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것같은꿈

무엇이 문제였고, 어째서 그렇게 했는지

공현 2022. 3. 14. 01:34

강민진 사태가 공개, 공론화되고 청소년인권운동연대 지음에서 비판 및 사퇴 요구 성명을 발표했을 때 접했던 반응 중 이런 것들이 있었다. ‘나도 청소년인권운동 하다가 그만두면 저렇게 비판받는 거냐, 부담스럽다’, ‘활동하다가 다른 직업 가지거나 소속 옮길 수도 있는 거지, ?’, ‘사이가 틀어졌다고 사퇴 요구까지 하는 건 심하지 않나…….

이런 반응을 보고서, 어떤 사람들은 참 내용을 꼼꼼히 읽지도 않고 내용을 정교하게 따져보지도 않는다는 생각이 듦과 더불어, 사적인 것과 공적인 것의 기준이 흐릿해진 시대, 정치적 책임에 대한 공통 감각이 없는 시대라는 한탄이 나왔다. 타인의 복잡한 맥락을 이해하는 문학적 상상력’(마사 누스바움)이 모자란 채 상투적이고 단순한 틀로 이해하려 드는 거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이 사안의 상황-맥락을 헤아리려기보다는, 그냥 익숙한 틀(개인 자유 대 단체 규율이라든지, 감정적 보복이라든지)로만 파악하는 경향이 보였기 때문이다.

내 습성 중 하나가 선택과 행위의 정당성과 이유를 알고리즘 내지 각각의 조건들로 나누어 생각하고 정리하는 것이다. 몇몇 동료 활동가 역시 이런 식으로 정리한 내 의견을 알고 싶다고 했기에 간단히 적어본다.

여기에서 일단 전제는 만일 청소년인권운동의 활동가로서 제도권 정당으로의 진출을 결정한 것이었다면, 조직적 판단과 결정에 의해야 했다는 것이다. 조직적 판단에 의한 것이 아니란 것에서 일단 그 행보에는 문제점이 있었고, 이는 20197, 8월 지음의 회의에서도 당사자를 포함하여 합의한 바 있다. 그러므로 애시당초 활동가로서 결정한 것이 아니었음을 확인해두고, 한 개인이 운동을 그만두고 원내정당의 정치적 지위로 이동하였다는 사태의 결말로부터, 그 경위에 비추어 문제점 각각과 그에 따른 나/우리의 합당한 대응을 제시한다. 사실 이 이야기는 20203월 당시에도 어느 정도 단체의 입장문이나 내가 개인적으로 발표한 글에 담겨 있는 내용인데, 잘 전달하기 위해 이번에 좀 더 알아보기 쉽게 정리한 것이다.

  배신감이 들고 개인적으로 관계가 안 좋아질 것인가 공개적으로 비판할 것인가 사퇴를 요구할 것인가
본인이 새 단체를 만들자고 주도적으로 제안하고 결의를 모아 만들던 상황에서 변심(*정치적 지위가 아닌 직업 선택) × ×
연대체 대표직을 맡고 있던 중 운동 경력을 내세워 정치적 지위로 영전 ×
운동 경력을 활용하여 영전하는 과정에서 동료들에게 단체와 운동을 우선하겠다는 등의 약속을 했다가 어김

 

 

새 단체를 만들자고 제안하고 본인이 제안하고 결의를 모은 상황에서...

청소년인권운동연대 지음은 공식적으로는 쥬리(강민진)와 공현()이 청소년인권운동의 활동가조직을 만들자고, 대중조직추진모임(청소년인권연대) 무산 이후 적극 제안하여 시작되었다. 그 전신인 대중조직 추진모임 당시에도 쥬리는 처음 운을 뗀 구성원 중 하나였다. 그리고 청소년인권운동연대 지음을 준비하고 논의하는 과정에서 우리는 이 단체가 높은 수위의 결합을 상호 요구하는 활동가 조직임을 결정했다. 쥬리는 다른 활동가들에게 지음을 1순위로 우선해달라, 자리잡기 전에 떠나지 말아달라는 요구를 여러 차례 말했고 다른 이들도 거기에 대체로 공감했다.(이는 활동 주체가 불안정한 청소년인권운동에서도 지음은 그런 불안정성을 극복하고자 하는 게 주된 문제의식 중 하나였기에 어쩌면 당연한 요구였다.) 나는 지음에서 단체 준비 토론을 하던 그 1년여의 시간 동안 우리가 꿈을 모아서, 공동의 전망을 가지고 새로운 단체를 함께 만들어가기로 약속을 맺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정식 출범도 하기 전에, 단체를 처음 제안했던 사람이 그만두겠다고 한다면? 배신감을 느끼고 충격을 받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만일 쥬리가 단순히 개인적 진로 변경으로 변호사 같은 걸 하겠다고 활동을 그만둔다고 했더라도 동료들은 충격받았을 거라고 생각한다.(쥬리는 종종 활동을 하느라 변호사, 기자 같은 직업을 못 가져 억울하다란 말을 해서 주변 활동가들을 당황시키기도 했는데-) 생계곤란이나 건강문제 같은 동료들이 양해할 만한 어쩔 수 없는 사정이 있는 경우가 아니라면, 배신감을 느끼고 관계가 틀어지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다.

갈등의 막바지 무렵 나는 다른 사람들에게 이럴 거면 그러지 말았어야 하고, 그랬으면 이러지 말아야지.”라는 말을 몇 번 하곤 했다. 그런 자리 제안을 받았다고 운동을 그만둘 거였으면 새 활동가 조직 같은 걸 주도적으로 만들어선 안 되었고, 자신이 조직을 제안해서 만들었으면 그 이후에는 그렇게 그만둬선 안 되었다. 운동이기에 짊어지는 정치적 책임도 있겠지만, 그건 다른 사람을 꿈꾸게 만들고 꿈을 공유한 사람이 져야 할 일반적 책임이기도 하다. 꼭 운동단체가 아니어도 말이다.

상투적인 예로 기업에 빗대 이야기하면, 의기투합하여서 스타트업이나 공동의 창업을 시작했는데 처음 제안한 사람이 단순 변심으로 정식 시작도 하기 전에 그만둔다면 동업자들이 화를 내고 욕하는 것은 충분히 그럴 만하지 않은가? 심지어 그것이 그 기업의 노하우와 자원을 가지고 더 큰 대기업에 스카웃되어 가는 상황이라면 더더욱 문제다. 이런 상황을 살피지 않고 여기에 대고 개인이 자리를 옮기는 건 자유인데 왜 쿨하게 보내주지 않느냐라는 식으로 말하는 것은 오히려 한쪽에는 자신의 행적에서 비롯된 책임을 부당하게 면제하고, 다른 한쪽에는 관용과 감정 억제를 부당하게 요구하는 것이다.

하지만 오해해선 안 될 것은, 그렇다고 해서 그것이 공개적으로 비판받거나 문제 삼을 만한 사안은 아니라는 것이다. 그런 개인적 변심은 동료들에게는 배신감을 느낄 문제이지만 단체 공식 채널로 비판하거나 다른 이들이 공개적으로 알고 판단해야 할 공적 성격의 문제가 아니다. 그냥 그 활동가가 운동이 힘들어서이든 생각이 바뀌어서이든 활동을 그만두겠다고 하면, 그게 뭐 단체에서 어떻게 할 일이겠는가. 상황에 따라 동료들이 서운해하거나 배신감을 느낄 수야 있지만 말이다. 공적 비판에 이르게 된 이유는, 그렇게 이동한 곳이 공적 성격이 있는 제도권의 정치적 지위였으며, 그 이동의 과정에서 청소년인권운동의 경력과 지위가 발판으로 쓰였기 때문이다.

 

연대체 대표직을 맡고 있던 중 운동 경력을 내세워 정치적 지위로 영전한 문제

쥬리는 청소년인권운동연대 지음의 담당자로서, 촛불청소년인권법제정연대의 공동집행위원장을 맡고 있었다. 촛불청소년인권법제정연대의 대표자로서 청소년 참정권 운동, 학생인권법 운동 등을 한 것이 정의당에서 그를 영입한 계기이자 주요 이유였다는 것을 부정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리고 운동을 대표하는 연대체의 대표자 역할을 맡고 있던 활동가가 그 운동 경력을 내세워 영전한 것에는 크게 두 가지 문제되는 점이 있다.

첫 번째는 근본적인 문제로, 개인이 운동의 경력을 활용하여 제도권 정치로 진출하는 것이 전혀 바람직하지 않은 일이라는 것이다. 이런 사건은 운동의 건강성과 독립성을 해치고, 운동이 표방한 가치에 대한 신뢰를 깎아먹는 것이다. 그렇기에 이는 좋은 사회운동을 만들기 위해 지켜야 할 활동가 규범에 반한다. 활동가로서 운동의 연장선상에서 제도권 정치 내 역할을 하고 싶었다면 단체에서의 논의와 판단에 따라 결정이 이뤄져야 했다. 활동가를 그만두고 정치인이 되고 싶은 것이었다면, 활동가로서 갖고 있는 직책과 경력을 내세우며 직행해선 안 되었고, 다른 경로를 밟아야 했다.

두 번째는 보다 구체적인데, 단체의 담당자로서 연대체의 공동집행위원장으로서 이 운동을 책임지고 있던 사람이 한창 운동의 도중에 이탈한 과정의 문제이다. 당시는 국회에서 선거권 연령 하향을 포함한 법 개정안이 패스트트랙에 올라가 있었고 운동이 대단원쯤 되는 국면에 있었는데, 주요 역할을 맡고 있던 쥬리가 갑자기 사임하게 되었기에 생긴 당혹감은 없을 수 없었다.(지음에서 당시 아름다운재단 지원 사업 심사가 진행 중이었기에 이로 인해 생긴 정치적 부담이나 혼란도 컸지만 다소 특수하고 모호한 문제이니 자세한 이야긴 생략하겠다.) 그 이후 언론 등에서 청소년 참정권 인터뷰를 할 때, ‘촛불청소년인권법제정연대의 쥬리 활동가가 아닌 정의당의 강민진 대변인으로 인터뷰에 응하여서 단체 안에서 비판이 나오기도 했다. 촛불청소년인권법제정연대의 활동가로서 인터뷰를 하거나 그게 아니면 다른 활동가한테 넘겼어야 했다고. 운동이 한창 진행 되는 와중에 그 운동의 대표적 인물을 정당이 영입함으로써 운동의 성과 및 이미지를 가로채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상황이었다.

촛불청소년인권법제정연대는 2020년에 가졌던 평가 워크숍에서, 운동에서 대표성 있는 인물이 공직/정당으로 조직 논의 없이 이동했을 시 사후 조치로 “단체의 독립성이 훼손될 수 있고 한 인물이 단일하게 대표될 위험성을 사전에 방지하는 차원에서 연대체의 입장을 정리하는 문서 발표를 고려할 수 있다. 이는 특정 개인을 탓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개인의 선택과 운동과의 ‘분리’를 위함이다.”라는 결정을 명문화한 바 있다. 낮은 수준이지만, 최소한 이러한 경우 운동/단체가 그 개인의 행보에 대해 비판하는 입장을 발표함으로써 선을 그을 필요가 있다는 내용에는 합의가 된 것이다.

그리고 난 이에 더해, 얼마든지 그 개인을 탓하기 위한입장을 발표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잘못을 잘못이라 지적하고 비판해야만 우리 운동에서 지켜야 할 가치와 규범, 바람직한 운동 방식에 대한 인식이 공유될 수 있기 때문이다. 개인이 운동 경력을 활용하여 제도권 정치로 진출하는 경우, 특히나 대표성-책임성 있는 직위를 맡았다가 그렇게 하는 경우에는 단체가 이를 공개적으로 비판하는 것은 정당하며 필요한 일이다.

그렇다고 해서 직 사퇴를 요구할 일이었는지 의문을 품을 수도 있다. 타당한 의문이다. 사안별로 다르긴 할 테지만, 대표직을 맡았다가 부적절하게 제도권 정치로 직행한 경우, 정치권에서 맡은 직을 물러나라고 요구하는 일은 잘 없을 듯싶다. 개인적인 제도권 정치 진출이 운동과 관련 없는 개인의 선택일 뿐이며, 그 개인의 정치 행보와 운동 사이에는 앞으로 아무 관련이 없을 것임을 천명하고, 활동의 성과를 사유화, 전용하는 것이 되어선 안 된다고 지적하는 정도로 충분할 것이다. 강민진 사태에서 사퇴 요구는 추가로 다른 이유가 덧붙여져서 나온 것이다.

한편, 이러한 짓을 저지른 전 활동가 개인과 다른 활동가들 사이의 관계가 나빠질 것인지에 대해선 명확하게 답하기 어렵다. 이는 개개인의 교우 관계 성향이나 성격, 그 관계의 구체적 맥락에 따라 달라질 것 같다. 일단 나 같은 경우는 운동의 가치를 위배하는 활동가에게 좋은 감정을 가지기도 어렵고 상당히 불쾌하게 바라볼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그런 전 활동가를 공적으로는 비판하되 그 사람과 사적으로는 친분을 유지할 활동가들도 많다. 무엇이 옳다 그르다 할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③ 영전 과정에서 신뢰를 얻기 위해 동료들에게 단체와 운동을 우선하겠다는 등의 약속을 했다가 어긴 것의 책임

청소년인권운동연대 지음에서는 2020228일 강민진을 비판하는 입장을 발표하며 정의당 대변인직에서 사퇴할 것을 요구했다. 이런 요구가 너무한 것 아니냐는 따위의 이야기가 간혹 들려왔으나, 나는 거기에 반문하고 싶었다. “아니, 그동안 활동하면서 대통령이니 국회의원이니 교육감이니 시장이니한테는 사퇴하라고 요구해본 적 없어요?”

에서 말했듯, 활동가 규범을 훼손하는 부적절한 행보를 거쳐 정치적 지위로 영전하고 공직 등을 맡았다고 해서 단지 그것만으로 사퇴하라고 요구를 할 일은 많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본인이 약속한 바, 자신이 그런 행보를 보이는 것을 정당화하기 위해 공약(公約)한 것을 지키지 않고, 납득할 수 없는 이유로 약속을 저버린다면 이에 대해 책임을 지라고 요구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리고 그 책임을 지는 방식에는 사퇴도 포함될 수 있다.

강민진은 정의당 대변인을 맡는 과정, 내부 갈등과 논란의 과정에서 지음에서 크게 두 가지를 약속했다. 하나는 대변인 임기가 끝난 뒤로는 지음에서 청소년인권운동을 계속 책임질 것이라는 약속이었고, 다른 하나는 대변인직의 진퇴를 포함하여 활동과 거취를 지음에서 같이 논의하여 결정하겠다는 약속이다. 후자의 경우는 대변인직을 맡게 된 과정에 문제가 있었음을 인정하면서 나온 것이었다.

그러면서 그는 지음의 동료 활동가들 등의 반대와 비판 등을 무마하고, 자신을 믿어 달라고 이야기했다. (공현)가 이게 뭐가 문제인지를 짚는 내용으로 유감이라는 입장 발표라도 활동가들이 해야 하지 않겠냐고 이야기하자, 그 사람은 그러면 자기는 활동 못한다고, 그러지 말아달라고 부탁해왔다. 그러나 결국 강민진은 이 약속을 전부 지키지 않았고, 지키기 위해 지음에서 공식 요구받은 것마저 거부했다. 대변인직을 수행하면서 청소년운동/지음의 입장과 배치되는 언행을 보여 정정을 요구받기도 했으나 잘 수용하지 않았다. 이와 같이 자신이 공적 직위를 맡으면서 동료들에게 약속한 것을 파기하고 지키려고 노력도 하지 않는 이에게 약속을 어기는 것에 대해 책임을 묻는 것은 전혀 이상할 게 없는 일이지 않은가.

우리는 대통령이 대통령으로서 지켜야 할 원칙을 훼손한다고 생각할 때 수도 없이 사퇴하라고 외치곤 했다. 국회의원이, 공당 대표가 공약을 파기하고 약속을 지키라는 요구를 귓등으로 흘릴 때면 피켓을 들고 약속을 지키라고, 약속을 안 지킬 거면 사퇴하라고 말한 적도 있다. 나는 혹자에게서 강민진에게 어떻게 정당 직위에서 사퇴하란 요구까지 하냐는 힐난을 들을 때면, 도대체 그런 상황과 본질적으로 다를 바가 무엇이라고 여기는지 궁금하다. 공적 지위를 가진 사람이 약속을 지키지 못한 것에 부끄러워하며 직위를 내려놓는 염치를 갖고 있길 바라는 것은, 동료 활동가는 물론 동료 인간으로서 충분히 가질 만한 소망이다.(덧붙여, 나는 대통령이나 교육감 등에게 그런 요구를 내가 내걸 때면 정말로 사퇴해야 한다고 생각해서 그렇게 했지, 과장 표현으로 그렇게 한 적은 없다. 지음의 요구가 강민진의 사상/결사의 자유를 침해한다는 식의 코멘트를 본 적이 있는데, 그럼 사람들이 대통령이나 국회의원 사퇴를 요구하는 것이 그들의 피선거권이나 공직담임권, 직업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인지 부디 돌이켜 생각해보시길.)

그리고 이렇게 동료들에게 자신을 믿어달라며 한 약속을 최악의 방식으로(‘단체를 나가겠다, 그러면 단체에서 대변인을 사퇴하라고 요구받아도 따르지 않아도 되니까’) 깨뜨린 사람에게는 동료들은 배신감이 들 수밖에 없고 개인적 관계도 좋게 남을 수 없다.

결국 함께 활동가 단체를 만들자고 해놓고 출범도 전에 그만두고, 부적절한 시기에 부적절한 방식으로 개인적 욕망을 좇아 제도권 정치로 영전하며, 자기를 믿어달라고 약속한 바를 깨기까지 한 것은 강민진 본인이 자초한 것이다. 우리는 다른 무엇보다도 강민진에게 바로 자신이 약속하고 공언한 운동의 가치를 존중할 것을, 그리고 자신의 언행과 잘못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함을 이야기했다.

 


세 가지의 문제 상황, 혹은 이 사건에 내재된 세 가지 문제 층위에 따라서 각각 어떤 면에서 잘못인지, 어떤 대응이 적절한지를 정리해보았다. 만에 하나라도 이 사건을 지음 활동가들 몇몇 사이의 감정적 문제라는 식으로 생각하고 있었거나, 공개적으로 비판까지 할 문제가 아니고 조용히 보내주면 되지 않냐거나, 사퇴 요구는 너무 나간 것 아니냐는 식의 생각을 갖고 있던 사람들이 이 글을 읽고 뭐가 문제인지 이해하게 되었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