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시'에 해당되는 글 30건

  1. 2013.12.09 [아수나로 논평] 수능 뒤에도 고3들을 학교에 가둬두라고? 학생들이 노는 게 그렇게 보기 싫나?
  2. 2013.09.12 [논평] 깔짝대는 식의 대입제도 개선안, 우리에겐 필요 없다
  3. 2011.12.01 [나의 대학거부] 못 가는 건지 안 가는 건지 묻지 마라 (1)
  4. 2011.11.16 [나의 대학거부] 내가 배우고 느끼고 싶은 것
  5. 2011.11.16 [나의 대학거부] 대학은 大學(대학)이 아니었기에
  6. 2011.11.14 대학입시거부선언문 (2011/11/10)
  7. 2011.11.10 2011/11/10 대학입시거부선언 (1)
  8. 2011.11.10 [나의 대학거부] 내가 배우고 느끼고 싶은 것
  9. 2011.11.10 [나의 대학거부] 대학은 大學(대학)이 아니었기에
  10. 2011.11.08 대학거부선언 "우리는 낙오자가 아닌 거부자입니다" (1)
  11. 2011.11.08 [나의 대학거부] 난 대학 안가, 못가, 가기 싫어, 상관없어!
  12. 2011.10.27 [나의 대학거부] 4년의 공장 제련기간을 거부한다 (1)
  13. 2011.10.21 20대 대학거부선언에 함께할 분들을 모아요!!
  14. 2011.10.17 [투명가방끈] 대학입시거부선언, 포스터와 요구안
  15. 2011.08.29 잘못된 교육을 거부하고, 잘못된 사회를 바꾸는 93/고3들의 대학입시거부선언과 행동을 제안합니다.
  16. 2011.03.13 실종신고 - 제대로 된 교육과 학생인권을 찾습니다!!
  17. 2010.10.12 이게 다 입시교육 때문이라고! (4)
  18. 2010.02.20 상산고 교육의 실패 (61)
  19. 2010.02.03 학교 뚫고 인권킥! - 청소년 입시를 논하다 (1)
  20. 2009.12.27 외고-인재양성? 단상 (6)
걸어가는꿈2013.12.09 11:44
[논평] 수능 뒤에도 고3들을 학교에 가둬두라고? 학생들이 노는 게 그렇게 보기 싫나?
- ‘정상화’를 원한다면 입시교육과 과중한 학습부담을 없애고, 학생의 참여를 보장하라


11 월 7일, 2013년 수능시험이 있었다. 전국의 수험생들을 경쟁시키고 줄세우고 대학서열구조 속에 밀어 넣는 입시의 과정 중 가장 비중이 크고 상징적인 시험이 11월 7일 치러졌다. 모든 고3 학생들이 수능을 보는 수험생이었던 것은 아니지만, 어쨌건 몇 개월, 몇 년을 입시공부 속에 버텨온 고3 학생들 중 수십만 명이 시험을 치러냈다. 그러나 수능이 끝난 뒤에도 고3 학생들은 구설수에 휘말리고 있다. 언론들에서는 고3 교실이 난장판이고 학생들이 학교에 제대로 출석도 하지 않는다는 보도를 쏟아내고 있다. 교육부와 교육청들에서는 단축수업을 금지한다고, 정상수업을 하라는 지침을 계속해서 발표하고 있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수능 일정을 늦추자는 주장까지 나오고 있다.


수능이 끝난 뒤 학교가 제 기능을 못하는 것은 물론 바람직한 상황이라고 할 수 없다. 그러나 문제의 본질은, 수능 이전에 많은 고등학교들이 입시를 교육의 목표로 삼아 운영되었다는 것이다. 수능 전부터도 본래 다수의 고등학교들은 교육기관으로서는 ‘난장판’이다. 교육의 목표가 입시에서의 성공과 승리라고 대놓고 말하고, 입시 일정에 맞춰서 무리를 해서라도 교과 진도를 마치며, 그 뒤에는 입시 준비를 위해 문제 풀이에 몰두하는 수업을 한다. 이렇게 입시학원처럼 운영되는 학교를 과연 올바른 교육기관이라고 부를 수 있는지 의문이다. 과연 수능 후의 학교가, 수능 전의 학교보다 더 난장판이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가?

수능 이후 수업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 것은 이처럼 입시기관이 되어버린 학교 교육의 한 측면일 뿐이다. 학생들에게 “수능 때까지만 참아라.”라고 하면서 과중한 공부시간, 입시 스트레스, 학업을 강요하는 것이 입시기관 학교의 운영 방식이다. 그러니 수능이 뒤에는 학교에 붙어서 공부하라고 학생에게 요구하는 것이 설득력을 잃을 수밖에 없다. 수능을 본 고3 학생의 입장에서는 수능 뒤에도 정상수업을 시키라는 것이 ‘암묵적인 약속’을 어기는 ‘무리수’로 느껴지는 것이 당연하다.

이 와 같은 입시기관화된 학교의 문제를 이야기하지 않은 채 ‘고3 정상수업’을 강변하는 것은, 아무래도 학생들이 학교에서 일찍 끝나는 꼴, 쉬고 노는 꼴을 보기 싫다는 감정을 반영하고 있는 듯하다. 짧으면 몇 개월, 길면 몇 년에 걸쳐 과중한 학업부담 속에 학생들을 몰아넣으면서, 고작 1-2개월 남짓 단축수업을 하는 것이 마음에 안 든다고 말하니까 화가 날 지경이다. 애초에 한국의 공부시간은 너무 길고 학업부담은 너무 크다. 정규수업을 오후 4시, 5시까지 하는 것이 기본이고, 보충수업이나 야간자율학습 등을 하면 밤 늦게서야 하교를 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그러고도 또 학원을 가는 등 사교육을 받아야 하는 청소년들도 많다. 고3 때는 공휴일에도 쉬지 못하고 학교에 나오거나 사교육기관에서 공부를 해야 하는 청소년들도 적지 않다. 이처럼 과중한 학업부담은 사라져야 하고, 오히려 오후 1~2시 정도면 하교를 하는 것이 일상이 되어야 하는 것 아닐까. 수능시험이 끝났든 어쨌든 학생은 학교에 8, 9시간씩 있어야 한다고? 그렇게 과중한 학교의 일정을 계속해서 강요하려는 것은 그저 학생들을 학교에 가둬둬야 안심이 되는 강박관념은 아닌가?


수능 끝난 뒤 고3 정상수업이 불가능한 문제를 해결하고 싶다면, 입시경쟁교육을 중단하라. 입시에 올인하는 교육을 개혁하고, 입시기관이 되어버린 학교를 교육기관으로 바꿔내라. 현재의 과중한 학습부담을, 학생들이 감당할 만하게, 학생들의 교육권과 쉴 권리가 제대로 보장될 정도로 줄여라. 고3 수업을 ‘정상화’해야 한다고 하는 교육당국들은, 과연 입시기관이 되어버린 학교를 ‘정상화’하려는 노력을 해본 적은 있는가. 학생들의 인권을 침해하는 학교들을 ‘정상화’하려고 얼마나 노력하고 있는가.

더불어 우리는 고3 학생들을 무조건 학교에 가둬두라는 식의 지침이, 비민주적인 교육정책 결정 탓에 나오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교육부, 교육청들이 고3 학생들의 의견에 귀를 기울였다면 이런 막무가내 억지 정책을 밀어붙이지는 못할 것이다. 경기도교육청은 논란이 되자 학생들과 토론을 해보잔 식으로 말을 던졌지만, 실제로 학생들과 제대로 토론을 하기보다는 형식적으로 게시판을 열어두는 데 그치고 있을 뿐이다. 학생들의 참여가 없는 비민주적인 교육정책은 그것만으로도 ‘정상적’으로 돌아갈 수가 없다. 학생은 교육의 대상이 아닌 주체이다. 학생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라. 학생들이 학교 운영과 교육정책 결정에 민주적으로 참여할 수 있도록, 자치를 활성화시키고 참여의 길을 열어라. 그래야만 이런 억지 정책이 강행되는 일이 없어질 것이다.



2013년 12월 9일
청소년인권행동 아수나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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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공현
걸어가는꿈2013.09.12 12: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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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평] 깔짝대는 식의 대입제도 개선안, 우리에겐 필요 없다

- 교육부의 <대입전형 간소화 및 대입제도 발전방안>에 대한 우려와 비판


 

   지난 8월 27일, 교육부는 <대입전형 간소화 및 대입제도 발전방안>을 발표하였다. 일단 이게 도대체 몇 번째 개선안인지, 또 이번 대입제도는 과연 몇 달이나 갈지, 궁금함이 앞선다. 야심차게 도입했던 수준별 수능도 1년만에 폐지를 한다고 한다. 온갖 베타테스트를 타의에 의해 당하고 있는 학생들 입장에선, 도대체 교육부는 제도를 도입할 때 충분한 준비를 하긴 하는 건지 의심스럽다. 우리를 가지고 노는 건지 실험을 하는 건지 짜증이 난다. 또한 이번 개선안 역시 기존에 나왔던 무수히 많은 동족들과 마찬가지다. 지금의 입시 문제를 근본적으로 개선할 내용이 전혀 아니고 학생들이 입시경쟁 때문에 겪는 고통은 안중에도 없다는 것이다. 오히려, 걱정되는 부분들만 눈에 띈다.

 

1. 먼저 우려스러운 점 중 하나는 2017년 수능부터 현재의 문·이과 제도를 폐지하고 모든 수험생들이 국어, 영어, 수학, 사회, 과학을 전부 치르도록 하는 방안이 검토되고 있다는 것이다. 현재의 입시본위제도 아래의 대다수 고등학교에서는 가르치는 과목은 물론 시간표마저 수능에 맞춰 구성하고 있다. 따라서 수능의 문·이과 구분 폐지는 고등학교의 문·이과 구분 폐지로 직통할 가능성이 크다. 그 결과 고등학생들이 국어, 영어, 수학, 사회, 과학의 전과목을 다 배워야 한다면, 안 그래도 공부 부담이 큰 학생들의 부담과 스트레스를 더 늘리는 것밖에 안 된다. 게다가 일괄적으로 모든 과목을 배우도록 하는 것은 학생의 교육 선택의 자유를 저해하는 것이다. 이는 지금처럼 학생이 선택할 수 있는 것은 제한적이고 대다수 과목들은 학교가 정해주는 대로 수강해야 하는 불합리한 교육체제에서 더욱 퇴보하는 것일 뿐이다.

현행 문·이과 구분은 문과와 이과라는 구분으로 학생들이 다양한 교과를 배울 기회를 제한하는 등 문제가 많기에 개선이 필요하다. 더군다나 문·이과의 선택은 실제로는 입시에 종속되어 이루어지는 경우도 많다. 그러나 문·이과 구분 폐지는 학생들이 더 자유롭게 교육을 선택하고 참여할 자유를 보장하는 방향이어야 하는 것이다. 학생들에게 문·이과 가릴 것 없이 수학, 사회, 과학 등을 모두 다 배우도록 하는 것은 개악이라고밖에 할 수 없다. 문·이과 구분 폐지는, 학생들의 학업 부담을 줄일 방안과 함께, 학생들의 교육권을 강화하기 위한 정책으로서 '제대로' 이루어져야 한다.

 

2. 한국사를 수능 필수과목으로 지정했다는 점 역시 좋게 평가해줄 수 없다. 애초에 '한국사 필수화/강화' 논의부터가 국민이라면 누구나 한국의 역사를 국가가 정한 내용으로 배워야만 한다는 소리와 다름 없다. 이는 곧 국가가 교육을 통해 의무적으로 사람들에게 자국․자민족 중심주의, 국가가 보는 대로의 역사관을 심어주겠다는 것이다. 한국에서는 당연한 일인 양 생각되고 있지만, 사실 이는 대단히 국가주의적인 정책이다. 역사를 교양이나 비판적 시민의식의 성장을 돕는 지식으로 배우게 하지 않고 ‘애국심’과 ‘국가관’ 등을 주입하기 위한 수단으로 보고 있기 때문이다. 과거 '국사 교과서'에 비해 많이 덜해졌다고는 하나 현재 한국사 교과의 내용은 자국․자민족 중심의 역사관을 상당히 담고 있기도 하다. 그렇기 때문에 더욱 한국사 교육을 반드시 배워서 반드시 수능 시험을 치게 만들겠다는 정책을 반길 수가 없다.

  게다가 진정으로 중요한 것은 역사 지식을 달달 외우고 있느냐가 아니다. 사람들이 어떤 역사를 배우는지, 그리고 어떤 역사의식을 가지는지 하는 것이다. 한국사를 수능에서 필수적으로 치르게 한다는 것은 한국사를 시험용으로 ‘암기’하도록 압력을 넣는 것일 뿐이다. 이는 학생들이 흥미를 가지고 역사를 알게 되고 바람직한 역사의식을 가지게 되는 모습과는 거리가 멀다. 한국사를 수능 필수과목으로 덜컥 집어넣는 것은 단순히 여론에 밀려 내놓은 대책으로 보이며, 이는 학생들의 부담만을 늘릴 뿐이다. 과연 이런 결과가 수험생의 선택의 자유마저 침해하면서 얻을 만큼 가치가 있는가? 한국사를 수능 필수과목으로 지정해서 시험을 통해 학생들이 강제로 배우게 하겠다는 것은 교육부가 교육의 수단으로 시험과 경쟁과 줄세우기밖에 모른다고 고백하는 꼴이다. 역사 교육의 제대로 된 모습은 학생들이 역사를 우리의 현재와 삶에 연관된 문제로 이해하고 의미 있게 공부하여 삶과 사회에 대한 지혜를 기를 수 있게 돕는 것일 터이다. 죽은 지식, 시험용 암기 과목으로 배우게 하는 게 아니라 말이다.

 

3. 물론 이번 개선안이 수험생 및 학생의 편의를 전혀 생각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특히, 기존의 수천 개에 육박하는 수시 종류를 수시 4개, 정시 2개로 제한한 점과, 수시에서 수능 점수를 반영하는 것을 폐지 또는 축소하겠다고 밝힌 바는 나름 환영할 일이다. 적어도 뭐가 뭔지 잘 이해도 안 가는 복잡한 전형들 때문에 돈을 들고 입시 컨설턴트의 문을 두드려야 할 일은 줄어들 테니까 말이다. 하지만, 딱 거기까지다. 입시 전형이 줄어들면 조금 덜 골치가 아파지고 약간 더 간편해지긴 하겠지만 학생들이 입시 때문에 겪는 스트레스와 고통은 그다지 줄어들지 않는다. 지금보다 대입제도가 더 단순했던 과거에도 입시경쟁교육은 학생들을 옥죄고 있었다.

 

 

  이번 <대입전형 간소화 및 대입제도 발전방안>은 학생 당사자의 입장을 고려해 본 것인지 의심스럽다. 특히 이번 개선안 역시 지금의 입시경쟁교육의 병폐를 해소할 노력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 매우 실망스럽다. 대입제도 개선은 입시경쟁교육을 없애고 학생들이 자유롭고 즐겁게 교육에 참여할 수 있게 하려는 것이어야 한다. 그게 아니라면 그것은 그저 긴 대입제도 변천사에 몇 글자를 더하는 것 이상의 의미는 없을 것이다. 그런 개선안은 학생들에게는 입시제도를 어떻게 바꾸든 우리나라 교육은 어쩔 수 없다는 무력감과 좌절감만을 심어줄 것이다. 대입제도를 가지고 이렇게 깔짝대는 것은 학생들을 놀리는 짓이다. 지금 필요한 것은 더 커다란, 근본적인 변화다.

 

  경쟁적인 교육은 교육이 아니며 오히려 학생들의 교육권을 침해하는 것이다. 대학서열화를 없애 대학을 평준화해야 한다. 원하는 사람들은 얼마든지 대학에서 하고 싶은 공부를 할 수 있게 해야 한다. 나아가 대학을 굳이 안 가도 되는 사회를 만들기 위한 근본적인 정책이 필요하다. 학생들에게 등수를 매기기 위한 모든 시험들은 전혀 교육적이지 않으므로 폐지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한국의 교육은, 무늬만 교육인 채로 여전히 학생들을 괴롭히고 줄세우고 차별하는 제도로 남아 있을 것이다. 교육부는 수박 겉핥기식 개선안을 내놓은 것으로 안주해선 안 되며 입시경쟁교육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을 촉구한다. 그리고 그 노력의 첫 걸음은, 학생, 교사, 시민 등 여러 사람들이 교육정책 결정에 민주적으로 참여할 수 있도록 보장하는 것일 것이다.

 




2013년 9월 11일

청소년인권행동 아수나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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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공현
걸어가는꿈2011.12.01 16:43

[나의 대학거부] 못 가는 건지 안 가는 건지 묻지 마라

공기


내가 대학거부를 생각하게 된 시점은 아마 중3 때(2008년) 촛불집회를 겪고 일제고사반대‘Say-No(세이 노우, 아니라고 말해요)’라는 활동을 하게 되면서부터인 것 같다. 그냥 미국산 쇠고기가 먹기 싫었고, 돈 많은 사람들은 한우 먹으면 되지만 가난한 사람들은 미국산 쇠고기를 먹고 젤라틴이 들어간 많은 제품들에 노출되기 때문에 꼭 막아야 한다고 단순하게 생각했다. 그리고 국민들이 이렇게 많이 모이면 무엇인가 바꿔낼 수 있다는 그런 ‘희망’이 내 속에 자리 잡고 있었다.


등교를 거부하고 나서

하지만 촛불은 그렇게 식어들었고 나에게 새로운 활동이 다가왔다. 그때 나는 중학교를 다니고 있던 평범한 중학생이었고, 일제고사를 반대한다는 것은 오히려 거부하기 쉬운 위치에 있었다고도 말할 수 있겠다. 그 지역에서 초등학교를 나오지 않았고 중학교 3학년 애매한 시점에 전학을 간 나는 공부에 대한 의욕도 없고, 내가 왜 이런 걸 주구장창 암기식으로 외워야 할까 지루함의 끝을 달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막상 등교거부라는 행동을 할 때엔 겁이 나서 선생님에게 병결 처리를 받고 그렇게 기자회견장으로 갔다.

그렇게 등교거부라는 것을 치루고 다음날 학교로 돌아가 오엠알(OMR)카드에 ‘Say-No’로 표시하고 신나게 자고 있는 와중에 채점하는 선생님이 나에게 다가와 태클만 걸지 않았어도 그 해에 일제고사는 꽤나 무난하게 지나갔을 꺼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 선생님은 학생부장 선생님을 불러와 나와 대화를 시도했고 결국 담임의 귀에까지 들어가 상담을 받게 되었다. 여기까지 읽은 사람들은 뭐가 대학거부와 이어지는 거냐고 생각할 수도 있겠다. 그날 담임선생님은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공기(별칭입니다)야, 너가 이 사회를 바꾸고 싶다면 더 높은 곳으로 올라가서 바꿔야 하는 거지 이런 식의 행동은 옳지 못해. 지금 이 제도를 만들어낸 국회의원들 교육감 교육의원들 등등 그 위치에 있기 때문에 바꿀 수도 있는 것이고 만들어낼 수도 있는 거 아니니?” 사실 나는 할 말이 없었다. 정확하게 얘기하자면 나를 지킬 무기가 없었다.

잘 살고 있었다

나를 설득할 수 없었기에 선생님도 설득할 수 없었다. 그래서 한마디도 못하고 집에 오니 여러 가지 생각들이 들었다. 내가 보고 있는 것(즉 내가 경험한 것)이나 나와 만나는 사람들을 보니까 사실 학교를 다니지 않아도 잘 살고 있는 것이었다. 자기가 생각하는 나름의 신념이랄까 가치 있는 것이랄까 그걸 두고 움직이고 행동하려는 모습들이 나는 잘못된 것, 이 시기에 해서는 안 될 것이라고 생각되지 않았다.

즉 선생님이 나에게 던진 말은 너도 똑같이 경쟁해서 남들보다 더 높은 위치(권력자)가 되어 사회를 바꾸라는 말인 건데 나는 이 말에 동의하지 않는다. 이것에 대한 이야기는 너무 길어질 것 같으니 이만 줄이지만 선생님이 내던진 이 말 한마디가 당시 나에게 대학을 선택하는 데 있어서 많은 영향을 준건 사실이다.

이런 생각을 하게 된 그해 11월 입시폐지대학평준화라는 슬로건으로 ‘대학을 선택하지 않은’ 사람이 있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대학이란 건 나와 멀어보였고 내 주변 친구들은 이미 그 경쟁의 레이스를 뛰고 있었다. 나는 그 시기에 많은 것을 결정했다. 고등학교를 가지 않겠다는 것과 대학을 가지 않겠다는 두 선택 중 하나는 좌절이 되고 이후에 실현되었지만 대학을 가지 않겠다는 이 선택은 이미 실행되고 있다. 지금도 앞으로도 쭉 이어지길 바라며.

사회의 시선들

하지만 대학을 안 간다는 것은 여러모로 이 사회 안에서 자기 자신에게 무책임한 결정으로 보는 시선이 있고, 대학을 안 간다는 것이 배움 자체를 포기하는 것이라고 연상시키는 것 같은데 어찌 보면 그러한 연상과 시선들은 아마 대학을 가지 않는 것은 곧바로 노동현장으로 간다는 그 다른 경로가 존재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공부 못하면 공장 가서 일해야 한다(공순이 된다)’거나 ‘기술이라도 배워야 먹고 살 수 있다’거나 하는 말들이 이미 이런 경로를 전제하고 있다. 돈 주고 공부하기 싫으면 기술이라도 배워서 사회를 유지시키는 노동을 해야 살아남을 수 있다는 인식이 그것이다.

내가 대학을 갈 수 없었던 이유 중 하나는 등록금을 낼 형편도 안 되며, 학자금을 빌리더라도 갚을 처지도 되지 못하는 형편 때문이었다. 그렇게 빚쟁이로 몰락해버리면 도저히 나 자신을 건져낼 수 없을 것 같았다. 그리고 또 하나는 수능이라는 시스템의 부당함에서 온다. 그것은 정말로 자기가 공부한 만큼 성적이 나온다는 환상과 무관하다. 소위 스카이(SKY)라고 불리는 상위권 대학을 가는 사람들의 대부분은 외고나 특목고를 다니고 강남과 청담 일대에 있는 비싸고 질 높은 학원들에 다닌다. 이미 특권이 주어지는 것이다.

집에 돈도 없고 ‘빽’도 없는 나 같은 사람은 일찍이 이 사회의 대학진학률이 80퍼센트를 넘어가고 있지만 포기하는 게 더 빠를 지도 모르겠다. 이쯤 되면 나에게 대학거부란 거부가 아니라 못 가는 걸지도 모른다. 하지만 ‘너네가 못 가는 걸 왜 거부란 말을 쓰며 거창하게 그러냐?’라는 말에는 분노가 치밀어 오른다. 난 지금의 대학, 내가 선택할 수 없는 대학을 원하는 게 아니다. 하지만 이것은 나의 문제만이 아니기에, 나와 같은 사람들이 너무나도 많기에, 불가능이라고 생각하는 것들을 요구해보려고 한다.

불가능한 것을 요구하자

대학까지 무상교육을 바라며 대학을 가지 않아도 비정규직으로 전락하지 않는 그런 삶을 상상할 수 있으면 좋겠다. 더 나아가 돈을 받으며 공부할 수 있는 세상을 요구하면 좋겠다. 나는 이제 사람들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하는 것을 요구하면 좋겠다. 그렇게 되기 위해서 나 또한 발 빼고 있지는 않을 것이다. 만약 그렇게 된다면 나도 나의 목소리를 애써 용기내지 않더라도 당연하게 낼 수 있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대학을 가지 않더라도, 못 가더라도 온전하게 살아남을 수 있는 공존할 수 있는 세상을 바란다. 그러기 위해 행동했고, 앞으로도 당신들과 직접행동으로 이 사회에 문제를 던지고 싶다.
덧붙이는 글
공기 님은 아직은 하고 싶은 것, 재미있는 것을 더 하고 싶고 추구하고 싶답니다. 대학도 꿈도 스펙도 없는 그냥 그런 사람, 청춘도 아니고 희망도 아니라는 소개를 보내주었습니다.
수정 삭제
인권오름 제 277 호 [기사입력] 2011년 11월 28일 17:39: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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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공현
걸어가는꿈2011.11.16 01:21

[나의 대학거부] 내가 배우고 느끼고 싶은 것

고예솔


나는 지금 대안학교를 다니고 있는 고3이다. 학년으로 고3이긴 하지만 공식적으로는 초등학교 졸업이 내 학력의 전부다. 내가 다니는 학교는 학력인정이 안 되는 학교라 검정고시로 중학교와 고등학교 학력을 취득해야 한다. 하지만 나는 중․고졸 검정고시를 보지 않을 것이고 대학에도 가지 않을 것이다. 학생인권조례 제정운동을 하면서 그런 결심을 굳히게 되었다.

학생인권조례 제정운동을 하면서

사람들은 사회가 많이 바뀌었다고 이야기한다. 하지만 아직 청소년에 대한 권위적이고 폭력적인 사회분위기는 여전하다. 올해 초 나는 학생인권조례 제정운동에 참여했다. 조례를 제정하기 위해서는 당사자인 청소년들의 서명이 아니라 유권자의 서명이 필요했다. 그래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났고 청소년 인권에 대한 생각들을 들었다. 그러면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조례를 제정해 반인권적인 행동에 대한 규제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제일 중요한 건 사회구성원들의 인식의 변화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것을 위해서는 근본적 원인이 되는 입시 위주의 무한경쟁 교육방식이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대학입시거부 모임에 함께하게 되었다.

간디학교를 다니는 친구들은 대부분 대학에 대해 별 생각을 가지고 있지 않다. “대학이란 가면 가는 것이고 안가면 안 가는 것. 자기가 하고 싶은 것을 하고 사는 게 행복한 것이다. 결과를 위해 과정을 희생하지 마라. 대학은 의무가 아닌 선택이다.” 우리는 이렇게 6년간 배워왔고 또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 친구들은 나의 대학입시 거부 행동에 대해 이해하고 공감하고 격려도 해 주었지만 동참하려 하지는 않았다. 나 자신은 무한경쟁 입시제도에서 벗어나있기 때문에 상관없다는 것일까. 하지만 좋든 싫든 학벌만으로 평가받는 한국사회의 구성원으로 있는 한 우리는 그것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대학입시 따위랑은 전혀 관계가 없어’라고 생각하고 있던 나도 19세 혹은 고3이라는 타이틀을 달고 나니 무언가 압박이 느껴졌다. 사람들은 낮에 학교나 학원이 아닌 곳에 있는 나를 뭔가를 포기한 사람쯤으로 취급하곤 한다. 자기도 모르게 다른 사람들에게 획일적인 삶의 방식을 강요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대학을 가지 않으면 뭔가 큰일이라도 벌어지는 것처럼 여기고 있다. 나의 삶은 대학으로 완성되는 것이 아닌데 말이다. 그런 질문 속에 지내다보면 나도 대학엘 가야하는 것 아닐까? 대학을 나오지 않으면 먹고살 수나 있을까? 하는 압박감으로 초조해지기도 한다. 무한경쟁 교육 속에서 어느 정도 벗어나있다고 할 수 있는 내가 이정도로 압박을 느끼는데 그 속에 살아온 아이들이 느끼는 압박은 얼마나 심할까 싶었다. 그런 압박감 속에서 청소년들은 스스로의 권리를 포기하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고 있는 것 같다.


교사들도 학생들도 대학에 매여 있는 사회

학교 현장의 권위적이고 폭력적인 환경 또한 마찬가지 이유에서 사라지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학교 교육은 민주사회에서 더불어 함께 살아가기 위한 민주적 인간이 되는데 필요한 소양을 기르는 곳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학벌 위주의 사회 속에서 보다 나은 위치를 차지하기 위해 학교는 대학만이 목표인 것처럼 학생들을 몰아세우고 그 속에서 인권을 논의 한다는 것은 비효율적인 논의로 치부된다. 교사들 또한 학생들을 좋은 대학에 얼마나 보내는가로 능력이 평가되는 환경 속에서 학생들을 경쟁으로 몰아세우고 권위적으로 억압할 수밖에 없게 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사람은 행복해지기 위해서 산다. 십년 후의 행복을 위해 십년동안의 시간을 공포와 초조함으로 가득 채우고, 마음을 나누어야 할 친구들과 끊임없이 경쟁하며 시간을 보내는 것은 삶을 낭비하는 것이다. 삶의 가치는 미래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오늘의 매순간 순간이 모여서 미래가 되는 것인데 미래에만 의미를 두고 현재를 저당 잡히는 삶을 나는 살고 싶지 않다. 그것들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지금 당장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지 못하고 행복을 느끼지 못하는데. 그렇다고 십년이 지나 좋은 대학을 나온다고 행복이 찾아올까? 그렇게 단언할 수는 없을 것이다.

한국 사회에서 대학을, 학벌을 거부한다는 것은 사실 불안한 일이다. 대학졸업장이 없으면 무능력한 사람으로 취급받는 이 사회에서 초졸로 살아갈 수 있을지 걱정이 된다. 지금까지 보호 아래 살던 내가 이 문제 많고 험한 세상으로 나가야 한다는 것이, 더군다나 사회가 요구하는 길이 아닌 다른 길로 걷고자 한다는 것이 두렵다. 내가 잘할 수 있는 것, 하고 싶은 것은 대학을 목적으로 한 그런 공부가 아닌데 그것 말고 다른 배움을 추구한다고 해서 이렇게까지 두려움에 떨어야 한다는 건 이 사회의 어딘가가 잘못된 것이라고 생각한다. 청소년들의 다양한 꿈들이 존중되고 그들이 다양한 선택을 당당히 말하고 꿈 꿀 수 있는 사회가 되길 바란다.

꿈을 꿀 수 있는 사회가 되기를

대학을 가지 말자는 말을 하고 싶은 것이 아니다. 대학은 지금처럼 학벌로 줄 세우는 사회에 의해 강요되어지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필요에 의해서 갈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학교 교육의 목표가 대학입시에 있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고 학교 현장에서나 우리 사회 모든 곳에서 청소년들의 인권이 존중받기를 바라는 것이다.

내가 하는 이 운동은 입시위주 교육이 낳는 권위적이고 폭력적인 사회분위기를 바꾸기 위한 문제제기라고 봐주면 좋겠다. 문제 당사자인 청소년들 스스로가 주인의식을 갖고 청소년들의 목소리로 대안을 찾고 교육의 진정한 목표를 찾는 곳으로 만들기 위한 움직임이기 때문이다. 이 운동을 통해 우리 사회가 청소년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교육의 목표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과 답을 다시 찾아나가는 계기가 되면 좋겠다.

나는 졸업을 하고나면 인권운동을 하는 활동가로 살아갈 생각이다. 그리고 시간이 흐르고 흰머리가 생기기 시작하면 귀농할 생각이다. 그런 삶을 살기 위해 많은 것을 배우고 공부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하지만 대학졸업장을 따는 일에 매달리지는 않을 것이다. 대학이 아니라도 이 세상에는 더 소중하고 의미 있는 것들이 많고 거기서 배우고 느끼는 것이 더 크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덧붙이는 글
고예솔 님은 대안학교를 다니며 투명가방끈들의 모임에 함께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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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오름 제 274 호 [기사입력] 2011년 11월 08일 15:54: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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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어가는꿈2011.11.16 01:19

[나의 대학거부] 대학은 大學(대학)이 아니었기에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대학생다운 행동은 ‘대학 거부’

김서린

대학에 입학한 것은 나의 선택, 적어도 그렇게 믿었다

대학거부선언을 하고 돌아오는 지하철 안, 내 맞은편에 앉은 교복 입은 여학생을 보며 머릿속으로 문득 어떤 기억이 스쳐지나갔다. 나는 교복을 입고 부모님 앞에 진지하게 앉아 있었다. 그리고 이어진 것은 “네가 대학에 가서 굳이 공부할 생각이 없고 그냥 지금 취직을 하고 싶으면 그렇게 해도 된다. 꼭 대학에 들어갈 필요는 없다.”라는 부모님의 말씀이었다. 나는 그때 “대학에 가겠습니다.”라고 대답했다. 나는 그때 전혀 망설이지 않았던 것 같다. 그러니 분명히 내가 대학에 입학한 것은 바로 ‘나의 선택’이었다.

그러나 지금에 와서 생각해보면 그때의 선택은 어떤 면에서 ‘선택’이 아니었다. 나는 그렇게 선택받도록 교육받아 왔다.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내가 원하는 삶을 위해서 대학은 필수라고 여겼다. 나는 당시 인문계 고등학교를 다녔는데 실업계 고등학교를 다니는 친구들조차도 대학에 가려고 했기 때문에 대학을 왜 가야 하는지는 궁금하게 생각해본 적도 없었다. 그때 나는 대학이 어떤 곳인지, 대학에서 무엇을 할 수 있고 무엇을 얻을 수 있는가에 대해서는 아는 것이 없었다. 막연히 대학생이 되면 자유로워지고 국․영․수 같은 주입식 교육, 혹은 죽도록 싫은 입시공부에서 해방될 것이며 하고 싶은 공부를 할 수 있고 심지어 예뻐지기 까지 할 수 있다고 믿는 수준이었다.

반면 대학을 안 가서는 안 되는 이유들에 대해서는 잘 알고 있었다. 예를 들면 고졸이 받는 사회적인 차별에 대한 이야기, 전문대를 졸업한 사촌이 더 많은 월급을 받기 위해서 결국에는 4년제 대학에 들어갔다는 이야기, 요즘에는 대학 나와도 살기 힘들다는 이야기, 가방끈이 짧으면 사람은 좋아도 교양이 없다는 이야기 등 참 많은 이야기들이 있었다. 그런 이야기들은 내게 한 목소리로 말하는 듯 했다. “대학을 가지 않은 너의 삶은 너무 고될 거야. 이제까지 무엇을 위해서 그렇게 참으며 살아왔니? 공부를 더 하고 싶으면 당연히 대학에 가야해. 대학에 가면 너의 꿈을 펼칠 수 있지만 반대의 경우라면 잘 모르겠다.”라고 말이다. 그렇게 나는 아주 자연스럽게 대입을 선택했다. 고3인 내 눈에 질 높은 삶을 위한 단 하나의 길이 ‘대입’이었기 때문이다.

대학, 그에 대한 나의 애증

(1)
아이러니하게도 내가 1학년 때 가장 싫었던 것은 선배들이 강요하는 술과 노래였는데, 지금 가장 싫은 것은 선배가 된 내가 토익공부나 아르바이트로 바쁜 1학년 후배들을 불러 술 한 잔, 밥 한 끼 하기가 미안한 현실이다. 1학년 때부터 열심히 스펙을 쌓고 학점을 따 놓아야 취업을 할 수 있다는 것은 누구나 아는 사실이고 벅찬 등록금과 거주비용 등으로 대부분의 대학생들이 아르바이트를 해야 하기 때문이다. 물론 그렇지 않은 대학생이 아예 없지는 않겠지만 오늘날의 대학생활이 결코 낭만적이지만은 않은 것이 사실이다.

대학생들은 무엇을 두고 경쟁하고 있을까? 대부분 ‘미래를 위한 준비’를 하기 위해서 경쟁한다. 그런데 이 경쟁이 갈수록 치열해질 수밖에 없는 이유는 이 ‘미래를 위한 준비’라는 작업이 모두가 노력만 한다고 다 해낼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당연하게도 경쟁에서는 절대로 모두가 가질 수 없다. 따라서 ‘준비가 미흡한 어떤 이의 존재’는 불가피하다. 준비가 미흡한 어떤 이, 이른바 낙오자는 ‘나’이거나 ‘내가 아닌 다른 학생’ 중에서 무조건 나오도록 되어 있는 것이다. 그 것은 참으로 무서운 전제이다.

대학에서의 경쟁 중 대표적인 것은 바로 ‘상대평가제도’가 아닌가 싶다. 이는 내가 얼마만큼 배움의 완성을 이루어 냈는지 상관없이 같은 수업을 듣는 학생들보다만 더 좋은 점수를 받으면 되는 것이니 학생들은 일단 다른 학생들보다만 시험을 잘 볼 수 있을 정도로 공부하려 했다. 나 역시 그런 마음이 들었었다. 교수님들은 상대평가 때문에 학생들의 학습수준이 떨어졌다고 말씀하셨지만 그와는 상반되게 노트하나 빌리기도 민망할 정도로 강의실의 분위기는 차가워졌다.

그러는 사이 대학 안에서 공부와 학점 사이의 간극은 커졌다. 학생들이 선택하는 것은 주로 ‘학점’ 쪽이었다. 그것을 두고 사람들은 ‘현명하게 공부하라’고 말했다. 한마디로 ‘학점만 현명하게 받아내라’라는 주문이었다. 그 말은 “시험에 나오지 않을 부분을 붙들고 있지 말고 그럴 시간에 교수님께 가서 눈도장 한 번 더 찍어라.”라는 식이었다. 그런 말이 ‘현명하게’라는 단어를 앞세울 수 있었던 이유는 ‘실속’이 있어야 ‘취업’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학점 외에 토익, 토익 스피킹, 봉사활동 및 기타 학내활동, 학외활동을 하고 아르바이트까지 해내기 위해서 공부시간은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당연한 이야기겠지만 학생들이 겉포장에 더욱 신경 쓸 수밖에 없는 것은 겉포장이 취업경쟁의 ‘참여요건’이 되는 사회의 모습을 반증하는 것이다.

그런 분위기 안에서 나는 너무나 혼란스러웠다. 남에게 인증받기 위한 공부를 하며 그 결과에 따라 내가 의도한 적도 없는 경기에서 남에게 지거나 혹은 이겨야 한다는 사실은 도서관에 앉아있는 나를 무기력하게 했다. 더군다나 경쟁에 필요한 비용도 우리집 형편으론 만만치 않았고 그럴수록 나의 부담은 커져갔다. 이러한 부담은 내가 원하는 것이 아닐 지라도 무조건 ‘안정적인’ 쪽으로 움직여야 한다는 부담이었다. 그러는 와중에 다른 사람들은 열중하고 있는 이 경기에 나 혼자 의문을 가져서 괜히 이도저도 아닌 게 될까봐 두려운 적도 많았다.

(2)
대학에 와서 무조건 안 좋은 추억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나는 대학에서 많은 사람들을 만났고 많은 경험을 했으며 많은 것들을 느꼈다. 물론 그게 어떤 공부이든 공부도 하긴 했다. 검도 동아리에 들어서 함께 땀 흘리며 운동하는 경험도 했고 스터디 그룹에서 함께 공부하는 즐거움도 알았다. 학내기관에서 아나운서로 활동하며 뿌듯함도 많이 느꼈다. 나는 나 스스로 ‘대학생활다운 대학생활’을 하기 위해서 많이 노력했다. 그래야 견딜 수 있었으니까. 어쨌거나 대학은 이제까지 젊음을 대표하는 곳이고 그만큼 에너지 넘치는 곳이다. 내가 대학에 대한 희망을 버리지 않은 것도 그런 부분이다.

하지만 그 에너지가 어떻게 쓰이고 있는지, 대학이 그러한 에너지들을 어떻게 소모시키고 있는지가 주목해야하는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대학에서 느낀 많은 것들이 한 해 한 해가 지날수록 점점 사치스럽게 느껴질 정도로 대학의 현실은 어둡다. 그런데도 언제까지나 대학의 낭만을 노래할 수는 없는 일이다. 그리고 대학의 공부와는 무관한 활동들을 꼭 대학에 들어와서만 할 수 있는 것처럼 이야기하는 것도 실은 그만큼 다양한 교육이 보장되지 못 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든다.

(3)
애착과 불만이 뒤섞인 대학생활에 졸업이라는 지점이 가까워 올수록 내 마음은 그 어느 때보다도 요동쳤다. 경쟁 속에 끼어든 많은 불합리한 사건들 앞에서 자신의 미래를 위해 눈을 감고 귀를 닫는 친구들의 모습을 보면서 ‘저 모습이 내 모습’이라는 생각에 괴로웠다. 내가 본 많은 학생들이 생각하려 들지 않거나, 모르는 척 하고 싶어 했다. 그러는 사이 한쪽에서는 자살을 하고, 꿈을 잃고, 생존을 위한 아르바이트에 허덕였다. 대학교 축제가 벌어지던 어느 날, 한창 인기 있던 노래에 맞춰 하나가 되는 학생들의 모습을 보며 내 머릿속으로는 언젠가 보았던 생동성실험에 대한 방송, 등록금 때문에 휴학을 했다는 선배의 얼굴, 대출금이 쌓여서 무섭다던 친구의 문자 메시지, 축제날임에도 사회문제에 대해서 이야기해 보자며 모인 달랑 두 명인 동아리원의 모습, 그리고 갖가지 기사들이 스쳐지나갔다. 나는 생각했다. 대학의 진실한 모습은 무엇일까? “축제에 흥겨워하는 저 모습이 대학의 진짜 모습일까?”라고 말이다.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대학생다운 행동은 바로 ‘대학 거부’

대학의 문제, 더 나아가 우리 교육의 문제에 대해서 많은 이들이 침묵하는 동안 그 폐해는 사건들로 나타났다. 나는 그것이 사회에 적응하지 못 하는, 혹은 대학에 적응하지 못 하는 소수의 문제라고 치부하며 외면할 수는 없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심각해진 대학의 문제 덕분에 학교와 사회에서도 대학에 관한 이야기들이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등록금을 ‘반값’으로 내리는 것, 물론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나도 등록금투쟁에 참여했다. 하지만 그것으로는 부족하다. 지금의 구조 자체가 달라지지 않는다면 다양한 학문을 추구하고 자유롭게 토론하며, 남에게 보여주기 위한 공부가 아닌 자신의 공부를 할 수 있는 그런 진짜 대학의 모습을 찾을 수는 없을 것이다. 지금 당장 등록금이 반값이 된다고 해도 대학은 반값으로 내린 등급별 취업자격달성소가 될 뿐이다.

나는 ‘대학생’이라면, 아니 ‘젊은이’라면 이 시대의 순수한 지성으로서 행동하여야 한다고 배웠다. 내가 뼛속까지 느꼈던 많은 문제들을 다른 누군가가 죽음으로 말해주기만을 기다리며 조용히 졸업한다면 나는 그 졸업장 앞에서 당당할 수 있을까. 이런 저런 생각 끝에 내가 ‘진짜 대학’을 원한다면 나 역시 ‘진짜 대학생’으로 행동하자는 생각에 도달했다. 내 후배들, 내 동생들을 나와 같은 어쩌면 더 심해질 문제의 한 가운데에 방치시켜놓지 말자. 그리고 무엇보다 나 자신부터 이 무의미한 경기에서 너무나도 벗어나고 싶었다. 이런 대학에는 동의할 수 없다고 말하고 싶었다. 그러기에 나는 대학을 거부하자고 마음먹었다.

나는 가로등이 있는 길을 걸어야만 한다는 사람들의 말을 거슬렀다. 하지만 모를 일이다. 함께 대학을 거부하고 이런 교육과 사회를 바꾸어야한다고 외치는 우리가, 가로등이 아니더라도 성능 좋은 휴대용 손전등 정도는 만들어낼 수 있지 않을까.
덧붙이는 글
김서린 님은 바람 같은 여자, 얼마 전까지 대학생이었지만 대학을 거부하기로 마음먹고 중퇴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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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오름 제 274 호 [기사입력] 2011년 11월 08일 22:1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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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어가는꿈2011.11.14 10:18

대학입시거부선언



우리는 대학입시를 거부한다. 오늘 우리와 같은 청소년들 수십 만 명이 대학수학능력평가, 수능시험을 보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모두가 안다. 그 시험은 대학에서 배울 준비가 되었는지 알아보는 시험이 아니라 수십만명을 점수로 등급으로 줄세우기 위한 것이라는 걸. 대학입시경쟁은 남의 꿈을 밟고 올라가는 전쟁이라는 걸. 우리의 삶에 가격을 매기는 상품화의 과정이라는 걸. 이 경쟁에 미친 입시위주 교육과 불안정한 모두의 삶을 무시한 채 폭주하는 사회에 제동을 걸기 위해 우리는 대학입시라는 단단한 제도에 시비를 건다. 조용히 경쟁에서 지쳐 떨어지는 대신, 경쟁에 뛰어들어 남을 짓밟고 뜀박질 하는 대신, 사회가 붙여준 루저라는 딱지를 버리고 스스로 거부자의 길을 택한다.

우리에게 따가운 시선을 보낼 이들에게, 미래에 대한 두려움과 불안을 부추기는 사회에게 묻는다. 어째서 모두가 자신이 원하는 배움이 아니라 시험을 위한 공부만을 해야 하고 주어지는 정답만을 외워야 하는지. 서로를 도우며 즐겁게 공부하고 성장하지 못하고, 무한경쟁을 견뎌내야만 하는지. 대학은 왜 선택이 아닌 의무처럼 강요되고, 다양한 삶의 길이 아닌 "명문대"에 가는 것만이 성공이라 하는지. 왜 대학만이 독점적으로 ‘학력’, ‘자격’, ‘지식’을 판매하고, 대학 밖에서는 다른 배움의 길을 찾기 어려운지. 정부와 사회는 왜 교육을 책임지지 않고 우리 개개인에게 무거운 책임을 떠넘기는지. 점점 가혹하게 자신을 채찍질해도 우리의 삶의 조건은 나아지지 않는다. 오늘의 불행을 저축해도 내일의 행복이 오진 않을 것 같고, 불안과 경쟁만이 이어진다. 도대체 누가 우리에게 이런 불안하고 불행한 삶을 강요하는가.

우리는 대학입시를 거부한다. 우리의 거부는 그저 대학을 안 가겠다는 선택이 아니다. 지금의 입시가, 대학이, 교육이, 그리고 사회가 잘못되었음을, 온몸으로 외치는 것이다. 일단 그래도 대학은 가고 보라는 유예의 주문에 맞서, 지금 여기서 바꾸자고 말하는 것이다. 더 이상 교육에 사회에 문제가 있다고 혀만 차지 말고, 지금부터 같이 바꿔나가야 한다고 손을 내미는 몸짓이다. 우리는 낙오자라 손가락질 받을 수도 있다. 하지만 우리의 이러한 거부가 낙오가 아니라 온전한 선택이 될 수 있는 사회를 꿈꾸기에, 우리는 거부라는 길을 택한다. 잘못된 쪽은 우리가 아니다. 획일적인 경쟁에서 밀려난 누군가는 불행해져야만 하고, 그래서 모두가 불안과 불행을 안고 살아야만 하는 이 사회이다.

모두가 자유롭게 배우고 행복하게 살기 위해, 이제는 이 교육과 사회가 바뀌어야 한다. 우리는 교육이 우리의 보편적 권리로서 존재하고, 누구나 자유롭게 누릴 수 있기를 원한다. 대학 밖에서도 다양한 배움의 길, 삶의 길을 찾을 수 있기를 원한다. 무한경쟁교육이 아니라 우리를 위한 교육을 원한다. 학력이 학벌이 차별의 이유가 되지 않으며 학교가 서열화되지 않은 사회, 우리를 상품이 아닌 인간으로, 우리의 모습 그대로 보는 사회를 원한다. 불안과 두려움에 쫓겨 달리지 않아도 되는 세상을 원한다. 우리 사회가 모든 이들의 최소한의 생존, 사람다운 삶, 행복추구권을 보장하기를 요구한다.

우리에게 수능만을, 순응만을 요구하는 교육, 남을 밟는 것 외에 살 길은 없다고 말하는 이 사회. 이것들을 위해 희생하기에는 우리의 오늘이 너무 아깝기에. 학력과 학벌로 인한 차별과 불평등에 갇혀있기에는 우리들의 배움이 너무 소중하기에. 그렇기에 우리는 선언한다. 여기 대학입시를 거부하는 이들이 있노라고. 자유로운 배움을 위해, 존엄하고 안정된 인간적인 삶을 위해, 유예되지 않는 행복을 누리기 위해, 행동하겠다. 살아가겠다.


2011년 11월 10일
대학입시거부선언자들


고예솔 김민성 김재홍 김해솔 문동혁 민다영 박제헌
양현아 이찬우 이현지 임준혁 장주성 전경현 정열음
조만성 최경수 최난희 한소영 (18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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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공현
걸어가는꿈2011.11.10 17:20



대학입시거부선언

우리는 대학입시를 거부한다. 오늘 우리와 같은 청소년들 수십 만 명이 대학수학능력평가, 수능시험을 보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모두가 안다. 그 시험은 대학에서 배울 준비가 되었는지 알아보는 시험이 아니라 수십만명을 점수로 등급으로 줄세우기 위한 것이라는 걸. 대학입시경쟁은 남의 꿈을 밟고 올라가는 전쟁이라는 걸. 우리의 삶에 가격을 매기는 상품화의 과정이라는 걸. 이 경쟁에 미친 입시위주 교육과 불안정한 모두의 삶을 무시한 채 폭주하는 사회에 제동을 걸기 위해 우리는 대학입시라는 단단한 제도에 시비를 건다. 조용히 경쟁에서 지쳐 떨어지는 대신, 경쟁에 뛰어들어 남을 짓밟고 뜀박질 하는 대신, 사회가 붙여준 루저라는 딱지를 버리고 스스로 거부자의 길을 택한다.

우리에게 따가운 시선을 보낼 이들에게, 미래에 대한 두려움과 불안을 부추기는 사회에게 묻는다. 어째서 모두가 자신이 원하는 배움이 아니라 시험을 위한 공부만을 해야 하고 주어지는 정답만을 외워야 하는지. 서로를 도우며 즐겁게 공부하고 성장하지 못하고, 무한경쟁을 견뎌내야만 하는지. 대학은 왜 선택이 아닌 의무처럼 강요되고, 다양한 삶의 길이 아닌 "명문대"에 가는 것만이 성공이라 하는지. 왜 대학만이 독점적으로 ‘학력’, ‘자격’, ‘지식’을 판매하고, 대학 밖에서는 다른 배움의 길을 찾기 어려운지. 정부와 사회는 왜 교육을 책임지지 않고 우리 개개인에게 무거운 책임을 떠넘기는지. 점점 가혹하게 자신을 채찍질해도 우리의 삶의 조건은 나아지지 않는다. 오늘의 불행을 저축해도 내일의 행복이 오진 않을 것 같고, 불안과 경쟁만이 이어진다. 도대체 누가 우리에게 이런 불안하고 불행한 삶을 강요하는가.

우리는 대학입시를 거부한다. 우리의 거부는 그저 대학을 안 가겠다는 선택이 아니다. 지금의 입시가, 대학이, 교육이, 그리고 사회가 잘못되었음을, 온몸으로 외치는 것이다. 일단 그래도 대학은 가고 보라는 유예의 주문에 맞서, 지금 여기서 바꾸자고 말하는 것이다. 더 이상 교육에 사회에 문제가 있다고 혀만 차지 말고, 지금부터 같이 바꿔나가야 한다고 손을 내미는 몸짓이다. 우리는 낙오자라 손가락질 받을 수도 있다. 하지만 우리의 이러한 거부가 낙오가 아니라 온전한 선택이 될 수 있는 사회를 꿈꾸기에, 우리는 거부라는 길을 택한다. 잘못된 쪽은 우리가 아니다. 획일적인 경쟁에서 밀려난 누군가는 불행해져야만 하고, 그래서 모두가 불안과 불행을 안고 살아야만 하는 이 사회이다.

모두가 자유롭게 배우고 행복하게 살기 위해, 이제는 이 교육과 사회가 바뀌어야 한다. 우리는 교육이 우리의 보편적 권리로서 존재하고, 누구나 자유롭게 누릴 수 있기를 원한다. 대학 밖에서도 다양한 배움의 길, 삶의 길을 찾을 수 있기를 원한다. 무한경쟁교육이 아니라 우리를 위한 교육을 원한다. 학력이 학벌이 차별의 이유가 되지 않으며 학교가 서열화되지 않은 사회, 우리를 상품이 아닌 인간으로, 우리의 모습 그대로 보는 사회를 원한다. 불안과 두려움에 쫓겨 달리지 않아도 되는 세상을 원한다. 우리 사회가 모든 이들의 최소한의 생존, 사람다운 삶, 행복추구권을 보장하기를 요구한다.

우리에게 수능만을, 순응만을 요구하는 교육, 남을 밟는 것 외에 살 길은 없다고 말하는 이 사회. 이것들을 위해 희생하기에는 우리의 오늘이 너무 아깝기에. 학력과 학벌로 인한 차별과 불평등에 갇혀있기에는 우리들의 배움이 너무 소중하기에. 그렇기에 우리는 선언한다. 여기 대학입시를 거부하는 이들이 있노라고. 자유로운 배움을 위해, 존엄하고 안정된 인간적인 삶을 위해, 유예되지 않는 행복을 누리기 위해, 행동하겠다. 살아가겠다.


2011년 11월 10일
대학입시거부선언자들


고예솔 김민성 김재홍 김해솔 문동혁 민다영 박제헌
양현아 이찬우 이현지 임준혁 장주성 전경현 정열음
조만성 최경수 최난희 한소영 (18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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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능일에 수능거부선언, 대학입시거부선언을 본 게 벌써... 직접 본 것만 3번.

올해는 이례적으로 18명의 참가자

100명을 목표로 했지만 18명에 그쳤다.

꼭 거부자가 아니어도 좋으니, 아니 거부자 말고 다른 분들 많이 많이 오시라고 마련한 자리이니

거리행동 많이 오시랍!

경쟁과 학벌만을 강요하는 교육과 사회를 바꾸는

11월 12일 거리행동에 당신을 초대합니다

 

★ 언제?

11월 12일 토요일, 오후 3시 (사전행사는 오후 1시부터)

★ 어디서?

청계광장 옆 파이낸스 센터 앞 (1,2호선 시청역 4번출구, 5호선 광화문역 5번출구)

★ 누구와?

19살 대학입시 거부자, 20대 대학거부자, 그리고 대학입시거부 운동과 대학거부자들을 지지하는 여러분과 함께!

 

 

11월 12일 거리행동 소개

 

더 좋은 성적, 더 좋은 대학, 더 좋은 직장만을 향해 달리라고 끊임없이 요구하는 학교와 사회에서 우리나라의 학생들은 불행하고 불안합니다. 끝없는 경쟁 속에서 교육은 이미 대학에 가기 위한, 학벌을 얻기 위한 수단으로 전락한지 오래고 그 안에서 진정한 교육의 의미는 찾아볼 수도 없습니다. 경쟁만을 강요하는 지금의 이 교육과 사회를 바꾸기 위해서, 진정한 교육을 찾기 힘든 지금의 입시를 철폐하고 대학을 평준화하기 위해 당당하게 대학을 거부하는 대학거부자들의 목소리와 이에 공감하는 모든 사람들의 목소리를 모아 이 사회에 전달하고자 이번 거리행동을 준비합니다.

 

 

대학입시거부로 세상을 바꾸는 투명가방끈들의 모임

홈페이지 cafe.daum.net/wrongedu1

트위터 @wrongedu

후원계좌 우체국 014019-02-153534(김해솔)

 

 

공동주최_대학입시거부로 세상을 바꾸는 투명가방끈들의 모임, 교육혁명 공동행동 (관 악동작학교운영위원협의회, 교육노동운동의전망을찾는사람들, 경기교육운동연대꼼, 노동해방실천연대, 노동전선, 민주화를위한교수협의회, 다함께, 사회당, 사회주의노동자정당공동실천위원회, 사회진보를위한민주연대, 서울대법인화반대공대위, 입시폐지대학평준화국본, 전국공무원노조, 전국교수노조, 진보교육연구소, 참교육을위한전국학부모회, 청소년인권행동아수나로, 평등교육실현을위한전국학부모회, 학벌없는사회, 한국비정규교수노조, 함께하는교육시민모임, 학술단체협의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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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어가는꿈2011.11.10 09:58

[나의 대학거부] 내가 배우고 느끼고 싶은 것

고예솔

나는 지금 대안학교를 다니고 있는 고3이다. 학년으로 고3이긴 하지만 공식적으로는 초등학교 졸업이 내 학력의 전부다. 내가 다니는 학교는 학력인정이 안 되는 학교라 검정고시로 중학교와 고등학교 학력을 취득해야 한다. 하지만 나는 중․고졸 검정고시를 보지 않을 것이고 대학에도 가지 않을 것이다. 학생인권조례 제정운동을 하면서 그런 결심을 굳히게 되었다.

학생인권조례 제정운동을 하면서

사람들은 사회가 많이 바뀌었다고 이야기한다. 하지만 아직 청소년에 대한 권위적이고 폭력적인 사회분위기는 여전하다. 올해 초 나는 학생인권조례 제정운동에 참여했다. 조례를 제정하기 위해서는 당사자인 청소년들의 서명이 아니라 유권자의 서명이 필요했다. 그래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났고 청소년 인권에 대한 생각들을 들었다. 그러면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조례를 제정해 반인권적인 행동에 대한 규제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제일 중요한 건 사회구성원들의 인식의 변화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것을 위해서는 근본적 원인이 되는 입시 위주의 무한경쟁 교육방식이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대학입시거부 모임에 함께하게 되었다. 

간디학교를 다니는 친구들은 대부분 대학에 대해 별 생각을 가지고 있지 않다. “대학이란 가면 가는 것이고 안가면 안 가는 것. 자기가 하고 싶은 것을 하고 사는 게 행복한 것이다. 결과를 위해 과정을 희생하지 마라. 대학은 의무가 아닌 선택이다.” 우리는 이렇게 6년간 배워왔고 또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 친구들은 나의 대학입시 거부 행동에 대해 이해하고 공감하고 격려도 해 주었지만 동참하려 하지는 않았다. 나 자신은 무한경쟁 입시제도에서 벗어나있기 때문에 상관없다는 것일까. 하지만 좋든 싫든 학벌만으로 평가받는 한국사회의 구성원으로 있는 한 우리는 그것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대학입시 따위랑은 전혀 관계가 없어’라고 생각하고 있던 나도 19세 혹은 고3이라는 타이틀을 달고 나니 무언가 압박이 느껴졌다. 사람들은 낮에 학교나 학원이 아닌 곳에 있는 나를 뭔가를 포기한 사람쯤으로 취급하곤 한다. 자기도 모르게 다른 사람들에게 획일적인 삶의 방식을 강요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대학을 가지 않으면 뭔가 큰일이라도 벌어지는 것처럼 여기고 있다. 나의 삶은 대학으로 완성되는 것이 아닌데 말이다. 그런 질문 속에 지내다보면 나도 대학엘 가야하는 것 아닐까? 대학을 나오지 않으면 먹고살 수나 있을까? 하는 압박감으로 초조해지기도 한다. 무한경쟁 교육 속에서 어느 정도 벗어나있다고 할 수 있는 내가 이정도로 압박을 느끼는데 그 속에 살아온 아이들이 느끼는 압박은 얼마나 심할까 싶었다. 그런 압박감 속에서 청소년들은 스스로의 권리를 포기하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고 있는 것 같다.


교사들도 학생들도 대학에 매여 있는 사회

학교 현장의 권위적이고 폭력적인 환경 또한 마찬가지 이유에서 사라지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학교 교육은 민주사회에서 더불어 함께 살아가기 위한 민주적 인간이 되는데 필요한 소양을 기르는 곳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학벌 위주의 사회 속에서 보다 나은 위치를 차지하기 위해 학교는 대학만이 목표인 것처럼 학생들을 몰아세우고 그 속에서 인권을 논의 한다는 것은 비효율적인 논의로 치부된다. 교사들 또한 학생들을 좋은 대학에 얼마나 보내는가로 능력이 평가되는 환경 속에서 학생들을 경쟁으로 몰아세우고 권위적으로 억압할 수밖에 없게 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사람은 행복해지기 위해서 산다. 십년 후의 행복을 위해 십년동안의 시간을 공포와 초조함으로 가득 채우고, 마음을 나누어야 할 친구들과 끊임없이 경쟁하며 시간을 보내는 것은 삶을 낭비하는 것이다. 삶의 가치는 미래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오늘의 매순간 순간이 모여서 미래가 되는 것인데 미래에만 의미를 두고 현재를 저당 잡히는 삶을 나는 살고 싶지 않다. 그것들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지금 당장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지 못하고 행복을 느끼지 못하는데. 그렇다고 십년이 지나 좋은 대학을 나온다고 행복이 찾아올까? 그렇게 단언할 수는 없을 것이다.

한국 사회에서 대학을, 학벌을 거부한다는 것은 사실 불안한 일이다. 대학졸업장이 없으면 무능력한 사람으로 취급받는 이 사회에서 초졸로 살아갈 수 있을지 걱정이 된다. 지금까지 보호 아래 살던 내가 이 문제 많고 험한 세상으로 나가야 한다는 것이, 더군다나 사회가 요구하는 길이 아닌 다른 길로 걷고자 한다는 것이 두렵다. 내가 잘할 수 있는 것, 하고 싶은 것은 대학을 목적으로 한 그런 공부가 아닌데 그것 말고 다른 배움을 추구한다고 해서 이렇게까지 두려움에 떨어야 한다는 건 이 사회의 어딘가가 잘못된 것이라고 생각한다. 청소년들의 다양한 꿈들이 존중되고 그들이 다양한 선택을 당당히 말하고 꿈 꿀 수 있는 사회가 되길 바란다. 

꿈을 꿀 수 있는 사회가 되기를

대학을 가지 말자는 말을 하고 싶은 것이 아니다. 대학은 지금처럼 학벌로 줄 세우는 사회에 의해 강요되어지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필요에 의해서 갈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학교 교육의 목표가 대학입시에 있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고 학교 현장에서나 우리 사회 모든 곳에서 청소년들의 인권이 존중받기를 바라는 것이다.

내가 하는 이 운동은 입시위주 교육이 낳는 권위적이고 폭력적인 사회분위기를 바꾸기 위한 문제제기라고 봐주면 좋겠다. 문제 당사자인 청소년들 스스로가 주인의식을 갖고 청소년들의 목소리로 대안을 찾고 교육의 진정한 목표를 찾는 곳으로 만들기 위한 움직임이기 때문이다. 이 운동을 통해 우리 사회가 청소년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교육의 목표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과 답을 다시 찾아나가는 계기가 되면 좋겠다.

나는 졸업을 하고나면 인권운동을 하는 활동가로 살아갈 생각이다. 그리고 시간이 흐르고 흰머리가 생기기 시작하면 귀농할 생각이다. 그런 삶을 살기 위해 많은 것을 배우고 공부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하지만 대학졸업장을 따는 일에 매달리지는 않을 것이다. 대학이 아니라도 이 세상에는 더 소중하고 의미 있는 것들이 많고 거기서 배우고 느끼는 것이 더 크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덧붙이는 글
고예솔 님은 대안학교를 다니며 투명가방끈들의 모임에 함께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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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오름 제 274 호 [기사입력] 2011년 11월 08일 15:54: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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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어가는꿈2011.11.10 09:57

[나의 대학거부] 대학은 大學(대학)이 아니었기에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대학생다운 행동은 ‘대학 거부’

김서린

대학에 입학한 것은 나의 선택, 적어도 그렇게 믿었다

대학거부선언을 하고 돌아오는 지하철 안, 내 맞은편에 앉은 교복 입은 여학생을 보며 머릿속으로 문득 어떤 기억이 스쳐지나갔다. 나는 교복을 입고 부모님 앞에 진지하게 앉아 있었다. 그리고 이어진 것은 “네가 대학에 가서 굳이 공부할 생각이 없고 그냥 지금 취직을 하고 싶으면 그렇게 해도 된다. 꼭 대학에 들어갈 필요는 없다.”라는 부모님의 말씀이었다. 나는 그때 “대학에 가겠습니다.”라고 대답했다. 나는 그때 전혀 망설이지 않았던 것 같다. 그러니 분명히 내가 대학에 입학한 것은 바로 ‘나의 선택’이었다. 

그러나 지금에 와서 생각해보면 그때의 선택은 어떤 면에서 ‘선택’이 아니었다. 나는 그렇게 선택받도록 교육받아 왔다.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내가 원하는 삶을 위해서 대학은 필수라고 여겼다. 나는 당시 인문계 고등학교를 다녔는데 실업계 고등학교를 다니는 친구들조차도 대학에 가려고 했기 때문에 대학을 왜 가야 하는지는 궁금하게 생각해본 적도 없었다. 그때 나는 대학이 어떤 곳인지, 대학에서 무엇을 할 수 있고 무엇을 얻을 수 있는가에 대해서는 아는 것이 없었다. 막연히 대학생이 되면 자유로워지고 국․영․수 같은 주입식 교육, 혹은 죽도록 싫은 입시공부에서 해방될 것이며 하고 싶은 공부를 할 수 있고 심지어 예뻐지기 까지 할 수 있다고 믿는 수준이었다.

반면 대학을 안 가서는 안 되는 이유들에 대해서는 잘 알고 있었다. 예를 들면 고졸이 받는 사회적인 차별에 대한 이야기, 전문대를 졸업한 사촌이 더 많은 월급을 받기 위해서 결국에는 4년제 대학에 들어갔다는 이야기, 요즘에는 대학 나와도 살기 힘들다는 이야기, 가방끈이 짧으면 사람은 좋아도 교양이 없다는 이야기 등 참 많은 이야기들이 있었다. 그런 이야기들은 내게 한 목소리로 말하는 듯 했다. “대학을 가지 않은 너의 삶은 너무 고될 거야. 이제까지 무엇을 위해서 그렇게 참으며 살아왔니? 공부를 더 하고 싶으면 당연히 대학에 가야해. 대학에 가면 너의 꿈을 펼칠 수 있지만 반대의 경우라면 잘 모르겠다.”라고 말이다. 그렇게 나는 아주 자연스럽게 대입을 선택했다. 고3인 내 눈에 질 높은 삶을 위한 단 하나의 길이 ‘대입’이었기 때문이다. 

대학, 그에 대한 나의 애증

(1)
아이러니하게도 내가 1학년 때 가장 싫었던 것은 선배들이 강요하는 술과 노래였는데, 지금 가장 싫은 것은 선배가 된 내가 토익공부나 아르바이트로 바쁜 1학년 후배들을 불러 술 한 잔, 밥 한 끼 하기가 미안한 현실이다. 1학년 때부터 열심히 스펙을 쌓고 학점을 따 놓아야 취업을 할 수 있다는 것은 누구나 아는 사실이고 벅찬 등록금과 거주비용 등으로 대부분의 대학생들이 아르바이트를 해야 하기 때문이다. 물론 그렇지 않은 대학생이 아예 없지는 않겠지만 오늘날의 대학생활이 결코 낭만적이지만은 않은 것이 사실이다. 

대학생들은 무엇을 두고 경쟁하고 있을까? 대부분 ‘미래를 위한 준비’를 하기 위해서 경쟁한다. 그런데 이 경쟁이 갈수록 치열해질 수밖에 없는 이유는 이 ‘미래를 위한 준비’라는 작업이 모두가 노력만 한다고 다 해낼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당연하게도 경쟁에서는 절대로 모두가 가질 수 없다. 따라서 ‘준비가 미흡한 어떤 이의 존재’는 불가피하다. 준비가 미흡한 어떤 이, 이른바 낙오자는 ‘나’이거나 ‘내가 아닌 다른 학생’ 중에서 무조건 나오도록 되어 있는 것이다. 그 것은 참으로 무서운 전제이다.

대학에서의 경쟁 중 대표적인 것은 바로 ‘상대평가제도’가 아닌가 싶다. 이는 내가 얼마만큼 배움의 완성을 이루어 냈는지 상관없이 같은 수업을 듣는 학생들보다만 더 좋은 점수를 받으면 되는 것이니 학생들은 일단 다른 학생들보다만 시험을 잘 볼 수 있을 정도로 공부하려 했다. 나 역시 그런 마음이 들었었다. 교수님들은 상대평가 때문에 학생들의 학습수준이 떨어졌다고 말씀하셨지만 그와는 상반되게 노트하나 빌리기도 민망할 정도로 강의실의 분위기는 차가워졌다.

그러는 사이 대학 안에서 공부와 학점 사이의 간극은 커졌다. 학생들이 선택하는 것은 주로 ‘학점’ 쪽이었다. 그것을 두고 사람들은 ‘현명하게 공부하라’고 말했다. 한마디로 ‘학점만 현명하게 받아내라’라는 주문이었다. 그 말은 “시험에 나오지 않을 부분을 붙들고 있지 말고 그럴 시간에 교수님께 가서 눈도장 한 번 더 찍어라.”라는 식이었다. 그런 말이 ‘현명하게’라는 단어를 앞세울 수 있었던 이유는 ‘실속’이 있어야 ‘취업’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학점 외에 토익, 토익 스피킹, 봉사활동 및 기타 학내활동, 학외활동을 하고 아르바이트까지 해내기 위해서 공부시간은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당연한 이야기겠지만 학생들이 겉포장에 더욱 신경 쓸 수밖에 없는 것은 겉포장이 취업경쟁의 ‘참여요건’이 되는 사회의 모습을 반증하는 것이다.

그런 분위기 안에서 나는 너무나 혼란스러웠다. 남에게 인증받기 위한 공부를 하며 그 결과에 따라 내가 의도한 적도 없는 경기에서 남에게 지거나 혹은 이겨야 한다는 사실은 도서관에 앉아있는 나를 무기력하게 했다. 더군다나 경쟁에 필요한 비용도 우리집 형편으론 만만치 않았고 그럴수록 나의 부담은 커져갔다. 이러한 부담은 내가 원하는 것이 아닐 지라도 무조건 ‘안정적인’ 쪽으로 움직여야 한다는 부담이었다. 그러는 와중에 다른 사람들은 열중하고 있는 이 경기에 나 혼자 의문을 가져서 괜히 이도저도 아닌 게 될까봐 두려운 적도 많았다.

(2) 
대학에 와서 무조건 안 좋은 추억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나는 대학에서 많은 사람들을 만났고 많은 경험을 했으며 많은 것들을 느꼈다. 물론 그게 어떤 공부이든 공부도 하긴 했다. 검도 동아리에 들어서 함께 땀 흘리며 운동하는 경험도 했고 스터디 그룹에서 함께 공부하는 즐거움도 알았다. 학내기관에서 아나운서로 활동하며 뿌듯함도 많이 느꼈다. 나는 나 스스로 ‘대학생활다운 대학생활’을 하기 위해서 많이 노력했다. 그래야 견딜 수 있었으니까. 어쨌거나 대학은 이제까지 젊음을 대표하는 곳이고 그만큼 에너지 넘치는 곳이다. 내가 대학에 대한 희망을 버리지 않은 것도 그런 부분이다.

하지만 그 에너지가 어떻게 쓰이고 있는지, 대학이 그러한 에너지들을 어떻게 소모시키고 있는지가 주목해야하는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대학에서 느낀 많은 것들이 한 해 한 해가 지날수록 점점 사치스럽게 느껴질 정도로 대학의 현실은 어둡다. 그런데도 언제까지나 대학의 낭만을 노래할 수는 없는 일이다. 그리고 대학의 공부와는 무관한 활동들을 꼭 대학에 들어와서만 할 수 있는 것처럼 이야기하는 것도 실은 그만큼 다양한 교육이 보장되지 못 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든다. 

(3) 
애착과 불만이 뒤섞인 대학생활에 졸업이라는 지점이 가까워 올수록 내 마음은 그 어느 때보다도 요동쳤다. 경쟁 속에 끼어든 많은 불합리한 사건들 앞에서 자신의 미래를 위해 눈을 감고 귀를 닫는 친구들의 모습을 보면서 ‘저 모습이 내 모습’이라는 생각에 괴로웠다. 내가 본 많은 학생들이 생각하려 들지 않거나, 모르는 척 하고 싶어 했다. 그러는 사이 한쪽에서는 자살을 하고, 꿈을 잃고, 생존을 위한 아르바이트에 허덕였다. 대학교 축제가 벌어지던 어느 날, 한창 인기 있던 노래에 맞춰 하나가 되는 학생들의 모습을 보며 내 머릿속으로는 언젠가 보았던 생동성실험에 대한 방송, 등록금 때문에 휴학을 했다는 선배의 얼굴, 대출금이 쌓여서 무섭다던 친구의 문자 메시지, 축제날임에도 사회문제에 대해서 이야기해 보자며 모인 달랑 두 명인 동아리원의 모습, 그리고 갖가지 기사들이 스쳐지나갔다. 나는 생각했다. 대학의 진실한 모습은 무엇일까? “축제에 흥겨워하는 저 모습이 대학의 진짜 모습일까?”라고 말이다.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대학생다운 행동은 바로 ‘대학 거부’

대학의 문제, 더 나아가 우리 교육의 문제에 대해서 많은 이들이 침묵하는 동안 그 폐해는 사건들로 나타났다. 나는 그것이 사회에 적응하지 못 하는, 혹은 대학에 적응하지 못 하는 소수의 문제라고 치부하며 외면할 수는 없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심각해진 대학의 문제 덕분에 학교와 사회에서도 대학에 관한 이야기들이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등록금을 ‘반값’으로 내리는 것, 물론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나도 등록금투쟁에 참여했다. 하지만 그것으로는 부족하다. 지금의 구조 자체가 달라지지 않는다면 다양한 학문을 추구하고 자유롭게 토론하며, 남에게 보여주기 위한 공부가 아닌 자신의 공부를 할 수 있는 그런 진짜 대학의 모습을 찾을 수는 없을 것이다. 지금 당장 등록금이 반값이 된다고 해도 대학은 반값으로 내린 등급별 취업자격달성소가 될 뿐이다.

나는 ‘대학생’이라면, 아니 ‘젊은이’라면 이 시대의 순수한 지성으로서 행동하여야 한다고 배웠다. 내가 뼛속까지 느꼈던 많은 문제들을 다른 누군가가 죽음으로 말해주기만을 기다리며 조용히 졸업한다면 나는 그 졸업장 앞에서 당당할 수 있을까. 이런 저런 생각 끝에 내가 ‘진짜 대학’을 원한다면 나 역시 ‘진짜 대학생’으로 행동하자는 생각에 도달했다. 내 후배들, 내 동생들을 나와 같은 어쩌면 더 심해질 문제의 한 가운데에 방치시켜놓지 말자. 그리고 무엇보다 나 자신부터 이 무의미한 경기에서 너무나도 벗어나고 싶었다. 이런 대학에는 동의할 수 없다고 말하고 싶었다. 그러기에 나는 대학을 거부하자고 마음먹었다.

나는 가로등이 있는 길을 걸어야만 한다는 사람들의 말을 거슬렀다. 하지만 모를 일이다. 함께 대학을 거부하고 이런 교육과 사회를 바꾸어야한다고 외치는 우리가, 가로등이 아니더라도 성능 좋은 휴대용 손전등 정도는 만들어낼 수 있지 않을까. 
덧붙이는 글
김서린 님은 바람 같은 여자, 얼마 전까지 대학생이었지만 대학을 거부하기로 마음먹고 중퇴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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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오름 제 274 호 [기사입력] 2011년 11월 08일 22:1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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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어가는꿈2011.11.08 20:57


대학거부선언

“우리는 낙오자가 아닌 거부자입니다”

 

여기, 대학을 다니지 않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 '대학중심주의' 사회에서, 대학을 다니지 않으면 인생이 무너질 거라고들 하고, 지금 대체 뭘 하고 있는 거냐고 재촉을 받습니다. 그래도 대학에 가지 않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잘 보이지 않고 있는지 없는지 헷갈려도, 분명히 있습니다.

 

우리는 대학을 그만둔 사람들입니다. 입시에 찌들어 살던 10대를 보내던 시절에 듣곤 했던 “오늘만 견디면 내일은 행복해질 거야”라는 이야기는 그저 말 뿐. 대학에 진학한 후에도 나아지는 것은 없었고, 오히려 끝없는 레이스에 진입했다는 느낌만 강해졌습니다. 미쳐버릴 것만 같은 수백만원의 등록금 고지서에 숨이 막혔습니다. 대학 안에도 선후배 사이의, 교수 학생 사이의 권위주의와 수직적 문화가 우리를 괴롭게 했습니다. 학생들은 입시경쟁의 틈바구니에서 성적에 따라 대학에 왔고, 수강신청을 하지만 나의 진정한 자유는 점점 줄어들었습니다. 학문의 다양성과 자유는 줄어들어갔습니다. 대학은 학문의 전당이 아니라 졸업장을 얻기 위해 학점을 관리하고 경쟁하는 곳이 되어버렸습니다.

 

우리는 대학에 가지 않은 사람들입니다. 오로지 ‘명문대’라는 한 길만을 강요하는 교육, 수능과 입시라는 거대한 서열화의 장, 대학으로 인간의 가치가 결정되는 대학중심사회, 학벌사회의 폭력을 거부하기로 마음먹은 사람들입니다. 돈 때문에 성적 때문에 대학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던 사람들입니다. 대학에 가는 이유를 찾지 못해 가지 않은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남들 다 간다는 대학에 가지 않고 스무 살이 되는 순간, 그래도 괜찮다는 우리들의 마음과는 상관없이 이 사회는 우리를 ‘괜찮지 않는 사람’으로 규정해 버렸습니다.

 

대학에 다니지 않는 우리는 많은 것을 겪을 것입니다. 대학 진학률이 80%가 훌쩍 넘는 이 사회에서 우리가 겪는 차별은 너무나 많습니다. 아르바이트 하나를 구하려고 해도 학력을 묻고, 주변의 사람들은 출신 대학을 학번을 따져 묻습니다. 남자라면 대학을 이유로 군대를 좀 미뤄보거나 고민해볼 새도 없이 열아홉, 스무 살에 바로 군대에 끌려가야 하는 처지에 놓이기도 합니다. 한편, 사람들은 자꾸 재촉하기만 합니다. 너희가 대학을 가지 않았으니, 그만큼 뭔가 남다른 성과를 내놓아보라고. 하지만 우리가 무언가를 배우거나 해보려 할 때 사회는 그것을 도와주지 않습니다. 도와주기는커녕 따져 묻고 재촉하기만 합니다.

 

우리가 대학을 그만두거나 대학에 가지 않은 것은 더 좋은 삶, 나중이 아닌 지금 행복한 삶을 살고자 하는 것입니다. 대학이 아닌 다른 삶의 길을 찾아보려는 것입니다. 우리는 대학을 거부한 것이지 배움을 포기한 것은 아닙니다. 대학 거부가 우리의 삶을 포기하는 것이어서도 안 됩니다. 하지만 대학 밖에서의 배움은 너무나 어렵습니다. 대학만이 유일한 배움의 길로 주어져 있습니다. 자신이 배우고 싶은 것을 애써 찾아서 배우는 그 과정 뿐 아니라, 우리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도 견디기 힘듭니다. 앞으로 우리가 감수해야 할 차별과 불이익은 우리를 더욱 막막하게 합니다. 대학에서 벗어난 우리에게 사회는 차별과 배제의 이빨을 들이댑니다.

 

이렇게 끈질기게 따라오는 '대학중심주의'에 치를 떨면서도, 그렇기에 더더욱, 우리는 대학을 거부하고자 합니다. 이 사회에서는 이렇게들 말합니다. 대학에 가지 않으면 먹고 살 수 없다고. 그러니 너희 모두 지금의 삶은 잠시 유예해야 한다고. 결국 우리는 대학생이 되는 것이 아니라 대학생이 되도록 떠밀리고 있습니다. 지금도 많은 이들이 고등학교를 졸업하면 당연히 대학을 가야 하는 줄 알고, 대학을 못 가면 사람답게 살 수 없는 줄 알고 반강제적으로 의무적으로 대학에 갑니다. 그러나 우리는 압니다. 결국 대학에 들어간 뒤에도 우리는 끊임없이 현재를 유예해야 하고, 불안과 좌절감에 자신을 더욱 '스펙 좋은' 상품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것을. 그래도 결국 우리 중 다수의 앞에 기다리고 있는 것은 취업을 위한 또 다른 유예나 '88만원세대'의 삶이라는 것을. 또 우리는 압니다. 그 레이스에 서지 못했다는 이유만으로 낙오자, 패배자, 루져 취급을 받는다는 것을. 그리고 그것이 얼마나 비인간적이고 부당한지를. 그런 현실은 자살율 세계 1위의 대한민국, 20대 사망원인 중 절반 정도가 자살이라는, 끔찍한 통계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우리는 바랍니다. 대학을 강요받지 않는 사회, 우리가 대학을 진정으로 선택할 수 있는 사회를. 입시만을 위한 교육이 아닌, 하루하루 피 마르는 경쟁교육이 아닌, 다양한 가능성을 꽃 피울 수 있는 교육을. 학력과 학벌이 행복의 척도가 되는 지금의 잘못된 기준이 사라진 사회를. 스펙을 위한 곳이 아니라 진리를 탐구하고 배우고 연구하는 학문의 전당이 된 대학을. 대학이 아닌 곳에서도 더 많은 교양과 지식을 얻을 수 있는 교육을. 학벌․학력이 어떻든 차별 받지 않고 정당하고 충분한 노동의 대가를 받는 사회를. 모든 사람이 사람답게 살 수 있는 사회를. 모든 사람들이 행복이 유예된 삶이 아니라 지금, 여기, 오늘이 즐거운 삶을 살아갈 수 있는 세상을. 그리하여 대학에 가는 것이 필수가 아닌 선택이 될 수 있는 세상을.

 

그런 세상을 위해, 우리는 열아홉 청소년들의 <대학입시거부선언>과 함께 "20대의 대학거부"를 선언합니다. 우리는 <대학입시거부선언>의 요구와 목소리를 함께할 것입니다. 지금의 사회와 대학, 교육을 바꾸지 않으면 우리 모두는 행복해질 수 없습니다. 우리는 지금 우리의 이 거부와 선언과 행동이 지금의 대학과 사회를, 더 나아가 우리의 삶을 바꾸는 계기가 되기를 바랍니다.

 

 

2011년 11월 1일

 

강현, 경성수, 고다현, 공현, 그링, 김서린, 김슷캇, 김지훈, 김희영, 난다, 박고형준, 박유리, 박주희, 시원한 형, 아즈, 어쓰, 엠건, 윤티, 은총, 이나래, 이승환, 이정은, 이해인, 임준혁, 정도(김자니), 정한얼. 지혜, 채유리, 형우, 호야 (가나다 순, 총 30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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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공현
걸어가는꿈2011.11.08 13:02

[나의 대학거부] 난 대학 안가, 못가, 가기 싫어, 상관없어!

쩡열


나는 대학거부를 앞두고 있는, 학교 바깥에서 살아가고 있는 빠른 94년생인 19살이다. 아니 사실 대학거부를 앞두고 있다고 말하기는 무언가 많이 낯부끄럽다. 딱히 비장한 마음으로 준비하는 대학거부가 아니다. 그냥 갈 생각이 없어서 가려고 노력하지 않을 뿐이다. 심지어 주변사람들이 놀리는 것처럼, 검정고시로 봤던 중졸이 최종학력인 나는 고졸의 학력을 취득하기 전까지는 대학에 갈 수도 없다.

나에게 대학은…

살면서 대학에 가고 싶다고 느꼈던 순간들은 꽤나 분명하게 다섯손가락 안에 꼽힌다. 예를 들어 초등학생 때 좋아하는 주변 어른들 중에 성균관대를 졸업한 사람이 많으니까 ‘나도 저기 가보고 싶어!’라고 떠올렸던 적이 있었다. 물론, 교원대와 교대가 같은 곳인 줄 알았던 시기였다. 중학교에 가면서 슬슬 “너는 꿈이 뭐야?”라는 질문들이 주변에서 들려왔다. 그때 나는 소설책 읽는 걸 너무 좋아해서 작가가 되고 싶었다. 대학은 당연하게 가야 된다고 생각했기에 사람들에게 대학교 어느 과에 가야 하냐고 물어봤던 것 같다. 그리고는 문예창작과에 가겠다고 결심했던 시절도 물론 있었다. 하지만 학교를 다니지 않으니 알아서 생활해야 하는 나에게 가장 중요한 고민은 “오늘, 내일 뭘 할까?”와 내가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일지 찾아보는 것이었다. 이전에 대학에 대해 했던 고민들이 잘 기억나지 않는다. 이제는 대학에 안가겠다는 결심이 거의 굳어있는 상태이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어쩌면 별로 생각을 안했던 것일 수도 있다.

우리 엄마는 나를 대안학교에도 보냈고, 학교를 안 다니게도 했던, 이 사회에선 나름 특이한 사람일 것이다. 엄마는 내가 어렸을 때에 종종 “니가 정말 가고 싶고 필요하다고 생각하면 그 때 대학에 가라”, “니가 돈 벌어서 다녀라”, “대충 당연하게 가야 되니까 가서 놀다올 거면 지원할 수 없다”는 말을 했다. 물론 ‘니가 돈 벌어서 다 다니라’는 말은 농담이고 으름장이었을 거다. 하지만 그 말들과 내가 살아온 그 분위기가 나에게 꽤 영향을 주기는 했나보다. 게다가 일제고사 반대, 주입식 교육 반대 같은 이야기들을 하는 청소년 인권활동과 내가 현재 일하고 있는 교육에 대해 고민하는 단체를 만나게 되면서는 대학이라는 것이 내 미래에 대한 고민과 구상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거의 없어졌다. 나에게는 대학 같은 것에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지금 하고 싶고 궁금한 일들이 사방에 깔려있는데 대학이 뭐 중요하겠는가! 아직 먼 얘기였고, 내 관심사는 대학과 그다지 상관이 없었으니까.

대학생이 되는 건 ‘골드민증’ 같은 사회가 주는 허가증인 거야?!

안타깝게도 대학에 신경 쓸 겨를 같은 건 금방 생겨버렸다. 하하. 어느덧 18살, 학교로 치면 고등학교 2학년 나이가 되었다. 이제는 정말 대학 가긴 늦었다는 감이 오기 시작하면서 불안과 분노로 가득 찼던 시기였다. 슬슬 내가 알던 사람들이 대학에 들어가기 시작했고, 온갖 청소년 보호법에서 자유로운 골드민증마냥, 사회가 준 대학생이라는 명찰을 받아서 생기는 혜택들이 부럽고 또 부러웠다. 재학생만 들어갈 수 있는 대학도서관이라는 그 방대한 데이터베이스와 자료가, 마음껏 쓸 수 있는 그 공간이 부러웠다. 20대를 당연히 대학생이라고 생각하는 사회에서 ‘대학생 때는 실컷 놀기도 하는 거지~’라며 놀 수 있게 주어지는 그 시기도 부러웠고, 다른 걱정 없이 하고 싶은 것만 찾아다녀도 될 것처럼 보는 게 부러웠다. 공부만 해도 괜찮은 시기인 게 부러웠다.

물론 이제와 생각해보면 이것저것 다른 상황들이 떠오르긴 한다. 학비를 부모님이 대주는 경우도 있겠지만, 대학에 갈 수 없는 사람들도 많을 테고, 수업이 별로일 수도 있을 것이고 뭐 이런저런 우울한 대학생들의 반론 같은 것. 하지만 저 때의 고민이 품고 있던 것은 물질적인 그 무언가가 아니었다. 말로 풀려니 잘 안되지만 간단하게 말해보면, ‘유예기간’이라는 것에 대한 분노였다. 대학을 가지 않는 이들은 20살이 되는 순간 사회생활을 하는 것으로 간주되어 안정적으로 미래에 대한 고민을 해나갈 시기가 없다. 하지만 1년에 1,000만원이라는 어마어마한 금액을 지불한다면 사회는 대학생이라는 명찰을 붙여 안정적인 유예기간을 준다. 10대에게서 수능과 대학, 공부 이상의 것을 생각할 권리도 고민할 권리도 다 앗아가려는 이곳에서 대학을 가지 않는다는 선택을 할 때에는, 제대로 고민해볼 틈도 없이 냅다 내동댕이쳐지는 상황이 나를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위 사진:'저공비행'(저항을 공부하는 비행 청소년들의 줄임말) 중.

비싼 응급실

대학에 관한 이런저런 생각들은 나를 너무나도 불안하게 만들었다. 난 뭘 해야 하지? 잘 모른다면 대학에 가서 경험해보는 것도 좋지 않을까? 어떻게 먹고살지? 알바도 대학생 우대하는 이 상황에서 내가 중졸로 살아남을 수 있는 거야? 지금도 불안하긴 매한가지다. 그 불안의 강도가 달라질 뿐 늘 내 안에 잠재하고 있다. 그러나 내가 생각하기에 이 불안은 대학이 만들어내는 불안만은 아니고, 꼭 대학에 대해 고민을 하고 또 해야만 할 필요는 없는 것 같다. 그렇게 대학에 묶여서 사고하게 되는 것 자체가 더 이상한 것 같기도 하고 말이다.

나는 내가 현재 하고 싶은 것을 잘 모르겠고, 뭘 할지 잘 감이 오지 않을 때에 당연히 느낄 수밖에 없는 불안을 느끼고 있는 것일 뿐이다. 그런 상황에서 19살은 당연히 대학이라는 예제만을 끊임없이 보고 자라니까 대학이 불안해지는 건 어쩔 수 없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 안에 들어가서 ‘내가 뭘 하고 싶은 지 찾아보겠어!’라고 대학에 무턱대고 들어간다는 건, 늦은 밤에 응급실에 들어가 훨씬 비싼 진료비를 내야 하는 상황만큼이나 돈도 아깝고, 입안도 쓸 따름이다. 그런 식의 응급처치로 대학에 갈 바에는 조금 막막하더라도 다른 길을 찾아보려고 한다. 18살의 분노와 부러움을 지나 19살이 된 지금은, 전문적인 공부를 하려는 마음과 의지를 가지고 사람들을 찾아갔을 때에는 너무나도 반갑게 함께 공부해준다는 것도 알게 되었고, 조금 다른 길을 선택한 청소년 인권활동 등을 하는 청소년 활동가들이 꼭 대학이 아니더라도 공부를 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보자고 노력했던 ‘저공비행’도 있었다. 그리고, 알바한다고 열심히 함께하지 못하지만 ‘투명가방끈’도 내가 대학을 가지 않고도 하고 싶은 걸 하면서 살아나갈 수 있을 것 같다는 가능성의 실마리들이다.

그래서 우린 네트워크가 필요할 꺼야

대학입시거부토론회에 패널로 와주었던 지나가던 시민이 대학 진학률 80퍼센트의 이 나라에서는 곧 고졸들이 굶어 죽을지도 모른다고 했던 말이 기억에 남는다. 그런 상황이 오지 않기 위해서는 더 많은 사람이 함께 대학을 거부하고, 대학을 거부한 사람들이 함께 모여 네트워크를 만들어야 한다고 했던 그 말에 얼마 전 우연찮게 들어본 고졸 네트워크가 떠올랐다. 고졸의 학력을 가지고 살아나가는 사람들이 모이는 네트워크라니! 자세히는 모른다. 하지만 대학을 가지 않고, 불안해 할 수많은 사람들에게 그 네트워크가 줄 위안과 현실적 안정은 상상만으로도 너무 행복하다. 앞으로 그 행복한 상상이 정말 현실이 되게 하는 일들을 해야 할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 필요한 것도, 해야 할 일이 어떤 것인지도 아직은 잘 모르겠다. 그 네트워크를 만드는 것에 대한 일은 내 마음 한구석에서 나를 종종 흔들어댈 것만 같다. 내가 살아남기 위해서, 우리가 살아남기 위해서, 그리고 나중의 누군가가 대학을 쉽게 선택하지 않아도 될 수 있도록 하고 싶은 일로 말이다.
덧붙이는 글
쩡열 님은 교육공동체 나다에서 활동하는 중이며, 공부도 돈벌기도 쉽지 않은 10대 끝자락을 보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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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오름 제 273 호 [기사입력] 2011년 11월 02일 13:47: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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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어가는꿈2011.10.27 07:45

[나의 대학거부] 4년의 공장 제련기간을 거부한다

레쓰



나는 전문계 고등학교 3학년 학생이다. 아니 이제는 학교를 잘린 전문계고 고등학교 학생이다. (졸업을 불과 몇 개월 남겨두고 무단결석이라는 엄청난 행위를 감행하고 있다.) 2008년 촛불집회 이후 계속 여러 인권운동, 사회운동에 참여해왔고, 많은 청소년 활동가들을 만났다. 하지만 입시교육이나 대학에 대해 비판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는 많은 청소년들도, 대학에는 일단 갈 생각을 한다. 나도 기존의 권위주의, 군사문화, 이성애중심주의, 마초 쩌는 이 ‘학교’라는 시스템을 잘 버텼고 수없이 많은 체벌과 욕설 속에서 큰 반항 한 번 하지 않고 나름 길들여졌기 때문이었을까? 얼마 전까지만 해도 그냥 고3인 내 주변에 넘실거리는 입시의 물결 속에 조용히 휩쓸려 수능을 보고, 대학교에 들어갈 줄 알았다.

청소년운동을 열심히 해온 청소년 중에는 대학에 자기가 활동해온 경력들을 제출해서 수시나 특별 전형, 입학사정관제 등으로 대학에 입학하는 사람도 있다. NGO(엔지오, 비정부기구) 활동 전형이 있는 성공회대학교 같은 곳에 지원을 하는 경우가 많다. 물론 대학에 활동한 경력을 낸다고 다 붙는 건 아니지만, 그렇게 해서 대학에 간 경우가 없진 않다. 어떤 사람은 그런 모습을 비판하는 의미를 담아 “활동 팔아 대학 간다”라고 말하기도 하고, 어떤 사람은 청소년 활동가들의 현실을 자조하는 의미에서, 때로는 그렇게 대학에 간 본인이 말하기도 한다. 나도 그냥 조용히 활동한 경력을 팔아 대학에 가려고 했다.

내가 염두에 두고 있던 곳은 역시 성공회대학교였다. “인권과 평화의 대학”이라는 성공회대학교. 단지 그 학교에 NGO 활동 전형이 있고 몇 명의 청소년 활동가들이 그 대학에 청소년운동 경력을 통해 입학했다는 이유 때문이 아니었다. 성공회대가 표방하는 이념을 동경했기 때문에 “나는 저 대학에 들어가리라, 반드시.”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나도 하나의 수험생으로 고등학교 3학년 1학기를 맞이하고 있었다.

위 사진:5차 희망버스에서 대학입시거부를 외치다


반값등록금 집회와 대학의 현실

당연히 대학에 가려고 생각하고 있던 나에게, 대학 진학에 대한 회의를 부채질한 것은 바로 등록금 집회였다. “반값 등록금 실현하라!” 이렇게 외치는 대학생들의 현재 모습보다도, 대학을 졸업한 그 후, ‘대졸’의 생활이 눈에 더 들어왔다. 대학을 졸업한다고 해서 풍족한 미래가 보장되어 있는 것이 아니었다. 직업의 질과 소득, 임금은 양극화되고 있었고, 취업 경쟁에 매달리고, 취업을 하더라도 삶이 나아지지 않는 모습이 보였다. 수백만 원 수천만 원씩 등록금을 내느라 받은 학자금 대출을 갚기 위해서 7, 8년의 세월을 보내는 선배들을 보았다.

그렇게, 반값 등록금 집회에 참여하면서 그리고 대학생들의 현실을 보고 들으면서 과연 한국에서 대학이 어떤 의미일까 생각을 할 수밖에 없었다. 왜, 우리는 굳이 빚을 내가면서까지 대학을 다니는 것일까. 왜, 대학 교육이 가져다주는 의미가 대체 무엇이기에, 우리는 이리도 목숨 걸고 대학을 가려 하고 있을까.

문제는 이것만이 아니었다. 그토록 동경했던, 내가 가고 싶어 했던 성공회대 또한 내가 대학입시를 다시 한 번 생각해볼 수 있게 해줬다. 내가 너무 순진했던 것일까. 교수들이 “비정규직 철폐”를 외치는 바로 그 대학에서,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해고하는 사건들이 일어났고, 근로장학생으로 일하던 학생들에게 임금을 제때 주지 않는 사건도 일어났다. “인권과 평화의 대학”은 학교 운영 전반에서 인권과 평화를 존중하고 실현하겠다는 의미가 아니라, 단지 학교의 특색을 만들고 학교를 꾸미는 상품 포장일 뿐인 것일까? 과연 성공회대에 진학하면 나는 내가 원하는 공부를 할 수 있기는 한 것일까? 성공회대에 대해 가지고 있던 엄청난 동경이 무너지면서, 또 다시 내가 과연 대학을 가야 하는가, 가고 싶은가 되새겨보게 되었다.

대학이라는 공장에서 제련되는 상품이길 거부한다

대학이 여러 잘못을 저지르고, 학생들을 탄압하고, 기업화되는 것은 성공회대만의 모습이 아니었다. 이념이 사라진 대학교, 언론의 자유가 사라진 대학교, 학문의 자유가 사라진 대학교. ‘지식의 상아탑’이라고 하는 대학교들에서 그런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내가 기대했던 그런 의미들마저 잃어버린 그런 대학에 가서, 나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자문 끝에 얻은 답은 간단했다. 그런 대학교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나를 취업을 위한 1등급 상품으로 만드는 것이었다.

위 사진:레쓰.
나 는 그런 ‘나의 상품화’에 반대한다. 김예슬이 “오늘 나는 대학을 그만둔다, 아니 거부한다.”라고 대자보에 썼듯이, 상품의 길이 아닌 인간의 길을 택해야겠다고 생각했다. 4년간 대학교라는 이름의 공장에서 또 다시 제련되는 것에 불과한 이 현실, 더 좋은 스펙 상품이 되기 위해 등록금과 시간을 갖다 바쳐야 하는 현실에 반대하기 때문에 나는 대학을 거부하기로 결심했다.

대학생들의 현실 뿐 아니라, 우리들, 청소년들의 현실을 다시 한 번 보자.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를 거쳐 계속 상품화 되는 과정을 살고 있지는 않은가. 교육이 점수 매겨지고 등수 매겨지는 무한경쟁의 과정이지는 않은가. 대학에 가기 위해서 초중고를 경쟁 속에 보내는데, 그렇게 가게 된 대학마저도 경쟁 속에 상품화되는 과정이 되어버렸다.

이 무한경쟁 사회에서 대학입시거부는 미친 짓일지도 모른다. 대학진학률 세계 최고, 80%가 대학을 나오는 이 대한민국에서, 대학을 가지 않고 살겠다는 선언이니 말이다. 운동사회 내부에서조차 학벌을 따지는 이 현실. 그렇지만 나는 대학을 거부한다. 나와 같이 이 운동을 하는 다른 누구는 서울대를 자퇴하고, 누구는 수능을 거부한다.

대학입시거부가 정말 미친 짓일까? 사람들은 기억이나 하고들 있을까 모르겠다. 올해, 한 고등학생이 성적을 이유로 분신자살을 기도했던 사건을. 몇 년 전 초등학생이 도복 끈으로 목을 매 자살했던 사건을. 그런 것들을 기억하지 못하는 게 정말 미친 것은 아닌가? 그러나, 그렇게 이 미친 경쟁교육을 견뎌내고 대학에 가도 우리는 구원받지 못한다. 다시 미친 경쟁사회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 뿐이다. 그 속에서 정말 미친 것이 무엇이란 말인가. 청소년 수십 명 수백 명이 입시경쟁으로 목숨을 끊고 꿈을 잃어도 기사거리조차 되기 힘든 이 나라에서 정말 미친 것이 뭔지, 사람들이 우리의 대학입시거부선언을 듣고 다시 한 번 생각해보면 좋겠다.
덧붙이는 글
레쓰 님은 19살, 중졸과 고졸에서 간당간당하며, 청소년인권행동 아수나로와 진보신당 청소년소위원회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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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오름 제 272 호 [기사입력] 2011년 10월 26일 11:5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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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어가는꿈2011.10.21 14:31




대학, 정말 다들 가야만 하는 곳일까요?

대학이 더 큰 배움을 위한 고이 아니라 취업준비소가 되고 기업화되고 있는 현실
수백만원의 비싼 대학등록금을받아가며 졸업장, 학력 장사를 하고 있는 대학들의 모습
대학에 들어가기 위해 치러야 하는 치열한 입시경쟁
대학을 졸업해도 먹고 살기는 만만치 않은 <88만원세대>의 현실
고졸자에 대한 차별, 출신 대학에 따른 차별이 뿌리 깊은 사회

이 모든 것들이 우리에게 대학의 의미를 다시 묻게 합니다.
이런 잘못된 교육과 사회를 바꾸기 위해 대학을 가지 않은 사람들 대학을 나온 사람들이 선언을 발표하고 운동을 하려 합니다. 대학을 거부한 사람들이 자신들의 목소리를 높여 대학중심사회를 바꾸라고 요구합니다. 교육을 사회를 세상을 바꾸는 대학거부선언! 함께해요!

참여자격 : 20대 이상, 대학을 애초 가지 않았거나 다니다가 자퇴한 사람
참여기간 : 2011년 10월 30일까지! (11월 1일 발표 예정)

참여방법
★ 대학거부선언문 초안을 읽어본다.
☆ disuniversity@gmail.com 로 선언에 참가한다는 메일을 첨부한 양식에 맞게 작성해 보낸다.
★ (이미 자퇴를 했거나 아예 대학을 안 갔었다면 그냥 패스) 다니던 대학을 자퇴한다.
☆ 선언문에 대해 고치거나 덧붙이고 싶은 부분이 있으면 의견을 보탠다.
★ 대학거부/대학입시거부선언 운동의 여러 활동들에 열심히 참여한다.

※ 대학거부선언은 <대학입시거부로 세상을 바꾸는 투명가방끈들의 모임>의 대학입시거부선언과 같이 하는 활동입니다~ http://cafe.daum.net/wrongedu1





20대 대학거부선언 참여
*작성 후 disuniversity@gmail.com 으로 보내주세요~*

 

이        름

 

연   락   처

 

대학거부방식

대학 중퇴 // 비진학

이   메   일

 

하고 싶은 말

 

 

 

대학에 가지 않으면 살아남기 힘든 사회에서,
대학에 가더라도 불안하고 불행한 이 사회에서
다시 한 번 이 사회에 하이킥을 날리고자 하는
20대들의 대학거부선언에 동참합니다.

2011년   월   일





[20대 대학거부선언 초안]

20대 대학거부선언

- 우리는 낙오자가 아닌 거부자입니다


  여기, 대학을 다니지 않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 '대학중심주의' 사회에서, 대학을 다니지 않으면 인생이 무너질 거라고들 하고, 지금 대체 뭘 하고 있는 거냐고 재촉을 받습니다. 그래도 대학에 가지 않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잘 보이지 않고 있는지 없는지 헷갈려도, 분명히 있습니다.


  우리는 대학을 그만둔 사람들입니다. 입시에 찌들어 살던 10대를 보내던 시절에 듣곤 했던 “오늘만 견디면 내일은 행복해질 거야”라는 이야기는 그저 말 뿐. 대학에 진학한 후에도 나아지는 것은 없었고, 오히려 끝없는 레이스에 진입했다는 느낌만 강해졌습니다. 미쳐버릴 것만 같은 수백만원의 등록금에 숨이 막혔습니다. 학생들은 입시경쟁의 틈바구니에서 성적에 따라 대학에 왔고, 수강신청을 하지만 나의 진정한 자유는 점점 줄어들었고, 대학은 학문의 전당이 아니라 졸업장을 얻기 위해 학점을 관리하는 곳이 되어버렸습니다.

  우리는 대학에 가지 않은 사람들입니다. 오로지 ‘명문대’라는 한 길만을 강요하는 교육, 수능과 입시라는 거대한 서열화의 장, 대학으로 인간의 가치가 결정되는 대학중심사회, 학벌사회의 폭력을 거부하기로 마음먹은 사람들입니다. 돈 때문에 성적 때문에 대학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던 사람들입니다. 대학에 가는 이유를 찾지 못해 가지 않은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남들 다 간다는 대학에 가지 않고 스무 살이 되는 순간, 그래도 괜찮다는 우리들의 마음과는 상관없이 이 사회는 우리를 ‘괜찮지 않는 사람’으로 규정해 버렸습니다.


  대학에 다니지 않는 우리는 많은 것을 겪었고, 앞으로도 겪을 것입니다. 대학 진학률이 80%가 훌쩍 넘는 이 사회에서 우리가 겪은 차별은 너무나 많습니다. 아르바이트 하나를 구하려고 해도 학력을 묻고, 주변의 사람들은 출신 대학을 학번을 따져 묻습니다. 남자라면 대학을 이유로 군대를 좀 미뤄보거나 고민해볼 새도 없이 열아홉, 스무 살에 바로 군대에 끌려가야 하는 처지에 놓이기도 합니다. 한편, 사람들은 자꾸 재촉하기만 합니다. 너희가 대학을 가지 않았으니, 그만큼 뭔가 남다른 성과를 내놓아보라고. 하지만 우리가 무언가를 배우거나 해보려 할 때 사회는 그것을 도와주지 않습니다. 도와주기는커녕 그저 바라봐주지도 않습니다.

  우리가 대학을 그만둔 것은, 가지 않은 것은, 더 좋은 삶, 나중이 아닌 지금 행복한 삶을 살고자 하는 것입니다. 대학이 아닌 다른 삶의 길을 찾아보려는 것입니다. 우리는 대학을 거부한 것이지 배움을 포기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렇기에 대학 거부가 우리의 삶을 포기하는 것이어서는 안 됩니다. 하지만 대학 밖에서의 배움은 너무나 어렵습니다. 대학만이 유일한 배움의 길로 주어져 있습니다. 자신이 배우고 싶은 것을 애써 찾아서 배우는 그 과정 뿐 아니라, 우리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도 견디기 힘듭니다. 앞으로 우리가 감수해야 한다고들 하는 차별과 불이익은 우리를 더욱 막막하게 합니다. 대학에서 벗어난 우리에게 사회는 차별과 배제의 이빨을 들이댑니다.


  이렇게 이미 한 번 대학을 거부한 후에도 끈질기게 따라오는 '대학중심주의'에 치를 떨면서도, 그렇기에 더더욱, 우리는 대학을 거부하고자 합니다. 이 사회에서는 이렇게들 말합니다. 대학에 가지 않으면 먹고 살 수 없다고. 그러니 너희 모두 지금의 삶은 잠시 유예해야 한다고. 그러나 대학에 가 본 우리는 압니다. 결국 대학에 들어간 뒤에도 우리는 끊임없이 현재를 유예해야 하고, 불안과 좌절감에 자신을 더욱 '스펙 좋은' 상품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것을. 그래도 결국 우리 중 다수의 앞에 기다리고 있는 것은 취업을 위한 또 다른 유예나 '88만원세대'의 삶이라는 것을. 또 대학에 가지 못한 사람들, 가지 않고 다른 길을 찾으려는 우리는 압니다. 그 레이스에 서지 못했다는 이유만으로 낙오자, 패배자, 루져 취급을 받는다는 것을. 그리고 그것이 얼마나 비인간적이고 부당한지를.


  우리는 바랍니다. 입시만을 위한 교육이 아닌, 하루하루 피 마르는 경쟁교육이 아닌, 다양한 가능성을 꽃 피울 수 있는 교육을. 학력과 학벌이 행복의 척도가 되는 지금의 잘못된 기준이 사라진 사회를. 스펙을 위한 곳이 아니라 진리를 탐구하고 배우고 연구하는 학문의 전당이 된 대학을. 대학이 아닌 곳에서도 더 많은 교양과 지식을 얻을 수 있는 교육을. 모든 사람이 어느 대학을 나왔든, 대학을 안 갔든, 사람답게 살 수 있는 사회를. 모든 사람들이 행복이 유예된 삶이 아니라 지금, 여기, 오늘이 즐거운 삶을 살아갈 수 있는 세상을. 그리하여 대학에 가는 것이 필수가 아닌 선택이 될 수 있는 세상을. 

  그런 세상을 위해, 우리는 열아홉 청소년들의 <대학입시거부선언>과 함께 "20대의 대학거부"를 선언합니다. 지금의 사회와 대학을 바꾸지 않으면 우리 모두는 행복해질 수 없습니다. 우리는 지금 우리의 이 거부와 선언이, 외침과 행동이 지금의 대학과 사회를, 더 나아가 우리의 삶을 바꾸는 계기가 되기를 바랍니다.



2011년 11월 1일 (예정)


(이후 선언에 참가하는 분들의 이름을 추가해 나갈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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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공현
걸어가는꿈2011.10.17 16:10

(대학입시거부선언운동 포스터)
http://cafe.daum.net/wrongedu1




줄 세우기 무한경쟁교육에 반대한다


교 육의 목적은 우리가 좀 더 사람답게, 잘 살 수 있도록 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지금 우리 교육은 과연 어떤가요? 사람을 점수 매기는 것, 줄 세우는 것 자체가 목적이 되어 있는 모습이지 않습니까? 경쟁시키는 것 자체가 교육의 목적이 되어 있지 않습니까? 수능과 대입은 우리의 수학능력을 검정해보겠다고 하지만, 실제로는 상대평가로 우리를 등급으로 나누고 줄 세우는 것일 뿐입니다. 시험은 우리를 숫자로 점수 매기기 위한 것일 뿐입니다. 점점 더 치열해지는 경쟁 속에서 어떤 이는 숨 막히는 압박감을 견뎌내야 하고, 어떤 이는 아예 경쟁에서 밀려난 낙오자 취급을 받아야만 합니다. 우리들의 가치는 점수로 성적으로 등수로 백분위로 매겨지고 있습니다. 이건 인간을 위한 교육이 아니라 상품을 위한 품평이고 경쟁일 뿐입니다. 무한경쟁은 교육이 아닙니다. 줄 세우기 무한경쟁교육에 반대합니다.



획일적인 정답만을 강요하는 권위적인 주입식교육에 반대한다


시 험을 위한, 경쟁을 위한 교육은 우리들에게 정답을 외울 것을 강요합니다. 주어진 정답을 얼마나 잘 외웠는지, 시험을 내고 점수를 매기는 사람의 말을 얼마나 잘 듣는지가 우리를 평가하는 기준이 됩니다. 교육은 학생들이 함께하는 과정이 아니라 교사가 강사가 조용히 있는 학생들을 대상으로 정답을 가르치고 주입하는 일방적인 과정이 됩니다. 이런 교육이 학생들이 자유롭고 주체적인 사람으로 살아가는 데 도움이 될까요? 학생들은 교육의 주체입니다. 학생들에게 이미 정해진 정답을 일방적으로 외우게 하는 교육이 아니라 자신의 답을 찾아가고 체험하는 교육이 더 좋은 교육입니다. 다양한 답을 인정하는 교육, 체험하고 생각하고 연구하고 토론하는 교육, 참여하고 대화하고 소통하는 교육을 원합니다.



교육과정에서 학생의 인권은 보장되어야 한다


학 생들은 학교에서 인간으로서의 여러 기본적 권리를 보장받지 못하는 일이 많습니다. 두발복장단속, 숱한 차별들, 폭력들이 당연한 일상처럼 일어납니다. 학생들이 목소리를 냈다가는 처벌이나 불이익을 받기도 합니다. 학생이 감당할 수 없는 과도한 경쟁의 압박이나 공부 부담 그 자체가 인권침해가 됩니다. 많은 스트레스를 받고 수직적인 권력관계를 내면화한 학생들 사이에서도 차별과 폭력이 일어나곤 합니다. 몇몇 지역에서 학생인권조례가 만들어졌지만 아직도 부족한 게 많습니다. 학교가 더 효율적으로 값싸게 학생들을 관리하고 통제하려는 것은 학생인권침해의 원인입니다. 이는 인간보다 학생보다 성적이, 입시가, 성과가 더 중요시되는 비정상적인 교육의 모습입니다. 교육에 참여하는 것은 인간이기를 포기한다는 뜻이 아닙니다. 오히려 교육 과정에서 우리의 인권은 더욱 잘 보장되어야 합니다.

 


교육의 목표가 입시와 취업이 되어서는 안 된다


교 육은 우리가 사람으로서 잘 살아가는 법을 배우고, 우리의 소질을 계발하고, 사람답게 더 잘 살기 위한 것입니다. 하지만 지금 학교는 입시준비학원, 취업준비학원 같은 모습입니다. 우리가 배우는 내용들은 많은 부분이 입시나 취업에 필요한 것들로 채워져 있습니다. 교육이 시험을 보기 위한 도구, 생존을 위한 스펙 쌓기로 변질되어 버린 것입니다. 이런 입시, 취업 위주의 교육은 그 내용도 우리들의 삶에 실제로 필요한 것보다는 ‘시험 봐서 점수 매기기 좋은 것’들로 채워집니다. 그럴수록 지식은 삶에서 동떨어지게 되고, 학생들이 진짜로 필요한 것들을 배울 수 있는 기회가 사라집니다. 우리는 교육의 목표가 입시와 취업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학생들이 자신의 흥미와 적성에 맞고 바람직한 삶을 사는 데 필요한 다양한 지식, 체험과 만날 수 있는 교육을 요구합니다.



누구나 질 좋은 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교육예산이 확보되어야 한다


대 학등록금은 1년에 수백만원, 학교에 따라서는 천만원을 넘어서고 있습니다. 대학교육은 돈 많은 사람들만이 별 부담 없이 누릴 수 있습니다. 대학 뿐 아니라 고등학교 학비도 부담스러울 정도로 치솟고 있는 상황입니다. "교육열"은 단지 정부가 사회가 교육을 함께 책임지지 않고 개인의 부담으로 떠넘기고 있다는 뜻일 뿐입니다. 어느 학교든 전반적인 교육예산은 부족하기만 합니다. 학교 시설은 열악하고, 교사의 종류와 수는 부족하고 학급당 학생수는 너무 많습니다. 교육예산 부족은 학생들의 인권을 침해하고 좋은 교육을 누리지 못하는 원인입니다. 교육은 상품이 아니라 모두가 누리는 권리입니다. 사회에서 정부에서 교육에 많은 예산을 배정해야 합니다. 유치원부터 대학교까지의 완전한 무상교육, 보편적인 교육 환경 개선을 요구합니다.

 


모든 사람들이 대학을 가야 한다는 편견과 강요에 반대한다


한 국에서 대부분의 중고등학생들은 고등학교를 졸업하면 대학에 꼭 가야 한다는 압박을 받게 됩니다. 대학 진학율이 80%를 넘어서는 현실에서, 일단 대학에 가는 것을 당연한 것으로 생각하고 대학을 가지 않거나 못하는 사람들은 낙오자나 못난 사람 취급을 받게 됩니다. ‘좋은 대학’을 나오고 ‘좋은 직장’에 취직하여 가정을 꾸리는 것이 ‘성공한 삶’인 것처럼 생각되고 있습니다. 여기에는 일단 대학이라는 공인된 기관을 졸업해야만 좀 먹고 살 만하다는 경제적인 이유부터, 다른 방식의 삶에 대한 편견이나 두려움, 거부감이 있습니다. 대학은 더 공부하고 싶은 사람, 더 전문적인 연구를 하고 싶은 사람들이 가는 하나의 선택지여야만 합니다. 대학 밖에서도 다른 많은 공부나 지식을 얻을 수 있어야 합니다. 대학을 모두가 가야만 하는 것처럼 생각하는 사회에 반대합니다.

 


대학과 학벌로 사람을 평가하고 차별하는 학벌차별과 학벌사회에 반대한다


이 사회에서 학력과 학벌은 사람을 평가하는 중요한 잣대가 되고 있습니다. 고졸보다는 대졸이, 대졸 중에서도 이른바 '명문대 출신'이 더 능력 있고 훌륭한 사람이라는 평가를 받습니다. 임금부터 시작해서 많은 상황에서 차별을 받게 되고, 사람들도 학력과 학벌에 따라 사람을 다르게 대하곤 합니다. 이런 사회의 모습은, 모두가 대학을 가야 한다는, 그리고 더 이름값 있는 대학을 가야 한다는 압박으로 이어집니다. 인간은 결코 학력이나 학벌만으로 그 가치를 매길 수 없습니다. 학력이나 학벌에 대한 차별이 사라져야 제대로 된 교육이 가능하고, 평등한 기회가 보장될 수 있습니다. 학력과 학벌에 대한 차별들을 금지하고 사람들의 차별적인 생각들을 바꿔나갈 것을 요구합니다.



누구나 최소한의 먹고 사는 걱정 없이 배우고 싶은 것을 배우고, 하고 싶을 것을 할 수 있는 안정적인 사회보장이 이루어져야 한다


우 리 사회의 소득 격차는 점점 더 벌어지고 양극화는 심해지고 있습니다. 조금이라도 좋은 배경과 학력, 학벌을 확보해둬야 좋은 직업을 가지고 소득 수준을 조금이라도 높일 수 있다는 희망을 품을 수 있습니다. 결국 조금만 삐끗하면 저소득층, 빈곤층으로 추락할 거라는 두려움이 사람들을 채찍질하고 지금과 같은 경쟁교육과 사회를 유지하는 악순환을 만들고 있습니다. 누군가 대학을 가지 않고 특출난 능력과 운으로 억만장자가 된다고 해도 그건 극소수의 이야기일 뿐, 오히려 그런 운과 재능이 없는 많은 이들을 대학에 목을 매야 합니다. 생존은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권리입니다. 사람이 행복을 추구하며 사람답게 살기 위해서는 ‘굶어 죽을지도 모른다’, ‘집을 잃을지도 모른다’와 같은 두려움으로부터 벗어나야 합니다. 사회보장과 복지제도를 바꾸고 경제구조를 바꿔가면서, 모두에게 최소한의 생계를 보장하는 사회를 요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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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공현
걸어가는꿈2011.08.29 04:25



잘못된 교육을 거부하고, 잘못된 사회를 바꾸는

93/고3들의 대학입시 거부선언과 행동을 제안합니다.


더 좋은 성적, 더 좋은 학교, 더 좋은 직장, 더 안정적인 삶, 더 행복한 삶을 얻기 위해 달리고 달리는 경쟁 속에서 허덕이며 언제 벗어날지 모를 쳇바퀴를 돌리고 있는 우리들. 그 안에 우리의 행복, 다양성, 상상력 그리고 오늘은 존재하지 않는다. 교육은 자신이 배우고 싶은 것을 배우는 것이 아니라 오직 진학과 취업을 위한 것으로 전락한 지 오래고, 입시정보를 쑤셔 넣는 와중에 '비효율적인' 토론과 소통은 존재하지 않는다. 의지와 열정이 아무리 크다 한들, 능력이 아무리 뛰어나다 한들, 인서울․SKY 이른바 ‘명문대’ 간판이 없으면 기회 한 번 제대로 주어지지 않는다. 그렇게 거대한 학벌의 벽에 좌절하고 자신의 무능력과 의지부족을 탓하며 또 다시 무한경쟁의 쳇바퀴를 돌린다.


우리는 너무나 불안하고 불행하다. 88만원 비정규직 쓰나미와 학벌의 벽이 가로막은 미래에 어른들이 약속한 더 나은 삶과 행복이 존재하는지, 우리는 너무나 불안하다. 그래도 더 좋은 미래를 위해서는 오늘의 행복 ‘따위’는 포기해야한다는 압박에 쫓겨 살아갈 수밖에 없는 현실. 오늘도 쳇바퀴를 돌린다. “내가 무엇을 위해 이렇게 살아야 하는 거지?” 질문할 시간도 이유도 없이 우리는 달린다. 모두가 달리는데 나만 혼자 멈춰서면 나의 삶도 멈춰버릴 것만 같은 두려움에 쫓겨….


하지만 우리는 용기를 내본다. 입시에 학벌에 쫓겨 교육의 목표도 인간관계의 기준도 점수가 되어버린, 무한경쟁의 쳇바퀴에서 벗어나 대학입시를 거부한다. 우리는 어른들과 이 사회기득권층이 말하는 ‘미래 성공’의 환상을 버리고 불행하고 불안한 우리의 오늘과 내일을 바꾸고자 한다. 그리고 이 글을 읽고 있는 전국의 93/고3들이 함께 용기를 내주길 감히 제안해본다. 이 사회가 이 교육이 그리고 우리들이 더 이상 경쟁과 학벌에 미쳐버린 괴물이 되기 전에 이 쳇바퀴를 벗어던지자!


이 견고한 학벌사회에서 대학을 거부한다는 것은 말도 안 되는 무모한 행동일 수도 있다. 가방끈 짧은 우리들을 향할 차별적 시선과 편견을 감당해야 할 수도 있다. 그럼에도 우리는 용기 내어 이 불편한 길을 걸어가려 한다. 이 길이 어른과 사회기득권층이 말하는 거짓된 장밋빛 성공스토리보다, 우리의 오늘과 내일을, 나아가 우리가 함께 살아가는 이 사회와 교육을 좀 더 행복하고 의미 있는 것으로 만들 수 있으리라 믿기 때문이다.


입시와 취직을 위한 교육이 아니라 학생을 위한 교육, 돈이 없어도, '명문'학교가 아니어도 누구나 자유롭게 배우고 싶은 것을 배울 수 있는 교육, 주입과 강요가 아닌 토론과 소통이 꽃피는 교육, 학력/학벌로 사람을 단정 짓고 차별하지 않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우리는 목소리를 낼 것이다. 잘못된 교육과 사회에 침묵하지 않는 우리의 작은 용기와 실천은 우리 사회를 지금보다는 조금 더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곳으로 바꿔낼 혁명이다. 주저하지 말자, 침묵하지 말자, 잘못된 교육을 거부하고, 잘못된 사회를 바꿔보자!


2011년8월27일

제안자 : 공기, 다영, 둠코, 따이루, 쩡열



<이렇게 함께해보아요>


1. 9월3일(토) 낮2시30분부터 서울서대문에 위치한 민주노총본부회의실에서 '대학입시거부 런칭기념회의'가 열립니다. 관심 있는 누구나 자유롭게 참여 가능합니다. 함께 무엇을 외치며, 어떻게 잘못된 교육과 사회에 저항할 것인가 수다도 떨고 계획도 세우고 요구안도 만들어봅시담!


2. 93,고3들의 대학입시거부선언과 행동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9월3일 런칭회의후에 공지될 예정입니다! 카페와 트위터를 확인해주세요



카페: cafe.daum.net/wrongedu1 / 트위터: @wrongedu / 문의: 010-7270-1900(따이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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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공현
걸어가는꿈2011.03.13 22:22


본 적도 들은 적도 없는 제대로 된 교육, 행방불명된 학생인권을 함께 찾으러 가요!

3월 19일 토요일 오후 3시 청계광장 옆 서울파이낸스센터

주최 : 청소년인권행동 아수나로(www.asunaro.or.kr) / 후원 : 학생인권조례제정운동서울본부


시험을 위한 시험, 등수를 위한 시험, 없애버려!
- 중간기말부터 수능까지 시험을 폐지하라!

● 시험을 위해 존재하는 교육을 배우고 싶은 것을 배우는 교육으로!
● 줄 세우기가 목적인 시험 대신, 얼마나 성장했는지를 보는 ‘진단’과 ‘평가’를!


여러분들은 일 년에 시험을 몇 번 치시나요? 중간고사, 기말고사, 학업성취도평가(일제고사), 모의고사, 수능까지. 그 외에도 때에 따라 쪽지시험을 치기도 하고, 어떤 학교는 매주 주간고사나 월말고사를 치기도 합니다. 한국의 학생들은 적게는 일 년에 네다섯 번, 많게는 일 년에 스무 번도 넘게 칩니다. 대체로 한 달에 두세 번은 시험을 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시험날짜만 기다리다보면 금세 졸업을 하는 게 학교의 모습인 것입니다.

이렇게 일 년에도 골백번씩 치다보면 마치 학교를 다니는 이유가 중간기말고사와 ‘학교RPG’의 최종 스테이지인 ‘수능’을 치기 위해서인 것 같다는 착각이 들기도 합니다. 선생님들도 수업시간에 “이건 시험에 나오니까 꼭 알아둬”라든지 “이 부분은 수능에서 거의 안 다루니까 알아서 읽어봐”라는 말씀을 하기도 하십니다. 시험에 나오니까 중요한 걸까요, 중요하니까 시험에 나오는 걸까요? 그 ‘중요하다는 것’은 뭘 하는 데 중요하다는 걸까요? 정말 헷갈리기 짝이 없습니다.

이처럼 지금의 교육은 마치 목적과 수단이 뒤바뀌어있는 듯한 느낌이 듭니다. 마치 라면을 끓이기 위해 냄비를 쓰는 게 아니라, 냄비를 쓰기 위해 라면을 끓이는 것처럼 말이지요. 만약 교육의 목적과 수단의 앞뒤가 제대로 맞는 얘기가 되려고 한다면, 배운 것을 얼마나 이해하고 있는지를 알아보기 위해 시험을 친다고 해야 할 것입니다. 물론 지금처럼 점수를 더 받으려고 공부가 재미없는 것이나 골치아픈 것이 되게 만드는 시험은 아니어야 합니다. 시험을 안 쳐도, 점수를 매기지 않아도 공부를 하는 것이 충분히 즐거울 수 있도록 동기부여가 돼야 합니다.

지금처럼 시험을 치기 위해서 교육을 한다면, 시험범위에 맞춰 진도에 쫓기게 되어 교사와 학생 모두가 피곤해지는 일이 반복될 것입니다. 또 시험에 잘 나오는 부분은 교과서가 닳아 없어질 때까지 밑줄을 치고, 읽으면서 그렇지 않은 부분은 어쩌면 학생들에게 필요할 수도 있는 것일 텐데도 대충 훑어보고 지나치거나 거들떠보지도 않는 상황이 계속될 것입니다.

이러한 일들이 일어나지 않게 하려면, 또 학생들이 진정으로 배우고 싶은 것을 배우고, 즐겁게 공부할 수 있게 하려면 지금과 같이 단순히 성적을 내서 등수를 매기기 위한 모든 시험을 없애야 합니다. 그리고 일정부분만큼 배웠을 때에 그 부분을 얼마나 이해하고 있는지 알아볼 수 있는 평가가 이루어져야 합니다. 평가를 하고 난 다음에는 그 결과를 바탕으로 부족한 부분을 다시 한 번 복습하고 확인하는 과정을 거쳐야겠지요. 이렇게만 된다면 지금처럼 성적 때문에 고민해야 하는 일이 사라지거나 훨씬 줄어들 것입니다. 또 학생들이 시험 때문에 스스로 목숨을 끊는, 매우 슬픈 일이 더 이상 일어나지도 않을 것입니다.

물론 시험 하나 없앤다고 해서 모두가 잘못됐다고 느끼고, 말하는 지금의 교육이 가진 문제들이 모두 해결되는 것은 아닙니다. 등수를 매기기 위한 시험을 없애는 것뿐만 아니라 궁극적으로 학생들이 서로 경쟁해야만 하고, 할 수밖에 없게 만드는 요소들을 바꿔나가야 합니다. 예를 들어 모든 초·중·고등학교와 대학교를 평준화한다든지, 굳이 대학에 가지 않고도 차별받지 않는 사회적 분위기와, 충분히 살아갈 수 있는 제도들이 마련돼야 하겠지요. 이 부분들은 <실종신고>의 다른 요구를 소개한 글에서 더 자세히 설명할 것입니다. 시험을 위해 존재하지 않고 학생들이 진정으로 배우고 싶은 것을 배우는 교육, 우리 손으로 만들어보아요!



입시경쟁.학벌 없는 사회, 대학 안 가도 되는 세상!

- 대학 안 가도 먹고 살 수 있게 하라!


● 명문고, 명문대 가는 건 모두의 목표일 순 없다! 학교 줄세우기 NO! 획일적 입시경쟁 NO!

● 내가 나온 학교가 내 가치를 결정하진 않는다! 학벌 학력 차별 금지!

● 대학 안 나와도 모두가 하고픈 일을 하며 사람답게 살 수 있도록 하라!



"먼저 대학이나 가라." "대학 안 나오면 알바, 비정규직밖에 못한다." "명문대 가야 사람 대접 받는다." ……

이런 이야기를 한 번도 안 들어본 고등학생들은 많지 않을 겁니다. 지금 한국의 초․중․고등학교 교육과정은 대학 입시를 위해 이루어진다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대학을 향한 경쟁은 계속 심해지고 있습니다. 이제는 좋은 대학에 가기 위해서는 좋은 고등학교, 좋은 중학교에 가야 합니다. 학창시절 12년 동안 강요받는 인생의 목표는 ‘좋은 대학에 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미 그 경쟁에서 밀려났다고 생각되는 학생들은 '학교에서 버린', '학교에서 내놓은' 취급을 받곤 합니다. 그 치열한 경쟁 속에 살고 있는 상위권, 중상위권 학생들도 스트레스가 장난이 아닙니다. 얼마 전에도 목포에서 한 고등학생 분이 분신 자살을 시도했는데 그 이유 역시 성적 등 스트레스로 추정되고 있습니다.

어떤 대학에 갔는지가 그렇게 중요한 이유는 이 사회에서 학벌이 굉장히 중요한 요소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좋은 학벌은 수입이 높은 직업을 가지는데 유리하기 때문입니다. 대기업이나 사회 상류층에서 좋은 학벌은 이제 ‘기본’이 되어 그 이외에 쌓아야 할 스펙도 이루 말할 수 없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이제는 SKY대학을 졸업해도 정말 작은 부분까지 남보다 위로 올라서야만 그나마 풍족한 생활을 보장받을 수 있습니다. 물론 SKY대학을 안 나와도, 고졸이어도, 잘 먹고 살고 잘 사는 사람들도 있지만, 이런 사람들은 극소수일 뿐이고, 학생들은 이 불안한 세상에서 조금이라도 더 안정적인 삶을 보장받기 위해, 경쟁에서 승리할 확률을 높이기 위해, 살아남기 위해, 입시경쟁에 바둥거려야 합니다. 사회에서 사람들에게 존중받는 사람은 남을 생각하는 사람, 사람을 끄는 매력이 있는 사람,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열정적으로 하는 사람이 아니라 좋은 학벌을 가지고 좋은 직업을 가진 사람입니다.

그 때문에 학생들은 자신이 진짜 하고 싶은 것이 아니라 남 보기 좋은 것, 부모가 시키는 것을 향해 달려가야만 합니다. 학교는 학생들에게 좋은 대학에 가지 않으면 큰 일이 나고 인생을 망칠 것처럼 가르칩니다. 학생들은 자신의 12년을 단 한 가지의 기준으로 단 하루 만에 수능이라는 방법으로 평가당합니다. 그래서 학생들은 학창시절 내내 미래에 대한 불안을 끌어안고 , 남보다 위에 설 궁리를 하며 살아가야 합니다. 이런 교육은 학생들을 불행하게 합니다. 지식을 습득하는 것이 자발적이고 흥미 있는 것이 아닌, 불안에 밀려 꾸역꾸역 해야 하는 강제 노역으로 바뀝니다.

학벌로 사람을 평가하지 않는 사회를 만들어야 합니다. 좋은 학벌이 없는 사람을 얕잡아보고 무시하는 사회의 풍조를 바꾸려면 대학을 획일적으로 줄세워서는 안 됩니다. 자신의 꿈은 ‘좋은 대학에 입학한 이후에 생각할 것’이 아닙니다.  대학에 진학하는 것은 인생의 한 선택지일 뿐 절대적인 것일 수는 없습니다. 지식을 습득하는 것이 적성에 맞는 학생들은 누구나 대학에 진학하고, 대학은 서열 없이 평준화해서 어느 대학이라도 좋은 교육환경을 제공해야 합니다. 대학에 가지 않고도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할 수 있도록 존중받고 원하는 교육을 제공받을 수 있어야 합니다. 또 모든 사람들이 학벌과 상관없이 노력하기만 하면 생활하기에 알맞은 수입을 보장받을 수 있어야 합니다.

사실 한국처럼 대학진학율이 높은 사회, '대학 나오는 게 당연한' 나라는 별로 없습니다. 모든 중고등학생들의 목표가 좋은 대학 가는 것인 것처럼 교육하는 나라도 별로 없습니다. -_- 선진국이라고 하는 대부분의 나라들은 대학을 안 나온 사람들도 충분히 사람답게 잘 살 수 있습니다. 그나마 한국과 비슷하다는 미국이나 일본도, 대학에 진학할 뜻이 있는 학생들 외에 다수 학생들은 입시경쟁에 목매달지 않는 게 보통입니다. 우리는 바랍니다. 대학을 안 나와도 된다고, 자기가 원하는 삶의 방식에 따라서는 얼마든지 학벌과 학력을 갖추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할 수 있는 사회를. 학생들이 먼저 오로지 좋은 학벌만을 향해 달리기를 강요하는 지금의 교육제도를 거부하고 자신이 원하는 교육을 말하는 것이 그 시작이 될 수 있습니다.




학생들한테 돈 좀 내놔!!

- 교육예산 확보하여 누구나 쾌적한 학교를!


● 화장실에 온수는 좀 나오게! 학교 시설 개선, 좀 더 쾌적한 학교를!

● 학급당 학생 수 줄이고 교직원을 더 뽑아서 좀 더 나은 교육을!

● 고등학교까지 무상교육 실현, 나아가 미친 대학 등록금도 무상으로 ㄱㄱ!


학교 다니면서 "우리 학교 시설 너무 좋다~"라고 생각해보신 적 있나요? 물론 진짜로 시설도 좋고 번쩍번쩍한 학교도 있지만 그런 학교는 그렇게 많지가 않습니다. 냉난방도 제대로 안 해주는 학교, 따뜻한 물도 제대로 안 나오는 학교, 탈의실이나 동아리실도 없는 학교, 운동장도 작거나 없는 학교, 급식이 형편없는 학교, 화장실이 낡거나 부족한 학교가 태반입니다. 심지어 밖에서 보이는 운동장이랑 외관은 엄청 좋아 보이게 꾸며놨는데 난방도 제대로 안 되는 학교도 있습니다.

시설뿐만이 아닙니다. 별로 넓지도 않은 한 반에 30~40명의 학생들이 같이 생활해야 하고, 교사들의 수도 학생들과 진지하게 교류하고 제대로 된 교육을 하기에는 부족합니다. 그런 이런 시설, 이런 교육환경의 학교에 다니는 데 교재비, 교복비, 급식비 해서 얼마나 돈이 많이 드나요? 고등학교는 또 등록금을 1년에 4번, ·40만원, 50만원씩 내야 합니다. 헐 -_-

왜 그런지 이유는 뻔합니다. 한국 정부가 교육에 쓰는 돈이 너무 적기 때문입니다. 이명박 정부는 교육예산을 GDP(국내총생산. 그러니까 한국 안에서 1년 동안 총 얼마만큼의 돈을 벌어들이느냐 하는 겁니다. 한국의 경제규모를 알려주는 수치입니다.)의 6% 수준까지 올리겠다고 약속했었습니다. 하지만 교육예산은 2009년에 GDP의 5.0% → 2011년 4.55%로, 늘어나기는커녕 점점 줄어들고 있습니다. 학교에서는 교사 수가 부족하고 시설도 안 좋은데, 정부에서는 돈 아낀다고 교사 채용도 거의 안 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핀란드, 프랑스, 영국, 덴마크 등의 선진국들은 이미 학교 시설 등이 대체로 갖춰져 있어서 시설 마련에 돈을 크게 쓸 일이 없는데도 GDP 대비 5.5% 정도의 교육예산을 매년 쓰고 있습니다. 학교도 교실도 더 늘려야 하는 한국은 당연히 그보다 돈을 더 써야겠죠?)


어른들은 맨날 우리에게 너희는 미래의 새싹이고 잘 자라야 한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지금 현재 우리들에게 들이는 노력을 보면 그런 건 다 거짓말이거나, 우리들을 공부시키려는 낚시 같습니다. 우리를 진짜로 생각해주고 있다면 당연히 교육에 돈을 좀 더 들여야 하지 않나요? 4대강 삽질할 돈, 좀만 빼서 학교 화장실에 따뜻한 물 좀 나오게 하고 급식 질 좋게 하는 게 먼저 아닌가요? 부동산 투기하는 어른들한테 세금을 좀 더 걷어서라도 고등학교 등록금을 초등학교, 중학교처럼 공짜로 하고, 미친 듯이 높은 대학 등록금도 낮춰서 공짜로 해야 하지 않을까요? 교육 선진국으로 유명한 핀란드는 한 반 20명쯤 학생들과 2명의 교사가 수업을 운영하곤 한다고 합니다. 그정도까진 아니더라도 한 반 20명에 교사 1명, 아니면 한 반 30명에 교사 2명 정도는 되어야 좀 나은 교육이 가능하지 않을까요?


돈이 없다는 건 핑계입니다. 한국의 경제력은 이미 세계 10위를 오르락내리락 하고 있고, 이명박 대통령의 개드립에 따르면 한국은 G20을 개최한 선진국입니다. 학생들은 누구나 좀 더 쾌적한 학교에서 교육에 참여할 권리가 있습니다. 우리는 요구합니다. 학생들이 더 편하고 쾌적하게 생활할 수 있는 학교, 학생들이 더 나은 교육활동을 할 수 있는 교실 환경, 모든 학생들을 위한 무상교육을. 단순히 경제규모가 얼마다 하는 게 아니라 학생들을 위한 교육, 좋은 교육환경이라는 면에서 만족하고 자랑할 만한 사회를 만들어야죠?






내가 다니는 학교운영, 내가 결정한다!


- 학생에겐 권력을, 학교에는 민주주의를!

● 표현의 자유 등 민주적 권리 보장은 기본 중의 기본! 

● 생활규정부터 수학여행 일정까지, 학교운영에 학생참여권 보장하라!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라는데, 왜 대한민국의 학교에는 민주주의가 눈씻고 찾아봐도 없는 걸까요? 작년 경기도 성남의 한 고등학교에서는 학생회장 후보 한 명이 학생인권조례를 지지하는 연설문을 썼다고 학교가 그 내용을 삭제하라고 압력을 주었지요. 서울의 한 중학교에서는 학생회가 학교의 체벌실태를 고발한 신문을 발행하려 하는 것을 교장이 막았습니다. 성적이 낮으면 학생회장, 학급회장(반장)에 출마하지 못하도록 하는 학교도 많습니다.

이래놓고도 학교는 뻔뻔하게도 민주시민을 양성한다고 자처합니다. 이렇게 반민주적인 학교에서 어떻게 그게 가능하다는 걸까요? 학교 내에서의 민주주의가 보장되어야 합니다. 학교의 마음에 들지 않는 비판이나 주장을 했다고 압력을 주거나, 징계를 하는 건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는 반민주적인 행위입니다. 어떤 이유에서든 선거 출마에 자격 제한이 있어서는 안 됩니다. 학교 안에서의 표현의 자유, 언론의 자유가 보장되어야 합니다.


게다가 학생회는 할 수 없는 것만 왜 이리 가득한 걸까요? 화장실에 휴지 놓는 것조차 교사들의 눈치를 봐야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혹은 학생회가 노골적으로 학생들의 권익에 반하여 행동하는 경우도 있지요.


학생회 뿐만 아니라 모든 학생들은 학교운영에 실질적으로 참여할 수 있어야 합니다. 생활규정은 이렇게 바뀌어야 한다, 이 수업은 이런 식으로 하는게 좋다, 등교시간이 너무 이른 것 아니냐, 수학여행은 어느 장소로 언제 가는게 좋을 것 같다, 등등 학생들은 자신이 다니는 학교의 운영에 참여하여 의견을 내고, 결정을 할 권리가 있습니다. 학교의 예산 등을 심의하는 학교운영위원회에 학생들은 학부모, 교사 등과 함께 동등한 권한을 갖고 참여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제는 학교에서도 민주주의를 실현해야 합니다. 물론 그것은 쉽지 않은 과정일 것입니다. 그러나 대한민국이 처음부터 민주주의가 보장되는 곳은 아니었죠. 수많은 사람들이 나서서 요구하고 외쳤기에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 될 수 있었습니다. 학교도 마찬가지입니다. 학생들이 나서서 권력을 쟁취하고 학교민주주의를 요구할 때입니다.



학생도 인간이다! 두발자유 등 인권 보장!

- 규제와 폭력 대신 존중과 소통을


● 두발복장자유화, 강제자율․보충학습, 소지품 압수 중단!
● 성적․외모․돈․장애․성 등에 의한 차별 중단! 모두에게 평등한 교육을!
● 학생을 통제하고 억압하는 체벌금지, 언어폭력 금지, 벌점제 폐지! 학생을 무시하고 통제하고 패는 교육이 아니라 존중하고 소통하고 대화하는 교육을!
● 교육과학기술부의 학생인권 침해 합법화 방안, 갖다 버려!
● 학생인권조례, 학생인권법 등 학생인권 보장을 위한 제도 마련!

학생도 사람이라고 하면 누구나 고개를 끄덕입니다. 하지만 그러니까 학생도 사람으로서의 권리, 인권을 보장받아야 한다고 하면 고개를 갸웃거리는 사람들이 생깁니다. 지금도 많은 학교들에서는 학생들을 하나의 인간으로 존중하지 않는 두발규제, 복장규제, 언어폭력 등 많은 폭력과 반인권적인 통제들이 공공연하게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물론 그 동안 많은 학생들이 목소리를 높여온 끝에, 그리고 경기도에서 학생인권조례가 제정되고 서울에서는 체벌금지가 발표되면서, 학생인권 상황이 다소 개선된 학교들도 많습니다. 그러나 실제로는 여전히 대다수 중고등학교에 두발복장규제가 강하게 남아 있습니다. 또한 강제적으로 자율학습, 보충수업을 시키고 아침 7시, 7시 반까지 등교하게 하는 학교들도 많습니다. 수업시간 중 사용만 약속을 만들고 조심하게 하면 될 것을 휴대전화, 음악기기, 전자기기, 책 등을 아예 금지하거나 압수해버리는 모습도 여전합니다. 쇠파이프로 죽도로 목도로 학생들을 두들겨 패고 ‘오리걸음’ 같은 체벌을 하는 학교들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학생들을 성적으로 차별하고, 벌점을 통해 생활 하나하나까지 점수로 규제하며 학교에서 내쫓는 모습은 더 쉽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교육과학기술부는 ‘학교자율화’라며 학생인권 문제를 학교에서 마음대로 하라고 하더니, 이젠 체벌을 허용한다고 하고 학교장이 학생의 인권을 마음대로 제한할 수 있다는 법을 만들려고 하면서 학생인권 침해를 부추기고 있습니다. 학생들의 인권은 학교가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사안이 아닙니다. 모든 학교가 지켜야 하는 최소한의 기본선입니다. 지방자치가 각 지역에서 살인, 강도, 폭행을 합법화할지 처벌할지 알아서 하게 하는 게 아니듯이, 인권은 학교장의 손에 그렇게 맡겨질 수 없는 것입니다. 때문에 학생인권을 보장하기 위한 학생인권조례, 학생인권법과 같은 모든 학교가 지키게 할 제도가 필요한 겁니다.

학교는 사육이 아닌 교육을 해야 합니다. 교육은 고통이 아닌 소통이어야 합니다.

두들겨 패거나 벌점을 매기는 교육이 아니라 소통하고 대화하는 교육. 숨통 트이는 교육. 잘못을 하면 두들겨패거나 쫓아내는 게 아니라 잘못을 알게 하고 민주적, 합리적인 처벌과 예방을 하는 학교. 학생들을 같은 머리 같은 옷 안에 가둬두고 획일적인 성적으로 차별하는 교육이 아니라 학생들이 자신의 개성을 표현하고 다양성과 자유를 누릴 수 있는 교육. 막말과 욕설이 아니라 서로 간의 존댓말과 친밀함, 예의가 있는 교실.

불가능하다구요? 꿈 같은 소리라구요? 최소한 학생도 인간이고 인격체라는 걸 인정하고, 두발자유 등 기본적인 인권부터 보장해나가기 시작하면 못할 것도 없습니다. 학생도 인간이라는 그 당연한 진실을, 현실로 만듭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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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공현
걸어가는꿈2010.10.12 02:19


[교육생각]에 기고한 글입니다.

http://antihakbul.jinbo.net/?document_srl=13491


이게 다 입시교육 때문이라고! 

- 집회의 자유와 사상의 자유 조항, 그리고 정치적 권리의 행방불명


공현 / 청소년인권행동 아수나로 활동회원,<오답승리의희망> 편집진



정치의 실종


요즘에 청소년인권에 관한 따끈따끈한 신간, 『인권은 대학 가서 누리라고요?』를 읽고 있다. 국가인권위원회에서 인권교육과 연구 등을 해오던 김민아 씨가 지은 책인데, 이 책의 서문에 이런 얘기가 나온다. (인권교육을 다니다보면) “문제의 답을 고르듯 ‘이런 인권침해가 일어났을 때 답이 뭐예요?’라고 묻는 청소년도 있다.”

청소년인권운동을 하다보면 이와 비슷한 상황을 쉽게 맞닥뜨릴 수 있다. 많은 청소년들이 온라인을 통해서 자신들이 처한 인권 문제에 대해 적고서 이렇게 묻는다. “이거 인권침해 맞죠?” 그리고 마치 시험 답 맞춰보듯이 헌법 몇 조, 유엔아동권리협약 몇 조를 인용한다. 그 다음은? 인권침해 맞으니까 논리를 잘 갖춰서 얘기하겠다고 하거나 신고하겠다고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런 청소년들이 ‘청소년인권운동’에서 보는 것은 청소년인권 문제라는 사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집단적 운동이나 저항이 아니다. 그들은 단지 자신들이 겪은 경험에 대해서 ‘인권’이라는 규범이 ‘정답’을 내주기를 원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마치 잘못 채점된 시험 답안지에 대해 항의하러 가는 듯이 행동한다. 그러고도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신고’를 하거나 하소연을 올리곤 하는 정도?

이때, 인권은 지금 여기에는 없는 권리를 사회적인 투쟁을 통해 쟁취하고 실현시키는 역사적인 과정과 그 결과로 이해되지 않는다. 인권은 이미 존재하는 교과서적 정답이자 도덕률 정도로만 이해되고 마는 것이다. 우리 사회에서 ‘정치’가 실종되어 있다는 것을 이 질문은 잘 보여주고 있다. “이런 인권침해가 일어났을 때 답이 뭐예요?” 그러니까, 이게 다 입시교육 때문이라고.



집회의 자유와 사상의 자유


2009 년부터 만들어져온 ‘경기도 학생인권조례안’이 2010년 경기도 교육위원회에 발의되었다. 그러나 발의된 안은 처음에 공개되었던 초안과 달리 집회의 자유에 관련된 조항이 삭제되고 사상의 자유에 관한 조항이 “세계관․인생관 또는 가치적․윤리적 판단 등 양심의 자유”라는 표현으로 대체된 안이었다. 결국 경기도 교육위원회에서 학생인권조례 통과는 무산되었지만, 9-10월 즈음에 경기도의회에 재상정될 안 또한 그 내용은 같을 것으로 예상된다. 교육청으로서 학생인권조례 제정을 추진한 최초의 사례인 경기도교육청이 집회의 자유와 사상의 자유에 관한 부분에서 한 발 후퇴한 안을 내놓음에 따라, 다른 지역에서의 학생인권조례 역시 이 두 부분은 상당히 부담스러운 이슈가 될 듯싶다.

물론 경기도 학생인권조례안에서 집회의 자유에 관한 조항과 사상의 자유에 관한 조항이 빠졌다고 해서 청소년들에게는 집회의 자유나 사상의 자유가 보장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것은 무리다. 하지만 학생인권조례 초안에는 한 번 들어갔던 조항이 최종 발의안에서는 빠진 것을 학생인권에는 집회의 자유나 사상의 자유가 없다는 식으로 해석할 사람들은 널려 있다. 최소한 교육청이 학생들에게 집회의 자유와 사상의 자유를 보장할 의지가 없다고 해석하는 것은 충분히 가능하다. 그리고 실제로 몇몇 언론들에서는 경기도교육청의 학생인권조례안 발표를 “학생들 교내에서 집회 못한다”라는 식으로 표제를 뽑아서 보도하기도 했다.

그런데 왜 그렇게 집회의 자유와 사상의 자유는 욕을 먹는 것일까? 그리고 왜 무상급식과 학생인권조례와 혁신학교로 일각에서 추앙받으시는 김상곤 교육감 님하도 집회의 자유 조항과 사상의 자유 조항을 부담스러워 하며 뺀 것일까? 따져보면 저 장대한 비극의 한국사 100여년을 거슬러 가볼 수도 있을 것이고 한국 사회에서 ‘정치’나 ‘사상’이라는 말에 관련된 프레임을 분석해볼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본격적인 분석은 역사학자들이나 사회학자들이 하라고 하고, 나는 “이게 다 입시교육 때문이라고”라고 말하겠다. (이 글의 컨셉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인권 중에서도 정치적 권리의 대표 주자는 표현의 자유와 집회․결사의 자유, 양심․사상의 자유이다. 단순화시켜서 얘기하면, 집회의 자유와 사상의 자유를 부정하는 것은 학생들의 정치적 권리 전반을 부정하는 셈이기도 하다. 사실 교사들의 정치활동을 금지하고 민주노동당에 후원금 좀 냈다고 교사들을 다 짜르겠다고 하는 꼴을 보면 분명 한국의 학교는 정치를 싫어한다. 요컨대, 입시교육은 정치와 정치적 권리, 특히 집회의 자유와 사상의 자유를 싫어한다는 얘기다.



입시교육은 어떻게 정치를 억압하는가


입시교육의 특징은 철저한 정답주의이다. 교육의 목적이 입시가 되어있는 이상, (그딴 걸 교육이라고 부를 수 있느냐는 둘째치고) 문제에 대한 자유로운 생각이 아니라 입시전형과 평가기준에 맞춘 답을 찾는 것이 주가 된다. 또한 입시교육은 개인주의적이다. 입시는 결국 개인의 능력주의와 출세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입시교육의 이러한 특성들은 정치의 특성과는 여러모로 배치된다. 우선 정치는 상대적이다. 정치를 서로 다른 이해관계를 가진 다양한 집단들 사이의 가치의 재분배/조정이라고 정치를 정의하든, 배제된 사람들의 주체화라고 주장하든, 정치에서 정답을 찾기란 힘들다. 딱 잘라 말하기 어려운 다양한 이해관계들/이념들, 방법론들, 권력들이 있을 뿐이다. 정치적인 사고방식 속에서는 무엇이 옳다 무엇이 그르다를 단언하기 어렵다. 서로 옳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고, 각 정치 주체들의 정치적 능력과 정세 등에 따라 결과가 나타난다. 정치에서 중요한 것은 어느 교과서에 비추어볼 때 누구의 말이 옳으냐가 아니라, 누구의 행위가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고 어떤 영향을 미치느냐이다. 교과서나 해답지에 명확한 답이 있고 그 답을 찾아내야만 하는 것과는 전혀 다른 방식인 것이다.

또한 정치는 집단적이고 사회적인 것이다. 대부분의 경우 정치는 집단의 차원에서 이루어진다. 개인이 부각되는 때에도 사실은 그 개인에 얽힌 집단의 문제일 때가 많다. 이명박 정권의 문제는 이명박 대통령 개인의 문제가 아니고, 김상곤 교육감의 정책도 김상곤 교육감 개인의 문제가 아닌 것이다. 조직화된 집단과 사람들 사이의 사회적 소통, 공론장이 없이 정치는 이루어질 수 없다. 문제와 문제의 해결을 개인의 차원으로 한정시키는 입시교육의 ‘문제’와는 전혀 다른 타입의 ‘문제’들이 정치에서는 다루어져야 한다. 입시교육에 익숙해진 사람들에게 정치는 낯선 언어와 사고방식일 수밖에 없고, 정치적 언어와 사고방식에 익숙해진 사람들은 순순히 입시교육에 순응하지 않기 십상이다.

학생들에게 집회의 자유와 사상의 자유를 보장하는 일이 ‘반교육적’이라는 말까지 나오고 그 말이 사람들에게도 왠지 큰 무리 없이 받아들여지는 이유는, 사람들의 머릿속에서 ‘교육’의 그림이 ‘입시교육’의 틀을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교육이 어떤 올바른 것(정답)을 가르치고 주입하는 것이라고만 생각한다면 학생들의 사상의 자유를 보장한다는 말은 정답을 가르치는 것을 포기한다는 말이 될 수밖에 없다. 학생들이 각자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자유롭게 생각하는 것을 장려한다니, 입시교육이 교육이라고 믿던 사람들에게는 이 얼마나 혼란스럽고 반교육적으로 보이겠는가. 교육이 개인이 자신의 지적 능력이나 문제풀이 능력 등을 개발해서 입시나 취업에서 성공하게 해주는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집단적인 행동을 통해서 목표를 달성하려고 하는 집회의 자유는 반교육적인 것으로 보일 수밖에 없다. 집회의 자유를 놓고서 ‘이성적 판단’이 아니라 ‘감정적 선동’에 휩쓸릴 것이라는 식으로 얘기하는 것 또한 이런 경향과 연관되어 있지 않을까.



좀 더 적극적으로


학생인권조례에 집회의 자유나 사상의 자유를 보장하는 조항이 포함되어야 한다고 얘기하는 사람들 중에서도 이런 입시교육적 틀을 크게 벗어나지 못한 경우가 눈에 띈다. 예컨대 학내 집회의 자유에 관해서 “학내 집회는 학교 안에서 학생들의 목소리가 제대로 반영되지 못할 때 택하는 최후의 수단으로 보장되는 것뿐이고 학교 운영에 학생들의 목소리가 잘 반영된다면 학내집회를 할 일은 별로 없을 것이다. 학교가 정치의 장이 될 거라는 것은 기우에 불과하다.” 같은 말로 옹호하는 사람들은 결국 집회를 또 하나의 정답 정도로 만드는 것 아닐까? “학교 안에서 학생들의 목소리가 잘 반영되지 않을 때 학생들은 최후의 수단으로 집회를 택할 수 있다.”라는 식으로 정당화되는 집회의 목적과 수단을 한정짓고, 집회를 온건하고 이성적이고 다소 비정치적인 무언가로 만드는 것 자체가 말이다.

사상의 자유를 단지 반성문을 강요하는 등 사상․양심의 자유를 노골적으로 침해하는 것들을 막는 것 정도로만 이해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뭐 물론 반성문을 강요해선 안 된다는 건 중요한 인권임은 분명하지만, 그것으로만 사상의 자유를 얘기해선 안 된다는 것이다. 사상의 자유의 의미를, 학생들도 사람이니까, 학생들이 상처받지 않도록 내면의 자유를 보호하는 것이고 학교가 정치화되는 일은 없을 것이라는 식으로 얘기하는 것도 좀 불만이다. 입시교육의 틀 안에서 소극적으로 어떻게 사상의 자유를 보호할까 하는 선에서가 아니라, 사상의 자유에 대해 입시교육의 틀을 깨는 좀 더 적극적인 의미 부여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

얼마 전 전교조 조합원들 중 몇 명이 정당을 후원했다는 이유로 징계를 받을 것이라는 소식을 접했을 때, 내가 활동하고 있는 청소년인권단체 안에서는 이 사건을 학생들과 교사들 모두의 정치적 자유에 대한 탄압으로 받아들였다. 그리고 이에 대응하는 행동으로 “청소년들이 집단 정당 가입을 발표해버릴까?” 하는 논의를 했었다. (전교조 자체가 별로 이 사안에 대해서 적극적으로 맞서 싸우지 않고 징계 절차나 양형이나 기준의 문제 정도로만 다투려는 것 같아서 접기는 했지만…) 이렇게 지금은 우리가 더 적극적으로 교육을 정치의 장으로 만들어야 할 때가 아닐까? 집회의 자유와 사상의 자유가 학생인권조례를 통해 보장되어야 한다고 말할 때마다 나는 교육이 정치의 장이고 사회적인 공론의 장이어야 하며 정답만 강요하고 개인주의를 강화시키는 입시교육을 부수고 넘어서야 한다는 의미라고 얘기하고 싶다. 이미 그 자체가 정치적인 ‘입시교육’이, 자신은 비정치적인 양 탈을 쓰고 정치를 압살하는 이 시대에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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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공현
지나가는꿈2010.02.20 03:16


내가 평소에 밝히기 꺼려하는 내 경력은,
내가 속해있는 대학교와 내가 졸업한 고등학교다.
대학 이야기는 나중에 할 기회가 있을 테고.


나는 '상산고등학교'를 졸업했다.
(그냥 이니셜처리할까 하는 생각도 했는데, - 허울 좋은 학교의 명예 따위를 위해서가 아니라 내가 밝히기 싫어서 - 그냥 쓰기로 했다.)

'수학의 정석'을 써서 번 돈으로 만든 사립학교라는데, 내가 학교 다닐 때는 수학의 정석으로 번 돈을 가지고부동산이라거나 여하간 어떤 불로소득으로 만든 거 아니냐는 소문이 학생들 사이에 있었다. 정석 판 돈만 가지고서는 학교 못만든다는 나름의 계산과 함께. 물론 진위 여부는 알 수 없는 학생들 사이의 괴담일 뿐이다. 지배자-권력자에 대한 피지배자들의 일반적인 태도.


나는 말하자면 자립형사립고 1세대로, 노무현 정부가 자립형사립고를 공인하고나서 시범운영으로 지정된 6곳인가 7곳의 자사고 중 한 곳인 상산고등학교에 입학했다.
(솔까말, 자사고가 뭔지 잘 아는 사람도 별로 없던 때고, 막 인문학 가르치고 양서 읽기 한대서 대안학교 같은 건 줄 알았어욤 ㅠㅠ  --> 같은 자기 변명은 줄이고...)




단도직입적으로 '결론'부터 말하면, 나는 최소한 상산고 교육을 경험한 입장에서는 '자사고 교육'은 실패했다고 느낀다.

아니, 뭐 제대로 말한다면 한국 교육의 실패를 논해야겠지만 -┌

여기서 실패라는 건 입시 성적, 입시 결과를 놓고 하느ㅏㄴ 이야기가 아니다.
이건 상산고가 명목적으로 내세우고 있는 '교육의 목표'가 달성되지 못했음을 지칭한다.
어차피 한국 고등학교들의 목적이 그 고등학교의 교훈이나 교육기본법에 나온 민주시민 양성 등의 교육목표가 아님은 다 알고 있지만- 그래도 일단 자기들이 그렇게 내세우고 있으니 과감하게 '실패'라고 말해줄 수도 있는 거 아니겠는가?






서울대에서 뭐를 지냈다고 하던 교장은 뭐 명문 사립고(말하자면 미국이나 영국에 있는 그런 삐까번쩍한)를 만들고 싶다고 했지만 (애초에 그것은 얼마나 계급적인 꿈이던가... 하는 생각도 들지만 -_-;;;;;) 학교 운영은 결국 한국 학교적 한계를 그다지 벗어나지는 않았다.
(--- 사실 교장의 언행부터가 모순인 게, 교장은 외국 명문고 학생들은 따로 두발복장규제 같은 거 안해도 알아서 단정하게 잘 하고 다녀서 규제를 않는 거고 니네는 그렇게 못하니까 별 수 없이 규제하는 거란 식으로 말한 적이 있는데, 일단 그 외국 이야기가 사실인지도 의심스럽지만, 그러한 규범을 벗어나는 사람에 대한 관용이 전제된 상태에서 문화적으로 규범이 형성되는 것과 학교에서 불관용을 전제로 규범을 강요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인 것이다.)

(두발복장규제를 온존시키고 있고 체벌도 은근 빡세게 존재하고 있었고) 전근대적인 형태의 교육 방식과, 근대적인 입시 경쟁의 모순이 있는 상황에서, 인간성을 갖추고 있으면서도 지성을 갖춘 사람을 길러내겠다는 식의 교육 목표나, 듣기 좋은 말만 늘어놓은 '상산인의 헌장' 따위는 연설문이나 학교 홍보물을 꾸미는 장식품 이상이 되지 못했다.

※ 상산고에서 학생들에게 도덕적 마음을 길러준다며 꽃동네 전교 사회봉사를 보내던 것을 생각하면 이런 '인간성'이나 '도덕'이 무엇인가 하는 질문을 던지게 된다. 장애인들을 사회에서 격리해서 수용하는 이런 시설들은 장애인권의 관점에서, 장애인 당사자들에 의해 많은 비판을 받고 있는 실정이다. 결국 그 '인간성'이란 대단히 비인간적인 동정, 우월한 입장에서의 자선 따위를 벗어나지 못하는 것 아니었을까. 사회 지도층의 아량, 동정이란 참 비인간적이다.

개인연구, 양서읽기, 가창시간 등 그나마 보통의 인문계 고등학교보다 덜 입시 종속적인 성격의 특수 교과목들은 논술 대비용으로 취급받거나 아니면 학생들에게 입시 공부를 위한 자체 자습 시간 정도로 취급 받을 뿐이었다.




비록 내가 다닌 학년은 자사고 1기로서 뭔가 미묘한 집단이라서, 특목고에는 가기 좀 미묘하면서도 성적이 좋거나 아니면 특출난 장기 분야가 있는 학생들이 상대적으로 많았고 재밌는 친구들도 꽤 많이 만났지만, 이런 경향은 해가 갈수록 점점 사라지고, 성적이 좋은 모범생, 상류층의 학생들의 수가 점점 늘어나는 게 내가 재학 중에도 눈에 보일 정도였다.


그렇게 보면 나는 어쩌면 상산고 최대의 수혜자 중 하나일 수도 있다. 입시 성적으로가 아니라, 다양성이라는 관점에서. 여하간 나는 상산고 전대미문의 잉여+민주 만화동아리에 있었던 데다가, 방학 특강 시간에 공산당선언이나 미셸 푸코를 배우고, 다양한 형태의 아나키스트/좌파/무신론자/자유주의자/열린우리당지지자/민주노동당지지자/자연과학자/경제학자/수학자/작가/아마추어 일러스트레이터&만화가/프로그래머 등등을 만났으니까 말이다. 나는 상산고에서 글쓰기 능력과 독서, 많은 대화와 토론을 겪었지만 그것들은 모두 학교가 공식적으로 제공한 것이 아니었다. 그리고 그런 조건들은 2-3년이 흐르면서 빠르게 사라져갔다. 공식적 학교 시스템으로부터 내가 받은 것으로 가치 있는 것은 논문 두 편 쓴 경험 외에는 없었다고 말하면 건방져 보일까? 좋은 교사들은 몇 명 있었지만 그뿐.
부모님은 내가 안 쫓겨나고, 학교 안 그만두고 무사히 졸업한 것만으로도 상산고여서 가능했다고 하지만, 그런 걸로 감사하고 좋아하기는 너무 좀 그렇지 않은가.





자사고가 입시기관화하는 것은, 대입에 종속된 중등교육에서 학교 서열화에 따른 것인 동시에 학부모, 학생들의 욕망에 따른 것이기도 했다. 그리고 입시기관화된 자사고들은, 지금도 SKY에 몇 명씩은 꼭 보내는 꽤나 성공적인 입시기관인 동시에(이미 성적 높은 애들 뽑아서 SKY 몇 명 더 보냈다고 하는 게 자사고의 우수함 때문인지는 차치하고--) 교육의 실패를 더욱 가속화시키고 있지는 않나 싶다.


마치 내가 상산고에서 만난 학생들은 대개 좋은 학생들이었던 것처럼 이야기했지만, 꼭 그렇지도 않다. 뭐 어느 학교, 어느 집단이든 수백명 이상 단위가 되면, 꼭 맘에 드는 사람만 있는 일은 별로 없겠지만-; 뭐랄까. 어설픈 엘리트들이 탄생하는 과정을 보는 기분이랄까. -_-;;
자기가 자사고 학생이고 사회 지도층 ━ 간혹 지식인이라는 어설픈 허영을 가진 사람들. 세계 속에 자기의 위치를 직시하려 하지 않으며, 자신을 객관성과 양비론의 우위 속에 감추는 일에 익숙한 사람들.(간단한 예로, 대입제도에 내신이 강화되는 것에 대해서 솔직하게 내가 불리해서,  내 이해관계 때문에 싫다고 하지 않고 온갖 말을 붙여가며 경쟁력이 어쩌구 공정성이 어쩌구 하는 것) 발로 뛰면서 현장 - 세계를 겪어보지도 않았으면 한 발 물러나서 여러가지 것들을 평가하고 시험 문제 풀듯이 사회문제를 풀려고 하는 학생들. 그러면서 봉사나 무슨 사회적 약자들의 인권을 위한다며 하는 것이 가치있는 일이나 하나의 소양이라고 생각하는 학생들. 누군가가 합리적인 목소리를 내거나 자신의 삶을 위해 행동에 나설 때 그것을 말로는 지지할 수도 반대할 수도 있지만 같이 행동할 줄은 모르며, 이러쿵저러쿵 비평할 줄만 아는 사람들. 너무 쉽게 얼마든지 비겁해질 수 있는 사람들. 자기가 비겁하다는 건 인정하지 않으면서.


이런 학생들도 상당수 있었고, 이런 경향은 내 다음다음 학년이 더 심한 거 같아 보였고, 만약 입시기관적 성격이 더 강화되어 간다면 자사고에서 그런 학생들은 더 늘어날 것으로 예측됐다.
참으로 슬픈 일이 아니겠는가. 만약, 수천명인지 수백명인지를 먹여 살릴 거라고 하는 이 '엘리트', '사회지도층'들 중에 저런 사람들이 상당수를 차지하게 된다면 말이다.


참 내 입장에서는 입시교육기관화된 부분에서 이미 상산고 - 자사고는 격한 실망의 대상이었다.
내가 어설프게 일구어놓은 청소년인권운동의 조직이 뿌리를 내리지 못한 것도 자사고의 특성상 이미 예상한 일이긴 한데,(물론 내 잘못도 있고.)
아예 대놓고 기숙사에서의 단체기합, 체벌 문제 등으로 여러 번 학교와 마찰을 빚은 인권동아리 활동에 압력을 가하고 허가를 내주지 않던 모습에서 이미 자사고는 근대적 자유주의와 다양성조차 포기한 보통 학교와 별반 다르지 않은 공간으로 봐야 하겠지. 약간의 정도차이가 있을 뿐.

자사고가 입시기관화되면서 발생하는 다양한 '실패'들은 어차피 자사고들에만 책임을 묻긴 힘들겠지만서도 (모든 학교와 교육시스템, 사회시스템의 문제이기도 하지.)



그냥 상산고 교육과 그 교육의 결과물들에 대해 이러쿵 저러쿵 불평을 늘어놓고 싶은 계기가 있어서.


-- 그런데 내가 졸업하고 난 이후에 입학한 분들 중에서도 내 이름과 일화들을 아는 학생들이 상당수 있다던데, 지금도 아는 분들이 있을지는 모르겠다. 어느덧 졸업한 지도 4-5년 됐으니










어쨌건 결론 :: 그러니까 자사고 늘리지 말라고 이명박이든 뭐든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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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공현
걸어가는꿈2010.02.03 12:20

학교뚫고 인권킥! – 청소년, 입시를 논하다

숨막히는 한국의 입시경쟁, 과연 피할 수 없다면 즐겨야 하는걸까요?
입시에 대해 각자 어떻게 생각하는지, 어떤 세상을 원하고 이를 위해 뭘 할 수 있을지 서로 이야기해봐요!

2010년 2월 7일 일요일 오후 2시~5시
부산시청자미디어센터 (지하철 2호선 센텀시티역)
장소가 좁아 선착순 20명만 받습니다.
신청게시판 http://bit.ly/schoolkick

청소년인권행동 아수나로
http://asunaro.or.kr








- 우리가 너무 쉽게 접하게 되는 그릇된 생각은, '교육'과 '공부'라고 하면 현재와 같은 방식의 것 ― 즉 입시나 취업을 위한 공부인 것이 당연하다는 생각이다. 그리고 그러한 생각은, 학교에서 가르치는 내용, 학생들이 하는 공부의 내용이나 이유에 대해 의문시하는 것을 막으며 그저 '면학', '노력'하라고만 이야기한다.
- 실제로 교육(학교든 학원이든)을 경험하고 있는 사람들이 교육 내용과 방식의 문제에 대해 의견을 개진하려는 의지를 잘 보이지 않는다는 것은 어쩌면 신비롭기까지 한 일이다. 학생들-청소년들의 경우에는 아예 의견을 개진할 통로도, 권한도 인정받지 못하고 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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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공현
걸어가는꿈2009.12.27 15:24



- 외고 폐지에 반대한다고 하는 글들 상당수가 내세우는 논리가 국제적으로 활동할 수 있는 명석한 인재-영재들을 양성하는 기관은 꼭 필요하다 뭐 그런 이야기입니다. 상위 2%가 98%를 먹여살리는 사회 어쩌구 하는 좀 요상한 엘리트주의적 멘트도 간혹 보면 포함되어 있지요.


- 그런데 국제사회에서 활동할, 외국어에 능통하면서도 지적 능력이 있는 인재를 양성하고 싶다면 그것이 굳이 외국어고등학교의 형태를 취해야 하는 이유는 도통 모르겠습니다. 다양한 외국어에 능한 사람을 만들고 싶은 거라면 그냥 모든 학교들에 여러 외국어 교사들을 두고, 외국어를 많이 공부하고 싶어하는 학생들이 여러 외국어를 선택하여 수업을 듣고 능력을 기를 수 있게 하면 될 일 아닌가요? 그걸 못하는 건 교육 예산의 문제? -_- 그렇게 하면 수많은 어문계열 실업자들의 일자리를 보장할 수 있을 텐데 말이지요.


- 외고는 외국어 교육을 위한 기관이라기보다는 그냥 입시성적 잘내는 학생들 모아놓고 외국어'도' 가르치는 기관에 가깝습니다. 외고 자체가 학벌화, 명문고화되어 있는 것이 외고를 이야기할 때 간과할 수 없는 부분입니다. (제가 중학교 때, 외고 진학할 때 수학 내신 성적이 필요했던 이유를 알 수 없어서 갸웃거렸지요ㅋ)

외고에서 대학을 SKY 많이 보내는 건 당연한 겁니다. 공부 잘하는 학생들을 뽑아놓은 '선발효과'가 있으니까요. -_- 그건 뭐 그리 부정하고 싶은 것도 아니고, 성적순으로 대학서열화가 되어 있는 입시경쟁 교육 안에서는, 자연스런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외고가 학벌화, 명문고화 되어 있는 것이, 초등학생, 중학생들이 고입 경쟁에 시달리고 사교육에 쩔고 인권침해를 당해야 하는 이유 중 하나인 것도 맞습니다. 외고만의 문제가 아니라 서열화된 대학교와 고등학교, 성적으로 줄세우고 경쟁시키는 교육 전체의 문제이지만, 외고도 그런 시스템에서 한 축이니까요.


- 외고를 폐지하고 그냥 다수의 고등학교들에 흥미와 적성을 가진 학생들이 자기가 선호하는 외국어를 배울 수 있는 시스템을 보급하면 됩니다. 더 나아가서 외국어 뿐 아니라 수업 선택도 좀 더 자유롭게 다양한 지식들을 배우고 다양한 능력들을 쌓을 수 있게 보장하면 좋겠네요. "외국어 잘하는 인재가 필요함!"이라고 설레발 치는 사람들은 왜 외국어 잘하는 인재를 외고에서만 기를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건지.


& 외고를 자사고로 바꾸자는 주장은, 결국 외국어교육이라는 기능은 그냥 포기하고, 명문고로서의 기능은 그대로 유지하여, 이명박 정부의 고교서열화 300 프로젝트 안으로 편입시키겠다는 의도로밖에 안 읽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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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공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