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년인권운동'에 해당되는 글 62건

  1. 2008.04.29 달마다 하는 청소년인권 놀이터 빨강물고기~
  2. 2008.04.28 학교자율화에 대한 반대를 넘어서, 청소년의 인권을 쟁취하자
  3. 2008.04.21 청소년보호주의 씨에게 보내는 결투장 (2)
  4. 2008.04.14 청소년인권활동가네트워크 소식지 <파란만장> 2008년 첫 번째
  5. 2008.04.02 오답승리의희망7호
  6. 2008.03.28 강요되는 종교, 강요의 교육
  7. 2008.03.17 청소년인권행동아수나로CMS 홍보물 디자인 (여러분의 작은 관심이 모여 청소년인권이 됩니다!)
  8. 2008.03.02 1318virus의 반성을 바라며, 그리고 대안을 고민하며
  9. 2008.02.06 2008 청소년인권운동 워크숍, 청소년인권운동 길을 묻다
  10. 2008.02.02 비주류적 소수자 운동 입장에서 본 민주노동당 논란
  11. 2008.02.01 차별금지법, 반차별운동, 청소년인권운동 2탄
  12. 2008.01.23 수능등급제에 대한 잠깐의 생각
  13. 2008.01.14 아나키즘과 청소년 해방 (5)
  14. 2008.01.11 전북청인모에 부쳐
  15. 2008.01.11 오답승리의희망 - 여러분의 불온한 꿈들을 받습니다.
  16. 2008.01.11 지하신문 계획서 (오승희)
  17. 2008.01.11 오답 승리의 희망에 대해
  18. 2008.01.10 [인권오름] 돌아갈 수 있을까, 돌아가야 할까 - 가출소년 따이루, 자유를 찾아 집을 나오다
  19. 2008.01.08 [일다] “다 성장의 과정 아닌가요?” - 인권침해 견뎌내는 ‘착한 아이’들
  20. 2008.01.08 전국의 미성년자여 행동하라! (1)
걸어가는꿈2008. 4. 29. 16:30
사용자 삽입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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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접근권을 높이기 위한 텍스트 내용)

달마다 하는 청소년인권 놀이터
빨강물고기

“나도 물고기처럼 자유롭게 살고 싶다”
                                                  - 2002년 자살한
                                                      청소년의 유서에서


“빨강물고기” 라니, 웬 괴악한 작명센스냐구요?
갑갑하고 좁은 어항 속에서 사육당하듯 살아가는 우리들의 현실.
그 속에서 청소년인권을 외치는 여러분이 바로, 빨강물고기입니다.

자유로워지고 인간답게 살고 싶은 청소년 분들에게 코딱지만큼이라도
도움이 되기 위해 찾아왔습니다. 청소년인권 놀이터 빨강물고기

차별이야기, 학교에서의 인권 이야기, 청소년의 독립 이야기, 청소년인권운동의 어려움 이야기...
다양한 주제와 인권교육이 준비되어 있습니다.
이제 막 청소년인권운동을 시작하신 분들, 청소년인권운동을 해보려는 분들 모두 부담없이 오시길~~ ^^

 5월 셋째주 토요일부터 11월달까지, 한 달에 한 번씩 빨강물고기의 문을 두드려주세요.


청소년인권활동가네트워크
cafe.daum.net/youthhr

* 자세한 문의는 카페 사이트, 이메일 등을 이용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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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강물고기 강좌에 대한 좀 더 자세한 소개 ^^



달마다 하는 청소년인권 놀이터

빨강물고기


 

이 시대 청소년들의 팍팍한 삶이야말로 두말하면 잔소리!

뭐가 이렇게 살기가 힘든지, 집에서도 학교에서도 아르바이트에 가서도 심지어 길거리에서도, 나이가 어리다거나 공부에 흥미가 없다는 어이없는 이유로 차별받고 무시 받고 온갖 인권침해를 당하는 이 땅의 청소년들.

왜 이렇게 살아야 하는지, 좀 더 하루하루 행복하게 살 순 없는지, 어떻게 하면 이 세상을 좀 바꿔낼 수 있을지 궁금하지 않나요? 답답하지 않나요?

이런 고민들을 하는 청소년들과 만나 편하게 이야기도 나누고 서로에게 배워가면서 엉킨 고민의 실타래들을 풀어보아요!

청소년인권활동가네트워크에서 매달 셋째주 토요일에 청소년들과 함께 "청소년인권"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을 나누는 시간을 준비했어요.

 

청소년인권이 꽃피는 세상을 꿈꾸는 청소년!

지금과 같은 학교, 집, 알바, 사회가 어딘지 불편한 청소년!

모두모두 매달 셋째주 토요일 오후에 만나요 ^_______________^

 

 

5월 깨워봐 인권 감수성, 차별 감수성!

어른들과 달라서 받는 차별, 눈에 팍팍 띄는 그것들.

그리고 눈에 잘 안 띄는, 우리들 안에 있는 차별들.

차별과 마주하며, 인권에 대한 생각과 느낌들 하나하나 쌓아나가기!

 

 

6월 그려봐 학교에서의 인권!

"학교, 이제는 바꿔! 더 이상 맞고 살아갈 순 없잖아? 내가 직접 바꿔!"

학교안의 인권 지도 그리기, 인권적인 규칙 만들기.

드디어 학교에 인권을 입학시키기 위한 프로젝트! 직접 만들어보아요~

 

7월 꿈꿔봐 우리들의 독립!

독립! “대한독립만세” 말구~ 우리들 삶의 독립!

집, 학교, 일터, 이 사회 속에서 우리들, 과연 '독립적'인가요?

청소년들의 '독립'과 ‘인권’, 뗄 수없는 이들의 관계를 낱낱이 들여다봅니다.

 

8월 교과서 속 인권의 모습들, 뒷담화 까기

똥떡, 붕어, 핵잠수함... 교과서 표지를 비틀고 비꼬기도 재밌긴 하.지.만!

이제 교과서 속에 숨어있는 인권 이야기 해부하기.

청소년이나 약자들에 대한 차별, 인권침해를 정당화하는 뷁~스런 이야기들을 밟아봐요!

 

9월 찾아봐 이 사회 속의 인권 이야기들

여섯 다리만 건너면 온 세계 사람들이 연결된다는 이야기, 혹시 아시나요?

그럼 청소년인권에서 한 다리, 두 다리 건너면 뭐가 나올까요?

청소년인권과 무관한 척하고 있지만 관련되어 있는 다양한 이슈 찾기!

 

10월 상상해봐 청소년인권이 숨쉬는 풍경

잔소리하는 집안 풍경, 때리고 맞는 학교 풍경, 막말과 차별이 넘치는 일터, 돈 없는 청소년들은 갈 곳 없는 길거리...

이런 일상 속의 인권침해와 불만의 풍경들을, 새롭게 상상하고 꾸며보면 어떨까요?

우리가 바라는 청소년인권이 실현된 세상은 어떤 걸까요? 하나하나 그려가봅세다.

 

 

11월 뚝딱뚝딱~ 청소년인권운동의 디딤돌 놓기

"이 죽일 놈의 인권운동"!

인권운동이란 걸 하다보면 부딪치게 되는 수많은 어려움들...

어떻게 하면 그런 걸림돌들을 확 걷어차 버릴 수 있을까요?

꼬불꼬불~ 미로 같이 보이지만, 같이 찾으면 즐거운 길이겠지요~





※ 5월달 빨강물고기 자세한 안내 ^^

5월 17일 토요일 늦은 3시
장소 : 지하철 3, 4호선 충무로역 미지센터 (거의 확정이랍니다;)



깨워봐 인권 감수성, 차별 감수성!


- 차별감수성 다운로드!

- 내 안의 차별


- 차별에 대한 길지 않은 강연


 
    청소년이기에 혹은 OO이기에 차별받아야 했던 기억들,
    혹은 우리가 누군가를 차별하고 상처입히는 일들,
    그런 것들에 대해 함께 살펴보고 이야기해보는,
    차별감수성과 인권감수성을 조심스레 깨워가는 첫 시간입니다 ^^

Posted by 공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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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어가는꿈2008. 4. 28. 13:42
학교자율화에 대한 반대를 넘어서, 청소년의 인권을 쟁취하자
- 학교자율화를 밀어낼 인권의 물결을 꿈꾸며-



   교육과학기술부(너무 기니까 ‘교과부’)가 4월 15일에 발표한 '학교자율화 계획'에 대해 말이 많다. '학교자율화 계획'을 통해 교과부는 정부에 집중된 권한을 각 시도교육청과 학교에 분권하겠다고 한다. 사실은 이명박 대통령이 후보 시절부터 했던 소리가 구체화된 것에 지나지 않는데, 여하간 이 계획이 현실화되면, 교육청과 학교들이 일을 처리하는 것에 대해 이것저것을 정해둔 교과부의 지침들이 폐지된다. 그럼으로써 0교시, 우열반, 사설모의고사, 종교교육, 현장실습, ‘촌지’ 등등등에 대한 전국적으로 통용되던 규제는 사라지게 되며, 각 교육청에서 지침을 다시 정하고 그 외의 부분은 학교 맘대로 할 수 있게 된다.
   아 뭐 물론 각 지역 교육청에서 원래 교과부가 갖고 있던 지침을 그대로 고수할 가능성도 없지는 않다. 그러나 “학교자율화” 조치라는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이 조치는 기본적으로 학교(정확히는 학교장이나 이사장 등)의 재량권을 강화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그런 것들을 고려할 때, 강제 종교교육 전면 허용이나 촌지 전면 허용 같은 아스트랄한 소리를 할 교육청은 없을 거 같긴 하지만, 교육청에서 지침을 새롭게 정하는 과정에서 적어도 지금보다는 많은 부분 “학교자율화”가 이루어질 가능성이 크다.

   교육과학기술부가 이런 발표를 하자, 언론들은 “0교시 우열반 허용하나” 같은 약간은 낚시성 표제를 달고 기사를 내보냈으며, 여러 곳에서 학교자율화 계획에 반대하는 여론이 커지고 있다. 명박이가 교육을 망친다는 위기의식과, “나는 찍지 않았습니다.”와 같은 유행어 등도 눈에 띈다. 그러나 단순히 명박이 교과부의 '학교자율화' 정책에만 모든 문제점을 돌리는 것은 무리가 있어 보인다.
   예컨대 0교시를 보자. 0교시(1교시 시작 전 아침 보충수업)를 하지 못하게 교육부에서 지침을 정해뒀다고는 해도, 여러 학교들에서 0교시나 아침강제학습을 실시하던 것은 일상적 풍경이었다. 대놓고 0교시를 하지 않더라도, 어느 학교들은 1교시 시간을 앞당겨 시작하고 오후에 보충수업을 더 하는 등, 다양한 형태로 학생들을 더 빡세게 공부시키는 것이 비일비재했다.
  뭐, 0교시 같은 경우야 교육청에서 허용할지 말지 모르겠지만… 다른 규제 같은 경우도 별 다를 건 없다. 이번 학교자율화는 암묵적으로 시행되던 것들을 좀 더 학교들이 노골적으로 할 수 있게 해주는 것이거나, 아니면 눈치 보면서 하던 곳들도 대놓고 0교시 같은 것들을 할 수 있게 해주는 조치 정도라고 할 수 있다. 요컨대 학교자율화 조치는 학교-학생 관계에서 약자인 학생들을 보호하기 위해 (실효성은 크진 않았지만) 정해져 있던 선언적 지침들도 중앙정부에서는 없애고, 학교들이 학생들의 인권을 짓밟을 재량권(말하자면 횡포권?)을 조금씩 더 넓혀주겠다는 이야기이다. 또한 현재 입시경쟁의 틀 속에서 학교간 경쟁을 조금 더 강화시키겠다는 것이다. 뭐, 그걸로도 문제라면 충분히 문제긴 하다만.

  지금의 교육체제 속에서 이미 학생의 인권은 침해받고 있는지 오래였고, 따라서 현재 발표된 학교자율화에 대한 수동적 비판으로는 현실 문제를 수정하기 어렵다. 학생의 인권을 보장하기 위해서는 좀 더 적극적인 주장과 행동이 필요하고, 그 목표가 분명해야 한다. ‘학교자율화’라는 간판을 단 물결이 밀려들어오는데, 그 물결을 막기 위해 둑을 더 쌓는 걸로는 안 된다. 왜냐하면 이미 있던 둑 안에서 물은 썩어가고 있었고 그 물 속에 사는 물고기들은 죽어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새로운 물결, 더 강한 물결로 ‘학교자율화’ 물결을 밀어내고 나아가야 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단순히 학교자율화에 대한 반대를 넘어서서, 청소년들의 인권을 보장하는 것을 주장하고자 한다.

  그 내용은 여러 가지가 있겠으나, 여기에서는 몇 가지만 이야기하려고 한다.

  첫째, 학교의 민주적 운영과 동시에 학생들의 정치적 권리를 보장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학생회의 권한 강화나 수업시간과 공부량 줄이기, 학교운영위원회에 학생 대표 참가, 학교 안에서의 언론활동 보장 등 제도적인 개선과 함께 다양한 지원들이 필요하다.

   둘째, 학교내부에서 벌어지는 강제학습, 소지품검사 및 강탈, 두발복장규제와 체벌 등의 수많은 인권침해를 없애야 한다. 교과부나 교육청들은 지금까지 “학생인권에 대해서 원칙적으로는 학생인권을 지지하지만 그런 건 학교 자율로 알아서 하셈” 같은 메롱한 입장을 취해왔다.(이미 학교자율화가 실천되던 영역이었다!) 그러나 학교 안에서 상대적 약자이고 입시경쟁 속에서 짓밟히기 십상인 청소년들의 인권을 보장하는 것은 정부가 당연히 해야 할 의무이다. 교과부는 국가인권위와 협력하여 만든다던 학생인권 가이드라인을 인권적이고 구체적인 내용으로 발표하고 이를 강력한 감독을 통해 학교단위에 강제해야 한다. 또한 청소년들이 학교 현장에서 자신들의 인권을 주장하는 것을 적극 지원해야 한다.

   셋째, 이러한 인권문제들을 정당화하고, 더욱 강화시키는 입시경쟁 자체를 폐지해야 한다. 명 박이나 한나라당은 뭐 더 경쟁시키고 더 줄 세우는 게 청소년들의 능력을 계발하는 것이고 교육권과 다양성을 보장하는 것이라고 떠들지만, 그건 그럴 듯한 사기일 뿐이다. UN아동권리위원회도 경쟁적 교육이 발달권이나 교육권에 악영향을 끼친다고 한국에 공식적으로 지적하고 고치라고 하고 있는 상황이다. 다양성은, 서로 다른 여러 가지 것들을 평등하게 대할 때 보장되는 것이지 성적에 따라 줄 세우고 차별할 때 보장되는 것이 아니다. 게다가, 대학서열체제나 취업시장과 연계되어 존재하고 있는 빡센 입시경쟁은 온갖 청소년인권 침해들의 직간접적 원인이 된다. 단순히 0교시나 보충수업 등을 강제로 하지 못하도록 하는 걸 넘어, 입시경쟁교육 자체가 사라져야만 청소년인권이 보장될 수 있다.

  But! 또 한편으로, 이러한 외침만으로는 아무것도 이룰 수 없다. 고통의 당사자인 청소년들이 직접 행동에 나서지 않는 이상 그 무엇도 바뀌지 않는다. 몇 년만 버티면 된다거나, 할 수 있는 게 없다는 무력한 태도는 도피에 불과하다. 또한 청소년은 보호받아야 하는 미성숙한 존재가 아니라, 현재를 살아가는 실존적 주체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스스로 행동하여 인권을 지켜내려고 해야, 인간처럼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청소년들의 80% 이상이 이번 “학교자율화” 발표에 반대한다는 기사가 나왔다. 하지만 과연 청소년들 중에 다수가 입시경쟁이 사라지고 청소년들의 인권이 보장되는 사회를 꿈꾸고 있을까? 이 사회는, 학교는 “그건 허황된 꿈이고 이상론일 뿐이다.”라면서 청소년들에게 현실을 강요하고 있지 않은가? 이런 상황에서 청소년들이 “학교자율화” 발표에 반대하는 것은 “지금보다 더 살기 힘들어지기 싫다.”라는 소리인데, 우리는 감히 이 땅의 청소년들에게 제안하고자 한다. “지금보다 더 살기 힘들어지기 싫다.”를 넘어서 “지금보다 더 행복하고 인간답게 살고 싶다.”라고 이야기하자고 말이다.




2008년 4월 28일

]




호적돌 이름으로 몇몇 언론(1318virus와 참세상)에 기고된

청소년인권행동 아수나로에서 토론을 거쳐 나온 글 ~_~

Posted by 공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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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어가는꿈2008. 4. 21. 17:20


청소년보호주의 씨에게 보내는 결투장

청소년인권행동 아수나로 공현


  안녕하십니까, 청소년보호주의 씨. 앞으로 이름이 기니까 “청보 씨”로 부르겠습니다. 아참, 세상에 “청소년보호주의”라고 불리는 동명이주의(同名異主義)들이 있을 수 있으니까 제가 보내는 이 결투장이 잘못 배달되지 않게 하기 위해서, 제가 결투를 신청하려는 ‘청소년보호주의 씨’가 누구인지 확실히 밝혀둬야 할 것 같군요.
  제가 결투를 신청하려는 당신은, 대략 두 개 정도의 얼굴을 갖고 있는 것 같습니다. 하나는 바로 청소년들을 ‘유해환경’으로부터 보호한다면서 청소년들에게 술, 담배, PC방, 노래방, 야한 것 등을 금지시키고 규제하는 것(청보 씨 ①)입니다. 청소년들은 미성숙하기 때문에, 청소년들에게만 아주 특별한 보호가 필요하다고 이야기하는 거죠. ‘청소년보호법’이라는 눈망울이 아주 초롱초롱하게 눈에 잘 띄는 얼굴입니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청소년들을 미성숙하거나 능력이 없는 약자로 간주하고 청소년들을 일방적인 시혜의 대상, 도움을 받아야 할 대상으로만 보는 것(청보 씨 ②)입니다. 편의상, 두 사람(사실은 한 사람이 다른 모습으로 변장한 걸지도 모릅니다.)을 그냥 한 사람, 한 팀인 걸로 보고 얘기하겠습니다.



결투를 신청하는 이유

  청소년인권운동을 하는 사람으로서 제가 청보 씨에게 결투를 신청하는 이유는 간단합니다. 청보 씨가 청소년들의 인권에 별로 좋지 않은 영향을 끼치고 있어서입니다. 청보 씨 당신은 “청소년들은 미성숙하다.”라거나 “청소년은 미래의 주인”이라는 식의, 청소년들에 대한 현재의 차별과 인권제한을 정당화하는 논리로 생명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동시에 그런 차별과 인권제한에 기여하고 있기도 하죠. 또한 당신은 청소년들에게 특별한 ‘보호’를 제공한다는 명분으로, 청소년들의 경제적 문화적 권리를 제약하고 청소년들을 사회경제적 약자로 만들기도 합니다.
  한편으로, 당신은 청소년들에게만 특별한 보호를 제공한다고 하면서, 비청소년들(어른들)에게도 당연히 필요한 보호를 제공하지 않음으로써 일부 비청소년들을 차별하고 있기도 합니다. 예컨대 만19세 미만의 청소년들의 노동에 대해서, 근로기준법은 만19세 이상의 비청소년보다 더 짧은 노동시간 제한을 규정하고 있으며, 청소년의 갱도(굴) 안 노동을 금지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류의 ‘보호’들은, (특히 노동시간이 더럽게 긴 편인 한국 노동자들의 경우에는) 모든 사람들이 당연히 받아야 하는 것입니다. 청보 씨 당신은 이런 모두가 보장받아야 할 권리를 청소년들에게만 ‘특별히’ 보장되어야 하는 것처럼 만들고 있습니다.

  청보 씨 당신은 매우 발이 넓고 권세도 제법 있어서, 뭇 사람들은 당신이 잘못되었다고 생각하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아니, 오히려 적극적으로 당신을 옹호하거나 당신과 친하게 지내는 사람들이 더 많을 겁니다. 그래서 그런 사람들에게도 이 결투가 정당한 것임을, 당신이 얼마나 불의하고 반인권적인 존재인지를 확실히 알리기 위해서 이 결투장이 다소 길어지더라도 저는 당신의 잘못을 좀 더 시시콜콜 지적해드리려 합니다.

  먼저, 청보 씨 당신은 청소년들의 밤 10시 이후 PC방, 노래방, 찜질방 출입을 금지하거나 제한하고 있습니다. 당신이 직접 청소년을 규제하는 대표적인 사례지요. 당신은 그 이유로 청소년들을 보호하기 위해서, 청소년들이 잠을 잘 수 있게 하기 위해서, 청소년들의 가출을 막기 위해서 등등의 이유를 대고 있습니다.
  그러나 당신은, ‘보호’라는 명분으로 청소년들의 자기 생활에 대한 결정권을 박탈하고 있습니다. 대표적인 PC방을 예로 들어볼까요? 청소년들이 밤 10시 이후에 PC방에 있을지, 잠을 잘지는 청소년들이 자기 삶에 대해 스스로 결정할 문제입니다. 물론 그것에 대해 충고나 권유는 할 수 있지만 그것을 일률적으로 금지하는 것은 불합리합니다. 게임 중독이나 PC방에서 게임하다가 죽는 사건 등은 청소년들에게만 일어나는 사건도 아닐뿐더러, 밤 10시 이후에 PC방만 못 가게 하면 게임 중독이 치료되는 겁니까? 무엇보다도, 게임 중독에 빠지게 되는 주된 원인 중 하나는 게임 외의 현실이 살기가 어렵다는 것일 터인데, 청보 씨 당신은 이런 현실 사회의 여러 문제들을 해결하려 하지 않고 단지 청소년들의 ‘도피’만을 강제로 막으려 들고 있습니다.
  찜질방만 해도 그렇습니다. 밤 10시 이후 찜질방 출입금지는, 가출한 청소년들이 종종 찜질방에서 숙박을 해결하는 것을 막음으로써, 과연 ‘가정’이 청소년들에게 행복한 공간인지, 혹은 반드시 청소년들은 ‘가정’에 묶여 있어야 하는지에 대한 질문 없이 ‘가정’ 밖으로 나오는 걸 봉쇄하려 하고 있습니다. 찜질방에서 “청소년 유해환경”이 조성된다는, 청보 씨 당신이 오랜 로비 활동을 통해 꼬드긴 정부와 법원의 주장도 지나가던 소가 웃을 일일 뿐이지요. 청보 씨가 생각하는 “유해환경”은 대체 그 실체가 뭡니까?

  아주 민감한 문제 중 하나인 술, 담배 이야기도 해봅시다. 흔히 청보 씨 당신과 당신의 지지세력들은 술과 담배를 청소년에게 금지하는 이유로 청소년의 건강 이야기를 합니다. 청소년기에 술, 담배를 섭취하는 것이 몸에 더욱 해롭다는 거지요. 하지만 술과 담배는 청소년이냐 청소년이 아니냐를 떠나서 해롭습니다. 특히 담배는 어떻게 이야기하건 건강에 해롭습니다. 하지만 적어도 법률이나 사회통념상으로는, 당신의 활약 덕에, 비청소년의 경우에는 담배가 거의 전면적으로 허용되고 청소년의 경우에는 담배가 거의 전면적으로 금지하고 있습니다. 과연 이러한 것이 비례에 맞는 정당한 조치라고 생각하십니까? 그렇다면 술, 담배 등은 비청소년에게는 거의 해롭지 않고, 청소년에게는 매우 해로운 것이란 겁니까?
  당신이 술, 담배를 금지하는 그 배경에는 이런 생각이 깔려 있을 것입니다. 비청소년들은 스스로 판단력을 갖추고 있기 때문에 금연 캠페인이나 절주 캠페인 같은 걸 통해서 알아서 덜 하도록 할 수밖에 없지만, 청소년들은 제대로 된 판단력이 없기 때문에 술과 담배를 금지해야 한다는 차별적 인식 말입니다. 다른 한편으로는, 당신과 친한 친구인 ‘국가주의’ 씨를 위해서 청소년들의 삶을 통제하고 쓸 만한 도구(노동력, 인적자원 등)로 만들려는 생각을 하고 있는지도 모르겠군요.
  술을 많이 마시거나 담배를 피우는 것은 아마 건강에 해로울 것입니다. 술과 담배는 사실 서로 그 작용이나 건강에 미치는 영향 등이 많이 다르므로 분리해서 볼 필요가 있겠지만요. 그렇다면 청소년이냐 비청소년이냐를 가리지 않고 술이나 담배를 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 맞습니다. 청소년의 경우에도 절주나 금연을 하도록 캠페인을 하고 다양한 지원을 제공하거나, 아니면 담배나 술의 해악에 대해서 교육하고 그것을 절제하도록 하는 게 맞습니다. 아니, 담배는 아예 생산을 하지 않을 수 있도록 장기적인 정책을 만들던가 하자는 이야기도 가능할 것입니다. 이런 보편적 정책이 아니라 청소년에 대해서만 술, 담배를 금지하겠다는 청보 씨 당신의 발상은, 청소년에 대한 차별적 인식에 근거하고 있을 뿐 아니라 그러한 차별을 조장하고 있습니다.

  흔히 영상물이나 게임물에 7세, 12세, 15세, 19세 등으로 나이 등급을 매기는 ‘검열’도 청보 씨 당신의 주된 업무 중 하나지요. 당신이 들이대는 주된 기준은, “선정성”(얼마나 야하거나 성(性)적인가)과 “폭력성”(얼마나 치고 부수고 죽이는가)입니다. (*야한 것에 대한 이야기는 다른 글에서 충분히 다루고 있기에 생략합니다.) 그리고 당신은 종종 그 내용이나 맥락이 성폭력적이거나 사회적 약자를 공격하는 것인지, 폭력을 정당화하는 것인지, 인권침해적인지 같은 걸 판단하지 않고, 단순히 특정 장면에 사람의 벗은 몸이 얼마나 나오는가, 라거나 얼마나 피가 많이 튀는가 등을 기준으로 판단을 내리고 등급 딱지를 붙이고 있죠. 그렇게 나이를 기준으로 일괄적으로 등급 딱지를 붙이는 것은, 사람마다 모두 생각이라거나 가치관이라거나 성격이 변화하는 것이 다르다는 것을 무시하고 있다는 점에서 어이없기까지 합니다. 당신의 이러한 규제는 부당하게 청소년들의 문화적 권리를 침해하고, 차별하고 있습니다.
  폭력을 영상 등을 통해 자주 접하거나 하면 폭력에 무뎌지고 폭력을 쉽게 받아들이게/사용하게 된다든가, 성폭력적인 장면을 자주 접하게 되면 강간이나 성폭력에 관대해진다는 연구결과가 있습니다. 그리고 그런 경향은, 청소년에게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사람들에게 적용되는 것입니다. 아직 가치관이 확립되지 않았느니 판단력이 미숙하다느니 청소년들에게만 그것을 금지하는 이유를 이것저것 이야기하고는 있습니다만 그러한 정도의 차이가 청소년들에게는 그것을 금지하고 비청소년에게는 그것을 허용할 기준이 되는 걸까요? 그럼 제가 한국의 이 남성중심적 사회에서 대다수의 남성들이 성폭력에 관대하거나 무감각한 이유로 군대(징병제)와 더불어 성폭력적/폭력적 영상물에 무제한으로 노출되어 있기 때문이라고 주장해도 무방할 것 같습니다.
  특히 청보 씨 당신은 청소년들을 폭력적이거나 선정적인 것들로부터 ‘보호’한다고 하면서, 청소년들을 범죄를 저지르기 쉬운 위험한 존재로 은연중에 규정짓고 있진 않습니까? 그러니까 청소년들은 ‘우발적’이고 ‘충동적’이어서 폭력적이거나 성폭력적인 것들을 그대로 모방하거나 그것에 자극을 받아서 범죄를 저지르기 쉽다고 보고 있지는 않냐는 겁니다. 실제 범죄율 통계를 봐도 청소년 집단의 범죄율은 비청소년보다 훨씬 낮고, 또한 어느 집단이 통계적으로 범죄율이 높다거나 낮다거나, 그런 것이 그 집단 전체에 대한 차별이나 인권침해의 근거가 될 수 없음에도 말입니다.
  성폭력적/폭력적 영상물이나 게임물은 그 생산을 규제하거나 아니면 사회적으로 그것을 거부하고 배척하는 분위기를 만듦으로써, 그것을 위해 인권교육을 보급하고 성평등적/비폭력적인 사회를 만들어감으로써 해결해야 하는 문제입니다. 몇 세 이하 관람불가 하는 식으로 딱지를 붙일 문제가 아닙니다. 아시겠습니까, 청보 씨?

  마지막으로, 청보 씨 당신은 청소년들을 ‘보호’한다면서 청소년들을 오히려 사회경제적 약자로 만들고 있습니다. 청소년들은 ‘약자’니까 보호해준다면서, 청소년들이 경험을 축적할 기회를 박탈하고, 정치적으로 발언할 권리를 침해하고, 경제적으로 돈을 벌 기회를 제한함으로써 청소년들을 계속해서 ‘약자’로 만드는 겁니다.
  가장 대표적인 예로 노동의 문제가 있습니다. 청소년노동에 따라붙은 여러 제약들 중에서도 친권자(부모)의 동의서가 필요하다든가 일할 수 있는 사업장을 제한해둔 것 등은 청소년들이 알바하는 것을 더욱 어렵게 만들고 있습니다. 게다가 청보 씨 당신이 부추긴 청소년들의 노동을 곱지 않게 바라보는 사회적 시선도 걸림돌이 되지요.
  청소년들을 노동착취 같은 것으로부터 보호한다고 하면서, 청소년들의 경제력을 약화시키고 마는 것은 앞뒤가 바뀐 것입니다. 아, 물론 청보 씨 입장에서는 청소년들이 경제력을 행사하게 되면 ‘실수’를 저지를 수도 있으니까 그런 것으로부터도 청소년들을 ‘보호’해서 청소년들이 돈을 자유롭게 못 쓰게 해야겠죠. ‘실수’를 저지르더라도 살아갈 수 있는 안전망이 있는 사회, 인간적인 사회를 만들고자 하기보다는, 청소년들의 권리나 자유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약자인 청소년들을 규제하는 쪽이 훨씬 편할 테니까요.
  물론, 청소년들의 노동을 제한하는 제도 등은 자본주의 초기에 아동들에게 가해지던 심각한 노동 착취를 제한한다는 의의가 있습니다. 허나 자본가가 노동자를 착취하는 구조와 임금노동을 하지 않고는 생활이 어려운 사회 현실을 그대로 방치한 상태에서 청소년들의 노동 그 자체를 제한하는 것은 청소년들을 경제적 약자로 만들고 청소년들이 가정이나 친권자에 종속되는 데 기여하고 있습니다. 게다가 가혹한 노동조건에서 일하거나 너무 많은 시간을 일하거나 노동 착취를 당하지 않을 권리는 청소년 뿐 아니라 모든 노동자가 누려야 할 권리인데, 청보 씨 당신은 그것을 간과하고 있습니다.
  청소년노동에 대해 개선이 필요하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종종 청소년노동에 대해 ‘보호주의적인’ 입장을 취하곤 합니다. 청보 씨의 영향력이 큰 탓이지요. 하지만 청소년노동에 대해서는 보호주의적 입장을 취하기보다는, 이 사회의 노동 전반에서 일어나는 착취 등을 없애려 노력하고 청소년들을 ‘지원’하는 방식을 취해야 합니다.


존재를 걸고 당신을 부정하겠습니다

  청보 씨 당신의 죄를 낱낱이 열거하자면 이보다 더 끝이 없겠지만, 우선은 이 정도에서 줄이고자 합니다. 결투를 신청하는 이 글이 너무 길어지면 이상할 테니까요.
  다시 한 번 강조하자면, 청보 씨 당신은 청소년들을 사회경제적 약자로 만들고, 청소년들에 대한 차별을 정당화하고, 심지어는 인권운동이나 사회운동을 한다는 몇몇 사람들조차도 청소년들을 약자로 생각하고 뭘 베풀려고 하고 차별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당신은 청소년은 ‘미래’의 주인일 뿐 아니라 바로 ‘현재’에 살아가고 있는 인간이라는 것을 무시하고 있지요. 그리고 반드시 필요한 여러 ‘보호’들이 단지 청소년에게만 필요한 것이 아니라 보편적인 인간 모두에게 필요한 것이라는 점을 잊어버리게 만들고 있죠.
  청소년이건 비청소년이건 범죄 위험 등으로부터 보호받을 권리는 당연히 있습니다. 그리고 청소년이라는 특정한 삶의 시기에서, 다양한 ‘첫 경험’들이 있을 수 있기에 그에 대해서는 몇몇 ‘지원’이 필요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보호’라는 이름으로 청소년들을 차별하고 규제하는 내용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청소년 ‘유해환경’(이 또한 그 실체가 모호하기도 하지만)이 있다면 그 ‘유해환경’을 없애거나 바꾸려고 해야 하지, 청소년들을 그 ‘유해환경’으로부터 보호한답시고 가둬두는 것은 이상한 발상입니다. 청소년들에게 필요한 건 사회경제적 약자인 현실을 벗어나게 해주는 지원, 필요한 정보를 알려주는 교육, 정당한 대우와 경험, 기회 등입니다.
  저는 청보 씨 당신에게 맞서 싸울 것을 이 결투장을 빌어 선언하는 바이며, 저와 뜻을 함께하는 친구들도 ‘청소년 보호주의’를 없애고 새로운 청소년인권을 만들어내기 위해 행동할 것입니다. 청소년인권을 요구하며 운동하는 사람들은, "청소년선도보호"라는 말이 사라질 때까지, 차별적이고 억압적인 청소년보호주의가 없어질 때까지 그 존재를 걸고 당신을 부정할 것입니다. 결투 시일은 오늘부터 당신이 없어질 때까지이며, 결투 장소는 청보 씨 당신이 있는 곳 전부입니다.
Posted by 공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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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청소년보호주의를 구글에 치니 제일 먼저 나옴..!

    2015.04.18 16:24 [ ADDR : EDIT/ DEL : REPLY ]
  2. 2008년의 공오글현 씨..

    2015.04.18 16:27 [ ADDR : EDIT/ DEL : REPLY ]

걸어가는꿈2008. 4. 14. 23: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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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인권활동가네트워크 2008년 첫 번째 소식지 (1월,2월,3월) 파란만장


네트워크 살아있어요∼ 네트워크 개편소식

인권교육센터 '들'이 새 식구가 되었어요 - 개굴

네트워크 이렇게 지냈어요 (2008년 1월 2월 3월)

달마다 하는 청소년인권놀이터 빨강물고기 come on

어떤 식으로든 - 공현

나름 인사글 Hello 여러분 - 따이루


청소년인권활동가네트워크

youthhr@chol.net

02-365-5359

서울시 중구 중림동 398-17 3층 (우) 100-360



Posted by 공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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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어가는꿈2008. 4. 2. 18:40
오답승리의 희망 7호 거의 편집 끝난 파일.

한겨레결체
굴림
맑은고딕
HY나무M
피아노M
고딩L
산돌광수B

(저 글씨체 파일들이 없으면 제대로 표시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Posted by 공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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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어가는꿈2008. 3. 28. 16:59

(* 학교 안에서의 종교의 자유에 대해서 청소년인권행동 아수나로에서 내는 책에 넣으려고 쓴 글입니다)

강요되는 종교, 강요의 교육



  학교에서의 종교의 자유 침해라는 문제를 이야기하면, 보통은 종교 사학에서 일어나는 의무적 ‘채플’(기독교 학교에서 하는 예배)수업이나 특정 종교의식 강요, 특정 종교를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 학생회장 출마라거나 포상에서 불이익을 주는 일 등등을 떠올린다. 그렇지만 학교에서의 종교의 자유 침해는 종교 사학이 아닌 학교에서도 다양한 형태로 일어난다. 따라서 포괄적으로 학교의 구조에 대해서도 좀 다루어볼 필요가 있다.

  종교자유정책연구원의 손상훈 씨는 오마이뉴스 「"학교는 '교회'가 아니다" 제도화된 불법, 종교교육」(2006년 9월 25일)이라는 글에서 학교의 종교 자유 침해에 대한 다양한 상담 사례들을 고발하고 있다. 손상훈 씨는 학교에서의 종교의 자유 침해에는 ① 예배나 헌금 등을 강요하거나 특정 음식을 금지하는 등 행위를 강요하는 것, ② 그런 강요에 ‘순응’하지 않는 학생들을 학생회장 입후보, 시험, 일상생활 등에서 차별하는 것의 두 유형이 있다고 한다. 그 글에 제시된 사례 중 몇 가지만 뽑아보면 ▲ 전체 학년이 매주 특정요일 참여해야 하는 전교생 종교의식 (가장 많음) ▲ 매일 수업시간 시작 전에 담임교사가 강제로 순번제로 돌아가며 기도를 시키는 사례 ▲ 종교적 의미에서 그 색깔이 부정한 것이라서 특정 색깔의 신발주머니를 금지하는 학교 ▲ 반야심경을 강제로 외우게 하는 사례 ▲ 반 학생들에게 급식시간에 감사기도를 시키고 찬송가를 트는 공립초등학교 담임교사 등이 있다.
  이런 현실에 대해, 교육부와 교육청은 각 학교들에 종교수업을 만들 경우 다른 선택 가능한 수업을 편성해서 선택가능하게 하도록 하거나, 종교 활동에는 학생들의 자율적 의사를 존중하라고 지시하고 있다. 하지만 실제 학교에서는 거의 지켜지지 않고 있으며 학생들의 종교의 자유는 여전히 보장받지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이처럼 종교의 자유 침해가 심각한데, 이 문제가 사회의 관심을 받게 되고 그 실태가 알려지게 된 것 자체도 사실은 2004년 강의석 씨의 대광고 종교자유 투쟁 이후다. 2004년에는 사실 종교의 자유 자체에 대한 이야기보다는 강의석 씨 개인의 1인시위와 퇴학이라는 징계에 맞선 장기간 단식투쟁 등이 더 주목을 끌었었다. 그 운동은 “미션스쿨 종교자유”라는 다음(Daum)카페나 R.O.Y(Right of Youth)라는 청소년인권모임의 형태로 나아갈 기미를 보이기도 했으나 결국은 강의석 씨 개인의 투쟁 형태로 일단락되었다.
  “학교내종교자유”(“미션스쿨 종교자유” 카페가 이름을 바꾼) 카페가 남아있긴 하지만, 2006년 5월에 열었던 집회 이후로는 대학교 안에서의 채플에 대한 문제제기 외에는 집단적인 움직임이 만들어질 기미는 아직은 보이지 않는다. 다만 강의석 씨가 대광고를 상대로 제기한 소송(1심 강의석 씨 승소, 현재 항소심)이 진행되고 있다. (2008년 1월 현재)
  2006년 12월에는 숭실중 허형범 교사가 학교에서의 강제적인 종교교육을 고발하고 나섰다. 허형범 씨는 서울시교육청에 학교의 종교 강요에 대해 시정명령청구서를 제출하면서 연 기자회견에서 앞으로 자신은 학생들에게 종교를 강요하지 않을 것이고 학교가 종교를 강요하도록 명령하는 것도 받아들이지 않겠다고 양심선언을 했다. ‘종교자유정책연구원’ 같은 곳들에서는 지속적으로 토론회나 기자회견 등을 열고 있다


★ 가정에서의 종교 자유!
  학교에서의 종교 자유도 중요하지만, 가정에서의 종교의 자유도 매우 중요하다. 흔히 “모태신앙”이라고 불리는 아주 어릴 때부터 이루어지는 종교 주입도 그렇고, 가정에서 일어나는 친권자(부모나 보호자)가 청소년에게 가하는 종교적 억압은 널리 일어나고 있다. 하지만 이런 가정에서의 권리 문제는 다른 ‘가정’ 파트에서 더 자세히 다루어 줄 것이다. -ㅂ-


종교의 자유 ≠ 종교를 ‘강요’할 권리

  흔히 학교 내 종교 자유 주장에 가해지는 주요 공격은, “종교사학에서 종교교육을 하는 건 당연하며, 그 학교에 속한 구성원인 학생은 당연히 그 집단(학교)의 규칙을 따라야 한다.”라거나 “네가 선택해서 간 학교니까 받아들이는 게 당연하다.”라는 것이다. 일부 종교사학들은 자신들의 종교 강요를 “선교활동의 자유”라고 주장하고 있기까지 하다. “현재의 평준화 체제에서 뺑뺑이로 들어간 학교니까 선택해서 간 게 아니라서 문제”라는 말도 있는데, 이런 논리에 따르면 배정받아 가는 학교의 종교 자유는 옹호되지만 지원해서 가는 중고등학교나 대학교의 경우는 반대하게 되기 때문에 이 주장도 함께 비판적으로 검토하겠다.

  헌법 제20조에 보장하고 있는 종교의 자유는, 여러 가지 권리를 포함하고 있다. 종교의 자유 중에 가장 기본이 되는 신앙의 자유는 신앙선택의 자유, 개종(改宗)의 자유, 무(無)신앙의 자유, 신앙고백의 자유, 자기가 신앙하는 종교를 외부의 강제에 의하여 표명하지 않을(불표현) 자유 등을 의미한다. 그 외에도 종교적 행사의 자유, 종교적 집회 및 결사의 자유가 있고, 마지막으로 선교활동 및 종교교육의 자유가 있다.
  종교 사학에서의 종교 강요는 종교사학재단의 선교활동 및 종교교육의 자유와 학생의 신앙의 자유가 충돌하는 것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선교활동이나 종교교육의 자유가 타인에게 종교를 ‘강요’할 권리를 의미하지는 않는다. ‘종교의 자유’의 본질은 무엇보다도 정신적·내면적 권리인 신앙의 자유이며, 선교활동 및 종교교육의 자유가 종교를 ‘강요’할 자유는 아니라는 것은 신앙의 자유가 더 우선되는 인권이라는 뜻도 포함하고 있다.

  또한, 종교의 자유는 무엇보다도 종교를 믿고 안 믿을 자유, 신앙고백을 강요당하지 않을 자유, 신앙·불신앙으로 인하여 불이익을 받지 않을 자유 등을 포함하는 신앙의 자유를 본질적 요소로 하는데, 종교교육의 자유가 학교라는 교육기관의 형태를 취할 때에는 그 학교에서 수학하는 학생들의 기본권인 이러한 신앙의 자유 등과 충돌할 가능성이 많고, 특히 현재의 주요 대도시의 경우와 같이 고등학교 평준화 정책에 의하여 본인이 신앙하는 종교와는 무관하게 학교가 강제로 배정되는 제도 아래에서는 더욱 그러한바, 이러한 경우 원칙적으로 학생들의 신앙의 자유는 학교를 설립한 종교단체의 선교나 신앙실행의 자유보다 더 본질적이며 인격적 가치를 지닌 상위의 기본권에 해당한다고 보아야 하므로 이러한 학생들의 기본권이 보다 더 존중되지 않으면 안 된다.
- 강의석 씨가 대광고를 상대로 낸 민사소송에 대한 서울중앙지방법원 판결문 中

  저 재판은 현재 항소심이 진행 중이기 때문에 아직 확실하게 법적으로 이렇다 저렇다를 말하긴 어려울지도 모른다. 그러나 적어도 인권 기준으로는, 신앙의 자유를 침해하는 형태의 선교활동의 자유라는 건 인정될 수 없다.
  불교 신도가, 몇 번 정도 집안 사정 때문에, 또는 컨디션이 안 좋아서 법회를 빠졌다고 하자. 그 신도가 그것 때문에 어떤 강압이나 특별한 불이익을 당하는가? 순전히 종교적인 집단 안에서도 종교 사학 등에서 이루어지는 강제적 예배 의식 같은 것은 없다. 결국 종교 사학에서의 선교라는 것은 폭력과 강요의 성격을 띠는,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선교나 포교활동과는 좀 다른 것임을 알 수 있다. 특정종교의 선교 자체도 학교에서 권력관계가 개입하여 일방적으로 이루어진다면 문제겠지만, 현재 많은 학교에서 그 특정종교의 선교가 폭력, 강요, 강압, 특혜와 불이익 등의 형태로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은 더 큰 문제이다.

  선택해서 간 학교니까 따라야 한다거나 자신이 속한 집단의 규칙을 따르라는 주장들은, 집단의 규칙이 부당하게 인권을 침해하는 내용이라면 거부하거나 저항할 수 있다는 인권의 원칙을 생각해보면 별 의미가 없다. 사회 교과서조차도 근대 혁명 과정에서 나왔던 ‘저항권’의 개념을 중요한 것으로 가르치고 있다. 법이나 규칙이 인권의 원칙에 부합해야 하고 그렇지 않을 때는 사람들이 저항해서 바꿀 수 있다는 이념은, 인권보장을 목적으로 하는 민주주의 사회에서 중요한 원칙이며 학교라고 해서 예외가 될 수 없다.
  여러 종교사학들이 입학할 때에 학생들로부터 “종교 교육을 잘 받겠다.”라는 내용의 선서나 각서를 받으며 이를 근거로 종교를 ‘강요’하는 게 아니며 종교교육은 정당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강의석 씨의 소송에 대한 법원 판결에서도 이런 식의 선서에 대해,

  00고등학교가 신입생 입학시에 기독교적 교육방식에 대하여 학생과 학부모에게 설명하고, 학생들로부터 ‘기독교 교육과 함께 모든 교과과정을 충실히 받겠다’는 내용의 선서를 받아 온 사실과 원고가 입학 당시 신입생들을 대표하여 그러한 내용이 담긴 선서서를 낭독한 사실은 당사자 사이에 다툼이 없으나, 위와 같은 사정만으로 이 사건에서 문제되고 있는 피고 00학원의 앞서 본 바와 같은 각종 행위를 원고가 모두 이의 없이 받아들이겠다는 취지로 보기는 어려울 뿐만 아니라, 그것이 만약 이 사건에서 문제되고 있는 피고 00학원의 앞서 본 바와 같은 각종 행위를 모두 이의 없이 받아들이겠다는 취지라면 이는 기독교를 신봉하지 않는 사람들의 신앙의 자유와 자신이 결정한 양심을 외부에 표명하도록 강제되지 아니할 ‘양심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으로서 공서양속에 반하여 아무런 효력이 없다 할 것이다.
- 강의석 씨가 대광고를 상대로 낸 민사소송에 대한 서울중앙지방법원 판결문 中

그러한 선서 자체가 신앙의 자유, 양심의 자유를 침해하며 효력이 없다고 하고 있다.
  그리고 우리는 “종교의 자유”라는 인권이 쉽게 양도되거나 포기될 수 없는 권리라는 걸 인식해야 한다. 예컨대 한 학생이 개신교를 믿었기 때문에 개신교 재단에서 세운 고등학교에 입학했다고 하자. 그런데 그 학생이 2학년 2학기 때 인생의 중대한 전환기를 겪으면서 종교를 바꿨다고 한다면, 이 학생이 종교를 바꾼 이후에도 입학할 때 “종교 교육을 잘 받겠다.”라는 선서를 냈다는 이유만으로 강제로 채플 수업에 참여해야 하는 것일까?
  어떤 사람이 사채를 빌리면서 “신체포기각서”를 사채업자에게 써줬다고 하더라도, 법적으로 그 사람은 그 “신체포기각서”의 내용을 지키지 않아도 된다. 자신의 가장 기본적 인권인 신체의 자유, 생명권 등을 송두리째 포기하는 내용의 “신체포기각서”는 법적으로나 인권적으로나 부당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종교의 자유, 양심의 자유 등에도 마찬가지로 적용된다. 인권은 인간의 기본적 권리이기에 그렇게 쉽게 포기되거나 양도될 수 없다.

  마지막으로, 종교의 자유 문제를 현재와 같은 ‘평준화’ 제도와 연관시키면서 선택하지 않고 추첨제로 학교를 가는 게 문제라는 식의 주장에 대해 이야기해보자. “선택해서 가면 따라야 한다.”라는 식의 얘기에 대해서는 이미 충분히 비판한 것 같으니까, 짧게 하겠다.
  설령 그 학교를 선택해서 갔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종교의 자유를 포괄적으로 포기한다는 의미일 수는 없다. 초등학교든 중학교든 고등학교든 대학교를 가리지 않고 어떤 학교이든 마찬가지이다. 1998년에 대법원은 “학생들이 신앙을 갖지 않을 자유를 침해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라는 단서를 달면서 채플을 이수해야 졸업할 수 있다고 규정한 대학 학칙이 정당하다고 판결했다. 그러나 ‘채플’이라는 게 종교에 대한 수업이 아니라 예배나 종교의식의 성격을 띠는 상황에서, “학생들이 신앙을 갖지 않을 자유를 침해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라는 단서는 유명무실할 뿐이다. 선택해서 갔든 선택하지 않고 갔든 간에 종교의식이나 예배를 강제, 강요하는 모든 방식들은 인권침해로 보고 근절해야 한다.
  그러므로 어떤 사람들이 종교 자유 문제를 평준화 해체를 주장하는 근거로 삼는 것은 옳지 못하다. (내가 지금 같은 대학서열화-초중고교평준화 체제에 찬성하는 건 아니지만) 마치 종교의 자유 침해라는 인권 문제가 학교가 원하는 학생들을 선발하지 못해서 일어나는 것인 양 왜곡해서는 안 된다. 그것은 학교에서 자행되는 인권침해의 폭력일 뿐, 정당화될 수 있는 행위가 아니기 때문이다.
 

‘강요’의 교육 방식

  나는 학교에서 종교를 강요하는 문제가 단지 일부 종교 사학의 문제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공립학교에서도 교사 개인이나 교장의 성향에 따라 얼마든지 종교 강요가 일어날 수 있다. 종교 강요의 문제는, 학교의 구조적인 문제를 반영하고 있다.

  특정 종교를 믿고 있으면서 그 종교를 학생들에게 강요하고 일방적으로 전도하는 교사는, 그것이 그 학생들을 위한 사랑이라고 확신할 것이다. 종교사학의 이사장이나 이사회, 교장, 교감 등도 마찬가지다. 이처럼 특정 생각을 받아들이도록 강요하면서 “이게 다 학생들을 위한 거다.” “이게 다 학생들에 대한 사랑이다.”라고 말하는 모습은, 꼭 종교의 문제가 아니더라도 학교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풍경이다.
  학교에서 학생은 학교 운영이나 교육과정 편성, 교육내용 결정에 참여하지 못하고 단지 그 명령을 전달받고 그대로 따르기만 해야 하는 존재이다. 극히 일부의 과목이나 수업을 제외하면, 수업시간이란 교사가 학생들보다 더 높은 교단에 서서 수십 명의 학생들에게 일방적으로 지식이나 도덕을 떠들고 학생들이 그것을 듣고 그 방식에 따라 그대로 연습해보는 시간이다. 그리고 가끔씩 학생들이 교사가 전달한 내용을 잘 받아들이고 있는지 확인하기 위한 질문과 답, 그리고 교사의 점수매기기가 이루어지곤 한다.
  거기에는 교육이 옳은 것, 진리, 선(善)이 무엇인지 알고 있는 교사가 그것을 학생들에게 일방적으로 전달하고 가르치는 것이라는 생각이 깔려 있다. 옳은 것이 무엇인지는 교사가 결정하고 평가하기 때문에, 학생들은 교사가 가르쳐준 ‘정답’을 맞추기 위해 노력한다. 때로는 교사의 자리를 교장, 문제집, 입시체제 자체, 대학 교수 등등이 대신하는 경우도 있지만, 어쨌건 그 수직적인 구조는 변하지 않는다. 종교 강요의 경우에는 그 ‘절대적으로 옳은 것’과 ‘진리’의 자리에 특정 종교가 들어가는 것일 뿐이다.

  만약 교육청에서 강력하게 종교수업을 강요하는 것을 규제하고 대체 수업들을 편성하도록 한다면, 강제적인 종교수업 그 자체는 막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런 것을 막는다고 하더라도 수많은 일상적인 종교의 자유 침해 사례들은 계속 남아 있게 된다. 결국 종교 강요라는 문제는, 학교의 수직적이고 상명하달적인 구조를 그 원인으로 안고 있다.
  평등한 대화와 토론에 기초를 둔 수업 방식으로 바꾸는 것이 필요하다. 학생들의 학교 운영 참여를 전면적으로 보장하고, 학생들이 교사의 일방적인 강요와 권력에 피해를 받지 않을 수 있는, 학생과 교사가 평등하게 만날 수 있는 교육을 만들어 가야 한다.

  게다가 종교 사학의 종교 강요로 인해 피해를 보는 것은 학생들뿐만이 아니다. 중고등학교나 대학교에서 많은 교원들이, 종교적 이유로 인해 차별을 당하거나 불이익을 받고 있으며, 종교의 자유를 침해당하고 있다. 앞에서 언급한 허형범 교사나, 이찬수 강남대 교수가 종교적 이유로 재임용에서 탈락한 사건 등이 대표적 사례이다. 학교의 수직적이고 독재적인 구조를 바꿔야 한다는 것은, 교사들의 종교의 자유를 보장한다는 의미도 담고 있다.



발전하는 종교 자유 운동을 꿈꾸며

  종교 자유의 보장을 위해서는, 당장은 정부가 강제성 있는 인권 가이드라인이 만들고 집행하는 것이 필요할 것이다. 종교자유정책연구원의 자료를 참고하자면, ▲ 교육과정에서 특정 종교의식 활동 포함 금지 ▲ 수행평가로 특정 종교 활동 제시 금지 ▲ 교육과정 외 활동에서도 학생의 종교 관련 선택권 보장 ▲ 종교 의식 불참자에 대한 특별지도 금지 ▲ 재량활동이나 특별활동 시간에 특정 종교 교육 금지 ▲수행평가 과제로 특정 종교 활동 제시 금지, ▲학급 전체 참여를 전제로 한 종교활동 경진대회 금지 ▲학생회 임원 제한 같은 종교 차별 금지 ▲학교별 종교 관련 상담창구 상설 운영 등의 가이드라인을 생각해볼 수 있다.
  정부의 이러한 조치가 저절로 나오기 어렵다는 점은 이미 확인된 적이 있다. 서울시교육청 같은 경우는 2006년에 한 번 학생의 종교 자유를 보장하도록 하는 지침을 내렸다가 종교 사학들이 반발하자 그 지침을 “실무자의 실수”(?)라며 철회했던 것이다. 이러한 정부의 조치를 이끌어내는 것, 그리고 그런 조치가 실효성 있고 강제성 있는 것이 되도록 만드는 것은 결국 당사자들의 저항과 행동이다.
  학생들 개인/집단이 학교에 시정을 요구하는 것은 가장 작은 실천일 것이고, 교육청을 통해 시정명령을 내리도록 청구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일 것이다. 무엇보다도 가장 중요한 것은, 종교사학에서 종교 강요를 겪고 있는 학생들을 중심으로 모임을 만들고 지속적으로 활동을 전개하는 것이다. 강의석 씨 투쟁은 사회에 커다란 파문을 던졌고 충분히 큰 변화를 이끌어냈지만, 그럼에도 아쉬운 것은 그 투쟁이 지속적이고 집단적인 활동으로 발전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강의석 씨가 학교를 졸업한 후에는, 강의석 씨가 만든 ‘학교내종교자유’ 카페에서도 별다른 활동들이 만들어지지 못하고 있다.

  현장에서의 저항과 싸움이 이루어지고 어느 정도 종교 자유 보장을 위한 제도적 진전을 달성한 이후에는, 종교 자유 운동은 궁극적으로는 학교의 수직적이고 비민주적인 구조와 교사-학생 관계 등을 변화시키려는 의도를 담아야 할 것이다. 학교 안의 민주주의, 그리고 일상적인 교육 현장에서의 평등한 대화와 민주주의를 실현시키는 것만이, 궁극적으로 종교나 가치관이 ‘강요’되는 교육 현실을 깨부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먼 이야기를 위해서는 우선은 발전하고 나아가는 종교 자유 운동이 필요하다. 일방적인 강요와 폭력의 교육을 뒤집어엎고 새롭게 만드는 그날까지, 자유와 평등과 인권의 요구는 멈추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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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어가는꿈2008. 3. 17. 2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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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의 작은 관심이 모여 청소년인권이 됩니다!

두발복장자유 체벌반대 강제자율보충학습반대 학생인권법 제정 장애인교육권 청소년성소수자 국기에대한맹세및경례반대 입시경쟁교육반대“대세는저항하는청소년이다”청소년인권활동 가이드 기타 청소년인권행사 홍보물 등...

 모두 <청소년인권행동 아수나로>에서 지금까지 독자적으로, 아니면 다른 단체들과 같이 만든 뱃지, 전단지, 스티커 등에 들어갔던 내용들입니다. 중요한 건 저런 것들을 만드는 데 돈이 꽤 많이 든다는 겁니다!
 사실 거리집회라거나 1인시위, 토론회, 인권교육 하나를 준비하는 데도 돈이 들곤 합니다. 피켓 하나도 돈이죠 -_- 가끔씩은 집에서 탄압받는 청소년 회원 분들에게 아수나로에서 돈을 조금씩 지원하기도 합니다.

  지금까지 그런 돈들은, 주로 돈이 없어서 사무실도 홈페이지도 없이 활동하고 있는 회원들이 자발적으로 자기 주머니를 털어서 마련해왔습니다. 토론회나 강연을 나가서 사례비를 받아오긴 하지만, 턱없이 부족한 액수였습니다. 때로는 돈이 없어서 운동에 꼭 필요한 아이템을 못 만들 때 얼마나 슬펐던지... 흑흑


 아수나로에서 이번에 큰맘 먹고 CMS란 걸 시작했습니다. CMS란 후원자의 계좌에서 돈이 매달 아수나로 용돈(공금) 계좌로 들어오는 시스템입니다. 물론 계좌번호, 주민등록번호, 출금액수 등을 정해서 신청해주셔야 하지요.
 본래 CMS를 하려면 비영리민간단체 같은 걸 정부에 등록해야 합니다. 하지만 아수나로의 활동 방향이나 정신과 맞지 않는 부분들이 있어서 아수나로는 이를 등록하지 않기로 2007년에 결정한 적이 있습니다.
 대신에, 다행히도 아수나로는 인권재단 사람에서 인권단체들 해주는 CMS 지원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아수나로에 CMS 후원을 해주시면 “인권재단 사람”이름으로 통장에서 돈이 빠져나가게 된다는 뜻입니다.

 아, 돈 좀 달라는 부탁을 드리면서 단체 소개가 빠졌네요 ^^;
 <청소년인권행동 아수나로>는 청소년들의 인권이 보장되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활동하는 청소년인권단체입니다.
  청소년들의 인권이 보장되지 않는 것은 단지 사람들의 편견 때문이 아니라 이 사회의 구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사회 자체를 변화시키기 위한 청소년들의 저항과 행동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며 꿈을 현실로 만들기 위해 활동하고 있습니다.
 청소년들이 인권운동에 나서도록 전국적으로 조직화하는 일을 기본으로 하고, 전단지나 뱃지 등을 만들어서 뿌리는 일, 청소년들이 일상 속에서 일어나는 인권침해에 저항하는 행동들을 만들고 지원하는 일, 청소년인권 행사 개최 등을 합니다. 여러 청소년인권 문제들에 대한 이슈화 활동도 하구요. 여러 청소년인권의 주제들을 여건이 되는대로 다루어보고 싶은 욕심이 있습니다.
 기업이나 정부의 돈에 의존하게 되는 것을 경계하는 아수나로는, 참 가난할 수밖에 없는 단체입니다. 비록 지금은 사무실도 홈페이지도 없는 가난하고 작은 단체지만, 여러분의 도움으로 곧 생길 겁니다!!!(간절한 바램 ㅠ)
 청소년들이 인간답게 사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열심히 활동하는 아수나로에 크고작은 힘들을 많이 많이 나누어주세요!!



CMS 후원하기

이름           
출금액수(2000원이상)              
주민등록번호                           
은행계좌번호                                
출금일  매달 20일 / 27일
이메일                             
연락처                  
주소                                        


onlyasunaro@naver.com 이멜로 보내주셔도 됩니다.
(이 개인 정보는 아수나로 후원 등록과 활동을 알려드리는 데만 사용됩니다.)

아수나로 후원계좌  기업은행 076-018904-02-039 예금주 : 최경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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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즈는 A5로 양면이니까
A4에 양면인쇄하면 반으로 잘라서 두 개가 나오는 방식... -ㅂ-;;

아 업로드한 건 인터넷 올리는 용량 관계상 사이즈를 비율은 맞추고 변형한 겁니다.'

첨부파일로 두 개를 따로따로 잘라둔 걸 올려요.

으음 칼라입니다아
Posted by 공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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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어가는꿈2008. 3. 2. 11:55

1318virus라고 청소년언론이 있습니다.

청소년인권운동을 하는 입장에서는 굉장히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

그 인터넷신문에 대한 비판 글인데, 1318virus에도 보내긴 했지만 딱히 발표할 수단이 없어서 최대한 퍼나르고 보내고 하고 있는 중입니다.

관심 있는 분들은 퍼날라주세요~






1318virus의 반성을 바라며, 그리고 대안을 고민하며
- 바이러스의 [학원탐방] 기획 속에 문제의식 부재

공현


당혹스러운 [학원탐방] 기획과 그 문제점


  1318virus에 2월 22일부터 실리기 시작한 기획기사가 있다. [학원탐방]이라는 이름을 달고 있는 그 기획기사들은, 지금까지 2월 22일 금요일 그리고 27일 수요일 두 번 업로드 되었으며 그때마다 메인 헤드라인을 차지했고 앞으로도 계속될 예정이다. 「소수정예로 목표 이루는 학원 '카이스타'」 「재수생의 간절한 마음을 헤아리는 학원」이라는 표제를 달고 있는 이 기사들을 처음 봤을 때 나는 “이건 뭐야? -_-”하는 심정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에이 설마…” 하면서 기사 내용을 읽어본 나는 더욱 암울한 감정에 빠져들었다. 기사 내용이 완전히 학원 광고 일색이었기 때문이다. 강남에서 특목중·특목고·서울대 반 운영을 하는 학원, 땡땡이는 생각도 못하는 학원, 내신성적 4% 이내 학생만이 들어갈 수 있는 학원, 학부모에게 학생들의 출입을 감시하여 문자메시지로 보내주는 학원, 들어갈 때 휴대폰을 모두 압수당하는 학원, 학원시간운영조례를 어기고 밤 11시 정도까지 운영하는 학원이 아무런 비판적 내용 없이 마치 당연한 사실인 양, 학원 정보라는 명목으로 광고되고 있었다.

  1318virus는 어떤 언론인가? 본래 청소년들의 권리와 자치를 위해 21세기청소년공동체 희망 언론사업부로 시작한 언론이었다. 그렇기에 상당히 규모 있는 인터넷언론으로 성장하면서도 여러 청소년운동들과 긴밀한 관계를 맺으면서 청소년들의 목소리와 행동을 성실하게 보도해왔던 언론이었다. 때로는 비청소년들의 관점에서만 이야기되던 사건들에 대해서 청소년들의 관점으로 새로운 보도를 내곤 하는 언론이었으며, 종종 좌파적이거나 진보적이거나 개혁적인 청소년운동을 하는 단체들과 긴밀한 관계를 맺고 행사라거나 청소년들의 행동 등에 대한 정보를 주고받기도 하는 언론이었다.(예컨대 최근에 있던 광명 진성고등학교 두발자유 시위도 1318virus에만 다른 언론보다 먼저 직접 전화를 해 알려줬었다.)
  1318virus가 지금도 홈페이지 ‘회사소개’에 걸고 있는 내용 중 일부를 보자.

  2000년 인터넷뉴스 바이러스 창간으로 시작한 인터넷뉴스 서비스는 그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청소년 뉴스라는 차별성으로 사람들의 많은 사랑을 받아왔습니다. 청소년의 권익을 우리 사회에 대변하려는 정신으로, 그동안 성역 없는 보도를 통해 진실을 전달해왔습니다.
  인터넷뉴스 바이러스(주)는 국내유일 국내최대의 청소년 전문 인터넷언론입니다.
  <바이러스>는 청소년의 생각과 문화, 고민 등을 가장 빠르고 정확하게 뉴스에 담아갑니다. 하루 8~14시간 이상을 학교와 학원에서 보내는 청소년은 사회와 단절될 수밖에 없습니다. 강제 야간자율학습ㆍ보충수업, 비인권적 두발규제 등 사회에 알려지지 않은 청소년의 목소리를 보도합니다.

  ‘회사소개’에서부터 청소년들의 현실에 대해 이렇게 말하고 있는 1318virus가 [학원탐방]이라는 이름으로 입시사교육 기관들을 아무 문제의식 없이 광고하는 내용의 기사를 내보내는 것은 자기 자신에 대한 배반이다. 바로 얼마 전에는 새 이명박 정부의 교육정책에 대해서 편집장인 정혜규 씨가 입시경쟁교육에 대해 비판하는 칼럼을 연재하고서, 채 한 달도 되지 않아서 이런 종류의 기획기사를 메인 헤드라인에 거는 것에 나는 정말이지 난감함을 느낄 따름이다. 종종 언론에서 광고와 기사 사이의 괴리가 이야기되곤 하지만, 이처럼 노골적으로 학원을 광고하는 내용의 기사가 메인에 보도되는 것은 그런 범주조차 아니다.
  심각하게 이야기하면 1318virus의 [학원탐방] 기사는 입시경쟁이나 입시사교육에 반대하는 입장을 취해 온 여러 청소년운동들과 쌓아온 관계에 대한 배신이라고도 할 수 있다. 입시경쟁, 입시학원, 입시사교육에 대해 비판적 보도도 많이 내오던 언론이 그 전의 태도들과는 180도 다른 태도로 입시학원 광고 기사를 싣는 것은 대체 뭐 때문인 걸까?



‘대중성’의 함정


  1318virus의 [학원탐방] 기사가 처음 나갈 때 제일 앞머리에 “이 제 곧 새학기가 시작된다. 서점과 문구점에는 새 주인을 기다리는 책과 문구용품이 가득하고, 설레는 마음으로 상점을 찾는 청소년들의 모습도 눈에 띄게 늘었다. 더불어 청소년들은 새학기 성적향상을 위해 나에게 맞는 학원은 어디이며 어떤 학원이 좋은지에 궁금해 하고 있다.” 라는 문구가 있었다. 결국 1318virus는 청소년들이 궁금해 하고 있으니까, 이런 정보를 원하고 있으니까 이런 기획을 잡아서 메인에 걸고 있다는 소리다. 실제로 덧글 중에도 “기자는 사실을 정보를 그대로 써서, 궁금해 하는 몇몇의 독자를 위해 기사를 쓴다. 이 기사가 뭐가 그리 나쁜데?? 솔직히 궁금해 하는 사람이 단 한 명도 없을 거라 생각하나?” “우와, 요즘 학원 정보 많이 올라오네요~ 평촌 학원가 유명하던데.. 대치동이랑 비교하면 비슷한가요?”와 같은 반응들이 분명히 있다.
  1318virus가 이처럼 “읽는 사람들이 원하니까”라는 논리가 깊이 배어 있는 기사나 편집을 행한 것은 처음이 아니다. 예컨대 2007년 6월에 올라온 「'천상지희 더 그레이스' 앨범 19금 받을까?」라는 표제의 기사는 메인에 배치되면서 다른 제목으로 “이미 젖어버린 옷을 벗고 싶어” 같은 문제가 된 선정적 가사들이 커다랗게 노출되었었다.(2005년 3월에는 「연예기사 더 야하게, 더 자극적으로」라는 제목으로 그런 식의 언론들의 행태를 비판하는 기사가 1318virus에 실렸던 것과는 대조적이다.)
  특히 때로는 청소년인권 현안을 다룬 내용들은 좀 더 아래로 밀리고 연예계 소식이나 연예인에 대한 기사들, 인기 드라마 이야기 등이 메인을 차지하는 배치를 하기도 했다. 그런 기사들 중에 그것이 청소년들과 어떤 연관이 있는지라거나 하는 청소년언론만의 문제의식이 배어 있는 기사는 많지 않았다. 내 편파적 판단일지 모르지만, 적어도 내게는 그것이 순전히 조회수(히트수)를 올리고 인지도를 높이기 위한 것으로밖에 안 보이는 편집이었다.
  그러나 운동으로서의 언론활동은, 이른바 ‘대중’들의 욕구에 맞춰가는 ‘대중성’을 추구하는 것에 대해 어느 정도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일단 ‘대중’이라는 다수의 사람들에 맞추다보면 배제되기 쉬운 다양한 소수들에 대해 고민해야 하고, 과연 ‘대중’이 실체가 있는지에 대한 고민도 필요하다. 무엇보다 이미 청소년인권을 침해하는 사회 시스템이 존재하고 있고, 또 거기에 익숙해져 있는 다수의 사람들이 있는데 그런 것을 그냥 “우리는 ‘대중’이 원하는 걸 보도한다.”라며 스스로의 가치판단과 문제의식을 포기한다면 이는 결과적으로 현재의 시스템을 강화하는 효과를 가진 언론활동이 될 위험성이 많다. 학원 정보를 알고 싶어 하는 청소년들이 있다면, 그런 것에 대해 다른 대안적인 정보를 찾아볼 수도 있지 않은가? 또는 같은 정보라 하더라도 전혀 다른 방식과 다른 관점에서 기사를 쓸 수 있는 것 아닌가? 1318virus의 청소년언론운동으로서의 방향성은 거짓인가?


그동안 드러났던 몇몇 문제점들, 그러나…

  그동안 1318virus의 문제점들에 대해서 내가 활동하는 청소년인권단체 안에서 내부적으로는 여러 이야기가 오갔었다. 언론에서 “씨”의 호칭을 받는 사람들은 모두 ‘성인’(비청소년)인 반면, 10대나 그 이하는 무조건 “양” 아니면 “군”을 받게 되는 언론의 차별적 호칭 습관을 1318virus가 그대로 답습하고 있다던가, “이성교제” 같은 이성애중심주의적 표현을 쓰는 것에 대해 문제제기가 필요하다는 이야기도 있었다. “술 먹은 청소년 범죄위험 몇 배”라는 식의 청소년에 대해 적대적이거나 보호주의적·규제주의적인 이야기들을 아무런 문제의식 없이 그대로 쓰는 일도 있었다.(대개는 국가청소년위원회의 보도자료 등을 그대로 옮겨 쓴 기사였다.) 이런 건 청소년언론으로서 섬세한 문제의식과 성찰이 필요한 부분들이다.
  한편 자극적인 표제를 뽑아서 행사 내용을 왜곡하는 경우도 있었다. 이건 언론으로서의 양심이랄까 기자의 역량이랄까 자극적인 걸로 낚시를 하려는 언론의 생리랄까 뭐 그런 문제일 텐데, 예를 들어 학생인권을 요구하는 집회에 대한 기사 제목을 「두발자유집회 몇명 올까?」라고 한다거나 청소년인권운동에 대한 전반적 토론이 오갔던 행사에 대해 「‘두발자유 대안학교 포괄못해... 시야 넓혀야’」라는 제목을 내는 등의 사례가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리고 나와 같이 활동하는 여러 사람들은 그래도 1318virus가 청소년들의 권리에 대한 요구나 입장, 그리고 청소년들의 행동·활동들을 가장 잘 전달하고 공론화시켜주는 언론이라고 믿었다. 그래도 나는 유일한 청소년언론으로서의 1318virus의 가치를 생각하며 1318virus과의 관계를 좋게 하려고 애써왔고 함부로 부딪치지 않으려고 했다. 물론, 내가 1318virus의 규모 있는 청소년언론으로서의 영향력과 지위를 생각해서 눈치를 봐온 것도 사실이고….
  생각해보면 1318virus에 많은 신뢰를 갖고 있었기에 나라거나 내가 아는 몇몇 활동가들은 항상 덧글 정도로만 의견 표명을 해왔고 그 동안 노출되었던 여러 문제점들에 대해서도 그 이상의 행동을 취하지 않았다. 이런 덧글들이 그동안 거의 반영되지 않은 듯 보이는 것도 1318virus의 문제라면 문제일 것이다.


대안을 고민하며…

  긴 글 읽으시느라 힘드셨을 텐데, 짤막하게 결론을 요약하고자 한다. 이번에 1318virus가 메인 헤드라인으로 게재한 [학원탐방] 기획은, 더 이상 내가 1318virus를 신뢰할 수 있는지 의심하게 만들었다. 그게 어쩌다 한 번 나온 기사여도 그 내용이 문제가 될 판에, 시리즈로 3개, 4개씩 올라오는 기획이라니, 어쩐지 더 이상 답이 없다는 막막함을 느끼게 만든다. 그래서 지금 나는 1318virus에 대한 배신감을 이런 공식적인 글로 표현할 수밖에 없다. 또 그와 함께 이를 계기로 이 기회에 그동안 1318virus에 느껴왔던 여러 불만들까지 한꺼번에 이야기하려 했다.
  이제 나는 1318virus의 반성과 변화를 촉구하는 동시에, 다른 대안을 고민하고 있다. 이런 고민에 동의하는 많은 분들이 어딘가에 있을 거라고 믿으며, 그런 고민과 대안 모색에 함께할 것을 제안 드리며 난잡한 글을 마친다.
Posted by 공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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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어가는꿈2008. 2. 6. 14: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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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인권운동 워크숍]

청소년인권운동, 길을 묻다.

 

1. 여는 말

- 2006년, 청소년인권운동을 고민했던 사람들이 모여 ‘청소년 인권운동, 어디까지 왔나’라는 워크숍을 진행한 지 벌써 2년이란 시간이 흘렀습니다. 당시 워크숍에서 제기되었던 운동의 고민지점과 그 해결의 단초를 바탕으로 2년 동안 펼쳐온 청소년인권운동. 다시 그 청소년인권운동의 성과와 한계를 점검해보면서 활동 속에서 제기되는 고민에 대한 답을 찾는 자리를 마련하고자 합니다. 또한 청소년의 삶에 큰 파장을 갖고 오리라 생각되는 2008년 새정권의 교육·사회·청소년 정책들에 대해 청소년인권운동은 어떤 방향과 활동을 가져가야 할지 고민해보고자 합니다.

 

2. 일시 및 장소

- 일시: 2008년 2월 12일 3시

- 장소: 성공회대학교

 

3. 참가대상

- 청소년인권운동에 관심있는 청소년

- 청소년단체에서 활동하고 있는 청소년활동가 혹은 비청소년활동가

- 청소년인권운동에 관심 있는 교사 혹은 다양한 단체에서 활동하고 있는 비청소년활동가

 

4. 전체 프로그램

 

순서

시간

내용

비고

1

~ 3:00

참가자 등록

2

3:00 ~ 3:30

참가자 소개 및 몸풀기 마음열기

3

3:30 ~ 5:30

청소년인권운동 주제별 고민풀기

주제별 토론 후 발표 및 전체 토론

4

5:30 ~ 6:00

휴식

5

6:00 ~ 8:00

이명박시대, 청소년인권운동의 전략 모색하기

전체 토론

 

※ 청소년인권운동 주제별 고민풀기에서 주제는 다음과 같습니다.

- 청소년당사자들을 어떻게 조직할 것인가?

(주체를 만들 수 있는 조건을 만드는 운동은 무엇인지, 주체들을 만나는 운동은 무엇인지?)

- 지역에 기반 한 청소년인권운동, 어떻게 접근할 것인가?

- 청소년인권운동의 의제, 집중해야 하는가? 확장해야 하는가?

- 운동 속에 발견되는 청소년 보호주의. 어떻게 연대할 것인가?

- 자유주제(당일 접수를 받습니다.)

 

5. 참가비 및 문의

- 참가비, 청소년: 3천원 비청소년: 5천원

- 참가방식: 이메일(youthhr@chol.com) 혹은 네트워크카페(cafe.daum.net/youthhr)로 신청해주세요.

 - 문의: 전누리(02-365-5359, 016-297-9803)

Posted by 공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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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어가는꿈2008. 2. 2. 12:14
비주류적 소수자 운동 입장에서 본 민주노동당 논란

민주노동당 청소년위원회
윤종
 
 
  일단, 이 글은 청소년위원회 공식 입장이라거나 전체 입장에서 쓰는 게 아님을 밝힌다. 청소년위원회는 여러 단체, 여러 생각의 사람들이 모여 있는 부문 위원회라서 이 문제에 대해서도 각자 다른 생각들을 가지고 있다. 혹시라도 오해의 소지가 있을까봐 미리 밝혀둔다.
  하지만 이 글이 '청소년'운동 또는 '청소년'인권운동을 하는 한 사람의 입장에서 쓰는 글이긴 하다. 사실 나는 민주노동당 당원으로서 청소년위원회 활동을 한다기보다는, 청소년인권운동을 하는 한 명의 활동가로서 정세적 판단으로 민주노동당에 가입해서 청소년위원회 활동을 하고 있는 것에 가까울지도 모른다. 그리고 이 글도 그런 위치에서 나올 수 있는 이야기들을 정리한 것이다. (실은 정당운동이 성격에 잘 맞지 않는다고 느껴서 청소년위원회 활동도 줄이거나 정리하려고 생각하고 있던 차에 이런 일들이 발생해서 함부로 활동 정리한다고 말도 못하겠고, 눈치를 보는 중이다.)
 
  먼저 이른바 '자주파'와 '평등파'의 갈등이 내게 어떻게 보이는지, 간략하게 설명하고 들어가겠다. '평등파'에서는 종북주의, 패권주의 등등을 제기하고 있지만, 나 같은 정파도 없이 노는 비주류가 보기에는 패권주의란 건 어느 정도 힘을 가진 정파들이라면 모두 자신들의 생각을 관철시키기 위해 어느 정도 보여 왔던 모습들이고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인 것 같다. '종북주의'라거나 기타 등등의 비판들은 사상의 차이와 정치노선의 차이를 드러내는 것인데, 결국 지금 분당/혁신 논란은 대선 실패라는 상황과 맞물려 있긴 하지만 사상의 차이, 정치노선의 차이가 그 밑바닥에 있는 듯하다. 이른바 '자주파'가 무능해서 대선에 실패한 것인가, 하고 생각해보면 글쎄 그건 민주노동당 모두의 책임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이번 민주노동당 문제의 핵심은 어떤 운동 어떤 사업 어떤 가치를 우선시하고 어떤 주장 어떤 정치를 할 것인지에 대한 생각의 차이일 것이다.
 

정당과 소수자 운동
 
  거칠게 이야기하면, 내게는 이른바 '자주파'와 '평등파'의 싸움이라는 게 민족주의&통일&반미운동과 노동&계급운동 사이의 갈등 정도로 보인다. 물론 '평등파'나 '자주파'의 범주에 속하지 않는 정파들도 있고, 이른바 '평등파'나 '자주파'의 입장에 동의하는 사람 중에 장애인위원회나 성소수자위원회나 청소년위원회 등에서 활동하는 사람들도 있으니, 어디까지나 거칠게 말하면 그렇다는 것이다.
  나는 민족주의나 이른바 '종북주의' 등에도 동의하지 않지만, 동시에 계급모순에 중점을 둔 계급혁명이나 노동자계급중심성, 또는 자본-노동 관계에 중점을 둔 자본주의 분석 방식에도 동의하지 않으니까, 사실 둘 모두에게 별로 우호적이지는 않은 입장인 셈이다.
 
  민주노동당은 소수자들의 이익을 가장 잘 반영하는 정당이라고 해왔으나, 실제로 민주노동당 사업에서 '대중적이지 못한 소수자' 사업들, 비주류적인 사업들은 일반적 우선순위에 놓이지 못해왔다. 정책은 있을지언정 집중된 사업은 없는, 관련 활동은 부문 위원회에만 전담시키는 방식을 많이 취해왔던 것이다. 장애인운동처럼, 장애인운동을 하는 분들의 끊임없는 투쟁과 문제제기와 활동이 있는 경우에만 민주노동당은 힘을 실어왔고 비중 있는 사업을 펼쳐왔다. 한나라당이나 민주당이나 민주당계열의 당들(열린우리당, 대통합민주신당, 창조한국당 등)보다 민주노동당이 이런 문제들을 더 성의 있게 다룬다는 것을 부인할 생각은 없다. 하지만 다른 당과의 비교를 하지 않고 당 사업들로만 보면 만족할 만한 수준은 아니란 이야기다.
  이런 방식이 반드시 문제란 것은 아니다. 정당운동의 특성상 역량의 집중과 통합, 그리고 효율성을 요구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것이 어쩌면 당연하기 때문에 나는 이른바 '진보신당'이라거나 '제2창당'이 과연 소수자운동들과는 얼마나 직접적인 연관이 있을지 회의를 가지고 있다. 많은 표를 얻기 위해 어느 정도 효율성을 추구해야 하고 집중과 통합을 요구하는 게 정당운동의 숙명이라면, 소수자운동의 비중이 크지 않은 부분에 있어서 현재의 민주노동당이건 '진보신당'이건 '혁신 민주노동당'이건, 얼마나 차이가 있을까?
  정당은 어쨌건 어느 정도 덩치를 가질 수밖에 없고, 일정 부분은 내가 좋아하지 않는 대의제나 민주집중제를 취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거기에서는 일부 간부들의 토론을 제외하면 투표와 다수결이라는 방식이 통용될 수밖에 없다. 그런 속에서 다수의 조직을 가질 수 없는 소수자운동에 관련된 사업들이 얼마나 무게를 가질 수 있을지는 고민이 된다.
 

둘 모두 청소년에 대한 인식은 부재
 
  이번 분당/혁신 논란 상황에 관련해서 나온 지엽적인(?) 얘기들 중에, 청소년운동하는 입장에서 하나만 짚고 가겠다. 이건 그리 핵심적인 이야기는 아니니까 관심 없으면 그냥 넘겨도 된다. 이른바 '자주파'건 '평등파'건, 청소년운동에 대한 인식이 충분하지 못하다는 것이 드러난 발언이 있었다. '전진'에서 처음에 종북주의, 패권주의, 분당 문제를 제기했을 때 들고 나왔던 것 중 하나가 당 장악을 위해 12~13세의 '미성년자'까지 가입시켰다는 얘기였다. 그에 대해 반박 논조로 기사를 실은 「진보정치」(죽 읽어온 경험으로 추측건대 '자주파' 입장이 많이 표명되는)에서도 만일 그것이 사실이라면 윤리적 문제지만 사실이 아니다, 라는 식으로 글을 썼다.
  분명, 청소년당원들에게 연락을 돌려보면 개중에는 부모의 권유로 가입했다거나 등등 민주노동당에 별 관심이 없으면서 가입한 사람들이 있다. 그렇지만 나는 12~13세의 '미성년자'(사실 이 표현 자체가 차별이다.)를 가입시킨 게 왜 문제인지 모르겠다. 문제가 되는 게 있다면, 그건 민주노동당에 동의하지 않는 사람들을 인맥이나 혈연 등을 통해서 민주노동당에 가입시키는 행태일 것이다. 그리고 그런 행태는 '미성년자'에 국한되지 않고 모든 연령대에서 일어나는 문제이다.
  현재 민주노동당 당원 중에서 별로 민주노동당이 어떤 정책을 갖고 어떤 주장을 하는지도 잘 모르면서 친지의 권유로 일단 가입했다거나 한 사람들이 단지 '미성년자'들만 있지는 않을 것이다. 내가 아는 '미성년자'가 아닌 사람들 중에도 몇몇 있으니까. 또한, 선거철만 되면 - 가끔씩은 선거철이 아닐 때도, 당에서조차 친구나 친지들을 조직해오라고 당원들에게 압박을 주지 않는가! 이 말이 친구나 친지들을 '설득'하라는 말인 것을 모르는 바는 아니다. 하지만, 성과위주로 몇 명 명단 작성해오도록 용지를 나눠주고 사람들에게 할당량을 줘서 돌아온 결과물들이 정치적 사상적 설득에 의한 것일지 아니면 인맥, 학연, 혈연에 의한 호소나 권유에 의한 것일지는 한 번 고민해보기 바란다.
  그런데 왜 12~13세의 '미성년자'를 가입시킨 게 특별한 윤리적 정치적 문제라는 식으로 '평등파'와 '자주파' 모두가 이야기하는 것일까? 그건 그들이 청소년들(이른바 '미성년자'들)이 정치적 주체이며 정치적 판단력을 갖고 있다는 것을 부인하는 세간의 차별적이고 보호주의적인 인식을 그대로 갖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 대해서는 이런 논조로 발언을 한 모든 단위들이 책임있는 사과를 할 것을 요구한다.
 

운동이나 열심히..?
 
  청소년인권운동을 하는 입장에서만 볼 때, 민주노동당이 혁신을 하건 분당을 하건 신당이 만들어지건, 별로 중요한 변화는 없을 것이다. 중요한 변화가 없다는 건 그만큼 민주노동당 전체와 민주노동당의 청소년 관련 사업이 긴밀한 연관성을 가진 비중 있는 사업은 아니었기 때문이기도 하고, 앞서 말한 정당운동 자체의 한계 때문이기도 하다.

  '진보신당'을 주장하는 분들 중에 간혹 적록연대를 이야기하는 분들도 있지만, 실제 이 사회에서 이른바 '진보'정당(나는 사실 '진보진영'이라거나 '진보운동'이라는 개념틀도 허구적이라고 생각한다.)이 안고 있을 수밖에 없는 역량의 한계와 부족함, 절박함을 생각해보면 여전히 관건은 대중성일 것이고 대중적이지 못한 비주류적 운동들의 처지는 다르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이런 절박함이나 역량의 부족은 새로 창당된 '진보신당'이 더하면 더했지 덜하진 않을 것이다. 게다가 그 '록' 안에도 주류와 비주류를 나눌 수 있을 것이다. 단적으로 말해서 적록연대에 대해 논의되는 것을 보면 '록'에 대해 반전평화 아니면 생태환경에 대한 이야기들만 나오던데, 만일 적록연대가 단지 그런 운동들과 노동운동, 계급운동 사이의 연대만을 의미한다면 거기에서 배제되는 비주류들도 분명히 존재하는 것이다.
 
   민주노동당 문제에 한 분기가 될 대의원대회가 곧인 마당에 굳이 이런 글을 쓰는 것은 그냥 민주노동당에 '자주파'와 '평등파'만 있는 것처럼 비춰지는 것도 싫고 '진보신당'은 소수자운동의 이익을 반영할 수 있을 거라는 그런 이야기들도 별로 믿음이 안 가고 그렇다고 지금의 민주노동당이 맘에 드는 것도 아니어서 이다. 그리고 그런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나 혼자만은 아닐 것 같아서이다.
  개인의 입장에서만 말하자면, 좀 내가 청소년인권운동 안에서 위치를 정하는 데 다른 눈치 안 보고 편하게 생각할 수 있도록 빨리 민주노동당 분당/혁신 이야기가 정리되기를 바랄 뿐이다.
그냥 녹색당이나 기웃거려볼까, 하는 생각도 드는 요즈음이고, 또 한편으로는 역시 그냥 정당 같은 건 신경 안 쓰는 게 좋다는 생각이 강해진다. 나는 그저 청소년인권운동을 열심히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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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어가는꿈2008. 2. 1. 11:21
차별금지법, 반차별운동, 청소년인권운동 2탄

청소년인권활동가네트워크 공현

  여기 오신 분들이 난데없이 웬 2탄이냐고 하실지도 모르겠는데, 1탄(?)은 예전에 반차별공동행동 회의 겸 토론회 같은 거를내부적으로 할 때 내 맘대로 쓴 적이 있다. 사실 제목 새로 붙이는 게 귀찮아서 같은 제목으로 달고 2탄이라고 붙인 거니까 너무깊게 생각하시지 않는 게 좋다. 여하간에 내용은 <차별금지법, 반차별운동, 청소년인권운동>이니까 글의 제목 같은 거아무래도 좋지 않은가. 제목은 내용을 잘 반영하면 되는 거다, 음음.
  참고로 2탄의 내용에는 1탄의 내용도 포함해서 더 풍부한 내용을 담으려고 한 것이니 1탄은 굳이 보려고 하지 않으셔도 좋다.아니 안 보시는 게 좋을 수도 있다. “2탄”이라는 제목이 붙어있다고 해도, 이 글은 절대 반차별공동행동 회의에 참석하지 않는분들을 차별하려는 의도가 아니다.


  차별금지법과 청소년인권이라고 한다면, 단순하고 직관적으로생각하면 차별을 금지하는 사유 중에서도 ‘나이’의 문제와 연관을 지어야 할 것이다. 하지만 어떤 사람도 단 하나의 사회적·정치적정체성만을 가지지는 않으며, 청소년들도, 그리고 청소년인권‘들’도 여러 가지 다양하고 복합적인 내용들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법’과 ‘미성년자’라는 특수한 지위의 문제도 있고 하다 보니, 차별금지법과 청소년인권이 만나는 이야기는 조금 더 복잡해진다.
 현재 의 차별금지법이 과연 실제 여러 소수자들의 현실과 경험들을 얼마나 반영하고 있는지에 대한 고민은, 반차별공동행동의차별금지법안이 곧 제출될 지금 시점에서도 현재진행형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과연 어느 정도까지 차별금지법이 선언적인 법이 아닌실효성 있는 법이 될 수 있을까? 실제 다양한 차별받는 사람들의 상황에 어떤 영향을 줄 수 있을까? 내가 청소년인권운동을 하기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청소년인권 문제의 경우에 이런 고민들이 아주 조금이지만 더 가깝게 느껴지는 것 같다. 청소년들에 대한이른바 ‘합리적 차별’들은 과연 시정될 수 있을 것인가? 법률행위의 주체가 되지도 못하는 청소년들에게, 소송을 전제로 한구제제도들이 상당부분을 차지하는 차별금지법은 얼마만큼 영향을 미칠까?
  이런 이어지는 질문들에 맞닥뜨리다보면 “닥치고투쟁”이라는 우스갯소리가 떠오르고 만다. 역시 입법절차 자체보다는 투쟁과 실천과 운동이 중요한 것이었고, 그건 역시 고금불변의진리였던가!! (밟힌다) 여하간에 워크샵 취지에 맞게 법 자체에 대한 검토보다는 반차별운동 자체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려 한다.

 청소년인권활동가네트워크 는 (서기 2008년 1월 21일 아침 10시 졸린 눈을 비비며 폭설을 뚫고 신림역에 모여서 워크샵 발제문준비를 할 때) 차별금지법이 만약 제정된다면, 그 제정 이후에 차별금지법을 ‘이용’하여 전개할 수 있는 활동에 대해 논의하면서이를 크게 두 가지로 나누어봤다. 하나는 정부의 차별시정 정책 수립과 제도 개선에 운동이 개입함으로써 현재의 제도나 정책을바꾸어나가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청소년들에게 존재하는 아직 드러나지 않고 가시화되지 않은 다양한 차별 문제들을 이슈화시키는것이다.
  이 중에서 제도와 정책에 개입하는 방식은 사실 차별금지법이 없더라도 할 수 있고 또 해야 하는 것이다. 그래도만약 차별금지법이 제정된다면 정부에서 “차별시정 기본계획”이라는 형태로 5년에 한 번씩 명시적이고 포괄적인 형태로 계획안이 나올것이기에, 이를 검토하고 비판하고 개입하는 형태로 좀 더 편하게 효과적으로 운동을 전개할 수 있을 것이다. 예를 들어 선거권이없는 ‘미성년자’(만19세미만)의 선거운동이나 정치적 표현, 정당가입 등을 금지하고 있는 현행 공직선거법 및 정당법이라거나 등등여러 문제들을 지금은 이슈파이팅, 불복종 운동, 국회에 개정 요구 등으로 하고 있는데, 차별시정 기본계획에서 이러한 정치적 권리차별을 시정하도록 하라고 요구할 수 있게 된다. 개입가능한 영역이 하나 더 추가되는 것인데, 긍정적으로 보면 약간은 좋아지는것이고 부정적으로 보면 크게 달라지는 건 없다.
  다양한 차별 문제들을 이슈화시키는 활동이라는 것은, ‘청소년’에 대한차별과 청소년이면서 다른 정체성에 대한 차별들을 모두 포함한다. 여기에 대해서는 다른 운동들과의 관계맺음이라거나 현재 조건들에대한 고려가 필요하다. 예컨대 장애청소년의 중요한 권리영역인 교육권과 같은 문제는 장애인운동에서 적극적으로 제기해왔던 문제이고성소수자 청소년의 인권 같은 경우도 동인련이나 레즈비언상담소에서 많은 노력을 해왔다. 따라서 이런 운동들에 대해서는 연대하고함께하는 방향으로 운동 방향을 짜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한편으론, 학교에서의 종교로 인한 차별 문제라거나 사상으로인한 차별 등처럼 다른 차별사유가 개입되어 있더라도 청소년인권운동의 범주로 생각되어 온 것도 있고, 또 아직까지 운동의 의제로생각되지 못하고 있는 경우도 있다. 성적으로 인한 차별이라는, 학력과 연관되지만 학교 안에서만의 특수한 차별사유도있고(차별금지법에 포함 가능할까?) 탈학교-비학교 청소년이라거나 실업계 학생이라는 ‘학력’으로 인한 차별도 있다. 청소년노동인권문제와 노동운동의 관계처럼, 청소년 시기라는 사회적으로 조건 지어진 상황에 대한 고려가 운동 안에서 아직까지 많이 형성되지않아서 청소년인권운동 차원에서 전개하거나 개입해야 하는 경우도 있다. 이런 문제들에 대해서는 청소년인권운동이 반차별운동으로접근하고 제기할 책임을 지고 있다고 할 것이다.


  지금까지 청소년인권운동이 ‘차별’이라는 개념으로 인권상황을 해석한 경우는 은근히 적다. 청소년이라는 소수자, 또는 청소년들 중에 또 다른 소수자 정체성을 지닌 사람들이 처하게 되는인권침해 상황이 ‘차별’이라는 인식은 있었지만, 그것을 ‘차별’이라는 개념을 적극적으로 사용해가면서 규정하고 발언하지는 않았던것이다. 2006년 3월에 발의했던 학생인권법안에는 그 당시 논의되던 차별금지법에서 참고한 걸로 보이는 차별사유들에‘성적’이라는 차별사유를 더한 “차별금지” 조항이 있긴 했으나, 학생인권법안 자체가 선언적 성격이 강해서 몇몇 조항들을제외하고는 거의 다루어지지 못했었다. 사실상 ‘올바른 차별금지법 제정을 위한 반차별공동행동(준)’에 참여하면서 처음으로청소년인권 문제를 ‘차별’로써 적극적으로 고민하고, ‘반차별운동’에 대한 생각을 만들어가고 있는 중인 셈이다.
  처음으로‘반차별운동’을 고민하고 또 실제 운동을 해보면서 느끼는 것 중에 가장 중요한 것은, 차별은 단일하지 않다는 것일 듯하다.차별은 결코 단일하지 않으며, 오히려 세상에 존재하는 수많은 다른 권력관계와 사회적 조건들에 “차별”이라는 이름을 붙여 개념화한것에 지나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러므로 어떤 상시적 공동행동으로서의 반차별운동은 성립하기 어렵다. 흔히 이야기하는 동일성이 아닌차이에 기반한 운동이란 건 말은 좋지만 결국은 ‘다름’이라는 공통점(동일성)에 기반을 두는 것이며, 진정으로 차이에 기반을 둔운동은 외부에서 볼 때도 잘 드러나는 통일된 어떤 움직임 - 운동으로 성립하긴 어렵다.
  그러나 반차별운동은 운동과 운동또는 사람과 사람이 어떻게 연대할 수 있는지에 대한 실마리를 준다. 추상적 당위라거나 그와 비슷한 차원에서 “너의 해방이 나의해방과 연결돼^^”, “이게 다 자본주의 때문이니까 반자본주의로 고고씽~!” “다 연결되어 있으니까 다 연대해야 해. 그니까 이집회 좀 나와.”라고 하는 것을 넘어서서, 운동과 운동 그리고 운동 주체들이 서로 만나게 한다. 한 운동 안에도 다른 정체성의사람들이 있고, 그런 것들이 다른 운동들과 만날 필요성이 된다. 운동의 연대는 개념적이거나 이론적인 연관성이 아니라 운동을 하는사람들을 매개로 이루어지는 것이다. 가끔씩 이야기가 나오는 “반차별교육” 같은 경우도, 당장의 현안인 차별금지법 자체에 대한교육이 필요할 수도 있겠지만 궁극적으로는 이러한 고민을 담고 있어야 할 것이며 연속적이고 연결되는 형태로 구성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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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23일 반차별운동 워크샵에서 발제한 글입니당당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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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어가는꿈2008. 1. 23. 11:11

수능등급제 사실상 폐지...교육계 반발






1. 참세상 기사를 보고 문득 든 생각인데, 저 기사만큼은 표제 뽑는 게 무슨 조선일보 같네요.

기사 내용으로 보면 수능등급제 폐지에 반발한 건 전교조 뿐이고,
다른 교육운동 진영은 대통령인수위원회의 다른 교육정책들 전반에 대해 반대 입장을 내놓은 건데...

마치 "교육계"가 수능등급제 폐지에 반발한다는 식으로 표제를 달고 있어요 -_-







2. 수능등급제는 없어지는 게 차라리 낫다고 생각해요.

일단 수능등급제는 굉장히 불합리하다는 건, 직관적으로 알 수 있죠.

60점 52점과 51점이 있는데 60점과 52점은 4등급이고 51점은 5등급이라고 하면, 사람들은 단박에 불합리하다고 느끼잖아요.


물론 저는 수능에서의 점수배점(2점, 3점, 4점 등등)이라거나,
그런 시험으로 인간을 평가한다는 발상 자체가 불합리하고 지금과 같은 경쟁적 교육 자체가 불합리하다고 생각하지만,,, -_-


여하간에 불합리하다는 것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입시경쟁 자체가 불합리하니까)

포커스를 "수능등급제"로 맞추는 순간,
교육운동을 하는 사람들은 불합리한 제도를 불합리하게 옹호하고 있다는 공격을 당할 약점이 생기기도 하고

무엇보다도 쟁점이 입시전형의 방법으로 가버리잖아요?

이래서야 그동안 논술이냐 본고사냐 내신이냐 수능이냐 갖고 치고박던 바보들과 다를 게 없지 않나. -ㅂ-ㅂ-ㅂ-ㅂ-ㅂ-
아 그 바보들이 그 바보들이던가.


수능등급제는 걍 없애도 되니까
입시경쟁폐지, 대학평준화나 좀 하게 만들자고
Posted by 공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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흘러들어온꿈2008. 1. 14. 13:53


돕헤드가 상당히 의역을 한 거 같아서 원문도 구해보고 싶긴 하지만;; 뭐 여하간...


 

 

 

 

 

아나키즘과 청소년 해방

마크 시버스타인Marc Siverstein 지음



    오늘날의 사회에서 아동은 독특한 방식으로 억압되어 있지만 이들이 겪는 억압에 대해서는 스스로 진보적이라고 자처하는 사람들이나 급진적인 사회운동을 하는 사람들일지라도 잘 모르기 일쑤다. 불평등과 강요에 기반해 아동과 성인의 관계가 이뤄진다는 사실은 보통 인종차별이나 성차별 등의 사회적 억압과는 전혀 다른 문제로 받아들여지는데, 그 이유는 아동에 대한 차별이 어떻든 자연스러운 것이 아닌가 하는 인식에서 비롯된다. 아동은 경험이 부족하고 아직 미성년이기 때문에 스스로 결정을 내리거나, 자신의 일을 스스로 처리할 능력이 없다고 사람들은 생각한다. 그래서 사람들은 성인이 아동에 대해 어떤 형태의 권위를 행사하는 것이 정당한 것이라고 믿는다. 개인의 주권과 강요하지 않음, 그리고 자유연합과 상호부조의 원리에 기반하고 있는 아나키즘의 사상은 부모역할론, 교육일반론 그리고 아동육성론 등에서 비권위적 이론을 공식화하는데 중요한 도움을 제공한다. 또한 억압적인 사회를 살아가는 아동들이 해방을 시작하는데 아나키즘은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

   아동이 성장하면서 제일 먼저 경험하는 권위는 부모로부터 나온다. 부모는 아동이 태어난 날로부터 만 18세 또는 19세에 이를 때까지 법적으로 정당화된 보호권을 갖는다. 대부분의 부모들은 권위적이고 위계적인 관점에서 아동과 관계를 맺는다. 부모는 아동을 소유물로 바라보는데, 그래서 아동은 양육되어야 하고, 보호되어야 하며, 적정선을 지켜야 하고, 통제되어야 하며, 규율을 배워야 하고, 선행을 했을 때는 칭찬을 받고 잘못했을 때는 체벌을 받는 것이 당연한 것으로 여겨지는 것이다. 아나키스트들은 아동에 대한 이런 식의 개념에 반대한다. 왜냐하면 이런 생각은 아동을 부모의 부속물로 바라볼 뿐, 아동 역시 자율적 존재로서 자신의 권리를 갖고 있다는 것을 부정하기 때문이다. 러시아의 아나키스트 미하일 바쿠닌은 다음과 같이 간명하게 정리한다.

“아동은 그 누구의 소유물도 아니다. 아동은 부모의 소유물도 아니며, 심지어 사회에 소속된 사회적 소유물도 아니다. 아동은 그저 자신의 미래에 소속될 뿐이다.”


    일부 부모들은 핵가족 하에서의 숨막히는 분위기를 합리화시키기 위해 ‘자식을 과도하게 보호한다’거나 ‘자식을 지나치게 사랑한다’는 식으로 변명을 하기도 한다. 성별화된 질서가 생성되고 강화되는 것이 바로 이런 핵가족 제도다. 권위적인 이데올로기가 다음 세대로 전수되는 것도 바로 이런 핵가족 제도를 통해서다. 핵가족 하에서 성(性)에 대해 금욕적으로 억압한 결과 아동들에게서 신경증적이고 반사회적인 인격적 특성이 생겨나기도 한다. 많은 경우 부모들은 자신이 가진 특정 종교(유대교, 기독교 등)나 정치적 입장(미국에서는 공화당을 지지하는가 또는 민주당을 지지하는가 등)를 자식도 따라야 한다고 강요한다. 유대교 가정에서는 남자아이가 13살이 되면 유대교 성년식인 ‘바 미츠바(Bar Mitzvah)’라는 것을 열어야 한다고 은근히 압박하거나 또는 대놓고 강요하기도 한다. 이는 ‘남자아이가 성인이 된다’는 표시다. 하누카, 크리스마스 등은 아동이 강제로 참여해야 하는 종교적 잔치다. 자신 스스로 종교적, 정치적 신념을 갖도록 하는 기회를 아동은 부여받지 못한다.

    아이가 5살 무렵이 되면 학교에 보내지는데, 이곳은 아나키스트 밥 블랙이 정확하게 지적한 것처럼 ‘아동수용소’라고 부를 만하다. 이런 기관에서 아동은 교사에 의해 주의 깊게 감시를 당한다. 교사는 아동이 ‘의심스러운’ 행동을 할 때마다 보고를 해야 한다. 학교의 목적은 아동이 어떤 식으로든 자유로운 생각이나 개인성의 징후를 보일 때마다 은근하게 또는 명시적으로 제재를 가함으로써 그것을 꺾어놓는 것이다. 아동이 ‘제대로’ 행동을 하지 않을 때는 학생주임에게 보낸다거나, 교무실에 가둬놓는다거나, 정학시킨다거나, 퇴학처분을 내린다거나 또는 낮은 성적을 주는 등의 체벌을 가한다. 사립학교 대부분에서 그리고 많은 공립학교에서도 학생들에게 복장과 두발의 규정이 가해진다. 웃옷은 반드시 가지런히 바지에 넣어야 한다거나 허리띠를 반드시 매야 한다는 식의 조항까지 있을 정도다. 문신을 하거나 머리를 염색하거나 귀걸이나 피어싱을 하거나 또는 기타 다른 방식으로 개인의 정체성을 드러내고 싶어하는 학생들에게는 학생주임이나 또는 교장이 직접 나서서 호통을 치고 이를 금지시킨다.

   학생과 교사의 관계는 노동자와 사장의 관계와 정확하게 일치한다. 사장은 회사를 소유하고, ‘행동 규정’을 마련하며, ‘생산적인 근무 환경’을 조성하기 위해 노력한다. 권위자에게 의문을 품고 반문하는 것은 좋지 않은 것이라고 사람들은 생각하며, 학생들의 분노는 학생자치기구나 학교가 인정하는 학생회 등을 통해 조절된다. 이는 거대한 노동조합총연맹(미국의 경우 AFL-CIO 같은 단체)을 통해 노동자들의 분노가 조절되는 것과 유사하다. 학생자치기구가 사소한 개혁을 요구할 수는 있겠지만, 아나키즘이 요구하는 것처럼 학교의 존재 자체에 대해 반문을 제기하고 학교에서 벌어지는 강요와 폭력의 철폐를 요구할 수는 없을 것이다.

   학교가 감옥과 얼마나 많은 점에서 닮아 있는가 살펴보는 것도 매우 흥미롭다. 감옥과 학교 모두 다음과 같은 조건들이 적용된다. 권위적인 구조, 복장과 두발 규정, 다른 곳으로 이동할 때 허가를 받아야 한다는 점, 정숙과 질서에 대한 강조, 금지규정을 지키기 위한 단속, 행동에 대한 규제, 문제의 본질적인 해결이 되지 못하는 비본질적인 보상제도, 개인 자율성에 대한 상실, 자유에 대한 억압, 의사결정 과정에서 배제되는 것 등.

    이에 다음과 같은 질문이 나온다. 아동이 일상생활에서 접하는 이와 같은 특정한 종류의 억압에 맞서 싸우기 위해서는 무엇을 해야 할까? 가장 중요한 점은 가정과 학교 그리고 작업장--학생들은 패스트푸드 점 같은 곳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는데, 이런 열악한 환경에서 최저 임금을 받으며 착취를 경험한다--에서 기존의 질서를 완전히 전복할 수 있는 분위기부터 만들어내는 것이다. 다른 청소년들과 함께 자신이 부모와 성인들로부터 어떤 처우를 받고 있는지, 그것이 부당하지는 않은지 이야기해보자. 계급에 대한 자각은 필수적이다. 아동이나 청소년은 자신이 하나의 독특한 계급으로서 억압을 받는다는 계급의식을 가질 필요가 있다. 이와는 반대로 억압하는 계급은 삶의 조건에 대해 명령을 내린다. 아나키스트들의 국제노동조직인 '세계산업노동자회 IWW(Industrial Workers of the World)'의 규약 서문을 알기 쉽게 바꿔서 말해보면, 억압하는 계급과 억압받는 계급은 공통점이 하나도 없다.

   구체적으로 조그만 방식으로 불복종을 실행에 옮길 수 있다. 예를 들면 국기에 대한 맹세를 거부하거나, 학교가 강요하는 종교예배에 참석하지 않는 것, 또는 학교에서 내준 숙제를 할 때, 과제의 주제로 청소년 운동의 역사 또는 엠마 골드만이나, 학교에서 아나키스트 동아리를 만들고 반전 티셔츠를 입고 등교했다는 이유로 정학을 당한 15살 학생 케이티 시에라Katie Sierra 등을 택하는 것도 가능하다. 학생들 앞에서 이런 내용을 발표해보자. 이는 노동자들의 작업거부나 태업과 비슷한 방식의 불복종이다. 학교 바깥에서 다른 이들과 대화하고, 책을 읽고,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는 등 스스로를 교육시켜보자. 자신의 생각을 담은 전단지를 만들어 친구들에게 나눠주고 학교에 붙일 수도 있다. 혼자서 또는 친구들과 소책자나 잡지를 만들어 학교에 돌릴 수도 있다. 학생들의 수업거부, 동맹휴학 또는 ‘길거리를 되찾자’ 등의 방식도 적용해볼 수 있을 것이다. 이 때 본질을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단순히 지엽적일 수도 있는 문제들 예를 들어 강제적으로 이뤄지는 야간자율학습이나 두발 규제 등을 다룰 수도 있겠지만, 학생들은 이와 같은 문제들을 접하면서 더욱 급진적이 되어 문제의 뿌리에 다가갈 수 있게 된다.

   창조성을 발휘할 수 있는 가능성은 무궁무진하다. 예를 들어 내가 사는 지역의 한 아나키스트 동아리는 근처 개훈련장에 붙어 있던 ‘복종을 가르칩니다’ 라는 문구를 떼어내 한 고등학교에 펄럭이도록 붙여놓았다. 이런 행동은 어느 정도는 성공을 거둘 수 있다. 부모들과 학교 당국은 예전에는 별로 저항을 받지 않고도 지나갔던 것들이 이제는 학생들로부터 저항을 일으키게 된다고 느낄 수밖에 없는 것이다. 예전에는 자신들이 학생을 감시하고 통제했지만 이제는 자신의 그런 권력이 도전을 받으며 서서히 무너지고 있다는 것을 보여줄 수 있다. 학생은 전처럼 형태가 없는 한 무리의 온순한 양떼가 아니라 계급의식을 갖고 지성을 갖춘 젊은 청소년들로 조직되고 있음을 알게 될 것이다. 이 젊은이들은 자신의 삶을 스스로 책임지고 결정을 내릴 준비가 되어 있으며, 자신에게 명령을 내리는 주인을 영원히 없애나갈 것이다.

   아나키즘은 청소년 해방에 있어서 많은 것을 제공할 수 있다. 권위주의에 반대하고 강요와 폭력에 반대하는 아나키즘의 기본 원칙은 청소년이 처해 있는 노예와도 같은 속박상태에서 청소년이 자유로워지는데 강력한 도구가 될 것이다. 청소년의 해방에 있어서 아나키즘은 부모의 강요를 제거하는 것만이 진정한 해방이 아니라는 통찰을 제공한다. 즉 청소년의 해방을 가져올 수 있는 대안을 창조해내야 한다는 점이다. 대안을 창조하는 것이야말로 ‘이중권력 전략’의 좋은 예이다. 새로운 사회는 낡은 사회의 껍질을 벗고서 태동할 것이기 때문이다. (조약골 번역)
Posted by 공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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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http://www.zmag.org/content/showarticle.cfm?ItemID=1994

    위에 번역된 거 원문이 여기 있더라고....

    2008.01.14 15:49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2. 돕헤드

    의역은 하지 않았는데... 원문을 거의 그대로 직역을 했어.

    2010.05.08 20:28 [ ADDR : EDIT/ DEL : REPLY ]
    • "강제적으로 이뤄지는 야간자율학습이나 두발 규제 등을 다룰 수도 있겠지만,"

      외국에도 강제야간자율학습이 있어요?;;

      2010.05.08 22:28 신고 [ ADDR : EDIT/ DEL ]
    • 원문에서 찾아보니 그 부분은 (curfew, uniform etc)라고 되어 있네요; curfew는 야간 외출금지, 통금 같은 거니까 야간강제자율학습이랑은 좀 다르고 가정이나 기숙사 등에서의 귀가시간, 외출금지시간에 가까울 듯해요 @_@

      돕이 번역을 이상하게 했다거나 원문을 왜곡시켰다는 뜻이 아니라, 그냥 '강제야자'가 외국엔 없을 텐데 --; 라고 생각했던 거 같아요 읽으면서 ㅎㅎ;

      2010.05.08 23:17 신고 [ ADDR : EDIT/ DEL ]
  3. 2016 희년 청소년 해방 선포
    https://www.facebook.com/jubilee.free

    2016.09.11 21:09 [ ADDR : EDIT/ DEL : REPLY ]

걸어가는꿈2008. 1. 11. 13:57
2006년 3월에, 전북청소년인권모임(전북청인모, 또는 제발천원만;;) 사람들에게 썼던 글.
지금 와서 보면 참 몇몇 스스로 동의하기 어려운 표현들도 있지만서도...
당시엔 이런 고민을 했구나, 라는 생각도 들고
그리고 지금 나르샤가 제대로 안 되는 것도 참 쿨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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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힘은 언제나 민중에게 있지만 민중은 지배자에게 종속된다."

 아마 촘스키가 인용했던 말인 듯하다. (원래는 누가 말한 거였지 그럼;) 솔직히 말해서, 고등학교, 운동하기 꽤 열악하다. 노동자들이 투쟁에 나설 때는 절박함이 있다. 하지만 고등학생들의 투쟁은 상대적으로 절박함이 덜하다. 몇 년만 참으면 된다는 생각이 있기 때문이고, 그 몇 년 동안 체제에 순응하면 그럭저럭 살 수 있다는 생각이 있기 때문이다. 그 외에도 부모의 영향력 아래 있기 때문에 학교 짤릴 걸 각오하고 막 나가기도 어렵다든가, 학교 시간표 자체가 빡빡하다든가... 열거하자면 끝이 없다. 굳이 비유한다면 지금의 상황은 제대로 노조고 뭐고 만들어지지도 않았던 작업장의 노동운동일까. 소수의 운동가들이 생업에 바쁜 대중을 상대로 애쓰고 있는...(분명 차이는 있지만, 억지로 끼워맞추자면 -_-)


 본래 변화는 자생적인 동시에 개입적이어야 한다. 저~기 그람시라는 사람이 했던 이야기랑도 맥락이 좀 닿는데... 자생적인 변화의 움직임은 감정적인 불만의 수준에 그친다. 그러한 불만의 외침 속에서 선진적이고도 정치적인 보편 이론과 요구 원칙을 종합하여 구체화시키고, 그것을 확산시키는 것이 소위 운동가의 일이다. 그리고 운동가 운동가하지만 운동가도 사실 대중이잖아 -_-; 2005년 두발자유운동에서, 그것을 못했기 때문에 불만을 살짝 해소시키는 "완화"만으로도 학생 대중이 힘을 잃은 게 아니었던가. 머리 2cm만 더 기르게 해달라는 불만 차원의 요구를, 두발자유는 인권의 원칙이라는 데까지 끌어올리고 나아가서 모든 용의복장규정은 인권침해라는 데까지 나아가야 했다. 그리고 거기에서 더 나아가면 학교에서 발생하는 모든 인권침해를 이슈화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한국인들의 냄비근성 따위를 말하기 전에, 과연 운동가들은 얼마나 잘했는지 반성할 일이다... 일부는, 언론에 대대적으로 보도되는 등 관심을 받자 다소 낙관했던 것은 아닌지. 혹은 일부는, 아예 처음부터 그런 개입의 의지가 없었던 것은 아닌지.


 그리고 이는 2005년 두발자유운동 이후 만들어진 ㅈㅂㅊㅇㅁ에게도 하고 싶은 이야기다. 대중이 우리 편이 아닌 듯 느껴져도 우리는 대중 편이어야 한다는 말은, 결국 힘은 언제나 민중에게 있다는 점에서 기인한다. 젠장. 우리가 뭔 힘이 있겠냐. 돈이 있어서 섬 하나 사서 신세계를 건설하겠냐, 아니면 폭탄을 터뜨리겠냐. 마음 같아선 우리가 법 만들고, 우리가 스쿨폴리스(배움터지킴이)하고 싶지만 쳇. 우리의 힘은, 우리가 다수의 정당한 권익을 위해 싸우고 있기에 많은 대중 물량공세를 펼 수 있다는 것과, 끈질긴 정의에의 신념뿐인 것 아닌가.

 현재 청소년대중 중 상당수가 청소년인권운동에 그리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고 있다는 것은 사실이다. 또한 그런 곱지 않은 시선뿐 아니라 자기자신의 여러 문제(학업이라거나 연애라거나 가정이라거나 금전이라거나 시간이라거나) 때문에 힘든 것도 사실이다. 그래도 그런다고 포기할 수도 없는 것 아닌가. 오기로라도 가야 하지 않은가. 굳건한 의지. 음. 그래...

 누가 우리에게 그 길을 가라고 했나? 아니 나는 솔직히 이 길은 가야 하는, 갈 수밖에 없는 길이라고 여긴다. 큐안 군 말처럼.(http://blog.naver.com/sjhn3/40022365806) 우리는 우리의 자발적인 의지로, 고쳐야 한다는 당위 의식으로, 고칠 수 있다는 희망으로 한 걸음 더 내딛으려고 애쓰고 있지 않은가. 어제 비정규직 집회 가서 이 노래를 부르는데 왜 ㅈㅂㅊㅇㅁ가 생각나던지.


누가 나에게 이 길을 가라 하지 않았네
(글/조호상 가락/김성민)

누가 나에게 이 길을 가라 하지 않았네
내게 투쟁의 이 길로 가라 하지 않았네
그러나 한 걸음 또 한 걸음
어느새 적들의 목전에
눈물 고개 넘어 노동자의 길 걸어
한 걸음씩 딛고 왔을 뿐
누가 나에게 이 길을 일러주지 않았네
사슬 끊고 흘러넘칠 노동해방 이 길을


 

 뭐 ㅈㅂㅊㅇㅁ는 노동해방은 아니지만 말이지.
 혹시 "당신이 가라고 했잖아.-_-"라고 생각하는 사람 나중에 나 좀 보...(퍽!)

 우리는 장기전을 내다볼 수밖에 없다. 장기전을 내다보되, 그 전쟁의 승리를 어떻게 하면 조금이라도 더 앞당길 수 있을까 궁리하고 노력할 따름이다. 즉, 단기전 같은 기분으로 장기전을 치러내야 한다. 체력이 버텨줄까? 버틸 수밖에 없잖아 -_-

고독한 너의 발길이 머무르지 않는 건
귓가에 유혹 때문이라고 생각하진 마
물론 쉴 수도 있겠지만 우리는
무지개를 쫓는 방랑자처럼
우리가 흘리는 눈물만큼의 걸음을 걷잖아

- 동물원 「세상이 우리를 속일지라도」 中

 
 중고등학교, 청소년대중이 정치적으로 영향력을 지닌 세력이 되도록. 온전하고 정당한 권리의 주체로 대우받을 수 있는 힘을 지니도록. 그래서 좀 더 자유롭고 행복한 현재의 주인으로 살 수 있도록.
 힘내서 갈 것을 부탁하는 바.


--------------------------------------------------------------------

(본문 중에 링크된 큐안 블로그의 글 전문)


...... 

공현 : 자네는 청소년인권운동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나?

큐안 : 안하는 놈은 둘 중 하나야. 의지력이 없는 놈이든가, 아니면 머리가 없는 놈이지.

         개인적으로 난 전자였지......

...... 

그래.. 그랬다... 

나는 병신 같은 의지박약이었다.

공현을 보기 전까지... ㅋ


그렇다. 그건 안 하는 놈이 뭔가 없는 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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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정작 큐안은 요새 뭘 하고 있는 거지? -_-;;
Posted by 공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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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어가는꿈2008. 1. 11. 13:55
2005년 12월달에 만들었던 전단지.





여러분의 불온한 꿈들을 받습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시인 김수영은 모든 살아있는 문화는 본질적으로 불온하다고 말했습니다. 여기서의 불온은 정치적 불온 같은 것은 아닙니다. 그는 문화의 본질이 꿈을 추구하는 것이고 불가능을 추구하는 것이기 때문에 불온하다고 했습니다.

 여러분은, 살아있습니까?



에서 여러분의 삶과 꿈들을 받습니다.

 「 ① 검열 없는 신문 ② 기사 없는 신문 ③ 주체 없는 신문을 지향합니다. 검열이 없음은 우리의 꿈이 언론자유이기 때문이고, 기사가 없음은 지면 대부분을 의견이나 독자 투고/기고 등으로 채운다는 의미입니다. 주체가 없다는 것은 언론자유를 위해 발간자를 숨긴다는 의미인 동시에 신문 대부분을 여러분의 글로 채운다는 의미이며 편집부 의견과 다르더라도 글을 싣는다는 의미입니다.


 살면서 있었던 재미있는 이야기들, 가슴 따뜻한 이야기들, 또는 생각한 것들을 자유롭게 적은 수필이나 그냥 사는 이야기도 좋습니다.

 친구들에게 소개하고 싶은 노래나 책, 영화 등을 소개하는 글도 좋습니다.

 세태나 시사적인 문제에 관한 칼럼이나 논설도 좋습니다.

 삶에 대한 성찰이나 기발한 상상력이 담긴 도 좋습니다.

 긴 게 귀찮으시다면, 누군가에게 하고 싶은 말, 세상을 향해 외치고 싶은 말을 한두 줄로 쓴 투덜거림, 외침, 고백 같은 것들도 좋습니다.


 글의 분량은 일반 글의 경우 원고지 400자~3000자이고, 한두 줄 코너의 경우 원고지 100자~200자 내외의 한두 문장입니다. 맞춤법 등 정서법을 편집부나 독자가 읽기 너무 껄끄럽지 않을 정도로는 지켜주시면 감사하겠으며(의도적 일탈 허용 가능) 맞춤법이 틀린 경우 그에 한해 교정을 볼 수도 있습니다. 또한 타인의 명예를 훼손(이에 대한 판단은 관련법 및 판례를 참고하여 이루어짐.)하거나 부당한 인신공격을 가하는 글은 실을 수 없습니다. 여러분의 개성적인 글, 삶이 담겨있는 글, 재밌는 글, 읽을 가치가 있는 글 등을 기대합니다.


 원고를 내는 방법은 http://cantabile.mireene.com/에 글을 올려주시거나, 1학년의 ***(1반, 010-****-****), 2학년의 ***(6반, 011-****-****), ***(11반, 010-***-****), ***(12반, 011-***-****)에게 원고를 주시면 됩니다. 낼 때 그것을 익명으로 실을지 기명으로 실을지 표시해주시기 바랍니다.


Posted by 공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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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어가는꿈2008. 1. 11. 13:48
역시 오답 승리의 희망 초기 기획(2005년말~2006년초) 때 나온 글.
나르샤(그때는 전북청소년인권모임(청인모)였지만) 안에서 회의를 거듭한 끝에 결국 1호부터 8면으로 발행하게 되었고, A4가 아닌 타블로이드판으로 찍게 되었지만...
이름은 이때 직후에 "오답 승리의 희망"으로 정해졌었던 거 같다.



1. 추정 예산 : 15만원 이하(9만원은 저번 학교 폭력 토론회 참가하고 받은 돈. 나머지는 기부로 충당.)


2. 부수 : 100부 이상 200부 이하


3. 종이 : A4 재생지 사용


4. 내는 시기 : 창간호는 내년 학기 초에 낸다. 그 다음호부터는 1년에 두 번, 매기말고사가 끝나고 방학하기 전에 낸다.


5. 제호(題號) : 오답 승리의 희망, 창틀에 걸린 꿈들(…), 바람에 손을 내밀다(…), 바람 부는 창틀(이건 뭐냐.) 등이 후보다.


6. 삼무(三無) 원칙 : ① 검열 없는 신문  ③ 기사 없는 신문 ② 발간주체 없는 신문(검열을 피하고 기자가 없다는 점에서)


7. 받는 글의 조건

① 분량 - 원고지로 400자 이상 3000자 이하 또는 원고지 100자 이내의 한두 문장.(코너에 따라 다르다.)

② 맞춤법을 편집부나 독자가 껄끄럽지 않을 정도로는 지킬 것. 의도된 일탈의 경우 허용 가능.

③ 글의 종류는 논설, 수필, 시 등이 가능. 소설은 지면 문제로 아직 받을 계획 없음.

④ 개성적이거나 재미있거나 의미 있거나, 여하간 최소한의 읽는 맛이 있을 것.


8. 글 수집 방식

 ㄱ군이 운영하는 〈오답 승리의 희망 cantabile.mireene.com〉 홈페이지에 게시판을 개설해서 받고, 각 학년마다 두 명이나 세 명의 인원을 노출시켜 글 수집을 맡긴다. 글은 익명으로 할지 기명으로 할지 원고를 낼 때 표시하게 한다. 출간하기 2주일 전까지는 수집을 완료한다.


9. 편집부가 하는 일 : 원고를 받아서 어떤 것을 실을 것인지, 어디에 배치할 것인지를 정하며 맞춤법 교정을 본다.


10. 지면 구성

  지면은 4면 구성을 기본으로 한다. 1면에는 편집부의 말과 목차, 그리고 편집부 측에서 쓴 논설(사설이라고 할까.)을 싣는다. 2면부터 4면까지는 학생들의 글을 싣는다. 4면 나머지 부분에 편집부의 추천 도서나 읽을 만한 시 등을 싣는다. 글자는 읽기 쉬운 크기로.


11. 내용 구성

 코너는 <살다보면>(수필이나 재미있는 이야기 등으로 구성) <촌철살인?>(학교, 또는 시사적 이슈에 대한 논설) <한두 줄로 말하기>(문자 그대로 짧게, 학우들이나 교사 등에게 하고 싶은 말) 등으로 구성한다. (이름은 바꿀 수 있으며, 추가할 코너가 있으면 마음대로 할 것.)


12. 꿈

8면으로의 증면. 궁극적으로 다른 학교 학생들의 글까지 받아서 전북권으로 배달하는 신문을 지향한다…?


Posted by 공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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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어가는꿈2008. 1. 11. 13:44
(2006년 1월에 쓴, 오답 승리의 희망 창간호 작업을 하고 있을 때의 글입니다.)




오답 승리의 희망이란 이름은 뭐 바라나기 군이 지은 거고...
어찌어찌하다보니 엠덴의 오답 승리의 희망 홈페이지에 오답 승리의 희망 신문이 얹히게 되었군요.




//


지하신문을 구상한 사람으로서 대략 끄적여봅니다. 이건 창간사 아닙니다.







왜 지하신문인가?


  처음에 하고 싶은 것은 게시판 만들기였습니다. 대학교에 대자보 게시판이 있듯이... 학생들이 자유롭게 자기 글이나 구호 같은 걸 갖다 붙일 수 있는 게시판을 원했습니다. 아마 그 안을 입안했던 게 작년(2005년)초였던 것 같은데, 학생회에 건의를 넣어도 미적미적 의지가 없고 등등의 이유로 제대로 되질 않던 차였죠.
 그러던 게 우여곡절 끝에 신문의 형태까지 왔군요. 뭐 그 과정에는 교내 학생 자치 신문이 교감의 압력을 받은 사건 등이 있었습니다.
 사실은 옛날부터 "신문이 나오면 어떨까?" 같은 생각을 했지만 금전상 이유 같은 걸로 망설이고 있었습니다. 뭐, 이러쿵저러쿵해서 결국 내게 된 거죠.
그렇다고 게시판 건을 포기한 건 아닙니다만.


 제가 "기사 없는 지하신문"을 생각한 건, 두 가지 문제의식에서 출발했습니다. 하나는 좀 떠들어보고 싶은데 공적으로 떠들 창구, 광장이 거의 없다는 점, 그리고 또 하나는 현재 학교에서 언론 탄압이 자행되고 있다는 점입니다.

  교실에 앉아서 떠든 투덜거림은 쉬는시간 끝나는 종이 띠리리리링(곡명 : 소녀의 기도) 침과 동시에 그냥 공기 중으로 사라져버리고 맙니다. 아무리 ㅅㅂㅅㅂ 거려도 찌질이 짓 이상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사적인 영역의 비판, 비난, 뭐 그런 것들을 공적인 영역으로 끌어올릴 길이 필요했습니다. 그래서 게시판이었고, 지금은 기사 없는 신문입니다. 곧, 학생들의 생각, 삶, 그런 것들을 모두 받아서 실어보고 싶었습니다. 마음 같아서는 학교나 현실 욕한 것만 싣고 싶지만 그건 너무 "노려보는 눈동자"가 될 테고 또 재미도 없을 것이며 공정함의 부분에도 문제가 있기 때문에 비판적인 글, 살면서 있었던 재미난 이야기들, 하고 싶은 말, 뭐 그런 것들을 다 받기로 마음 먹었습니다.
 두 번째 문제의식이 바로 왜 이 신문이 당당하게 지하신문을 표방하는지에 관한 답입니다. 소로우를 모방하자면 "언론을 부당하게 탄압하는 사회에서 정의로운 언론이 있을 곳은 역시 비합법적 지하다." 글을 익명으로 실을 수 있도록 하자고 한 것도 그때문입니다.



오답 승리를 꿈꾸며

  정명(正名) 사상이라는 게 있습니다. 공자라는 노회하신 짱구님이 말씀하신 건데요. 사람은 자기 이름에 맞춰 살아야 세상이 잘 돌아간다는 소리입니다. 아니 그러니까 작명소 가서 이름을 잘 지어야 한다는 이야기가 아니라... 임금은 임금답게, 신하는 신하답게, ...(중략)... 청소년은 청소년답게, 학생은 학생답게.
 학생다운 건 뭘까요? 중고등학생의 경우는, 공식적으로는 술담배 안 하고 게임 내지 컴퓨터는 적당히(즉, 대략 일주일에 한 시간 쯤?)하고 22시까지는 기본으로 학원, 학교, 독서실, 집 등에 처박혀서 공부하는 겁니다. 여기서 공부는 수능 공부일 수도 있고 자격증 따는 걸 수도 있고 실기 공부일 수도 있죠. 가끔 어떤 분들은 학습 명목으로 파견근로도 나가신다고 들었습니다. 글쎄요 여하간 반항 안 하고 노예 도덕(참고도서 : 도덕교육의 파시즘(김상봉 지음)) 배워가면서 인생을 유예하는 행동양식이죠, 학생다움은. 그리고 그래놓고 나중에 밤 새며 시험 공부한 거, 선생님들한테 맞은 거, 선배들한테 기합 당한 거, 시험 죽 쑨 거, 그런 것들을 추억이라고 간직하죠. 물론 이건 공식적인 이야기고 실제로는 어느 정도의 술이라거나 오락실, 영화, 적당한 음란물 시청 등은 허용되고 있고, 또 그게 또 다른 의미에서 학생다움이 되고는 있습니다만. 여하간 그것도 공부하기 위한 재충전 시간으로서의 놀이로밖에 인정 못 받는 거 아닙니까? 청소년다운 것도 비슷하죠. 어른이 틀린 소리 해도 어른 앞에서는 자존심이고 양심이고 다 굽히고 말대꾸하지 말고 '예의' 지키고 말입니다. 청소년은 미성숙하니까 알바 임금도 제대로 못 받는 게 당연하구요. 18세 선거권도 없죠. 나머지는 학생다움과 대동소이.
  이게 이 사회가 '정답'이라고 규정하고 있는 모습입니다. 우리들의 생활은 어떤가요? 우리들의 행복은, 욕망은 어떤가요? 여기에서 벗어나고 싶어하는 꿈틀거림. 그리고 실제로 어느 정도는 이미 벗어나 있는 우리들. 그들의 등 뒤에서 그들을 욕하고 술담배 가끔 빠는 분도 있고. 불온한 책이나 만화책을 읽어대죠. 불온한 노래를 듣죠. 우리들의 생활 자체가 '오답'인 경우가 얼마나 많나요? 또 우리들의 머리 속에서 거품처럼 보글보글 끓고 있는 그 수많은 반감들. 정답에 대한 부정들. 자유!
그래서 오답 승리입니다. 정명에 대항하는 오답입니다. 그리고 희망입니다.

 이 오답승리의 희망을 통해 "우리도 말할 수 있다."라는 메시지를 전하고 싶습니다. 오승희라는 매체의 메시지는 언론 자유 그 자체입니다.
 우리에게도 생활이 있다. 우리도 답답하면 창밖으로 뛰어내리고 싶다. 우리도 불만이 있다. 우리도 비판할 수 있다. 우리도 생각 있다.... 그리고 우리에게도 입이 있고 글을 쓸 손이 있다!
 사설이나 편집부 코너 등을 통해서 은근히 이런 메시지를 포함해서 편집부의 사상을 전파할 생각이기도 합니다. -_-


  이미 늦었을지도 모릅니다. 아무리 학생회를 법제화해도, 두발자유를 외쳐도, 언론 자유를 외쳐도, 이 사회의 학생들에게는, 학교에는, 뿌리깊게 냉소적 좌절감이 박혀있는지도 모릅니다. 무력한 순응주의가 뿌리내렸는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래도 우리는 해봐야 하는 겁니다. "우리도 말할 수 있다! 우리도 승리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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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승희라는 시인이 있습니다. 물론 이 신문과는 전혀 관계 없죠. 우연히 이름이 같을 뿐. 바라나기 군의 말대로 사죄를 드려야 할는지...
 여하간 이것도 인연이라 생각되어 오승희 님의 시 중 한 편을 올려봅니다.



늦었다고 생각될 때

야송/오승희

그대여,
희망을 갖게나
하늘에 소망을 두고
과거에 집착하면
앞을 보지 못한다네

눈물은 흘리되
좌절은 말게나
고목나무에도
꽃이 피지 않던가
다시 시작하여 보세
Posted by 공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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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어가는꿈2008. 1. 10. 12:41

[내 말 좀 들어봐] 돌아갈 수 있을까, 돌아가야 할까

가출소년 따이루, 자유를 찾아 집을 나오다

따이루
신발을 걸치고 도망쳐 나온 그날

난 2006년부터 청소년인권운동을 해왔다. 집에서는 '어린 것이 뭘 아냐, 학생의 본분은 공부다, 빨갱이들한테 휘둘리지 말고 학교나 열심히 다녀라, 쪽 팔린다' 이런 반응이었다. 가족들은 몇 달 저러다 말 거라고 생각했을 거다. 근데 몇 개월이 지나도 애가 점점 더 빨개지는 것 같고 머리만 커지는 것 같으니깐 태클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통금시간이 생기고, 컴퓨터를 할 때마다 감시를 받고, 통화 내역도 조회하고, 주변 친구나 활동가들 연락처를 여기저기서 모아서 연락망까지도 은밀히 만들었다. 난 이걸 블랙리스트라고 부른다. 학교에 전화해서 내 학교생활과 친구에 대해 알아내는 건 기본이었다. 집이랑 학교가 나도 모르게 나에 대해 통화하는 것도 물론이구. 너무 화가 났다. 나를 통제하고 보호하려고만 하고, 나와 대화는 하려 하지 않는 그런 자세와 행동들!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내 뒤가 캐지고 있다는 사실이 무섭고 화가 났다.

그런데 달리 방법이 없었다. 내가 아무리 '기분 나쁘다, 문제 있는 거 아니냐' 해도 듣는 둥 마는 둥 하면서, 네가 잘했으면 내가 이러겠냐면서 오히려 나한테 화내고……. 쥐뿔도 없는 나는 그냥 닥치고 가만히 있는 것밖에는 방법이 없었다. 그 사람들로부터 독립할 힘도, 돈도 그 무엇도 없었으니깐. 그렇게 싸우다 지고, 외출금지 당하면서 겨우겨우 살았다.

서울시교육청 앞에서 1인시위를 벌였던 따이루~


2007년 11월 11일에 큰 집회가 있었다. 며칠 전부터 뉴스에서 경찰이 집회를 원천봉쇄하고 강경대응 하겠다 어쩌겠다 하면서 난리를 쳐서 엄마아빠는 내가 저기 갈 수도 있다고 생각했나보다. “일요일에 교회 갔다 어디도 가지 말고 바로 집으로 와! 특히 집회는 절대 가지 마!”라고 경고를 했다. 순간 급당황;; 하지만 가고 싶었던 집회고, 무조건 집회 가지 말라고 협박하는 부모님의 모습이 더 짜증났다. 그래서 정성 가득 감동적인 편지를 한 장 써놓고 집회에 갔다. 편지 쓰면서 집에 가면 욕먹고 일주일 정도 외출금지 당할 거라고 대충 예상은 했었다. 통금 10분전. 집회 끝나고 집으로 들어가려고 문을 여는데 집안 분위기가 완전 얼음장이었다. 아빠가 나를 죽일 듯이 째려보더니 어디 갔다 왔냐, 왜 갔냐, 왜 엄마아빠 말 씹고 가냐, 죽고 싶냐면서 취조와 협박을 하셨다. 난 완전 쫄아서 개미만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러다 오늘은 참는다는 듯이 “이제부터 무기한 외출금지다. 엄마아빠 있을 때만 허락받고 컴퓨터 켜고 숙제만 해라. 텔레비전 보지 말고 성경말씀 읽어라!” 헐;; 이런 표정으로 문 쪽에 얼어붙은 채 가만 서있었다. 그때 방에서 날 째려보던 아빠가 흥분해서 소리를 지르더니 내 머리를 잡아당겨 내동댕이치면서 패기 시작했다. 마음이 얼어서 그런지 아주 많이 아프지는 않았다. 근데 눈물이 줄줄 흐르더라. 무서웠다, 아빠의 그 살기어린 눈빛이. 그때 엄마가 외치더라구. “왜 애를 패요? 차라리 내보내요.” 그 순간 난 본능적으로 신발을 걸치고 도망쳐 나왔다. 그리고는 지금 얹혀사는 집으로 달려갔다. 답답한 마음을 안고…….

돈 나갈 구멍은 많고 혼자 할 수 있는 일은 없고…

집을 나오고 나니 하나에서 열까지 다 힘들다. 그 중에 좀 더 많이 힘든 것 중 하나는 텅텅 빈 지갑!

계획된 출가가 아니라서 모아둔 돈도 없고, 당장 돈을 벌 수 있는 특별한 기술이나 인맥도 없고, 알바를 하려고 해도 노동부의 허가증이 필요한 나이여서 일자리를 구할 수도 없다. 지금 얹혀사는 곳은 신림이고 학교는 구로여서 학교를 가려면 버스와 지하철을 타야 해서 차비도 많이 든다. 밥 사먹느라 또 돈 들고……. 수입은 없는데 지출만 생기다보니 빚이 몇 만원이나 생겨버렸어. 거기다 앞으로 급식비에, 학교운영지원비에, 고등학교 가려면 입학금에 교복 값, 준비물 값, 소풍·수련회비도 내야 하는데……. 아프면 병원비도 내야하고 계속 얹혀살기 그러니까 월세도 내야 하는데……. 아무리 아껴 살아도 돈 나갈 구멍이 너무 많다. 내가 공부하고 싶어도 돈이 없어서 못할 수도 있다고 생각하니 우울했다. 그래서 무상교육의 필요성을 더욱 간절히 느끼고 있다. 이번 대통령선거에서 간절히 원했던 것 중 하나가 무상교육이었는데, 엠비(MB)가 되셨으니 투잡(two job) 뛰어야 겨우 학교 다닐 것 같다─┌이런……. 아픈 것도 걱정이다. 특히 의료보험적용 힘든 치과. 난 이가 성하지 않은데, 아파도 돈이 없어서 병원 못갈 생각하니깐 너무 싫어 미칠 거 같다. 투잡도 모자란 것 같다. 추가 부업으로 인형 눈이랑 봉투도 열심히 붙여야겠다!

두 번째로 날 힘들게 하는 건 보호! 알바를 하려 해도, 핸드폰을 만들려 해도 보호자 동의가 없으면 어쩔 수가 없다. 보호자동의 없이 할 수 있는 게 손꼽힐 정도다. 그나마 엄마와 옛날에 했던 약속 중 하나가 '고등학교 입학에 한해서 보호자 동의를 해 준다'여서 고등학교 갈 돈만 되면 갈 수는 있을 것 같다.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내 삶이고 내가 할 일들인데 나보다 왜 보호자가 중요한 걸까? 내가 가고 싶은 길과 부모님이 갔으면 하는 길이 다른 건 당연한 거잖아. 둘은 분명 서로 다른 인격체니깐! 자식은 부모의 소유물도 축소판도 아닌 한 인격체잖아. 그런데도 청소년에게는 선택할 권리도, 스스로 자기 인생을 만들어 나갈 권리도 없다.

“걸리면 집에서 쫓겨나.” 청소년들이 얼굴을 가리지 않고 당당하게 활동을 할 수는 없을까?


이런 세상에서 나 혼자 헤쳐 나가야 한다고 생각하니 참 막막하다. 앞으로 어떤 일이 닥칠지 모르지만 세상은 돈 없으면 죽으라고 하니 더 막막해진다. 그러고 보니 왜 어른들은 청소년들을 보호해야 한다면서 이런 미친 세상으로부터는 우릴 보호하지 않는 거지? ㅋㅋ

돌아갈 수 있을까, 돌아가야 할까

가출 후 선생님의 중재로 엄마와 협상(?)을 진행했었다. 하지만 협상은 그냥 엄마와 나의 생각 차이만 확인하고 별 진전 없이 끝났다. 그렇게 두 달이나 지났다. 정해진 것도 없이 무작정 기다리면서 살다보니 그런지, 사는 게 불안정해서 그런지 폐인생활 모드가 점점 심해지고 있다. 그래서 엄마에게 메일을 보냈다. 엄마는 건강하게 지내라는 말만 하셨다. 그래서 직접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어떻게든 마무리를 짓고 돌아가고 싶은 마음에 양보안을 내놓았다. 그러다 인권운동에 대해서는 터치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받아냈다. 하지만 엄마는 '통금 7시!'를 계속 주장했다. 난 받아들일 수 없었다. 통금시간이 오후 7시면, 친구들하고 놀지도 못하고 인권운동을 하지 말라는 거랑 다름없다-_-

하지만 이 협상에서 인권운동 하는 걸 인정받았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엄청난 성과라고 생각한다. 나에게는 아무것도 가진 게 없다. 오직 깡 하나만 갖고 하는 이런 불공정한 협상에서 이 정도 성과를 건져 내다니, 부라보~ 노동자들이 회사랑 싸우는 거랑 청소년이 집이랑 싸우는 거는 상당히 비슷하다. 노동자나 청소년이나 ‘깡’ 하나밖에 가진 게 없으니까. 기계를 멈추고 서비스를 중단할 ‘깡’, 집을 나올 ‘깡’. 그나마 노동자들은 빈약하게라도 법의 보호를 받지만, 가출한 청소년은 법의 도움도 받지 못한다. 청소년의 가출할 권리, 독립적으로 살 권리도 노동자의 파업권 이상으로 보장되어야 할 권리 아닐까. 이 권리를 당당하게 쓸 수 있는 세상을 만들고 싶다.

나와 부모님의 생각 차이는 두 달 정도의 가출로는 뛰어넘기 힘들 것 같다. 집에 들어가는 조건인 ‘무조건적인 오후7시 통금’에 동의할 수 없기에 난 여전히 집을 나와 있다. 그리고 이제 나는 독립해서 사는 걸 꿈꾸고 있다.

가출 후에 찾은 길

가출을 한 후에 얻은 게 은근히 많다. 미역국 안 질기고 적당히 담백하고 고소하게 끓이는 법, 김치볶음밥 타지 않고 맵지 않게 만드는 법, 김치찌개 고소하고 얼큰하게 끓이는 법, 쓰레기를 반으로 줄이는 법, 빨래를 깨끗이 냄새 안 나게 하는 법, 청소 빨리 잘 하는 법 등등과 같은 생활의 지혜를 배웠다. 당장 내 앞의 일들과 좀더 먼 미래에 대해 계획도 세우고 의지도 다졌다. 나를 지지해주고 힘들 때 도와주고 필요할 때 태클도 넣어주는 진짜 친구들도 만났고, 집에 있었다면 하지 못했을 추억들도 만들었다. 그리고 8만3천원의 빚(ㅋㅋ). 가장 큰 건 '나'를 찾으려 노력했고 '나'를 찾을 길을 발견했다는 거다. 내가 하고 싶은 일, 내가 꿈꾸는 세상, 내가 원하는 가치관을 자유롭게 외치면서 난 나를 찾아 나갈 거다.

가출 후 힘들어 하면서도 좋아하는 나 자신을 보면서 가족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된다. 가족이라는 건 분명 이 사회에서 가장 따뜻할 수 있는 공간이다. 하지만 가장 폭력적으로 될 수도 있는 공간이다. 가족이 나에게 주었던 보호와 억압의 벽을 부수고 나온 지금! 앞으로 해야 할 일도, 하고 싶은 일도 많은 지금이, 내가 보이고 내가 개척하는 이 길이 좋다. 후회는 없다.

[끄덕끄덕 맞장구]
집을 나온 뒤 친구네에 얹혀살며 두 달이란 긴 시간을 보낸 따이루. 워낙에 단단하고 활기가 넘치는 사람이라, 자유가 주는 달콤함과 여유 때문인지 때론 배짱이 정말 두둑해보여 큰 걱정은 하지 않았는데……. 그래도 막막함과 불안감이 그림자처럼 따라붙는 건 어쩔 수 없었나 봅니다.

10대 때 청소년 인권을 포함해서 사회 문제에 관심을 갖고 활동을 시작했다 가족들이 말리거나 금지해 활동을 접는 청소년을 여럿 보았습니다. 가족에게 생존과 교육을 의탁할 수밖에 없는 청소년의 처지에서 부모의 뜻을 따르지 않기란 쉬운 일이 아니지요. 부모의 뜻이라면 무조건 따르는 게 자식 된 도리라고 가르치는 사회에선, 부모와 자식을 독립된 인격체로 보지 않는 사회에선, 청소년은 바른 판단을 내릴 수 없다는 편견을 버리지 않는 사회에선 더더욱 그렇겠지요. 그래서인지 인권활동을 계속할 수 있는 조건을 약속받기 위해 거리로 나선 따이루의 싸움이 더욱더 힘겨워 보이고 안쓰럽습니다.

대개 부모와의 갈등 때문에 집을 나온 청소년에게는 철없는 아이, 반항적인 아이, 위험에 빠지기 쉬운 아이라는 시선이 따라붙습니다. 빨리 집으로 돌려보내는 것이 최선이라는 생각에, ‘그렇게 생고생하지 말고 양보하고 집으로 들어가라’라는 충고도 많이 합니다. 그런데 이런 말은 백기 투항하고 부모가 원하는 대로 살라는 말과 다르지 않습니다. 자유로운 삶의 영역을 확보하고자 하는 열망이나, 사실 그/녀들이 부모와의 싸움에서 아무런 패도 내밀 수 없는 약자라는 사실은 간단히 잊힙니다.

최초의 둥지를 떠나온 청소년은 아무 자기 보호막도 없이 차가운 거리에 서고 살아남기 위해 위험하거나 착취적인 관계에 휩쓸리기 쉽습니다. 다행히 따이루는 피신에서 가출, 독립으로 이어지는 그의 삶을 지지해주고 먹을거리도 챙겨주는 관계망이 형성되어 있습니다. 있는 집 청소년은 유학이다 연수다 해서 부모와의 갈등을 잠시 회피할 수 있겠지만, 달리 선택의 여지가 없어 거리로 나온 청소년들은 어떨까, 마음이 무거워집니다. 집을 떠나는 이유가 무엇이든, 청소년이 주어진 둥지를 떠나 독립적으로 새 둥지를 만들 권리가 보장된다면, 그 세상은 더 많은 것이 달라져 있을 겁니다.

안락한 삶 때문에 나이가 아무리 들어도 부모가 지어준 둥지를 떠나지 않으려는 이들이 늘어나고 있다는 요즘, 안락함을 포기하는 대신 자기 길을 찾아 나선 따이루가 더 각별하게 느껴집니다. 이 싸움에서 따이루가 꼭 ‘이겼으면’ 좋겠습니다. 뜻도 용기도 열망도 꺾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따이루가 좀더 유리한 위치에서 부모와의 협상을 잘 마무리할 수 있도록, 그 버티는 시간 동안의 고단함을 지켜보고 힘이 되어 주고 싶습니다. [배경내]
◎ 따이루 님은 청소년인권활동가네트워크에서 활동하고 있는 청소년입니다.
인권오름 제 86 호 [입력] 2008년 01월 09일 11:53:49
Posted by 공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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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어가는꿈2008. 1. 8. 13:42
이런 기사들을 써주기 때문에,
일다를 좋아한다 *_*








http://www.ildaro.com/Scripts/news/index.php?menu=ART&sub=View&idx=2008010400001&art_menu=12&art_sub=26






“다 성장의 과정 아닌가요?”

   
인권침해 견뎌내는 ‘착한 아이’들

박희정 기자
2008-01-04 00:20:15

“학교에서 머리 길이를 규제하거나 체벌을 하는 것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해요?”

십대들이 거리에 나와 ‘십대에게도 인권이 있다’고, ‘십대 인권을 보장하라’고 집회를 열었을 때, 이를 취재하던 중에 집회를 지켜보던 한 십대 학생에게 질문을 건넸다.

잠시 머뭇거리던 학생은 이렇게 답했다. “기분은 나쁘지만, 성장을 위해서는 다 거쳐야 하는 과정 아닌가요?” 그는 두발규제와 체벌에 대해 “기분 나쁘다”고 생각했지만, 이를 ‘인권침해’가 아닌 ‘성장을 위한 통과의례’ 정도로 규정하고 있었다.

순간, 나와 이야기하고 있는 대상이 십대가 맞는지 의문이 들었다. “다 거쳐야 하는 과정”이라니, 십대들의 의견을 일축해버리는 어른들의 주장이 아닌가.


사실 십대인권에 부정적인 시각을 가진 십대들의 목소리를 듣는 건 낯선 일이 아니다. 같은 장소에서 만난 또 다른 십대는 ‘십대의 집회’에 대해 “지켜보는 사람도 많은데 거리에 나와서 한다는 게 대단해 보인다”면서도, “학생이 할 일은 아니다”라고 잘라 말했다.

십대들이 비교적 자유롭게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인터넷 공간에서도 이런 식의 의견들을 자주 볼 수 있다. 머리 길이를 규제하지 말라고 요구하는 의견에 대해 “학생은 교복에 깔끔한 모습이 제일 예쁘다”거나 “나도 두발규제 때문에 스트레스 받지만, 학생이 교칙을 어겨서는 안 된다”, “자유가 학생신분을 망각할 수준이면 안 된다” 등의 주장을 펴는 십대들도 많다.

인권을 보장하라고 요구하는 십대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지만, 한편에서는 무시할 없는 수의 십대들이 그 반대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상황을 그저 십대들의 ‘다양한 가치관’이라고 해석할 수는 없을 것 같다. 왜냐하면 우리 사회가 십대들로 하여금 한 개인으로서, 주체로서 생각하고 결정하고 행동할 수 있는 기회를 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이들과 어른들의 관계는 시작부터 끝까지 일방통행이다. 아이들은 어른들의 기분을 이해하고 기대에 부응해야 한다. 하지만 ‘이거 해라, 저거 해라, 넌 커서 뭐가 되라’고 말하는 부모와 교사, 어른들은 ‘내가 너에게 어떤 어른(부모, 교사)이 돼주면 좋겠니?’라고 묻지 않는다.

이처럼 일방통행 식의 관계 속에서 한국의 십대들은 인간으로서의 가치와 권리에 대해 배우기 이전에 순응할 것을 요구 받는다. 어른은 무조건 공경해야 하는 대상이고, 말 잘 들어야 ‘착한 아이’다. “말대꾸 하지 말라”는 말을 귀에 못이 박히게 듣고, 말대꾸 했다고 맞아도, 어른이 때리는 것이니까 맞아야 한다.

무엇이 옳은지, 그른지, 싫은지, 좋은지, 하나하나 시행착오를 거쳐가며 혼자 힘으로 이리 끙, 저리 끙 궁리할 겨를이 없다. 고민을 했다가는 혼이 난다. 가르쳐주는 것을 외우고, 시키는 일을 하고, 그래야 별 탈이 없다. 그래서 어른들한테 “착하다” 소리를 들으면 안심이다.

이 ‘착한 아이들’은 얼마나 말을 잘 듣는지, 골절상을 입힐 정도로 심각한 폭력을 휘두른 교사에 대해서도 “폭력을 휘두르는 건 잘못이지만 선생님한테 함부로 하는 애들도 많아요” 라며 옹호론을 편다. 두들겨 맞아도, 머리카락이 잘려도, 다 ‘성장의 과정’이라고 여기고 인내하는 ‘착한 아이’들. 이런 아이들을 키워내는 교육이 바로 나쁜 교육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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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공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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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어가는꿈2008. 1. 8. 12:15
2005년 7월에 짤막하게 썼던 글...인데
지금은 "미성년자"라는 말 자체가 차별적이라는 생각도 하고 있고,
'성년'과 '미성년'의 구분 자체가 역사적, 사회적이라는 생각까지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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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성년자와 성년자는 사회적 계급의 한 형태이다. 성년자는 법적 권리, 경제적 능력, 사회적 권위 등으로 미성년자를 지배한다. 이러한 지배는 특히 교육이라는 형태를 취하며, 미성년자를 올바른 성년자로 만들기 위해 정당한 행위로 생각된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곧잘 간과되는 것은 미성년자도 인간이며 기본적인 인권이 있다는 점이다. 미성년자의 기본권을 제한하는 것은 질서유지와 공공복리에 필요한 것일지 모르나, 헌법 제 37조 2항(“국민의 모든 자유와 권리는 국가안전보장·질서유지 또는 공공복리를 위하여 필요한 경우에 한하여 법률로써 제한할 수 있으며, 제한하는 경우에도 자유와 권리의 본질적인 내용을 침해할 수 없다.”)에 따르면 그러한 경우에도 기본권의 본질적인 내용은 침해할 수 없다. 예를 들어 교사가 자의적으로 행하는 소위 기합이나 체벌이라 불리는 신체적 폭력은 그 정도가 언제나 최소의 최소에 그쳐야 할 것이며, 사실은 완전히 없어져야 한다. 표현의 자유, 언론의 자유를 제한하는 것도 실질적이며 구체적이고 직접적으로 위험을 유발하거나 타인의 기본권을 침해할 때만 가능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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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는 어른이 아닙니다.
 어른이 아니기 때문에 우리는 머리를 깎으란 명령을 받곤 합니다. 어른이 아니기 때문에 어른들이 몽둥이를 들고 우리를 때려도, 우리 몸을 혹사시켜도 이를 악물고 견뎌야 하기도 합니다. 어른이 아니기 때문에 의견을 말하면 무례한 녀석이 되기도 합니다. 어른이 아니기 때문에 아침 몇 시까지 학교에 와야 하는지 명령받기도 하고, 어른이 아니기 때문에 사방이 어두워질 때까지 억지로 학교에 갇혀 지내기도 합니다. 어른이 아니기 때문에 같은 일을 하고도 그만큼의 대가를 못 얻기도 합니다.
 한국 사회에서 ‘어른이 아닌 인간’의 권리는 지나치게 적게 인정되어 왔습니다. 우리의 지위는 지나치게 낮게 생각되어 왔습니다. 특히 '합법 속의 불법'들이 우리의 권리를 침해해 왔습니다. 우리의 지위를 적어도 인간의 수준으로 끌어올려야 합니다. 미성년자이기 이전에 우리는 인간입니다.
 미성년자가 잃을 것은 사슬뿐입니다. 그리고 얻을 것은 인간으로서의 권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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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국의 미성년자여, 행동하라!

Posted by 공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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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로디

    꺅꺅 선동

    2015.06.07 02:18 [ ADDR : EDIT/ DEL : REPLY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