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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2011.10.27 [나의 대학거부] 4년의 공장 제련기간을 거부한다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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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어가는꿈2014.04.26 01:26

‘아동학대’ 문제, 가족을 ‘지키는’ 것이 아니고 ‘바꾸는’ 것으로

공현


슬 픈 소식이 끊이지 않는 해다. 세월호 침몰로 세 자릿수의 사람들이 목숨을 잃었다. 그 중 적지 않은 수가 청소년이다. 또한 그 바로 전에는 한 고등학교에서 폭행에 의해 학생들이 사망하는 사건이 두 차례, 며칠 간격으로 일어났다. 또 그 직전에는 가정에서의 학대로 인해 청소년이 사망한 사건이 신문 기사와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렸다. 그리고 또 그 얼마 전에는 고등학생이 체벌로 인해 뇌사상태에 빠졌다가 끝내 세상을 뜬 일도 있었다. 청소년인권운동이 청소년들의 죽음을 좇아다니기 바쁜, 우울한 상황이다.

워 낙 침울하고도 충격적이었던 세월호 침몰 사고 때문에 마치 한참 전 일 같지만, 바로 1~2주 전까지만 해도 여러 언론은 “○○ 계모” 등의 제목을 달고 아동학대치사 사건과 그 재판을 보도한 기사들로 전면을 장식했다. 그리고 가해자들에게 내려진 판결이 너무 가볍다며 ‘사형’을 요구하는 시위도 등장했다. 사람들의 분노 자체는 충분히 공감이 가는 일이다. 하지만 이슈가 된 사건의 가해자를 벌하는 방법과는 별개로, ‘아동학대’ 문제를 예방하고 거기에 대처하기 위해서 무엇이 필요한지는 더 많은 이야기가 필요하다. 그 가해자가 특별히 못된 놈이라서 끔찍한 사건이 일어났다는 식의 결론에 멈춰버린다면 ‘아동학대’가 일어나는 구조와 맥락을 보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정부 통계에 따르면 2013년 공식 보고된 아동학대는 6796건이고, 통계에 잡히지 않은 학대는 더 많을 것으로 예상된다. 또한 이 ‘학대’ 기준에 잡히지 않은 다른 숱한 가정 안에서의 폭력과 인권침해도 존재한다. 솔직히 말해서 나는 부모/보호자인 사람들이 사건의 가해자들을 손가락질하기 이전에, 과연 자신들은 ‘학대’를 하고 있지 않은지, 스스로를 먼저 돌아봐달라고 하고 싶다.


청소년은 부모의 ‘것’이라는 전제


이미 방송을 통해 꽤 널리 알려졌지만, ‘아동학대’의 다수는 친부모에 의해 일어난다. 학대의 가해자가 ‘계부모’임을 강조하는 것은 편견을 강화할 뿐이다. 언론 보도 역시 재혼해서 또는 입양해서 잘 살고 있는 사람들은 무슨 죄라고 굳이 “계모”라는 걸 강조하는 것인지, 참 씁쓸한 행태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계부모’의 학대에 더 분노하는 모습에 대해 누군가는 이렇게 꼬집었다. “자기 ‘것’이 아닌 남의 ‘것’을 죽였기에 이리도 반응이 뜨거운 것.”(트위터 아이디 @Ramirezi_ 전(前) 진보신당 청소년위원장)이라고.

물 론 사람들이 의식적으로 그렇게 생각을 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자녀가 부모의 소유물처럼 되어 있는 것과 ‘아동학대’가 가능한 가정 안의 권력관계 자체에 대해서는 사람들이 별로 문제의식을 느끼지 못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이 때문에, 목숨이 위험하거나 죽음에 이를 정도로 잔인하고 특출난 사례가 아니면 사람들은 가정 안에서의 인권침해에 관대하다. ‘아동학대’ 사건의 배경에는 가정 안에서 친권자와 청소년 사이의 권력관계가 존재한다. ‘자기 것’이냐 ‘남의 것’이냐가 아니라, 부모의 ‘것’이라고 생각하는 전제 자체가 문제이다. 어느 부모가 ‘나쁜 주인’인 것만을 탓하지, 부모가 ‘주인’이 되는 상황 자체를 바꾸려 하지 않는다면 ‘아동학대’는 계속될 것이다.


‘청소년에 대한 폭력’을 낳는 조건들을 뿌리 뽑아야

사 정을 명확하게 하기 위해서는 ‘아동학대’라는 말보다는 ‘아동/청소년에 대한 폭력(Violence against Children)’이라는 말을 쓰는 것이 좋을 듯싶다. ‘학대’라는 표현은 마치 정도가 아주 심한 것이나 악의적인 것만을 가리키는 것으로 읽힐 여지가 있기 때문이다. 이 문제가 단순히 정도의 문제이거나 특별히 악한 사람들의 문제가 아니며, 신체적․사회적 약자에 대한 폭력의 문제임을 분명히 하기 위해 ‘청소년에 대한 폭력’이라고 이해해야 한다.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말을 안 듣는 애들은 때려서라도 가르쳐야 한다.”, “매를 아끼면 자식을 망친다.”, “사랑의 매는 폭력이 아니다.” 같은 말을 한다. 동시에, 많은 사람들이 아동학대치사 사건의 가해자들을 강력하게 비난한다. 그런데 이 둘이 종종 같은 사람의 입에서 나온다는 것은 실로 역설적이다. 청소년에 대한 폭력을 허용하는 사회 환경이야말로 ‘학대’를 허용해주는 든든한 ‘빽’이 되어주기 때문이다. 「아동폭력에 대한 유엔 연구(The United Nations Study on Violence against Children: A/61/299)」(2006)는 서두에서부터 “아동에 대한 폭력이 ‘전통’ 또는 ‘훈육’이라는 명목 하에 성인들로부터 정당화되어 일어나는 것을 중단”해야 함을 역설하고 있다.

위 사진[사진 설명] 유럽평의회 체벌금지 캠페인 포스터

“내 아이인데 무슨 상관이냐.”, “남의 집안 일이니 신경 꺼라.”라는 식의 태도. 자식 양육은 친권자가 알아서 할 일이라는 가치관. 그리고 청소년은 미성숙한 존재이기 때문에 친권자에 의해 삶과 권리를 규제당해도 된다는 생각. 특히나, 그 바탕에 좋은 뜻이나 애정이 있으면 괜찮다는 생각. 청소년들은 ‘평등한 인간’이 아니기 때문에 어느 정도 함부로 대해도 좋은 존재가 되어버린 현실. 이런 것들을 뿌리 뽑는 것이야말로 가정에서 청소년에 대한 폭력을 근절하기 위한 첫 걸음이다. 이를 위해서는 자녀에 대한 양육 방식은 친권자의 재량이라고 쉬쉬할 것이 아니고, 모든 체벌을 비롯한 폭력적인 양육 방식에 대한 확실한 금지 선언이 있어야 한다. 그리고 바람직하고 비폭력적인 관계 맺기에 대해 정부가 적극적으로 알리고 교육해야 한다. 우리 사회는 공부 잘 시키는 우등생을 만드는 부모 되기에 대한 책은 많지만 정작 비폭력적이고 인권적인 부모 되기, 부모 자식간 관계 맺기에 대한 논의는 빈약한 곳이다.

올 해 하반기에 시행을 앞두고 있는 「아동학대범죄 처벌 특례법」은 아동학대의 정의를 형법상 폭행이나 상해죄 대상 전반까지 포함함으로써 사실상 가정체벌금지로 해석될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실제로 행정부나 사법부가 이를 그렇게 해석해 줄지는 알 수 없다. 오히려 친권자의 ‘징계권’을 들어 사회 상규상 허용될 만한 수준의 체벌은 정당행위라고 할 가능성이 더 높다. 서울만 해도 서울 어린이청소년인권조례에 의해 가정체벌이 금지되었고 가정에서의 청소년인권 역시 일부 명문화되었으나, 이는 제대로 알려지지도 않고 있다. 진지한 논의와 과정을 통해서 가정 체벌금지를 선언하고 가정에서의 청소년인권 문제를 이야기하는 것부터 출발해보면 어떨까. 가정을 사랑의 공동체가 아니라 경제적 사회적 제도이자 권력관계가 작동하는 공간으로 파악하고 적극적으로 문제제기하는 운동이 필요하다.


집을 나와서 ‘어쩔 수 있는’ 길이 필요하다

같이 활동하는 청소년활동가들 중에는 의외로 가출 경험이 있는 사람들이 많다. ‘집 나오면 고생’이라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장기간 준비까지 해서 가출을 감행한다. 직간접적인 폭력을 당하고 있기 때문에 그런 결심을 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구타이든, 폭언이든, 감금이나 협박이든 말이다. 그러나 세상은 대개 그들의 편이 아니다. 경찰에 신고를 하면 경찰들은 대개 그들을 친권자가 있는 집으로 돌려보낸다. 폭력을 당한다고 호소를 해도 경찰들의 태도는 변함이 없다. 집 나온 청소년은 일단 집으로 돌려보내는 것이 경찰의 의무인 것처럼. 하긴 경찰 입장에선 아주 틀린 일처리도 아니다. 민법에 따르면 친권자에게는 ‘거소지정권’이라는 것이 있고, 친권 상실이 되지 않는 한 친권자에게는 청소년이 있을 곳을 지정할 권리가 있다.

가출 등의 적극적인 탈출과 저항을 시도하지 않더라도, 경찰이 가출한 청소년을 잡아가지 않더라도, 어쨌건 집을 나가서 혼자 살 엄두조차 내지 못하는 것이 지금 우리 사회의 현실이 아닌가.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자신에게 폭력을 가하는 사람이라 하더라도 같이 살아야 하며 버림 받아서는 안 되는 것이 청소년들이 놓인 처지인 것이다. 친권자에게만 전적으로 의존하다보니 삶을 이어가기 위해서는 그 친권자가 폭력을 가하든 어떻든 간에 같이 살아야만 하는 현실. 이판사판으로 혼자 살아보겠다고 집을 나왔다가는 사회의 ‘밑바닥’으로 추락하기 십상이라는 것을 모두 느끼고 있다. 눈에 보이는 ‘가출’이 사회경제적 하층 가정에서 많은 것은 어차피 잃을 것이 별로 없어서일지도 모른다.

‘아 동학대’에 대처하는 제3자들의 입장에서도 비슷한 딜레마가 존재한다. 당장 폭력을 당하고 있는 청소년을 가해자와 떼어놓고 싶어도 그 뒤에 청소년의 삶을 충분히 지원하고 책임질 만한 자원도 없다. 그리고 사회적 시선으로 보나, 법제도적 측면에서 보나, 친권자(특히 친부모)에게서 청소년을 떼어놓는 일을 감히 함부로 할 수가 없는 것이다. 자칫하면 무책임하게 가정을 깼다는 비난을 받을 가능성마저 있다.

다행히도 반복되는 사건과 관련 단체들의 노력으로 새로 제정된 「아동학대범죄 처벌 특례법」은 이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 ‘학대’를 인지하면 바로 임시보호조치를 취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그러나 거기에 필요한 기관이나 예산은 여전히 부족한 실정이다. 그리고 청소년에 대한 가정에서의 폭력을 더 근본적으로 예방하기 위해서는 청소년이 자신의 뜻에 따라 집 밖으로 나와서도 ‘어쩔 수 있는’ 기반이 구축되어야 한다. 청소년이 친권자에게만 삶을 의존하는 선택지 외에도 다른 방식으로도 삶을 꾸려갈 수 있는 사회적 기반을 마련해야 한다. 가정을 넘어선 공동체이든, 임시 주거와 생활이 가능하고 자유롭게 생활할 수 있는 시설이든, 복지제도와 적절한 노동 시스템이든.

나는, 자신을 억압하고 위협하고 폭행하는 사람과 같이 살지 않을 권리는 인권이자 주거권의 일종으로 보장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국제적 인권체계 역시 가족을 보호할 대상으로 보는 관점이 훨씬 강하다. UN아동권리협약은 “부모나 현지관습에 의한 확대가족, 공동체 구성원, 후견인 등 법적 보호자들이 아동의 능력과 발달정도에 맞게 지도하고 감독할 책임과 권리가 있음을 존중해야 한다.”, “아동이 이러한 권리(사상․양심․종교의 자유)를 행사함에 있어 부모나 후견인이 아동의 능력 발달에 맞는 방식으로 아동을 지도할 권리와 의무를 존중해야 한다.”라는 등의 조항을 통해 부모․보호자․가족의 권한을 지나치게 포괄적으로 보장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가족 제도나 친권자의 권한 등에 근본적으로 비판을 가하는 청소년인권운동은 현행의 국제적 인권 기준조차도 바꿔야 한다. 가정·가족은 사회적으로 만들어지고 변화하는 하나의 제도이다. 가족 안에서의 권력관계와 인권침해 문제를 드러내는 데서부터 시작하여, 가족제도 자체를 바꾸는 것. 그것이 가정에서의 ‘청소년에 대한 폭력’ 문제에 대처해가는 길일 것이다.


덧붙이는 글
공현 님은 청소년인권행동 아수나로 활동가입니다.
인권오름 제 390 호 [기사입력] 2014년 04월 24일 11:52: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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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공현
걸어가는꿈2012.11.08 14:51


감옥에서 트윗질하기 어렵다

여주교도소의 서신검열 등에 마주하고

공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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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7일 오전, 여주교도소 고충처리반 직원이 날 찾아왔다. 하는 얘기인즉, 내가 서신검열 대상자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이었다. 접견할 때 직원이 들어와 입회할 수도 있다고 했다. 확정된 건 아니라기에 며칠 뒤에 확정 되려나 생각했는데 바로 그 날 오후 서신을 나눠주는 담당 직원이 와서 공식 통보를 했다. 서신검열 대상자가 됐다고. 그 직원은 자신도 안타깝게 생각한다, 고충처리반과 잘 이야기를 해봐라, 상부의 의지가 반영된 거다 등의 말을 했고, 내가 사유가 뭔지 여러 번 묻자 들고 온 문서를 보여줬다.

문서에 표시된 사유는 수용자 처우 또는 시설 운영에 대해 명백한 거짓 사실을 포함하고 있다고 의심할 만하다는 것, 그리고 소장이 필요하다고 인정한다는 것 이렇게 두 가지였다. 그 이상의 구체적인 설명, 그러니까 내 편지가 무슨 거짓 사실을 담고 있을 거라고 왜 의심하는 건지, 소장은 왜 내 편지를 보는 게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건지 그런 내용을 공식 통보라는데도 전혀 듣지도 보지도 못했다.

면담에서 들은 것은 내가 편지를 통해서 트위터에 교도소 생활에 관한 얘기를 올리고, 국가인권위에 관해 인터넷 언론에 투고한 글에서 여주교도소 얘기를 쓴 게 문제가 됐다는 것이었다. 트위터에 올린 것 중 직접 언급이 된 건 두 개였다. 하나는 보안과장이 바뀌고 나서 주말에 빨래터에서 빨래하지 못하도록 바뀐 것에 대해 쓴 것이었다. 다른 하나는 태풍이 지나가던 날, 공장에서 일을 끝내고 방으로 돌아오니 벽 사이로 빗물이 스며들어 바닥에 물이 고여 있던 것을 두고 "9월 17일 태풍 산바로 또 벽에 비가 샜다. 비가 많이 오고 바람이 많이 불어 벽이 젖으면 안으로 스며드는 거다. 바람 안 불 땐 안 샘… 방수 처리를 어찌했기에; 옆방은 더 심해서 벽이 엉망…"이라고 쓴 것이었다. 고충처리반 직원은 그 트윗을 갖고 "사실이 아니잖아"라고 했다가, 내가 다 사실이라고 딱 잘라 말하자 별 대꾸를 하지 못했다. 내가 있는 방뿐 아니라 여러 방이 비바람이 거셀 때면 벽에 비가 샌다는 것은 이미 여러 직원들도 아는 일이었고, 수용자들이 고쳐달라고 얘기해도 안 고쳐지고 있던 일이었다. 내가 '명백한 거짓 사실'을 쓴 적도 없건만 서신검열에, 접견입회는 대체 왜 하는 걸까?

직원들과 면담을 해봐도 명쾌한 답을 주는 사람도 없고 해서 밖에 도움을 청했다. 천주교인권위원회와 청소년인권행동 아수나로에서 여주교도소로 서신검열과 접견입회 건에 대해 질의서를 보냈다. 이에 대해 여주교도소가 9월 26일에 답변한 것을 10월 4일에야 전달받을 수 있었다. (감옥에선 이런 시간 지연이 불편하다.) 달랑 한 쪽의 내용이었는데, 읽어보니 가관이었다. "유윤종(내 주민등록상 이름이다.)은 정확하게 확인되지 않은 교도소 내부의 사안을 개인 서신 등을 이용하여 과장 또는 왜곡된 표현으로 SNS(트위터)를 통해 유포한 사실이 인정되어" 서신검열 대상자로 지정했다고 쓰여 있었다. 그러니까, 여주교도소가, 공문서로, 내가 거짓말쟁이라고 공식적인 매도를 한 것이었다. 이야말로 '확인되지 않은', '왜곡된 표현'을 유포하는 짓이라 할 만했다. 그뿐만 아니다. 보낸 질의서에서는 서신검열 및 접견입회에 관해 구체적인 사유와 그 사유에 해당한다고 판단한 근거 등을 물었는데, 답변서에서는 구체적으로 어떤 사유에 해당하는지 답을 하지 않거나 판단한 근거를 제시하지 않았다. 그야말로 성의 없고 무책임한 답변이었다.

서신 무봉함에 대한 부적응?

올해 2월, 헌법재판소는 교도소 수용자들이 보낼 서신을 낼 때 봉함하지 못하게 한 형 집행법 시행령이 위헌이라고 결정했다. 사실 이미 형 집행법 등에서는 서신검열을 원칙적으로 금하고 있었으나, 안에 위험물품 등이 들었는지 '보안 검사'를 한다는 명목으로 편지를 봉해서 내지 못하게 하고 있었다. 그래서 교도소에선 원할 때면 얼마든지 내용을 볼 수 있는 실정이었다. 헌법재판소의 결정으로 비로소 교도소 직원들은 수용자들의 서신 내용을 마음대로 볼 수 없게 된 것이다.

내 생각에는 여주교도소가 그런 변화에 아직 적응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아마 여주교도소 직원들은 교도소 안의 일들이 내 편지 등을 통해 밖에 알려지고 SNS에서 유통되는 등의 일이 일어나는데, 자기들이 그걸 전혀 통제할 수 없고 내가 써 보내는 내용을 미리 볼 수도 없다는 게 마음에 안 드는 것은 아닐까? 내가 '과장 또는 왜곡된' 거짓 사실을 쓴 적이 없음을 그들 스스로 잘 알 테고, 의심할 합당한 근거도 없는데 무리해서 검열하겠다고 들이대는 걸 보면 그런 생각이 든다. 그냥 교도소 안의 얘기들이 자기들 눈 밖에서, 밖으로 알려지는 것 자체가 싫은 것 같다는.

여주교도소의 부적응을 보여주는 사건이 또 있었다. 수용자가 법무부에 보낸 서신을 직원이 무단으로 뜯어봤다가 들통 난 사건이었다. 나와 같이 생활하는 수용자 한 명이 지난 9월 24일, 검정고시반 운영과 관련한 청원 성격의 글을 법무부에 보냈다. 그런데 그 편지를 부친 바로 당일, 고시반 담당 직원이 찾아왔는데 법무부에 보낸 내용을 다 알고 있더란다. 이상한 생각이 들어 캐묻자, 그 직원은 서신 수∙발신을 맡은 사회복귀과 직원이 편지를 뜯어보고 말해준 것이라 했다. 물론 검열에 관한 통보도 없이 무단으로 한 것이었고, 진정∙청원 등은 내용을 확인하지 못하도록 돼 있는 지침을 정면으로 위반한 것이었다. 이에 대해 강하게 항의하자 사회복귀과 직원들은 사과했고, 교도소 내에서 조사를 받았다.

그러나 이 사건은 직원이 '실수로' 편지 내용을 봤다고 말을 해서 사과라도 받을 수 있었던 것이다. 만약 직원들이 서신을 걷어가서 우체국에 가져가기 전에 편지를 개봉해 내용을 보고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면? 수용자로서는 알 도리가 없다. 그러므로 과거에 알려지지 않은 다른 경우가 얼마나 또 있었는지는 모를 일이다. 서신 봉함과 무검열 원칙이 자리 잡으려면 더 많은 노력이 필요해 보인다. 최근에 공안수들의 서신을 사회적 물의를 이유로 검열했던 사건 등 무원칙한 서신검열도 사라져야 할 테고.

국가기관의 불법 앞에서

제대로 엄격하게 따진다면, 나에 대한 서신검열은 법률적 근거가 빈약하다. 여주교도소가 든 형 집행법 43조는 검열의 사유를 이렇게 열거하고 있다. "서신의 상대방이 누구인지 확인할 수 없는 때", "「형사소송법」이나 그 밖의 법률에 따를 서신검열의 결정이 있는 때", "제1항 2호 또는 제3호(각각 "수용자의 교화 또는 건전한 사회복귀를 해칠 우려가 있는 때", "시설의 안전 또는 질서를 해칠 우려가 있는 때")에 해당하는 내용이나 형사 법령에 저촉되는 내용이 기재되어 있다고 의심할 만한 상당한 이유가 있는 때",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수용자 간의 서신인 때". 여주교도소가 답변한 "확인되지 않은 교도소 내부의 사안을… 과장 또는 왜곡된 표현으로 SNS(트위터)를 통해 유포"했단 건 사실도 아니지만, 설령 사실성이 있다 해도 이런 사유들에 전혀 해당하지 않는다. 비가 샌다는 이야기가 과장 또는 왜곡이건 아니건, 시설의 안전과 질서를 해칠 리 없잖은가? 접견입회 역시 마찬가지다.

여주교도소가 자행한 불법에 대해 형사고발이라도 할까 뭐 그런 생각이 안 든 것은 아니다. 특히 여주교도소의 답변서를 보니 피가 솟구쳐서, 어디 한 번 내가 뭘 왜곡하고 과장했다는 건지 법정에서 증명해보라고 고발장부터 쓸 뻔했다. 하지만 나는 사법적 방식으로 문제를 푸는 게 그리 바람직한 건 아니라는 신념을 갖고 있다. 그것은 사법부에 대한 약간의 불신, 그리고 사법체계에선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다는 무력감의 경험 등 여러 이유 때문이다. 국가기구의 위법∙탈법이라는, 슬프게도 '익숙한' 모습을 좌시할 순 없지만, 나는 그래도 그걸 법정에서가 아니라 더 민주적인 방식, 아래로부터의 정치 등으로 해결하길 꿈꾼다. 내가 아직 고발하지 않은 이유는, 오직 그것 때문이다.

솔직히 말해 뭐 별로 문제제기하려는 목적의식도 없이 그냥 안에서 겪은 일들, 내가 느낀 것, 생각한 것 등을 쓴 트윗 가지고 이 난리를 피우니 황당하기도 하다. 교도소가 얼마나 그 안의 일이 밖에 알려지고 구설수에 오르내리는 일에 익숙하지 않은지도 알 수 있다. 교도소가 법을 무시하고 자의적으로 힘을 휘두르는 모습을 보면, 법을 어겼다고 여기 갇혀있는 수용자들 입장에선 냉소만 늘어나는 것 같다. 여주교도소가 민주주의 사회의 국가기관에 적합한 곳이 되려면 아무래도 좀 더 분발하셔야 될 듯하다. 우선은 자기들이 수용자들의 서신을 마음대로 볼 수 없다는 것에, 그리고 교도소 안의 일들이 밖에, SNS 등에 알려지고 얘기될 수 있다는 것에 익숙해지는 게 급선무다. 감옥 안에서 트윗질하기, 참 힘들다. 에휴.
덧붙이는 글
공현 님은 청소년인권활동가이고, 병역거부로 현재 여주교도소에서 수감 중입니다. (지지와 응원 편지를 보내실 분은_ 경기도 여주군 여주우체국 사서함 30호 407번 유윤종 / cafe.daum.net/gonghyun)
인권오름 제 321 호 [기사입력] 2012년 11월 07일 0:39:47



원글 링크 : http://hr-oreum.net/article.php?id=2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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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공현
걸어가는꿈2011.12.01 16:43

[나의 대학거부] 못 가는 건지 안 가는 건지 묻지 마라

공기


내가 대학거부를 생각하게 된 시점은 아마 중3 때(2008년) 촛불집회를 겪고 일제고사반대‘Say-No(세이 노우, 아니라고 말해요)’라는 활동을 하게 되면서부터인 것 같다. 그냥 미국산 쇠고기가 먹기 싫었고, 돈 많은 사람들은 한우 먹으면 되지만 가난한 사람들은 미국산 쇠고기를 먹고 젤라틴이 들어간 많은 제품들에 노출되기 때문에 꼭 막아야 한다고 단순하게 생각했다. 그리고 국민들이 이렇게 많이 모이면 무엇인가 바꿔낼 수 있다는 그런 ‘희망’이 내 속에 자리 잡고 있었다.


등교를 거부하고 나서

하지만 촛불은 그렇게 식어들었고 나에게 새로운 활동이 다가왔다. 그때 나는 중학교를 다니고 있던 평범한 중학생이었고, 일제고사를 반대한다는 것은 오히려 거부하기 쉬운 위치에 있었다고도 말할 수 있겠다. 그 지역에서 초등학교를 나오지 않았고 중학교 3학년 애매한 시점에 전학을 간 나는 공부에 대한 의욕도 없고, 내가 왜 이런 걸 주구장창 암기식으로 외워야 할까 지루함의 끝을 달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막상 등교거부라는 행동을 할 때엔 겁이 나서 선생님에게 병결 처리를 받고 그렇게 기자회견장으로 갔다.

그렇게 등교거부라는 것을 치루고 다음날 학교로 돌아가 오엠알(OMR)카드에 ‘Say-No’로 표시하고 신나게 자고 있는 와중에 채점하는 선생님이 나에게 다가와 태클만 걸지 않았어도 그 해에 일제고사는 꽤나 무난하게 지나갔을 꺼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 선생님은 학생부장 선생님을 불러와 나와 대화를 시도했고 결국 담임의 귀에까지 들어가 상담을 받게 되었다. 여기까지 읽은 사람들은 뭐가 대학거부와 이어지는 거냐고 생각할 수도 있겠다. 그날 담임선생님은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공기(별칭입니다)야, 너가 이 사회를 바꾸고 싶다면 더 높은 곳으로 올라가서 바꿔야 하는 거지 이런 식의 행동은 옳지 못해. 지금 이 제도를 만들어낸 국회의원들 교육감 교육의원들 등등 그 위치에 있기 때문에 바꿀 수도 있는 것이고 만들어낼 수도 있는 거 아니니?” 사실 나는 할 말이 없었다. 정확하게 얘기하자면 나를 지킬 무기가 없었다.

잘 살고 있었다

나를 설득할 수 없었기에 선생님도 설득할 수 없었다. 그래서 한마디도 못하고 집에 오니 여러 가지 생각들이 들었다. 내가 보고 있는 것(즉 내가 경험한 것)이나 나와 만나는 사람들을 보니까 사실 학교를 다니지 않아도 잘 살고 있는 것이었다. 자기가 생각하는 나름의 신념이랄까 가치 있는 것이랄까 그걸 두고 움직이고 행동하려는 모습들이 나는 잘못된 것, 이 시기에 해서는 안 될 것이라고 생각되지 않았다.

즉 선생님이 나에게 던진 말은 너도 똑같이 경쟁해서 남들보다 더 높은 위치(권력자)가 되어 사회를 바꾸라는 말인 건데 나는 이 말에 동의하지 않는다. 이것에 대한 이야기는 너무 길어질 것 같으니 이만 줄이지만 선생님이 내던진 이 말 한마디가 당시 나에게 대학을 선택하는 데 있어서 많은 영향을 준건 사실이다.

이런 생각을 하게 된 그해 11월 입시폐지대학평준화라는 슬로건으로 ‘대학을 선택하지 않은’ 사람이 있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대학이란 건 나와 멀어보였고 내 주변 친구들은 이미 그 경쟁의 레이스를 뛰고 있었다. 나는 그 시기에 많은 것을 결정했다. 고등학교를 가지 않겠다는 것과 대학을 가지 않겠다는 두 선택 중 하나는 좌절이 되고 이후에 실현되었지만 대학을 가지 않겠다는 이 선택은 이미 실행되고 있다. 지금도 앞으로도 쭉 이어지길 바라며.

사회의 시선들

하지만 대학을 안 간다는 것은 여러모로 이 사회 안에서 자기 자신에게 무책임한 결정으로 보는 시선이 있고, 대학을 안 간다는 것이 배움 자체를 포기하는 것이라고 연상시키는 것 같은데 어찌 보면 그러한 연상과 시선들은 아마 대학을 가지 않는 것은 곧바로 노동현장으로 간다는 그 다른 경로가 존재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공부 못하면 공장 가서 일해야 한다(공순이 된다)’거나 ‘기술이라도 배워야 먹고 살 수 있다’거나 하는 말들이 이미 이런 경로를 전제하고 있다. 돈 주고 공부하기 싫으면 기술이라도 배워서 사회를 유지시키는 노동을 해야 살아남을 수 있다는 인식이 그것이다.

내가 대학을 갈 수 없었던 이유 중 하나는 등록금을 낼 형편도 안 되며, 학자금을 빌리더라도 갚을 처지도 되지 못하는 형편 때문이었다. 그렇게 빚쟁이로 몰락해버리면 도저히 나 자신을 건져낼 수 없을 것 같았다. 그리고 또 하나는 수능이라는 시스템의 부당함에서 온다. 그것은 정말로 자기가 공부한 만큼 성적이 나온다는 환상과 무관하다. 소위 스카이(SKY)라고 불리는 상위권 대학을 가는 사람들의 대부분은 외고나 특목고를 다니고 강남과 청담 일대에 있는 비싸고 질 높은 학원들에 다닌다. 이미 특권이 주어지는 것이다.

집에 돈도 없고 ‘빽’도 없는 나 같은 사람은 일찍이 이 사회의 대학진학률이 80퍼센트를 넘어가고 있지만 포기하는 게 더 빠를 지도 모르겠다. 이쯤 되면 나에게 대학거부란 거부가 아니라 못 가는 걸지도 모른다. 하지만 ‘너네가 못 가는 걸 왜 거부란 말을 쓰며 거창하게 그러냐?’라는 말에는 분노가 치밀어 오른다. 난 지금의 대학, 내가 선택할 수 없는 대학을 원하는 게 아니다. 하지만 이것은 나의 문제만이 아니기에, 나와 같은 사람들이 너무나도 많기에, 불가능이라고 생각하는 것들을 요구해보려고 한다.

불가능한 것을 요구하자

대학까지 무상교육을 바라며 대학을 가지 않아도 비정규직으로 전락하지 않는 그런 삶을 상상할 수 있으면 좋겠다. 더 나아가 돈을 받으며 공부할 수 있는 세상을 요구하면 좋겠다. 나는 이제 사람들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하는 것을 요구하면 좋겠다. 그렇게 되기 위해서 나 또한 발 빼고 있지는 않을 것이다. 만약 그렇게 된다면 나도 나의 목소리를 애써 용기내지 않더라도 당연하게 낼 수 있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대학을 가지 않더라도, 못 가더라도 온전하게 살아남을 수 있는 공존할 수 있는 세상을 바란다. 그러기 위해 행동했고, 앞으로도 당신들과 직접행동으로 이 사회에 문제를 던지고 싶다.
덧붙이는 글
공기 님은 아직은 하고 싶은 것, 재미있는 것을 더 하고 싶고 추구하고 싶답니다. 대학도 꿈도 스펙도 없는 그냥 그런 사람, 청춘도 아니고 희망도 아니라는 소개를 보내주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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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오름 제 277 호 [기사입력] 2011년 11월 28일 17:39: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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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어가는꿈2011.10.27 07:45

[나의 대학거부] 4년의 공장 제련기간을 거부한다

레쓰



나는 전문계 고등학교 3학년 학생이다. 아니 이제는 학교를 잘린 전문계고 고등학교 학생이다. (졸업을 불과 몇 개월 남겨두고 무단결석이라는 엄청난 행위를 감행하고 있다.) 2008년 촛불집회 이후 계속 여러 인권운동, 사회운동에 참여해왔고, 많은 청소년 활동가들을 만났다. 하지만 입시교육이나 대학에 대해 비판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는 많은 청소년들도, 대학에는 일단 갈 생각을 한다. 나도 기존의 권위주의, 군사문화, 이성애중심주의, 마초 쩌는 이 ‘학교’라는 시스템을 잘 버텼고 수없이 많은 체벌과 욕설 속에서 큰 반항 한 번 하지 않고 나름 길들여졌기 때문이었을까? 얼마 전까지만 해도 그냥 고3인 내 주변에 넘실거리는 입시의 물결 속에 조용히 휩쓸려 수능을 보고, 대학교에 들어갈 줄 알았다.

청소년운동을 열심히 해온 청소년 중에는 대학에 자기가 활동해온 경력들을 제출해서 수시나 특별 전형, 입학사정관제 등으로 대학에 입학하는 사람도 있다. NGO(엔지오, 비정부기구) 활동 전형이 있는 성공회대학교 같은 곳에 지원을 하는 경우가 많다. 물론 대학에 활동한 경력을 낸다고 다 붙는 건 아니지만, 그렇게 해서 대학에 간 경우가 없진 않다. 어떤 사람은 그런 모습을 비판하는 의미를 담아 “활동 팔아 대학 간다”라고 말하기도 하고, 어떤 사람은 청소년 활동가들의 현실을 자조하는 의미에서, 때로는 그렇게 대학에 간 본인이 말하기도 한다. 나도 그냥 조용히 활동한 경력을 팔아 대학에 가려고 했다.

내가 염두에 두고 있던 곳은 역시 성공회대학교였다. “인권과 평화의 대학”이라는 성공회대학교. 단지 그 학교에 NGO 활동 전형이 있고 몇 명의 청소년 활동가들이 그 대학에 청소년운동 경력을 통해 입학했다는 이유 때문이 아니었다. 성공회대가 표방하는 이념을 동경했기 때문에 “나는 저 대학에 들어가리라, 반드시.”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나도 하나의 수험생으로 고등학교 3학년 1학기를 맞이하고 있었다.

위 사진:5차 희망버스에서 대학입시거부를 외치다


반값등록금 집회와 대학의 현실

당연히 대학에 가려고 생각하고 있던 나에게, 대학 진학에 대한 회의를 부채질한 것은 바로 등록금 집회였다. “반값 등록금 실현하라!” 이렇게 외치는 대학생들의 현재 모습보다도, 대학을 졸업한 그 후, ‘대졸’의 생활이 눈에 더 들어왔다. 대학을 졸업한다고 해서 풍족한 미래가 보장되어 있는 것이 아니었다. 직업의 질과 소득, 임금은 양극화되고 있었고, 취업 경쟁에 매달리고, 취업을 하더라도 삶이 나아지지 않는 모습이 보였다. 수백만 원 수천만 원씩 등록금을 내느라 받은 학자금 대출을 갚기 위해서 7, 8년의 세월을 보내는 선배들을 보았다.

그렇게, 반값 등록금 집회에 참여하면서 그리고 대학생들의 현실을 보고 들으면서 과연 한국에서 대학이 어떤 의미일까 생각을 할 수밖에 없었다. 왜, 우리는 굳이 빚을 내가면서까지 대학을 다니는 것일까. 왜, 대학 교육이 가져다주는 의미가 대체 무엇이기에, 우리는 이리도 목숨 걸고 대학을 가려 하고 있을까.

문제는 이것만이 아니었다. 그토록 동경했던, 내가 가고 싶어 했던 성공회대 또한 내가 대학입시를 다시 한 번 생각해볼 수 있게 해줬다. 내가 너무 순진했던 것일까. 교수들이 “비정규직 철폐”를 외치는 바로 그 대학에서,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해고하는 사건들이 일어났고, 근로장학생으로 일하던 학생들에게 임금을 제때 주지 않는 사건도 일어났다. “인권과 평화의 대학”은 학교 운영 전반에서 인권과 평화를 존중하고 실현하겠다는 의미가 아니라, 단지 학교의 특색을 만들고 학교를 꾸미는 상품 포장일 뿐인 것일까? 과연 성공회대에 진학하면 나는 내가 원하는 공부를 할 수 있기는 한 것일까? 성공회대에 대해 가지고 있던 엄청난 동경이 무너지면서, 또 다시 내가 과연 대학을 가야 하는가, 가고 싶은가 되새겨보게 되었다.

대학이라는 공장에서 제련되는 상품이길 거부한다

대학이 여러 잘못을 저지르고, 학생들을 탄압하고, 기업화되는 것은 성공회대만의 모습이 아니었다. 이념이 사라진 대학교, 언론의 자유가 사라진 대학교, 학문의 자유가 사라진 대학교. ‘지식의 상아탑’이라고 하는 대학교들에서 그런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내가 기대했던 그런 의미들마저 잃어버린 그런 대학에 가서, 나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자문 끝에 얻은 답은 간단했다. 그런 대학교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나를 취업을 위한 1등급 상품으로 만드는 것이었다.

위 사진:레쓰.
나 는 그런 ‘나의 상품화’에 반대한다. 김예슬이 “오늘 나는 대학을 그만둔다, 아니 거부한다.”라고 대자보에 썼듯이, 상품의 길이 아닌 인간의 길을 택해야겠다고 생각했다. 4년간 대학교라는 이름의 공장에서 또 다시 제련되는 것에 불과한 이 현실, 더 좋은 스펙 상품이 되기 위해 등록금과 시간을 갖다 바쳐야 하는 현실에 반대하기 때문에 나는 대학을 거부하기로 결심했다.

대학생들의 현실 뿐 아니라, 우리들, 청소년들의 현실을 다시 한 번 보자.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를 거쳐 계속 상품화 되는 과정을 살고 있지는 않은가. 교육이 점수 매겨지고 등수 매겨지는 무한경쟁의 과정이지는 않은가. 대학에 가기 위해서 초중고를 경쟁 속에 보내는데, 그렇게 가게 된 대학마저도 경쟁 속에 상품화되는 과정이 되어버렸다.

이 무한경쟁 사회에서 대학입시거부는 미친 짓일지도 모른다. 대학진학률 세계 최고, 80%가 대학을 나오는 이 대한민국에서, 대학을 가지 않고 살겠다는 선언이니 말이다. 운동사회 내부에서조차 학벌을 따지는 이 현실. 그렇지만 나는 대학을 거부한다. 나와 같이 이 운동을 하는 다른 누구는 서울대를 자퇴하고, 누구는 수능을 거부한다.

대학입시거부가 정말 미친 짓일까? 사람들은 기억이나 하고들 있을까 모르겠다. 올해, 한 고등학생이 성적을 이유로 분신자살을 기도했던 사건을. 몇 년 전 초등학생이 도복 끈으로 목을 매 자살했던 사건을. 그런 것들을 기억하지 못하는 게 정말 미친 것은 아닌가? 그러나, 그렇게 이 미친 경쟁교육을 견뎌내고 대학에 가도 우리는 구원받지 못한다. 다시 미친 경쟁사회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 뿐이다. 그 속에서 정말 미친 것이 무엇이란 말인가. 청소년 수십 명 수백 명이 입시경쟁으로 목숨을 끊고 꿈을 잃어도 기사거리조차 되기 힘든 이 나라에서 정말 미친 것이 뭔지, 사람들이 우리의 대학입시거부선언을 듣고 다시 한 번 생각해보면 좋겠다.
덧붙이는 글
레쓰 님은 19살, 중졸과 고졸에서 간당간당하며, 청소년인권행동 아수나로와 진보신당 청소년소위원회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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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오름 제 272 호 [기사입력] 2011년 10월 26일 11:5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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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공현
걸어가는꿈2011.10.20 01:33

[나의 대학거부] 고졸 스무 살, 저는 안녕합니다

호야



[편집인 주] 2012학년도 수능과 입시철을 앞두고 대학입시를 거부한다고 목소리를 높이는 사람들이 있다. 학력을 비유하는 ‘가방끈’을 비꼬아 ‘투명가방끈’이라는 이름을 지은 19살 청소년들이 준비하는 <대학입시거부선언>은 입시경쟁, 학벌사회, 불안정노동, 양극화 등에 대해 문제제기하는 불복종 운동이다. 진작 대학을 안 갔거나 자퇴한 사람들도 함께 <대학거부선언>을 준비하고 있다. <인권오름>은 이 운동에 참여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연재한다.


나는 대한민국에서 고졸 스무 살로 살아가고 있다. 나도 한때는 대학에 안 가는 인생은 상상조차 하지 못했던 때가 있었지만 지금은 이렇게 대학에 안 가고도 사지 멀쩡, 정신 멀쩡하게 잘 살아가고 있다. 대학에 안 가면 삶이 끝날 것만 같은 이 땅에서 고졸자로서 목소리를 내고자 글을 써본다.

고졸 인생의 서막

나는 사실 대학 거부를 할 생각이 전혀 없었다. 내가 나온 고등학교는 공부 좀 한다는 애들을 모아놓고 전교생을 기숙사에 수용하여 공부하는 데 좋은 환경을 제공한다고 하는 그런 곳이었다. 그 학교 학생들은 모두 대학을 목적으로 그 학교에 진학한 것이었다. 그래서 나도 자연스럽게 대학에 대한 어떠한 의문도 품지 않았다. 나의 제도교육에 대한 반감은 고등학교 3년간 서서히 발전을 거듭했지만 난 차마 대학을 안 간다는 생각은 하지 못했던 것이다.

그런데 고3 봄, 아직은 조금 쌀쌀했던 3월의 어느 날, 고려대 김예슬 씨가 대학을 자퇴했다. 나는 당시 경향신문을 보고 있었던 터라 그날 아침 1면에서 그녀의 소식을 만나볼 수 있었다. 사실 그때 내 반응은 ‘드디어 대학생의 입으로 신자유주의가 삐걱대는 소리를 듣는구나!’ 뭐 이런 거였다. 하지만 ‘과연 나는 그럴 수 있을까, 내가 가진 것을 놓을 수 있을까?’라는 생각에 미치자 어려워졌다. 고3이라는 멍에가 나를 죄여왔고, 더 이상 깊은 고찰을 할 수 없었다. 나는 다만 ‘나도 대학이 별로 맘에 안 들면 박차고 나와야지.’라고 생각한 채 다시 입시공부에 몰두했다.

나는 그때까지 권력으로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믿었다. ‘제도교육의 목에 비수를 꽂자.’ 나의 고3 좌우명이었다. 그 말인즉슨 일단은 제도교육에게 몸이고 마음이고 다 내주고 교대에 가서 교사가 되어 제도교육을 뜯어고치겠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나의 이런 계획은 올해 2월 1일, 정시 다군 발표가 있던 날 산산이 깨졌다. 불합격. 가, 나, 다군 정시에서 몽땅 떨어져버린 것이다.(수시는 쓰지 않았다.) 예상치 않게 틀어져버린 인생에 눈물이 나왔다. 그날 공교롭게도 신촌에 있는 세브란스 병원에 가야했던 나는 진료가 끝나고 나오면서 신촌 대로를 질질 짜며 걸었던 기억을 가지고 있다.

나의 인생, 이제 어쩔 것인가. 나는 고뇌에 빠졌다. 나는 내 삶의 1년을 또 유보하고 싶지 않았다. 절대로 그것은 해선 안 될, 할 수 없는 짓이었다. 갑자기 머릿속에 김예슬 씨가 스쳐지나갔다. 그녀는 어떻게 살아가고 있을까. 그녀도 나눔문화에서 활동하면서 자기 삶을 살아가고 있겠지. 나는 1월 말부터 아수나로 활동을 시작했다. 그래, 나도 아수나로에서 활동하면서 내 인생을 대학 없이 그려 나가보자. 나는 그렇게 용기를 얻어 다시 일어났다. 이것이 바로 나의 ‘고졸자’ 인생의 서막이다.

대학 거부, 그 이후_ 고난

그럼 대학을 거부한 이후에 나의 삶에는 어떤 일이 일어났을까? 먼저 고난 편. 내가 대학생이 아닌 ‘고졸 스무 살’로서 살아가면서 맞닥뜨린 고난들에 관한 이야기를 해보겠다.

“자퇴랑 아예 안 다닌 거는 전혀 다른 거야! 그래도 일단 가보고 결정하자.”, “재수는 훨씬 쉬워, 이미 공부한 거 한번 더 하는 거잖니.”, “1년 그걸 못 참냐.”, “사이버대학이라도 원서 넣는 게 어떠니?” “우리 언니가 대학을 안 가다니! 언니, 재수하면 안 돼? 친구들이 너네 언니 어느 대학 갔냐고 물어보면 쪽팔려.” … 고졸자의 인생을 살기로 결심했다는 것을 선포한 후 가족들에게서 들은 수많은 말들은 굉장한 스트레스로 다가왔다. 초기에는 재수를 끊임없이 종용하던 말들이 시간이 흘러서는 “돈이나 벌어라”, “언니 취직 안 해?”로 변해갔다. 나는 한순간에 집에서 가장 창창했던 사람에서 가장 무가치한 사람으로 전락해버린 것이다. 지갑을 여는 어머니가 눈치를 주기 시작하고 동생에게서 멸시의 눈빛을 받는 기분은 참으로 견디기 힘든 것이었다.

가정에서의 탄압도 힘들었지만 사회에서의 차별도 피부로 다가왔다. 대학 진학자가 80%에 육박하는 이 사회에서 나는 ‘유별난’ 20대였다. 20대를 대상으로 하는 세미나나 강연의 이름에는 언제나 ‘대학생’이 있었고, 만나는 사람들은 아무렇지도 않게 “대학생이시죠?”하고 운을 뗐다. 이 사회의 ‘대학중심주의’는 도처에서 나를 공격해왔다.

대학 거부를 결심했을 때 앞으로 펼쳐질 고난은 각오했지만 버겁게 느껴질 때도 많았다. 가끔은 정말 대학생들이 부럽기도 했다. 나의 미래가 너무나 불투명했기 때문이다. 적어도 그들은 취업의 관문까지는 자기 미래의 청사진을 그릴 수 있을 것이다. 주변 사람들은 ‘너의 미래를 그려내 보여줘!’라며 나를 압박했다. 하지만 나는 기껏해야 몇 주 앞밖에 그려내지 못한다. 왜냐하면 이 길은 다른 누군가 체계적으로 닦아놓은 길이 아니기 때문이다. 지금 그려낼 수 있는 미래 청사진의 양이 행복과 비례하는 것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불안한 사회는 사람들로 하여금 미래에 집착하게 한다. 이러한 압박과 차별들이 대학에 안 가는 것을 두려워하게 만든다. 악순환의 연속이다.

가정과 사회 도처에 깔려있는 대학중심주의와 학벌 차별, 이제 아파하고 있지 말고 우리도 아프다고 소리쳐 보는 건 어떨까.

대학 거부, 그 이후_ 변화

이번에는 변화 편이다. 고졸 스무 살로 살아가면서 상처도 받았지만 여전히 삶은 계속되고 있었다. 대학에 안 가면 인생이 끝나버릴 것만 같던 그 압박감은 단지 사회가 만들어 놓은 허상에 불과했다. 이번엔 나에게 일어난 변화와 대학 거부에 관한 나의 생각을 풀어보겠다.

대학을 거부하기로 마음먹은 그 날을 기점으로 나는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변했다. 만약 내가 운 좋게 그때 대학에 합격했더라면 지금의 나와는 전혀 다른 삶을 살고 있었을 것이다. 고등학교 4학년처럼, 과제와 시험에 여전히 시달리면서, 거기에 부모님의 등록금 부담을 조금이나마 줄이기 위해 장학금을 노리려고 정말 대학 공부에 몰두하는 인생. 결국 젊음의 증표인 저항을 실현할 기회는 쥐꼬리만큼 남게 되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쥐고 있던 것을 (반강제적이었지만) 놓음으로써 변화했다. 권력으로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나의 의식을 깨고 나온 것이다. 내가 지금 쥐고 있는 것을 내려놓지 않으면, 그 체제에서 벗어나지 않으면 변화는 시작되지 않는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꼈다. 나는 청소년인권행동 아수나로에 접속하여 다양한 정체성을 가진 활동가들과 함께 사회에 소리치기 시작했다. 소리치는 것에 비해 그 반향은 아주 미약했지만 그래도 사회에서 소리치고, 움직이면서 내 자신이 살아있음을 느꼈다.

내가 대학을 거부하는 가장 큰 이유는 ‘대학→취업→결혼(가정)=행복한 인생’이라는 공식에 돌을 던지고 싶어서다. 나는 고등학생 때까지 내가 단 한 번도 대학의 존재 이유와 내가 대학에 가야 하는 이유에 대해서 깊게 생각해 본 적이 없다는 것이 매우 부끄럽다. 분명 개개인의 삶과 행복에 대해서 많은 관심을 갖고 있는 시대, 사회인데 왜 정작 본인 인생을 주체적으로 결정하기를 미루고 다들 정해진 루트의 삶을 살아가는 것일까. 대학 진학률 80%는 국민의 교육 수준이 높다는 것이 아니라 국민이 대학에 관한 진지한 고찰 없이 그냥 너도 나도 가는 것, 그리고 대학을 가지 않는 자에 대한 차별과 불이익이 존재하는 사회라는 의미가 아닐까?

최근 TV 프로그램 개그콘서트의 <사마귀 유치원>을 보고 놀랐다. 거기의 진로 상담 부분을 보면 우리가 지금까지 얼마나 정형화된 삶을 살아가고 있었는지 명확하게 나온다. 대기업에 취직하려면 스카이(SKY; 서울대, 고려대, 연세대를 뜻하는 은어) 중 한 곳에 들어가서 토익 몇 점을 넘기고 해외 어학연수를 가고 성형수술을 하고…. 우리는 그저 누군가가 정해놓은 길을 따라 아무런 의심 없이, 그저 열심히 살고 있다는 것에 안심하며 살아오고 있었던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정해진 길을 열심히 살아가는 사람들이 나쁘다, 잘못되었다고 하고 싶지는 않다. 그들도 그들 나름의 가치 있는 인생을 사는 것이리라. 하지만 나는 부딪치고, 아파하고, 괴로워하면서 나의 삶을 만들어나가고 싶다. 분명 불안하고 어두컴컴한 가시밭길이겠지만, 그것이 내가 사회에 균열을 낼 수 있는 방법이라 생각한다.

마지막 변화에 관해서 이야기를 하자면, 내가 탈학교 예찬자가 되었다는 것일까. 나는 12년간 학교를 다니면서 학교가 나에게 주는 억압에 대해서 불평만 할 줄 알았지 어떠한 거부도 하지 못했었다. 지난 9개월간 학교 밖을 나와 여러 가지 활동과 세미나를 하면서 ‘길 자체가 학교’라는 것을 확실히 느꼈다. 나는 지난 3년간 고등학교에서 배운 것보다 훨씬 소중한 것들을 이 9개월간 길에서 배웠다. 유유상종하던 학교에서 벗어나 더 다양한 정체성을 가진 사람들을 만나고 이야기하고 함께 활동하면서 나의 시야는 훨씬 넓어졌다. 또한 대학교에 다니지 않는다고 공부할 곳이 없는 것도 아니었다. 찾아보면 여러 가지 세미나를 하고, 함께 살아갈 방안을 모색하는 대안 공동체들이 꽤 있다. 나도 그중 한 곳과 접속하여 몇 달간 세미나를 하면서 많이 배웠다. 대학을 안 가면 배우지 못할 거라는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될 듯하다. 배움은 도처에 있다.

앞으로의 행보

대학에 가든 안 가든 행복한 삶에는 언제나 질문이 함께한다는 것을 느낀다. 언제 어디서든 나에게 답을 찾고자 하는 질문이 있다면 배우게 되고, 내가 갈 길이 보인다. 그런 질문을 갖지 못한다면 어디에 마음을 두어야 할지 몰라서 헤매게 된다. 나도 한동안 갈팡질팡 했지만 이제는 내가 무엇에 관심이 있고 어떤 활동을 하고 싶은지 좀 알 것 같다. 나는 불의에도 자주 침묵하고, 도피하는 경향을 보인다. 학교에 다니던 12년간 순응만을 배워서 그런지 머리는 저항하라고 하지만 그것을 실행에 옮기지 못한다. 나는 불의를 맞닥뜨려도 피하지 않고 맞설 수 있는 힘을 얻고 싶다. 또 내 마음이 가라는 데로 충실히 갈 수 있는 내가 되었으면 좋겠다. 이런 저런 핑계를 대면서 꼭 하고 싶었던, 한번뿐인 기회들을 날려버리는 일이 많다. 좀 더 나에게 떳떳하고 솔직한 내가 될 수 있었으면 한다. 또 아직 나는 글 외에는 나를 제대로 표현할 수 있는 수단이 없다. 음악, 미술, 춤 등 여러 가지 수단으로 나를 표현할 수 있는 내가 되었으면 한다. 지금 내 꿈은 이 정도다. 이 꿈들과 나의 질문들이 서로 융합하면서 아직 어떤 직업까지는 아니더라도(직업이면 더 좋고!!) 내가 나아갈 방향을 비춰 주리라 믿는다. 요즘 나를 장악하고 있는 키워드는 자립과 주거권이다. 개인적으로는 2012년 상반기에 아수나로 친구들과 스쾃 운동을 해 보는걸 제안해보고 싶다.

다시 대학 거부 이야기로 돌아와서, 이 땅의 약 20%, 대학생 아닌 20대들이 조용히 입 닫고 사회의 흐름에 묻혀 살아간다면 아무런 변화도 일어나지 않는다. 하지만 우리가 입을 열고, 여기 우리도 있다고 외친다면 어떨까. 무언가 조금은 달라지지 않을까? 나는 이번 대학입시거부 20대 선언이 개개인이 조금씩 틀에서 빠져나와 균열을 만들어낼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한다. 우리가 사회의 편견과 차별에 아파하지 않을 수 있도록 원 없이 외쳐보면 좋겠다. 부디 많은 분이 용기 내어 동참해주시길! 가지 않은 길, 분명 어려운 선택이지만 한번 뿐인 인생이라면 조금 스릴 있게 가는 것도 좋지 않을까.
덧붙이는 글
호야 님은 청소년인권행동 아수나로 수원지부 활동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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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오름 제 271 호 [기사입력] 2011년 10월 18일 18:14: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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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공현
걸어가는꿈2011.10.14 18:17

[나의 대학거부] 대학 잘못 온 사람이 던지는 물음표

공현


[편집인 주] 2012학년도 수능과 입시철을 앞두고 대학입시를 거부한다고 목소리를 높이는 사람들이 있다. 학력을 비유하는 ‘가방끈’을 비꼬아 ‘투명가방끈’이라는 이름을 지은 19살 청소년들이 준비하는 <대학입시거부선언>은 입시경쟁, 학벌사회, 불안정노동, 양극화 등에 대해 문제제기하는 불복종 운동이다. 진작 대학을 안 갔거나 자퇴한 사람들도 함께 <대학거부선언>을 준비하고 있다. <인권오름>은 이 운동에 참여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연재한다.




껄끄러운 이야기지만, 서울대 학생으로 적을 두고 있다. 아니, 있었다. 바로 지난주에 학과 행정실에 자퇴한다는 서류를 제출하고 왔다. 아직 자퇴 처리가 됐는지 안 됐는지는 모르겠다. 여하간 중요한 건, 바로 그거다. 내가 서울대학교 학생이라는 것이 나에게 껄끄러운 일이었다는 것.

우물쭈물하다가 내 이렇게 될 줄 알았는데

고등학교 때 어쩌다보니 청소년운동이라는 걸 하게 됐다. 그것도 뭐 YMCA, 보이스카웃 같은 게 아니라, 아주 저항적이고 투쟁성 충만한 청소년인권운동이었다. 뒤늦게 운동을 시작한 고3, 남들은 다들 입시를 준비하는 시기에 열심히 집회를 준비하고 캠페인을 꾸리고 학내 모임을 만들고 지하신문을 기획했다. 모의고사 성적이 떨어진 걸 놓고 담임교사가 불러서 나무라도, 시큰둥하게 “지금 저한테 뭐가 중요한지는 제가 정해요.”라고 얘기하고 나왔다. 자연스레 입시경쟁에 대한 문제의식도 발전시켜나갔고 ‘안티수능’ 운동 등도 알게 됐다. 초등학교 때부터 느껴온, 학교가 나를 성적으로 대우하는 데서 비롯된 소외감을 더 분명하게 스스로에게 설명할 수 있게 됐다. 온갖 인권침해를 감내해가며 입시공부를 열심히 해서 명문대에 가는 게 자랑할 일이 아니라고 생각하게 됐다.

어떤 이들은 성적이 좋은 게, ‘명문대’에 진학하는 게 “자기 노력의 결과”이며 입시체제는 공정하고 정당하다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나는 내가 시험 성적이 좋은 게 일종의 우연이라고 생각한다. 그저 내가 입시에 적합한 형이었을 뿐이라는 생각이다. 나보다 더 노력하고도 나보다 시험을 잘 못 보는 친구들도 많았고, 나보다 그 분야 학문에 대한 감도 지식도 뛰어난데도 내신/수능 성적은 낮은 친구도 있었다. 여러 측면에서 나보다 더 남들에게 가치가 있는 사람 같은데도 입시 때문에 불이익을 받는 친구들도 많았다. 사람을 문제풀이 점수로 ‘평가’하는 시스템, 그건 어쨌든 ‘공정’할 수도 ‘인간적’일 수도 없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내가 성적이 상위권이라는 이유로, 또는 고등학교 졸업한 뒤에 ‘명문대’에 가게 되었을 때 ‘명문대’ 학생이라거나 졸업생이라는 이유로 가지게 될 자원과 혜택들이 부당한 특혜, 불공정의 산물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생각은 그렇게 했더라도, 현실에선 여러 가지 것들이 꼬여 있었다. 나는 입시경쟁에 비판적이었지만 정작 대학에 대한 결정을 내리는 것은 미루고 있었다. 2학기 때 영어교사가 입시를 앞두고 친구들을 격려하는 말을 해보라고 했을 때, “이런 식으로 살 바엔 그냥 대학을 때려치웁시다.”라고 말해서 모두를 벙~찌게 만들었지만, 동시에 “쟤는 성적도 잘 나오면서 위선 떨고 있다”는 냉소를 받았다. 그런 말을 들어도 쌌다. 나는 뭐 일단 한번 내보자면서 서울대 2학기 수시 원서도 냈고 ― 서류에서 똑, 떨어졌지만 ― 성적에 대한 미련은 버렸으면서도 학교 숙제나 수업 참여, 복습은 또 습관적으로 꽤나 성실하게 하고 있었다. 돌이켜보면, 나는 그때 그저 입시 문제에 대해서 우유부단한 상태일 뿐이었던 것 같다.

주변 사람들에게 그런 진로/입시에 대한 고민을 털어놓기도 해봤다. 친하게 지내던 교사에게도, 지역의 다른 활동가에게도, 같이 운동을 하던 친구에게도, 짝사랑했던 사람에게도, 당시 상담을 받던 카운슬링 센터의 상담사 분에게도. 하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대부분 “그래도 대학은 최선을 다해서 가고 나서…”, “좋은 대학에 가는 게 앞으로 세상을 바꾸는 데도 도움이 될 거예요.” 등등의 얘기들이었다. 어느 대학을 가는 게 좋다는 조언은 있었어도, 대학을 가지 않는 게 좋다거나 대학이 활동에 안 좋을 거라는 말은 없었다. 어쩌면 그건 그들의 수험생에 대한 배려였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때 누군가 대학 같은 건 안 가는 게 좋다고 말해주었다면 좋았을 거라는 생각도 가끔 한다. 주변의 모두가 그렇게 말하는 가운데, 좀 혼란스러워 하면서도 나도 그냥 대학은 가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특별히 수능을 잘 보려고 노력을 하진 않았다. 수능 바로 전날에도 다른 신문 원고를 쓰다가 늦게 잤다. 다만 수능 시험 자체는 특별히 틀리려고 하거나 대충 하는 것 없이 풀 수 있는 한 풀었다. 그냥 모의고사 보는 기분으로 별 감흥은 없었다. 그런데도 점수는 잘 나왔다. 그 전에 모의고사 성적이 뚝뚝 떨어지던 것과는 대조적으로 수능만 성적이 높게 나왔으니 이건 운이라고 해야 할지. 정시 원서를 쓸 때는 부모와 많이 다퉜다. 결과적으로는 부모의 뜻대로 연세대, 서울대에 원서를 냈다. 논술은 좀 재미있었다. 둘 다, 합격했다.

결국 서울대에 입학하게 되고서 한 생각은 이런 거였다. “우물쭈물하다가 내 이렇게 될 줄 알았는데….” 입시에 대한 그 골치 아픈 고민과 갈등들이 어쨌건 일단락되었다는 기쁨. 부모 뜻대로 대학을 갔으니 크게 눈치 보지 않아도 되겠다는 안도감 같은 것. 입시경쟁에 학벌사회에 반대한다면서 서울대의 후광을 가지게 되는 것에 대한 거부감. 딱히 서울대에 가고 싶지 않았는데 다른 누군가 나보다 더 서울대에 가고 싶었을 사람을 밀어내고 합격한 것에 대한 죄책감 비슷한 감정. 합격 통보를 받았을 때 여러 가지 감정들이 마음속을 어지럽게 했다. 결국 나 자신에게 운동에 대한 확신이 없었고 우유부단했기 때문에 간 대학이었다.


대학 부적응이랄지…

그렇게 들어오게 된 대학은, 마치 몸에 안 맞는 옷을 걸치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만약 내가 공부든 대학 내 운동이든 즐기려고 했다면 즐길 수도 있었을 것이다. 어차피 나는 기업에 취직할 생각도, 고시를 볼 생각도 없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내 주변 다른 대학에 진학한 친구들의 이야기를 듣고 평가해보면, 서울대는 단지 학벌, 이름값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수강신청을 할 때도 이미 ‘필수’로 시간표가 다 나와 있고 선택할 수 있는 건 6학점, 10학점도 채 안 된다는 대학도 있었고, 대학에 교양 과목 수업의 다양성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다는 대학도 있었다. 그에 비해 서울대는 여성학이든 사회주의이든 문학이든, 나처럼 졸업이나 학점에 괘념치 않는다면 비교적 여러 수업을 골라 들을 자유가 있었고, 강의의 질도 좋았다.

하지만 결국 나는 대학에 발을 붙이지 못했다. 서울대 졸업생이 되고 싶지 않다는 감정이 계속 마음속에 있었기 때문이다. 강의의 다양성과 질마저도 다른 대학들에 비교해봤을 때 결국 불공평한 자원 분배의 특혜이고 특권이라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대학 안에서 대학생운동이라도 했다면 어땠을지 모르겠지만, 운동은 청소년운동 하나만으로도 충분히 벅찼다. 청소년운동 일정 때문에 과반 행사는 죄다 불참했고 친구도 별로 없었다. 그나마 하나 하던 평화운동 동아리 활동은 나 외에 사람들이 대부분 졸업하면서 정리하게 됐다. 입시경쟁과 대학서열화, 학벌에 대한 문제의식이 계속 서울대 학생으로서의 내 정체성을 거부하게 했다. 나중에는 수업에 잘 들어가지도 않게 됐고 학교에 나가지를 않아서 모든 과목에 낙제점을 받기도 했다. 이것도 일종의 대학부적응이라고 해야 할까?

그리고 요즘 대학이라는 게 그런 어정쩡한 마음가짐으로 남아 있을 곳이 못 된다. 등록금은 내가 입학할 때 이미 200만 원을 넘어가고 있었다. 학자금 대출을 몇 번 받았고, 집이 개인회생 중이라는 사유로 장학금도 한 번 받아봤지만, 성적이 뚝뚝 떨어지니 학자금 대출도 장학금도 불가능해졌다. 학자금 대출도 성적이 일정 수준 이하면 안 해준다는 걸 알고서 우습기도 했고, 이미 두 번 받은 학자금 대출만으로도 충분히 부담스러웠다. 내가 무슨 돈 잘 버는 직업을 가질 계획도 아니었고….

내가 고등학교 때 대학을 가는 변명이 되어주었던 ‘서울대 가서 사회적으로 힘 있는 사람이 되는 게 운동에 더 유리하다’는 건, 운동을 하면 할수록 그냥 헛소리라는 게 명확해졌다. 지금 운동에 필요한 건 더 많은 사람들이 같이 하는 것이었지 몇몇 엘리트가 아니었다. 개인이 아니라 집단이, 개인적 출세나 권력이 아니라 사회적 구조적 변화가 필요했다. 사실 서울대 나온다고 해서 무슨 특별히 운동에 도움이 되는 힘이 생기는 것도 아니었다. 학력․학벌 같은 것들은 사회에 순응하려고 할 때는 커다란 힘이 될지 모르겠지만, 사회에 저항하려고 할 때는 별 다른 효력을 가지지 못한다. 어차피 욕 먹는 건 똑같다. 공부 못 하는 사람이 입시를 비판하면 쟤는 공부 못 하고 피해 보니까 저런다고 하고, 공부 잘 하는 사람이 입시를 비판하면 지는 잘 나가니까 배가 불러서 저런다고 하는 게 세상이다.

대학에 더 있을 이유도 없어졌고, 대학에 더 있기도 어려운 상황에서도 한두 학기쯤 학적을 계속 유지하고 있었던 건 결국 병역 문제가 이유였다. 병역거부를 하겠노라고 진작부터 마음을 굳히고는 있었지만 막상 그 문제에 직면하는 것은 두려운 일이었다. 주변의 다른 사람들도 병역거부자들이 대부분 나이가 많은 편이니, 나도 좀 더 나이가 들고 나서 생각해보라고 조언해줬기에 조금씩 조금씩 대학을 이유로 병역 문제를 미뤄왔다. 하지만 이제 드디어 휴학은 한도까지 다 썼고, 등록금을 해결할 방법도 딱히 없고, 대학을 더 다닐 마음도 없다. 병역거부는 지금도 좀, 아니 많이 두렵지만 마음을 굳혔다. 그러던 차에 때마침 주변의 청소년 활동가들이 ‘대학입시거부선언’을 한다고 하니, “옳거니”하며 지금 때려치워야겠다는 생각을 했고 자퇴서를 냈다. 하기사 어차피 군 휴학으로 인정도 안 되는 병역거부 때문에 학교는 제적될 처지였다. 부모도 병역거부에 대해 받아들이고 있으셨기 때문에 병역거부 때문에라도 대학교를 일단 그만두는 것에 대해 양해를 구해두었다.

사회에 물음표를 던지고 싶을 뿐

내가 어떻게 대학을 오게 되었고 어떻게 대학을 그만두게 되었나, 개략적이지만 길게 이야기를 풀어놓았다. 사실 그 속을 들여다보면 그냥 원래 서울대 안 갔어야 할 사람이 우물쭈물하다가 서울대에 갔다가 그만두는 과정일 뿐이라고 요약해볼 수도 있다. 하기야 대학거부가 뭐 별거인가. 나는 김예슬 씨가 “나는 오늘 대학을 그만둔다. 아니 거부한다.”라고 쓴 글을 읽어봤을 때 어찌나 오글거렸는지 모른다. 뭐 이렇게 폼을 잡고서 거창한 의미를 부여하고 있나 싶어서. 읽으면서 그것도 고대생이기 때문에 잡아볼 수 있는 폼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나는 영 삼키기가 어려운 글이었다.

그렇지만 나도 나의 대학 자퇴, 대학거부를 단지 개인의 선택이 아닌 정치적, 사회적 의미를 가진 행동이라고 말하고 싶긴 하다. 내가 서울대에 가기를 꺼려했던 것, 대학 진학 자체를 놓고 고민했던 것, 대학에 발을 붙이지 못했던 것, 결국 대학에 자퇴서를 낸 것, 그 모든 과정들은 불공정하고 비인간적․비교육적인 입시경쟁교육, 대학서열체제, 학벌사회에 대한 문제의식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건 개개인의 차원에서 착하게 산다거나 윤리적 선택을 한다고 해서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신이 이루고 싶은 꿈이 있어서, 먹고 살기 위해서 입시 공부를 하고 대학에 진학하는 것은 윤리적으로 비난받을 일일 수 없다. 하지만 나는 딱히 내가 착하게 살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것들을 바꾸기 위한 활동의 일부로서 대학을 거부한다. 내가 아무리 잘 살아보려고 해도 ‘서울대’라는 타이틀이 사회적으로 가지는 의미와 효과가 있기에, 그런 사회적 의미와 효과를 공격하기 위해서 그 타이틀을 거부한다. 대학거부가 이처럼 정치적, 사회적인 것이기 때문에, 혼자 하는 게 아니라 대학입시를 거부하기로 한 ‘수험생’ 나이대의 청소년들의 대학입시거부선언과 함께하려 하고, 이미 대학에 가지 않았거나 나처럼 대학을 그만둔 사람들과 같이 대학거부를 하나의 ‘사건’으로 만들려고 한다.

한편으로는 서울대를 자퇴하고 나면 이제 “서울대 거부한 자퇴생”이라는 꼬리표가 따라다닐 수도 있다는 걱정이 든다. 대학을 다닐 때도 걸리는 건 많았지만, 대학을 자퇴해도 걸리는 건 아마도 많을 것이다. 솔직히 말하면 병역거부를 하고 출소한 다음에 뭔가 공부가 하고 싶어져서 다시 대학을 가고 싶어질지 어떨지는 나도 잘 모르겠다. 우스갯소리로 입시폐지-대학평준화가 되고 나면 다시 대학을 맘 편히 갈 수도 있을 거라고 하기도 했지만 그게 그렇게 금방 될 거 같지도 않고….

이제 며칠 안에 김예슬 씨처럼 거창한 글은 아니지만 나름대로 대학거부의 뜻을 알리는 대자보를 하나 학교 안에 붙여보려고 준비하고 있다. 무슨 반응이 돌아올지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내가, 우리가 대학을 거부한 거에 괜히 자기가 비난 받는 것처럼 느끼거나 하는 대학생, 대학졸업생은 없으면 좋겠다. 대학을 그만두거나 하지는 못하더라도 지금의 입시경쟁교육이나 대학 체제 등에 대한 문제의식에 공감하고 같이 참여할 사람들도 적지 않을 것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다만 나는 지금 같은 교육을, 인권을 짓밟는 학교를, 잘못된 대학을 당연하다고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고 있는 사회에 물음표를 던지는 사건을 만들어내고 싶을 뿐이다. 그리고 바꿔야 한다는 문제의식을 널리 알리고 싶을 뿐이다. 우리들의 대학거부의 의미는 대충 그거면 되지 않을까.
덧붙이는 글
공현 님은 청소년인권행동 아수나로 활동회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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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오름 제 270 호 [기사입력] 2011년 10월 12일 13: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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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공현
걸어가는꿈2011.03.24 13:33

“제대로 된 교육과 학생인권을 찾습니다”

청소년 집회 “실종신고”에서 본 청소년운동의 현재

공현


청소년 집회 준비 과정은 좀 이상하다. 다른 집회들을 준비하는 과정과 비교해보면 그 우선순위가 전혀 다르다. 청소년 집회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가장 먼저 돈을 들이고 공을 들이는 부분은 바로 홍보이다. 충분한 홍보를 통해 조직되지 않은 청소년들에게 알리고 참여하도록 하지 않은 채 집회를 하면 50명도 채 오지 않기 때문이다. 노동운동이나 여성운동 등을 비롯한 여러 운동들의 집회 준비 과정에서 홍보가 ‘이미 어느 정도 조직화된’ 사람들에게 집회를 확실히 주지시키고 참가를 독려하기 위한 것인 반면, 청소년 집회에서 ‘홍보’는 사실 집회 자체의 목적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어쩌면 청소년운동의 씁쓸한 조직화 현황을 보여주는 모습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지난 3월 19일에 있었던 청소년 집회 “실종신고 : 제대로 된 교육과 학생인권을 찾습니다” 역시 마찬가지였다. 3월 2일, 초중고등학교들이 개학하자마자 등하교길 홍보를 시작했다. 매일 매일 서울 학생인권조례 주민발의 서명 일정에 참여하는 와중에도 어렵게 어렵게 시간을 쪼개고 만들어가며 등하교길 홍보와 주말 번화가 홍보로 전단지만 대략 1만5천 장을 배포했다. 웹자보도, 퍼나를 만하고 퍼나를 수 있는 사이트에는 거의 모두 퍼날랐다.

전단지를 받아본 청소년들의 반응은 다양하다. 그냥 읽지도 않고 버리는 경우도 있고, 바로 주머니에 넣는 경우, 묵묵히 읽는 경우도 있다. 이번 집회의 경우에는 “중간기말부터 수능까지 시험 폐지”라는 주장을 전면에 배치해서 그런지 “야 이거 쩐다!”, “이거 꼭 해야 돼!”라고 친구들에게 이야기하는 분들도 많았다. 전단지를 받아들고 “꼭 가겠다”라고 말한 청소년 분들 중에 반만 왔어도 집회가 참 대박이 났을 텐데……. 1만 5천 장을 청소년들에게 배포했는데 그 전단지를 받고 온 청소년들은 10명도 채 되지 않았으니, 전단지를 받고서 오는 청소년들의 비율은 0.1%도 안 되는 셈이다. 쩝. 일단은 학교의 일상에 균열을 내는 그런 주장을 많은 청소년들이 접하는 계기가 된 것 자체에 만족해야 할까?


청소년운동의 현실

다시 한 번 정리하자면 이번 “실종신고” 집회는 그토록 많은 품을 들여 홍보를 했는데도 불구하고 집회 참가자가 100여 명에 그쳤으며 그리고 그 중에서도 대다수가 이미 아수나로나 다른 단체 등에서 활동을 하던 청소년들이었다. 집회 분위기는 좋았지만 과거의 청소년 거리 집회들처럼 미조직된 청소년들 상당수가 나오는 그런 모습은 찾아보기 어려웠다. 작년 일제고사 반대 집회 등에서부터 확인되어왔던 이런 모습은 여러 가지를 시사한다.

먼저 첫째, 2000년대 초중반, 중고등학생들이 미군장갑차 살인사건을 비롯하여 내신등급제와 학생인권 등을 가지고 곧잘 거리로 나오던 시기에는 그나마 미조직된 학생들이 거리 집회에 참가하는 일이 낯설지 않았다. 그러나 2008년 촛불집회를 거친 이후의 변화인지 아니면 교육․사회 환경의 변화인지 혹은 단순히 시간의 흐름 탓인지, 미조직된 학생들이 친구들과 같이 옹기종기 집회에 참가하는 모습은 거의 사라진 것으로 보인다.


둘째로, 2000년대 초중반까지만 해도, 아니 2008년까지만 해도 청소년들이 거리로 나온다는 것 자체만 가지고도 호들갑을 떨던 언론들 역시 이제는 청소년들이 거리에서 집회를 한다는 것만 가지고는 별로 기사거리가 되지 않는다는 듯이 시큰둥한 모습이다. 이번 “실종신고” 집회의 경우에는 “중간기말부터 수능까지 시험 폐지”, “대학 안 가도 먹고 살 수 있게 하라” 등 논쟁적인 주장들을 전면에 내세웠는데도 그렇다. 이는 부분적으로는 이른바 ‘진보교육감’ 등이 학생인권 정책을 추진하고 있는 현실과, 작년 조중동에서 아수나로 등을 대대적으로 다룬 것과도 관련이 있을 것이다.

결국 이번 집회는 청소년운동이 앞으로 조직력을 키우는 데 더 주력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어떻게 보면 당연한 교훈을 준다. 집회가 끝난 뒤, 아수나로 회원들끼리 김치찌개 집으로 밥을 먹으러 갔다. 그 자리에서 나는 식당을 가득 채운 30여 명의 아수나로 회원들의 모습을 보며 몇 년 전만 해도 10명 남짓하던 아수나로가 이렇게 커졌나 하며 뿌듯해했고, 계산을 하며 밥값에 절망했고, 마지막으로 “조직된 사람들로 200명을 채울 자신이 없으면 앞으론 단순 홍보에 의존한 거리 집회는 하지 말아야겠다. 밥값으로 단체가 파산하더라도.”라는 다짐을 했더랬다.

실종신고, 그 후…

이번에 청소년 집회 “실종신고 : 제대로 된 교육과 학생인권을 찾습니다”의 요구 사항은 크게 다섯 가지였다.

◑ 중간기말부터 수능까지 시험을 폐지하라! (시험 폐지)
◑ 대학 안 가도 먹고 살 수 있게 하라! (학력, 학벌 폐지, 사람다운 생활 보장)
◑ 교육예산 확보하여 누구나 쾌적한 학교를! (교육예산, 복지 확대)
◑ 학생에겐 권력을, 학교에는 민주주의를! (학교 민주화, 학교운영․교육정책 참여)
◑ 규제와 폭력 대신 자유와 소통을! (학생인권 보장)

이런 주장이 지나치게 급진적이라는 우려도 있을 법하고, 또 실제로도 그러한 의견이 인터넷 등에서 나오기도 했다. 그러나 청소년들의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이런 주장은 오히려 ‘생활 밀착형’ 주장이 된다. 예컨대 시험 폐지의 경우에, 대다수 중고등학생들의 경우에는 “전집형 일제고사를 표집형으로”나 “상대평가를 절대평가로 전환” 같은 복잡한 정책적 논의보다는 “모든 시험 폐지”와 같은 주장을 훨씬 더 잘 받아들인다. 청소년들의 입장에서는 일제고사든 모의고사든 중간고사든 기말고사든, 자신들에게 점수와 등수를 매기고 서열화하기 위한 시험 자체가 스트레스이다. 학생들의 현재 상황을 진단하고 더 나은 교육을 제공하기 위해 이루어지는 게 아니라 학생들을 줄 세우고 점수를 내기 위해 이루어지는 시험, 그리고 그 시험을 위한 교육 자체가 문제이고 인권침해이기 때문이다. 입시 제도를 가지고 깔짝깔짝 복잡하게 장난치는 것보다 “입시폐지 대학평준화”가 더 현실적인 대안인 것과 마찬가지이다.


사실 이런 주장들 중 대다수는 청소년운동뿐 아니라 다른 여러 운동과 정치 세력들의 것들로부터 빌려온 것이다. “대학 안 가도 먹고 살 수 있게 하라”는 복지 사회 건설 주장, 학벌 없는 사회를 만들자는 주장의 변형이다. 교육예산을 GDP 대비 6%까지는 올려야 한다는 것은 십여 년 전부터 나온 교육운동의 요구였다. 시험 폐지의 경우에도 일제고사나 교원평가제 반대 투쟁을 거치면서 “평가가 아닌 진단을”, “평가하고 서열화하기 위한 시험을 바꿔야 한다.”와 같은 형태의 주장으로 여러 토론회와 포럼에서 교육운동 주체들(주로 교사, 교수, 학부모들)이 제출했던 것이다.

그러나 여러 사회운동의 주체들이, 그 중에서도 특히 교육운동 주체들은 자기들끼리 하는 토론회나 포럼에서 이런 주장을 정리해서 내거나 아니면 정치세력에 정책으로 제안하기만 하고, 그런 주장들을 대중화하고 행동으로 풀어내는 데는 게으르다. 오랜 시간 대중적․지역적인 운동을 해온 것은 무상급식을 비롯하여 몇 가지뿐이고, 그나마 이 무상급식의 경우에도 사람들의 광범위한 지지를 얻는 듯 보이지만 실제로 그 내적 논리와 제대로 된 의미는 충분히 대중화되지 못하고 있다. 진보적 운동이 “대안 없는 반대”만 한다는 식의 비판은 잘못되었다. 적어도 교육운동에서는, 대안과 정책을 만들고 공부하고 토론하기만 하고 운동과 실천을 하지 않고 있는 문제가 더 크다.

이런 문제의식 속에서 아수나로는 이번 집회를 시작으로 이 주장들을 내세워서 청소년들과 만나고, 소통하고, 조직화하고, 행동하는 활동을 꾸준히 해나갈 작정이다. 그런 마음으로 올해 2월에 회원들이 모여 두 차례의 토론을 거쳐 주장의 내용과 슬로건을 확정했고, 이 주장들은 앞으로 적어도 1, 2년 동안 아수나로의 학생인권과 교육에 관한 활동 전반을 관통하는 슬로건이 될 것이다. 이번 “실종신고” 집회에서는 말 그대로 “이런 것들이 우리 교육에는 없다. 학생들에게는 없다.”라고 “실종신고”를 한 셈이다. 이제 사라진 제대로 된 교육, 학생인권을 찾아내고 만들어내는 일, 그리고 그걸 같이 할 사람들을 만들어내는 일, 그게 앞으로 우리의 활동이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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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현 님은 청소년인권행동 아수나로 활동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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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오름 제 243 호 [기사입력] 2011년 03월 23일 12:2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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흘러들어온꿈2010.12.28 22:48

[서녕의 인권이야기] "무상 주택이 정말 필요해."

서녕


# 독립하기 1. 고시원 같은 원룸

지난 여름, 독립의 꿈을 이루기 위해 서울 원룸 촌을 돌아다녔다. 신림, 봉천을 갔다. 직장도 멀고 알르바이트 하는 곳에서도 거리가 있긴 하지만 싼 원룸들이 많다기에 알아보았다. 서울대 입구 역에서 내려서도 버스로 5-6정거장을 가야했고 버스정류장에서 내려서도 15분 정도는 걷는 곳이었다. 다세대 주택이 밀집한 곳인데 대부분이 원룸을 지어 장사를 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주인과 만나서 방을 보았다. 방에는 책상과 장롱이 있고 딱 한명이 누울 자리가 있다. 잠버릇이 있다면 책상에 부딪히거나 벽에 부딪히기 십상이다. 화장실 문을 열었다. 세면기를 아슬아슬하게 비켜간다. 세면기와 붙어있는 양변기에 앉으면 무릎이 벽에 닿을 판이다. 밥은 못해먹는다. 빨래는 공동으로 해결했다.

이와 같은 집을 그 날 저녁 세 집 보았다. 한명이 더 누울 수 있으면 월세가 40만원이 넘었고 그나마 지하면 35만원이었다. 생각한다. 100만원 조금 넘게 벌어서 월세 빼고, 세금 빼고, 핸드폰사용료 빼고, 교통비 빼면 저축을 할 수가 없었다. 평생 이 코딱지만 한 월세 방 신세를 못 면하게 되는 것이다. 취미생활은 엄두도 못 내고 큰 병에 걸리면…….집에 가는 내내 많이 울었다.

# 독립하기 2. 화장실 네 개 있는 집과 네 집이 한 개의 화장실을 쓰는 집

초등학교 저학년이나 유치원을 대상으로 1대 1로 아이가 좋아하는 책을 읽어주고 이야기도 많이 하는 아르바이트를 한다. 강남, 서초 쪽에는 일이 많아 그 지역으로 1년 정도 했다. 반포 어느 아파트였다. 현관에 두 사람은 충분히 누울 수 있었고, 집 안에 복도가 있는, 방 안에 또 방이 있는 궁궐 같은 집이었다. 첫 수업을 마치고 현관을 찾지 못해 당황하며 나왔던 기억도 있다. 너무 신기해서 포털 부동산 사이트에서 검색을 해봤더니 90평짜리 집인데 매매가격이 30억이었다.

이 집에서 6살 아이와 수업을 했었다. 6살. 내가 6살 때는 신대방동 다세대 주택의 방 한 칸짜리에 4명의 식구가 살았다. 부엌은 방 옆에 있었지만 화장실을 네 가구가 같이 써야 했다. 아마도 나의 변비는 이때부터 시작되었을 것이다. 똥이 마려워 화장실에 가면 아랫집 아주머니가 빨래하느라 나오지 않는 것이다. 혹은 아랫집 아저씨, 언니들이 볼 일을 보고 있을 때가 많았다. 때문에 우리 집에는 내가 10살이 되던 3월까지 요강이 있었다.

그 땐 집이 좁아도, 화장실이 집 밖에 있어도 불편한지 몰랐는데, 지금에야 다시 그 시절로 돌아가야만 나의 꿈, 독립이 이루어진다니……. 울었다.

# 독립하기 3. 얄미운 집 주인

비슷한 시기 충정로 사무실에 들른 길에 근처 부동산에 가서 원룸이나 옥탑 방을 물었다. 옥탑 방은 있던 게 나갔고 신축건물 1층 원룸이 있단다. 신축건물이라는 말에 깨끗할 것 같아 당장 보자고 했다. 신축빌라 1층 주차장 경비실이었다. 경비원을 두지 않고 그 공간에 월세를 놓은 것이다. 한 쪽 창문은 열면 바로 주차된 차들이 보인다. 한쪽 창문은 열면 벽이 보인다. 1층이지만 빛이 전혀 들어오지 못하는 구조였다.

“좁지만 가격도 괜찮고 깨끗해서 좋은데요, 빛이 안 들어오네요.”

“요즘 빛 들어오고 그런 거 찾는 사람이 어디 있어~. 젊은 사람이 생각을 바꿔야지~. 낮에는 일하고 해지고 나야 오는데~ 빛 들어오는 게 뭐……. 싸게 내놓은 거야. 25만원까지 해줄게. 이런 집 없어.”

위 사진:[그림: 윤필]


이 날 이후 내가 아는 모든 지인들에게 이 부동산 할아버지 이야기를 했다. 그 뿐만 아니라 중림동 사무실을 올라가는 갈 때마다 이 부동산을 째려보고 지나간다.

# 독립하기 4. 싸게 반지하라도 살까?

지난 추석 전날, 내가 사는 신월동에는 무서울 정도로 비가 쏟아졌다. 점심때부터 2시간 정도 내린 비가 어마어마했다. 장마 때 마다 지대가 낮은 우리 동네는 지하가 물에 잠기는 일이 빈번했다. 빗물펌프장 확대 이후로 잠잠했는데, 아주 오래 만에 지하가 잠겼다. 도로도 잠겼다. 무릎을 훨씬 넘었다. 동네 아저씨들은 감전될까 덜덜 떨면서 양수기를 설치해야했고, 동사무소로 가서 양수기를 더 달라고 해야 했다. 양수기는 이미 동났다. 나는 아빠에게 인터넷으로 글과 사진을 올리라는 지령을 받고, 구청, 시청, 소방방재청에 글과 사진을 마구 올렸다. 곧 대변 냄새가 난다. 온 동네에 풍긴다. 오후 5시 비가 그치면서 순식간에 물이 빠졌다. 우리 연립 앞 지하에 사는 사람들은 동사무소로 대피했다. 엄마가 그 지하에 사는 새댁과 만났단다. 월세로 계속 살다가 한 달 전에 그 집을 샀는데 이 난리를 겪게 되었다. 물이 벽과 바닥으로부터 뿜어져 나오고 양변기가 역류해 집안에 똥이 동동 떠 다녔단다. 물난리는 그래도 참을만한데 똥 냄새 때문에 너무 힘들단다.

그 다음 날, 설날 아침 7시. 동사무소 공무원이 나를 찾는다. 전날의 상황이 자연재해였음을 절대 인재가 아니었음을 20여분 동안 친절하게 알려주셨다. 그리고는 구청 민원 글을 지워달라고 하셨다. 설날 아침 7시에…….

대통령님이 우리 동네 길 건너 화곡동에 납신다. 반지하 주택을 못 짓게 하겠다고? 물난리를 겪은 그 새댁은 위층에서는 전세로 2년마다 불안해하며 살아야 하지만 반지하로 내려오면 내 집에서 편안히 살 수 있었다. 그래서 습하고 어둡지만 그 집을 매매한 것이다. 나도 1층과 반지하 10만원 월세 차이가 참 많은 고민하게 만들었다. 반지하라도 지대가 높아 지하가 아니라는 집주인 아주머니의 얄미운 말씀이 믿고 싶었으니깐……. 곰팡이 자국이 보여도 말이지.

위 사진:[설명: 후암동-반지하 도시 Huam-dong:Semi-Basement City, 종이에 콘테, 29×40.5(cm), 2003] [출처: http://honesty.egloos.com/414770]


# 독립하기 5. 독립을 미루다.

서울 아파트 매매가 뚝 끊기면서 하락세를 보였다. 정부는 DTI 규제도 많이 완화하고, 취,등록세도 2%에서 1%로 낮추는 등 부동산 하락에 굉장히 민감하게 반응했다. 보금자리주택도 연기했다. 덕분에 전세 값이 치솟고 있다. 내가 100만원 모으면 전세 값은 200만원 올라버린다. 3년 동안 모아 전세로 독립할 목표를 세우고 정말 열심히 짠돌이 짓하면 아끼고 또 아끼고 있는데 앞이 안 보인다. 점점 화가 난다.

# 독립하기 6. 집은 인권이다.

요즘은 초등학생들이 누구는 어느 아파트 산다며 자기들끼리 소곤거리며 부러워한단다. 90평에 사는 그 6세 아이 또한 자신의 아파트에 대한 자부심이 있었다. 이렇게 어린 아이들도 느낀다. 어느 집에 사느냐, 어느 아파트에 사느냐가 사람의 판단 기준이 되는 세상이이다. 지난 교육감 선거의 뜨거운 감자였던 무상급식이 자꾸 생각난다. '무상 주택' 같은 선거 공약을 들고 나오는 사람 2년 뒤 없을까? 어떤 활동가의 말처럼 돈 모아 집 사느니 싸워서 얻어 내는 게 빠른 건가?

집은 삶의 안정을 위해 최우선적으로 국가에서 해결해야 한다. 억대의 집값은 말도 안 된다. 우리 이명박 대통령은 치킨 값 보다 집값이 더 비싸다는 것을 알면 좋을 텐데 말이지.
임대주택 좀 늘려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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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녕님은 인권운동사랑방 돋움활동가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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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오름 제 232 호 [기사입력] 2010년 12월 22일 11:5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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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어가는꿈2010.09.08 23:15

[페미니즘인(in)걸]"부모님 모셔와"가 무섭지 않은 세상을 만들려면?

청소년과 여성, 가족 제도에 스크래치 내기

공현


학생들에게, 학교에서 뭔가 규정을 어기거나 학교 눈 밖에 나는 짓을 했을 때 가장 두려운 조치는 뭘까? 그야 당연히 체벌이나 욕설, 또는 퇴학 같은 징계들 모두 다 무섭긴 무섭다. 그런데 내 경험상 가장 손써볼 도리가 없으면서도 껄끄러웠던 것은 “집에 전화하는 것”, “부모님(혹은 집안 어른, 보호자) 불러오는 것”이었다. 뭐 이런저런 집안 사정에 따라 다들 조금씩 느끼는 정도 차이야 있겠지만… 부모/보호자 소환은 공식적인 징계도 아니고 직접 두들겨 패는 폭력도 아니라서 학교 입장에서는 부담될 것 없으면서, 학생 입장에서는 참 대응하기도 어렵고 압박스러운 스킬 중 하나다. 실제로 많은 청소년인권운동을 하는 청소년들이 학교의 탄압은 버텨냈으면서도 이 집안의 압박 ― 가정탄압 앞에 굴복해야 했다.

교사들의 이 “부모님 모셔와” 스킬이 무서운 이유는, 바로 청소년들의 일상적인 생활 전반을 모두 규율할 권력이 부모/보호자에게 있기 때문이다. 심지어 학교에서 교사의 권한을 정당화하는 주된 논리 중에서 “부모/보호자로부터 교육을 위임받았기 때문”이라는 것도 있지 않은가. 부모/보호자에게는 청소년들이 어디에 있어야 하는지를 결정할 수 있는 권리가 법적으로 보장되어 있다. 또 부모/보호자는 자신들의 가치관에 따라 교육하고 지도할 권리와 자신들의 말을 듣지 않았을 때 벌을 줄 권리를 가지고 있다. 청소년들은 먹고 살 만큼 돈을 벌기가 힘들고 독립적으로 생활할 수 없는 세상이기 때문에, 부모/보호자들은 청소년들에 대한 경제적인 지배력도 가지고 있다. 부모-자식 관계에서는 대놓고 대들고 반항하기가 껄끄러운 문화적 심리적 장벽들도 관련되어 있다. 따라서 학교에서 집에 전화를 하고 부모/보호자를 부르는 일은 청소년들에게 가장 큰 힘을 행사할 수 있고 청소년들 입장에선 저항하기도 힘든 권력자를 불러들이는 조치인 셈이다. 학교보다 더 강력한 권력은 가족에 있는 것이다.



게다가 학교에서라면 문제제기를 할 거리가 되는 일들도, 부모/보호자에 의해 집안에서 이루어지면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곤 한다. 예컨대 학교 안에서 교육제도를 비판하는 전단지를 나눠줬다고 해서 징계를 하는 건 문제가 될 수 있지만, 자식이 그런 전단지를 나눠줬다고 어머니가 자식을 혼내거나 용돈을 깎거나 외출금지를 내리는 건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 만약 학교가 학교에 반항적인 학생의 생활을 감시하기 위해 휴대전화 위치추적을 하거나 하면 사회적 논란이 일수도 있겠지만, 부모가 자식을 걱정해서 휴대전화 위치추적을 하는 것은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래서 이런 부모/보호자와 자식/청소년의 관계가 권력관계임을 드러내기 위해서, 또 ‘부모’라는 엄마와 아빠가 있는 정상가족 중심적인 용어를 벗어나기 위해서 언제부턴가 청소년인권운동을 하는 사람들 몇몇은 “친권자”라는 말을 사용하고 있다.



페미니즘 : 가족 비판의 동지

우리 사회에서 가족은 끊임없이 좋은 곳, 회복되어야 할 곳으로 일컬어진다. 학교에서도 음악시간이면 “즐거운 곳에서 나 오라 하여도 내 쉴 곳은 내 집뿐”이라는 노래를 배우고, 동요도 엄마, 아빠와의 추억이나 화목한 가정을 소재로 한 게 많다. (“우리 아빠 꿈속에 오늘 밤에 나타나 내 얘기 좀 전해줄 수 있겠니. 먹고 싶은 것이나 놀고 싶은 것이나 모두모두 할 수 있게 해줄래.”라고 노래하는 「피노키오」라거나 “우리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어른들은 몰라요”라고 하는 「어른들은 몰라요」가 가장 투쟁적일 정도?) 영화에서 공익 광고에서 신문에서 법에서 가족은 계속 건강하게 회복되어야 할 곳, 삭막한 사회에서 마지막 안식처 정도로 묘사되곤 한다. 그런 한편 ‘정상 가족’이 아닌 가족에 속한 청소년들은 ‘정상 가족’을 당연한 걸로 전제하고 있고 가족에게 과도한 부담을 지우고 있는 사회에서 ‘정상 가족’을 가지기를 소망하고는 한다.

하지만 실제로 청소년들의 삶을 살다보면 과연 가족이 그런 것인가 의문을 가지게 된다. 청소년들은 가족에서는 정(情) 같은 것 말고도 생활을 하나하나 규율하고 명령하는 권력도 경험할 수 있다. 가족이 안식처라는 것은 노동에 지친 남성 가부장을 위한 판타지는 아닐까? 청소년에게 가족은 등을 누이고 쉬는 곳이 되기도 하지만 공부하라는 압박을 받는 곳, 또 다른 일터, 친권자에게 잘 보이고 생활비를 받는 곳이기도 하다. 가족에서는 친권자들에 의해 사랑과 교육의 이름을 달고 체벌이나 감금 같은 폭력도 빈번하게 일어난다. 때로는 소유욕과 의무감이나 권력의 행사가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정당화되기도 한다. 진로나 생활을 놓고 가족 안에서 벌어지는 청소년과 친권자 사이의 갈등은, 가족이 순전한 ‘공동체’가 아니라 그 안에서도 이해관계의 차이가 있음을 보여준다. 우리 사회에서 가족 시스템이 흔들리고 있어서 생기는 문제들도 있겠지만, ‘정상적인 가족’ 안에서도 충분히 많은 폭력과 권력관계, 사회적인 문제들이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페미니즘은 이러한 가족 비판의 영역에서 청소년운동의 ‘선배’인 셈이다. 페미니즘은 결혼이 불평등한 계약이고 가족이 여성을 억압하고 있으며 여성의 희생에 의해 이루어지고 있다고 지적한다. 가족 안에서 여성들은 폭력에 노출되어 있고, 가족 제도에 의해 여성들의 성은 통제받는다. 페미니즘은 그동안 일터와 사회는 남성들의 공간이고 가족은 여성들의 공간이라는 이분법 속에서 여성들에게 가사노동, 양육노동, 감정노동 등을 부담시킴으로써 가족이 유지되고 있다는 것을 밝혀왔다. 여성들에게 가족은 안식처이자 보금자리가 아니라 일종의 일터이다. 그것도 그 일의 가치가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는. 이처럼 가족이 자연스러운 운명공동체가 아니라 그 안에도 서로 다른 이해관계들과 권력관계들이 얽혀 있는 사회적인 제도라는 관점이 만들어진 것에는 페미니즘의 기여가 컸다. (사회주의-공산주의나 아나키즘 역시 이러한 관점을 만드는 데 일부 기여했다.)

페미니즘에 따르면 아이를 양육하고 교육할 책임을 어머니-여성에게 떠맡기는 걸 정당화하는 ‘모성’ 역시 자연스러운 게 아닌 사회적인 이데올로기이다. 이러한 비판은 청소년들에게도 중요한 시사점을 주는 이야기이다. 친권자들이 가진 양육의 책임은 동시에 청소년들의 삶을 지배하고 규율할 권력이 된다. 그렇기 때문에 ‘모성’ 이데올로기 등을 비판하는 것은 청소년들이 가족 안에서 겪는 억압과 갈등을 어느 개인의 문제 또는 자연스러운 현상이 아니라 사회적인 문제로 이해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주는 것이다.



청소년들의 이야기와 여성들의 이야기는 가족이라는 사회 제도에서 가장 많은 부분 맞물려 있다. 체벌이나 가정폭력,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이루어지는 폭력과 억압 등은 거의 비슷한 방식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또한 여성과 청소년 모두가 집에 있어야 할 존재로 취급받는다는 점, 사회 활동과 정치 활동에 제약이 따르는 존재라는 점도 동일하다. 양육의 책임과 그 권력의 문제에서는 여성-어머니와 청소년의 경우 서로 입장이 다르지만 같이 극복해야 할 얼키고설킨 굴레가 된다. 여성 청소년들이 남성 청소년들에 비해 가족 안에서 더 많은 억압을 받는 현실에서도 페미니즘과 ‘청소녀니즘’(청소년+이즘ism)이 만나는 교차점을 볼 수 있다.

물론 남성 가부장 역시 가족 제도 안에서 마냥 행복한 것은 아니다. ‘고개 숙인 아버지’ 등의 담론을 보면 지금의 가족 제도가 남성 가부장에게 어떠한 부담을 주고 있고 또 가족의 판타지가 이를 어떻게 은폐하고 있는지 알 수 있다. 하지만 좀 더 적극적으로 지금의 가족 제도를 바꾸기 위해 의미 있는 문제제기를 하고 거기에 저항할 동기가 있는 주체는 여성-어머니와 청소년이다. 가족을 비판하고 스크래치를 내고 바꾸려고 한다는 점에서는, 페미니즘 운동과 청소년운동은 동지 관계에 있다.


연대가 가능하든 말든

그러나 현실을 보면 여성-어머니와 청소년이 연대해서 가족을 바꿀 수 있을지, 나는 좀 의문스럽다. 이른바 ‘정상 가족’ 속에서 청소년들은 여성-어머니와 많은 충돌과 갈등을 겪는 일이 많다. 아버지는 좀 더 무게 있는 라스트 보스 급, 권력자로 존재하면서 중요한 순간에만 나서서 권력을 휘두르고, ‘정상 가족’ 안에서는 어머니가 청소년들의 일상생활 속에 권력자로 등장한다. 권위적인 아버지에게 저항할 때는 청소년과 여성-어머니가 같은 목소리를 내기도 하지만, 아버지와 여성-어머니가 연합하여 청소년의 삶을 자기들 마음대로 주물럭거리려고 하기도 한다. 또 어떤 경우에는 남성 청소년과 아버지가 여성-어머니를 착취하기도 한다.

여성-어머니와 청소년은 지금의 가족이 가지고 있는 문제를 직접 체험하기도 하지만, 그 안에서도 이해관계의 차이가 있기 때문에 쉽사리 연대할 수 없다. 하긴 애초에 가족을 당연하고 정당한 것으로 보는 이데올로기가 강고한 이 사회에서는, 가족의 문제를 느끼더라도 그걸 가족 제도를 바꿔야 한다는 생각으로 연결 짓는 사람들 자체가 드문 판이니 이 또한 하나의 탁상공론일 수 있다.

확실한 것은 페미니즘 운동과 청소년운동에게 가족은 같이 넘어야 할 산이라는 것이다. 역사가 짧은 청소년운동은 말할 것도 없고, 페미니즘 운동 역시 그동안 우리 사회의 가족을 충분히 비판하고 바꾸는 데 성공한 것 같지는 않다. 우선은 가족을 당연하고 정당한 것으로 포장하는 사회에서 가족을 하나의 상대적이고 사회적인 제도로 보고 그 제도의 문제들을 드러내는 데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가족끼리 서로 존중합시다.”, “서로 대화하는 가족을 만듭시다.” 같은 류의 캠페인을 넘어 가족이 사회적인 운동과 정치의 대상으로 생각되기 시작할 때 변화가 가능해질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청소년들과 여성들의 가족 안에서의 이야기를 공론화하고 우리의 다른 이해관계를 내세워 가족 제도에 스크래치를 내고 태클을 검으로써 가능할 것이다.


덧붙이는 글
공현 님은 청소년활동가네트워크 활동가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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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오름 제 218 호 [기사입력] 2010년 09월 08일 17:4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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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공현
걸어가는꿈2010.08.13 02:02

[세계의 인권보고서] 아동에 대한 법률상 폭력을 근절하기(2009), 모든 형태의 아동체벌근절을 위한 지구적 행동/세이브더칠드런 스웨덴

류은숙




[세계의 인권보고서] 아동에 대한 법률상 폭력을 근절하기(Ending legalized violence against children, global report 2009), 모든 형태의 아동체벌근절을 위한 지구적 행동/세이브더칠드런 스웨덴(Global Initiative to End All Corporal Punishment of Children/Save the Children Sweden)


모든 형태의 아동체벌근절을 위한 지구적 행동은 2001년 제네바에서 시작됐다. 유엔아동권리협약의 실현이라는 과제 속에서 모든 형태의 아동체벌을 근절하기 위한 행동을 촉구하고 있다. 세이브더칠드런 스웨덴은 1979년 세계최초로 스웨덴이 체벌을 명시적으로 금지하도록 하는데 기여했다. 두 단체가 공동으로 발간한 2009년 보고서에는 체벌금지를 향한 세계적 동향이 담겨있다. 이 보고서의 원문은 www.endcorpralpunishment.org에서 볼 수 있다.(역자 주)


아동폭력에 관한 유엔 특별대표, 마르타 산토스 페의 메시지

아동이 자신들의 인간 존엄성과 신체적 안전, 법 앞에 평등한 보호를 존중받을 권리는 현재 법률로 존재하는 모든 폭력을 끝낼 것을 요구한다. 유엔아동권리위원회가 체벌 및 모든 형태의 잔인하거나 굴욕적인 형태의 처벌로부터 보호받을 아동의 권리를 일반논평 8(2006년)에서 강조한 것처럼, 체벌금지에는 타협의 여지가 없다.

분명하고 명시적인 국가적 인권 규범의 기초가 필수적이다. 체벌금지 입법은 필수적이지만, 그것만으론 충분치 않다. 긍정적인 훈육과 사회적 지지와 행동 변화를 증진하기 위해서는, 꾸준한 홍보와 인식 개선 노력 및 (체벌이 아닌 대안적) 역량 만들기 노력을 통해 법적 개혁을 지원할 필요가 있다. 부모를 비롯해 아동을 돌보는 이들과 교사들이 긍정적이고 비폭력적인 형태의 훈육으로 옮겨갈 수 있으려면, 교재와 프로그램에 대한 지속적인 투자가 필요하다.

위 사진:유럽평의회 체벌금지 캠페인 포스터

체벌금지를 위한 인권적 기초

유엔아동권리협약이 제정된 지 20여년 동안 계속 유엔아동권리위원회는 모든 체벌을 법으로 금지할 것을 요구하는 것으로 협약을 해석해왔다. 대표적인 것이 유엔아동권리위원회가 2006년 채택한 일반논평 8이다. 아동폭력에 대한 유엔연구의 독립전문가인 파울로 핀헤이로 교수는 유엔총회에 제출한 보고서(A/61/299)에서 모든 국가는 체벌금지법을 제정해야 한다고 권고했다.

다른 국제인권조약 기구도 마찬가지로 체벌금지를 권고했다. 가령 고문에 관한 특별보고관은 2009년 보고서에서 “범죄에 대한 처벌로 명령되건 교육적 또는 훈육적 조치로서 관리되건 간에” 체벌은 금지돼야만 한다고 했다.

2008년 12월 유엔총회는 아동권리에 관한 결의안을 채택하고 모든 환경에서의 아동에 대한 폭력을 금지하고 근절하기 위한 법률적 조치를 취할 것을 국가들에게 촉구했다. 유엔인권이사회도 마찬가지의 권고를 2008년에 채택했다. “아동에 대한 체벌을 포함하여 체벌은 잔인하고, 비인도적이거나 굴욕적인 처벌 또는 심지어 고문에 해당할 수 있다”고 상기시켰다.

국가별 인권상황 정기 검토제도(Universal Periodic Review, 모든 유엔 회원국의 인권상황을 정기적으로 검토하는 제도)를 처음으로 시행하면서 유엔인권이사회는 아동에 대한 체벌을 적법화한 국가들을 되풀이하여 검토했다.

지역인권기구도 점차 체벌문제를 강조하고 있다. 아동의 권리와 복지에 관한 아프리카 헌장에 따른 국가보고서를 검토한 위원회는 최초의 결론적 의견에서 체벌금지를 권고했다. 유럽인권재판소는 점진적으로 아동에 대한 체벌을 반대하는 결정을 해왔고, 유럽 사회권위원회는 모든 형태의 체벌을 금지하지 않는 국가는 유럽사회헌장을 수행하지 않는 것이라고 봐왔다. 2008년 유럽평의회는 “아동구타에 반대하여 당신 손을 들라”는 캠페인에 착수했다. 이 캠페인은 모든 회원국에서 체벌을 금지하고 근절하기 위한 지역적 정부간 조직의 최초의 캠페인이 될 것이다. 47개 회원국 중 20개국이 완전금지를 입법했고, 더 많은 수가 법률초안을 논의 중에 있다. 미주인권위원회는 아동체벌 금지와 근절을 회원국의 인권증진에서 우선순위의 문제로 확정했다. 2008년 미주인권위원회는 미주인권재판소에 자문을 요청했다. 아동체벌금지가 미주인권협약과 인권선언에 부합하는지 아닌지에 대한 의견을 밝혀달라는 요청이었다. 이에 미주인권재판소는 자문의견은 불필요하다고 밝혔다. 왜냐하면 회원국들이 비준한 국제인권협약 하의 의무내용이나 미주인권재판소의 기존 관할사항에서 너무나 명확하게 드러나기 때문이라고 했다. 미주인권재판소는 아동은 “권리를 가지며 단순한 보호의 대상이 아니다”고 강조하면서 아동은 모든 인간과 마찬가지의 권리를 가지며, 국가는 사적영역에서나 공적영역에서나 이들의 권리를 보호해야만 하며 입법적 조치 뿐 아니라 여타의 조치가 요구된다고 했다.

위 사진:"폭력은 답이 아니라고 얼마나 얘기를 해야 되겠니?" <사진 출처; www.bhutanobserver.bt>

2009년 성취된 것, 성취되지 못한 것

모든 형태의 체벌(부모와 여타 보호자들에 의한 체벌을 포함하여)을 금지하는 법을 제정한 국가들은 세계적으로 25개국이다. 적어도 23개국이 완전한 체벌금지를 약속했고 그것을 위한 법 초안을 적극적으로 논의하고 있다.

전체적으로 109개국이 모든 학교에서의 체벌을 금지했다. 150개국은 법원에서 체벌형을 선고하는 것을, 109개국은 형벌기관에서 훈육적 조치로 사용하는 것을, 36개국은 거주시설과 보육시설, 수양보호 등 모든 보호기관에서의 체벌사용을 금지했다.

법 개혁 비율은 최근 몇 년 동안에 극적으로 증가했다. 1999년부터 2009년까지 17개국이 아동에게 폭력으로부터 동등한 보호를 제공하는 법률을 제정했다.

하지만, 여전히 세계 아동인구 중 단 3.2%만이 부모나 다른 보호자들에게 맞는 것으로부터 법적으로 보호된다. 4.6%만이 모든 형태의 대안양육기관에서 폭력으로부터 보호받을 수 있는 국가에서 산다. 체벌금지를 약속한 정부들이 법개혁을 이루고, 현재 논의 중인 법 초안들이 통과된다할지라도 세계아동인구의 1/5만이 법적으로 보호받게 될 것이다.

150개국 이상의 정부가 가정에서의 체벌금지에 대해 어떤 약속도 하지 않았다. 체벌이 학교에서 적법한 국가가 거의 90개국이다.

체벌 완전 금지를 성취한 국가들

1979년 스웨덴/1983년 핀란드/1987년 노르웨이/1989년 오스트리아/1994년 사이프러스/1997년 덴마크/1998년 라트비아/1998년 크로아티아/2000년 이스라엘/2000년 독일/2003년 불가리아/2003년 아이슬란드/2003년 우크라이나/2004년 루마니아/2004년 헝가리/2006년 그리스/2007년 네덜란드/2007년 뉴질랜드/2007년 포르투갈/2007년 우루과이/2007년 베네수엘라/2007년 스페인/2008년 코스타리카/2008년 남수단/2008년 몰도바공화국/2008년 룩셈부르크



스웨덴 - 체벌금지 30주년을 기념하다

스웨덴은 체벌금지법 30주년을 맞아 법의 효과와 스웨덴 사회의 변화를 기술하기 위한 보고서 <폭력은 결코 다시는 안돼-스웨덴의 체벌폐지 30년>을 발간했다.

스웨덴에서 1979년 부모에 의한 체벌을 금지하는 법이 제정됐을 때 대규모 선전 캠페인이 있었는데 그에 따르면 아이를 때리는 것이 더 이상 적법하지 않다는 것을 1981년까지 모든 가정의 90%이상이 인식하도록 하는 것이었다. 1960년대의 조사에 따르면 대부분의 취학 전 아동은 부모에게 맞았는데, 1970년대에는 50% 미만으로 1980년대에는 1/3로 줄었다. 2000년 이후로는 이 수치가 단지 몇 %에 지나지 않았다. 맞은 경험이 있는 아동도 빈도가 흔치않으며 아주 경미하게 체벌을 경험한 것으로 나타났다.

“지구상의 어떤 나라도, 얼마나 부자이고 잘 운영되던 간에, 아동에게 폭력과 학대로부터의 자유와 안전이라는 권리를 쉽사리 제공할 수는 없다. 이런 목표를 현실로 만들기 위해서는 아동에게 가까운 모든 어른들-부모, 교사, 이웃, 친척, 친구 등-의 헌신과 용기가 필요하다.
그 중심에서 아동에게 경청하는 시민사회, 그리고 법으로 아동의 권리를 지키고 부모를 지원하고 돕는 국가는, 신체적 및 정신적 폭력을 경험하지 않고 자랄 수 있는 모든 아동의 권리를 보장할 끝없는 과제를 수행하기 위한 전제조건이다.”(체벌폐지 30년 기념 보고서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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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오름 제 215 호 [기사입력] 2010년 08월 11일 16:35: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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흘러들어온꿈2010.07.30 08:41



[책의 유혹] 생식기 차이가 가져온 엄청난 결과

『아주 작은 차이』, 알리스 슈바이처 저, 김재희 역, 이프, 2001

초코파이

사실 이 책은 그리 딱 손에 잡혔던 책은 아니다. 책을 사고도 한동안 책꽂이에 조용히 전시해 두고 있었던 책이다. 그러다 처음 책을 잡고 보면서는 조금 불편했던 책이기도 하다. 왜냐하면 ‘그녀’들의 이야기 속에서 생물학적 남성인 내 모습들이 보였기 때문이다.

이 책은 20년이 넘게 평화 운동, 포르노 반대 운동 등을 펼치며 여성 운동의 대중화를 위해 애쓰던 저자가 사랑, 성, 일이라는 주제로 13명의 여성들을 만나 취재하고 인터뷰한 내용이다.



1975년 독일에서 처음 출판된 이 책에서 다루고 있는 이야기가 지금의 시각으로 보면 아주 새로운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이 책에 나와 있는 질 오르가즘에 대한 이야기나 동성애에 대한 이야기가 당시에는 색다른 것이었을지 몰라도 이제는 어느 정도 보편화되었기 때문이다. 동성애가 너무 쉽게(?) 드라마에서 다루어지는 것을 본다면 더욱 그렇다. 그러나 이 책을 읽으며 내가 얼굴을 붉혔듯이 책에서 이야기하는 내용들은 이미 죽어버린 그 무엇이 아니라 아직도 이 사회 곳곳에서 펄떡거리고 있는 작은 차이들에 대한 것들이다.

이 책에서는 남성과 여성이라는 ‘생식기’의 아주 작은 차이가 현실에서는 엄청난 차이와 고통으로 다가오고 있다고 이야기한다. ‘생식기’의 차이가 사회에서 남성과 여성의 역할의 차이를 낳고 이것이 결국 모두에게 불행한 결과를 가져왔다. 저자는 ‘8~9센티미터밖에 안 되는 아주 작은 차이’가 ‘엄청나게 큰 차이’를 만들어 낸 것이 온당하냐고 묻는다.

여성다울 것을 강요하는 사회, 가사와 육아가 여성의 몫으로 여겨지는 것은 지금에도 마찬가지이다. 신부수업을 받고 가사와 육아를 자연스럽게 여성의 몫으로 되어가며 그 속에서 느끼는 무력감은 주부 우울증이라 이야기되며 약물이나 정신과 치료 정도로 해결하려 한다. 그렇지만 그 속에서 느끼는 여성의 무력감은 남편의 관심과 약으로는 해결되기 어려운 복잡한 무엇이다. 회사에 있으면 육아 문제로 고민하는 여성들을 많이 보게 된다. 그렇지만 그만큼 거기에 대해 고민하는 남성들을 보기는 어렵다. 오히려 주말에 아이들에게 자신의 시간을 빼앗길까봐 차라리 휴일 근무를 하면서 돈도 벌려고 회사에 나오는 남성들을 찾는 게 더 쉬울 때가 많다. 내 친구는 남편이 ‘애보는 걸 안 도와준다.’고 이야기한다. 그 친구는 대학을 나왔고, 사회의식이 투철한 친구지만 ‘육아’는 자기가 하는 거고 남편은 ‘도와주는’ 거라는 표현을 자연스럽게 내뱉는다. 많은 여성이나 남성이 학력이 부족하거나 의식이 없어서 이 문제를 심각하게 인식하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너무나 일상화된 ‘아주 작은 차이’의 큰 결과이기에 덤덤히 지나가는 듯하다.

서울시여성가족재단은 맞벌이 부부 가운데 여성의 하루 평균 가사노동 시간은 3시간 27분으로 남성의 가사노동 시간인 42분에 비해 5배가량 높은 것이라고 밝혔다. 부부가 맞벌이를 하더라도 여성의 가사노동 시간이 남성의 가사노동 시간보다 5배 가까이 많은 것이다. 여성 생식기를 타고 났기에 여성이 가사와 육아를 전담해야 한다는 의식은 변함이 없다.

이 책에서 저자는 가사와 육아 못지않게 성의식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하고 있다. 저자는 성해방이라는 것이 결국은 여성의 해방이 되지 못하고 남성 중심의 억압적인 성관계를 강화시켰다고 주장하고 있다. 남성의 성기 삽입을 통한 질 오르가즘이야말로 진정한 오르가즘이라는 전통적인 성의식과 동성애에 대한 혐오는 지금도 계속 된다. 그리고 그러한 페니스(자지) 중심의 사고는 남성 중심의 가부장적 질서의 은근한 변형에 불과하다고 저자는 말하고 있다. ‘남편이 원하면 섹스가 싫어도 해줘야 한다고 알았다.’고 말하는 책 속의 한 인터뷰 여성의 말에서도 그런 모습은 드러난다. 결혼을 한 여성이든 하지 않은 여성이든 인터뷰 내용 중에서 정말 무의식중에 학습된 가부장(남성) 중심의 사회 체제는 정말 견고하다.

책의 서문에서 그녀는 “25년 전에 쓴 책이 아직도 꾸준히 읽히고 있고 여전히 그들이 물어오는 편지에 답변을 보내고 있다. 왜일까? 시간이 많이 지나오면서 상당히 달라졌다고 할 수도 있고, 별로 달라진 게 없다고 할 수도 있지만 아직 근본적인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기 때문이다.”라고 이야기하고 있다. 그렇게 느끼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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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오름 제 212 호 [기사입력] 2010년 07월 21일 15:06: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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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어가는꿈2010.04.23 09:56

[막말의 시대] 전교조 없는 세상에 살고 싶다는 조전혁 국회의원의 막돼먹은 신념

조전혁 의원의 교원단체 교사 명단 공개에 대해

명숙



헌법기관은 헌법기관의 결정을 무시해도 된다고?

한나라당 조전혁 국회의원(인천 남동구 을)이 4월 19일 자신의 인터넷홈페이지에 5개 교원단체 소속 교원 22만 2479명의 명단을 공개하였다. 법원이 ‘교원단체 소속교사 명단 공개는 부당하다’는 결정을 내렸지만, 국회의원이라는 고위 신분을 내세워 법원 판결을 무시하고 공개했다. 이에 대해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이하 전교조)와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이하 교총) 등 교원단체들이 반발하자 조 의원은 “헌법기관인 국회의원이 정부와 사법부에 대한 감시․통제 방법으로 자료를 요구하거나 직무상 얻은 자료를 공표하는 행위는 민사상 가처분의 대상이 아니다”는 발언을 했다. 정말 기가 차는 발언이다. 그동안 정부와 여당이 그토록 내세웠던 법치의 실체를 보여준다. 국회의원이 법원의 결정을 무시하는 것에서 보이듯이 그들에게 법치란 자신에게 유리할 때만 지켜지는, 그렇지 않으면 무시해도 되는 장식일 뿐이다.

법원 판결도 무시하는 무소불위 정치인 등장

조 의원이 말한 대로 국회의원은 헌법기관이므로 직무상 얻은 자료를 공표해도 된다고 하였지만 서울 남부지법 민사합의 51부(재판장 양재영)는 “조의원은 교육과학기술부에서 제출받은 교원단체 및 교원노조 소속 교사 명단을 인터넷 등에 공시하거나 언론 등에 공개해서는 안 된다”고 판결했다. 그럼에도 그는 삼권분립은 ‘나발’인지 헌법기관인 법원의 결정을 무시했다. 국회의원이 헌법기관이니까 직무상 얻은 자료를 언제 어디서나 공개할 수 있다고 해석하는 것은 국회의원의 권력을 자의적으로 확대해석한 횡포이다. 더구나 이번 공개는 정부나 사법부에 대한 감시나 통제를 위해 행사된 것이 아니다. 단지 자신의 특정 정치적 성향, 교육 성향을 강하게 밀어붙이기 위한 목적으로 타인의 권리( 개인정보 자기결정권과 결사권)를 고의적으로 침해한 것이다.

입법기관으로서 국회의원의 역할수행은 다른 헌법기관의 결정을 무시할 정도로 막대하거나 무제한적인 것이 아니다. 그가 국회의원의 역할수행을 권력행사로 오인하는 오만방자함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다. 역할 수행을 위한 최소한의 정당성의 토대는 바로 헌법적 질서 존중과 다른 사람의 권리를 보장하는 인권의식 이다. 그가 국회의원의 역할보다는 힘을 가진 자로서 권력행사에 관심이 있고, 시민의 권리는 무시해도 된다는 비상식적 사고를 갖고 있다고 단정할만하다.

교원단체 가입명단 공개가 알 권리라고?

인권을 침해하면서까지 명단을 공개한 조 의원이 근거로 내세운 것 중 하나가 바로 ‘알 권리’이다. 법원이 “교원의 교원노조 가입은 업무 외적인 영역의 개인 정보”로 “전교조 명단 공개는 개별학생이나 학부모의 학습권과 직접적인 관계가 없다”며 명단공개 금지 판결을 내렸음에도 부모들의 알권리를 보장하기 위해서라고 그는 주장한다. 또한 조 의원 측의 행위를 지지하는 보수 일각에서는 ‘전교조 가입 교사만 공개한 것이 아니라 다른 교원단체도 공개했는데 무엇이 문제냐’고 이야기 한다. 이러한 논리는 마치 조 의원의 행위가 중립적이고 객관적인 알 권리를 보장하는 행위로 보이게 한다. 그러나 숨겨진 본질을 알기 위해서는 ‘누가’, ‘무엇 때문에’ 알고 싶어 하는 내용인가를 되물어야 한다.



조 의원의 그간 행적과 발언, 조의원의 공표행위를 지지하는 보수단체의 논거를 통해 그의 의도는 쉽게 드러난다. 그동안 조 의원은 『전교조 없는 세상에 살고 싶다』라는 책 출판, ‘자유주의교육연합’이라는 단체의 대표로서 활동하였다. 2008년에도 교육 분야 국회 대정부 질의에서 “나는 우파이고, 우파인 것이 자랑스럽다"면서 당시 교육부장관이 개인의 인권문제가 있다고 답변했음에도 교원노조 명단 실명 공개를 주장하였고, 전교조가 그동안 정부 정책에 협조적이었나를 질의하였다.

교원단체 가입 교사 명단공개를 지지하는 보수적인 단체의 성명에도 이번 공개를 ‘전교조 명단 공개’로 한정하여 해석하고 있으며, 나아가 이번 공개가 전교조 교사들에 대한 통제수단이 될 거라고 이해하고 있다. 4월 21일 방송개혁시민연대는 성명서에서 “지난 정권 전교조가 학생을 대상으로 노골적인 친북, 반미, 반정부 교육을 실시한 것은 온 국민이 다 아는 내용”이라며, “명단 공개의 사회적 논란의 발단은 이렇듯 법원과 국민의 전교조에 대한 상이한 판단이 전제돼있다”고 밝혔다.

이렇듯 알 권리를 주장한 맥락은 중립적이거나 객관적인 행위가 아닌 노골적인 ‘전교조 가입 교사들에 대한 공격’을 목적으로 한다. 사실상 노조가입이라는 ‘권리행사’를 문제 삼고 있다. 명단 공개가 알 권리 보장이 목적이라기보다 특정 노조 가입에 대한 반대를 위해 행해진 것이다. 이러한 의도는 교사들의 결사의 자유를 침해한다.

또한 보수언론의 강한 영향력으로 전교조에 가입되었다는 이유로 교사들이 교직원이나 학부모에게 공격받을 수 있는 현실이 걱정스럽다. 이번 공개로 인해 교사 개인이 위협받는다면 큰일이다. (친절한 동아일보의 서비스로 개개 교사에 대한 공격 가능성은 넓어지고 있다.) 노조에 가입하거나 참여할 권리로서 결사의 자유는 헌법에도 보장된 권리이며, 특정 노조에 가입했다는 이유로 결사의 권리를 침해해서는 안 된다.

알 권리와 정보공개

알 권리는 국민이 자신의 이해와 인권에 연관된 정보를 제대로 알 수 있도록 보장한 권리이다. 정보접근을 포함한 알 권리는 다른 인권을 보장하기 위해 필수적이다. 실제 정부기관이나 공적 기관, 공적 인물의 행위나 정책은 시민사회에 큰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정부기관이 어떠한 일을 했고, 어떠한 정책방향을 세웠는지, 돈은 어떻게 쓰고 있는지를 알아야만 한다. 이러한 사안에 대한 알 권리가 차단된다면, 다수의 사람들은 자신의 인권을 침해하는 정책이나 집행에 대해 입하나 뻥긋 못할 수 있다. 그러므로 알 권리가 보장되고 많은 공적인 정보가 공개되어야 정부의 주요 행위나 정책에 대해 지지하거나 비판할 수 있다.

그런데 이번에 공개된 것은 그동안 정부의 교육정책에서 배제되었던 시민들의 권리를 찾기 위한 정부 정책이나 교육예산 집행 내역, 사교육 비리, 뇌물을 받은 비리 학교 교장, 교육감에 대한 내용이 아니다. 그저 개별 교사들이 어느 단체에 가입했는지 파악할 수 있도록 명단을 공개했을 뿐이다. 개인정보 보호와 알 권리는 긴장관계가 있는 게 사실이다. 그래서 충돌을 최소화하기 위해서는 정보공개를 할 때는 ‘공익적 목적’이 분명해야 하며, ‘본인의 동의’와 ‘정보이용에 대한 이유’가 분명해야 한다. 그러나 이번 공개는 최소한의 공익적 목적(가령, 비리교사 공개를 통한 징계 등)도 없이 조 의원의 평소 신념인 전교조 없는 세상을 만들려는 ‘사익’을 달성하려고, ‘교사 당사자들의 동의 없이’ 진행되었다.

그동안 정작 필요한 알 권리에 해당하는 정보는 공개되고 있지 않다. 한 예로, 지난 3월부터 경북지역에서 시민사회가 교육 비리에 연루된 교장․행정실장․교육 관료들의 명단을 공개하라고 요구했으나 교육청은 이를 공개하지 않고 있다. 정보접근권은 제한된 영역에만, 그것도 정부여당의 정치성향이나 정책과 다를 때에만 보장된다면 이는 알권리라고 칭할 수 있을까? 그런 점에서 이번 공개는 알 권리라기보다는 ‘반정부성향 파악 목적’이라고 하는 것이 정확하다.

결사의 권리도 딱지를 붙여 빼앗고

이제 결사의 권리는 ‘전교조 아닌 노조’에 가입할 때만 존재하는 것이 되었다. 교사들이 헌법과 각종 국제인권규약에 명시된, 모든 시민의 권리라는 노조가입의 권리를 행사하려면, 행사하고 싶다면, ‘전교조’가 아니어야 한다. 2010년 한국에서는 노동권 중의 하나인 노동조합(단체)가입의 권리를 행사하는 일조차 검열당하고 감시당하고 있다. 유엔 대표적인 인권기구인 자유권위원회 및 사회권위원회는 전교조와 공무원의 노동3권을 보장하라는 권고를 수없이 했으나 한국정부는 이행하지 않고 있다.

조 의원의 노림수는 평소 막돼먹은 신념에서 비롯된 일이기도 하지만, 6월 지방선거와 교육감선거에서 보수층 지지를 모으려는 행위일 뿐이다. 불평등을 재생산하는 입시경쟁 위주의 학교가 변하기를 꿈꾼다는 이유로 정부는 전교조에 빨간색을 덧칠하였다. 이제는 학생과 학부모들이 ‘교육의 지향’에 대해서 생각하고 논의하기보다는 ‘전교조냐, 아니냐’를 먼저 판단하게 논쟁 프레임을 바꾸려 하고 있다. 그런 점에서 이번 명단 공개는 교사들의 권리 침해이기도 하지만 학생들과 학부모들의 다른 교육을 상상할 권리도 제한한다.

최근 경기도 학생인권조례 제정운동과 초중고 무상급식 필요성이 많은 시민에게 공감 받으면서 학생들과 학부모들은 ‘내가 어떻게 살 것인지? 내가 꿈꾸는 학교생활은 무엇인지?’, ‘내 자녀가 어떤 교육환경에서 자라면 좋은지?’를 생각했다. 한국은 고등학생 대학 진학률 85%이지만 대학을 졸업해도 88만원 세대로 살아갈 수밖에 없는 사회라는 점에서, 이 시대의 입시교육과 경쟁에 대해 많은 이들이 의심을 품고 있다. 이러한 교육에 대한 성찰을 무(無)로 돌리는 논쟁 프레임 바꾸기 시도는 우리 사회의 변화가능성을 축소시킨다. 언론과 보수 일각에서 입시교육과 경쟁을 당연시하는 것을 전제로 이루어지는 전교조 공격은 학생들과 학부모들이 ‘다른 교육’을 꿈꿀 권리를 박탈하는 일이기에 우려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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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오름 제 199 호 [기사입력] 2010년 04월 22일 22:3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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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어가는꿈2010.03.11 13:59

청소년모의인권이사회에서 국가인권위의 ‘쩔음’을 겪다

둠코


1월 26일∼ 28일 국가인권위원회는 2010년 청소년모의인권이사회(아래 모의인권이사회)를 개최했다. 청소년인권행동 아수나로도 회의를 거쳐서 모의인권이사회에 참가하기로 결정했다. 2백명 참가자를 뽑는데 1천명 이상이 신청을 해서 5대 1의 치열한 경쟁을 뚫고 아수나로에서는 청소년 5명이 최종 참가했다.

아수나로에서 모의인권이사회에 참여하기로 한 이유는 두 가지였다. 첫째, 인권감수성이나 인권의식은 눈꼽만큼도 찾아볼 수 없는 국가인권위원회 위원장 현병철과 사무총장 김옥신에게 태클을 거는 청소년들이 있다는 것을 알리는 것이다. 그네들이 청소년의 인권의식을 함양한다면서 이런 걸 하기 전에 무자격 인권위원장부터 해결하시라고 피켓팅을 해서 경고해주고 싶었다. 둘째, 인권에 관심을 가지고 참가한 청소년을 만나서 인권운동을 알리고 가능하다면 인권운동에 끌어들이는 마수(?)를 뻗치기 위해서였다. 여러 인권 쟁점들에 관한 ‘결의문’을 청소년들이 직접 만들게 한다고 하니, 열심히 참여하여 최대한 인권적인 내용을 담으려는 욕심도 있었다.

그렇지만 나를 포함해서 모의인권이사회에 참여했던 아수나로 청소년들은 다들 어둡고 피로에 쩔은 얼굴로 돌아왔다. 결국 피켓팅도 하지 못했고, 성과는 아무 것도 없이 다들 지치기만 했다. “다시는 모의인권이사회 같은 거 참가 안 한다”는 게 지금 청소년들의 심정이다.

모의인권이사회에 나타난 인권에 대한 무신경

2010 청소년모의인권이사회가 진행된 장소는 고려대학교 이다. 숙소는 고려대학교 기숙사 중 한 곳이었다. 그런데 이 기숙사는 행사 기간 동안 엘리베이터 공사를 했고, 내부 곳곳이 추락 위험에 노출되어 있었다. 혹시 참가자 중 장애 청소년이 있었을 경우를 생각해서 이동권 보장을 준비했는지 알 수 없었다. 기숙사 외에도 행사 장소 전반에서, ‘만일 장애인 참가자가 있다면’ 하고 보니, 장애인 이동권 보장은 부족해 보였다. 그밖에 여러 문제들이 눈에 띄었다. 예컨대, 식단에는 ‘채식’을 위한 고려는 전혀 없었다. 노트북을 가져오면 인터넷을 사용할 수 있다고 하였으나 사용할 수 없었고, 구체적 사안에 대한 전달이 느려져 진행에 차질이 많았다.

특히 스텝들이 청소년을 대하는 태도는 청소년을 괴롭게 만드는 주요 원인 중 하나였다. 모의인권이사회에 참여했으니 청소년을 ‘인권이사’처럼 대우해달라고까지 요구하진 않겠지만, 최소한 청소년의 인권과 인격에 대한 존중은 있어야 했다. 그러나 스텝들은 참가한 청소년을 생활 전반에서 ‘관리’와 ‘규제’의 대상으로 생각하는 것 같았다. 참가자들은 첫날 아무런 통보도 받지 못하고 숙소에 들어와서야 “10시에 점호를 하니 이제부터 여기에서 나갈 수 없다”라는 통보를 받았다.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혹은 스텝이라는 이유로 참가자들에게 함부로 반말을 쓰는 일은 비일비재했다. 회의 도중 화장실을 가는 것조차 프로그램 이탈 우려가 있다며 스텝이 동행하는 등 감시하는 일도 있었다.



청소년들이 인권에 대해 이야기하고 생각하도록 하는 것이 모의인권이사회의 목적이라면 생활의 여러 부분에서 인권이 보장되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 인권교육 중 가장 훌륭한 인권교육은 생활에서 직접 체험하고 경험하는 것이다. 인권에 대해 무신경하게 만들어진 모의인권이사회에 참여하면서 참가자들은 인권에 대해 어떤 새로운 경험을 할 수 있었을까?

인권의식을 함양할 수 있나?

모의인권이사회에 참여하는 내내 회의가 생겼다. 이 행사는 대체 목적이 무엇일까? 그냥 국가인권위원회에서 청소년 2백여 명이 참여했다는 걸 보여주기 위한 행사는 아닐까? 이건 단지 국가기관에 대한 비정부조직(NGO) 활동가의 고질적인 편견 때문에 가진 생각만은 아니다.

실무회의는 논의해야 하는 사항에 비해 시간이 너무 부족했고, 결국 마지막에 논의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했다. 사전 오리엔테이션이 부족하여 참가자들, 의장단들이 진행 방식에 혼란을 일으켜 버벅 거린 것도 한 몫 했다. 결국 2박3일로 짜여진 무리한 일정을 소화하기 위해서 참가자들은 비공식적으로 밤 시간을 이용해 하지 못했던 논의를 진행하고, 결의안을 작성해야 했다. 지정된 시간 안에 결론을 도출하여 결의안을 작성해야 한다는 압박 때문에 정작 필요하다고 여겨지는 깊은 토론을 피하는 경우도 있었다. 이건 참가자들의 휴식권을 침해한 것이었고, 제대로 인권에 대해 공부하고 이야기하는 자리로 모의인권이사회를 준비하고 기획한 것인지 의문스러웠다.

더군다나 모의인권이사회는 참가한 팀과 사람들을 ‘평가’해서 몇 명을 뽑아 상을 주는 대회였다. 그 결과 많은 참가자들이 논의 내용이나 진행 방식을 심사위원의 편의나 평가에 맞추기 위해 노력했다. 국가기관이 주최한 장관상을 주는 행사였기에, 대학진학에 유리한 스펙을 위해서 참가한 청소년들이 상당수 존재했다. 모의국회니 토론대회니 하는 데 참여했던 적이 있는 사람들도 다수 있었다.(타 대회 참가 경력도 선발 기준 중 하나였다.) 게다가 ‘드레스코드’를 맞추어서 ‘복장규제’를 하자고 한 팀도 있었다. 주최 측도 ‘평가’에 얽매여 있긴 마찬가지였다. 평가를 하다보니 원래 유엔인권이사회와는 다르게 진행되었고, 인권에 대해 깊은 토론을 할 수 없었다.

모의인권이사회의 목적은 청소년들이 인권에 대해 생각하고 인권의식을 함양하는 것이다. 그런데 목적을 달성하는 방식으로 팀에 점수를 매겨 수상을 하는 것은 인권적인 접근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참가자들 중에서는 ‘상을 받기 위해’ 자신의 솔직한 주장이 아니라 심사위원들이 좋아할 것 같은 주장을 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았다.

표현의 자유를 막으면서 집회․결사의 자유를 떠든 대회

대회 마지막 날, 결국 사건이 있었다. 청소년인권행동 아수나로에서 참가한 청소년들은 폐회식 때 현병철 위원장과 김옥신 사무처장의 무자격성을 비판하는 피케팅을 진행하려 했다. 그러나 피켓시위를 하기도 전에 국가인권위원회 직원이 피켓을 소지하고 있는 아수나로 회원 청소년에게 겉옷 안에 있는 물건이 뭔지 보여 달라고 했다. 이를 거부하자, 직원은 청소년의 팔을 잡아끌고 폐회식장 밖으로 나갔다. 그 후 청소년은 재 입장을 제지당했다. 다른 국가인권위원회 직원이 와서는 피켓팅을 하지 않을 것을 요구했고, 피케팅을 하지 않겠다고 말한 이후에야 입장할 수 있었다.

국가인권위원회가 스스로 표현의 자유를 침해해놓고, 모의인권이사회에서 청소년들이 향유해야할 표현의 자유와 집회․결사의 자유를 토론하는 것은 모순이다. 이제까지 다른 인권단체들이 위원장 취임식을 비롯해 온갖 행사에서 피켓팅을 하고 의견을 표현하는 것은 제지하지 못했으면서 청소년의 피케팅만 제지하다니! 자신들이 기획한 ‘행사’에 ‘오점’을 남기지 않으려는 관료적인 모습과 청소년이라는 이유로 함부로 대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우리가 그 곳에 앉은 청소년들에게 시비를 거는 것도 아니었고, 모의인권이사회 폐회식 진행을 물리적으로 가로막고 폭력을 행사하려고 한 것도 아니었다. 그저 지금 국가인권위원회의 위원장, 사무총장이 인권감수성과 지식, 경험이 없는 사람이라는 것에 문제제기를 하려던 것이다. 그런데 평화로운 피킷팅에 대해 수백 명의 인권을 침해하는 행위라느니, 행사 진행이 불가능하게 하는 행위라느니 하면서 강제로 가로막은 것을 변명하는 모습에는 기가 막혔다.

모의인권이사회 참가 그 이후…

청소년인권행동 아수나로는 모의인권이사회가 끝난 이후에 진행상의 문제점들과 피케팅을 제지한 것에 관한 의견을 모아 국가인권위원회에 전달했고, 면담을 요청했다. 그 결과 정책국장, 인권교육과장 등을 비롯하여 책임자들을 만나서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면담 결과, 국가인권위원회 측에서는 행사 진행에서 인권적인 내용을 충분히 고려하지 못한 것이나 미비했던 점들에 대해서는 대부분 우리의 문제제기를 수용했고, 이후 이와 같은 행사를 준비한다면 반영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피켓팅을 제지한 것에 관해서 국가인권위원회 측은 그것이 ‘제지’가 아니었고 주최 측으로서는 당연한 ‘협조요청’이라고 완강하게 버텼다. 청소년의 팔을 붙잡고 잡아끄는 등 물리력이 있었다는 것을 확인한 이후에도 국가인권위원회는 사과하기를 거부했다.

관료화에 쩔은 국가인권위원회의 모습을 여실히 체험하고 온 기분이 든다고 하면 지나친 말일까? 그나마 국가인권위원회가 참가자들과 인권단체의 문제제기에 대해 조금이라도 귀를 기울이는 태도에서 “그래, 인권위도 국가기구인데, 이정도가 어디야. 다른 기관에서는 만나주지도 않을걸?” 식으로 생각하기는 너무 씁쓸하지 않은가. 인권에 대해서는 아는 게 없을 현병철 위원장이 있는 국가인권위원회이기 때문에 더더욱 믿음이 안 가고 짜증이 나는 건지도 모르겠다. 피켓팅을 제지한 게 ‘협조요청’이라면서 사과하지 않고 있는 국가인권위원회가 끝내 실망스럽다.

모의인권이사회는 참가자의 입장에서 너무 힘들었고, 문제제기하고 싶은 부분이 많은 행사였다. 국가인권위원회는 제2회 청소년 모의인권이사회를 개최할 계획이 있다고 한다. ‘모의인권이사회’ 같은 형식을 과감히 버리고 청소년들과 인권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행사가 더 낫지 않을까? 국가인권위원회가 정말 인권적이지 않다는 생각만 잔뜩 드는, 인권조차도 스펙 쌓기, 상품의 일종이 되어버리는 현실을 느끼게 하는, ‘보여주기’를 위한 행사는 최소한 아니어야 하지 않겠는가?

덧붙이는 글
둠코는 청소년인권행동 아수나로 활동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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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오름 제 193 호 [기사입력] 2010년 03월 09일 23:24: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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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어가는꿈2010.02.13 15:04

[페미니즘인(in)걸?] 왜 소수자들은, 여성/청소년들은, 오지랖이 넓은가

‘그래도...’의 반복

난다


학교를 그만두기 전, 학교 친구들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할 때, 늘 어느 순간 벽 같은 것에 부딪히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신나게 학교 욕, 선생 욕을 하다가도 누군가는 꼭 “너무 우리들 생각만 하지 말고, 선생님 생각도 좀 하자.”라고 이야기하곤 했다. 이를테면 체벌에 대해 수다를 떨 때, “어떻게 사람이 사람을 그렇게 때리냐? 진짜 그 선생 너무 심하게 때리는 것 같아.”라고 얘기하면, “에이, 그 선생님이 좀 심하게 때리긴 했지만 그래도 어느 정도의 체벌은 허용되고 그래야, 우리도 스스로를 통제하고 학교도 잘 굴러갈 수 있는 거 아니겠어?” 그리고 친구들의 끄덕거림이 따라온다. 늘 답답했었다. 왜 이 친구들은 자신들을 억압하고 통제하는 것들에 대해 그냥 그대로 수긍하는 거지?

비슷한 경험은 학교를 그만 두고서 인권활동이라는 걸 하면서도 자주 접했던 것 같다. 인권교육을 가서 학생들의 권리나 인권에 대해 얘기하면 청소년들은 ‘아무리 그래도’ 하면서 ‘선생님들’ 걱정을 했다. 고된 하루를 마치고 돌아온 아빠는 회사 뒷담화를 까다가 내가 발끈하자, ‘그래도’하면서 ‘사장님’을 옹호한다. ‘사장님’도 나름의 고충과 어려움이 있어서 그러는 거라고. 내가 보기엔 아빠가 훨씬 힘들어 보이는데.


구조적 무감각과 ‘착하게’ 길들여지기

사람들은 쉽게 이 사회의 기준을 받아들인다. 그래서 주류적인 기준을 흔드는 것들에 대해 불편함을 느낀다. 곧잘 ‘인권’을 이야기하고, ‘차별’을 이야기하고, ‘변화’를 이야기하지만 어떤 ‘선’을 넘어가지 않으려 한다. 그 ‘선’을 넘어가는 것은 기존 사회의 질서를 흔들고 침범하는 것이라 여긴다.

처음부터 그랬을 것 같진 않다. 청소년들이 “아직 어린 것들이”라는 말에 맞춰 “그래, 우린 아직 어리니까 좀 더 통제 받아야 해.”라고 생각하거나, 여성들이 이 사회 ‘미’의 기준에 맞춰 자신을 더욱 꾸며내고 혹독한 다이어트를 감행한다거나, 혹은 자신에게 상처를 준 남성들을 먼저 이해하고 배려하는 방식으로 상처를 치유하려고 한다.

같은 사회적 약자로 닮은꼴인 청소년과 여성, 그리고 약자들은 웃기게도 강자를 먼저 걱정한다. 그러한 여성성과 약자성(먼저 배려하고 먼저 이해하고)은 약자가 강자에게 훨씬 더 많이 잘 발휘되고 있다. 이는 성인/교사/남성-강자 중심 사회에서 그들 중심의 질서가 학생/여성 속에도 깊이 뿌리를 내려, 자신들을 둘러싼 억압마저 그들의 시선으로 보게 되기 때문이다. 또한 어렸을 때부터, 아주 예전부터 ‘남성/비청소년의 이야기’가 자연스러운 것으로 인정받는 사회를 살며 쌓아온 경험들이 우리들 마음 곳곳에 눌러 붙어 ‘내면화’되었기 때문이다.


생존하기 위해 강자 입장 내면화하기

소수자/약자들이, 권력 있는 자/강자들을 위하도록. 그래서 이 사회가 뒤틀리지 않고, 뒤집어지지 않게 고정시킬 수 있도록. 그렇게 사회는 우리들을 오랫동안 ‘착하게’ 길들여왔다.

그렇게 길들여진 ‘착한’ 사람들은 착하게 살아야 한다는 걸 받아들이고 산다. 고등학교 시절, 나는 착하고 착실했다. ‘야간자율학습’은 한 번도 빼먹지 않았고, 성적도 그럭저럭 유지했다. 학교의 온갖 규제가 고통스러워도, 선생님들이 우리를 때려도, 나는 그 순간순간을 흘려보냈다. 그런 것들을 그만두라고 말하고도 싶었지만, 그 순간에는 착실하게 참아냈다. 그 순간만 넘기면 되니까. 또는 그 순간에 내 목소리를 내기라도 하면, 눈앞에 징계나 탄압이 떨어질 테니까.

하지만 그런 시간을 보낼수록 선생님들이 우리를 때릴 때마다 그걸 계속 지켜보고만 있어야 한다는 게, 그럴 수밖에 없다는 게 괴로웠다. 나는 왜 아무 말도 못하는 거지? 나는 왜 이렇게 힘이 없지? 이런 고민을 하다가, 그냥 거기에 그럴 만한 의미를 부여해버렸던 것 같다. 어쩔 수 없어, 라고. 선생님도 그만한 이유-학생들을 대학에 많이 보내야 할-가 있어서일 테고, 그건 선생님도 어떻게 할 수 없는 일이니까, 라고.

먹고 사는 것, 여성들의 경우에는 사회적 인식도 그렇고, 학생들은 학교에서의 눈앞에 보이는 탄압이나 징계에 대한 문제 때문에 쉽게 바꿔내야겠다는 생각을 더 못하게 되는 것 같다. 나는 나의 생존을 위해서 이 체제에 편입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이렇게 편입되는 자기를 정당화하기 위해서는 강자의 입장을 이해해야 했다. 그리고 이 사람들을 정당화 시켜야 했다. 나한테 고통을 준 사람도 어느 정도 합당한 이유가 있었기 때문인 것이고, 이 사람들을 이해하게 되면 나는 덜 불편할 수 있으니. 그리고 그럴 때에야 나는 이 사회의 질서를 어지럽히거나 혼란스럽게 하는 나쁜 사람이 되지 않을 수 있으니. 그래서 나도 그러한 나 자신과 학교와 체벌하는 교사에 어떤 의미를 부여했던 것이다.

그래서 대부분의 사람들이 학창시절을 추억할 때처럼. 대학에 가고 나서, 자유시간이 많아지니, “아 그래도 고딩 땐 할 게 있었는데~”하는 생각이 드는 것처럼. 수능 보기 전에는 수능공부=쓸모 있는 짓/나머지 전부=휴식이라는 ‘공식’이 있었는데, 수능이 끝나고 이게 허물어지고 나니, 참 허무하더라는 것처럼.

너무 힘든 시절이었지만, 그렇게 힘든 시간만 있었다고 생각하기엔 내가 너무 비참하니까. 그래서 소소하고 시시콜콜한 일들을 더 크게 기억하고 추억하면서 그 때는 그래도 좋았지, 그래서 좋았지, 라고 생각하게 되는 것이 반복되고 반복되어 이 체제를 구성한다.


그래서, 그러니까

이 단단한 구조를 직시하는 것은 여성으로, 청소년으로, 약자로 살아가고 있는 나를 온전히 바라보는 것만큼 어렵고 힘든 일이다. 하지만 우리를 더욱 ‘착한 아이’로 길들이는 국가의 통제가 점점 더 검은 그림자를 펼쳐오는 이 때, ‘착한 아이’가 아니면 무차별적인 폭력으로 쫓아내버려도 된다고 생각하는 이 때, ‘국가’를 위해서는 권리를 주장하는 것도 멈춰야 한다고, ‘모두가 똑같은 손을 들어야 한다고’ 말하는 이 때. 우리 이제 더 이상 착해지지 않아도 되었으면 좋겠다. 이 커다랗고 단단한 기준을 뒤집을 만한 발칙함과 깐깐함이 우리에겐 더 많이 필요하다.


덧붙이는 글
난다 님은 청소년인권활동가네트워크 여성주의 팀 활동가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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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오름 제 190 호 [기사입력] 2010년 02월 09일 23:3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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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어가는꿈2009.12.09 16:09

[세계인권선언기념] 인권활동가들이 뽑은 2009년 10대 인권 뉴스

법의 이름으로 인권이 짓밟힌 한 해


공현


인권활동가대회 준비모임에서는 12월 10일 세계인권선언일을 맞아서 인권활동가들에게 “2009년 10대 인권뉴스”가 뭐라고 생각하는지 설문조사를 했다. 90여 명의 인권활동가들이 답한 결과, 2009년의 10대 뉴스는 다음과 같다.

2009년 10대 인권뉴스

★ 망루에 오른 용산 철거민, 경찰 과잉진압으로 5명 사망 ... 재판부, 철거민들에게 중형 선고

★ 국가인권위 조직 축소에 이어 인권 문외한 현병철 인권위원장 취임 ... 인권단체들과 국제인권기구의 항의 이어져

★ 쌍용자동차 노동자들의 장기간 옥쇄 투쟁과 경찰의 살인 폭력

★ 집회및시위에관한법률 야간집회금지조항 헌법불합치 결정 ... 집시법 개정 필요성 제기

★ 불법체류율 낮추겠다며 이주노조 표적 탄압, 집중 단속 실시 ... 스탑 크랙다운 미누 씨도 강제추방

★ 미디어법 날치기 국회통과 ...한술 더 뜬 헌재 "절차는 문제 있지만 무효 아니다"

★ 민주노총 성폭력 사건 ... 운동 진영의 여성주의적 성찰 요청돼

★ 광화문, 서울 광장 등 광장 개장, 광장에서 시민들 마구잡히 연행 ... 광장을 열어라

★ 이름만 바꾼 대운하 4대강 사업, 졸속 환경영향 평가 후 강행

★ 시국선언 교사, 공무원 징계 추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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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올해 선정된 10대 인권뉴스들을 살펴보다보면, 거의 대부분이 정부가 인권침해의 가해자이거나 반인권적 정책을 강행한 내용들이라는 것이 눈에 띈다.



‘법’의 이름으로 ‘인권’이 짓밟힌 한 해

2009년은, 용산 철거현장에서 치솟아 오른 불길과 함께 시작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주거권을 침해하는 재개발과강제퇴거, 철거, 그리고 경찰의 무모한 작전은 그렇게 7명의 목숨을 앗아갔다. 재판에서는 여러 석연치 않은 점들이 있었지만철거민들이 모든 죄를 뒤집어썼고, 정부는 아무런 사과도 하지 않고 책임도 지지 않고 있다. 사건이 발생하고 1년이 다 되어가는데 아직 장례조차 치르지 못한 용산 참사. 인권활동가들은 10대 인권뉴스로 이 용산 참사를 가장 많이 선택했다. 용산 참사는이윤을 위한 재개발이 가지고 있는 잔인함을 다시 한 번 확인시킨 사건이었고, 우리 사회에 주거권, 생존권, 경찰 폭력 등에 대한이야기들을 다시 한 번 환기시켰다. 또한 용산 참사는 이명박 정부가 그렇게도 강조하는 ‘법치’가 대체 어떤 것인지 너무나도선명하게 드러낸 사건이었다.

이명박 정부식 ‘법치’는 용산 참사 외에도 올해 여러 차례 그 맹위(-_-)를 떨치며 ‘법치’가 인권 보장을 위한 수단이 아니라인권침해의 적극적인 구호가 될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10대 인권뉴스에는 그 대표적 사건으로 쌍용차 투쟁과 경찰의 살인 폭력도선정되었다. “해고는 살인이다”라며 생존을 외치는 노동자들의 절박함을 ‘불법’이라 이름하며 진압하고, 정작 그 과정에서 한최소한의 약속들도 지키지 않는 정부와 기업의 모습들은 엄격한 ‘법치’를 내세우는 것이 사회적 약자들을 탄압하는 도구임을 똑똑히증명하고 있다.

이주노조 탄압, 이주노동자 집중 단속 실시, 미누 씨 추방 등도 사람에게 ‘불법’의 낙인을 찍으며 인권을 탄압한 대표적인사례로, 10대 인권뉴스 중 하나로 꼽혔다. ‘불법체류’를 근절하겠다며 벌어진 단속과 탄압은 미등록 이주노동자들을 ‘불법사람’으로 몰아갔다. 법무부는 한국에서 오랜 기간 살며 문화 활동을 해온 미누 씨를 강제추방하며, ‘법’의 이름으로 인권을짓밟고 사람을 짓밟을 강력한 의지를 과시했다. 지금도 쌍용차 노동자들에 대한 탄압과 이주노동자 집중단속은 현재진행 중이다.


근데 이건 뭐 ‘법치’도 아니고

그런데 2009년 10대 인권뉴스로 뽑힌 다른 사건들은 현 정권이 이야기하는 ‘법치’가 얼마나 나일롱스런 법치이고 자기들 입맛에맞게 적용되는 법치인지 또한 보여주고 있다. 예를 들어 10대 인권뉴스 중 미디어법 날치기 통과, 절차를 무시한 4대강 사업강행 등은 모두 ‘법치’를 강조하던 이 정권이 정작 ‘법’을 존중하지 않고 있다는 인상을 강하게 준다. 특히 자본의 언론진출,언론 독과점을 조장할 미디어법을 수많은 반대에도 불구하고 반민주적 방식으로 날치기한 사건과 그 이후 나온 “절차엔 문제가 있지만무효는 아니다”라는 헌법재판소의 넌센스 판결은 ‘법’과 ‘민주주의’가 대체 뭔지 사람들이 고뇌에 빠지게 하기 충분했다. 힘없는사람들에게는 준법, 법치를 앵무새처럼 떠들면서 법규도 지키지 않고 환경영향평가도 졸속으로 하고 밀어 붙이는 4대강 사업이 이명박정부의 중점 정책이라는 것도 우스운 이야기다.

정부가 국가인권위 조직을 대폭 축소하고 무자격 현병철 위원장을 임명한 것 또한 국제법과 국가인권위법이 명시하고 있는국가인권기구의 독립성 보장이나 인권위원장의 자격요건 등을 무시한 것이었다. 현병철 위원장은 취임 후에도 갖은 사고를 치며 여러인권 사안들이나 인권위 독립성에 초를 치기를 주저하지 않으며 사람들의 기대(?)를 배신하지 않았다. 법이 정하고 있는 원칙과요건들을 어겨가며 국가인권위원회를 무력화하고 정부의 꼭두각시 역할을 하겠다는 메시지를 노골적으로 드러낸 이러한 조치들은 실로10대 인권뉴스 중 하나가 되기에 손색이 없다.

위 사진작년 세계인권선언 60주년을 맞아 한국에서 '2008 인권선언'을 만들면서 진행한 행사 모습. 사람들이 바라는 인권의 내용을 카드에 적어 달았다.


비판을 허용하지 않는 정권

게다가 이명박 정권은 이런 ‘나일롱 법치’ 기준을 갖고 정부․여당의 정책에 비판적인 사람들을 탄압하는 데 결코 인색하지 않았다.2009년을 달구었던 사건 중 하나로 노무현 전 대통령의 죽음으로부터 촉발되어 이어진 각계의 시국선언을 들 수 있을 것이다. 이중에서 교사들의 시국선언, 공무원들의 시국선언을 놓고 ‘정치적 중립 의무 위반’이라면서 탄압에 나서고 있는 정부의 모습은 거의‘정부 정책에 반대하거나 비판적이면 불법’이라는 것처럼 보인다. 시국선언을 억지로 불법으로 몰고 가려는 이명박 정부의 모습은‘법치’를 빙자한 독재를 의심케 한다. 결국 이러한 시국선언 교사, 공무원들에 대한 정부의 대대적인 탄압이 10대 인권뉴스 중하나로 선정되었다.

광장에서 일어난 집회의 자유, 표현의 자유 침해라는 아이러니한 모습도 10대 인권뉴스 중 하나로 선정되었다. 작년에 일어났던촛불집회에 데어서 겁을 먹은 건지, 현재 경찰은 시청광장 일대에 경찰들을 상주시키고 있다. 또한 올해 새로 개장한 광화문광장은, 1인시위도 별다른 법적 근거 없이 경찰이 일단 연행하고 보는 무식함으로 표현의 자유를 짓밟는 공간이 되어버렸다. 많은사람들이 ‘광장을 열어라’ 라고 요구하며 활발한 캠페인을 벌이고 있지만 경찰은 모르쇠로 버티며 정부에 비판적인 모든 표현들을탄압하고 있다. 1인시위도 연행하고, 몇 분짜리 플래시몹까지 연행하고, 기자회견까지 연행하고, 일단 잡아가고 보는 경찰의 행태는한국이 인권침해 국가라는 것을 국제적으로 인증해주었다.

하지만 그나마 불행 중 다행일까, 올해에는 집회의 자유와 관련하여 환영할 만한 일이 있었다. 헌법재판소가 야간집회금지조항이‘헌법불합치’라는 결정을 내리면서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을 개정하라고 한 것이다. ‘위헌’ 결정이 아니라 ‘헌법불합치’결정을 내림으로써 야간집회금지를 일정 기간 유지하게 한 헌법재판소의 결정은 문제가 있으나, 어쨌건 야간집회금지가 합헌이라고결정했던 과거에 비하면 많이 인권 개념을 탑재한 판결이었다고 볼 수 있다. 다만 경찰에서는 ‘헌법불합치’ 결정이 나왔지만 개정될때까지는 계속 야간집회를 금지하겠다고 떼를 쓰고 있고, 한나라당에서는 ‘그럼 10시나 12시로 제한하자’라고 나오고 있어서헌법재판소가 간만에 내놓은 인권적인 판결도 무색해지고 있다.


민주노총 성폭력 사건, 운동 내부에 대한 성찰 요구

마지막으로, 2009년 10대 인권뉴스 중에 다른 것들과 결을 약간 달리하는 것이 하나 있었으니 바로 ‘민주노총 성폭력사건’이었다. 민주노총에서 일어났던 성폭력 사건과 그 이후 민주노총이 사건을 은폐하려고 한 것, 2차 가해 등은 올해 커다란이슈가 되었다. 운동사회 안에서 성폭력 사건이 공론화되고 가해자 징계 등이 공식적으로 이루어지게 된 것은 그동안 있어온 반성폭력운동의 성과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또한 이번 사건에서는 반성폭력 운동의 성과로 만들어진 내규나 성폭력 사건 해결절차들 또한 일종의 조직보위 장치로 작동하면서 한계를 보이기도 했다. 이 사건이 2009년 10대 인권뉴스 중 하나로 꼽힌 것은인권활동가들이 정부의 인권침해만큼이나 인권/진보적 운동진영 내부의 문제에 대해 많은 관심과 감수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앞으로, 운동 안에서 성별 권력관계, 조직의 남성중심 문화 등을 해결하기 위한 더 많은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이번에 인권활동가들이 뽑은 2009년 10대 인권뉴스는, 현재 우리 사회가 어떤 인권 현실 속에 있는지를 간접적으로 보여주는지표이다. 또한 이 10대 인권뉴스는 인권운동이 직면하고 있는 과제들을 보여주고 있기도 하다. 법의 이름으로 적극적으로 인권을침해하고 있는 정부 앞에서 인권운동이 어떤 언어와 운동을 가지고 ‘법’의 논리를 넘어서 ‘인권’의 논리를 펼칠 수 있을 것인가?경제를 내세우며 사회적 약자들의 생존을 위협하는 사회에서 인권운동은 어떤 일을 해야 할 것인가? 운동 사회 안에서 인권 감수성을높이고 더 나은 운동을 만들어가기 위해 인권운동은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인가?

이러한 질문들을 안고, 마지막으로 자문해본다. 인권뉴스로 좋은 이야기들, 인권이 신장된 이야기들이 많이 이야기될 수 있는 날은언제쯤 올까? 최소한, 지금의 정권에서는(그리고 아마도 앞으로 상당히 긴 시간 동안) 별로 실현가능성이 없는 희망사항인 것만같아서 씁쓸하다.


덧붙이는 글
공현 님은 8회 인권활동가대회 준비모임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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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오름 제 182 호 [기사입력] 2009년 12월 09일 14:1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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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어가는꿈2009.11.11 12:50

인권오름 기사 원문


원래 난다가 쓰기로 한 건데, 땜빵으로 이틀만에 써내려간... 글
뭔가 잘 쓴 거 같으면서도, 그래서 뭐 어쩌자는 건지 딱 정리하는 부분이 누락된 기분이 드는 글이다.








[페미니즘인(in)걸] 괴물들과 공주님들?

아동 성폭력 사건을 대하는 우리의 자세


공현


‘몬스터’(우라사와 나오키 지음)라는 만화가 있다. 제목부터가 ‘괴물’인 이 만화에는 진정으로 천재적이면서 잔혹한 살인자, 요한이 등장한다. 그러나 절대악인 요한을 추적하면서 드러나는 진실은, 그 요한조차도 ‘인간병기’를 만들어내려고 한 어른들의 실험에서 비롯된 괴물이라는 것이었다. 결국 이 만화에서 요한이 사실상의 자살로 사라진 후, 남겨진 질문은 이것이다. “괴물은 누구인가?”


괴물이 되어버린 가해자

사형, 종신형, 거세, 신상정보 공개, 전자발찌……. 최근에 아동 성폭력 범죄의 가해자에게 가해져야 하는 처벌이라면서 거론되는 것들이다. ‘조 아무개 씨’의 여성 아동에 대한 성폭력 사건이 TV 시사 프로그램을 통해 알려지면서 가해자를 비난하는 목소리들이 봇물처럼 쏟아져 나오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가해자에게는 인권이 없다”라면서 “그런 새끼들은 쳐죽여야 한다”라고 외치고 있다. “가해자에게 인권은 없다.”, “짐승만도 못한 놈” 같은 말들 속에 숨은 뜻은 무엇일까? 그건 아동 성폭력의 가해자(줄여서 가해자)는 자신들과 다른 사람, 아니 다른 존재라는 것이다. 그런 말을 하는 사람들에게 있어 가해자는 자신들과는 무관한 존재, 이해할 수 없으며 제거되고 박멸되어야 할 ‘괴물’들이다.

그러나 아무리 끔찍한 성폭력 가해자라 하더라도 그 사람들은 체포되어 감옥에 격리되기 전까지 이 사회 안에서 살아온 사람들이다. 범죄는 사회적인 사건이며, 끔찍한 사건의 가해자도 이 사회의 일부이다. 아동 성폭력과 성폭력에 대한 연구를 보자. 아동 성폭력 범죄 가해자들은 학력이 낮고, 자아존중감이 낮고, 성적 좌절을 많이 경험한 사람들이 많다. 그들은 자신들의 열등감을 해소하기 위해 신체적/사회적 힘이 약한 아동을 대상으로 폭력을 저지르는 것이다. 뿌리 깊은 남성 중심적 문화와 음주에 관대한 문화도 원인이 된다. 애초에 남성으로서의 열등감을 해소하기 위해서 여성에게 성폭력을 가한다는 심리 자체가 남성 중심적 사회 문화에서나 가능한 일이다. 여성/아동의 사회적 지위가 높지 못하고 여성/아동이 약한 존재, 무력한 존재로 묘사되고 만들어지는 것 또한 하나의 원인일 것이다. (관련하여 더 자세한 내용은 한겨레21 제781호(2009.10.16.) 안수찬 기자의 「아동 성폭행범 처벌 ‘무겁게’보다 ‘확실하게’」를 참고하시라.)

사진설명여성단체가 조두순 사건에서 음주를 이유로 감형된 것을 비판하는 캠페인을 하고 있다.

너무 많은 사람들이 사건의 사회적 맥락이나 원인들을 외면한 채, 그리고 평소에는 폭력들에 관대한 모습마저 보이면서, ‘비정상적인 것’들로 돌출된 부분들을 잘라내려고만 한다. 마치 이백 대, 삼백 대를 때린 교사들에게는 ‘부적격 교사’라는 딱지를 붙이면서 한 대, 다섯 대를 때리는 교사들에게는 관대한 것처럼 말이다. 그러나 체벌은 학교의 폭력적인 시스템과 규제, 체벌에 관대한 문화에서 비롯되는 것이며, 한 대를 때리든 이백 대를 때리든 체벌은 근절되어야 한다. 성폭력은 사회의 문화와 구조에서 비롯되는 것이며, 30대를 강간하든 아동을 강간하든, 강간을 하든 성추행을 하든, 성폭력 과정에서 피해자가 입은 상해가 크든 작든, 성폭력은 근절되어야만 한다. 아동과 여성의 사회적 지위가 낮고 차별과 폭력, 성적 대상화에 노출되어 있는 이 사회가 바뀌어야 한다. 바로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사회가.

이러한 생각은 하지 않으면서 그저 조 아무개 씨를 죽여버려야 한다고 외치며 ‘가해자에게는 인권이 없다’고 하는 사람들의 모습은, 심하게 말하면 위선적이다. 술 때문에 일어난 일이라면서 자기 당 국회의원이 저지른 성폭력을 무마하려고 술잔을 깨는 퍼포먼스를 하며 성폭력에 관대한 모습을 보였던 한나라당 의원들이 성폭력 처벌을 강화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는 모습을 보라. 컴퓨터 앞에 앉아서 조 아무개 씨를 죽여 버려야 한다고 댓글을 달고서 바로 다음날에 성매매 업소에 가는 남성들, 여직원에게 성희롱을 하는 남자 상사들, 강간 포르노를 보면서 하악거리는 남성들, 소녀시대나 원더걸스의 ‘섹시함’에 속으로 야릇한 긴장감을 느끼면서 뮤직비디오를 보는 남성들이, 없을 것 같은가? 다시 한 번 묻자면, “괴물은 누구인가?”


아이들은 공주님이 아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아동 성폭력에 특히 더 분노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물론 신체적, 사회적으로 더 약자인 아동에게 가해지는 폭력은 더욱 더 비난받을 만하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부분들이 있다. 사람들이 아동에 대한 다른 폭력보다 성폭력에 특히 더 거부감을 가지며 분노하는 이유, 그리고 아동이 아닌 경우에도 신체적으로 저항할 만한 힘이 없는 여성이나 장애인이 당한 성폭력보다 아동의 경우에 특히 더 분노하는 이유 등등…….

일단, 실제 그 사건에서 피해자와 가해자 사이의 권력 관계가 어떤지를 떠나서, 피해자가 아동이라는 것만으로 우리는 더 많이 분노하도록 프로그래밍되어 있다. 그것을 종족을 보전하고자 하는 유전자 프로그램으로 설명할 수도 있겠지만, 근대 이후로 형성된 아동관도 한 몫 하고 있음은 부정할 수 없다. 아동은 교육받고 보호되어야 할 존재이며, 무력한 존재라는 아동관 말이다.

그래서 이러한 ‘끔찍한’ 아동 성폭력 사건이 공론화될 때마다 가해자에 대한 비난과 동시에 아이들을 보호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늘어간다. 보호자들의 불안감을 이용하여 위치추적 서비스나 CCTV 등을 다루는 업체들은 광고를 한다. 아이들의 휴대전화에 위치추적 서비스를 달고, 조금이라도 연락이 안 되거나 보호자(부모, 후견인, 교사 등)의 시야를 벗어나면 안절부절 못하는 어른들이 늘어난다. 안전을 생각하는 그 마음이야 잘 알겠지만, 그 결과는 아이들의 행동반경을 제한하고, 아이들에 대한 감시를 늘리는 것으로 나타나기 십상이다.

사진설명정부에서 발벗고 나서 제공해주는 위치확인 서비스. 아동이든 장애인이든 본인의 동의 의사를 확인하는 것은 필요하지 않고, 보호자가 서류만 갖추면 신청할 수 있다.

다른 한편으로, 아동 성폭력 사건에 분노하는 사람들 중에는 아동과 성을 연관짓는 것 자체에 거부감을 느끼는 사람들도 있다. 그 사람들은 사건의 끔찍함에도 분노하지만, 아동을 대상으로 성욕을 느낄 수 있다는 것만으로 가해자를 ‘괴물’ 취급하고, 아동을 성과 연관지어 생각하기를 꺼려한다. 아동은 성과 무관한 순수한 존재로 남아야 하며, ‘성으로부터’ 보호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육체적 성을 얘기하기를 꺼려한 나머지 이렇게 말하기도 한다. “성폭력은 영혼을 파괴하는 범죄다.” 성폭력은 지극히 신체적인 범죄인데 말이다.)

이런 태도가 아동을 성적으로 무력하고 무지한 존재로 만들고 성폭력 사건이 일어났을 때 사건의 매듭을 푸는 것을 더 어렵게 만든다는 것은 참으로 역설적인 일이다. 아동이 성적인 존재이자 주체일 수 있음을 인정하지 않고, 체계적이고 내실 있는 성교육이 이루어지지 않는 사회에서는, 성폭력 피해를 입은 아이들이 자신에게 일어난 사건을 명명하고 인식할 언어와 지식을 갖지 못하기 십상이다. 조 아무개 씨가 가해자인 이번 사건에서는 상해와 폭력의 정도가 심하여 피해 아동이 자신의 피해를 명확하게 인식할 수 있었다. 그러나 예를 들어 작년에 대구의 초등학교에서 집단적으로 일어났던 성폭력 사건의 경우, 어떤 경우에는 성폭력의 피해/가해를 특정하기도 어려웠고 때로는 그것이 성폭력인지 여부를 가리기 어려운 측면조차 있었다. 사건의 당사자인 초등학생들이 자신의 경험을 명확히 규정하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최소한 신체적인 측면에서 근력으로나 지구력으로나 아이들이 약자일 수밖에 없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일이다. 그러나 이러한 보호주의의 결과 아이들이 더욱 더 사회적인 약자로 인식되고 일방적으로 보호받아야 할 존재로 인식된다면, 또 아이들이 성에 대해 더 무지한 채로 남게 된다면, 그것이 과연 아이들에 대한 범죄나 폭력, 차별을 줄이는 데 얼마나 효과적일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아이들의 삶을 완벽한 감시 하에 두고 아이들의 자유를 박탈할 생각이 아니라면 말이다. 어째서 아동에 대한 폭력 사건이 공론화될 때마다, ‘피해자’라는 아이들이 자신들의 자유를 제한당하는 결과가 초래되는 것인지 이 불합리함은 참 설명하기 힘들다.

아이들 자신을 포함하여 이 사회의 모두가 해야 할 일은 성폭력 범죄 자체를 줄일 방법을 강구하는 것이 아닐까? 아동이 스스로를 지킬 힘을 줄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하지 않을까? 아이들이 성에 대해 더 많이 알고 더 잘 대처하고 성폭력 피해를 입더라도 스스로 그것을 이야기하며 극복할 수 있게 해야 하지 않을까?

아이들은 성에 살고 있는 공주님이 아니며, 아름다운 동화 속에 사는 존재도 아니다. 아이들은 이 사회에서 당신들과 같이 살고 있는 사람들이다. 우리가 기억해야 하는 것은, 아동 성폭력 사건은 어느 설명 불가능한 괴물이 우리가 지켜줘야 할 순수한 공주님을 납치한 동화 속 이야기가 아니라 이 사회의 현실이며, 괴물을 쓰러뜨리고 공주님을 성 안에서 보호함으로써 해결될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덧붙이는글
공현 님은 청소년인권활동가네트워크 여성주의 팀 활동가입니다.
인권오름 제 178 호 [입력] 2009년 11월 10일 22:4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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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어가는꿈2009.10.16 18:59

[페미니즘인(in)걸] 여학생은 성적이 “너무” 우수하다. 도대체 어쩌라고~

한낱


한낱 활동가의 자기 고백

중 고등학교를 다녔던 시절, 나는 ‘모범적인’ 여학생이었다. 민망하지만, 그랬다. 공부도 곧 잘했고, 반장도 몇 번 해봤다.선생님들의 예쁨도 꽤 받았다. 학교 안에서 가끔 짜증나는 상황이 발생하긴 했지만, 그건 그냥 그 날 재수가 없어서 그랬던거였다. 청소년 인권? 그런 거 전혀 몰랐다. 지금의 정신 상태로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을 만큼 공부에 매진했다. 그만큼 성과도있었고, 보상도 받았다. 당시에 내가 성차별을 받았던 기억은 남아있지 않다. 학업성적과 임원직 수행으로 '여성'이라는 핸디캡을뛰어넘은 나는 여느 찌질한 남학생들보다 훨씬 인정받았다.

차라리 객관적인 점수로 평가받았던 그 시절이 여성인 나에게 더 행복한 시간이었던 걸까? 요즘 국방부가 군가산점 부활을 운운하는걸 보면 처참한 느낌마저 든다. 아무리 졸업성적이 좋아도 '용모준수' 앞에서 무릎을 꿇어야 하는, '군필자 우선' 앞에서 고개를숙여하는 학교 밖보다는 균형 잡힌 평가가 이루어지고 있는 건가? 그렇기 때문에 여학생들의 우세가 학교 안에서는 가능한 거고,여남평등은 학교 안에서부터 이루어지고 있다 평할 수 있을까?

조금만 더 내 이야기를 해보자. 어렸을 적 엄마는 내게 “찰흙으로 고추를 만들어 붙여줘야지.” 등등의 농담을 많이 했었다. 내가그다지 ‘여성스러운’ 외모를 갖추고 태어나지 않아서 그런 걸까. 엄마는 언니에게는 보이지 않는 다른 종류의 기대감을 내게품었고, 나는 내가 집에서 ‘아들 노릇’을 해야 한다는 무게를 어릴 적부터 지고 살았다. 지금도 내가 중학교에 올라갈 때 엄마가했던 말이 기억난다. “엄마가 미안하다. 예쁘게 낳아주지 못해서. 그만큼 너는 공부를 잘해야 돋보일 수 있어. 열심히 해.엄마가 밀어 줄게.” 엄마의 진솔한 충고는 나의 처절한 인정투쟁의 시작을 알리는 팡파르였다. 변호사든, 기자든 뭔가 똑똑하고멋져 보이는 직업을 가지려면 공부를 뛰어나게 잘해야 했고, 좋은 대학에 가야만 했다.

물론 이런 경험이 내게만 있는 것은 아니다. 한 탈학교 청소년 활동가는 자퇴를 고민하던 시절 담임교사가 했던 말을 생생히기억하고 있다. “너 자퇴 해가지고, 어디 시집이나 갈 수 있겠니?” 나의 엄마도, 이 담임교사도 여성인 우리가 맞이하게 될쓰디쓴 현실을 있는 그대로 보여준 거라 생각한다. 어쩌면 본인들이 여성으로서 살아오면서 터득한 삶의 지혜를 나눠 준 것일 수있다. 비록 그 지혜가 우리가 가진 조건 자체를 성찰하게 만들지는 못하지만 말이다.


여학생들, 너무 똑똑해서 ‘문제’다?

소 팔아서 장남만 대학 보내던 시절은 이제 지났다. 살림살이가 나아지면서 여성도 남성과 나란히 취학의 문에 들어설 수 있게되었다. 초등학교와 중학교는 의무교육이 되었고, 기회 자체만 본다면 성차가 두드러지지 않는 시점에 온 것 같다. 학업 성취도평가 분석이나, 특목고 진학률을 보면 여학생들의 학업 수행 능력이 남학생들을 앞질러 가고 있다고 한다. 남학생 학부모들은 내신에대한 불이익 때문에 남녀공학을 기피하고 있으며, 남고/여고로의 전환 신청도 늘어나고 있다고 한다. 최근까지 일부 학교에서는‘남녀 내신 분리 산출’이 관행이기도 했다. 남녀의 뇌구조 차이를 근거로 남녀공학 폐지론을 주장하는 보수논객들도 활개를 친다.남성이 여성보다 우월함을 생물학적으로 증명하기 위해 뇌의 크기까지 들먹였던 것이 우생학 아니었던가. 이제는 여성의 생물학적우수함을 거꾸로 반증하고 있는 셈이니 도리어 반가운 일일 수도 있겠다.

사실 이런 분석들이 옳은지, 그른지 따지는 것 자체가 이들의 논리에 말려드는 꼴이 된다. “그 분석에는 문제가 있어. 여학생들이공부를 그렇게 잘하는 건 아니야.” “우리 여학생들이 너무 공부를 잘하고 있나? 좀 못하도록 노력해 볼게.” 얼마나 우스꽝스런답변인가. 왜 여학생들의 학업 성취도가 높은 것은 ‘문제’가 되는 걸까? 여학생들은 공부를 잘하되 남학생들 보다는 살짝 못하는오묘한 성적 관리 기술을 익혀야 하는 걸까? 이러한 현상이 정말 ‘문제’로 성립되기 위해서는 남학생들이 공부를 못하는데 어떤사회적 장벽이나 차별이 있고, 그것이 성적에 영향을 미침을 입증할 수 있어야 한다. 아니면, 성적으로만 학생의 능력을 판단하는평가제도 자체에 이의제기를 해야 한다. 애꿎은 여학생들의 성적을 가지고 왈가왈부할 일은 아니라는 것이다.



차별이 낳은 역설적 상황

여 학생들의 학업 성적이 좋은 것은, 그만큼 그녀들이 성적 관리에 필사적이기 때문이다. 역설적이게도, 차별의 상황에 놓여있기때문에 성적도 뛰어나다는 거다. 여성들은 남성보다 훨씬 뛰어나야 비로소 출발점에 설 수 있다. 따놓을 수 있는 데서 점수를충분히 따놓지 않으면, 도저히 게임이 안 된다. 비슷한 조건을 가진 상태에서, 여성보다는 남성이 더 ‘잠재적인’ 능력자로인정받는 현실이기 때문에 여성들은 항시 자신의 가치를 향상시키기 위해 분투하고 있어야 한다. 대학 진학 후, 20대 여성들이남성들보다 어학 공부에 더 많이 열중한다는 통계는 그런 점에서 의미 있다. 여성 할당제 등 여남 간의 실질적 평등을 보완하려는정책들이 있긴 하지만, 그것이 여성들이 가지고 있는 불안감을 해소시켜 줄만큼 든든한 버팀목이 되지는 못한다. 특히나 실업률이높고, 고용이 불안한 시기에는 그마저도 유명무실한 경우가 많다. 여성들이 공직에 진출하기 위해 노력하고, 공무원 시험 합격률이높은 이유는 다른 선택지가 없거나, 택할 수 있는 가능성이 낮기 때문이다. 여성들의 임용고시 합격률이 높은 이유는 암암리에사립학교에서 남교사를 선호하고, 우선 채용하기 때문이다. 씁쓸한 일이지만, 군가산점제가 부활하면 이런 ‘여초 현상’ 조차사라지겠지만 말이다.



정말 여학생들은 공부를 잘하는가?


다 시 돌아와서, “정말 여학생들은 공부를 잘하는가?”라는 질문을 한 번 더 던져보고 싶다. 평균이라는 통계의 가장 큰 함정은변량들의 차이를 무화시키고 중간 값으로 환원시켜버린다는 점이다. 모든 여학생들이 공부를 잘하지는 않는다. 다만, 공부를 잘하는일부 여학생들이 있고, 그녀들이 한국 사회의 여학생을 대표한다. 많은 여학생들이 힐러리나 박근혜, 나경원을 동경할 순 있지만모두가 그녀들처럼 소위 ‘성공’하는 여성이 될 수는 없다. 여학생들이 내신관리 능력이 뛰어난 건 학교에서 요구하는 인간형에부합함으로써 생존하려는 전략이다. 그냥 여성이 아닌, ‘똑똑한 여성’들은 사회에서 남성과 비등한 대접을 받기도 한다. 우리는그녀들을 ‘명예 남성’이라고 부른다.

어떤 교사들은 ‘참한 여학생이 반장이 되어야 교실이 안정적이다.’라고 말한다. ‘참한 여학생’이 교실을 주도해야 교실 안 폭력도줄어든다는 거다. 참한 여학생은 누구인가? 성격은 기본이고 성적도 좋아야 한다. 학생과 교사의 갈등을 조절하고, 교실 안을침착하게 돌보는 ‘조용한 리더십’이 있어야 한다. 순간, 현모양처의 이미지가 훅 느껴진다. 이제는 기술과 가정을 분리하지 않고여남이 함께 배운다고 한다. 출석부에 남학생 이름이 먼저 기재되어 있던 문화도 사라졌다고 한다. 학교가 옛날보다는 많이변화했다고 하지만, 여전히 여학생의 ‘능력’을 바라보는 기준은 획일적이다.


평균을 갉아먹는 존재들의 반란


이 러한 학교 안의 능력주의가 깨지지 않으면, 통계에 보이지 않는 다수의 여학생들이 학교 안에서 소외되고 있는 문제를 해결할 수없다. 끊임없는 열등감에 괴로워하는 여학생들, 학교의 기준을 비웃으며 학교가 아닌 거리를 택하는 여학생들에게 “그러니깐, 공부를좀 더 하라니깐!”을 계속해서 외치고 있을 수는 없는 일 아닌가. 한 명, 한 명 천천히 빛나는 사람들. 그이들이 자기만의존재감을 인정받을 수 없는 학교에서 성평등을 상상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지금까지 연재 글들이 청소년 인권에 여성주의적 상상력을 불어넣는 시도였다면, 이번 글은 청소년인권을 통해 자칫 페미니즘이 놓치고넘어갈 수 있는 부분을 지적하고 있다. 학교를 지배하는 가장 강력한 이데올로기는 ‘능력주의(성적 제일주의)’다. 학교에서는못생겨도 공부를 잘하면 일단 인정받는다. 장애를 가지고 있어도 그것을 ‘극복’하고 좋은 성적을 내면 역시나 인정받는다. 소수성에기반한 다양한 차별들이 능력주의라는 거대한 프리즘을 통과해 그 빛깔을 낸다. 여성주의를 생각하면서 동시에 ‘학교 평균을 갉아먹는존재들’의 반란을 기획하게 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덧붙이는 글
한낱 님은 청소년인권활동가네트워크 여성주의 팀 활동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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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오름 제 174 호 [기사입력] 2009년 10월 14일 12:5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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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공현
걸어가는꿈2009.10.16 11:08

[내 말 좀 들어봐] 경기도학생인권조례, 학생 의견을 듣는 것만으론 부족하다

김상곤 교육감과 조례제정자문위원회에 드리는 제안

하우


김상곤 교육감과 경기도학생인권조례 제정 자문위원들께

안녕하세요. 저는 지금 경기도에서 고등학교에 다니고 있는 학생입니다. 얼마 전 경기도 교육청에서 학생인권조례제정을 한다는 소식을 들었어요. 교육이란 이름으로, 교육의 가장 바탕이 되어야 할 인권이 무시당하고 있고, 대입이라는 이유로 ‘인권’이라는 말이 저 뒤로 밀려나버린 현실에서 ‘경기도학생인권조례 제정’은 학생인 저에게 나름 기대를 갖게 합니다. 조례가 학교의 교칙보다 상위법이니까 온갖 억지를 부리고 있는 교칙들도 수정이 될 수 있고 게다가 학생인권에 대한 선생님들의 인식도 조금은 달라질 거라고 생각해요.

그런 기대를 품고 지난 9월 25일 있었던 경기도학생인권조례 제정 추진대회에 참석했어요. 그런데 조례제정위원회를 소개할 때 보니 의아한 생각이 들더군요. 위원 중에는 국가인권위에서 일하시는 분, 학교 교장선생님, 고등학교 교사, 인권활동가들까지 계셨지만, 정작 학생대표는 찾아볼 수가 없었습니다. 학생인권조례에 관련된 분들-선생님부터 인권활동가까지-이 모두 계셨지만 막상 직접적 당사자인 학생들은 찾아볼 수가 없었습니다. 그것부터가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학생인권조례 제정에는 학생들의 목소리가 최우선 반영되어야 하니까요.

위 사진:지난달 25일 열렸던 ‘경기도학생인권조례 제정 추진대회’에 참여한 학생들이 조례 추진 계획을 관심있게 듣고 있다. (사진 출처: 교육희망)


그래도 이왕 추진하는 거 모두가 만족할 수 있게끔 제대로 조례가 만들어졌음 좋겠어요. 그래서 몇 가지 의견을 전하려고 합니다. 우선 바라는 점은 인권조례를 제정하기에 앞서 좀 더 구체적인 실태조사가 있었으면 해요. 그 실태조사를 바탕으로 좀 더 구체적인 내용을 담은 조례를 만들어 주세요. 저희 학교를 예로 들어보면, 여학생들의 바지 착용이 가능하기는 한데 조건이 달려있어요. 다리에 꼭 가려야 할 상처나 흉터가 있어서 의사의 진단서를 끊어온 경우 선생님들이 상처나 흉터 정도를 보고 최종 판단해서 허가해 주도록 하고 있는 거예요. 이러다 되니 사실상 바지를 입고 싶어도 못 입는 학생들이 대다수입니다. 만약 정확한 조사 없이 조례를 제정한다면 이런 상황들은 전혀 개선되지 않을 거예요. 또한 조례에 담긴 조항들이 구체적이어야 우리가 실제로 학교에 개선 요구를 할 때나 학교에서 자체적으로 개선 노력을 할 때에도 실질적인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해요.

또 하나는 아까 말한 것처럼 학생들의 의견 반영이 너무 부족하다는 것입니다. 경기도 학생인권조례를 만들 때 학생들의 참여를 위한 방법으로는 인터넷을 통해 글을 올리거나, 학생참여단에 들어가 활동하는 방법이 있다고 들었어요. 그런데 ‘청소년인권행동 아수나로’에서 실시하고 있는 학생인권실태조사 중간 집계 결과를 보면, 경기도에서 학생인권조례가 제정된다는 사실을 아는 학생이 많지 않았어요. ‘아예 모르거나 잘 모른다’는 학생이 ‘안다’는 학생에 비해 6배쯤 많은 걸로 확인된 거죠. 결국 대부분 학생이 조례 제정 사실조차 모르고 있다는 거예요. 조례제정 홈페이지에 올라온 글들을 봐도, 경기도 학생들이 지난달 25일 추진대회 현장에 가서야 조례가 추진 중이라는 걸 겨우 알았다는 의견들입니다. 이런 상황에서는 학생인권조례에서 가장 주체가 되어야 할 학생들이 오히려 객체가 될 수밖에 없어요. 학생인권조례의 가장 직접적인 영향을 받게 될 학생들이 좀 더 주체적으로 참여할 수 있도록 각 학교를 통해서, 그리고 10대들이 많이 찾는 인터넷 홈페이지 등을 통해서 홍보를 해주셨으면 합니다.

위 사진:경기도학생인권조례 홍보 포스터


그리고 ‘학생 참여단’의 영향력도 높여야 한다고 생각해요. 단순히 학생들의 의견을 ‘듣는다’ 차원이 아니라 ‘함께 만들어간다’는 의미를 실현할 수 있게끔 학생참여단을 만들고 꾸려가야 한다고 생각해요. 학생대표의 발언과 교장선생님의 발언이 동등하게 받아들여져야 한다는 거죠. 그것이 바로 학생인권조례 제정의 또 다른 의의가 아닐까 생각해요.

경기도학생인권조례 제정 추진대회에서 나누어준 책자를 보니, 일본 가와사끼 시(市)에서 제정했던 ‘아동인권조례안’이 부록으로 실려 있더라구요. 가와사끼 시(市) 조례안에는 일종의 실행기구인 ‘권리위원회’를 만들어서 활동을 지원한다는 내용도 들어있었습니다. 앞에서 말했던 것처럼 조례안이 그저 종잇조각에 지나지 않으면 어쩌나 걱정도 되는데, 그렇게 되지 않으려면 이런 권리위원회를 만드는 것도 좋을 것 같아요. 물론 만들어진 뒤에는 충분한 지원도 필요하구요. 인권침해를 당한 학생이 구제를 요청할 수 있는 절차도 잘 만들었으면 좋겠습니다.

19살 때까지 머리와 옷은 물론 심지어 가방에서부터 신발, 양말, 속옷까지 남들이 정해준 대로 따르던 아이들보고 20살이 되면 땡! 하고 “자, 이제 너는 성인이니까 자유와 책임을 줄께.”라고 말한다고 그 아이들이 자신에게 주어진 자유와 책임을 적절하게 사용할 수 있을까요? 학생들의 인권을 보장해주는 것도 중요한 교육이라고 생각해요. 그런 점에서 이번 경기도교육청의 학생인권조례 제정이 새로운 출발점이 되기를 기대하겠습니다.




[끄덕끄덕 맞장구] “시민은 자기 자신에게 가장 엄격하다.”

하우 님, 글 잘 읽어보았어요. 저는 경기도학생인권조례제정 자문위원으로 결합하고 있는 인권활동가에요. 조례를 제정하는 과정에서 유념해야 할 점들을 요목조목 짚어주셔서 고맙습니다.

하우 님의 말처럼 자문위원으로 결합해 달라는 요청을 받았을 때, 학생대표가 함께 참여해야 한다는 의견을 저 역시 갖고 있었어요. 그런데 이런 저런 여건으로 그 제안은 실현되지 못했답니다. 조례제정자문위원회가 아무리 역할을 잘 해낸다 하더라도, 학생들에게 제 몫의 자리를 충분히 제공하지 못했다는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을 거예요. 저 역시 그 점에 대해서는 공동으로 책임져야 한다고 생각하고요. 그래도 ‘학생참여기획단’이 곧 구성될 테니까 아쉽지만 그렇게라도 학생들의 의견이 실질적으로 반영될 수 있도록 힘쓸게요. 하우 님도 학생참여기획단에 꼭 함께하셔서 적극적인 역할을 맡아주셨으면 합니다.

청소년 자살률이 OECD 국가 중 1위인 나라에서, 지난 5년 사이 성적 비관으로 자살한 학생 수가 4.25배나 증가한 나라에서, 체벌이나 강제야자, 부당징계가 끊이지 않는 나라에서, 분노의 출구를 찾지 못한 학생들이 약자를 찾아 괴롭히는 일이 갈수록 잦아지는 나라에서, 학생인권은 여전히 도달하지 못한 꿈입니다. 게다가 현 정부의 교육정책은 학생인권과는 정반대로 굴러가고 있습니다. 그만큼 도교육청 차원에서 최초로 추진되는 학생인권조례 제정 시도는 각별한 주목을 받을 만합니다.

교육기본법도, 초중등교육법도 모두 학생의 인권이 교육과정에서 존중되어야 한다고 말하고 있지만, 학생인권의 구체적 내용이 무엇인지, 학생들이 어떤 권리를 누릴 수 있는지가 분명하지 않습니다. 무엇보다 권리가 의미 있으려면 권리를 침해당했을 때 적절한 절차와 수단을 통해 권리를 회복할 수 있어야 하겠지요. 그런데 현재의 법률은 구체적인 구제절차를 제공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정부와 교육청과 학교가 법의 정신을 거슬러 학생인권을 무시하는 결정을 내려도 이를 막을 재간이 전혀 없습니다. 그만큼 구체적인 권리 내용과 권리회복절차를 담은 조례가 만들어지는 일이 중요합니다.

올해가 가기 전에 자문위원회는 학생인권조례안을 만들어 김상곤 교육감에게 전달할 예정입니다. 안을 만들기까지 학생들이 실질적으로 참여할 수 있도록 보장하고 그 의견을 존중하겠다는 것이 자문위원회가 다짐한 약속인데...... 아직까지 그 약속에 걸맞은 발걸음이 이어지지 못했네요. 더 많은 학생들이 이 문제에 관심을 갖고 참여할 수 있도록 홍보와 학생참여기획단의 본격적인 구성을 서둘러야겠습니다.

스페인 오렌세 지방에 위치한 <벤포스타>라는 어린이공동체는 위기가 찾아올 때마다 시민법 조항을 추가해가면서 어려움을 이겨내 왔다고 합니다. 그 시민법 1조는 “시민은 자기 자신에게 가장 엄격하다.”라는 조항이라고 해요. 자유의 공기를 흡입하고 권한을 부여받은 시민이라면, 권리를 존중받고 제대로 행사해볼 기회를 가진 시민이라면 성숙할 기회를 충분히 누린 결과로서 책임을 질 줄 알겠지요. 학생인권조례가 꿈꾸는 교육의 모습도 그러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학생인권조례안이 제대로 만들어지기 위해서도, 경기도 의회 통과라는 최종 관문을 통과하기 위해서도 학생들의 참여와 활발한 의견 개진은 꼭 필요합니다. 설령 학생인권조례가 도의회를 통과하지 못해 제정 시도가 주저앉는다 해도, 조례 제정을 계기로 학생인권에 관한 관심과 대안 모색의 기운이 후끈 달아오를 수 있다면 결실이 없다고 할 수는 없을 거예요. 다른 지역에도 참고할 만한 선례를 남길 수 있을 테고 말이에요. 그렇게 될 수 있도록 함께 만들어나가요.


덧붙이는 글
하우 님은 수원시의 한 고등학교에 다니는 청소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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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오름 제 174 호 [기사입력] 2009년 10월 14일 13:0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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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공현
흘러들어온꿈2009.10.01 08:13

[책의 유혹] 난 '하루'가 불편하다

남과 여가 아닌 '그 사이'의 무수한 이야기들

승화



루쿠하나 치요의 'IS(아이에스), 남자도 여자도 아닌 성'는 인터섹슈얼(inter sexual), 반음양자로 불리는 내적 외적으로 여자와 남자의 두 성별을 함께 지니고 태어나 살아가는 이들이 이야기를 그린 만화이다. 의학발표에 의하면 2000명중 한 명은 인터섹스로 태어난다고 한다. 이들은 태어날 때부터 아이들의 미래를 위한다'는 명목으로 부모와 의사에 의해 강제적으로 여성 혹은 남성으로 성별이 선택하여 수술(외부성기재구성수술)을 해버린다. 하지만 이들은 성장하면서 남들과 다른 자신의 신체, IS라는 것을 아무도 가르쳐 주지 않기에 자신을 스스로도 '비정상'여기며 성정체성에 혼란을 느끼며 살아가게 된다. 만화 'IS'는 IS라는 이유로 받게 되는 신체적 고통, 성정체성의 혼란, 사회적 차별과 같이 조금은 무거운 주제를 IS인 '하루'의 삶을 통해 잔잔하게 풀어내고 있다.


하루의 ‘IS로 살아가는 이야기’

어떤 부부 사이에서 한 아이가 태어났다. IS였다. 의사는 부부에게 아이의 미래를 위해 두 성중 하나를 선택하는 수술을 권유한다. 어머니는 고민 끝에 아이가 커서 스스로 자신의 '성'을 결정을 할 수 있도록 수술을 하지 않기로 결정한다. 그리고 부부는 많은 어려움이 있겠지만, 아이를 IS로 키우기로 결정한다. ‘하루’라는 이름을 가진 아이의 삶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이렇게 태어난 하루에게는 친구사귀기, 학교생활하기, 사랑하기, 자신의 미래를 꿈꾸기 조차 너무나도 힘겹다. 하지만 그 속에서 하루는 자신의 정체성을 여성 혹은 남성으로 감추기 보다는, 자신이 IS임으로 이야기한다. 자신이 IS임을 드러내고 IS로 살아가는 것이 너무나도 자신을 힘들게 하지만, IS인 하루는 IS의 존재를 부인하는 세상에 ‘자신이 존재함’을 더욱 강하게 얘기하며 이로 인한 차별과 어려움을 극복해 간다는 이야기이다.

만화에서 보여주는 하루의 삶은 IS들에게 하나의 바람일 것이다. 자신을 차별의 눈으로 만 바라보는 세상에게 자신의 존재를 부인하지 않고 힘들지만 조심스럽게 자신을 드러낸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이로 인해 사회적 낙인과 차별, 관계의 단절 등에 대한 두려움은 IS 본인 스스로를 숨기며 살 수 밖에 없게 만든다. 나를 포함하여 이 만화를 접하는 사람들의 대부분이 IS에 대해 너무나 생소해 하고, 이야기 자체에 많은 놀라움을 보이는 것만으로도, 이 사회에서 IS는 철저히 숨겨져 있고 이로 인해 자신이 IS임을 드러내기란 너무나도 힘겨운 일임을 느낀다.



나는 '하루'가 불편하다

사람들을 바라보는 시선은 습관의 힘에 의해 겉으로 보이는 성별 특성만으로 순식간에 여성 혹은 남성으로 구분해 버린다. 여성 아니면 남성이라는 이분법적 성별구분은 태어나면서 익히고 습관화된다. 하지만 너무나도 쉽게 여성과 남성을 구분 짓는 극단적 두 지점 사이에는 무수히 많은 '성'들이 존재하며 밝혀진 것만 4000여개가 된다. 이분법적 성별구분의 습관은 여성과 남성이 아닌 성에 대해 아무런 거리낌 없이 ‘비정상’으로 규정짓는다. 내가 '성소수자를 차별하지 않는다'라며 말로는 얘기할 수 있겠지만 내 속에 습관화 되어 버린 차별의 시선과 이로 인해 내 스스로 느끼는 불편함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나의 습관은 차별을 용인하고 있음을 느낀다.

그래서 나는 IS인 하루가 불편하다. 하루는 IS인 자신을 ‘비정상’으로 낙인찍는 세상에게 힘겹지만 끊임없이 자신이 ‘IS'임을 커밍아웃한다. 이로 인해 하루 자신이 더욱 큰 절망에 부딪치기도 하지만, 존재하는 자신의 존재 자체를 부인하는 것이 불가능하기에 그는 자신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것에서 자신의 삶을 하나하나 만들어 나간다.

이런 하루의 모습은 내 스스로를 속이며 숨겨 왔던 '이분법', '정상성'과 마주보게 한다. 누군가를 ‘비정상’으로 낙인찍는 것은 자신을 ‘정상’이라고 확정지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기 때문이다. 내가 정상이 되기위해 누군가는 존재자체가 부인되어야 하고 비정상인이 되어야 한다. 과도한 생각일까? 하지만 난 하루가 불편했던 것은 사실이다. (이야기 전개상 불가능하지만) 하루의 커밍아웃이 멈추기를 바라는 맘이 내심 없지 않았다. 하지만 내속 습관화 된 이분법과 정상성에게 하루는 끊임없이 커밍아웃하며 다가왔다.


그래도 '하루'를 응원한다!

그렇지만 이 만화를 쉽게 닫을 순 없다. '이분법', '정상성'이라는 나의 습관은 '하루' 뿐 아니라 나 자신 또한 괴롭히고 있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난 나에게 정상이라는 잣대를 끊임없이 제고 있음을 알고 있다. 그 정상이라는 기준에 미치지 못하는 나의 모습은 숨겨야 되는 것이 되고 만다. 그리고 정상이라는 기준에 미치지 못하는 내안의 비정상을 숨기지 못하면 그것은 열등감으로 나 스스로를 괴롭히게 만든다. 하루의 끊임없는 커밍아웃은 나에게 '너두 솔직해져 봐', '구별 짓고 차별하는 세상보다 너 자신에게 솔직해 지고 너 자신을 사랑하는 게 더 중요해'라고 말하는 것 같아, 소심한 나의 맘에 균열을 가져오고 다시 대범하게 해줄 것 같은 기대를 품게 한다. 이 땅의 모든 하루를 응원하는 만화 IS는 아직 완결되지 않았고 완결되지 않았으면 한다.


덧붙이는 글
승화 님은 빈곤과 여행에 관심과 시간이 많은 활동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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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오름 제 172 호 [기사입력] 2009년 09월 30일 14:52: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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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공현
흘러들어온꿈2009.09.04 17:18

대기업이여, 다시 태어나라

[인권오름] 이미지 마케팅만 하는 대기업들

정인  / 2009년09월03일 13시37분


일자리 창출은 온데간데없이 텅 빈

‘대한민국은 다시 태어나고 있습니다.’ 라는 마지막 장대한 카피가 뜨는 광고를 보다가 ‘이거 공익 광고인가?’ 라는 생각이 들 때 즈음 현대자동차그룹의 마크가 눈에 들어왔다. (현대자동차의 KBS캠페인) 조금 쌩뚱맞다. 현대자동차가 왜 이런 광고를 만들었지? 공익캠페인이긴 한 것 같은데, 현대자동차라... 그 느낌이 ‘공익’과는 너무 멀~구나. 대기업들의 투자는 줄고 자산은 늘었다고 한다. 그리고 기업의 자산이 일하고 있는 노동자들의 몫도 아닐 텐데 말이다. 사람들의 눈길을 사로잡는 광고 표면의 휴머니즘, 그 이면에 기업의 사람 잡는 찌질리즘이 보인다.
▲  방송광고의 한 장면

더 많은 일자리 더 많은 땀방울로 대한민국은 다시 태어나고 있다고?

광고를 보면 땀방울은 보이는데 어떻게 일자리가 더 많아질지는 모르겠다. 대기업들은 그동안 꾸준히 일자리 ‘창출’이 아닌 일자리 ‘소멸’을 추구해왔기 때문이다. 실제 1996년과 2006년을 비교해보면 중소기업에 비해 대기업들의 고용은 오히려 줄었다. 중소기업중앙회의 발표에 따르면 대기업의 일자리는 10년간 129만 개 줄었고 중소기업 일자리는 247만 개를 늘었다. 대기업은 돈은 벌어도 일자리 창출과는 거리가 멀다는 얘기이다.
최근 여러 대기업들이 사회적 기업을 발굴하고 지원해 일자리를 만들어내겠다는 계획을 밝히고, 회사가 일자리 만들기에 앞장 서는 것처럼 보이려 애쓰는 홍보에 혈안이 되어 있다. 하지만 실상 대기업들은 정규직 채용은 줄이고 비정규직을 늘려 고용시장을 불안정하게 만들고 있다.
또한 대기업들은 인턴사원 고용으로 마치 채용을 늘린 것처럼 말한다. 정규직 신규채용은 작년보다 줄이거나 그대로 유지하면서 ‘청년 인턴’ 일자리만 늘이고 있다. 뭔가 있어 보이는 ‘인턴’은 기간제 노동자의 다른 이름일 뿐이다. 청년 인턴들은 정규직 전환을 꿈꾸며 저임금 노동을 하다가 계약기간이 만료되면 다시 일자리 걱정에 날을 지새워야 한다. 기업은 인턴제로 청년들의 등골을 빼먹고 있을 뿐, 이들의 일자리를 보장해주진 않는다. 일자리 창출을 호언하지만, 속으로는 기업의 이익만 챙기고 있는 것이다.

▲  방송광고의 한 장면

대기업이여, 다시 태어나라~

대기업들의 하반기 신규채용 계획이 ‘지난해’보단 감소했지만 ‘올 상반기’에 비해 늘었다고 한다. (참, 통계란 눈 가리고 아웅이다.) 과연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안정적인 일자리를 갖게 될지 알 수 없다. 대기업들이 해야 할 일은 이미지마케팅이 아닌 일자리 창출을 위한 실질적이고 현실적인 노력이다. 정부와 대기업은 인턴제 확대를 비롯한 일시적인 일자리가 아니라, 단기적 고용만을 장려하는 정부와 기업의 정책을 바꾸고 장기적.안정적 고용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이 땅의 노동자가 일 할 권리를 보장받을 수 있어야 대한민국도 다시 태어날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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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공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