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운동'에 해당되는 글 36건

  1. 2017.04.27 '실수'가 보여주는 것 (1)
  2. 2016.09.11 『인물로 만나는 청소년운동사』
  3. 2016.03.24 [공현의 인권이야기] ‘소비자’의 권리를 넘어서
  4. 2011.11.30 병역거부소견서 초안 : 가기 싫어도 가야만 한다는 현실을 바꾸고 싶습니다 (7)
  5. 2011.08.24 운동을 위한 실용 글쓰기 2 주장하는 글 : 성명, 논평, 칼럼, 토론문 등
  6. 2011.08.24 운동을 위한 실용 글쓰기 1 글쓰기의 일반적인 기본
  7. 2011.03.30 학생인권조례제정운동서울본부 두 번째 소식지 (2011/03/30)
  8. 2011.03.13 실종신고 - 제대로 된 교육과 학생인권을 찾습니다!!
  9. 2011.03.05 실종신고 - 제대로 된 교육과 학생인권을 찾습니다! (2011.03.19.) (5)
  10. 2010.09.28 Let me Introduce 청소년인권운동
  11. 2010.09.23 청소년인권운동과 아수나로의 상황에서 - 대중조직이란 무엇인가 (4)
  12. 2010.09.15 불심검문에 대처하는 우리의 자세 - 정당한 거부는 우리의 인권을 지키는 힘! (3)
  13. 2010.08.21 체벌금지, 대안, 교장, 평교사, 학생 (6)
  14. 2010.07.21 2010 청소년활동가대회 '쳇[chat]'으로 놀러오세요~ (2)
  15. 2010.07.20 [청소년인권활동가네트워크 논평] 체벌금지, 뒤늦었지만 꼭 필요한 조치다
  16. 2010.07.19 [인권오름] 인권문헌읽기 - 쉽게 쓴 유엔아동권리협약 (1)
  17. 2010.07.18 아수나로 신입회원 분들을 위해 쓴 기본 소개 (2)
  18. 2010.06.28 "패륜적 기본소득" 격월간 사람 용으로 수정한 원고 (2)
  19. 2010.06.27 최저임금 인상과 청소년 노동자 (1)
  20. 2010.02.05 소식지 : 아수나로 이야기 네번째 (2010년 2월) (3)
걸어가는꿈2017.04.27 19:24


문재인이 jtbc 토론회에서 홍준표의 "동성애 반대합니까?"라는 질문에 대해 "그럼요." "반대합니다." "좋아하지 않습니다." "합법화 찬성하지 않습니다."(심지어 문맥상으로는 '인정'하지도 않는다.)라고 발언한 게 시끄럽다. 구체적으로 뭐라고 했는지 갖고서도 말이 많아서, 동영상을 직접 보면서 받아 적었다. 아래와 같다.

홍준표 "그럼 군에서 동성애가 굉장히 심합니다. 군 동성애는 이 국방 전력을 약화시키는데 어떻습니까? 거기는?"
문재인 "예, 그렇게 생각합니다."
홍준표 "그렇죠? 동성애 반대하십니까?"
문재인 "반대하지요."
홍준표 "동성애 반대하십니까?"
문재인 "그럼요."
홍준표 "박원순 시장은 동성애 파티도 서울, 그, 그 앞에서 하고 있는데? 서울시청 앞에서?"
문재인 "서울 광장을 사용할 권리에서 차별을 주지 않은 것이죠. 차별, 차별, 차별을 금지하는 것하고 그것을 인정하는 거하고 같습니까?"
홍준표 "아니, 차별금지법이라고 국회 제출한 게, 이게 동성애 사실상 허용법이거든요? 문 후보 진영에서, 민주당에서 제출한 차별금지법인가 그게 하나 있는 게..."
문재인 "차별금지하고 합법화하고 구분을 못합니까?"
홍준표 "아니, 합법화가 아니고... 분명히 동성애는 그, 이제 반대하는 것이죠?"
문재인 "네, 저는 뭐, 좋아하지 않습니다."
홍준표 "좋아하는 게 아니고, 반대하냐고 찬성하냐고 물어보잖아?"
문재인 "합법화 찬성하지 않습니다."


  일각에서는 이것이 '문재인의 실수/실언'이라는 변명이 많이 나오고 있다. '동성혼에 반대한다' 내지는 '군대 내 동성애(혹은 성폭력. 어떻게 이 둘이 혼동되는지 미스테리하지만...)에 반대한다'라는 이야기를 하려는데 홍준표가 '동성애 반대하냐'라고 물으니까 대답하다 보니 표현이 꼬인 거라는 것이다. 문재인 선거운동 공보단장의 해명 역시 그런 식이다.


 

  문재인 선거운동본부가 4월 27일에 공식 발표한 입장도, 대략적으로 취지가 그런 건 아닌데 표현을 잘못했다는 논지란 점에서는 대동소이하다.

  물론, 문재인 후보 및 선거운동본부가 차별금지법 제정에도 반대하는 입장인 점 등 실질적으로 인권 문제에서 이해하기도 어려운 후퇴를 하고 있는 것은 그 자체로 비판받을 일이다. 그리고 설령 그것을 '실수'나 '실언'이라고 하는 해석을 받아들이더라도, 그 실수로부터 읽어낼 수 있는 것이 있다고 생각한다.


*


대선을 앞두고 교육운동 단체들이 모여서 대선 후보들에게 제안할 교육정책을 정리, 발표하기 위한 연대체가 만들어졌다. 그 연대체에서 나온 정책 제안을 보다가 놀랐는데, '18세 선거권 등 청소년 참정권 보장'은 주요 정책 과제로 들어가 있는데 정작 학교교육 문제에서 주된 의제인 학생인권 보장 등의 사안은 포함되어 있지 않았던 것이다. 하여 공개 원탁 토론회에서 이에 대해 문제제기하자, 그 연대체의 활동가이기도 한 토론회 사회자 '실수'였다고 했다. 최근에 촛불집회를 계기로 18세 선거권을 비롯해서 청소년 참정권 논의가 이슈화되어서 그걸 반영한 것이고 그러다가 학생인권 보장 등은 빠뜨렸다고...  내가 그 말을 듣고 반사적으로 들었던 생각이, '흠 그럼 뭐 가령 전교조 법외노조화가 이슈니까 단결권 보장만 넣고 교원의 정치적 자유나 학교 민주주의 같은 건 실수로 빼먹어도 됐을 텐데...'였다.


  실수였다는 말 자체를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뭐, 그래 아마도 실수였겠지. 그런데 그런 '실수'는 별도의 사건이 아니고 맥락과 배경과 이유를 가진 연속성 있는 사건이다. 실수가 일어난 맥락과 배경이 개인적이거나 우연적인 것이라면 쉽게 정정할 수 있단 점에서 차라리 다행인데, 집단적이거나 지속적인 거라면 더 문제다. 그러니까 '실수'를 그냥 실수라고 넘길 게 아니라, '실수'로부터 무엇을 읽어내느냐가 중요한 것이다.


  예컨대 그 연대체에 청소년운동 단체들은 참여하지 않았다는 점이 그런 실수가 생긴 중요한 배경이었다고 할 수 있다. 또한 교사/학부모들이 별로 탐탁지 않게 느끼는 직접적인 학생인권 사안을 넣기보다는 참정권을 넣고 싶어 하는 심리가 작용한 건 아닌가 의심할 법도 하다고 생각한다. (어쨌건 인권의 문제를 절차나 참여의 문제로 축소시켜 온 것이 학생인권운동이 싸워온 오랜 악습이고 사이비 인권 담론이다.) 어쨌건 교육주체 간 중요한 갈등의 축이었고 운동 의제이자 '학생인권조례' 등으로 정책 의제이기도 했던 학생인권 문제를 그들이 어느 정도로 경시하는지는 충분히 짐작할 수 있는 일이었다.


*


그러므로 문재인의 '실수'라는 것도, 도대체 어떤 실수인지, 왜 일어난 실수인지를 이야기해야 의미가 있다. 단지 '실수'라고만 하고 넘어가 버린다면 그것도 이 문제를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는 것이다.

  문재인 개인이 기독교도이기 때문에 동성애자 등에게 부정적인 의견을 평소부터 갖고 있어서 그랬던 것이라든지 등 여러 가지 해석이 가능할 텐데, 나는 개인의 신념보다도 오랜 역사를 가진 문재인과 민주당의 성소수자 및 차별금지 문제에 대한 불명확한 입장에 주목하고 싶다. 단순히 '동성애는 소수자의 문제이므로 찬반의 문제가 아니다'라는 식의 정답 맞추기를 요구하는 것이 아니다. 차별금지법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왜 필요한지 등에 대해서 제대로 입장도 갖고 있지 않고 막연하게 '차별에 반대한다'는 정도의 이야기만을 하고 있는 상황이며, 심지어 차별금지법조차도 오락가락하고 지금은 제정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밝히고 있다. '군대 내 동성애'라는 기괴하고 의미도 불분명한 조어를 계속 쓰고 있는 것만 봐도 얼마나 이 문제에 관심이 없는지 알 수 있지 않은가.


  토론회에서의 발언 한 번은 '실수'일 수도 있겠다. 그런데 그 실수가 보여주는 배경과 맥락은, 그냥 넘어갈 수 없는, 고질적인 문제이며, 그런 점에서 '실수'라는 말로 넘어갈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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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공현
걸어가는꿈2016.09.11 15:38

1995년부터 청소년(인권)운동의 역사를, 참여했던 사람들과의 인터뷰를 통해 재구성한
『인물로 만나는 청소년운동사』가 나왔습니다.


많이 읽어주세요. 저와 둠코 님이 공저했습니다.


이런 분들께 추천합니다.

- 청소년운동과 청소년활동가들에 대해 알고 싶은 분들
- 과거에 청소년운동에 참여&관여했던 분들
- 앞으로 청소년운동을 하실 분들
- 학생인권조례 등이 만들어진 맥락과 역사가 궁금하고 조사해야 하는 분들
- 소수자 인권 운동이 만들어지고 발달하는 사례와 과정을 연구하고 싶은 분들


YES24  http://www.yes24.com/24/Goods/31090355?Acode=101

알라딘 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91320221





청소년 벗


인물로 만나는
소년운동사


저자  공현, 둠코
펴낸 곳  교육공동체 벗
발행일  2016년 9월 12일
정가  15,000원
쪽수  332쪽
책 크기 신국판(152×225mm)
ISBN  978-89-6880-027-6 (03300)
분류  사회과학 》 사회학





+ 목차


들어가는 글 | 시대를 바꾼 청소년들


1부 인간을 꿈꾸다


청소년운동의 여명기 | 김한울·나정훈
1998년 학생 인권 선언


특이한 청소년들, 세상에 말 걸다 | 박준표
2000년 노컷 운동과 2002년 선거권 운동


상처투성이 첫걸음이 남긴 것 | 장여진
2000~2001년 학생 인권 운동


2부 잃어버린 권리를 찾아서


부당함은 본능이 먼저 알지요 | 박정훈
2003~2004년 NEIS 반대·청소년 참정권 운동


자치의 시대, 청소년 정치를 고민하다 | 신정현·김종민
2004년 18세 선거권 운동


기억되지 않는 ‘우리의 촛불’ | 남궁정
2005년 내신등급제 반대·두발 자유 운동


3부 존재감 다지기
 
내 법인 듯 내 법 아닌 내 법 같은 너 | 조만성(따이루)
2006~2007년 학생인권법 제정 운동


청소년이 여기 있다는 걸 잊지 말아요 | 한지혜(난다)
2008년 촛불 집회·2010년 기호 0번 청소년 후보 운동


일제고사만 나쁜가요? | 윤가현(꽥쉰내)
2008~2009년 일제고사 반대 운동


학교의 중심에서 인권을 외치다 | 성상영(밤의마왕)
2007~2009년 경남 지역 학생 인권 운동


4부 진도 나갑시다


간도 쓸개도 빼 주고 얻어 낸 학생인권조례를 넘어서 | 전혜원
2010~2011년 서울학생인권조례 주민 발의 운동


날 도태시키지 않는 사회를 만들고 싶다 | 김동균(어쓰)
2011년 대학/입시 거부 운동


낮추자 아니, 내놔라! | 정재환(검은빛)
2012년 청소년 참정권 운동


나가는 글 | 청소년이기 때문에


청소년운동 단체 소개
청소년운동사 연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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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공현
걸어가는꿈2016.03.24 13:34

[공현의 인권이야기] ‘소비자’의 권리를 넘어서

공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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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이 소비자여야 하는가 아닌가

“우리가 교육의 소비자인데 학교/교사가 우리를 이렇게 대해도 되는 거야?” 학생인권 문제를 이야기하면서 만나는 학생들 사이에서 간혹 듣게 되는 말이다. 사실 그렇다. 교육을 ‘서비스’로 보고, 학교도 ‘교육시장’에서 경쟁력을 가져야 한다고 이야기하고, 수요자(소비자)의 요구에 맞추라고 하는 시장주의적인 교육정책 속에서 학생들이 겪는 현실은 모순적이다. 어느 서비스에서 소비자, 고객을 그렇게 막 대한단 말인가.

물론 답은 명확하다. 어느 대학 총장이 “학생은 피교육자일 뿐”이라고 밝혔듯이, 교육의 그림 속에서 학생들은 소비자가 아니다. 그 친권자‧부모들이 소비자일지는 모르겠지만. 학생들은 차라리 ‘상품’에 가까운 위치다. 교육의 결과물로 Before(이전) After(이후)를 보여줘야만 하는 존재들. 노동자처럼 밤늦게까지 학교나 학원에 붙잡혀 공부를 해서 ‘스펙’을 높여야 하지만 그 과정에서 임금이나 노동3권을 보장받지는 못한다. 나중에는 자신들의 성적을 입증하고 전시해야만 한다. 그래서 학생들은 “제발 소비자 정도의 대우만 받아도 좋겠다.”라고 하소연한다.

그런데 다른 면에서는 과연 학생이 소비자가 되는 것이 바람직한 것이냐는 의문을 제기해볼 수도 있을 것이다. 특히 시장주의적인 교육정책을 반대해온 사람들은 교육소비자니 교육수요자니 하는 말 자체에 경계심부터 가지고 보고는 한다. 하지만 ‘그렇게 되면 교육을 시장적 모델로 보게 되고 경쟁과 차별이 만연하고…’ 하는 이야기 말고, 학생의 입장에서는 어째서 소비자이면 안 된다는 것인지 이해하게 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구매력에 따른 차별 이야기를 할 수도 있지만 공교육은 일단은 많은 부분이 무상이라서 와 닿는 소리는 아니다.

사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소비자, 고객으로서 서비스를 제공받는 경험은 대개가 ‘제법 괜찮은’ 것이다. “손님은 왕이다” 같은 말로 대표되듯이 많은 감정노동자들의 친절과 봉사도 받을 수 있다. 물론 불량한 제품과 서비스 제공, 알 권리 무시 등 고통을 받은 경험도 있겠지만 수는 적은 편이며, 소비자는 그런 서비스를 선택하지 않을 권리도 가지고 있다. 결국 ‘학생인권 보장’이라는 게 학교가 학생을 고객처럼 모시는 것, 또는 학생이 소비자처럼 행동할 수 있는 것으로 받아들여지는 오해도 생겨난다.

시장주의적 접근, ‘소비자’ 모델이 가지는 한계를 나는 이렇게 한 마디로 말하곤 한다. “소비자가 기업 경영에 참여하고 의결할 수 있나요?” 소비자는 구매력이 있다면 선택권을 행사할 수 있고 봉사를 제공받을 수도 있지만, 본질적으로는 이미 정해져 있는 것들 중에서 고르는 것밖에 할 수 없다. 소비자는 기업의 바깥, 결정과 생산 영역의 바깥에 있다. 만일 학생이 소비자라면, 학생은 학교가 어떻게 운영되는지 교육과정은 어떠해야 하는지 알고 참여할 권리도 없을 것이고, 학교의 편의에 따라 소비자 의견을 제시하는 정도밖에는 하지 못할 것이다. 바로 지금 정부가 ‘만족도 조사’를 실시하듯이. 우리가 민주적인 학교를 요구하고 학생들이 학교 운영에 참여해야 한다고 주장한다면 이미 그것은 ‘소비자’의 위치를 뛰어넘은 것이다. 애초에 ‘교육’이라는 과정은 교사에 의해 제공되는 서비스를 학생이 받기만 하는 형태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학생들이 주체가 되어 이루어진다는 점에서도 ‘소비자’라는 개념에는 한계가 있지만 말이다.

위 사진:교육청의 시각을 보여주는 홍보포스터

소비자에 머물지 말아야 할 이유

운동을 하다보면 자신의 권리를 이야기할 때도, 정부가 인권이나 복지를 이야기할 때도, 사람들을 ‘소비자’처럼 생각하는 많은 경우와 마주치게 된다. 여러 복지정책이 그렇고, 심지어 정치를 이야기할 때조차도 이제는 ‘정치 소비자’라는 말이 등장하고 있는 상황이다. 사람들이 소비자로서도 제대로 대접받지 못하고 있다는 문제의식과 소비자로서의 힘을 보여주겠다는 취지를 보면, 학생들이 소비자 대우라도 받고 싶다고 말하는 것이 연상된다. ‘정치소비자협동조합’을 표방한 조직이 직접민주주의와 능동적 참여를 주창하는 것을 보면 약간 역설적으로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그 문제점도 명확하다. 먼저 구매력이 적은 사람들은 제대로 권리를 보장받지 못한다. 일례로, 거대 정당들의 주류 정치인들은 이번 총선에서 상대적으로 ‘표가 적을 것 같아 보이는’ 성소수자보다는 혐오세력에 동조하는 쪽을 택하고 있다. 그리고 그밖에도 많은 소수자들, 표가 안 될 것 같은 사람들의 문제에는 침묵하고 있다. 아예 정치구매력이 없는 청소년들은 논외가 되어 버린다. 경쟁은 ‘공급자’만 하는 것이 아닌 것이다. 우리 표로 정치를 사고, 정치인들이 표를 받고 정책이나 정치적 행위를 ‘판매’하는 것이라고 이해한다면 보편적 인권 보장은 불가능하다. 그래서 <4.13 총선 인권올리고 가이드>에서는 이런 문제를 지적하며 “표의 주인을 넘어 정치의 주인”이 되어야 한다고 적고 있다.

또한 앞서 말했듯 ‘소비자’는 함께 참여하고 만들고 책임지는 주체가 아니다. 주어진 상품들 중에서 선택할 권리는 있지만, 함께 만들고 결정을 내리지는 않는다. 일견 소비자는 많은 권리를 가진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실은 선택할 권리 말고는 많은 권리를 제약당하고 있다. “손님은 왕”이라고 하지만, 본래 왕은 단지 좋은 대접을 받고 호화로운 의전을 받는 자리가 아니라 국가의 주권자이며 결정권자이다. 왕은 ‘고객’이 아니라 ‘주인’이다. 그런 의미에서는 ‘소비자’와 ‘왕’은 정반대의 위치에 있다. 많은 경우 인권 보장을 위해서는 소비자의 권리 이상으로 주인의 권리가 필요하고, 평등한 참여와 공동의 연대(책임)가 필요하다.

상품이나 노예, 없는 존재 취급을 받는 사람들에게 소비자의 자리는 신분상승처럼 느껴지기 쉽다. 모든 것이 시장화되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소비자의 위치는 익숙하고 편안한 것이기도 하다. 그러나 인권은 ‘소비자’의 권리와는 다르다. 인권운동이 ‘소비자 마인드’를 경계하는 것은 단지 시장이나 자본주의에 대한 거부감 때문이 아니다. 그 걸로는 인권이 제대로 보장될 수 없으며, 우리가 이야기하고 추구하는 인권은 그 이상을 꿈꾸기 때문이다.

덧붙이는 글
공현님은 청소년인권행동 아수나로 활동가입니다.
인권오름 제 478 호 [기사입력] 2016년 03월 23일 18:3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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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공현
걸어가는꿈2011.11.30 14:43


<병역거부소견서>

가기 싫어도 가야만 한다는 현실을 바꾸고 싶습니다


  11월 18일, 할아버지 병환 등 때문에 대구에 있는 와중에, 수원에 제가 사는 집에 징집영장이 왔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그리고 바로 다음날, 19일에 대구에 온 애인이 영장을 전해줬습니다. 11월 29일이 입영일이었지만, 입영하지 않았습니다. 간단히 말해서 병역거부를 한 것이지요. 병역거부를 한 이유, 예 소위 '소견서'를 길게 쓰고 싶진 않습니다. 할 이야기가 별로 없어서이기도 하고, 그간 제가 너무 많은 말로 사람들을 속여 왔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속여 온 것을 잘못이라고 생각하거나 후회하지는 않지만, 저 자신이 사람들을 속이는 일에 슬슬 지쳤거든요.

  제가 대체 언제부터 병역거부를 결심하게 되었는지 돌이켜보았습니다. 국가주의․전체주의에 대해 문제의식을 갖게 된 것은 열다섯살 즈음이었습니다. 모두 같은 옷을 강제로 입히고, 같은 머리모양을 강요하고, 개인을 무시하고 획일적인 교육을 하는 학교생활에서부터 문제의식은 시작됐습니다. "사회(국가)는 개인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고, 사회(국가)가 개인에게 요구할 수 있는 것은 필요최소한의 것들뿐이다. 내 자발성과 동의에 기초하지 않은 희생이나 애국을 강요하는 것은 이상하다. 우리는 국가의 부속품이 아니다." 그런 생각이 싹트면서, 이미 "군대"는 막연한 두려움으로 자리잡고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박노자씨의 책 등을 통해서 고등학교 때 병역거부자들의 존재를 알게 됐습니다. 청소년인권운동을 열심히 하던 고3 때, 우연히 오정록씨의 병역거부소견서를 읽게 되었습니다. 그 소견서의 문장 하나하나가 가슴에 와서 박혔습니다. 그 소견서가 뭐 특별히 미문으로 되어 있거나 한 건 아니었을 것이고, 청소년인권운동을 시작하고 군사주의에 대한 문제의식을 더 명료하게 키워나가던 시기에 만난, 생생한 병역거부자의 이야기였기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병역거부자들의 존재에 대해 안 뒤로, 제 마음 속에는 항상 병역거부라는 선택지가 있었습니다. 그 선택지는 어느 순간 저에게 당연한 것, 징병검사에서 면제라도 받지 않는 이상 선택할 수밖에 없는 운명처럼 자리 잡았습니다.(그리고 저는 징병검사에서 1급을 받아버렸지요.) 병역특례나 해외봉사 같은 여러 선택지들을 애써 생각해보려 했지만, 그런 많은 '대체복무'들도 군사훈련을 받아야 하고 또 나름의 특별한 기능이나 조건이 있어야 한다는 것을 안 뒤에는 마음이 멀어졌습니다.

  저에게 병역거부는 단순히 윤리적 결단은 아닙니다. 저는 청소년인권운동을 시작했던 이래로 항상 저를 활동가로 생각해왔습니다. 활동가란 단지 개인의 윤리에 따라 사는 게 아니라 사회적인 활동, 정치적인 실천을 하는 사람이지요. 병역거부 역시, 뭐 그걸 비록 청소년인권운동으로 보는 것은 아니지만, 마찬가지의 실천으로 생각합니다.
  제가 우리 사회의 병역거부자 기록에 숫자 하나를 더함으로써, 공개적으로 전쟁 훈련을 받는 것을 거부하고 수감됨으로써, 개인의 인권을 다양성을 더 존중하는 사회를 만드는 일, 우리 사회가 평화에 가까워지고 인간을 소중히 여기게 되는 일에 코딱지만큼의 보탬이 되고 싶습니다. 앞으로 만나는 이들에게 제가 병역거부자라고 말하면서, 우리 사회에 뿌리내리고 있는 군대와 군사주의에 대해 문제제기하는 존재로 살고 싶습니다. 제가 다른 사람들의 병역거부 소식을 듣고 병역거부소견서를 읽고 마음이 움직였듯이, 저의 실천이 다른 누군가에게 다시 생각해볼 기회가 되길 바라면서요.
  뭐, 군대 가기 싫어서 안 가는 것 맞습니다. 하지만 좀 더 정확히 말하면, 군대에 가기 싫은데 군대를 가야만 하는 현실을 바꾸기 위해서 안 가고 거부하는 것입니다. 사실 군대에 가는 사람들 중에서도 군대에 가기 싫은 사람들, 적지 않을 테지요. 그런 분들에게도 저의, 그리고 우리들의 병역거부가 도움이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눈앞에 닥치고 보니, 병역거부는 제 삶에서는 제가 사회적 소수자가 되는 하나의 선택이기도 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는 앞으로 제 삶의 어떤 가능성들은 제한하고, 어떤 가능성들에 더 집중하게 만드는 선택이 되겠지요. 후회할지도 모릅니다. 아니, 분명 후회를 할 것입니다. 하지만 지금의 저는 이 길을 갈 수밖에 없습니다. 병역거부는 제가 바라는 제 모습대로 살기 위한 선택이기도 합니다. 십년 이십년 삼십년 후에, 군대에 관해서 이야기할 때 나는 어떻게 했노라고 이야기하고 싶을까, 그런 상상을 해보면 역시 병역거부가 가장 좋다는 생각이 듭니다. 저는 군대에 복무하고 제대를 해서 살아가는 제 자신의 모습을 상상할 수도, 사랑할 수도 없습니다.

  이 글을 쓰면서 다른 병역거부자들의 이야기를 많이 들춰봤습니다. 제가 처음 만났던 병역거부소견서, 오정록씨의 병역거부소견서에서 한 문장을 인용하면서 끝내겠습니다. "저는 운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입영영장보다 병역거부를 먼저 만났기 때문입니다."



2011년 11월 30일







병역거부소견서도 '초안'이라고 다는 이 성실함(???)
좀 더 다듬어보고 오늘 저녁이나 내일 쯤 보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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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공현
딱딱한꿈2011.08.24 19:31


운동을 위한 실용 글쓰기



<2> 주장하는 글 : 성명, 논평, 칼럼, 토론문 등


주 장하는 글은 운동을 하면서 가장 많이 쓰게 되는 글이다. 운동을 한다는 건 어떤 주장을 하며 사회를 바꾸려고 하는 것이니까,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주장하는 글이라고 다 똑같을 리야 없다. 단체의 입장을 발표하는 글, 개인적으로 쓰는 글, 언론에 발표하는 글, 토론회 때 쓰는 글 등등이 같을 수야 없다. 쉽게 말하면 글을 다 쓰고 나서 제일 밑에 “청소년인권행동 아수나로”라고 붙는 것과 “공현”이라고 붙는 것과, 한 10명 모인 토론회 자리에서 발표하는 것과 수만명이 읽는 신문 지면에 실리는 것이 같을 수는 없다는 것이다.

일단 여기에서는 주장하는 글의 종류를 대표적인 3가지로 나누어보았다. 하나는 단체의 입장을 발표하는 성명과 논평이다. 성명과 논평은 단체 회원들이나 다른 사람들에게 단체의 정해진 입장을 알리는 글이며, 동시에 언론 등을 통해 사회에 전달하고 발표하는 글이다. 두 번째는 칼럼이나 언론기고문이다. 이 글은 개인의 명의로 언론에 글을 기고하여 발표하는 형태의 글이다. 가장 전형적인 논설문이라고도 할 수 있다. 세 번째는 발제문이나 토론문이다. 발제문이나 토론문은 개인적이라는 점에서는 칼럼과 비슷하지만 발표 방식이 언론에 직접 전문을 싣는 것이 아니라는 점에서는 성명이나 논평과 비슷한 점이 좀 있다. 주로 토론회와 같은 행사를 할 때 자료집에 실린다.

이제부터 이러한 주장하는 글을 쓸 때 유의해야 할 점이나 자잘한 방법 같은 걸 설명하도록 하겠다. 이 중 어떤 글이든 내가 〈운동을 위한 실용 글쓰기 1〉에서 제시한 원칙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는 것은 잊지 않도록 하자.



① 성명/논평


성명/논평에 관해서, 우선 많은 사람들이 헷갈려 하는 부분부터 짚고 넘어가겠다. 그건 바로, 대체 성명과 논평의 차이가 뭐냐는 것이다. 사실, 어떤 글이 성명이냐 논평이냐 하는 것을 구별할 명확한 기준을 제시하기는 쉽지 않다. 하지만 그 둘의 성격을 비교하기는 쉬운 편이다. 그러니 일단은 그 정도 설명에서 만족하도록 하자. 성명이 어떤 사안에 대해 더 강하게 주장하고 외치는 거라면, 논평은 어떤 사안에 대해 조금 더 차분하게 분석하고 평하는 것이다. 성명은 요구 사항이 비교적 뚜렷하고 논평은 주장이나 입장은 드러나지만 요구 사항을 그렇게 뚜렷하게 적지는 않는 경우가 많다. 성명은 상대적으로 길고 완결된 글이고, 논평은 상대적으로 짧고 간결하다.

성명/논평은 단체의 성격과 색을 단적으로 드러내는 글이며, 또한 보도자료 등에 첨부하여 주장을 표현하거나 행사에서 주장하는 바를 밝힐 수 있는 글이다. 특정 사안에 대해서 직접 활동을 할 여력이 없을 때는 우선 성명이나 논평으로 입장과 주장을 정리해두고, 그걸로 대충 면피를 하곤 한다.(별로 좋은 관행은 아닐지도 모른다.) 성명/논평은 ‘연명’(성명서 내용에 동의하고 거기에 같이 이름을 올리는 것)하는 단체가 많을수록 영향력이 커질 수 있기 때문에 많은 연명을 받아서 발표하곤 한다. 하지만 많은 단체들이 연명해서 성명/논평을 내는 것은 그 활동의 주체가 되는 핵심 단체들을 드러내주지 못한다는 단점도 있다. 열심히 성명 쓰고 제안하고 활동하는 건 1, 2개 단체인데, 언론에 “133개 시민사회단체들은…”이라고 나가면 그 1, 2개 단체 입장에선 좀 억울하지 않겠는가? 따라서 사안에 따라서 어떤 방식으로 발표를 해야 할지 역시 생각해볼 문제이다.


성명/논평을 쓸 때 가장 먼저 고려해야 할 것은 “무엇을 쓰고 무엇을 쓰지 않을 것인가”, “어떤 것을 이야기할 것인가” 하는 점이다. 왜냐하면 성명/논평은 개인의 생각이나 주장이 아니라 단체의 주장을 발표하는 것이라서 어떤 내용을 쓰거나 쓰지 않는 것이 ‘민감한’ 문제이기 때문이다. 성명/논평은 단체의 개성과 성격을 드러내는 것임을 잊지 말자. 성명/논평을 쓰기 전에 정리해 두어야 하는 질문은 대체로 다음과 같다.

이 사안을 우리는 어떤 성격의 사안으로 이해하고 규정할 것인가? 이에 대해 우리는 무엇을 주장하기로 했는가? 어떤 정책에 대해서라면, 찬성인가, 반대인가, 부분적 찬성/반대인가? 책임을 묻는다면 누구에게 책임을 물을 것인가? 반드시 언급하거나 설명해야 하는 부분은 무엇인가? 여러 가지가 얽힌 복잡한 사안일 경우 각각 비중은 어느 정도로 다루어야 하는가? (심지어 문단의 개수나 분량까지도 생각해가며 써야 할 때도 있다!)

특히 입장이 딱 찬성 반대로 나눠지지도 않고, 다양한 입장들이 다양한 표현과 어법으로 만들어질 수 있으며, 오해받을 소지가 있는 사안에 대해서는, 성명서의 입장과 주장을 표현 하나에서부터 분량까지 잘 컨트롤해야 한다. 대표적으로 교원평가제와 같은 민감한 사안에서, 입장이 현재 안에 대한 찬/반인지 교원평가 자체에 대한 찬/반인지, 대안은 어떤 형태로 제시할 것인지, 전교조의 입장에 찬성하는지 반대하는지, 현재 정세 돌아가는 걸로 볼 때 이런 말은 필요하긴 하지만 비중을 줄이는 게 좋겠다든지, 여하간 이런저런 골치 아프고 미묘한 조정이 필요해지고는 하는 것이다.


성명/논평을 쓸 때 여러분은 얼마든지 창의적인 표현이나 방식을 선택할 수 있다. 성명/논평의 틀을 지나치게 딱딱하게 정해놓는 것은 별로 좋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는 읽는 이도 쓰는 이도 재미가 없고, 단체의 개성도 잘 드러나지를 않는다. 하지만 이렇게 이야기하면 어떻게 써야 할지 감이 전혀 안 잡혀서 막막한 사람도 있을 수 있으니까 여기에서 ‘일반적인’ 성명/논평의 순서 정도는 소개하겠다.

성명서의 첫 머리에는 보통 성명서 전체의 방향과 성격을 짐작하게 하는 내용이 들어가는 것이 좋다. “어떤 일이 일어났다. 이것은 어떻다.” 거기에서 어떤 말을 사용해서 이 사건을 표현하느냐에 따라 우리가 이 사건을 어떻게 이해․규정하고 있는지를 읽는 이가 알게 하고, 또 이 사건에 대해 대충 어떤 입장을 가지고 있는지 밝히는 것이다. 신문 기사의 ‘리드’(리드 : 신문의 뉴스 기사에서 본문의 앞에 그 요점을 추려서 쓴 짧은 문장.)를 떠올리면 어떤 내용을 넣어야 하는지 이해하기 쉬울 것이다.

그 다음에는 이 성명서를 쓰게 된 배경, 즉 사건의 개요를 간추려서 넣어줘야 한다. 성명서를 읽는 사람들이 사전에 알아야 하는 정보이기 때문에, 이 부분은 앞부분에 들어가 줄 필요가 있다. 경우에 따라서는 세간에 잘 알려진 사건이거나 아니면 생략해도 무방한 정보는 안 쓰기도 하고, 짧은 논평 등에서는 간단한 한 문장 정도로 요약하기도 한다.

그 다음에는 그 사건에 대한 해석과 분석을 쓴다. 즉 표면적으로 드러난 사건을 좀 더 파고들어서 심층적인 분석을 써줘야 하는 것이다. 예컨대 보충수업을 강제로 하지 않은 교사가 사학재단에 의해 해임당한 사건에 대해서, 이는 학생인권과 진정한 교권이 상충되지 않으며, 억압적인 학교 구조 안에서 교사와 학생이 연대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고 쓴다거나 뭐, 기타 등등…. 이 분석 속에도 물론 성명/논평을 발표하는 단체의 주장과 입장이 반영될 것이다.

성명의 경우에는 마지막에 주장과 요구사항이 들어가곤 한다. 요구를 하는 대상이나 책임을 묻는 대상을 명확히 해야 하며, 요구의 내용도 구체적이면 좋다. 독자의 편의를 고려한다면, 써주고 나서 다시 한 번 전체 요지를 몇 줄로 정리하는 것도 좋을 것이다. 논평의 경우에는 특별히 요구사항을 정리하기보다는 전체적인 글을 마무리하면서 그래서 우리의 입장이 무엇인지 다시 한 번 강조하는 것이 보통이다.(“우려를 표한다.”, “다시 한 번 충고한다.”, “지적한다.” 같은 어휘가 자주 사용된다.-_-)

여기까지가 가장 일반적인 성명/논평의 구성 방식이다. 하지만 여러분은 사건의 성격에 따라, 성명/논평의 성격에 따라, 얼마든지 참신한 성명/논평을 만들 수 있다. 성명/논평은 논리적인 글이지만, 꼭 딱딱한 논리적 표현에만 집착할 필요는 없다. 비유나 패러디 등을 알맞게 활용하는 것은 성명/논평을 더 널리 읽히게 만들기도 한다. 예컨대 상대방의 말이나 다른 글 등의 형식을 차용하는 패러디는 성명/논평에 곧잘 사용되는 인기 있는 방법이다.


성 명/논평을 쓸 때 또 한 가지 유의할 점이 있다. 바로 개인의 ‘문체’ 문제이다. 하나의 글은 아무래도 한 명이 쓰는 게 더 나은 경우가 많다. 여러 명이 한 문단씩 써서 글을 조립한다면, 오 내용이 중언부언 겹치게 되고 글이 뒤죽박죽이 되기 일쑤일 것이다. 그러나 성명/논평은 한 사람 개인의 글이 아니라 여러 사람이 모인 단체의 이름으로 발표되는 글이라는 것을 잊어선 안 된다. 성명/논평을 쓸 때는 지나치게 개인의 문체나 스타일이 반영되어서는 안 되는 것이다.

물론 성명/논평을 한 개인이 쓰고서 바로 발표하는 일은 별로 없다. 쓰고 나서 다른 사람들의 의견을 받아가며 고치는 작업도 여러 번 하는 게 보통이다. 그런 과정을 거친다면 한 개인의 문체나 스타일이 지나치게 반영되는 것을 어느 정도 억제할 수 있다. 하지만 쓸 때부터 그런 부분을 염두에 두고 자제할 필요는 있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성명/논평이 어떻게 발표되고 읽히는지를 염두에 두는 것 역시 성명/논평을 어떻게 쓸지, 성명/논평의 분량을 어떻게 할지 등을 정할 때 도움이 될 것이다. 성명/논평이 발표되는 방식은 크게 다음의 3가지다. ▲ 언론에 배포해서 보도 ▲ 단체 홈페이지, 이메일 등을 통해 ▲ 직접 인쇄하고 배포.

마지막의 직접 인쇄, 배포하는 방식은 과거 외국에서는 많이 이용된 듯하지만 요즘에는 거의 이용되지 않는다. 배포용이라면 전단지 형태로 더 알아보기 쉽게 꾸며서 만드는 게 효율적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같은 모임 안에서 나눠주거나 돌려 읽기 위해 성명을 인쇄하는 경우도 전혀 없지는 않으며, 그렇지 않더라도 어떤 행사에서는 성명 자체를 낭독하는 경우도 있다. 관련 기관에 성명/논평을 팩스로 보내는 경우도 있고. 그러므로 성명/논평은 그 분량이 2페이지(즉 양면 인쇄했을 때 1장 안에 들어가도록)를 넘지 않는 것이 좋으며, 길어도 3~4페이지 이내의 분량이어야 한다.

성명/논평이 언론에 발표될 때는 성명/논평의 전문이 실리는 경우는 많지 않고 보통은 일부를 인용하여 실리곤 한다. 따라서 성명/논평을 쓸 때 이 점을 고려한다면, 딱 한 문장이나 두 문장으로 이 성명/논평의 핵심적인 주장을 표현할 수 있는 문구를 강조해서 포함시키는 것이 좋다. 때로는 언론에 보도되는 것을 고려하여 일부러 선정적이거나 재치 있는 표현 등을 넣기도 한다. 생각해보라. “입시가 사형제보다 더 많은 사람을 죽인다.”와 “입시가 원인 중 하나가 되어 죽음에 이른 청소년들의 수가 적지 않다.” 중에 어느 쪽이 더 언론에 잘 보도되겠는가? (뻔한 소리지만, 사실과 다른 표현, 억지스러운 표현, 반감을 살 표현을 사용하는 건 무리수이므로 주의해야 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단체 홈페이지나 이메일 등 웹을 통해 배포하는 방식이 있다. 웹의 유연한 특성상 이 방식의 경우에는 별로 고려해야 할 점이 많지는 않다. 여기저기 퍼나르는 게 중요할 뿐이다. 다만 사람들의 가독성을 높이기 위해 줄바꿈을 자주 하거나 문단과 문단 사이를 충분히 띄우거나 이미지를 첨부하는 등의 노력을 하는 것, 혹은 웹의 특성을 활용해서 관련된 링크를 함께 삽입하는 것 등은 유효하다.



<성명서> 청소년들을 평등한 정치적 주체로 인정하라!

이 땅에서, 청소년들의 정치적 권리는 오래전부터 무시당해 왔다. 특히 최근의 미국산 쇠고기 반대 촛불집회가 확산되면서 이 사회가 보여주고 있는 과민 반응들은 그런 것을 여실히 드러내고 있다. 청소년들의 집회의 자유, 표현의 자유에 대해 치사찬란한 태클을 걸고있는 정부와 일부 언론들에게 청소년인권행동 아수나로는 짜증의 마음을 듬뿍 담아 전달한다.

잠 시 과거를 상기하자면, 2003년에도, 2005년에도 청소년들의 집회에 대해 정부는 까칠하게 반응했었다. 법을 개정해서 ‘미성년자’를 집회에 동원하면 처벌하는 조항을 만들겠다고 으름장을 놓는가 하면, 교육부와 교육청에서는 교사들과 장학사들을 동원해서 청소년들의 내신등급제 반대촛불집회와 두발자유 집회 참가를 봉쇄하려고 했었다. 많은 언론들이 청소년들의 집회 뒤에 배후세력이 있을 거라고 떠들어댔으며, 청소년들이 정치적 발언을 하고 행동을 하는 것에 알레르기 반응을 일으켜왔다.

2008 년, 올해에도 발전은커녕 퇴보한 뻘짓들만 눈에 띈다. 미국산 쇠고기 수입에 대해, 그리고 이명박 정부의 여러 정책들에 대해 사람들의 반대 목소리가 높아져 가고 청소년들이 참여하는 촛불집회가 점점 커지자, 교육부와 교육청은 또 ‘감수성이 예민하고 미성숙한’ 청소년들의 집회 참가가 바람직하지 않다면서 집회 참가를 막도록 하는 지침을 학교로 내려 보내고 있다. 교사들을 동원해서 집회장 주변에 배치하고 학생들이 집회에 참가하지 못하도록 돌려보내는 괴악한 짓도 여전하다. 몇몇 언론들은 청소년들의 집회 참가를 놓고 “연필 대신 촛불”을 들었네 어쩌네 하면서 배후세력이 있을 거라는 막연하고 무책임한 보도를 일삼고 있다. 또한 연예인들이 몇 마디 하니까 10대 팬들이 무작정 따라 나왔다, 아직 미성숙하고 충동적이어서 인터넷에 떠도는 괴담에 속은 거다, 등등 헛소리를 하며 청소년들의 정치적 행동의 의미를 평가절하하려 하고 있다. 청와대는 한술 더 떠서 놀이문화가 없어서 청소년들이 놀러 나오는 거라는 이상한 분석을 내놓으며 청소년들을 어떻게든 '정치적이지 않은' 존재로 규정하려 애쓰고 있다.

올 해에는 경찰과 검찰까지 가세해서, 5월17일에 휴교시위를 하자는 문자를 얼토당토않게도 “업무방해”니 어쩌니 하면서 수사하겠다고 하고 있다. 정말이지 이런 발언을 하는 인권의식 미성숙한 검찰총장부터 인권교육을 시켜야 한다. 심지어 며칠 전에는 경찰이 문자메시지를 추적해서 학교까지 찾아가서 학생들을 만나 문자메시지 내용을 확인하고 교장을 만나고 왔다고 한다. 청소년들의 정치적 권리 행사를 위축시키는 짓이며, 이미 인터넷에서는 ‘미성년자가 촛불집회 참가하면 사법처리 된다.’라는 식의 사실과는 다른 공포 조성 유언비어가 떠도는 판인데, 이에 대해 경찰도 책임이 없다고 할 순 없을 것이다.

도 대체 경찰이나 교육청, 교육부를 비롯해서 정부가 해야 하는 일이 정권의 하수인 노릇인가, 아니면 사람들의 안전과 자유를 비롯한 기본적 인권을 보장하는 것인가? 경찰이 해야 할 일은 오히려 청소년들의 정당한 권리를 부당하게 침해하고 있는 교육청 같은 애들을 막는 것 아닌가 싶고, 만일 정말로 민주주의와 인권을 교육하고자 한다면 교육부, 교육청, 학교는 오히려 청소년들에게 적극적으로 “여러분에게는 평화적인 집회를 만들고 거기에 참여할 권리, 발언할 권리가 있습니다.” 같은 류의 캠페인이라도 전개해야 하지 않나 싶다. 자신들이 정말 민주 정부이고 인권 경찰이라면 해야 할 일들과는 정반대되는 일을 하고 있는 저 안타까운 정부기관들은, 정말이지 언제까지 그따위로 할 건지 모르겠다. 답이 안 나온다.

또 한 아수나로는 청소년들에 대한 차별적 인식들이 비단 정부나 경찰, 일부 언론들에서만 보이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지적하고 싶다. 청소년들에 대한 차별, 청소년들을 보호의 대상으로만 보는 보호주의, 청소년들을 ‘철없는’ ‘충동적인’ ‘미성숙한’ ‘미래로 유보된’ 존재로 보는 인식들은, “학업에 열중해야 할 청소년들조차 거리로 내모는 정부”라는 표현 속에도, “철없고 순진한 아이들이 안심하고 공부할 수 있도록” 하자는 미국산 쇠고기 반대 주장에서도, “어른들이 잘 해야 하는데 잘못해서 어린 학생들이 거리에 나왔다.”라는 탄식 속에서도, “아이들에게 물려줄 것은 광우병이 아닌 미래입니다.”라고 적힌 피켓에서도,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 집회를 여는 주최측의 “미성년자들은 부모동의서가 없으면 연행당할 수도 있습니다.”, “밤 10시 이후 청소년들은 자진 귀가 조치시킵니다.”라는 안내 문구에서도, 모두 그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한 국도 가입한 아동권리협약 등은 청소년들의 정치적 권리, 의견반영권 등을 명시적으로 보장하고 있지만, 청소년들을 비청소년들과 대등한 정치적 주체로 인정하는 것은 분명 이 사회에 커다란 도전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듯하다. 노무현이든 이명박이든, 열린우리당이든 한나라당이든, 그 문제에 대해서는 별 다른 의견의 차이가 없었던 것 같다. 이 사회는 전반적으로 청소년들의 정치적 행동에 대해 ‘특별한’ 시선을 보내왔다. 비단 정부나 언론 뿐 아니라 많은 ‘어른들’과 때로는 몇몇 ‘청소년들’ 또한 청소년들을 평등한 정치적 권리의 주체로 인정하는 것을 꺼려하고 있다. 그 결과는 청소년들의 정치적 권리 행사를 직간접적으로 억압하고 공격하고 깎아내리는 것, 그리고 청소년들의 행동 자체에 반대하진 않더라도 그 행동의 의미를 뭔가 특별하고 예외적이고 시혜대상인 것으로 위치시키거나 그 행동을 부담스러워하거나 안타까워하는 것 등등으로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하 지만 청소년들은 누가 내몰아서 나온 것도 아니고, 학업에만 열중해야 하는 것도 아니며, 마냥 철없고 순진하지도 않고, 부모동의서가 없다고 연행당한다거나, 밤 10시 이후에 집회장에서 쫓겨나야 할 이유도 없고, 미래가 아닌 현재에 살고 있다. 청소년들은 비청소년들과 평등하게 연대하는 운동의 주체이지, 일방적으로 도움을 받거나 사회를 ‘물려받는’ 그런 시혜의 대상이 아니다. 청소년들은 정치적 권리를 가진 인권의 주체이자 정치의 주체이며, 최근의 미국산 쇠고기 수입 문제나 학교자율화 조치 등의 정부 정책들에 대해 스스로 분명한 판단을 내릴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우리는 경찰, 검찰, 교육청, 교육부를 비롯한 정부와 언론들, 그리고 행사 주최측과 참가자들에게 다음과 같이 요구한다.

1. 정부와 언론 등은 청소년들의 집회의 자유와 표현의 자유 등 정치적 권리 행사를 위축시키고 깎아내리는 모든 조치와 발언을 취소하고 이에 대한 사과와 함께 재발방지를 약속하라.

1. 현재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 행동 등에 개입하고 있는 주최 측과 참가자들은 청소년들을 보호주의적, 시혜적, 차별적 태도로 대우하지 말고 평등하게 대우하라.

청 소년인권행동 아수나로는 이러한 요구가 실현될 수 있도록, 국가인권위 진정이나 다른 항의/불복종 활동, 청소년들의 정치적 권리를 보장하기 위한 대응팀 구성, 청소년들이 평등한 주체로 대우받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한 캠페인과 발언 등을 뜻을 같이 하는 단체들과 함께 적극 조직하고 계획할 것이다.

청소년인권행동 아수나로
2008년 5월 8일


이 성명은 지금까지 청소년인권행동 아수나로가 발표한 성명 중에서도 '그나마' 널리 알려지고 웹에서 ‘펌질’이 된 성명들 중 하나이다. 물론 2008년 촛불 정국이라는 시의적 상황 때문에 여러 촛불모임, 게시판, 아고라 등에 ‘펌질’이 될 수 있었던 것이긴 하지만, 이 성명 자체로도 촛불 정국에서 청소년인권행동 아수나로의 입장과 색깔을 분명히 드러내주고 있는 좋은 성명이라고 할 수 있다. 찬찬히 읽어보며 평가해보자.



② 칼럼 등 언론기고문


칼 럼 등 언론기고문은 글 전문을 언론을 통해 대중에 공개하는 글이다. 그러므로 어쩌면 가장 잘 써야만 하는, 부담 백배의 글일지도 모른다. 게다가 글의 질이 떨어지거나 글의 소재가 별로 주목 받을 만한 내용이 아니면 아예 언론에 실리지 않을 수도 있다. 개인의 문체와 발상, 그리고 단체의 주장 등을 잘 조화시켜야 한다는 점에서도 쓰기 어렵다.

하지만 언론기고문이 언론에 실릴 경우에는 그만큼 그 글을 읽는 사람들도 많고 또 주장을 최대한 온전하게 전달할 수 있다는 점에서 그 부담스러움과 어려움에 상응하는 이점이 있다고 할 수 있다. 즉 “잘 써야 하고 쓰기 어렵지만 잘 써서 잘 발표할 경우에는 효과가 큰 글”이라는 것이다. 뭐, 언론기고문을 써서 숱하게 언론에 실려도 완전 무반응인 경우들도 많기 때문에 이렇게 말하긴 좀 민망하지만, 그래도 얼마든지 화제가 될 수도 있고 또 어떨 때는 욕을 먹을 수도 있는 게 언론기고문이다. 따라서 언론기고문을 쓸 때는 한층 더 꼼꼼하게 주제와 개요를 검토하고 준비해서 써야 할 것이다.


언론기고문은 다른 그 어떤 글보다도 ‘독자’를 고려하는 글쓰기를 해야 한다. 독자가 가장 많고 독자층이 가장 폭 넓은 글이기 때문이다. 언론기고문을 쓸 때는 우선 우리 사회에서 대다수의 사람들이 그 주제에 관해 어떤 예비지식을 가지고 있으며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에 대해 생각하라. 웬만큼 많이 공론화가 되어서 대다수가 알고 있는 사안이 아닌 이상은 사안에 대한 설명을 생략하지 말고, 간단한 설명이라도 넣는 게 좋다. 사람들 대다수의 생각과 어긋나는 주장을 해야 할 때라면 설득력 있는 글을 쓰기 위해 많은 궁리를 해야 할 것이다.

두 번째로는, 막연한 ‘일반인’이 아니라 기고하는 언론을 읽는 독자들은 어떤 성향의 사람들이며 그 사람들은 그 주제에 관해 어떤 견해를 가지고 있을 가능성이 높은지에 대해 생각해봐야 한다. 예컨대 「조선일보」 독자와 「경향신문」 독자가 다른 정치적 견해를 가진 사람일 가능성은 높기 때문이다.(「조선일보」에서 여러분의 글을 실어줄 일도 별로 없겠지만…) 뭐, 「레디앙」처럼 활동가들 좌파들만 주로 읽는 좌파 오타쿠스러운 언론이나 「교육희망」, 「우리교육」처럼 교사들이 주로 읽는 언론의 경우에는 좀 더 독자층을 좁게 상정해도 될 것이다.


또한 언론기고문에서는 매체 특성 역시 고려해야 한다. 가장 대표적인 문제가 분량과 문체이다. 보통 일간지 등 지면에 글이 실리는 언론에서는 원고지 10매 이내(A4로는 1장 이내)로 글을 써야만 한다. 종이 지면이 대단히 한정적이기 때문이다. 또한 대부분의 경우, 문체 역시 간결한 문체를 사용해야 한다. 많은 사람들이 신문에 실리는 글에 간결하고 딱딱한 문체를 요구하는 것이 답답하고 재미없다고 생각하지만, 이 역시 신문지면의 한정적인 성격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주간지나 월간지 등 잡지 형태의 매체의 경우, 일간지와 마찬가지로 한정된 종이 지면을 가지고 있긴 하지만, 일간지보다는 제약이 적다. 일간지처럼 한 면 안에 글 여러 개를 배치해넣는 방식이 아니라 책자 형태로 되어 있기 때문이다. 아니 오히려 월간지 등에서는 일간지보다 더 심층적이고 자세한 글을 요구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최소한 원고지 20~30매 이상의 글을 요구하는 경우가 많다. 왠지 모르게 간행물이 나오는 기간이 길어질수록 더 긴 원고를 요구하는 경향이 있는데, 예컨대 월간지가 원고지 20~30매 이상을 요구한다면 계간지는 원고지 40~50매 이상을 요구하는 식이다.

반면, 인터넷 언론의 경우에는 이러한 분량 문제에서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편이다. 인터넷 지면은 지나치게 길거나 지나치게 짧지만 않다면 글의 분량에 크게 구애받지 않기 때문이다. 글이 A4로 2장 분량이든 4장 분량이든, 그 인터넷 언론의 서버에는 별로 영향을 미치지는 않는 것이다. 그 결과, 인터넷 언론에서는 문체에 대해서도 다소 관용적인 편이다.

마지막으로, 언론기고문은 글이 언론에 실리고 배포되는 시점을 고려해야 한다. 글이 간행물이 언제 나오고 배포되는지 이것저것 계산해야 할 것이 많다. 이에 관해서는 아예 글 중에서 글을 쓰는 시점을 명확히 밝히거나, 아니면 읽는 사람이 글을 읽는 시점에 맞춰서 쓰는 방법이 있다.


그밖에 언론기고문을 쓰는 법을 좀 더 자세하게 소개할 수도 있겠지만, 그렇게 하지는 않겠다. 나는 언론기고문은 특별히 표준화된 형식이라는 게 존재하기 어렵다고 생각한다. 뭐 그냥 일반적인 논설문 식으로 서론 본론 결론이라거나, 두괄식 등 여러 방식을 제시할 수도 있겠지만… 칼럼 등 언론기고문은, 여러 가지 형식이 가능하고 때에 따라 적절한 모양새가 있을 것이기 때문에 그런 여러 가능성을 제한하고 싶지는 않다. 언론기고문은 개인의 이름을 달고 나가는 경우가 많은 만큼 각 개인의 문체와 사상이 잘 드러나는 편이 더 나을 것이다.

다만 언론기고문은 보통 개인의 이름을 달고 발표하더라도 "(단체 이름) (직함) (누구누구)" 이런 식으로 나가는 경우가 많다. 독자들은 이를 단체의 입장으로 받아들일 수도 있으므로, 단체의 입장과 개개인의 개성을 적절히 균형을 잡아서 쓰는 것이 포인트라고 할 수 있다. 특히 단체에서 사업의 일부로 회의를 거쳐서 기획적으로 기고하는 언론기고문의 경우에는 단체의 공식 입장 역시 녹아들어가도록 써야 한다.



③ 발제문, 토론문


발제문과 토론문은 토론회에서 이야기하기 위해서, 이야기할 내용과 요지를 정리해서 쓰는 글이다. 이 역시 통상의 주장하는 글과 큰 차이는 없다. 오히려 성명서나 칼럼에 비해서 별다른 제약 없이 쓸 수 있는, 형식 면에서는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글이라고 할 수 있다. 줄글로 써도 되고, 짤막짤막하게 "~임." "~라고 생각함." 같은 문장들을 주욱 이어 붙여서 토론문을 만들어도 된다. 경우에 따라선 자료들과 그 자료에 대한 분석, 해석만 잔뜩 제시한 발제문도 있다. 형식이 자유로운 만큼, 그 안에서 자신이 그 주제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은 바를 최대한 충실하게 담아내면 훌륭한 발제문 및 토론문이라고 할 수 있다.

발제문과 토론문 역시 어떤 차이가 있는지 궁금해할 수도 있다. 현실에서는 별다른 차이가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일단 그 원래의 의미는 분명히 차이가 있으니 정리해두고 넘어가자. 발제문은 토론을 시작할 때 해당 주제에 관해 정리하고 토론할 거리와 방향을 제시하는 글이다. 그리고 토론문은 그 발제문에서 제시한 자료와 토론 거리 등에 대해서 특정한 의견을 밝히는 글이다. 즉 발제문은 단순히 주장하는 글이 아니라 토론에 필요한 자료, 방향, 내용을 제시하는 글이며, 토론문은 이 발제문을 보고 쓰는 글이다. 상대적으로 발제문이 길이가 더 길고 토론문이 길이가 더 짧을 때가 많다.

발제문을 쓸 때는 지나치게 단정적인 어투는 피하는 것이 좋다. 물론 발제문에서 주장을 내세우지 말라는 것은 아니다. 발제문은 단순히 주제를 설명하기만 하는 글도 아니고, 특정한 입장과 주장이 없이는 좋은 발제문을 쓸 수 없을 것이다. 이 주제에 대해 어떤 입장에서 어떻게 생각해볼 필요가 있고 어떤 부분에 초점을 맞출지 이야기하기 위해서는 분명한 입장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발제문은 어디까지나 토론의 시작을 여는 글이다. 처음부터 지나치게 단정적으로 이야기를 해버리면 분위기가 좀 그렇지 않겠는가.

토론회는 대개는 발제자 1~2인이 발제를 하고 토론자들이 각자 자기 입장에서 토론을 발표하고 그 다음에 플로어 토론을 하거나, 아니면 소수의 발제자가 발제를 한 뒤에 바로 플로어 토론을 하거나 하는 식으로 이루어진다. 발제자가 1~2인일 때야 뭐 어려울 것 없겠으나, 발제자가 여럿일 경우에는 한 말 또 하고 또 하고 하는 발제가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 이를 피하기 위해서 발제자가 여럿일 경우 각각의 발제자들은 어떤 성격의 발제자인지 파악하고 자기가 맡은 역할을 이해해야 한다. 예컨대 교수 등 학계 사람, 정부 관계자, 활동가는 각각 다른 방식과 관점에서 발제를 할 것이다. 또는 한 사안을 놓고도 교사, 학생, 학부모의 입장에서 발제는 다를 것이다. 이런 여러 가지 것들을 고려해서 토론회에서 자기에게 맡겨진 역할에 맡는 발제문을 쓰면 된다. 토론문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발제와 토론을 할 때 한 가지 팁을 전하자면, 절대로 토론회를 할 때 발제문이나 토론문을 줄줄 읽지 말라는 것이다. 한국의 문맹률은 세계 최저이고 토론회에 오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글을 읽을 줄 안다. 시각장애인이나 외국인이나 글을 모르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으나 그런 사람들은 주최 측에 요청해서 점자책이든 컴퓨터로 읽을 수 있는 텍스트 파일이든 통역이든 요청하면 될 일이다. 여하튼 토론회에서 자기 발제문과 토론문을 줄줄 읽는 것은 토론회를 매우 지루하게, 여러분의 발제/토론 시간을 의미 없는 시간으로 만드는 지름길이다. 토론회에서 발표할 때는 자기 주장에서 중요한 부분만 골라서 압축적으로 하도록 한다. 인상 깊은 일화나 예시를 들면 아주 좋다. 여건이 허락한다면, 일부러 발제문 및 토론문에는 쓰지 않고 토론회 현장에서 발표할 이야기를 하나 정도 준비해가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글을 그대로 읽지 말라는 것은 시간의 문제 때문이기도 하다. 대개 발제 및 토론을 발표하는 시간은 길어야 20분, 짧으면 5분 정도 주어진다. 20분이라고 해도 A4 용지로 대여섯 페이지 정도밖에 이야기할 수 없는 분량이고, 5분이라면 A4 용지로 한 페이지 얘기하면 끝난다. 그러므로 글을 그대로 읽지 말고, 발표할 때 어떤 부분을 강조해서 어떻게 이야기를 할지 미리 생각해두는 것이 좋다.

두 번째 팁. 발제자와 토론자를 3, 4명 이상 요구하는 '그런 류의' 토론회들은 미리 준비된 발표자들의 발제 및 토론만 1시간씩 이어지는 게 부지기수이다. 준비하는 사람들이 어찌어찌 계획을 짤 때 시간을 40분 정도에 맞추더라도, 발제자와 토론자들은 대개 자기 시간을 넘겨 발표하기 때문에 1시간을 넘는 게 다반사다. 그러므로 그 자리에 오는 청중들은 대개 겉으로는 안 그런 척해도 따분해하고 집중력을 잃고 있기 십상이다. 발제문과 토론문을 위트 있고 재미있게 쓰고 발표를 재미있게 하려고 노력해보자. 아 물론 아주 엄숙한 학자들이 모인 학계 발표회 같은 데서는 역효과가 날 수 있으므로 주의해야 한다. 뭐든지 독자들과 청중들의 입장을 생각해야 한다는 것은, 발제문과 토론문에도 동일하게 적용되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발제문과 토론문은 그 자리에 온 사람들이 읽으라고 쓰는 것이기도 하지만, 기자들이 읽으라고 쓰는 것이기도 하다. 보통 어떤 토론회를 할 때는 단지 토론회를 여는 게 아니라 기자들이 그 토론회에서 무슨 이야기가 나왔는지 보도하도록 계획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성명 및 논평을 쓸 때와 마찬가지로, 발제문과 토론문 역시 기자들이 뽑아서 쓸 만한 간결하고 핵심적인 문구가 부각되도록 쓰는 것이 좋다. 그 부분은 발표를 할 때도 강조하도록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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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공현
딱딱한꿈2011.08.24 19:26


운동을 위한 실용 글쓰기

<1> 글쓰기의 일반적인 기본

  이런 상상을 해보자. 여러분은 지금 난생 처음으로 ‘성명서’라는 걸 쓰기 위해 컴퓨터 모니터 앞에 앉아 있다. 근데 대체 뭐라고 써야 할지 앞이 깜깜하다. 단체의 입장은 회의에서 이미 확인했다. 그래서 결론에 뭐라고 쓸지는 대충 감이 잡힐 것 같다. “이러이런 걸 철폐하라고 하면 되는구나. 대안으로 이런 걸 요구하자고 했지.” 그런데 결론을 먼저 써놓고 나니 할 말이 없다. “아 우리 단체가 이렇게 주장한다고 몇 줄 쓰면 되지 대체 뭘 쓰란 거야?!” 막막한 마음에 회의록을 보자 “~~이런 부분을 짚어야 할 듯.” “A가 B가 아니라는 걸 강조해야 해.” 뭔 놈의 회의록에 요구사항들만 많다. 짚긴 뭘 어떻게 짚으란 거야? ㅅㅂ!
  그런 분들을 위해서 운동을 위한 실용 글쓰기를 시작한다. 이 글은 운동에서 많이 쓰게 되는 몇 가지 유형의 글들에 있어서, 시대의 명문장가 타이틀을 딸 정도로 잘 쓰게 되진 못하더라도, 최소한 그럭저럭 욕 안 먹을 정도로 쓸 수 있도록 하는 데 도움을 주기 위한 것이다. 하지만 어쨌건 운동을 위한 실용적인 글들도 글은 글이기 때문에, 그런 글을 쓰기 위해선 모든 글쓰기에서 공통적으로 생각해야 하는 문제들을 피해갈 수는 없다. 제1편은 글쓰기의 일반적인 기본에 대해 알아보자.
  글을 쓴다는 건 뭘까? 자아와 개성의 표현이라거나 우주의 영감을 수신하여 원고지에 글자를 심는 일이라거나… 그런 소리는 집어치우고, 지극히 심플하고 평범하게 말하면 그건 문자로 ‘자기 생각을 다른 사람에게 전달’하는 것이다. 우리는 이 심플한 정의에서부터 글에서 빠질 수 없는 기본적인 3요소를 생각할 수 있다. ① 글을 쓰는 사람 ② 글을 읽는 사람 ③ 매체. 운동을 하면서 쓰는 글의 경우도 예외는 아니다. 그러니까 우선 여기에서는 글쓰기의 기본으로 이 3가지 요소를 고려하며 글을 쓰는 방법에 대해서 정리해보도록 하겠다.

① 글을 쓰는 사람
  글을 쓸 때는 글을 쓰는 사람을 고려해야 한다! 이 말에 여러분은 “글 쓰는 사람은 나잖아. 바로 여기 있는데 뭘 더 생각해?”라고 의문을 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소크라테스는 말했다. “너 자신을 알라!” 그렇다. 여러분은 글을 쓸 때 글을 쓰는 여러분 자신을 잘 모른다. 실제로 글을 쓰다보면, 어이없게도 “내가 대체 뭘 쓰려고 한 거지?”라는 의문을 느낄 때가 많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글을 쓰는 사람을 고려한다는 것은 “내가 이 글로 대체 뭘 전달하려고 하는 건지”를 확실히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자기가 대체 뭣 때문에 무슨 말이 하고 싶어서 쓰는 건지 헷갈려 하며 쓴 글은, 많은 사람들에게 난감한 경험을 줄 수 있는 물건이 된다. 쓰는 사람에게나 읽는 사람에게나.
  그래서 이 부분에서 고려해야 하는 것은 두 가지이다. 하나는 바로 주제이다. 주제란, 궁극적으로 자기가 이 글을 통해 전달하고 싶어 하는 메시지가 무엇인지 대략 1~2문장 정도로 간결하게 표현한 것이다. 물론 한 글 안에 하나의 메시지만 담는 경우는 별로 없고, 주제는 복합적일 때가 많다. 예컨대 아래의 짧은 글만 보아도 글 안에서 전달하고 싶어 하는 것은 단 하나의 메시지가 아니란 것을 알 수 있다.

「학교만이 아니라 가정에서도 체벌금지 해야 한다」
/ C모님 / 체벌금지 관련 한겨레 신문 기고문 최종안

요 즘 들어 체벌금지에 대해서 얘기가 많이 나온다. 교육감이 새로 뽑힌 탓인지 서울, 경기, 강원도에서는 이미 체벌금지를 추진하고 있다. 학교에서의 체벌이 사회적 논란을 불러일으킨 것은 어제 오늘 일이 아니었다. 확실히 학교를 다니는 학생의 입장에서 느끼기에 학교에서의 체벌은 문제가 심각하다. 나 같은 경우도 교사들의 체벌이 학교 가기 싫은 이유 중 0순위로 생각하고 있다. 누가 그걸 사랑의 매라고 생각하겠나.
체 벌은 폭력이다. 내 주위 어른들이 학창시절 교사에게 맞은 것들을 생생하게 재현까지 하면서 말하는걸 보면 그런 폭력의 경험이 기억에 오래남긴 남나보다. 최근 서울에서 일어난 ‘오장풍’ 사건을 두고 “아직도 저런 체벌이 있나?”라고들 말하지만, 이런 폭력들이 학교에서는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다. 정말 ‘경찰은 뭐 하고 있는 거지?’ 라는 생각이 드는 경우들이 있을 정도다. 그건 어느 몇 명의 교사들의 일탈 행동이 아니라, ‘청소년/학생들은 때릴 수 있다’라는 생각 자체에서부터 비롯된 문제다. 오장풍처럼 손으로 학생들을 퍽퍽 날려보내지 않더라도, 단 한 대를 때리고 기합을 주는 것에서부터 이미 문제가 있다.
교 육감들이 체벌금지 정책을 내놓으면서 사회에서 학교의 체벌만을 문제 삼고 있는 요즈음에도, 가정에서의 체벌은 잘 문제가 되지 않는 것 같다. 학교에서의 체벌도 꼭 없어져야하는 문제이지만 그보다 더 빈번하게 자주 일어나는 가정에서의 체벌도 없어져야 한다. 학교에서의 체벌이 나쁘다는 논리가 가정에 체벌만 비켜갈 순 없다.
공 익광고에서는 가정이 우리의 안식처인 양 이야기하지만, 어떤 학생들에게는 학교보다 더 무서운 곳일 수도 있다. 학교에 들어가기 전부터 폭력을 몸으로 깨닫고, 학교에서 맞고 오면 가정에서도 또 맞고, 교사에게 맞고 오면 잘 가르쳐 줘서 감사하다고 오히려 체벌을 부추기는 것도 가정이다. 학교나 가정이나 체벌이 있는 이상 학생들에게 상처를 주고 폭력을 학습시키는 곳일 수밖에 없다. 그리고 가정에서의 폭력은 해결하기도 쉽지 않다. 그나마 아동학대 수준까지 가야 폭력으로 인정할까? 가정에서든 학교에서든 체벌을 ‘사랑’이니 ‘교육’이니 하는 게 우리나라인데, 특히 가정에서의 체벌은 학교의 체벌보다 ‘사랑’이라 포장하는 것이 더 심각하다.
학 교에서의 체벌금지는 꼭 필요한 것이다. 하지만 왜 가정에서의 체벌금지는 이야기조차 되지 않는 것인가. 가정이든 학교든 학원이든, 청소년들을 인간으로 본다면 체벌은 사라져야 한다. 사회 전반적으로 체벌에 대한 인식이 바뀌지 않고 일단 사건 하나 터졌으니 막고 보자는 식으로는 정말 청소년들이 행복한 사회를 만들 수 없다.



  이 글에서 주제가 뭔지, 전하고 싶은 부수적인 메시지들은 무엇인지 정리해보자. 연습문제다. 킁. 어쨌건 주제를 생각하며 글을 쓰라는 건, 결국에 이 글로 내가 말하고 싶어 하는 바가 대체 무엇이었는지를 명확하게 정리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두 번째로 여러분에게 권하고 싶은 것은 ‘개요’를 짜라는 것이다. 개요는 쉽게 말해 내가 이 글을 어떻게 써내겠다는 계획표 같은 것이다. 논술 학원에서 가르치듯이 “서론 - 본론1 - 본론2 - 결론” 이런 식으로 개요를 짤 필요는 없다. 그런 개요는 논설문에는 적절할 수 있으나 가끔 그런 형식을 벗어난 논설문도 있고, 논설문 외의 글들도 그런 형태를 따를 필요는 없다. 어떤 글은 결론 내용이 제일 앞에 나오기도 하고 어떤 글은 그런 방식의 개요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 하지만 여러분이 어떤 글을 쓰든, “나는 이런 이야기를 여기서 하고 이런 이야기를 이런 순서로 해서 이렇게 써야겠다.”라는 대략적인 계획은 필요한 것이다.
  글쓰기에 숙련되면 그런 개요를 머릿속에 넣어둔 채로 글을 써내려갈 수도 있지만 아직 미숙할 때는 직접 눈으로 확인 가능한 형태로 메모해두는 게 좋다. 개요를 짜지 않고 일정 분량 이상의 글을 쓰다보면 “어라 내가 뭘 이야기하려고 했더라?” 하며 당황하게 되는 상황을 겪게 될 것이다. 개요가 있다면 그럴 때 개요를 확인해보면 되지만 개요가 없다면 혼란스러운 글이 되고 만다. 물론 글을 쓰던 중에 삘 받아서 짜뒀던 개요를 무시하고 글을 써내려갈 수도 있다. 개요는 자기가 이 글을 어떻게 쓸지 계획을 세워놓는 것이지 절대적으로 지켜야 할 것은 아니다. 하지만 계획을 가진 채 써가다가 계획을 수정하는 것과, 애초에 계획도 없이 글을 쓰는 것은 많은 차이가 있다.

② 글을 읽는 사람
  불행한 이야기이지만, 미숙한 글쓴이들은 대부분 글을 읽는 사람들의 존재를 잊어버린다. 그럴 만도 하다. 지금 당장 눈앞의 하얀 모니터 화면과 깜빡거리는 커서 혹은 하얀 원고지와 씨름하기도 벅찬데 그 너머에 눈에 안 보이는 독자들을 상상하는 건 의외로 만만치 않은 일인 것이다. “글을 어떻게 쓰지?”라는 고민이 궁극적으로는 “이 글은 이 글을 읽을 사람들에게 어떻게 읽힐 것인가”라는 문제임에도 불구하고, “글을 어떻게 쓰지?”라는 고민이 독자의 존재를 가려버리기 십상이다.
  사실 여러분에게 글쓰기의 일반론으로서 가장 강조하고 싶은 것은 항상 “독자를 생각한 글쓰기”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물론 여러분이 매우 위대한 예술가이며 작가여서 예술적이며 상식 파괴적인 글을 쓰고 싶다면 그렇게 해도 상관은 없다. 이상처럼 “13인의MB가도로를질주하오”라고 써도 된다. (그게 인정받거나 팔릴지는 별개로) 하지만 일단 우리는 실용 글쓰기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다. 실용 글쓰기에서 이상의 시처럼 쓰면 어떻게 될까? 상상만 해도 끔찍하다. 실용 글쓰기의 경우에는, 독자를 생각하지 않으면 십중팔구 망한다.
  그럼 독자를 생각하는 글쓰기는 어떤 것인가? 여러 가지 상황들이 있을 수 있기 때문에 딱 잘라서 말하기는 어렵지만, 대체로 다음과 같은 질문들을 글을 쓰면서 스스로에게 던져보는 것이 필요하다고 할 수 있다. ▲ 이 글의 예상독자/가능독자는 어떤 사람들인가? ▲ 독자들은 어떤 정보를 알고 있나? ▲ 나는 독자들에게 어떤 반응을 불러일으키고 싶은가? 등등.


「‘불건전한 이성교제’를 벗어나 벅차게 사랑할련다.」
/ R모님 / 학생 연애 탄압 관련 언론 기고문 초안

나는 동성애자다. 동성애자지만, 뭐 다를 거 없는 삶을 사는 그런 사람이다. 동성애 혐오를 이야기 하는 사람들은 가끔 나를 걸고 넘어진다. 아니 뭐, 그냥 청소년집단을 걸고 넘어진다. 라는 말이 더 정확하겠다.
드 라마 인생은 아름다워를 통해 경수-태섭 커플을 보고 부러워서 흑흑 했었는데, 이 드라마를 보고 불편하신 분이 있었나보다. 뭐 영화 ‘친구사이?’의 마지막 키스신에서 한 외국인이 ‘하나님의 보편적 세상시청권’을 침해하지 말라고 (‘위에서 하나님이 보고계신데 안 두렵냐’라는 말이었지만, 뭐 나한테는 그렇게 받아들여졌다.) 했었는데 뭐 불편하지 않은 사람이 왜 없을까. 하면서 이야기를 봤는데 세상에 가관이다.
‘인생은 아름다워보고 게이 된 내 아들 AIDS로 죽으면 책임져라.’ 아, 어디부터 시작해야할지 모르는 이 대책없는 구호를 보면 분노의 눈물을 흘리게 된다.
학교는 청소년을 자신의 성적 지향이나 성별정체성조차 결정할 수 없는 존재로 무성적인 존재로 만들고 말았다. 친구가 동성애자임을 알면 써서 내게 하라는 이반검열이 그렇고, ‘불건전한 이성교제’ 처벌이 바로 그렇다.
그래서 나는 청소년이기 때문에 받는 억압과 동성애자이기 때문에 받는 차별이 어우러져 상상도 할 수 없는 억압에 시달린다.
수많은 학교의 징계규정에 불건전한 이성교제를 징계하는 규정이 있다.
불 건전한 이성교제, 불건전한 이성교제, 불건전한 이성교제. 그 두 어절 뭣도 아닌 단어 때문에 나는 나의 정체성도 부정당하고 (‘이성교제’라는 단어가 바로 그런 거지.), 나의 사랑조차 부정당하고, 나 자신조차 부정당한다. (그래 그게 아니라면 난 게이니까 그래, 학교에서 애인 만들어서 뽀뽀하고 키스해도 상관없는 거지?)
이제 좀 집어치우자 그 단어. 그 이성애중심주의적이고, 연애탄압적이고, 순결이데올로기에 빠져있는 그 단어.
이제는 좀 게이여도, 좀 문란해도 봐줘라. 내 몸에 대한 결정권은 내가 가지고 있으니까. 내 사랑에 대한 결정권은 내가 가진다.
걱정하지마라, 아 걱정된다면 콘돔사용법이나 제대로 알려주고, 제대로 된 성교육이나 해라. 음순 음경 운운하는 그 따위 성교육이 성매매, 성폭력, 성차별을 부르는거니까.
이제 좀 다시 보길 바란다. 100일, 500일, 1000일되서 축복해주지 못할망정 연애도 못하게 하고 공부하는 기계로 만드는게 뭐하는 짓인가.
이제 내가 연애를 해도, 그게 설상 남자여도 걔랑 성관계를 가져도 상관없는 ‘미성숙한 이성교제’라는 단어에서 벗어나길 바란다.
아니 나 뿐만 아니라 연애를 하고 있는 수많은 헤테로 커플들과 게이, 레즈비언 커플도


  이 글은 독자들을 고려하지 않은 글의 대표적인 사례이다. 글을 쓰게 된 배경이나 여러 용어들이 아무런 설명 없이 마구 던져지고 있기 때문에 독자들 중 다수가 이 글을 읽으면서 고개를 갸웃거리게 된다. 또한 설득하거나 설명하는 내용은 거의 없으면서 자기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늘어놓고 있기 때문에 이 주장의 논지에 동의하지 않거나 긴가민가하고 있던 독자들도 설득되지 않을 가능성이 더 크다.
  이처럼 독자들이 잘 알지 못하는 어휘나 정보를 섞어가며 불친절하게 글을 쓰는 경우는 비교적 그 잘못이 명백한 편이다. 거기에서 좀 더 나아가서 우리는 ‘독자에게 적합한 글쓰기’를 해야 한다. 예를 들어, 두발자유에 관한 이야기를 할 때 학생들이 주로 읽는 매체에 실리는 글과 정부 관계자가 읽을 글, 어른들이 읽을 글은 서로 다른 어조로 서로 다른 내용을 말해야 할 것이다. 학부모들이 주로 읽게 될 매체에 “두발자유를 위해 학생들이 투쟁에 나서야 합니다!”라는 글을 쓰는 것보다는 “학부모들이 두발자유를 두려워하는 것은 잘못된 편견입니다.”라고 쓰는 게 더 독자에게 적합한 글쓰기일 것이다. 또 다른 예로, 단체 내부 사람들끼리 읽을 기획서나 제안서를 쓸 때와, 외부의 사람들이 읽을 기획서나 사업 설명을 쓸 때는 다르게 써야 할 부분들이 있을 것이다.
  우리는 때로는 일부러 불친절하고 막 나가는 글을 쓰기도 한다. 아니면 지면 관계상 자세한 설명을 생략해야만 하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그런 몇몇 예외적인 경우들을 제외한다면, 대부분의 글들은 독자에게 친절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왜냐하면 독자를 고려하지 않은 불친절한 글은 사람들이 잘 읽지도 않을 뿐더러 읽더라도 무슨 말을 하고 싶어 하는 건지 잘 전달이 되지 않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③ 매체
  매체는 쉽게 말해 글이 어떤 형태로 어떻게 발표되고 전달되는 글인지를 생각해야 한다는 말이다. 예컨대, 가장 대표적으로 매체에서 고려해야 하는 것은 분량이다. 나에게 허락되어 있는 혹은 요구되는 글의 분량은 얼마인가? 분량은 글의 주제와 메시지, 전개 방식 등등을 결정하는 데 큰 영향을 미치는 요소이다.
  또한 그밖에도 이 글이 인터넷 언론에 실리는 글인지, 신문지면에 실리는 글인지, 책에 들어가는 글인지, 토론회 자료집에 실리는 글인지, 말로 옮겨야 하는 강연이나 연설문인지, 이메일로 보내는 글인지, 첨부할 사진은 칼라인지 흑백인지 등등 여러 가지 매체의 형식들을 고려하는 글쓰기를 해야만 한다.
  매체를 고려하는 글쓰기 또한 여러 가지 의미를 담고 있다. 예컨대 시의성 있는 사건에 대해 신문 칼럼 형식으로 쓴 글은 “최근의” 등의 표현을 사용하거나 시의성 있는 사건에 대한 소개로 글의 도입부를 들어가는 것이 자연스러울 수 있다. 하지만 몇년 몇십년 동안 간행되고 팔릴 목적으로 만들어내는 책에 실릴 글에 그런 표현이나 도입부를 사용하는 것은 적합하지 않다. 분량과 발표형식, 전달시기 등이 매체에서 고려해야 할 부분들이다. 이런 여러 매체를 고려한 글쓰기는 구체적으로는 기고문(칼럼 등), 성명서, 토론회 발제문/토론문 등등을 설명하면서 함께 이야기하도록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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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공현
걸어가는꿈2011.03.30 08:04

학생인권조례제정운동서울본부 두번째 소식지
아직도 먼 학생인권 (경향신문특집기사)
운동본부에서 알려드립니다 초간단 우편용 서명지가 나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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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공현
걸어가는꿈2011.03.13 22:22


본 적도 들은 적도 없는 제대로 된 교육, 행방불명된 학생인권을 함께 찾으러 가요!

3월 19일 토요일 오후 3시 청계광장 옆 서울파이낸스센터

주최 : 청소년인권행동 아수나로(www.asunaro.or.kr) / 후원 : 학생인권조례제정운동서울본부


시험을 위한 시험, 등수를 위한 시험, 없애버려!
- 중간기말부터 수능까지 시험을 폐지하라!

● 시험을 위해 존재하는 교육을 배우고 싶은 것을 배우는 교육으로!
● 줄 세우기가 목적인 시험 대신, 얼마나 성장했는지를 보는 ‘진단’과 ‘평가’를!


여러분들은 일 년에 시험을 몇 번 치시나요? 중간고사, 기말고사, 학업성취도평가(일제고사), 모의고사, 수능까지. 그 외에도 때에 따라 쪽지시험을 치기도 하고, 어떤 학교는 매주 주간고사나 월말고사를 치기도 합니다. 한국의 학생들은 적게는 일 년에 네다섯 번, 많게는 일 년에 스무 번도 넘게 칩니다. 대체로 한 달에 두세 번은 시험을 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시험날짜만 기다리다보면 금세 졸업을 하는 게 학교의 모습인 것입니다.

이렇게 일 년에도 골백번씩 치다보면 마치 학교를 다니는 이유가 중간기말고사와 ‘학교RPG’의 최종 스테이지인 ‘수능’을 치기 위해서인 것 같다는 착각이 들기도 합니다. 선생님들도 수업시간에 “이건 시험에 나오니까 꼭 알아둬”라든지 “이 부분은 수능에서 거의 안 다루니까 알아서 읽어봐”라는 말씀을 하기도 하십니다. 시험에 나오니까 중요한 걸까요, 중요하니까 시험에 나오는 걸까요? 그 ‘중요하다는 것’은 뭘 하는 데 중요하다는 걸까요? 정말 헷갈리기 짝이 없습니다.

이처럼 지금의 교육은 마치 목적과 수단이 뒤바뀌어있는 듯한 느낌이 듭니다. 마치 라면을 끓이기 위해 냄비를 쓰는 게 아니라, 냄비를 쓰기 위해 라면을 끓이는 것처럼 말이지요. 만약 교육의 목적과 수단의 앞뒤가 제대로 맞는 얘기가 되려고 한다면, 배운 것을 얼마나 이해하고 있는지를 알아보기 위해 시험을 친다고 해야 할 것입니다. 물론 지금처럼 점수를 더 받으려고 공부가 재미없는 것이나 골치아픈 것이 되게 만드는 시험은 아니어야 합니다. 시험을 안 쳐도, 점수를 매기지 않아도 공부를 하는 것이 충분히 즐거울 수 있도록 동기부여가 돼야 합니다.

지금처럼 시험을 치기 위해서 교육을 한다면, 시험범위에 맞춰 진도에 쫓기게 되어 교사와 학생 모두가 피곤해지는 일이 반복될 것입니다. 또 시험에 잘 나오는 부분은 교과서가 닳아 없어질 때까지 밑줄을 치고, 읽으면서 그렇지 않은 부분은 어쩌면 학생들에게 필요할 수도 있는 것일 텐데도 대충 훑어보고 지나치거나 거들떠보지도 않는 상황이 계속될 것입니다.

이러한 일들이 일어나지 않게 하려면, 또 학생들이 진정으로 배우고 싶은 것을 배우고, 즐겁게 공부할 수 있게 하려면 지금과 같이 단순히 성적을 내서 등수를 매기기 위한 모든 시험을 없애야 합니다. 그리고 일정부분만큼 배웠을 때에 그 부분을 얼마나 이해하고 있는지 알아볼 수 있는 평가가 이루어져야 합니다. 평가를 하고 난 다음에는 그 결과를 바탕으로 부족한 부분을 다시 한 번 복습하고 확인하는 과정을 거쳐야겠지요. 이렇게만 된다면 지금처럼 성적 때문에 고민해야 하는 일이 사라지거나 훨씬 줄어들 것입니다. 또 학생들이 시험 때문에 스스로 목숨을 끊는, 매우 슬픈 일이 더 이상 일어나지도 않을 것입니다.

물론 시험 하나 없앤다고 해서 모두가 잘못됐다고 느끼고, 말하는 지금의 교육이 가진 문제들이 모두 해결되는 것은 아닙니다. 등수를 매기기 위한 시험을 없애는 것뿐만 아니라 궁극적으로 학생들이 서로 경쟁해야만 하고, 할 수밖에 없게 만드는 요소들을 바꿔나가야 합니다. 예를 들어 모든 초·중·고등학교와 대학교를 평준화한다든지, 굳이 대학에 가지 않고도 차별받지 않는 사회적 분위기와, 충분히 살아갈 수 있는 제도들이 마련돼야 하겠지요. 이 부분들은 <실종신고>의 다른 요구를 소개한 글에서 더 자세히 설명할 것입니다. 시험을 위해 존재하지 않고 학생들이 진정으로 배우고 싶은 것을 배우는 교육, 우리 손으로 만들어보아요!



입시경쟁.학벌 없는 사회, 대학 안 가도 되는 세상!

- 대학 안 가도 먹고 살 수 있게 하라!


● 명문고, 명문대 가는 건 모두의 목표일 순 없다! 학교 줄세우기 NO! 획일적 입시경쟁 NO!

● 내가 나온 학교가 내 가치를 결정하진 않는다! 학벌 학력 차별 금지!

● 대학 안 나와도 모두가 하고픈 일을 하며 사람답게 살 수 있도록 하라!



"먼저 대학이나 가라." "대학 안 나오면 알바, 비정규직밖에 못한다." "명문대 가야 사람 대접 받는다." ……

이런 이야기를 한 번도 안 들어본 고등학생들은 많지 않을 겁니다. 지금 한국의 초․중․고등학교 교육과정은 대학 입시를 위해 이루어진다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대학을 향한 경쟁은 계속 심해지고 있습니다. 이제는 좋은 대학에 가기 위해서는 좋은 고등학교, 좋은 중학교에 가야 합니다. 학창시절 12년 동안 강요받는 인생의 목표는 ‘좋은 대학에 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미 그 경쟁에서 밀려났다고 생각되는 학생들은 '학교에서 버린', '학교에서 내놓은' 취급을 받곤 합니다. 그 치열한 경쟁 속에 살고 있는 상위권, 중상위권 학생들도 스트레스가 장난이 아닙니다. 얼마 전에도 목포에서 한 고등학생 분이 분신 자살을 시도했는데 그 이유 역시 성적 등 스트레스로 추정되고 있습니다.

어떤 대학에 갔는지가 그렇게 중요한 이유는 이 사회에서 학벌이 굉장히 중요한 요소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좋은 학벌은 수입이 높은 직업을 가지는데 유리하기 때문입니다. 대기업이나 사회 상류층에서 좋은 학벌은 이제 ‘기본’이 되어 그 이외에 쌓아야 할 스펙도 이루 말할 수 없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이제는 SKY대학을 졸업해도 정말 작은 부분까지 남보다 위로 올라서야만 그나마 풍족한 생활을 보장받을 수 있습니다. 물론 SKY대학을 안 나와도, 고졸이어도, 잘 먹고 살고 잘 사는 사람들도 있지만, 이런 사람들은 극소수일 뿐이고, 학생들은 이 불안한 세상에서 조금이라도 더 안정적인 삶을 보장받기 위해, 경쟁에서 승리할 확률을 높이기 위해, 살아남기 위해, 입시경쟁에 바둥거려야 합니다. 사회에서 사람들에게 존중받는 사람은 남을 생각하는 사람, 사람을 끄는 매력이 있는 사람,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열정적으로 하는 사람이 아니라 좋은 학벌을 가지고 좋은 직업을 가진 사람입니다.

그 때문에 학생들은 자신이 진짜 하고 싶은 것이 아니라 남 보기 좋은 것, 부모가 시키는 것을 향해 달려가야만 합니다. 학교는 학생들에게 좋은 대학에 가지 않으면 큰 일이 나고 인생을 망칠 것처럼 가르칩니다. 학생들은 자신의 12년을 단 한 가지의 기준으로 단 하루 만에 수능이라는 방법으로 평가당합니다. 그래서 학생들은 학창시절 내내 미래에 대한 불안을 끌어안고 , 남보다 위에 설 궁리를 하며 살아가야 합니다. 이런 교육은 학생들을 불행하게 합니다. 지식을 습득하는 것이 자발적이고 흥미 있는 것이 아닌, 불안에 밀려 꾸역꾸역 해야 하는 강제 노역으로 바뀝니다.

학벌로 사람을 평가하지 않는 사회를 만들어야 합니다. 좋은 학벌이 없는 사람을 얕잡아보고 무시하는 사회의 풍조를 바꾸려면 대학을 획일적으로 줄세워서는 안 됩니다. 자신의 꿈은 ‘좋은 대학에 입학한 이후에 생각할 것’이 아닙니다.  대학에 진학하는 것은 인생의 한 선택지일 뿐 절대적인 것일 수는 없습니다. 지식을 습득하는 것이 적성에 맞는 학생들은 누구나 대학에 진학하고, 대학은 서열 없이 평준화해서 어느 대학이라도 좋은 교육환경을 제공해야 합니다. 대학에 가지 않고도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할 수 있도록 존중받고 원하는 교육을 제공받을 수 있어야 합니다. 또 모든 사람들이 학벌과 상관없이 노력하기만 하면 생활하기에 알맞은 수입을 보장받을 수 있어야 합니다.

사실 한국처럼 대학진학율이 높은 사회, '대학 나오는 게 당연한' 나라는 별로 없습니다. 모든 중고등학생들의 목표가 좋은 대학 가는 것인 것처럼 교육하는 나라도 별로 없습니다. -_- 선진국이라고 하는 대부분의 나라들은 대학을 안 나온 사람들도 충분히 사람답게 잘 살 수 있습니다. 그나마 한국과 비슷하다는 미국이나 일본도, 대학에 진학할 뜻이 있는 학생들 외에 다수 학생들은 입시경쟁에 목매달지 않는 게 보통입니다. 우리는 바랍니다. 대학을 안 나와도 된다고, 자기가 원하는 삶의 방식에 따라서는 얼마든지 학벌과 학력을 갖추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할 수 있는 사회를. 학생들이 먼저 오로지 좋은 학벌만을 향해 달리기를 강요하는 지금의 교육제도를 거부하고 자신이 원하는 교육을 말하는 것이 그 시작이 될 수 있습니다.




학생들한테 돈 좀 내놔!!

- 교육예산 확보하여 누구나 쾌적한 학교를!


● 화장실에 온수는 좀 나오게! 학교 시설 개선, 좀 더 쾌적한 학교를!

● 학급당 학생 수 줄이고 교직원을 더 뽑아서 좀 더 나은 교육을!

● 고등학교까지 무상교육 실현, 나아가 미친 대학 등록금도 무상으로 ㄱㄱ!


학교 다니면서 "우리 학교 시설 너무 좋다~"라고 생각해보신 적 있나요? 물론 진짜로 시설도 좋고 번쩍번쩍한 학교도 있지만 그런 학교는 그렇게 많지가 않습니다. 냉난방도 제대로 안 해주는 학교, 따뜻한 물도 제대로 안 나오는 학교, 탈의실이나 동아리실도 없는 학교, 운동장도 작거나 없는 학교, 급식이 형편없는 학교, 화장실이 낡거나 부족한 학교가 태반입니다. 심지어 밖에서 보이는 운동장이랑 외관은 엄청 좋아 보이게 꾸며놨는데 난방도 제대로 안 되는 학교도 있습니다.

시설뿐만이 아닙니다. 별로 넓지도 않은 한 반에 30~40명의 학생들이 같이 생활해야 하고, 교사들의 수도 학생들과 진지하게 교류하고 제대로 된 교육을 하기에는 부족합니다. 그런 이런 시설, 이런 교육환경의 학교에 다니는 데 교재비, 교복비, 급식비 해서 얼마나 돈이 많이 드나요? 고등학교는 또 등록금을 1년에 4번, ·40만원, 50만원씩 내야 합니다. 헐 -_-

왜 그런지 이유는 뻔합니다. 한국 정부가 교육에 쓰는 돈이 너무 적기 때문입니다. 이명박 정부는 교육예산을 GDP(국내총생산. 그러니까 한국 안에서 1년 동안 총 얼마만큼의 돈을 벌어들이느냐 하는 겁니다. 한국의 경제규모를 알려주는 수치입니다.)의 6% 수준까지 올리겠다고 약속했었습니다. 하지만 교육예산은 2009년에 GDP의 5.0% → 2011년 4.55%로, 늘어나기는커녕 점점 줄어들고 있습니다. 학교에서는 교사 수가 부족하고 시설도 안 좋은데, 정부에서는 돈 아낀다고 교사 채용도 거의 안 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핀란드, 프랑스, 영국, 덴마크 등의 선진국들은 이미 학교 시설 등이 대체로 갖춰져 있어서 시설 마련에 돈을 크게 쓸 일이 없는데도 GDP 대비 5.5% 정도의 교육예산을 매년 쓰고 있습니다. 학교도 교실도 더 늘려야 하는 한국은 당연히 그보다 돈을 더 써야겠죠?)


어른들은 맨날 우리에게 너희는 미래의 새싹이고 잘 자라야 한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지금 현재 우리들에게 들이는 노력을 보면 그런 건 다 거짓말이거나, 우리들을 공부시키려는 낚시 같습니다. 우리를 진짜로 생각해주고 있다면 당연히 교육에 돈을 좀 더 들여야 하지 않나요? 4대강 삽질할 돈, 좀만 빼서 학교 화장실에 따뜻한 물 좀 나오게 하고 급식 질 좋게 하는 게 먼저 아닌가요? 부동산 투기하는 어른들한테 세금을 좀 더 걷어서라도 고등학교 등록금을 초등학교, 중학교처럼 공짜로 하고, 미친 듯이 높은 대학 등록금도 낮춰서 공짜로 해야 하지 않을까요? 교육 선진국으로 유명한 핀란드는 한 반 20명쯤 학생들과 2명의 교사가 수업을 운영하곤 한다고 합니다. 그정도까진 아니더라도 한 반 20명에 교사 1명, 아니면 한 반 30명에 교사 2명 정도는 되어야 좀 나은 교육이 가능하지 않을까요?


돈이 없다는 건 핑계입니다. 한국의 경제력은 이미 세계 10위를 오르락내리락 하고 있고, 이명박 대통령의 개드립에 따르면 한국은 G20을 개최한 선진국입니다. 학생들은 누구나 좀 더 쾌적한 학교에서 교육에 참여할 권리가 있습니다. 우리는 요구합니다. 학생들이 더 편하고 쾌적하게 생활할 수 있는 학교, 학생들이 더 나은 교육활동을 할 수 있는 교실 환경, 모든 학생들을 위한 무상교육을. 단순히 경제규모가 얼마다 하는 게 아니라 학생들을 위한 교육, 좋은 교육환경이라는 면에서 만족하고 자랑할 만한 사회를 만들어야죠?






내가 다니는 학교운영, 내가 결정한다!


- 학생에겐 권력을, 학교에는 민주주의를!

● 표현의 자유 등 민주적 권리 보장은 기본 중의 기본! 

● 생활규정부터 수학여행 일정까지, 학교운영에 학생참여권 보장하라!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라는데, 왜 대한민국의 학교에는 민주주의가 눈씻고 찾아봐도 없는 걸까요? 작년 경기도 성남의 한 고등학교에서는 학생회장 후보 한 명이 학생인권조례를 지지하는 연설문을 썼다고 학교가 그 내용을 삭제하라고 압력을 주었지요. 서울의 한 중학교에서는 학생회가 학교의 체벌실태를 고발한 신문을 발행하려 하는 것을 교장이 막았습니다. 성적이 낮으면 학생회장, 학급회장(반장)에 출마하지 못하도록 하는 학교도 많습니다.

이래놓고도 학교는 뻔뻔하게도 민주시민을 양성한다고 자처합니다. 이렇게 반민주적인 학교에서 어떻게 그게 가능하다는 걸까요? 학교 내에서의 민주주의가 보장되어야 합니다. 학교의 마음에 들지 않는 비판이나 주장을 했다고 압력을 주거나, 징계를 하는 건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는 반민주적인 행위입니다. 어떤 이유에서든 선거 출마에 자격 제한이 있어서는 안 됩니다. 학교 안에서의 표현의 자유, 언론의 자유가 보장되어야 합니다.


게다가 학생회는 할 수 없는 것만 왜 이리 가득한 걸까요? 화장실에 휴지 놓는 것조차 교사들의 눈치를 봐야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혹은 학생회가 노골적으로 학생들의 권익에 반하여 행동하는 경우도 있지요.


학생회 뿐만 아니라 모든 학생들은 학교운영에 실질적으로 참여할 수 있어야 합니다. 생활규정은 이렇게 바뀌어야 한다, 이 수업은 이런 식으로 하는게 좋다, 등교시간이 너무 이른 것 아니냐, 수학여행은 어느 장소로 언제 가는게 좋을 것 같다, 등등 학생들은 자신이 다니는 학교의 운영에 참여하여 의견을 내고, 결정을 할 권리가 있습니다. 학교의 예산 등을 심의하는 학교운영위원회에 학생들은 학부모, 교사 등과 함께 동등한 권한을 갖고 참여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제는 학교에서도 민주주의를 실현해야 합니다. 물론 그것은 쉽지 않은 과정일 것입니다. 그러나 대한민국이 처음부터 민주주의가 보장되는 곳은 아니었죠. 수많은 사람들이 나서서 요구하고 외쳤기에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 될 수 있었습니다. 학교도 마찬가지입니다. 학생들이 나서서 권력을 쟁취하고 학교민주주의를 요구할 때입니다.



학생도 인간이다! 두발자유 등 인권 보장!

- 규제와 폭력 대신 존중과 소통을


● 두발복장자유화, 강제자율․보충학습, 소지품 압수 중단!
● 성적․외모․돈․장애․성 등에 의한 차별 중단! 모두에게 평등한 교육을!
● 학생을 통제하고 억압하는 체벌금지, 언어폭력 금지, 벌점제 폐지! 학생을 무시하고 통제하고 패는 교육이 아니라 존중하고 소통하고 대화하는 교육을!
● 교육과학기술부의 학생인권 침해 합법화 방안, 갖다 버려!
● 학생인권조례, 학생인권법 등 학생인권 보장을 위한 제도 마련!

학생도 사람이라고 하면 누구나 고개를 끄덕입니다. 하지만 그러니까 학생도 사람으로서의 권리, 인권을 보장받아야 한다고 하면 고개를 갸웃거리는 사람들이 생깁니다. 지금도 많은 학교들에서는 학생들을 하나의 인간으로 존중하지 않는 두발규제, 복장규제, 언어폭력 등 많은 폭력과 반인권적인 통제들이 공공연하게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물론 그 동안 많은 학생들이 목소리를 높여온 끝에, 그리고 경기도에서 학생인권조례가 제정되고 서울에서는 체벌금지가 발표되면서, 학생인권 상황이 다소 개선된 학교들도 많습니다. 그러나 실제로는 여전히 대다수 중고등학교에 두발복장규제가 강하게 남아 있습니다. 또한 강제적으로 자율학습, 보충수업을 시키고 아침 7시, 7시 반까지 등교하게 하는 학교들도 많습니다. 수업시간 중 사용만 약속을 만들고 조심하게 하면 될 것을 휴대전화, 음악기기, 전자기기, 책 등을 아예 금지하거나 압수해버리는 모습도 여전합니다. 쇠파이프로 죽도로 목도로 학생들을 두들겨 패고 ‘오리걸음’ 같은 체벌을 하는 학교들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학생들을 성적으로 차별하고, 벌점을 통해 생활 하나하나까지 점수로 규제하며 학교에서 내쫓는 모습은 더 쉽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교육과학기술부는 ‘학교자율화’라며 학생인권 문제를 학교에서 마음대로 하라고 하더니, 이젠 체벌을 허용한다고 하고 학교장이 학생의 인권을 마음대로 제한할 수 있다는 법을 만들려고 하면서 학생인권 침해를 부추기고 있습니다. 학생들의 인권은 학교가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사안이 아닙니다. 모든 학교가 지켜야 하는 최소한의 기본선입니다. 지방자치가 각 지역에서 살인, 강도, 폭행을 합법화할지 처벌할지 알아서 하게 하는 게 아니듯이, 인권은 학교장의 손에 그렇게 맡겨질 수 없는 것입니다. 때문에 학생인권을 보장하기 위한 학생인권조례, 학생인권법과 같은 모든 학교가 지키게 할 제도가 필요한 겁니다.

학교는 사육이 아닌 교육을 해야 합니다. 교육은 고통이 아닌 소통이어야 합니다.

두들겨 패거나 벌점을 매기는 교육이 아니라 소통하고 대화하는 교육. 숨통 트이는 교육. 잘못을 하면 두들겨패거나 쫓아내는 게 아니라 잘못을 알게 하고 민주적, 합리적인 처벌과 예방을 하는 학교. 학생들을 같은 머리 같은 옷 안에 가둬두고 획일적인 성적으로 차별하는 교육이 아니라 학생들이 자신의 개성을 표현하고 다양성과 자유를 누릴 수 있는 교육. 막말과 욕설이 아니라 서로 간의 존댓말과 친밀함, 예의가 있는 교실.

불가능하다구요? 꿈 같은 소리라구요? 최소한 학생도 인간이고 인격체라는 걸 인정하고, 두발자유 등 기본적인 인권부터 보장해나가기 시작하면 못할 것도 없습니다. 학생도 인간이라는 그 당연한 진실을, 현실로 만듭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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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공현
걸어가는꿈2011.03.05 00:06



실종신고

제대로 된 교육과 학생인권을 찾습니다.

<우리는 이런 것을 찾습니다>

중간기말부터 수능까지 시험을 폐지하라!
1년에 몇 번씩 학생들을 전전긍긍하게 하는 시험, 그리고 오직 시험을 위한 교육.
이명박 정부 이후 시험지옥은 나아지기는커녕 대놓고 더 심해지고 있습니다.
시험을 위한 교육, 경쟁을 부추기고 등수에 목매게 하는 시험이 아니라
자신이 과거보다 얼마나 성장했는지를 보는 평가와 진단이 필요합니다.
 
대학 안 가도 먹고 살 수 있게 하라!
획일적 경쟁을 부추기는 줄세우기 없이 모든 학교는 평등해야 합니다.
대학 나와야 사람 대접 받고 그나마 먹고 살 수 있는 사회는 잘못된 것이지 않을까요?
학생들이 미래에 대한 불안에 떨지 않도록 학력·학벌로 인간을 평가하고 차별하지 않고
누구나 사람답게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사회를 만들어야 합니다.

교육예산 확보하여 누구나 쾌적한 학교를!
한국의 교육예산은 너무 짭니다. 학생들은 누구나 쾌적한 학교에서 공부할 권리가 있습니다.
또 돈 문제로 배움을 포기하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됩니다.
교육예산을 늘려서 쾌적한 학교를 만들고, 초중고대학까지 무상으로 교육해야 합니다.
 
학생에겐 권력을, 학교에는 민주주의를!
민주시민을 양성하는 학교의 운영은 그 어떤 곳보다 민주적이어야 합니다.
형식적인 의견수렴이나 공청회 정도로는 학생들의 의견을 반영할 수 없습니다.
학교 운영과 교육정책에 대해 학생들에게 실질적인 참여권과 결정권이 있어야 합니다.
 
규제와 폭력 대신 자유와 소통을!
학생은 존엄한 인간이기에, 하교는 때리거나 억압하는 것이 아니라 소통을 통해 교육해야 합니다.
학생들의 인권을 침해하는 체벌, 두발복장규제, 강제야자 등
그 외에도 셀 수 없이 많은 불합리하고 반인권적인 억압들은 모두 사라져야 합니다.
학생들을 먼저 인간으로 생각해야 제대로 된 교육이 가능합니다.

본 적도 들은 적도 없는 제대로 된 교육, 행방불명된 학생인권을 함께 찾으러 가요!

3월 19일 토요일 오후 3시 청계광장 옆 서울파이낸스센터

주최 : 청소년인권행동 아수나로(www.asunaro.or.kr) / 후원 : 학생인권조례제정운동서울본부



다른 곳에도 많이 퍼날라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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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공현
걸어가는꿈2010.09.28 21:02


청소년인권과 청소년인권운동을 소개해달라고 해서 쓴-

아니 정확히는 옛날에 쓴 글 두개를 편집해서 합친 다음에 마무리 부분만 새로 추가한 글;;



Let me Introduce 청소년인권운동


‘미성년자’라는 굴레


청소년들에게는, 법적으로 붙어 있는 다른 이름이 있습니다. 바로 “미성년자”라는 이름입니다. 민법에서는 만 20세 미만, 청소년보호법에서는 만19세(사실상 연20세) 미만, 공직선거법에서는 만 19세 미만 등등으로 그 기준을 정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청소년들은 “미성년자”라는 말을 듣고 기분이 나쁘지 않을까요? 미성년자라는 말은 ‘아직 성년이 아닌 사람’, ‘아직 완성된 나이가 아닌 사람’, ‘미성숙한 나이의 사람’이라는 뜻이잖아요. 이건 마치 장애인을 “비정상인”이라거나 “부족한 사람”이라고 이름 붙이는 것 같은, 괴악한 센스라고 할 수 있습니다. 차별적인 말이란 거죠.

어떤 사람들을 “미성년자”로 이름 붙이고 “미성년자”로 대한다는 건 어떤 것일까요? “미성년자”라고 불릴 때 그 사람들은 미성숙하고 불완전한 사람들이 되고 맙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은 자기 삶에 대해서 자기 스스로 결정할 수 없고, 다른 성숙하고 완전한 사람들의 강요를 당해야 합니다. 학교에 다니며 교육받아야 하고 가르침을 받아야 합니다. 정치 참여 같은 문제에서는 전사회적 왕따를 당합니다. 그들은 학교의 교육과 가족의 보호․통제 속에서 살아야 합니다.

불완전하고 미성숙하니까, 성숙한 사람들이 그들을 때려서라도 잘못을 고치려 하는 게 이상한 일이 아닙니다. 반항은 있을 수 없죠. 왜냐하면 미성숙하고 불완전한 사람들이 어떻게 감히 성숙하고 완전한 사람들에게 이의를 제기할 수 있겠습니까? 성숙하고 완전한 사람들이 항상 더 옳을 텐데. 그러니까 학교를 운영하든 자기 삶의 진로를 결정하든 정책을 결정하든, 그들은 쏙 빼놓고 성숙하고 완전한 사람들끼리 알아서 하는 게 당연한 겁니다.

그들은 혹시 무슨 사고를 저지르거나 무슨 사고를 당할지 모르니까 밤에는 돌아다니면 안 됩니다. 보호자의 허락 없이 돌아다니거나 외박을 하거나 하면 안 되죠. 돈을 주거나 돈을 벌 수 있게 했다간 잘못 쓸 수도 있으니까 조금씩조금씩 용돈만 주거나 돈을 주지 말아야 합니다. 미성숙한 사람들이니까 일을 하더라도 그건 사회 경험을 하고 배우는 것이고, 돈을 조금만 주거나 좀 함부로 대해도 별로 문제가 되지 않습다.

미성숙한 그들을 사회는 ‘보호’해야 합니다. 그들이 원하건, 원하지 않건. 미성숙하고 불완전하니까 혹시 책이나 그림이나 영화 같은 걸 보거나 음악을 듣다가 잘못된 걸 따라하거나 이상한 행동을 할 수도 있으니까 그런 것도 다 미리미리 금지해둬야 합니다. 성행위? 섹스하다가 덜컥 임신이라도 하거나 하면 어떻게 책임을 지겠습니까? 당연히 다 금지해야죠! 그렇게 미성숙한 사람들에게 성욕이나 성적 자유? 택도 없는 소리입니다.

특히 한국에서 더 두드러지는 건데, 그들에게는 한 가지 더 무거운 짐이 지워집니다. 입시경쟁, 취업경쟁이라는 짐이죠. 미성숙하고 불완전한 미성년자들이 사회에 잘 적응하게 하기 위해서 그리고 그들을 국가에 도움이 되는 ‘인재’로 만들기 위해서, 경쟁은 옵션이 아닌 필수입니다. 한국처럼 먹고 살기 힘든 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당연한 일입니다.


이러한 청소년들의 현실이 바로 청소년인권 문제입니다. 그래서 청소년인권 문제로 가장 대표적으로 꼽히는 것들이 학교와 가정에서의 문제이고, 그에 더해서 노동, 정치, 문화 등의 분야들이 다루어집니다. 청소년인권을 이야기하는 것은 누군가에게 ‘미성년자’라는 딱지를 붙이고 차별과 폭력과 지배를 정당화하는 것에 대한 문제제기이고, ‘아이들을 보호해야 한다.’, ‘청소년들을 선도해야 한다.’라는 인식을 넘어서는 것입니다. 아동, 청소년들의 인권 담론도 세계적으로 보면 보통 이들을 보호해줘야 한다는 것에서, 아동 청소년들이 인격체로 존중받고 참여하고 스스로 주인이 되어야 한다는 방향으로 발전해왔다고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청소년인권을 이야기하는 것은 아동보호나 청소년보호 담론과 어느 정도 겹치는 부분도 있지만, 근본적으로는 그 사이에 긴장 관계가 있습니다. 이제 여기에서 한 발 더 나아가면, 청소년인권에 대한 이야기는 청소년들의 인권이 보장받지 못하는 것이 어른들의 편견이나 개인적인 문제가 아니라 사회적 문제이고 모순라며 사회 구조를 바꿔야 한다는 데까지 이르게 됩니다.



한국의 청소년인권운동


한국에서 청소년인권운동은 주로 학교와 교육에 관한 저항에서부터 시작되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딱 청소년인권운동이라고 하기는 어렵지만 청소년들이 사회에 저항했던 몇몇 대표적인 사건들을 살펴봐도 그러합니다. 1920년대 30년대의 학생들의 항일운동 속에 같이 끼어 나왔던 식민지 교육에 대한 문제제기나, 1980년대 중후반에 학생회장 직선제를 외치고 보충수업철폐를 외치고 학교민주화를 외쳤던 중고등학생들의 운동이나 대체로 그 문제의식은 학교와 교육제도를 향해 있습니다. 물론 그 당시의 시대적 상황들(일제강점기의 식민지 문제, 군사독재와 민주화 문제, 노동자와 철거민 등 계급문제 등)들이 밀접하게 결합해있기는 하지만요.

1990년대 후반 PC통신과 인터넷에 힘을 얻어 본격적으로 등장한 청소년인권운동 역시 처음에 가장 많이 얘기되었던 이슈는 강제자율학습과 강제보충수업, 체벌, 두발복장규제 등 학교에서의 인권침해들이었습니다. 또, 청소년인권운동을 한국 사회에 알린 큰 사건이었던 2000년 두발자유화운동인 ‘노컷운동’ 역시 학생인권 분야의 운동이었지요. 아직 청소년들이 ‘미성년자’로 이름 붙여지고 사회 전반에서 차별받고 인권을 무시당하는 것에 대한 인식이나 청소년인권에 대한 체계적 주장들은 부족했었고, 주장하는 내용도 좀 오락가락하는 부분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 당시(1990년대 후반 ~ 2000년대 초반)는 이와 함께 만18세 선거권이나 청소년들의 정치 참여에 대한 이야기, 청소년노동-아르바이트에 대한 이야기, 청소년보호법에 대한 불만 등도 막 시작되었던 시기였습니다. 이러한 이야기들이 쌓이고 쌓여서 ‘청소년인권운동’이라고 부를 수 있을 만한 움직임이 나타나게 되는 것이지요.

2000년대 초중반은 여러 가지 청소년인권 모임이나 단체들이 생겨났다가 사라지고, 여러 가지 청소년인권운동의 이슈들이 사회적으로 제기되던 시기입니다. 두발자유, 체벌금지, 0교시 반대, 학생회 법제화, NEIS 정보인권, 입시경쟁반대, 종교자유 등을 꼽아볼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 시기는 청소년인권운동이 많은 어려움에 부딪힌 시기이기도 합니다. 돈도 없고 마땅한 공간도 없는 현실, 시간이 지나면 나이를 먹어서 지속되기 어려운 운동의 태생적 조건, 운동을 위한 이론의 부재, 축적되지 않는 운동, 학교와 사회의 탄압 등등. 특히 다른 운동들과는 달리 운동의 당사자들이 시간이 지나면 나이를 먹고 학교를 졸업하고 어른이 되어버려서 운동을 계속할 수 없다는 것은 청소년인권운동의 계속되는 고민거리입니다. 한때는 자발적으로 생긴 청소년인권모임 중에 3년을 넘게 버티는 곳이 없다는 게 정설일 정도였으니까요.(단체의 주요 구성원들이 고1 혹은 중3 때 시작해서 고2, 고3 때까지 활동을 하고, 수험생활 때 본격 돌입하거나 졸업을 하게 되면 모임이 망하는;;)

2005년, 2006년은 그러한 청소년인권운동의 전환점이었습니다. 청소년인권운동을 해온 주체들이 과거 운동을 평가하고, 이런 현실을 극복하기 위해 뭐가 필요한지 토론이 이루어졌던 시기이고, 그 결과 청소년인권운동을 안정적으로 해나가는 단체와 연대체를 만들기 위한 시도들이 이루어졌기 때문입니다. 청소년인권운동이 조금 더 발전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던 셈입니다. 그 이후 2008년 촛불집회와 교육감 선거, 일제고사 등을 거치며 청소년들의 정치적 권리에 대한 운동이나 교육정책에 관한 운동 등은 더욱 활기를 띠고 있습니다. 여러 지역에서 민간에서 교육청에서 추진되고 있는 학생인권조례 역시 이러한 청소년인권운동의 성과라고 해야겠지요. 물론, 다른 한편으론 이명박 정부 이후로 여러 학생인권 현실과 교육 상황들이 후퇴하고 운동도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기도 합니다.


보편적이지만 부문적인, 부문적이지만 보편적인

청소년인권운동을 하다보면 가끔 이런 질문을 받게 됩니다. ‘청소년은 소수자인가?’라는 질문인데, 참 대답하기 곤란한 질문입니다. 왜냐면 청소년들은 그 권력관계나 인권 상황들을 보면 사회적 소수자이기는 하지만, 동시에 모든 사람들이 어쨌건 청소년이거나 과거에 청소년이었었으며 지금 청소년인 사람도 언젠가는 청소년이 아니게 된다는 점에서 청소년 문제는 보편적인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청소년인권운동은 부문적인 문제인 동시에 보편적인 문제가 됩니다.

예를 들어, 저 같은 청소년인권운동을 하는 사람들은 다른 운동을 하는 사람들이 청소년들을 단지 ‘미래의 기대주’로 보거나 ‘우리 운동이 더 오래 가기 위해선 청소년들을 조직해야 해.’라는 식으로 생각하는 걸 보면 불편한 마음이 듭니다. 청소년들을 지금 여기에서 같이 운동을 하고 인권과 사회 문제를 얘기하는 동등한 상대로 생각하지 않는 것 같기 때문입니다. 청소년인권운동을 하는 사람들은 자신들에게 쉽게 말을 놓고 하대를 하는 어른 활동가들과 종종 마찰을 일으킵니다. 일종의 소수자로서의 감수성인 셈이지요. 하지만 한편으로는 청소년들이 언젠가 청소년이 아니게 되고 또 다른 삶을 살게 될 것도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기 때문에 그런 시선을 마냥 나무랄 수만은 없어서, 가끔은 그냥저냥 고개를 끄덕이며 넘어가거나 그런 걸 이용해먹기도 합니다.

다만 분명히 말할 수 있는 것은, 청소년들의 인권 문제는 소수자 문제로서도 보편적 문제로서도 굉장히 중요한 의제라는 것입니다. 학교에서, 가정에서, 정치에서, 경제에서, 문화에서 청소년들이 인간으로 대우받고 인권을 보장받지 못한다면 우리 사회의 인권 수준은, 여러 가지 의미에서 그다지 나아지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청소년인권운동을 직접 하지 않는 분들이라도, 지금 자신이 청소년이 아닌 분들이라도, 청소년인권운동에 더 많은 관심을 가져주시기를 바라는 궁색한 이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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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공현
걸어가는꿈2010.09.23 15:31



아수나로의 이예반님이 아수나로는 대중조직이 아니냐고 물어보신 글에 대해 답한 글;
혹시 그럼 전에 제가 썼던 '문제는 조직화다'라는 논지의 글이랑 이 글이 서로 상반되지 않냐, 라고 말하실지도 모르겠는데
일단 '문제는 조직화다'는 포괄적, 원론적 차원에서 조직화의 필요성을 이야기한 글이었고
또 지금 쓴 이 글은 아수나로가 당장 조직화를 한다고 하더라도 그게 대중조직적인 모델로 조직화를 하긴 어렵다는 것이지요 @_@;









1. 대중조직이란 무엇인가


대중조직은 단순한 대중화나 대중에게 널리 알려지는 것과는 구분되어 다르게 쓰이는 개념입니다.
예를 들어 참여연대라거나 환경운동연합 등은 대중들에게 비교적 널리 알려져 있지만 대중조직이라고 하기는 어렵죠. (뭐 그렇다고 딱 활동가조직이라고 단정지을 수도 없지만.)
또, 전교조[전국교직원노동조합]는 대중조직이라고 하지만, 그 대중조직의 의미는 대중에게 널리 알려져 있다는 의미에서 대중조직이 아닙니다.

대중조직은, 쉽게 말해서, '현장'에서부터 상당수의 대중(여기서 대중은 불특정 다수일 수도 있지만, 특정 다수 - 노동자, 여성, 농민, 청소년, 대학생 등등 - 인 경우가 많습니다.)들이 조직되어 있는 형태의 조직입니다. 가장 대표적인 예가 노동조합들의 총연맹 같은 거겠죠. 일하는 노동 현장에서부터 노동조합을 설립하고 그 노동조합들이 모여서 총연맹(민주노총, 한국노총 등)을 만듭니다. 금속노조나 전교조 같은 산별노조, 분야별노조들도 대중조직의 모습입니다.

정당들도 원칙적으로는 대중조직입니다. 지역 당협(과거 지구당)을 통해 지역 기반의 조직들을 꾸리지요. 한국의 거대정당들은 대중조직적인 면이 좀 약한 경향이 있고 대중조직보다는 혈연이나 지연이나 학연 등에 더 영향을 받는 부분도 있고, 정당 내적으로는 비민주적이고 상층 정치인 중심적인 면이 있지만... (-_-) 원칙적으로는 정당도 대중조직의 형태이지요.

(※ 글을 쓰다보니, 대중조직과 활동가조직의 중간 어디쯤에 '회원조직'들을 둘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드네요. 예를 들어 여성민우회는 활동가조직처럼 움직이지만 다수의 여성 회원들이 있고 또 이 회원들이 활동에 참여하기도 합니다.
사실 이 대중조직과 활동가조직, 회원조직 등의 규정은 완전히 엄밀할 수는 없어요. 어느 정도 개념이 있고 그 개념 중 어디에 가까운지, 아니면 어디를 지향하는지를 판단하는 거죠.)

 대중조직의 가장 큰 장점은, 활동을 할 때 그 생활의 현장(일터, 학교, 지역 등)에서부터 활동을 펼쳐나갈 수 있고 또 현장의 조직들을 이용하여 많은 수의 사람들을 활동에 참여시킬 수[동원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2. 아수나로가 왜 대중조직에 적합하지 않다고 생각하나


청소년(인권)운동에서 대중조직 만들기는 학교 조직이냐 지역 조직이냐 뭐 이런 논의도 있지만, 일단 그 이야기는 패스하고...
일단 제가 왜 아수나로가 대중조직에 적합하지 않다고 이야기했는가, 하는 배경을 설명하면 이렇습니다. (따이루 생각도 크게 다르지 않을 텐데)


① 청소년인권운동으로서의 발달
역설적이지만 청소년인권운동이 발달한 것 자체가 아수나로의 대중조직화를 막습니다. 이건 저번 총회에서 "운동의 성과는 없이 담론만 발전했다."라고 평가했던 것과 깊은 관련이 있는데요.
주장의 수위 자체가 높아진 부분도 문제가 되긴 하겠지만, 더 문제가 되는 건 주장/사고방식의 방대함이나 청소년인권 주장이 포괄하게 된 범위의 문제입니다.
쉽게 말해서, 처음에 아수나로에 들어온 사람이 현재 아수나로에서 잔뼈가 굵은 활동회원들의 청소년인권에 대한 주장이나 사고방식을 쫓아오기 위해서는 꽤 많은 양의 공부나 사고방식의 전환이 필요하다는 겁니다. 청소년인권운동이 주장하는 담론이 학교나 교육에 국한되지 않고 노동, 정치, 가정, 그밖에 사회구조 전반으로 확대되어 있는 현실에서는요.
물론 아수나로는 지금보다 더 이런 주장을 좀 더 대중화시키고, 새로 들어오는 회원들이 더 쉽게 이런 생각들에 익숙해지고 익힐 수 있도록 도와야 합니다. 하지만 문턱을 아무리 낮추어도 거기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추가적인 문제는, '청소년'운동이기 때문에 생기는 문제입니다. 현재 한국 사회에서 다수 청소년들은 충분한 여가시간을 가지고 있지도 못할 뿐더러, '청소년기'라는 건 (초등학교고학년대부터 쳐서) 길어야 8년, 짧으면 5-6년 정도입니다. 좀 더 긴 시간을 들여 회원들을 교육할 수 있고 운동에 대한 이해와 생각들을 넓고 깊이있게 공유할 수 있는 다른 운동과는 다른 청소년운동 특유의 문제점이죠 -_-;;

그렇기 때문에 청소년(인권)운동이 대중조직을 만들기 위해서는 좀 더 주장을 압축하고 단순화할 필요가 있습니다. 예컨대 학생인권과 교육정책 문제로만 딱 한정한다거나, 노동이나 정치적 권리로만 딱 한정한다거나 해도 대중조직을 만들기는 꽤 벅차요.


② 운영방식 또는 인적 구성
아수나로의 운영방식이나 인적 구성도 문제가 되는데요. 예를 들어 수평적인 네트워크를 지향하고 모두에게 활동회원적인 관심과 역량을 요구하는 운영방식은 대중조직에 별로 적합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어느 정도 이견이 있을 수 있겠습니다만... 사실 이런 다소 꼬뮌적/아나키즘적인 운영으로는 대중조직 구성은 쉽지 않아요. 수가 늘어나면 다시 그 조직의 단위를 작게 쪼개고 쪼개서 유지시킬 수도 있습니다만;; 아무래도 거대해진 전체 조직을 원활하게 움직이기 위해서는 최소한 대의원 같은 형태의 제도는 필요할 수밖에 없겠지요.

어쩌면 여기서는 인적 구성의 문제가 더 클 수도 있는데, @ 활동회원들의 성향  @ 탈학교 청소년 또는 비청소년 활동가의 비율 이 두 가지가 인적 구성에서는 핵심이 되겠지요.
활동회원들의 성향이라는 것은 운영방식에서 좀 더 개인적이고 수평적이고 탈권위적인 형태를 지향하는 성향 자체라거나, 대중조직화에 적합하기보다는 좀 덜 대중적인 (-_-) 왕따스런 인간들이 많다는 거려나요. 이 활동회원들의 성향은 길게 봐서 개선 가능하지만, 지금 당장은 쉽게 바꿀 수 없는 요소입니다.
그리고 뭐 저는 100% 동의하지는 않는데... 따이루는 적극적으로 활동하는 회원들 중에 탈학교 청소년이나 비청소년 활동가들의 비율이 늘어나는 것 자체가 청소년 대중조직을 만드려고 할 때 어려움이 된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이슈를 잡는 문제도 그렇고 활동 공간 - 생활 공간의 문제도 그렇고.


③ 지금까지 쌓여온 아수나로의 이미지 등
이것도 장기적으로 볼 때는 개선 가능하지만 바꾸기 어려운 요소 중 하나입니다만-
아수나로가 지금까지 쌓아온 이미지의 문제가 있겠죠.
여기서 쌓아온 이미지라는 건 운동사회 안에서의 이미지나 대중적인 이미지나 모두를 지칭합니다만- 실질적으로는 운동사회 안에서 이미지가 좀 큽니다. 왜냐면 대중적인 이미지는, 뭐 아수나로가 대중적으로 노출되었던 적 자체가 그리 많지 않고 굉장히 얄팍하고 좀 포괄적으로 형성되어 있는 거라서, 바꾸려고 하면 그리 어렵지 않게 바꿀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하지만 운동사회 안에서의 이미지는, 아무래도 지난 5년 동안 형성되어온 거라서 바뀌기 쉽지 않죠-;
일단 아수나로의 까칠한 이미지, 인권감수성이 높고, 어른들에게 고분고분하기보다는 개기고 발칙한 이미지는, 뭐 어떤 사람들에게는 지지를 받을지 몰라도, 운동사회 안에서도 넓은 지지와 후원을 얻기는 쉽지 않아요. 왜냐면 운동사회 안에도 주류는 꼰대들이거든욬ㅋㅋㅋㅋㅋ ㅠㅠ 그런 의미에서 보면 촛불 때 있던 전청련이나 10대연합이나 촛불소녀 같은 촛불청소년들의 이미지가 운동사회 안에서 지지나 후원을 얻기는 쉽겠지요. 그리고 대중조직 만들기는 지금으로서는 그런 지지와 후원 없이는 참 난망한 부분이 있습니다.
(돈이라거나, 돈이라거나, 돈이라거나, 장소라거나)


(※ 추가로, 따이루는 전국 조직으로는 일단 현재 대중조직 출발이 불가능하다는 입장입니다. @_@;)



3. 그럼에도 왜 아수나로가 필요하냐구?

이 이야기들이 사실이라면, 아수나로가 대중조직으로 바로 발전하기 어렵다면, 대체 아수나로의 역할은 뭘까요?
청소년인권운동의 전국 대중조직을 지향하며 출발했던 아수나로의 현재가 이렇다면, 아수나로의 비젼은 무엇일까요?

먼저 제가 앞서 한 이야기는 아수나로가 지금 바로 대중조직으로 발전/전환하기 어렵다는 것이지, 아수나로가 대중조직 만들기에 보탬이 되거나 대중조직의 기반이 되지 못한다는 건 아닙니다. 사실 아수나로가 지금까지 전국 여러 지역에서 해온 일들이나 활동회원들을 계속 만들고 늘려온 것, 주장하고 청소년인권의 목소리를 내온 것 자체가 청소년인권운동의 대중조직이 만들어지기 위해서는 꼭 필요했던 과정이라고 생각해요. 그리고 앞으로도, 아수나로 활동을 딛고서 대중조직이 만들어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아니, 좀 더 길게 한 10년 후를 본다면, 아수나로나 청소년운동의 조건이 여러 모로 달라져서 아수나로가 바로 청소년대중조직으로 발돋움하려고 할 수도 있겠죠. 그건 제가 예측하기도 어려운 영역이고... 예측을 내놓는다고 해도 많은 논쟁이 필요한 부분이니까 여기선 생략;;)

결과적으로 이런 한계들이 있더라도, 저는 아수나로가 지난 5년간 해온 활동이 잘못되었다고 생각하진 않아요. 아니, 박수를 받아야 마땅하다고 생각합니다. 아수나로는 첫 시작에서부터 청소년인권운동의 이론과 기반을 다질 것과 전국 대중 조직을 만들 것을 주문받았어요. 지금 와서 돌이켜보면 둘 모두를 아수나로가 맡아서 한다는 게 세부적으로는 어떤 부분이 모순적이었고 어떤 부분에 한계가 있었나... 평가해볼 수도 있을 텐데요. 그건 이렇게 혼자서 글을 끄적이기보다는 여럿이서 수다를 떨면서 해보고 싶네요 ^^;;

여하간 아수나로를 대중조직으로 전면 개편하려고 하지 않고 별도로 대중조직을 추진하려고 하는 건, 청소년인권운동에서 아수나로의 역할이 여전히 필요하다고 판단하기 때문일 겁니다.(제...제가 추진하는 게 아니라서 100% 장담은; 제 견지에서는 이렇다는 거지요.) 청소년인권운동으로서 폭넓고 깊이 있는 관점과 내용들을 유지하고, 적극적이고 활동력 있는 활동가들을 만들어내고, 조직화와 활동을 지원하는 역할은 계속 누군가가 해야 하니까요.
별도의 대중조직을 추진한다고 해서 그게 아수나로와 충돌하거나 배치되는 건 아니라고 생각해요. 뭐 아니면 대중조직 추진과는 별개로 거기에 자극받아서 아수나로의 대중조직화를 추진해보셔도...(??) 그리고, 그렇게 추진한 대중조직 사업이 실패한다고 해도, 그건 그 나름대로 성과가 남는 거니까요.

제가 생각하는 현재 시점에서 아수나로의 형태는, 직접적으로 스스로 대중조직이 되지는 못하지만, 청소년인권을 대중화시키고, 좀 더 폭넓게 (약간은 대중적인) 회원조직 같은 느낌으로 운영되는 거예요. 너무 활동가조직스러운 것도 아니고 말이지요.
아니면 만약 대중조직이 꾸려진다면 그 안의 의견그룹[정파]이 될까요? ㅎㅎ;;;;

물론 이런 구상은 사회적 조건이나 청소년인권운동의 상황에 따라 달라져야 할 거고, 또 아수나로에 대해 다른 회원들이 가진 생각들에 따라서도 달라질 겁니다 ^^;



추신 : 그래서, 여하간, 요컨대, 대중화랑 대중조직화는 다른 문제에요.
민주주의 담론은 대중화되어 있지만 실질적 민주주의를 실현하기 위한 대중조직화는 제대로 되어 있지 않아욜 -ㅂ- 환경 담론은 꽤 대중화되어 있는 편이지만, 환경운동을 위한 대중조직화는, 뭐 지역 기반으로 좀 되어 있긴 하지만 그렇게 강하게 되어 있진 못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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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공현
걸어가는꿈2010.09.15 14:47

http://sites.google.com/site/policeinspectionkr/jebo



쫄지마 불심검문

법대로 불심검문

내 앞길을 막지마~!



불편한 심신, 검문에 대처하는 우리의 자세     


9월 18일(토), 20일(월) 12시 서울역에서 불심검문 거부 캠페인합니다. ^^

부당한 불심검문 강행, 무조건 협조가 아닌 정당한 거부는 우리의 인권을 지키는 힘!

부당한 검문사례를 보내주세요!

전자우편 / 전화
policewatch.kr@gmail.com
02-365-5364

홈페이지
http://sites.google.com/site/policeinspectionkr/jebo

우편
서울시 중구 중림동 398-17번지 3층 인권단체연석회의
불심검문 담당자 (우) 100-360


불심검문, 거부할 수 있습니다.
특정한 이유 없이 강제로 검문을 하거나 법에 정한 요건을 지키지 않고 하는 검문은 거부할 수 있습니다.(경직법 3조 1항, 7항)

임의동행, 거부할 수 있습니다.
임의동행 역시 동의 없이는 불가능합니다. 경찰관은 동행 장소를 밝혀야 하고, 변호인의 도움을 받을 권리를 고지해야 합니다.
(경직법 3조2항, 4항, 5항, 6항)

불심검문, 반드시 동의를 구해야 합니다.
불심검문은 임의조항입니다. 불심검문을 하는 경찰관은 검문을 받는 사람에게 동의를 구해야 하며 강제로 할 수 없습니다. (경직법 3조 7항)

불심검문, 질문만으로 끝내야 합니다. 강제적인 신분증 요구와 신원조회는 거부합시다.
불심검문은 수상함이나 범죄혐의를 확인하기 위한 질문으로 끝나야 합니다. 신분증 요구와 신원조회는 강제할 수 없고, 소지품 검사는 외부를 만져보는 것까지만 가능합니다.
(경직법 3조 1항, 3항)

불심검문과 임의동행 시, 경찰은 신분 및 목적, 이유, 장소를 밝혀야 합니다.
질문을 하거나 임의동행을 요구하는 경찰은 자신의 신분을 표시하는 증표를 제시하면서 소속, 성명, 목적과 이유를 설명해야 합니다. (경직법 3조 4항)


TIP 불심검문을 겪을 때, 경찰의 신분을 기억(기록)해둡시다. 위법한 불심검문에 대한 저항은 공무집행방해죄로 성립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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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공현
걸어가는꿈2010.08.21 12:27

1
체벌이든 강제야자든 복장자유든 마찬가지인데,
그런 사안들에 대한 '정교한' 대안은 대개가 전사회적인 레벨이 되기 쉽습니다.

무슨 말인고 하면, 예를 들어 "그럼 강제로 야자 안 시키고 저녁에 애들이 맘대로 놀게 두면 걔네가 결국 학원에 가거나 PC방 가서 인터넷 중독되는 거밖에 더 있냐"라는 식의 얘기라거나 등등...
강제 야자 반대 이야기를 하다보면 입시경쟁교육 얘기뿐 아니라 이 사회의 문화정책과 지역사회의 열악함까지 이야기를 하게 된다는 거죠.
체벌 역시 예외가 아니어서, 체벌을 금지해놓고 "그럼 체벌 없이 어떻게 지금처럼 학교에 애들을 잡아놓지?"라는 식으로 접근하다보면 상벌점제니 교육벌이니 퇴학이니 온갖 괴악한 방법론들이 나오는 겁니다.
결국 체벌금지에서 올바르고 정교한 대안이란 건, 작게는 교육제도의 변화나 교육예산의 문제, 크게는 사회적 교육의 부족함과 노동환경과 경제적 문제까지도 논의에 포함해야 할 것입니다.

문 제는 그게 지극히 옳은 이야기임에도 실제 정책을 입안해야 하는 공무원 관료들이나 정치인들 입장에서는 이게 참 '비현실'적으로 보인다는 겁니다. 왜냐면 그건 자기들의 업무 소관을 벗어나는 거거든요. 정책 내면서 팍팍 질러서 "학생인권 보장을 위해, 복장자유 하나 하려면 사회가 이만큼 바뀌어야 한다"라고 제안 못하는 건 아닙니다. 하지만 그렇게 안 하거든요. 못하는 걸 수도 있구요.

그래서 결국 문제는 정교한 대안이 있냐 없냐가 아닙니다. 그만큼을 바꿔낼 수 있는 정치력이 있냐, 또는 운동의 역량이 있냐는 거죠.



2
물론 이 이야기는 일종의 '환원론'으로 귀결될 위험이 있습니다.
"사회가 근본적으로 바뀌기 전엔 체벌금지든 두발자유든 개소리다! 결국 크게 바뀌는 건 없을 거다!"
요즘 들어 이런 생각이 전혀 안 드는 건 아니지만, 꼭 그렇지는 않습니다.
일단 체벌이 금지가 되고 청소년들에게 폭력을 행사하는 게 안 된다는 원칙이 확립되는 것, 학생인권에 대한 기준이 확립되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여러 가지 변화의 가능성들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체벌 금지의 원칙을 확인하고 공표하는 건 '정치적으로' 중요한 일이라는 건 확실히 해두고 싶습니다.
지 금까지 최소한 10년이 넘게 숱하게 체벌이 문제가 되어왔고, 체벌을 자율적으로 없애고 사라지게 하겠다며 온갖 립서비스들이 나왔음에도, 교육 현장에서 교장이든 교감이든 장학사든 체벌 없는 학교를 만들기 위해 진지하고 적극적으로 뭘 해본 적이 없습니다. 있더라도 굉장히 극소수였죠. 일단 "때릴 수 있다"라는 걸 전제해놓고서 "뭐 그래도 안 좋을 수 있으니까..."라는 식의 '옵션' 정도로만 접근했기 때문입니다.
그런 점에서 교장들이나 교사들이 이번에 체벌금지에 대해 '반발'하는 것에 대해서도 짜증이 나는 면이 있습니다. 마치 곽노현 교육감이 갑자기 체벌금지를 지른 것처럼 이야기하지만, 1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체벌을 없애자는 이야기는 있어왔거든요. 심지어 교육부에서도 90년대 후반 ~ 2000년대 초반에 체벌을 금지하겠다고 했다가 철회하는 일도 있었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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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체벌금지에 대한 평교사들의 반발과 교장들의 반발은 다른 면이 있습니다. 이걸 단순히 "체벌밖에 교육방식을 모르는 구닥다리 꼰대들의 생각"이라고 보면 안 돼요.

지 금 언론을 통해 밝혀진 서울시교육청에서 내놓은 예시안들을 보면, 체벌을 금지하는 대신에 교사가 생활 태도든 학습 태도든 문제가 심한 학생을 교실에서 내보내고 그 학생을 교장이 책임지고 상담하고 지도하는 방안 등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전체적으로 봤을 때는 교장과 학교 전체의 책임을 강화하는 방향의 방안들이 더러 있어요.
그동안은 '체벌'을 통해서 비공식적인 교사 개인의 폭력으로 학교의 질서가 유지되어 왔습니다. 하지만 체벌금지 이후, 교사 개개인에게 책임을 떠넘기던 학교가 이제 학교 차원에서 그리고 그 학교의 최고책임자인 교장 차원에서 학생 지도와 교육에 대해 책무를 지게 된 겁니다. 그동안은 문제가 생기면 체벌 교사 개인이 징계를 받고 소송을 당했는데, 이제는 학교 차원에서 공식적으로 책임을 지게 생긴 거죠. 교장들 입장에서는 피하고 싶은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즉 집단 퇴장을 하고 "체벌은 교권이다"를 울부짖는 교장들은, 뭐 물론 "체벌의 정당성/교육성"을 굳게 믿어 의심치 않는 사람들도 꽤나 있겠습니다만은, 자기들의 이익을 잘 알고 행동하고 있는 겁니다. 자기들 일이 늘어나고 부담이 늘어나고 책임이 늘어나는 걸 피하고 싶은 거니까요. 행정업무 좀 처리하고 교사들 갈구면서 군림하던 그동안의 교장들의 삶이 흔들릴 테니, 무리도 아닙니다.(모든 교장들이 이랬다는 건 아닙니다만, 사람에 따라서는 이렇게 사는 게 충분히 '가능했던' 직위가 교장이었지요.)

반면에 평교사들의 반발은 진짜로 '체벌의 정당성/교육성'을 믿는 사람들도 있을 거고, 체벌을 금지하는 게 그동안 교사들이 문제였다, 인권침해를 해온 가해자다, 라는 낙인을 찍는 거 같아서 싫은 사람들도 있을 거고, 아니면 체벌이 금지된 후에도 계속해서 학생 지도와 교육의 책임을 교사 개인에게 묻는 식으로 학교가 운영될 거라고 생각하는 경우도 있을 겁니다.
저는 그래서 체벌금지는 평교사들을 어느 정도는 우리 편으로 만들면서 가야 한다고 생각해요. 체벌을 금지한다는 건 교사 개인이 책임을 지라는 게 아니라 학교가, 교육계가, 지역사회가 모두 교육에 책임을 지고 함께하겠다는 것이기도 하다... 이런 메시지를 전하면서 설득해야 할 겁니다.

그와는 반대로, 교장들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강하게 나가야 할 필요도 있다고 생각합니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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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학생들은 뭘 어째야 하느냐- 인데.
우리는 학생들의 경우에도 체벌금지 이후에 대응이 개인화되는 걸 피해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러니까, 체벌 금지했는데 왜 체벌하냐, 해서 교사를 교육청이나 경찰에 신고하고- 이런 방식이요. 물론 이런 사람들이 하나도 안 나오게 할 수야 없습니다만, 최소한 청소년인권운동 차원에서 그런 전략을 취하면 안 된다는 거죠.

체 벌을 허용하는 것은 그 학교의 문제이고, 체벌이 일어나는 경우에 그 교사 개인이 아니라 학교 차원에서 책임지라고 학생들이 집단적으로 문제제기할 수 있는 방식으로 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뭐 그건 서명운동이 될 수도 있고 학내시위가 될 수도 있겠죠.
일단은 사회적으로 체벌금지가 학생들에 대한 또다른 통제(상벌점제 같은)의 고안으로 이어지지 않도록 대응하는 것도 중요할 거구요 ^^;

이 뒷부분에 학생들이 어떻게 할까, 우리는 어떻게 할까, 하는 부분은 같이 운동하는 다른 분들과 회의하고 토론하면서 같이 만들어가고 싶은 부분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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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공현
걸어가는꿈2010.07.21 15:34




애들은가라? 쳇-_- 꼰대는가라!
발칙한 청소년활동가들의 발칙한 수다한마당!

 

인권,환경,평화,참여 등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는
발칙한 청소년활동가 여러분 모두를 초대합니다!

 

'활동가'대회라고 하면 너무 거창한가요?
더 나은 세상을 고민하고 노력하는 당신이 청소년활동가!

 

꺠알같이 재미질 청소년활동가대회 끌리지 않나요?ㅋㅋ

왁자지껄한수다, 뜨거운토론, 신나는놀이가 대기타는중!


모두들 2010청소년활동가대회'쳇[chat]'으로 놀러오세요!

 


일시: 2010.08.05(목)~07(토) / 2박3일
장소: 오덕훈련원(경기남양주축령산국립공원)
참가비 : 5000원(면제도가능!멀리서오는분은차비지원도!)


cafe.daum.net/youthm

* 자세한내용과 참가신청은 청소년활동가대회카페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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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어가는꿈2010.07.20 12:07


체벌금지, 뒤늦었지만 꼭 필요한 조치다


서울시교육청이 2010년 2학기부터는 체벌을 전면 금지한다고 발표했다. 이른바 ‘오장풍’ 교사 사건으로부터 촉발되어 교사에 의한 폭력 사례들이 속속 언론에 이슈화되면서 취해진 조치다. 체벌을 금지하라고 인권단체들, 청소년단체들이 요구해온 세월과 2003년 UN아동권리위원회나 2002년 국가인권위원회의 권고 등을 생각하면 매우 뒤늦은 조치다. 하지만 일상적으로 체벌이란 이름의 폭력이 일어나고, 체벌을 당하다가 학생들이 다치고 죽는 사건이 발생해도 수수방관 하고 있는 다른 지역의 교육청들, 그리고 교육과학기술부가 본받아야 할 일이기도 하다. 청소년인권활동가네트워크는 서울시교육청이 체벌금지를 발표한 것을 환영하는 바이다.

체벌은 명백한 폭력이고 인권침해다. 폭력에 익숙해지게 하고 인권감수성을 무디게 한다는 점에서 체벌은 반교육적이기도 하다. 신체적 폭력을 동원하는 체벌의 부작용과 위험성을 생각한다면, 체벌의 교육적 효과를 얘기하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일이다. 체벌은 청소년들을 인격체로 보고 소통하고 존중하려 하지 않고, 다스리고 억압해야 하는 대상으로 보아야만 가능한 비인간적인 폭력인 것이다. 설령 폭력의 가해자가 좋은 의도를 가지고 있더라도 그 효과가 안 좋게 나타날 가능성은 다분하다. 그렇기 때문에 ‘과잉 체벌’이 문제가 아니라 ‘체벌’ 그 자체가 문제이며, 체벌을 전면 금지하는 것만이 최소한의 정답이 될 수 있다. 일각에서는 체벌 금지를 반대하며 단계적, 점진적, 학교자율적으로 폐지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으나, 지난 수년 간을 돌아볼 때 이는 전혀 체벌을 근절하는 데 효과를 내지 못한 비현실적인 정책이다.

일부 교사들이 체벌금지에 반발하는 것도 앞을 내다보지 못한 근시안적인 것이다. 지금까지 교육현장은 교사들에게 충분한 노동환경과 학생, 교사들을 위한 좋은 교육환경을 보장하지 않은 채 입시교육에 매몰되어 있었고, 체벌과 같은 폭력적인 장치들을 동원하여 이런 어려움을 어거지로 덮어왔다. 우리는 체벌금지 조치가 이런 현실의 문제를 드러내고 교육환경, 노동환경을 개선하고 소통하는 교육, 함께 책임지는 교육, 인간적인 교육을 실현하기 위해 꼭 필요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교사들이 요구해야 할 것은 학생들을 “때리게” 해달라는 것이 아니라 체벌 없이 교육할 수 있도록 지원하라는 것이어야 하지 않은가?

우리는 곽노현 서울시교육감의 학생인권조례 공약과 함께 서울시교육청의 이번 체벌금지 발표가 학교에서 빈번하게 일어나던 일상적인 학생인권침해들을 개선하려는 의지의 표현이라고 믿고 싶다. 그리고 이것이 단지 의지의 표명에 그치지 않고 학교현장에 자리잡아 뿌리깊은 학생인권침해를 개선하려면, 교육청 등 교육계와 시민사회의 지속적이고 성실한 노력이 필요함을 강조한다. 우리도 이런 조치들이 실효성을 가진 것이 되게 하기 위해, 그리고 전국 모든 학교들에서 학생들의 인권이 보장되고 가정, 학원 등지에서의 체벌도 근절되게 하기 위해, 인권을 주장하는 학생.청소년들과 함께하며 앞으로도 활동을 게을리 하지 않을 것이다.



2010년 7월 20일

청소년인권활동가네트워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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흘러들어온꿈2010.07.19 02:52



[인권문헌읽기] 쉽게 쓴 유엔아동권리협약

류은숙


최근 학생인권조례 제정을 둘러싸고 ‘내전’ 비슷한 것이 시작됐다. 입만 열면 사랑의 대상이라고 말하던 아이들에게 전쟁을 선포한 어른들과 그 어른들의 애독지가 나서서 아이들더러 ‘홍위병’ 운운한다. 사실 홍위병의 뜻이 뭔지 아는 어른들이 얼마나 될 런지도 모르겠다. 중국 역사 운운하며 이 단어의 뜻을 캘 의욕은 없다. 아무튼 그 단어를 아이들을 대상으로 써댄 어른들의 생각은 자신들의 각본에 맞는 아이들의 캐릭터를 만들어낸 건 아닌지 묻고 싶다.

그럼 소위 ‘홍위병’들의 요구사항을 보자. 함부로 머리 자르지 말고,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이 잡듯 훑어내지 말고, 때리지 말고 모욕 주지 말라고, 갖은 이유로 차별하지 말라고, 함부로 소지품 뺐지 말고, 억지로 새벽부터 한밤중까지 붙잡아두지 말라고, 1등부터 꼴찌까지 줄 세우는 교육 말고 좀 다른 식의 교육을 받게 해달라고, 자신들의 생각에 대해 말할 권리를 달라고 하는 것 등이다. 요즘 아이들 표현대로 하자면 ‘안습’한(슬프고 안타까운) 요구사항들이다.

위 사진:한줄 세우기를 강요하는 '일제고사'에 관해 청소년들이 반대하고 나섰다.


오늘 읽어볼 인권문헌은 이미 널리 알려진 것이지만, ‘유엔아동권리협약’을 골랐다. 지금 시기에 꼼꼼히 다시 봐야 한다는 생각에서다. 전문과 54개조에 이르는 방대한 문헌인지라, 쉽게 고쳐 쓴 것을 골랐다. 누가 쉽게 고쳐 썼냐하면 영국의 9살 아동이 협약을 읽고 자신의 말로 쓴 것을 내가 몸담았던 인권단체에서 교육활동을 위해 번역하고 가다듬은 것이다.



내가 인권운동을 시작하면서 처음 맡은 일이 유엔아동권리협약을 국내에 알리는 일이었다. 1991년에 유엔아동권리협약을 한국 정부가 비준했다. 비준한 당사국은 2년 내에 최초보고서를 그 후 5년마다 추가보고서를 유엔아동권리위원회에 제출해야 한다. 정부가 이 협약을 비준한 일도 최초보고서를 유엔에 제출한 일도 당시에 국내에선 전혀 몰랐다. 정부는 입을 다물었고 어떤 언론도 보도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어느 날 내가 일하던 인권단체에 편지 한통과 함께 두툼한 영문 자료가 날아들었다. 편지의 요지는 이러했다. 자신들은 유엔아동권리협약의 실천을 위해 일하는 국제인권단체인데, 얼마 전 대한민국 정부가 유엔에 보고서를 제출했다는 것, 한국의 인권단체들에게 이 사실을 알리고자 자료를 보낸다는 내용이었다. 정부가 얼마나 충실한 보고서를 제출했는지, 즉 유엔아동권리협약을 국내에서 실현하기 위해 어떤 노력을 했는지에 대해 검토하고 비판의견을 제시하는 것이 인권단체의 역할이라는 당부도 함께였다.

그 후 1년여 20여개 인권사회단체 사람들과 유엔아동권리협약을 공부했다. 없는 자료를 구해 한자 한자 번역해가며 공부했다. 토론회도 열었고, 협약을 알리기 위한 캠페인도 했다. 그런 과정을 통해 의견을 모아 유엔아동권리위원회에 민간단체 보고서도 제출했다. 정부대표들과 유엔아동권리위원회가 마주하는 회의를 지켜보러, 없는 돈 털어 제네바에도 가야했다. 그런 과정에서 나온 얘기들을 녹음하여 녹취록도 남기고, 국내에서 기자회견도 하고, 유엔이 내놓은 권고안을 놓고 토론회도 했다. 유엔아동권리위원회의 한 위원이 “한국의 아동에겐 아이일 권리가 없는 것 같다”고 개탄하던 모습이 떠오른다. 1차 보고서 이후 2차 보고서 때도 마찬가지의 일을 했다. 이런 과정을 통해 교사, 학부모, 청소년 등에게 ‘아동 인권’, ‘학생 인권’이라는 말이 퍼져나갔다. 어떻게 하면 협약에 담긴 인권존중의 원칙을 실현할 것인가를 각계에서 고민하게 됐다.

이건 그동안 있어온 수많은 노력들 중의 하나에 불과하다. ‘학생인권조례’ 제정은 이런 과정을 포함하여 사회각계의 오랜 고민과 실천을 통해 한국 사회에 출현한 과제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청소년 본인들의 목소리가 등장하고 활발해진 것이 그 진짜 의미를 살리는 소금구실을 하는 것이다. 아무리 갖은 양념과 장식으로 치장한 음식이라도 소금이 없으면 아무 맛도 낼 수 없다. 아동과 청소년의 의견, 관심과 참여야말로 학생인권조례건 무엇이건 이들 당사자에게 영향을 끼치는 모든 일에서 고려돼야 할 필수요소이다. 이게 유엔아동권리협약의 핵심원칙이다.

사실, 유엔아동권리협약의 존재를 전혀 모를 때에도, 한국의 청소년들은 여러 방식으로 인간다운 권리를 외쳐왔다. 헌법소원을 시도하기도 하고, pc통신 모임을 통해 두발자유를 위한 모임을 조직하기도 하고, 종교의 자유를 위해 학교의 강제 종교 활동을 거부하기도 했다. 이런 행동들이 불온한 것이라면 누구에게 어떤 기준으로 불온하다는 것일까? 미성숙해서 위험하다고? 모든 사람은 평생 공부해야 하고 평생 학생이라 하지 않는가? 우리 모두는 언제나 미성숙하고 위험하다. 그러나 감수한다. 실패와 실수를 감수한다. 그리고 또 시도하고 또 나아간다. 아동과 청소년도 마찬가지다. 실패하고 실수할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모든 가능성을 봉쇄할 이유는 될 수 없다. 당장 해야 하는 일은 불온한 것을 때려잡는 일이 아니라 불량한 것을 바로잡는 일이다. 옳지 못한 것을 그냥 감수하라고 가르치는 것은 교육이 아니다. 밤 10시까지 혹은 새벽 2시까지 공부만 하라고 학교(학원)에 감금하다시피하고, 머리카락을 자르고, 원치 않는 종교행사를 강제하는 것이 불량한 것이다. 불량한 것을 바로 잡으면 될 일이지, 강도를 잡지 않고 피해자를 비난하는 일은 그만둬야 하지 않을까?

독재자는 시민들이 모이고 얘기하는 것을 엄청 두려워한다. 아이들이 모이는 것 자체에 부들부들 경기를 일으키는 어른들은 교육자일까? 존경할 만한 어른일까? 아이들과 인격적으로 대화할 수 있는 상대방일까? 아이들이 모이거나 뭉치거나 의견을 교환하고 표현하는 것, 즉 시민․정치적 권리라는 인권이 호환마마보다 두려운 것은 시민의 권리행사를 감시하고 억압하는 독재자와 뭐가 다를까? 당신들이 제일 싫어하는 공산주의가 그런 것 때문에 망했다고 지적하지 않았던가, 자유세계는 그런 것을 보장하기 때문에 자유세계라고 자랑하지 않았던가, 정치가 그렇게 위험하고 나쁜 것이라면 왜 수많은 어른들은 기를 쓰고 정치를 하려할까, 왜 정치를 위해 아이들과 사진을 찍어대고 볼을 부벼댈까, 그런 여의도 정치 말고 우리의 생활세계에서 벌어지는 일들에 의견을 내고 변화를 가꾸는 것이 진짜 정치라고 여기는 것이 그렇게 무섭나, 그렇게 되면 직업정치인들과 논평가들의 밥그릇이 위태로워지기 때문에 아이들에게 X자 마스크를 씌우려는 것일까?

사실, ‘학생인권조례’에서 논의되는 내용이나 그간 아동․청소년 인권으로 얘기돼온 내용들을 떠올리면 미안하고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 과연 우리가 옹호하는 것이 ‘인권’이라 할 만한 수준의 것인가? 때리지 말라는 등등의 요구가 과연 21세기를 살아가는 ‘인간’에게 ‘권리’로서 요구될 만한 수준의 내용인가? 고통 받고 학대받는 동물을 구원하자는 얘기 같아서 미안하다. 학대로부터의 자유와 보살핌의 권리를 넘어 ‘사회구성원으로서의 권리’를 얘기해야 마땅한 마당에 ‘아동과 청소년은 동물수준을 벗어난 권리를 요구하는 게 사치인가’하는 한숨이 난다. 한 영화 평론가는 한국 영화에서 유괴당하고 살해당하고 중병에 걸리고 학대당하는 어린이 캐릭터의 역할에 대해 “고통에 붙박인 아이들의 캐릭터”라 한적 있다. 현재 아동인권, 학생인권에서 얘기되는 권리항목의 주인공들은 그저 고통에 붙박여 있다.

고통 받는 캐릭터를 벗어나 사회구성원으로서 누려야 할 권리로 향상시키는데 학생인권조례의 의의가 있을 것이다. 그런데 사상․양심의 자유, 집회의 자유, 학교의 의사결정에 참여할 권리 등 유엔아동권리협약의 핵심조항들로 거론되는 것들을 입에 올리기 무섭게 홍위병이란 이름을 뒤집어씌우는 것은 아이들을 고통의 캐릭터에 붙잡아 놓는 것이다.

나는 청소년 활동가들을 볼 때마다 오히려 그들로부터 배우고 의식화된다. ‘나이 어린 애들이….’, ‘대학이나 나온 후에 하면 안 되나’하는 불온한 생각들이 40대 중반이 된 내 속에서 슬금슬금 기어오를 때가 솔직히 있다. 그럴 때마다 방글․쌩글․화통하게 말하고 행동하는 모습들에 내속에 긴 세월 묵혀져온 위계니 뭐니 하는 것들과 현실주의로 둔갑한 배반의식이 뒷구멍을 찾게 된다. 청소년 활동가들은 기존의 틀에 구멍을 내고 있다. 있는 그대로 깁는다고 메워질 구멍이 아니다. 이미 새로 짜여 지고 있고, 실과 직조기를 손에 든 것도 그들이다. 불안한 어른들이 뭐라 하든, 그들은 고통의 캐릭터를 벗어나 자신의 이미지를 창조하고 있고, 불안과 공포가 지배하는 1등 독식의 교육문화를 벗어나 공감하고 어우르는 관계 맺기를 시도하고 있다.

나를 비롯하여 내 주변에는 나이 먹는 게 싫지만 젊어지는 것도 싫다는 사람들이 많다. 그 이유는 다시 학교를 다녀야 한다는 것이다. 아무리 젊은 게 좋아도 학교를 다시 다니기는 싫다는 것이 공통점이다. 그런 우리에게 청소년활동가들이 다른 생각을 자극하는 것 같다. 다시 젊어질 수 있다면 청소년 인권운동을 하고 싶다고, 신나게 다니고 싶은 학교를 만들고 싶다고…….

쉽게 쓴 유엔아동권리협약

우리에게 권리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나요? 유엔아동권리협약이란 법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나요?

우리의 권리란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려 줍니다. 또 우리가 행복하고 건강하고 안전하게 살 수 있도록 우리를 책임지는 어른들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알려줍니다. 물론 우리 자신에게도 다른 아이와 어른들도 똑같은 권리를 가질 수 있도록 도와야 할 책임이 있습니다.

협약(조약)이란 같은 법을 지키자는 나라들 사이의 약속입니다. 한 나라의 정부가 협약을 ‘비준한다’는 말은 그 협약에 쓰여진 법을 지키겠다는 뜻입니다.

우리나라는 1991년 11월 20일에 유엔아동권리협약을 비준했습니다. 이 말은 우리의 정부가 이 협약에 적혀있는 권리를 모든 아동과 청소년이 누릴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이 협약의 각 조항들은 우리의 권리를 하나씩 설명하고 있습니다. 협약은 법률가들을 대상으로 쓰여졌기 때문에 어른들도 이해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이제부터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조항들을 골라서 쉬운 말로 설명해 보려 합니다.

우리에게는 우리의 권리가 무엇인지 알 권리가 있습니다. 이 협약의 제 42조에 그렇게 쓰여 있습니다.

제1조
18세가 되지 않은 모든 어린이와 청소년은 이 협약에 적혀있는 모든 권리의 주인이다.

제2조
우리가 누구이든지, 우리의 부모님이 누구이든지, 그리고 백인이건 흑인이건 간에, 남자이든 여자이든 간에, 영어를 쓰든지 한국어를 쓰든지 서울말을 쓰든지 사투리를 쓰든지, 무슨 종교를 믿든지, 또한 장애인이건 아니건, 부유하건 가난하건 간에 상관없이 우리 모두는 이 협약에 적혀있는 권리를 가지고 있다.

제3조
어른이 우리에게 해 주어야 하는 것이 있을 때, 그 어른은 최선의 것을 주어야 한다.

제6조
모든 사람은 우리들, 아동과 청소년 모두가 생명을 누리고 건강하게 살아갈 권리가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제12조
어른이 우리에게 어떤 방식으로든 영향을 주는 결정을 내릴 때 우리에겐 우리의 의견을 말할 수 있는 권리가 있다. 그리고 어른은 우리의 의견을 진지하게 받아들여야만 한다.

제13조
우리는 말과 글과 예술 등을 통해 여러 가지 것을 알고 우리 생각을 말할 권리가 있다. 하지만 다른 사람의 권리를 해치지는 않는지 잘 생각해서 해야만 한다.

제14조
우리는 우리가 원하는 대로 생각할 권리가 있고, 우리 자신의 종교를 정할 권리가 있다. 부모님은 무엇이 옳고 그른지 배울 수 있도록 우리를 도와주셔야 한다.

제15조
우리는 다른 사람들을 만나서 사귀고 모임을 만들 권리가 있다. 물론 다른 사람에게 해를 끼치기 위한 모임은 안 된다.

제16조
우리는 사적인 삶(프라이버시)을 누릴 권리가 있다.

제17조
우리는 라디오, 신문, 텔레비전, 책 등을 통해 세계 곳곳의 정보를 모을 권리가 있다. 어른들은 우리가 이해할 수 있는 정보를 얻을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한다. 

제18조
우리의 부모님은 우리를 기르는 노력을 두 분이 함께 해야 하고, 우리에게 최선의 것을 해 주어야 한다.

제19조
아무도, 어떤 식으로든 우리를 해쳐서는 안 된다. 어른들은 우리가 매 맞거나 무관심 속에 내버려지게끔 놔두지 말고 우리를 보호해줘야 한다. 우리의 부모님에게도 우리들을 해칠 권리가 없다.

제22조
우리가 망명자인 경우, 우리는 특별한 보호와 도움을 받을 권리가 있다.

제23조
우리가 정신적으로나 신체적으로 장애인인 경우, 다른 아이들처럼 자라날 수 있도록 특별한 보살핌과 교육을 받을 권리가 있다.

제24조
우리는 건강할 권리가 있다. 우리는 아플 때 전문적인 치료와 보살핌을 받을 수 있어야 한다. 어른들은 우선적으로 우리가 아프지 않도록 먹이고 보살피는 데 최선을 다해야 한다.

제27조
우리는 적절한 생활수준을 유지할 권리가 있다. 부모님은 우리에게 먹을 것, 입을 것, 살 곳 등을 주어야 하고 만일 부모님이 어렵고 힘든 경우에는 나라에서 부모님을 도와주어야 한다.

제28조
우리는 교육을 받을 권리가 있다. 초등교육은 무료여야 한다. 또한 그 이상의 교육에도 무료 교육을 도입하여 우리 모두에게 기회가 주어질 수 있게 해야 한다. 학교 규율은 우리 모두가 귀한 사람이라는 데 어울리는 것이어야 하고, 뭐든지 이 협약에 맞도록 운영돼야 한다.

제29조
우리가 교육을 받는 것은 우리가 가진 사람됨, 재능, 정신적·신체적 능력을 맘껏 키우기 위해서이다. 또한 교육을 통해 우리는 자유로운 사회에서 다른 사람들의 권리를 이해하고, 깨끗한 환경을 생각하며, 책임질 줄 알고, 평화롭게 살아가는 법을 배워야 한다.

제30조
소수집단(예를 들어 미국의 인디언이나 우리나라의 이주노동자에 속하는)의 아동과 청소년에게도 자신만의 문화를 즐기고, 자신들의 종교를 믿으며, 자신들의 언어를 사용할 권리가 있다.

제31조
우리에겐 쉬고 놀 수 있는 권리가 있다.

제32조
우리가 일을 해서 돈을 벌 때는 건강에 안 좋거나 학교에 가지 못할 상황에서 일하지 않도록 보호받아야 한다. 우리가 일을 해서 누군가 돈을 번다면 우리는 우리가 일한 대가를 받아야 한다.

제34조
우리는 성적 학대로부터 보호받을 권리가 있다. 아무도 우리 몸에 우리 자신이 원하지 않는 것을 할 수 없다. 곧 누군가가 함부로 우리 몸을 만지거나 사진을 찍거나 말하고 싶지 않은 것을 말하게 할 수는 없다.제37조우리가 큰 잘못을 저지를 수가 있다. 잘못을 하면 벌을 받아야 하지만 그렇다고 우리에게 심한 창피를 주거나 상처를 주는 벌을 내릴 수는 없다. 최후의 방법인 경우를 빼고는 우리를 감옥에 들어가게 해서는 안 된다. 만일 감옥에 들어갔을 경우 우리는 감옥에서 특별한 보호를 받을 권리와 정기적으로 가족을 만날 수 있는 권리가 있다.

제38조
우리는 전쟁이 일어났을 때 보호받을 권리가 있다. 15살까지는 절대로 군대에 들어가거나 전쟁에 참여해서는 안 된다.(이 나이는 나중에 만들어진 국제협약으로 18세로 바뀌었다.)

제40조
우리가 범죄를 저질렀다는 혐의를 받을 경우, 우리 자신을 보호할 권리가 있다. 경찰과 변호사와 법관은 우리를 존중하여야 하고 모든 일을 우리가 이해할 수 있게 해 주어야 한다.

제42조
모든 어른과 아이는 이 협약에 대해 알아야 한다. 우리는 우리의 권리에 대해 배울 권리가 있고 어른들도 역시 이 권리들에 대해 배워야 한다.

아동권리협약에는 모두 54개 조항이 있는데, 나머지 조항들은 모든 아동과 청소년이 자신의 권리를 가질 수 있으려면, 어른들과 정부가 어떻게 협력해야 하는지에 대해 얘기하고 있습니다.

협약을 직접 읽어보는 것도 좋을 것입니다. 친구들, 부모님, 선생님과 협약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어 보세요. 다른 사람들에게 아동․청소년의 권리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은 곧 다른 아이들을 돕는 일이 됩니다. 아동과 청소년이 권리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더 많은 사람들이 알게 될수록, 사람들은 모든 아이가 건강하고 안전하고 자유롭게 자라나기 위해 해야 할 일들을 도와주려고 할 테니까요.

덧붙이는 글
류은숙 님은 인권연구소 '창' 연구활동가 입니다.
수정 삭제
인권오름 제 211 호 [기사입력] 2010년 07월 14일 21:03:07
저작자 표시 비영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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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공현
걸어가는꿈2010.07.18 02:38

아수나로 신입회원 분들을 위해 쓴 기본 소개


◐ 이건 기본!



1) 청소년인권 문제는 사회 문제입니다.

우리는 흔히 청소년인권 침해 앞서, 그 순간에 인권침해의 가해자 역할을 맡고 있는 사람(교사든 부모든 어른이든 다른 청소년이든 경찰이든...)들이 개새끼들이라고 생각하거나, 아님 거기서 좀 나아가서 ‘어른들의 꼰대의식과 편견’이 문제라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하지만 청소년인권 문제는 ‘사회문제’입니다. 청소년인권 문제는 신체적 사회적 약자인 어린이․아동․청소년들을 이 사회가 어떻게 대하고 있느냐 하는 데서부터 비롯됩니다. 또는 이 사회가 어린이․아동․청소년(미성년자?)들을 규정하는 데서부터 시작합니다. 청소년인권 문제의 원인은 어느 개개인의 의식이나 편견이 아니라, 가정과 학교 등 사회구조들입니다. 개개인의 의식은 그런 사회구조에서부터 형성된, 그러면서도 그 사회구조를 이루고 있는 한 요소입니다. 많은 사람들, 대다수의 사람들이 청소년들에 대해 특정한 생각을 공유하고 있는 것도 사회적인 문제겠죠?

그렇기 때문에 청소년인권 문제는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인 의제(이슈)입니다. 이건 단순히 누가 헌법을 지키느냐 안 지키느냐, 국제인권조약(「유엔아동권리협약」이라거나;)을 지키느냐 안 지키느냐, 하는 문제가 아닙니다. 지금 여기 청소년들의 삶과 관련된 사회제도, 경제구조, 사회적 의식 등을 어떻게 바꿀 것이냐 하는 문제입니다. 아수나로는 비정치적인 운동이 아니라 아주 정치적인 인권 운동을 하고 있습니다.



2) 행동만이 사회를 바꿀 수 있습니다.

이런 사회문제인 청소년인권 문제는 가만히 기다리거나 불평만 한다고 해서 바뀌지 않습니다. 어느 개개인을 설득하는 것만으로도 바뀌지 않습니다.(물론 개개인을 설득하는 건 과정에서 필수적!) 사회를 바꾸기 위한 행동이 필요합니다. 이 행동이란 기존의 사회 구조, 제도, 사람들의 인식 등에 문제제기하고 불복종하고 그런 것들을 흔들고 균열을 내는 활동입니다. 인터넷에서든 집에서든 거리에서든 토론회장에서든 언론을 통해서든, 공적으로 이야기하고 공론화(이슈화)시키고, 행동으로 보여주고, 공개적으로 우리에게 기존 사회가 요구하는 행동을 거부하고 다른 행동을 하고… 이런 것들입니다. 지금의 현실과는 다른 생각, 다른 꿈을 이야기하고 바꾸자고 주장하고 또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그런 행동에 같이 하게 만드는 것, 자기 인권을 얘기하며 행동하는 청소년들이 세력을 이루는 것이 사회를 바꾸는 힘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청소년인권‘행동’ 아수나로입니다.

아수나로 게시판에서 보면 아수나로가 ‘온라인이 아닌 현실에서의 행동’을 강조하는 경향이 좀 있다고 생각하기 쉬운데요. 이건 인터넷 카페나 게시판에서 자기 불만만 막 싸질러놓는 분들 때문에 생긴 약간의 노이로제 때문…(퍽!) 자기가 살고 있는 일상 속에서, 학교에서, 집에서, 동네에서의 행동이 중요한 건 맞습니다. 하지만 온라인도 중요한 홍보․소통의 장인 것도 사실이고 아수나로는 온라인도 꽤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다만 온라인 게시판에 글을 주구장창 올리는 것만으로는 아무것도 바뀌지 않을 거라고 이야기하는 것뿐입니다.



3) 아수나로는 비정부, 비영리 청소년인권단체입니다.

아수나로는 비정부, 비영리 청소년인권단체입니다. 흔히들 NGO라고 부르죠? 아수나로는 정부기구가 아니고, 국가인권위원회도 아닙니다.(가끔 혼동하시는 분들이 진짜 있음!) 아수나로가 무슨 경찰처럼 법적 권한을 가지고 있는 것도 아니기 때문에 아수나로 와서 카페 회원 분들이 아무리 신고를 하고 살려달라고 하셔도 저희는 살려드릴 힘이 없습니다. 그저 직접 청소년인권 보장을 위해 활동할 의지가 있는 사람들이 모여서, 같이 행동하고 요구하고 주장할 뿐입니다.

아수나로는 가능한 한 정부-국가권력과 기업-자본권력으로부터 자유롭게 청소년인권을 주장하고 활동을 하려고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웬만하면 정부와 기업의 간섭을 받을 소지가 있는 후원금이나 프로젝트는 받지 않습니다.(물론, 주지도 않습니다. ㅋㅋ 아 잠깐 눈물 좀 닦고…) 가끔 국가인권위원회를 통해 청소년인권 관련 사업을 같이 하는 프로젝트에 참여하거나 공익재단 등을 통해서 기금을 받는 일이 있는 정도입니다.



4) 청소년‘선도’운동과는 안 친합니다.

보통 ‘청소년운동’이라고 하면 청소년들에게 뭐 담배 피지 말아라, 성관계하지 말아라, 탈선하지 말아라, 가출하지 말아라, 이런 것들을 의미했습니다. 말하자면 청소년‘선도’운동입니다. 아수나로는 청소년을 어른의 관점에서 훈육 대상으로 보아 ‘지도’하고 ‘계몽’, ‘규제’하려 드는 청소년선도운동과는 사이가 나쁜 편입니다.

아수나로는 청소년 당사자들이 주체적으로 자신들의 인권 문제를 이야기하고, 주장을 이야기하고, 행동함으로써 사회를 바꾸려고 하는 단체이기 때문에 청소년보호주의, 청소년보호법 등에 비판적으로 접근합니다. 아수나로는 “왜 청소년들에게는 술 담배가 금지될까?” “왜 청소년들은 섹스를 하면 안 된다고 하지?” “청소년들은 왜 가족에게 매여 있어야 할까? 가출이나 독립은 권리가 아닐까?”라고 묻고 청소년인권의 관점에서 이런 이야기들을 새롭게 풀어내는 사람들입니다.

(가끔 아수나로에 와서 금연운동이라거나 청소년보호법 뭐시기 하자는 분들이 있어서… 아수나로에선 청소년보호법 폐지하자는 이야기도 가끔 하는데;;)



5) 아수나로 안에서는 평등한 관계를 추구합니다.

아수나로에 처음 온 사람들이 많이들 당황하는 게 존댓말/반말 문제입니다. 아수나로는 나이가 많은 사람이 나이가 적은 사람에게 당연히 말을 놓는 문화가 나이차별적이고 인권침해적인 문화라고 생각합니다. 나이와 무관하게 친해져서 서로 편한 사이가 되고 서로 동의했을 때 말을 놓고 반말을 하는 게 평등하고 인간적인 관계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아수나로 안에서는 초등학생과 30대가 말을 놓고, 19살이 14살과 서로 존댓말을 합니다. 우리는 서로 평등한 인간으로 만나야 하지, 나이에 따라 ‘윗사람’ ‘아랫사람’으로 만나선 안 된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나이뿐 아니라 다른 여러 가지 면에서 아수나로는 기존의 사회 질서와는 다른, 인권적인 문화와 질서를 추구합니다. 아수나로 안에서는 학교 성적이 좋다는 것은 자랑이 될 수 없습니다. 학벌이 좋은 학교에 다닌다는 것, 돈이 많다는 것은 자랑이 되어선 안 됩니다. 오히려 그럼으로써 자신이 가지고 있는 사회적 힘을 반성하고 조심해야 할 일입니다. 여성과 남성 사이의 성역할에 대한 고정관념(여성은 머리가 길고 남성은 머리가 짧다든지, 여성들이 청소를 더 잘한다든지 등등)이나 외모에 대한 차별, 성소수자를 생각지 않는 문화(간단한 예로 여성에게 “애인 있어요?”라는 말을 “남자친구 있으세요?”라고 묻는 건 그 사람이 당연히 이성애자일 거라고 가정한 질문이겠죠?;) 등은 우리가 모두 바꿔나가야 할 것들입니다. 아수나로에는 이런 것들을 침해하는 반인권적 행위를 예방하고 혹시 이런 일이 일어났을 때 대처하기 위해 「반인권적 행위 내규」가 있습니다.

※ 장애인/빈곤층 접근권 등도 최대한 고려해야 하지만 기존의 사회적 조건과 아수나로의 가난함 등 때문에 여러 어려움이 있습니다.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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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공현
걸어가는꿈2010.06.28 10:58



격월간 사람에서 기본소득과 청소년 토론회에 쓴 원고를 수정하여 다시 싣고 싶다고 해서 수정한 거예용.





패륜적 기본소득

공현

  “기본소득”이란, 재산이나 소득, 노동 등과는 상관없이 모든 사회구성원들 개개인에게 균등하게 정기적으로 소득을 지급하는 것이다. 말하자면 모든 사람들의 생계에 필요한 돈을 사회가 균등하게, 무조건적으로 보장하는 보편적 복지 제도라고 할 수 있겠다. 모든 개개인의 계좌에 매달 정부가 30~50만원 정도의 생계비를 입금해준다고 생각하면 이해하기 쉽다. 기본소득은 특히 노동 중심의 사회에서 밀려나고 있거나 차별받고 있는 사회적 약자들에게 더욱 의미 있는 제도이다. 한국의 기본소득네트워크에서는 기본소득이 다양한 사람들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를 밝히며 토론하기 위해 “기본소득과 장애인”, “기본소득과 여성”, “기본소득과 청소년” 등의 주제로 연속적으로 토론회를 열고 있다. 이 글은 6월 19일, 청소년인권행동 아수나로와 기본소득네트워크가 공동으로 준비해서 연 “기본소득과 청소년” 토론회에서 발제한 원고를 고쳐쓴 것이다.


가정에서의 청소년의 지위

  근대 사회에서 청소년, 아동과 깊은 관련이 있는 제도로 학교와 가정을 꼽을 수 있다.(하루 일과 중 많은 시간을 차지한다는 점에서 한국은 ‘학원’도 꼽을 수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그러나 한국 사회에서는 학교에서의 청소년인권 문제에 비해 가정에서의 청소년인권 문제는 잘 공론화되지 않는다. 이는 학교가 제도화된 공적 공간이며 집단적, 조직적 제도인 반면 가정은 사적 공간, 개인적인 것으로 간주되기 때문이다. 학교에서의 체벌과 가정에서의 체벌, 학교에서의 종교 강요와 가정에서의 종교 강요 등을 비교해보면 이런 차이는 쉽게 알 수 있다. 최근에 전교조 교사들이 정치활동을 이유로 대량 해직을 당할 위기에 처한 상황에서 알 수 있듯이 교사의 정치적 자유는 학생들의 미성숙을 이유로 문제가 되지만 아무도 부모나 다른 가족의 정치활동을 문제 삼지는 않는다.
  법 제도부터 보자. 민법에는 친권의 효력으로 친권자가 청소년을 보호, 교양할 권리의무(913조), 청소년의 거주지를 지정할 권리(914조), 징계할 권리(915조), 재산 관리권(916조) 등을 명시하고 있다. 청소년의 입장에서 이야기하면 부모, 후견인 등의 친권자가 정하는 곳에서만 살아야 하고, 친권자의 가치관에 따라 교육을 받아야 하며, 친권자에게 자의적으로 체벌이나 용돈 끊기, 외출금지 등의 징계를 당할 수 있으며, 재산권을 가지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몇 년 전에 개정이 되긴 했는데, 민법의 친법 관련 조항에는 “자식은 친권자에게 복종해야 한다.”라는 조항이 있었다.
  이는 단지 법 규정만의 문제가 아니라 실제 생활에서의 문제이다. 극단적인 예로, 동성애자라는 이유로, 성적이 잘 안 나온다는 이유로 친권자에게 체벌을 당하다가 죽음에 이른 사건이 일어난 적이 있다. ‘모태신앙’을 비롯해서 가정에서 종교나 정치적 견해를 강요하거나 강압하는 경우는 아주 많다. 개인적인 다이어리나 휴대전화 기록 등을 친권자가 함부로 보고 이를 근거로 청소년들을 통제하는 일, 위치추적 등은 ‘부모의 사랑과 걱정’으로 정당화된다. 어느 학교에 진학을 할 것인가, 어떤 진로를 택할 것인가, 학원을 갈 것인가 등의 문제도 거의 다 친권자의 뜻이 많이 반영된 결정을 하게 된다. 청소년인권운동을 하는 청소년활동가들은 대부분이 가정에서의 반대와 탄압을 경험하게 된다. 물론 청소년 자신의 자발성이 없이 100% 전적으로 친권자의 뜻만을 관철시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친권자 개개인의 성격이나 가치관에 따라 처우가 많이 달라지기도 한다. 하지만 기본적으로 청소년의 삶에 대해 친권자가 가지는 지배력은 상당히 강력하고, 그 지배력을 행사하느냐 하지 않느냐의 선택은 대부분이 친권자들의 성향에 맡겨져 있다. 제도적․문화적 조건만으로 봤을 때는 청소년들은 ‘친권자의 소유물’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사회적 지위에 있는 것이다.
  이런 현실에 대한 비판은 꾸준히 있어왔다. 아나키즘에서는 근대 사회가 “아동을 부모의 부속물로 바라볼 뿐, 아동 역시 자율적 존재로서 자신의 권리를 갖고 있다는 것을 부정”하고 있다고 꼬집어 이야기한다. 꽤 유명한 아나키스트인 바쿠닌 또한 “아동은 그 누구의 소유물도 아니다. 아동은 부모의 소유물도 아니며, 심지어 사회에 소속된 사회적 소유물도 아니다.”라고 말한 바 있다.(「아나키즘과 청소년 해방」. 마크 시버스타인 Marc Siverstein 지음.) 페미니즘 쪽에서도 남성 가부장과 여성 사이의 권력관계에 더해서 아동에 대한 권력관계를 다루는 논의들이 있으며, 우에노 치즈코 또한 세대간의 지배 종료를 페미니즘 운동의 주요 과제 중 하나로 제안했던 적이 있다.


기본소득이 도입된다면?

  이러한 청소년들의 가정 안에서의 지위는 많은 부분 경제적인 종속성에서 비롯된다. 단적으로 표현하면 이런 것이다. “말 안 들어? 그럼 용돈 없어!”, “내 말 듣기 싫으면 나가. 여기가 니 집이냐? 니가 입는 옷 먹는 거 다 누구 돈으로 산 건데?” 용돈 뿐 아니라 의식주 전체를 친권자에게 의지해야 하는 청소년들에게 친권자가 사용할 수 있는 압박의 수단이란 무궁무진하다. “내가 너 키우느라 들인 돈이 얼만데” 등 한국 특유의 높은 보육․교육비 때문에 (좀 넓게 잡은) 중산층 이상의 친권자들이 가지는 투자의식과 주도권 등도 크게 작용하는 요소 중 하나이다.
  그렇기 때문에 기본소득의 도입은 가정 안에서 청소년들의 지위를 바꾸는 데 기여할 수 있다. 우선 기본소득은 가족 단위가 아니라 개개인들에게 주어지는 것이기 때문에 청소년 또한 가정의 경제력의 일부를 담당함으로써 어느 정도 협상력과 발언권을 가질 수 있다. 기본소득의 액수와 사회적 조건에 따라 구체적인 양상에서는 차이가 있겠으나, 일단 자신이 원하는 것을 하기 위해서 친권자에게 손을 벌리지 않아도 될 수 있다는 것은 매력적이다. 보다 독립적이고 덜 의존적인 생활이 가능해지는 것이다. 또한 청소년을 투자의 대상으로 보고 미래에 자신들에게 더 많은 부와 명예를 돌려주기를 바라는 친권자들에게는 투자의 부담이 줄어드는 동시에 자신들의 노인 생활이 어느 정도 보장됨에 따라 청소년을 채찍질해서 사회 상층에 쑤셔 넣을 동기가 어느 정도 줄어들게 된다.
  친권자들도 똑같이 기본소득을 받게 되니까 가정 안에서 경제력의 부담 정도에는 별 차이가 없는 것 아니냐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한계효용체감의 법칙’에 따라, 돈이란 같은 액수더라도 어느 정도 있는 자들보다는 없는 자들에게 더 효용이 큰 법이다. 가정 안에서 가지는 경제력의 비율이 0에서 10이 되는 것은 발언권이나 협상력의 측면에서 많은 차이가 있다. 또한 기본소득 모델에서는 소득이 많은 친권자들은 세금으로 그만큼 더 많은 돈을 내게 되기 때문에 기본소득은 좀 잘 사는 가정 안에서는 경제력의 분배 효과를 가지게 된다.

  여차하면 가출할 수 있다는 것도 청소년들의 가정 안에서의 지위에 틀림없이 영향을 미칠 것이다. 양태에 따라 다르겠지만, 가출은 자신이 원하는 주거를 요구하는 일종의 투쟁이나 보이콧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지금까지는 가출을 해도 주거적으로나 경제적으로나 제대로 살 수 없다는 점에서 가출의 리스크가 컸다. 이 리스크는 가출 후에 어디서 어떻게 먹고 살 것인가 하는 막막함과 정해진 레일에서 삐끗하기라도 하면 낙오자가 된다는 두려움으로 설명할 수 있다.
  기본소득의 도입은 가출의 리스크를 어느 정도 해결해준다. 우선 일차적으로는 최저생계 수준의 소득이 보장되니 가출 후에도 청소년들이 독립적 생활을 하는 것을 가능하게 해준다. 나아가서 기본소득의 도입은 노동시장에 변화를 일으키고 지금처럼 취업을 위해 죽어라 스펙을 쌓아야 하고 낙오되지 않기 위해 바둥거려야 하는 상황을 개선하게 될 것이며, 가정과 학교의 틀에서 벗어나며 감수해야 하는 리스크가 훨씬 작아지게 만들어준다. 여차하면 파업이든 태업이든 할 수 있는 노동자와 그렇지 않은 노동자 사이에 큰 차이가 있듯이, 기본소득은 가출 등 가족의 틀을 벗어난 청소년들에 대한 일종의 사회안전망이 되면서 청소년들의 지위 향상에 기여할 수 있다.
  더 적극적으로는 청소년들의 독립 시기가 빨라지는 것도 기대해볼 수 있다. 지금 주로 청소년들, 그러니까 0~19, 20세 정도까지의 ‘미성년자’들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기는 하지만 친권자의 경제적 지배력이라는 점은 한국 사회에서는 20대 초중반의 사람들 다수에게도 해당하는 이야기다. 생계에 필요한 소득이 어느 정도 보장된다면, 계속 돈을 모아서 주거를 마련하고 친구들과 공동으로 생활하는 방식으로 독립을 시도할 가능성은 훨씬 높아진다. 대학 진학의 보편화에 청년실업이니 어쩌니 하면서 점점 늦어지고 있는 독립이 앞당겨진다는 것은 10대, 20대 전반의 사회적 지위 향상을 뜻한다.
  요컨대 기본소득은 더 이상 기존의 부모-자식 관계가 유지되지 않는 사회적 조건을 만들어내고, 현재의 관점에서 본다면 ‘가족 해체’를 가속화시킬 것이다. 청소년들의 입장에서 본다면 친권자 말 잘 듣고 나중에는 ‘부모의 은혜’에 보답하여 효도하며 사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부담이 크게 덜어지게 된다. ‘부모’와 ‘자식’이 서로에게 의존적으로 살던 관계가 좀 더 독립적인 관계로 나아가는 데 기여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러한 사회로 변화하는 과정에서는 가정 안팎에서의 투쟁을 통해서 지금까지 잘 드러나지 않았던 가정에서의 권력관계들을 공론화하면서 변화시키는 청소년들의 실천이 필요할 것이다. 기존의 사회적 윤리를 파괴한다는 점에서는 실로 ‘패륜적’이다.


문화적 어려움들

  물론 이렇게 단순하게 낙관할 수만은 없다. 청소년들의 가정에서의 지위 문제는 경제적인 문제 외에도 문화적인 문제나 여러 제도적인 문제들에 얽혀 있다. 민법이나 노동법 같은 데부터 넓게 본다면 교육제도나 선거연령, 사회적 인식 등까지도 모두 청소년들의 독립적인 삶에 걸림돌이 될 것이다.
  경제적 토대가 달라지면 상층 구조는 다소 오차가 있더라도 변화하게 되어 있다는 식으로 낙관하는 것은 좀 무책임하다. 기본소득 도입 자체에서부터 사회적 인식과 문화적 요인들이 걸림돌이 될 가능성도 높다. 청소년들이 세뱃돈 압수당하듯이 기본소득을 받자마자 친권자들에게 압수당할 가능성도 있지 않은가? 더 극단적으로 생각해보면, 몇몇 장애인 시설들이 보조금 더 타내려고 장애인들을 데려와서 보조금을 갈취하듯이, 아이 1명을 더 낳으면 그만큼 기본소득을 더 번다고 생각하고 아이를 낳거나 입양하는 친권자들도 나타날 수 있다. 아니면 학생간 폭력에서 ‘삥’을 뜯는 규모가 커지고 아동․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유괴 등의 범죄가 증가하는 일도 상상해볼 수 있다. 이런 극단적인 상황들이 반드시 일어날 것이라고 하기는 어렵지만 가능성이 있음을 인정하고 대비책을 마련하는 것이 필요하다.
  기본소득 도입 초기에는 청소년들의 경제적 판단능력 등에 대해서도 논란이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분명히 청소년들은 (사실은 20, 30대들도 좀 해당) 경제적 주체가 되어본 경험이 없기 때문에, 상상력을 안 좋은 쪽으로 발휘한다면 기업의 마케팅 전략이나 명품 소비 문화 등에 소득을 다 쓸 수도 있다. 지금도 빈곤층 가정의 청소년에서부터 이런 명품 소비, 신제품 소비 등의 모습들이 보이고 있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다. 기본소득이 청소년들의 독립에 기여하기보다는 명품이나 10대 마케팅에 주력하는 기업들의 배를 불리는 데 쓰인다면, 친권자에게 손을 벌려서 그런 소비를 하는 것보다는 낫겠으나, 최선의 결과라고 보기는 어려울 것이다. 이는 청소년들에게 책임을 돌리기보다는 문화적 변화에 더해 어떻게 경제적 주체로서 소비하는 것에 대해 사회구성원들을 교육할지, 이러한 소비 문화의 문제점을 어떻게 극복할지를 계획해야 할 문제이다.


가능성으로서의 기본소득

  기본소득은 액수상으로는 모두에게 같은 돈을 지급하는 것이지만, 모두에게 같은 돈을 지급하는 것이 아니다. 더 빈곤하고 더 종속되어 있는 사람들에게 더 큰 효용이 있는 돈을 지급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언제나 가정/가족 단위로만 묶여서 생각되어왔고 독립된 경제적 능력을 인정받거나 보장받은 적이 없는 청소년들은 기본소득 도입의 이해당사자 중에 중요한 한 축이 될 수 있다.
  기본소득은 전가의 보도가 아니며, 그 자체로 청소년들을 해방시킨다고 할 수는 없다. 다만 기본소득의 도입이 청소년들이 친권자로부터 좀 더 자유롭고 독립적인, 지금의 사회적 시선으로 본다면 ‘패륜적’ 사회로 나아가기 위한 전제 중 하나일 수는 있다. 또한 기본소득의 도입은 사회 전체의 패러다임을 바꾸는 것이고 청소년들의 삶이나 교육에도 커다란 변화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
  물론 기본소득이 도입되는 과정 자체, 그리고 기본소득에서 청소년들(0세~19세 정도)이 배제되지 않게 하는 것 자체가 난이도 높은 운동이 될 것이다. 그리고 기본소득 도입 이후에도 청소년들의 경제적 사회적 독립과 인권을 쟁취하기 위해서는 역시 청소년들의 주체적인 투쟁이 필요할 것이다. 하지만 기본소득 운동과 제도는 최소한 가능성을 열어준다. 그 전까지는 이야기하기도 힘들었던 그런 새로운 사회로 가는 가능성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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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공현
걸어가는꿈2010.06.27 03:35










최저임금은 거의 모든 서민들(부유층 외의 모든 사람들을 포괄하는 의미에서)의 문제입니다. 최저임금 언저리의 임금을 받는 저임금 노동자들 뿐 아니라, 수많은 사람들이 '최저임금'을 기준으로 한 법규들을 놓고 이해관계를 가지고 있습니다.


"기업체 기본급을 정할 때도 기준이 되지만 재난·사고 피해자나 사회변동 희생자, 서민, 사회적 약자 등에 정부가 돈을 지급할 때도 기준이 된다. 이렇게 최저임금을 기준으로 활용하는 주요 법률은 14개, 사안별 제도는 20개로 모두 34개의 법제도에 적용된다."


그러나 최저임금 인상을 요구하는 투쟁은 대체로 고령 여성노동자들이 적극적으로 해왔습니다. 대다수가 청소노동자이고 민주노총 여성연맹 소속 조합원들인 경우가 많은 이 분들은 해마다 최저임금위원회 앞에서 농성을 하고 집회를 해야 했습니다. 민주노총에서 적극적으로 노동자들을 조직하여 최저임금 투쟁을 하는 것도 몇번 있었으나, 몇 년 동안 꾸준히 해오지는 못했습니다.
(참 이런 거 보면, 사람들이 흔히 '여성운동'이라고 하면 최저임금 인상 투쟁 같은 건 생각도 잘 안 할 텐데... 이것도 굉장히 중요한 여성운동 이슈이기도.)



며칠 전에 청소년 노동자들의 최저임금 인상 요구 발표 등에 참여하고나서, "이거가 최저임금 투쟁의 주체들이 더 많이 확대되는 거라고 보이려나?"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얼마 전에는 청년유니온에서도 최저임금과 관련하여 실태조사 결과나 인상요구를 발표하기도 했지요. 그래서 최저임금 인상 투쟁을 주로 해온 여성 청소노동자 분들이 혹시 최저임금 인상 투쟁에 이제 10대, 20대 노동자들이 많이 참여하나보다 생각하실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최저임금 인상 투쟁의 주체들이 넓어져간다는 것은 좋은 일일 것입니다. 하지만 최저임금이 수많은 사람들에게 직접 영향을 미치는 사안이라는 인식 속에서 광범위한 참여가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최저임금 바로 언저리의 저임금을 받으며 일하는 노동자들이 많아지면서 최저임금 인상 투쟁에 참여하는 주체들이 광범위해지고 있다는 것은 썩 좋은 일인 것 같지는 않습니다. 최저임금을 받는 노동을 아무리 열심히 해도 학비는커녕 생활비도 마련하기 어렵다며 최저임금 인상을 요구하는 20대-대학생 노동자들의 이야기를 듣다보면, 올해 최저임금 인상의 목소리가 여러 곳에서 나오는 게 노동운동의 발전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노동조건, 사회환경, 실질임금의 후퇴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을 실감하게 됩니다.

동시에, 누가 '최저임금'을 받게 되는가 하는 문제도 생각하게 됩니다. 여성들, 청소년들, 20대들... 등등등. 지금 사회에서 돈을 벌어오는 '가부장'으로 불리지 못하는 이들 또는 노동의 가치를 폄하당하는 이들이 최저임금을 받는 당사자가 됩니다. 그리고 최저임금 인상 투쟁의 당사자가 됩니다. 최저임금은 인권의 문제입니다.


혹시 기대를 하고 계셨을 분들에게는 죄송한 일이지만, 청소년 노동자들의 조직화는 아직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번에 청소년 노동자들의 최저임금 인상 요구 발표도 서명운동 형태로 이루어진 것이고 실제로 조직되어 있는 청소년 노동자들은 10명도 채 못됩니다. 하지만 그 사람들을 시작으로 해서 청소년 노동자들을 조직화하기 위한 노력은 지금도 현재진행형이니까, 멀지 않은 시일 내에 10대 청소년 노동자들의 조직이 출범할 수 있을 거라고 기대해봅니다. (혹시 좋은 아이디어 있으면 추천을!)





추신 : 그러니까 지금 경총 측에서는 시간당 최저임금을 10원을 올리네 15원을 올리네 하고 있는데, 노동자들이 주장하는 시급 5180원은 별로 많은 돈이 아니라는... 얼마 전에 1만5천원 정도로 최저임금을 정한 호주는, 물가를 비교해도 한국보다 좀 더 비싸거나 식품 등에서는 더 싼 것도 꽤 많고... 쨌든 5180원은 전체적으로 낮은 실질임금을 전제한 상태에서 나온 최소값입니다. =_= 근데 4110원에서 10원 올려서 4120원 하자는 뻘소리를 들어야 한다니. 최저임금 투쟁이 더 쎄져야 하는데 에구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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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공현
걸어가는꿈2010.02.05 17:55


아수나로 이야기

- 청소년인권행동 아수나로 웹소식지

2010년 2월 5일 발간 (4호)


《 인삿말 》

안녕하세요. 청소년인권행동 아수나로입니다. 소식지가 참 띄엄띄엄' 만들어지는 것 같아서... 죄송스러운 마음입니다.
활동하느라 바빠서 그런 거라고 너그럽게 봐주시라고 부탁드리는 것은 좀 요상한 이야기가 되겠지요? 소식지도 엄연히 활동의 일부인데 말이죠. 변명일 뿐입니다. 예 저희는 활동에 게으릅니다. 흑흑.
하지만 더 많은 시간과 예산을 준다면 참 더 잘 만들 수는 있을 것 같은데... 그러니까 요는, 주변에 혹시 노는 집-방-건물이 있어서 아수나로 사람들에게 활동 공간을 안정적으로 내줄 만한 갑부는 없느냐 하는 겁니다.



원래 새해 인사를 드리며 1월 초 정도에는 보내드릴 예정이었는데, 담당이던 분이 장대하게 펑크를 내버리셔서 총회보다도 더 늦게나가게 되었습니다. 전국 총회가 1월 15-17일이었거든요. 참고로 이번 총회는 수원에서 했습니다. 이건 별로 중요한 게아니지만요.
중요한 건, 그래서 이번 소식지에 들어간 각 지부별 활동 소식 등은 12월 말까지의 활동들이라는 겁니다. 차마 다른 지부들에소식지 담당이 펑크를 내서 내는 게 미뤄졌으니 다시 써달라고 부탁할 수가 없더라구요. 이번 소식지 담당인 서울지부야 뭐 그냥 좀갈구면 될 일인데. (소식지는 각 지부들이 돌아가며 담당하고 있습니다.)

어찌 되었건 설날도 다음주고 하니 새해 복 많이 받으시라는 인사는 유효할 것 같습니다.(사람들이 1월 1일에 새해 복 많이받으라거나 새해 어쩌구 하는 인사를 보낼 때마다 생각합니다. 이런 인사는 설날 때 또 할 텐데, 라구요.)
2010년에는, 2009년보다 더 열심히 활동하는 아수나로...는 되기 어렵겠지만, 2009년보다 더 많은 일을 이루고 청소년인권운동을 더욱 발전시켜나가는 아수나로가 되도록 하겠습니다.

(이 소식지에는 2009년 10월 말 ~ 2009년 12월 중순즈음까지의 활동 이야기가 담겨 있습니다.)



아수나로 카페를 통해 받은 회원들의 송년 겸 새해인사

캐롤라인
저는 경기도에 사는데요~ 요번에 경기도 교육감께서 학생인권에 대한 초안을 내셨어요 ^^
그래서 그게 확정이되면 내년부처는 체벌금지, 복장 두발규제 금지, 핸드폰수거금지, 야자 보충수업 자율선택권 등이 주어진데요. 올해 꼭 확정이 되서 학교에서 정말 말뿐이 아닌 진짜 인권을 누려보고 싶네요 ^^ 모두 새해복 많이 받으세요 ^^*

와플
2009년이 저물어가고 2010년이 서서히 다가옵니다. 이번 해도 모두 인권 활동과 시위로 수고하셨고 다음 한 해도 모두 건강하시고 새해복 많이 받으세요. 다음 해에는 꼭 청소년 인권을 누렸으면 합니다-.
라고 하면 될까요.

서휘
새해가 다가오고있군요,
가면 갈수록 점점 나아가는 세상이 눈에 들어오고있다고 생각합니다.
적어도 여기 저를 포함한 모든 아수나로분들과, 아수나로의 '생각'을 가지신 모든 분들은 점점 늘어날테니까요,
세상은 즐거워야합니다. 세상은 아름다워야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아름다운 세상을 위한 2010년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용용
오랜만에(?) 의미있는 한해였어요. 아수나로를 알게 됐고, 나와 학교, 현실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게 됐고, '소수'의 아픔을 생각하게 됐거든요.(이것들이 학교에서 배운 몇 년치 지식보다 훨~씬 값지다고 확신함.)
그리고 고마워요. 내가 삐뚤어진 게 아니라 사회가 그렇다는 걸 가르쳐준 모든 사람들에게^^
내년에도 잘 부탁드려요:) 모두 함께하는 행복한 저항을 꿈꾸며..

꿈꾸는나무
인권조례가 꼭 통과되었으면 좋겠네요. 방금전에 학부모단체가 반대한다는 뉴스읽고왔는데 마음이 착잡하네요...요번한해는 참많은일이 있었던것 같네요..내년에는 좋은일이 생겨났으면 좋겠어요 ^^
아수나로 여러분들 모두 새해복 많이 받으세요~

본ㅇ라예ㅃ
말뿐인 학생 인권조례가 아닌 실질적으로 학생의 인권을 보장해주는 그런 인권조례가 전국적으로 발의되길 기원해봅니다:]
새해 복 많이받으세요~




아수나로 지부들 소식~


아수나로 경남중부지역모임 소식

10월
31일  전교조마산중등지회가 주관한 학생의 날 행사에 아수나로 경남중부 활동가들도 함께했어요.
밤의마왕이 전교조 교사분과 함께 공동사회를 맡아서 1부 행사를 진행했고, 1부 전체행사에서 아수나로가 만든 '그린마일리지' 동영상을 상영했어요. 2부 개별 행사에서는 교실 하나를 빌려서 그린마일리지, 휴대전화조례와 학생인권에 대해 마산지역의 청소년들과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냈어요.
다트로 풍선맞추기 게임을 진행했는데, 사람들이 문제를 맞히는 것보다 상품으로 나온 초코바에 더 눈독을 들였었죠ㅎㅎ;
그린마일리지, 휴대전화조례 등 좀 지루하지만 매우 공감하는 내용들을 재밌게 다루려고 노력했는데 그 부분에 있어서만큼은 성공한 것 같다는 평가를 해봅니다.

11월
14일  수능이 끝난 지 이틀째인 놀토에 전교조 마산중등지회와 함께 입시폐지대학평준화를 기원하는 자전거행진을 했어요. 마산 경남대학교에서부터 창원대학교까지 약 20여 km를 달렸어요. 사전에 참가자들에게 안전교육이 좀 미흡했던 점이 아쉽긴 하지만 시민들에게 입시폐지대학평준화라는 걸 알릴 수 있었던 계기가 되었어요.
21일  진주에서 있었던 전교조 경남지부 서부지역 참교육실천대회에 밤의마왕 활동가가 갔다 왔어요. 원래 참교육실천대회가 전교조 조합원 교사들의 행사인데 밤의마왕님이 갔던 학생자치분과에는 교사 세 분, 청소년 열 몇 분 정도 있었어요. 그나마 교사 세 분 중에 두 분은 도중에 가셨고 청소년들이 점거한 상황에서 교복, 휴대전화, 그린마일리지 등 학생인권과 관련한 이야기를 나눠봤어요.
밤의마왕님이 참교육실천대회 때문에 진주에 가있던 동안 포알, 비를사랑한소금인형님은 부활을 꿈꾸는 부산지부를 지원하기 위해 부산에 갔었어요. 부산지부의 새로운 얼굴들을 보며 좋았다가 모임 장소였던 '민들레영토'의 후덜덜한 차값과 상술에 움찔했다는 소문이 있어요.
22일  좀 많이 늦은 가을소풍을 마산 팔용산으로 다녀왔어요. 팔용산이 낮아서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했지만 다들 참 많이 힘들어했어요. 무슨 극기훈련이라도 간 것 같았달까. 어쨌든 정상을 넘어 내려가다가 그 유명한 수 백 수 천 개의 돌탑들을 보면서 내려왔죠. 그리고 맛있는 아구찜을 함께 먹었답니다.
그 후로 절대 소풍은 산으로 가지 말자는 결의를 했었다죠 ㅋㅋㅋㅋ

12월

5일  전교조 경남지부 중부지역 참교육실천대회에 술달, 밤의마왕님이 놀러갔던(?) 것 말고 딱히 다른 활동은 없이 잠시 동안의 휴식기를 보냈어요. 27일에 있을 송년회 겸 송별회 겸 신년회 겸 생일인 활동가 생일축하 겸 시험붙은 활동가들 축하 겸 등등 이런저런 일들을 기념하는 경남중부지역모임 1박2일 총모임을 알차게 보내기 위해 체력을 보충하는 중이지 않을까요?




아수나로 광주지역모임 소식
아수나로 광주지부는 왜 사람이 안모일까요?
1. 광주의 어느 도시보다 심한 교육열
2. 비정기적인 모임
3. 박고형준 활동가의 무책임?

방긋! 한 해가 저물어가도 변함없이 굴러가는 광주지부입니다.
요즘은 격주1회 정기모임을 갖지며, 다시 발을 뒹굴고 있어요.
올해는 제발 개인 활동가가 독식하지 않고 지부로서 당당히 활동해야 하는데 힘을 주시길 바라고 바라며, 2009년 10~12월동안 대표적으로 활동했던 일들을 적어봅니다.

10월
일제고사 거부 체험학습 - 무등산 의재 문화 유적지 다녀왔어요. 일제고사 안보고 학교 안가는 것도 좋았지만, 무등산에서 짜장면 시켜먹었는데 왕 good~~

11월
입시폐지 대학평준화 선전활동 - 매년 수능 즈음, 한국사회 고리타분한 입시문제를 집중적으로 알리는 행사인데, 올해는 유난히 춥기도 하고 사람도 많이 안 나오고 안타까웠지요. 하지만, 대학평준화 되는 그 날까지 2010년에도 파이팅 할거예요.

학생의 날, 학생인권실태조사 기자회견 및 행사장 테러 - 11월3일은 학생의 날, 80주년을 맞이하여 광주에서 기념식을 열었어요. 당일 11시 광주일고 정문 앞에서 학생인권실태조사 기자회견을 갖고, 재빠르게 기념행사장으로 가서 안병만 장관을 향해 학생인권 민원을 건내려고 하는데 전경들에게 가로 막아 몸싸움을 벌렸는데요. 결국 안병만 뒷문으로 도망가고, 다른 공무원에게 우리 의견을 전달해줬다는…

12월
학생인권조례 제정을 위한 공청회 - 2005년 즈음, 전국에서 광주가 제일 먼저 학생인권조례 제정운동에 앞장섰지만, 실패의 맛을 보았죠? 다시 광주에서 아수나로를 중심으로ㅋㅋㅋ 그 이하(시민사회단체) 모여 학생인권조례 운동을 펼치고 있고, 12월 22일 두 번째 공청회를 가졌답니다. 아마 2월말, 장휘국 위원께서 시교육위원회에 발의할 예정랍니다. 경기도와 함께  관심 가져주세요.





아수나로 부산지역모임 소식



11월
21일 모임 : 이날은, 경남 <부산지부활성화> 이후 첨으로 신입회원님들, 경중지부님들과 안건토의 보다는 처음 오신 분들과 친목도모를 하자는 취지에서 모임을 가졌습니다. 수능 끝난 후 돌아온(?) 기존회원들도 참석을 했구요.
28일 모임 역시, 별다른 안건 없이 다음 모임 날짜와 자기소개의 시간을 가졌습니다. 아직까진 다들 어색한 분위기 였구요ㅋ 덕분에 침묵의 시간이 길었던......

12월
12일 모임에서 원래는 “죽은시인의사회”를 보고 토론을 해보는 시간을 가지려고했지만, 오시기로한 분들이 오시지 못한관계상, 생략 ----> 바로 안건으로 넘어갔습니다.
필요한 담당이 여러개 있지만  우선, 참여인원중에서 공금담당을 정했습니다.
경남부산 공부모임을 "오픈공부모임" 형식으로 해보자고 건의 했구요.
(1월~2월사이에 하기로 다음 모임때 안건에 올리기로 했습니다.)





아수나로 서울지역모임 소식

11월
<2008년 이후 중고등학생인권 실태조사> 활동
  아수나로 서울지부 활동가들에게 이 활동에 대해 물어보면, 모두들 미묘한 웃음을 지으며 "다시는 실태조사 사업 하지 말자"라고 말합니다. ;_;
 8월 말부터 아수나로가 제안해서 다른 청소년단체들과 같이 진행한 <2008년 이후 학생인권 실태조사>(이명박 정부 이후라고 하려다가 좀 그래서 일단 2008년 이후로 했다는. 그리고 '학생인권 실태조사'이긴 했는데 참여자들이 딱 3명 빼고 중고등학생이었고, 질문 내용도 좀 중고생에 맞춰진 부분이 있어서, 중고등학생인권실태조사라고 하는 게 좀 더 정확합니다.).아수나로 서울지부 사람들 대부분이 2달간 이 실태조사의 늪에 빠져 살았지요.(설문지 제작, 전국적으로 도와줄 사람들 섭외,배포, 회수, 결과 입력, 분석, 토론회 준비 등등) 청소년단체들의 주관으로 실태조사를 실시해 학생인권에 관한 자료를 만들어냈다는 점에서 참 의미가 컸던 것 같습니다. 청소년들의 현실을 어른이 해석해준 게 아니라, 청소년단체에서 청소년들이 직접 조사하고 분석해서 해석, 발표한 거니까요.
  동시에, 돈 없는 단체에선 왜 실태조사 사업을 대규모로 하면 안 되는지 절절히 깨닫기도 했습니다. 설문결과를 엑셀과 SPSS에 코딩하는 작업이 장난이 아니더만요. 그 짓을 2000장 가까이를 했더니… 인간으로서 뭔가 중요한 것이 소진되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뭐 노동자들이 다 이렇게 살지 …근데 우리는 임금도 없잖아!" 뭐 이런 기분이었죠. 심지어는 그 시기에 새로 들어온 신입 분들은 모두 다 실태조사 입력부터 했습니다. 그나마 경남지역 조사는 경남지역에서 따로 업체에 맡겨서 해줘서 회원 누구 죽이지 않고 끝낼 수 있었습니다. 돈 없는 단체가 어떻게 회원들을 노동으로 쥐어짜는지 보여준 나쁜 사례입니다.
  그래도 노동한 보람이 있어서 11월 1일에 토론회를 열며 발표한 실태조사 결과는 여러 차례 언론에 보도되었습니다. 학생인권 상황은 '호러블(horrible)'을 외칠 정도로 심각했습니다.
 
두발규제는 90% 이상이 존재한다고 응답, 체벌은 60% 이상이 높은 빈도로 경험, 고등학생의 경우는 자율학습이나 보충수업이60% 정도가 강제… 더군다나 이명박 정부 이후로 입시 등으로 인한 스트레스가 증가했다는 답이 많았고, 2008년 이후로 학생인권 상황이 악화되고 있다고 느낀다는 응답, 현재 정부가 학생인권을 보장하기 위해 전혀 노력하고 있지 않다는 응답도 압도적이었습니다. (자세한 결과는 여기에서 보시면 됩니다.)
  예전부터 안습이었던 학생인권 상황이, 이명박 정부 이후 더 안습이 되어가고 있는 것을 잘 보여주는 이런 결과는 이명박 정부의 교육정책이 학생들의 인권에 악영향을 미친다는 주장을 뒷받침해주는 실증적인 데이터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런 결과들이 청소년인권운동에 차곡차곡 쌓여, 많은 도움이 되었으면 합니다.


<학생인권 보장 7대 요구 민원> 제출
 11월 1일에 학생인권실태조사 결과를 발표했는데, 그냥 발표만 하고 마려니까 좀 아쉽잖아요? 물론 정부에서는 그런 목소리들에귀를 기울이고 알아서 신문도 좀 보고 모니터링해서 대책을 세울 의무가 있지만, 이 정부가 어디 그런 쪽으로 부지런하던가요. 삽질하는 데만 부지런하지.
  그래서 학생인권실태조사 결과를 정리한 것과 함께, 친절하게 지난 9월부터 모아온 학생인권보장 요구 민원을 교육과학기술부에 냈습니다. 우리 참 착하죠? ^^* 학생의 날 하루 전날인 2일, 두발복장자유, 체벌금지,강제야자중단 등 학생인권을 보장하기 위한 7대 요구를 담아 교육부에 민원을 제출했습니다. 전국의 청소년 509명이 이 집단민원에서명하여 함께 참여했습니다.
  그리고 돌아온 답변은 다음과 같았습니다.


<얼어붙은 세상을 녹이는 뜨거운 학생의 날> 행사 진행, 선언 발표(11/3)
 야심찬 기획과는 동떨어지게 어렵사리 준비된 학생의 날이었습니다. 아수나로에서는 나름 하반기 활동으로 야심차게 학생의 날에 전국청소년단체, 청소년인권 지지 단체, 청소년들 등을 모아서 선언을 발표하려고 했는데요. 준비가 늦어졌다거나 다른 단체들에서 참여하지 않았다거나 원래 행사하려고 한 날에 비가 왔다거나, 여하간 이래저래 일이 겹치고 꼬여서 그냥 작은 규모로 진행했습니다.
  뭐 어쨌건 날이 갈수록 암울해져가는 현실 속에, 학생의 날을 맞아서 선언을 발표했습니다. 80년 전학생들이 저항했던 것처럼, 얼어붙은 세상을 녹일 뜨거운 외침이 필요한 사회 아닙니까? 명동 거리를 풍물패와 함께 구호를 외치며 행진하는 퍼포먼스를 가진 후, 두발복장자유, 체벌금지 등 학생인권에 대한 요구와 언론악법 폐기, 교육예산 확충, 4대강 삽질중단 등 거꾸로 흘러가고 있는 이명박 정부에 대한 분노를 담아 ‘80주년 학생의 날 선언’을 발표했답니다.



제3회 입시폐지 대학평준화 전국 행동 "경쟁의 벽을 넘어 당당한 반란을"


 재작년, 작년에 이어 어김없이 돌아온 수능에 맞서 거침없이 입시폐지를 외치는 <입시폐지 대학평준화 문화제>를 서울 보신각에서 진행했습니다. 아수나로 청소년들이 발언도 하고, 입시경쟁에 휘둘리는 한국 교육의 끔찍함에 대해 문제제기를 하는 활동이었습니다. 수능날에는 수능의 문제를 비판하는 기자회견도 열었지요. 간디학교의 학생 몇 분들이 수능반대 1인시위를 했습니다.
 교육운동의 어두운 현실을 보여주듯이, 입시폐지 대학평준화 국민운동본부도 제대로 힘이 실리질 않습니다. -_- 교육운동 교통정리를 아수나로가 나서서 좀 해야 한다는 말이 나올 정도죠. 입시폐지 대학평준화 운동이 제대로 된 운동이 아니라 무슨 수능 맞이 캘린더 사업처럼 되어가는 건 좀 짜증나는 일입니다.
  아참참. 보신각에서 문화제를 하기 전에는 광화문 세종문화회관에서 ‘플래시몹’을 진행했습니다. 3분 정도 가만히 멈춰서있는 플래시몹이었는데요. 경찰이 이 플래시몹이 불법집회라면서 몇몇 사람들을 연행해가는 어이없는 사태가 발생했습니다. 이 때 서울지부의 공현 활동가가 함께 행사를 준비한 다른 활동가와 함께 연행되었고, 청소년 활동가들은 매우 열 받았습니다. 크와앙-! 플래시몹 하느라고 종 한 번 치고 가만히 멈춰 서있었다고 잡아가는 이 더러운 세상, 구세군은 맨날 종 치는데 왜 안 잡아가나 모르겠어요. 혹시라도 벌금이 나오면 특별 후원을 모아야 될지도?


교육정책팀 공부모임 (11/28)
 교육정책팀에서 원래 11월달에 2번의 공부모임을 진행하려고 했는데요. 11월 초에 준비한 것은 노동자 대회랑 겹치고 하면서 참가자가 저조해서 파토가 났었습니다. 그래서 아예 11월 말에 11월 초에 하려고 한 것 등을 합쳐서 진행했는데요. 이명박 정부에서 추진하고 있는 그린마일리지, 학교자율화, 고교다양화300, 대입자율화, 일제고사 등 교육정책들에 대해 알아보고, 그 교육정책의 효과에 대해 짧은 상황극으로 표현하면서 재밌게 놀듯이 공부를 같이 했습니다. 그리고 한국 교육이 대체 무엇이 문제이고 어떻게 바뀌길 바라는지에 대해서 자유롭게 토론하면서 공부모임을 마무리했습니다.
  교육정책팀에서는 그밖에도 탈학교론이나 대안교육, 교육사회학의 재생산 이론 등을 공부하고 아수나로가 바라는 교육의 모습에 대해 논의하는 자리를 가졌습니다. 뭐, 그건 내부 아수나로 회원들이 공개적으로 한 건 아니었지만요.


<교원평가제, 이대로 괜찮은가> 토론회 (11/30)


 노무현 정부나 이명박 정부나, 강력하게 추진하고 있는 교육 정책 중 하나가 ‘교원평가제’입니다. 학생들 중 많은 사람들이 교원평가제가 필요하다고 생각할 것 같은데요. 하지만 지금 국회에서 논의되고 있는 교원평가제는 사실상 교사들을 교육청, 교장교감 입맛대로 통제하고 경쟁시키기 위한 제도에 가깝습니다. 학생들이 교원평가제 도입을 바라는 건 교원평가제가 도입되면 학생들이 좀 더 교육이나 수업에 대해 참여하고 잘못된 교사도 바꾸고 그렇게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기 때문일 텐데요. 교원평가제로는 그런 긍정적 효과를 내기가 매~우 힘들 거라고 생각됩니다. 차라리 아수나로는 1년에 한 번씩 만족도 조사로 교사들에게 점수나 매기는 교원평가제가 아니라, 학생들이 직접 학교운영과 교육과정 구성에 참여하고, 학생들이 좀 더 많은 참여권과 권력을 가진 학교를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교원평가제 대응을 고민하는 교육단체들의 연대체에 아수나로도 참여했는데요. 거기에서 첫 활동으로 토론회를 열었습니다. 아수나로에서도 아즈 활동회원이 토론자로 나가서 교원평가제에 반대하고 학생들의 참여를 보장하는 교육을 요구하는 뭐 대략 그런 요지의 입장을 밝혔습니다. 자세한 건 링크한 글을 읽으세요. ㅎㅎ

 교원평가, 청소년인권의 감수성으로 까칠하게 바라보기 (아즈)


12월

<인권소금> 선정 (12/10)
-12월 10일, 세계인권선언 61주년이 되는 날이었어요. 인권단체연석회의, 국가인권위 제자리 찾기 공동행동 등 인권단체들이 2009년 한 해, 인권을 추락시킨 #$%^#3*@ 같은 녀석들에게 주는 ‘인권추락상’, 그리고 ‘인권의 맛을 돋운 소금들’을 발표했는데요. 이 ‘인권의 맛을 돋운 소금들’, 일명 ‘인권소금’을 청소년인권행동 아수나로가 받았어요! *_* 아수나로 뿐만 아니라 곳곳에서 올 한 해 동안 보이게, 보이지 않게 열심히 활동해온 여러 단체, 개인들에게 수상의 영광이 함께 했답니다. 토닥토닥 잘했다고 주는 상이었던 것 같아요. 모두들 수고하셨어요. 상장과 화분도 받아왔는데 놓을 사무실이 없어서 슬퍼요 ㅠㅠ
  참고로 ‘인권추락상’ 수상은 ‘인권밉상’에 이명박, ‘인권울상’에 현병철(현 국가인권위원장)이 받았다고 하네요. 뭐 당연한 일이지요.


12월 일제고사 반대 활동
 10월에도 일제고사 때문에 고생했는데, 금세 12월 일제고사가 돌아왔습니다. UN사회권위원회에서 일제고사를 중단하라고 권고까지 내려온 상황에, 학교/학생 간 경쟁을 조장하고, 성적으로 줄세우기밖에 더 하는 일이 없다고 이미 알려진 일제고사는 지겹게또또또 찾아왔습니다. 게다가 이번에도 일제고사 날은 12월 23일, 크리스마스 전전날…. 더군다나 이날은 서울지부와 수원지부를오가며 활약(??)하고 있는 난다 활동회원의 생일이기도 합니다. 2년 연속 생일에 일제고사 크리를 맞고 있죠.
  아수나로서울지부는 일제고사 반대 청소년모임 Say No, 일제고사 반대 서울시민모임 등에서 같이 일제고사 반대 활동을 하고 있는데요. 이번에는 12월 17일, 해직교사 해직된 지 딱 1년 되는 날에 국가인권위원회에 집단 진정을 냈습니다. 이 집단진정은 ‘국가인권위원회 제자리찾기 공동행동’에서 국가인권위가 제대로 활동을 하라고 요구하기 위해서 민감한 사안을 선정해서 기획 진정을 하는 활동으로 추진한 것이었습니다.
  청소년들이 직접 ‘일제고사 때문에’ 당한 구체적 인권침해들을 가지고 이것이 인권침해이니 시정하라고 요구하는 기자회견도 진정을 하면서 했습니다. 일제고사 성적이 좋지 않다고 강제보충 시키거나, 일제고사를 거부했다는 이유로 징계 또는 체벌 등을 겪었거나 등등 일제고사로 인한 인권침해 사례를 10건 가량 모아서 아수나로 회원들 중에서 모았지요. 이후에도 일제고사로 인한 인권침해를 호소하는 청소년들이 많으면 2차로 더 많이 모아서 내는 것도 가능할 것입니다.


  이번에 경기도 교육청에서는 학생들에게 일제고사 선택권을 보장하고 학교에서는 학생, 학부모들 의견을 수렴해서 일제고사에 참여할지 여부를 결정하라고 자율권을 보장했다고 하는데요. 실제로 이걸 지킨 학교들이 별로 많지가 않았습니다. 그래서 그런 실태를 경기도지역에서 간단하게 몇 학교나마 조사해보기도 했구요.
  이번 일제고사에서 홍보 아이템은 “1등만 기억하는 더러운 일제고사 당당한 오답을!”이라는 문구가 새겨진 컴퓨터용 수성사인펜이었습니다. 가뜩이나 시험 보는 것도 싫은데 컴퓨터용 수성사인펜까지 새로 사거나 하면 짜증날 테니… ㅋㅋ 오답 사인펜을 들고 오답을 찍어보자는 거였습니다. 반응이 좋아서 다음에도 또 해볼까 생각중입니다. 후원회원 분들에게 하나씩 보내드릴까요?

  23일은 ‘1등만 기억하는 더러운 일제고사’에 맞서서 서울지역수백개의 중학교들 앞에서 1인시위를 했습니다. 그리고 10시부턴 체험학습을 선택한 학생들과 함께 광화문 광장에 개장한 스케이트장에 ‘일제고사 No'라고 적힌 발랄한 헤어밴드를 하고서 스케이트도 타고, 영화도 보고, 문화제도 진행했습니다. 그런데 광화문광장에서 스케이트를 타는데 무슨 “정부 시책에 반대하는 거라서 입장할 수 없다”고 해서 한참 싸우고… “정부시책에 찬성하는 사람만 스케이트 탈 수 있는 더러운 세상!”???? 추워서 실내에서 한 문화제에서는 해직된 지 1년이 넘은 일제고사 해직교사들의 이야기도 듣고, 청소년들이 발언도 하고 공연도 하고… 2년째 온 일제고사 반대 활동을 다시 한 번 돌아보며 쉬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2년이나 해오니까 일제고사 투쟁도, 일제고사 있을 때마다 체험학습 가고 이런 식으로 하는 게 더 이상 별 의미가 없는 것같습니다. 일제고사 때마다 대응하는 활동이 아니라, 이명박 정부의 교육정책, 한국 교육의 경쟁과 차별의 문제점을 종합적으로 문제제기할 수 있는 청소년들의 활동 방법을 아수나로가 고민해서 만들어봐야 할 것 같습니다. 여하간 참 빵꾸똥꾸 같은 일제고사이고 빵꾸똥꾸 같은 이명박 정부이고 한국 교육입니다.





아수나로 수원지역모임(준) 소식

 *프롤로그
멀더 : 여러가지 가시적인 증거로 판단해봤을 때, 수원지역 첫 모임은 2009년 9월 5일에 했던 게 확실해.
스컬리 : 맞아요. 여기, 9명이 모였다고 기록되어 있어요. 그런데 정작 9월 12일 모임 땐 4명밖에 안 왔다죠?
멀더 : 그래, 확실히 그들 기분은 이랬을거야.

*나름 본격(9월)
그래도! 두 번째 모임에 이어 세 번째 모임을 가졌습니다. 세 번째 모임인 9월 19일엔 6명이 왔어요.(햇빛반짝)
이 때까진 처음 만난 분들과 인사하고, 학교 욕하면서 친해지고, 수다 떨고... 이렇게 했었죠.   
9월 27일에는 서울지부에서 진행한 '학생인권 공부모임'에도 참가했었답니다.


*이제 10월
<일제고사 거부 경기문화제> 참가
꽤 공식적인 오프라인 활동은 10월 7일, 일제고사 거부 경기문화제였어요. 매주 수요일에 수원역 광장에서 수원촛불 문화제가 진행되는데 이 날 주제가 '일제고사 반대 문화제'였다죠.
이때 참 오질나게 추웠어 아흑. 그나저나 난다사마는 해금을 켜다니 취향도 고급스러워요, 참.
- 원더러 : 이렇게 신문지를 말아서 불 붙이면 불이 안꺼져요
- 하우 : 전단지 날라간다 ㅠ

일제고사반대 수원역 선전전(10/11)
10월 14,15일에 강제로 치러진(-_-..) 줄세우기 무한경쟁 대략 망할 '일제고사'에 맞서기 위한 캠페인 했어요.
경기지역교육공동투쟁본부(일명 '공투본') 활동가들과 함께 일요일 아침, 수원역에서 피켓팅도 하고, 전단지도 나눠주고, 구호도 외치고, 그랬어요. 일제고사를 향해 거침없이 하이킥
- 자유 : 자 우리 이제 외칩시다. 일.제....(이 부분은 사정상 검열되었어요 죄송해요)

대략 네번째 모임(10/17)

17일 합정역 카페에서 네 번째 모임. "커피를 처음 먹어보다니, 역시 넌 4차원이었어"(라고 난다가 모람에게 얘기함.)
청소년인권강좌를 열어서, 수원지역 청소년들을 더 만나보자!*_*라는 얘기가 처음(?) 나왔어요. 그래서 <청소년, 인권의 빗자루를 타고 날다>라는 이름으로, 원래는 올해 하반기에 청소년강좌를 열어보려 했지만, 조금 미뤄졌다고 합니다.
겨울 방학이나 내년 새학기 중에 수원지역 청소년들 대상으로 고고씽해보면 어떨까~ 하고 요리조리 준비 중이니, 기대해주세요~

학생인권 실태조사 발표&토론회 참가(10/25)
아수나로 서울지부에서 <2008년 이후 학생인권 실태조사>결과를 몇 달 간 고생한 끝에 이 날 발표했습니다. 수원지부에서도 결과를 발표하면서 열린 토론회에 함께 참가했습니다.


*11월

11월 1일, 처음으로 '다산인권센터'란 곳에서 모였어요. 앞으로 다산인권센터에 많이 붙어있을 듯... ('난방 잘 안들어오는 크레타섬 미궁'이라고 모람은 표현했어요.)
곧 학생의 날이 다가오니, 수원역 광장에서 학생의 날 행사를 해보자! 뚝딱뚝딱 준비하는 모임이었습니다.

'얼어붙은 세상을 녹일 뜨거운 학생의 날' 촛불문화제 진행(11/4)

학생의 날을 주제로 수원역 광장에서 84차 수원촛불을 진행했습니다. 광장 주변에다 미리 만들어놓은 전시물도 전시하고, 아수나로에서 만든 '학생의 날 선언'도 발표했어요!

<입시폐지 대학평준화 문화제> 참가(11/14)

11월 14일, 서울 보신각에서 진행된 <입시폐지대학평준화 문화제>에 참가했어요.


*12월(캬하)

12월 5일 다산인권센터에서 모임.
12월 19일 또 다산에서 모임.. 주구장창 모임...
 

*에필로그
 ....자, 지금 여러분이 보셨듯이 수원은 아직 쓸게 그리 많지가 않아요. 지금까지 한 모임도 기틀잡는 거였구, 자체적인 활동도 없었구. 그래도 3개월간 이렇게 지속된게 신기하지 않으시나요? 앞으로 기대해볼만 한 듯 ㅋ
아 맞다 참. 또 있어요
  - 경기도 학생인권조례 제정 관련, 학생참여기획단에 몇몇 활동회원이 참여하고 있고, 앞으로도 학생인권조례가 도의회에 통과될 수 있게, 그리고 학생인권조례의 필요성에 대해 청소년, 시민들에게 홍보하는 역할을 해나가려 하구요.
   - 슬슬 (준)자를 떼고 정식 지부로, 앞으로 어떤 활동을 만들어나갈 것인지 등등에 대한 논의를 하는 내부 워크샵(1/30)을 진행할 예정입니당.
앞으로도 쑥쑥 성장할 수원모임 많이 기대해주세요~




아수나로 인천지역모임 소식
 
- 아수나로 인천지부는 11월 이후로 그다지 활동이 없었어요. 모임이 잘 이루어지지 않았고, 내부를 정비하는 게 좀 오래 걸려서 ^^; 이제 다시 2010년부터 인천지역 학생인권실태조사라거나 여러 가지 활동들을 계획하고 있습니다! 아직 죽지 않고 살아있다구요~~






  더 드리고 싶은 이야기^__^


1. 대전지부울산지부가 활동할 사람들이 없어지면서, 활동이 줄어들면서 휴면 위기입니다. 대전지부와 울산지부를 살려보겠다, 대전/울산에서 적극적으로 청소년인권운동을 해보겠다는 분들을 기다립니다!!
그리고 경북 구미에서 지부를 만들고 싶다는 분이 있습니다. 같이 하고 싶은 분들, 도움줄 수 있는 분들 찾아요~


2. 『2008인권선언 - 얼어붙은 세상을 녹이자!』가 새로 출간되었습니다. 사람생각이라는 인권 관련 책을 주로 출판하는 작은 출판사에서 출판되었구요. 2008년, 세계인권선언 60주년을 맞아서 이루어진 '2008인권선언운동'의 내용들을 담았습니다. 그 중에는 청소년인권선언도 있으니 한 번 구해서 읽어보세요~


3. 이번 제6회 청소년인권행동 아수나로 총회에서 2010년 활동 계획 등이 이야기되었습니다. 2월 졸업시즌 '두부퍼포먼스', 3-4월에 학교들을 찾아다니며 학생들을 만나고 여러 학생인권 문제들을 학교 현장에서부터 싸워나가는 활동, 6월 지방선거를 생각하여 청소년들의 정치적 권리를 주장하는 활동 등등이 있습니다. 계속 많은 관심 부탁드려요~


4. 아수나로 카페 대문, 지겹지 않으세요? 대문을 개편해나가는 과정에서 대문 새 디자인 공모를 실시합니다. 능력 있는 분들의 많은 관심 바래요~~ 이곳 클릭!


5. 용돈에 대한 보고
: 이번 총회에서 전체용돈에 대해 간단한 보고를 소식지에 드리기로 했는데요. 다음엔 좀 더 보기 좋은 틀을 만들어서 보여드리도록 하겠습니다.

- CMS 후원 수입
: 205,680원 (10월) / 191,395원 (11월) / 205,900원 (12월)
- <머리에 피도 안마른 것들 인권을 넘보다 ㅋㅋ> 인세 수입 : 1,000,000원 (12월)

- 정기적 지출로 매달 45,000원이 아수나로에서 활동을 활발하게 하고 있는 활동회원들 중 교통비 등이 꼭 필요한 활동회원들에게 지급되고 있습니다.
- 정기적 지출로 매달 30,000원이 아수나로 내부 게시판과 그밖에 필요한 일이 있을 때 사용하는 계정비(진보넷)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 이번 총회를 하면서 교통비와 식비 등으로 390,750원을 썼습니다.
- 그밖에 학생의 날, 토론회 등을 비롯하여 각 지부들에서 여러 활동을 하는 데 지출이 있었습니다.

 



  아수나로에서 발표하거나 참가한 성명서, 논평, 선언 등

:: <선언> 80주년 학생의 날 선언문  (2009/11/03)

:: <논평> 인권위 축소에 대한 국제사회의 우려에 귀를 기울여라 - 유엔 한국 사회권 심의에서 주요 이슈로 제기되어 -  (2009/11/11)

:: <기자회견문> 대한민국 입시는 혁명이 필요합니다. (2009/11/12)

:: <기자회견문> 세계인권선언 61주년, 대한민국에 인권은 없다 (2009/12/10)

:: <논평> 실효성 있는 경기도 학생인권조례가 조속히 통과․시행되어야 한다 (2009/12/17)





  아수나로, 하실래요?

청소년인권행동 아수나로는 언제나 여러분의 참여를기다립니다. 인권을 찾고 싶은 청소년 분들은 대환영이고, 청소년이 아니더라도 환영입니다. ^^ 
아주 자주 활동에 참여하지 못하시더라도 괜찮습니다. 많은 청소년들이 아수나로 모임에 나오고 다양한 활동에 가능한 만큼만 참여해주시면, 세상은 생각보다는 금방 바뀔지도 모릅니다.
아수나로 지역모임이 있는 곳에서는 지역모임에 참가를, 없는 곳에서는 지역모임을 만들고 활동을 시작해보세요. ^^ 지역모임을 만드는 게 어려우시면 지역모임 없이라도 활동을!

활동하고 싶은 분들은 여길 참고!


아수나로에서 여건상 활동을 하지는 못하지만 돈은 매달 몇천원이라도 여유가 있다 하시는 분들! 그런 분들은 아수나로에 후원을 해주세요.
매달 정기적으로 같은 액수를 후원하는 CMS를 해주실분들은 ▲이름 ▲주민등록번호 ▲계좌번호와 은행 ▲액수 ▲이메일 ▲연락처 ▲주소를 적어서 onlyasunaro@naver.com으로 보내주세요.(이메일, 연락처, 주소 등은 아수나로 활동 소식과 변동사항을 알릴 때, 또는 소득공제용 기부금영수증 등을 발행할 때 필요합니다.)

정기후원을 하고 싶은 분은 여길 참고!

아니면 아수나로 전체용돈계좌(076-018904-02-039 기업은행 최경한 / 곧 변경 예정...)로 직접 입금해주셔도 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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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공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