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인권'에 해당되는 글 239건

  1. 2008.09.05 ‘일제고사’를 비롯한 몹쓸 교육정책에 대한 불복종 행동을 제안합니다. (아수나로 서울지부)
  2. 2008.09.04 입시경쟁의 중심에서 인권을 외치다 (청소년인권행동 아수나로 교육문제 전단지) (4)
  3. 2008.07.19 서울시교육감 후보 기호0번 청소년? ㅋㅋ
  4. 2008.07.14 먹는 것에도 민주주의가 있다 (2)
  5. 2008.07.05 투덜리즘 : 명박이 치하의 꿈높현시 (2)
  6. 2008.06.13 달마다 하는 청소년인권 놀이터 빨강물고기 두 번째, 6월 21일 (2)
  7. 2008.05.09 청소년들을 평등한 정치적 주체로 인정하라!
  8. 2008.05.01 진성고등학교 관련, 결과 정리 ~_~ (2)
  9. 2008.04.29 달마다 하는 청소년인권 놀이터 빨강물고기~
  10. 2008.04.28 학교자율화에 대한 반대를 넘어서, 청소년의 인권을 쟁취하자
  11. 2008.04.28 학생인권을 위한 전면적 변화의 계기가 되길
  12. 2008.04.21 학교자율화 반대 4.19 청소년 촛불문화제, 후기와 짧은 생각들
  13. 2008.04.18 이른바 '학교자율화'란 이름의 뭐시기, 그리고 낚시-_-
  14. 2008.04.18 우리보고 죽으란 건가요? 학교자율화 반대 청소년 촛불문화제 4.19 6시 광화문
  15. 2008.03.28 강요되는 종교, 강요의 교육
  16. 2008.03.04 (레디앙) 전국의 놀이터여, 단결하라!
  17. 2008.02.19 진성고, 두발규제 반대 종이비행기 시위 (4)
  18. 2008.02.11 가르친다는 것은 다만 ‘함께’ 희망을 노래하는 것이다
  19. 2008.01.08 독일 쉬피겔지(紙)에 보도된 한국의 2005년 두발규제폐지 운동에 대한 기사
걸어가는꿈2008. 9. 5. 12:02



‘일제고사’를 비롯한 몹쓸 교육정책에


대한 불복종 행동을 제안합니다.


청소년인권행동 아수나로 서울지부


초필살 교육 현실


  유난히도 시간이 빠르게 흐른 한 해입니다. 2008년도 벌써 후반에 접어들면서 이명박 대통령과 공정택 서울시교육감의 막장 교육정책도 하나 둘 자리를 피고 눌러앉을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연초 세간을 떠들썩하게 했던 학교자율화 조치만 해도 벌써 사람들의 머릿속에서 잊혀진 채 학교에 ‘0교시’ ‘우열반’을 상시대기 시킬 기반으로 자리를 잡았으니, 두어 달만 지나면 지금 인터넷 신문에 줄줄이 뜨고 있는 국제중 설립에 관한 기사도 언제 그랬냐는 듯 사람들의 시야에서 자취를 감출 지 모를 일입니다. 시간이 흐르는 걸 막을 순 없습니다. 시간이 흘러 세상 사람들의 관심이 떨어지는 것 또한 애석하게도 사람 손으로는 막기가 힘듭니다. 하지만 막지 않으면 안 될 일들이 있고, 우리는 그 일들을 막아보고자 여러분에게 함께 하자는 제안을 드리려 합니다.

  이명박 대통령 취임과 공정택 교육감 당선 이후 밀려드는 일련의 교육정책들은 오직 한 가지 ‘필살경쟁’의 길로 학생들을 몰아넣고 있습니다. 물론 그 전부터도 이 땅의 교육은 ‘필살경쟁’이었지만, 이제는 ‘초필살경쟁’으로 진화(?)하고 있다고 해도 무방할 듯합니다.
  그들은 대한민국 학생들이 공부(경쟁)를 위해 태어난 인간이 되길 바라고, 온갖 술수를 통해 그렇게 만들려 하고 있습니다. 국제중을 비롯하여 이명박 정부의 고교 서열화 300 프로젝트 등등, 이것들은 한 마디로 ‘경쟁기지’입니다. 이러한 경쟁기지들이 전국에 우후죽순으로 들어설 예정이고, 딱히 예지능력이 없더라도 미래가 어떨지는 쉽게 예측할 수 있습니다. 서울이건 지방이건 학교 간 서열화는 더욱 기승을 부리고 학생들 간의 경쟁은 더욱 치열해지겠지요. 행복? 행복할 시간이 어디 있겠습니까. 공부하기도 바빠 죽겠는데.

  10월 14, 15일에 국가 주도 학업성취도평가 이름의 일제고사가 치러집니다. 2010년에는  학업성취도평가 성적을 3등급으로 나눠 학교 홈페이지에 공시하는 학교정보 공개법이 시행되고, 서울시에서는 학교선택제가 본격적으로 실시됩니다.
  2010년 시행이라 학교정보공개법이 이번 해엔 소용이 없다고 하더라도, 공개할 성적정보가 생긴다는 것만으로도 일제고사는 자신의 역할을 훌륭히 수행합니다. 전국의 학생들을 줄 세울 잠재적인 자료를 마련하는 것이 일제고사의 1차적인 목적이니까요. 이것은 이후 학생들의 성적으로 학교들을 줄 세울 자료가 되고, 학교가 학생들(어쩌면 학부모)의 선택을 받기 위해 더욱 더 ‘입시경쟁교육’ 에 박차를 가할 이유가 되겠지요. 일제고사와 학교정보공개법, 학교선택제는 국제중, 자율형 사립고 등등과 나란히 극심한 경쟁을 유발할 테고, 날이 갈수록 심해지는 경쟁에서 살아남으려는 학생들은 상위권 학교에 선택받기 위해, 지금도 그렇지만, 더욱더 ‘입시형 인간’이 되려 할 것입니다. ‘고3은 인간이 아니다’ 따위의 말이 고등학교 중학교 심지어 초등학교까지 퍼져갈 것이란 예상도 어렵지 않게 할 수 있습니다.



‘일제고사 거부’(또는 불복종)에서부터 경쟁교육 반대로~


  이 끊임없이 악화일로로 치닫는 경쟁교육에서 일제고사는 일종의 시작점이자 하나의 계기입니다. 우리는 아직 사람들이 이런 새로운 경쟁적 교육제도들에 순응하기 전에, 이 제도를 당연시하고 익숙한 것으로 받아들이기 전에, 시작되기 전에 이를 막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를 위해서는 일제고사를 거부하고 일제고사에 불복종하는 운동이 필요합니다.

  왜 하필 부담스럽고 실현가능성도 높지 않아 보이는 ‘불복종’이 필요하다고 하는 거냐구요? 그건, 지금까지 우리(교육운동이건, 청소년인권운동이건 기타 등등)가 해온 집회나 1인시위나 기자회견 같은 것들이 이제는 너무나 식상하고 효과가 적다는 것이 분명하기 때문입니다. 귀를 꽉 막고 있는 저 사람들이, “아 그러셔?” 하고 무시하고 지나가거나, 아니면 슬쩍 물타기 해서 넘어갈 것이 뻔하기 때문입니다. 지금은 경쟁교육을 직접 거부하는, 좀 더 빡센 ‘직접행동’을 고려해야 하는 때입니다. 정책 제안과 토론회와 기자회견과, 가끔 가다가 조직된 사람들이 머리수를 채우는 집회만 줄창 하며 허우적대고 있는 교육운동을 벗어나야 할 때입니다. 내신 성적에 들어가지 않고, 특정한 날짜에 전국에서 동시에 시험을 보는 형태의 ‘일제고사’(전국학업성취도평가?)는 대대적인 불복종을 기획하기에 좋은 조건을 갖추고 있습니다.
  또한 우리는, 일제고사를 직접 보진 않더라도 경쟁을 조장하는 정책들과 입시경쟁교육에 반대하는 모든 청소년들의 직접 행동을 제안합니다. 일제고사를 직접 보는 3개 학년 뿐 아니라 다른 청소년들도 10월 14, 15일을 계기로 행동하게 만드는 것은 더 큰 파장을 불러일으킬 수 있을 것입니다.
  실패, 혹은 패배가 걱정될 수도 있을 것입니다. 탄압을 각오해야 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최대한의 성과를 만들기 위해 긴 준비와 물밑작업을 할 것이고, 설령 패배하고 실패한 것처럼 보이더라도 그 패배는 새로운 도전과 시도를 그 바탕에 깔고 있기에 앞으로의 운동에 유의미한 것이 될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언제나 우리가 정말로 원하는 것은 덜한 지옥이 아니라 학력 학벌과 상관없이 사람답게 살 수 있는 세상입니다. 우리는 행복한 교육, 시험에 시달리지 않아도 되는 교육, 경쟁에 내몰리지 않아도 되는 교육을 원합니다. 미사여구 없이 담백하게 말해서, 우리는 정답을 강요하는 시험과 차별을 만드는 경쟁, 인권을 침해하는 교육이 모두 싫습니다. 일제고사 반대를 계기로, 이에 관하여 입시경쟁교육 폐지를 위한 행동을 연결해나가야 할 것입니다.

  날짜는 다가오는데, 일제고사가 이뤄질 것이란 사실은커녕 일제고사가 무엇인지조차 모르는 사람들이 수두룩합니다. 당사자인 학생들조차 그렇습니다. 멍하니 손놓고 시험지 오기만 기다리는 학생들, 학부모, 교사들.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무서운 것은 아무것도 하지 않았는데도 불구하고 원하지 않는 결과를 감당해야한다는 것입니다. 방관이라는 동조를 택한 대가인지도 모르지요. 모두가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면, 마의 2010년에는 이명박 대통령이나 공정택 교육감이 원하는 대로 모든 것이 준비되어 있을 것입니다.
  일제고사나 국제중 설립이나, 막기 위해선 언제나 그렇듯 보다 많은 사람들의 힘이 필요합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을 거부할 사람들과 함께 할 수 있길 바랍니다.


(이하 구체적인 제안과 계획서 등은 보안 관계(?)상 생략)

Posted by 공현

댓글을 달아 주세요

걸어가는꿈2008. 9. 4. 17:25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사용자 삽입 이미지


반으로 접는 타입의 A4구요~
전체디자인은 밤의마왕 님이, 그리고 일부 사진 첨가랑 텍스트는 공현이 했어요 @_@






1페이지


  일제고사, 학교자율화(=학교학원화 또는 교육포기), 고교등급제, 국제중, 대입규제폐지... 바로 지금 경쟁력을 높인답시고 가고 있는 교육의 모습이야. 안 그래도 미쳐있던 교육이 더 미치려나 봐. 안 그래도 받기 힘들던 교육이 더 힘들어지려나봐.

  정말 사람들이 행복한 교육, 청소년의 인권이 보장되는 교육이 뭔지, 우리들이 직접 나서서 가르쳐줘야 되지 않겠어?


입시경쟁의 중심에서

인권을 외치다



“피할 수도 없고 즐길 수도  없으면
                      싸워서 바꿔야 합니다”




청소년인권행동 아수나로
cafe.naver.com/asunaro






2페이지


입시경쟁의중심에서인권을외치다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
1986년 자살한 중학생의 유서 中

  난 1등같은것은 싫은데... 앉아서 공부만 하는 그런 학생은 싫은데, 난 꿈이 따로 있는데, 난 친구가 필요한데... 이 모든 것은 우리 엄마가 싫어하는 것이지. 난 인간인데. 난 친구를 좋아할 수도 있고, 헤어짐에 울 수도 있는 사람인데.
...... 너무나 모순이다, 모순. 세상은 경쟁! 경쟁! 공부! 공부! 아니 대학! 대학! 순수한 공부를 위해서 하는 공부가 아닌, 멋들어진 사각모를 위해, 잘나지도 않은 졸업장이라는 쪽지 하나 타서 고개 들고 다니려고 하는 공부.
......매일 경쟁! 공부! 밖에 모르는 엄마. 그 밑에서 썩어들어가는 내 심정을 한 번 생각해 보았습니까? 난 로보트도 아니고 인형도 아니고, 돌멩이처럼 감정이 없는 물건도 아니다. 밟히다밟히다 내 소중한 삶의 인생관이나 가치관까지 밟혀버릴 땐, 난 그 이상 참지 못하고 이렇게 떤다.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 난 그 성적순위라는 올가미에 들어가 그 속에서 허위적거리며 살아가는 삶에 경멸을 느낀다.




“하지만 사회는 내게 그걸 바라지 않아”
2007년 자살한 중학생의 유서 中

인간은 항상 자유를 추구하는구나.. 나도 자유로운 사람이되야지. 라고 생각했었어.
근데 현실은 너무달라. 상상 이상으로 너무달라.
공부힘들어서 자살하는 사람들.. 다 남이야기 같았어. 하지만 아니야.
공부공부공부공부. 좁디좁은교실에 선풍기4대히터2대. 40명이 넘는 아이들.. 같은곳에서 각기 다른재능을지닌 아이들이 오직 한가지만 배우고 있었어. “대학가는법”.
슬펐어.
……난 사실 평범한 여중생일뿐이야.
노래부르길좋아하고, 그림그리길좋아하고, 수다떨길좋아하고, 친구들과 어울려놀기를 좋아하는,
하지만 사회는 내게 그걸 바라지않아.
같은머리 같은옷 그리고 같은공부.
쫍디쫍은 교실에 아이들을 구겨넣고, 선풍기4대와, 히터2대. 그리고 선생님..


(청소년인권행동 아수나로 교육비판&선동 전단지 ㅋㅋ)







3페이지


경쟁적 교육은 인권침해다!

  다들 “교육에 문제 있다.”라고 씹기 바쁘지만, 정작 교육을 바꿔보려는 사람들은 별로 없지. 어떤 사람들은 학벌과 입시, 경쟁과 차별은 당연한 거라고, 바꿀 수 없다고, 피할 수 없으면 즐기라고 말하지.
  그 동안에도 많은 사람들이 교육 때문에 목숨을, 행복을, 꿈을 잃고 있지.
  교육 같지도 않은 교육 속에서, 인권도 행복도 삶도 무시되고 있어. UN아동권리위원회도 한국의 경쟁적 교육이 청소년들의 인권을 침해하고 있다고 지적했지. 입시경쟁은 쉬고 놀 권리를 짓밟고, 성적이나 학교에 따른 차별을 만들고, 체벌 같은 폭력의 이유가 되고, 획일적인 교육을 만들지. 이런 상황에선 ‘선택’ ‘자유’ 같은 건 다 거짓말이야. 기본환경 자체가 강압이잖아?
  정답만 강요하는 시험과 점수라는 숫자들로 우리를 값매길 수 있다는 발상은 정말 토 나와. 입시경쟁은 모두에게 안 좋아. 획일적이고 점수 따는 법이나 가르치는 게 제대로 된 교육이나 자기개발일 수는 없어. 입시경쟁은 교육권/발달권을 짓밟는 명백한 인권침해야.



피할 수도 즐길 수도 없으면 싸워서 바꾸자!

  입시폐지, 대학평준화, 학벌학력차별금지 같은 것들은 좀 더 살만하고 행복한 교육을 만들기 위한 시작이고 한 걸음이야. 다양하고 평등한 사회, 인권을 존중하는 교육, 민주적인 교육, 모두 가능한 일이야.
  이제 어쩔 수 없다고 순응하지만은 말자. 입시경쟁교육을 거부하자. 이제 우리가 원하는 교육, 새롭고 다른 교육, 우리가 행복한 교육을 말하자.








4페이지

2MB 교육 정책, 갑갑해서 목이 메는 우리들

  정부는 “다양성”과 “교육권”을 보장하겠다며 경쟁을 더 빡세게 하고, 학교와 학원에 대한 규제들을 없애겠다고 해. 시험을 더 많이 보고, 성적을 공개해서 학교와 학생들을 더 줄 세우겠다고도 하지. 정말 갑갑해서 목이 메이지 않니? ㅠ  “다양성”과 “교육권”은 경쟁을 빡세게 시켜서는 이룰 수 없어. 반대로, “다양성”과 “교육권”은, 서로 다른 사람들을 서열화하지 않고 평등하게 대우하고 존중할 때 보장할 수 있는 거야.
  입시경쟁을 없애야 해. 점수로 인간을 평가하는 시험과 서열화를, 반강제적인 학교/학원의 입시교육을 중단시켜야 해. 정작 우리는 행복하지 않은데, 국가경쟁력 몇 위고 어쩌구 하는 게, 정말 그렇게 중요한 일이야?



청소년인권을 위한 기분 좋은 상상&실천

- 일제고사 같은 듣보잡 경쟁교육 정책들에 시험거부 등으로 저항하자.
- 경쟁을 일으키는 대학서열화를 깨고 대학평준화, 무시험 입학 등을 도입하자.
- 학력, 학벌, 학과, 직업 차별을 최소화하거나 없애기 위한 변화를 만들어 가자.
- 모두를 위한 공짜(무상)교육과 환경, 시설 개선을 위해 교육예산을 늘리게 하자.
- 교육과정과 수업내용 정하는 것에 청소년들의 민주적참여를 보장하게 만들자.
-                                                           (상상력을 발휘해서 직접 채우기 ^^)



Let's ASUNARO

  핀란드 같은 나라의 교육들은, 적어도 한국보다는 좀 더 청소년들의 인권과 행복을 보장해주고 있습니다. 더 나은 교육은 분명히 가능합니다. 프랑스와 칠레 등에서는 청소년들이, 때로는 교사들이나 학부모들 등과 함께, 직접 행동하여 교육 정책들을 바꿔냈습니다. 당연한 권리가 짓밟힐 때, 필요한 것은 비겁한 침묵과 순응이 아닌 저항입니다. 청소년인권행동 아수나로는 바로 당신, 바로 여러분이 같이 하기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청소년인권행동 ASUNARO
Posted by 공현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공현님, 이화여대 교육학과 오욱환 교수의 <한국 사회의 교육열 : 기원과 심화> (교육과학사) 혹시 읽어보셨나요?
    제가 본 책들 중에서 이 '학벌출세사회' 의 기원을 가장 잘 밝힌 책이라서요. 제 블로그에도 소개를 하려고 했는데 여차저차해서 미뤄졌습니다. 출세교육론이 지배하는 사회와, 그게 어디서부터 비롯되었는지 차근차근 밝히고 있으니 한 번 읽어보세요. 각 대학교 도서관에도 있을겁니다. 청소년인권운동이 좀 더 전략적(전쟁용어 쓰기 싫지만...)으로 성공하는데 보탬이 됐으면 합니다. 학벌경쟁에 뛰어드는 한국 사회 구성원들의 심리와 인과관계를 파악하는 게 그 첫걸음일 것 같아서요.

    (....아하, 그런데 제가 이미 이 책을 추천해드린 적이 있었던 것 같군요. 언젠지는 확실히 기억이 안 나지만^^;;)

    그리고 저도 조만간(언제가 될지는 확실치 않음) 네이버에서 다른 블로그로 이사할 것 같아요. 참다 참다 도저히 안 되겠는 순간이 왔네요.

    2008.09.05 11:57 [ ADDR : EDIT/ DEL : REPLY ]
    • 음 @_@ 네 예전에도 한 번 추천을...;
      읽어야지 읽어야지 하며서 못 읽고 있네욥

      글쿤요~ 이사하면 알려주세요 ㅎㅎ

      2008.09.05 12:03 신고 [ ADDR : EDIT/ DEL ]
  2. 버람

    새로운 디자인을 시도해봐....

    2008.09.07 18:35 [ ADDR : EDIT/ DEL : REPLY ]
    • 나도 그러고 싶지만... 흠 쉽지 않아 ㅡㅡ;;

      다음 거부터는 그래야지 ㅎㅎ

      근데 저건 내가 디자인 한 거 아니오

      2008.09.08 12:31 신고 [ ADDR : EDIT/ DEL ]

걸어가는꿈2008. 7. 19. 11:33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사용자 삽입 이미지



기호 0번, 사실 그 누구보다도 0순위로 선거에 참여했어야 했을 후보가 나왔다.

바로 "청소년"

7월 17일에 서울 선관위 앞에서 출마 선언을 한 청소년 후보.
 (기자회견 제목이 "청소년 빠진 교육감 선거 한 달도 못가 2MB 된다"다 ㅋㅋ)

프레시안 기사


한겨레 기사


이 후보는 어느 한 사람이 스타가 되는 걸 원하지 않기 때문에, 벽보 촬영도 가면을 쓰고 햇고 집단 후보 "청소년"으로 나왔다고 한다.


http://csn08.tistory.com

청소년 후보의 블로그다 ㅋㅋ


정말 캐발랄한 선거운동이 되길 바라며.
Posted by 공현

댓글을 달아 주세요

걸어가는꿈2008. 7. 14. 17:13
아수나로북에 들어가는
급식, 청소년인권, 먹거리, 식품, 생태적 먹거리, 건강권 뭐 그런 것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먹는 것에도 민주주의가 있다



  급식 괴담을 아는가? 국에서 바퀴벌레 시체가 나왔다거나, 구더기가 나왔다거나, 몇몇 사립학교들 같은 경우는 급식비는 비싼데 급식의 질이 형편없는 걸 봐서는 뭔가 비리가 있다는, 뭐 그런 누구나 한 번쯤 들어봤을 법한 이야기들 말이다. 학생들이 벌레 등이 들어간 급식을 먹고 괴물이 되어버리는, <급식해저드>라는 만화까지 있을 정도다.
  이런 사실적 괴담(?)까지 가지 않더라도, 우리는 이미 급식으로 인한 집단 식중독이라거나, 어느 사립학교에서 급식비리가 있었다거나 하는 생생한 사건들을 직접 경험하거나 전해 듣곤 한다. 특히 최근에는 vCJD(변종크로이츠펠트야곱병. 소위 ‘광우병’. 나는 소에게 “미쳤다”라는 딱지를 붙이는 광우병이라는 이름에 반대한다.) 위험 쇠고기까지 대두되면서 먹거리의 안전성이라는 문제가 도마에 오르고 있다.
  먹거리 문제는 중요한 청소년인권 문제다. 나는 이런 이야기들을 건강권/안전할 권리와 알 권리(식품과 소비자 이야기할 때 꼭 등장하는 두 권리), 그리고 민주주의라는 말로 풀어보려고 한다. 먹는 것에도 민주주의가 있다. 아주 중요한.




급식운영을 민주화하라!


  먼저 민주주의의 가장 기초적인 부분부터 지적하자면, 급식운영을 민주화하는 것일 터이다. 특히 급식을 직접 먹는 당사자들인 청소년/학생들(그리고 교사들)의 급식운영 참가는 중요하다. 급식운영에서의 예산과 시설, 그리고 전반적인 운영의 의사결정 과정에 학생들이 참여해야 한다. 학생들의 의견을 실시간으로 수렴하고, 학생들의 권익을 보장할 수 있는 학생 급식 담당자들을 둘 필요가 있다.
  지금까지 급식의 문제 중 상당수는 급식을 직접 먹는 당사자들의 의견이 거의 반영되지 않았고 학생들은 그저 주는 대로 먹어야 했다는 것이다. 많은 학생들이 ‘사육’당한다고 느끼는 데는 그런 급식도 한 몫 했을 것이다. 급식운영에 학생이 참여하는 것도, 소수의 사람들만 급식운영에 참여하는 게 아니라 모든 학생들이 급식운영에 대해 알 수 있도록 공개해야 하고, 수시로 학생들이 운영에 참여하거나 급식시설을 체험/감시할 수 있도록 하여 급식 과정과 가까워지고 이를 통제할 수 있게 해야 한다.
  이런 면에서 위탁급식(급식업체에 돈을 주고 급식을 맡겨서 운영하는 것)보다는 직영급식(학교에서 직접 급식을 운영하는 것)이 더 민주적이다. 기업을 거치는 위탁급식보다는 아무래도 직영급식에 학생들이 직접 참여하고 감시할 여지가 더 많을 수밖에 없다. 직영급식은 기업의 이해관계에는 신경 쓰지 않아도 되고, 학교에서 직접 운영하는 것이니까 말이다.
  또, 직영급식은 위탁업체보다 식중독 발생률이 낮다. 급식 위탁업체는 급식 시설비용도 부담해야 하기 때문에, 이윤을 남기기 위해 값싼 식재료를 사용하는 경우가 종종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지금 당장 모든 학교의 급식을 직영화하기는 어렵겠으나 점차적으로 예산을 확보하고 시설을 만들어가야 한다. 이 과정에서 학생들의 급식운영 참여를 보장해야 하는 것은 물론이다. 최근에 문제가 되고 있는 vCJD 위험 쇠고기의 경우에도, 이런 직영급식과 학생들의 민주적인 참여와 통제를 통해 vCJD 위험 쇠고기가 급식에 사용될까봐 불안해하는 것을 최소화 할 수 있을 것이다.(사실 미국산 쇠고기 수입 자체도 비민주적인 정부의 독단에서 비롯된 문제다.)




먹거리는 그냥 상품이 아니다!

  하지만, 급식운영 과정에서의 민주주의는 그야말로 기초이다. (그 기초조차 안 되어 있어서 입 닥치고 먹어야 하는 게 현실이기도 하지만 -_-.) 이제 우리는 식재료를 생산하고 유통하는 과정 자체의 민주주의에 대해 고민해봐야 한다. 지금까지 우리는 우리로부터 먼 어딘가에서 어떻게 만들어진지도 모르는 식재료들과 식품들이 어떤 과정으로 유통되었는지도 모르게 근처 가게에 진열되어 있는 ‘상품’들을 돈 주고 샀을 뿐이다. 이 과정에서 알 권리나 건강권, 민주주의 같은 것은 고려대상이 아니거나 ‘복불복’ 식으로 운에 맡겨지게 된다.
  그 대안으로 유통과정을 축소시키고 생산지의 소식을 전해들으며 생산 과정이나 방식 등을 최대한 공개하는 생활협동조합(생협) 시스템이나 산지 직거래 방식 등이 나오고 있다. 이런 방식 속에서, 생산자와 소비자는 좀 더 소통하게 되고 좀 더 민주적으로 생산과 유통과정에 개입할 수 있게 된다. 생산 과정에서 더 생태적이고 안전한 먹거리를 만들기 위한 노력과 함께. 먹거리는 우리 생활의 가장 기본적인 문제이기 때문에, 단순한 상품 논리만 적용할 수는 없는 것이다.

* 무상급식 : 먹거리가 단순한 상품이 아니기 때문에, 무상급식은 중요한 가치이다. 일단 무상교육의 이념 속에서는 학교에서 먹는 급식도 무상이어야 하는 것이 당연하다. 그리고 무상급식은 먹거리가 단순한 상품이 아니고 기본적인 권리라는 관점에서 실현되어야 한다. 최소한으로 필요한 건강한 먹거리는 돈과 관계없이 먹을 수 있음을 당연한 것으로 정착시키기 위한 교육적 목적에서라도 무상급식은 필요하다. 예산 해결을 위해 성금이나 기부금을 모을 수도 있을 것이나, 그 기본은 공짜 급식이어야 한다.

  여기에서 내가 생태적 먹거리라는 말을 사용했는데, 이 말이 무슨 의미인지 구체적으로 살펴보고 넘어가겠다. 생태적인 먹거리의 요건은 여러 가지가 있겠으나, 우선 살충제나 화학비료, 성장촉진제 같은 수단(생태계를 파괴하고 먹는 사람에게도 안 좋은 영향을 미치는)을 사용하지 않거나 최소한으로 사용하는 것이 기본일 것이다. 한 발 더 나아가서는, 한 가지 종류의 작물을 집중적으로 재배(농약, 살충제에 의존하거나 유전자를 조작해가며)함으로써 생태계를 붕괴시키거나 동물들을 매우 파괴적인 환경에서 성장촉진제와 항생제를 쩔도록 투여해가며 대량사육하는 등의 공장식 대량생산시스템이 아닌, 좀 더 생태계를 존중하는 생산 시스템에서 나온 먹거리를 ‘생태적’이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생태적인 먹거리는 지속가능한 식량생산을 위해서도, 그리고 그것이 인간의 기만일지언정 조금 더 동식물 윤리적인 생산을 위해서도, 마지막으로 그 먹거리를 먹는 사람을 위해서도 꼭 실현되어야 한다. 특히 vCJD나 조류독감 등의 질병이 동물들을 공장식으로 대량생산하는 축산업 시스템에 의해 더 쉽게 전염되고 있으며 ‘인간에 의해 만들어진 질병’이라는 의혹을 받고 있는 현재의 상황은 생태적 먹거리의 필요성을 더욱 부각시키고 있다.(소의 vCJD와 관련하여 소를 죽인 나이가 20개월이나 30개월이니 말이 많은데, 실제로 소의 평균수명은 약 20년이다. 그런 소를 2~3년 동안 성장촉진제와 동물성 사료, 항생제를 먹여가며 강제로 빨리 키워서 죽이는 이 시스템이 과연 윤리적이거나 생태적인 걸까?)
  이런 생태적 먹거리들이 현재로서는 비싼 축에 든다. 하지만 반대로 생각하면 싼 가격에 사먹었던 공장식 대량생산시스템에서 나온 먹거리들이 그 싼 가격 대신 얼마나 많은 생태적 가치 등을 희생해왔는지를 생각해야 한다. 모든 사람이 생태적 먹거리를 먹을 수 있도록 사회가 보장해야 하며, 육식과 대량소비에 익숙해진 사회구조를 변화시킬 필요도 있다.
  이와 같은 시스템을 급식에 적용한다면, 학교 차원에서 직접 학생, 교사와 함께 농사나 양식 등을 통해 생태적인 먹거리를 생산하는 것을 구상해볼 수 있다. 실제로 학교에서 먹는 식량을 다 조달할 수는 없겠지만 어느 정도는 책임지고 안전한 먹거리를 만들 수 있을 것이다. 또, 단순히 상품을 소비하는 소비자의 위치를 넘어서 어떻게 먹거리가 만들어지는지를 이해하고 체험하는 것은 교육적으로도 중요하다. 여기에서 한 단계 더 발전하면 지역의 학교들과 생활협동조합을 만들어서 생산자와 직접 소통하고 안전하고 생태적인 먹거리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덧붙여서 나는 학생들이 급식을 만들고 배식하는 과정, 설거지 과정 등에도 함께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사실 수학 문제 몇 개 더 푸는 것보다 중요한 교육은 이런 가사노동 분야이다. 30대가 되도록 제대로 할 줄 아는 요리가 몇 개 없어서 요리책에 의존하거나 일부 여성에게 의존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가? 이는 결국 성별분업 논리(사실 급식을 맡아서 만드는 직원들의 다수는 여성이다.)물론 수백 명, 수천 명의 학생들이 먹는 급식을 학생들이 하루종일 만들고 있을 수는 없지만 정기적으로 학생 당번을 정해서 돌아가며 급식 만드는 일에 참여하는 방안 등과 학교당 학생 수를 줄이는 일 등을 검토해볼 필요가 있다.




우리는 ‘먹이는’ 존재가 아니다

  급식을 비롯해서 먹거리에 관한 논의에서 우리가 흔히 접하게 되는 것은 청소년들을 매우 수동적인 존재, 또는 보호해야 할 대상 정도로만 취급하는 태도이다. 급식문제에 대해 “우리 아이들에게 좋은 걸 먹이고 싶어하는 어머니의 심정” 운운하는 것은, 성별분업적 표현(왜 항상 어머니가 먹거리를 걱정하는 제1순위 주체인가?) 때문에도 옳지 못하지만, 아동-청소년을 보호해야 할 대상으로만 본다는 점에서도 옳지 못하다. 학교에서만 탄산음료 판매를 금지시키겠다는 정책도 그렇다. (특히 2007년 무렵부터 있었던 “아이건강국민연대”는, 비록 그 운동 내용이 매우 의미 있는 것이었다고는 해도 이런 관점을 고집하고 있는 면이 많다. 여기서 자세히 언급하지는 않겠다.)
  물론 먹거리나 건강에 관한 문제를 개인의 선택이나 자유로만 이야기하는 건 사기다. 거짓말이다. 먹거리를 만들고 유통시키고 소비하는 구조가, 사회적 시스템이, 생활양식과 패턴, 환경은 중대한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그런 것과 무관하게 개인의 자유로운 선택에 건강권을 맡기겠다는 건 무책임이다.
  그러나 동시에, 지금까지의 급식이나 먹거리 관련 운동이나 정책들은 아동-청소년들을 주체적인 존재로 파악하지도 않았고, 그 운동의 운동주체로 보지도 않았다. 그 결과 앞서 내가 말한 것과 같은 민주적인 급식이나 학생들의 참여 같은 중요한 부분들은 간과되었다. 교사나 부모들은 때때로 편식을 못하도록 ‘급식지도’를 한다면서 체벌과 같은 강제력을 동원하기도 했다. 청소년들에게 탄산음료나 과자 같은 것이 뭐가 문제이고 왜 소비함녀 안 되는지를 알리고 스스로 소비를 줄이도록 하거나 그런 문제 있는 음식을 만들어내는 생산자를 규제하기보다는, 학교에서만 탄산음료를 없애는 이상한 정책을 쓰기도 했다.
  급식이나 먹는 것을 지도하는 과정에서도 강제적·강압적인 방식이 있어서는 안 된다. 심각한 영양의 불균형이 질병을 일으킬 정도라면 의학적인 처방과 지도가 필요하겠지만, 그런 수준이 아니라면 급식지도는 설명과 설득을 중심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그런 설명과 설득에 근거하여 교육하지 않으면, 강압과 강제를 통한 급식지도는 일시적이거나 제한적인 효과를 볼 뿐이다. 급식지도는 뭐도 가리지 말고 잘 먹어야 하고 몇 분 안에 먹어야 하고 이런 이야기가 아니라 먹거리 생산의 생태적 문제점들이나 알 권리, 먹거리 민주주의에 대한 포괄적인 교육이 되어야 한다. 최대한 다양한 식성(그것이 취향이건 종교적/사상적 이유건)을 고려하여 식단을 짜야 할 것이고, 다양한 음식들을 자율배식하는 형태가 가장 좋을 텐데 일부 식단에서는 조정 과정을 둘 수도 있을 것이다.
  학교에서 탄산음료 금지 같은 정책도 좀 우스운데, 학교에서만 금지하는 것, 그리고 청소년에게는 탄산음료가 해롭다고 금지시키려고 하면서 비청소년(어른)들에게는 아무 말도 없는 사고방식은 이상하기 짝이 없다. 학교 밖에서는 맘껏 먹어도 된단 말인가? 탄산음료는 특히 청소년들에게만 유해하고 비청소년들은 아무 문제 없단 말인가? 탄산음료나 과자 등이 그렇게 건강에 해롭다면 그냥 소비하도록 냅두는 것은 분명 좋은 정책이 아니며, 그 유해성을 충분히 알리고 강조할 필요는 있다. 아니면 차라리 생산자(기업)를 규제해야 할 텐데, 기업을 상대로 탄산음료나 과자 생산을 규제하는 일은 만만치 않기 때문에 좀 더 만만한 소비자-청소년들을, “아이들을 보호해야 한다.”라는 논리에 기대어 규제하려고 하는 것은 아닐까?

  우리는 단순히 먹거리를 ‘먹이는’ 존재가 아니라, 우리가 먹거리를 ‘먹는’ 존재이며, 그 먹거리에 대해 의견을 내고 민주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존재이다. 자꾸 ‘아이들의 건강권’을 들먹이며 청소년들에게 무엇을 먹이네 마네 어른들끼리 떠들지 말고, 청소년들과 함께 뭘 먹을지 말지, 그리고 어떤 먹거리를 어떻게 만들고 유통해야 하는지에 대해 이야기하고 실천하자. 당신들이 대신 이야기해주려고 하는 ‘아이들의 건강권’이라는 말은 지긋지긋하다. 이제, ‘건강권’을 우리의 제대로 된 인권으로 돌려받아보자.




Posted by 공현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맞아요. 누구 말대로 정말 우리는 밥상에서 매일매일 투표를 하고 있습니다. 제대로 투표해야 하는데 말이죠.

    2008.07.21 17:33 [ ADDR : EDIT/ DEL : REPLY ]

걸어가는꿈2008. 7. 5. 02:22
오답 승리의 희망(오승희) 8호에 실을 글







투덜리즘 : 명박이 치하의 꿈높현시


  청소년들은 아프다. 명박이 정부는 청소년의 삶을 학대하고 있다. 아니다. 명박 이전부터 청소년 학대는 벌어져왔다. 다들 모른 체하고 있었을 뿐이다.

  많은 사람들이 ‘4.15학교자율화’ 조치가 어쩌구 떠들지만 이미 ‘수준별 이동수업’이라는 과목별 ‘우열반’, 0교시, 보충수업, 강제종교수업 등은 공공연한 비밀이었다. 교육인적자원부는 언어영역 쉽게 내서 1교시 끝나고 자살하는 일 없게 한 거 말고는 한 게 없었다.
  입시경쟁으로 많은 청소년들이 자살할 동안에, 많은 학교에서 버젓이 강제야자와 강제보충수업이 시행되는 동안에, 정답과 경쟁을 강요하는 교육이 계속되는 동안에, ‘노간지’(놈현)는 어디서 뭘 하고 있었나? 그래, 어쩌면 교육/청소년인권문제에서는 노무현도 X놈이었을 뿐이었다. 쥐박이보다야 낫겠지만, 그래도 쥐보다는 좋았다고 칭찬 듣는 게 기뻐할 일은 아닐 듯싶다.
  한 교사는 4.15학교자율화 조치를 비판하며 없애버린 규제들 대부분이 ‘전봇대’(명박이가 쓸데없는 규제에 붙인 은유)가 아닌 ‘신호등’이라고 했다. 틀린 말은 아니다. 4.15학교자율화 등등 때문에 학교들이 더 학생들을 막 다룰 수 있게 된 것도, 전반적으로 경쟁이 더 심해진 것도 사실이다. ‘학교자율화’는 ‘학생타율화’요 ‘학생노예화’였다. 그러나 어쨌건 그 이전부터 존재했던 ‘신호등’이 고장 난 신호등이었다는 건 짚고 넘어가야겠다. 적어도 그 규제들은, 청소년들의 인권을 보장해주는 데 그리 효과적이지 못했다. 더구나 이 도로 시스템의 치명적인 문제들은 신호등 몇 개로 될 문제가 아니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이제는 지난 정권을 욕하고 있을 시간조차 별로 없다. 우리는 돌팔이 명박이 시대에 대처해야 한다. 지금까진 삽으로 조금씩 사람들을 입시경쟁 속에 파묻어가더니, 이젠 불도저로 그대로 밀어버리려고 하는 꼴이다. 4.15학교자율화를 하고, 본고사를 허용하고, 중고등학교도 서열화시키고, 기타 등.등.등.

  그리하여, 기어코, 가설라무네, 불도저에 밟히는 게 조낸 아팠던 청소년들이 꿈틀하기에 이르렀다. 광우병 위험 쇠고기가 급식에 올라올지도 모른다는 위기감이, 안 그래도 불만이 높았던 청소년들을 거리로 나오게 했다.
  그런데 글쎄, 이 무식한 것들이 더 때리고 밟으려고만 든다. 집회신고했다고 경찰이 학교로 찾아왔고 교육청들이 장학사 대군을 동원했다. 경기상고 교사는 학생이 미국산 쇠고기 수입에 반대하는 의견을 말했더니 절대폭력권을 발동하여 그 학생을 쥐어 패버렸다.
  게다가 정부는 학생노예화 정책에 대한 비판에 아랑곳하지 않고 계속 ‘학교자율화’를 밀어붙이고 있다. 사람들의 촛불을, 행동을 그저 ‘광우병&미국산쇠고기’에 관한 이야기로만 한정지으면서 말이다.(재협상도 안 하고 있지만.)
  청소년들은 무시당해서, 경쟁당해서, 학대당해서 아프고, 맞아서 아프다. 그러나 아프면 아플수록, 죽기 전까지는 더 꿈틀대고 더 비명을 지르는 게 인지상정이다. 그리고 청소년들의 비명소리는 이렇게 분명한 형태를 띠고 있다.
“학교자율화는 학생노예화! 집어쳐!”
“청소년의 정치적 권리 보장하라!”
“광우병급식&식품 명박이나 처먹어!”


  지금의 상황을 딱 한 마디로 표현하자면, 꿈높현시다. 꿈높현시는 “꿈은 높은데 현실은 시궁창”이라는, 영화 『8마일』에 나오는 유명한 대사다. 저번 호의 ‘지못미’에 이어 2탄은 ‘꿈높현시’다.
  왜 지금 상황이 꿈높현시냐 하면, 예를 들어, 작년까지만 해도 입시폐지와 대학평준화를 적극적으로 말해보려 했던 사람들도 명박이 때문에 ‘4.15학교자율화’ 막기에도 급급해졌다는 것이다.(지금도 말하고 있지만 묻히고 있다.)
  또한 급식운영에 민주적 참여, 생태적인 식량 생산과 직거래 시스템 등등을 꿈꾸고 있지만, 현실은 광우병 위험 쇠고기 수입되는 거 막기도 막막하다는 것이다.
  또또한 정당가입, 선거운동, 표현의 자유, 학생회, 대의제와 선거연령 등등 청소년들의 정치적 권리를 제한하는 온갖 것들을 없앨 것을 꿈꾸고 있지만, 집회장에서 장학사들 쫓아내기도 바쁘다는 것이다.
  게다가 예를 들면, 나는 ‘4.15학교자율화’는 욕하고 명박이를 싫어하지만 “입시폐지”를 쓴 피켓이나 낙서에 대해서는 반대하고 눈살을 찌푸리는 상당수의 사람들을 촛불집회 현장에서 만나보았다. 따라서 지금의 촛불은, 그다지 꿈높현시를 극복시켜줄 것 같진 않다.

  정녕 꿈은 높은데 현실은 시궁창이다. 하긴 현실이 시궁창인 건, 쥐가 대통령으로 뽑히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는 일 아닌가? 이 시궁창인 현실에서 좀 더 나아가기 위해서는, 쥐박이부터 퇴치할 수밖에. 끈질기게, 우리의 꿈을 이야기하는 것을 잊지 않으면서 말이다.

 
Posted by 공현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비밀댓글입니다

    2008.07.05 11:51 [ ADDR : EDIT/ DEL : REPLY ]

걸어가는꿈2008. 6. 13. 14:46

달마다 하는 청소년인권 놀이터, '빨강물고기'

두 번째 시간이 6월 21일로 잡혔어요~~



저번 주제보다는 6월 주제가 좀 더 쉬운 주제에용 ㅠㅠ (차이 차별 너무 어려웠삼)


참고로 첫 번째 한 것은



[일어나라, 인권 OTL] ‘어린 것들’ 차별할 땐 이렇게 외칩시다
‘달마다 하는 청소년인권 놀이터 빨강물고기’ 첫 교육 현장





이렇게 한겨레21기사로 나갔답니다. ~_~












6월 청소년인권놀이터 빨강물고기 시간과 장소 안내

 

일시 : 6월 21일 토요일 오후 2시

 

장소 : 미지센터 (충무로역 4번출구)


주제 : 그려봐, 삶 속에서의 인권들

청소년들이 살면서 일상 속에서 겪는 다양한 인권침해들을 다시 한 번 인식하고 논의해보기~

 


사용자 삽입 이미지



<달별 주제 소개>

달마다 하는 청소년인권 놀이터

빨강물고기

이 시대 청소년들의 팍팍한 삶이야말로 두말하면 잔소리!

뭐가 이렇게 살기가 힘든지, 집에서도 학교에서도 아르바이트에 가서도 심지어 길거리에서도,

나이가 어리다거나 공부에 흥미가 없다는 어이없는 이유로 차별받고 무시 받고 온갖 인권침해를 당하는 이 땅의 청소년들.

왜 이렇게 살아야 하는지, 좀 더 하루하루 행복하게 살 순 없는지, 어떻게 하면 이 세상을 좀 바꿔낼 수 있을지 궁금하지

않나요? 답답하지 않나요?

이런 고민들을 하는 청소년들과 만나 편하게 이야기도 나누고 서로에게 배워가면서 엉킨 고민의 실타래들을 풀어보아요!

청소년인권활동가네트워크에서 매달 셋째주 토요일에 청소년들과 함께 "청소년인권"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을

준비했어요.

 

청소년인권이 꽃피는 세상을 꿈꾸는 청소년!

학교, 집, 알바, 사회가 띠꺼운 청소년!

모두모두 매달 셋째주 토요일 오후에 만나요 ^_______________^

 

 

 

6월 그려봐 삶 속에서의 인권!

"이제는 바꿔! 더 이상 맞고 살아갈 순 없잖아? 내가 직접 바꿔!"

학교, 집 등등 생활 속의 여러 공간들의 인권 지도 그리기, 인권적인 규칙 만들기.

드디어 내 생활 속에 인권을 초대하기 위한 프로젝트! 직접 만들어보아요~

 

7월 꿈꿔봐 우리들의 독립!

독립! “대한독립만세” 말구~ 우리들 삶의 독립!

집, 학교, 일터, 이 사회 속에서 우리들, 과연 '독립적'인가요?

청소년들의 '독립'과 ‘인권’, 뗄 수없는 이들의 관계를 낱낱이 들여다봅니다.

 

8월 교과서 속 인권의 모습들, 뒷담화 까기

똥떡, 붕어, 핵잠수함... 교과서 표지를 비틀고 비꼬기도 재밌긴 하.지.만!

이제 교과서 속에 숨어있는 인권 이야기 해부하기.

청소년이나 약자들에 대한 차별, 인권침해를 정당화하는 뷁~스런 이야기들을 밟아봐요!

 

9월 찾아봐 이 사회 속의 인권 이야기들

여섯 다리만 건너면 온 세계 사람들이 연결된다는 이야기, 혹시 아시나요?

그럼 청소년인권에서 한 다리, 두 다리 건너면 뭐가 나올까요?

청소년인권과 무관한 척하고 있지만 관련되어 있는 다양한 이슈 찾기!

 

10월 상상해봐 청소년인권이 숨쉬는 풍경

잔소리하는 집안 풍경, 때리고 맞는 학교 풍경, 막말과 차별이 넘치는 일터, 돈 없는 청소년들은 갈 곳 없는 길거리...

이런 일상 속의 인권침해와 불만의 풍경들을, 새롭게 상상하고 꾸며보면 어떨까요?

우리가 바라는 청소년인권이 실현된 세상은 어떤 걸까요? 하나하나 그려가봅세다.

 

 

11월 뚝딱뚝딱~ 청소년인권운동의 디딤돌 놓기

"이 죽일 놈의 인권운동"!

인권운동이란 걸 하다보면 부딪치게 되는 수많은 어려움들...

어떻게 하면 그런 걸림돌들을 확 걷어차 버릴 수 있을까요?

꼬불꼬불~ 미로 같이 보이지만, 같이 찾으면 즐거운 길이겠지요~


Posted by 공현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어른

    가슴이 시려왔다. 청소년인지 아니면 그 이상의 나이를 먹은 청년일 수도 있다. 그의 마음을 읽으면 읽을 수록 가슴 한 켠이 찡해온다. 내가 살아 있다는 증거인가?

    당신이 부럽구려.

    2008.06.15 07:37 [ ADDR : EDIT/ DEL : REPLY ]
  2. 어른

    북 마크 했다. 나도 티스토리 해야겠구려.

    2008.06.15 07:38 [ ADDR : EDIT/ DEL : REPLY ]

걸어가는꿈2008. 5. 9. 02:58
<성명서>

청소년들을 평등한 정치적 주체로 인정하라!




  이 땅에서, 청소년들의 정치적 권리는 오래전부터 무시당해 왔다. 특히 최근의 미국산 쇠고기 반대 촛불집회가 확산되면서 이 사회가 보여주고 있는 과민 반응들은 그런 것을 여실히 드러내고 있다. 청소년들의 집회의 자유, 표현의 자유에 대해 치사찬란한 태클을 걸고있는 정부와 일부 언론들에게 청소년인권행동 아수나로는 짜증의 마음을 듬뿍 담아 전달한다.
  잠시 과거를 상기하자면,2003년에도, 2005년에도 청소년들의 집회에 대해 정부는 까칠하게 반응했었다. 법을 개정해서 ‘미성년자’를 집회에 동원하면 처벌하는 조항을 만들겠다고 으름장을 놓는가 하면, 교육부와 교육청에서는 교사들과 장학사들을 동원해서 청소년들의 내신등급제 반대촛불집회와 두발자유 집회 참가를 봉쇄하려고 했었다. 많은 언론들이 청소년들의 집회 뒤에 배후세력이 있을 거라고 떠들어댔으며, 청소년들이 정치적 발언을 하고 행동을 하는 것에 알레르기 반응을 일으켜왔다.

  2008년, 올해에도 발전은커녕 퇴보한 뻘짓들만 눈에 띈다. 미국산 쇠고기 수입에 대해, 그리고 이명박 정부의 여러 정책들에 대해 사람들의 반대 목소리가 높아져 가고 청소년들이 참여하는 촛불집회가 점점 커지자, 교육부와 교육청은 또 ‘감수성이 예민하고 미성숙한’ 청소년들의 집회 참가가 바람직하지 않다면서 집회 참가를 막도록 하는 지침을 학교로 내려 보내고 있다. 교사들을 동원해서 집회장 주변에 배치하고 학생들이 집회에 참가하지 못하도록 돌려보내는 괴악한 짓도 여전하다. 몇몇 언론들은 청소년들의 집회 참가를 놓고 “연필 대신 촛불”을 들었네 어쩌네 하면서 배후세력이 있을 거라는 막연하고 무책임한 보도를 일삼고 있다. 또한 연예인들이 몇 마디 하니까 10대 팬들이 무작정 따라 나왔다, 아직 미성숙하고 충동적이어서 인터넷에 떠도는 괴담에 속은 거다, 등등헛소리를 하며 청소년들의 정치적 행동의 의미를 평가절하하려 하고 있다. 청와대는 한술 더 떠서 놀이문화가 없어서 청소년들이 놀러나오는 거라는 이상한 분석을 내놓으며 청소년들을 어떻게든 '정치적이지 않은' 존재로 규정하려 애쓰고 있다.
  올해에는 경찰과 검찰까지 가세해서, 5월17일에 휴교시위를 하자는 문자를 얼토당토않게도 “업무방해”니 어쩌니 하면서 수사하겠다고 하고 있다. 정말이지 이런 발언을 하는 인권의식 미성숙한 검찰총장부터 인권교육을 시켜야 한다. 심지어 며칠 전에는 경찰이 문자메시지를 추적해서 학교까지 찾아가서학생들을 만나 문자메시지 내용을 확인하고 교장을 만나고 왔다고 한다. 청소년들의 정치적 권리 행사를 위축시키는 짓이며, 이미 인터넷에서는 ‘미성년자가 촛불집회 참가하면 사법처리 된다.’라는 식의 사실과는 다른 공포 조성 유언비어가 떠도는 판인데, 이에 대해 경찰도 책임이 없다고 할 순 없을 것이다.

  도대체 경찰이나 교육청, 교육부를 비롯해서 정부가 해야 하는 일이 정권의 하수인 노릇인가, 아니면 사람들의 안전과 자유를 비롯한 기본적 인권을 보장하는 것인가? 경찰이 해야 할 일은 오히려 청소년들의 정당한 권리를 부당하게 침해하고 있는 교육청 같은 애들을 막는 것 아닌가 싶고, 만일 정말로 민주주의와 인권을 교육하고자 한다면 교육부, 교육청, 학교는 오히려 청소년들에게 적극적으로 “여러분에게는 평화적인 집회를 만들고 거기에 참여할 권리, 발언할 권리가 있습니다.” 같은 류의 캠페인이라도 전개해야 하지 않나 싶다. 자신들이 정말 민주 정부이고 인권 경찰이라면 해야 할 일들과는 정반대되는 일을 하고 있는 저 안타까운 정부기관들은, 정말이지 언제까지 그따위로 할 건지 모르겠다. 답이 안나온다.


  또한 아수나로는 청소년들에 대한 차별적 인식들이 비단 정부나 경찰, 일부 언론들에서만 보이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지적하고 싶다. 청소년들에 대한 차별, 청소년들을 보호의 대상으로만 보는 보호주의, 청소년들을 ‘철없는’‘충동적인’ ‘미성숙한’ ‘미래로 유보된’ 존재로 보는 인식들은, “학업에 열중해야 할 청소년들조차 거리로 내모는 정부”라는 표현 속에도, “철없고 순진한 아이들이 안심하고 공부할 수 있도록” 하자는 미국산 쇠고기 반대 주장에서도,“어른들이 잘 해야 하는데 잘못해서 어린 학생들이 거리에 나왔다.”라는 탄식 속에서도, “아이들에게 물려줄 것은 광우병이 아닌 미래입니다.”라고 적힌 피켓에서도,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 집회를 여는 주최측의 “미성년자들은 부모동의서가 없으면 연행당할 수도 있습니다.”, “밤 10시 이후 청소년들은 자진 귀가 조치시킵니다.”라는 안내 문구에서도, 모두 그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한국도 가입한 아동권리협약 등은 청소년들의 정치적 권리, 의견반영권 등을 명시적으로 보장하고 있지만, 청소년들을 비청소년들과 대등한 정치적 주체로 인정하는 것은 분명 이 사회에 커다란 도전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듯하다. 노무현이든 이명박이든, 열린우리당이든 한나라당이든, 그 문제에 대해서는 별 다른 의견의 차이가 없었던 것 같다. 이 사회는 전반적으로 청소년들의 정치적 행동에 대해 ‘특별한’ 시선을 보내왔다. 비단 정부나 언론 뿐 아니라 많은 ‘어른들’과 때로는 몇몇 ‘청소년들’ 또한 청소년들을 평등한 정치적 권리의 주체로 인정하는 것을 꺼려하고 있다. 그 결과는 청소년들의 정치적 권리 행사를 직간접적으로 억압하고 공격하고 깎아내리는 것, 그리고 청소년들의 행동 자체에 반대하진 않더라도 그 행동의 의미를 뭔가 특별하고 예외적이고 시혜대상인 것으로 위치시키거나 그 행동을 부담스러워하거나 안타까워하는 것 등등으로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청소년들은 누가 내몰아서 나온 것도 아니고, 학업에만 열중해야 하는 것도 아니며, 마냥 철없고 순진하지도 않고, 부모동의서가 없다고 연행당한다거나, 밤 10시 이후에 집회장에서 쫓겨나야 할 이유도 없고, 미래가 아닌 현재에 살고 있다. 청소년들은 비청소년들과 평등하게 연대하는 운동의 주체이지, 일방적으로 도움을 받거나 사회를 ‘물려받는’ 그런 시혜의 대상이 아니다. 청소년들은 정치적 권리를 가진 인권의 주체이자 정치의 주체이며, 최근의 미국산 쇠고기 수입 문제나 학교자율화 조치 등의 정부 정책들에 대해 스스로 분명한 판단을 내릴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우리는 경찰, 검찰, 교육청, 교육부를 비롯한 정부와 언론들, 그리고 행사 주최측과 참가자들에게 다음과 같이 요구한다.

 1. 정부와 언론 등은 청소년들의 집회의 자유와 표현의 자유 등 정치적 권리 행사를 위축시키고 깎아내리는 모든 조치와 발언을 취소하고 이에 대한 사과와 함께 재발방지를 약속하라.

 1. 현재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 행동 등에 개입하고 있는 주최 측과 참가자들은 청소년들을 보호주의적, 시혜적, 차별적 태도로 대우하지 말고 평등하게 대우하라.


  청소년인권행동 아수나로는 이러한 요구가 실현될 수 있도록, 국가인권위 진정이나 다른 항의/불복종 활동, 청소년들의 정치적 권리를 보장하기 위한 대응팀 구성, 청소년들이 평등한 주체로 대우받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한 캠페인과 발언 등을 뜻을 같이 하는 단체들과함께 적극 조직하고 계획할 것이다.



청소년인권행동 아수나로
2008년 5월 8일
Posted by 공현

댓글을 달아 주세요

걸어가는꿈2008. 5. 1. 19:23
이 글은 진성고 재학생 분들과 졸업생 분들을 통해 들은 사실들,
그리고 진성고 학교 홈페이지에 공지된 사항 등에 기초해서 쓴 정리입니다.
그래서 "~다고 합니다."라는 말투가 많이 나올 수도 있지만 신경쓰진 마세요 ~_~;




먼저, 진성고 안에서 본래 학생들에 의한 촛불시위 계획 등이 있었으나
학생들이 집회신고를 하러 경찰에 갔다가 학교로부터 명예훼손 소송 등을 당할 수 있다는 협박을 듣고만 왔다고 하며,
그리고 (아무래도 경찰을 통해 학교에 알려진 듯한데) 본래 계획이 있던 당일에는 교사들과 학부모들 등이 시위를 막기 위해 학교에 와있었다고 합니다.

그즈음에 진성고가 학생인권 문제로 언론에 계속해서 문제가 되자
졸업생들의 동문회 쪽에서 중재에 나섰습니다.
재학생들에게 언론 인터뷰 등을 자제해달라고 부탁하고 함께 학교 측과 협상을 하기로 했다고 합니다.

결국 4월 5일에 진성고 교장실에서
이 사장, 교감, 행정실장,학운위 운영위원장, 부위원장, 총학부모회장, 3학년 학부모 회장, 총동문회장, 6기 동문회장 및 부회장, 11기 동문회장,학생대표 3명, 교사 대표 3명, 교육기획부장과 학생부장 등이 참석한 간담회를 열었다고 합니다.

사실 이 협상 이후부터 재학생 분들과는 연락이 끊겼는데요,
아무래도 연락하던 분들이 고등학교 3학년이셔서 시험기간 압박 때문에 그럴 수도 있고,
학교 측이 많은 요구사항을 수용했기 때문에 더이상 도움을 구할 필요가 없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 뭐 잘 된 거지요


그 회의의  내용에 대해 졸업생을 통해 들은 것입니다.


1. 재학생 대표들이 재학생들의 요구사항에 대해 설문조사를 하여 우선순위를 뽑았으며 발표했다고 합니다.
대부분 수용 예정이지만 세부적인 부분은 이후에 순차적으로 회의하기로 했다는군요

2. 학교 운영사항 관련 투명화 및 필요시 진성관련인 열람을 동문회에서 요구했고,
급식에 대해서도 식단 구성별 단가를 표시하고, 매점운영은 공개입찰제로 변환, 회계장부 조회 공개 등을 하기로 했다고 합니다.

3. UCC 동영사 제작자에 대한 학업 및 민형사상의 패널티는 없도록 하겠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후에 진성고등학교 홈페이지에 올라온 학교운영위원회 협의사항(2008.04.14.)은 대충 이렇습니다.


   토요일, 일요일 잔류 폐지에 관한 건
  1. 제안사유 : 학생 생활지도, 인권문제 등
  2. 폐지(안) : 금·토요일 귀가, 일요일 20시 귀교
  3. 설문조사 및 추후 학부모/선생님 협의
  처리사항 : 협의 (기숙사위원회)

  아침, 점심, 저녁 간식 폐지에 관한 건
  1. 간식을 폐지하여 급식 단가 인하
  2. 간식을 폐지 후 대안 : 컵라면 자판기 설치
  3. 간식 폐지 시기 등 구체적 사항은 급식소위원회에 차후 결정
  처리사항 : 가결 (급식소위원회에서 결정)

  생활관 지도규정 수정에 관한 건 (통학조치 규정)
  1. 제안사유 : 야간 생활교육 및 분리자습제, 야간벌점제 등 폐지
  2. 통학조치규정(안) :
      지도방법-등하교 조치 예정
  처리사항 : 협의 (기숙사위원회)

학생회 건의사항에 관한 건
※ 학생들의 건의사항 참조
처리사항 : 가결

*** 졸업생에게 물어보니까, 저기서 야간 생활교육은 학생들에게 뭐 체조라거나 '기합'(이라는 체벌), 등을 주던 것이라고 하더군요 @_@





근데 정작 뭔가 중요해보이는 학생회 건의사항은 열심히 찾아봤는데 내용이 안 보여요 -ㅂ-;;
연락하던 졸업생(너기)도 이 이상 자세한 내용은 모르겠다고 하는데,
회의록 더 정리해서 진성고 관련 커뮤니티에 올라온다고 했는데 안 올라오고 있는 중이라고 합니다.

학생 대표들이 제시한 우선순위화된 요구사항이 뭔지 궁금한데 말이죠 쩝 --;;;






대략 거칠게 요약하면


- 2008년 2월 진성고 학생들의 학생인권 요구 학내시위로 교장이 책임지고 물러남

- 2008년 3월 진성고 학생이 만든 진성고의 인권침해 등을 고발하는 UCC가 인터넷에서 이슈가 되고, 언론에 알려짐.


- 2008년 4월 진성고 구성원들의 협상으로 학생들의 요구사항 중 많은 부분 수용해서 개선
 
      기숙사에 주말에 남아있어야 했던 것 없앰. 급식비 인하를 위한 조치. 기숙사의 벌점제와 기합, 자습제 등 폐지.
       기타 학생들의 요구사항 일부 수용
       (정확한 내용은 모르겠지만,
         학생들의 처음 시위 때 요구사항은 두발자유, 체벌반대, 소지품검사 중단이었습니다. @_@
         두발규정을 개정했다거나 소지품검사 등을 개선(혹은 없앰?)했다거나,
          아니면 학생 설문조사 과정에서 나온 다른 이야기들일 수도 있습니다.)


----------------------------------------------------------------------------------------------




일단 진성고등학교 학생들의 문제제기와 저항은,
상당한 성과를 내고 마무리가 된 것 같습니다.

이후에도 어떤 학생인권침해에 대한 문제제기나 저항 등이 알려질 경우, 적극적으로 지원하고 연대해야겠지요 ;;


----------------


추신 : 진성고 재단 측에서 고소했다고 하는 분들에게 - 만약 그게 법정으로까지 가면 처음부터 같이 했었던 인권단체들도 적극 지원하겠습니다 @_@
상황 진행에 따라, 도움이 필요하신 분은 연락해주세요~~~



추신2 : 이 정리가 늦은 이유는, 사실 저 "학생회 건의사항"이라는 부분이 구체적으로 어떤 내용인지를 알아내고 나서 올리려고 생각하고만 있었거든요 --; 그런데 5월이 되도록 저 부분에 대해 정보가 공개가 안 되어서, 그냥 올립니다.


Posted by 공현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다행이네요!

    2008.05.01 19:54 [ ADDR : EDIT/ DEL : REPLY ]
  2. 법정으로 가기 전이 아니라, 되레 협박을 일삼은 진성고와 재단측을 고소고발해야 하는게 어떨까 싶습니다. 갠적으로 고민 중이라는...암튼 경찰 조사를 받게 되면 이 문제를 더욱 공론화 시킬 생각입니다. 학생들의 문제가 어느정도 해결되었다고는 하지만, 학생인권침해 문제가 진성고에서만 벌어지는 것이 아니니...

    2008.05.01 20:43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걸어가는꿈2008. 4. 29. 16:30
사용자 삽입 이미지





-------------------------------------------------
(접근권을 높이기 위한 텍스트 내용)

달마다 하는 청소년인권 놀이터
빨강물고기

“나도 물고기처럼 자유롭게 살고 싶다”
                                                  - 2002년 자살한
                                                      청소년의 유서에서


“빨강물고기” 라니, 웬 괴악한 작명센스냐구요?
갑갑하고 좁은 어항 속에서 사육당하듯 살아가는 우리들의 현실.
그 속에서 청소년인권을 외치는 여러분이 바로, 빨강물고기입니다.

자유로워지고 인간답게 살고 싶은 청소년 분들에게 코딱지만큼이라도
도움이 되기 위해 찾아왔습니다. 청소년인권 놀이터 빨강물고기

차별이야기, 학교에서의 인권 이야기, 청소년의 독립 이야기, 청소년인권운동의 어려움 이야기...
다양한 주제와 인권교육이 준비되어 있습니다.
이제 막 청소년인권운동을 시작하신 분들, 청소년인권운동을 해보려는 분들 모두 부담없이 오시길~~ ^^

 5월 셋째주 토요일부터 11월달까지, 한 달에 한 번씩 빨강물고기의 문을 두드려주세요.


청소년인권활동가네트워크
cafe.daum.net/youthhr

* 자세한 문의는 카페 사이트, 이메일 등을 이용해주세요

-----------------------------------------------------

빨강물고기 강좌에 대한 좀 더 자세한 소개 ^^



달마다 하는 청소년인권 놀이터

빨강물고기


 

이 시대 청소년들의 팍팍한 삶이야말로 두말하면 잔소리!

뭐가 이렇게 살기가 힘든지, 집에서도 학교에서도 아르바이트에 가서도 심지어 길거리에서도, 나이가 어리다거나 공부에 흥미가 없다는 어이없는 이유로 차별받고 무시 받고 온갖 인권침해를 당하는 이 땅의 청소년들.

왜 이렇게 살아야 하는지, 좀 더 하루하루 행복하게 살 순 없는지, 어떻게 하면 이 세상을 좀 바꿔낼 수 있을지 궁금하지 않나요? 답답하지 않나요?

이런 고민들을 하는 청소년들과 만나 편하게 이야기도 나누고 서로에게 배워가면서 엉킨 고민의 실타래들을 풀어보아요!

청소년인권활동가네트워크에서 매달 셋째주 토요일에 청소년들과 함께 "청소년인권"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을 나누는 시간을 준비했어요.

 

청소년인권이 꽃피는 세상을 꿈꾸는 청소년!

지금과 같은 학교, 집, 알바, 사회가 어딘지 불편한 청소년!

모두모두 매달 셋째주 토요일 오후에 만나요 ^_______________^

 

 

5월 깨워봐 인권 감수성, 차별 감수성!

어른들과 달라서 받는 차별, 눈에 팍팍 띄는 그것들.

그리고 눈에 잘 안 띄는, 우리들 안에 있는 차별들.

차별과 마주하며, 인권에 대한 생각과 느낌들 하나하나 쌓아나가기!

 

 

6월 그려봐 학교에서의 인권!

"학교, 이제는 바꿔! 더 이상 맞고 살아갈 순 없잖아? 내가 직접 바꿔!"

학교안의 인권 지도 그리기, 인권적인 규칙 만들기.

드디어 학교에 인권을 입학시키기 위한 프로젝트! 직접 만들어보아요~

 

7월 꿈꿔봐 우리들의 독립!

독립! “대한독립만세” 말구~ 우리들 삶의 독립!

집, 학교, 일터, 이 사회 속에서 우리들, 과연 '독립적'인가요?

청소년들의 '독립'과 ‘인권’, 뗄 수없는 이들의 관계를 낱낱이 들여다봅니다.

 

8월 교과서 속 인권의 모습들, 뒷담화 까기

똥떡, 붕어, 핵잠수함... 교과서 표지를 비틀고 비꼬기도 재밌긴 하.지.만!

이제 교과서 속에 숨어있는 인권 이야기 해부하기.

청소년이나 약자들에 대한 차별, 인권침해를 정당화하는 뷁~스런 이야기들을 밟아봐요!

 

9월 찾아봐 이 사회 속의 인권 이야기들

여섯 다리만 건너면 온 세계 사람들이 연결된다는 이야기, 혹시 아시나요?

그럼 청소년인권에서 한 다리, 두 다리 건너면 뭐가 나올까요?

청소년인권과 무관한 척하고 있지만 관련되어 있는 다양한 이슈 찾기!

 

10월 상상해봐 청소년인권이 숨쉬는 풍경

잔소리하는 집안 풍경, 때리고 맞는 학교 풍경, 막말과 차별이 넘치는 일터, 돈 없는 청소년들은 갈 곳 없는 길거리...

이런 일상 속의 인권침해와 불만의 풍경들을, 새롭게 상상하고 꾸며보면 어떨까요?

우리가 바라는 청소년인권이 실현된 세상은 어떤 걸까요? 하나하나 그려가봅세다.

 

 

11월 뚝딱뚝딱~ 청소년인권운동의 디딤돌 놓기

"이 죽일 놈의 인권운동"!

인권운동이란 걸 하다보면 부딪치게 되는 수많은 어려움들...

어떻게 하면 그런 걸림돌들을 확 걷어차 버릴 수 있을까요?

꼬불꼬불~ 미로 같이 보이지만, 같이 찾으면 즐거운 길이겠지요~





※ 5월달 빨강물고기 자세한 안내 ^^

5월 17일 토요일 늦은 3시
장소 : 지하철 3, 4호선 충무로역 미지센터 (거의 확정이랍니다;)



깨워봐 인권 감수성, 차별 감수성!


- 차별감수성 다운로드!

- 내 안의 차별


- 차별에 대한 길지 않은 강연


 
    청소년이기에 혹은 OO이기에 차별받아야 했던 기억들,
    혹은 우리가 누군가를 차별하고 상처입히는 일들,
    그런 것들에 대해 함께 살펴보고 이야기해보는,
    차별감수성과 인권감수성을 조심스레 깨워가는 첫 시간입니다 ^^

Posted by 공현

댓글을 달아 주세요

걸어가는꿈2008. 4. 28. 13:42
학교자율화에 대한 반대를 넘어서, 청소년의 인권을 쟁취하자
- 학교자율화를 밀어낼 인권의 물결을 꿈꾸며-



   교육과학기술부(너무 기니까 ‘교과부’)가 4월 15일에 발표한 '학교자율화 계획'에 대해 말이 많다. '학교자율화 계획'을 통해 교과부는 정부에 집중된 권한을 각 시도교육청과 학교에 분권하겠다고 한다. 사실은 이명박 대통령이 후보 시절부터 했던 소리가 구체화된 것에 지나지 않는데, 여하간 이 계획이 현실화되면, 교육청과 학교들이 일을 처리하는 것에 대해 이것저것을 정해둔 교과부의 지침들이 폐지된다. 그럼으로써 0교시, 우열반, 사설모의고사, 종교교육, 현장실습, ‘촌지’ 등등등에 대한 전국적으로 통용되던 규제는 사라지게 되며, 각 교육청에서 지침을 다시 정하고 그 외의 부분은 학교 맘대로 할 수 있게 된다.
   아 뭐 물론 각 지역 교육청에서 원래 교과부가 갖고 있던 지침을 그대로 고수할 가능성도 없지는 않다. 그러나 “학교자율화” 조치라는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이 조치는 기본적으로 학교(정확히는 학교장이나 이사장 등)의 재량권을 강화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그런 것들을 고려할 때, 강제 종교교육 전면 허용이나 촌지 전면 허용 같은 아스트랄한 소리를 할 교육청은 없을 거 같긴 하지만, 교육청에서 지침을 새롭게 정하는 과정에서 적어도 지금보다는 많은 부분 “학교자율화”가 이루어질 가능성이 크다.

   교육과학기술부가 이런 발표를 하자, 언론들은 “0교시 우열반 허용하나” 같은 약간은 낚시성 표제를 달고 기사를 내보냈으며, 여러 곳에서 학교자율화 계획에 반대하는 여론이 커지고 있다. 명박이가 교육을 망친다는 위기의식과, “나는 찍지 않았습니다.”와 같은 유행어 등도 눈에 띈다. 그러나 단순히 명박이 교과부의 '학교자율화' 정책에만 모든 문제점을 돌리는 것은 무리가 있어 보인다.
   예컨대 0교시를 보자. 0교시(1교시 시작 전 아침 보충수업)를 하지 못하게 교육부에서 지침을 정해뒀다고는 해도, 여러 학교들에서 0교시나 아침강제학습을 실시하던 것은 일상적 풍경이었다. 대놓고 0교시를 하지 않더라도, 어느 학교들은 1교시 시간을 앞당겨 시작하고 오후에 보충수업을 더 하는 등, 다양한 형태로 학생들을 더 빡세게 공부시키는 것이 비일비재했다.
  뭐, 0교시 같은 경우야 교육청에서 허용할지 말지 모르겠지만… 다른 규제 같은 경우도 별 다를 건 없다. 이번 학교자율화는 암묵적으로 시행되던 것들을 좀 더 학교들이 노골적으로 할 수 있게 해주는 것이거나, 아니면 눈치 보면서 하던 곳들도 대놓고 0교시 같은 것들을 할 수 있게 해주는 조치 정도라고 할 수 있다. 요컨대 학교자율화 조치는 학교-학생 관계에서 약자인 학생들을 보호하기 위해 (실효성은 크진 않았지만) 정해져 있던 선언적 지침들도 중앙정부에서는 없애고, 학교들이 학생들의 인권을 짓밟을 재량권(말하자면 횡포권?)을 조금씩 더 넓혀주겠다는 이야기이다. 또한 현재 입시경쟁의 틀 속에서 학교간 경쟁을 조금 더 강화시키겠다는 것이다. 뭐, 그걸로도 문제라면 충분히 문제긴 하다만.

  지금의 교육체제 속에서 이미 학생의 인권은 침해받고 있는지 오래였고, 따라서 현재 발표된 학교자율화에 대한 수동적 비판으로는 현실 문제를 수정하기 어렵다. 학생의 인권을 보장하기 위해서는 좀 더 적극적인 주장과 행동이 필요하고, 그 목표가 분명해야 한다. ‘학교자율화’라는 간판을 단 물결이 밀려들어오는데, 그 물결을 막기 위해 둑을 더 쌓는 걸로는 안 된다. 왜냐하면 이미 있던 둑 안에서 물은 썩어가고 있었고 그 물 속에 사는 물고기들은 죽어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새로운 물결, 더 강한 물결로 ‘학교자율화’ 물결을 밀어내고 나아가야 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단순히 학교자율화에 대한 반대를 넘어서서, 청소년들의 인권을 보장하는 것을 주장하고자 한다.

  그 내용은 여러 가지가 있겠으나, 여기에서는 몇 가지만 이야기하려고 한다.

  첫째, 학교의 민주적 운영과 동시에 학생들의 정치적 권리를 보장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학생회의 권한 강화나 수업시간과 공부량 줄이기, 학교운영위원회에 학생 대표 참가, 학교 안에서의 언론활동 보장 등 제도적인 개선과 함께 다양한 지원들이 필요하다.

   둘째, 학교내부에서 벌어지는 강제학습, 소지품검사 및 강탈, 두발복장규제와 체벌 등의 수많은 인권침해를 없애야 한다. 교과부나 교육청들은 지금까지 “학생인권에 대해서 원칙적으로는 학생인권을 지지하지만 그런 건 학교 자율로 알아서 하셈” 같은 메롱한 입장을 취해왔다.(이미 학교자율화가 실천되던 영역이었다!) 그러나 학교 안에서 상대적 약자이고 입시경쟁 속에서 짓밟히기 십상인 청소년들의 인권을 보장하는 것은 정부가 당연히 해야 할 의무이다. 교과부는 국가인권위와 협력하여 만든다던 학생인권 가이드라인을 인권적이고 구체적인 내용으로 발표하고 이를 강력한 감독을 통해 학교단위에 강제해야 한다. 또한 청소년들이 학교 현장에서 자신들의 인권을 주장하는 것을 적극 지원해야 한다.

   셋째, 이러한 인권문제들을 정당화하고, 더욱 강화시키는 입시경쟁 자체를 폐지해야 한다. 명 박이나 한나라당은 뭐 더 경쟁시키고 더 줄 세우는 게 청소년들의 능력을 계발하는 것이고 교육권과 다양성을 보장하는 것이라고 떠들지만, 그건 그럴 듯한 사기일 뿐이다. UN아동권리위원회도 경쟁적 교육이 발달권이나 교육권에 악영향을 끼친다고 한국에 공식적으로 지적하고 고치라고 하고 있는 상황이다. 다양성은, 서로 다른 여러 가지 것들을 평등하게 대할 때 보장되는 것이지 성적에 따라 줄 세우고 차별할 때 보장되는 것이 아니다. 게다가, 대학서열체제나 취업시장과 연계되어 존재하고 있는 빡센 입시경쟁은 온갖 청소년인권 침해들의 직간접적 원인이 된다. 단순히 0교시나 보충수업 등을 강제로 하지 못하도록 하는 걸 넘어, 입시경쟁교육 자체가 사라져야만 청소년인권이 보장될 수 있다.

  But! 또 한편으로, 이러한 외침만으로는 아무것도 이룰 수 없다. 고통의 당사자인 청소년들이 직접 행동에 나서지 않는 이상 그 무엇도 바뀌지 않는다. 몇 년만 버티면 된다거나, 할 수 있는 게 없다는 무력한 태도는 도피에 불과하다. 또한 청소년은 보호받아야 하는 미성숙한 존재가 아니라, 현재를 살아가는 실존적 주체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스스로 행동하여 인권을 지켜내려고 해야, 인간처럼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청소년들의 80% 이상이 이번 “학교자율화” 발표에 반대한다는 기사가 나왔다. 하지만 과연 청소년들 중에 다수가 입시경쟁이 사라지고 청소년들의 인권이 보장되는 사회를 꿈꾸고 있을까? 이 사회는, 학교는 “그건 허황된 꿈이고 이상론일 뿐이다.”라면서 청소년들에게 현실을 강요하고 있지 않은가? 이런 상황에서 청소년들이 “학교자율화” 발표에 반대하는 것은 “지금보다 더 살기 힘들어지기 싫다.”라는 소리인데, 우리는 감히 이 땅의 청소년들에게 제안하고자 한다. “지금보다 더 살기 힘들어지기 싫다.”를 넘어서 “지금보다 더 행복하고 인간답게 살고 싶다.”라고 이야기하자고 말이다.




2008년 4월 28일

]




호적돌 이름으로 몇몇 언론(1318virus와 참세상)에 기고된

청소년인권행동 아수나로에서 토론을 거쳐 나온 글 ~_~

Posted by 공현

댓글을 달아 주세요

걸어가는꿈2008. 4. 28. 13:27

초중등교육법에 학생인권 보장 의무 조항이 신설된 것(18조)에 대해, 그리고 이후 학생인권 사회협약인지 뭔지에 대해 토론하는 토론회의 토론문으로 쓴 것입니다. -_-



학생인권을 위한 전면적 변화의 계기가 되길


청소년인권활동가네트워크 공현


  학생인권 보장은 지금까지 청소년인권단체, 혹은 청소년인권에 관한 활동을 하는 청소년단체/인권단체들이 앞장서서 주장해온 것 중 하나이다. ‘학생인권법안’의 경우에도 그 배경에는 청소년들의 인권에 대한 요구와 이런 단체들의 긴 활동이 있었고, 학생인권법안을 통과시키는 과정에서도 이런 단체들의 서명운동과 이슈파이팅 등이 있었다.


  그런 활동에 참여해온 한 사람으로서, 학생인권에 대한 구체적인 내용을 담은 초중등교육법 개정안(=학생인권법안)이 국회에서 통과되지 못하고 사실상 교육기본법상의 학생인권 존중, 보호 조항과 크게 다를 바 없는 선언적 조항만이 신설되게 된 것은 매우 아쉬운 일이다. 국회의원 분들에게 법률에 학생인권의 내용처럼 중요하지 않은 것들을 하나하나 열거하는 게 너무 구질구질한 작업처럼 느껴졌다면 차라리 시행령으로 만들도록 명시할 수도 있었을 텐데, 학생인권에 대한 선언적 조항 하나만 들어가고 심지어 본래는 들어갈 예정이었던 학생회의 권한 강화에 대한 조항도 도중에 빠지게 된 것은, 아무래도 이런저런 정치적 눈치보기의 결과물이자 현재의 학교장, 교사, 학부모, 학생 등의 권력 관계를 반영하고 있는 결과인 것 같아서 마음이 씁쓸하다. 그래서 본론에 들어가기에 앞서 먼저 여쭙는 것인데, 교육과학기술부에서는 초중등교육법 시행령에 이번에 신설된 제18조의 4와 관련해서 학생인권에 대한 좀 더 구체적인 기준을 제시하실 계획(물론 체벌을 제한적으로 모호하게 허용하고 있는 초중등교육법 시행령 31조의 개정을 포함하여)은 없으신지 궁금하다.



  학생인권 보장을 위해 각자가 모두 협력하고 노력할 일들이 있을 것이고, 또 각자의 위치에서 해야 할 일이 있을 것이다. 예컨대 학생인권에 대한 제도적 기준을 가장 인권적인 내용을 담아 제시__보급__교육하고, 그 기준을 어기고 학생인권 침해를 자행하는 사람들을 감독하고 처벌하는 일은 정부의 일일 것이며, 학생인권을 침해하지 않도록 신경 쓰는 한편 학생인권 보장을 위해 적극적인 학교 현장의 구조 변화와 학생인권 향상을 위한 지원을 하는 것은 교사나 친권자(학부모)의 일일 것이다. 인권을 침해당한 학생들을 구제하고 지원하는 일, 인권 보장을 요구하는 학생들이 부당한 불이익을 받지 않도록 방어하고 지원하는 일은 모두가 해야 할 일일 것이고….

  먼저 이런 여러 역할들 중에 청소년인권단체로서 할 일들을 고민해보니, 우선 이번 토론회에서도 발표된 학생인권에 대한 가이드라인을 읽기 편하게 요약해서 가능한 한 많은 청소년들에게 알리는 것이 급선무라는 생각이 든다. 물론 그 요약본에는 이러한 인권들을 침해당할 때 어떻게 저항하고 자신들의 인권을 요구할 수 있는지, 지원이 필요할 땐 어디에 도움을 청하면 되는지 등등의 실천적인 이야기들도 함께 담아야 할 것이다. 그밖에는 아무래도 지금까지 해온 활동과 크게 다를 것 없는 활동들, 즉 학생인권침해 상황이 알려진 학교들을 조사하고, 문제제기하고, 학교 안에서 학생인권 보장을 요구하며 뭔가 행동을 할 의사가 있는 청소년들이나 학교 구성원들을 조직화하고 지원하는 일을 하게 될 것이다. 교사나 친권자나 청소년 등등을 대상으로 한 인권교육도 할 테고….


  추가적으로, 이번 조항 신설이나 다른 상황들과 관련해서 시급하게 필요한 것 몇 가지만 이야기하겠다. 하나는 학생인권 보장 의무조항과 학생인권 가이드라인에 근거하여 각 학교의 교칙들을 전면 개정하도록 하는 일이다. 물론 그러한 교칙 개정이 교육부에서 “개정하시오.”라고 한다고 해서 해결될 일은 아니다. 많은 학교들이 “개정하겠다.”라고 보고만 하고 실제로는 아무 변화도 없을 수 있으며, 이중적 교칙(보고용 교칙 하나, 실제 교칙 하나. 학생들에게 교칙을 공개하지 않는 학교도 많다.)을 만들 수도 있다. 정부가 학생인권에 대한 가이드라인들을 제시하고 그 가이드라인에 부합하는 내용의 교칙을 협의하여 재개정하도록 철저하게 감독해야 할 것이고, 그 과정에서 학생들에게 자신들의 인권에 대해 알게 하고 그 인권에 부합하는 내용으로 교칙이 만들어지는 데 참여하는 것을 보장해야 할 것이다. 청소년인권단체들은 학생인권 보장을 위한 전면적인 변화의 과정에 참여하여 힘을 보태고 학생들을 지원할 수 있을 것이다.

  다른 하나는 학생, 교사, 친권자, 그리고 교육 관련 공무원들을 대상으로 한 장기적인 인권교육이다. 최근에 국가인권위원회에서 입법을 권고한 인권교육법의 내용과도 관련되는 것인데, 학생 본인은 물론 학생인권 문제의 관련자들 전체에게 인권 일반과 학생인권에 대한 교육을 실시해야 한다. 이 교육은 형식적인 교육이 아니라 장기적이고 실질적인 효과를 노린 인권교육이어야 할 것이며, 그 내용은 학생인권 가이드라인에 맞추어 인권적인 것으로 보장되어야 할 것이다.



  마치면서, 학생들의 다양한 인권 문제들은 학교 단위의 자율로 맡겨둘 일이 아니라는 것을 강조하고 싶다.  최근에 교육부에서 발표한 학교자율화라는 이름을 단 조치가, 학생들의 인권을 침해할 학교의 ‘자율’(이란 이름의 횡포)를 더 확대시키는 효과를 내지 않길 바랄 뿐이다. 학교의 ‘자율’이나 ‘재량권’을 이야기할 때도 가장 우선적으로 고려되어야 할 것은 학생들의 ‘자율’과 ‘권리’이기 때문이다. 학교 단위의 자율적 결정에 따라 학생들의 인권이 보장된다면 아주 좋은 일이겠으나, 학생들이 상대적 약자의 위치에 놓여 있고 인권을 보장받기 어려운 현재 학교와 교육체제의 현실을 고려하면, 전 사회적 차원에서 학생인권에 대한 최소한의 기준과 원칙을 정하고 강제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그런 학생인권에 대한 기준과 원칙을 만드는 데 있어서, 다양한 인권 기준과 함께 인권문제의 당사자인 학생들의 의견을 최우선으로 고려해야 함은 물론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 토론회를 학생들이 참여하기 힘든 중간고사 시기에, 학생들이 참여하기 힘든 평일 낮 시간에 연 것이 더욱 아쉽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Posted by 공현

댓글을 달아 주세요

걸어가는꿈2008. 4. 21. 02:49
pre 집회

교육부의 이번 학교자율화 발표에 대해 학교자율화를 반대한다, 또는 학교자율화를 저지하자, 라는 식으로 구도를 설정하는 게 맞는지 모르겠습니다.

작년인가 재작년에 "3불정책 폐지" 얘기가 막 나왔을 때, 3불정책 폐지를 저지하겠다고 뭐 교육단체들 기자회견 하고 한 것에 대해서
분명히 그런 게 현재의 교육을 옹호하고 방어하려는 것처럼 보인다는 뭐, 그런 비판이 있었던 걸로 아는데
흠... 항상 평가를 하거나 비판을 해도 별로 반영이 안 되는 거 같군요, 교육운동 쪽은 특히-

여하간에 이게 지금 0교시 허용, 심야 보충수업 허용, 우열반 편성에 반대하는 운동 같은 식으로 이야기가 되고 있는데
교육부로서는 얼마든지 이거에 대해서 "0교시나 심야보충수업이나 우열반을 허용할 생각 없다. 교육청이랑 학교장에게 권한을 넘길 뿐이다."라는 식으로 넘어갈 수도 있을 거 같기도 하고

무엇보다도 방어적인 방식의 이슈 프레임 설정에는 문제가 있다고 생각해요.
0교시 심야보충수업 우열반 허용에 반대한다, 라는 걸로 하면 분명히 많은 공감대라거나 지지를 얻을 수 있을진 몰라도
   0교시, 심야보충수업, 우열반을 공식적으로 허용하지 않는다고 해서 뭐 청소년들이 살기가 나아지는 것도 아니고...

물론 2005년 내신등급제 반대에서 촉발된 집회 등의 움직임에서 보이듯이 집회라거나 여하간 그런 행동을 하는 와중에 주장이 더 적극적인 것이 되는 경향이 있을 순 있지만
과연 그냥 "학교자율화에 반대한다" 식으로 하는 집회가 저절로 더 적극적 주장이 오가는 자리로 바뀔지도 의문이고

현재의 교육이나 제도를 방어하고 옹호하는 형태로 보이지 않게 하기도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흠흠 언론이라거나 등등에서.


+ 그리고 이거는 개인적 경험인데 뭔가 1~2일만에 급조되는 행사나 활동은 대개
돈 많거나 사람 많이 모을 수 있거나 아니면 기존에 많이 해왔던 (교육단체 등) 단체들의 영향력이 커지고 아수나로 같은 초고마한 단체는 발언력도 영향력도 약해지기 때문에 참가가 탐탁지가 않더군요-ㅂ-


++ 그럼에도 불구하고 연대에 참여하게 만드는 이 '정세'라는 놈~~~~ 뷁





집회 현장에서

  우선 이틀만에 준비된 집회라는 점을 감안할 때, 130명이라는 참가자 수나 여러 가지 컨텐츠, 집회 진행 등에 많은 집중된 노동력(아마 밤샘)이 들었을 거라고 짐작되었습니다. 흠 -_-

  하지만 계속해서 걸리는 것들이 있어서, 편하게 앉아있기는 힘들었습니다.

  예를 들어
 사회자가 인터넷에 0교시 하고 하면 등교거부하기로 친구들과 이야기했다는 글에 대해서, "등교거부하면 우리만 손해다"라면서 등교거부 하지 않게 해달라 라는 식으로 말한 거라거나,
역시 사회자가 집회 참가자들을 "방청객"이라고 하던 거라거나,
사회자나 발언자(주로 학부모 등)가 시험기간인데 우리가 시험 공부도 못하고 나와서 고생하고 있다고 하던 거나,
 
그런 것들이 계속 걸렸고

그리고 집회 중간에 있던 프로그램 중에서 카메라로 들이대는 방식도 좀 그랬습니다.

전교조나 참학이나 홍세화 씨 발언은 솔직히 듣기 싫어서 아예 안 듣고 있었고-

따이루 발언도 별로 새로운 것도 없었고 ㅎㅎ 흠흠흠 -_-


집회 분위기가 전반적으로 활기가 별로 살지가 않아서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산만해졌습니다.

분위기 안 좋아지면 좀 빨리빨리 진행이라도 했으면 좋았을 텐데, 계속 끌어서 결국 한 2시간 20분 정도는 집회를 한 거 같네요.


그리고 솔직히 앞에 써둔, 이런 이슈로 이런 제목을 가지고 이런 행사를 하는 거에 대한 고민도 있어서
별로 즐겁게 참가하진 못하고 왔습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사용자 삽입 이미지

Posted by 공현

댓글을 달아 주세요

걸어가는꿈2008. 4. 18. 01:13
일단 이번의 이른바 교육부의 "학교자율화" 뭐시기에 관련된 기사들의 표제는 다분히 낚시성입니다.

그러니까 그 이른바 "학교자율화"라는 걸로 발표한 건 사실,

교육부(중앙정부) 차원에서 갖고 있던 지침들을 폐지하고 교육감(지방 교육청) 차원과 학교 차원의 자율로 권한을 이전한다는 소리입니다 -_-

그런데 이게 학교 자율로 한다, 라는 거랑 교육감(교육청) 권한으로 한다, 라는 건 좀 많이 다른 이야기인데
다수의 언론들에서 그 둘을 면밀하게 구분하지 않고 뭉뚱그려서 기사를 쓰고 있어서 사실 관계를 좀 모호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어떤 건 교육감 자율에 해당하고, 어떤 건 학교 자율로 넘긴다는 거 같은데 기사만 봐서는 당췌 둘이 제대로 구별이 가질 않으니 -_-;;;

그래서 이런 기사도 나오는 거죠


우열반 0교시 수업 부활 않기로 결정


교육부에서 발표한 지침 폐지 조치 자체만 놓고 보면, 그것은 분명 입시경쟁을 더욱 과열시키고 학생들이 살기가 더 팍팍해지는 학교를 만드는 효과를 가질 것 같습니다.
그러나 교육부는 그러한 지침들을 없애고 교육청에서 따로 지침을 만들라고 한다는 이야기이기 때문에,
교육청 차원에서 어떤 지침들을 새로 정하느냐에 따라 또 달라지는 부분들이 있기 때문에, 좀 더 자세히 들여다봐야 합니다.



교 육 내용, 방식 등에서 약자인 학생들의 인권을 보장해야 하는 의무를 중앙 정부가 포기하고 그걸 "자율"이라는 명분을 갖다붙여가며 강자인 학교(혹은 각 지방교육청)의 "횡포"를 그냥 방임하겠다는 그 기본적인 발상은 분명히 무지무지 많은 문제들을 안고 있긴 합니다.
그리고 그런 것에 저항해서, 오히려 입시경쟁을 유지시키고 강화시키고 있는 국가-정부의 행태를 비판하고 입시경쟁교육 중단과 대안적 교육을 요구해야 합니다.

이러한 발표들에 대해 분노하고, 비판하는 것도 당연합니다.

하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그게 "교육부에서 0교시, 촌지 다 허용한다더라" 하는 식으로 이야기되기 시작하면 오히려 더 장기적으로 이 문제에 대해 공론화하고 문제제기하고 얘기해나가긴 어렵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정부에서 "오해다." 식으로 나오면 이건 뭐 -_-


사실 이번 일이 개인적으로 좀 씁쓸한 건
표제를 선정적인 걸로 골라서 다는 언론들에 휘둘리고 있다는 느낌 때문이랄까요 -_-;
Posted by 공현

댓글을 달아 주세요

걸어가는꿈2008. 4. 18. 00:26





0교시 야자보충 우열반 - 학교자율화 반대

4월 19일 저녁 6시 광화문 세종문화회관 앞










정말 많이 가야 할 듯합니다 에휴휴 -ㅂ-;;;

정부 측 발표가 난 지 얼마 안 되어서 급조된 행사라 홍보고 뭐고 할 기간도 없지만

그래도 가능한 한 널리 알려봐야지요요요요요요
Posted by 공현

댓글을 달아 주세요

걸어가는꿈2008. 3. 28. 16:59

(* 학교 안에서의 종교의 자유에 대해서 청소년인권행동 아수나로에서 내는 책에 넣으려고 쓴 글입니다)

강요되는 종교, 강요의 교육



  학교에서의 종교의 자유 침해라는 문제를 이야기하면, 보통은 종교 사학에서 일어나는 의무적 ‘채플’(기독교 학교에서 하는 예배)수업이나 특정 종교의식 강요, 특정 종교를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 학생회장 출마라거나 포상에서 불이익을 주는 일 등등을 떠올린다. 그렇지만 학교에서의 종교의 자유 침해는 종교 사학이 아닌 학교에서도 다양한 형태로 일어난다. 따라서 포괄적으로 학교의 구조에 대해서도 좀 다루어볼 필요가 있다.

  종교자유정책연구원의 손상훈 씨는 오마이뉴스 「"학교는 '교회'가 아니다" 제도화된 불법, 종교교육」(2006년 9월 25일)이라는 글에서 학교의 종교 자유 침해에 대한 다양한 상담 사례들을 고발하고 있다. 손상훈 씨는 학교에서의 종교의 자유 침해에는 ① 예배나 헌금 등을 강요하거나 특정 음식을 금지하는 등 행위를 강요하는 것, ② 그런 강요에 ‘순응’하지 않는 학생들을 학생회장 입후보, 시험, 일상생활 등에서 차별하는 것의 두 유형이 있다고 한다. 그 글에 제시된 사례 중 몇 가지만 뽑아보면 ▲ 전체 학년이 매주 특정요일 참여해야 하는 전교생 종교의식 (가장 많음) ▲ 매일 수업시간 시작 전에 담임교사가 강제로 순번제로 돌아가며 기도를 시키는 사례 ▲ 종교적 의미에서 그 색깔이 부정한 것이라서 특정 색깔의 신발주머니를 금지하는 학교 ▲ 반야심경을 강제로 외우게 하는 사례 ▲ 반 학생들에게 급식시간에 감사기도를 시키고 찬송가를 트는 공립초등학교 담임교사 등이 있다.
  이런 현실에 대해, 교육부와 교육청은 각 학교들에 종교수업을 만들 경우 다른 선택 가능한 수업을 편성해서 선택가능하게 하도록 하거나, 종교 활동에는 학생들의 자율적 의사를 존중하라고 지시하고 있다. 하지만 실제 학교에서는 거의 지켜지지 않고 있으며 학생들의 종교의 자유는 여전히 보장받지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이처럼 종교의 자유 침해가 심각한데, 이 문제가 사회의 관심을 받게 되고 그 실태가 알려지게 된 것 자체도 사실은 2004년 강의석 씨의 대광고 종교자유 투쟁 이후다. 2004년에는 사실 종교의 자유 자체에 대한 이야기보다는 강의석 씨 개인의 1인시위와 퇴학이라는 징계에 맞선 장기간 단식투쟁 등이 더 주목을 끌었었다. 그 운동은 “미션스쿨 종교자유”라는 다음(Daum)카페나 R.O.Y(Right of Youth)라는 청소년인권모임의 형태로 나아갈 기미를 보이기도 했으나 결국은 강의석 씨 개인의 투쟁 형태로 일단락되었다.
  “학교내종교자유”(“미션스쿨 종교자유” 카페가 이름을 바꾼) 카페가 남아있긴 하지만, 2006년 5월에 열었던 집회 이후로는 대학교 안에서의 채플에 대한 문제제기 외에는 집단적인 움직임이 만들어질 기미는 아직은 보이지 않는다. 다만 강의석 씨가 대광고를 상대로 제기한 소송(1심 강의석 씨 승소, 현재 항소심)이 진행되고 있다. (2008년 1월 현재)
  2006년 12월에는 숭실중 허형범 교사가 학교에서의 강제적인 종교교육을 고발하고 나섰다. 허형범 씨는 서울시교육청에 학교의 종교 강요에 대해 시정명령청구서를 제출하면서 연 기자회견에서 앞으로 자신은 학생들에게 종교를 강요하지 않을 것이고 학교가 종교를 강요하도록 명령하는 것도 받아들이지 않겠다고 양심선언을 했다. ‘종교자유정책연구원’ 같은 곳들에서는 지속적으로 토론회나 기자회견 등을 열고 있다


★ 가정에서의 종교 자유!
  학교에서의 종교 자유도 중요하지만, 가정에서의 종교의 자유도 매우 중요하다. 흔히 “모태신앙”이라고 불리는 아주 어릴 때부터 이루어지는 종교 주입도 그렇고, 가정에서 일어나는 친권자(부모나 보호자)가 청소년에게 가하는 종교적 억압은 널리 일어나고 있다. 하지만 이런 가정에서의 권리 문제는 다른 ‘가정’ 파트에서 더 자세히 다루어 줄 것이다. -ㅂ-


종교의 자유 ≠ 종교를 ‘강요’할 권리

  흔히 학교 내 종교 자유 주장에 가해지는 주요 공격은, “종교사학에서 종교교육을 하는 건 당연하며, 그 학교에 속한 구성원인 학생은 당연히 그 집단(학교)의 규칙을 따라야 한다.”라거나 “네가 선택해서 간 학교니까 받아들이는 게 당연하다.”라는 것이다. 일부 종교사학들은 자신들의 종교 강요를 “선교활동의 자유”라고 주장하고 있기까지 하다. “현재의 평준화 체제에서 뺑뺑이로 들어간 학교니까 선택해서 간 게 아니라서 문제”라는 말도 있는데, 이런 논리에 따르면 배정받아 가는 학교의 종교 자유는 옹호되지만 지원해서 가는 중고등학교나 대학교의 경우는 반대하게 되기 때문에 이 주장도 함께 비판적으로 검토하겠다.

  헌법 제20조에 보장하고 있는 종교의 자유는, 여러 가지 권리를 포함하고 있다. 종교의 자유 중에 가장 기본이 되는 신앙의 자유는 신앙선택의 자유, 개종(改宗)의 자유, 무(無)신앙의 자유, 신앙고백의 자유, 자기가 신앙하는 종교를 외부의 강제에 의하여 표명하지 않을(불표현) 자유 등을 의미한다. 그 외에도 종교적 행사의 자유, 종교적 집회 및 결사의 자유가 있고, 마지막으로 선교활동 및 종교교육의 자유가 있다.
  종교 사학에서의 종교 강요는 종교사학재단의 선교활동 및 종교교육의 자유와 학생의 신앙의 자유가 충돌하는 것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선교활동이나 종교교육의 자유가 타인에게 종교를 ‘강요’할 권리를 의미하지는 않는다. ‘종교의 자유’의 본질은 무엇보다도 정신적·내면적 권리인 신앙의 자유이며, 선교활동 및 종교교육의 자유가 종교를 ‘강요’할 자유는 아니라는 것은 신앙의 자유가 더 우선되는 인권이라는 뜻도 포함하고 있다.

  또한, 종교의 자유는 무엇보다도 종교를 믿고 안 믿을 자유, 신앙고백을 강요당하지 않을 자유, 신앙·불신앙으로 인하여 불이익을 받지 않을 자유 등을 포함하는 신앙의 자유를 본질적 요소로 하는데, 종교교육의 자유가 학교라는 교육기관의 형태를 취할 때에는 그 학교에서 수학하는 학생들의 기본권인 이러한 신앙의 자유 등과 충돌할 가능성이 많고, 특히 현재의 주요 대도시의 경우와 같이 고등학교 평준화 정책에 의하여 본인이 신앙하는 종교와는 무관하게 학교가 강제로 배정되는 제도 아래에서는 더욱 그러한바, 이러한 경우 원칙적으로 학생들의 신앙의 자유는 학교를 설립한 종교단체의 선교나 신앙실행의 자유보다 더 본질적이며 인격적 가치를 지닌 상위의 기본권에 해당한다고 보아야 하므로 이러한 학생들의 기본권이 보다 더 존중되지 않으면 안 된다.
- 강의석 씨가 대광고를 상대로 낸 민사소송에 대한 서울중앙지방법원 판결문 中

  저 재판은 현재 항소심이 진행 중이기 때문에 아직 확실하게 법적으로 이렇다 저렇다를 말하긴 어려울지도 모른다. 그러나 적어도 인권 기준으로는, 신앙의 자유를 침해하는 형태의 선교활동의 자유라는 건 인정될 수 없다.
  불교 신도가, 몇 번 정도 집안 사정 때문에, 또는 컨디션이 안 좋아서 법회를 빠졌다고 하자. 그 신도가 그것 때문에 어떤 강압이나 특별한 불이익을 당하는가? 순전히 종교적인 집단 안에서도 종교 사학 등에서 이루어지는 강제적 예배 의식 같은 것은 없다. 결국 종교 사학에서의 선교라는 것은 폭력과 강요의 성격을 띠는,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선교나 포교활동과는 좀 다른 것임을 알 수 있다. 특정종교의 선교 자체도 학교에서 권력관계가 개입하여 일방적으로 이루어진다면 문제겠지만, 현재 많은 학교에서 그 특정종교의 선교가 폭력, 강요, 강압, 특혜와 불이익 등의 형태로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은 더 큰 문제이다.

  선택해서 간 학교니까 따라야 한다거나 자신이 속한 집단의 규칙을 따르라는 주장들은, 집단의 규칙이 부당하게 인권을 침해하는 내용이라면 거부하거나 저항할 수 있다는 인권의 원칙을 생각해보면 별 의미가 없다. 사회 교과서조차도 근대 혁명 과정에서 나왔던 ‘저항권’의 개념을 중요한 것으로 가르치고 있다. 법이나 규칙이 인권의 원칙에 부합해야 하고 그렇지 않을 때는 사람들이 저항해서 바꿀 수 있다는 이념은, 인권보장을 목적으로 하는 민주주의 사회에서 중요한 원칙이며 학교라고 해서 예외가 될 수 없다.
  여러 종교사학들이 입학할 때에 학생들로부터 “종교 교육을 잘 받겠다.”라는 내용의 선서나 각서를 받으며 이를 근거로 종교를 ‘강요’하는 게 아니며 종교교육은 정당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강의석 씨의 소송에 대한 법원 판결에서도 이런 식의 선서에 대해,

  00고등학교가 신입생 입학시에 기독교적 교육방식에 대하여 학생과 학부모에게 설명하고, 학생들로부터 ‘기독교 교육과 함께 모든 교과과정을 충실히 받겠다’는 내용의 선서를 받아 온 사실과 원고가 입학 당시 신입생들을 대표하여 그러한 내용이 담긴 선서서를 낭독한 사실은 당사자 사이에 다툼이 없으나, 위와 같은 사정만으로 이 사건에서 문제되고 있는 피고 00학원의 앞서 본 바와 같은 각종 행위를 원고가 모두 이의 없이 받아들이겠다는 취지로 보기는 어려울 뿐만 아니라, 그것이 만약 이 사건에서 문제되고 있는 피고 00학원의 앞서 본 바와 같은 각종 행위를 모두 이의 없이 받아들이겠다는 취지라면 이는 기독교를 신봉하지 않는 사람들의 신앙의 자유와 자신이 결정한 양심을 외부에 표명하도록 강제되지 아니할 ‘양심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으로서 공서양속에 반하여 아무런 효력이 없다 할 것이다.
- 강의석 씨가 대광고를 상대로 낸 민사소송에 대한 서울중앙지방법원 판결문 中

그러한 선서 자체가 신앙의 자유, 양심의 자유를 침해하며 효력이 없다고 하고 있다.
  그리고 우리는 “종교의 자유”라는 인권이 쉽게 양도되거나 포기될 수 없는 권리라는 걸 인식해야 한다. 예컨대 한 학생이 개신교를 믿었기 때문에 개신교 재단에서 세운 고등학교에 입학했다고 하자. 그런데 그 학생이 2학년 2학기 때 인생의 중대한 전환기를 겪으면서 종교를 바꿨다고 한다면, 이 학생이 종교를 바꾼 이후에도 입학할 때 “종교 교육을 잘 받겠다.”라는 선서를 냈다는 이유만으로 강제로 채플 수업에 참여해야 하는 것일까?
  어떤 사람이 사채를 빌리면서 “신체포기각서”를 사채업자에게 써줬다고 하더라도, 법적으로 그 사람은 그 “신체포기각서”의 내용을 지키지 않아도 된다. 자신의 가장 기본적 인권인 신체의 자유, 생명권 등을 송두리째 포기하는 내용의 “신체포기각서”는 법적으로나 인권적으로나 부당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종교의 자유, 양심의 자유 등에도 마찬가지로 적용된다. 인권은 인간의 기본적 권리이기에 그렇게 쉽게 포기되거나 양도될 수 없다.

  마지막으로, 종교의 자유 문제를 현재와 같은 ‘평준화’ 제도와 연관시키면서 선택하지 않고 추첨제로 학교를 가는 게 문제라는 식의 주장에 대해 이야기해보자. “선택해서 가면 따라야 한다.”라는 식의 얘기에 대해서는 이미 충분히 비판한 것 같으니까, 짧게 하겠다.
  설령 그 학교를 선택해서 갔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종교의 자유를 포괄적으로 포기한다는 의미일 수는 없다. 초등학교든 중학교든 고등학교든 대학교를 가리지 않고 어떤 학교이든 마찬가지이다. 1998년에 대법원은 “학생들이 신앙을 갖지 않을 자유를 침해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라는 단서를 달면서 채플을 이수해야 졸업할 수 있다고 규정한 대학 학칙이 정당하다고 판결했다. 그러나 ‘채플’이라는 게 종교에 대한 수업이 아니라 예배나 종교의식의 성격을 띠는 상황에서, “학생들이 신앙을 갖지 않을 자유를 침해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라는 단서는 유명무실할 뿐이다. 선택해서 갔든 선택하지 않고 갔든 간에 종교의식이나 예배를 강제, 강요하는 모든 방식들은 인권침해로 보고 근절해야 한다.
  그러므로 어떤 사람들이 종교 자유 문제를 평준화 해체를 주장하는 근거로 삼는 것은 옳지 못하다. (내가 지금 같은 대학서열화-초중고교평준화 체제에 찬성하는 건 아니지만) 마치 종교의 자유 침해라는 인권 문제가 학교가 원하는 학생들을 선발하지 못해서 일어나는 것인 양 왜곡해서는 안 된다. 그것은 학교에서 자행되는 인권침해의 폭력일 뿐, 정당화될 수 있는 행위가 아니기 때문이다.
 

‘강요’의 교육 방식

  나는 학교에서 종교를 강요하는 문제가 단지 일부 종교 사학의 문제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공립학교에서도 교사 개인이나 교장의 성향에 따라 얼마든지 종교 강요가 일어날 수 있다. 종교 강요의 문제는, 학교의 구조적인 문제를 반영하고 있다.

  특정 종교를 믿고 있으면서 그 종교를 학생들에게 강요하고 일방적으로 전도하는 교사는, 그것이 그 학생들을 위한 사랑이라고 확신할 것이다. 종교사학의 이사장이나 이사회, 교장, 교감 등도 마찬가지다. 이처럼 특정 생각을 받아들이도록 강요하면서 “이게 다 학생들을 위한 거다.” “이게 다 학생들에 대한 사랑이다.”라고 말하는 모습은, 꼭 종교의 문제가 아니더라도 학교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풍경이다.
  학교에서 학생은 학교 운영이나 교육과정 편성, 교육내용 결정에 참여하지 못하고 단지 그 명령을 전달받고 그대로 따르기만 해야 하는 존재이다. 극히 일부의 과목이나 수업을 제외하면, 수업시간이란 교사가 학생들보다 더 높은 교단에 서서 수십 명의 학생들에게 일방적으로 지식이나 도덕을 떠들고 학생들이 그것을 듣고 그 방식에 따라 그대로 연습해보는 시간이다. 그리고 가끔씩 학생들이 교사가 전달한 내용을 잘 받아들이고 있는지 확인하기 위한 질문과 답, 그리고 교사의 점수매기기가 이루어지곤 한다.
  거기에는 교육이 옳은 것, 진리, 선(善)이 무엇인지 알고 있는 교사가 그것을 학생들에게 일방적으로 전달하고 가르치는 것이라는 생각이 깔려 있다. 옳은 것이 무엇인지는 교사가 결정하고 평가하기 때문에, 학생들은 교사가 가르쳐준 ‘정답’을 맞추기 위해 노력한다. 때로는 교사의 자리를 교장, 문제집, 입시체제 자체, 대학 교수 등등이 대신하는 경우도 있지만, 어쨌건 그 수직적인 구조는 변하지 않는다. 종교 강요의 경우에는 그 ‘절대적으로 옳은 것’과 ‘진리’의 자리에 특정 종교가 들어가는 것일 뿐이다.

  만약 교육청에서 강력하게 종교수업을 강요하는 것을 규제하고 대체 수업들을 편성하도록 한다면, 강제적인 종교수업 그 자체는 막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런 것을 막는다고 하더라도 수많은 일상적인 종교의 자유 침해 사례들은 계속 남아 있게 된다. 결국 종교 강요라는 문제는, 학교의 수직적이고 상명하달적인 구조를 그 원인으로 안고 있다.
  평등한 대화와 토론에 기초를 둔 수업 방식으로 바꾸는 것이 필요하다. 학생들의 학교 운영 참여를 전면적으로 보장하고, 학생들이 교사의 일방적인 강요와 권력에 피해를 받지 않을 수 있는, 학생과 교사가 평등하게 만날 수 있는 교육을 만들어 가야 한다.

  게다가 종교 사학의 종교 강요로 인해 피해를 보는 것은 학생들뿐만이 아니다. 중고등학교나 대학교에서 많은 교원들이, 종교적 이유로 인해 차별을 당하거나 불이익을 받고 있으며, 종교의 자유를 침해당하고 있다. 앞에서 언급한 허형범 교사나, 이찬수 강남대 교수가 종교적 이유로 재임용에서 탈락한 사건 등이 대표적 사례이다. 학교의 수직적이고 독재적인 구조를 바꿔야 한다는 것은, 교사들의 종교의 자유를 보장한다는 의미도 담고 있다.



발전하는 종교 자유 운동을 꿈꾸며

  종교 자유의 보장을 위해서는, 당장은 정부가 강제성 있는 인권 가이드라인이 만들고 집행하는 것이 필요할 것이다. 종교자유정책연구원의 자료를 참고하자면, ▲ 교육과정에서 특정 종교의식 활동 포함 금지 ▲ 수행평가로 특정 종교 활동 제시 금지 ▲ 교육과정 외 활동에서도 학생의 종교 관련 선택권 보장 ▲ 종교 의식 불참자에 대한 특별지도 금지 ▲ 재량활동이나 특별활동 시간에 특정 종교 교육 금지 ▲수행평가 과제로 특정 종교 활동 제시 금지, ▲학급 전체 참여를 전제로 한 종교활동 경진대회 금지 ▲학생회 임원 제한 같은 종교 차별 금지 ▲학교별 종교 관련 상담창구 상설 운영 등의 가이드라인을 생각해볼 수 있다.
  정부의 이러한 조치가 저절로 나오기 어렵다는 점은 이미 확인된 적이 있다. 서울시교육청 같은 경우는 2006년에 한 번 학생의 종교 자유를 보장하도록 하는 지침을 내렸다가 종교 사학들이 반발하자 그 지침을 “실무자의 실수”(?)라며 철회했던 것이다. 이러한 정부의 조치를 이끌어내는 것, 그리고 그런 조치가 실효성 있고 강제성 있는 것이 되도록 만드는 것은 결국 당사자들의 저항과 행동이다.
  학생들 개인/집단이 학교에 시정을 요구하는 것은 가장 작은 실천일 것이고, 교육청을 통해 시정명령을 내리도록 청구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일 것이다. 무엇보다도 가장 중요한 것은, 종교사학에서 종교 강요를 겪고 있는 학생들을 중심으로 모임을 만들고 지속적으로 활동을 전개하는 것이다. 강의석 씨 투쟁은 사회에 커다란 파문을 던졌고 충분히 큰 변화를 이끌어냈지만, 그럼에도 아쉬운 것은 그 투쟁이 지속적이고 집단적인 활동으로 발전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강의석 씨가 학교를 졸업한 후에는, 강의석 씨가 만든 ‘학교내종교자유’ 카페에서도 별다른 활동들이 만들어지지 못하고 있다.

  현장에서의 저항과 싸움이 이루어지고 어느 정도 종교 자유 보장을 위한 제도적 진전을 달성한 이후에는, 종교 자유 운동은 궁극적으로는 학교의 수직적이고 비민주적인 구조와 교사-학생 관계 등을 변화시키려는 의도를 담아야 할 것이다. 학교 안의 민주주의, 그리고 일상적인 교육 현장에서의 평등한 대화와 민주주의를 실현시키는 것만이, 궁극적으로 종교나 가치관이 ‘강요’되는 교육 현실을 깨부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먼 이야기를 위해서는 우선은 발전하고 나아가는 종교 자유 운동이 필요하다. 일방적인 강요와 폭력의 교육을 뒤집어엎고 새롭게 만드는 그날까지, 자유와 평등과 인권의 요구는 멈추지 않을 것이다.





Posted by 공현

댓글을 달아 주세요

걸어가는꿈2008. 3. 4. 15:37
http://www.redian.org/news/articleView.html?idxno=8977







전국의 놀이터여, 단결하라!
"3월 6일 학생대학살의 날에 바리케이트가 되어다오"

“한국의 교육은 교육학 교수들이 망쳤다”는 격언을 되새기며. 놀이터여, 줄세우기 시험을 교육이라고 생각하는 이들과 맞서다오.

전두환 군사독재정권 시절 중고등학교를 다닌 사람들은 축복받은 세대일지 모른다. 과외가 금지되어 사교육비가 들지 않고, 대입 시험도 단순하여 사실상 ‘단 한 번의 시험’으로 모든 게 판가름났으니 말이다.

복잡한 입시전형, 20조 원에 이르는 사교육비, 돈 없으면 사교육도 입시정보도 뒤쳐질 수밖에 없는 지금에 비추어보면, 괜찮았던 시절이라고도 할 수 있다.

하지만 학교 안의 풍경은 오히려 지금이 낫지 않을까. 잘못 하면 맞고, 잘못 안 해도 맞고, 특히 성적 떨어지면 죽고, 툭하면 시험 보고, 심심할 때마다 전국의 모든 학생들이 한날 한시에 시험 보고, 반 석차는 물론 전국 석차까지 공개되고, 그리고 또 맞고, 그래서 밤늦게까지 ‘자율’학습하고, 그게 싫어서 땡땡이치고, 다음날 얻어터지고.

오늘 21세기에도 여전하지만, 그 당시는 생각하고 싶지도 않을 것이다. 군대 다시 가기와 더불어 꿈에 볼까 두렵다. 물론 일부 범생이들이야 좋게 말하겠지만.

“컨닝하면 왜 안 되나요?”

그렇게 죽었는지 살았는지 모르게 있다가 교직에 뜻한 바(?) 있어 사범대나 교대에 진학하면, 술에 절어 있는 나날의 와중에도 몇 가지 충격이 다가온다. 제일 먼저 한국식 시험에 절어 있는 사범대와 교대생들을, “왜 컨닝하면 안 되나요? 우리 조상들은 어려운 문제가 있으면 모두 모여 상의하면서 해답을 찾으라고 했는데요. 아는 데도 가르쳐주지 말고 모르는 데도 묻지 말라는 게 무슨 말이죠?”라는 호피인디언 아이들의 이야기가 맞이한다.

그리고 ‘경쟁을 시키면 공부도 열심히 하고 성적도 오른다’는 건 헛된 믿음이라는 아더 콤즈의 『교육신화』가 뒤를 잇는다. 좀더 오래 뭉기적대고 있으면 스탈린의 탄압을 받았던 비운의 마르크스주의 교육학자 비고츠키(Vygotsky, L. S.)도 만난다. 그의 근접발달영역(ZPD) 개념을 통해 혼자서 뭘 할 수 있느냐가 중요한 게 아니라, 누군가의 도움과 협력을 받아서 어디까지 할 수 있느냐가 중요하다는 점을 배운다.

당연히 학생 혼자 풀 수 있는 문제가 몇 개인지 세는 평가나 시험은 큰 의미가 없다. 도움이나 협력 속에서 어디까지 풀 수 있느냐를 봐야 한다. 하지만 그런 평가도구는 아직 개발되지 않았다.

아니, 그럼 이 글을 쓰는 사람은 어떻게 했냐고? 대학이라서 가능하긴 했지만, 미리 문제를 알려준다. “이 중에서 두 세 문제 낸다. 지금부터 혼자서 공부해도 되고, 친구나 선후배와 함께 해도 된다. 찾아보고 의논한 후 시험 당일날 자기 말로 답을 써라”라고 한다. 이것도 부족하지만, 덕분에 매학기 문제를 달리 한다고 머리 쥐 내렸다.

그건 그렇고 뭐니뭐니 해도 술을 확 깨게 하는 건 평가에 대한 주류 교육학의 입장이다. 보수적이라고 정평이 나있는 주류 교육학에서도 평가를 줄세우기라고 말하지 않는다. “아이들이 이걸 잘 모르는구나. 다르게 설명해야겠다”는 식으로 교사의 교육활동을 뒤돌아보기 위한 도구라고 본다.

진단평가니, 형성평가니, 총괄평가니 하여 종류별로 성격이 조금씩 다르긴 하나, 모든 평가는 반성의 도구란다. 그럼, 50점 맞은 학생은 왜 그 학생이 50점인지 뒤돌아봐야 한다는 말인데, 이 무슨 염장 지르는 소리인가.

이제까지 50점이라고 60점이라고 얻어터진 볼따구, 대가리 박기, 화장실 청소는 뭐란 말인가. 학교 단위이든 전국 단위이든 석차 매긴 건 다 뭐란 말인가. 시험 봐야 한다고 목소리 높였던 아니면 쭉 줄세웠던 교육자들은 사실은 교육자가 아니란 말인가.

이럴 때 성현들의 가르침, 육두문자가 필요하다. 아니면 그리 좋은 방법은 아니지만, 눈에는 눈 이에는 이 식으로 “1 + 1 = 1 이 되는 열 가지 경우를 쓰시오”라는 문제를 풀게 하고 석차 매겨야 한다.

3월 6일, 학생 대학살이 시작된다

3월 6일 전국의 중학교 1학년 학생들이 일제히 시험을 본다. 국어, 영어, 수학, 사회, 과학 5개 과목에서 서울시 교육청이 낸 25문항씩의 문제를 가지고 한꺼번에 시험을 본다. 입학하기 전에 학교에서 배치고사를 봤지만, 또 시험을 본다.

정식 명칭은 ‘진단평가’이나, 학생 입장에서는 배치고사나 진단평가나 매한가지 시험이다. 하지만 이제까지의 배치고사나 중간고사와는 질적으로 다르다. 학교에서 문제 내고 학교에서 시험 보고 채점하는, 그래서 학교마다 다른 그런 시험이 아니다.

전국의 모든 중 1 학생이 한날 한시에 똑같은 문제를 가지고 시험을 보는 거다. 고 3 수험생이 보는 수능과 유사한 거다. 성적표도 현재까지는 과목별 점수, 전국 석차 백분위 점수(전국 석차를 백분율로 표시한 점수)가 기재된다고 한다.

하지만 공정택 서울교육감은 최근 <조선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올해부터 서울 시내 초중고등학교 학교별 성적을 교육청 홈페이지에 공개하겠다”라고 밝힌 바 있다. 그래서 어떻게 될지 모른다. 이번 시험부터 한 학생의 전국 석차, 그 학교의 석차 등이 만천하에 드러날 수도 있고, 뒤이어 예정되어 있는 시험부터 그럴 수 있다. 공개 시점이 언제이든 간에 ‘교육’감의 사고가 참 ‘교육’적이다.

이 시험, 공정택 서울시 교육감 등 전국의 16개 교육감들이 작년 9월에 합의한 거다. 교육청들이 ‘자율적으로’ 결정한 거다. 물론 학생들에게 묻지 않았다. 요즘 들어 부쩍 늘어난 “시험 꼭 봐야 하나요?”라는 학생들의 항변은 ‘자율적으로’ 뭉갠다. 2MB가 권한을 대폭 교육청으로 이양한다고 했는데, 그게 뭘 의미하는지 단적으로 보여준다.

3월 6일의 중학교 1학년 다음으로는 초등학교 4~6학년이 예정되어 있다. 3월 11일에 역시 다섯 과목을 시험 본다는데, 1% 학생들만 보는 표집 진단평가라고 하나, 모든 초 4~6학년이 볼 태세다.

너무도 ‘교육’적인 교육감님

정말 ‘교육’적인 공정택 교육감께서는 이미 서울 시내 모든 초등학교에 시험 보라고 공문을 하달하셨다. 경기도는 학교에서 ‘자율적으로’ 판단하라고 했는데, 아마 학생들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자율적으로’ 거의 대부분의 학교들이 시험보지 않을까 한다. 다른 시도 역시 오십보 백보로 예상된다. 전국 시도교육감협의회의 회장이신 공정택 교육감께서 친히 모범을 보이는데, 다른 시도 교육감께서 이를 마다할 이유가 없다.

초등 4~6학년 시험은 중 1 시험과 달리 개인별 성적표는 배부되지 않는다. 하지만 5월에 학교별로 소위 ‘미달 학생’이 어느 정도인지 가늠하는 프로그램이 주어진다. 곧 어느 초등학교는 공부 못한다는 아이가 몇 명 또는 몇 %인지 알 수 있게 된다.

바야흐로 14살 중학교 1학년도, 11살 초등학교 4학년도 19살 언니 오빠처럼 전국 시험을 치르는 날이 도래했다. 전국 석차를 아는 날이 언제인지는 확정되지 않았지만, 한 학년 평균 65만 여명의 아이들이 똑같은 문제를 딱딱한 책상에 몇 시간 동안 앉아 누구에게 물어보지도 못한 채 쥐죽은 듯이 시험을 봐야 한다.

공식적으로 전국 석차나 다른 결과가 공개되지 않아도 상관없다. 시험보고 나면 교장이나 교사들끼리는 말이 오간다. 교육청에서 은근히 학교를 갈구기도 한다. 비공개라지만, 정보력이 뛰어난 학원이나 학부모의 손에 들어가는 건 시간문제다.

이 얼마 만인가. 10년 만의 쾌거다. 물론 서울의 공정택 교육감께서는 이미 2년 전부터 초등학교 일제고사를 보고 계셨다. 역시 발빠르시다.

이렇게 빠른 ‘교육’적 결단에 학생들은 애시당초 없다. 작년 10월 전교조 서울지부가 초등학생 4~6학년 1,500여명에게 지난 2년 간의 일제고사에 대해 물었더니, 시험 결과를 확인한 다음에 13.2%의 아이들이 ‘죽고 싶다’고 했단다. ‘자기가 한심하다’는 아이들도 34.9%나 된단다. 이 대답을 11살, 12살, 13살 아이가 했다.

   
 
 
하긴 수능 전후로 수험생이 자살을 해도 이제는 주목하지 않는 사회이니, 무슨 말이 더 필요할까.

이렇게 학생 대학살은 시작된다. 3월 6일 중학교 1학년을 필두로, 3월 11일 초등 4~6학년, 그리고 10월 29일 중학교 3학년, 12월 23일 중학교 1~2학년, 마지막으로 고등학교 1~2학년은 올해 년 4회, 고 3은 6회가 예정되어 있다.

교육부가 보는 표집 진단평가도 일부 있지만, 대부분 2MB 시대를 맞이하여 권한을 이양받을 시도교육감협의회에서 이야기된 거다. 11살부터 19살까지 약 6백만 명의 아이들과 그 수백만 가족들에게 16인의 교육감들이 선사한 길이다.

역시 삼성!

역시 삼성이었다. 삼성이 만든 사교육 업체 크레듀 M은 이미 3월 6일의 중 1 전국 일제고사를 대비하여 자체 모의고사를 두 번 봤다. 만들어진 지 1년도 안 된 업체가 다른 업체들보다 발빠르게 움직였다. 1월 말에 한 번, 2월 말에 한 번 하여 온라인으로 접수받아 모의고사를 봤다. 물론 무상이 아니다. 학생 1인당 2만원씩 받았다. 한 번에 약 6천 명씩 응시했다고 하니, 도합 1억 원이 넘는다.

다른 사교육업체는 뒤늦게 움직이기 시작한다. 하지만 앞으로 시험은 많다. 그리고 삼성 크레듀 M의 모범도 있고 하니, 16인의 시도 교육감이 ‘자율적으로’ 정하는 시험에 발맞춰 사교육업체의 다양한 수익사업이 점쳐진다. 11살부터 19살까지 학생들과 그 부모들이 무슨 죄가 있다고, 이 땅에 태어난 게 죄인지.

   
▲ 대교 눈높이의 TV 광고 ‘놀이터야 안녕’
 

한편, 최근 들어서는 학교를 군대에 비유한 CF도 등장했다. 김광석의 ‘이등병의 편지’를 배경으로 놀이터를 바라보는 튼튼한 남자아이의 뒷모습으로 시작하는 광고가 그거다.

대교 눈높이의 ‘놀이터야 안녕’ 편 CF에서는 “3월이면 학교 간다. 내 아이가”라는 엄마 목소리가 먼저 들린다. 뒤이어 남자 아이가 “놀이터야 안녕”이라고 한다.

모델이 되었던 아이의 부모가 광고를 보면서 무슨 생각이 들었을까 궁금하다. CF에 자기 아이가 출연해서 대견스럽게 생각했을지, 아니면 학교는 군대고, 학교 가면 놀이터는 끊어야 한다는 CF를 보며 다른 생각을 했을지 의문이 든다.

무엇보다 대교 눈높이의 시각이 충격이다. 군대 같은 초등학교에 들어가니 미리미리 사교육으로 대비하라는 말인가, 이제 아이를 놀이터에 보내지 말라는 말인가. 한국의 현실을 어느 정도 반영하고 있기는 하나, 아이에게서 놀이터를 빼앗아야 한다는 시선은 기가 막힐 뿐이다.

전국의 놀이터여, 단결하라

‘놀이가 학습이고 학습이 놀이’라는 교육학의 상식은 차치하고서라도, 이렇게라도 해서 아이와 엄마의 돈을 챙기려고 하는 마음이 서글프다. 또한 대놓고 “아이를 놀리지 말고 학습지 풀게 하라”는 그 자신감에는 할 말이 없다.

전국의 놀이터가 살아 숨쉬기를 바란다. 3월 6일 학생 대학살의 날에 “놀이는 학습이고, 학습은 놀이다”라는 현수막을 내걸고, 자신들의 쇠몸뚱이로 바리케이트를 치고, 이 땅의 참 교육자들과 함께 “너희가 교육을 알어?!”라고 저항하였으면 한다.

언제나 아이들을 반갑게 맞이하는 미끄럼틀의 마음이 만방에 울렸으면 한다. “아이를 빼앗아가지 마라”는 그네의 몸짓이 전국 방방곡곡에 퍼졌으면 한다. “아이들을 정말 사랑한다면, 학교에 손 대고 싶으면, 학벌주의와 대학서열체제부터 고쳐라”는 놀이 기구들의 외침이 저 푸른 하늘에 가득 하기를 꿈꾼다.

님은 갔습니다 아아 사랑하는 나의 교육은 갔습니다
참교육의 길을 깨치고 인간파괴 숲을 향하여 난 줄세우기 길을 걸어서 차마 떨치고 갔습니다
황금의 꽃같이 굳고 빛나던 옛 맹세는 차디찬 시험지가 되어서 한숨의 미풍에 날아갔습니다

아아 님은 갔지마는 나는 님을 보내지 아니하였습니다
제 곡조를 못 이기는 사랑의 노래는 침묵을 휩싸고 돕니다

2008년 03월 04일 (화) 14:07:15 송경원 redian@redian.org
Posted by 공현

댓글을 달아 주세요

걸어가는꿈2008. 2. 19. 11:27
http://1318virus.net/modules/news/view.php?id=12668




진성고, 두발규제 반대 종이비행기 시위

[인권] 두발규제, 소지품검사, 체벌 반대 200여명 학생들 집단행동

기사프린트 신청이 기자  tlscjddl@hotmail.com 



진성고등학교 교내방송 듣기


지난 15일 진성고등학교에서 두발규제, 소지품검사 등 학생인권침해에 반대하는 종이비행기 시위가 열린 사실이 뒤늦게 밝혀졌다.

▲학생들이 학교 옥상과 창문에서 종이비행기를 던지며 '두발자유'를 외쳤다.
ⓒ 인터넷뉴스바이러스

진 성고등학교는 전교생이 기숙사 생활을 하는 기숙형 학교로 정규 수업시간 이외의 야간에는 생활관에서 생활지도를 한다. 때문에주간, 야간을 나눈 2중 담임제로 운영되며 학생들은 아침등교부터 저녁식사시간, 취침까지 엄격한 생활 규율에 따라 생활하고 있다.

학생 200여명, '두발복장자유', '소지품검사·체벌반대'

이날 진성고등학교 학생 200여명은 교실 건물 옥상에 모여 일시에 종이비행기를 던졌다.

학생들이 직접 접어 던진 종이비행기에는 '당연한 권리가 지켜지지 않을 때, 우리에게 필요한것은 비겁한 침묵이 아닌 용감한 저항이다'라는 문구와 함께 '두발복장자유', '소지품검사 폐지', '체벌거부'의 구호가 담겨 있었다.

▲학생들의 요구사항이 담긴 종이 비행기들이 학교 앞으로 떨어졌다.  
ⓒ 인터넷뉴스바이러스

익명을 요구한 재학생 A군은 두발규정에 대해 "남학생은 18mm의 반 삭발형 스포츠머리고, 여학생은 귀 및 5cm"라고 설명했다. 특히 여학생은 하이테크 펜 뚜껑을 이용해 대조하는 두발검사가 이뤄지고 있다.

A 군은 용의복장규정에 대해 "매점에서 판매하는 진성티(9,000원)를 입지 않고 시중에서 저렴한 가격에 판매하는면티(4,000원)를 입었다는 이유로 벌점을 받기도 한다. 뿐만 아니라 생활관에서 실시되는 야간 품신검사에서 한 학생은 자신의편지가 검사자에 의하여 다수에게 공개되는 일도 발생했다"고 전했다.

학생들은 종이비행기 시위를 통해 '두발복장자유', '소지품검사 폐지', '체벌거부' 등을 실현하기 위한 학생-학부모-교사가 모인 3자 회의를 요구하고 있다.

학교 측 "2007학년도까지 가능한 시위, 두발규정 변함없다" 

반 면 학교는 종업식 당일 교내 방송을 통해 "종이비행기 잘봤다. 2007학년도까지 가능했던 행위다. 락카칠한거 잘보고 잘 지웠다.2007년까지 가능했던 행위다. 생활관 5층 낙서, 초등학교 2학년이 할만한 것들 감명깊게 잘 봤다"며 학생들의 시위를일축했다.

또한 "비판의식과 도전적인 사고방식은 지금 필요없다. 학생답지 않은 행동과 사고방식은 옳지않은것이다. 노력해도 되는것이 있고 되지 않는것이 있다. 되지 않는건 이유가 있다"며 "2008년 두발규정은 스포츠형이고 뒷머리는2cm이상 기르지 말아야한다. 이후 집합시켜서 검사하겠다"고 두발규정에 변함이 없음을 확인했다.

진성고 교감은 본지와의 인터뷰를 통해 "지난주에 있었던 종이비행기 시위는 '모르는일'"이라며 "학교에 1,000명이 넘는 학생중에서 몇명의 학생들이 요구한다고 해서 학교 전체를 맞출수는 없다"고 입장을 밝혔다.


▲맨위로 2008년 2월 19일 00:17
©2008 청소년의 생생 리포트 - 바이러스
Posted by 공현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학부모

    학생은 학생 다워야지요

    2008.02.20 23:10 [ ADDR : EDIT/ DEL : REPLY ]
    • 헐.

      그럼 자식 한번 글루 보내 보실래요??

      학생은 학생다워야 한다는 말..

      나이 많이 드신 점잖은 분들만

      매번 입에 침이 마르도록 하는 말이거든요.

      2008.02.21 16:47 [ ADDR : EDIT/ DEL ]
  2. ㅋㅋㅋ

    학생다운게 머리짧은거냐 ? ㅋㅋ

    그 개념좀 바꾸지

    왜케 시대에 뒤떨어진 생각을 하고사냐 다들 ; ㅋㅋㅋ

    2008.02.24 18:56 [ ADDR : EDIT/ DEL : REPLY ]
  3. ㅄ들

    교감이뭐 ,,ㅡㅡ ㅋㅋㅋ
    나 저학교갓으면 학교떄려치고 걍 일배웟겟다 ㅅㅂ ㅋㅋ

    2008.06.18 21:02 [ ADDR : EDIT/ DEL : REPLY ]

걸어가는꿈2008. 2. 11. 04:10
2007년 12월 초에 국민대 교육대학원 어떤 소식지인가에서 청탁해서 썼던 글입니다 @_@





가르친다는 것은 다만 ‘함께’ 희망을 노래하는 것이다



교 육은 인격의 충분한 발전과 인권 및 기본적 자유의 존중을 강화할 것을 목적으로 하여야 한다. 교육은 모든 나라, 인종적 또는 종교적 집단 상호간의 이해, 관용 및 우호관계를 증진하는 것이어야 하고, 평화의 유지를 위하여 국제연합의 활동을 촉진하는 것이어야 한다.
                                                                                         - 세계인권선언 제26조 中


당사국은 학교 규율이 아동의 인간적 존엄성과 합치하고 이 협약에 부합하도록 운영되는 것을 보장하기 위한 모든 적절한 조치를 취하여야 한다.

당사국은 아동교육이 다음의 목표를 지향하여야 한다는 데 동의한다.
(a) 아동의 인격, 재능 및 정신적.신체적 능력의 최대한의 계발
(b) 인권과 기본적 자유 및 국제연합 헌장에 규정된 원칙에 대한 존중 의 진전
(c) 자신의 부모, 문화적 주체성, 언어 및 가치 그리고 현거주국과 출신국의 국가적 가치 및 이질문명에 대한 존중의 진전
(d) 아동이 인종적.민족적.종교적 집단 및 원주민 등 모든 사람과의 관계에 있어서 이해, 평화, 관용, 성(性)의 평등 및 우정의 정신에 입각하여 자유사회에서 책임 있는 삶을 영위하도록 하는 준비
(e) 자연환경에 대한 존중의 진전
                                                                              - UN아동권리협약 제28조 및 제29조 中



  우리는 흔히 “교육”이라는 말을 아주 익숙한 말로, 때로는 긍정적인 뉘앙스를 담아서 사용한다. 그러나 교육(敎育)이라는 한자말에서 가르칠 교(敎)는, 매듭(爻) 묶는 법을 아버지가 손에 회초리(殳)를 들고 아들(子) 옆에서 가르쳐 주는 모양을 딴 글자라고 한다. 매를 들어가며 기술을 습득하게 하는 것이 바로 가르칠 교(敎) 자의 의미인 것이다. 물론 한자의 유래가 사람들의 행동을 결정짓는 것은 아니지만, 가르칠 교(敎)의 폭력성처럼 우리가 익숙하게 사용하는 ‘교육’의 의미 속에는, 어쩌면 애초부터 폭력이 내재되어 있는지도 모른다.

  학생들이 학교에서 겪고 있는 그 수많은 인권침해들은, 단지 ‘교육’의 상궤를 벗어난 일부 예외적 폭력이라거나 우발적 사고라고 치부할 수 없다. 두발단속, 교복강제를 비롯한 온갖 복장단속, 학생이나 교사에 의한 학생에 대한 체벌과 ‘기합’ 같은 폭력들, 강제적인 야간‘자율’학습과 보충수업, 소지품 검사와 압수, 성(性)적 권리 침해, 참여권 박탈, 열악한 시설과 획일적이고 강압적인 교육방식, 입시경쟁 등으로 인한 교육권 및 발달권 및 평등권 침해, 온갖 차별 등등… 열거하자면 끝도 없다. 나와 함께 청소년인권운동을 하는 사람 중에는 근대적 교육과 학교의 존재 자체가 학생들의 인권을 침해한다고까지 말하는 사람도 있다.

  어떤 사람들은 2006년에 200대 가까운 체벌을 가했다가 유죄 판결을 받은 교사를 이야기하며, 이제는 시대가 달라졌다고 한다. 그러나 사실, 수백 대씩 체벌했다가 법정까지 간 사례는 예외적인 것이다. 학생인권 침해 사례들을 신고받고 정리하고 대응하는 일을 하는 내 입장에서는,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보다는 ‘시대’는 훨씬 조금 달라진 것 같다. 지금도 수십수백 대씩 체벌을 하고 ‘앉았다일어났다’ 같은 걸 수백 번씩 시키는 일상들이 전국 학교에서 일어나고 있다. 얼마 전에 울산에서도 학생이 두발단속 때문에 체벌을 당해서 머리가 깨져서 전치 12주의 중상을 입었다고 한다.

  우리가 당연하게 여기는 학교에서의 일상들도 학교가 아닌 공간으로 옮겨와보면 정당화될 수 없는 인권침해인 경우가 많다. 거리에서 사람들에게 무작정 위험한 물건을 갖고 있을 수도 있다며 경찰이 소지품 검사를 한다면, 얼마나 당황스러운 일인가? 극장에서 휴대전화가 울렸다고 해서 극장 직원이 휴대전화를 압수한다면, 얼마나 화가 날 것인가? 회사 실적이 부진하다고 10대만 맞게 엎드려뻗치라고 하면, 얼마나 많은 항의가 빗발칠 것인가?

  학생에 대한 온갖 인권침해들은, 다만 공론화되지 않고 있을 뿐이다. 종종 학생에 대한 인권침해와 폭력은 교사의 재량이거나 학교장의 재량, 혹은 열성적인 ‘교육’으로 포장된다. 학생은 정치적 주체, 권리의 주체가 아니라고 보기 때문이다. “교사가 100대 넘게 때리면 신고하라.”라는 말처럼, 아니면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2대까진 교육이지만 3대부터는 폭력이라는 어느 교총 교사의 말처럼, 머리에 바리깡도 안 대는데 무슨 인권침해냐는 말처럼, 피해의 심각성이 가시화되어야만 사회적 관심사로 부각된다. 학생인권침해가 ‘교육’이 아닌 ‘폭력’으로 인지되려면, 그 정도가 매우 심각해야만 한다는 것이다. 나는 학생의 학생에 대한 폭력과 같은 유형의 인권침해들만이 그토록 사회에서 부각되고 부랴부랴 대책이 수립되는 이유는, 어쩌면 가해자도 학생인 경우가 만만하기 때문은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든다. 또, 심각하다고 다 알려지는 것도 아니다. “심각한 정도”에 대한 인식이 지방마다 교육주체마다 사람마다 다른 데다가, 학교의 명예 같은 이야기에 휘둘려 사람들이 문제를 덮으려고 할 때가 많기 때문에, 심각한 경우들 중에서도 보도되고 부각되는 것은 일부에 불과하다.

  이런 식으로 학생인권 문제에 대해 이야기하면, “그럼 교육을 하지 말라는 거냐.”라는 식의 비판이 꼭 등장하곤 한다. 그러나 ‘교권 vs 학생인권’이라거나 ‘교육 vs 인권’ 구도는 폐기되어야 한다. 학생인권 문제는 교육이라는 가치와 인권이라는 가치의 갈등이라고 접근해서는 안 된다. 학생인권은, “어떻게” 교육을 하느냐의 문제이다. 그것은 통제적이고 억압적인 교육이냐 아니면 인권적이고 민주적인 교육이냐의 교육 패러다임의 차이다. 이렇게 봐야, 교육과 인권의 가치를 잘 조화시켜야 한다는 모호한 목소리는 사그라들고 인권적이고 민주적인 새로운 교육을 창조하거나 도입해야 한다는 원칙이 적용될 수 있다. ‘인권’이 정말로 사회를 구성하는 원리라면 학생인권을 침해해야만 가능한 교육과 학교라는 것은 사라지거나 바뀌어야 한다. 세계인권선언에 명시된 것처럼 교육의 목적이 인간의 기본적 자유와 인권에 대한 존중을 증진시키는 데 있어야 한다면, 지금 학생인권을 침해해가며 이루어지고 있는 교육은 교육이 아닌 ‘무언가’일지도 모른다.



  교육과 교사에 대해 고민하는 분들에게 드리는 말로 서툴게 글을 마무리 지으려 한다. 학생들의 인권을 존중한다는 것은, 사실 그렇게 만만한 일이 아니다. 그건 교사가 학생들을 보호해줘야지, 같은 시혜적인 문제가 아니다. 학생들을 동등한 주체로 인정하고 접근할 수 있느냐의 문제이며, 교사-학부모-학생(-관리자들-공무원들)의 관계를 재편하는 것이다. 예컨대 학생들이 인권을 요구하며 직접 저항에 나섰을 때, 교육자들은 어떤 입장에 서야 할 것인가? 억압하는 입장, 달래는 입장, 대변하는 입장 등 여러 가지가 가능할 테지만 가장 평등한 관계는 연대하고 함께하는 관계일 것이다. 교육은, 항상 평등한 관계 속에서 대화하고 연대하는 활동이어야 하지 않을까.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인권의 문제는 ‘어떻게’ 교육을 할 것인가, 교육의 방식과 내용이 무엇인가 하는 문제 그자체이다. “가르친다는 건 다만 희망을 노래하는 것이다.”라는 말이 있는데, 나는 거기에 단어 하나를 더 첨가하고자 한다. “가르친다는 건 다만 ‘함께’ 희망을 노래하는 것이다.”
Posted by 공현

댓글을 달아 주세요

걸어가는꿈2008. 1. 8. 12:06

독일 쉬피겔지(紙)에 보도된 한국의 두발제한폐지 캠페인에 대한 기사를 번역해봤습니다.

독일어반임에도 너무 어려워서 번역기 돌려서 영어로 바꾼 다음에 독일어와 영어 둘 다 참조해가면서 했습니다;;

원래 번역은 의역이라고 하지만, 실력이 짧은지라 혹 뜻을 왜곡할까 직역하려고 노력했습니다. 하지만 해석이 잘 되지 않는 부분은 멋대로 의역했고, 독일어로는 도저히 이런 뜻이 아닌 것 같은데 영어로 바뀐 걸 보니 말이 맞는 부분도 있고 뭐 그런 식이라 오역이 많을 수도 있습니다. 직역했는데 말이 좀 이상한 부분은 괄호 달고 추측한 걸 달아봤습니다. 세세한 시제 같은 것은 좀 어색하더라도 그냥 봐주세요; 남한은 그냥 한국으로 했습니다.

총 번역하는 데, 아마 5시간 정도 걸렸으려나.. 사흘 정도에 걸쳐서 하나하나...; 흑. 끝냈을 땐 감동이었어요.




혹 독일어 잘 아시는 분, 틀리거나 한 것 지적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



"만약 당신이 ‘우’를 받았다면, 당신은 이미 죽었다고 생각해라"


안드레아스 히핀, 서울에서


한국의 Pisa test(국제학업성취도평가)는 늘 눈을 현혹하여(그 성적이 좋게 나온다는 이야기기인 듯,) 그 학생들을 보지 못하게 했다. 그 어두운 부분들 : 기계적으로 기를 쓰며 하는 공부, 시험에 대한 공포 그리고 머리길이까지 강제하는 규제가 학교생활을 우울하게 한다. 이제 학생들의 운동은 교육체제에 대해 강력하게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한국 학교에서 (학생들이) 받는 성공에 대한 압력은 독일의 상황에서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이다. 학생들이 그들의 저항을 조직하는(저항운동을 하는) 웹사이트인 "10대의 공화국"(아마 "10대독립 아이두"를 이렇게 표현한 듯)을 운영하는 이준행씨는 "단 4%만이 가장 좋은 대학에 간다."고 말했다. 수업은 이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획일화된다. 두 자릿수인 청년 실업률도 압력을 가중시킨다. "만약 당신이 '우'를 받는다면, 당신은 이미 죽었다고 생각해라." 이준행씨의 말이다.


몇몇 학생들은 단지 그에 대해 걱정하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공식적인 통계에 따르면 작년에는 15세에서 19세 사이의 청소년 중 265명이 자신의 목숨을 버렸다. 자살은 청소년의 사인 중 교통사고 다음으로 많다. - 곧잘 학교에서의 문제가 그 배경에 있다.
그러나 지난 두 달 간 그런 성적을 받고도 살 수가 없어서 (시험 성적이 좋지 않아서) 10명의 학생들이 자살했다. 그에 대한 침묵시위(Mahnwache : 공개된 장소에서 오랜 기간 동안 침묵 등으로 반대의 의사를 표현하는 집회를 말함. 촛불집회나 두발제한폐지 행사를 이렇게 표현한 듯)으로부터 학생운동은 발전했으며, 그것은 교육체제에 강력하게 문제를 제기한다.


한국의 학생들은 일제 식민지적 규율과 군사독재에 대항하여 싸웠다. 그로부터 10여년 후 그들은 그들 개인의 자유권을 위해 거리로 나서왔다. 아동권리를 전공한 이양희 교수는 "성인세계(어른들 사이)에서는 상당한 동요가 일었다."라고 말했다.




400명의 학생들에 6000명의 경찰


대략 6000명의 경찰들이 그들의 죽은 학우를 추모하려 하는 400여명의 학생들의 평화로운 침묵시위를 규제하기 위해 5월초에 동원되었다. 수백 명의 교사들이 행사장에 도달하기 전에 학생들을 가로막으려 했다. 나중에 징계를 하기 위해 증거를 모으려고 교사들은 참가자들의 사진을 찍었다. 시위에 참가한 사람들은 학교에서 쫓겨날 수도 있다.


 (이 그림 아래에 설명으로 붙어있는 부분은 Pisa test 이야기인데, 독일의 랭킹에 대한 이야기라서 번역하지 않겠습니다.)


"정부는 어울리지 않게(부적절하게, 과잉) 반응했고 학생들을 잠재적인 범죄자인 것처럼 대했다." 이준행씨가 말했다. "그리고 그렇기 때문에 그들(학생들)은 마스크와 모자로 스스로를 지키려 했다." 이는 매우 서글픈 상황이다 : "학교에서 학생들은 그들이 생각하는 바를 말할 수 없다." 저항은 인터넷을 통해 조직되었다. 휴대전화의 문자메시지와 인스턴트메시지에 의해 시위는 전개되었다. 이준행씨의 웹사이트에는 매일 20만 명의 방문자가 오고 있다.





 

징계로 팔굽혀펴기를

70000명 이상의 학생들이 두발제한 규정에 반대하는 청원서에 서명했다. 길거나 염색한 머리는 한국의 거의 모든 학교에서 금지되어있다. 규제 제도는 그들을 학교의 테두리 안에 격리해둔다(von Lehranstalt zu Lehranstalt 해석 안 되어서 대강 때운)  - 단지 3cm를 조금 넘는 정도의 머리카락만이 남학생들에게 허용되어 있다.

"설령 학업 성과에는 머리카락을 자르는 것이 별 효과가 없다 해도, 한국의 교사들은 그런 규칙으로 30년 동안 학생들을 억압해왔다." 김민우 학생(18)이 말했다. "내가 아침에 학교에 갈 때, 선생님이 입구에 서서 우리들의 용모를 규제(용의복장 검사)한다." 팔굽혀펴기와 운동장뛰기는 눈에 띄는 좋지 않은 모든 징계 중에서 가장 부드러운 것으로 꼽힌다.


"난 오늘 그에 맞서 무언가를 하고 싶다." 서울 도심에서 있었던 항의에 다른 70명의 학생, 대학생들과 함께 참가한 김이 말했다. 떨어져있는 다른 두 대도시, 대구와 광주에서도 시위가 열렸다. 학생들을 겁주기 위해서,  버스 30대의 대기 경찰들이 광화문 교차로에 왔다.


"나는 우리의 상황과 닮은, 미국에서는 60년대에 거론되었던 학교자치에 대한 많은 것들을 읽고 또 생각했다." 자신을 김(19)이라고만 밝히길 원하는 한 학생이 말했다.








어른들은 청소년 범죄에 대해 두려워한다.


박수우(15)에 따르면, 규제는 단지 교사들의 권력을 강화시키기 위해 존재한다. "나는 학교에서 학생에게 있는 자유를 배우고 싶다. 단지 거주이전의 자유(Freizugigkeit : 뜻을 모르겠어서 찾아봤지만 이 정도밖에는...?) 뿐 아니라, 학생들이 자신의 개성을 지킬 수 있는 자유를." 한때 Autodesigner(자동차 디자이너라고 생각됩니다만, 정확히는 모르겠습니다.)가 되려했던 중학교 교사가 말했다. "유럽에서는 아이들의 개성이 존중된다. 한국의 교육은 이러한 개성을 망가뜨린다." 그런 것들은 일상의 작은 것들에서도 보인다. 한국의 거리에는 유럽의 즐거운 색깔의(아마 다채로운 색의, 화려한 색의, 라는 뜻이리라 추측) 개인주의와는 반대로 거의 단지 은색과 검은색 자동차만이 보인다는 걸 알았다.


영어교사인 신은주(36)는 학생들을 지지한다. : "나는 이러한 저항들이 더 나은 미래의 조짐이라고 보며 학생들을 보호하고 지원해주기 위해 여기에 왔다." 그 자리에는 부모들도 보였는데, 행사에 방해가 되었다. 왜냐하면 그들은 행동하는 그들의 아이들에 대해 걱정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어른세대들은 청소년 범죄에 대해 큰 두려움을 품고 있으며 학생들의 자제력에 대해 신뢰하지 못한다." 신은주가 말했다.


더 나이든 고위직 교사들은 만약 머리카락에 대한 규제가 먼저 풀리게 되면 학생들이 더 쉽게 더 많은 술과 담배를 접하게 되지 않을까 걱정스럽게 반대한다. 아이들이 어른들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게 된다는 것이다.
Posted by 공현

댓글을 달아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