수 있다고, 그 청소년들의 편에서 이야기를 해보자고.


너무 오래 지연된 정의는 부정된 정의이다

  “수 년 동안 ‘기다리라!’는 말만 들어왔소. 이 ‘기다리라’는 말은 항상 ‘결코 안된다!’라는 뜻으로 쓰여 왔습니다. ‘지나치게 오래토록 지연된 정의는 부정된 정의다’라는 어느 저명한 법관의 말이 생각납니다.” (마틴 루터 킹)

  최근에 경기도에서 학생인권조례가 제정되고 서울, 강원도 등에서 체벌이 금지되고, 교육과학기술부에서도 제한적으로 체벌을 금지하는 내용으로 시행령을 개정하자, 학교 현장이나 언론 지면상에서 많은 논란이 일고 있다. 그 와중에 내 눈을 끄는 것은 “아직 학교 현장의 준비가 부족하다.”,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등의 이야기이다.
  한국에서 체벌금지를 정부에서 추진하기 시작했던 것은 1996년부터였다. 그리고 1998년에는 교육부에서 체벌을 전면 금지할 것이라고 발표했다가 역시 “준비가 부족하다.”, “시간이 더 필요하다” 등의 이유로 철회하고 제한적으로 체벌을 허용하는 식으로 물러났었다. 또한, 중고등학생복지회라는 단체가 학생인권선언의 형태로 학생인권의 핵심 요구들을 모아서 발표한 것은 1998년, 두발자유를 비롯해서 학생인권이 본격적으로 제기되기 시작한 것이 2000년 전후였다. 짧게는 10년, 길게는 15년의 시간 동안 학교는, 교육계는, 우리 사회는 무엇을 준비해왔는가? 무엇을 준비해왔기에 여전히 준비가 부족하고 시간이 더 필요하다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는 것인가? 체벌금지나 학생인권 보장을 위한 조치들이 ‘시기상조’라거나 ‘준비부족’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은 최소한 거기에 답할 책임이 있다.
  다른 청소년인권 문제 역시 마찬가지이다. 입시경쟁의 문제를 이야기할 때, 청소년의 성적 자기결정권을 이야기할 때, 청소년의 정치적 권리를 이야기할 때, 청소년들이 가장 흔히 듣게 되는 말이 “아직 시기상조”, “기다려야 한다” 등의 말이다. 그러나 변화는 보통 필요한 모든 준비를 사전에 다 끝마치고 나서 시작되지 않는다. 변화가 시작되면서 필요한 준비들이 갖춰져 가는 경우가 더 많다. “지나치게 오래토록 지연된 정의는 부정된 정의이다.” 그런 말은 정말로 기다리라는 말이 아니라, 그냥 참고 침묵하라는 말의 수사적 표현인 경우가 태반이다. 그렇지 않다면, 그런 말은 최소한 그런 것을 실현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사람들이나 안타까운 마음을 담아서 할 수 있는 말일 것이다.
  그 왜, 우리가 학교에서나 사회에서나 흔히 듣는 말이 있지 않은가. “먼저 사람이 돼야지.” 맞는 말이다. 청소년들은 먼저 사람이 되어야 한다. 국가인권위원회에서 제작한 단편 애니메이션, 「사람이 되어라」에서 학생들은 모두 사람이 아닌 원숭이이다. 그 속에서는 이미 사람이 된 선생님이 아직 사람이 되지 못한 학생들을 가르쳐서 대학을 보내서 사람으로 만드는 곳이 학교이다. 그러나 학생들은 대학에 가지 않아도 이미 사람이다. ‘덜 된 인간’, ‘미성숙한 어떤 존재’가 아니라 인권을 보장받고, 인격을 존중받는 사람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그러기 위한 변화가 항상 ‘먼저’여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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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어가는꿈2011. 7. 25. 13:13





학생인권, 밀어서 잠금해제>_<!


경기도 학생인권조례 시행 이후 10개월…

학생인권의 봉인은 풀렸을까요? 학생들은 학생인권조례의 주인공이 되었나요?



경 기도 학생인권조례가 제정되었지만 학교와 교육청에서는 학생인권조례에 대해 학생들에게 제대로 교육하고 홍보하지도 않고 있습니다. 학생인권조례는 학생들의 인권이 개선되는 데 힘이 되고 있지만, 학생들이 학생인권조례에 대해 잘 알고 자기 인권의 주인이 되었다고 하기에는 아직 50% 부족합니다. 학생인권조례를 현실에서 완성해나갈 주인공은 바로 학생입니다.

그래서! 학생인권과 학생인권조례에 관심 있는 경기도 학생 분들을 위해 준비했습니다. ^^ 학생인권의 봉인을 푸는 <밀어서 잠금해제!>

학 생인권조례의 역사와 배경, 내용에 대한 교육, 학생인권의 여러 쟁점에 대한 토론, 인권감수성을 높여주는 인권교육 프로그램 등등… 대부도 바닷가에서 우리 안의 학생인권을 <밀어서 잠금해제> 해보세요! 그리고 돌아가서 우리 학교의, 우리 지역의 학생인권을 <밀어서 잠금해제> 해보아요!



캠프 일시 : 2011년 8월 2일 ~ 4일 (평일이지만 방학 중이니까 괜찮죠? ^^)


캠프 장소 : 경기도 안산시 대부도 새중앙교회 수양원

(마땅한 장소를 알아보다 새중앙교회 수양원을 찾게 되었습니다. 교회수양원이긴 하지만 캠프는 종교활동과는 무관합니다.^^;)


참가 대상 : 경기도 지역 중고등학생 선착순 35명

(초등학교 고학년인 분들도 인권에 대한 관심이 많다면 괜찮아요~!)



신청 방법 :: 파일 첨부된 참가신청서를 다운받아서 작성한 후 asunaro@asunaro.or.kr 이메일로 7월 29일(금)까지 보냅니다.^_^

참가비 :: 4만원 (내기 어려운 분들은 참가신청서에 표시해주시면 지원 또는 면제 가능합니다~)


주최 :: 청소년인권행동 아수나로, 경기도 인권교육 연구회

문의 :: 010-9916-1461 난다 / asunaro@asunaro.or.kr



청소년인권행동 아수나로 / 경기도 인권교육 연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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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어가는꿈2011. 7. 18. 12:36
안양교육지원청에서 혁신학교 부장교사들 대상으로 하는 학생인권 교육에 원고로 낸 거예욤
교사들용으로 쓴 거라 좀 많이 부드럽지요




학생인권이 던지는 질문과 교사의 역할

실내화 이야기

경 기도 학생인권조례가 제정되고 서울, 강원도 등에서는 체벌금지와 '생활지도 혁신'이 한창 이야기되던 중, 올해 2월 교사들이 모이는 자리가 있었다. 교사 집담회 <학생인권조례 시대, 교사 입 열다>였다. 학생인권이 교권을 무너뜨린다고 언론들이 목소리를 높일 때,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 교사들, 그와는 다른 학교 현실을 체험한 교사들이 모여서 이야기한 자리였다.
여러 가지 경험담과 에피소드들이 나왔는데, 그 중에서 기억에 남는 이야기가 하나 있었다. 한 교사가 들려준 자기 학교의 실내화 규정에 대한 이야기였다. 사실 실내화를 신고 밖에 나가는 등의 문제는 두발규제 못지않게 학생들과 교사들이 학교에서 '전쟁'을 벌이는 이유 중 하나가 되어왔다. 그러나 경기도 학생인권조례가 시행되면서 '복장규제'를 바꾸기로 했고, 그 과정에서 그 학교에서는 실내화 단속을 그만두기로 했다. 하지만 실내화 단속을 그만두고 난 이후에 오히려 실내화를 신고 학교 밖을 출입하는 학생들은 더 줄어들었다고 한다.
물론 그냥 단속을 중단하기만 했는데 학생들의 실내화 출입이 줄어든 것은 아니었다. 학생들에게 실내화를 신고 밖에 드나들면 얼마나 위생상 문제가 있고 병균을 옮기게 되고 먼지가 나게 되는지 몇 차례 설명하고 교육한 결과였다. 실내화를 신고 드나들면 안 되는 이유를 제대로 설명하지 않고 단속하고 처벌하는 것보다, 학생들에게 그 이유를 설명하고 소통하는 것이 더 효과적이었던 것이다.


학생인권이 던지는 질문 1 - 무엇이 '문제행동'인가?

생활영역

번호

벌점(지도) 내용

점수

용의 복장

1

두발불량(규정 외 두발상태, 염색, 퍼머)

2

2

용의규정 위반(화장, 각종 액세서리 : 반지, 귀걸이, 피어싱 등)

3

3

복장규정 위반(교복 변형 개조 착용: 치마, 조끼, 바지, 브라우스, 교복 미착용 등)

5

4

교표 및 명찰 미부착

2

5

기타 규정 위반(학생용 가방, 스타킹, 겉옷 등)

1

준법

6

무단 지각(정문 08:30분 이후 등교), 수업지각,

무단 결과, 무단조퇴

2

7

무단결석(1회)/ 장기해외 체류에 의한 결석 제외

4

8

교내․외 행사 및 단체 활동 무단 불참

2

9

청소 및 주번활동에 지속적으로 불참

2

10

월담 행위, 무단외출

4

11

학생 출입 금지 장소 출입

5

12

사행성 오락(카드, 화투, 동전치기 등)

3

13

음란물 반입․탐독․시청(만화, 사진, 잡지, 비디오, 인터넷 등)

3

14

교내에서 불건전한 이성교재(포옹, 입맞춤, 무릎위에 앉기, 남여 같은 화장실 이용하기)

4

15

술, 담배 소지 및 교내 반입/음주 또는 흡연

7

16

오토바이를 타고 등교 하거나 폭주

7

예절 및 공중도덕

17

실내소란(뛰기, 공놀이, 말 타기 놀이, 고성방가, 휘바람 등)

2

18

껌․침뱉기, 오물, 쓰레기 버리기, 낙서 행위

3

19

교사 또는 어른에게 불손한 언행

7

20

실내화 및 실외화 미구분 착용

2

21

급우 또는 선후배에게 욕설, 후배에게 심부름

1

22

교내외 공공기물 훼손 및 파손

7

23

실내 음식물 관련 쓰레기 반입 및 취식보행

1

학습활동

24

수업분위기 저해

(취침, 지시거부, 늦게 입실, 껌, 과자 등 음식물 섭취 등)

3

25

수업시간 전자기기 무단 사용(mp3, 휴대폰 등)

3

기 타

26

상기 내용에 포함되지 않는 사항

2

(서울 모중학교 벌점표)

이 실내화 이야기에는 학생인권이 학교를 향해 던지는 여러 가지 질문들이 녹아 있다. 먼저, 학생인권은 "무엇이 '문제행동'인가?" 학교에 질문을 던진다. 과연 실내화를 신고 학교 밖을 출입하는 건 학생들을 처벌할 만한 '문제행동'인 것일까? 머리카락을 염색하는 것은 '문제행동'인 것일까? 학생들이 교내에서 연애를 하는 것은 '문제행동'인 것일까? 교사의 의견과 다른 자기 의견을 거칠게든 부드럽게든 표출하는 것이 '문제행동'인 걸까? 학교에 대한 비판 글을 인터넷에 올리는 건 '문제행동'인 걸까?
학교에는 분명 지나치게 많은 것들을 '문제행동'으로 규정해온 경향이 있다. 권장하거나 교육해야 할 사안에 대해서도 금지와 처벌로 일관해오는가 하면, 불합리한 규칙에 따라서 왜 '문제행동'인지 알 수 없게 '문제행동'이 되어버리고 만 것도 있었다. 심지어 학생들이 억울함을 호소하거나 부당한 처벌에 대해 항의하는 것 자체를 '문제행동'으로 규정하고, 교사의 지시에 불응한다거나 말대답을 한다는 등의 이유로 벌점을 부과하는 경우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학교가 규정하고 있는 '문제행동'의 기준이 가지고 있는 '문제점'은 많다. 예컨대 학생․청소년들의 금기로 여겨지는 '흡연' 문제만 해도 그렇다. 흡연이 건강에 좋지 않고 또 학교가 금연 구역이라는 면에서 학교내 흡연이 일단 문제행동이라고 치더라도, 과연 흡연은 그렇게 강력한 처벌과 중징계를 받아야만 하는 '문제행동'인 걸까? 많은 학교들이 흡연을 거의 학교내 폭력이나 부정행위 등과 비슷한 수준으로 처벌하고, 흡연이 3~4회 이상 적발되면 바로 퇴학이라는 학교들도 있을 지경이다. 또 다른 예로, 어떤 학교의 규정을 보면 애인과 학교내에서 손을 잡거나 포옹을 하는 행위가 약물 사용이나 도박 등과 비슷한 수위의 '문제행동'으로 처벌을 받도록 되어 있는 것을 찾아볼 수 있다. 앞서 예시한 한 중학교의 벌점기준에서도, '복장규정 위반'이 공동체 구성원들이 같이 책임져야 할 청소 활동 등에 지속적으로 빠지는 것보다도 더 많은 벌점을 받는 것을 알 수 있다. 과연 이런 기준들이 온당하다고 할 수 있을까?
학생인권을 이야기하는 일은, 이처럼 지금까지 학교가 굳게 지켜온 '문제행동'의 기준들에 대해 의문을 가지고 다시 한 번 이야기해보자고 제안하는 일이다. 인권의 기준에 맞게 폭력이나 차별 등의 '문제행동'에는 좀 더 엄격해지고, 대신에 불합리하고 인권침해적인 규칙에 따라 '문제행동'으로 취급되어왔던 것들을 '문제행동'이 아닌 것으로 바꾸자고 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문제행동'을 정하는 기준을 교사들이 일방적으로 정하지 말고 학생들과 함께 논의해가면서 민주적인 절차를 거쳐서 정하자는 것이다. '문제행동'을 단지 '행동'으로만 보지 말고 그 맥락과 이유를 같이 살피자는 것이다. 학생들을 보는 눈을 바꿀 때, '실내화 출입' 문제를 처벌해야 할 문제행동이 아니라 학생들과 소통해야 할 문제로 이해할 때, 학생들이 좀 더 존중받는 교육다운 교육이 가능해지지 않을까?


학생인권이 던지는 질문 2 - 어떻게 교육해야 하는가?

학 생인권이 던지는 두 번째 질문은 "어떻게 교육하고 소통해야 하는가?"이다. 설령 교사나 학교가 교육하고자 하는 내용과 의도가 아무리 좋은 것이더라도, 학생에게 이를 전달하고 교육하는 방식에 따라 그 효과는 달라진다. 실내화를 신고 출입하면 안 된다는 것을 단속과 처벌로 교육하려 하지 않고 이유를 설명하고 소통하고 설득할 때 더 큰 효과가 있는 것처럼 말이다. 예컨대, 학생들에게 폭력은 나쁜 것이라는 것을 가르치고자 친구를 괴롭히거나 때린 학생들을 '엎드려뻗쳐' 시켜놓고 때린다면, 과연 폭력이 나쁜 것이라는 가르침을 잘 전달할 수 있을까? 학생들이 잘못한 것에 대해 반성하길 바라는 마음이더라도, 학생들이 자발적으로 반성하는 마음에서 쓰는 반성문이 아니라 교사가 요구하는 대로 강제적으로 쓰는 반성문은 과연 교육적일까?
학생들이 교사가 하는 말을 수용하기 위해서는 서로 간에 최소한의 존중과 신뢰가 있어야만 한다. 교육학으로 말하면 '라포'라고 해야 할까. 교사가 학생을 대하는 태도에서 학생이 모욕감이나 거부감, 두려움부터 느끼고 들어간다면 이미 그 관계는 교육적인 작용이 일어나기 어려운 관계가 되어버리고 만다. 교사가 불공정한 처벌이나 대우를 한다거나 불합리한 규칙을 힘으로 강요하는 권력자처럼 보인다면 더더욱 그렇다. 인터넷을 검색해보면 넘쳐나는 학생들의 '반성문 작성 노하우' 등을 보면 그런 관계에서 강요된 반성문이 얼마나 비교육적, 반교육적일 수 있는지 확연하게 드러난다. 학교가 학생들의 소지품을 불시 검사할 때 학생들은 음주나 흡연이 나쁜 것이라는 배움을 얻을까 아니면 학교가 자신들을 범죄자 취급하고 존중하지 않는다는 모멸감을 느낄까?
또한 그동안 학교에서 '문제행동'은 단지 그 행동으로만 받아들여질 때가 많았다. 지각을 자주 하는 학생이 있다면 그 학생이 왜 자주 지각을 하는지, 아침잠이 많은지, 집이 먼지, 교통편이 불편한지, 생활습관은 어떻게 되는지 아니면 학교에 오기가 싫은 건지 차근차근 살펴보고 함께 해결하려고 하기보다는 교문에서 지각한 학생들을 떼로 세워놓고 벌을 주는 데 바빴다. 흡연을 하는 이유가 주변 친구들의 영향인지 학교가 흡연을 금지하고 단속하는 것 때문에 생겨난 반발심이나 영웅심리인지 다른 어떤 스트레스가 있거나 가정 환경의 영향이 있는지 살피기보다는 흡연 학생들을 단속하고 처벌하기에 급급했다. 법정에서라면 사람이 아니라 '행위'가 먼저겠지만, 교육에서는 '사람'이 먼저여야 하지 않을까? 학생인권을 이야기하는 것은 '문제행동'을 '행동'으로만 보지 말고 '사람'인 학생의 상황으로 보고 학생과 '대화'를 먼저 하자는 제안이다.
두려움과 배움은 함께 춤출 수 없다는 말이 있다. 대부분의 경우, 일방적인 '명령'보다는 상호적인 '대화'가 더 교육적일 것이다. 단순히 지식을 전달할 때는 꼭 그런 걸 고민하지 않아도 좋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교사가 학생들에게 '생활지도/교육'(최근에 서울시교육청 등은 '생활지도'라는 말이 일방적이고 강압적인 과정을 연상시킨다고 하여 이를 '생활교육'으로 대체하려고 하고 있다.)을 할 때, '인성/사회성 교육'을 할 때는 짚고 넘어가지 않을 수 없는 문제이다.


이만주 교사(경기 흥덕고) 입학식 할 때 아이들을 만났는데 눈에 불신과 분노가 가득하더라. 우리를 어떻게 대할 것인가 의심을 가진 거다. 이런 아이들이 학교와 선생님들을 신뢰하게 만드는 게 가장 큰 과제였다. 그래서 제일 먼저 학생들을 제약하는 요소로 작용하던 생활규정을, 용의복장규정을 빼고 학생들의 인권, 권리를 보장 쪽으로 개정했다. 그리고 고등학교이다 보니 진학의 문제나 학력의 문제가 역시 주요 관심사 될 수밖에 없는데, 우리가 선택한 건 ‘진학문제가 진로문제’라는 거다. 이 아이가 고등학교 과정에서 어떤 자기 비전을 갖고 또 자존감을 지키게 할지 고민했다. 그리고 학교에서 지속적으로 진로교육이나 성취를 높이는 역동적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투입하려고 했다. 그럴 때 아이들은 선생님과 학교가 진짜 우리를 생각해준다는 믿음 갖고 아이들 내면의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다. 그리고 이런 과정 속에서 그들의 인권이 보장되고 자존감도 회복된다.
(참세상, 「학생인권조례 시대, 교사의 소통 방식은?」(2011-02-17))

용인 흥덕고등학교 공동체 생활규범
원칙 학생을 인정하고 존중한다/ 공동체가 해야 할 것과 하지 말아야 할 것을 분명히 한다/ 참여, 소통, 희망, 신뢰의 배움 공동체 가치를 구현한다.

각 구성원의 생활원칙
 교사 : 체벌을 절대 하지 않는다. 욕설, 비속어, 증오발언 등 학생인권을 침해하는 어떤 행위도 하지 않는다. 수업에 최선을 다한다. 한 명의 학생이라도 배움에서 소외되지 않도록 한다 등
 학부모 : 내 아이 중심에서 벗어난다. 학교교육과 가정교육이 연계성을 가지도록 한다 등
 학생: 자신을 가꾸는 데 게을리하지 않는다. 타인을 존중하고 배려한다. 함께 성장한다(기다리기보다는 협조를 청한다/ 도와주기보다는 함께 해결한다)

인권친화적 학생생활지도 방향
 학생생활인권규정 마련의 민주성, 합리성 추구

유의사항
 – 학생인권 존중 및 교사-학생 간 신뢰 구축 : 순간 감정 조절하기/ 교무실 호출 안 하기(벤치, 함께 걷기 등 활용)/ 무릎 꿇리기 안 하기/ 증오발언 안 하기/ 다수 앞에서 모욕주지 않기
 - 지도 전에 먼저 상담하기


물 론 이런 시도가 처음부터 성공적인 것은 아니다. 그동안의 '역사'가 있기 때문이다. 학생인권에 중점을 둔 혁신학교인 용인 흥덕고등학교의 교사 역시 처음에 학생들을 만났을 때 학생들의 불신과 의심, 분노 때문에 어려움이 있었음을 호소하고 있다. 그동안 학생과 교사 사이에 그러한 존중과 신뢰가 부족한 경우가 너무 많았기 때문에, 학교와 교사에 대해 불신을 가지고 있는 학생들은 학교가 변화하려고 하더라도 여전히 학교와 교사를 불신하고 삐딱선을 탈 수도 있다. 그동안 자신들을 때려왔던 교사에게 체벌금지 됐는데 정말 안 때릴까? 하는 불신의 눈초리를 보내며 "때려보세요." 하며 인내심을 시험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그 모습은 학생인권 존중의 결과가 아니라, 그동안 학생들과 교사들 사이에 존중과 신뢰가 형성되지 않아왔던 역사의 결과물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그걸 극복하기 위해 필요한 건 다시 과거로 돌아가는 게 아니라, 이제는 존중과 신뢰가 가능하도록 노력하는 것이다. 학생인권은 학생과 교사 간에 최소한의 존중과 신뢰가 싹트기 위해서 반드시 지켜져야 하는 조건이다.


교육 현실의 틈바구니에서

학 생인권은, 좀 더 정확히 말하면 학생인권조례는, 만병통치약이 아니다. 당연한 이야기다. 우리의 교육 현실은 많은 어려움들이 얽혀 있고, 학생인권조례가 그런 어려움들을 모두 해결해줄 수 있는 답을 가지고 있지는 못하다. 입시제도의 문제, 그밖에 여러 교실환경의 문제(학생인권조례는 교육환경 개선 또한 '인권'이라고 보고 보장하도록 하고 있으나 중앙정부의 의지와 예산 편성에 좌우될 수밖에 없다.), 그리고 "수업 중에 떠들고 자는 애가 수업에 참여하게 할 방법" 같은 것들이 그렇다.
그리고 학생인권조례 이전에도 그런 것에 대한 뾰족한 방법은 없었다. 학교가 학생인권을 노골적으로 무시한다고 해서 입시제도의 문제에 대해 어떤 대처방안을 갖고 있던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입시제도의 문제를 심화시키는 데 기여했을지언정. 또한 수업 중에 자는 학생을 체벌한다고 해서 그 학생이 수업에 흥미를 가지고 참여하게 되는 것은 아니었다. 그저 눈에 보이는 형태로 자거나 떠드는 걸, 눈치를 보면서 덜하게 될 뿐.
학생인권조례에는 분명히 한계가 있다. 그리고 학생인권조례가 해결하지 못하는 문제 중에는 어떤 것은 수업 방식을 바꿈으로써 좀 나아질 수도 있고, 어떤 것은 교육 제도가 바뀌어야 해결될 문제가 있으며, 또 어떤 것은 단순히 교육 제도가 아니라 경제 구조나 불평등의 문제가 개선되어야만 해결의 실마리가 보이는 문제도 있다. 입시제도에서 '승자'가 될 희망이 별로 없는 학생들, 학교를 졸업하더라도 불안정한 일자리와 불안한 미래만이 기다리고 있는 학생들, 가정에서부터 불안정한 삶을 살고 있는 학생들, 학교 수업이 시간 낭비이고 지루하기만 한 학생들의 문제가 대표적이다. 그런 현실들은 학교 현장에서 총체적인 '교육불가능' 상황을 낳고 있다. 이른바 '교실붕괴'는 학생인권 보장이 아니라 그런 식으로 학생들에게 학교 수업이 무의미하고 괴로운 일이 될 때 일어나는 것이다. 학생인권조례는 학생들이 좀 더 학교 생활을 즐거워할 수 있도록, 학교에 좀 더 신뢰를 가질 수 있도록 애쓰고 있다는 점에서 오히려 '교실붕괴'를 막으려고 하는 쪽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 그 모든 문제들이 해결될 리 없다.
그 래서 교사들은 더 많은 것을 요구해야 한다. 그리고 요구할 수 있어야 한다. 학생인권을 놓고서 안 그래도 지금도 힘들다고 볼멘소리를 하는 대신에, 그 힘든 걸 정부가 사회가 같이 해결해줘야 하며 그걸 해결하기 위해 필요한 게 뭔지 내세울 수 있어야 한다. 얼마 전에 교사들을 교육할 기회가 또 있었는데, 그 자리에서 학생인권 이야기를 하기 전에 교사로서 학교 생활에서 필요하다고 느끼는 걸 먼저 적고 이야기해보자고 했더니 "두발자유화금지"가 교사로서 필요하다는 답들이 나왔다. 교사로서 교육하는 데 필요한 게 두발자유화금지라니, 지나치게 소박할 뿐더러 뭔가 핀트가 어긋나 있는 느낌이다. 교사들이 더 많은 자율성과 권한을 가지고 더 많은 것을 요구할 줄 알아야 하지 않을까? 혁신학교도 그래서 만드는 것이 아니었던가? 이런 관점에서 볼 때, 교권과 학생인권은 상보적 관계가 된다. 국제적으로도 교사의 역할이 크다는 것은 공인된 것이다.

"교사는 인권에 기반한 학교 시스템을 갖추는 데 핵심적인 역할자이다. … 어떤 교육 개혁도 교사의 능동적인 참여와 주인됨 없이는 성공할 수 없다. 모든 단계의 교육체계에서 교사는 존중받고 적절한 보상을 받아야 한다."
(유네스코 세계교육포럼 채택, 다카르(Dakar) 행동계획 69-70항)

학 생인권에 관한 토론회에서 한 교사가 이런 이야기를 했다. "지금 교사의 역할은 둘 중 하나다. 학생의 편에 설 것이냐. 부조리한 사회(제도)의 편에 설 것이냐. 그 둘 사이에는 깊은 골짜기가 있다." 그동안 대부분의 교사들은 학생의 편보다는 부조리한 사회(제도)의 편을 선택해왔다. 아니, 적어도 학생들의 입장에서 볼 때는 그런 교사들이 더 많아 보였다. 인터넷에 떠도는 어느 학생들의 비유처럼, 교사가 감옥의 '간수' 역할을 하는 것처럼 보였다. 때문에 학생인권을 이야기하는 것은, 단순히 학생인권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다. 더 멀리 내다봐서 교사들에게, 학생들 편이 되어달라고 부탁하고 있는 것이다. '간수'가 아니라 학생들의 옹호자, 지원자가 되어달라고 하고 있는 것이다.
Posted by 공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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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비밀댓글입니다

    2011.07.19 01:52 [ ADDR : EDIT/ DEL : REPLY ]

카테고리 없음2011. 6. 23. 13:49




[책의 유혹] 어느새 나도 꼰대랍니다

『인권, 교문을 넘다』, 인권교육센터 들 기획, 2011

그대들이 지하철 차 바닥에 철퍼덕 앉아 떠드는 모습을 볼 때,
그대들이 북쪽얼굴을 입고 쓰레빠를 질질 끄는 모습을 볼 때,
그대들이 블링블링 빛나는 배달용 오토바이를 탄 모습을 볼 때,

무섭다거나 두려운 감정들이 당연히 존재하지만, 무엇보다 참, 그대들을 띠꺼워(?)했어요. 생각해 보면, 나이 먹은 사람들에겐 “띠껍다”라는 감정을 느껴본 적이 없는 것 같군요. 토하고 노상방뇨하고 소리 지르고 때리는 그분들에게도, “띠껍다”라고 표현해본 적은 없는 것 같군요. 게다가 이 분(?)들은 ‘일부’일 거라고 생각해 왔지만, 그대들에게는 “요새 학생들이…”라는 말로 발동을 걸며 싸잡아 비난하곤 했었죠.

사실입니다. 빵셔틀*이 있고, 밀가루와 계란 범벅이 되어 졸업식장을 누비던 ‘언뉘옵하(언니오빠)’들이 있어요. 오늘은 한 학생이 담배를 피우다 걸렸는데 법대로 하자며 선생의 가슴을 쳤다고 뉴스에 나왔어요. 그대들과 별로 나이 차이가 나질 않는 20대 젊은 선생들도 말해요. 그대들은 통제가 안 된다고. 착하게 대해주면 자기들이 먹혀(!) 버릴 거라고.

하지만 이런 사실들은, 이런 얘기들은, 내가 그대들과 비슷한 나이였던 10년 전에도 마찬가지였던 것 같아요. “교실 붕괴”에서 “교권 침해”로, 단어가 바뀌었을 뿐이죠. 빵셔틀은 없었지만, 왕따가 있었고, 북쪽얼굴(노스페이스)을 입고 다니진 않았지만, 해리포터 시리즈의 호그와트 마법학교에 온 듯한 더플코트의 물결이 기억나요.

분명히 시대가 변했고, 변한 것들이 있어요. 물론이죠. 10년이 지나고 20년이 지났는데 그대로인 것이 있겠어요? 대학에 입학하기는 여전히 어렵지만 이젠 등록금이 올라서 다니는 것도 어려워졌어요. 취직하기는 더 어려워져서 졸업장만으로 좋은 직장에 갈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 학생들은 아무도 없어요. 이게 바로, ‘성숙한’ 어른들이 만들어 가고 있는 변화의 일부랍니다.

단지 어리다는 이유만으로

옛말에 “어리다”라는 표현은 “어리석다”와 같은 뜻이었다는군요. 그래서 지금까지도 많은 이들이 어린 사람들은 어리석다고 여기는 것일까요? 사실 난 잘 모르겠어요. 뭐가 현명한 것이고 뭐가 어리석은 것인지. 현명한 사람들 죄다 모아 놓은 곳에선, 과연 얼마나 현명한 일들이 일어나고 있는 것인지, 난 잘 모르겠어요. 오늘 뉴스를 보니 번듯한 대학의 교수님이 성추행을 하고 잡히기 싫어서 외국으로 떴다가 결국 해임되었다는데, 난 잘 모르겠어요.

분명한 건, 그대들에게 금지되고 있는 많은 것들이 그대들이 “어리기 때문에” 혹은 “미성숙하기 때문에” 지금까지 합리화되어 왔다는 것이에요. 담배와 술은 모두의 건강에 나쁘지만 그대들에게만 금지되고, “효과적인 통제장치”라며 체벌은 그대들에게만 허용되죠. 그대들은 판단할 수 없기에 투표권이 없고, 알바를 하려고 해도 부모의 승인이 필요해요. 하지만 부모들의 행동에 그대들의 허락은 필요 없어요. 부모의 이혼과 같은 일들, 그게 아무리 당신들의 삶에 영향을 미친다고 해도 말이죠.

그런 말이 있어요

어디에나 붙일 수 있는 말인데, 유독 “학생”이란 말과 연결시키기에는 몹시 어색했던 말이 있어요. 하지만 이제 그렇게 어색하게 들리진 않아요. 뭐든 자꾸 큰소리로 우기면 말이 된다고, 뉴스나 신문에도 종종 나오다 보니 이제는 두꺼운 책의 제목으로 자리를 잡고 무려 ‘출판(!)’되고 있어요. 그렇게 “교권”이란 말만 존재했던 교실에, “인권”이란 말이 조금씩 들어서고 있어요. 분명 일부 교사들을 비롯한 꼰대들이 띠꺼워하겠죠. 아마 그대들은 이미 그런 반응들을 꽤 접해봤을 겁니다.

하지만 그건, 그분들이 “어리석고 미성숙해서” 그런 것이니 이해해줘요. 인권이 교권과 충돌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에요. 왜 이것이 충돌하지 않는 것인지 설명을 하려고 해도, “성숙한 시민의 자세” 따윈 제쳐두고 귀를 막아 버리는 사람들이랍니다. 어쩌면 그대들이 말하는 것 자체를 띠꺼워하는 것일지도 몰라요. 왜냐면, 그네들은 사실, 자기 입으로 자기 생각을 말해본 적이 없을지도 모르거든요. 게다가 그대들이 주장한 것들이 그럴듯하게 활자화되어 이렇게 책으로 나오기까지 했으니, 꽤나 아니꼬울 것 같아요.

뭐 사실, 이 책이 그대들에게 그렇게 재밌을지는 모르겠어요. “학생인권쟁점탐구”를 하겠다고 사례별로 정리를 하나씩 죽 해놨어요. 사례뿐만이 아니라 논리까지도 촘촘히 정리하고 있네요. 게다가 ‘탐구’라니! 사회탐구도 아니고! 답은 안주고 끝날 때마다 질문을 던져대니, 물음표가 많은지 마침표가 많은지 세고 싶어질 정도에요. 심지어는 교과서처럼 뒤에 “토론거리”도 마련해놓고 빈칸에 뭘 채워 넣으라고 시키기까지 하고 있으니! 정말 이걸 해볼 거라고 생각하는 건가?

인권, 교문을 넘다

“그대들”이란 표현을 이젠 그만해야 할 것 같아요. 나나 그대들이나 다 잘나고 못난 인간들이니까요. 불쌍하고 찌질하기도 하죠. 그대들이 쇠창살에 갇혀 있다면, 나 같은 인간들은 유리창살에 갇혀 있는 느낌이랄까? 그래서 이 책에 있는 이야기들은, 내 이야기기도 하고 그대들 이야기기도 해요.

책 쓴 사람들은 아마 인권이 교문을 넘어서 학교로 들어가길 바란 것 같은데, 그것만으로 끝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그대들뿐만 아니라 이 책을 읽은 교문 안팎의 누군가들이, “누가 이걸 몰라서 이러고 있는 줄 알아?”라고 씩씩대며 뛰쳐나왔으면 좋겠어요. 갇혀 있던 인간들 죄다 튀어나와서, 제대로 한바탕 찌질거려봤으면 좋겠어요. 혼자서는 사실 좀 민망하니까. 이웃에 딱, 방해가 될 정도로만.


* 빵셔틀은 중·고등학교에서 힘센 학생들의 강요에 의해 빵이나 담배 등을 대신 사다 주는 행위나, 그 행위를 하는 사람을 뜻하는 신조어로, 학교 폭력을 배경으로 탄생한 용어이다.

『인권, 교문을 넘다』 차례

추천사
학생의 일상 속에서 살아 숨 쉬는 인권을 위해_김상곤
학생인권을 넘어 인간으로 살아가기_이계삼

1부 학생인권의 봉인을 푸는 질문들

2부 학생인권 쟁점 탐구

두발 자유는 머리카락의 자유인가|한낱 머리카락에 학교가 그토록 목매는 이유
맞을 짓 한 자? 맞아도 되는 자!|체벌과 폭력 사이
우아한 거짓말과 구차한 양심|양심의 자유, 사뿐히 지르밟고 가시더이다!
접속 금지, 발신 금지|휴대전화와 함께 추방되는 것들
교복은 메시지다|복장 단속, 무엇을 단속하는가
도둑맞은 시간과 비어 있는 시간|강제 보충과 야자는 누구를 울리나?
중립이라는 감옥, 정치적 미성숙의 감옥|집회의 자유는 학생의 삶을 어떻게 바꿀까?
사랑은 아무나 하나|‘연애질’, 금지된 것을 꿈꾸다

3부 학생인권 논리 탐구

성숙은 나이와 함께 찾아오는가?|‘미성숙의 갑옷’을 벗는다는 것
보호는 안전망인가, 올가미인가?|청소년 보호주의 넘어서기
학생인권, 학생과 교사의 다툼인가?|학생인권과 ‘교권’의 관계 찾기
인권이 살면 규칙이 죽는가?|‘법과 규칙이 살아 있는 학교’가 놓친 질문들
탯줄은 몇 살에 끊기나?|학생인권, 가족과 부모의 벽 넘기
학교는 어떻게 ‘찌질이’를 만드나?|학교 안 차별 들여다보기
덧붙이는 글
팽 님은 학교에서 일할 자신이 없는 2급 정교사 자격증 소지자입니다.
수정 삭제
인권오름 제 256 호 [기사입력] 2011년 06월 21일 11:34: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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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는 『인권, 교문을 넘다 - 학생인권 쟁점탐구』 웹광고용 이미지입니다 ㅎㅎ



Posted by 공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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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어가는꿈2011. 6. 18. 06:27
경희대 교지 고황 81호에 실은 글입니다.  http://www.khkh.net/








학생인권조례, 보호와 인권이 대립되지 않는 교육을 꿈꾸다




차별의 가장 부드러운 얼굴?

혹시 선생님… 당신은 환자를 불쌍한 사람들이라고 생각하는 건 아닙니까…? 약하고 불쌍한 환자들을 정의의 아군인 자신이 지켜주고 있다…. 그 감각이야말로… 바로 차별이라 불리는 것입니다…. 차별이란 누군가를 업신여기는 것만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당신은 환자를 지키려하고 있어요…. 이것도 어떤 의미론 차별입니다…. 즉 당신은 환자를 자신보다 약한 인간이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위선입니다….
- 사토 슈호,『헬로우 블랙잭 9』


  “‘보호’의 반대말은 뭘까요?” 내가 인권교육이나 강연을 나가서 곧잘 던지곤 하는 질문이다. 나오는 대답들은 여러 가지다. “비보호”(교통표지판?), “방임”, “방치”, “책임”, 그리고, “자유”나 “인권”까지. 이 중 뭐가 정답일지 고민하는 것은 부질없다. 애초에 각자의 입장에 따라 달리 답이 나오기 마련일 질문이기 때문이다. 보호를 하는 입장의 사람인지, 보호를 받는 입장의 사람인지, 보호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지, 보호가 잘못이라고 생각하는지, 여러 입장과 생각에 따라서 ‘반대말’은 다르게 그려지기 마련이다.

  하지만 이 질문을 통해 한 번 이렇게 생각해볼 수는 있지 않을까? “보호”의 반대말이 “자유”나 “인권”이라고 생각하게 만드는 그런 보호라면, 그건 그리 좋은 보호가 아니라고. 누군가를 자신과 동등한 인격체로 생각하지 않고 자신보다 못한 존재, 약한 존재, 못난 존재로 생각할 때, 차별은 시작된다. 보호 또한 비슷하다. 보호는 자신보다 못하고 약한 존재에게 해주는 것일 때가 많다. 또는, 그렇게 생각하게 되기가 쉽다. 그렇기 때문에 어떤 경우 보호는 차별의 가장 부드럽고 세련된 얼굴이 된다.

  ‘차별의 가장 부드러운 얼굴로서 보호’는 청소년들의 삶 속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예컨대 청소년보호법을 생각해보라. 얼마 전 국회에서는 만16세 미만 청소년들이 밤 12시 이후에 온라인게임을 할 수 없게 강제로 접속을 차단하는 이른바 ‘셧다운제’가 담긴 청소년보호법 개정안이 통과되었다. 누가 봐도 분명히 청소년들을 규제하는 형태의 제도인데도 ‘보호’의 이름을 달고서 청소년들을 게임으로부터 보호하겠다, 청소년들의 수면권을 위한 것이다, 라고 입법 이유를 말하는 역설 속에서 일어난 일이다.

  또한, 2003년 전까지만 해도 청소년보호법은 동성애를 청소년 유해물로 지정하고 성소수자들의 커뮤니티 등에 청소년 접속을 제한했다. 청소년들이 혹시 ‘사고’라도 칠까봐 보호하기 위해서 이성교제를 금지하고 스킨쉽을 처벌하는 학교의 교칙 같은 것들도 ‘보호’가 어떻게 인권침해로 나타나는지 알 수 있게 해주는 예이다. 2008년 촛불집회 당시 “광화문 등 촛불시위가 일어나는 일대를 청소년 통행 금지 구역으로 지정해야 한다. 청소년들을 불법 시위로부터 보호해야 한다.”라는 조갑제 씨의 드립 역시 ‘보호’가 ‘차별’이자 ‘규제’가 되는 모습을 보여준다.


학생인권조례, 존중과 참여로 보호를 넘어

  2010년 10월, 경기도에서는 한국에서 최초로 학생인권조례가 제정되었다. 초중고등학교 학생들의 기본적인 인권을 제도적으로 보장하기 위해 인권의 구체적인 기준과 내용, 그리고 개선 방안을 담은 최초의 법이라는 점에서 그 의의는 크다. 이후 서울, 광주, 전북, 전남, 강원도, 경남, 충북, 제주 등 여러 지역에서 교육청이나 시민단체들의 주도로 학생인권조례 제정이 추진되고 있다. 서울에서는 얼마 전 서울시민 1%의 서명을 모은 주민발의가 성사되기도 했다.

  그러나 동아일보 등 일부 언론에서는 학생인권조례가 미성숙하고 보호받아야 하는 학생들을 성인과 동등하게 취급하려는 인권 포퓰리즘이라고 사설까지 써가며 비판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동아일보가 2010년 7월 2일에 실은 사설을 보면 마지막 문장이 이렇다. “학부모와 교사들이 실력 열정 도덕심을 가져야만 우리 아이들을 지켜낼 수 있다.” 인권으로부터 아이들을 지켜내야 한단다. 이런 논리는 ‘보호’가 ‘인권’의 반대말, 즉 ‘차별’이 되는 정점을 보여준다.
(덧붙여 말하자면, 동아일보는 같은 사설에서 학생인권조례를 ‘방임’이라고 표현하며 오도하고 있지만, 사실 학생인권조례 안에는 학생들의 권리로서 폭력과 차별로부터 보호받을 권리, 학생들이 필요한 상담이나 교육, 복지, 보호를 제공받을 권리 등을 다양한 방법으로 보장하도록 하고 있다.)


  보호가 차별이 되지 않는 경계선, 보호가 인권의 반대말이 아니라 인권의 동반자이자 부분집합이 될 수 있는 그 경계선은 바로 ‘존중’에 있는 것이 아닐까? 보호를 받는 사람을 약하고 못난 존재로 보는 것이 아니라 동등한 인격체로 존중할 때, 일방적인 규제나 시혜가 아니라 보호받는 사람의 참여 속에서 그 의견과 이익을 우선적으로 고려할 때, 보호받는 사람이 주체가 되고 권리로서 보호를 누릴 때, 보호는 비로소 ‘차별의 부드러운 얼굴’을 넘어설 수 있을 것이다.

  때문에 나는 학생인권조례에서 우리 사회를 지배하고 있는 차별적인 청소년보호주의를 넘어설 수 있는 실마리를 본다. 학생인권조례는 학생들의 기본적인 인격을 존중하도록 하는 동시에, 학생들의 표현의 자유 보장, 학생들의 학교 운영 참여 보장, 교육정책에 대한 참여와 의견 반영 보장 등의 내용을 담고 있다. 학교는 학칙을 개정하거나 하기 위해서는 학생들의 의견에 귀 기울이고 학생들이 참여하는 과정을 거쳐야만 한다. 학생들은 표현의 자유, 언론의 자유 등을 보장받으며 자유롭게 의견을 밝히고 여론을 형성하며 결정 과정에 참여할 수 있다. 또한 교육청 역시 학생참여위원회 등의 기구를 통해서 교육정책을 결정할 때 학생들의 의견을 반영해야 한다.

  비록 학생인권조례는 학생인권과 교육과 관련된 분야에만 적용되지만, 이러한 제도는 앞으로 한국 사회에 학생들, 청소년들의 실질적 참여가 자리 잡을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다. 청소년특별회의, 청소년참여위원회 등 이른바 ‘청소년 참여 기구’가 있어왔지만 실질적으로 청소년들의 의견을 반영하기보다는 일부 모범생들의 스펙 쌓기로나 사용되는 등 처음의 취지와는 동떨어진 모습을 보이고 있는 현실이다. 그런 점에서 학생들의 참여를 권리이자 (교육청과 학교 등의) 의무로 규정하고 있는 학생인권조례는, 작은 교육정책에서부터 시작해서 초중고등학생들, 그리고 청소년들이 자신들과 관련된 정책에 대해 목소리를 높이고 참여할 수 있게 되는 변화의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예측은 단순한 낙관이 아니다. 학생인권조례가 단순히 학생들에게 인권을 ‘선물’하는 것이 아니라, 학생들의 주체적인 활동을 촉진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경기도 학생인권조례가 제정된 이후, 학칙 개정 과정에서 학생들의 의견 반영을 위해 학생들이 직접 나서서 자신들의 의견을 반영하도록 한 사례들이 늘고 있다.

  작년 부천 소사고등학교에서는 학칙개정심의위원회 회의에 학생들의 참관을 거부당하자 학생들이 운동장에서 연일 시위를 하면서 회의 참관을 관철시켰고 학생들의 입장이 더 많이 반영된 학칙을 이끌어냈다. 최근 남양주 가운고등학교에서는 학칙 개정을 위해 학생들의 의견을 수렴하는 절차를 전혀 밟지 않던 학교 측을 상대로 학생회에서 직접 설문조사를 실시하고 학칙 개정을 하도록 요구하여 학생들의 요구가 반영된 새로운 학칙을 만드는 데 성공했다.


  인권은 보호와 대립되지 않는다. 인권은 인간이라면 누구나 누려야 할 기본적 권리이기 때문에, 인권과 대립되는 보호란 것은 그 사람을 인간으로 보지 않는 보호라는 말이다. 그런 보호는 ‘차별의 부드러운 얼굴’이라는 혐의를 피할 수 없다. 존중과 참여로 보호주의를 넘어서는 길, 보호와 인권이 화해하는 교육, 학생인권조례로 열어가고자 하는 학교와 사회의 모습이다.

Posted by 공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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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어가는꿈2011. 6. 15. 15:25


서울 학생인권조례 주민발의 서명을 제출한 지 대략 3주 정도가 지났다.



그리고, 물론, 서울시교육청의 공식 통보는 오지 않은 상태지만, 여기저기서 서명 검증 진행 과정에 대한 이야기를 종합한 결과 대략 1만명 정도 서명이 부족할 것으로 보이고 있다.

보정기간은 6월 22일 ~ 26일

이번 보정기간 이후에는 다시 기회가 주어지지 않기 때문에, 무효가 나는 걸 모두 고려해서 안전하게 1만5천장을 받는 걸 목표로 해야 한다고 이야기하고 있다.
(실제 비율로만 생각해보면 1만 2천장이면 될 거 같긴 하지만- 안전하게 성사시키기 위해선 1만4~5천은 필요할 게다.)


요즘 기분은 아주, 참 그렇다.
아직 공식 보정기간이 아니기 때문에 서명을 받을 수는 없고, 그러나 서명을 몇부 받아야 하는지는 알고, 피가 마르는 기분이라고나 할까.




서울학생인권조례 주민발의 서명의 무효율이 예상보다 높은 것은 결국 거리서명으로 받은 비율이 그만큼 높았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든다. 거리에서 서명을 받을 때는, 조직이나 지인을 통해서 서명을 받을 때보다, 주민번호를 불완전하게 쓰거나 실수로/고의로 잘못 쓰는 경우들이 그만큼 많을 테니까.

그래서 결국 또 마음 속에서는 전교조로 대표되는 '어른 단체'들을 탓하는 마음이 생긴다.



서울에서 조례를 주민발의한 게 3번이 있었다.

친환경급식조례 주민발의 때는 교사/학부모들이 서명을 몇만부 해왔다고 한다. (그래서 이걸 기준으로 전교조 서울지부에서 3만장을 해오겠다고 큰소리 치다가 그 절반도 못해왔지)
소문으로는, 광장조례 때는 민주당과 노무현 서거 때 시청광장 못 쓴 거에 빡친 노무현 지지자들이 3만부 서명을 모아주었다고 한다.

그런데 서울학생인권조례 주민발의 때는, 2만부 3만부를 넘게 서명을 모아온 단위가 없다. 서명을 마무리하면서 서명이 어디서 얼만큼 들어왔나 집계해볼 때, '거리서명만 3만', '전OO 7천'이라는 숫자들이 얼마나 기가 차던지...


광장조례는 민주당이랑 노무현 지지자들이 3만장 서명을 모아왔다던데
서울학생인권조례 주민발의는 누가 서명을 모아와야 하는 걸까.
청소년들은 나이가 적다는 이유로 수임인조차도 될 수 없는데.

결국, 이 글을 읽고 계실, 학생인권을 지지해주시는 많은 시민 분들에게 부탁을 드릴 수밖에 없다.


김슷캇님 말마따나 서울학생인권조례 주민발의 무산은 학생들은 인간이 아니라는 서울시민들의 선고가 될 것이다.
학생인권조례 주민발의가 무산되지 않도록
한 명 한 명... 서울학생인권조례 주민발의 서명을 모아주시길-



※ 6월 26일까지 보정기간 서명을 받은 후 또 서명을 구/동별로 정리하는 기간이 있다. 그러니까 6월 28일 정도까지만 서명지를 보내주시기를 바란다.
Posted by 공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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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어가는꿈2011. 6. 9. 19:57
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84314498
http://book.daum.net/detail/book.do?bookid=KOR9788984314498
http://www.yes24.com/24/goods/5217137?scode=032&OzSrank=1



추천사
학생의 일상 속에서 살아 숨 쉬는 인권을 위해 - 김상곤 4
학생인권을 넘어 인간으로 살아가기 - 이계삼 6

1부 학생인권의 봉인을 푸는 질문들

2부 학생인권 쟁점 탐구
1 두발자유는 머리카락의 자유인가 - 한낱 머리카락에 학교가 그토록 목매는 이유 36
2 맞을 짓 한 자? 맞아도 되는 자! - 체벌과 폭력 사이 64
3 우아한 거짓말과 구차한 양심 - 양심의 자유, 사뿐이 지르밟고 가시더이다! 88
4 접속 금지, 발신 금지 - 휴대전화와 함께 추방되는 것들 116
5 교복은 메시지다 - 복장 단속, 무엇을 단속하는가? 138
6 도둑맞은 시간과 비어 있는 시간 - 강제 보충과 야자는 누구를 울리나? 158
7 중립이라는 감옥, 정치적 미성숙의 감옥 - 집회의 자유는 학생의 삶을 어떻게 바꿀가? 180
8 사랑은 아무나 하나 - '연애질', 금지된 것을 꿈꾸다 202

3부 학생인권 논리 탐구
1 성숙은 나이와 함께 찾아오는가? - '미성숙의 갑옷'을 벗는다는 것 238
2 보호는 안전망인가? 올가미인가? - 청소년 보호주의 넘어서기 250
3 학생인권, 학생과 교사의 다툼인가? - 학생인권과 '교권'의 관계 찾기 262
4 인권이 살면 규칙이 죽는가? - '법과 규칙이 살아 있는 학교'가 놓친 질문들 273
5 탯줄은 몇 살에 끊기나? - 학생인권, 가족과 부모의 벽 넘기 283
6 학교는 어떻게 '찌질이'를 만드나? - 학교 안 차별 들여다보기 2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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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출간됐네요 ^^;
주문도 가능하고... 아마 좀 큰 서점에는 모두 깔렸을 겁니다
문제집, 학습지 등을 주로 내던 한겨레에듀가 교양도서로 두 번째인가 세 번째로 낸 거라서...
문제집, 학습지 등팔던 루트로 학교 앞 서점 같은 데도 많이 들어갔으려나 -ㅁ-;



좀 더 자세한 소개 글 같은 거는 다음에 써서 올릴게요 ^^;
Posted by 공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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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어가는꿈2011. 6. 2. 14:48

으아 평소에는 쓴 글들을 꼬박꼬박 블로그/카페에 올리는데,
학생인권조례 주민발의하면서는 바쁘고 정신이 없어서 그렇게 못했네요

교육공동체 벗에서 내는 '오늘의 교육'에 지난 3월에 써서 4월에 실린 원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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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인권조례는 착한 어른들의 선물이 아니다

- 학생인권 제도화와 학생들의 저항


윤종 (공현)
(청소년인권행동 아수나로와 청소년인권활동가네트워크에서 활동하고 있으며, 청소년 언론 《오답승리의희망》 편집진. 고등학교 때부터 청소년인권운동을 당사자로서 시작해서 20대 중반이 된 지금까지도 코가 꿰어서 계속 하고 있다.)



학생인권조례 시대?

  「문명」이라는 게임을 해보면 “황금시대”라는 게임 개념이 있다. 문명이 전성기를 맞이했다는 건데, 황금시대가 적용될 때는 자원 생산도 늘어나고, 사람들의 행복도도 올라가고, 여하튼 여러 가지 혜택이 있고 뭘 해도 잘 된다. 2010년 10월, 경기도 학생인권조례가 제정되었다. 2011년 2월 현재, 서울에서는 한창 학생인권조례 주민발의를 위한 서명운동이 진행되고 있다. 강원, 전북 등지에서도 교육청이 학생인권조례를 추진하고 있고, 경남, 충남 등 여러 지역에서는 시민사회단체들이 학생인권조례 제정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얼마 전에 열린 교사 집담회의 제목은 “학생인권조례의 시대, 교사가 말하다”였다. 학생인권조례 시대. 이 말은 작년 11월 학생의 날 토론회에서도 제목을 장식했던 표현이었다. 문명의 황금시대가 열리듯, 정말 학생인권조례와 학생인권의 시대가 열린 걸까?

  그러나 여러 가지 상황은 우리를 낙관할 수 없게 만든다. 서울 학생인권조례 주민발의 서명운동은 교사조직을 비롯하여 많은 ‘어른 단체’들의 비협조와 무관심 속에 좌초될 위기에 처해 있다. 이미 학생인권조례가 제정된 경기도에서도 학교 현장에서의 왜곡과 거부 사례들이 알려지고 있다. 학생인권조례에 대해 찬성을 표해온 집단들도 학생인권을 현실화시키기 위한 실천에는 별 관심이 없어 보인다. “학생인권조례 시대”가 곧 “학생인권 시대”인 것은 아니다.

  사실 학생인권조례에 관한 담론에는 일종의 ‘거품’이 있다. 거리 나가서 시민들을 만나며 홍보를 하다보면, “학생인권? 그거 이미 다 된 거 아냐?”, “아직도 학교에서 야자를 강제로 시킨다구요?” 같은 반응을 심심찮게 접할 수 있다. 이미 학생들의 인권은 대체로 잘 보장되고 있지 않냐, 오히려 너무 많이 보장되어서 탈 아니냐, 그런 생각이 의외로 널리 퍼져 있다.

  운동 사회 안에서도 다른 의미에서 거품이 존재한다. 원래 진보․개혁․민주적 운동 사회 안에서 대놓고 반대하는 사람은 없으면서 그렇다고 적극적으로 나서거나 그 의미를 진지하게 고려하지는 않는 주제, 그런 것들 중 하나가 학생인권이었다. 학생인권에 관해 실천은 없이 서로 말만 무성한 상황이라는 것이다. 하기사 최근에는 체벌을 강화하겠다고 하는 사람이 진보신당 대의원에 당선되기도 했고, 소위 스스로 진보적이라거나 개혁적이라고 하는 사람들도 학생인권에는 대놓고 반대하는 경우도 있다.

  물론 「오늘의 교육」 창간준비호에 학생인권을 주제로 글을 쓴 배이상헌 씨, 정용주 씨, 박복선 씨 등은 학교 현장에서, 지역 사회에서 학생인권에 대해 계속 관심을 가지고 실천해온 분들이다. 창간준비호에 실린 글들 역시 학생인권조례의 의미와 벌점제도 등 이후의 쟁점과 학교 현장에서의 교사의 실천 등에 대해 풍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그런 ‘내공’을 지닌 분들이 운동 내에서나 교사 집단 내에서나 소수라는 것이 안타까울 뿐이다. 다만 여기에서는 학생인권조례가 탄생하게 된 하나의 맥락이자 배경인 학생들의 저항과 행동에 초점을 맞추어서 이야기를 보태어 보고자 한다.


저항과 행동이 제도를 낳기까지

  배이상헌 씨의 글 중 간단하게 학생인권운동의 역사를 서술한 부분을 봐도 짐작할 수 있겠지만, 애초에 학생인권의 제도화가 운동의 의제로 떠오른 것은 학생들의 저항과 행동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2000년대 초반은 학생인권 의제들이 사회적 의제로 떠오르는 시기였다. 2000년의 두발규제 폐지 운동을 비롯하여 0교시, 강제적 야간자율학습 문제, NEIS와 정보인권, 학생회 법제화(혹은 학교운영위원회 참여), 강의석 씨가 제기한 학교내 종교자유 등 거의 한 해도 거르지 않고 학생인권의 이야기들이 쏟아져 나왔다.

  2005년, 학생들 1000여명이 내신등급제 및 입시경쟁 반대를 외치며 촛불을 들고, 두발자유를 요구하는 온라인서명운동과 거리 집회 등이 연달아 열리면서 학생인권의 문제는 사회적 의제로서 자리를 확고히 했다. 이후 2005~2006년에 연달아서 송파공고와 풍생고, 양동중, 청명고 등에서 두발자유를 요구하는 학생들의 학내시위가 일어났다. 동성고에서는 오병헌 씨가 두발자유, 사상의 자유 등을 비롯하여 학생인권 보장을 요구하며 1인시위를 했다. 이런 저항들 역시 해당 학교의 규칙을 바꾸는 데 그치지 않고 사회적으로 학생인권 문제를 이슈화시키는 데 기여했다. 송파공고에서의 종이비행기 시위가 그 인상적인 광경으로 많이 회자되었고, 양동중에서의 시위는 최초로 중학교에서 두발자유 학내시위가 일어났다는 것이 주목을 받았다. 그밖에도 수많은 학교 안에서 학생들은 서명운동을 하고 전단지를 배포하며 학생인권을 요구하는 크고 작은 행동을 해왔다.

  학생인권조례와 학생인권법이 등장한 것도 이 시기였다. 인권 문제를 이야기하는 학생들의 요구가 쏟아져 나오자 학생인권 보장을 실현하기 위한 한 방법이자 운동의 목표로 학생인권을 제도화하려는 움직임이 시작된 것이다. 민주노동당 청소년위원회에서는 2005년 두발자유를 요구하는 학생들의 행동이 계속 이어지자 두발자유화 법안을 만드는 것을 당에 건의했다고 한다. 당 정책실에서는 두발자유 뿐 아니라 학생인권의 여러 문제들이 이슈화되고 있는 상황을 고려해서, 학생들의 인권 전반을 보장하는 내용을 담은 초중등교육법 개정안을 마련했고, 여기에 “학생인권법”이라는 이름을 붙여 최순영 의원을 대표로 하여 발의했다.

  학생인권법은 교육운동과 시민운동 단체들이 모여서 ‘아이들살리기운동본부’를 결성하여 지지를 표명하고, 또 학생들이 학교 안에서 서명을 모아오고, 청소년인권단체들이 전국 순회 행진, “미친 학교를 혁명하라” 학생인권 보장 요구 집회를 여는 등 많은 노력 속에서 국회에 상정되었다. 하지만 학생의 학교운영 참여 등을 받아들이기를 거부한 교총과 한나라당 등의 반발로 대부분의 구체적 내용이 삭제되고, 초중등교육법 18조의4 학생인권 보장 조항이 신설되는 정도의 성과를 남겼다.

  한편 광주에서는 시민단체들이 역시 계속해서 학생인권의 의제들이 제기된 2000년대 초반의 상황 속에서 비슷한 문제의식을 가지고 2005년부터 “학생인권조례” 제정을 논의하기 시작했다. 비록 당시 광주에서는 교사들이나 교육청의 반대로 제정이 무산되었지만, 광주의 이 시도는 몇 년 후 교육감 주민 직선의 시대를 맞이하며 다시 쟁점이 될 “학생인권조례”의 첫 탄생이라는 의의가 있었다.

  사실 조례나 법률로 학생인권을 보장한다는 학생인권 제도화의 발상 자체가 2005년 2006년을 거치며 생겨난 것이었다. 학생회 법제화라면 몰라도, 두발자유화나 강제 야간자율학습 금지 등의 내용을 법으로 만든다는 것은 그 이전까지는 학생인권운동의 주체들이 별로 고려해본 적이 없었던 방법이었다. 이는 정당과 지역 시민사회단체 등이 학생들의 요구를 받아 안은 방식이었다고 할 수 있다. (학생인권운동의 주체들 사이에서는 “학교는 학생의 두발을 규제할 수 없다”와 같은 내용의 법이 있다면 그건 그것대로 우스운 일이라는 생각도 약간 있었다.)

  2005~2006년 학생인권법과 학생인권조례 운동을 통해 학생인권의 제도화가 학생인권운동의 하나의 목표로 설정되었다. 동시에 교육운동 역시 이를 교육운동의 의제 중 하나로 받아들였다. 2008년 경기도 교육감 선거와 서울 교육감 선거에서 학생인권조례가 민주․진보교육감 후보들의 주요 공약 중 하나로 포함되었다.

  이 과정에서도 2008년 진성고등학교 학생들의 인권 보장을 요구하는 학내시위와 UCC 동영상을 통한 학내 인권 현실에 대한 폭로가 학생인권조례의 필요성에 힘을 실어주었다. 용마고에서 학생들이 0교시 반대, 두발자유 등을 요구하는 서명운동을 하다가 학교에 의해 제지당하자 이에 맞서 학생들이 촛불시위를 하려고 시도했다가 무산되었던 사건도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렸다. 그리고 2008년 촛불집회에 나서며 정치적 사회적 주체로 주목을 받은 청소년들의 힘이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미쳤다. 촛불집회에 나갔다가 학생회장 선거 출마를 학교에 의해 제지당했던 송곡고 김인식 씨의 사례 등이 학생인권 보장의 필요성을 다시 한 번 느끼게 만들었다. 2007년 옥동중, 신정중에서 하루 동안 연달아 일어났던 두발자유 학내시위를 학교에서 탄압한 것에 대해, 2008년 국가인권위원회가 집회의 자유 침해로 인정하고 개선을 권고하면서 ‘집회의 자유’도 학생인권의 쟁점으로 합류하기도 했다.


학생인권의 시대를 위해

  제도는 운동의 성과이자 목표가 되어주지만, 때로는 사람들이 운동의 의미를 잊어버리게 만든다. 학생인권조례 역시 마찬가지다. 학생인권조례가 만들어지면 오히려 학생들이 조례에 의존해서 인권침해를 ‘신고’만 하고 끝나지 않겠냐는 우려의 시선이 학생인권운동 내부에 있다. 학생인권조례만 제정된다고 해서 학교 현장이 바뀔 리는 없기에, 학생인권조례가 현실은 아주 조금밖에 개선하지 못하면서 학생인권 담론의 ‘거품’만 더 키우지 않겠냐는 우려도 있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 굳이 학생인권조례가 만들어진 배경과 역사를 학생들의 저항과 행동과 연관 지어서 설명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학생인권조례가 단지 김상곤 경기도교육감의, 곽노현 서울시교육감의 업적이나, 착한 어른들의 선물이 아니라 학생들의 학교 현장에서의 거리에서의 작지만 꾸준한 저항과 직접 행동이 있었기 때문에 겨우 만들어졌다는 것을 인식해야 한다.

  부천 소사고등학교에서는 2010년 12월, 학생들이 연달아서 학내시위를 하는 사건이 일어났다. 경기도 학생인권조례 제정 이후 경기도 각 학교들은 학생들의 참여를 보장한 과정을 통해 학칙을 개정해야 했다. 그러나 소사고를 포함하여 많은 학교들이 학생들의 의견을 수렴하는 절차를 형식적으로만 거쳤고, 학칙 개정 심의위원회에 학생들을 포함시키기는 했으나 학생들의 입장을 대변하기보다는 교사 등에 동조하는 학생들을 참여시키곤 했다. 소사고 역시 학생들의 의견을 듣는 공청회를 거쳤으나, 학칙 개정 심의위원회에서 학생들의 의견을 묵살할 우려가 높은 상황이었다. 학생들은 이런 상황을 막고 압력을 가하기 위해 학칙 개정 심의위원회를 공개하고 학생들의 참관을 허용할 것을 요구했다. 그러나 학칙 개정 심의위원회의 학부모, 학교장 등은 이 요구를 거부했고, 이에 학생들은 참관을 허용하라고 요구하는 학내시위를 아침 시간에 2차례 이상 벌였다. 이런 과정을 거쳐 학생 대표들 역시 학생들의 의견을 대변하는 방향으로 입장을 바꾸었으며 학생들은 학칙 개정 심의위원회 회의 참관도 할 수 있었다. 이러한 학생들의 꾸준한 행동 덕에 소사고의 개정 학칙에는 학생들의 의견이 좀 더 많이 반영될 수 있었다. 시위를 비롯하여 일련의 행동들에 참여했던 학생들은 그 과정에서 진정으로 스스로 학교의 주인이 되는 경험을 한 것이다.

  학생인권조례가 학교에 어떻게 정착될 수 있는지, 학생인권이 어떻게 학교에 입학할 수 있을지, 학생인권을 이야기해온 사람들 사이에는 많은 고민들이 있다. 그에 대한 하나의 해답을 소사고의 사례가 제시해주고 있는 것 아닐까? 학생들이 주인이 되는 학생인권조례가 되어야만, 학생들의 저항과 행동이 계속되어야만, 학생인권의 시대는 열릴 수 있다. 과잉 담론화된 학생인권 문제를, 담론을 낮추는 방식이 아니라 현실을 끌어올리는 방식으로 극복하기 위한 동력은 결국 학생들에게 있다. 경기도․서울에서의 학생인권조례와 서울 체벌금지 조치 이후 교육계 등 여러 곳에서 보이고 있는 반응들은, 역설적으로 교사들이나 학부모들을 비롯해서 ‘어른들’의 학생인권에 대한 관심과 열의에 한계가 있다는 것을 명백하게 드러내고 있다. 결국 학생인권의 주인은 학생일 수밖에 없다. 학생인권조례의 과거와 현재가 다름 아닌 학생들 스스로의 힘으로 이루어졌다고 다시 한 번 강조하는 일이 필요한 까닭이다.

(하지만 만19세 이상만 유효한 서명을 할 수 있는 어른 중심의 주민발의 제도의 한계상, 서울 학생인권조례 주민발의 과정에서 어른들의 협조는 꼭 필요하다. 제발 서명 좀… 굽신굽신;)
Posted by 공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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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아직도 학생을 하나의 인격체가 아닌 통제의 대상으로 보는 시각이 많은 것 같습니다.

    2011.06.06 15:54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걸어가는꿈2011. 6. 1. 22:58




"학생인권조례를 아십니까?"

학생인권시대, 학교의 진짜 주인 학생이 외친다!

일시: 2011년 6월4일(토요일) / 낮2시 
장소: 부천안중근공원(부천소풍버스터미널 근처)

경기학생인권조례까 제정된지 7개월이 지났지만
아직도 학생들은 교장선생님 훈화말씀 속에서나 학교의 주인!

학생인권조례가 제정되었지만 꿈쩍도 하지 않으려는 학교,
진짜 학교의 주인인 학생들의 외침과 행동으로 바꿀수 있습니다!

6월4일 학생들의 인권과 참여가 제대로 보장되는 학교를 위해
학생인권조례의 시대, 학교의 진짜주인 학생들이 외쳐요!

★ 학생을 기만하는 학칙이 아닌 학생을 위한 학칙을!
★ 학생의 의견을 민주적으로 반영하라!
★ 상벌점제는 또 다른 인권침해! 대화와 존중과 소통의 교육을!
★ 진정한 학생인권 우리가 직접 찾는다! 




Posted by 공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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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어가는꿈2011. 5. 23. 09:54

“학생인권조례 주민발의, 전교조도 안 될 거라 했었다”

서울본부, 8만5천 청구인 명부 서울시교육청에 접수

김도연 기자 2011.05.20 13:58


서울시교육청 현관이 눈물바다가 됐다. 청소년 활동가들은 서울학생인권조례 주민발의 성사로 학생인권에도 봄이 왔음을 알리며 이내 눈물을 쏟았다.


학생인권조례제정운동 서울본부(서울본부)가 20일 서울학생인권조례 청구인 명부 제출에 앞서 서울시교육청 1층 현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들은 이날 “주민발의 성사로 경기도에 이어 서울에서도 학생인권조례가 제정되는 현실이 바로 우리 눈앞에 왔다”며 “차별과 폭력으로 얼룩진 학교가 인권과 민주주의가 살아 숨 쉬는 학교로 변화할 수 있음이 증명되었다”고 주민발의 운동의 성사를 알렸다.
이 자리에서 6개월 동안 직접 거리서명에 나섰던 청소년 활동가들은 하나같이 “실감이 안 난다”며 기쁨의 눈물을 터뜨렸다.
▲  청소년 활동가들이 서로 눈물을 닦아주고 있다.

예솔 청소년 활동가는 “전교조도, 서명에 참여하는 사람들도, 다들 (주민발의 성사가) 안 될 거라고 그랬다”며 “그래도 우리는 ‘주민발의 운동을 하는 거 자체가 의미 있겠지’ 하고 했는데 진짜 성사가 되니까 실감이 안 난다. 너무 좋다”고 말했다.
다영 청소년인권행동 아수나로 활동가도 “20일에 이렇게 주민발의 성공했다고 보고대회를 하고 있는 이 상황이 아직도 꿈만 같다”고 전했다. 다영은 “불과 며칠 전까지만 해도 8만 2천이 모여서 시교육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할 수 있을까 걱정했는데 오늘 이렇게 하게 돼서 너무 다행”이라며 “지지해주신 서울시민들께 너무 감사하다”고 인사를 전했다.
▲  다영 청소년인권행동 아수나로 활동가는 “거리에서 시민들을 설득하고 서명을 받아야 하는 게 너무 힘들었다”면서도 “아직 못 만난 시민 분들께는 너무 죄송한 마음도 있다”고 말했다.

학생인권조례 주민발의 성사로 현장 교사들의 역할은 더욱 막중해졌다. 이병우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서울지부장은 “이번 학생인권조례제정운동 주민발의 성사는 87년 6월 항쟁으로 대통령 직접선거를 하게 된 정도의 비중과 의미가 있다”며 “교사들의 일터이자 학생들의 삶터인 학교에서 인권이 꽃피울 수 있게 열심히 하겠다”고 약속했다.
이날 서울본부는 서울시민 8만5천821명의 서울학생인권조례 청구인 명부를 시교육청에 제출했다. 시교육청은 명부 검증을 거쳐 서울본부의 조례안이 주민발의 요건을 갖추면 60일 이내에 서울시의회에 해당 조례 안건을 제출해야 한다.
▲  기자회견 참석자들이 청구인명부가 담긴 상자를 시교육청으로 나르고 있다.

서울본부 측은 “서울학생인권조례는 시의회를 무난하게 통과할 가능성이 높다”며 “2004년 친환경학교급식지원조례, 2009년 서울광장조례에 이어 세 번째로 성사된 서울학생인권조례가 서울지역에서 주민발의로 제정된 최초의 조례가 될 수 있다”고 전망했다.
이들은 또 “서울학생인권조례는 유치원까지 그 적용범위를 확대하고 두발자유, 집회시위의 자유 등 경기도학생인권조례가 학생 권리를 축소한 부분도 바로잡았다”며 “서울시민의 뜻으로 쓰인 서울학생인권조례제정 주민발의안을 원안 그대로 통과시키라”고 시의회에 요구했다.

Posted by 공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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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어가는꿈2011. 5. 18. 05:21


“사람이 되어라”와 “학생도 사람이다”


공현

국가인권위원회에서 제작한 단편 애니메이션, 「사람이 되어라」는 한국의 학생들이 처해 있는 현실을 상징적으로 표현한다. 이 애니메이션 속에서 학생들은 모두 사람이 아닌 원숭이이다. 교문에 커다랗게 박힌 글자가 수백 학생들의 등굣길을 내려다보고 있다. “먼저 사람이 되어라.” 먼저 사람이 된 선생님이 아직 사람이 되지 못한 학생들을 가르치는 곳. 학교에서 말 잘 듣고 남을 도우며 공부를 열심히 하면 사람이 될 수 있다고 하는 곳. “대학 가서 사람 되자.”라는 급훈이 걸려 있는 곳. 「사람이 되어라」에서 그리고 있는 학교의 모습이다.

이 애니메이션에서 주인공인 원철이는 숲에서 학교 공부에는 영 흥미가 없는 자신이 잘못된 게 아니라는 깨달음(?)을 얻고 사람이 된다. 그러나 선생님은 그런 원철이에게 오히려 화를 낸다. “니 맘대로 사람이 되면 어떻게 해! 사람은 대학 가고 나서 되는 거야!”라고 호통을 치며 체벌을 하는 선생님. 학교를 뛰쳐나온 원철이는, 사람 안 될 거냐고 어서 학교로 돌아오라고 말하는 어른들에게 이렇게 외친다. “전 이미 사람이에요!”


나는 종종 “학생도 사람이다!”라는 피켓을 들고 거리에서 학생인권 캠페인 같은 것을 하곤 한다. 최근에는 서울 학생인권조례 주민발의 운동을 하다보니 거의 매일 같이 3개월 동안 하루 6~8시간씩 캠페인을 했다. 그러다보면 지나가던 사람에게서 “아니, 그럼 학생이 사람이지 돼지에요?” 같은 장난스러운 질문을 심심찮게 받곤 한다. 가끔은 “「사람이 되어라」에서 보니까 원숭이던데요.” 하고 대답하고 싶을 때도 있지만…. 말할 것도 없겠지만, “학생도 사람이다!”라는 말이 학생들이 생물학적으로, 지금까지 호모 사피엔스 사피엔스(현생 인류)가 아니었다는 뜻은 아니다. 이 말은 오히려 생물학적으로 사람이기 때문에 사회적으로도 사람으로 대하라는 요구를 담고 있는 것이다.



학생을 사람대접하지 않는 사회

학생들이 사회적으로 사람대접을 못 받는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우선 학생 ― 청소년들은 우리 사회에서 직접적으로 ‘폭력’을 당해도 되는 몇 안 되는 집단 중에 하나이다.(다른 집단으로는 군인 정도가 있겠다. 군인의 경우, 직접 때리는 구타는 금지되어 있지만, 얼차려나 기합은 가능하다. 교도소에 수감된 수감자들의 경우, 때리는 것이나 ‘기합’을 주는 것은 금지되어 있고 구속구를 채우거나 독방에 가두는 것은 가능하다.) 그나마 최근에 서울, 경기도, 강원도 등은 학교에서 체벌 완전 금지를 선언했고 교육과학기술부 또한 법령을 개정하여 학교에서의 때리는 체벌은 금지한다고 발표한 것도 큰 진전이다. 그러나 여전히 가정이나 학원에서는 반(半)합법적으로 학생들에게 폭력을 행사하고 있으며, 많은 학교에서 체벌이 일어나고 또 묵인되고 있다. ‘오리걸음’, ‘앉았다 일어서기’ 등의 기합을 받다가 목숨을 잃은 학생들까지 있는데도 교육과학기술부에서는 ‘기합’ 같은 형태의 ‘때리지 않는’ 체벌은 계속 허용(조장?)한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또한 학생 ― 청소년들은 자신과 관련된 사안에 참여하고 목소리를 낼 권리를 원천 봉쇄당한 몇 안 되는 집단 중 하나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실질적으로는 결정권을 가지지 못하더라도 절차적으로라도 의견을 제시하고 투표나 공청회나 기타 여러 형태로 자신과 관련된 우리 사회의 결정 과정에 참여할 수 있는 권리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학생들은 나이가 적다는 이유만으로 투표권을 가지지 못하며, 이에 더해서 정당 가입, 정치 활동 등을 포괄적으로 제한당한다. 최근에 온라인게임 셧다운제 때문에 위헌소송을 검토하다가 안 건데, 심지어 자신의 기본권 침해 문제에 대해 헌법재판을 청구하려고 해도 보호자의 동의가 없으면 할 수가 없게 되어 있다. 또한 청소년들은 주민발의나 주민투표 등, 법적으로 유효한 서명에 참여할 수도 없게 되어 있다. 교육 정책이나 청소년 정책을 결정할 때 정부에서는 학생들의 의견을 듣는 절차조차 제대로 가지지 않는 경우가 다반사이고, 학생회는 학교에서 학생들의 권익을 대변하는 조직이 아니라 학생들의 ‘특별 활동’의 한 종류로 규정되어 있는 형편이다.

그밖에도 하나하나 청소년들의 ‘당연한’ 일상을 뜯어보면 참 당연하지 않은 일이 많다. 예컨대 성적이 공개되거나 성적표가 보호자에게 당연하다는 듯이 발송되는 모습이라거나, 야간자율학습에 참여할지 말지를 정할 때 본인의 동의를 묻는 게 아니라 보호자의 동의를 묻는 모습은 어떠한가? 학교에서 일어나는 자의적 소지품 검사는 어떠한가? 거리에서 사람들에게 무작정 위험한 물건을 갖고 있을 수도 있다며 경찰이 소지품 검사를 한다면, 얼마나 당황스러운 일일까? 극장에서 휴대전화가 울렸다고 해서 극장 직원이 관객의 휴대전화를 압수한다면, 얼마나 화가 날 것인가? 어른들이 폐에 질환이 있는지 없는지 확인하는 증서를 가지고 있고 담배를 살 때 폐 질환이 없으며 담배를 피어도 건강에 큰 해악이 있지 않다는 걸 증명해야 한다면? 종교재단이 세운 회사라고 해서 직원들이 전부 다 그 종교 의식에 강제로 참여해야 한다면?



‘덜 된 존재’와 인간 사이에서

물론 학생인권 문제는 지난 10년을 주욱 훑어보면, 많이 개선되었다. 학생인권을 외치는 사회적 운동이 시작된 지가 거의 15년 안팎이니까 비교적 단기간에 이루어낸 뿌듯한 성과인 셈이다. 그러나 여전히 만족스럽지는 않다. 여러 지역에서 추진되고 있는 학생인권조례는 성과이기도 하지만 또한 많은 숙제를 청소년운동을 하는 사람들에게 안겨주고 있다. 최근에는 경기도 학생인권조례가 제정되는 등 지역별로 다른 학생인권 정책을 펴면서 지역간의 격차, 학교간의 격차도 커지고 있다. 같은 나라에서 어느 지역은 학생들의 학칙 개정 참여를 보장하고 어느 지역은 전혀 보장하지 않는가 하면, 같은 동네에서도 어느 학교는 야간자율학습이나 보충학습을 강제로 시키고 어느 학교는 완전히 자율로 하는 모양새다. 어느 지역에서 태어났느냐, 어느 학교에 입학했느냐, 어느 선생님들이 있느냐에 따라서 오락가락 하는 권리라면, 권리를 제대로 보장받고 있다고 할 수가 없다. 그건 차라리 복불복일 것이다.

뿐만 아니다. 아직 제대로 건드리지 못한 인권 문제도 많이 있다. 예컨대 UN아동권리위원회는 2003년, 한국의 지나치게 경쟁적 교육환경이 아동의 발달권 등 인권을 침해하고 있으므로 개선하라고 권고했던 바 있다. 두발자유, 강제적 자율보충학습, 학생자치, 학생들의 표현의 자유, 쉴 권리 등 최소한의 학생인권이 어느 정도 개선되고 나면 그 다음에 부딪치게 될 주된 인권 문제는 바로 교육 문제일 것이다. 교육 정책 자체가 인권 침해가 되고 있는 현실이기 때문이다. 또한 정치적 권리나 경제적 권리(‘알바’라고 불리는 노동의 문제나 주거권 등) 같은 문제와 청소년보호법 같은 청소년 정책의 문제도 중요한 학생인권, 청소년인권의 쟁점으로 떠오를 것이다.

지금도 학생인권을 이야기하면 고개를 설레설레 젓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 학생이 어디서 머리를 염색하느냐부터, 심지어는 강제 자율보충학습, 강제 종교의식 참여, 성적 차별 등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옹호할 수 없을 것 같은 것들을 옹호하는 사람들도 있다. 학생들이 자유롭게 모여서 얘기하고 자기 생각을 표현할 수 있도록 학교 안에서 기본적인 언론․표현의 자유, 양심․사상의 자유, 집회․결사의 자유를 보장하자고 하는 것을 가지고서도 호들갑을 떠는 사람들이 있다. 그런 사람들에게 교육 정책의 문제나 정치적/경제적 권리 등을 이야기하면 어떤 반응이 돌아올지, 상상하기도 두려울 정도이다.

하지만 조금만 시야를 넓게, 깊게 가져보면 어떨까. 청소년들의 정당 가입이나 정치 참여 등, 이미 유럽, 남미 등 여러 다른 나라들에서 당연하게 이루어지고 있는 것들도 많기 때문이다. 역사적으로 살펴보면 북서유럽 또한 68혁명 등 학생들의 많은 요구와 행동, 그리고 사회적 갈등을 겪으면서 학생인권 상황이 개선될 수 있었다. 1968년 수많은 학생들이 거리로 나오고 시위를 하는 68혁명의 와중에 영국의 청소년들이 발표했던 요구안을 보면 지금의 한국 학생들이 요구하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교육에도 민주주의가 필요하다”, “자유롭게 조직을 결성․가입하고 정치활동에 참여할 수 있어야 한다”, “두려움 없이 학교나 교사에 대한 불만을 제기할 수 있어야 한다”, “부모의 동의서는 학생 의사가 아니므로 정당하지 않다”, “우리의 존엄성을 모욕하는 체벌은 없어져야 한다”, “양심에 반하는 종교교육이나 예배는 거부돼야 한다” 등등. 한국 역시 학생들, 청소년들의 “우리도 사람이다”라는 외침과 행동이 변화를 가져올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원숭이’, 아니 ‘덜 된 존재’(미성년자) 취급받는 학생 ― 청소년들이 ‘사람’이 되는 제대로 된 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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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어가는꿈2011. 4. 28. 21:07



‘체벌의 교육적 효과’라는 말의 모순과 본질



  체벌 사건이 불거진 어느 한 중학교에, 면담을 하러 찾아갔을 때 일이다. 어느 한 학부모가 “잘못을 하면 맞아야 정신을 차리지.”라는 말을 했다. 한창 논쟁 중이었던 나는 그 말 한 마디에 화가 나서 그동안 마음에 꾹꾹 담아 두었던 말을 꺼내고 말았다. “선생님, 제가 선생님이 그런 잘못된 생각을 하고 있다고 해서 선생님의 잘못을 고치기 위해 선생님을 때리면 어떻겠습니까? 그러면 안 되지 않습니까?” 이 말은 단순히 역지사지의 자세를 가지라고 요구하는 발언이거나 싸가지 없는 발언 정도로 생각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사실 이 말은 체벌 옹호론이 안고 있는 논리적 모순을 드러내고자 했던 말이었다.


  체벌을 적극적으로 옹호하는 주장 중에는 이런 게 있다. <체벌은 중요한 교육적 효과가 있으므로 정당하다.> “잘못을 하면 맞아야 정신을 차리지.”라는 말을 좀 더 세련되게 바꾸면 대충 이런 말이 될 것이다. 이제부터 이 말을 한 번 찬찬히 가지고 놀아보자. 이 문장에서 “교육”을 ‘올바른 것’을 알고 있는 교사가 ‘잘못된 것’을 생각/실천하는 혹은 ‘올바른 것’을 알지 못하는 학생에게 ‘올바른 것’을 알고 받아들이고 동의하도록 하는 과정이라고 구체화해볼 수 있다.(물론 교육은 이런 단순한 과정이 아니지만, 적어도 올바른 것을 아는 교사가 잘못을 하는 학생을 교육적으로 체벌해야 한다고 믿는 사람들 머릿속에 있는 ‘교육’의 그림은 이것과 크게 다르지 않을 듯싶다.)

  그러므로 문장을 이렇게 바꿔볼 수 있다. <체벌은 교사가 알고 있는 ‘올바른 것’에 학생이 동의하도록 하는 데 유용하므로 정당하다.> 이 말은 결국 이런 의미를 포함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폭력으로 어떤 생각에 다른 사람이 동의하도록 하는 것은 정당하다.>, 아니면, 적어도, <정당할 수 있다.>


  이 명제에 찬성하는지 반대하는지를 떠나서 이 명제는 심각한 모순을 일으킬 가능성을 안고 있다. 문제는 어떤 생각이 그 생각 자체의 설득력이나 효과가 아니라 그와 무관한 외부의 요인에 의해 다른 사람이 동의하도록 만드는 것이 정당하다는 부분에서 생긴다. 물론 현실에서야 생각이나 주장에 동의하는 데에 많은 외부적 심리적 요인들이 영향을 미치긴 하지만, 그것이 정당하다고 선언하는 것은 좀 다른 문제인 것이다.

  이를 정당하다고 선언할 때 일어날 수 있는 모순은, 그 명제 자신과 반대되는 명제를 연결시켜 일종의 메타 명제를 만들어보았을 때 일어난다. 어떤 명제가 옳다는 것을 인정받는 것이 명제 자체의 내용과 무관하게 외적 수단에 의존하는 것이 정당하다면 명제와 그 외적 수단 사이의 불일치와 모순이 얼마든지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쉽게 예를 들어보면 이런 것이다. : <“폭력으로 다른 사람이 내 의견에 동의하게 만드는 건 잘못이다.”라는 의견을 폭력을 이용해서 동의하게 만드는 것은 정당하다.>(이는 실제로 학교 현장이나 가정에서 곧잘 일어나는 모습이다!) 물론 이런 기괴한 모순은 ‘폭력’이 아닌 다른 것을 넣어 봐도 마찬가지일 터이다. <“돈으로 다른 사람이 내 의견에 동의하게 만드는 건 잘못이다.”라는 의견을 돈을 이용해서 동의하게 만드는 것은 정당하다.>



탈출구와 본질


  체벌을 옹호하는 입장을 유지하면서 이 모순을 벗어나려고 하는 방법은 크게 두 가지인 듯하다. 하나는 솔직하게 이 모순의 가능성을 인정하고 교육적 효과를 주장하지 않으면서 단지 ‘어쩔 수 없다’라고 말하는 것이다. 이렇게 말한다면 체벌은 교육적 수단이 아니라 열악한 교육환경이나 가정환경 속에서의 통제 수단, 일종의 필요악으로서의 지위를 가지게 된다.

  물론 이렇게 말하는 사람들이 책임을 지고 그래서 체벌이 없어져도 되는 환경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은 찾아보기 어렵다. 체벌금지 문제가 사회적 공론화가 된 지도 어언 15년이 다 되어가는 상황에서 준비가 부족하다는 투의 이런 주장은 무책임해보이기까지 한다. “너무 오래도록 지연된 정의는 부정된 정의이다.”라는 말이 떠오른다. 또한 체벌이 단순히 필요최소한의 통제 수단으로서만 긍정될 수 있다고 한다면, 이 사람들은 실제로는 체벌이 대단히 광범위하게 사회적으로 용인되고 있는 현실에도 반대하는 위치에 서야 할 텐데, 별로 그런 것 같지는 않다. 하지만 어쨌건 이런 입장을 취하게 될 때, 그나마 생산적 정책적 논의를 할 수 있게 될 것 같기는 하다.



  두 번째 방법은 “아이들의 경우에만, 미성숙하므로 맞아도 된다.”라고 말하는 것이다. 이 말을 좀 더 풀어써보면 이렇다. “아이들은 미성숙하고 어른들은 성숙하다. 그러므로 어른들의 생각은 아이들의 생각보다 항상 옳다.” 적어도, “옳을 개연성이 크다.” 또는 “아이들은 미성숙하므로 어떤 의견의 옳고 그름을 제대로 판단할 수 없다. 그러므로 외적 수단을 통해 동의시킬 수밖에 없다.” 물론 이렇게 말한다고 해서 ‘명제와 외적 수단의 모순’이 해소되는 것 같지는 않다. 하지만 이런 방식은 아이에 비해 어른이 언제나 ― 적어도 대체로 옳다는 것을 이미 전제해버리고서는, 거기에서 어떤 모순이 생기든 ‘어쨌건 옳기 때문에’ 그걸 깔아뭉개버린다. 그리고 이것은 ‘맞아도 되는 존재’로서의 아이들과 ‘사람’을 분리시키는 태도이기도 하다.

  물론 나는 경험적으로든 윤리적으로든 인권적으로든, “아이들은 미성숙하고 어른들은 성숙하므로 어른들이 항상 옳다.”라거나 “아이들은 맞아도 된다.”라는 생각은 잘못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걸 논의하는 것은 이 다음의 일로 미뤄두자. 그저, 나는 체벌을 옹호하는 사람들이 이런 이야기를 할 때, 비로소 체벌 문제의 본질이 드러난다고 생각한다. 즉, 체벌은 아동-청소년과 어른-비청소년 사이의 권력관계이고 계급문제이다. ‘맞아도 되는 존재’(아이, 청소년)와 ‘사람’(어른, 비청소년)을 분리시키는 인식과 구조 때문에 일어나는 폭력이다. 정혜신 박사는 2011년 강연에서 이렇게 말했다. “사랑해서 때리는 게 아닙니다. 아이가 여러분보다 약하기 때문에 때리는 거죠.”

  아동-청소년과 어른-비청소년 사이에 존재하는 권력관계를 어떻게 바꿀 것인가? 인간이 아닌 존재, 인간이 덜 된 존재로 취급당하는 아동-청소년이 어떻게 스스로를 인간으로 인정받게 할 것인가? 오늘도 그런 질문을 던지면서, 학생인권, 청소년인권을 이야기하고 운동을 하는 사람들이, 걸어가고 있다.

Posted by 공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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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잘못을 하면 맞아야"

    이 논리가, 민주주의를 전파하려면 전쟁을 벌여야하고, 가끔은 말 잘 듣는 독재정권을 지지함으로써 세계질서를 바로세워야한다는 그런 논리와 상당히 비슷하더라고요.

    2011.04.29 02:24 [ ADDR : EDIT/ DEL : REPLY ]
    • 체벌 찬성이 이라크전쟁 지지로 이어지는 심오한 세계군요...

      2011.04.30 23:45 신고 [ ADDR : EDIT/ DEL ]
  2. 그럼

    "당신이 나보다 미성숙한 어른이라고 결론이 났고, 내가 나이도 몇살 더 먹었다면 (당신을 위해) 좀 때려도 되겠소?" 라고 질문을 던져봐야겠군요.

    2011.04.29 11:31 [ ADDR : EDIT/ DEL : REPLY ]
    • 그 결론을 누가 내느냐가 결국 문제가 되겠지요 ㅋ
      그리고 아이-청소년의 경우에는 사회적 힘이 없기 때문에 어른들에 의해 그렇게 규정당했다는 걸 지적해야 할 거구요.

      2011.04.30 23:45 신고 [ ADDR : EDIT/ DEL ]
  3. 체벌이 없는 학교에 가보셨나요? 제가 다니던 학교는 체벌이(폭력) 없었습니다. 선생님들의 관심도 그렇게 크지 않았었구요. 학교 급식의 경우엔 한 반에서 열명정도의 인원만 먹었었죠. 대부분 자기용돈으로 쓰느라 굶는 학생이 다수였습니다. 학교급식수준이 맛이나 위생이나 좋은 편은 아니여서 그리고 다른 이유로해서 저 또한 먹지 않았었죠. 밥 먹고싶으면 학교 밖 식당으로 나가곤 했었는데 대부분의 학교가 그렇듯 학교 밖으로 나가는건 금지사항이였습니다. 하지만 선생님들도 대부분 학교급식은 먹지 않았죠. 점심시간에 길거리에서 선생님을 마주치면 어떨까요? 학생들은 전부 도망갔습니다. 혼날게 분명하니까요. 때리진 않아도 잔소리가 듣기 싫고 분위기상 피해야 할거 같으니까요. 그래도 선생님과 학생들 사이는 좋았습니다. 수업시간에 떠들어도 자도 아무런 소리도 안했죠. 자는애는 자고 점심시간지나서 등교하는 애는 늘 그 시간에오고 공부하는애들 몇 위주로만 수업이 진행됬었습니다. 수업시간에 들어오지 않는 선생님도 있었습니다. 학생들은 그러려니하죠. 시험만 잘 보면 되니까요. 학교수업이 안나가도 학교시험은 치룰수 있는 대한민국시스템이 있으니까요. 체벌 얘기를 하다 요점이 흐트러진거 같은데, 체벌의 형태가 폭력적이고 남용되면 그건 큰 문제가 맞습니다. 하지만 그 나이때 학생들은 금지나 어떤 권리를 자신의 인권이란 개념 자체가 없다는거죠. 맞으니까 공부하는 애 맞아도 안하는 애 그냥 그런 애 무관심한 선생 열정적으로 수업을 하는 젊은 선생 무시하는 학생들.. 이게 제가 다니던 학교 입니다. 여기에 폭력이 개입해서 급식먹게하고 자는 애 깨우고 등교시간 엄수하게 하면 어떨까요? 결과는 같습니다. 맞아도 바뀌는건 없더군요. 제가 다니던 학교는 실업계라 칠십명의 학생들이 삼년간 같은 반 입니다. 학생은 그대로지만 선생님은 계속 바뀌죠. 때리나 안 때리나 결과는 비슷하더군요. 선생님들의 태도에 따라 학생들의태도가 크게 바뀌는게 없었습니다. 폰으로 쓰다보니까 글이 완전 이상 하게 되었네요

    2011.04.29 18:09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4. 첫 글이 폭력을 옹호하는 것처럼 보이는거 같네요. 그냥 이런 학교도 있구나란 정도로 참고해 주셨으면 합니다. 학교 시험의 경우 시험문제를 미리 알려줍니다. 그래도 공부 하는 애들만 하지요. 실업계 학교끼리 내신으로 경쟁해 대학에 가기 때문에 일어난 결과 입니다. 애들이 공부를 안하는 것도 있지만요. 더 놀라운건 교수들도 이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실업계 학생들은 대학은 보냈지만 기본 지식이 없어 대학가서 많이들 고생하죠. 학교에서 따는 자격증은 컴할 삼급정도의 수준으로 사회에선 아무런 쓸모가 없구요. 학생들이 인권이란 개념 자체가 없기 때문에

    2011.04.29 18:17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5. 정말이지 만들어진 틀 내에만 놀아납니다. 언제나 인문계위주의 글이나 관심만 보이지 실업계쪽은 일반적인 인식 수준인 꼴똥 학교니까처럼 뒷전인거 같아 글을 남겨봅니다. 그리고 글 몇 개를 읽어 봤는데 댓글이 참 인상적이네요ㅋ 보통 다른 블로거들은 다른의견이나 비아냥 거리는글엔 욕이 난무하는데ㅋ 댓글이 다른 곳에 비해선 깔끔하고 좋은거 같습니다. 좋은 글들 이 많네요ㅋ

    2011.04.29 18:21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 말씀하신 부분은 체벌 이야기와는 좀 또 다른 부분 같네요. -ㅁ-
      저는 학생들이 인권이란 개념이 없다거나 하는 게 나이에서 비롯되는 자연발생적 특징이 아니라 사회적인 그리고 교육시스템적인 문제가 더 크다고 생각합니다. 그렇지 않다면 서로 다른 국가와 사회, 문화 사이에 있는 그 커다란 간극과 차이를 설명할 수 없겠지요.

      2011.04.30 23:44 신고 [ ADDR : EDIT/ DEL ]
    • 근데 학생인권조례 국면이 좀 정리가 되면 나중에 쓸 기회가 있을 텐데, 저는 '체벌금지' 자체도 사실 '어른들의 이슈'라고 보는 관점을 갖고 있어요.
      만약 곽노현 등이 학생들의 관점에서 생각했다면 '체벌금지'말고 다른 것부터 시작했겠지요. 그런 점에선 말씀하신 그런 지적에 동의하는 면이 있습니다. 하지만 역시 그건 또 별론이지요.

      2011.04.30 23:51 신고 [ ADDR : EDIT/ DEL ]
  6. 상긔

    ㅎㅎ 맞아요 체벌은 하든 말든 상관이 없다고 생각해요.
    체벌을 당하는 대상은 오히려 반항심이 생긴다고 생각해요.
    체벌이란 많은 청소년들을 억누르는 겁니다.
    그러면 스트레스도 생기지요
    오히려 체벌을 하지 않고 충고를 하는게 더 좋지 않을 까요^ㅇ^

    2011.12.06 21:48 [ ADDR : EDIT/ DEL : REPLY ]

걸어가는꿈2011. 4. 12. 20:34

청소년인권행동 아수나로 둠코
: 안녕하세요. 저는 청소년인권행동 아수나로에서 활동하는 둠코라고 합니다. 서울 학생인권조례 제정하려고 같이 활동하는 많은 청소년들이 거리에서 가판을 깔고 수임인들 옆에서 전단지를 나눠드리고 거리를 지나는 시민 분들께 말을 건네고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서명은 생각만큼 많이 모이질 않아요.
학생인권이 긴 시간 동안 쟁점이 되고 토론이 되고 했는데 그게 과연 그럴 만한 내용인지, 저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학생이 인간이고 그렇기에 인권이 보장되어야 한다는 건 상식이고 기본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지금 서울시민의 힘으로 제정하려는 학생인권조례는 완성이 아니라 시작하는 지점이라고 생각합니다. 학생들은 학교에서 겨우 몇 대 안 맞는 걸로 안심하고, 머리 안 깎이려고 아둥바둥 해야 하는 존재가 아닙니다. 더 많은 걸 배우고 상상할 수 있는 학교가 있어야 합니다.
우리가 유권자가 아니란 이유로 자기 인권 보장을 위해서 서명 몇 천 몇 만을 모은다 하더라도 바꾸기가 어렵습니다. 많이 안타깝고 억울하고 합니다. 어른이 된 모든 분들이 청소년 시기를 보냈었고 학교 다닐 때 부당한 일이나 서럽던 일 많이 당해보셨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때 하셨던 학교가 바뀌면 좋겠다는 생각들, 그런 걸 떠올리며 서명을 위해 펜을 들어주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의 서명이 뭔가 바꿔낼 수 있습니다. 저희가 받으러 다니는 것도 중요하지만, 결국 서명을 통해 목소리를 더하고 조례를 발의 해주시는 건 서울 시민 여러분입니다. 서울 시민 여러분 손으로 서울 학교에 인권이 살아 있을 수 있게 상식이 있을 수 있게 변화시켜주십시오.


진보신당 유의선
: 지금 필요한 건 절실함인 거 같습니다. 절실함으로 몸과 마음으로 움직여서 학생인권조례가 가능할 수 있도록, 우리 몸과 마음으로 해야 할 거 같습니다.
그 다음으로 필요한 게 설레임인 거 같습니다. 학생인권조례가 만들어지면 아이들이 얼마나 아름답게 성장할 수 있는지 꿈꾸며 해야 할 거 같습니다.
마지막은, 믿음 같습니다. 우리 서울시민의 힘으로 할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지고 해야 할 거 같습니다.


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 김기식
: 제가 90년대 후반에 일하던 참여연대에서, 아동인권규약에 근거한 아동인권 캠페인을 한 적이 있습니다. 그때 느꼈습니다. 아이들을 독립적 인격체로 인권을 가진 주체로 생각하는 어른들의 인식 변화가 없는 한 법과 제도가 만들어진다 해도 그것이 제대로 시행될 수 없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인권조례 제정 운동은 한편에서 보면 어른들의 성찰운동이 아닌가 합니다.
시민사회단체에서 열심히 하도록 독려하겠습니다.


인권재단 사람 박래군

: 어제죠? 교육과학기술부가 학교에 자살예방위기관리위원회를 설치한다면서 발표했습니다. 2005년부터 2010년까지 초중고 학교에서 모두 870명이 자살했다고 합니다. 가정불화, 염세비관, 성적 때문에 죽었다고 합니다. 입시경쟁 뿐 아니라 생존 경쟁으로 죽어가고 있습니다. 학교에서 꿈을 키우는 게 아니라 박탈당하고 있습니다. 이런 죽음은 학교가 전쟁터가 됐다는 증거거든요. 전쟁터에서도 한 해 150명 죽어간다면 큰일인데도 불구하고 우리 사회는 외면하고 있습니다.
지금 체벌이니 간접체벌이니 무상급식 찬반이니 한가한 소리입니다. 지금 이 시간에도 옥상에 올라간 학생이 있을지도 모르고 목숨 끊으려는 학생이 있을지도 모르는 절박한 상황입니다. 올해 우리나라가 어린이청소년권리조약 가입한지 20년이 됩니다. 학교에서 더 이상 학생들 죽지 않도록 죽음의 행렬이 이어지지 않도록 서울시민들이 나서줘야 합니다.
깨어있는 서울시민들 힘으로 주민발의 성공시켜주십시오. 감사합니다.


한국교회인권센터 김은영
: 제가 서명받기 위해 찾아갔을 때 협조해주신 교회, 목사님들께 이 자리 빌어서 감사하구요. 문전박대한 교회와 목사님들께 이 자리를 빌어 호소하고 싶습니다. 우리가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세상 만들기 위해 우리 후손들에게 무엇을 물려줘야 할지 고민하시고 서명에 동참해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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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어가는꿈2011. 3. 30. 08:04

학생인권조례제정운동서울본부 두번째 소식지
아직도 먼 학생인권 (경향신문특집기사)
운동본부에서 알려드립니다 초간단 우편용 서명지가 나왔습니다!
시민연속특강이 진행되고 있어요!
활동일정 (3월 30일 ~ 4월 6일) 학생인권시민연속특강 학생인권으로 여는 행복교육의 오늘
일정확인하기
학생인권조례 주민발의 서명하기 배너
학생인권조례제정운동서울본부 홈페이지
학생인권제정운동서울본부 트위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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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어가는꿈2011. 3. 25. 09:44



시민의 힘으로
학생인권조례제정을 향한 힘찬 항해를 시작한다

우리는 오늘, 학생의 인권이 존중되는 민주교육을 향한 힘찬 항해를 시작한다. 학생이 교사를 존경하기보다 두려워하도록 만드는 교육, 체벌․폭언․차별 등 온갖 인간적 모멸이 판치는 교육, 거짓 동의와 거짓 자백이 강요되는 교육, 격려와 소통은 온데간데없고 강압과 지시만이 지배하는 교육이 우리가 떠나온 출발지다. 존중의 기쁨과 자유의 공기를 갈망하는 학생들이 뱃머리에 서서 우리의 항해를 재촉한다. 부당한 규정을 둘러싸고 학생들과 숨바꼭질을 벌이느라 교육자로서 자긍심을 찾을 길 없던 교사들이 함께 승선했다. 가혹한 경쟁과 훈육 시스템에 학생들이 볼모잡혀 있는 사이 자신조차 볼모가 돼야 했던 학부모도, 인권과 민주주의를 가르쳐야 할 학교가 외려 독재와 차별의 가치를 확산하는 현실을 두고 볼 수 없는 시민사회도 우리 항해의 동반자다.

우리 앞에 놓인 기나긴 항해의 첫 정박지는 서울학생인권조례다. 학생인권조례는 학생이 자유와 참여 속에서 배움의 기쁨을 누릴 수 있는 학교, 감당할 만한 배움과 다양성이 꽃피는 학교, 차이가 낙인과 배제의 이유가 되지 않는 학교, 교사와 학생, 학생과 학생, 교사와 학부모 사이의 신뢰와 소통이 복원된 학교를 그리는 기본 설계도다. 신민 양성과 특권의 도구로 전락해버린 교육을 본디 자리로 돌려놓기 위한 변화의 물꼬다. 이 항해는 ‘다른 교육은 가능하다’고 믿는 시민들의 열망과 행동을 동력 삼아 전진한다. 교육감의 의지나 교육청의 역할만 믿고 기다릴 수 없는 이유다. 우리의 항해가 순조로울 리 없다. 벌써부터 학생인권조례를 좌초시키려는 보수의 역풍이 거세게 일고 있다. 미성숙한 학생에게 인권은 위험하다는 꼬드김이 시민들을 현혹한다. 학교가 정치의 장으로 변질될 수 있다는 우려를 부채질하는 손길도 바쁘다. 교권 보장이 우선이라는 으름장도 만만찮다. 우리는 ‘학생도 인간’이라는 소박한 진실, ‘성숙은 나이와 비례하는 것이 아니라 성숙할 기회에 비례한다’는 믿음, ‘학생이기에 더더욱 풍요로운 권리를 맛볼수 있어야 한다’는 원칙을 나침반 삼아, 저 역풍을 단호히 돌파하면서 힘찬 항해를 이어나우리는 서울학생인권조례가 제정되는 그날까지 혼신의 힘을 다할 것이다. 그리고 우리의 항해는 서울에서 멈출 수 없다. 학생인권조례가 전국 곳곳에서 힘찬 날갯짓을 펴는 그날까지, 힘차게 노 저어 나가자. 학생인권조례를 계기로 저 견고한 학교의 담장을 녹이고 인권이 꽃피는 새로운 교육을 일구어내자.

2010년 7월 7일

학생인권조례제정운동 서울본부

함께하는분들: 건강세상네트워크, 공익변호사그룹 공감, 관악동작학교운영위원협의회, 교육공동체 나다, 국제엠네스티 대학생 네트워크, 군인권센터, 대안교육연대, 대한민국청소년의회, 대한성공회 정의평화사제단, 동성애자인권연대, 문화연대, 민주노동당 서울시당, 민주노총서울본부,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불교인권위원회, 서울장애인교육권연대, 서초강남교육혁신연대모임, 어린이책시민연대, 원불교인권위원회, 인권교육센터 들, 인권운동사랑방, 전교조서울지부, 전국공무원노동조합 서울지역본부, 전국지역아동센터협의회 서울특별시지부, 종교자유정책연구원, 즐거운교육상상, 진보교육연구소, 진보신당서울시당, 참교육을위한전국학부모회 서울지부, 청소년다함께, 청소년인권행동 ‘아수나로’ 서울지부, 청소년인권활동가네트워크, 평등교육실현을위한서울학부모회, 학교급식전국네트워크, 학벌없는사회, 한국게이인권운동단체 ‘친구사이’, 흥사단교육운동본부, 21세기청소년공동체 희망, 개인활동가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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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작년 7월에 출범했군염...ㅇㅅㅇ

    2011.03.25 11:17 [ ADDR : EDIT/ DEL : REPLY ]

걸어가는꿈2011. 3. 24. 13:33

“제대로 된 교육과 학생인권을 찾습니다”

청소년 집회 “실종신고”에서 본 청소년운동의 현재

공현


청소년 집회 준비 과정은 좀 이상하다. 다른 집회들을 준비하는 과정과 비교해보면 그 우선순위가 전혀 다르다. 청소년 집회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가장 먼저 돈을 들이고 공을 들이는 부분은 바로 홍보이다. 충분한 홍보를 통해 조직되지 않은 청소년들에게 알리고 참여하도록 하지 않은 채 집회를 하면 50명도 채 오지 않기 때문이다. 노동운동이나 여성운동 등을 비롯한 여러 운동들의 집회 준비 과정에서 홍보가 ‘이미 어느 정도 조직화된’ 사람들에게 집회를 확실히 주지시키고 참가를 독려하기 위한 것인 반면, 청소년 집회에서 ‘홍보’는 사실 집회 자체의 목적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어쩌면 청소년운동의 씁쓸한 조직화 현황을 보여주는 모습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지난 3월 19일에 있었던 청소년 집회 “실종신고 : 제대로 된 교육과 학생인권을 찾습니다” 역시 마찬가지였다. 3월 2일, 초중고등학교들이 개학하자마자 등하교길 홍보를 시작했다. 매일 매일 서울 학생인권조례 주민발의 서명 일정에 참여하는 와중에도 어렵게 어렵게 시간을 쪼개고 만들어가며 등하교길 홍보와 주말 번화가 홍보로 전단지만 대략 1만5천 장을 배포했다. 웹자보도, 퍼나를 만하고 퍼나를 수 있는 사이트에는 거의 모두 퍼날랐다.

전단지를 받아본 청소년들의 반응은 다양하다. 그냥 읽지도 않고 버리는 경우도 있고, 바로 주머니에 넣는 경우, 묵묵히 읽는 경우도 있다. 이번 집회의 경우에는 “중간기말부터 수능까지 시험 폐지”라는 주장을 전면에 배치해서 그런지 “야 이거 쩐다!”, “이거 꼭 해야 돼!”라고 친구들에게 이야기하는 분들도 많았다. 전단지를 받아들고 “꼭 가겠다”라고 말한 청소년 분들 중에 반만 왔어도 집회가 참 대박이 났을 텐데……. 1만 5천 장을 청소년들에게 배포했는데 그 전단지를 받고 온 청소년들은 10명도 채 되지 않았으니, 전단지를 받고서 오는 청소년들의 비율은 0.1%도 안 되는 셈이다. 쩝. 일단은 학교의 일상에 균열을 내는 그런 주장을 많은 청소년들이 접하는 계기가 된 것 자체에 만족해야 할까?


청소년운동의 현실

다시 한 번 정리하자면 이번 “실종신고” 집회는 그토록 많은 품을 들여 홍보를 했는데도 불구하고 집회 참가자가 100여 명에 그쳤으며 그리고 그 중에서도 대다수가 이미 아수나로나 다른 단체 등에서 활동을 하던 청소년들이었다. 집회 분위기는 좋았지만 과거의 청소년 거리 집회들처럼 미조직된 청소년들 상당수가 나오는 그런 모습은 찾아보기 어려웠다. 작년 일제고사 반대 집회 등에서부터 확인되어왔던 이런 모습은 여러 가지를 시사한다.

먼저 첫째, 2000년대 초중반, 중고등학생들이 미군장갑차 살인사건을 비롯하여 내신등급제와 학생인권 등을 가지고 곧잘 거리로 나오던 시기에는 그나마 미조직된 학생들이 거리 집회에 참가하는 일이 낯설지 않았다. 그러나 2008년 촛불집회를 거친 이후의 변화인지 아니면 교육․사회 환경의 변화인지 혹은 단순히 시간의 흐름 탓인지, 미조직된 학생들이 친구들과 같이 옹기종기 집회에 참가하는 모습은 거의 사라진 것으로 보인다.


둘째로, 2000년대 초중반까지만 해도, 아니 2008년까지만 해도 청소년들이 거리로 나온다는 것 자체만 가지고도 호들갑을 떨던 언론들 역시 이제는 청소년들이 거리에서 집회를 한다는 것만 가지고는 별로 기사거리가 되지 않는다는 듯이 시큰둥한 모습이다. 이번 “실종신고” 집회의 경우에는 “중간기말부터 수능까지 시험 폐지”, “대학 안 가도 먹고 살 수 있게 하라” 등 논쟁적인 주장들을 전면에 내세웠는데도 그렇다. 이는 부분적으로는 이른바 ‘진보교육감’ 등이 학생인권 정책을 추진하고 있는 현실과, 작년 조중동에서 아수나로 등을 대대적으로 다룬 것과도 관련이 있을 것이다.

결국 이번 집회는 청소년운동이 앞으로 조직력을 키우는 데 더 주력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어떻게 보면 당연한 교훈을 준다. 집회가 끝난 뒤, 아수나로 회원들끼리 김치찌개 집으로 밥을 먹으러 갔다. 그 자리에서 나는 식당을 가득 채운 30여 명의 아수나로 회원들의 모습을 보며 몇 년 전만 해도 10명 남짓하던 아수나로가 이렇게 커졌나 하며 뿌듯해했고, 계산을 하며 밥값에 절망했고, 마지막으로 “조직된 사람들로 200명을 채울 자신이 없으면 앞으론 단순 홍보에 의존한 거리 집회는 하지 말아야겠다. 밥값으로 단체가 파산하더라도.”라는 다짐을 했더랬다.

실종신고, 그 후…

이번에 청소년 집회 “실종신고 : 제대로 된 교육과 학생인권을 찾습니다”의 요구 사항은 크게 다섯 가지였다.

◑ 중간기말부터 수능까지 시험을 폐지하라! (시험 폐지)
◑ 대학 안 가도 먹고 살 수 있게 하라! (학력, 학벌 폐지, 사람다운 생활 보장)
◑ 교육예산 확보하여 누구나 쾌적한 학교를! (교육예산, 복지 확대)
◑ 학생에겐 권력을, 학교에는 민주주의를! (학교 민주화, 학교운영․교육정책 참여)
◑ 규제와 폭력 대신 자유와 소통을! (학생인권 보장)

이런 주장이 지나치게 급진적이라는 우려도 있을 법하고, 또 실제로도 그러한 의견이 인터넷 등에서 나오기도 했다. 그러나 청소년들의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이런 주장은 오히려 ‘생활 밀착형’ 주장이 된다. 예컨대 시험 폐지의 경우에, 대다수 중고등학생들의 경우에는 “전집형 일제고사를 표집형으로”나 “상대평가를 절대평가로 전환” 같은 복잡한 정책적 논의보다는 “모든 시험 폐지”와 같은 주장을 훨씬 더 잘 받아들인다. 청소년들의 입장에서는 일제고사든 모의고사든 중간고사든 기말고사든, 자신들에게 점수와 등수를 매기고 서열화하기 위한 시험 자체가 스트레스이다. 학생들의 현재 상황을 진단하고 더 나은 교육을 제공하기 위해 이루어지는 게 아니라 학생들을 줄 세우고 점수를 내기 위해 이루어지는 시험, 그리고 그 시험을 위한 교육 자체가 문제이고 인권침해이기 때문이다. 입시 제도를 가지고 깔짝깔짝 복잡하게 장난치는 것보다 “입시폐지 대학평준화”가 더 현실적인 대안인 것과 마찬가지이다.


사실 이런 주장들 중 대다수는 청소년운동뿐 아니라 다른 여러 운동과 정치 세력들의 것들로부터 빌려온 것이다. “대학 안 가도 먹고 살 수 있게 하라”는 복지 사회 건설 주장, 학벌 없는 사회를 만들자는 주장의 변형이다. 교육예산을 GDP 대비 6%까지는 올려야 한다는 것은 십여 년 전부터 나온 교육운동의 요구였다. 시험 폐지의 경우에도 일제고사나 교원평가제 반대 투쟁을 거치면서 “평가가 아닌 진단을”, “평가하고 서열화하기 위한 시험을 바꿔야 한다.”와 같은 형태의 주장으로 여러 토론회와 포럼에서 교육운동 주체들(주로 교사, 교수, 학부모들)이 제출했던 것이다.

그러나 여러 사회운동의 주체들이, 그 중에서도 특히 교육운동 주체들은 자기들끼리 하는 토론회나 포럼에서 이런 주장을 정리해서 내거나 아니면 정치세력에 정책으로 제안하기만 하고, 그런 주장들을 대중화하고 행동으로 풀어내는 데는 게으르다. 오랜 시간 대중적․지역적인 운동을 해온 것은 무상급식을 비롯하여 몇 가지뿐이고, 그나마 이 무상급식의 경우에도 사람들의 광범위한 지지를 얻는 듯 보이지만 실제로 그 내적 논리와 제대로 된 의미는 충분히 대중화되지 못하고 있다. 진보적 운동이 “대안 없는 반대”만 한다는 식의 비판은 잘못되었다. 적어도 교육운동에서는, 대안과 정책을 만들고 공부하고 토론하기만 하고 운동과 실천을 하지 않고 있는 문제가 더 크다.

이런 문제의식 속에서 아수나로는 이번 집회를 시작으로 이 주장들을 내세워서 청소년들과 만나고, 소통하고, 조직화하고, 행동하는 활동을 꾸준히 해나갈 작정이다. 그런 마음으로 올해 2월에 회원들이 모여 두 차례의 토론을 거쳐 주장의 내용과 슬로건을 확정했고, 이 주장들은 앞으로 적어도 1, 2년 동안 아수나로의 학생인권과 교육에 관한 활동 전반을 관통하는 슬로건이 될 것이다. 이번 “실종신고” 집회에서는 말 그대로 “이런 것들이 우리 교육에는 없다. 학생들에게는 없다.”라고 “실종신고”를 한 셈이다. 이제 사라진 제대로 된 교육, 학생인권을 찾아내고 만들어내는 일, 그리고 그걸 같이 할 사람들을 만들어내는 일, 그게 앞으로 우리의 활동이 되지 않을까.

덧붙이는 글
공현 님은 청소년인권행동 아수나로 활동가입니다.
수정 삭제
인권오름 제 243 호 [기사입력] 2011년 03월 23일 12:21:17
Posted by 공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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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어가는꿈2011. 3. 14. 06:31


http://www.newscham.net/news/view.php?board=news&nid=60593


참세상 기사 보신 분들 계시죠~? 흑흑 ㅠㅠ


경향신문 특집기획을 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학생인권의 현실은 여전히 열악합니다.



제발 서명 모으는 거 부탁드려요!!










[호소문]


학생인권, 여전히 열악합니다. 서울 학생인권조례, 여러분들의 작은 노력을 보태주세요



작년 10월 경기도 학생인권조례가 통과된 지 벌써 수개월이 흘렀습니다. 그 동안 보수언론들은 하나 같이 학생인권조례로 인해 마치 교사의 권위가 땅에 떨어지고, 학생들은 막장으로 치닫는 듯한 선정적인 보도를 써대며 학생인권조례 까기에 열을 올렸습니다. 하지만 현실은?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우선 각 학교들은 아직까지도 학생인권조례에 맞게 학교 규칙을 수정하지 않고 있습니다. 학생인권조례가 시행된 이후 6개월 안에 ‘규정개정심의위원회’를 열어 반인권적인 학교규정들을 수정해야 하지만, 각 학교들은 이마저도 생색내기에 그치고 있습니다. 학생들에겐 알리지도 않은 채 위원회를 열어 새 학칙을 통과시키거나, 당연히 허용되어야 할 학생참관을 거부하는 등, 학생인권조례의 실질적인 적용을 위한 최소한의 조치마저도 방해하고 있습니다. 일부 사립학교의 교사들은 심지어 ‘사립학교는 학생인권조례의 적용을 받지 않는다.’거나, ‘교장 멋대로 학생인권조례를 거부 할 수 있다.’하는 등의 허위사실을 의도적으로 유포하여 학생들의 혼란을 유도하고 있습니다. 또한 매를 들지 않고는 도저히 학생들을 가르칠 수 없다는 무개념한 교사들은 될 대로 되라며 여전히 학생들을 패고 있습니다.

교육감의 체벌금지 조치가 내려진 서울의 상황도 이와 비슷합니다. 말로만 체벌 금지이지, 저처럼 서울의 사립고를 다니는 학생의 입장에서 겪는 학교는 전혀 변한 것이 없습니다. 체벌금지 조치가 내려진 이후에도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 교사들은 여전히 매를 들었습니다. 또한 간접체벌도 체벌임을 모르는 무지한 교사들에 의해 엎드려뻗쳐나, 오리걸음 등의 간접체벌은 체벌을 대체한다는 명목 하에 오히려 더 성행했습니다. 교장의 지시 아래 학교는, 학생들과 그 어떤 논의도 거치지 않은 채, 체벌을 대체한다는 구실로 기존의 상·벌점 제도를 대폭 강화하였고, 교사들은 사소한 일에도 벌점을 남발하였습니다. 전혀 사라지지 않은 체벌과 함께 무분별하게 벌점이 남발되는 상·벌점 제도는 학생들을 이중으로 옥죄고 있습니다.

저를 비롯한 서울과 경기도의 학생들이 느끼는 학교에서의 인권 침해는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며, 학생인권조례와 체벌금지조치에 반발하여 보란 듯이 학생들을 갈구는 학교와 교사들에 의해 오히려 그 정도가 심해지고 있는 상황입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경기도의 학생인권조례를 각 학교들에 정착시키고, 다른 지역에도 제대로 된 학생인권조례를 하루빨리 제정하기 위해 많은 노력이 필요한 때입니다. 다행히도 경기도 학생인권조례가 통과된 이후, 그 뒤를 이어 많은 지역에서 뜻 있는 개인, 단체들이 스스로의 힘으로 자신의 지역에서 학생인권조례를 만들어 보고자 하는 운동을 일으켰습니다. 그 중 서울에서는 인권, 교육, 청소년 등 다양한 분야의 단체들이 모여 ‘학생인권조례제정운동 서울본부’를 발족시켰습니다. 그리고 학생인권조례제정운동 서울본부에서는 서울시민들과 교육 주체들의 힘을 모아 서울에서 학생인권조례를 제정하기 위해 주민발의 운동을 시작했습니다. 주민발의안의 형식으로 서울시민들의 서명을 얻어 아래로부터의 민주주의를 보여주고자 한 것입니다.


 하지만 그 과정이 순탄치만은 않습니다. 채 자리도 잡지 못한 경기도 학생인권조례와 갑작스레 시행된 서울의 체벌금지 조치에 관한 보수 언론들의 의도적인 왜곡, 과장 보도. 진보 교육감들의 정책을 무력화 시키려는 의도가 노골적으로 드러나는 교과부의 초중등교육법 시행령 개악 등. 극도로 열악한 환경 속에서 서울의 주민발의 운동은 현재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주민발의안을 시의회에 제출하기 위해서는 4월 말까지 만19세이상 서울 시민의 1%, 약 8만명의 서명을 받아야 하지만, 2월 말 현재 모인 서명은 2만도 채 되지 않습니다.


만19세 미만 청소년, 학생들의 서명을 받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하지만 당사자인 초중고등학생들은 정작 서명을 할 수 없는 상황입니다.



 


어떻게든 이 운동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하기 위해, 저를 비롯한 많은 청소년 활동가들이 거리로 나가 서명운동을 벌이고 있습니다. 아직 추위가 채 물러가지 않은 날씨 속에서 매일 5~6시간씩 강행군을 하며, 매 주 1천명의 서명을 받아내고 있습니다. 하지만, 신원확인을 위해 필요한 주민등록번호와 거주지 기재에 대한 시민들의 거부감, 학생인권조례에 대한 무관심과 오해 등으로 이러한 거리서명운동도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이마저도 중, 고등학교들의 개학 이후에는 학교에 다니는 청소년인 대부분의 활동가들의 참여가 제한되는 등 그 앞이 불투명한 상황입니다.

지금 학생인권조례를 추진하고자 하는 각 지역의 사람들이 서울의 상황을 관심 있게 지켜보고 있습니다. 서울에서 가장 먼저 시작된 주민발의 운동이 성공적으로 완수된다면 전국적인 학생인권조례제정운동에 기폭제가 될 수도 있지만, 이대로 무너지게 된다면 오히려 앞으로 일어날 전국적인 제정운동의 발목을 잡게 될 수도 있습니다. 어떻게든 서울에서의 주민발의 운동을 성공적으로 완수하여, 각 지역 학생인권조례 제정운동의 디딤돌로 삼아야 합니다.


뜻 있는 많은 개인, 단체들의 참여를 부탁드립니다. 앞으로 남은 2개월, 짧은 기간이지만 얼마든지 가능합니다. 아니, 여러분들의 작은 노력이 조금씩 보태진다면 2개월은 한참 긴 시간이 될 수도 있습니다. 여러분들의 힘으로 서울의 학교를 바꿔낼 수 있습니다. 민주주의가 살아있는 학교. 더 이상의 차별, 폭력이 없는 학교. 학생들이 진정으로 자유롭게 숨 쉬며 꿈을 꽃 피울 수 있는 학교. 학생과 교사 모두 진정으로 행복한 학교. 여러분들의 작은 노력 하나로 가능합니다. 참여 부탁드립니다.

 


http://sturightnow.net 학생인권조례 제정 운동 서울본부 홈페이지 -> 이 곳에서 서명해주세요!!

http://bit.ly/g6jMsH  우편으로 서명용지 간편하게 우체통에 넣기만 하면 됩니다!

 


미소지음 (서울, 고등학교 3학년 학생)

 
Posted by 공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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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임빠

    2011.05.30 23:55 [ ADDR : EDIT/ DEL : REPLY ]
  2. 학생도우미

    그래요... 이렇게라도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고 계시니 그 목소리 꼭 더 많은 곳에 들릴 거예요^^

    2011.05.31 00:19 [ ADDR : EDIT/ DEL : REPLY ]
  3. 신나라

    학생인권. 반드시 존중되어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현실적인 방안이 시급합니다.

    2011.05.31 00:41 [ ADDR : EDIT/ DEL : REPLY ]
  4. 아아수

    그렇습니다 인권존중되어야 합니다

    2011.05.31 01:04 [ ADDR : EDIT/ DEL : REPLY ]
  5. 학생인권

    꼭 보장해주십시오~

    2011.05.31 01:37 [ ADDR : EDIT/ DEL : REPLY ]
  6. cat

    맞습니다~ 맞지요~!!

    2011.05.31 01:59 [ ADDR : EDIT/ DEL : REPLY ]
  7. 나무

    잘 읽고 갑니다~

    2011.05.31 08:32 [ ADDR : EDIT/ DEL : REPLY ]
  8. ㅇㅇ

    우리의 학생..지킵시다.

    2011.05.31 08:33 [ ADDR : EDIT/ DEL : REPLY ]
  9. 전국 학생들 화이팅

    2011.05.31 09:07 [ ADDR : EDIT/ DEL : REPLY ]
  10. bada

    청소년은 우리의 미래입니다!! 보장해주세요~

    2011.05.31 09:20 [ ADDR : EDIT/ DEL : REPLY ]
  11. 청소년

    ^^

    2011.05.31 10:25 [ ADDR : EDIT/ DEL : REPLY ]
  12. 보름달

    청소년들이 바르고 긍정적으로 자라기를

    2011.05.31 11:02 [ ADDR : EDIT/ DEL : REPLY ]
  13. 나학생

    화이팅!!!

    2011.05.31 19:36 [ ADDR : EDIT/ DEL : REPLY ]
  14. 많이좋아졌다곤 하지만아직 잔재가 남아있는 현실...
    하루빨리 학생들도 인권을 존중받는 날이 왔음하네여

    2011.05.31 19:44 [ ADDR : EDIT/ DEL : REPLY ]
  15. 김혜리

    ^^♥

    2011.05.31 22:55 [ ADDR : EDIT/ DEL : REPLY ]
  16. 힘내요!!! 힘힘힘!!!

    2011.06.02 00:36 [ ADDR : EDIT/ DEL : REPLY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