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년인권운동'에 해당되는 글 62건

  1. 2008.09.17 민주노동당을 탈당하며, 따위를 대체 왜 써야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좀 써놔야지, 싶어서 (1)
  2. 2008.09.08 촛불소녀, ‘도전’과 ‘희석’의 줄다리기 (3)
  3. 2008.09.05 ‘일제고사’를 비롯한 몹쓸 교육정책에 대한 불복종 행동을 제안합니다. (아수나로 서울지부)
  4. 2008.09.04 입시경쟁의 중심에서 인권을 외치다 (청소년인권행동 아수나로 교육문제 전단지) (4)
  5. 2008.08.29 공현의 청소년운동 메모
  6. 2008.08.22 8월 빨강물고기~_~ 교과서 해부 (2)
  7. 2008.08.19 섹슈얼리티 쟁점 포럼 - 청소녀/년의 자기결정권 (청소년인권활동가네트워크 발제 원고)
  8. 2008.08.13 2008 청소년인권 워크숍 (인권위) (6)
  9. 2008.08.11 [인권오름] 꿈꿔봐! 우리들의 독립을
  10. 2008.07.26 안습 기사 - [인권운동가를 만나다] '청소년인권행동 아수나로 윤 종 (1)
  11. 2008.07.16 “가출”과 “독립” 사이 - 청소년의 주거권
  12. 2008.07.14 먹는 것에도 민주주의가 있다 (2)
  13. 2008.06.30 촛불이 낳은 고민들 속에서
  14. 2008.06.23 어른들이 무슨 죄냐 우리들이 지켜주마 -_-; + 촛불소녀에 거는 은근 태클 (6)
  15. 2008.06.13 달마다 하는 청소년인권 놀이터 빨강물고기 두 번째, 6월 21일 (2)
  16. 2008.06.06 오답 승리의 희망 2008년 6월 호외
  17. 2008.05.30 '미친소'(but 아픈소)가 무서운 우리, 그리고 우리도 정말 미치겠다 -_- (10)
  18. 2008.05.20 5.17 청소년 행동에 대한 후기+소감 (사실 나는 볼테르이고 싶진 않다.) (3)
  19. 2008.05.19 달마다 하는 청소년인권 놀이터 [빨강물고기]
  20. 2008.05.09 청소년들을 평등한 정치적 주체로 인정하라!
걸어가는꿈2008. 9. 17. 18:43




  이 글은 분량이나 내용의 깊이에 비해 손이 좀 많이 간 글이다.
  뭐 이래저래 돈 벌랴 수업 들으랴 일하랴 바쁘기도 하고 해서 이 글을 짬짬이 쓰는 동안 다른 답덧글이나 글도 전혀 안 썼고... (사실 블로그에를 잘 안 들어왔...)


  이 글에 손이 많이 간 건, 내가 이 글을 양쪽 (민주노동당에서 지금도 활동하고 있는 사람들과, 민주노동당에 내가 가입해 있는 것을 이해하지 못했던 사람들)에 대한 일종의 변명으로 쓰고 있기 때문에 이것저것 고려해야 할 것이 많기 때문이다.  글이 다소 장황한 것도 그 때문으로 이해해주면 좋겠다.

* 편의상, 경칭은 생략한다.


  우선은 애초에 내가 민주노동당에 가입(입당)하게 된 구체적인 경위에 대해 설명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고등학교 때 청소년인권운동을 아주 잠시 같이 했던 친구 한 명이 대학에 와서 민주노동당 학생위원회에서 활동하고 있었다.
   그녀석이 나를 민주노동당 학생위원회에 가입 대상으로 추천했고, 그래서 2006년 3월에 민주노동당 ㅅ대 학생위원회 위원장이 나를 만나자고 연락이 왔었다.

 (그런데 정작 나를 추천한 그 녀석은 민주노동당 학생위원회 활동에 회의를 느껴서 활동을 때려 친 상태다. -_-)

  당시 나는 정당에 얽매이고 싶지도 않았고 또 내가 정당 활동과도 잘 안 맞는다고 생각했기에, 이런저런 이유를 들어가며 민주노동당 가입을 거절했다.
  하지만 학생위원장은 거의 1시간에 이르는 끈질긴 권유 끝에 나에게서 ― 어쩐지 CMS 받아가는 느낌으로 ― 입당신청서를 받아내고 말았다.

  이처럼 입당 과정에 어느 정도는 강권의 성격이 있었다는 것을 말하는 게 단순한 변명으로 들리지는 않길 바란다. 나도 당시에 민주노동당의 정치에 힘을 실어주는 입장에서 가입을 해야 하나, 하는 어느 정도의 정치적 부담을 속으로는 가지고 있었고, 그런 부담감을 끝내 버리지 못했기 때문에 가입했다고도 말할 수 있을 테니까.

  여하간 처음 입당했을 당시 내 심정은, 인권운동사랑방에 월 10000원씩 후원을 하듯이 민주노동당에 월 5000원씩 후원을 한다는 느낌에 더 가까웠다.



  그러다가 내 본업인 청소년인권운동과 민주노동당 문제가 엮이기 시작한 것은,
  2006년 말인가, 2007년인가에 나와 같은 단체에서 활동하면서 민주노동당 청소년위원회 활동을 하던 사람이 민주노동당 청소년위원회에서 활동할 것을 제안하면서부터였다.

  당시에 민주노동당 청소년위원회는 여러 단체의 연석회의 같은 성격이 좀 있었다. 21세기청소년공동체 희망, 청소년문화예술센터, 청소년 다함께, 청소년인권활동가네트워크의 사람들이 모두 들어와서 각 단체들의 활동이나 입장을 공유하고 조율한다고 해야 할까? 민주노동당 청소년위원회 자체의 조직이라고 할 만한 게 위원장 빼고는 없는 상태였다.(위원장도 희망 출신이기는 했지만 민주노동당 청소년위원회 자체의 입장에서 많이 생각하는 듯했고 여러 단체들을 조율하려는 입장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민주노동당 청소년위원회에 청소년인권운동 쪽 입장을 가지고 참여하고 있던 활동가가 나에게 들어와서 같이 할 것을 제안했고,
  2006년~2007년에 학생인권법 입법 운동 등 때문에 민주노동당 측과 연계가 있으면 좋을 것이라고 판단했던 나는 민주노동당 청소년위원회에서 활동을 어영부영 시작했다.



  한 가지 말해둬야 하는 것은, 활동을 시작했던 시점에서도 나는 민주노동당 청소년위원회 활동을 언제 그만두나, 하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나는 내가 청소년인권운동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긴 하지만,
  ‘진보정치’라거나 ‘진보운동’을 한다는 식으로는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에,
  애초에 ‘포괄적인 진보정치’나 ‘진보운동’을 생각해야 하는 정당 활동과는 맞지 않았다.  ㄹㄹㄹ

  (그리고 당시 민주노동당 청소년위원회 위원장도 이런 내 사고방식을 느끼고 있었기 때문에 여러 차례 나에게 청소년인권운동 입장에서만 생각한다고 말한 적이 있다.)



  2007년 하반기에는 “그만둬야지” 하는 생각이 좀 구체화되었던 것 같다.

  민주노동당 청소년위원회는 사실 어느 정도 자리가 잡혀 있고 일을 할 수 있는 여건이 아니었고, 오히려 새로 기틀을 잡아야 하는 상황이었다. 청소년 당원들에게 연락을 하고 새로 조직을 하고 기타 등등등...
  2007년에 청소년인권운동을 하면서 이런 민주노동당 청소년위원회 활동을 병행하는 것이 힘들었던 것이 우선은 큰 이유일 것이다.

  또한 학생인권법 운동도 2007년 하반기에는 정리되어 가고 있었고, 민주노동당 청소년위원회도 준비위원회의 (준)자를 떼고 정식 출범을 했으며, 마지막으로 2008년 초에 위원장 등등도 바뀔 예정이라서, 나는 2007년 말이나 2008년 초에 그만 둬야지 하는 생각을 계속 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2007년에 대선이 끝나고 분당 논의가 계속되고 대량 탈당이 이어지는 상황이 되어버려서, 이런 상황에서 탈당하면 나도 민주노동당에 실망해서 탈당하는 걸로 오해받겠군, 하는 생각에 탈당이니 분당이니 소란이 좀 잦아들면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원래 한 5월이나 6월 쯤에 민주노동당 청소년위원회에 그만둔다고 밝히고 탈당하려고 했는데 민주노동당 청소년위원회 재구성이 또 늦어져서 기다렸다.
  그 이후에는 내가 탈당하려면 당원번호를 알아내야 하는데 민주노동당 홈페이지의 내 아이디 비밀번호를 잊어버려서 이를 처리하느라 또 늦어져서, 9월에야 탈당을 하게 되었다. (민노당 홈피는 자체 에러 때문에 비밀번호 재발급이 안 된다. 따로 전화해서 처리해야 한다. 지금은 고쳤으려나?)


  여기까지는 내가 탈당하게 된 것을 시간 순서로 늘어놓은 설명이고...
  탈당의 이유를 설명하자면, 글쎄 여러 가지가 있을 텐데... 음...

  우선은 청소년인권운동에 전념하고 싶은 마음이 있을 것이다.
  민주노동당 청소년위원회 활동은, 청소년인권운동과 일부 겹치기도 하지만 민주노동당 자체의 조직적인 문제(정당이라는 점 + 민주노동당 청소년위원회 자체 조직화 문제)도 있고 또 청소년 정치 운동(또는 청소년 진보 운동?)이라고 표현하는 게 더 적절하기 때문에, 아무래도 내가 별로 관심이 없거나 굳이 내가 해야 한다고 생각지 않는 활동도 일부 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이런 설명은 내가 왜 민주노동당 청소년위원회 활동을 정리했는가에 대한 해설은 될지 몰라도, 내가 왜 ‘탈당’을 했는지에 대한 설명은 되지 않는다.
  민주노동당 ‘활동’만 그만두고 그저 조용히 때 되면 투표하고 당비나 꼬박꼬박 내는 ‘어느 당원’으로 있으면 될 일 아닌가?



  금전적인 압박은 무시할 수 없다. 매달 1만원씩 나가는 당비 + 기관지비는, 다른 단체들 CMS도 하고 있는 나로서는 만만치 않은 부담이다. 하지만 금전적인 압박이 탈당의 중요한 이유이긴 하지만 핵심적인 이유는 아니다. 부담스러운 금액, 이긴 하지만 절대 낼 수 없는 금액 또한 아니다.
  대의제에 대한 나의 정치적인 불신, 심리적인 회의감이나 무력감 등도 한 몫 거들었을 것이다. 그러나 또 생각해보면 인간에 대한 불신이나 회의 등등을 가지고도 사람을 만나고 떠나보내고 잘 안 되는 조직 구성과 내 부족한 능력에 허덕이면서도, 그러면서도 운동은 또 하지 않는가? 이것도 큰 부분이긴 하지만 결정적이거나 핵심적인 요소는 아니다.



  핵심적인 문제는, 결국 성격이랄까 적성이랄까 그런 것이었다.
  민주노동당 당원이라는 신분은, 민주노동당에 대한 긍정적인 선전과 투표 권유 등을 ‘의무적으로’ 동반할 수밖에 없다.
  물론 누가 이런 의무를 나에게 강제하느냐고 물을 수도 있지만, 글쎄, 선거(대선, 총선, 당내 선거 모두 포함) 때마다 지겹도록 ARS나 지역위, 학생위 등에서 전화가 오고 나한테도 지인들에게 (투표하라는) 연락을 하라는 압박이 들어오는 것 등등이면 충분히 의무스럽다.
  그리고 나도 이런 것이 ‘당원의 의무’라는 것에 동의하기 때문에 나 자신을 어느 정도 강제한다. 문제는, 내가 이것이 ‘당원의 의무’라는 것에는 동의하지만 내가 이런 것을 하고 싶어 하지는 않는다는 데 있다. 도무지 적성에 맞지를 않는다.


  게다가 당원이란, 민주노동당이 그렇게 강조하는 ‘진성당원’이란, 어느 정도 민주노동당 안의 정치적인 관계 등을 파악하고 있으면서 당 내의 논쟁에 관심을 기울이고 그런 관심에 따라 민주노동당에 참여하는 존재여야 했다. (이건 어느 정도 자기 강제다.)
  나는 내가 아무것도 모르다가 당내 선거 때에 제시되는 간단한 프로필이나 주변 사람들의 몇 마디 말에 http://vote.kdlp.org에 들어가서 투표율만 높이는 존재가 되는 것이 싫었다.

  그러나 또 그렇다고 해서 당 안의 일에 관심을 기울이고 발언을 할 만큼 민주노동당에 애정이 있거나 관심을 갖고 있지도 않았다. 나는 별로 민주노동당이 굴러가는 것이나 민주노동당에서 주요하게 논의되는 전략, 방향, 운동, 정치들에 관심이 생기지도 않았고, 내 주장이나 사고방식이 민주노동당 안에서 받아들여질 것 같지도 않았다.
 (당에서 열심히 활동하는 사람들 ― 학생위원장이나 청소년위원장이나 등등등? ― 에게 일상적인 회의나 회화 속에서 몇 마디 내 생각을 흘려본 적은 있는데, 내 말의 의미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반응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리고 그 사람들에게 내가 어떤 입장이고 어떤 생각인지를 하나하나 조목조목 설명하는 일은 너무 피곤하고 귀찮은 일일뿐더러, 내 사고방식은 확실히 정당운동에는 적합하지 않기 때문에, 그것을 설명한다는 것은 피차 난감한 일이다.  마치 커피를 젓가락으로 마시려는 것과 같은 부조화랄까...)


  내게 ‘민주노동당 당원’이라는 신분이 중요한 가치를 지니고 있었다면 나는 그 신분을 지속시키려는 욕망으로 이런 당원의 역할을 하기 싫어하는 욕망을 눌렀을 것이다. 그러나 내게 민주노동당 당원이라는 신분은 별로 그런 가치를 지니고 있지 않았다.

  뒤집어 말하면, 어쩌면 완벽주의적인 말로 들릴지 모르겠지만, 내가 탈당을 하는 이유는 정당 활동이 적성에 맞지 않고, 또 제대로 된 당원이 될 수 없어서이다.

  물론 당원 수 몇 명, 당비 납무 얼마, 이런 숫자에 연연할 수밖에 없는 민주노동당에서는 아마도 내가 ‘제대로 된 당원’이 되지 못하더라도 탈당하지 않고 꼬박꼬박 당비를 내주길 바랄 것이다.
  그러나 그건 민주노동당에서 원하는 거지 내가 원하는 것이 아니다.



  탈당계를 관악구 지역위원회에 보냈는데 잘 접수된 건지 모르겠다. 적어도 아직까지는 민주노동당 홈페이지에 로그인하면 내 신분은 당원으로 뜬다. 다시 한 번 확인을 해야 하나 싶다.

  민주노동당 ㅅ대 학생위원장(이제는 전 학생위원장이다.)이 얼마 전에 투표하라고 전화를 했다가 내가 탈당계를 내서 투표 자격이 있을지 모르겠다고 하니까 언제 한 번 만나서 이야기를 하자고 했다.
  청소년위원회에는 청소년위원회 활동을 그만둔다는 말을 수차례 했지만 탈당 이야기는 아직 하지 않았다.


  이런 일만 처리하면 이제 탈당도 끝이다. 그리고, 말할 것도 없이, 이 글은 하나의 마침표다.





Posted by 공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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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Mr.Sunday

    남는 사람으로써 매우 아쉽기는 하지만 그만큼 이 땅의 청소년들에 인권을 위해서 열심히 일해주시기 바랍니다.

    저 또 한 남아있는 사람으로써 더 열심히 일하겠습니다.

    막상 무언가 더 쓰려고 했는데 키보드가 잘 눌려지니 않네요.

    그래도 서로가 하는 일에 복이 있기를~

    2008.09.22 23:27 [ ADDR : EDIT/ DEL : REPLY ]

걸어가는꿈2008. 9. 8. 12:29



옛날에 썼던 글들 짜깁기 혹은 재정리에 가까운 글들이네요;

흠...

시민운동가 대회에 낼 원고로 쓴 거예용.

총총.







촛불소녀, ‘도전’과 ‘희석’의 줄다리기




잠시 옛날이야기

  청소년들의 정치 참여라거나 사회 참여에 대해 이야기할 때, 혹은 청소년들의 주체성에 대해 이야기할 때, 많은 사람들/단체들이 종종 1920년대 학생들의 항일독립운동이라거나 1960년의 4.19, 1980년 광주, 1980년대 후반의 민주화운동 등을 이야기하곤 한다. 그러나 청소년인권운동을 하는 입장에서 세상을 해석하는 나로서는, 이러한 운동들이 과연 얼마나 유의미했는지 다시 질문하지 않을 수 없다. 이런 방식으로 과연 청소년들의 권리가 인정되거나 쟁취되었는가? 혹은 이런 방식으로 청소년들(만)의 이해관계가 얼마나 공론화되었는가? 항일독립이나 민주화의 문제가 청소년들의 삶과 무관하다는 것이 아니다. 거기에 더해서 청소년들이 이야기하고 요구안으로 내걸었던 교육과 학교와 청소년들의 삶의 문제는 어디로 갔느냐는 질문이다.
  ‘성인’들의 역사는, 1920년대 항일독립운동이나 80년대 후반 민주화운동에 청소년들이 참여하면서 내걸었던 교육에 대한 요구, 청소년들의 정치적 권리에 대한 요구 등은 잊어버렸다. 그들의 운동은 단지 독립운동이고 민주화운동일 뿐이었으니, 사학재단의 비리와 교사의 체벌폭력까지도 독재정권과 연관 지으며 투쟁했던 80년대 고등학생 분들에게는 죄송한 말씀이지만, 묻혔다고 밖엔 할 말이 없다. 묻힐 수밖에 없었던 사회적 조건이었다고 할 수도 있겠지만, 여하간 묻혔다는 건 확실하다. 청소년들의 정치적 권리에 대한 선명한 주장 없이 청소년들이 거대담론(민족독립이든 광복이든) 속에 뛰어들면서 했던 정치적인 활동들이, 청소년들의 정치적 권리나 지위를 증진시키는 데 명확하게 기여한 것 같지도 않다.




다시 지금 이야기 : “촛불소녀”

  그리고 나는 2008년 촛불집회의 현장에서도 그런 복잡한 문제를 생각한다. 광우병 이슈에 묻혀서 청소년들의 다양한 요구들이 묻혔다는 것에 대해서도 할 말은 많지만, 그래도 일단은 촛불집회 자체에서 사람들이 청소년들의 정치적 행동을 해석하는 방식에만 집중하도록 하자.
  많은 사람들이 5월에 촛불집회를 처음에 시작한 주역은 청소년들이었다고 말하며, 청소년들이 역사적 주체이고,(독립운동, 4.19, 광주, 민주화운동 등등의 양념과 함께) 대단하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동시에, 많은 사람들(여기서 ‘어른들’이나 ‘비청소년들’이라고 하지 않고 ‘사람들’이라고 한 것은 실수가 아니다.)이 이야기한다. 오죽하면 청소년들까지 나오겠느냐고 말하고, 청소년들이 기특하고 미안하다고 말하며, 아이들이 무슨 죄냐고, 어른들이 해주겠다고 말한다.
  이처럼 집회현장에는 아이들/청소년들에 대한 이중적 시각이 혼재해있다. 한편으로는 청소년들의 ‘힘’, ‘역할’을 인정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청소년들의 역할을 축소시키고 그들을 대상화하려고 한다. 내 눈에는, 청소년들의 정치적 힘과 역할을 인정할 수밖에 없지만 그래도 그것을 축소시키고 청소년들의 정치적 활동을 예외적인 것으로 한정하고 이를 기존 사회의 틀이 통제할 수 있는 범위에 두려는 마음들이 엿보인다. 청소년인권운동을 하는 입장에서 볼 때 촛불집회 현장에서의 청소년들에 대한 태도는 기존의 틀을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그리고 그런 의미에서 그것은 보수적이다.
  ‘미성년자’(차별적인 표현이다.)는 부모 동의서를 가지고 나와야 한다는 촛불집회 웹홍보물, 밤 10시 이후에 ‘미성년자’는 자진 귀가시키겠다는 방침, “아이들이 무슨 죄냐 우리들이 지켜주자”라는 나눔문화의 종이피켓과 집회현장에서의 구호들, 중고등학생들의 등교거부는 백안시하면서 대학생들의 동맹휴업은 지지하는 ‘여론’, 등교거부를 포함하여 청소년들의 행동을 알리는 홍보물을 삭제하는 안티명박카페와 정책반대시민연대 카페 운영진, 예비군이라고 칭하는 남성들의 여성과 청소년 등은 뒤로 물러나라는 폭력적인 행동 방식들, 집회가 경찰과의 충돌로 좀 위험한 상황이 될 거 같으면 가끔씩 다가와서 말을 걸며 위험하니까 그만 집에 가라고 ‘반말로’ 말하시는 어르신들, 연행자들 중에서 ‘미성년자’는 석방하라는 구호들, 연행되는 여성 청소년의 사진에, 사실과 다르게 “‘집에 보내주세요’라고 말하며 눈물을 흘리고 있다”라는 캡션을 다는 신문 기사들(이건 청소년과 여성이 중첩된 보호주의의 발로일 것이다.), 초등학생 연행에 분개하며 항의하기 위해 거리로 나오는 사람들….
  청소년들에 대한 차별과 배제, 대상화는 완고했다. 거기에 대한 청소년들의 직접적인 ‘도전’조차도 흡수할 정도로. 마치 청소년들이 그런 문제에 대해 도전할 거라고는 상상조차 못했다는 듯이. 밤샘시위를 할 때 만들어진 토론의 장에서 한 청소년이 청소년들에게 함부로 반말을 쓰는 사례라거나 “아이들이 무슨 죄냐 우리들이 지켜주자” 구호 등에 대해 문제제기를 했지만, 그 발언에 대해 사람들이 보인 반응은 박수와 환호였다. 박수와 환호가 무슨 문제냐고? 그 박수와 환호가, 그 ‘도전’을 진지하게 받아들이는 것이라기보다는 청소년이 나서서 그런 이야기를 하는 것을 기특하게 생각하고 응원하는 듯한 분위기였기 때문이다. 또한 나눔문화의 구호를 패러디해서 “어른들이 무슨 죄냐, 청소년이 지켜주자”라는 문구를 락카로 새기곧 다녔지만, 그 문구를 본 한 촛불집회 사회자는 “자신들이 지켜줄 테니 어른들은 마음 놓고 촛불을 들라고 하는 아이들에게 미안하다. 어른들이 더 열심히 해서 우리 아이들을 지켜주자.”라고 발언했다. 몇몇 사람이라도 그런 청소년들의 문제제기에 생각을 다시 해보게 되었는지 어떤지는 정확히 알 수 없다. 그러나 다수의 사람들, 전반적인 분위기는 변하지 않았다.

  촛불소녀는 촛불집회 속에서 청소년들의 지위를 나타내는 아이콘이었다. 간단하게 해석하면, 촛불소녀는 청소년들(특히 여성 청소년들)이 적극적으로 촛불집회의 공간을 열고 촛불집회에 참여하는 것을 나타내는 아이콘이다. 또한 촛불소녀가 계속해서 다양한 방식으로 발언되고 다양한 표정의 이미지들이 만들어진 것을 볼 때, 촛불소녀는 청소년들의 적극적인 활동에 따라 변화하고 발전하는 이미지였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런 긍정성에도 불구하고 촛불소녀는, 청소년들의 정치적인 도전을 희석시키는 많은 지점들을 가지고 있었다. 촛불소녀는 학교의 두발규제와 복장규제에 딱 맞는 머리 모양과 단정한 교복을 갖춰 입고 있으며, 순수하면서 또 당찬 ‘소녀’의 이미지를 어필하고 있었다. 촛불소녀는 현재 집회현장이나 운동 속에서의 청소년들의 지위에 관한 문제의식이 결여된 문제작이었으며, “촛불”이라는 상징(비정치적인, 순수한, 소망 기타 등등의 표현들과 연결되는)과 “소녀”라는 이미지를 내세움으로써 지켜줘야 할 약자, 혹은 순수한 존재로서의 (여성) 청소년들의 이미지를 재생산하는 기획이었다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덧붙여서 ‘촛불소녀’를 만들어서 유포한 나눔문화가 촛불소녀를 만들기 전부터 “아이들이 무슨 죄냐 우리들이 지켜주자”를 구호로 띄웠다는 점, 또한 촛불소녀 기획에서 이런 부분에 대한 문제의식이나 반성은 찾아볼 수 없었다는 점, <촛불소녀의 코리아> 카페의 공지에 올라가 있는 글 중에는, 우리 10대 아이들을 지켜주고 싶었다며, 청소년들의 행동을 깜찍하다고 표현하는, 시선들을 그대로 담고 있는 글들이 있었다. 사람들이 “촛불소녀”라는 상징의 내용과 뉘앙스를 받아들이는 그 속에 청소년들에 대한 보호주의적/차별적인 인식이 반영되어 있는 경우가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것이 촛불소녀 자체의 죄이건, 아니면 사회적 현실의 죄이건. 촛불소녀는, 청소년들의 도전과 이 사회(청소년들 자신도 포함한)의 희석이 만난 결과물이며 줄다리기 과정에서 나온 흔들리고 변화하는 아이콘이다.




뒤늦게 설명하는 “왜”

  여기까지의 내용을 잘 따라오지 못하신 분들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왜냐하면 이 글에서 나열한 여러 사례들이 문제의 소지가 있다는 것은 청소년 보호주의에 대한 비판이라거나 그런 인식들을 어느 정도 공유하는 사람들이 아니라면 잘 알아보지 못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좋은 게 좋은 건데 뭘 그리 까칠하게 구는지 불쾌해 할 사람도 있을지도 모르겠다.
  일단 청소년들의 정치적 권리 문제만으로 한정해서 말하자면, 청소년들의 정치적 행위를 특별하고 예외적인 것으로 해석하는 방식, 그리고 청소년들의 정치적 행동에 일정한 제한을 두면서 통제하려고 하는 방식(밤늦게 들어가라고 하는 거라거나, 등교거부-휴교시위에 대한 반감이라거나)들은 너무나 한계가 많다. 딱 잘라 말해서, 청소년들의 정치적 권리를 증진시키고 청소년들에게도 해당하는 제대로 된 민주주의(물론 지금의 한국 사회는 비청소년들에게도 제대로 된 민주주의가 아니다.)를 실현하는 것은 그런 방식으로는 불가능하다.
  계속 억압받아 왔기에 2000년대 이후로 종종 드러나고 늘어나고 있는 청소년들의 행동이 지금 시점에서 특별히 소중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이 예외적이거나 특별한 것으로 해석되어서는 안 된다. 청소년들의 정치적 권리를 인정한다면, 또는 청소년들의 정치적 권리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청소년들의 정치적 행동을 비록 지금까지는 부당하게 유보되어 왔지만 당연한 것, 잊혀진 권리가 자신을 주장하는 것으로 이해해야 한다.(여기서 “잊혀진”이란 표현은 물론 비유이다. 권리는 되찾아지기보다는 창조된다. “잊혀진”이 이중피동이며 “잊힌”이 옳다는 딴지는 보류한다. “잊힌”보다는 “잊혀진”이 더 멋있지 않은가?)
  일반적으로, 청소년들은 분명 정치적(사회적, 경제적) 약자이다. 그러나 약자이기 때문에 보호해주고 약자이기 때문에 행동을 제한해야 한다고 말하기보다는, 약자인 청소년들을 어떻게 약자가 아닌 지위로 만들 수 있을지를 고민할 수 있길 바란다. 그것이 보호주의가 내재하고 있는 한계이다. 지금, 청소년들의 권리를 위해서는 더 많은 도전이 필요하다. 이 사회의 희석과 한계선 긋기와 충돌하는 도전이 필요하다. 따라서 나는 감히 “청소년은 촛불소녀가 아니다”라는, 자칫하면 촛불집회에 반대하는 뉴라이트가 쓴 것처럼 보이는 문구를 택할 것이다. 청소년은 촛불소녀가 아니다. 청소년은 촛불소녀의 프레임과 이미지를 넘어 더 나아가야 할 존재이며, 훨씬 더 정치적인 존재이다.





Posted by 공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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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화이팅~

    2008.09.08 18:19 [ ADDR : EDIT/ DEL : REPLY ]
  2. 그리고 촛불의 이미지이기도 했지

    2008.09.08 18:55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 촛불의 이미지는 '정치적 순수성'('비정치성')의 이미지가 더 강하게 강조되지 않나?
      아 청소년 자체에 그런 이미지도 있군. 흠... 어디를 강조하냐의 문제인가

      2008.09.17 18:46 신고 [ ADDR : EDIT/ DEL ]

걸어가는꿈2008. 9. 5. 12:02



‘일제고사’를 비롯한 몹쓸 교육정책에


대한 불복종 행동을 제안합니다.


청소년인권행동 아수나로 서울지부


초필살 교육 현실


  유난히도 시간이 빠르게 흐른 한 해입니다. 2008년도 벌써 후반에 접어들면서 이명박 대통령과 공정택 서울시교육감의 막장 교육정책도 하나 둘 자리를 피고 눌러앉을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연초 세간을 떠들썩하게 했던 학교자율화 조치만 해도 벌써 사람들의 머릿속에서 잊혀진 채 학교에 ‘0교시’ ‘우열반’을 상시대기 시킬 기반으로 자리를 잡았으니, 두어 달만 지나면 지금 인터넷 신문에 줄줄이 뜨고 있는 국제중 설립에 관한 기사도 언제 그랬냐는 듯 사람들의 시야에서 자취를 감출 지 모를 일입니다. 시간이 흐르는 걸 막을 순 없습니다. 시간이 흘러 세상 사람들의 관심이 떨어지는 것 또한 애석하게도 사람 손으로는 막기가 힘듭니다. 하지만 막지 않으면 안 될 일들이 있고, 우리는 그 일들을 막아보고자 여러분에게 함께 하자는 제안을 드리려 합니다.

  이명박 대통령 취임과 공정택 교육감 당선 이후 밀려드는 일련의 교육정책들은 오직 한 가지 ‘필살경쟁’의 길로 학생들을 몰아넣고 있습니다. 물론 그 전부터도 이 땅의 교육은 ‘필살경쟁’이었지만, 이제는 ‘초필살경쟁’으로 진화(?)하고 있다고 해도 무방할 듯합니다.
  그들은 대한민국 학생들이 공부(경쟁)를 위해 태어난 인간이 되길 바라고, 온갖 술수를 통해 그렇게 만들려 하고 있습니다. 국제중을 비롯하여 이명박 정부의 고교 서열화 300 프로젝트 등등, 이것들은 한 마디로 ‘경쟁기지’입니다. 이러한 경쟁기지들이 전국에 우후죽순으로 들어설 예정이고, 딱히 예지능력이 없더라도 미래가 어떨지는 쉽게 예측할 수 있습니다. 서울이건 지방이건 학교 간 서열화는 더욱 기승을 부리고 학생들 간의 경쟁은 더욱 치열해지겠지요. 행복? 행복할 시간이 어디 있겠습니까. 공부하기도 바빠 죽겠는데.

  10월 14, 15일에 국가 주도 학업성취도평가 이름의 일제고사가 치러집니다. 2010년에는  학업성취도평가 성적을 3등급으로 나눠 학교 홈페이지에 공시하는 학교정보 공개법이 시행되고, 서울시에서는 학교선택제가 본격적으로 실시됩니다.
  2010년 시행이라 학교정보공개법이 이번 해엔 소용이 없다고 하더라도, 공개할 성적정보가 생긴다는 것만으로도 일제고사는 자신의 역할을 훌륭히 수행합니다. 전국의 학생들을 줄 세울 잠재적인 자료를 마련하는 것이 일제고사의 1차적인 목적이니까요. 이것은 이후 학생들의 성적으로 학교들을 줄 세울 자료가 되고, 학교가 학생들(어쩌면 학부모)의 선택을 받기 위해 더욱 더 ‘입시경쟁교육’ 에 박차를 가할 이유가 되겠지요. 일제고사와 학교정보공개법, 학교선택제는 국제중, 자율형 사립고 등등과 나란히 극심한 경쟁을 유발할 테고, 날이 갈수록 심해지는 경쟁에서 살아남으려는 학생들은 상위권 학교에 선택받기 위해, 지금도 그렇지만, 더욱더 ‘입시형 인간’이 되려 할 것입니다. ‘고3은 인간이 아니다’ 따위의 말이 고등학교 중학교 심지어 초등학교까지 퍼져갈 것이란 예상도 어렵지 않게 할 수 있습니다.



‘일제고사 거부’(또는 불복종)에서부터 경쟁교육 반대로~


  이 끊임없이 악화일로로 치닫는 경쟁교육에서 일제고사는 일종의 시작점이자 하나의 계기입니다. 우리는 아직 사람들이 이런 새로운 경쟁적 교육제도들에 순응하기 전에, 이 제도를 당연시하고 익숙한 것으로 받아들이기 전에, 시작되기 전에 이를 막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를 위해서는 일제고사를 거부하고 일제고사에 불복종하는 운동이 필요합니다.

  왜 하필 부담스럽고 실현가능성도 높지 않아 보이는 ‘불복종’이 필요하다고 하는 거냐구요? 그건, 지금까지 우리(교육운동이건, 청소년인권운동이건 기타 등등)가 해온 집회나 1인시위나 기자회견 같은 것들이 이제는 너무나 식상하고 효과가 적다는 것이 분명하기 때문입니다. 귀를 꽉 막고 있는 저 사람들이, “아 그러셔?” 하고 무시하고 지나가거나, 아니면 슬쩍 물타기 해서 넘어갈 것이 뻔하기 때문입니다. 지금은 경쟁교육을 직접 거부하는, 좀 더 빡센 ‘직접행동’을 고려해야 하는 때입니다. 정책 제안과 토론회와 기자회견과, 가끔 가다가 조직된 사람들이 머리수를 채우는 집회만 줄창 하며 허우적대고 있는 교육운동을 벗어나야 할 때입니다. 내신 성적에 들어가지 않고, 특정한 날짜에 전국에서 동시에 시험을 보는 형태의 ‘일제고사’(전국학업성취도평가?)는 대대적인 불복종을 기획하기에 좋은 조건을 갖추고 있습니다.
  또한 우리는, 일제고사를 직접 보진 않더라도 경쟁을 조장하는 정책들과 입시경쟁교육에 반대하는 모든 청소년들의 직접 행동을 제안합니다. 일제고사를 직접 보는 3개 학년 뿐 아니라 다른 청소년들도 10월 14, 15일을 계기로 행동하게 만드는 것은 더 큰 파장을 불러일으킬 수 있을 것입니다.
  실패, 혹은 패배가 걱정될 수도 있을 것입니다. 탄압을 각오해야 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최대한의 성과를 만들기 위해 긴 준비와 물밑작업을 할 것이고, 설령 패배하고 실패한 것처럼 보이더라도 그 패배는 새로운 도전과 시도를 그 바탕에 깔고 있기에 앞으로의 운동에 유의미한 것이 될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언제나 우리가 정말로 원하는 것은 덜한 지옥이 아니라 학력 학벌과 상관없이 사람답게 살 수 있는 세상입니다. 우리는 행복한 교육, 시험에 시달리지 않아도 되는 교육, 경쟁에 내몰리지 않아도 되는 교육을 원합니다. 미사여구 없이 담백하게 말해서, 우리는 정답을 강요하는 시험과 차별을 만드는 경쟁, 인권을 침해하는 교육이 모두 싫습니다. 일제고사 반대를 계기로, 이에 관하여 입시경쟁교육 폐지를 위한 행동을 연결해나가야 할 것입니다.

  날짜는 다가오는데, 일제고사가 이뤄질 것이란 사실은커녕 일제고사가 무엇인지조차 모르는 사람들이 수두룩합니다. 당사자인 학생들조차 그렇습니다. 멍하니 손놓고 시험지 오기만 기다리는 학생들, 학부모, 교사들.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무서운 것은 아무것도 하지 않았는데도 불구하고 원하지 않는 결과를 감당해야한다는 것입니다. 방관이라는 동조를 택한 대가인지도 모르지요. 모두가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면, 마의 2010년에는 이명박 대통령이나 공정택 교육감이 원하는 대로 모든 것이 준비되어 있을 것입니다.
  일제고사나 국제중 설립이나, 막기 위해선 언제나 그렇듯 보다 많은 사람들의 힘이 필요합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을 거부할 사람들과 함께 할 수 있길 바랍니다.


(이하 구체적인 제안과 계획서 등은 보안 관계(?)상 생략)

Posted by 공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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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어가는꿈2008. 9. 4. 17:25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사용자 삽입 이미지


반으로 접는 타입의 A4구요~
전체디자인은 밤의마왕 님이, 그리고 일부 사진 첨가랑 텍스트는 공현이 했어요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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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제고사, 학교자율화(=학교학원화 또는 교육포기), 고교등급제, 국제중, 대입규제폐지... 바로 지금 경쟁력을 높인답시고 가고 있는 교육의 모습이야. 안 그래도 미쳐있던 교육이 더 미치려나 봐. 안 그래도 받기 힘들던 교육이 더 힘들어지려나봐.

  정말 사람들이 행복한 교육, 청소년의 인권이 보장되는 교육이 뭔지, 우리들이 직접 나서서 가르쳐줘야 되지 않겠어?


입시경쟁의 중심에서

인권을 외치다



“피할 수도 없고 즐길 수도  없으면
                      싸워서 바꿔야 합니다”




청소년인권행동 아수나로
cafe.naver.com/asunar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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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시경쟁의중심에서인권을외치다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
1986년 자살한 중학생의 유서 中

  난 1등같은것은 싫은데... 앉아서 공부만 하는 그런 학생은 싫은데, 난 꿈이 따로 있는데, 난 친구가 필요한데... 이 모든 것은 우리 엄마가 싫어하는 것이지. 난 인간인데. 난 친구를 좋아할 수도 있고, 헤어짐에 울 수도 있는 사람인데.
...... 너무나 모순이다, 모순. 세상은 경쟁! 경쟁! 공부! 공부! 아니 대학! 대학! 순수한 공부를 위해서 하는 공부가 아닌, 멋들어진 사각모를 위해, 잘나지도 않은 졸업장이라는 쪽지 하나 타서 고개 들고 다니려고 하는 공부.
......매일 경쟁! 공부! 밖에 모르는 엄마. 그 밑에서 썩어들어가는 내 심정을 한 번 생각해 보았습니까? 난 로보트도 아니고 인형도 아니고, 돌멩이처럼 감정이 없는 물건도 아니다. 밟히다밟히다 내 소중한 삶의 인생관이나 가치관까지 밟혀버릴 땐, 난 그 이상 참지 못하고 이렇게 떤다.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 난 그 성적순위라는 올가미에 들어가 그 속에서 허위적거리며 살아가는 삶에 경멸을 느낀다.




“하지만 사회는 내게 그걸 바라지 않아”
2007년 자살한 중학생의 유서 中

인간은 항상 자유를 추구하는구나.. 나도 자유로운 사람이되야지. 라고 생각했었어.
근데 현실은 너무달라. 상상 이상으로 너무달라.
공부힘들어서 자살하는 사람들.. 다 남이야기 같았어. 하지만 아니야.
공부공부공부공부. 좁디좁은교실에 선풍기4대히터2대. 40명이 넘는 아이들.. 같은곳에서 각기 다른재능을지닌 아이들이 오직 한가지만 배우고 있었어. “대학가는법”.
슬펐어.
……난 사실 평범한 여중생일뿐이야.
노래부르길좋아하고, 그림그리길좋아하고, 수다떨길좋아하고, 친구들과 어울려놀기를 좋아하는,
하지만 사회는 내게 그걸 바라지않아.
같은머리 같은옷 그리고 같은공부.
쫍디쫍은 교실에 아이들을 구겨넣고, 선풍기4대와, 히터2대. 그리고 선생님..


(청소년인권행동 아수나로 교육비판&선동 전단지 ㅋㅋ)







3페이지


경쟁적 교육은 인권침해다!

  다들 “교육에 문제 있다.”라고 씹기 바쁘지만, 정작 교육을 바꿔보려는 사람들은 별로 없지. 어떤 사람들은 학벌과 입시, 경쟁과 차별은 당연한 거라고, 바꿀 수 없다고, 피할 수 없으면 즐기라고 말하지.
  그 동안에도 많은 사람들이 교육 때문에 목숨을, 행복을, 꿈을 잃고 있지.
  교육 같지도 않은 교육 속에서, 인권도 행복도 삶도 무시되고 있어. UN아동권리위원회도 한국의 경쟁적 교육이 청소년들의 인권을 침해하고 있다고 지적했지. 입시경쟁은 쉬고 놀 권리를 짓밟고, 성적이나 학교에 따른 차별을 만들고, 체벌 같은 폭력의 이유가 되고, 획일적인 교육을 만들지. 이런 상황에선 ‘선택’ ‘자유’ 같은 건 다 거짓말이야. 기본환경 자체가 강압이잖아?
  정답만 강요하는 시험과 점수라는 숫자들로 우리를 값매길 수 있다는 발상은 정말 토 나와. 입시경쟁은 모두에게 안 좋아. 획일적이고 점수 따는 법이나 가르치는 게 제대로 된 교육이나 자기개발일 수는 없어. 입시경쟁은 교육권/발달권을 짓밟는 명백한 인권침해야.



피할 수도 즐길 수도 없으면 싸워서 바꾸자!

  입시폐지, 대학평준화, 학벌학력차별금지 같은 것들은 좀 더 살만하고 행복한 교육을 만들기 위한 시작이고 한 걸음이야. 다양하고 평등한 사회, 인권을 존중하는 교육, 민주적인 교육, 모두 가능한 일이야.
  이제 어쩔 수 없다고 순응하지만은 말자. 입시경쟁교육을 거부하자. 이제 우리가 원하는 교육, 새롭고 다른 교육, 우리가 행복한 교육을 말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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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MB 교육 정책, 갑갑해서 목이 메는 우리들

  정부는 “다양성”과 “교육권”을 보장하겠다며 경쟁을 더 빡세게 하고, 학교와 학원에 대한 규제들을 없애겠다고 해. 시험을 더 많이 보고, 성적을 공개해서 학교와 학생들을 더 줄 세우겠다고도 하지. 정말 갑갑해서 목이 메이지 않니? ㅠ  “다양성”과 “교육권”은 경쟁을 빡세게 시켜서는 이룰 수 없어. 반대로, “다양성”과 “교육권”은, 서로 다른 사람들을 서열화하지 않고 평등하게 대우하고 존중할 때 보장할 수 있는 거야.
  입시경쟁을 없애야 해. 점수로 인간을 평가하는 시험과 서열화를, 반강제적인 학교/학원의 입시교육을 중단시켜야 해. 정작 우리는 행복하지 않은데, 국가경쟁력 몇 위고 어쩌구 하는 게, 정말 그렇게 중요한 일이야?



청소년인권을 위한 기분 좋은 상상&실천

- 일제고사 같은 듣보잡 경쟁교육 정책들에 시험거부 등으로 저항하자.
- 경쟁을 일으키는 대학서열화를 깨고 대학평준화, 무시험 입학 등을 도입하자.
- 학력, 학벌, 학과, 직업 차별을 최소화하거나 없애기 위한 변화를 만들어 가자.
- 모두를 위한 공짜(무상)교육과 환경, 시설 개선을 위해 교육예산을 늘리게 하자.
- 교육과정과 수업내용 정하는 것에 청소년들의 민주적참여를 보장하게 만들자.
-                                                           (상상력을 발휘해서 직접 채우기 ^^)



Let's ASUNARO

  핀란드 같은 나라의 교육들은, 적어도 한국보다는 좀 더 청소년들의 인권과 행복을 보장해주고 있습니다. 더 나은 교육은 분명히 가능합니다. 프랑스와 칠레 등에서는 청소년들이, 때로는 교사들이나 학부모들 등과 함께, 직접 행동하여 교육 정책들을 바꿔냈습니다. 당연한 권리가 짓밟힐 때, 필요한 것은 비겁한 침묵과 순응이 아닌 저항입니다. 청소년인권행동 아수나로는 바로 당신, 바로 여러분이 같이 하기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청소년인권행동 ASUNARO
Posted by 공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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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공현님, 이화여대 교육학과 오욱환 교수의 <한국 사회의 교육열 : 기원과 심화> (교육과학사) 혹시 읽어보셨나요?
    제가 본 책들 중에서 이 '학벌출세사회' 의 기원을 가장 잘 밝힌 책이라서요. 제 블로그에도 소개를 하려고 했는데 여차저차해서 미뤄졌습니다. 출세교육론이 지배하는 사회와, 그게 어디서부터 비롯되었는지 차근차근 밝히고 있으니 한 번 읽어보세요. 각 대학교 도서관에도 있을겁니다. 청소년인권운동이 좀 더 전략적(전쟁용어 쓰기 싫지만...)으로 성공하는데 보탬이 됐으면 합니다. 학벌경쟁에 뛰어드는 한국 사회 구성원들의 심리와 인과관계를 파악하는 게 그 첫걸음일 것 같아서요.

    (....아하, 그런데 제가 이미 이 책을 추천해드린 적이 있었던 것 같군요. 언젠지는 확실히 기억이 안 나지만^^;;)

    그리고 저도 조만간(언제가 될지는 확실치 않음) 네이버에서 다른 블로그로 이사할 것 같아요. 참다 참다 도저히 안 되겠는 순간이 왔네요.

    2008.09.05 11:57 [ ADDR : EDIT/ DEL : REPLY ]
    • 음 @_@ 네 예전에도 한 번 추천을...;
      읽어야지 읽어야지 하며서 못 읽고 있네욥

      글쿤요~ 이사하면 알려주세요 ㅎㅎ

      2008.09.05 12:03 신고 [ ADDR : EDIT/ DEL ]
  2. 버람

    새로운 디자인을 시도해봐....

    2008.09.07 18:35 [ ADDR : EDIT/ DEL : REPLY ]
    • 나도 그러고 싶지만... 흠 쉽지 않아 ㅡㅡ;;

      다음 거부터는 그래야지 ㅎㅎ

      근데 저건 내가 디자인 한 거 아니오

      2008.09.08 12:31 신고 [ ADDR : EDIT/ DEL ]

걸어가는꿈2008. 8. 29. 01:03
청소년직접행동 내부 워크숍에서 기획단이 청소년운동에 대해 생각하는 걸 써달라고 하기에 대충 썼던 -_-




공현의 청소년운동 메모



  이 글에 워크숍 기획하는 사람들이 요구하는 게 정확히 뭔지 모르겠어서, 그리고 요새 내 글 쓰는 스타일이 그래서, 토막내서 여러 주제들을 간단간단하게 쓴다. 왜 이렇게 요새는 메모만 하게 되는지. 여하간 대충 읽으면 될 것이다.



☆ 청소년운동

  청소년운동이 뭔가, 라고 물으면 글쎄올시다. 뭐 특별할 게 있나 싶다. 사실 좀 더 정확하게 운동을 표현하기 위해서는 ‘미성년자 운동’이 어떨까 싶기도 한데, ‘미성년자’라는 말이 아무래도 차별적 의미를 담고 있다 보니까 그대로 쓰기는 그렇고…. 어쨌건, 누구나 대부분 경험하게 되고 또 누구나 시간이 지나면 나이가 변하는 특성 때문에 청소년이 소수자 정체성이냐 하는 것에 대해서도 논란의 여지가 있지만, 그 특성이 어떻건 ‘미성년자’는 이 사회에서 분명 억압 받거나 통제받거나 차별받는 이유 중 하나가 된다고 생각한다. 아마도 된다. 음음.
  여하간 이 사회가 ‘미성년자’ - 국제적 용어로 하면 ‘아동’(child)을 따로 구별하고 불평등하게(단순히 ‘다르게’가 아니다) 대하는 것, 그것이 청소년운동(좀 더 정확히는 저항적인 청소년운동이라고 표현해야 할 것이고... 내 경우에는 청소년인권운동이겠지.)의 이유이고 원인이다. 거기에 굳이 하나의 요소를 더 첨가한다면, 청소년들도 인간들이고, 인간인 이상 행복해지고 싶고, 행복해지기 위한 사회적인 조건들과 구조들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 밖의 미사여구나 명분이나 이론은, 실제로 유용하거나 자기만족을 줄 수는 있겠지만 청소년운동을 설명할 때는 그다지 필요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물론 각자가 청소년운동을 하는 이유야 다를 것이고 거기에 부여하는 의미도 다르겠지만. 나는 그 사람들 각각의 이유나 의미가 궁금할 때도 있긴 하지만 그 이유나 의미에 대해 왈가왈부하고 싶지는 않다. 같이 운동을 하면서 그 이유나 의미가 특별히 문제가 되지 않는다면.
  그리고 항상 많은 이야깃거리가 되는 청소년운동의 당사자주의 문제에 대해 덧붙이자면, 청소년운동에서 그 운동을 ‘누가’ 하느냐는 중요한 문제지만 필수적인 문제는 아니다. 당사자주의에 따라서 청소년들이 직접 하는 게 좋을 것이고 또 직접 하는 것이 여러 장점이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청소년만이 청소년운동을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청소년운동은 이 사회에서 청소년의 문제에 관한 운동인데, 이 정의에서 우리는 이 운동을 하는 사람이 누구여야 한다는 규정을 논리적으로는 도출할 수 없다.



☆ 청소년운동이 있긴 했나?

  ‘미성년자’(아동이라고 부르건 청소년이라고 부르건)를 일종의 소수자 정체성으로 인식하고 이에 관해 이야기하고 운동을 한 역사는 대한민국에 거의 없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이 글에서는 편의상 앞으로 ‘미성년자’ 정체성 인식 뭐 이정도로 표현하겠다.) 1980년대 중고등학생운동(‘고운’)이나 참교육운동은 민주화운동이거나 자주통일운동이거나 노동계급운동이거나 교육운동의 성격으로 분류하는 것이 더 옳을 것이다. 또한 그 운동들에 인적 or 사상적 or 조직적 뿌리를 두고 있는 희망 같은 단체들은, 좀 성격이 광범위하긴 한데, 2000년대 중반부터는 청소년운동단체로서의 좀 더 많은 고민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그 전에는 학생자치와 교육, 문화활동, 자주통일 등에 대한 이야기가 강했지 ‘미성년자’의 사회적 지위나 정체성에 대한 인식과 고민은 많지 않았던 것 같다. 물론 청소년들에게 가해지는 억압과 차별에 대해 문제제기하고 저항하는 사건들은 끊임없이 있어왔고 앞서 언급한 운동들도 그런 움직임들을 포함하고 있지만, ‘미성년자’ 정체성 인식을 중심에 두고 지속적이고 조직적으로 활동해온 움직임이 한국 사회에서 없었다는 것이다.
  나는 한국 사회에서는 특히 청소년인권운동이라는 이름을 달고 있는 운동(1995년부터 그 역사를 짚어갈 수 있는)이 이런 입장과 이런 맥락에 서있는 운동들과 조직들을 만들어나가고 발달시켜 왔다고 본다. 이제 그 나이가 10년을 넘은 청소년인권운동이지만, 운동 역사 10년은 매우 짧은 편에 속하며 청소년인권운동이라고 제대로 부를 만한 것이 2000년대 들어서야 발달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하는 게 맞을 것 같다. 2000년대 중반까지도 “청소년인권운동”이라는 것은 극히 불안정하고 경계가 불분명한 영역이었으며, 그 흐름은 정치 참여 운동이나 보호주의나 교육운동이나 기타 등등 다른 담론들과 뒤섞이고 부딪치며 흘러왔다. 그래서 나는 너무 조급해하지는 않기로 했다. 눈앞에 과제들이 쌓여 있는 것은 당연한 일이고, 그 과제들을 시행착오를 거치며 하나하나 해결해 나가야 하는 게 우리의 일일 것이다.



☆ 2008년 상황과 청소년직접행동

  나는 전누리처럼 (이른바) 정세 분석하는 걸 즐기지도 않고 정치 예보를 할 생각도 없으니 현재까지 상황에 대한 내 인식만 간단하게 쓰겠다.
  이명박 정부는 절차적인 대의민주주의를 비롯하여 이루어진 정치적인 몇몇 자유들과 국민국가의 자주성이 줄어드는 상황이고, 이는 2002년 이후로 강하게 형성된 다수 사람들의 ‘국민’ 의식과 많은 부분 배치되는 한나라당을 비롯한 특권적 집단의 독주 때문이다.
  청소년들이 가지고 있을 수밖에 없는 다양한 불만들은 이런 상황에서 국민의식이나 애국심이나 자주, 이 땅의 민주주의 등의 명분을 표면에 내세우며 표출되었다.(촛불집회) 희망 같은 단체는 이러한 청소년들의 불만-욕망과 민주주의, 자주, 애국심 등의 대중적이고 거대담론적인 명분의 결합에 익숙했고 지금까지 해왔던 것처럼 대응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청소년인권운동을 하는 내 입장(그리고 다른 몇몇 사람들의 입장)에서는, 이런 방식으로는 청소년들의 이해관계를 관철시킬 수 없고 공론화시키기도 어려울 것이라고 판단했다. 예컨대, ‘성인’들의 역사는, 1920년대 항일독립운동이나 80년대 민주화운동에 청소년들이 참여하면서 부가적으로 내건 독자적인 교육에 대한 요구 등은 모두 잊어버렸다. 그들의 운동은 단지 독립운동이고 민주화운동일 뿐인 것이다. 마찬가지로 2008년 촛불집회도 광우병 쇠고기 투쟁으로 기억되기 십상일 것이며, 교육문제 등도 많이 공론화되고 있지만 핵심 이슈로는 제대로 부각되지 않고 있다. 오히려 청소년들의 정치적 움직임들을 대놓고 탄압하거나 일정 부분 완화시키고 무마시키려는 움직임들이 촛불 안팎으로 많았다.
  5.17 청소년행동도 ‘휴교시위’ 문자메시지를 계기로 이런 문제의식을 안고 만들어진 것이었다. 내 입장에서는, 청소년인권운동에서 서울지역의 대표적인 모임인 청소년인권활동가네트워크가 2008년 초에 정한 연대체 성격 문제라거나 운영 호흡 등의 면에서 촛불집회 대응을 적절하게 할 수 없는 상황이었기에, 네트워크와는 별도로 촛불집회 정세에서 움직이는 모임이 필요했다고 생각한다. 촛불집회에 대한 우리의 고민 자체가 청소년들의 정치적 자유/권리의 문제 그리고 민주주의(그냥 대의민주주의 말고 -_-)를 그 중심에 두고 있었기 때문에 청소년직접행동의 활동방향도 주로 그런 쪽으로 되어 있었다. 청소년들의 정치적 권리 문제는 특히 중요한 이슈 중 하나이며, 2001년부터(아니 어쩌면 그 이전부터) 선거권 운동이나 다른 여러 방식으로 제기된 문제였다. 분명히 이 문제를 물고 운동할 단위는 분명히 필요했고 청소년직접행동은 2008년 촛불집회 정세와 교육감 선거에 이르기까지 어느 정도 그 역할을 했다.

* 여기에 따로 쓰진 않았는데, 이명박 정부 상황은 저항적인 운동을 하는 단체들에 ‘단결’할 것을 압박하고 있다. 나로서는 달갑지 않은 정세이지만 그 필요성을 마냥 부인할 수는 없는 게 슬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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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어가는꿈2008. 8. 22. 0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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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인권활동가네트워크에서

달마다 하는 청소년인권놀이터 빨강물고기!

8월 빨강물고기는 ~ 교과서 속 인권의 모습들, 뒷담화 까기

때 : 8월 23일 토요일 2시~4시

장소는 문화놀이터 마랑입니다 ^^;

마포구청역 4번출구에서 걸어서 5분 정도 거리에요~~


많이들 오시길 ㅠㅠ
Posted by 공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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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어깨결림

    오늘 꺼 재밌었어용, 교과서 찣는 재미가 쏠쏠~ 비록 장소는 어수선 했지만. 크흐흐

    2008.08.23 21:17 [ ADDR : EDIT/ DEL : REPLY ]

걸어가는꿈2008. 8. 19. 22: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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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청소년, 보호주의에 묻힌 성적 자기결정권

난다

시간이 좀 흘렀지만, 촛불집회에서 연행이 된 적이 있었습니다. 혹시 아실까 모르겠어요. 그 때 기사가 났었는데, 대부분 기사 내용이 '집에 가고 싶다고 울부짖는 여중생...' 뭐 이런 식으로 기사가 났어요. 근데 사실 전 집에 가고 싶다고 울부짖고 그런 적 없는데, 그 때 언론들에서는 모두들 '집에 가고 싶어요, 무서워요, 저 보내주세요 흑흑... 한 여중생이 두려움에 떨고 있다'. 이런 내용을 담았었죠. '지켜주지 못해 미안한' 어린 10대 소녀로, 그 기사들은 절 그렇게 얘기하고 있었습니다. 사회적으로 청소년은, 보호해줘야 할 약자, 보호의 대상이 되고 있습니다. 당사자가 어떻게 생각하든 간에 상관없이 말이에요. 언제부터 나는 누군가가 지켜줘야 했을까요? 왜 나는 보호받아야 할 어린 소녀일까요? 연행당할 때 '미성년자는 풀어줘라!'라는 목소리가 들리고, 10시 이후에는 집회에 남아있지 말고 집에 들어가라고 할 때, 항상 따라오는 건, 내가 '청소년'이라는 것 때문이었습니다.
청소년이라 못하고, 안되는 게 굉장히 많아요. 일단 술 담배 마음대로 못 삽니다. 찜질방도 10시 이후로는 보호자 없이는 출입 못 하구요. 숙박시설도 보호자가 없으면 마찬가지로 잠 못 자구요. 그래서 청소년들은 밖에 나와도 잘 곳이 없어요. 이 모든 것들은 다 유해환경으로부터 청소년을 보호하기 위해서 라는 건데, 그 유해환경에 '성'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얼마 전, 선거에서 당선돼 우리가 다시 한숨 쉴 수밖에 없게 만든 어떤 사람이 이런 말을 했습니다. "성관계를 한 학생은 퇴학시킬 수 있다."

이 모든 것은 청소년은 청소년을 '보호의 대상'으로 보는 사회의 시선에서 비롯됩니다. 청소년은 아직 판단력이 미숙하고, 경험이 부족하고, 그렇기 때문에 유해환경에 쉽게 물들 수 있다. 그러므로 사회는 약자인 청소년들을 보호해야 한다, 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보호해주겠다는 말 속에 권력 관계가 있는 거고, 보호라는 말로 포장된 통제나 억압, 지배가 있게 됩니다. 보호라는 말로 차단시켜 놓음으로써 격리시키는 효과도 있는 것이구요.
보호는 미봉책에 불과합니다. 보호만 싹 없앤다면 여러 문제들이 생길 수 있지만, 그렇다고 보호만 하는 것이 맞나? 그것은 현상 유지를 위한 방책이지, 해결을 위한 노력이 아니지요. 어느 선에서 차단만 시켜놓는 미봉책입니다. 예를 들면, 청소년 유해 환경이라고 했을 때 뭔가가 유해 하다면 유해 환경 자체에 대한 개선이 필요한 건데 그것을 출입 금지로만 그냥 금기시 해놓는 것. 성을 이야기 하자면, 그러니까 성을 금기시하는 이유는, '너희들, 잘못하면 임신할 수도 있으니까'인데, 지금 사회에서 청소년이 임신을 하게 되면, 가장 먼저 '낙태'를 떠올리게 될 것 같습니다. 왜 그럴까요? 일단 청소년들은 비청소년들보다 경제적으로 약자의 위치에 있습니다. '낳아서 어쩔건데?'가 되어버리는거죠. 또 사회적인 시선들, '아니, 저 어린 것들이.' 하는 비난의 눈길. 하지만 청소년들이 임신 했을 때, 낳아서 양육할 수 있게 하는 환경이 만들어질 수 있어야 하는거 아닐까요? 임신을 하면 인생이 불행해지게 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성을 통제해서 막겠다는 것은 문제를 덮어 놓거나 어느 선에서 눌러버리는 것에 불과합니다. 성을 금지했을 때, 보호하려 했을 때 보다 청소년의 임신율, 낙태율, 이런 것들이 수치상 줄어들 순 있지만 사라지는 것은 아닌거고, 청소년의 행복과도 거리가 멀어지지요. 또 사실 낙태 비율만 놓고 보자면, 기혼 여성의 낙태율이 제일 높다고 해요. 임신을 하고도 아이를 양육할 수 있는 환경이 되지 못해 아이를 지워버리게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보면, 양육 문제는 청소년에게만 국한된 것은 아닌 것 같아요. 양육의 책임을 개인에게만 돌리고 있는 사회의 문제인거죠.
다시 보호주의의 이야기로 돌아가면, 여자니까 밤늦게 돌아다니지 말라고 하는 것도 비슷한 맥락인 것 같습니다. 밤이 위험해지는 환경, 밤에 범죄 위험(성폭행, 납치, 살인 등..)이  높은데, 범죄의 위험성에 대해 CCTV설치 정도로 해결하려는 것이나, 위험하니까 일찍 집에 들어오라고 하는 것들. 그 위험한 상황을 개선하는 게 아니라, 그냥 밤늦게 돌아다니지 말라고 하는 것도 비슷한 이야기가 될 수 있을 것 같아요.
어찌 보면, 밤길 이야기는 '여성에 대한 보호'로도 읽힐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청소년이든, 비청소년이든, 여성이 남성보다 더 쉽게 '보호의 대상'이 됩니다. 비청소년이 되어도, 여성인 경우 집 안에서 외박을 금지하는 경우를 쉽게 볼 수 있습니다.
청소년 연행 사건에 대한 기사의 내용도, 실은 그 청소년이 남성 청소년이었다면, 그런 식의 기사는 나오지 않았을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보호'에 있어서, 청소년 사이에서도 성별의 차이가 있지 않나, 하는 생각도 듭니다.

특히 성, 섹스에 관해서는 나이보다 성별이 더 크게 작용하는 것 같습니다. 청소년은, 청소년이라는 이유로, '보호주의'라는 것에 '성적자기결정권'은 묻히게 됩니다. 청소년의 성적 자기결정권은 아직 당연한 얘기가 아닌 것 같아요. 인정받지 못하고, 주위에 숨겨야 될 것만 같은 분위기, 청소년이 섹스하기엔 사실 너무나 열악한 환경, 자연스럽게 얘기할 수 없는 것들, 등등. 하지만 성에 대한 통제가, 청소년의 성을 금기하는 것도 있지만 비혼이란 범주에 청소년이 속한다고 본다면, 20대일지라도 비혼일 경우는 섹스했다고 하면 그런 분위기가 있는 것 같습니다. 같은 청소년이더라도 비혼부는 없고, 비혼모는 있지요. 임신후 결과에서, 여성 청소년에게만 더 많은 성적 통제가 가해지고, 남성 청소년의 경우는 다른 얘기가 되는 것이구요. 남성 청소년의 성경험이 여성 청소년보다 일찍 시작한다는 통계도 있고 경험에 대한 해석에서도 여성 청소년보다 남성 청소년에게 훨씬 관대하게 적용한다고 생각합니다. 여성 청소년과 남성 청소년의 차이. 결혼을 중심으로 봤을 때, 결혼하지 않았다는 게 여성 청소년에게 훨씬 크게 적용하지요. 혼전순결에 대한 사회적 강박 같은 걸까요? 
사랑니라는 영화를 보면 여성 학원 교사가 남자 아이와 여관을 가는 장면이 나오는데 모텔 종업원이 비난을 할 때는 그 여성에게 비난을 가합니다. 20대, 30대 남성과 10대 여성이 할 때에도 도덕적 비난의 대상은 일반적으로는 여성에게 가게 됩니다. 그 때는 '저 발랑 까진 어린 것이...'라는 얘기가 되는 거지요.

청소년의 성적 자기결정권? 여성의 성적 자기결정권? 아직도 쉬쉬하는 사회. 보호를 위한 건가요? 그렇다면, 그 보호를 거부하겠습니다. 이제는 당당히 얘기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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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험 속에서도 권리를 외치다


공현


청소년 성폭력 사건의 그 ‘특별함’

  청소년(아동) 성폭력 사건에는 뭔가 특별한 것이 있다. 분명 웬만한 청소년 성폭력 사건들은 남성과 여성의 성별 권력(물론 구체적 사건에 따라 +a가 있다.) 속에 일어난 여타의 성폭력 사건과 그리 다르지 않은 성폭력 사건일 텐데, 청소년 성폭력 사건이 알려지면 세상 사람들 사이에서는 온갖 ‘특별한’ 이야기들이 오간다.
  사람들은 아동-청소년이 피해자이고 비청소년-‘성인’이 가해자인 사건(예컨대, 최근에는 혜진 씨 예슬 씨가 피해자였던 사건)이 공론화되었을 때는 천인공노(天人共怒), 인면수심(人面獸心) 등 한자어를 써가며 혀를 끌끌 찬다. 그러면서도 집에서 무슨 변태 성욕의 증거가 발견되었다면서 가해자를 열심히 자신들과 다른 존재로 타자화 한다. 그리고 또 한편에서는 아동-청소년에 대한 보호주의를 발동시켜서 성폭력 범죄자들을 더욱 빡세게 처벌하겠다는 법률 개정 검토를 하고, 부모들은 아동 성폭력 피해 예방을 위해 밤길 조심하고 처음 보는 낯선 사람 조심하고 등등의 조심 사항들을 내놓는다.
  아동-청소년이 가해자인 사건(예컨대, 대표적인 것이 2004년에 있었던 밀양에서의 집단 성폭행 사건)이 공론화되면, ‘미성년자’라는 이유로 가벼운 처벌이 내려지는 것에 대해 사회적인 비난이 커지며, ‘미성년자’들의 ‘충동적인’ 범행에 대해 공격이 가해지고 청소년들의 ‘미성숙’함이 강조된다. 청소년에 대한 음란물 규제와 같은 조치도 항상 따라 다닌다. 최근에 있었던 ‘대구 초등학교 성폭력 사건’에서도, 정부에서 검토한다고 한 조치는 결국 ‘음란물 규제’가 아니었던가?
  분명히 아동-청소년들의 성폭력 사건은 대개 성별 권력이 더욱 강하게 작용한 ‘전형적인’ 성폭력 사건이다. 아동-청소년들의 사회적 약자로서의 지위가 반영된 경우도 많지만, 더 강한 영향을 미치는 것은 성별 권력이다. 성폭력 사건에서 피해자에 대한 책임 전가라거나 사건을 공론화시키는 것을 금기시하는 모습도, 여타의 성폭력 사건들과 비슷한 모습들도 종종 보인다. 그러나 아동-청소년 성폭력 사건을 다루는 이 사회의 태도는 아동-청소년들의 특수한 위치를 이야기하지 않고는 이해할 수 없다. 또한, 아동-청소년 성폭력 사건을 다룰 때 청소년의 특성을 고려해야만 하는 경우도 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이렇게 “청소녀/년의 성적 결정권”이란 이름으로 특별히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일 터이다.


청소년에게 위험한 성

  그렇다. 청소년에게 성(性)은 위험한 것이다. 이 말은 어쩌면 여성에게 성은 위험한 것이다, 라는 말과도 비슷하게 들릴지 모르겠다. 여하간 청소년들에게 성은 위험한데, 하나는 아동-청소년 성폭력 때문(가해/피해 모든 면에서)이고 다른 하나는 청소년에게 성행위는 금기시되며 그러다가 덜컥 임신이라도 하면 난감하기 때문이다.
  성폭력의 위험은 연령과는 별로 상관이 없는 것 같지만, 아동-청소년 성폭력에 특히 민감한 이 사회(이게 과연 ‘약자에 대한 폭력에 분노’하는 ‘순수’한 마음일까?)에서는 아동-청소년 성폭력만 특히 강조되기 때문에 청소년들에게 성폭력은 특히 위험하다. 하나는 ‘자라나는 새싹들’인 청소년들이 성폭력의 피해자가 될 가능성 때문이고, 다른 하나는 ‘충동적’이고 ‘미성숙’한 청소년들이 성폭력의 가해자가 될 가능성 때문이다. 이 인식 안에는 청소년에 대한 이중적인 고정관념들이 이중적으로 작동하고 있다.
  그리고 청소년들에게 성이 위험한 두 번째 이유는, 청소년들의 성행위는 이 사회에서 금기시되고 있기 때문이다. 청소년의 성행위를 금기시하는 데는, 덜컥 임신이라도 하면 신세망친다, 라는 사회경제적 지위의 문제와 더불어 청소년들에게 이 사회가 부여하는 생애주기-나이주의(나이주의라는 말은 여기선 매우 복합적으로 나이에 따른 권력과 위계를 뜻함과 동시에 나이에 따라 사회적으로 요구되는 생애주기의 의미를 지닌다.)의 문제가 동시에 얽혀 있다. 고등학교 때인가 국어 선생이 “어른”의 어원이 성행위를 경험했다는 뜻을 가지고 있다고 했던가. 청소년들이 성행위를 하는 것은 사회가 정한 청소년들의 틀과 지위를 벗어나는 일이기에 위험하다.
  최근 인기 도서인 『88만원 세대』를 보면 첫 챕터에 “첫 섹스의 경제학, 동거를 상상하지 못하는 한국의 10대”라는 제목으로 대한민국 10대들이 섹스를 하지 못하는 경제적인 문제를 구구절절 분석해놨는데, 옳은 소리이긴 하지만 청소년들의 성행위를 금기시하는 것이 꼭 경제적 지위의 문제만은 아니다. 30대 기혼 여성이 임신을 했는데 경제적 여건이 매우 곤란한 경우 주변에서는 걱정을 하고 염려스러워 하긴 하겠지만, 10대 미혼(비혼) 여성이 임신을 한 경우에는 비난과 좀 다른 스트레스들이 존재하는 것이다.


청소년 안의 성별 권력

  그런 이야기로 원고의 반절을 쓰고서도, 또 청소년들 사이의 차이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청소년’의 특수성을 생각해야 하지만 동시에 청소년들 안에서도 남성과 여성의 차이는 존재한다. 청소년이 가해자인 성폭력 사건들도 충분히 그런 점을 보여주고 있고, 일상적으로는 수업 시간에 남성중심적인 성적 농담을 통해 친밀한 공모 관계를 형성하는 남성 교사와 남성 학생들의 관계를 봐도 그렇다. 최근에 중국으로 수학여행을 가서 성구매를 한 남성 청소년들에 대해 교사가 통제를 잘못했다, 라는 식으로 이야기하는 언론이나 사람들을 봐도 남성의 성욕은 통제할 수 없다는 식의 판타지는 계속된다.(물론 거기에는 ‘미성숙한’ 청소년들을 ‘성숙한’ 성인들이 관리해야 한다는 의식도 같이 있다.)
  또한, 바로 요 앞에서 청소년들에게 성이 금기시되고 있다고 이야기하긴 했지만, 이 또한 남성 청소년의 경우와 여성 청소년의 경우가 다르게 취급되며, 미혼/기혼 기준 또한 여성 청소년들에게 매우 강하게 적용된다. 남성 청소년들의 성행위에는 상대적으로 관대한 모습을 보이는 것이다.
  (이 이야기는 난다의 발제에 충분히 자세히 그리고 구체적으로 나와 있으니까 이만 줄이겠다.)


청소년의 성적 권리

  그래서, 도대체 논리적으로 이어지는 것 같지 않은 이 토막난 원고의 끝은 청소년의 성적 권리에 대한 이야기로 끝을 맺는다. 발제라는 게 원래 시원한 답을 던져주는 게 아니라 함께 토론할 이야기거리를 꺼내보자는 것이니 속 시원하지 않더라도 이해해주시기 바란다.
  청소년의 성적 권리는 보장되어야 하고 인정되어야 한다. 비록 아동권리협약에서도 언급하지 않는 홀대받는 권리이지만, 너무나도 중요한 권리가 아닐 수 없다. 여기서 성적 권리라는 것은 성적 자기결정권, 성에 대해 알 권리, 성평등(동성애나 성전환 등을 포함한)에 대한 권리 기타 등등을 의미한다. 비록 청소년의 성적인 자유가 힘 있는 남성 청소년들에게 단순한 자유주의나 프리섹스로 오인 받을 수 있다 하더라도, 청소년 안에서 성적 권력 관계가 엄존하기에 수많은 고민들이 필요하더라도, 청소년의 성적 권리는 보장되어야 한다.
  청소년에게도 자기결정권이 있다, 라고 하면 “그래 당연하지. 하지만…” 정도로 말하는 사람들도 청소년들의 성적 자기결정권에 대해 이야기하면 매우 과민하게 반응한다. 왜 이 사회는 청소년들의 성적 권리에 대해서는 그토록 민감하게 반응할까? 그것이 그토록 위험한가? 그것이 정녕 그리도 위험하다면, 그것이 더 이상 위험하지 않은 사회를 만들어야 하는 것이 당연할 것이다.(적어도 그 사람들이 18세 이전에 섹스를 하면 자궁에 질병이 생길 확률이 몇 배 높아지고 어쩌구 저쩌구 하는 이유 때문에 ‘위험’하다는 건 아닐 테니까.) 청소년들에게는 성적인 권리가 보장되어야 한다. 성을 권리가 아닌 보호와 통제, 위협의 관점에서만 접근할 때 청소년들은 그리 행복하지도 못할 것이고 문제는 계속될 것이다. 이렇게 당연한 이야기를 하기 위해 A4를 3페이지나 낭비했다는 것은 죄악인가?
Posted by 공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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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어가는꿈2008. 8. 13. 2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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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 청소년인권 워크숍
일시 : 2008년 8월 22일 금요일~
장소 : 서울유스호스텔 (훈훈한 방)

주최 : 국가인권위원회 , 청소년노동인권네트워크, 청소년인권활동가네트워크, 21세기청소년공동체 희망

주요 논의 사항
* 한국 사회의 청소년인권 현황 점검
* 청소년인권운동 현황 및 바람직한 방향 모색
* 국가인권위원회와 청소년인권단체 간 협력 및 연대방안 모색


일정

10:00~10:30 개회 및 참가자 소개, 일정 소개
10:30~12:30  1부 주제별토론 (학생인권, 교육, 노동, 정치적 권리)
12:30~13:30  점심
13:30~15:30  2부 주제별토론 (성소수자 등 청소년 안의 소수자들)
15:30~16:30  종합토론
16:30 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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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거 준비가... 뭔가 동기부여도 안 되고...
약간이지만 꼬이기도 하고 에효 -_-;;;




아 이주가 완전 지옥의 주에요 ㅠㅠ 포럼과 워크숍이 무려 3개 (잘하면 4개가 될 수도...)
Posted by 공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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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인천에도 오세용??

    2008.08.15 11:41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 인천에는 비정규직 관련 포럼 준비하는 거 MT겸 회의하러 가요;;

      2008.08.17 22:51 신고 [ ADDR : EDIT/ DEL ]
  2. 요번주에 청소년노동인권교육 관련되서 행사 하는 것 같더라구요...;; 안산도 비정규센터에서 진행한다는 것 같았는데...

    2008.08.18 01:23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 넹 하는 거 알아요- 근데 저는 그거랑 비정규 노동 포럼 준비 회의 시간이 딱 겹쳐서 못 가요 -_-;; 흙흙

      2008.08.18 01:28 신고 [ ADDR : EDIT/ DEL ]
  3. 저번에 김종민씨 한번 뵈었는데... 운영위도 아직까지 이끌고 계시다고 ^ ^; 고생이 많으시겠어요...

    2008.08.18 01:43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걸어가는꿈2008. 8. 11. 12:39

꿈꿔봐! 우리들의 독립을

[인권교육, 날다] 독립을 위한 청소년들의 고개 넘기 프로젝트

고은채
함께 사는 사람이 있는 것, 혈연이 아니라도 서로 의지가 되는 가족을 구성하고 사는 것은 행복이고 기쁨이다. 하지만 ‘가족’이란 꼭 그렇지만은 않다는 걸 웬만한 사람들은 다 알고 있다. 가족이라도 혈연이라도 같이 사는 것이 괴로운 일이 될 수 있음은, 교과서 같은 데는 나오지 않지만 또 하나의 진실이랄까. 어릴 적 가출은 이루지 못할 로망으로, 충동으로 이해되곤 한다. 곧 ‘집 나가면 고생’이라고, ‘쯧쯧…’ 혀를 차며 지적되는 것이 청소년의 가출이다. 하지만 이 역시 꼭 그렇지만은 않다. ‘충동’과 ‘고생’으로 단정 짓기엔 몹시 불쾌한, 저마다의 배경과 사정이 있다.

날개달기

매달 한 차례씩, 청소년과 함께하는 인권교육(달마다 하는 청소년 인권 놀이터 ‘빨강물고기’)을 기획하면서 나온 여러 주제 중에 ‘가출 그리고 독립’은 인권교육의 새로운 주제였다. ‘독립이 권리야? 가출은 개인의 선택이잖아. 선택을 강요하는 사회는? 개인이 감당할 수 없는 환경은? 이렇게 착취해도 괜찮은 사회야?’ 이리하여 만들어진 보드게임!

위 사진:달마다 하는 청소년 인권 놀이터 ‘빨강물고기’

집을 나서며 직면하게 되는 문제들을 살펴보며 청소년의 독립적 삶을 위해 사회가 보장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 되짚어 보는 기회를 갖기로 했다. 특히 가출과 독립을 혼자만의 문제, 온전히 개인이 해결해야하는 것으로만 생각해온 문제의 시작을 바꿔보기로 했다. 각자 부딪치게 되는 상황을 스스로 온전히 감당할 수 없는 개인을 사회가 책임지지 못하는 것이 문제라고 바라볼 수 있도록 하는 것. “당장 오늘 저녁 집을 나온다면? 어디서 하룻밤을 보낼까? 찜질방? 친구 집?” 힘들 것이라는 막연한 가출의 문제들을 하나하나 풀어가면서 최종적으로 독립적 삶에 도달하는 ‘부루 마블 가출 버젼’의 주사위를 함께 던져보자.

더불어 날개짓 1

보드게임 판과 주사위, 이동 말 등을 준비한다. 보드 판에는 게임의 요소를 더해 ‘지갑을 잃어버려서 3칸 뒤로’나 행운 ‘친구 집에서 한 달 동안 숙식 해결’을 넣도록 한다. 주사위를 1,2,3(4,5,6도 1,2,3으로 바꿈)만 표시하면 거의 대부분의 모둠이 보드 판 곳곳을 거쳐 갈 수 있다. 그리고 집을 나설 때 마주치는 어려움 10여 개를 쪽지에 적은 다음 주머니나 상자에 넣어둔다.

위 사진:가출하고 해결해야 하는 쪽지들

2~3명씩 모둠을 구성해 전체 게임에 참여하는 모둠이 네 모둠을 넘지 않도록 조정한다. 한 모둠씩 주사위를 굴려가며 말을 이동한다. ‘고개 넘기’에 말이 걸리면 주머니에서 쪽지를 한 장 뽑아 쪽지의 문제를 해결한다. 알고 있는 방법을 동원해 모둠에서 해결을 모색한다. 한 번 뽑은 쪽지는 진행에 따라 한 번 더 풀어보도록 주머니에 도로 넣을 수 있다. 두 번 정도.

위 사진:부루마블 가출 버젼 : ‘꽝’ ‘장기자랑’ ‘원하는 말이랑 바꾸기’ 등과 같이 숨은 고개를 만들면 더 흥미롭다.


• 밤에 잘 곳이 없어 : 친구 집 찜질방은 못 가는데…
• 얹혀살던 친구 집에서 더 이상 재워주기 곤란하다고 한다.

“친구 부모님이 재워주는 거 반대하면, 공부 잘하는 친구라고 하면 좀 더 잘 수 있어. 전에 친구 가출했을 때, 내 친구가 공부 좀 했는데 아주 잘한다고 했더니 엄마가 자도 좋다고 했거든.”
“한 달만 봐 달라고 사정해보자. 설마 잘 데도 없다는데 내쫓을까?”
“고시텔은 어때? 알바해서….”
“고시텔에 가려면 하루 종일 알바 해야 돼. 학교는 어떡하구.”“단체를 활용하는 거야. 인권단체한테 재워달라고. 하하”

• 좋아하는 사람과 데이트할 비용이 없어 ㅠ.ㅠ
“데이트는 돈 안 드는 데 찾아보는 거야. 도서관 같은 곳.”
“먹는 건 어떻게 해?”
“아! 촛불집회 가면 먹는 것도 주잖아. 볼 것도 있고, 걷기도 하고, 시간도 잘 가. 짱이다.”
“먹는 거는 대형 마트 시식코너!”
“근데 차비는 들잖아. 적어도 2천 원은 들어.”
“그럼, 집에서부터 행진하라고 해. 하하.”

• 이가 아픈데 치과 갈 돈도 없고, 보험증 없어서 괜찮나?
“아픈 건 참을 수밖에 없어.”
“후원을 모으는 거야. 자유발언 같은 데서 가출했다고 말하고, 아프다고 후원해달라고 하면 어때?”
“보건소가면 돈 들어?”
“아는 사람한테 부탁하자. 의사 아는 사람 없어?”
“야, 우리가 의사를 아는 사람이 어딨어! 우리 나이에 의사를 알기가 쉽냐?”
“아프면 불쌍하다.”

• 아르바이트를 구하려고 하는데 부모동의서가 필요하네.
• 아르바이트 저임금 노동착취 + 인권침해

“아르바이트, 동의서 없으면 안 돼?”
“난 전에 알바 할 때, 동의서뿐만 아니라 노동부 장관 허가서도 있어야 했어. 만 15세 미만이래서.”
“위조하면 그 다음엔 어떻게 돼?”
“동의서 위조해서 내도 어른한테 전화해서 물어보기도 해.”
“그러면 어떻게 해?”
“가짜 어른 섭외하면 되잖아.”
“근데 그거 불법이지?”

• 학교에 갔는데 교사가 가출한 걸 알고 집으로 보내려 한다. 그리고 부모님이 학교로 찾아왔다.
• 등교문제, 교복과 책, 준비물, 급식비, 등록금

“가출한 거 학교에 얘기하면 안 되겠지?”
“당근이지. 집에 끌려가. 그리고 가출은 교칙 위반이야.”
“학교에서 거짓말 해야겠네”
“다니면서는 계속 거짓말 하겠지. 급식비 못내도 거짓말, 준비물 못 가져가도 거짓말, 근데 학교 다니기 쉽지 않겠다. 잘 데도 없는데 학교 다닐 생각할까?”

• 가출했는데 돈도 떨어지고 먹을 것도 없고 입을 것도 없고… 흑
“잘 데도 없고, 먹을 것도 없고, 옷도 꼬질꼬질 하면…” “최악이다”
“집에서 엄마 통장이라도 들고 나와야 하는 거야? 참.”
“왠지 계속 불법으로 간다, 우리.”
“그러게 점점…. 정당한 방법은 없나?”
“야, 우울해진다.”

신나게 시작한 가출 여행이 점점 심각해진다. 웃으면서도 우울함이 배어 나오는 청소년의 가출 일기에 빨리 게임을 끝내도, 마냥 환호성이 나오지는 않는다. 게임이 끝날 때쯤이면 가출해서, 독립해서 당당히 사는 것이 참으로 어려운 우리 현실에 착잡함이 밀려오기도 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가출, 할 게 못되는구나’로 결론이 내려지지는 않는다. 왜냐하면 가출의 현실은 비참하지만 그보다 가출의 정당성이 너무도 뚜렷하기 때문에. 오히려 청소년이 집을 나와서 정당하게 살 수 없는 사회에 의문을 던지게 된다. “이래도 되는 거야?!!”

더불어 날개짓 2

위 사진:독립을 위해 준비해야하는 것들! ‘사회’와 ‘나’로 나눠서 생각해봐요~

독립을 희망하는 청소년이 준비해야할 것은 무엇일까? 사회는 청소년의 독립적 삶을 위해 무엇을 준비해야 할까? 각 모둠별로 각각의 리스트를 만들도록 한다. 그중 제일 중요한 것, 으뜸인 것은 다른 모둠이 퀴즈로 맞춰보도록 색지로 가리고, 발표를 한다.

사회에서 준비·제공해야 할 것들
· 노동할 수 있는 조건 / 안정적이고 질 높은 일자리
· 주거 공간 : (정부의) 직접적인 제공 / 안정적인 주거 공간(무상)
· 청소년을 위한 의료보험 (청소년은 의료비 공짜?) / 학교, 사업장 등 건강검진+치료
· 교육… (쩜쩜쩜; 왠지 그냥 지금의 교육은 아닌 것 같아) / 교육개혁, 무상교육, 입시폐지
· 교통비+공과금 무상 또는 할인?

이외에 청소년이 스스로 독립을 위해서 준비해야할 것들로는 ‘독립에 대한 의지와 뻔뻔함’ ‘시간관리’ ‘인간관계’ ‘깡’ ‘요리실력’ 등을 뽑았다. 또 청소년의 알바 저임금으로는 잠자리는커녕 세끼 식사도 해결하기 어렵다는 사실, 가출한 청소년도 학교 가려면 버스를 타야 하고, 현장학습 가면 입장료 내야 한다는 사실, 의무교육인 중학교도 급식비 못 내면 식판 안 준다는 거, 청소년이라고 절대 공과금 같은 것은 깎아주지 않는다는 거 등등 8개월째 가출 중, 독립을 꿈꾸는 청소년의 이야기는 적나라한 현실을 들춰낸다.

끄덕끄덕 맞장구

서로의 평화를 위해 차라리 집을 나와 사는 경우가 아니더라도, 혼자 사는(또는 혈연이 아닌 구성원들과 함께 사는) 청소년에 대한 사회적 시선은 ‘안타까움’ 그리고 ‘불안’이다. 가출이든 독립이든 청소년은 ‘이렇게 혼자 있어서는 안 되는 것’이고, 자연스럽게 청소년의 독립적 삶이 가능한 사회는 꿈꿔 본 적이 없다. ‘안타까움’은 그저 안타깝게, ‘불안’은 그저 불안으로 안은 채 지낸다. 그러나 그들은 꿈꾼다. 저들의 안타까움과 불안을 딛고 자신의 독립을!

덧붙이는 글
고은채 님은 인권교육센터 ‘들’(http://dlhre.org) 상임활동가입니다.
수정 삭제
인권오름 제 114 호 [기사입력] 2008년 07월 29일 17:08:58













열심히 준비하고 열심히 했던 독립-_-; 그나마 좀 잘 되었던 것 같아서 좋았었지 훗;;
Posted by 공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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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어가는꿈2008. 7. 26. 01:33

[인권운동가를 만나다] '청소년인권행동 아수나로 윤 종


얼마 전에 대구의 국가인권위 사무실에서 일하시는 고등학생 분과 인터뷰한 건데 --;;;

직접 보니까 ㅎㄷㄷ....

동영상에서 왜 저렇게 미묘하게 신경쓰는 듯한 표정을 지으면서 주스를 마시는 거지
손은 왜 자꾸 저렇게 쉐이킹 하는 거야-;;

그리고 머리는 자른 지 얼마 안 되었는데 왜 또 저렇게 헝클어져 있지...
Posted by 공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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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오랜만에 얼굴 뵈서 좋은걸요..

    2008.08.15 11:36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걸어가는꿈2008. 7. 16. 11:33


http://www.culturalaction.org/webbs/view.php?board=houseagent&id=183
진보복덕방에 쓴 글

같은 주제의 글
“청소년만을 위한 임대주택이 있으면 좋겠어” 자립을 준비하고 있는 청소년 세현 씨 이야기




“가출”과 “독립” 사이 - 청소년의 주거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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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현 | 청소년인권행동 아수나로





너 도 나도 집 걱정 하는 시대지만 청소년이 집 걱정을 하리라고는 상상도 못하는 사람들, 그리고 그 사람들이 만들어내는 주거정책. ‘혼자 살 나이’가 아니라고 쳐다보는 사회를 ‘혼자’ 살아내려는 사람들이 있다. 바로 청소년이다. 여전히도 많은 사람들이 낯설어하는 청소년 주거권. 하지만 너무도 당연히 보장받아야 하는 것이 청소년 주거권이다. <진보복덕방 14호>에서는 "청소년 주거권"에 대한 생각들을 독자들과 함께 나누어 보고자 한다. [편집자 주]



청소년의 주거권이라는 개념은 아직 낯설고, 그 내용이 분명하지가 않다. 아직 정리된 이야기거리들과 지점들이 있는 것도 아니고, 청소년의 주거권과 관련하여 딱히 사회에 충격을 던져준 사건이 있는 것도 아니다. (혹은, 관련된 사건이 있었더라도 주거권 문제로는 생각되지 않았다.) 의식주 중에서도 ‘결식아동’이나 ‘급식’을 비롯하여 아동·청소년의 먹거리에 대해 사람들이 쏟는 지대한 관심에 비하면, 청소년들의 주거권 문제가 거의 이야기되지 않는 것은 이상한 일일지도 모른다. 그것을 놓고 청소년들의 주거권에 별 문제가 없다는 뜻이라고 해석하고 싶어 할 수도 있다.

하지만 내 생각은 조금 다르다. 청소년의 주거권이라는 개념이 낯선 것은 주거의 문제를 가족 단위로 사고하는 것이 이 사회에서 매우 익숙하기 때문이며, 청소년들은 그 가족-가정에 종속되어 있는 부수적인 존재로 취급받기 때문이다. 청소년들은, 진지하게 주거권의 주체로 고려되어 본 적이 없다고 해야 옳을 것이다. 주거권의 주체는 일단 비청소년들(‘어른들’)이며, 청소년의 주거권 또한 어른들의 주거권에 종속되어 있다. ‘거소결정권’이 친권의 일부로 당연하다는 듯 명시되어 있는 민법만 보더라도 이런 생각을 확인할 수 있다.

주거권은 단순히 누구나 발 뻗고 누워서 잘 수 있거나 쉴 수 있는 공간을 필요로 한다는 의미만은 아닐 것이다. 그것은 그야말로 주거의 최소한일 뿐이다. 주거권은 안정적인 집, 안전한 집, 가능한 한 좀 더 편안한 집, 내가 원하는 생활방식, 집과 관련된 사람들과의 관계 등의 내용을 포함해야 하며, 사회적으로 사람들이 생활을 옮기거나 조정할 수 있는 권리까지 담고 있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의 주거권이라면, 청소년들의 주거권은 보장되지 않고 있다고 말해야 하지 않을까.

청소년의 주거권에 대해 이야기하기 위해서 꼭 짚고 넘어가야 하는 게 있다. 바로 “가출”과 “독립”의 문제이다. 우리는 “독립”이라는 말과 “가출”이라는 말을 구별해서 사용한다. 독립과 가출은 분명히 다르긴 하다. 지금까지 살던 집/가정을 떠난다는 것은 같으나, 독립은 어느 정도 지속적이거나 영구적인 것을 가리키는 데 비해 가출은 일시적인 것을 가리키는 데 보통 사용된다. 다른 한편으로는 가치판단적 부분도 있어서, 독립은 보통 정당한 것, 스스로 노력하는 것을 지칭하는 데 반해 가출은 일탈적인 것, 잘못된 것이거나 바람직하지 못한 것을 가리키는 데 사용된다.

그런데 이 가출이란 말에는 집요하게 청소년이 따라다닌다. 국어사전 예문에도 “가출 청소년”, “집안 형편이 어렵자 초등학교를 졸업한 이듬해 그는 가출을 감행하였다.”, “어머니는 가출한 아들이 하루빨리 집으로 돌아오길 바라고 있다.” 이런 것들만 나와 있으며, 정부에서는 청소년 가출에 대한 통계를 따로 낼 정도이다. 비록 정상가족이데올로기를 강조하며 이를 위반하는 일종의 무책임한 행동을 가리키는 말로 “가장의 가출”이나 “어머니의 가출” 같은 말이 사용되긴 하지만, 가출은 여전히 주로 청소년의 것이다. 가출이란 말 속에 포함되어 있는 부정적 가치판단까지 포함해서.

이런 말 쓰임의 배경에는 청소년은 가정의 ‘제자리’에 있어야 한다는, 그리고 청소년은 ‘독립’할 수 없는 존재라는 가정이 깔려 있다. 그것은 한편으로는 ‘미성년자’라는 말로 표현되는 청소년들의 ‘미성숙’에 대한 이데올로기이며 다른 한편으로는 청소년들의 사회경제적 조건에 대한 현실적 제약이다. 앞서 내가 “가출”은 보통 일시적인 것을 가리킨다고 했는데, 청소년들의 사회경제적 조건상, 가출로 명명되는 청소년들의 가정 탈출(다른 주거를 요구하는 일종의 저항)은 장기간 지속되기 어려우며 어느 정도 안정적이고 지속적인 주거를 확보하기도 쉽지 않다. 가출 청소년들에 대해 국가가 제공하는 ‘쉼터’(6개월~1년 머무르는)는 청소년들에게 당장 먹고 잘 곳을 주긴 하지만 지속적인 주거일 수 없으며, 현재의 ‘그룹홈’은 그 수가 매우 적고 지원도 열악하기 때문에 실질적인 대안이 되지 못하고 있다.

쉼터 등은 아무래도 ‘가출 청소년’들에 대한 지원의 성격이 강하니까 한정적일 수밖에 없다고 치고, 청소년들의 ‘독립’ 문제에 관해 본격적으로 상상의 나래를 펴보자. 뭐 집 문제라는 게 항상 그렇지만 가장 큰 문제는 돈일 것이다. 눈 깜빡할 새 몇 백, 몇 억씩 오르는 집값이나 전세값, 보증금과 임대료 등이 부담스럽지 않은 사람이 얼마나 많겠냐마는, 청소년들의 경우에는 민사상 미성년자이기 때문에 계약 자체를 맺기가 어렵다. 청소년 알바라는 게 대부분 저임금이라서 돈 벌기 어려운 건 말할 것도 없고, 주택 대출은 꿈도 꿀 수 없다.

여러 유행어를 만들어내고 있는 책, 『88만원세대』에서는 첫 챕터에서부터 ‘독립’이 20대 후반까지도 지연되는 현상을 지적하고 있는데, 청소년들의 사회경제적 조건에서 독립이란 얼마나 요원한 일이겠는가? 말이 나와서 말인데, 『88만원세대』의 첫 챕터는 「첫 섹스의 경제학 - 동거를 상상하지 못하는 한국의 10대」라는 제목으로 청소년들의 경제적 조건과 주거 등에 대해 다루고 있는데, 읽다보면 역시 꿈은 높은데 현실은 시궁창이라는 생각이 자꾸 들고 만다.

결국 이 사회에 살아가는 다수 ‘정상적인’ 사람들의 주거 사이클은, 청소년기에는 어떤 불만이나 독립에 대한 욕구가 있어도 가정에 종속되어 살다가 20대 중후반이 되어서야 경제적/주거적으로 독립을 도모하는 것이라고 하겠다.(간혹 이 사이에 학교 진학 등을 이유로 경제적으로는 가정에 종속되어 있지만 집을 떠나서 사는 일이 생기기도 한다.) 소수의 사람들이 이런 주거 사이클을 벗어나려 하지만 이를 사회는 거의 용인하려 하지 않는다. 청소년들의 가출과 같은 형태의 주거 저항에도 꿈쩍하지 않는다. 그리고, 그런 사회에 의해 청소년들의 주거권에 대한 이야기들은 제대로 꺼내지지도 않은 채, 침묵 속에 묻히고 있다. 청소년은 미성숙하다는 신화 밑에서.






가난한 사람들이나 돈 많은 사람들이나, 방향은 다르지만, 모두들 집값 걱정하는 시대이다. 정부에서는 집값을 낮추겠다고 호언장담하고 그래도 내집마련이 어려운 사람들을 위해서는 '주거복지정책'을 준비하겠다고 한다.
그러나 집값이 오르든 내리든 여러 가지 이유로 배제를 경험하는 소수자들의 주거권 현실을 살펴본다면 주거권 실현이 집값잡기와 동일하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또한 '주거복지정책'은 오히려 배제를 정당화하는 핑계가 되고 있다. 누구에게 어떤 집이 필요한 지를 묻지 않고 상품만을 찍어내는 주거, 부동산정책으로는 집값을 잡을 수도 없을 뿐더러 주거권 실현도 기대할 수 없다.

<진보복덕방>에서는 최저주거기준에 미달하여 주거권이 보장되지 않고 있는 사례들을 짚어보면서 그 현실과 쟁점에 대한 연속기획을 진행하고 있다.

앞서 장애인주거권(9호), 노숙인주거권(10호), 주거용 비닐하우스촌 거주민주거권(11호), 뉴타운사업(12호), 동성애자 주거권(13호)의 현실과 쟁점을 살펴보고, 당사자들의 목소리를 통해 보편적 주거권 실현을 위한 과제가 무엇인지 독자들과 함께 고민하고 있다.[편집자 주]


2008년07월15일 13:49:38
Posted by 공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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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어가는꿈2008. 7. 14. 17:13
아수나로북에 들어가는
급식, 청소년인권, 먹거리, 식품, 생태적 먹거리, 건강권 뭐 그런 것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먹는 것에도 민주주의가 있다



  급식 괴담을 아는가? 국에서 바퀴벌레 시체가 나왔다거나, 구더기가 나왔다거나, 몇몇 사립학교들 같은 경우는 급식비는 비싼데 급식의 질이 형편없는 걸 봐서는 뭔가 비리가 있다는, 뭐 그런 누구나 한 번쯤 들어봤을 법한 이야기들 말이다. 학생들이 벌레 등이 들어간 급식을 먹고 괴물이 되어버리는, <급식해저드>라는 만화까지 있을 정도다.
  이런 사실적 괴담(?)까지 가지 않더라도, 우리는 이미 급식으로 인한 집단 식중독이라거나, 어느 사립학교에서 급식비리가 있었다거나 하는 생생한 사건들을 직접 경험하거나 전해 듣곤 한다. 특히 최근에는 vCJD(변종크로이츠펠트야곱병. 소위 ‘광우병’. 나는 소에게 “미쳤다”라는 딱지를 붙이는 광우병이라는 이름에 반대한다.) 위험 쇠고기까지 대두되면서 먹거리의 안전성이라는 문제가 도마에 오르고 있다.
  먹거리 문제는 중요한 청소년인권 문제다. 나는 이런 이야기들을 건강권/안전할 권리와 알 권리(식품과 소비자 이야기할 때 꼭 등장하는 두 권리), 그리고 민주주의라는 말로 풀어보려고 한다. 먹는 것에도 민주주의가 있다. 아주 중요한.




급식운영을 민주화하라!


  먼저 민주주의의 가장 기초적인 부분부터 지적하자면, 급식운영을 민주화하는 것일 터이다. 특히 급식을 직접 먹는 당사자들인 청소년/학생들(그리고 교사들)의 급식운영 참가는 중요하다. 급식운영에서의 예산과 시설, 그리고 전반적인 운영의 의사결정 과정에 학생들이 참여해야 한다. 학생들의 의견을 실시간으로 수렴하고, 학생들의 권익을 보장할 수 있는 학생 급식 담당자들을 둘 필요가 있다.
  지금까지 급식의 문제 중 상당수는 급식을 직접 먹는 당사자들의 의견이 거의 반영되지 않았고 학생들은 그저 주는 대로 먹어야 했다는 것이다. 많은 학생들이 ‘사육’당한다고 느끼는 데는 그런 급식도 한 몫 했을 것이다. 급식운영에 학생이 참여하는 것도, 소수의 사람들만 급식운영에 참여하는 게 아니라 모든 학생들이 급식운영에 대해 알 수 있도록 공개해야 하고, 수시로 학생들이 운영에 참여하거나 급식시설을 체험/감시할 수 있도록 하여 급식 과정과 가까워지고 이를 통제할 수 있게 해야 한다.
  이런 면에서 위탁급식(급식업체에 돈을 주고 급식을 맡겨서 운영하는 것)보다는 직영급식(학교에서 직접 급식을 운영하는 것)이 더 민주적이다. 기업을 거치는 위탁급식보다는 아무래도 직영급식에 학생들이 직접 참여하고 감시할 여지가 더 많을 수밖에 없다. 직영급식은 기업의 이해관계에는 신경 쓰지 않아도 되고, 학교에서 직접 운영하는 것이니까 말이다.
  또, 직영급식은 위탁업체보다 식중독 발생률이 낮다. 급식 위탁업체는 급식 시설비용도 부담해야 하기 때문에, 이윤을 남기기 위해 값싼 식재료를 사용하는 경우가 종종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지금 당장 모든 학교의 급식을 직영화하기는 어렵겠으나 점차적으로 예산을 확보하고 시설을 만들어가야 한다. 이 과정에서 학생들의 급식운영 참여를 보장해야 하는 것은 물론이다. 최근에 문제가 되고 있는 vCJD 위험 쇠고기의 경우에도, 이런 직영급식과 학생들의 민주적인 참여와 통제를 통해 vCJD 위험 쇠고기가 급식에 사용될까봐 불안해하는 것을 최소화 할 수 있을 것이다.(사실 미국산 쇠고기 수입 자체도 비민주적인 정부의 독단에서 비롯된 문제다.)




먹거리는 그냥 상품이 아니다!

  하지만, 급식운영 과정에서의 민주주의는 그야말로 기초이다. (그 기초조차 안 되어 있어서 입 닥치고 먹어야 하는 게 현실이기도 하지만 -_-.) 이제 우리는 식재료를 생산하고 유통하는 과정 자체의 민주주의에 대해 고민해봐야 한다. 지금까지 우리는 우리로부터 먼 어딘가에서 어떻게 만들어진지도 모르는 식재료들과 식품들이 어떤 과정으로 유통되었는지도 모르게 근처 가게에 진열되어 있는 ‘상품’들을 돈 주고 샀을 뿐이다. 이 과정에서 알 권리나 건강권, 민주주의 같은 것은 고려대상이 아니거나 ‘복불복’ 식으로 운에 맡겨지게 된다.
  그 대안으로 유통과정을 축소시키고 생산지의 소식을 전해들으며 생산 과정이나 방식 등을 최대한 공개하는 생활협동조합(생협) 시스템이나 산지 직거래 방식 등이 나오고 있다. 이런 방식 속에서, 생산자와 소비자는 좀 더 소통하게 되고 좀 더 민주적으로 생산과 유통과정에 개입할 수 있게 된다. 생산 과정에서 더 생태적이고 안전한 먹거리를 만들기 위한 노력과 함께. 먹거리는 우리 생활의 가장 기본적인 문제이기 때문에, 단순한 상품 논리만 적용할 수는 없는 것이다.

* 무상급식 : 먹거리가 단순한 상품이 아니기 때문에, 무상급식은 중요한 가치이다. 일단 무상교육의 이념 속에서는 학교에서 먹는 급식도 무상이어야 하는 것이 당연하다. 그리고 무상급식은 먹거리가 단순한 상품이 아니고 기본적인 권리라는 관점에서 실현되어야 한다. 최소한으로 필요한 건강한 먹거리는 돈과 관계없이 먹을 수 있음을 당연한 것으로 정착시키기 위한 교육적 목적에서라도 무상급식은 필요하다. 예산 해결을 위해 성금이나 기부금을 모을 수도 있을 것이나, 그 기본은 공짜 급식이어야 한다.

  여기에서 내가 생태적 먹거리라는 말을 사용했는데, 이 말이 무슨 의미인지 구체적으로 살펴보고 넘어가겠다. 생태적인 먹거리의 요건은 여러 가지가 있겠으나, 우선 살충제나 화학비료, 성장촉진제 같은 수단(생태계를 파괴하고 먹는 사람에게도 안 좋은 영향을 미치는)을 사용하지 않거나 최소한으로 사용하는 것이 기본일 것이다. 한 발 더 나아가서는, 한 가지 종류의 작물을 집중적으로 재배(농약, 살충제에 의존하거나 유전자를 조작해가며)함으로써 생태계를 붕괴시키거나 동물들을 매우 파괴적인 환경에서 성장촉진제와 항생제를 쩔도록 투여해가며 대량사육하는 등의 공장식 대량생산시스템이 아닌, 좀 더 생태계를 존중하는 생산 시스템에서 나온 먹거리를 ‘생태적’이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생태적인 먹거리는 지속가능한 식량생산을 위해서도, 그리고 그것이 인간의 기만일지언정 조금 더 동식물 윤리적인 생산을 위해서도, 마지막으로 그 먹거리를 먹는 사람을 위해서도 꼭 실현되어야 한다. 특히 vCJD나 조류독감 등의 질병이 동물들을 공장식으로 대량생산하는 축산업 시스템에 의해 더 쉽게 전염되고 있으며 ‘인간에 의해 만들어진 질병’이라는 의혹을 받고 있는 현재의 상황은 생태적 먹거리의 필요성을 더욱 부각시키고 있다.(소의 vCJD와 관련하여 소를 죽인 나이가 20개월이나 30개월이니 말이 많은데, 실제로 소의 평균수명은 약 20년이다. 그런 소를 2~3년 동안 성장촉진제와 동물성 사료, 항생제를 먹여가며 강제로 빨리 키워서 죽이는 이 시스템이 과연 윤리적이거나 생태적인 걸까?)
  이런 생태적 먹거리들이 현재로서는 비싼 축에 든다. 하지만 반대로 생각하면 싼 가격에 사먹었던 공장식 대량생산시스템에서 나온 먹거리들이 그 싼 가격 대신 얼마나 많은 생태적 가치 등을 희생해왔는지를 생각해야 한다. 모든 사람이 생태적 먹거리를 먹을 수 있도록 사회가 보장해야 하며, 육식과 대량소비에 익숙해진 사회구조를 변화시킬 필요도 있다.
  이와 같은 시스템을 급식에 적용한다면, 학교 차원에서 직접 학생, 교사와 함께 농사나 양식 등을 통해 생태적인 먹거리를 생산하는 것을 구상해볼 수 있다. 실제로 학교에서 먹는 식량을 다 조달할 수는 없겠지만 어느 정도는 책임지고 안전한 먹거리를 만들 수 있을 것이다. 또, 단순히 상품을 소비하는 소비자의 위치를 넘어서 어떻게 먹거리가 만들어지는지를 이해하고 체험하는 것은 교육적으로도 중요하다. 여기에서 한 단계 더 발전하면 지역의 학교들과 생활협동조합을 만들어서 생산자와 직접 소통하고 안전하고 생태적인 먹거리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덧붙여서 나는 학생들이 급식을 만들고 배식하는 과정, 설거지 과정 등에도 함께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사실 수학 문제 몇 개 더 푸는 것보다 중요한 교육은 이런 가사노동 분야이다. 30대가 되도록 제대로 할 줄 아는 요리가 몇 개 없어서 요리책에 의존하거나 일부 여성에게 의존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가? 이는 결국 성별분업 논리(사실 급식을 맡아서 만드는 직원들의 다수는 여성이다.)물론 수백 명, 수천 명의 학생들이 먹는 급식을 학생들이 하루종일 만들고 있을 수는 없지만 정기적으로 학생 당번을 정해서 돌아가며 급식 만드는 일에 참여하는 방안 등과 학교당 학생 수를 줄이는 일 등을 검토해볼 필요가 있다.




우리는 ‘먹이는’ 존재가 아니다

  급식을 비롯해서 먹거리에 관한 논의에서 우리가 흔히 접하게 되는 것은 청소년들을 매우 수동적인 존재, 또는 보호해야 할 대상 정도로만 취급하는 태도이다. 급식문제에 대해 “우리 아이들에게 좋은 걸 먹이고 싶어하는 어머니의 심정” 운운하는 것은, 성별분업적 표현(왜 항상 어머니가 먹거리를 걱정하는 제1순위 주체인가?) 때문에도 옳지 못하지만, 아동-청소년을 보호해야 할 대상으로만 본다는 점에서도 옳지 못하다. 학교에서만 탄산음료 판매를 금지시키겠다는 정책도 그렇다. (특히 2007년 무렵부터 있었던 “아이건강국민연대”는, 비록 그 운동 내용이 매우 의미 있는 것이었다고는 해도 이런 관점을 고집하고 있는 면이 많다. 여기서 자세히 언급하지는 않겠다.)
  물론 먹거리나 건강에 관한 문제를 개인의 선택이나 자유로만 이야기하는 건 사기다. 거짓말이다. 먹거리를 만들고 유통시키고 소비하는 구조가, 사회적 시스템이, 생활양식과 패턴, 환경은 중대한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그런 것과 무관하게 개인의 자유로운 선택에 건강권을 맡기겠다는 건 무책임이다.
  그러나 동시에, 지금까지의 급식이나 먹거리 관련 운동이나 정책들은 아동-청소년들을 주체적인 존재로 파악하지도 않았고, 그 운동의 운동주체로 보지도 않았다. 그 결과 앞서 내가 말한 것과 같은 민주적인 급식이나 학생들의 참여 같은 중요한 부분들은 간과되었다. 교사나 부모들은 때때로 편식을 못하도록 ‘급식지도’를 한다면서 체벌과 같은 강제력을 동원하기도 했다. 청소년들에게 탄산음료나 과자 같은 것이 뭐가 문제이고 왜 소비함녀 안 되는지를 알리고 스스로 소비를 줄이도록 하거나 그런 문제 있는 음식을 만들어내는 생산자를 규제하기보다는, 학교에서만 탄산음료를 없애는 이상한 정책을 쓰기도 했다.
  급식이나 먹는 것을 지도하는 과정에서도 강제적·강압적인 방식이 있어서는 안 된다. 심각한 영양의 불균형이 질병을 일으킬 정도라면 의학적인 처방과 지도가 필요하겠지만, 그런 수준이 아니라면 급식지도는 설명과 설득을 중심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그런 설명과 설득에 근거하여 교육하지 않으면, 강압과 강제를 통한 급식지도는 일시적이거나 제한적인 효과를 볼 뿐이다. 급식지도는 뭐도 가리지 말고 잘 먹어야 하고 몇 분 안에 먹어야 하고 이런 이야기가 아니라 먹거리 생산의 생태적 문제점들이나 알 권리, 먹거리 민주주의에 대한 포괄적인 교육이 되어야 한다. 최대한 다양한 식성(그것이 취향이건 종교적/사상적 이유건)을 고려하여 식단을 짜야 할 것이고, 다양한 음식들을 자율배식하는 형태가 가장 좋을 텐데 일부 식단에서는 조정 과정을 둘 수도 있을 것이다.
  학교에서 탄산음료 금지 같은 정책도 좀 우스운데, 학교에서만 금지하는 것, 그리고 청소년에게는 탄산음료가 해롭다고 금지시키려고 하면서 비청소년(어른)들에게는 아무 말도 없는 사고방식은 이상하기 짝이 없다. 학교 밖에서는 맘껏 먹어도 된단 말인가? 탄산음료는 특히 청소년들에게만 유해하고 비청소년들은 아무 문제 없단 말인가? 탄산음료나 과자 등이 그렇게 건강에 해롭다면 그냥 소비하도록 냅두는 것은 분명 좋은 정책이 아니며, 그 유해성을 충분히 알리고 강조할 필요는 있다. 아니면 차라리 생산자(기업)를 규제해야 할 텐데, 기업을 상대로 탄산음료나 과자 생산을 규제하는 일은 만만치 않기 때문에 좀 더 만만한 소비자-청소년들을, “아이들을 보호해야 한다.”라는 논리에 기대어 규제하려고 하는 것은 아닐까?

  우리는 단순히 먹거리를 ‘먹이는’ 존재가 아니라, 우리가 먹거리를 ‘먹는’ 존재이며, 그 먹거리에 대해 의견을 내고 민주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존재이다. 자꾸 ‘아이들의 건강권’을 들먹이며 청소년들에게 무엇을 먹이네 마네 어른들끼리 떠들지 말고, 청소년들과 함께 뭘 먹을지 말지, 그리고 어떤 먹거리를 어떻게 만들고 유통해야 하는지에 대해 이야기하고 실천하자. 당신들이 대신 이야기해주려고 하는 ‘아이들의 건강권’이라는 말은 지긋지긋하다. 이제, ‘건강권’을 우리의 제대로 된 인권으로 돌려받아보자.




Posted by 공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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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맞아요. 누구 말대로 정말 우리는 밥상에서 매일매일 투표를 하고 있습니다. 제대로 투표해야 하는데 말이죠.

    2008.07.21 17:33 [ ADDR : EDIT/ DEL : REPLY ]

걸어가는꿈2008. 6. 30. 01:46
촛불이 낳은 고민들 속에서



촛불과 청소년인권 사이

  청소년인권행동 아수나로가 여러 지역에 지부를 두고 있다는 것은 이 글을 읽는 분들도 알고 있으실 겁니다. 그 중에서도 아수나로서울지부가 청소년인권활동가네트워크에서 함께하고 있는데, 어차피 제가 서울지부 외의 다른 지역 사정 같은 걸 잘 아는 것도아니니까 아수나로 서울지부의 이야기만 하도록 하겠습니다.

  아수나로 서울지부에서 최근 집중하고 있는 문제는 단연그 촛불집회 문제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학교자율화가 청소년들의 인권을 보장할 정부의 의무를 포기한 인권침해라는 내용의국가인권위원회 진정을 제출하고, 퀴어퍼레이드에 참가하고, 청소년인권활동가네트워크의 빨강물고기 인권교육에 참여하는 등의 활동도있기는 했으나 거의 대부분의 활동이 촛불집회에 관련된 것이었다고도 할 수 있겠지요. 그래서 이 글의 제목을 "촛불과 청소년인권사이"라고 달아보았지요.

  아수나로(서울지부 뿐 아니라)가 처음에 초점을 맞춘 것은 청소년들의 정치적 권리를부당하게 침해하는 경찰이나 교육청 그리고 학교들의 행태에 대한 문제제기였습니다. 하지만 동시에, 촛불집회를 주최하고 있는 여러단체들이 청소년들을 차별적으로 대하거나 보호주의적으로 대하는 것에 대한 문제제기도 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아수나로차원에서 <현재의 미국산 쇠고기 반대 운동에 대한 청소년인권단체로서의 우려>라는 글을 써서 촛불집회를 주도하는 단체들이나 카페들에 보내기도 했습니다. 좀 까칠한 글이었는지 어땠는지 모르겠지만 반응이 그리 좋았던 거 같진 않습니다. ㅋㅋ;
  (참 관련 글로 <청소년들을 평등한 정치적 주체로 인정하라!>  요런 성명서도 썼었습니다.)

  이런 문제의식은 5월 17일에 '휴교시위'를 하자는 문자메시지가 돌면서, 그쪽으로 방향을 틀었습니다. 어째서 사람들은 청소년들의등교거부에 대해 그토록 알레르기, 과민 반응을 보이는 걸까요? 광우병 위험 쇠고기 수입에 찬성하건 반대하건, 이 사회는전반적으로 청소년들의 불복종 행동에 대해 강한 거부감을 보이고 있었습니다. 대학생들의 동맹휴업을 반겼던 것에 비하면 잘 이해가가지 않는 모습이지요. -_-
  그래서 우리는 청소년들의 자발적인 저항 의지의 표현이었던 5월 17일 휴교시위문자메시지를 구체화시키기 위해서, 교육공동체 나다 및 여러 활동가들과 함께 "5.17 청소년행동 공동준비모임"을 꾸리고 열심히준비를 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다른 단체들과의 의견 충돌이나 마찰도 좀 있었구요. 여하간 이러쿵저러쿵 말도 많고 탈도 많고 했던5.17 청소년행동을 끝냈습니다. 정말 죽는 줄 알았어요. 흑흑... (휴교시위 문자 처음 돌린 사람을 잡아서 집회 준비에동참시켜야 합니다!!!)

  그 이후에도 아수나로 서울지부는 5.17 청소년행동 공동준비모임에서, 이 이른바'촛불정세' 속에서 청소년들의 정치적 권리와 청소년들만의 목소리를 어떻게 하면 낼 수 있을지 고민해왔습니다. 촛불정세는 분명청소년인권에 관한 여러 이야기들을 다양하게 전개시키고 소통할 수 있는 광장인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동시에, 촛불정세는 여러 가지이야기들을 모두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 또는 "광우병" 또는 "반 이명박"에 묻히게 만드는 것이기도 했으며, 더 많은청소년인권에 대한 이야기들을 묻어버리는 것이기도 했습니다. 촛불집회 안에서도 청소년들에 대한 여러 가지 차별이나 보호주의적인시선들은 여기저기서 드러났습니다.
  그래서 5.17 청소년행동 공동준비모임(in 서울)은 "거리를 학교로 도로를칠판으로"라는 표어와 함께 거리에 락카칠을 하고 사람들과 함께 분필로 아스팔트에 글씨를 쓰며 놀았습니다. 그러면서 전단지와선전물 등으로 청소년들을 평등하게 대우할 것을 요구하는 홍보활동을 했습니다. 효과는 얼마나 있었을지 모르겠지만요-.



"촛불소녀"

  아수나로 서울지부가 활동한 것에 대한 이야기는 이쯤 해두고, 이제 이 촛불정세가 던져주고 있는 고민에 대해 이야기해보겠습니다.이 촛불정세는, 청소년들(10대들)이 그 처음을 주도했다는 사실을 비롯해서 청소년들의 적극적인 정치/사회 참여와 그런 정치/사회참여를 이 사회가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는지에 대한 고민들을 던져주고 있습니다. 그런 복합적인 측면이 모여 있는 상징적 아이콘이바로 "촛불소녀"입니다.

  "촛불소녀"는 처음에는 나눔문화라는 단체가 만든 것이었습니다. 그 기획의도가 청소년들의주체성, 적극성을 드러내기 위한 것이었는지 아니면 청소년들을 보호해야 할 존재로 그려내는 것이었는지는 분명 논란의 여지가있습니다. 제가 나눔문화 사람들의 마음을 읽을 순 없는 노릇이니까요.

  그러나 나눔문화가 촛불소녀를 만들기 전부터"아이들이 무슨 죄냐 우리들이지켜주자"("우리들"이란 표현도 문제지요.)라는 종이피켓을 나눠주고 있었고 촛불소녀 기획에서는 이런 부분에 대한 문제제기나비판은찾아볼 수 없었으며, 촛불소녀를 만든 이후에도 그런 종이피켓들을 아무 문제의식 없이 나눠주고 있었다는 점은 지적해야 합니다.또한 <촛불소녀의 코리아> 카페의 공지에 올라가 있는 글 중에는, 우리 10대 아이들을 지켜주고 싶었다며, 청소년들의행동을 깜찍하다고 표현하는, 기존 비청소년들(어른들)의 여러 차별적 시선들을 그대로 담고 있는 글들이 있었습니다. 사람들이"촛불소녀"라는 상징의 내용과 뉘앙스를 받아들이는 것 또한 청소년들에 대한 보호주의적/차별적인 인식이 반영되어 있는 경우가 있는것도 사실입니다.

 그런 점에서 촛불소녀는 현재 집회현장이나 운동 속에서의 청소년들의 지위에 관한 문제의식이 결여된 문제작이었으며, '촛불'이라는상징과 함께 '소녀'라는 이미지를 내세움으로써 지켜줘야 할 약자, 혹은 순수한 존재로서의 (여성) 청소년들의 이미지를 재생산하는기획이었을지도 모릅니다. 즉, 이런 측면에서 볼 때 "촛불소녀"는 이 촛불정세 곳곳에서 눈에 띄는 청소년들에 대한차별적/보호주의적 시선들의 표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촛불소녀의 이미지는 그렇게 단순하지가 않은 것같습니다. 촛불소녀가, 청소년들이 주체적이고 적극적으로 나서는 현상을 표현하기 위해 나타난 상징이라는 것은 분명한사실이었습니다. 그리고 촛불소녀는, 처음 그 아이콘과 단어를 만들어냈던 기획 의도가 어떤 것이었든지 간에, 촛불정세 속에서두드러지는 청소년들의 활발한 활동 속에서 청소년들의 적극성을 표현하는 아이콘으로 사용되어 왔습니다. 동시에 집회 현장에서"촛불아줌마" "촛불노동자" "촛불대학생" "촛불회사원" 기타 등등의 표현들이 등장하면서, 처음에 '촛불'과 '소녀'를결합시킴으로써 강조되었던 촛불소녀의 그 '특별한' 이미지를 어느 정도 희석되기도 했습니다.

  촛불소녀는 요컨대청소년들의 적극적인 활동과, 촛불집회 안에서도 강고한 청소년들에 대한 차별/보호주의 사이에서 변화하고 움직이고 있는이미지입니다. 청소년들은 그리고 그런 변화하는 면들, 이중적인 면들이 아수나로와 같은 청소년인권단체를 고민하게 만드는 부분인것이지요. 청소년들의 평등한 정치적 권리나 지위에 초점을 맞추고 촛불정세와 청소년 사이의 관계를 이야기하려고 할 때, 이런이중적인 부분들은 피해갈 수 없는 부분입니다.

  다만 확실히 말씀드릴 수 있는 건, 청소년인권행동 아수나로서울지부는, 함께하는 단체들과 함께 더욱 더 집회 현장과 촛불정세 속에도 고집스레 자리잡고 있는 '미성년자' 보호주의나 차별들에도전하려 할 것이라는 점이겠군요. ^^; 청소년인권에 관심을 갖고 있거나 청소년인권운동을 하는 모든 분들과 함께 이런 고민들을더 나누고 심화시킬 수 있길 바라며 글을 마칩니다.









(청소년인권활동가네트워크 소식지에 넣을 글로 쓴 것입니다.)
Posted by 공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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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어가는꿈2008. 6. 23. 0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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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들이 무슨 죄냐  우리들이 지켜주마 -_-;


-“기특하고 장한 우리 아이들에게 미안하다. 미래의 희망인 아이들을 보호해야 한다. 아이들이 무슨 죄냐 우리들이 지켜주자.”

-“집회장에는 정치적 선동 등 청소년이 보고 들어선 안 되는 내용들이 많다. 청소년들은 판단 능력이 떨어지므로 특별히 보호해야 한다.”


  두 대사 중에, 위의 것은 촛불집회에 참여하고 있는‘민주시민’이 할 거 같은 말입니다.  그리고 아래의 대사는 촛불집회에 반대하는 ‘미쳤는갑제’가 할 거 같은 말입니다.
  하지만, 어딘가 묘하게 닯은 것 같지 않나요?
  우리는 촛불집회를 하는 사람들 사이에서도 청소년들에 대한 직간접적인 차별이 많다는 것이, 별로 맘에 들지 않습니다. 많은‘어른’들은 종종 청소년들을 단지 보호받아야 하는 약한 존재, 행동에 나서는 게 특별한 존재인 것처럼 취급합니다. 청소년들을 미래의 희망이라는 식으로 말하며, 현재에 살아있는 인간이 아니라 미래로 유예된 인적 자원이라는 생각을 무비판적으로 떠들기도 합니다.


  우리는 단지 보호를 받아야만 하는 그런 존재가 아니라, 인권이 있고 생각이 있고 의지가 있는 평등한 인간입니다.

  안 그래도 공부 압박에, 어떤 X같은 학교에서는 집회 나가면 징계한다고 공갈협박하고, 경찰에서 찾아와서 협박하고, 미쳤는갑제는 헛소리하고, 부당한 탄압에 충분히 힘듭니다.

  그런데 열심히 집회하러 나와도 미성년자는 부모동의서 갖고 오란 홍보물에 좀 그렇고,“아이들이 무슨죄냐 우리들이 지켜주자”라는 종이피켓에도 좀 그렇고, 예비군복 입은 아저씨들이 뒤로 가라고 하는 것에도 좀 그렇고,“미성년자 석방하라”라고 외치는 것에도 좀 그렇습니다. 차라리 청소년들이 “왜 우리만 훈방하냐 모두 석방하라”라고 외치는 건 어떨까요?


  청소년 여러분~_~ 함께 요구합시다. 우리를 보호 대상으로만, 기특한 애들로만 보지 말라구요. 우리는 당당한 우리의 주장을 가진, 동등한 정치적 주체들입니다.









촛불소녀에 거는 은근 태클



  나☆문화라는 단체에서 처음 만든“촛불소녀”가 유행하고 있습니다. 촛불소녀가 설령 만든 사람 입장에선 청소년들의 적극성을 드러내기 위한 기획이었다고 하더라도, 촛불소녀는 그런 식으로 보이지만은 않습니다. 오히려 촛불과 함께‘소녀’라는 이미지를 내세움으로써 기존의 약자로서의 이미지를 답습하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더군다나 나눔☆화 분들은 여전히 “아이들이 무슨 죄냐 우리들이 지켜주자”라는, 청소년들을 대상화하는 종이피켓을 나눠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촛불소녀에서 이런 부분에 대한 반성은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촛불소녀 카페의 한 공지 글에는, 청소년들을 순수하고 특수한 존재로 대상화시키고 있었고,“우리 10대 아이들”을 지켜주려고 촛불소녀를 만들었다고 하고 있었습니다.

  왜 이렇게 열심히 촛불소녀를 까냐구요? 우리는 촛불소녀가 오히려 청소년들을 보호해줘야 할 대 상의 이미지로 만드는 면이 있진 않을까 걱정됩니다. 또 우리는 촛불소녀가 청소년들의 활동을 특 별한 것으로 만드는 역할을 하지는 않을까 우려스럽습니다.


  그리고 또 혹시 기억나시나요? 청소년들 사이에 등교거부(휴교시위)를 하자는 문자가 돌았을 때 많은 사람들이 부정적인 의견을 보였습니다. 그중에는 대학생들이 동맹휴업할 때는 지지하던 많은 사람들도 있겠죠. 그건 어쩌면 청소년들이 정치적 의견을 가지고서 행동하고 불복종하는 것에 대한 알레르기 반응은 아닐까요?

  많은 어른들이 청소년들이 행동에 나서는 것에 대해 “미안하다”라고 합니다. 마치 모든 책임은 어른들에게 있고, 어른들이 할 일인데 청소년들이 나오게 만들어서 미안하다는 듯이 말이죠. 그리고 촛불집회를 처음에 청소년들이 시작한 것에 대해 기특하다고 말합니다.
  그건 어쩌면 청소년들의 행동의 의미를 축소시키고, 결국 정치와 사회의 주체는 어른들이라고 하는 것은 아닐까요?
  어른들이 좀 죄가 많은 건 사실이긴 하지만(-,.-) 이런 집회나 시위가 어른들만 해야 하는 일인 건 아닙니다.

  우리는 우리의 권리를 위해, 우리의 삶을 위해, 우리의 의지로 나선 겁니다. 우리의 행동은 예외적이거나 특별한 게 아니라, 너무나 당연한 것입니다.
  함부로 기특하다거나 미안하다고 말하는 것은 잘못 아닐까요?


  우리 모두, 평등한 관계로 만나고 행동합시다. 그리고 그렇게 하도록 요구합시다.



청소년인권행동 아수나로 cafe.naver.com/asunaro
Posted by 공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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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다정

    저는 촛불집회 초기에 청소년분들이 많이 나온 것에 대해, 있는 그대로 생존(...)을 위한 행동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안전성이 보장되지 않는 먹거리가 올라와도 거부할 수 없는 대표적인 곳이 학교, 그리고 군대의 급식일테니까요. 그런데 청소년들의 행동을 긍정적으로 보더라도 여전히 '아이들' 이라는 단어에 갇힌 고정관념을 지니는 경우가 왕왕 있어서 안타까웠어요.

    2008.06.24 21:39 [ ADDR : EDIT/ DEL : REPLY ]
    • 사실 '아이'라는 단어 자체는 큰 문제가 없다고 생각하는데,(청소년보다 어쩌면 더 나은 말일지도)
      문제는 '아이'라는 말을 '어른'들이 사용할 때의 뉘앙스와 맥락이... ㅜ

      2008.07.01 14:17 신고 [ ADDR : EDIT/ DEL ]
  2. 미친꽃

    공감...200%.
    글 잘 봤어요.
    어른들 중에서 판단력 흐린 사람들이 더 많은데..
    (참고로 난 30대)

    2008.06.28 23:52 [ ADDR : EDIT/ DEL : REPLY ]
  3. 다정

    공현님~ 제가 다음주 정도에 교육감선거에 관한 (투표 독려~) 글을 써서 블로깅할 생각인데, 이 글 링크시켜도 될까요? 답변 부탁드려요~ 현재 투표권이 없는 미성년의 청소년 역시 정치적으로 행동할 권리를 가진 '시민' 이라는 대목에서 URL 링크시키려고 하거든요^^

    2008.07.17 13:16 [ ADDR : EDIT/ DEL : REPLY ]
    • 제가 청소년후보 교육감 선거에 낸 자료를 올릴터이니 그것도 링크를 걸어주세요 ㅇ@_@

      2008.07.18 00:40 신고 [ ADDR : EDIT/ DEL ]

걸어가는꿈2008. 6. 13. 14:46

달마다 하는 청소년인권 놀이터, '빨강물고기'

두 번째 시간이 6월 21일로 잡혔어요~~



저번 주제보다는 6월 주제가 좀 더 쉬운 주제에용 ㅠㅠ (차이 차별 너무 어려웠삼)


참고로 첫 번째 한 것은



[일어나라, 인권 OTL] ‘어린 것들’ 차별할 땐 이렇게 외칩시다
‘달마다 하는 청소년인권 놀이터 빨강물고기’ 첫 교육 현장





이렇게 한겨레21기사로 나갔답니다. ~_~












6월 청소년인권놀이터 빨강물고기 시간과 장소 안내

 

일시 : 6월 21일 토요일 오후 2시

 

장소 : 미지센터 (충무로역 4번출구)


주제 : 그려봐, 삶 속에서의 인권들

청소년들이 살면서 일상 속에서 겪는 다양한 인권침해들을 다시 한 번 인식하고 논의해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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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별 주제 소개>

달마다 하는 청소년인권 놀이터

빨강물고기

이 시대 청소년들의 팍팍한 삶이야말로 두말하면 잔소리!

뭐가 이렇게 살기가 힘든지, 집에서도 학교에서도 아르바이트에 가서도 심지어 길거리에서도,

나이가 어리다거나 공부에 흥미가 없다는 어이없는 이유로 차별받고 무시 받고 온갖 인권침해를 당하는 이 땅의 청소년들.

왜 이렇게 살아야 하는지, 좀 더 하루하루 행복하게 살 순 없는지, 어떻게 하면 이 세상을 좀 바꿔낼 수 있을지 궁금하지

않나요? 답답하지 않나요?

이런 고민들을 하는 청소년들과 만나 편하게 이야기도 나누고 서로에게 배워가면서 엉킨 고민의 실타래들을 풀어보아요!

청소년인권활동가네트워크에서 매달 셋째주 토요일에 청소년들과 함께 "청소년인권"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을

준비했어요.

 

청소년인권이 꽃피는 세상을 꿈꾸는 청소년!

학교, 집, 알바, 사회가 띠꺼운 청소년!

모두모두 매달 셋째주 토요일 오후에 만나요 ^_______________^

 

 

 

6월 그려봐 삶 속에서의 인권!

"이제는 바꿔! 더 이상 맞고 살아갈 순 없잖아? 내가 직접 바꿔!"

학교, 집 등등 생활 속의 여러 공간들의 인권 지도 그리기, 인권적인 규칙 만들기.

드디어 내 생활 속에 인권을 초대하기 위한 프로젝트! 직접 만들어보아요~

 

7월 꿈꿔봐 우리들의 독립!

독립! “대한독립만세” 말구~ 우리들 삶의 독립!

집, 학교, 일터, 이 사회 속에서 우리들, 과연 '독립적'인가요?

청소년들의 '독립'과 ‘인권’, 뗄 수없는 이들의 관계를 낱낱이 들여다봅니다.

 

8월 교과서 속 인권의 모습들, 뒷담화 까기

똥떡, 붕어, 핵잠수함... 교과서 표지를 비틀고 비꼬기도 재밌긴 하.지.만!

이제 교과서 속에 숨어있는 인권 이야기 해부하기.

청소년이나 약자들에 대한 차별, 인권침해를 정당화하는 뷁~스런 이야기들을 밟아봐요!

 

9월 찾아봐 이 사회 속의 인권 이야기들

여섯 다리만 건너면 온 세계 사람들이 연결된다는 이야기, 혹시 아시나요?

그럼 청소년인권에서 한 다리, 두 다리 건너면 뭐가 나올까요?

청소년인권과 무관한 척하고 있지만 관련되어 있는 다양한 이슈 찾기!

 

10월 상상해봐 청소년인권이 숨쉬는 풍경

잔소리하는 집안 풍경, 때리고 맞는 학교 풍경, 막말과 차별이 넘치는 일터, 돈 없는 청소년들은 갈 곳 없는 길거리...

이런 일상 속의 인권침해와 불만의 풍경들을, 새롭게 상상하고 꾸며보면 어떨까요?

우리가 바라는 청소년인권이 실현된 세상은 어떤 걸까요? 하나하나 그려가봅세다.

 

 

11월 뚝딱뚝딱~ 청소년인권운동의 디딤돌 놓기

"이 죽일 놈의 인권운동"!

인권운동이란 걸 하다보면 부딪치게 되는 수많은 어려움들...

어떻게 하면 그런 걸림돌들을 확 걷어차 버릴 수 있을까요?

꼬불꼬불~ 미로 같이 보이지만, 같이 찾으면 즐거운 길이겠지요~


Posted by 공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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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어른

    가슴이 시려왔다. 청소년인지 아니면 그 이상의 나이를 먹은 청년일 수도 있다. 그의 마음을 읽으면 읽을 수록 가슴 한 켠이 찡해온다. 내가 살아 있다는 증거인가?

    당신이 부럽구려.

    2008.06.15 07:37 [ ADDR : EDIT/ DEL : REPLY ]
  2. 어른

    북 마크 했다. 나도 티스토리 해야겠구려.

    2008.06.15 07:38 [ ADDR : EDIT/ DEL : REPLY ]

걸어가는꿈2008. 6. 6. 04:30
문자 그대로 호외.
딱 2면으로 작성된- 일종의 긴급 찌라시랄까 --;;
내용은 대충 이명박은 그만 GG쳐라, 라는 거랑 약간의 선동 같은 것.


이런 것도 들어가 있다 ㅎㅎ



촛불용사 시민들
(원곡 : 지구용사 선가드 한국 주제가)

쥐박이 귀 뚫으러 가고 싶어도
닭장차 가로막은 광화문 광장
미친협상 대운하 학교자율화
국민 의견 쌩까는 독재의 세계

우지쾅쾅 살수차
백골단에 경찰특공대
암흑대왕 쥐박이어스

평화를 파괴하는 독재 사기꾼
나가자 행진하자 정의는 이긴다

비폭력 비폭력 촛불용사 시민들




사용된 글씨체는  한겨레결체, MD이솝,  고딩L, 은방울체였나...



자세한 내용은 다운 받아서 보시라
Posted by 공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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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어가는꿈2008. 5. 30. 05: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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헥헥 겨우 다 만들었네 ㅠㅠㅠ

아 그런데 두번째 장은 글자 수가 좀 많은데

줄이려고 애를 써봤지만 어렵군요 음음...

나름 아수나로에서 고심과 논의 끝에 만든 전단지 디자인입니다...
촛불집회나 촛불문화제 등등에 가서 뿌릴 내용으로;;

 
아앍 거의 밤을 샜더니 죽을 거 같아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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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친 소’가 무서운 우리?


   광우병은 인간이 다른 동물들을 공장식으로 사육하면서 동물 뼛가루를 넣은 사료를 먹였기 때문에 전염되었다는 게 유력한 추측이에요. 사람이 광우병에 걸리면 초기에는 치매 증상이 나타나다가 뇌에 구멍이 뚫리면서 죽어가요, 아직까진 전염을 막는 방법도, 치료법도 없어요.
 
   쇠고기를 안 먹으면 되지 않냐구요? 젤리, 과자, 알약, 화장품 등등 정말 많은 물건에 소의 뼈와 가죽으로 만든 물질이 들어기요. 이건 그만큼 인간이 가축들을 많이 착취해왔다는 소리인 동시에, 고기를 직접 먹지 않더라도 광우병에 전염될 위험이 있다는 뜻이기도 하죠. 또, 헌혈로 전염된 사례도 있어요.
 
   광우병은 이윤을 더 남기려고 동물들을 착취해온 인간이 만든 끔찍한 병인 셈이죠. 우리가 요새 쇠고기가 20개월이 어떻고 30개월이 어떻고 떠들지만, 원래 소의 수명은 20년 정도란 걸 아시나요? 광우병에 걸린 소들은 “미친 소”가 아니라 “아픈 소”에요. 미친 건 차라리 인간/육식문화/축산업일지도 몰라요.
 


미쿡산 쇠고기만 문제야?

   우린 미국산 쇠고기 수입에 반대해요. 미쿡에서 수입해 오는 쇠고기가 분명 광우병 위험이 높거든요. 사람들의 의견을 캐무시하고 사람들의 평화적인 시위를 불법이라며 폭력을 써서 잡아가기나 하고,‘장관고시’를 강행한 2MB 정부에는 정말 화가 나고, 정부를 가만두지 않을 거예요.
   하지만, 한국 소들도 광우병으로부터 100% 안전하진 않아요. 고급 한우를 제외하면, 한국산 쇠고기 중 상당수가 소로 만든 사료를 먹은 닭, 돼지 등을 다시 갈아서 소에게 먹이는 절약정신(?)으로 사육돼요. 거기다 한국정부는 안전할 거라면서 광우병 검사를 미국보다도 대충 하고 있는 상황이에요. 결코 한국도 광우병으로부터 안전지대가 아닌 거죠. 어쩌면 문제는 어느 나라 거냐가 아니라, 어떻게 만들어진 쇠고기냐이죠.


 학교급식! 넌 안전하냐?

    내가 먹는 것이 어디서 어떻게 만들어진 건지 알려주지도 않고, 확인도 어려운 지금의 급식제도!  이런 급식을 다수의 청소년들이 먹고 있어요. 한 번 일 터지면 대박으로 터질 수 밖에 없는 단체 학교급식은 광우병을 넘어 모든 위험으로부터 무방비 상태에요.
   유전자변형식품, 광우병 쇠고기, 농약과 항생제 등으로 쩐 채소들과 고기들...... 그리고 그런 것들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잘 모르고 먹는 사람들. 먹거리 생산 방식 자체에 문제가 있긴 하지만, 급식은 더 불안해요.
   다 먹고 살려고 하는 짓인데, 먹는 게 이 상태이니 안습 ㅠ_ㅠ


사람들의, 특히 청소년들의 건강권 보장을 위한 제안!

 1) 안전하고 저렴한 식재료가 필요해!
친환경적이고 안전한 먹거리 생산과 직영급식을 위한 정부의 재정적&제도적 지원!
기를 수 있는 건 학교나 공동체에서 직접 생태적으로 기르기!
지역 학교들이 함께 친환경적이고 안전한 식재료를 저렴하게 산지에서 사오기!
 
2) 알 권리와 참여할 권리!
이 음식에 어디서 어떻게 만들어진 재료가 들어있는지 모두 알게 하기!
식재료를 사오는 과정, 음식이 만들어지고 이동되는 과정 등이 투명하게 공개!
급식을 먹는 사람들이 직접 모든 과정과 운영에 참여할 수 있는 제도 마련!



청소년도 정말 미치겠다 -_-

    광우병에 걸리는 소들은, 좁은 곳에 갇혀서, 항생제와 성장촉진제 등을 주입당하며, 양이나 소나 돼지나 닭이나 오리 등을 갈아 만든 동물성 사료를 먹으며 사육당해요. 그러다가 뇌에 구멍이 뚫리며 주저앉게 되고, 결국 살해당해 먹히거나‘처분’되죠.
   많은 한국의 청소년들은, 좁은 교실, 두발복장규제, 시간표의 틀 속에 갇혀서, 입시 지식을 주입당하며, 옆의 친구와 약육강식 (약자의 고기를 강자가 먹는) 의 경쟁을 벌이며 사육당하죠. 그러면서 마음과 머리에는 구멍이 뚫리고 건강을 쫌 해치게 되며, 결국 이 나라를 위한‘인적자원’이 되죠.


공부+경쟁 더 빡세게 시키겠다는 정부, 뭥미?

    성적이라는 획일적 기준을 갖고 경쟁시키고 차별하는 교육, 명문대 가는 것과 취직 잘 하는 게 목표인 교육 때문에 이미 우리는 죽을 맛이에요.
   근데 2MB 정부는 고교서열화, 영어몰입교육, 학교자율화 등 경쟁과 공부를 더 빡세게 하고, 학생들과 학교를 서열화하는 정책을 내놨어요. ㅠ 거기다 학교자율화 정책은 학교에서 일어나는 두발복장규제, 체벌, 0교시와 보충수업, 강제종교수업 등도 제한을 덜하겠다는 거니까... 완전 어이상실!

   우리는 국가를 위한 인적자원도 아니고, 죽은 듯 지내는 시체들도 아니에요. 정부가 할 일은 교육에서 학생들의 인권을 보장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고, 지금의 뷁스런 교육을 개혁하는 거예요. 우리는 우선은 한 줄로 서열화된 학교 구조들을 없애야 한다고 주장해요. 청소년들의 교육권, 행복, 다양성에 악영향을 끼치는 경쟁적 교육을 그만두고, 다양하고도 평등한 교육을 만들 필요가 있어요.
 
   2MB 정부는 상수도, 의료보험 사영화(민영화) 등 안 그래도 팍팍한 생활이 더 빡세질 정책들까지 추진하고 있어요. 우리는 인권보장과는 완전 반대로 가고 있는 무개념 정부 때문에 갑갑해서 목이 맬 지경 -_ㅜ

청소년은 평등한 정치적 주체!
 
    청소년들에게도 정치적인 권리가 있어요. 자신의 의견을 표현할 자유가 있고, 집회시위의 자유가 있으며, 정치 활동을 할 권리가 있어요. 자신과 관련된 일에 대해 의견을 반영시킬 권리도 있어요.

   이런 권리들을 씹어가며 교육청, 학교, 경찰에서는 청소년들의 집회 참가 등을 여러가지 방법으로 위축시키고 우리를 교실, 학원, 집에 가둬두려 하고 있죠. 때로는 집에서 우리의 활동을 막기도 해요. 많은 학생들에겐 공부 압박도 장난 아닌 게 사실이구요 -_-; 요새는 특히 막나가는 경찰들에게 잡혀갈까봐 무섭기도 하죠.
   그러나 이런 악조건 속에서도 우리는 가능한 한 적극적으로 거리로 광장으로 나서서 외쳐야 해요. 우리의 행복과 권리를 위해, 그리고 무개념 정부의 짜증나는 행태를 고치기 위해. 더많은 민주주의(예컨대“국민소환제”?)를 요구하기 위해.

   집회에 참석하시는 다른 분들에게도 부탁드려요. 청소년들이라고 해서 무시하거나 반말을 쓰거나 하지 마세요. 그리고“아이들이 무슨 죄냐 우리들이 지켜주자”등, 우리를 지켜줘야 할 대상으로만 보는 경향의 피켓들은 자제해주세요. 우린 마냥 보호받아야 하는 존재들이 아니라, 함께하고 있는 사람들이니까요.


청소년인권행동 아수나로 cafe.naver.com/asunaro


 

Posted by 공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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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어른들의 잘못된 선택때문에 어린 학생들이 많이 고생하네요. 죄송합니다. 학생 여러분들이 뭔가 의지를 가지고 움직이는 모습이 그래도 보기 좋아서 다행입니다.

    2008.05.30 09:35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2. 이건 뭐... 싱싱한 괴담도 아닌 떡밥이 쉬어버린 괴담만 반복하면 그렇게 좋소?
    이러니 광우병종말교라고 하지.

    2008.05.30 10:06 [ ADDR : EDIT/ DEL : REPLY ]
    • 나름 쉬어버린 괴담과는 좀이라도 차별적인 내용을 담으려 했답니다

      2008.05.30 15:33 신고 [ ADDR : EDIT/ DEL ]
  3. 입시스트레스도 심할텐데 고생이 많군요.
    그런 것들 신경쓰지 않아도 되는 사회를, 우리 어른들이 만들었어야 하는데, 부끄럽군요.

    2008.05.30 10:39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 하지만 정치에 신경을 안 쓰면서 사는 사회라는 것도 좀 우울할지도 모르겠네요 -ㅂ-;

      2008.05.30 15:34 신고 [ ADDR : EDIT/ DEL ]
  4. 오랫만이에요 ^ ^; 잘지내시죠?
    공현은 열심히 활동하는데;;;
    부끄럽기만 하네요... 화이팅입니다!

    2008.05.30 12:46 [ ADDR : EDIT/ DEL : REPLY ]
    • 명박이가 물러나든 활동가들이 과로사하든 둘 중에 하나일 거 같은데 어서 과로 행진에 합류하심이...

      2008.05.30 15:34 신고 [ ADDR : EDIT/ DEL ]
  5. 자보 이쁘다! 글씨체 짱 ㅋㅋ "명박이가 물러나든 활동가들이 과로사하든" 이 말 왜케 웃긴데 처절하냐 ㅠ ㅠ;;

    2008.05.31 01:01 [ ADDR : EDIT/ DEL : REPLY ]
  6. 물결

    고생이 많으시군요.
    그런데 저 인쇄물 편집본 정말 귀엽고 예쁘고, 글도 참 술술 읽히게 잘 쓰셨습니다.

    2008.06.09 05:27 [ ADDR : EDIT/ DEL : REPLY ]

걸어가는꿈2008. 5. 20. 16:04

*

5.17 청소년 행동을 준비하는 내내,

나는 이것이 일종의 정치적 외도라는 느낌을 떨쳐버릴 수 없었다.

더 정확히 표현하면 나는 마치 내가 볼테르 추종자가 된 것 같은 느낌이었다.


"나는 당신의 의견에 동의하지 않는다. 그러나 만일 당신이 그 의견 때문에 박해를 받는다면, 나는 당신의 말할 자유를 위해 끝까지 싸울 것이다."

                                                           - 볼테르 (프랑스 계몽사상가)


나는 광우병 위험 쇠고기에 대한 최근의 주류적인 담론에 동의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청소년들의 표현의 자유, 집회의 자유를 위해 싸워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거기에서 싸우고 싶은지 아닌지는 중요하지 않은가?




*

오, 그래서 나는 "미친소"라는 표현에 절대로 동의하지 않으면서도 타협을 지어야 했다. "미친소 미친교육 청소년이 바꾼다"라고 무대 현수막을 걸어야 했다. 전단지와 보도자료를 만들어야 했다.


소수 의견은 "소가 아니라 축산업이 미쳤다"라거나 "소와 인간 모두에게 안전한 먹거리를" 같은 피켓 문구에만 들어갈 수 있었다. 당일날 나눠줄 전단지의 표현 몇 줄에만 들어갈 수 있었다.


그렇게 나는 타협 속에 이 집회를 준비했다.




*

희망 때문에 길고 지지부진한 토론을 해야 했을 때, 그래서 나는 그다지 우리가 주도해야 하는 판에 대해 애착을 가지지 않았다.

어차피 크게 타협하고 들어간 준비 판이었다. 여기에서 희망과 우리가 과연 얼마만큼 다르단 말인가?


ㅂ은 희망의 판이 아니라 우리의 판에서 나올 수 있는 이야기가 있다, 라고 했지만

솔직히 나는 그런 목소리를 17일 당일 현장에서 별로 듣지 못한 것 같다. 없었다고 잘라 말할 수도 없지만, 과연 우리가 진행한 한 것과 희망이 진행한 것 사이에 크게 다른 점이 있었나?

많은 사람들이 발언 속에 애국심과 국가주의를 내재하고 있었고, 광우병 위험 쇠고기에 대해 다른 이야기도 별로 없었다.(초록정치연대라거나 공연한 분들을 빼면, 자유발언에서는.)

청소년들의 정치적 권리에 관한 이야기는 분명히 많이 나왔지만, 그럼 희망 집회에서는 그런 이야기가 안 나왔나?


내가 무대 진행하느라 바쁘게 뛰어다녀서 듣지 못한 것인가?




*

17일 당일 행동은 그럭저럭 끝났고, 그 결과가 실패라고 생각지도 않는다.

그러나 나는 어려운 질문에 맞닥뜨렸다.


불복종 행동 선언에 참여한 사람들 중 상당수가,

그리고 당일날 집회에 왔던 사람들 상당수가,

그 집회는 "광우병에 관한 청소년들의 집회"라고 알고 왔을 것이며,

주된 관심사도 그것이었다.


그것이 내게 일종의 정치적 외도였다면,

그 사람들을 다시 조직화하고 인권운동에 참여시킬 수 있는 어떤 근거나 동기를 내가 제시할 수 있을까?


아니면 정말 광우병 문제 등에 대해 더 래디컬한 내용(검역주권이니 굴욕적 협상 왈가왈부가 아닌)의 토론회라도 조그맣게 열어봐야 할까?

혹은 청소년들의 정치적 권리에만 초점을 맞추고 볼테르처럼 발언해야 하나?

그도 아니라면 원래 계획대로 소수의견으로서 전단지 등을 만들어서 선전/홍보 활동에 나서야 하나?




*

준비 과정에서의 서울 중심성에 대해서도 반성하고 사과할 수밖에 없을 것 같다.


http://go517.kr 싸이트를 개설하는 과정이라거나

언론 홍보 과정 등에서 아무래도 서울 중심성이 두드러졌다.

웹자보나 홍보물에는 다른 지역 일정 등도 계속 들어갔지만...

급하게 준비하는 과정에서 언론 홍보 일이나 온라인 부분을 맡은 지부에서 충분한 소통 없이 일을 처리해버린 탓이라고 생각한다.

역시 급하게 준비하는 것은 싫다, 언제나.

Posted by 공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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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힘내

    2008.05.20 20:14 [ ADDR : EDIT/ DEL : REPLY ]
  2. 호적돌

    차악을 택한 것- 이라고 생각하기도 해보고, 거기에서부터 출발할 수도- 라고 생각하기도 해보고. 나도 고민이긴 해. 좀더 근본적으로 이어져서 대중이나 운동에 대한 고민으로 이어지기도 하고..

    다만 17일 이후... 계속해서 무언가가 일어난다면, 더욱더 많이 고민해야겠지.

    2008.05.20 23:24 [ ADDR : EDIT/ DEL : REPLY ]
  3. 혁은

    정말 고민스러운 문제네. ㅠ 다음에 한번 다시 얘기해볼 기회가 있었으면 좋겠다! ^^

    2008.05.21 23:46 [ ADDR : EDIT/ DEL : REPLY ]

걸어가는꿈2008. 5. 19. 10:27

* 청소년인권활동가네트워크에서 준비한 청소년인권강좌에요.

인권활동, 인권문제를 고민하는 청소년들을 위한 강좌거든요.

인권교육 프로그램으로 재미나게 준비하고 있어요..^^

청소년들에게 많이 많이 소개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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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달별 주제 소개~**


달마다 하는 청소년인권 놀이터

빨강물고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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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대 청소년들의 팍팍한 삶이야말로 두말하면 잔소리!

뭐가 이렇게 살기가 힘든지, 집에서도 학교에서도 아르바이트에 가서도 심지어 길거리에서도,

나이가 어리다거나 공부에 흥미가 없다는 어이없는 이유로 차별받고 무시 받고 온갖 인권침해를 당하는 이 땅의 청소년들.

왜 이렇게 살아야 하는지, 좀 더 하루하루 행복하게 살 순 없는지, 어떻게 하면 이 세상을 좀 바꿔낼 수 있을지 궁금하지

않나요? 답답하지 않나요?

이런 고민들을 하는 청소년들과 만나 편하게 이야기도 나누고 서로에게 배워가면서 엉킨 고민의 실타래들을 풀어보아요!

청소년인권활동가네트워크에서 매달 셋째주 토요일에 청소년들과 함께 "청소년인권"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을

준비했어요.

 

청소년인권이 꽃피는 세상을 꿈꾸는 청소년!

학교, 집, 알바, 사회가 띠꺼운 청소년!

모두모두 매달 셋째주 토요일 오후에 만나요 ^_______________^

 

 

5월 깨워봐 인권 감수성, 차별 감수성!

어른들과 달라서 받는 차별, 눈에 팍팍 띄는 그것들.

그리고 눈에 잘 안 띄는, 우리들 안에 있는 차별들.

차별과 마주하며, 인권에 대한 생각과 느낌들 하나하나 쌓아나가기!

 

 

6월 그려봐 삶 속에서의 인권!

"이제는 바꿔! 더 이상 맞고 살아갈 순 없잖아? 내가 직접 바꿔!"

학교, 집 등등 생활 속의 여러 공간들의 인권 지도 그리기, 인권적인 규칙 만들기.

드디어 내 생활 속에 인권을 초대하기 위한 프로젝트! 직접 만들어보아요~

 

7월 꿈꿔봐 우리들의 독립!

독립! “대한독립만세” 말구~ 우리들 삶의 독립!

집, 학교, 일터, 이 사회 속에서 우리들, 과연 '독립적'인가요?

청소년들의 '독립'과 ‘인권’, 뗄 수없는 이들의 관계를 낱낱이 들여다봅니다.

 

8월 교과서 속 인권의 모습들, 뒷담화 까기

똥떡, 붕어, 핵잠수함... 교과서 표지를 비틀고 비꼬기도 재밌긴 하.지.만!

이제 교과서 속에 숨어있는 인권 이야기 해부하기.

청소년이나 약자들에 대한 차별, 인권침해를 정당화하는 ㅤㅂㅞㄺ~스런 이야기들을 밟아봐요!

 

9월 찾아봐 이 사회 속의 인권 이야기들

여섯 다리만 건너면 온 세계 사람들이 연결된다는 이야기, 혹시 아시나요?

그럼 청소년인권에서 한 다리, 두 다리 건너면 뭐가 나올까요?

청소년인권과 무관한 척하고 있지만 관련되어 있는 다양한 이슈 찾기!

 

10월 상상해봐 청소년인권이 숨쉬는 풍경

잔소리하는 집안 풍경, 때리고 맞는 학교 풍경, 막말과 차별이 넘치는 일터, 돈 없는 청소년들은 갈 곳 없는 길거리...

이런 일상 속의 인권침해와 불만의 풍경들을, 새롭게 상상하고 꾸며보면 어떨까요?

우리가 바라는 청소년인권이 실현된 세상은 어떤 걸까요? 하나하나 그려가봅세다.

 

 

11월 뚝딱뚝딱~ 청소년인권운동의 디딤돌 놓기

"이 죽일 놈의 인권운동"!

인권운동이란 걸 하다보면 부딪치게 되는 수많은 어려움들...

어떻게 하면 그런 걸림돌들을 확 걷어차 버릴 수 있을까요?

꼬불꼬불~ 미로 같이 보이지만, 같이 찾으면 즐거운 길이겠지요~

Posted by 공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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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어가는꿈2008. 5. 9. 02:58
<성명서>

청소년들을 평등한 정치적 주체로 인정하라!




  이 땅에서, 청소년들의 정치적 권리는 오래전부터 무시당해 왔다. 특히 최근의 미국산 쇠고기 반대 촛불집회가 확산되면서 이 사회가 보여주고 있는 과민 반응들은 그런 것을 여실히 드러내고 있다. 청소년들의 집회의 자유, 표현의 자유에 대해 치사찬란한 태클을 걸고있는 정부와 일부 언론들에게 청소년인권행동 아수나로는 짜증의 마음을 듬뿍 담아 전달한다.
  잠시 과거를 상기하자면,2003년에도, 2005년에도 청소년들의 집회에 대해 정부는 까칠하게 반응했었다. 법을 개정해서 ‘미성년자’를 집회에 동원하면 처벌하는 조항을 만들겠다고 으름장을 놓는가 하면, 교육부와 교육청에서는 교사들과 장학사들을 동원해서 청소년들의 내신등급제 반대촛불집회와 두발자유 집회 참가를 봉쇄하려고 했었다. 많은 언론들이 청소년들의 집회 뒤에 배후세력이 있을 거라고 떠들어댔으며, 청소년들이 정치적 발언을 하고 행동을 하는 것에 알레르기 반응을 일으켜왔다.

  2008년, 올해에도 발전은커녕 퇴보한 뻘짓들만 눈에 띈다. 미국산 쇠고기 수입에 대해, 그리고 이명박 정부의 여러 정책들에 대해 사람들의 반대 목소리가 높아져 가고 청소년들이 참여하는 촛불집회가 점점 커지자, 교육부와 교육청은 또 ‘감수성이 예민하고 미성숙한’ 청소년들의 집회 참가가 바람직하지 않다면서 집회 참가를 막도록 하는 지침을 학교로 내려 보내고 있다. 교사들을 동원해서 집회장 주변에 배치하고 학생들이 집회에 참가하지 못하도록 돌려보내는 괴악한 짓도 여전하다. 몇몇 언론들은 청소년들의 집회 참가를 놓고 “연필 대신 촛불”을 들었네 어쩌네 하면서 배후세력이 있을 거라는 막연하고 무책임한 보도를 일삼고 있다. 또한 연예인들이 몇 마디 하니까 10대 팬들이 무작정 따라 나왔다, 아직 미성숙하고 충동적이어서 인터넷에 떠도는 괴담에 속은 거다, 등등헛소리를 하며 청소년들의 정치적 행동의 의미를 평가절하하려 하고 있다. 청와대는 한술 더 떠서 놀이문화가 없어서 청소년들이 놀러나오는 거라는 이상한 분석을 내놓으며 청소년들을 어떻게든 '정치적이지 않은' 존재로 규정하려 애쓰고 있다.
  올해에는 경찰과 검찰까지 가세해서, 5월17일에 휴교시위를 하자는 문자를 얼토당토않게도 “업무방해”니 어쩌니 하면서 수사하겠다고 하고 있다. 정말이지 이런 발언을 하는 인권의식 미성숙한 검찰총장부터 인권교육을 시켜야 한다. 심지어 며칠 전에는 경찰이 문자메시지를 추적해서 학교까지 찾아가서학생들을 만나 문자메시지 내용을 확인하고 교장을 만나고 왔다고 한다. 청소년들의 정치적 권리 행사를 위축시키는 짓이며, 이미 인터넷에서는 ‘미성년자가 촛불집회 참가하면 사법처리 된다.’라는 식의 사실과는 다른 공포 조성 유언비어가 떠도는 판인데, 이에 대해 경찰도 책임이 없다고 할 순 없을 것이다.

  도대체 경찰이나 교육청, 교육부를 비롯해서 정부가 해야 하는 일이 정권의 하수인 노릇인가, 아니면 사람들의 안전과 자유를 비롯한 기본적 인권을 보장하는 것인가? 경찰이 해야 할 일은 오히려 청소년들의 정당한 권리를 부당하게 침해하고 있는 교육청 같은 애들을 막는 것 아닌가 싶고, 만일 정말로 민주주의와 인권을 교육하고자 한다면 교육부, 교육청, 학교는 오히려 청소년들에게 적극적으로 “여러분에게는 평화적인 집회를 만들고 거기에 참여할 권리, 발언할 권리가 있습니다.” 같은 류의 캠페인이라도 전개해야 하지 않나 싶다. 자신들이 정말 민주 정부이고 인권 경찰이라면 해야 할 일들과는 정반대되는 일을 하고 있는 저 안타까운 정부기관들은, 정말이지 언제까지 그따위로 할 건지 모르겠다. 답이 안나온다.


  또한 아수나로는 청소년들에 대한 차별적 인식들이 비단 정부나 경찰, 일부 언론들에서만 보이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지적하고 싶다. 청소년들에 대한 차별, 청소년들을 보호의 대상으로만 보는 보호주의, 청소년들을 ‘철없는’‘충동적인’ ‘미성숙한’ ‘미래로 유보된’ 존재로 보는 인식들은, “학업에 열중해야 할 청소년들조차 거리로 내모는 정부”라는 표현 속에도, “철없고 순진한 아이들이 안심하고 공부할 수 있도록” 하자는 미국산 쇠고기 반대 주장에서도,“어른들이 잘 해야 하는데 잘못해서 어린 학생들이 거리에 나왔다.”라는 탄식 속에서도, “아이들에게 물려줄 것은 광우병이 아닌 미래입니다.”라고 적힌 피켓에서도,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 집회를 여는 주최측의 “미성년자들은 부모동의서가 없으면 연행당할 수도 있습니다.”, “밤 10시 이후 청소년들은 자진 귀가 조치시킵니다.”라는 안내 문구에서도, 모두 그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한국도 가입한 아동권리협약 등은 청소년들의 정치적 권리, 의견반영권 등을 명시적으로 보장하고 있지만, 청소년들을 비청소년들과 대등한 정치적 주체로 인정하는 것은 분명 이 사회에 커다란 도전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듯하다. 노무현이든 이명박이든, 열린우리당이든 한나라당이든, 그 문제에 대해서는 별 다른 의견의 차이가 없었던 것 같다. 이 사회는 전반적으로 청소년들의 정치적 행동에 대해 ‘특별한’ 시선을 보내왔다. 비단 정부나 언론 뿐 아니라 많은 ‘어른들’과 때로는 몇몇 ‘청소년들’ 또한 청소년들을 평등한 정치적 권리의 주체로 인정하는 것을 꺼려하고 있다. 그 결과는 청소년들의 정치적 권리 행사를 직간접적으로 억압하고 공격하고 깎아내리는 것, 그리고 청소년들의 행동 자체에 반대하진 않더라도 그 행동의 의미를 뭔가 특별하고 예외적이고 시혜대상인 것으로 위치시키거나 그 행동을 부담스러워하거나 안타까워하는 것 등등으로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청소년들은 누가 내몰아서 나온 것도 아니고, 학업에만 열중해야 하는 것도 아니며, 마냥 철없고 순진하지도 않고, 부모동의서가 없다고 연행당한다거나, 밤 10시 이후에 집회장에서 쫓겨나야 할 이유도 없고, 미래가 아닌 현재에 살고 있다. 청소년들은 비청소년들과 평등하게 연대하는 운동의 주체이지, 일방적으로 도움을 받거나 사회를 ‘물려받는’ 그런 시혜의 대상이 아니다. 청소년들은 정치적 권리를 가진 인권의 주체이자 정치의 주체이며, 최근의 미국산 쇠고기 수입 문제나 학교자율화 조치 등의 정부 정책들에 대해 스스로 분명한 판단을 내릴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우리는 경찰, 검찰, 교육청, 교육부를 비롯한 정부와 언론들, 그리고 행사 주최측과 참가자들에게 다음과 같이 요구한다.

 1. 정부와 언론 등은 청소년들의 집회의 자유와 표현의 자유 등 정치적 권리 행사를 위축시키고 깎아내리는 모든 조치와 발언을 취소하고 이에 대한 사과와 함께 재발방지를 약속하라.

 1. 현재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 행동 등에 개입하고 있는 주최 측과 참가자들은 청소년들을 보호주의적, 시혜적, 차별적 태도로 대우하지 말고 평등하게 대우하라.


  청소년인권행동 아수나로는 이러한 요구가 실현될 수 있도록, 국가인권위 진정이나 다른 항의/불복종 활동, 청소년들의 정치적 권리를 보장하기 위한 대응팀 구성, 청소년들이 평등한 주체로 대우받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한 캠페인과 발언 등을 뜻을 같이 하는 단체들과함께 적극 조직하고 계획할 것이다.



청소년인권행동 아수나로
2008년 5월 8일
Posted by 공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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