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년인권'에 해당되는 글 358건

  1. 2018.11.30 체벌거부선언문
  2. 2018.03.11 2018년에는 청소년 참정권 꼭
  3. 2017.12.20 [촛불청소년인권법제정연대 논평] 1987년과 2017년, 청소년들의 민주주의 - 서울지역고등학생연합의 명동성당 농성 30주년, 그리고 대통령 선거 예정일을 맞아
  4. 2017.10.29 청소년은 시민이다 -《시민의 확장》
  5. 2017.05.05 18세 선거권과 청소년 참정권 7문 7답 (1)
  6. 2017.04.27 '실수'가 보여주는 것 (1)
  7. 2017.02.07 18세 고등학생은 빼자? 반복되는 해괴한 주장
  8. 2016.09.11 『인물로 만나는 청소년운동사』
  9. 2016.07.16 여기에 우리 편이 있었네? - 《심리학은 아이들 편인가》 (오자와 마키코)
  10. 2016.07.06 [나이주의와 청소년인권] 우리 사회의 청소년혐오
  11. 2016.06.23 [나이주의와 청소년인권] 청소년 억압의 뿌리, 나이주의를 발견하다
  12. 2016.04.13 평등한 민주주의의 봄을 바라는 청소년 참정권 요구 선언문
  13. 2016.03.24 [공현의 인권이야기] ‘소비자’의 권리를 넘어서
  14. 2016.02.18 [공현의 인권이야기] 청소년운동? 청소년‘인권’운동? 인권, 함께해서 좋지만 또 조금 부담스러운 그것
  15. 2016.02.09 [성명] 누리과정 예산 빵꾸나는 소리 좀 안 나게 해라~ - 무상교육은 인권이다! 정부는 교육재정을 책임지고 마련하라!
  16. 2015.10.12 [한글날 논평] 이게 한글이 아니면 두글이애오? 청소년 언어문화 그만 까새오
  17. 2015.09.29 [논평] 청소년인권을 현관문 안으로! - 가족 내 체벌 금지를 환영하며, 청소년인권 발전의 한 걸음이 되길 바란다
  18. 2015.08.06 청소년신문 요즘것들 제6호 2015.07.16.
  19. 2015.04.27 [한겨레 2030 잠금해제] 10년째 두발자유 운동 중 / 공현
  20. 2015.03.30 체벌이 인권침해일 수밖에 없는 이유들
걸어가는꿈2018.11.30 17:39

체벌거부선언문


두려움


체벌이라고 하면, 벌써 십수년 전 일이지만 중학교 과학 수업 중 정기적으로 돌아오곤 했던 일종의 즉문즉답 시간이 떠오르곤 한다. 과학 교사가 학생 1명 1명에게 그 전 시간까지 배운 것 중에 아무거나 질문을 하고, 5초 안에 대답을 못 하면 손바닥을 맞는 시간이었다. 대답을 더듬거리거나 한 음절 틀리기만 해도 손바닥을 맞았다. 내 차례가 돌아오기를 기다리는 시간, 질문을 받고 5초 안에 대답하기 위해 필사적으로 뇌를 작동시켜야 했던 시간, 그 두려움과 조바심이 지금도 떠오른다. 그 시간만 되면 교실 안의 공기는 마치 손에 잡힐 듯 목에 걸릴 듯 팽팽해지곤 했다. 공기의 밀도가 바뀌었을 리는 없으니 그저 내가 숨을 제대로 못 쉴 만큼 긴장했던 것뿐이겠지만.

우스운 것은 반 이상의 학생들은 체벌을 피하기를 포기하고 그냥 맞고 말겠다는 자세로 임했고, 나는 어떻게든 한 대도 안 맞고 넘어가 보려고 열심히 외운 끝에 한 질문 한 질문 클리어할 때마다 모종의 해방감을 느꼈다는 점이다.(그래도 종종 삐끗해서 매번 하나씩은 틀리곤 했다.) 끔찍한 것은, 뭐 그런 방식으로 지식을 머릿속에 넣으려는 것 자체가 끔찍하다는 것은 말할 것도 없지만, 그 교사는 나름 열의 있는 좋은 인품의 사람이었고 스스로 그렇게 가르치는 것이 학생들을 위한 일이라고 믿었으리라는 점이다. 나는 지금도 ‘체벌’이라고 하면 그 교사의 즉문즉답 시간과 더불어 그 교사가 수업 시간에 상습적으로 자는 학생에게 쓰레기통에 물을 받아 끼얹은 사건이 떠오른다. 그럼에도 나는 그 교사에 대한 미움을 느끼지는 않는다. 아마 그것이 사적 감정 없는 ‘교육의 수단’으로서의 폭력에 가까운 형태였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그 끔찍함과 내가 기억하는 충격, 두려움의 시간이 희석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내가 어이없어했던 체벌들 ― 2학기 개학을 했으니 정신 차리고 공부하잔 의미에서 전원 1대씩 매를 맞자던 영어 교사라든지, 체육 시간에 집합이 늦었다는 이유로 반 학생 전원을 ‘엎드려뻗쳐’ 하게 했던 체육 교사라든지 ― 보다도, 그 중학교 과학 교사의 체벌이 더 ‘아프고’, ‘굴욕적인’ 기억으로 남아 있다. 왜냐하면 그건 그 교사가 이상한 사람이거나 불합리한 사람이라 벌어진 일이 아니었으니까. 그의 체벌은 참으로 ‘효과적’이었다. 그 교사가 바라는 대로, 학생이 지정된 범위를 달달 외우고 벌벌 떨며 5초 안에 대답을 쥐어 짜내도록 통제하는 데 성공했으니까 말이다. 내가 여전히 그때를 떠올리면 지금도 조금 울먹이고 싶어지게 되었다는 것은 딱히 그 교사가 신경 쓸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흔히 체벌 이야기를 하면 체벌을 가한 사람의 선악을 판별하고, 그 체벌이 효과적이고 정당한 것이었는지를 묻곤 한다. 감정적이진 않았는지, 심하진 않았는지, 체벌을 당한 사람이 맞을 만한 잘못을 했는지, 반성을 하게 만들었는지 등……. 그러나 체벌을 한 사람이 선량하고 합리적인 사람인지 여부는 중요한 것이 아니다. 체벌에 의해서 어떠한 결과를 얻든 그 과정 자체가 폭력에 굴복한 경험, 고통을 느끼고 그 고통을 피하기 위해 순종하고 두려워한 기억일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체벌이 아니라 ‘어린이·청소년에 대한 (제도화된/허락된) 폭력’이라고 부르는 것이 더 나을 것이다.

내가 어린이·청소년기를 보낸 1980년대 후반에서 2000년대 중반까지는, 정부에서는 체벌의 원칙적 금지와 교사들의 자제를 요구했으나, 그럼에도 여전히 체벌이 너무나 흔한 시대였다. 그래서 나는 나에게 폭력을 가한 학교 교사, 학원 교사, 택견 도장 사범, 그리고 아주 드물긴 했지만 부모까지도, 모두 미워하지는 않는다. 물론 나나 다른 사람들이 겪은 폭력이 정당화되는 것도 아니고 상처가 사라지는 것도 아니다. 그저 그들은 그래도 되는 사회였으니까 그런 것일 뿐임을 이해한다. 그런데, 지금은 그래선 안 되는 사회가 되긴 했던가?


감옥보다도 못한 점


"우선 학교는 감옥이다. 어떤 점에서 학교는 감옥보다 더 잔혹하다. 예컨대 감옥에서 교도관들과 교도소장은, 당연히 읽고 쓸 수 없다면 교도관도 소장도 되지 못했을 테지만, 재소자들에게 읽고 쓰기를 강요하지 않는다. 그저 무엇을 기억해 내지 못한다는 이유로 때리거나 달리 벌을 주지도 않는다. 감옥에서는 적어도 간수들이 이해하지도 못하고 관심도 없어 재소자들에게 이해시킬 수 없는, 끌리지도 흥미롭지도 않은 주제로 강연하면서 들으라고 강요하는 일은 없다. 그대가 감옥에 있다고 가정하자. 간수들이 그대의 신체에 고통을 줄 수 있을지 몰라도, 그대의 두뇌에서 일어나는 생각까지 어쩌지는 못한다. 게다가 간수들은 다른 재소자들에게 얻어맞거나 잔혹한 짓거리의 희생자가 되지 않도록 그대를 보호한다. 하지만 학교에서 아이들은 어떤 보호도 받지 못한다."

- 조지 버나드 쇼 지음, 서상복 옮김, 《부모와 자식 어른과 아이 길동무로 살아가기》, 연암서가, 64-65쪽


내가 살면서 중·고등학교 적과 가장 비슷한 경험을 한 것은 병역거부로 감옥에 수감되었을 적이다. 외출과 통신이 금지된 것만 더해진 (자유형(刑)의 본질이 자유와 사회적 관계의 박탈이니 그 부분이 중요한 것이긴 하겠지만) 기숙사 고등학교 생활 같았던 것이다.

조지 버나드 쇼가 저러한 글을 쓴 20세기 초반보다야, 감옥도 학교도 모두 많이 나아졌다. 그리고 적어도 한 가지 부분에서 한국의 감옥은 한국의 학교보다 낫다. 감옥에서는 수용자에게 신체적 고통을 주거나 폭력을 가하는 일이 엄격하게 금지되고 제한되어 있다. 구속구를 사용하거나 생활환경이 가혹한 징벌방에 수용자를 보내는 처벌이 있으나 일단은 불가피할 때 절차를 거쳐서 집행된다. 물론 밉보인 수용자에 대해서 편법적이고 불공정하게 구속구를 사용한 신체적 처벌을 내리는 경우 등이 완전히 사라졌다고 할 수는 없다. 그러나 적어도 그것이 발각되면 감옥 직원이나 소장이 규탄과 처벌을 받으리란 점은 확실해서, 정당한 사유와 절차를 밟으려 하고 가혹한 행위는 은폐하기 위해 애쓴다.

반면 청소년의 경우에는 어떤가. 청소년에 대한 폭력, 체벌이 법으로 금지되었다고 할 수 있는 것은 2015년에 이르러서였다. 그러나 가정, 학교, 학원 등에서 여전히 체벌이 벌어지고 이를 딱히 감추려고 들지도 않는다. 문제가 돼서 처벌을 받으면 그게 오히려 재수 없는 일이라고 여겨질 것이다. 청소년인권이 너~무 잘 보장돼서 문제이고, 체벌이 없어져서 요즘 애들이 버르장머리가 없다는 소리나 나오려나. 〈세계인권선언〉도 〈대한민국 헌법〉도, 권리 중에서 존엄성과 차별 금지의 원칙 다음에 신체의 자유가 등장하는 것은 그만큼 인간의 권리로서 기본적인 것이기 때문이다. 신체의 자유와 신체에 대한 존중이 이런 지경이니 우리 사회가 아직 청소년을 인간으로 대하지 않는 사회임을 잘 알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체벌 근절부터 확실하게 이루어 내자고 하고 있는 것이다.


법과 권리의 입법


〈아동복지법〉은 만18세 미만 아동에게 그 보호자(친권자, 교사를 포함하여 보호·양육·교육할 의무가 있는 자, 업무·고용 등의 관계로 사실상 아동을 보호·감독하는 자)가 신체적 고통이나 폭언 등의 정신적 고통을 가하는 것을 금지한다. 〈초·중등교육법 시행령〉은 학생을 지도할 때 도구, 신체 등을 이용하여 학생의 신체에 고통을 가하는 방법을 사용하는 것을 금지한다. 경기도, 광주광역시, 서울특별시, 전라북도에서 시행 중인 〈학생인권조례〉는 체벌 등 폭력으로부터의 자유를 보장한다.

이렇게 법적으로 한국은 체벌 금지 국가다. (만18세가 된 고등학생에 대한 일부 체벌에 대한 법리적 공백이 없지 않으나 이 문제를 생략한다면.) 그러나 체벌이 금지되었다는 것을 아는 사람들이 얼마나 될까. 학교 체벌은 금지된 줄 아는 사람들이 많은데, 이것도 제대로 금지된 상황은 아니지만, 가정 체벌을 포함한 모든 체벌이 금지된 줄은 모르는 사람들이 반은 넘을 거다. 2016년 국가인권위원회의 의식 조사에 따르면 15세 이상 국민의 48.7%는 체벌이 허용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의식 조사 중 최초로 금지되어야 한다는 비율이 50%를 넘긴 고무적인 결과이긴 했으나 여전히 절반에 가까운 사람들이 체벌이 허용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는 점이 우울하다. 많은 소수자에 대한 폭력과 배제가 그렇듯, 체벌은 법적으로는 금지되어 있지만 사회적으로는 허용되고 있다.

“권리라는 것은 결국 ‘양해’라는 말의 다른 표현”(이영도 지음, 《눈물을 마시는 새 2》)이다. 사회적으로 받아들여지지 않은 권리는 권리가 되지 못하고 법이 사문화된다. 따라서 법을 만드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정부는 그 법이 실제의 삶을 규율하는 선이 되고 뿌리내리도록 노력해야 한다. 그러나 정부에서는 체벌 금지를 대대적으로 선언하는 것조차 부담스러워한다. 청소년은 참정권이 없고 ‘아직’ 시민이 아니며, 체벌 금지를 선언했다가는 친권자·교사 등의 반감만 살 거라고 두려워하기 때문이라고 의심하는 것은 충분히 합리적일 것이다. 따라서, 비록 체벌의 발생 빈도나 강도는 줄어들고 있지만, 체벌 근절을 기대하기에는 전망이 어둡다. 2016년 국가인권위 조사에 의하면 학교에서 ‘직접체벌을 받았거나 목격한 경험’은 중학생 29.5%, 고등학생 27.1%, ‘간접체벌을 받았거나 목격한 경험’은 중학생 35.1%, 고등학생 36.3%나 된다. (사실 이렇게 체벌을 ‘직접’, ‘간접’ 나누는 것도 지극히 체벌을 가하는 사람의 관점이다!) 이 비율이 학생인권조례 시행 지역에서도 20-30% 선인 것이 현실이다. 오히려 체벌을 지지하는 바탕이 되는, 청소년에 대한 사회적 혐오는 더 강해지는 경향마저 관찰되고 있다.

그렇기에 지금 한국 사회에서 우리가 체벌거부를 선언하는 것이 중요하고 의미 있다고 생각한다. 이 선언이 결국 청소년의 신체의 자유, 인격과 존엄성을 존중받을 권리, 체벌을 당하지 않을 권리, 폭력 앞에서 두려움에 떨지 않을 권리를 입법하는 데 한 몫 하는 일이 될 것이라 믿는다. 그럼으로써 체벌이 사라지는 것은 물론, 과거에 있었던 체벌에 대해서도 돌아보고 사과하고, 예를 들어 공직자를 선출하고 검증할 때 그 사람의 체벌 전력을 문제 삼기도 하는, 그런 사회가 만들어지리라 믿는다. 입법의 완결은 국회에서 국회의원들의 표결이 아니라, 사람들의 행동으로 이루어진다.

나 역시, 학교에 인권교육이나 강의를 가서, 체벌의 흔적을 목격하거나 증언을 듣더라도, 굳이 나서기엔 부담스러워 같이 욕이나 하고 넘어간 적이 있다. 그러나 이제는 이에 대해 해결하기 위해 당사자와 함께 노력하거나, 적어도 학교에 문제 제기라도 해야겠다.

비록 나는 청소년은 폭력을 당해도 된다고 생각한 적은 없으나, 나보다 여러 모로 약한 위치에 있는 사람에게 나의 분노나 짜증을 표현할 때 물리적 위협이 되는 방식이나 폭력적 방식을 사용한 적이 있음을 고백한다. 그때도 잘못했다고 생각하고 반성한다고 했지만 다시 한 번 잘못을 곱씹는다. 체벌거부선언이 청소년에 대한 폭력을 반대하는 일이면서도, 한 발 더 나아가서는 약자에 대한 폭력을 정당화하는 나와 우리의 습관을 바꾸기 위한 실천이 되기를 바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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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벌거부 약속하기!!
https://stophit.me


체벌거부 선언하기!!
stophit.me/speakout

Posted by 공현
걸어가는꿈2018.03.11 19:26



현재 대한민국 청소년(만19세미만)들은 선거권, 피선거권이 없을 뿐만 아니라

선거운동이 금지되어 있고, 정당 가입이 허용되지 않으며,

학교 등에서 정치활동을 금지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참정권을 크게 제한당하고 있는 현실입니다.


이를 바꾸기 위해서 많은 운동이 있어 왔고,

지금 2016년 박근혜 퇴진 촛불 운동 이후로 청소년 참정권을 요구하는 외침은 그 어느 때보다도 높아져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청소년 참정권에 대해 관심을 갖게 하고

국회에서도 꼭 선거권을 현행 19세보다 그 이하로 낮추는 법안, 청소년의 선거운동/정당가입 권리 보장하는 법안 등이 통과되도록 하기 위해서 많은 관심과 참여가 필요합니다.


특히 2018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청와대 국민청원에도 고3 청소년이 올린 선거권 요구 청원이 많은 주목을 받고 있습니다.


청와대와 정부도 청소년 선거권 보장을 위해 나서고, 국회의원들에게도 압박이 될 수 있도록 많이 참여해 주세요!



http://bit.ly/청소년투표청원


Posted by 공현
걸어가는꿈2017.12.20 14:55
[촛불청소년인권법제정연대 논평]
1987년과 2017년, 청소년들의 민주주의
- 서울지역고등학생연합의 명동성당 농성 30주년, 그리고 대통령 선거 예정일을 맞아


30년 전, 1987년 12월 19일 서울 명동성당에서 수백 명의 고등학생들이 모여서 외쳤다. “노태우를 당선시킨 기성세대 각성하라!” “군부독재 타도하여 민주교육 쟁취하자!” 노태우 당선, 군부 독재 연장에 반대하며, ‘서울지역고등학생연합(서고련)’이 명동성당에서 농성하면서 선언문을 발표했던 것이다. 1987년 6월 시민들이 쟁취한 첫 직선제 대통령 선거 무렵부터 청소년들은 민주주의를 외쳤고 선거 결과에 직접 행동으로 대응했다. 자신들은 참여할 수 없었던 대통령 선거의 반민주적인 결과에 대해 항의했고, 선거권을 가진 이들의 각성을 요청했다.

더불어, 오늘은 박근혜 전 대통령이 탄핵되지 않았다면 대통령 선거가 치러졌을 날이기도 하다. 서고련의 농성으로부터 30년이 지난 오늘날, 청소년들은 다른 이들과 함께 촛불을 들고 박근혜 전 대통령을 탄핵시켜 우리 사회의 민주주의의 가치를 지켜냈다. 1987년의 청소년들이 대통령 직선제를 함께 외쳤고 노태우 대통령 당선에 항의했다면, 2017년의 청소년들은 광장에서 함께 박근혜 대통령을 물러나게 했다. 우리 역사 속에서 청소년들은 언제나 역사와 정치의 주인으로 당당하게 나서왔다는 증거이다.

박근혜 전 대통령을 물러나게 한 것은 시민들의 승리였지만, 또한 박근혜가 대통령으로 당선되어 반민주적 전횡을 일삼을 수 있게 했던 것 역시 우리의 현실이었다. 진정한 ‘적폐 청산’을 위해서는 ‘박근혜를 당선시켰던 기성세대의 반성’ 역시 필요하다. 먼저, 청소년은 미성숙하다는 전제로 청소년들을 배제한 가운데 이루어져 온 정치가 과연 얼마나 성숙하고 합리적이었던지 돌아보지 않을 수 없다. 더군다나 민주주의를 훼손한 대통령을 물러나게 하는 데는 함께했음에도 새로운 대통령을 뽑을 때는 전혀 함께하지 못했던 청소년들의 현실은 과연 온당한가. 민주주의에 필요한 마음가짐은 누군가는 미성숙하고 자신들은 충분히 성숙하다는 오만이 아니라, 우리 모두가 불완전한 인간이며 같이 대화하며 결정해나가야 한다는 겸허함 그리고 과오를 저지를 수 있음을 인정하고 반성하고자 하는 용기일 것이다.

청소년들을 더 이상 선거와 정치의 결과를 받아들이기만 해야 하는 위치에 방치해선 안 된다. 선거권도 없고 선거운동도 정당활동도 금지당한 가운데, 민주주의의 외곽에서 선거 이후에야 목소리를 내고 ‘기성세대의 각성’을 요구하게 해선 안 된다. 30년 전 청소년들이 민주주의를 위해 군부 독재 타도를 외쳤다면, 오늘날 청소년들은 민주주의를 위해 청소년 참정권을 요구하고 있다. 청소년들은 나이에 상관없이 학교 안에서든 밖에서든 민주주의 사회의 시민으로서 대우받고 말하고 행동할 수 있어야 한다. 87년 6월을, 고등학생들의 명동성당 농성을, 그리고 바로 1년 전에 타올랐던 촛불을 잊지 않고 계승하기 위해서라도, 우리 모두가 청소년 참정권 보장을 위해 조속히 나서야 할 것이다.


2017년 12월 20일
촛불청소년인권법제정연대


 


Posted by 공현
흘러들어온꿈2017.10.29 18:47

청소년은 시민이다

김효연, 시민의 확장, 스리체어스, 2017

 

 

시민의 확장은 고려대학교 법학연구원 정당법센터 연구원인 김효연이 법학적 관점에서 청소년 참정권과 선거권 제한 연령 기준의 문제를 논한 책이다. 먼저 이 책에는 몇 가지 의의가 있다는 것을 짚고 넘어가겠다.

첫 번째로, 단지 선거권 제한 연령만의 문제가 아니라 청소년 참정권이라는 틀에서 문제를 다루고 있다는 점이다. 18세 선거권 자체는 꽤 오랜 시간 동안 이슈가 된 문제지만, 국회나 언론 등에서는 그것을 청소년 참정권의 문제로 잘 다루지 않았다. 또한 18세 선거권 외의 청소년 참정권 문제 역시 거의 주목을 받지 못했다. 시민의 확장은 청소년의 권리 문제로서 참정권, 선거권 문제에 접근하고 있어 기존에 나온 책들과 차별화된다.

두 번째로, 시민의 확장은 법학적인 개념과 방법으로 논의를 끌고 간다는 점이다. 그동안 청소년 참정권 문제가 주로 (민주주의) 교육의 논리나 세대 간 평등 등 사회학/사회복지학의 논리로 다루어졌던 것에 비해, 시민의 확장은 헌법재판시 기본권 제한의 법리나 인권으로서의 참정권의 성격 논의 등 법학적 관점을 취하고 있다. 헌법재판소 등에서 계속해서 청소년 참정권에 대해 보수적인 판결을 내놓고 있는 현실에서 이러한 접근이 가지는 의미가 분명히 있다.

세 번째는, 단지 국내법이나 국내 사례에만 머물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1, 2장이 세계적으로 아동의 권리 변천사나 유엔아동권리협약에 대한 연구를 담고 있는 데서 알 수 있듯이 시민의 확장의 시야는 국제적이다. 이에 따라 실제 사례들을 검토하면서도 외국에서 논의되고 있는 청소년 참정권 관련 제도들, 선거권 제한 연령을 16세로 하고 있는 오스트리아의 경우 등을 풍부하게 담고 있는 편이다. 유엔아동권리협약에서 아동의 나이와 성숙도에 따라 자신의 의견을 존중받을 권리를 논하면서, ‘연령성숙도를 분리하여 판단해야 한다고 지적한 것(99)도 저자가 한 연구의 깊이를 보여 준다. 이상의 장점들이 청소년 참정권 이슈에 대해 알고 이야기하기 위해 시민의 확장을 읽어야 할 이유들이라 하겠다.

 

 

사회의 책임

 

청소년의 참정권 문제를 이야기하면(아니, 사실 청소년인권 이야기를 할 때면 거의 대부분) 청소년이 그만큼 성숙한가, 청소년이 그러한 권리를 가질 자격이 있는가를 묻는 경우가 많다. 18세 선거권을 주장하면서 18세면 충분히 성숙하다고 논거를 드는 것도 이미 그러한 틀에 빠져 있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3장에서 던진 질문, ‘몇 살이 되어야 시민이 될 수 있는가라는 말은 곧 이러한 틀의 문제를 지적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저자는 이 장에서 아동·청소년도 민주공화국의 원리에 따라 그리고 이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정치적 의사 결정 과정에 참여하는 주체가 될 수 있다는 원칙을 연역해 낸다. 다만 2008년과 2016년의 촛불 집회를 언급하면서 아동·청소년의 정치 참여가 이례적 현상이었다고 평가한 것은 아쉬운 부분인데, 이는 저자가 법학 전공자로서 아동·청소년의 정치 참여 사례에 밝지 못한 탓으로 이해하겠다.

4‘19세 미만 선거권 제한은 위헌이다에서는 헌법재판소가 19세 선거권 제한 연령이 합헌이라고 결정한 논리를 비판하고 있다. 여기에서 인상적이었던 것은 선거권이 국가 내적인 기본권인지, 인간의 고유한 권리인 인권인지, 그리고 주권 행사의 문제인지를 나누어서 보고 있다는 점이다. 그리고 국내 학자 소수와 독일 학자는 선거권의 법적 성격을 인권으로 보아야 한다고 주장한다.”(97)라며 인권으로서의 선거권을 실현하기 위한 다양한 제안과 정책들을 소개하고 있다. 나는 청소년 참정권 제한에 반대하긴 하지만, 선거권 제한 연령 설정 자체는 입법자의 재량일 수 있다는 논리에 어느 정도 수긍하고 있었기에 저자가 제시한 관점이 더 흥미롭게 느껴졌고 생각을 고칠 수 있는 기회도 되었다. 현실적으로는 이 문제를 풀 결정권과 책임은 여전히 국회에 있긴 하겠지만 말이다.

그런데 선거권 등을 제한하고 보장하는 기준으로 청소년이 충분히 성숙했는지 자격 조건을 따지지 않는다면 어떻게 이 문제를 봐야 할까? 4장 소제목의 판단 능력이 미숙하면 권리를 빼앗겨도 되는가?”라는 질문도 적절하긴 하지만, 더 나아가서 시민의 확장은 사회와 제도의 문제를 제기한다. 예컨대, 영국에서 16세 선거권 주장이 나오면서 행한 연구에서 16-17세 아동이 정치에 관심이 적고 낮은 수준의 정치적 지식을 갖고 있고 정치적 태도도 일관적이거나 안정적이지 못했다는 결과가 나온 적이 있다. 그러나 오스트리아에서는 2007년 선거권 제한 연령을 16세로 한 뒤, 영국의 경우와는 달리 16-17세의 아동·청소년이 정치적 성숙성 수준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16-17세의 아동·청소년의 정치적 성숙성은 선거권 연령의 변화 이후에 성장했고, 즉 선거권 연령이 16-17세의 아동·청소년의 정치적 성숙성에 영향을 주고 있”(122)는 것이다. 정치적 성숙성은 생물학적으로 정해진다기보다는, 제도나 사회 환경에 따라 달라진다는 점을 보여 주는 사례이다.

청소년 참정권 요구는 청소년의 성숙성이나 뛰어남을 입증하려는 것이 아니다. 청소년의 기본적 인권을 보장해야 할, 청소년도 민주주의 사회의 예외 지대가 아니게 해야 할, 우리 사회의 책임을 묻는 운동이다. 무엇보다도 청소년 참정권 문제를 방치하고 있는 행정부와 입법부와 사법부의 문제를 해결하려는 운동이다. 저자의 말대로 입법부는 입법 정책으로 단계적인 선거권 연령 하향이라는 개선 방안을 제시해야 한다.”(127) 또한 연령 제한과 상관없이 청소년의 참정권을 보장할 여러 방법들도 고민해야 한다. 이 책은 시민을 확장하자는 취지로 시민의 확장이란 제목을 달고 있지만, 이 책에 적힌 내용만 보더라도 알 수 있다. 청소년은 이미 시민이다. 시민으로 대우받지 못하고 있을 뿐이다.

Posted by 공현
걸어가는꿈2017.05.05 14:25

 

 전에 아수나로 sns팀이 올린 7문 7답 내용입니다.




18세 선거권과 청소년 참정권 7문 7답

 청소년인권행동 아수나로 SNS팀



'18세 선거권'에 대해 많은 이야기가 되고 있어요. 18세 선거권은 왜 필요할까요? 또는 18세 선거권만 되면 청소년의 참정권이 보장되는 걸까요? 청소년인권의 관점에서 본 18세 선거권 문제, 카드뉴스로 만들어 봤습니다. 아수나로에서는 청소년 참정권의 문제에 대해 계속 목소리를 내고 활동하려고 해요.

 

1) 18세 선거권, 왜 지금 이야기가 나오지?
▶ 18세 선거권 주장은 꾸준히 있어 왔다. 2000년대 초에도 18세 선거권을 주장하는 청소년들, 시민단체들의 운동이 있었고 그 결과 선거권 제한 연령은 2005년 20세에서 19세로 완화되었다. 2016년 국회에도 18세 선거권 개정안이 여럿 올라가 있었다. 최근에 18세 선거권이 새삼 주목받는 것은, 2016년 겨울 촛불집회를 계기로 청소년의 참정권을 보장해야 한다는 문제의식이 커졌고 정치개혁 차원에서도 필요하다는 공감을 얻고 있기 때문이다.

 

2) 18세 선거권, 왜 논란인데?
▶ 만18세부터 흔히 사회에서 이야기하는 10대 청소년, 고등학생 등이 다수 포함되기 때문이다. 반대하는 이들은 만18세 중 일부는 '미성년자', '학생'이라 미성숙하고, 부모·교사 등에게 의존적이며, 공부를 해야 할 시기에 정치에 관심을 가져선 안 된다고 한다. 반면 18세 선거권 등을 찬성하는 이들은 청소년들이 선거권을 가진다는 것이야말로 의미있는 변화라고 주장한다. 청소년도 시민이며 정치에 관심을 가져서는 안 된다는 생각은 반 민주주의적인 편견이라는 것이다.
 

3) 18세 선거권이 당연한 거야?
▶ 민주주의의 역사는 참정권 확대의 역사이기도 했다. 선거권 등의 참정권은 인권으로서 확대되고 보장되어야 한다. 그리고 안정되고 현대화된 대의민주주의 국가들은 대부분 선거권 제한 기준이 18세이고, 더 기준이 낮은 곳도 있다. 한국의 18세들만 특별히 무능할 리도 없지 않은가. 그래서 18세 선거권으로 하자는 이야기가 많이 나오는 것이다. 꼭 18세만이 아니라, 실제로 16세 선거권, 15세 선거권 등을 시행하거나 이를 논의하고 있는 나라들도 있다.

 

4) 세금도 내고 군대도 갈 수 있는데 18세가 선거권이 없는 건 불공평하다던데?
▶ 참정권을 비롯한 인권은 의무를 이행했을 때 주어지는 대가가 아니라는 점에서 문제가 있는 논리이다. 인권은 의무에 우선하고, 이를 저울질할 수는 없다. 군인으로 복무하거나 세금을 내거나 결혼을 할 수 있을 만큼 성숙해서 선거권을 보장받아야 하는 것이 아니다. 청소년도 시민으로서 참정권을 가지고 있고, 이를 확대하고 실현하는 방법 중 하나가 18세 선거권인 것이다. 보편적인 청소년 참정권을 위해서라도, 권리를 '의무의 대가'나 '어른이 된 보상'처럼 생각하지 말자.

 

5) 18세 선거권이 되면 청소년에게 참정권이 보장된다고 할 수 있나?
▶ 만18세인 사람들 중 '10대 청소년'인 사람은 일부이다. 가령 당장 이번 5월에 열릴 대통령선거에서도 대략 11만 명 정도밖에 안 될 것이다. 18세 선거권만 이루어진다면 대부분의 청소년들은 여전히 참정권이 없는 상태에 처해 있게 된다. 그래서 18세 선거권만을 가지고 곧 청소년 참정권이 보장된다거나 청소년의 참여가 이루어진다고 말할 수는 없다. 하지만 청소년 참정권이나 선거권 제한 연령 기준 완화의 첫 걸음이라고 의미부여할 수는 있을 것이다.

 

6) 그럼 청소년 참정권으로 어떤 게 돼야 돼?
▶ 법적으로 청소년은 정당 가입도 하지 못하고, 선거운동(선거 때 어느 후보가 당선되거나 당선되지 않도록 발언하거나 행동하는 것 전부)도 할 수 없다. 또한 학교 규칙으로 청소년의 정치 활동이나 표현의 자유, 집회의 자유 등을 규제하는 경우도 많다. 이러한 법과 학교 규칙들을 고쳐야 한다. 무엇보다도 청소년은 정치를 하면 안 된다는 사람들의 편견이 먼저 바뀌어야 한다. 청소년들이 적절한 여가 시간을 가지는 등의 변화도 필요하다.

 

7) 18세 선거권이나 청소년 참정권이 이루어지면 뭐가 바뀌지?
▶ 18세 선거권이나 청소년 참정권이 된다고 해서 바로 많은 것이 바뀌지는 않을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청소년의 의견에 사람들이 좀 더 귀기울이고 청소년의 인권 문제를 좀 더 신경쓰게 만드는 계기는 될 것이다. 청소년을 평등한 시민으로 보도록 하는 긍정적인 변화의 시작이 될 수도 있다. 학교 규칙이나 정책이나 우리 마을을 바꾸는 등, 청소년들이 힘을 모으면 우리의 인권을 되찾고 사회를 바꿀 수 있는 가능성도 더 커질 것이다.

Posted by 공현
걸어가는꿈2017.04.27 19:24


문재인이 jtbc 토론회에서 홍준표의 "동성애 반대합니까?"라는 질문에 대해 "그럼요." "반대합니다." "좋아하지 않습니다." "합법화 찬성하지 않습니다."(심지어 문맥상으로는 '인정'하지도 않는다.)라고 발언한 게 시끄럽다. 구체적으로 뭐라고 했는지 갖고서도 말이 많아서, 동영상을 직접 보면서 받아 적었다. 아래와 같다.

홍준표 "그럼 군에서 동성애가 굉장히 심합니다. 군 동성애는 이 국방 전력을 약화시키는데 어떻습니까? 거기는?"
문재인 "예, 그렇게 생각합니다."
홍준표 "그렇죠? 동성애 반대하십니까?"
문재인 "반대하지요."
홍준표 "동성애 반대하십니까?"
문재인 "그럼요."
홍준표 "박원순 시장은 동성애 파티도 서울, 그, 그 앞에서 하고 있는데? 서울시청 앞에서?"
문재인 "서울 광장을 사용할 권리에서 차별을 주지 않은 것이죠. 차별, 차별, 차별을 금지하는 것하고 그것을 인정하는 거하고 같습니까?"
홍준표 "아니, 차별금지법이라고 국회 제출한 게, 이게 동성애 사실상 허용법이거든요? 문 후보 진영에서, 민주당에서 제출한 차별금지법인가 그게 하나 있는 게..."
문재인 "차별금지하고 합법화하고 구분을 못합니까?"
홍준표 "아니, 합법화가 아니고... 분명히 동성애는 그, 이제 반대하는 것이죠?"
문재인 "네, 저는 뭐, 좋아하지 않습니다."
홍준표 "좋아하는 게 아니고, 반대하냐고 찬성하냐고 물어보잖아?"
문재인 "합법화 찬성하지 않습니다."


  일각에서는 이것이 '문재인의 실수/실언'이라는 변명이 많이 나오고 있다. '동성혼에 반대한다' 내지는 '군대 내 동성애(혹은 성폭력. 어떻게 이 둘이 혼동되는지 미스테리하지만...)에 반대한다'라는 이야기를 하려는데 홍준표가 '동성애 반대하냐'라고 물으니까 대답하다 보니 표현이 꼬인 거라는 것이다. 문재인 선거운동 공보단장의 해명 역시 그런 식이다.


 

  문재인 선거운동본부가 4월 27일에 공식 발표한 입장도, 대략적으로 취지가 그런 건 아닌데 표현을 잘못했다는 논지란 점에서는 대동소이하다.

  물론, 문재인 후보 및 선거운동본부가 차별금지법 제정에도 반대하는 입장인 점 등 실질적으로 인권 문제에서 이해하기도 어려운 후퇴를 하고 있는 것은 그 자체로 비판받을 일이다. 그리고 설령 그것을 '실수'나 '실언'이라고 하는 해석을 받아들이더라도, 그 실수로부터 읽어낼 수 있는 것이 있다고 생각한다.


*


대선을 앞두고 교육운동 단체들이 모여서 대선 후보들에게 제안할 교육정책을 정리, 발표하기 위한 연대체가 만들어졌다. 그 연대체에서 나온 정책 제안을 보다가 놀랐는데, '18세 선거권 등 청소년 참정권 보장'은 주요 정책 과제로 들어가 있는데 정작 학교교육 문제에서 주된 의제인 학생인권 보장 등의 사안은 포함되어 있지 않았던 것이다. 하여 공개 원탁 토론회에서 이에 대해 문제제기하자, 그 연대체의 활동가이기도 한 토론회 사회자 '실수'였다고 했다. 최근에 촛불집회를 계기로 18세 선거권을 비롯해서 청소년 참정권 논의가 이슈화되어서 그걸 반영한 것이고 그러다가 학생인권 보장 등은 빠뜨렸다고...  내가 그 말을 듣고 반사적으로 들었던 생각이, '흠 그럼 뭐 가령 전교조 법외노조화가 이슈니까 단결권 보장만 넣고 교원의 정치적 자유나 학교 민주주의 같은 건 실수로 빼먹어도 됐을 텐데...'였다.


  실수였다는 말 자체를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뭐, 그래 아마도 실수였겠지. 그런데 그런 '실수'는 별도의 사건이 아니고 맥락과 배경과 이유를 가진 연속성 있는 사건이다. 실수가 일어난 맥락과 배경이 개인적이거나 우연적인 것이라면 쉽게 정정할 수 있단 점에서 차라리 다행인데, 집단적이거나 지속적인 거라면 더 문제다. 그러니까 '실수'를 그냥 실수라고 넘길 게 아니라, '실수'로부터 무엇을 읽어내느냐가 중요한 것이다.


  예컨대 그 연대체에 청소년운동 단체들은 참여하지 않았다는 점이 그런 실수가 생긴 중요한 배경이었다고 할 수 있다. 또한 교사/학부모들이 별로 탐탁지 않게 느끼는 직접적인 학생인권 사안을 넣기보다는 참정권을 넣고 싶어 하는 심리가 작용한 건 아닌가 의심할 법도 하다고 생각한다. (어쨌건 인권의 문제를 절차나 참여의 문제로 축소시켜 온 것이 학생인권운동이 싸워온 오랜 악습이고 사이비 인권 담론이다.) 어쨌건 교육주체 간 중요한 갈등의 축이었고 운동 의제이자 '학생인권조례' 등으로 정책 의제이기도 했던 학생인권 문제를 그들이 어느 정도로 경시하는지는 충분히 짐작할 수 있는 일이었다.


*


그러므로 문재인의 '실수'라는 것도, 도대체 어떤 실수인지, 왜 일어난 실수인지를 이야기해야 의미가 있다. 단지 '실수'라고만 하고 넘어가 버린다면 그것도 이 문제를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는 것이다.

  문재인 개인이 기독교도이기 때문에 동성애자 등에게 부정적인 의견을 평소부터 갖고 있어서 그랬던 것이라든지 등 여러 가지 해석이 가능할 텐데, 나는 개인의 신념보다도 오랜 역사를 가진 문재인과 민주당의 성소수자 및 차별금지 문제에 대한 불명확한 입장에 주목하고 싶다. 단순히 '동성애는 소수자의 문제이므로 찬반의 문제가 아니다'라는 식의 정답 맞추기를 요구하는 것이 아니다. 차별금지법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왜 필요한지 등에 대해서 제대로 입장도 갖고 있지 않고 막연하게 '차별에 반대한다'는 정도의 이야기만을 하고 있는 상황이며, 심지어 차별금지법조차도 오락가락하고 지금은 제정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밝히고 있다. '군대 내 동성애'라는 기괴하고 의미도 불분명한 조어를 계속 쓰고 있는 것만 봐도 얼마나 이 문제에 관심이 없는지 알 수 있지 않은가.


  토론회에서의 발언 한 번은 '실수'일 수도 있겠다. 그런데 그 실수가 보여주는 배경과 맥락은, 그냥 넘어갈 수 없는, 고질적인 문제이며, 그런 점에서 '실수'라는 말로 넘어갈 수 없다.

Posted by 공현
걸어가는꿈2017.02.07 17:56

오마이뉴스가 기사 제목을 좀 식상하게 달아놨다.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2283374


18세 고등학생은 빼자? 반복되는 해괴한 주장

[18세 선거권 논란 ③] 고3, 촛불은 OK 선거권은 NO? 이젠 바꾸자



"사실 18세 선거권은 (당연하게도) 단지 18세부터 선거권을 행사할 수 있게 된다는 뜻일 뿐이다. 18세 선거권이 이루어진다고 해서 청소년 전반이 정치에 참여할 수 있게 된다거나 청소년의 권리가 보장된다고 말할 수는 없다. 그럼에도 18세 선거권이 청소년인권의 문제로 생각된 이유는, 한국에서 규정하는 초·중·고등학생 및 미성년자 집단의 일부를 포함하게 되기 때문이다.

한국 사회와 한국의 교육제도는 10대 이하 '미성년자'들의 인권을 널리 침해해 왔다. 그런데 이처럼 인권을 부정당해 온 청소년들이, 그중 일부라지만 참정권을 가지게 된다는 것, 그것이 18세 선거권의 의미였고 가장 중대한 쟁점이었다. 현행법상 정당 가입의 권리도 선거운동의 자유도 모두 선거권자에게만 허용되기에 선거권은 전반적인 정치적 권리의 보장을 의미하기도 하는 것이다.

국제적으로 아동(child)·미성년자의 기준은 만 18세 미만으로 통용되고 있다. 반면 한국에서는 만 18세에서 19세까지도 아동·미성년자이자 중등교육 대상으로 보고 있다. 게다가 한국은 다른 현대화된 국가들에 비해 아동·학생의 권리 상황이 열악하고 이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도 부족하다. 그래서 한국에서 18세 선거권 주장은 더 큰 반발에 부딪히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한국적 특수성을 강변하며 18세 선거권에 반대하는 사람들의 주장은 일리가 있다고도 할 수 있다. 청소년인권은 안중에도 없는 주장이라는 점은 달라지지 않지만 말이다."

Posted by 공현
걸어가는꿈2016.09.11 15:38

1995년부터 청소년(인권)운동의 역사를, 참여했던 사람들과의 인터뷰를 통해 재구성한
『인물로 만나는 청소년운동사』가 나왔습니다.


많이 읽어주세요. 저와 둠코 님이 공저했습니다.


이런 분들께 추천합니다.

- 청소년운동과 청소년활동가들에 대해 알고 싶은 분들
- 과거에 청소년운동에 참여&관여했던 분들
- 앞으로 청소년운동을 하실 분들
- 학생인권조례 등이 만들어진 맥락과 역사가 궁금하고 조사해야 하는 분들
- 소수자 인권 운동이 만들어지고 발달하는 사례와 과정을 연구하고 싶은 분들


YES24  http://www.yes24.com/24/Goods/31090355?Acode=101

알라딘 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91320221





청소년 벗


인물로 만나는
소년운동사


저자  공현, 둠코
펴낸 곳  교육공동체 벗
발행일  2016년 9월 12일
정가  15,000원
쪽수  332쪽
책 크기 신국판(152×225mm)
ISBN  978-89-6880-027-6 (03300)
분류  사회과학 》 사회학





+ 목차


들어가는 글 | 시대를 바꾼 청소년들


1부 인간을 꿈꾸다


청소년운동의 여명기 | 김한울·나정훈
1998년 학생 인권 선언


특이한 청소년들, 세상에 말 걸다 | 박준표
2000년 노컷 운동과 2002년 선거권 운동


상처투성이 첫걸음이 남긴 것 | 장여진
2000~2001년 학생 인권 운동


2부 잃어버린 권리를 찾아서


부당함은 본능이 먼저 알지요 | 박정훈
2003~2004년 NEIS 반대·청소년 참정권 운동


자치의 시대, 청소년 정치를 고민하다 | 신정현·김종민
2004년 18세 선거권 운동


기억되지 않는 ‘우리의 촛불’ | 남궁정
2005년 내신등급제 반대·두발 자유 운동


3부 존재감 다지기
 
내 법인 듯 내 법 아닌 내 법 같은 너 | 조만성(따이루)
2006~2007년 학생인권법 제정 운동


청소년이 여기 있다는 걸 잊지 말아요 | 한지혜(난다)
2008년 촛불 집회·2010년 기호 0번 청소년 후보 운동


일제고사만 나쁜가요? | 윤가현(꽥쉰내)
2008~2009년 일제고사 반대 운동


학교의 중심에서 인권을 외치다 | 성상영(밤의마왕)
2007~2009년 경남 지역 학생 인권 운동


4부 진도 나갑시다


간도 쓸개도 빼 주고 얻어 낸 학생인권조례를 넘어서 | 전혜원
2010~2011년 서울학생인권조례 주민 발의 운동


날 도태시키지 않는 사회를 만들고 싶다 | 김동균(어쓰)
2011년 대학/입시 거부 운동


낮추자 아니, 내놔라! | 정재환(검은빛)
2012년 청소년 참정권 운동


나가는 글 | 청소년이기 때문에


청소년운동 단체 소개
청소년운동사 연표

 


Posted by 공현
흘러들어온꿈2016.07.16 02:39
심리학은 아이들 편인가?심리학은 아이들 편인가? - 10점
오자와 마키코 지음, 박동섭 옮김/서현사

《심리학은 아이들 편인가》 오자와 마키코 지음, 박동섭 옮김, 서현사, 2010 (2015년 2판3쇄)




"생명은 끊임없이 변화하는 법인데, 그 변화의 방식에 소위 과학적인 잣대를 들이대 어린 시기에는 월 단위로 변화의 양상이 측정된다. ‘생명의 변화’에서 ‘발달’이라고 말이 바뀐 순간에 삶의 모습은 왜곡되고, 축소되고, 경직되어버렸다. 생명에 가격이 매겨지고 합/불합격, 적응/부적응, 정/부정이라고 하는 시점에서 ‘상품화’가 이루어지게 되었다. 그에 따라 우열과 경쟁이 우리 의식에 착 달라붙기 시작하였다."(34쪽)


"논리성·합리성을 몸에 익히는 것을 ‘성숙’이라 이름 붙여 상위에 두고, 감정·직관을 ‘미성숙’이라 부르며 하위에 놓는 현대사회에서는 언어를 통해서 명쾌한 표현을 하지 못하는 사람의 주장은 상대해주지 않는다. 그 대표적인 존재가 아이다."(138쪽)


"법률은 아이를 한 사람 몫을 해낼 수 없는 사람으로 보호하는 부분에서는 충분히 배려하고 있다. 헌법 제27조 ③의 '아동은 혹사당해서는 안 된다.'와 같이. 그러나 '법 아래의 평등'에서 아이는 배제된다. 제14조에는 '모든 국민은 법 아래서 평등하고 인종, 신념, 성별, 사회적 신분에 따라서 정치적, 경제적 혹은 사회적 관계에서 차별되지 않는다.'고 명시되어 있지만, 연령에 의한 차별은 묵인된다.

즉 아이는 부모의 부속물로 취급되며 '모든 국민은'이라는 항목에 포함되는 평등한 존재가 아니다. 아이는 단지 보호되는 것이다."(158-159쪽)


"제멋대로인 아이, 건방진 아이, 아이답지 않은 아이라는 표현은 아이를 비난하는 대표적인 형용사이다. 그 정반대 쪽에는 ‘잘 참고, 순진하고, 아이다운’이라는 형용사가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그것은 곧 힘을 가진 어른에게 종속되는 아이의 이미지이다. 제멋대로라는 말은 자기중심적인 여자에 대해서도 언제나 던져진 비난이었다는 사실을 상기해보자. 제멋대로인 여성, 건방진 여성이라고 불리는 데 저항하면서 여성들은 자신도 한 명의 인간이라는 사실을 인정받는 것으로 되지 않았던가?"(160-161쪽)


"부모-아이 관계의 문제는 권력관계 문제라고 바꾸어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아이는 부모에게 양육되어 자라는 것이 현실이고, 그것은 어쩔 수 없이 아이를 약자의 위치에 두게 한다. 아이는 양육될 뿐만 아니라 어른에게 보호받고 싶다, 의지하고 싶다, 그리고사랑받고 싶다고 강하게 바란다. 자신이 살아남기 위해서 그것이 필요하다는 것을 아이는 몸으로 알고 있다."(173쪽)


"아이가 어른에게 의존하는 것은, 어른이 아이를 지배하는 것에 대한 일종의 거래이다."(230쪽)




어느 청소년인권 책에라도 나올 법한 문구들이다. 그러나 이 책을 쓴 사람은 일본의 임상심리학자, 오자와 마키코이다. 그의 책 《심리학은 아이들 편인가》에 나오는 문구들이다.


언젠가 읽어 봐야겠다고 벼르고 있던 책인데 실제로 읽어 보니 생각과는 많이 다른 책이었다. 나는 심리학, 특히 아동-청소년 대상 심리학을 비판적으로 반성하는 내용을 기대했다. 그러나 웬걸. 학문적인 이야기는 그리 많지 않다. 오히려 청소년인권, 청소년해방의 관점에서 심리학으로 표상되는 우리 사회의 청소년관-학교-가족 등의 문제점을 꼬집는다. 심리상담이나 심리테스트 등의 문제점도 이야기를 하고 있으나, 그 비판 안에서 느껴지는 관점은 훨씬 더 근본적이다. 우리가 청소년운동을 하면서 상상하고 만들어가고 있는 '청소년해방론'의 한 조각을 발견한 듯한 느낌이었다고나 할까?


책 서문에서 오자와 마키코는 심리학이 인간해방에 기여한다고 믿고 임상심리학자로서 일해왔지만, 실은 심리학이 얼마나 지배자 측의 기대에 맞춰서 역할을 해왔는지를 밝히지 않으면 안 되겠다고 느꼈다고 했다. 그리고 아동기의 '발달'부터 '학습', '지능', '심리테스트', '상담', '등교거부', '부모-아이 관계'까지 살펴 나간다. 심리학에 대한 이야기인 동시에 청소년억압의 핵심 장치인 학교와 가족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오자와 컬렉션'이라는 이름으로 오자와 마키코의 책들이 연달아 나오고 있다. 그밖에도 번역된 책들이 있고. 대부분 책들의 문제의식은 비슷한 뿌리를 갖고 있다. 칼럼 모음도 있고, 심리상담 전문가 등을 본격적으로 비판하는 책도 있다. 제목만 나열하면 이러하다.  《아이들의 권리, 부모의 권리》, 《학교란 무엇일까? - 학교밖 아이들》, 《지금 아이들이 있는 곳》, 《아이들이 있는 곳에서부터》, 《아이차별의 사회》(미번역) 등. 이렇게 늘어놓고 보면, 심리학자가 아니라 청소년인권운동가나 청소년인권 전문가라고 해도 믿을 것 같다.


'우리편 전문가'에 목말라 있던 청소년활동가들, 또는 청소년들에게 꼭 추천하고 싶은 학자이고 책이다.

Posted by 공현
걸어가는꿈2016.07.06 11:33

[나이주의와 청소년인권] 우리 사회의 청소년혐오

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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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혐오’, 아마 당신이 처음 들어보는 말일 것이다. 소수자 집단에 대한 사회적 대우를 명명하는데 사용하는 용어로는 혐오, 차별, 배제, 폭력, 낙인 등이 있다. 모든 소수자 집단이 혐오와 차별과 배제와 폭력과 낙인을 겪고, 이 용어들의 의미는 종종 중첩되지만, 집단에 따라 그 양상이 미묘하게 다르다. 특히 어떤 집단에 대한 어떠한 대우는 특정한 용어로 명명하는 것이 더 적절하거나 그 본질을 드러내는 데 더 효과적일 수 있다. 청소년에 대한 사회적 대우가 ‘혐오'로 명명되어 분석된 적이 아직 한국에서는 거의 없다. 하지만 우리 사회에 분명히 존재하는, 청소년을 비하·경멸하고 공포스러운 타자로 간주하는 문화는 청소년혐오로 해석되어야 한다. 청소년에 대한 비하와 경멸은 일상에서 만연하게 드러나며 청소년의 권리를 제한하는 제도를 정당화한다. 청소년을 공포스러운 타자로 간주하는 문화는 청소년이 저지른 범죄에 유독 나이를 강조하여 ’무서운 십대들‘이라고 수식하는 언론, 청소년을 통제하기 위해 폭력적인 방식을 도입해야 한다는 주장들, 청소년이 길에 모여만 있어도 무섭다고 반응하는 사람들의 인식 속에서 드러나고 재생산된다. 이 글에서는 청소년혐오라는 용어를 소개하고, 현재 온오프라인에서 청소년을 지칭하는데 사용되는 혐오어와 체벌을 중심으로 청소년혐오 현상을 간략히 분석해보려고 한다.

청소년혐오, 'Ephebiphobia'

청소년운동에 대해 공부하고 이론화 작업을 하는 '청소년운동 우물모임'에서는, '성인중심주의(Adultism)'에 맞선다고 스스로를 소개하는 미국의 단체 'The Freechild Project'에서 발간한 자료들을 함께 읽었다. 그 중 ‘Ephebiphobia’에 대해 설명하는 자료가 있었다. Freechild Project는 ephebiphobia를 아동 및 청소년에 대한 공포로 정의하고, 미디어와 정치, 그리고 학교 현장 등에서 만연한 아동 및 청소년에 대한 전사회적 공포를 총칭하는 용어로 사용한다. 이는 아동과 청소년에 대한 고정관념을 기반으로 하여 거대 미디어가 아동과 청소년을 (부정적으로) 묘사하는 방식을 통해 강화된다고 그들은 설명한다.

Freechild Project는 이 ephebiphobia가 민주주의, 사회문화, 교육, 그리고 경제에 영향을 미친다고 주장한다. 민주주의의 측면에서는 청소년의 참정권을 부정하고 공동체의 의사결정에서 배제하는 것, 정치인이나 정치 조직에서 청소년의 권리를 대변하지 않는 결과가 나타난다. 사회문화적 측면에서는 청소년을 악마화(demonize)하는 현상, 가족 안에서 부모가 청소년 자녀와 자녀의 친구들에게 공포를 느끼는 현상 등으로 결과가 나타난다. 교육의 측면에서 의무교육제도, 체벌, 학교에서의 나이(학년)구분은 ephebiphobia의 영향을 받은 것이라고 설명한다. 19-20세기 많은 청소년들이 일자리를 찾지 못하고 거리에서 시간을 보내자, 그들에게 공포를 느낀 사회와 어른들이 학교를 의무화하여 청소년이 낮 시간동안 거리에 모여 있지 않도록 만들었다는 것이다. 다양한 연령의 청소년들이 서로 소통하고 협력하는 것을 두려워한 결과가 나이(학년)구분이라고도 설명한다. 경제 측면에서는 청소년이 의미 있는 직업을 가질 수 없도록 하는 구조, 가게들이 ‘보호자 동행 없이 18세 미만 출입 금지’ 간판을 내거는 현상, 청소년이 거리에 많이 보이는 동네를 어른들이 피하는 바람에 상권이 변화하는 현상도 ephebiphobia의 결과라고 말한다.

우물모임에서는 위 자료를 읽고 한국 사회가 청소년을 대우하는 방식을 ephebiphobia 개념을 차용해 분석하는 것이 유의미하며, 한국에서도 미국과 비슷한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고 판단했다. 우리는 ephebiphobia를 청소년혐오로 번역했다. -phobia는 개인의 병리적인 공포증과 사회적 혐오 현상을 설명할 때 모두 쓰이지만, 비슷하게 –phobia의 결합어인 호모포비아의 경우 한국의 맥락에서는 ‘공포증’보다는 ‘혐오’로 번역되는 것이 적절하고, 실제로도 동성애 혐오나 성소수자 혐오로 번역되어 쓰인다. 공포증으로 번역하였을 때는 폐소공포증이나 첨단공포증처럼 개인의 병리적 증상을 나타내는 뉘앙스가 강해, 그것이 일부 개인의 문제가 아닌 전사회적 현상이라는 맥락이 옅어질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청소년 혐오어의 등장과 확산

다음의 말들을 들어 본 적이 있는지 생각해보고, 어떤 뜻일지 짐작해보라.
1. 급식충
2. 등골브레이커
3. 중2병

위 세 가지 단어는 최근 온오프라인에서 청소년을 지칭할 때 흔히 쓰이는 말들이다. 언어로 드러난 혐오만이 혐오의 전부는 아니지만, 혐오현상을 진단하는 데 특정 집단에 대한 어떠한 용어들이 통용되는가를 지표로 삼을 수 있다. 이 글에서는 위 세 가지 단어를 중심으로 이 사회가 청소년을 어떤 존재로 간주하고 혐오하고 있는지 살펴보려고 한다.

급식충, 너넨 무상급식 먹을 자격 없어!

급식충은 ‘급식’ ‘충(벌레)’의 결합어이다. 급식을 먹는 초․중․고 학생을 경멸하는 말이면서, 무상급식의 맥락에서 (사회에 기여도 안 하면서) 복지의 수혜를 받는 집단이라고 청소년을 비하하는 말이기도 하다. 중학생은 ‘중급식충’, 고등학생은 ‘고급식충’으로 이르기도 한다. 무상급식 먹을 자격 없다는 맥락에서 청소년을 급식충으로 부르기 시작한 것은 비교적 최근이지만, 이전에도 청소년을 사회에 기여하지 않는, 그러면서 특혜를 누리거나 의무를 면제받는 존재로 간주하는 인식은 만연했다. 형사처벌의 감경을 특권으로 묘사하며, 청소년이 그 특혜를 누릴 자격이 없음을 주장하는 것은 주로 청소년이 위법한 행위를 했을 때 대중이 분노하는 방식이다. 뿐만 아니라 형사처벌의 감경을 근거로 청소년은 ‘책임을 다하지 않으므로’ 성인과 동등한 권리를 주어서는 안 된다는 주장이 성립하기도 하는데, 청소년의 참정권을 논할 때도 성인과 동등하게 처벌받지 않는 존재가 참정권을 가질 자격이 있냐는 반응이 되돌아오는 식이다.

부모님 등골 빼먹는 등골브레이커들

(부모의)등골을 부수는 존재라는 의미의 ‘등골브레이커’도 청소년을 지칭할 때 자주 사용된다. 이 말은 모든 청소년이 부모의 부양에 의존해서 살아간다는 편견에 기댄 말이기도 하면서, 청소년이 부모의 부양에 기대어 살아가게끔 만드는 사회구조를 비판하는 대신 청소년을 기생하는 존재로, 기생하면서 고마움도 모르는 배은망덕한 존재로 비하하는 말이다. 청소년의 소비와 관련해서 이 말이 자주 사용되는데, 청소년이 입시공부와 관련 없는 소비-옷, 화장품, 신발 등-를 할 때면 ‘등골브레이커’라는 딱지가 붙는다. 여성의 소비를 사치로 간주하고 남자의 돈으로 그것을 샀을 것이라 간주하며 비난하는 것과 비슷한 메커니즘이 청소년의 소비에 대해서도 적용되는 것이다.

위 사진:2014년 '취재파일K'라는 시사프로그램에서 중2병이 교실과 교사를 힘들게 하고 있다고 방송을 함.

중2병을 치료하자?!

중2병은 비교적 예전부터 흔히 사용되어온 말이다. 초기에는 주로 남들이 공감하지 못하는 지나친 진지함이나 ‘오글거리는’ 말과 행동을 지칭하는 데 쓰였다. 하지만 점차 그 의미가 약간 변질되어 쓰이기 시작하는데, 초기의 의미에 더해 부모나 교사에 반항하거나, 우울하거나 염세적인 것, 성적 호기심을 가지는 것, 감정적으로 행동하는 것, 공부를 안 하는 것 등 매우 포괄적인 언행에 중2병이라는 딱지를 붙이기 시작한 것이다. 이 단어는 은어처럼 쓰이던 단계를 지나 현재는 각종 언론, 심지어는 공공기관이 개최하는 강의명에도 쓰이고, 교육감 후보의 공약에서도 활용되는 단어가 되었다. 하지만 중2병이라는 병은 없다. 의학적으로 실증되지 않은 병인데도 이 단어가 무분별하게 사용되며 청소년 집단을 병리화하고 있는 상황은 청소년혐오를 이 사회가 얼마나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있는가를 방증한다.

체벌의 혐오범죄적 특성

혐오범죄는 소수자집단에 대한 혐오를 기반으로, 소수자집단 전체를 위축시키려는 명시적이거나 암묵적인 의도를 가지고 소수자집단에 속한 특정 개인(들)을 대상으로 하는 범죄이다. 혐오범죄 가해자가 목표하는 바는 무엇일까. 가장 큰 목표는 해당 소수자집단이 위축되거나 사라지는 것일 테지만, 자신이 마주한, 구체적인 개인으로 드러난 피해자에 대하여 목표하는 바도 있을 것이다. 짐작컨대 ‘~로서 ~하면 안 된다’는 교훈을 주거나,‘ ~하는 행동이나 특성을 고치도록 만드는 것’일 것이다. 흡연하는 여성에 대한 구타는 여자가 길거리에서 건방지게 담배를 피우면 안 된다는 교훈을 주고 싶다는 욕망을 기반으로, 레즈비언을 대상으로 하는 ‘교정강간’은 성적지향을 고쳐놓고자 하는 목표 의식적으로 행해진다.

여기서 우리는 체벌의 혐오범죄적 특성을 파악할 수 있다. 체벌은 청소년으로서 ‘~하면 안 된다’는 교훈을 주기 위해, ‘~하는 행동이나 특성을 고치도록’ 만들기 위해 목표 의식적으로 행해진다(물론 단순히 분풀이를 위해 행해질 때도 많지만, 그렇더라도 청소년을 위축시키려는 의도는 관철된다). 때로는 청소년 집단이 특정 청소년이 체벌당하는 것을 목격하게 함으로써 집단 전체가 위축되도록 하는 의도를 달성하기도 한다. 교사가 굳이 반 전체 학생이 보는 앞에서 특정 학생을 체벌하는 것은 한 명을 때리지만 그 위축감을 반 전체 학생들이 공유하기를 바라기 때문에, 그래서 그 반의 학생 모두가 자신의 권위에 도전하지 않고 고분고분해지기를 욕망하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들은 체벌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명확한 이유 없이 감정적으로 행해지는 체벌만이 문제라고 말한다. 그러나 체벌과 혐오범죄의 가장 극명한 형태는 오히려 뚜렷한 목표를 갖고 행해지는 형태이다. 체벌은 비청소년에 의해 (어린이) 청소년에게 행해진다는 점에서, 그리고 앞서 밝힌 그러한 특성들을 갖추고 있다는 점에서 부모-자식, 교사-학생, 비청소년-청소년 간의 권력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구조적으로 발생하는 혐오범죄적 특성이 있다고 해석할 수 있다.

청소년혐오, 앞으로의 이론화 작업

청소년혐오는 청소년 억압을 정당화하는 데 근저에 깔린 사회적 감정이며, 나이에 따라 권리와 자원을 차등 배분하는 나이주의의 양상이다. 지면상 이 글은 청소년혐오 현상에 대해 몇몇 혐오어들과 체벌을 중심으로 설명하는 데 그쳤지만, 앞으로 청소년운동에서는 우리 사회의 맥락에서 청소년혐오의 내용을 채우고 그 개념을 활용하여 사회현상을 분석해나가는 작업을 진행할 것이다.
덧붙이는 글
쥬리 님은 우물모임 멤버이자 십대섹슈얼리티인권모임 활동가입니다.
인권오름 제 491 호 [기사입력] 2016년 06월 29일 13:21:56


Posted by 공현
걸어가는꿈2016.06.23 10:35

[나이주의와 청소년인권] 청소년 억압의 뿌리, 나이주의를 발견하다

필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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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인 주>

청 소년인권운동은 오래 전부터 우리 사회에 ‘나이주의’ 문제가 있다고 이야기해왔다. 사실 나이주의(Ageism)라는 개념은 노인차별에 반대하는 운동에서부터, 그리고 페미니즘에서까지 사용되던 개념이다. 청소년운동에 대해 공부하고 연구하며 ‘한 우물만 파는 모임’인 우물모임에서는 지난 1년 여 동안 나이주의에 대해 자료를 찾고 토론하며 청소년운동이 이야기하는 나이주의가 어떤 것인지 정리했다. 그 결과 중 일부를 인권오름을 통해서 공유하고자 한다.


자신이 처해 있는 상황에 문제의식을 느끼고 이를 개선하기 위해서 이 사회에 여러 가지 도전을 했던 청소년들이 있다. 어떤 사람은 학교에서 방과 후 학습을 강요하는 일을 중단시키기 위해 헌법 소원을 내려고 했다. 어떤 사람은 종교 강요를 거부하며 단식을 했다. 어떤 사람은 머리스타일을 획일화시키는 학교 규칙들을 바꾸려고 서명운동을 했다. 어떤 사람은 미성년자는 밤 10시에 귀가시킨다는 촛불집회 주최 측 방침에 항의하며 청소년에게도 집회의 자유를 보장하라고 발언했다. 어떤 사람은 청소년들은 밤 12시 이후에 온라인 게임을 할 수 없다는 법에 대해 헌법 소원을 청구했다. 이들이 겪은 차별과 억압은 ‘청소년이기 때문에’ 겪은 것이었다. 이처럼 ‘청소년이기 때문에’ 가해지는 차별과 억압을 없애고자 하는 사람들의 사회적 움직임이 청소년인권운동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오랜 시간 동안, 청소년인권운동은 가장 근본적인 하나의 질문과 씨름해야만 했다. ‘청소년이기 때문에 받는 차별과 억압은 무엇으로 인해 생기는가?’ 처음에는 구시대적인 학교 문화와 비청소년(어른)들의 편견, 유교 문화 때문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청소년인권운동이 진행되면서는 청소년들에게 참정권이 없기 때문, 또는 경제력이 없기 때문이라는 이야기가 나왔다. 그러나 청소년들에게 참정권이 없는 것이나 경제력이 없는 것 자체가 청소년 억압과 차별의 결과 중 하나라는 점에서 좀 더 거시적인 사회구조에 대해 이야기할 필요가 있었다. 그래서 자본주의와 국가주의 때문, 사회재생산 과정의 문제라는 논의로 나아갔다.

자본주의와 국가주의 등의 사회 체계 자체가 원인이라는 것은 틀린 이야기는 아니지만, 좀 더 세분화하여 청소년 억압을 규명하는 것이 필요했다. 이제 우리는 이를 위해 ‘나이주의’라는 개념을 제시하려고 한다. (단, 정확히 이름을 무엇으로 할지는 아직 논쟁의 여지가 있다)

나이주의(ageism)는 성차별주의(sexism), 인종주의(racism)와 같은 맥락의 조어이다. 거칠게 말하자면, 나이주의는 나이에 따른 차별, 나이를 중심으로 어떤 사람의 특성을 섣불리 규정하고 그 규정을 바탕으로 그 사람을 대하는 것을 일컫는다. 여기에는 부정적인 규정 뿐 아니라 긍정적인 규정 역시 포함된다. 또한 나이주의는 사람과 사람 간의 관계나 인식 속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공동체, 시장, 국가 제도, 사회 구조 전반에 존재한다.

나이는 자연적인 것이지만, 동시에 사회적인 것이다. 지구가 일정한 주기로 자전과 공전을 하고 사람이 시간에 따라 성장하고 노화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지만, 이를 나이 개념으로 파악하고 제도화하는 것은 사회이다. 국가가 인구를 관리하고 효과적인 사회적 재생산을 꾀하기 위해서 나이는 중요한 기준이 된다. 현대 국가는 사람들의 나이를 셈하고 나이에 따라 학교, 노동, 결혼, 은퇴와 노년생활, 복지 체계 등의 제도를 적용한다. 이에 따라 생겨나는 나이에 대한 관념과 문화, 그리고 제도와 사회 구조가 곧 나이주의이다.

이런 설명에서 알 수 있겠지만 나이주의는 단지 청소년에게만 해당하는 것이 아니다. 나이주의는 처음에는 노인차별을 가리키는 말이었다. 나이주의는 모든 연령대의 사람들에게 적용되는 사회 구조이며, 그 속에서도 도드라지는 것이 노인과 청소년인 것이다. 우리는 나이주의와 청소년인권 문제를 이야기하면서 청소년이 겪는 나이주의 문제에 초점을 맞추려고 한다. 나이주의는 청소년의 권력을 빼앗고, 청소년을 사회적 소수자로 만든다. 슬프게도, 나이주의는 이견이 없는 진실 내지 상식, 사회적 합의라고 받아들여질 만큼 전 세계적으로 만연한 상태이다. 그만큼 나이주의는 사고방식 속에, 사회 체계 속에 깊숙하게 침투해있고, 지금의 사회를 움직이는 근간이 되고 있다.

나이주의의 사례들

나이주의의 대표적인 예를 살펴보자. 가족은 대단히 나이주의적인 제도이다. 나이에 따른 올바른 행동양식이 있다거나, 청소년은 친권자(법적으로 청소년에 대한 친권을 갖는 사람, 소위 부모 등)의 경제적 사회적 법적 통제 하에 있으며, 친권자의 판단과 지시에 따라야 한다거나, 나이가 적은 사람은 나이가 많은 사람의 생각을 깨닫기에 부족하다는 고정관념이 널리 퍼져있는 경우가 많다. 이런 생각을 바탕으로, 친권자들은 청소년에게 이런 말을 하곤 한다.

- “애면 애답게 굴어라”
- “내가 시키는 대로 해” / “나한테 말대꾸 하지 마”
- “너도 나처럼 나이 먹으면 알게 될거야” / “너도 니 자식 키워보면 알 거다”

이는 친권자와 청소년 사이의 관계에서 나이주의로 인해 권력차가 생긴 것이다. 청소년이 이런 관계를 원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친권자는 나이주의로 인해 청소년의 입장보다는 청소년에 대한 자신의 판단을 우선시하며 기존의 관계를 지속시키려 한다. 국가는 친권자가 청소년을 ‘보호’하고 감독하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는 나이주의적인 제도로 기존의 관계를 뛰어넘을 수 없는 환경을 유지시킨다. 청소년의 특성에 대한 부정적인 판단은 이와 같은 협력(?)으로 계속 단단하게 유지되고 있다.

또한 청소년은 정치로부터 배제되어야 하고, 정치에 물들어서는 안 된다는 것도 나이주의를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이다. 여기에는 청소년이 아직 미성숙해서 정치적 결정을 함께할 시민이 아니라는 인식이 있다. 청소년은 미성숙한 존재라는 것은 나이주의 체계 속에서 청소년이 부여받는 주요한 위치이다.

그리고 거기에는 정치를 권모술수가 판을 치는 더러운 것으로 보며 청소년이 정치에 쉽사리 휩쓸려 희생당하거나 타락해선 안 된다는 인식도 더해진다. 청소년이 타인을 속이거나 이용해먹을 줄 모르는 순수한 존재라고 판단하는 것이다. 참정권 문제를 포함하여 청소년이 순수한 존재, 보호받아야 할 존재라고 하는 것은 청소년을 긍정적인 이미지로 그려내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청소년을 보호해야 한다며 정치를 금지시키자는 비청소년들에게, 어떤 청소년이 “배려해 주셔서 감사해요. 하지만 저는 괜찮습니다^^”라고 한다고 해서 그 사람에게 선거권을 돌려줄 리는 없다. 결과적으로 국가기관에서의 판단이 청소년의 정치 참여를 강제로 막고 있는 것이다. 청소년이 자신의 정치적 권리를 돌려받기를 원한다 하더라도, ‘정치로 인해 물들어버렸다’, ‘배후에서 조종하고 있는 사람이 문제의 근원이다’라는 나이주의적인 판단이 우선되면서 청소년의 요구는 묻힐 것이다. 그래서 청소년은 여전히 정치에 참여하지 못하고 있고, 국가는 청소년을 기르는 존재로 대할 뿐 청소년을 대변하는 정책을 내지 않고 있다.

이렇게 청소년인권운동은 나이주의를 통해서 ‘청소년이기에 받는 차별과 억압’을 더 체계적으로 설명할 수 있게 되었다. 그래서 청소년인권운동을 하는 사람들은 나이주의가 무엇인지, 나이주의가 어떻게 작동하고 어떻게 통용되고 있는지를 계속 연구하고 고민하고 있다.

청소년을 차별하는 나이주의 개념, Adultism

그런데 이건 한국에서만의 일이 아니었다. 외국에서도 마찬가지로 비슷한 고민이 이어지고 있었다. 미국의 'Freechild project’에서 모여있는 자료들은 나이주의를 ‘Adultism'이나 ’Pedophobia', 'Ephebiphobia’, ‘Adultcentrism' 등으로 부르며 청소년 프로그램 기획자나 유아의 친권자, 학생, 청소년인권 연구자 등 다양한 사람들의 관점에서 나이주의를 설명하고 설득하고 있다. 그 곳에서 발견한 청소년을 차별하는 나이주의(Adultism)의 정의를 간략하게 추리면 다음과 같다.

- 청소년을 어른이 아니라는 이유만으로 무시하고 침묵하고 얕잡아보고 탄압하는, 비청소년(이른바 ‘성인’)들의 습관적인 태도·사고방식·생각·믿음·행동.
- 비청소년이 청소년보다 더 나을 것이라고 가정하고 청소년 당사자의 동의 없이 청소년을 위한 행동을 할 자격이 있다는 생각.
- 비청소년들이 조직적으로 청소년을 무례하게 대하는 것, 청소년에게 귀 기울이지 않고 신뢰하지 않으며 의미 있는 결정과정에서 배제하는 것.
- 청소년들에게 삶의 권력을 부여하지 않는 것.
- 청소년 개인의 권익이 아니라 청소년 집단 전체를 대하는 일반적인 관점을 기준으로 청소년에 대한 결정을 내리는 것.


Freechild project의 자료들은 위와 같은 식으로 나이주의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증명하고, 나이주의의 특징을 분류하고, 나이주의가 끼치는 영향을 소개하고 있었다. 예를 들어, Paul Kivel에 의하면 청소년은 자신의 삶에 대한 권력을 가지지 못하기 때문에 끊임없이 규제당하고 통제당하고 학대당했고 그것이 청소년에게 무력감과 절망감으로 내면화되어 청소년이 겪는 모든 문제를 청소년 개인의 문제로 여긴다고 한다.

Freechild project를 운영하고 있는 Adam Fletcher는 나이주의로 인한 비청소년 중심적인 시선이 결국 청소년 본인에게까지 옮겨져 “나이 어린 비청소년(little adults, 청소년 본인이 아니라 ‘만들어진 어른’에 가까운 사람)”현상을 일으킨다고 주장했고, 청소년에 대한 차별을 언어 차별, 청소년활동에서의 차별, 학교에서의 차별, 사회에서의 차별로 분류하였다.

청소년 프로그램 스태프로 일하고 있는 John Bell은 청소년을 통제하려 하는 나이주의가 학생을 억압하는 교칙과 법률에 많은 영향을 끼쳤으며, 어린이 발달문학과 교육담론에도 영향을 끼친다고 지적했다. 또한 나이주의로 인해 존중받지 못하고 잘못된 대우를 받는 것은 점점 그 고통에 익숙해지게 만들고, 결국 다른 억압에도 마찬가지로 무감각해질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무엇보다 Freechild project는 나이주의를 뛰어넘기 위한 여러 실천사항들을 풍부하게 제안하고 있다. 나이주의와 청소년에 대한 편견을 소개하고 분석할 수 있도록 교육안까지 마련되어 있었을 정도였다. Freechild project의 자료 중에서 사람들이 청소년에 대한 차별과 나이주의를 줄이기 위한 방법을 찾았더니, 아래와 같이 정리할 수 있었다.

- 비청소년에게 하는 것처럼 청소년에게도 눈을 맞추며 성의를 다해 이야기하라.
- 비청소년에게는 쓰지 않을 말들을 청소년에게만 쓰고 있지는 않은지 되돌아보라.
- 타인에게 나이주의를 지양하는 자신의 방식을 드러내고 권유하라
- 나이주의에 저항하는, 특히 청소년 당사자의 커뮤니티를 만들어라
- 비청소년의 나이주의가 어느 수준인지, 어디의 문제인지를 파악하자.
- 나이주의를 고수하는 비청소년에게 청소년을 향해 분노를 표출할 필요는 없다고 말하자.
- 다른 비청소년들에게 나이주의에 대해 탐구하자고 요청하고 동료를 모으자.


한국에서도 청소년활동기상청 활기에서 주최한 ‘꼰대와 동지 사이, 나이주의를 고민하다’ 워크숍에서 나이주의 사전을 만들며 나이주의가 무엇인지를 면밀하게 밝힌 적이 있다(이에 대해서는 인권오름에서 기사 <[인권교육, 날다] 허깨비 같은 나이주의, 개념으로 잡아내다>로 다뤄졌고, 이 워크숍에서 만들어진 나이주의 사전은 다듬어 다시 발표되었다). 청소년인권운동을 하는 사람들은 계속 나이주의에 대한 연구와 조사를 거듭하고 있다. 다음 순서부터, 나이주의의 한 현상으로서 청소년혐오와 한국에서 특히 두드러지는 나이에 따른 서열과 ‘예의’ 문제 등을 소개할 것이다. Freechild project에서 나온 말처럼, 반(反)나이주의의 가치를 정리하고 전파하다 보면 청소년 억압의 뿌리가 분명 뽑힐 것이라고 믿는다.


* 여기서 말하는 청소년은 주로 0세부터 만 19세까지인, 실질적으로 ‘미성년자’ 취급을 받고 있는 모든 사람을 일컫는 말이다.
덧붙이는 글
필부 님은 노원지역청소년인권동아리 화야와 청소년운동 우물모임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인권오름 제 490 호 [기사입력] 2016년 06월 22일 13:40:23


Posted by 공현
걸어가는꿈2016.04.13 20:38

평등한 민주주의의 봄을 바라는

청소년 참정권 요구 선언문


올봄, 축제가 열린다. 피어나는 봄꽃들과 사람들의 소망들이 어우러져 열리는 그 축제는, 우리 사회의 방향을 결정하고 함께 지킬 법을 만들 사람들을 정하기 위한 것이다. 바로 2016413일 제20대 총선이다. 그렇다. 우리는 흔히 선거를 가리켜 민주주의의 축제라고 한다. 그러나 그 축제에 참가 자체를 불허당한 사람들이 있음을 잊지 말라. 바로 19세 미만의 청소년들이다.

 

어른들만의 정치, 배제된 청소년들

 

19세 미만의 청소년들은 선거권이 없다. 피선거권도 없다. 그런데 가 없는 걸로도 모자라서 선거철만 되면 손발조차 묶이게 된다. 청소년은 선거운동을 할 수 없다는 선거법에 따라서 후보나 정당에 대해 지지하거나 반대하는 의견 표시를 하는 것조차 불법이 되어 버리는 것이다. 어느 후보의 공약이 청소년들을 위해 바람직한 것 같으니 뽑아달라는 호소조차도 위법이 되고 선거관리위원회로부터 고발을 당한다.

 

그뿐만이 아니라, 법적으로 청소년은 정당에 가입할 수 없다. 자신의 생각이나 정치적 의견에 따라 정당에 가입하고 활동할 수 있는 결사의 자유조차도 부정당하고 있는 것이다. 청소년은 미성숙해서 정치적 의견을 가져서는 안 된다는 반민주주의적이고 반인권적인 편견만이 이러한 법을 변호하는 유일한 근거이다.

 

선거와 정당만의 문제가 아니다. 청소년들은 일상 속에서도 정치로부터 눈을 돌리고 입을 다물 것, 그리고 삶의 온갖 결정들에 참여를 금지당하며 명령에 따르기만 할 것을 요구받는다. 학교는 학생들의 생활에 관한 각종 규칙과 사안들을 정하면서 학생들의 참여를 보장하지 않는다. 심지어 학교의 일에 대해 뜻을 모아서 의견을 전달하는 이들이나 학교의 문제점을 학교 밖에 알린 이들은 선동을 했고 학교 명예를 훼손했다며 징계를 당할 위험에 처한다.

 

청소년들이 우리 사회의 문제들에 대해서 자신의 생각을 이야기하고 거리에서 행동하고자 한 적이 여러 번 있었다. 그때마다 정부는 청소년들이 말하고 행동하지 못하게 지도하라고 학교에 지시했으며, 학교들은 때로는 징계로 때로는 비공식적인 압박과 폭력으로 청소년들을 막아섰다. 많은 언론들은 청소년들에게 집회사상표현의 자유를 보장하자는 것을 무조건적으로 반대하는 사설들을 부끄러움도 없이 쏟아냈다. 경찰 등 행정기구들도 청소년의 집회결사의 자유를 위축시키고 침해한 일이 적지 않다. 우리 사회는 청소년을 민주주의 바깥으로 내몰고 지시에 따르기만 하고 돌봄을 받기만 하는 위치에 묶어놓는 것에 아무런 주저함이 없었다.

 

말할 수 있는 권리를

 

오랜 시간 동안 청소년들은 대한민국의 역사를 함께 만들어왔다. 그리고 많은 청소년들은 비록 나이가 적더라도 청소년도 이 사회를 함께 살아가는 민주시민임을 인정하고 참정권을 보장할 것을 요구해왔다. 청소년들로부터 시작된 4.19혁명의 결과 선거권 제한 연령은 20세가 되었고, 청소년들도 함께한 87년 민주화운동과 2000년대에 이어진 청소년들의 ‘18세 선거권운동의 결과로 이는 다시 19세가 되었다.

 

그러나 반복해서 국회와 법원의 문을 두드리고 있는 청소년들은 여전히 선거권은 물론이요, 표현의 자유나 결사의 자유조차도 짓밟히고 있다. 헌법재판소는 "정치적 판단능력이 미약", "정신적신체적 자율성이 불충분"하다는 언사와 함께 청소년의 인권을 부정했다. 국회의원들은 선거권 제한 연령의 문제를 민주주의가 아닌 표의 유불리 계산 문제로나 보고 있고, '18세 선거권'을 거론하여 우리가 일말의 기대를 가지게 했던 때조차도 "고등학생은 제외"한다는 등 청소년을 따돌리는 타협안을 논의하고 있는 형편이다. 정부는 국제인권법과 국제인권기구의 권고도 무시하고 학교나 경찰 등을 통해 청소년의 정치적 권리 행사를 방해하기 일쑤이다.

 

그 결과, 2016년의 총선에도 청소년들은 없는 취급을 당하고 있다. "청소년아이들"을 명분으로 삼는 표어는 많지만 청소년과 함께하는 정치, 청소년이 참여하는 정치는 없다. 우리도 함께 말하고 싶다. 우리의 말할 수 있는 권리를 보장하라.

 

봄은 이 땅의 사람들에게 평등하게 왔지만, 민주주의의 봄과 축제는 청소년들에게는 남의 이야기일 뿐이다. 봄이 왔으나 봄 같지가 않은 우리는, 20대 총선을 맞이하여 다시 한 번, 우리를 따돌리는 정치의 현실을 고발하고, 평등한 민주주의를 바라며 청소년의 참정권 보장을 다음과 같이 요구한다. 또한 청소년들의 참정권 보장을 지지하는 이들 역시 이에 함께한다.

 

1. 선거권과 피선거권 등의 제한 연령을 낮춰서 청소년들도 참여할 수 있게 하라!

1. 나이에 상관없이 선거운동의 자유, 선거기간의 지지와 비판 등 표현의 자유를 보장하라!

1. 청소년이 자신의 뜻에 따라 정당에 가입하고 활동할 자유를 존중하라!

1. 학교와 국가 등에 의한 청소년들의 정치적 발언과 활동에 대한 탄압을 금지하라!

1. 청소년을 민주시민으로 인정하고 모든 시민적·정치적 권리를 보장하라!

 

 

[연명 단체]

 

청소년운동 총선대응 네트워크

(관악 청소년연대 여유 / 노원지역연합청소년인권동아리 화야 / 십대섹슈얼리티인권모임 /

청소년인권행동 아수나로/ 청소년 정의당)

 

2016총선시민네트워크

(총선청년네트워크 / 경제민주화와먹고사는문제해결을위한을들의총선연대 /

한국사교과서국정화저지네트워크 / 역사정의실천연대 / 4.16연대 / 장그래살리기운동본부 / 건강권실현을위한보건의료단체연합 / 한국비정규직노동단체네트워크 / 한국여성단체연합 / 한국진보연대 / 보육연석회의 / 반값등록금실현및교육공공성강화를위한국민본부 / 화상도박장문제해결을위한전국연대 / 사립학교개혁국민운동본부 / 시민평화포럼 / 전국복지수호공동대책위원회 / 주거권네트워크 / 경제민주화실현및재벌개혁을위한전국네트워크 / 전국살리기국민운동본부 / 환경운동연합 / 참여자치지역운동연대 / 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 / 경남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 / 충남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 / 경기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 / 대전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 / 충북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 / 강원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 / 전북총선시민네트워크 / 전남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 / 인천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 / 대구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 / 서울강동연대회의() / 민주주의국민행동 / 민교협 / 민생연대 / 민생국민연대 / 언론연대 / 청년광장 / 서울청년광장 / 사학을바로세우려는시민의모임(사바모) / 강동촛불 / 강동시민연대 / 강동연대회의() / 상지대비상대책위원회 / 촛불을켜는그리스도인들의모임 / 촛불교회 / 예수살기 / 희망정치시민연합 / 대전 기윤실 / 집걱정없는세상 / 인권연대 / 대전충남인권연대 / 인권연대’ / 한국인권행동 / 상가세입입자연대 / 안전사회시민연대 / 천주교인권위원회 / 시사타파 / 서울의소리 / 금융정의연대 / 용산화상경마장추방대책위 / 용산연대 / 화상도박장반대보령대책위 / 화상도박장반대대전월평동대책위 / 나라살림연구소 / 도박규제네트워크 / 도박피해자모임 / 도박피해자가족모임 / 부정선거진상규명시민모임 / 미디어기독연대 / 표현의자유와언론탄압공동대책위원회 / 통신공공성포럼 / 새로하나 / 강동희망나눔본부 / 강동시민연대 / 이명박박근혜심판행동본부 / 투표소에서수개표실현운동본부 / 전국철거민협의회 / 한국미래연합 / 삶의자리 / 전국개발지역대책연대 / 시민사회청년활동가모임 / 한겨레신문부산주주모임 / 한겨레신문부산독자클럽 / 유한킴벌리피해대리점협의회 / 바른불교재가모임 / 지속가능한사회연구소 / 전국세입자협회 / 서울세입자협회 / 사회연대네트워크 / 한국전쟁전후민간인피학살자국유족회(재경유족회 / 부산유족회 / 산청유족회 / 거제유족회 / 함안유족회 / 함양유족회 / 통영유족회 / 여수유족회 / 보성유족회 / 장흥유족회 / 나주유족회 / 영암유족회 / 청주청원유족회 / 충주유족회 / 화순유족회 / 오산유족회 / 남양주유족회 / 미신고유족회) / 경제민주화민생연대 / 반값등록금학부모모임)

 

교육공동체 나다 / 법인권사회연구소 / 어린이책시민연대 / 원불교인권위원회 / 인권교육센터 들 / 인권운동사랑방 / 참교육을위한전국학부모회 / 참여연대 / 천주교인권위원회 / 청소년 녹색당 / 청소년참여활동단체 혜욤 / 평등교육실현을위한서울학부모회 / 평등교육실현을위한전국학부모회 / 한국YMCA전국연맹

 

 

[연명 개인] 전체 1242

 

청소년 297

 

송영진(12) 윤진우(12) 김진서(12) 송서현(12) 황준환(12) 이규빈(13) 임나영(13) 노준엽(13) 김태수(13) 박세훈(13) 이서준(13) 김다은(13) 송민재(14) 박재온(14) 이채린(14) 전지윤(14) 이승윤(14) 김지훈(14) 서건우(14) 김지후(14) 김선혜(14) 김미주(14) 이종은(14) 박경석(14) 유세은(14) 김명준(14) 이호준(14) 강민서(15) 유호준(15) 황채연(15) 곽규빈(15) 김도헌(15) 김지욱(15) 하예린(15) 허다훈(15) 임단비(15) 양현서(15) 강민지(15) 김다빈(15) 이지민(15) 조하나(15) 이희원(15) 김은솔(15) 김민지(15) 양동광(15) 박예빈(15) 허립(15) 양현서(15) 유제민(15) 이주현(15) 이창범(15) 박찬혁(15) 허자은(15) 정재현(16) 라혜민(16) 이주연(16) 이현승(16) 조영제(16) 김진규(16) 김경빈(16) 손희연(16) 박은서(16) 김태희(16) 박상헌(16) 모세연(16) 정하연(16) 최유림(16) 복영준(16) 한지민(16) 박연지(16) 정상운(16) 조예원(16) 박유진(16) 조가은(16) 박서영(16) 김민창(16) 서온(16) 최나은(16) 정재언(16) 한민주(16) 정재완(16) 안민주(16) 신재윤(16) 김재석(16) 류주원(16) 김성태(16) 이승민(16) 민서현(16) 민종현(16) 김유진(16) 이조슈아(16) 김다빈(16) 박재형(16) 정민진(16) 조규원(16) 최윤지(16) 서정화(16) 정보경(16) 전수련(16) 이호현(16) 정성훈(16) 모세연(17) 유은지(17) 김민재(17) 나수빈(17) 조정묵(17) 구예슬(17) 강연진(17) 정우재(17) 이재준(17) 김지원(17) 김주원(17) 안수현(17) 정현흔(17) 김현경(17) 박재현(17) 배희재(17) 김민규(17) 황은지(17) 이태웅(17) 이세림(17) 오하연(17) 문성효(17) 이주희(17) 박혜연(17) 강성모(17) 김현정(17) 전민석(17) 이민혜(17) 김주영(17) 강서희(17) 이현민(17) 김정현(17) 김지연(17) 최여정(17) 박종오(17) 김욱(17) 한 채림(17) 정희원(17) 최민규(17) 김수진(17) 홍혜린(17) 김재인(17) 김덕원(17) 오예진(17) 윤지운(17) 박은주(17) 김진혁(17) 김도현(17) 공준표(17) 우예은(17) 임영규(17) 김도균(17) 민은식(17) 하선민(17) 박금주(17) 이주희(17) 조민(17) 조장희(17) 전진우(17) 이하솜(17) 육재서(17) 강민욱(17) 심재민(17) 김희진(17) 정다연(17) 오다은(17) 이지영(17) 주신원(18) 최지현(18) 노현영(18) 박원영(18) 정미나(18) 김용현(18) 권민재(18) 이정찬(18) 박미현(18) 노유진(18) 서준영(18) 김한률(18) 이하영(18) 이찬진(18) 이경은(18) 김수민(18) 녹갱이(18) 이정우(18) 김민석(18) 최주형(18) 남상백(18) 박주영(18) 왕정훈(18) 강진욱(18) 강진구(18) 위은서(18) 윤쓰리(18) 유태호(18) 홍소영(18) 김범수(18) 이용진(18) 백아름(18) 장어진(18) 남주현(18) 송진욱(18) 이윤형(18) 박민수(18) 김주영(18) 이건우(18) 서동현(18) 전예슬(18) 김창민(18) 서주용(18) 유휘영(18) 정다혜(18) 이보은(18) 김정희(18) 하대현(18) 장은채(18) 전대훈(18) 이예원(7) 한지원(13) 정찬영(13) 노서진(13) 강선우(13) 신시현(14) 함상현(14) 박은지(15) 서주영(15) 손지원(15) 안지우(15) 진현지(15) 임호민(15) 손문성(16) 이예빈(16) 박주연(16) 권예지(16) 김서윤(17) 송현솔(17) 김지영(17) 유진현(17) 고요한(17) 조민수(17) 김지원(17) 김지선(17) 이정민(17) 오유경(18) 이한우(18) 김소이(18) 조찬휘(18) 김태훈(18) 이가연(18) 이예슬(18) 신희승(18) 황용연(18) 김수성(18) 권나연(18) 양정우(18) 김태준(18) 임성훈(18) 김채원(18) 이다영(11) 심예림(13) 김민주(14) 박재훈(14) 김하영(14) 김미주(15) 최세진(15) 김하린(16) 최상인(16) 임규헌(17) 서우열(17) 이승현(17) 김가현(17) 남경진(17) 김주형(17) 진성민(17) 최진(18) 조예림(18) 남종덕(18) 박예원(18) 유진(18) 박지수(18) 장다미(18) 원서영(18) 이주영(18) 박혜민(18) 신은재(18) 김유연(18) 성영준(18) 송민선(17) 박재형(16) 오성용(17) 윤해정(18) 홍시몬(15) 서수현(15)

 

 

비청소년 945

 

이학인(19) 이종환(19) 김대영(19) 송성윤(19) 김현우(19) 박상현(19) 박예진(19) 차주원(19) 최영리(19) 최준호(19) 윤석웅(19) 함이로(19) 박마리(19) 이시헌(19) 오준승(19) 전주원(19) 조희은(19) 김민수(19) 박원영(19) 김지아(19) 류황원(19) 유진웅(19) 강석현(19) HarryP.Yoon(19) 서청범(19) 이찬영(19) 송승헛(19) 이연주(19) 유길릴(19) 한혜주(19) 장한열(19) 전미란(19) 강민진(20) 정인(20) 박건진(20) 정재환(20) 송은비(20) 타시야(20) 이수림(20) 김재현(20) 김소영(20) 이상희(20) 김다은(20) 김수민(20) 최훈민(20) 김진주(20) 고우리(20) 위영서(20) 정현민(20) 김은빈(20) 강윤정(20) 곽정화(20) 라온범(20) (20) 조민기(20) 강한새(20) 유승현(20) 김지후(20) 박진희(20) 이다은(20) 이희진(21) 김도균(21) 김정화(21) 장수빈(21) 김유진(21) 김지윤(21) 신재솔(21) 박서연(21) 정연성(21) 연학(21) 서미경(21) 최효재(21) 황혜송(21) 김승순(21) 정지용(21) 김도영(21) 김노엘(21) 정윤서(21) 노현정(21) 민현창(22) 미지(22) 우현길(22) 권우현(22) 양은정(22) 이장원(22) 정상인(22) 김한별(22) 한소영(22) 전누리(22) 정진리(22) 이수민(22) 장옥진(22) 박혜민(22) 이세린(22) 이지숙(22) 정보근(22) 양미리(22) 성수안(22) 이영민(22) 김자유(22) 황희재(22) 김한석(22) 윤동식(22) 손유나(22) 이찬우(22) 윤소영(22) 정소희(22) 윤미희(22) 둠코(23) 강한새(23) 채준열(23) 이현욱(23) 황덕기(23) 서교원(23) 홍수연(23) 조정현(23) 박세원(23) 권순부(23) 박준우(23) 강민구(23) 오탁근(23) 서가원(23) 최혜린(23) 이찬우(23) 양다혜(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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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공현
걸어가는꿈2016.03.24 13:34

[공현의 인권이야기] ‘소비자’의 권리를 넘어서

공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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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이 소비자여야 하는가 아닌가

“우리가 교육의 소비자인데 학교/교사가 우리를 이렇게 대해도 되는 거야?” 학생인권 문제를 이야기하면서 만나는 학생들 사이에서 간혹 듣게 되는 말이다. 사실 그렇다. 교육을 ‘서비스’로 보고, 학교도 ‘교육시장’에서 경쟁력을 가져야 한다고 이야기하고, 수요자(소비자)의 요구에 맞추라고 하는 시장주의적인 교육정책 속에서 학생들이 겪는 현실은 모순적이다. 어느 서비스에서 소비자, 고객을 그렇게 막 대한단 말인가.

물론 답은 명확하다. 어느 대학 총장이 “학생은 피교육자일 뿐”이라고 밝혔듯이, 교육의 그림 속에서 학생들은 소비자가 아니다. 그 친권자‧부모들이 소비자일지는 모르겠지만. 학생들은 차라리 ‘상품’에 가까운 위치다. 교육의 결과물로 Before(이전) After(이후)를 보여줘야만 하는 존재들. 노동자처럼 밤늦게까지 학교나 학원에 붙잡혀 공부를 해서 ‘스펙’을 높여야 하지만 그 과정에서 임금이나 노동3권을 보장받지는 못한다. 나중에는 자신들의 성적을 입증하고 전시해야만 한다. 그래서 학생들은 “제발 소비자 정도의 대우만 받아도 좋겠다.”라고 하소연한다.

그런데 다른 면에서는 과연 학생이 소비자가 되는 것이 바람직한 것이냐는 의문을 제기해볼 수도 있을 것이다. 특히 시장주의적인 교육정책을 반대해온 사람들은 교육소비자니 교육수요자니 하는 말 자체에 경계심부터 가지고 보고는 한다. 하지만 ‘그렇게 되면 교육을 시장적 모델로 보게 되고 경쟁과 차별이 만연하고…’ 하는 이야기 말고, 학생의 입장에서는 어째서 소비자이면 안 된다는 것인지 이해하게 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구매력에 따른 차별 이야기를 할 수도 있지만 공교육은 일단은 많은 부분이 무상이라서 와 닿는 소리는 아니다.

사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소비자, 고객으로서 서비스를 제공받는 경험은 대개가 ‘제법 괜찮은’ 것이다. “손님은 왕이다” 같은 말로 대표되듯이 많은 감정노동자들의 친절과 봉사도 받을 수 있다. 물론 불량한 제품과 서비스 제공, 알 권리 무시 등 고통을 받은 경험도 있겠지만 수는 적은 편이며, 소비자는 그런 서비스를 선택하지 않을 권리도 가지고 있다. 결국 ‘학생인권 보장’이라는 게 학교가 학생을 고객처럼 모시는 것, 또는 학생이 소비자처럼 행동할 수 있는 것으로 받아들여지는 오해도 생겨난다.

시장주의적 접근, ‘소비자’ 모델이 가지는 한계를 나는 이렇게 한 마디로 말하곤 한다. “소비자가 기업 경영에 참여하고 의결할 수 있나요?” 소비자는 구매력이 있다면 선택권을 행사할 수 있고 봉사를 제공받을 수도 있지만, 본질적으로는 이미 정해져 있는 것들 중에서 고르는 것밖에 할 수 없다. 소비자는 기업의 바깥, 결정과 생산 영역의 바깥에 있다. 만일 학생이 소비자라면, 학생은 학교가 어떻게 운영되는지 교육과정은 어떠해야 하는지 알고 참여할 권리도 없을 것이고, 학교의 편의에 따라 소비자 의견을 제시하는 정도밖에는 하지 못할 것이다. 바로 지금 정부가 ‘만족도 조사’를 실시하듯이. 우리가 민주적인 학교를 요구하고 학생들이 학교 운영에 참여해야 한다고 주장한다면 이미 그것은 ‘소비자’의 위치를 뛰어넘은 것이다. 애초에 ‘교육’이라는 과정은 교사에 의해 제공되는 서비스를 학생이 받기만 하는 형태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학생들이 주체가 되어 이루어진다는 점에서도 ‘소비자’라는 개념에는 한계가 있지만 말이다.

위 사진:교육청의 시각을 보여주는 홍보포스터

소비자에 머물지 말아야 할 이유

운동을 하다보면 자신의 권리를 이야기할 때도, 정부가 인권이나 복지를 이야기할 때도, 사람들을 ‘소비자’처럼 생각하는 많은 경우와 마주치게 된다. 여러 복지정책이 그렇고, 심지어 정치를 이야기할 때조차도 이제는 ‘정치 소비자’라는 말이 등장하고 있는 상황이다. 사람들이 소비자로서도 제대로 대접받지 못하고 있다는 문제의식과 소비자로서의 힘을 보여주겠다는 취지를 보면, 학생들이 소비자 대우라도 받고 싶다고 말하는 것이 연상된다. ‘정치소비자협동조합’을 표방한 조직이 직접민주주의와 능동적 참여를 주창하는 것을 보면 약간 역설적으로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그 문제점도 명확하다. 먼저 구매력이 적은 사람들은 제대로 권리를 보장받지 못한다. 일례로, 거대 정당들의 주류 정치인들은 이번 총선에서 상대적으로 ‘표가 적을 것 같아 보이는’ 성소수자보다는 혐오세력에 동조하는 쪽을 택하고 있다. 그리고 그밖에도 많은 소수자들, 표가 안 될 것 같은 사람들의 문제에는 침묵하고 있다. 아예 정치구매력이 없는 청소년들은 논외가 되어 버린다. 경쟁은 ‘공급자’만 하는 것이 아닌 것이다. 우리 표로 정치를 사고, 정치인들이 표를 받고 정책이나 정치적 행위를 ‘판매’하는 것이라고 이해한다면 보편적 인권 보장은 불가능하다. 그래서 <4.13 총선 인권올리고 가이드>에서는 이런 문제를 지적하며 “표의 주인을 넘어 정치의 주인”이 되어야 한다고 적고 있다.

또한 앞서 말했듯 ‘소비자’는 함께 참여하고 만들고 책임지는 주체가 아니다. 주어진 상품들 중에서 선택할 권리는 있지만, 함께 만들고 결정을 내리지는 않는다. 일견 소비자는 많은 권리를 가진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실은 선택할 권리 말고는 많은 권리를 제약당하고 있다. “손님은 왕”이라고 하지만, 본래 왕은 단지 좋은 대접을 받고 호화로운 의전을 받는 자리가 아니라 국가의 주권자이며 결정권자이다. 왕은 ‘고객’이 아니라 ‘주인’이다. 그런 의미에서는 ‘소비자’와 ‘왕’은 정반대의 위치에 있다. 많은 경우 인권 보장을 위해서는 소비자의 권리 이상으로 주인의 권리가 필요하고, 평등한 참여와 공동의 연대(책임)가 필요하다.

상품이나 노예, 없는 존재 취급을 받는 사람들에게 소비자의 자리는 신분상승처럼 느껴지기 쉽다. 모든 것이 시장화되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소비자의 위치는 익숙하고 편안한 것이기도 하다. 그러나 인권은 ‘소비자’의 권리와는 다르다. 인권운동이 ‘소비자 마인드’를 경계하는 것은 단지 시장이나 자본주의에 대한 거부감 때문이 아니다. 그 걸로는 인권이 제대로 보장될 수 없으며, 우리가 이야기하고 추구하는 인권은 그 이상을 꿈꾸기 때문이다.

덧붙이는 글
공현님은 청소년인권행동 아수나로 활동가입니다.
인권오름 제 478 호 [기사입력] 2016년 03월 23일 18:37:31


Posted by 공현
걸어가는꿈2016.02.18 15:57

[공현의 인권이야기] 청소년운동? 청소년‘인권’운동?

인권, 함께해서 좋지만 또 조금 부담스러운 그것

공현



“노동인권운동이라고 안 하고 노동운동이라고 하고, 여성인권운동보다는 여성운동이라고 더 많이 쓴다. 성소수자운동도 그렇고. 그런데 왜 우리는 청소년인권운동이라고 더 많이 쓰지?”

우 리가 하고 있는 운동을 소개할 때면 이런 소박한 의문을 느끼곤 한다. 그냥 단체의 이름에 인권이 들어간다거나 그런 차원이 아니다. 2000년대 중반부터 우리의 중요한 과제는 “청소년인권운동”이라는 진영을 만드는 일이었다. 2006년 만들어진 청소년인권활동가네트워크는, 그 목표로 “△청소년인권운동 내부의 일상적 소통 강화, △청소년인권운동의 전략 마련과 현안 대응, △청소년인권활동가 역량 강화를 위한 배움터 개설과 연구 작업, △민간 청소년인권운동 진영의 형성”을 꼽고 있었는데, 그 목표는 사실상 막연한 이미지와 말만 있던 ‘청소년인권운동’이라는 것을 내외적 실체를 가진 것으로 쌓아올리는 것이었다고 할 수 있다. 다른 소수자운동이나 정체성을 표방한 운동들은 인권 이야기를 주로 하더라도 굳이 ‘인권’을 넣지 않는 경우가 많다. 노동자의, 여성의, 성소수자의 권리에 대한 운동이라는 의미가 충분히 드러나기 때문일 것이다. 왜 우리는 ‘인권’을 운동의 정체성으로 표방해야 했던 것일까? 우리는 왜 “청소년인권운동”을 만들려고 했던 것일까?


청소년단체, 청소년운동의 ‘전통적’인 뜻

“청 소년운동”이란 단어로 책이나 논문 검색을 해보면, 청소년 운동(Sports) 선수에 대한 내용들 외에도 은근히 많은 내용들이 검색 결과에 나온다. 그것들 대부분은 대학 청소년학과나 청소년지도사에 관련한 것들이다. 여기서 말하는 청소년운동이 청소년들의 권익을 향상시키기 위한 사회운동을 말하는 것이 아님은 물론이다.

2004년에 나온 <새 시대 청소년운동의 방향>이라는 책 소개를 보자. “청소년관련 정책과 청소년문제, 청소년 육성 등에 대한 청소년운동의 지침서.” ‘청소년운동’이란, 오랜 시간 동안 청소년을 육성하고 선도하며, 청소년들의 건전한 사회 참여를 조직하고,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것을 가리키는 말이었다. 종교적으로는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선교와 종교적 훈련 활동을 가리키기도 했다. 다양한 청소년수련활동들이나 국제교류, 자원봉사활동 등이 대표적이다.

‘청소년단체’란 말도 마찬가지다. 한국청소년단체협의회라는 조직이 있는데, 이는 현재 청소년기본법에 의해 지원을 받는 특수법인의 지위를 가지고 있기도 하다. 말하자면 청소년운동의 대표격인 연합 조직인데, 그 회원단체 목록 중 눈에 띄는 몇 개만 나열해보자면 이러하다. 어린이재단, 서울가톨릭청소년회, 대한적십자사청소년적십자, 대한불교청년회, 한국기독학생회총연합, 한국스카우트연맹, 한국청소년순결운동본부, 한국해양소년단연맹, 한국화랑청소년육성회, 흥사단 등. 이런 이름들을 보면 알 수 있겠지만 청소년단체라는 개념 역시 청소년 당사자들의 조직 또는 청소년들의 권익과 해방을 위해 운동하는 단체를 가리키는 말이 아니었다. YMCA나 적십자, 보이스카웃 등 청소년들을 보호하고 육성하고 수련활동을 하는 단체들이 ‘청소년단체’라는 이름으로 불려왔다.

<청소년운동> (이하, 혼동을 피하기 위해 기존에 사용되어 온 의미의 청소년운동은 <청소년운동>으로, 내가 하는 청소년의 권익과 해방을 위한 운동은 청소년운동으로 표기하겠다.)의 이러한 의미와 용례는 유구한 역사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1920년대 ‘소년운동’ 속에서 소년보호/소년수양(계몽)/소년해방의 담론이 혼재했지만, 결국 청소년들을 보호하고 계몽하고 교육하는 운동이 주류가 되면서 소년운동의 맥을 이어받은 광복 이후의 <청소년운동> 역시 이러한 성격을 가지게 되었다. 이는 근대 국가가 청소년들을 관리하고 보호하고 사회화시키려는 기획과도 일치하는 것이었다. 마치 장애인의 인권을 주장하고 행동하는 운동이 대두되기 이전에, 장애인을 위한 시설을 만들고 복지를 제공하는 등의 활동을 하는 사람들이 ‘장애계’, ‘장애단체’라고 불리던 상황과 비슷한 셈이다.

따라서 청소년들의 인권을 이야기하는 새로운 흐름이 1990년대 후반에 나타난 이후로, 이러한 오래된 <청소년운동>과 선을 긋고 새로운 개념으로 운동을 정립하기 위해 여러 가지 개념들이 대두되었다. 일부에서는 1980년대 고등학생운동을 이어받은 ‘학생 운동’으로 이야기했고, 일부에서는 ‘진보적 청소년운동’이라는 개념을 사용하기도 했다. 그러한 과정 속에서 청소년인권운동이라는 개념이 살아남았고 계속 쓰이고 있는 것이다. 비록 ‘청소년인권’이라는 단어 역시 <청소년운동>이나 국가기구에 의해서 전용되기도 하지만, 청소년운동이 주로 인권/기본권의 언어를 사용해왔고 청소년인권 문제를 다룬다는 점, 인권 자체가 가지는 해방적인 의미, 그리고 인권운동의 연대에 힘입어 청소년인권운동이라는 단어가 자리 잡았다고 볼 수 있다.

위 사진청소년운동은 '인권', '우리도 인간이다' 등을 주된 운동의 언어로 사용해왔다

인권, 계속 붙이고 갈 것인가?

청 소년운동이 처음 등장했을 무렵에는 그 개념에 대해 많은 혼란이 있었다. <청소년운동>과의 구분점으로 청소년 당사자성을 내세우기도 했지만, 당사자성만을 강조하는 운동으로는 청소년 정체성의 특성상 운동이 연속성을 가지지 못했다. 우리가 스스로 청소년인권운동이라는 개념을 가지면서 어떤 운동인지 누구와 함께하는 운동인지 등이 더 분명해졌고 운동이 계속 이어져올 수 있었다. 인권운동의 이해와 연대와 지원 속에서 청소년운동이 성장해올 수 있었다는 것도 사실이다. 무엇보다도 ‘인권’이 담고 있는 자유와 평등, 해방을 향하는 지향성은 청소년운동의 소수자운동이자 사회 보편적 문제를 다루는 운동으로서의 주장을 벼리고 체계화할 수 있게 하는 원동력이었다. ‘인권’이 붙어 있었기에 청소년운동은 여기까지 왔으며 청소년운동에게 인권은 여전히 유효하다.

그러 나 청소년운동이 청소년인권운동으로 스스로를 부르고 인권을 주된 언어로 사용하며 운동을 하는 것이 과연 괜찮을지, 머뭇거리게 되고 부담스럽게 느끼게 되는 점들도 있다. 첫 번째, 인권이라는 단어로 운동을 규정하면 우리 사회가 인권에 대해 가지고 있는 여러 가지 이미지와 편견들도 함께 따라오게 된다. 그래서 청소년인권운동을 하는 사람은 왠지 훌륭하고 착해야 할 것 같다는 말도 나오고, 청소년 대중들에게는 뭔가 어려운 이야기를 하는 운동인 것 같다는 거리감도 가지게 만든다. 인권이 주로 헌신적인 구호활동이나 법에 관련된 활동이라는 이미지 때문에 도덕적이고 엘리트적인 운동인 것 같은 인상을 주는 것이다. 더 많은 청소년 대중들을 조직하고 함께하는 운동이 되기에는 사소하지만 무시할 수는 없는 그런 걸림돌이라고나 할까.

두 번째, ‘인권’의 언어로는 청소년운동이 다루는 문제들을 모두 다 포괄할 수는 없다는 점이다. 물론 청소년들의 자유와 평등의 문제는 대부분 인권 문제로 이야기할 수 있다. 하지만 청소년들의 권익에 관련되거나 의견을 내야 할 문제는 그밖에도 다양하다. 예를 들어, 학생들이 학교운영이나 교육정책에 대해 의견을 낸다고 할 때 학교의 학사일정이나 교과목 구성에 대해 판단하는 기준은 무엇이 되어야 할까? 인권의 언어만 가지고는 이런 것들에 대해서 여러 학생들이 민주적으로 의견을 반영할 수 있어야 한다거나 학생들에게 과도한 학습 부담이 가해져선 안 된다는 등의 원칙 정도만 말할 수 있다. 그 이상의 구체적 의견들은 여러 여건을 고려하며 학생들의 토론을 통해서 결정해야 한다. 그러므로 청소년운동이 더 조직화하고 발전하여 청소년들의 집단적인 요구와 의견을 표출하는 운동이 된다고 하면 ‘인권’ 외의 문제들도 다루게 될 것이고, 청소년인권운동이라고 부르기는 다소 어색할 수도 있을 것이다.

세 번째로는 주류적인 인권 담론이 청소년운동의 청소년인권 주장과 불일치하는 면들이 있다는 점이다. 보편적으로 통용되는 국제인권법 등의 내용이 현재 한국의 현실보다 훨씬 낫다는 것은 분명하다. 그래, 그만큼이라도 되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그런 국제인권법에는, 아직 크게 쟁점이 되지는 않았지만, 우리가 동의하지 않는 내용들도 있다. 예를 들면 가족을 사회의 기초 단위로 보고 보호하려는 관점이나, 청소년의 노동 금지 연령을 높여야 한다는 입장이나, 청소년보호를 위해서 문화를 규제해야 한다는 내용 등 말이다. 국제인권법의 규범과 해석은 역사적으로 만들어져왔고 그 안에도 다양하며 때로는 모순되는 입장들이 병존하고 있다. 청소년(아동)에 대해서도 근대적인 청소년(아동)관과 인권적 원칙에 따른 입장들이 동시에 존재하고 있는 실정이다. 그래서 인권 담론이 국제적이고 보편적인 권위를 얻을 수 있고 여러 유용한 지원도 받을 수 있지만, 인권을 밀고 나갔을 때 우리 운동이 미래에는 스스로 발목을 잡게 되고 가능성을 제한받게 되지는 않을까 걱정이 든다.

그래서 어느 때부터인가, 나 개인적으로는 적어도 운동을 가리키는 이름에 대해서는 ‘청소년인권운동’보다는 ‘청소년운동’이라는 말을 더 많이 쓰고 있다. 이는 <청소년운동>으로부터 ‘청소년운동’이란 말의 주도권을 가져오고 싶다는 욕망의 표현이기도 하다.(어느 활동가는 수십 년, 거의 100년 가까이 된 용례를 그렇게 쉽게 바꿀 수 없을 거라고 회의적인 입장을 보였지만.) 청소년운동은 인권과 계속 함께 가겠지만, 이름도 그렇고 인권이 청소년운동의 어느 위치에 어떤 모양새로 있어야 적절한 건지는 운동의 발전과 시대 상황에 따라서 달라질 것이다. 다른 소수자운동들이나 사회운동들은 어떤 고민과 역사들을 가지고 있을까 궁금하다. 여하간, 청소년인권운동에서 ‘인권’자를 빼고 청소년운동으로 부른다고 해서 다른 인권활동가들이 서운해 하지는 않았으면 하는 마음이다.

덧붙이는 글
공현 님은 청소년인권행동 아수나로 활동가입니다.
인권오름 제 474 호 [기사입력] 2016년 02월 17일 15:58:43


Posted by 공현
걸어가는꿈2016.02.09 16:15



[성명] 누리과정 예산 빵꾸나는 소리 좀 안 나게 해라~

- 무상교육은 인권이다! 정부는 교육재정을 책임지고 마련하라!


박근혜 정부의 억지 속에 누리과정(만3~5세 어린이집과 유치원에서 공통으로 운영하는 교육과정) 예산 문제가 여전히 해결되지 않고 있다. "무상보육 할 테니 낳아만 달라"라고 했던 대선후보 시절의 공약은 온데간데없고, 누리과정 예산을 편성하지 않은 교육청에는 수사에 감사까지 해가며 압박하고 있다. 막무가내로 교육청에게 예산 돌려막기(?)까지 종용하는 정부의 모습을 보면, 제대로 교육권을 보장하고자 하는 의지가 있기는 한지 의심스럽다. 정부의 이런 태도 탓에 교육재정과 교육자치 전반이 위협을 받고 있으며 당장 청소년들의 권리에도 악영향이 예상되고 있다.

박근혜 정부는 이미 누리과정 예산을 교육청들에 다 지원했다고 말하고 있다. 하지만 조금만 살펴봐도 그렇지 않음을 알 수 있다. 올해 정부가 교육청들에 분배한 '교부금'은 누리과정이 확대 시행되기 이전과 비교해서 거의 차이가 없다. 법령만 바꿔서 '이 중에 누리과정에 쓰라'고 적어놨을 뿐, 제대로 예산을 지원한 것이 아니다. 정부는 교육청들에 빚이라도 내라고 하고 있지만, 이미 지난 몇 년간 그런 미봉책으로 버텨오다가 한계에 이른 상황이다. 지역 교육청들을 대책도 없이 빚더미에 올라앉게 할 셈인가?

교육청들 중에는 이미 누리과정 예산을 편성한 곳들도 있기는 있다. 그러나 그렇게 편성한 5곳 중 4곳에서는 대신 방과후 학교 지원 등에 필요한 예산을 확보하지 못했고, 저소득층 지원 예산이나 인건비를 편성하지 못한 곳도 있다. '빵꾸난' 누리과정 예산을 무리해서 마련하다보니 다른 예산들에 문제가 생기고 있는 것이다. 이는 결국 교육재정이 부실해지고 청소년들의 교육권 상황이 열악해지는 결과를 초래할 위험성이 있다는 의미이다. 교육청들이 무리하게 빚을 낸다면 이런 위험성은 더 커질 것이다.

물론 중앙정부와 지역정부(교육청 등)는 누리과정을 포함해서 청소년들의 교육권을 보장할 공동의 책임을 지고 있다. 다만, 현재 제도상 재정에 대한 책임은 중앙정부가 더 많이 지고 있다는 것 또한 분명하다. 더군다나 박근혜 정부는 사태를 해결하기 위해서 제대로 된 소통과 협의도 없이 계속해서 막무가내로 교육청을 탓하고 윽박지르고만 있다. 박근혜 정부가 문제를 해결하고 누리과정 등이 잘 시행되게 하고 싶은 건지, 아니면 더 문제가 생기게 하고 싶은 건지 모르겠다. 정부가 예산에 관해 기초적인 산수도 할 줄 모르고 당장의 문제만 떠넘기려고 하는 것이거나, 아니면 악의를 가지고서 교육청들을 괴롭히고 교육자치를 약화시키기 위해 억지를 부리고 있다고밖에 보이지 않는다.

누리과정을 비롯한 각종 공교육은 우리의 권리이다. 그리고 이를 위해서는 제대로 된 공공의 재정 확보가 필수이다. 「경제적 사회적 문화적 권리에 관한 국제협약」은 청소년(어린이)의 양육과 교육에 대해 가능한 한 광범위한 지원이 부여되어야 함을 명시하고 있으며, 초등교육을 비롯하여 교육 전반을 무상으로 해나가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는 모든 청소년들이 차별 없이 교육권을 보장받기 위해서이다. 또한 누리과정을 포함하여 교육에 드는 비용을 공적으로 부담함으로써 부모 등 친권자·보호자들은 양육의 부담을 덜 수 있다. 청소년의 교육과 삶이 친권자 개인의 경제력과 의지에 달려 있을수록 청소년은 그들에게 삶을 의존할 수밖에 없고, 친권자 역시 자신이 청소년을 위해 많은 것을 투자하고 희생한다고 느낄수록 청소년들을 더 지배하려 들 위험성이 높다. 그러므로 양육과 교육을 사회가 책임지는 것은 친권자와 청소년 사이의 더 건강하고 평등한 관계를 위해서도 필수 조건이다. 

정부는 먼저 이러한 권리 보장의 의무가 자신에게 있음을 명확히 숙지하고, 진지하게 어떻게 예산을 편성하고 어떻게 무상보육‧무상교육을 실시해나갈지 논의하고 계획해야 한다. 선거 때는 표를 얻기 위해 그럴 듯한 공약을 걸고, 당선 후에 정부는 제대로 책임을 지지 않고 있는 지금 같은 상황은 매우 우려스러우며, 중요한 인권 문제를 왜곡시키는 행태이다. 이 때문에 어린이집·유치원·학교 등의 노동자들, 친권자들, 그리고 청소년들이 불이익을 입고 불안을 느끼고 있다. 지금이라도 남탓하기를 중단하고 누리과정 예산 등 교육재정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나서야 할 책임이 박근혜 정부에게 있다.

 - 정부는 교육청들에 대한 부당한 압박을 중단하고 누리과정 예산 문제 등을 해결하기 위한 소통과 협의에 나서라!
 - 정부는 무상보육‧무상교육 확대 등 보편적 교육권 보장을 위해 충분한 교육재정을 마련하기 위해 노력하라!


2016년 2월 9일

십대섹슈얼리티인권모임
청소년인권행동 아수나로


Posted by 공현
걸어가는꿈2015.10.12 13:52

[한글날 논평] 이게 한글이 아니면 두글이애오? 청소년 언어문화 그만 까새오

 

 

한글날, 우리가 전국적으로 다굴*을 당하는 날이다. “요즘 애들의 언어 파괴가 심각하다”, “알아먹지도 못할 은어를 쓴다”, “욕설을 한다”며 까대는 것이다. ‘한국어’와 ‘한글’도 구분을 못하는지 꼭 세종대왕을 들먹이며 학교에서나 인터넷에서나 하루종일 꼰대질을 시전하는데 어이가 1도 없음이다**. 우리가 쓰는 말도 분명 자음 14자 모음 10자로 조합하는 한글이다.

 

말 좀 줄여서 하는 게 어때서 그런가? 자기들도 줄임말로 ‘단통법’이니 ‘이태백’이니 ‘지자체’니 잘도 쓰던데 왜 ‘버카충’만 쓰레기냔 말이다. 그딴 기사 써대는 기자들도 자기들끼리 은어 많이 쓰기로 유명하지 않나. 너네가 하면 유식한 거고 우리가 하면 나대는 거냐.

 

욕 좀 하는 게 어때서 그런가? 우리가 욕하는 건 더럽고 폭력적인데 욕쟁이 할머니는 정감 있다고 하고, 자기들은 친구 만날 때마다 '이새끼 씨발 저년 씨발' 하는 건 이중잣대 오진다***고밖에 말할 수 없다. 욕설 중에 소수자 차별적인 말이 많은 것은 사실이다. 그런데 그건 쓰지 말아야 할 이유를 함께 이야기하는 방법이 맞는 거지 무조건 ‘어린 것들은 그런 말 쓰지마’ 하는 건 진짜 아니다.

 

언어파괴가 아니라, 언어문화다. 사람들은 언어를 만들고 변화시키고 사용할 권리를 가지고 있다. 많은 세대/집단들이 자신들의 언어문화를 만든다. 우리 청소년들의 언어문화에 대해서만 ‘언어파괴’라고 하는 건 우리가 만만하고 우리끼리 통하는 게 아니꼽기 때문 아닌가?


권력을 가지지 못했고 지배적 문화로부터 먼 사람들일수록, ‘고급진’ 언어가 낯설기 마련이다. 예컨대 빈곤계층이나 미국 흑인들 사이에서 비속어 등이 더 널리 쓰인다. 대부분의 청소년들 역시, 여러 공식적인 논의나 결정에서 배제되고, 발언할 기회도 존중받는 경험도 갖지 못한다. 청소년들은 비청소년들과 평등하게 소통할 기회도 적고 공식적인 자리에서 고급진 언어를 쓸 일도 별로 없으며 학교에 갇혀서나 거리에서나 청소년들끼리만 지낼 일이 많다. 이처럼 사회적 소수자인 청소년들 사이에서 비청소년들 사이의 주류적 문화와는 다른 문화가 만들어지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이런 건 생각하지도 않은 채 우리의 언어문화가 자기들과 다르다고 손가락질하는 모습은 그야말로 극혐****이다.

 

이 꼰대질도 참 오랜 역사와 전통을 갖고 있다. 1970~80년대에도 청소년의 언어생활이 “극히 거칠고 퇴폐적”이라고 우려하는 기사들과 함께 한글날에 청소년들이 “쌤통이다”, “피봤다”, “구라”, “공갈” 등의 신조어나 은어를 쓰고 맞춤법도 제대로 모른다며 걱정하는 기사들이 나온다. 겁나 우려먹은 소재라는 것이다. 새로운 말을 못 알아먹겠으면 검색을 하거나 우리에게 질문을 해라. 그 좋아하는 자기주도학습을 좀 해봐라. 괜히 만만하다고 우리만 까지 말고. 청소년들의 언어문화를 존중하고 소통하는 자세부터 가져라. 이제 한글날에는 새로운 이야기 좀 듣고 싶다. 좋은 문학작품도 한순간에 분석하고 외워야 할 글자더미로 만들어버리는 입시교육부터 같이 어떻게 해보는 게 어떨까? 인정하는 부분?*****




2015년 10월 9일

청소년인권행동 아수나로





*다굴 : 집단폭력, 린치

**1도 없음이다 : 하나도 없다

***오진다 : (감정이나 상태 등의 정도가) 엄청나다. 만족스럽다는 뜻의 전라도 사투리 ‘오지다’의 변형. ‘쩐다’와 비슷하게 쓰인다.

****극혐 : 매우 혐오스러움

****인정하는 부분? : 동의하는지 묻는 말


Posted by 공현
걸어가는꿈2015.09.29 11:37

 

[논평] 청소년인권을 현관문 안으로!

- 가족 내 체벌 금지를 환영하며, 청소년인권 발전의 한 걸음이 되길 바란다



  드디어 한국도 가족 안에서 친권자/보호자에 의한 체벌과 언어폭력이 금지되었다. 9월 28일부터 시행되는 아동복지법 개정안에 따라, “아동의 보호자는 신체적 고통이나 폭언 등의 정신적 고통을 가해서는 안 된다.” 우리는 이러한 법률의 시행을 환영하는 한편, 이것이 단지 법문구의 변화만이 아니라 실질적인 청소년인권 개선의 중요한 기회가 될 수 있기를 바란다.

  체벌금지는 청소년이 인간임을 인정하는 이상 당연히 지켜져야 할 인권 규범이다. 유엔아동권리위원회는 오랜 시간 동안, 여러 차례에 걸쳐서, 가족과 학교 그리고 모든 곳에서의 체벌을 금지하도록 권고해왔다. 2011년에도 유엔아동권리위원회는 체벌을 명시적으로 금지하도록 관련 법률을 개정하고, 체벌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을 바꾸도록 교육과 캠페인을 실시하고, 체벌의 피해를 입은 청소년이 사건을 알리고 구제받을 수 있는 제도를 마련할 것을 한국 정부에게 권고한 바 있다. 이제라도 한국 정부가 그러한 국제인권규범의 일부라도 따르는 것은 긍정적인 변화이다. 사람이 사람에게 폭력을 당해서는 안 된다는 당연한 기준에서 청소년만 예외여서는 안 된다. 그러나 동시에, 우리는 한국 정부가 그동안 청소년에 대한 체벌을 금지하는 일에 소극적인 태도를 보였던 것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한국 정부는 학교에서의 체벌도 완전히 금지한 것이 아니라는 애매모호한 입장을 고집하고 있다. 정부는 이후 청소년에 대한 학교와 가족 그리고 모든 곳에서의 체벌을 완전히 금지한다는 것을 분명히 해야 할 것이다.

  우리는 이번 가족 내 체벌금지 시행을 환영하지만, 그러면서도 그 실효성에 대해 우려하는 마음을 밝힌다. 지난 2012년, 서울시에서 제정한 어린이‧청소년인권조례에도 “보호자는 양육하는 어린이ㆍ청소년에게 체벌을 포함한 신체적, 정신적, 언어적 폭력을 해서는 아니 된다.”라고 하여 가족 내 체벌을 금지하는 내용이 들어가 있었다. 그러나 서울시민 중에 이러한 내용을 아는 사람이 얼마나 있었을까? 서울시에 사는 청소년 중 가족 내 체벌을 당했을 때 이 조례의 도움을 얻을 수 있었던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될까? 법은 그 내용을 사람들에게 명확히 알리고 집행해야만 의미가 있다. 개정된 아동복지법 역시 널리 알려지고, 또 실제로 체벌이 일어날 때 관련 기관들이 적절하게 개입하지 못한다면 유명무실한 것이 되고 말 터이다. 한국 사회처럼 청소년인권에 대한 인식이 미비하고, 가족주의가 강고하며, 청소년에 대한 폭력에 관대한 사회에서는 더욱 그럴 위험성이 크다. 널리 이루어지고 있는 청소년에 대한 폭력 — 체벌을 근절시키기 위해 더 적극적으로 행동하고 실효성 있는 제도를 마련해야 한다.

  지난 십몇 년 간 한국 사회에서 청소년인권에 대한 인식은 분명히 개선되어 왔다. 그러나 가족 안에서 일어나는 신체의 자유 문제나 사생활의 자유 문제 등, 여러 청소년인권 문제들은 사적인 문제이거나 부모‧보호자의 친권 등을 이유로 제대로 문제로 생각되지 않았다. 가족 사이의 일을 권리의 문제나 권력관계의 문제로 논하는 것 자체가 금기처럼 여겨지기도 했다. 그러나 가족은 청소년들의 생활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이자 청소년인권침해가 일어나는 주요한 무대이기도 하며, 보편적 인권 보장의 치외법권이 될 수 없다. 청소년인권은 교문만이 아니라 현관문 안으로도 들어가야 한다. 청소년인권행동 아수나로는 최근 가족 안에서의 아동학대 문제에 대해 높아지는 사회적 관심과 더불어 가족 내 체벌금지가 그 한 걸음이 될 수 있기를 기대한다. 가족 안에서도, 체벌만이 아니라 청소년인권 침해가 모두 사라지는 세상을 만들어가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2015년 9월 29일

청소년인권행동 아수나로


Posted by 공현
걸어가는꿈2015.08.06 00:51




청소년신문 요즘것들 제6호 2015.07.16.


커버이미지 :: 찜통교실 & Intro




  학교 끝나고 학원에 가기 전 편의점에 들렀다. 음료수를 사고 자리에 앉아, 폰으로 웹툰을 보려고 포털사이트에 들어갔는데 한 기사 제목이 눈길을 끌었다.
  "학교 10곳 중 8곳 공공요금 지출 줄어...찜통교실 무대책"
  엥? 뭔솔? 읽어보니 공공요금이란 수도, 전기, 가스 등을 이용하고 내는 돈이라고 한다. 특히 전기요금을 아끼려고 학교들이 에어컨을 제대로 안 틀고 있다고. 더워서 도저히 못 참겠다고 행정실에 하소연을 해도 에어컨을 안틀어주던 이유가 이거였구만. 아니 그럼 교무실, 교장실, 행정실부터 솔선수범해서 안틀어야 되는 거 아냐? 교실은 따닥따닥 붙어 앉아서 더 짜증나고 더운데.
  편의점의 에어컨 바람 덕분에 겨드랑이에 났던 땀이 마르면서 시원한 느낌이 들었다. 문득 입고 있는 교복이 한심스러워 보였다. 얇은 흰색 천으로 만들어져 비치기는 다 비치면서, 바람도 안 들어오는 블라우스, 땀 차서 다리에 붙는 치마. 교복을 편한 걸로 안 바꿀 거면, 다른 옷이라도 입고 다니게 해주든지. 체육복도 안되고 학교 안에서든 등하굣길이든 오직 교복만 입으라니 참 깝깝하다. 오늘은 땀 좀 말리려고 블라우스 단추 하나 풀고서 목 깃 좀 펄럭거리고 있었다고 교사에게 "여자애가 다 보이게 뭐하는 짓이냐"고 핀잔을 들었다. 내가 지 보라고 펄럭거린 줄 아나. 여자인거랑은 또 무슨 상관인데.
  땀이 다 마르고 나니 조금 서늘했다. 편의점은 에어컨을 튼 채 문을 활짝 열고 있었다. 어디서는 있는 에어컨도 못 틀고 헥헥거리고, 어디서는 펑펑 틀고. 참 불공평하다. 그런데, 요즘 발전소 때문에 환경오염 되고 위험하다고 난리던데 이렇게 전기 펑펑 써도 되는 건가? 그래도 우리 학교는 좀 너무한 것 같다. 어떻게 바깥보다 안이 더 덥담. 에어컨 안 틀고도 안 덥게 지낼 수 있으면 참 좋을 텐데. 옷이라도 좀 편하게 입었으면... 꼭 필요해서 에어컨 틀 때는 짧게 적당한 온도로 틀고... 방학도 2주밖에 안되던데 좀 길게 하면 좋겠다. 근데 이 이야기를 누구한테 해야 하지? 쌤한테 얘기하면 교육청 홈피에 올리라고 하고, 교육청 홈피에 올려도 아무 반응 없던데.
  뭐 다들 그냥 사는데, 나도 참아야지 별 수 있나. 편의점을 나오면서 문을 슬쩍 닫았다. 몇 발짝 걷자 등 뒤로 문을 다시 여는 소리가 들렸다.




청소년신문 [요즘것들] 제6호 순서



특집 : 찜통교실



[Special]


1. 에어컨도 못 트는 학교의 주인?


2. :: 더운 학교, 어쩔 수 없는 걸까 - 건물 설계, 일정 조정 등 해결책은 쉬운 곳에



[극한직업 청소년]


교복러



[소식]


한국 학생들의 학습시간은?


저항하자, 사랑하자, 우리의 레볼루션 




[청소년24시]


1. 인터넷을 막아라! - ㅅ홈스쿨센터의 반인권적인 규칙 등

2. 학교에서 세월호 추모 행동 탄압

3. 대법원, 학생인권조례는 정당하고 유효하다고 판결




[인터뷰]


핵발전소 없이, 입시경쟁 없이 살 수 있을까?

- 청소년 녹색당 준비모임 '녹갱이'씨





[청소년의눈으로]


학교, 수시가 중요해, 내 목숨이 중요해?




[만평]


불타는 교실



[광고]


Posted by 공현
걸어가는꿈2015.04.27 11:44

[2030 잠금해제] 10년째 두발자유 운동 중 / 공현

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688489.html



2005년 5월 다시 한번 두발자유를 요구하는 운동이 일어났다. 고등학생이었던 내가 청소년운동에 본격적으로 발을 들인 것도 그해였다. 그래도 그땐 두발자유화가 금방 될 줄 알았다. 헤어스타일은 개인의 자유로 보장되어야 할 문제이고, 학교들은 규제를 할 그 어떤 합당한 근거도 제시하지 못했으니까. 길이든 색깔이든 머리카락을 자유롭게 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 같았다. 같이 활동하던 지인이 “두발자유를 위해 뼈를 묻을 각오가 있느냐”는 낯간지러운 질문을 했을 적에 나는 흔쾌히 그렇다고 대답했지만, 정말로 뼈를 묻어야 할 거라고 생각하진 않았다. 길어야 10년 정도면 되겠거니, 그렇게 막연히 상상했던 것 같다.

그런데 올해 5월이면 이제 내가 두발자유 운동을 시작한 지 만 10년이 된다. 10년째 두발자유 운동을 해온 셈이다.






이걸로 한겨레 2030 잠금해제 연재가 끝났네요.

작년 5월부터 딱 1년, 총 13번을 썼던가 그런데. 저에게 지면을 내주고 원고료도 줬던 한겨레 신문사에 일단 감사드리고, 읽어주신 분들에게도 감사합니다.

Posted by 공현
걸어가는꿈2015.03.30 15:05

어린이책시민연대 소식지 원고로 청탁받아서 쓴 글이에요







체벌이 인권침해일 수밖에 없는 이유들



공현 (청소년인권행동 아수나로)



체벌금지 관련 현황

  UN아동권리위원회가 한국 정부에 대해 아동체벌금지를 처음으로 권고한 것이 약 19년 전, 1996년의 일이다. 그 뒤에도 ‘모든 곳에서의 체벌금지’는 한국 정부에 대한 단골 권고 사항 중 하나다. 그러나 21세기에 들어서도 한국에서 체벌금지 문제는 제대로 진전을 보이지 못하고 제자리걸음을 반복하고 있는 느낌이다.

  우선 학교 체벌의 경우 1990년대 후반에 김대중 정부에서 학생인권에 대해 최초로 논의를 했으나 교사 등의 반발로 실현되지 못했고, 오히려 체벌을 정당화하며 체벌 도구 등을 지정하는 규정이 만들어졌다. 그 뒤 수많은 학교에서의 체벌 사건과 희생자들, 그리고 체벌금지를 요구하는 행동들 위에 학교 체벌금지가 공론화됐다. 2011년에는 초중등교육법 시행령 개정을 통해서 “도구, 신체 등을 이용하여 학생의 신체에 고통을 가하는 방법을 사용해서는 안 된다”라는 학교 체벌금지 조항이 명시됐다. 경기도, 서울, 광주, 전북에서 시행 중인 학생인권조례 역시 학교에서의 체벌금지를 명시했다.

  이런 제도 변화에도 불구하고, 학교 체벌금지도 뭔가 딱 떨어지지 않는 불투명한 점이 많은 실정이다. 교육부는 시행령을 개정해놓고도 직접 때리는 방식이 아닌 다른 체벌은 가능하다는 유권해석을 고수하고 있다. 이에 따라 학교들에선 체벌이 일어나고 있고 ‘때리는’ 형태의 체벌 역시 교육청과 교육부가 적극적으로 조치하지 않음에 따라 사라지지 않고 있다. 학생인권조례의 체벌금지가 상위법 위반이라 무효라는 주장까지 공공연히 나오는 상황이다. 실제로 중고등학생을 대상으로 한 여러 조사에서 50~60% 가량은 체벌을 경험한다고 답한다. 경험 빈도나 정도는 시간이 흐르면서 약해지는 경향이 있으나 경험 비율 자체는 여전히 상당히 높아서, 체벌의 근절에는 전혀 이르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다른 한편 학교에서 체벌과 달리 거의 논의조차 되지 않고 있는 것이 가정에서의 체벌이다. 가정에서의 체벌 경험 비율은 학교에 비해 낮은 편이기는 하지만, 부모나 친권자의 지도권 행사로 정당하다고 여겨지는 점으로는 학교 체벌 이상이다. 그것이 적절한 양육 수단인지 여부에 대한 논의는 있지만, 이를 금지한다거나 아동-청소년의 인권 문제로 접근하는 경우는 드문 것이다. 2012년 제정된 서울어린이청소년인권조례에는 가정에서의 체벌도 금지하는 조항이 있지만 서울시에서는 전혀 홍보를 하지 않아서 그 존재감이란 없는 거나 마찬가지다. 그나마 최근에 각종 아동학대 관련 제도가 강화되면서 그 해석을 두고 가정체벌도 학대법 적용 대상인지 말이 나오고 있는 정도다. 이에 관해 정부의 입장은 역시나 불투명한데, 법무부 등은 ‘체벌은 ‘학대’와 구분해야 한다‘, 즉 체벌은 허용된다는 입장에 가깝다. 반면 검찰과 경찰은 아동학대 관련 법을 체벌 사건에도 일부 적용한 사례가 있었다.

  학교와 가정 외에 학원이나 교습소, 그밖의 장소에서도 어린이․청소년에 대한 체벌은 가해지고 있다. 예컨대 거리에서 흡연을 하고 있는 청소년을 어른이 ‘훈계’ 차원에서 체벌하는 것에 대해 우리 사회는 상당히 우호적인 분위기를 갖고 있는 것이다. 학원에서도 조사에 따라서 25~40% 정도의 청소년들이 체벌을 당한 경험이 있다고 한다. 학원에서의 체벌 등은 아무런 법적 근거가 없는 폭행일 뿐이나 사회적으로 용인되고 있다. 일부 지역 교육청에서는 조례에 학원에서 학원생의 인권을 존중해야 한다는 내용을 포함시키고 학원체벌 금지 입장을 천명했으나, 사회적 용인 분위기 때문에 단속은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

  이처럼 한국에서 체벌금지가 제대로 되고 있는 영역이란 거의 없다시피 하다. 실질적으로 체벌을 없애는 문제로 들어가면 더 심각하다. 한쪽 편에서 미디어 등이 체벌이 사라져서 문제인 것처럼 호들갑을 떠는 것과는 대조적이라 할 것이다. 체벌에 대한 대중적 논란은 “그래도 뺨을 때리는 건 좀 아니지”라든지, 좀 심각한 수준의 체벌이 되냐 안 되냐 하는 감정적인 판단에 그치고 있다. 종종 ‘체벌’과 ‘처벌/징계’ 자체를 혼동하는 모습마저 보이는 것은 체벌에 대한 대중적 공론화가 얼마나 빈약했는지를 방증한다. 그리고 체벌이 사라지거나 금지되지 않고 있는 가장 중요한 이유는 바로 사람들이 체벌 그 자체에 긍정적이고 관대하기 때문일 것이다.



폭력과 인권침해의 기준


  체벌의 대략적인 정의는, 어떤 잘못에 대해 징계하거나 개선시키기 위해서 신체적 고통이나 불편함을 주는 처벌이다. 유엔아동권리위원회는 체벌 외에도 모욕적이고 비인간적인, 수치를 주는 처벌 역시 체벌과 같은 범주에서 반(反)인권적인 것으로 다루고 있다. 국제인권기준에서 체벌이 인권침해이며 사라져야 한다는 것은 이미 수십 년 전부터 인정되어온 내용이다. 2009년 유엔고문방지협약 특별보고관은 고문 금지를 규정하고 있는 국제 규약이 ‘교육 또는 훈육수단으로서의 체벌에도 적용되는 것으로 확대해석해야 한다’는 의견을 보고서에 담았다.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 인간에게 신체적 고통을 가한다는 점에서 체벌을 고문과 같은 범주로 놓은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특별보고관은 “국제법적으로 체벌은 가장 예외적인 상황에서조차 더 이상 정당화될 수 없다.”라는 의견도 덧붙였다.

  어린이․청소년에 대한 체벌이 금지되어야 하는 이유는 논리적으로는 단순 명확하다. 일반적으로 인간에게 신체적 고통을 가하는 처벌은 인권을 침해하는 것으로 사라져야 한다. 형법에서도 태형 등의 신체형이 사라지고, 징역형 등 자유형/감금형이 일반화된 것도 그와 같은 맥락에서이다. 인간 존재의 근거이자 존재 자체인 신체에 고통을 가하고 폭력을 가하는 것이 인권의 본질, 인간의 존엄을 훼손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만일 어린이․청소년 역시 평등한 인간이며 인권을 보장받아야 한다는 것을 인정한다면, 어린이․청소년에게 체벌을 가하는 것 역시 금지되어야 한다.

  우리가 폭력, 특히 약자에 대한 폭력을 반대한다면 체벌은 허용될 수 없다. 직접 폭행을 하는 것이든, ‘손 들고 서있기’나 ‘엎드려뻗쳐’, ‘오리걸음’ 등의 신체적 고통을 주는 벌을 가하는 것이든 모두 폭력에 해당한다는 것은 명확하다. 이러한 행위를 예컨대 상사가 부하에게, 선배가 후배에게, 손님이 서비스노동자에게 한다고 하면 그것이 폭력이라고 판단하는 데에 별다른 주저함이 없을 것이다. 유행하는 말로 ‘갑질’이라고 불릴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유독 특정한 관계나 신분 속에서만 폭력이 폭력처럼 보이지 않곤 한다. 어린이․청소년이 대표적이다. 그리고 그 착시 속에는 어린이․청소년들을 온전하고 동등한 인간으로 보지 않는다는 전제가 숨어 있다.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어떤 잘못’을 했냐가 아니라 ‘어떤 사람’이냐 하는 것이다. 신체적으로 근력이 약한 어린이․청소년은 반격 가능성이 적다는 것이나, 미성숙한 그들에 대한 폭력이 사회적으로 허용되고 있다(=비난받지 않는다)는 점이 더 크다.

  앞서 체벌이 고문과 같은 범주로 해석되어야 한다는 입장을 소개한 바 있다. 다른 차원에서도 체벌 문제는 고문 문제와 닮아있다. 가령 고문을 없앰으로 인해 경찰 등 수사기관의 수사에 여러 가지 어려움이 생기고 증거 수집과 처벌에 실패하는 일도 있을 것이 분명하다. 하지만 우리는 그렇다고 해서 고문을 부활시키자고 주장하지는 않는다. 과학수사나 다른 수사기법을 발전시켜서 해결하려고 한다.

  마찬가지로, 체벌을 없앰으로 인해 교사나 부모(친권자) 등의 훈육과 통제에는 여러 가지 어려움이 생길 것이며 바라는 대로 통제와 교육 효과를 내지 못하는 일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과연 체벌을 옹호할 이유가 되는가? 다른 교육 방식이나 기술을 통해 해결해야 하는 문제가 아닌가? 고문과 체벌의 차이는, 단지 고문은 불가능한 것이지만 체벌은 얼마든지 선택 가능한 것이라고 인식하고 있다는 것뿐이다. 결국 체벌을 긍정하느냐 부정하느냐 하는 것은 저울질의 문제가 아니다. 우리가 인권침해와 폭력에 대해 어떤 기준을 갖고 있고, 어린이․청소년의 인권을 얼마나 중요하게 보고 있느냐 하는 문제인 것이다.



체벌과 학대 : 누구의, 어떤 관점에서 볼 것인가

  체벌은 학대의 한 유형이며 사회통념상 허용되어온 체벌이란 약한 수준의 학대라고 할 수 있다. 여러 연구들에 따르면, 사람들이 체벌이라고 여기는 행위이든, 학대라고 여기는 행위이든, 부정적 자아정체성과 공격성 및 폭력선호도를 증가시키는 등의 부작용은 동일했다. 그러나 여전히 체벌이 학대의 부분집합이라는 규정을 받아들이는 데에 거부감을 가지는 경우가 많다. 설령 그 둘을 구별할 수 있다고 믿어보더라도 곰곰이 따져보면 행위만을 가지고 학대와 체벌을 나누는 기준선을 제시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해 보인다. 체벌과 학대를 나누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정말로 기준으로 제시하고 싶은 것은 ‘가해자의 의도’이다. 아이를 위해 선의를 가지고 한 것은 교육적인 체벌이고, 아이를 괴롭히거나 악감정을 가지고 한 것은 학대라는 식인 것이다. 그래서 학대 가해자는 종종 악마화된다.

  이런 논변은 일견 설득력 있어 보일지도 모르지만, 애초에 행위의 정당성을 행위의 내용이나 피해자의 경험이 아니라 가해자의 의도를 기준으로 삼으려고 하는 데서부터 커다란 잘못이다. 가해자의 의도는 참고 사항일 수는 있어도 폭력의 옳고 그름을 가르는 것일 수는 없다. 마찬가지로 학대인지 아닌지를 논할 때 재판에서는 주로 ‘사회통념’이 언급되곤 하는데, 그 내용이 매우 애매모호하다는 것도 문제이지만 ‘사회통념’이 판단 근거가 되는 것 자체가 부적절한 노릇이다. 거기에서도 역시 폭력을 경험한 피해자의 입장에서 그 폭력이 어떤 것이었는지에 대한 고려가 없거나 부족하다. 특히 우리 사회의 통념과 상식 자체가 비청소년들 위주로 만들어진단 걸 생각하면 이는 가해자 중심의 논리가 될 수밖에 없다. 그 행위가 인간의 존엄성과 인권을 침해하는 폭력인가, 피해자가 신체적 고통이나 모욕감을 느꼈는가, 그런 관점에서 사건을 바라봐야 한다.

  현재 개념상 아동학대는 어린이․청소년의 ‘정상적 발달’을 저해할 수 있는 행위라고 규정되고 있다. 그런데 이 ‘정상적 발달’이라는 것은 무엇일까? 소극적으로 해석한다면 눈에 띄는 신체 손상이나 질병 없이 자라는 것일 터이다. 그러나 폭력을 경험하고 폭력에 우호적인 성격이나 공격성을 가지게 되거나, 차별과 폭력을 내면화하게 되거나, 인격의 존엄성을 짓밟히는 경험을 하는 것은 비정상적인 것이 아닌가? 우리 사회가 어린이․청소년이 인간과 인권에 대한 존중을 가지고, 비폭력적이며 자유로운 사람으로 자라게 하는 것을 ‘정상적인 발달’의 목표로 삼는다면, 체벌은 충분히 ‘정상적 발달’을 저해할 수 있는 행위, 곧 학대라고 판단할 수 있다.

  사실 의학적인 영역에서든 교육학적인 영역에서든 체벌이 부작용이나 위험이 크고, 기대할 만한 효과가 별로 없다는 연구 결과는 교과서적인 이야기이고, 상식이 되어 있다. 그럼에도 체벌이 사라지지 않고 있는 것은 그것이 손쉬운 방법이고, 어린이․청소년이 그만큼 우리 사회에서 존중받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어린이․청소년에 대한 폭력에 우호적인 우리 사회 속에서, 그리고 연대 없이 뿔뿔이 파편화된 관계 속에서, 어린이․청소년 당사자들도 자신에게 피해를 입히는 저들을 좀 때려주라며 서로를 손가락질하고 있는 모습도 볼 수 있다.(체벌에 찬성한다는 사람 중에 바로 자신이 체벌당하는 경우를 상정하는 경우는 거의 보지 못했다. 대개 다른 누군가에게 체벌을 해달라는 것이었지.) 체벌은 인권침해일 수밖에 없을 뿐더러 다른 면에서도 정당성을 찾아보기 힘들다. 이런 체벌 문제에 대해 우리 사회가 어떤 조치를 취하느냐 하는 것은, 이 사회가 어린이․청소년을 어떻게 대우하고 있는지, 그리고 우리가 어떤 세상, 어떤 사람들이 사는 사회를 만들고 싶어 하는지를 가늠할 수 있는 지표가 될 것이다.



Posted by 공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