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어가는꿈2018.07.11 18:14



현장과 언어 사이에서

내가 인권운동사랑방과 처음 연을 맺은 것은 2006년의 일이었다. 인권운동사랑방에서 마련한, 청소년인권운동의 진로를 모색하는 워크숍 자리였다. 워크숍의 결과 '청소년인권활동가네트워크'가 만들어졌다. 청소년인권활동가네트워크는 지금의 청소년인권운동이 자랄 수 있도록 흙을 갈고 거름을 주는 역할을 했다. 이 모든 과정에서 인권운동사랑방은 때로는 공간을 제공해주었고 때로는 입장을 밝히고 운동론을 정제할 수 있는 지면을 제공해주었다. 그 무엇보다도 운동에 함께한 인권운동사랑방 활동가들이 가장 든든한 존재였음은 말할 것도 없다.(그때 청소년인권활동가네트워크에 함께했던 인권운동사랑방 교육실 활동가들은 현재는 '인권교육센터 들'에서 활동하고 있다.)

인권운동사랑방 활동가들은 인권 문제의 현장에 가서 연대하고 몸으로 부딪히기도 했고, 인권 문제에 대한 보고서나 이론서를 읽고 개념을 정리해서 소개하기도 했다. 인권의 문제의식으로 사회 현상이나 정책을 살피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알게 해주는 성명이나 논평을 냈다. 나는 인권운동사랑방 활동가가 아니었지만, 인권운동사랑방 활동가들과 같이 활동하면서 또는 인권운동사랑방의 운동을 보고 듣고 모방하면서 인권운동이란 무엇인지를 배우고 익혔다.

사실 인권운동사랑방 같은 인권단체가 의외로 얼마 없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은 한참 나중 일이었다. 나는 한 2-3년은, 인권운동사랑방 같은 조직과 문화(대표가 없는 운영 체제, 활동가 사이의 비교적 평등한 관계, 국가 지원을 받지 않는 것 등)가 인권운동에서 당연한 것인 줄 알았다. 그런데 아니었다. 아마도 오늘날 인권운동계에서는, 인권운동사랑방의 원칙과 문화에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받은 단체들도 적지 않으리라.

인권운동사랑방은 인권의 지평을 넓히고 들리지 않던 이야기를 들리게 만들었다. 청소년인권운동도 그 한 예였고, 노숙인-홈리스 문제에 대해 계속해서 연대하고 활동을 하고 주거권 개념을 제기한 활동도 있었다. 과거에는 감옥인권 문제를 다루었으며, 북한인권 문제를 '한반도인권'이라는 이름으로 고민하고 이야기했다. 한국 사회에서 아직 낯설었던 '사회권'을 공부하고 적용하며 더 풍부하게 만들었고 차별금지법 제정 운동에도 함께했다. 경찰 폭력에 대응하고 집회의 자유를 지키기 위해 싸우고, 노동자들의 권리를 위해 싸우는 등 인권단체로서 당연한 일도 물론 해왔다.

나에게 인권운동사랑방의 인권활동가들은, 자칫 추상적이고 어렵고 멀게 느껴질 수 있는 '인권'의 언어를 현장의 문제와 연결하기 위해 부단히 움직이는 사람들이었다. 그 활동은 우리 사회에서 차별과 폭력에 노출된 사람들에게 자신의 문제를 이야기할 수 있는 언어가 되어 남았고, 변화로 이어졌다.



계속 넓어지고 나누어온 단체

1993년 꾸려진 인권운동사랑방이 한국 사회 인권운동의 역사에서 대단히 중요한 위치에 있는 유서 깊은 단체임은 분명하다. 그럼에도 인권운동사랑방은 그렇게 유명하지도 않고 그렇게 풍족하지도 못하다. 인권운동사랑방이 스스로 명성과 자원을 얻는 방식으로 운동해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인권운동사랑방의 특징이라고 할 만한 것은 계속 '분열'해왔다는 것이다. 인권교육을 인권운동으로서 처음 인식하고 활동해왔던 인권운동사랑방 교육실은 '인권교육센터 들'이 되었다. 국제인권 문서를 번역하고 '진보적 인권운동'의 이론을 만들어온 부설 인권연구소는 '인권연구소 창'이 되었다. 인권운동사랑방이 주관했던 서울인권영화제도 별도의 단체로 독립하였다. 이는 인권운동사랑방이 자기 조직을 키우기보다는 인권운동을 계속 넓혀 나가는 것을 원칙으로 운영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 인권운동사랑방이 후원 행사를 한다. 내가 알기론 25년의 역사 속에서 두 번째인가 세 번째 후원 행사로, 드문 일이다. 매년 후원 행사를 하면서 단체를 운영하는 시민사회단체들도 흔하다는 걸 생각해보면 놀라운 일이기도 하다. 그만큼 소리소문 없이(?) 활동해온 인권운동사랑방의 성격을 알 법한 일이기도 하고.

리워드에 박힌 이 문장들이 눈에 들어온다.

"함께 살자. 함께 싸우자. 함께 지키자."


함께해, 주시길.



https://tumblbug.com/sarangbang


Posted by 공현
지나가는꿈2018.05.02 20:33

나이 서른의 청소년운동 활동가



어쨌건, ‘청소년’이라는 말에는 따라다니는 아우라 같은 것이 있습니다. (물론 현실에서는 ‘청소년계’라는 이름으로 청소년지도사/청소년복지사/청소년수련시설 등의 직능단체 집합이 불려나오고 있긴 합니다만….) 어리고 혹은 젊고, 신선해야 할 것 같은 느낌이 없지 않지요. 비록 우리가 청소년운동은 청소년 당사자(10대 혹은 0대)만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라는 합의를 만들었다고 하더라도, 여전히 고령의 청소년운동 활동가라는 것은 어색하게 느껴지는 맛이 있습니다.

과거에 고등학생운동이나 청소년운동을 했던 분들 중 몇몇은 그런 인식이 더 강한 것 같기도 합니다. 제가 《인물로 만나는 청소년운동사》를 쓸 때 인터뷰를 했던 어느 분은 청소년기본법이 만 24세까지를 청소년으로 정하고 있으니, 자신은 만24세까지만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말했습니다. 80년대에 고등학생운동을 했던 어느 분은 지난해에 저를 가리켜 “청소년운동을 돕고 있는” 사람이라고 소개하시더군요.


-
본론으로 들어가면, 제가 1988년생이니까 올해에 만 서른 살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건 좀 새로운 국면이라는 막연한 느낌이 있습니다. 뚜렷한 기준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20대이면서 청소년운동의 활동가인 것과는 좀 다른 느낌입니다. 그동안 청소년운동에 30대 이상의 활동가들이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10대 때 청소년운동을 시작해서, 불가피한 경우 외엔 거의 휴지기 없이 쭉 활동을 해서 30대가 된 활동가는, 제 선대 활동가들 중에서는 손에 꼽을 만합니다. 청소년운동을 하면서 매 국면마다 새로운 길을 가고 있다는 생각을 해왔지만, 저라는 한 활동가의 삶에서도 이건 새로운 미지의 영역이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법적인 성인이 되었을 때부터 청소년이 아닌데 청소년운동을 왜 하느냐는 질문을 셀 수 없이 들어왔지만, 제가 청소년운동의 주체라는 것을 의심한 적은 한 번도 없었습니다. 비청소년이지만 청소년운동이라는 한 사회운동이자 직무의 종사자로서 ‘활동가’라고 생각하며 살아왔습니다. 청소년운동에서 비청소년이면서 운동에 대해 당사자성과 전문성을 가진 주체들은 중요한 존재라고 생각합니다. 청소년운동론을 기술한다면 반드시 언급해야만 하겠죠. 저는 다른 활동가들도 저의 이런 생각과 믿음을 공유하길 바랍니다.

그럼에도 무엇이 문제인가 하면, 첫 번째는 시대적·사회적 거리감의 문제가 있습니다. 현재 청소년인 사람들의 경험과, 제가 청소년일 때 경험했던 바 사이에 아무래도 차이가 점점 더 커질 테지요. 그리고 제 자신이 아무리 신경쓰지 않는다 하더라도 나이주의 사회에서 청소년은 제가 나이를 먹을수록 저를 대하기 더 어려워 할 테고, 사회적으로도 점점 더 제게 ‘청소년활동가’ 혹은 ‘청소년운동 활동가’라는 말을 붙이기 어색하게 느낄 것입니다. 뭐, 최근에도 ‘요즘 청소년들과는 말이 더 안 통하는 문제가 있지 않은가’ 하는 종류의 질문을 몇 차례 받았는데, “저는 청소년이었을 때도 제 주변의 다른 청소년들을 너무나 이해할 수 없었기 때문에 지금이나 그때나 별 차이는 없습니다.”라고 답합니다만, 아무래도 그 말이 충분히 이해받기는 쉽지 않을 것 같습니다.

두 번째로는 저의 경제적 위치의 문제겠네요. 저에게 청소년운동의 활동가로서 먹고살 길을 좀 제시해달라는 요구도 받았던 적이 있지만, 결과적으로 저는 거기에는 실패했고, 지금은 운동단체인지 출판사인지 살짝 애매모호한 곳에서 일하면서 생계를 꾸려가고 있습니다. 제가 생계를 꾸릴 수 있는 임노동을 해야겠다는 압력을 느낀 것은 제 나이는 서른 살에 가까워져 가고, 저의 부모님의 나이는 예순 살에 가까워져 가는 현실이 당연히 크게 작용했습니다.(특별히 30대인데 부모한테 손 벌리는 건 부끄럽다는 그런 건 아니고, 부모님의 은퇴 시점과 건강 문제 등을 고려할 때 걱정스러운 점들이 늘어난 거죠.) 이제 저는 무언가 서류를 꾸밀 때 직업란에 “출판편집자”라고 쓸지, “시민단체활동가/인권활동가”라고 쓸지 고를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것이 다른 청소년운동 활동가들에게 참고가 될 만한 삶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2017년 이전에 비해 제가 살아가는 방식이 바뀌고 정착된 건 맞지만요.


-
‘30대의 청소년운동 활동가’가 된 것을 부정적으로만 생각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저 이런 존재로서 나는 어떻게 활동하고 어떻게 살까, 또 사람들은 이런 존재인 나를 어떻게 대할까 흥미진진한 일입니다. 20대 초반에 ‘비청소년인 활동가’로서 받아들여야 했던 질문과 시선들을 다 받았다고 생각했는데, 30대는 또 다르네요. 그러니까 사실 제가 그동안 헤쳐왔던 건 ‘20대인 청소년운동 활동가’가 받아왔던 것일 뿐인 겁니다. 이 어찌나 나이주의적인 사회인지.

저 말고도 청소년운동 경력 10년차를 넘기고 있는 활동가들, 청소년운동에서 활동을 하다가 생계를 위해서든 자신의 운동에 대한 비전 때문에든 다른 운동단체로 이전한 활동가들은 속속 나오고 있습니다. 오래 전부터 생각하던 거지만 청소년운동을 하다가 활동가로서 살지는 않더라도 여러 직업을 가지고 그 직업에서 할 수 있는 방식으로 청소년운동을 지원해주는 사람들을 기대해볼 수도 있지 않을까요? 그런 관점에서 청소년운동 주체들의 진로에 대해서 단체가 챙기는 것도 부수적인 활동이긴 할 것입니다.

정작 청소년운동을 전업으로 하는 활동가의 자리는 여전히 대부분의 단체에서 만들지 못했거나, 만들어낸 일부의 단체에서도 취약하기만 한 것도 현실입니다. 그런 자리를 만들어내는 건 사실 어느 한 활동가 개인의 진로나 노력에 의해서가 아니라, 운동 전체의 자원과 역량, 그리고 그런 자리를 만들어낼 수 있을 정도의 규모를 가진 조직을 만들어냄으로써 가능한 일입니다. 따라서 ‘청소년운동으로 먹고살 수 있는가?’라는 질문은 ‘먹고살기 충분한 돈을 줄 수 있는 단체를 꾸릴 수 있는가?’라는 질문으로 바뀌어야 합니다. 프로젝트 지원금이나 자산가의 호의에 의존하는 불건전한 재정 구조를 만들 게 아니라면 말이지요.

가장 먼저 떠오르는 건 역시 대중조직 건설이고요. (웃음) 두 번째로 떠오르는 건 저와 같은 나이 들고 나름 돈을 벌며 사는 활동가 및 전 활동가들이 무언가 역할을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들 20명, 30명이 모이면 상근활동가 하나를 못 지탱할까요? ‘청소년운동을 했던 사람들’에게 과도한 기대를 하는 것은 저의 몹쓸 버릇이지만 아마 40살 50살이 될 때까지 이 버릇은 고치지 못할 것 같습니다.

어쨌건, 저는 그렇게 나이 서른의 청소년운동 활동가는 어떤 존재로 생각될 것이고 또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 걸까 생각하며, 청소년운동을 시작한 지 13년째의 5월을 맞이하고 있습니다.

Posted by 공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