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년운동'에 해당되는 글 41건

  1. 2017.05.05 18세 선거권과 청소년 참정권 7문 7답 (1)
  2. 2017.04.27 '실수'가 보여주는 것 (1)
  3. 2017.02.07 18세 고등학생은 빼자? 반복되는 해괴한 주장
  4. 2016.09.11 『인물로 만나는 청소년운동사』
  5. 2016.07.16 여기에 우리 편이 있었네? - 《심리학은 아이들 편인가》 (오자와 마키코)
  6. 2016.07.06 [나이주의와 청소년인권] 우리 사회의 청소년혐오
  7. 2016.06.23 [나이주의와 청소년인권] 청소년 억압의 뿌리, 나이주의를 발견하다
  8. 2016.03.24 [공현의 인권이야기] ‘소비자’의 권리를 넘어서
  9. 2016.02.18 [공현의 인권이야기] 청소년운동? 청소년‘인권’운동? 인권, 함께해서 좋지만 또 조금 부담스러운 그것
  10. 2016.02.09 [성명] 누리과정 예산 빵꾸나는 소리 좀 안 나게 해라~ - 무상교육은 인권이다! 정부는 교육재정을 책임지고 마련하라!
  11. 2015.10.12 [한글날 논평] 이게 한글이 아니면 두글이애오? 청소년 언어문화 그만 까새오
  12. 2015.08.06 청소년신문 요즘것들 제6호 2015.07.16.
  13. 2015.07.30 『대학거부, 그 후』 : 행복하냐고 묻기 전에
  14. 2015.03.09 청소년활동기상청 활기 소식지 활력소 제6호 (2015.03.07.)
  15. 2015.02.08 [인권오름] ‘2015청소년활동가선언’을 소개합니다
  16. 2014.11.24 아수나로 10주년을 앞두고, 재미로 쓰는 나의 아수나로 비하인드 스토리 (1)
  17. 2014.11.15 청소년운동에 영감을 줬던 페미니즘 입문서
  18. 2014.09.16 청소년신문 [요즘것들] 제2호 (2014.09.10.)
  19. 2014.04.21 삐삐롱수다킹, 할까말까 - 병역? 거부? (4/28)
  20. 2014.03.30 청소년활동기상청 활기 소식지 「활력소」 제1호 (2014.03.30.)
걸어가는꿈2017.05.05 14:25

 

 전에 아수나로 sns팀이 올린 7문 7답 내용입니다.




18세 선거권과 청소년 참정권 7문 7답

 청소년인권행동 아수나로 SNS팀



'18세 선거권'에 대해 많은 이야기가 되고 있어요. 18세 선거권은 왜 필요할까요? 또는 18세 선거권만 되면 청소년의 참정권이 보장되는 걸까요? 청소년인권의 관점에서 본 18세 선거권 문제, 카드뉴스로 만들어 봤습니다. 아수나로에서는 청소년 참정권의 문제에 대해 계속 목소리를 내고 활동하려고 해요.

 

1) 18세 선거권, 왜 지금 이야기가 나오지?
▶ 18세 선거권 주장은 꾸준히 있어 왔다. 2000년대 초에도 18세 선거권을 주장하는 청소년들, 시민단체들의 운동이 있었고 그 결과 선거권 제한 연령은 2005년 20세에서 19세로 완화되었다. 2016년 국회에도 18세 선거권 개정안이 여럿 올라가 있었다. 최근에 18세 선거권이 새삼 주목받는 것은, 2016년 겨울 촛불집회를 계기로 청소년의 참정권을 보장해야 한다는 문제의식이 커졌고 정치개혁 차원에서도 필요하다는 공감을 얻고 있기 때문이다.

 

2) 18세 선거권, 왜 논란인데?
▶ 만18세부터 흔히 사회에서 이야기하는 10대 청소년, 고등학생 등이 다수 포함되기 때문이다. 반대하는 이들은 만18세 중 일부는 '미성년자', '학생'이라 미성숙하고, 부모·교사 등에게 의존적이며, 공부를 해야 할 시기에 정치에 관심을 가져선 안 된다고 한다. 반면 18세 선거권 등을 찬성하는 이들은 청소년들이 선거권을 가진다는 것이야말로 의미있는 변화라고 주장한다. 청소년도 시민이며 정치에 관심을 가져서는 안 된다는 생각은 반 민주주의적인 편견이라는 것이다.
 

3) 18세 선거권이 당연한 거야?
▶ 민주주의의 역사는 참정권 확대의 역사이기도 했다. 선거권 등의 참정권은 인권으로서 확대되고 보장되어야 한다. 그리고 안정되고 현대화된 대의민주주의 국가들은 대부분 선거권 제한 기준이 18세이고, 더 기준이 낮은 곳도 있다. 한국의 18세들만 특별히 무능할 리도 없지 않은가. 그래서 18세 선거권으로 하자는 이야기가 많이 나오는 것이다. 꼭 18세만이 아니라, 실제로 16세 선거권, 15세 선거권 등을 시행하거나 이를 논의하고 있는 나라들도 있다.

 

4) 세금도 내고 군대도 갈 수 있는데 18세가 선거권이 없는 건 불공평하다던데?
▶ 참정권을 비롯한 인권은 의무를 이행했을 때 주어지는 대가가 아니라는 점에서 문제가 있는 논리이다. 인권은 의무에 우선하고, 이를 저울질할 수는 없다. 군인으로 복무하거나 세금을 내거나 결혼을 할 수 있을 만큼 성숙해서 선거권을 보장받아야 하는 것이 아니다. 청소년도 시민으로서 참정권을 가지고 있고, 이를 확대하고 실현하는 방법 중 하나가 18세 선거권인 것이다. 보편적인 청소년 참정권을 위해서라도, 권리를 '의무의 대가'나 '어른이 된 보상'처럼 생각하지 말자.

 

5) 18세 선거권이 되면 청소년에게 참정권이 보장된다고 할 수 있나?
▶ 만18세인 사람들 중 '10대 청소년'인 사람은 일부이다. 가령 당장 이번 5월에 열릴 대통령선거에서도 대략 11만 명 정도밖에 안 될 것이다. 18세 선거권만 이루어진다면 대부분의 청소년들은 여전히 참정권이 없는 상태에 처해 있게 된다. 그래서 18세 선거권만을 가지고 곧 청소년 참정권이 보장된다거나 청소년의 참여가 이루어진다고 말할 수는 없다. 하지만 청소년 참정권이나 선거권 제한 연령 기준 완화의 첫 걸음이라고 의미부여할 수는 있을 것이다.

 

6) 그럼 청소년 참정권으로 어떤 게 돼야 돼?
▶ 법적으로 청소년은 정당 가입도 하지 못하고, 선거운동(선거 때 어느 후보가 당선되거나 당선되지 않도록 발언하거나 행동하는 것 전부)도 할 수 없다. 또한 학교 규칙으로 청소년의 정치 활동이나 표현의 자유, 집회의 자유 등을 규제하는 경우도 많다. 이러한 법과 학교 규칙들을 고쳐야 한다. 무엇보다도 청소년은 정치를 하면 안 된다는 사람들의 편견이 먼저 바뀌어야 한다. 청소년들이 적절한 여가 시간을 가지는 등의 변화도 필요하다.

 

7) 18세 선거권이나 청소년 참정권이 이루어지면 뭐가 바뀌지?
▶ 18세 선거권이나 청소년 참정권이 된다고 해서 바로 많은 것이 바뀌지는 않을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청소년의 의견에 사람들이 좀 더 귀기울이고 청소년의 인권 문제를 좀 더 신경쓰게 만드는 계기는 될 것이다. 청소년을 평등한 시민으로 보도록 하는 긍정적인 변화의 시작이 될 수도 있다. 학교 규칙이나 정책이나 우리 마을을 바꾸는 등, 청소년들이 힘을 모으면 우리의 인권을 되찾고 사회를 바꿀 수 있는 가능성도 더 커질 것이다.

저작자 표시 비영리
신고
Posted by 공현
걸어가는꿈2017.04.27 19:24


문재인이 jtbc 토론회에서 홍준표의 "동성애 반대합니까?"라는 질문에 대해 "그럼요." "반대합니다." "좋아하지 않습니다." "합법화 찬성하지 않습니다."(심지어 문맥상으로는 '인정'하지도 않는다.)라고 발언한 게 시끄럽다. 구체적으로 뭐라고 했는지 갖고서도 말이 많아서, 동영상을 직접 보면서 받아 적었다. 아래와 같다.

홍준표 "그럼 군에서 동성애가 굉장히 심합니다. 군 동성애는 이 국방 전력을 약화시키는데 어떻습니까? 거기는?"
문재인 "예, 그렇게 생각합니다."
홍준표 "그렇죠? 동성애 반대하십니까?"
문재인 "반대하지요."
홍준표 "동성애 반대하십니까?"
문재인 "그럼요."
홍준표 "박원순 시장은 동성애 파티도 서울, 그, 그 앞에서 하고 있는데? 서울시청 앞에서?"
문재인 "서울 광장을 사용할 권리에서 차별을 주지 않은 것이죠. 차별, 차별, 차별을 금지하는 것하고 그것을 인정하는 거하고 같습니까?"
홍준표 "아니, 차별금지법이라고 국회 제출한 게, 이게 동성애 사실상 허용법이거든요? 문 후보 진영에서, 민주당에서 제출한 차별금지법인가 그게 하나 있는 게..."
문재인 "차별금지하고 합법화하고 구분을 못합니까?"
홍준표 "아니, 합법화가 아니고... 분명히 동성애는 그, 이제 반대하는 것이죠?"
문재인 "네, 저는 뭐, 좋아하지 않습니다."
홍준표 "좋아하는 게 아니고, 반대하냐고 찬성하냐고 물어보잖아?"
문재인 "합법화 찬성하지 않습니다."


  일각에서는 이것이 '문재인의 실수/실언'이라는 변명이 많이 나오고 있다. '동성혼에 반대한다' 내지는 '군대 내 동성애(혹은 성폭력. 어떻게 이 둘이 혼동되는지 미스테리하지만...)에 반대한다'라는 이야기를 하려는데 홍준표가 '동성애 반대하냐'라고 물으니까 대답하다 보니 표현이 꼬인 거라는 것이다. 문재인 선거운동 공보단장의 해명 역시 그런 식이다.


 

  문재인 선거운동본부가 4월 27일에 공식 발표한 입장도, 대략적으로 취지가 그런 건 아닌데 표현을 잘못했다는 논지란 점에서는 대동소이하다.

  물론, 문재인 후보 및 선거운동본부가 차별금지법 제정에도 반대하는 입장인 점 등 실질적으로 인권 문제에서 이해하기도 어려운 후퇴를 하고 있는 것은 그 자체로 비판받을 일이다. 그리고 설령 그것을 '실수'나 '실언'이라고 하는 해석을 받아들이더라도, 그 실수로부터 읽어낼 수 있는 것이 있다고 생각한다.


*


대선을 앞두고 교육운동 단체들이 모여서 대선 후보들에게 제안할 교육정책을 정리, 발표하기 위한 연대체가 만들어졌다. 그 연대체에서 나온 정책 제안을 보다가 놀랐는데, '18세 선거권 등 청소년 참정권 보장'은 주요 정책 과제로 들어가 있는데 정작 학교교육 문제에서 주된 의제인 학생인권 보장 등의 사안은 포함되어 있지 않았던 것이다. 하여 공개 원탁 토론회에서 이에 대해 문제제기하자, 그 연대체의 활동가이기도 한 토론회 사회자 '실수'였다고 했다. 최근에 촛불집회를 계기로 18세 선거권을 비롯해서 청소년 참정권 논의가 이슈화되어서 그걸 반영한 것이고 그러다가 학생인권 보장 등은 빠뜨렸다고...  내가 그 말을 듣고 반사적으로 들었던 생각이, '흠 그럼 뭐 가령 전교조 법외노조화가 이슈니까 단결권 보장만 넣고 교원의 정치적 자유나 학교 민주주의 같은 건 실수로 빼먹어도 됐을 텐데...'였다.


  실수였다는 말 자체를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뭐, 그래 아마도 실수였겠지. 그런데 그런 '실수'는 별도의 사건이 아니고 맥락과 배경과 이유를 가진 연속성 있는 사건이다. 실수가 일어난 맥락과 배경이 개인적이거나 우연적인 것이라면 쉽게 정정할 수 있단 점에서 차라리 다행인데, 집단적이거나 지속적인 거라면 더 문제다. 그러니까 '실수'를 그냥 실수라고 넘길 게 아니라, '실수'로부터 무엇을 읽어내느냐가 중요한 것이다.


  예컨대 그 연대체에 청소년운동 단체들은 참여하지 않았다는 점이 그런 실수가 생긴 중요한 배경이었다고 할 수 있다. 또한 교사/학부모들이 별로 탐탁지 않게 느끼는 직접적인 학생인권 사안을 넣기보다는 참정권을 넣고 싶어 하는 심리가 작용한 건 아닌가 의심할 법도 하다고 생각한다. (어쨌건 인권의 문제를 절차나 참여의 문제로 축소시켜 온 것이 학생인권운동이 싸워온 오랜 악습이고 사이비 인권 담론이다.) 어쨌건 교육주체 간 중요한 갈등의 축이었고 운동 의제이자 '학생인권조례' 등으로 정책 의제이기도 했던 학생인권 문제를 그들이 어느 정도로 경시하는지는 충분히 짐작할 수 있는 일이었다.


*


그러므로 문재인의 '실수'라는 것도, 도대체 어떤 실수인지, 왜 일어난 실수인지를 이야기해야 의미가 있다. 단지 '실수'라고만 하고 넘어가 버린다면 그것도 이 문제를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는 것이다.

  문재인 개인이 기독교도이기 때문에 동성애자 등에게 부정적인 의견을 평소부터 갖고 있어서 그랬던 것이라든지 등 여러 가지 해석이 가능할 텐데, 나는 개인의 신념보다도 오랜 역사를 가진 문재인과 민주당의 성소수자 및 차별금지 문제에 대한 불명확한 입장에 주목하고 싶다. 단순히 '동성애는 소수자의 문제이므로 찬반의 문제가 아니다'라는 식의 정답 맞추기를 요구하는 것이 아니다. 차별금지법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왜 필요한지 등에 대해서 제대로 입장도 갖고 있지 않고 막연하게 '차별에 반대한다'는 정도의 이야기만을 하고 있는 상황이며, 심지어 차별금지법조차도 오락가락하고 지금은 제정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밝히고 있다. '군대 내 동성애'라는 기괴하고 의미도 불분명한 조어를 계속 쓰고 있는 것만 봐도 얼마나 이 문제에 관심이 없는지 알 수 있지 않은가.


  토론회에서의 발언 한 번은 '실수'일 수도 있겠다. 그런데 그 실수가 보여주는 배경과 맥락은, 그냥 넘어갈 수 없는, 고질적인 문제이며, 그런 점에서 '실수'라는 말로 넘어갈 수 없다.

저작자 표시 비영리
신고
Posted by 공현
걸어가는꿈2017.02.07 17:56

오마이뉴스가 기사 제목을 좀 식상하게 달아놨다.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2283374


18세 고등학생은 빼자? 반복되는 해괴한 주장

[18세 선거권 논란 ③] 고3, 촛불은 OK 선거권은 NO? 이젠 바꾸자



"사실 18세 선거권은 (당연하게도) 단지 18세부터 선거권을 행사할 수 있게 된다는 뜻일 뿐이다. 18세 선거권이 이루어진다고 해서 청소년 전반이 정치에 참여할 수 있게 된다거나 청소년의 권리가 보장된다고 말할 수는 없다. 그럼에도 18세 선거권이 청소년인권의 문제로 생각된 이유는, 한국에서 규정하는 초·중·고등학생 및 미성년자 집단의 일부를 포함하게 되기 때문이다.

한국 사회와 한국의 교육제도는 10대 이하 '미성년자'들의 인권을 널리 침해해 왔다. 그런데 이처럼 인권을 부정당해 온 청소년들이, 그중 일부라지만 참정권을 가지게 된다는 것, 그것이 18세 선거권의 의미였고 가장 중대한 쟁점이었다. 현행법상 정당 가입의 권리도 선거운동의 자유도 모두 선거권자에게만 허용되기에 선거권은 전반적인 정치적 권리의 보장을 의미하기도 하는 것이다.

국제적으로 아동(child)·미성년자의 기준은 만 18세 미만으로 통용되고 있다. 반면 한국에서는 만 18세에서 19세까지도 아동·미성년자이자 중등교육 대상으로 보고 있다. 게다가 한국은 다른 현대화된 국가들에 비해 아동·학생의 권리 상황이 열악하고 이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도 부족하다. 그래서 한국에서 18세 선거권 주장은 더 큰 반발에 부딪히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한국적 특수성을 강변하며 18세 선거권에 반대하는 사람들의 주장은 일리가 있다고도 할 수 있다. 청소년인권은 안중에도 없는 주장이라는 점은 달라지지 않지만 말이다."

저작자 표시 비영리
신고
Posted by 공현
걸어가는꿈2016.09.11 15:38

1995년부터 청소년(인권)운동의 역사를, 참여했던 사람들과의 인터뷰를 통해 재구성한
『인물로 만나는 청소년운동사』가 나왔습니다.


많이 읽어주세요. 저와 둠코 님이 공저했습니다.


이런 분들께 추천합니다.

- 청소년운동과 청소년활동가들에 대해 알고 싶은 분들
- 과거에 청소년운동에 참여&관여했던 분들
- 앞으로 청소년운동을 하실 분들
- 학생인권조례 등이 만들어진 맥락과 역사가 궁금하고 조사해야 하는 분들
- 소수자 인권 운동이 만들어지고 발달하는 사례와 과정을 연구하고 싶은 분들


YES24  http://www.yes24.com/24/Goods/31090355?Acode=101

알라딘 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91320221





청소년 벗


인물로 만나는
소년운동사


저자  공현, 둠코
펴낸 곳  교육공동체 벗
발행일  2016년 9월 12일
정가  15,000원
쪽수  332쪽
책 크기 신국판(152×225mm)
ISBN  978-89-6880-027-6 (03300)
분류  사회과학 》 사회학





+ 목차


들어가는 글 | 시대를 바꾼 청소년들


1부 인간을 꿈꾸다


청소년운동의 여명기 | 김한울·나정훈
1998년 학생 인권 선언


특이한 청소년들, 세상에 말 걸다 | 박준표
2000년 노컷 운동과 2002년 선거권 운동


상처투성이 첫걸음이 남긴 것 | 장여진
2000~2001년 학생 인권 운동


2부 잃어버린 권리를 찾아서


부당함은 본능이 먼저 알지요 | 박정훈
2003~2004년 NEIS 반대·청소년 참정권 운동


자치의 시대, 청소년 정치를 고민하다 | 신정현·김종민
2004년 18세 선거권 운동


기억되지 않는 ‘우리의 촛불’ | 남궁정
2005년 내신등급제 반대·두발 자유 운동


3부 존재감 다지기
 
내 법인 듯 내 법 아닌 내 법 같은 너 | 조만성(따이루)
2006~2007년 학생인권법 제정 운동


청소년이 여기 있다는 걸 잊지 말아요 | 한지혜(난다)
2008년 촛불 집회·2010년 기호 0번 청소년 후보 운동


일제고사만 나쁜가요? | 윤가현(꽥쉰내)
2008~2009년 일제고사 반대 운동


학교의 중심에서 인권을 외치다 | 성상영(밤의마왕)
2007~2009년 경남 지역 학생 인권 운동


4부 진도 나갑시다


간도 쓸개도 빼 주고 얻어 낸 학생인권조례를 넘어서 | 전혜원
2010~2011년 서울학생인권조례 주민 발의 운동


날 도태시키지 않는 사회를 만들고 싶다 | 김동균(어쓰)
2011년 대학/입시 거부 운동


낮추자 아니, 내놔라! | 정재환(검은빛)
2012년 청소년 참정권 운동


나가는 글 | 청소년이기 때문에


청소년운동 단체 소개
청소년운동사 연표

 


저작자 표시 비영리
신고
Posted by 공현
흘러들어온꿈2016.07.16 02:39
심리학은 아이들 편인가?심리학은 아이들 편인가? - 10점
오자와 마키코 지음, 박동섭 옮김/서현사

《심리학은 아이들 편인가》 오자와 마키코 지음, 박동섭 옮김, 서현사, 2010 (2015년 2판3쇄)




"생명은 끊임없이 변화하는 법인데, 그 변화의 방식에 소위 과학적인 잣대를 들이대 어린 시기에는 월 단위로 변화의 양상이 측정된다. ‘생명의 변화’에서 ‘발달’이라고 말이 바뀐 순간에 삶의 모습은 왜곡되고, 축소되고, 경직되어버렸다. 생명에 가격이 매겨지고 합/불합격, 적응/부적응, 정/부정이라고 하는 시점에서 ‘상품화’가 이루어지게 되었다. 그에 따라 우열과 경쟁이 우리 의식에 착 달라붙기 시작하였다."(34쪽)


"논리성·합리성을 몸에 익히는 것을 ‘성숙’이라 이름 붙여 상위에 두고, 감정·직관을 ‘미성숙’이라 부르며 하위에 놓는 현대사회에서는 언어를 통해서 명쾌한 표현을 하지 못하는 사람의 주장은 상대해주지 않는다. 그 대표적인 존재가 아이다."(138쪽)


"법률은 아이를 한 사람 몫을 해낼 수 없는 사람으로 보호하는 부분에서는 충분히 배려하고 있다. 헌법 제27조 ③의 '아동은 혹사당해서는 안 된다.'와 같이. 그러나 '법 아래의 평등'에서 아이는 배제된다. 제14조에는 '모든 국민은 법 아래서 평등하고 인종, 신념, 성별, 사회적 신분에 따라서 정치적, 경제적 혹은 사회적 관계에서 차별되지 않는다.'고 명시되어 있지만, 연령에 의한 차별은 묵인된다.

즉 아이는 부모의 부속물로 취급되며 '모든 국민은'이라는 항목에 포함되는 평등한 존재가 아니다. 아이는 단지 보호되는 것이다."(158-159쪽)


"제멋대로인 아이, 건방진 아이, 아이답지 않은 아이라는 표현은 아이를 비난하는 대표적인 형용사이다. 그 정반대 쪽에는 ‘잘 참고, 순진하고, 아이다운’이라는 형용사가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그것은 곧 힘을 가진 어른에게 종속되는 아이의 이미지이다. 제멋대로라는 말은 자기중심적인 여자에 대해서도 언제나 던져진 비난이었다는 사실을 상기해보자. 제멋대로인 여성, 건방진 여성이라고 불리는 데 저항하면서 여성들은 자신도 한 명의 인간이라는 사실을 인정받는 것으로 되지 않았던가?"(160-161쪽)


"부모-아이 관계의 문제는 권력관계 문제라고 바꾸어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아이는 부모에게 양육되어 자라는 것이 현실이고, 그것은 어쩔 수 없이 아이를 약자의 위치에 두게 한다. 아이는 양육될 뿐만 아니라 어른에게 보호받고 싶다, 의지하고 싶다, 그리고사랑받고 싶다고 강하게 바란다. 자신이 살아남기 위해서 그것이 필요하다는 것을 아이는 몸으로 알고 있다."(173쪽)


"아이가 어른에게 의존하는 것은, 어른이 아이를 지배하는 것에 대한 일종의 거래이다."(230쪽)




어느 청소년인권 책에라도 나올 법한 문구들이다. 그러나 이 책을 쓴 사람은 일본의 임상심리학자, 오자와 마키코이다. 그의 책 《심리학은 아이들 편인가》에 나오는 문구들이다.


언젠가 읽어 봐야겠다고 벼르고 있던 책인데 실제로 읽어 보니 생각과는 많이 다른 책이었다. 나는 심리학, 특히 아동-청소년 대상 심리학을 비판적으로 반성하는 내용을 기대했다. 그러나 웬걸. 학문적인 이야기는 그리 많지 않다. 오히려 청소년인권, 청소년해방의 관점에서 심리학으로 표상되는 우리 사회의 청소년관-학교-가족 등의 문제점을 꼬집는다. 심리상담이나 심리테스트 등의 문제점도 이야기를 하고 있으나, 그 비판 안에서 느껴지는 관점은 훨씬 더 근본적이다. 우리가 청소년운동을 하면서 상상하고 만들어가고 있는 '청소년해방론'의 한 조각을 발견한 듯한 느낌이었다고나 할까?


책 서문에서 오자와 마키코는 심리학이 인간해방에 기여한다고 믿고 임상심리학자로서 일해왔지만, 실은 심리학이 얼마나 지배자 측의 기대에 맞춰서 역할을 해왔는지를 밝히지 않으면 안 되겠다고 느꼈다고 했다. 그리고 아동기의 '발달'부터 '학습', '지능', '심리테스트', '상담', '등교거부', '부모-아이 관계'까지 살펴 나간다. 심리학에 대한 이야기인 동시에 청소년억압의 핵심 장치인 학교와 가족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오자와 컬렉션'이라는 이름으로 오자와 마키코의 책들이 연달아 나오고 있다. 그밖에도 번역된 책들이 있고. 대부분 책들의 문제의식은 비슷한 뿌리를 갖고 있다. 칼럼 모음도 있고, 심리상담 전문가 등을 본격적으로 비판하는 책도 있다. 제목만 나열하면 이러하다.  《아이들의 권리, 부모의 권리》, 《학교란 무엇일까? - 학교밖 아이들》, 《지금 아이들이 있는 곳》, 《아이들이 있는 곳에서부터》, 《아이차별의 사회》(미번역) 등. 이렇게 늘어놓고 보면, 심리학자가 아니라 청소년인권운동가나 청소년인권 전문가라고 해도 믿을 것 같다.


'우리편 전문가'에 목말라 있던 청소년활동가들, 또는 청소년들에게 꼭 추천하고 싶은 학자이고 책이다.

신고
Posted by 공현
걸어가는꿈2016.07.06 11:33

[나이주의와 청소년인권] 우리 사회의 청소년혐오

쥬리
print
‘청소년혐오’, 아마 당신이 처음 들어보는 말일 것이다. 소수자 집단에 대한 사회적 대우를 명명하는데 사용하는 용어로는 혐오, 차별, 배제, 폭력, 낙인 등이 있다. 모든 소수자 집단이 혐오와 차별과 배제와 폭력과 낙인을 겪고, 이 용어들의 의미는 종종 중첩되지만, 집단에 따라 그 양상이 미묘하게 다르다. 특히 어떤 집단에 대한 어떠한 대우는 특정한 용어로 명명하는 것이 더 적절하거나 그 본질을 드러내는 데 더 효과적일 수 있다. 청소년에 대한 사회적 대우가 ‘혐오'로 명명되어 분석된 적이 아직 한국에서는 거의 없다. 하지만 우리 사회에 분명히 존재하는, 청소년을 비하·경멸하고 공포스러운 타자로 간주하는 문화는 청소년혐오로 해석되어야 한다. 청소년에 대한 비하와 경멸은 일상에서 만연하게 드러나며 청소년의 권리를 제한하는 제도를 정당화한다. 청소년을 공포스러운 타자로 간주하는 문화는 청소년이 저지른 범죄에 유독 나이를 강조하여 ’무서운 십대들‘이라고 수식하는 언론, 청소년을 통제하기 위해 폭력적인 방식을 도입해야 한다는 주장들, 청소년이 길에 모여만 있어도 무섭다고 반응하는 사람들의 인식 속에서 드러나고 재생산된다. 이 글에서는 청소년혐오라는 용어를 소개하고, 현재 온오프라인에서 청소년을 지칭하는데 사용되는 혐오어와 체벌을 중심으로 청소년혐오 현상을 간략히 분석해보려고 한다.

청소년혐오, 'Ephebiphobia'

청소년운동에 대해 공부하고 이론화 작업을 하는 '청소년운동 우물모임'에서는, '성인중심주의(Adultism)'에 맞선다고 스스로를 소개하는 미국의 단체 'The Freechild Project'에서 발간한 자료들을 함께 읽었다. 그 중 ‘Ephebiphobia’에 대해 설명하는 자료가 있었다. Freechild Project는 ephebiphobia를 아동 및 청소년에 대한 공포로 정의하고, 미디어와 정치, 그리고 학교 현장 등에서 만연한 아동 및 청소년에 대한 전사회적 공포를 총칭하는 용어로 사용한다. 이는 아동과 청소년에 대한 고정관념을 기반으로 하여 거대 미디어가 아동과 청소년을 (부정적으로) 묘사하는 방식을 통해 강화된다고 그들은 설명한다.

Freechild Project는 이 ephebiphobia가 민주주의, 사회문화, 교육, 그리고 경제에 영향을 미친다고 주장한다. 민주주의의 측면에서는 청소년의 참정권을 부정하고 공동체의 의사결정에서 배제하는 것, 정치인이나 정치 조직에서 청소년의 권리를 대변하지 않는 결과가 나타난다. 사회문화적 측면에서는 청소년을 악마화(demonize)하는 현상, 가족 안에서 부모가 청소년 자녀와 자녀의 친구들에게 공포를 느끼는 현상 등으로 결과가 나타난다. 교육의 측면에서 의무교육제도, 체벌, 학교에서의 나이(학년)구분은 ephebiphobia의 영향을 받은 것이라고 설명한다. 19-20세기 많은 청소년들이 일자리를 찾지 못하고 거리에서 시간을 보내자, 그들에게 공포를 느낀 사회와 어른들이 학교를 의무화하여 청소년이 낮 시간동안 거리에 모여 있지 않도록 만들었다는 것이다. 다양한 연령의 청소년들이 서로 소통하고 협력하는 것을 두려워한 결과가 나이(학년)구분이라고도 설명한다. 경제 측면에서는 청소년이 의미 있는 직업을 가질 수 없도록 하는 구조, 가게들이 ‘보호자 동행 없이 18세 미만 출입 금지’ 간판을 내거는 현상, 청소년이 거리에 많이 보이는 동네를 어른들이 피하는 바람에 상권이 변화하는 현상도 ephebiphobia의 결과라고 말한다.

우물모임에서는 위 자료를 읽고 한국 사회가 청소년을 대우하는 방식을 ephebiphobia 개념을 차용해 분석하는 것이 유의미하며, 한국에서도 미국과 비슷한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고 판단했다. 우리는 ephebiphobia를 청소년혐오로 번역했다. -phobia는 개인의 병리적인 공포증과 사회적 혐오 현상을 설명할 때 모두 쓰이지만, 비슷하게 –phobia의 결합어인 호모포비아의 경우 한국의 맥락에서는 ‘공포증’보다는 ‘혐오’로 번역되는 것이 적절하고, 실제로도 동성애 혐오나 성소수자 혐오로 번역되어 쓰인다. 공포증으로 번역하였을 때는 폐소공포증이나 첨단공포증처럼 개인의 병리적 증상을 나타내는 뉘앙스가 강해, 그것이 일부 개인의 문제가 아닌 전사회적 현상이라는 맥락이 옅어질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청소년 혐오어의 등장과 확산

다음의 말들을 들어 본 적이 있는지 생각해보고, 어떤 뜻일지 짐작해보라.
1. 급식충
2. 등골브레이커
3. 중2병

위 세 가지 단어는 최근 온오프라인에서 청소년을 지칭할 때 흔히 쓰이는 말들이다. 언어로 드러난 혐오만이 혐오의 전부는 아니지만, 혐오현상을 진단하는 데 특정 집단에 대한 어떠한 용어들이 통용되는가를 지표로 삼을 수 있다. 이 글에서는 위 세 가지 단어를 중심으로 이 사회가 청소년을 어떤 존재로 간주하고 혐오하고 있는지 살펴보려고 한다.

급식충, 너넨 무상급식 먹을 자격 없어!

급식충은 ‘급식’ ‘충(벌레)’의 결합어이다. 급식을 먹는 초․중․고 학생을 경멸하는 말이면서, 무상급식의 맥락에서 (사회에 기여도 안 하면서) 복지의 수혜를 받는 집단이라고 청소년을 비하하는 말이기도 하다. 중학생은 ‘중급식충’, 고등학생은 ‘고급식충’으로 이르기도 한다. 무상급식 먹을 자격 없다는 맥락에서 청소년을 급식충으로 부르기 시작한 것은 비교적 최근이지만, 이전에도 청소년을 사회에 기여하지 않는, 그러면서 특혜를 누리거나 의무를 면제받는 존재로 간주하는 인식은 만연했다. 형사처벌의 감경을 특권으로 묘사하며, 청소년이 그 특혜를 누릴 자격이 없음을 주장하는 것은 주로 청소년이 위법한 행위를 했을 때 대중이 분노하는 방식이다. 뿐만 아니라 형사처벌의 감경을 근거로 청소년은 ‘책임을 다하지 않으므로’ 성인과 동등한 권리를 주어서는 안 된다는 주장이 성립하기도 하는데, 청소년의 참정권을 논할 때도 성인과 동등하게 처벌받지 않는 존재가 참정권을 가질 자격이 있냐는 반응이 되돌아오는 식이다.

부모님 등골 빼먹는 등골브레이커들

(부모의)등골을 부수는 존재라는 의미의 ‘등골브레이커’도 청소년을 지칭할 때 자주 사용된다. 이 말은 모든 청소년이 부모의 부양에 의존해서 살아간다는 편견에 기댄 말이기도 하면서, 청소년이 부모의 부양에 기대어 살아가게끔 만드는 사회구조를 비판하는 대신 청소년을 기생하는 존재로, 기생하면서 고마움도 모르는 배은망덕한 존재로 비하하는 말이다. 청소년의 소비와 관련해서 이 말이 자주 사용되는데, 청소년이 입시공부와 관련 없는 소비-옷, 화장품, 신발 등-를 할 때면 ‘등골브레이커’라는 딱지가 붙는다. 여성의 소비를 사치로 간주하고 남자의 돈으로 그것을 샀을 것이라 간주하며 비난하는 것과 비슷한 메커니즘이 청소년의 소비에 대해서도 적용되는 것이다.

위 사진:2014년 '취재파일K'라는 시사프로그램에서 중2병이 교실과 교사를 힘들게 하고 있다고 방송을 함.

중2병을 치료하자?!

중2병은 비교적 예전부터 흔히 사용되어온 말이다. 초기에는 주로 남들이 공감하지 못하는 지나친 진지함이나 ‘오글거리는’ 말과 행동을 지칭하는 데 쓰였다. 하지만 점차 그 의미가 약간 변질되어 쓰이기 시작하는데, 초기의 의미에 더해 부모나 교사에 반항하거나, 우울하거나 염세적인 것, 성적 호기심을 가지는 것, 감정적으로 행동하는 것, 공부를 안 하는 것 등 매우 포괄적인 언행에 중2병이라는 딱지를 붙이기 시작한 것이다. 이 단어는 은어처럼 쓰이던 단계를 지나 현재는 각종 언론, 심지어는 공공기관이 개최하는 강의명에도 쓰이고, 교육감 후보의 공약에서도 활용되는 단어가 되었다. 하지만 중2병이라는 병은 없다. 의학적으로 실증되지 않은 병인데도 이 단어가 무분별하게 사용되며 청소년 집단을 병리화하고 있는 상황은 청소년혐오를 이 사회가 얼마나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있는가를 방증한다.

체벌의 혐오범죄적 특성

혐오범죄는 소수자집단에 대한 혐오를 기반으로, 소수자집단 전체를 위축시키려는 명시적이거나 암묵적인 의도를 가지고 소수자집단에 속한 특정 개인(들)을 대상으로 하는 범죄이다. 혐오범죄 가해자가 목표하는 바는 무엇일까. 가장 큰 목표는 해당 소수자집단이 위축되거나 사라지는 것일 테지만, 자신이 마주한, 구체적인 개인으로 드러난 피해자에 대하여 목표하는 바도 있을 것이다. 짐작컨대 ‘~로서 ~하면 안 된다’는 교훈을 주거나,‘ ~하는 행동이나 특성을 고치도록 만드는 것’일 것이다. 흡연하는 여성에 대한 구타는 여자가 길거리에서 건방지게 담배를 피우면 안 된다는 교훈을 주고 싶다는 욕망을 기반으로, 레즈비언을 대상으로 하는 ‘교정강간’은 성적지향을 고쳐놓고자 하는 목표 의식적으로 행해진다.

여기서 우리는 체벌의 혐오범죄적 특성을 파악할 수 있다. 체벌은 청소년으로서 ‘~하면 안 된다’는 교훈을 주기 위해, ‘~하는 행동이나 특성을 고치도록’ 만들기 위해 목표 의식적으로 행해진다(물론 단순히 분풀이를 위해 행해질 때도 많지만, 그렇더라도 청소년을 위축시키려는 의도는 관철된다). 때로는 청소년 집단이 특정 청소년이 체벌당하는 것을 목격하게 함으로써 집단 전체가 위축되도록 하는 의도를 달성하기도 한다. 교사가 굳이 반 전체 학생이 보는 앞에서 특정 학생을 체벌하는 것은 한 명을 때리지만 그 위축감을 반 전체 학생들이 공유하기를 바라기 때문에, 그래서 그 반의 학생 모두가 자신의 권위에 도전하지 않고 고분고분해지기를 욕망하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들은 체벌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명확한 이유 없이 감정적으로 행해지는 체벌만이 문제라고 말한다. 그러나 체벌과 혐오범죄의 가장 극명한 형태는 오히려 뚜렷한 목표를 갖고 행해지는 형태이다. 체벌은 비청소년에 의해 (어린이) 청소년에게 행해진다는 점에서, 그리고 앞서 밝힌 그러한 특성들을 갖추고 있다는 점에서 부모-자식, 교사-학생, 비청소년-청소년 간의 권력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구조적으로 발생하는 혐오범죄적 특성이 있다고 해석할 수 있다.

청소년혐오, 앞으로의 이론화 작업

청소년혐오는 청소년 억압을 정당화하는 데 근저에 깔린 사회적 감정이며, 나이에 따라 권리와 자원을 차등 배분하는 나이주의의 양상이다. 지면상 이 글은 청소년혐오 현상에 대해 몇몇 혐오어들과 체벌을 중심으로 설명하는 데 그쳤지만, 앞으로 청소년운동에서는 우리 사회의 맥락에서 청소년혐오의 내용을 채우고 그 개념을 활용하여 사회현상을 분석해나가는 작업을 진행할 것이다.
덧붙이는 글
쥬리 님은 우물모임 멤버이자 십대섹슈얼리티인권모임 활동가입니다.
인권오름 제 491 호 [기사입력] 2016년 06월 29일 13:21:56


저작자 표시 비영리
신고
Posted by 공현
걸어가는꿈2016.06.23 10:35

[나이주의와 청소년인권] 청소년 억압의 뿌리, 나이주의를 발견하다

필부
print

<편집인 주>

청 소년인권운동은 오래 전부터 우리 사회에 ‘나이주의’ 문제가 있다고 이야기해왔다. 사실 나이주의(Ageism)라는 개념은 노인차별에 반대하는 운동에서부터, 그리고 페미니즘에서까지 사용되던 개념이다. 청소년운동에 대해 공부하고 연구하며 ‘한 우물만 파는 모임’인 우물모임에서는 지난 1년 여 동안 나이주의에 대해 자료를 찾고 토론하며 청소년운동이 이야기하는 나이주의가 어떤 것인지 정리했다. 그 결과 중 일부를 인권오름을 통해서 공유하고자 한다.


자신이 처해 있는 상황에 문제의식을 느끼고 이를 개선하기 위해서 이 사회에 여러 가지 도전을 했던 청소년들이 있다. 어떤 사람은 학교에서 방과 후 학습을 강요하는 일을 중단시키기 위해 헌법 소원을 내려고 했다. 어떤 사람은 종교 강요를 거부하며 단식을 했다. 어떤 사람은 머리스타일을 획일화시키는 학교 규칙들을 바꾸려고 서명운동을 했다. 어떤 사람은 미성년자는 밤 10시에 귀가시킨다는 촛불집회 주최 측 방침에 항의하며 청소년에게도 집회의 자유를 보장하라고 발언했다. 어떤 사람은 청소년들은 밤 12시 이후에 온라인 게임을 할 수 없다는 법에 대해 헌법 소원을 청구했다. 이들이 겪은 차별과 억압은 ‘청소년이기 때문에’ 겪은 것이었다. 이처럼 ‘청소년이기 때문에’ 가해지는 차별과 억압을 없애고자 하는 사람들의 사회적 움직임이 청소년인권운동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오랜 시간 동안, 청소년인권운동은 가장 근본적인 하나의 질문과 씨름해야만 했다. ‘청소년이기 때문에 받는 차별과 억압은 무엇으로 인해 생기는가?’ 처음에는 구시대적인 학교 문화와 비청소년(어른)들의 편견, 유교 문화 때문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청소년인권운동이 진행되면서는 청소년들에게 참정권이 없기 때문, 또는 경제력이 없기 때문이라는 이야기가 나왔다. 그러나 청소년들에게 참정권이 없는 것이나 경제력이 없는 것 자체가 청소년 억압과 차별의 결과 중 하나라는 점에서 좀 더 거시적인 사회구조에 대해 이야기할 필요가 있었다. 그래서 자본주의와 국가주의 때문, 사회재생산 과정의 문제라는 논의로 나아갔다.

자본주의와 국가주의 등의 사회 체계 자체가 원인이라는 것은 틀린 이야기는 아니지만, 좀 더 세분화하여 청소년 억압을 규명하는 것이 필요했다. 이제 우리는 이를 위해 ‘나이주의’라는 개념을 제시하려고 한다. (단, 정확히 이름을 무엇으로 할지는 아직 논쟁의 여지가 있다)

나이주의(ageism)는 성차별주의(sexism), 인종주의(racism)와 같은 맥락의 조어이다. 거칠게 말하자면, 나이주의는 나이에 따른 차별, 나이를 중심으로 어떤 사람의 특성을 섣불리 규정하고 그 규정을 바탕으로 그 사람을 대하는 것을 일컫는다. 여기에는 부정적인 규정 뿐 아니라 긍정적인 규정 역시 포함된다. 또한 나이주의는 사람과 사람 간의 관계나 인식 속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공동체, 시장, 국가 제도, 사회 구조 전반에 존재한다.

나이는 자연적인 것이지만, 동시에 사회적인 것이다. 지구가 일정한 주기로 자전과 공전을 하고 사람이 시간에 따라 성장하고 노화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지만, 이를 나이 개념으로 파악하고 제도화하는 것은 사회이다. 국가가 인구를 관리하고 효과적인 사회적 재생산을 꾀하기 위해서 나이는 중요한 기준이 된다. 현대 국가는 사람들의 나이를 셈하고 나이에 따라 학교, 노동, 결혼, 은퇴와 노년생활, 복지 체계 등의 제도를 적용한다. 이에 따라 생겨나는 나이에 대한 관념과 문화, 그리고 제도와 사회 구조가 곧 나이주의이다.

이런 설명에서 알 수 있겠지만 나이주의는 단지 청소년에게만 해당하는 것이 아니다. 나이주의는 처음에는 노인차별을 가리키는 말이었다. 나이주의는 모든 연령대의 사람들에게 적용되는 사회 구조이며, 그 속에서도 도드라지는 것이 노인과 청소년인 것이다. 우리는 나이주의와 청소년인권 문제를 이야기하면서 청소년이 겪는 나이주의 문제에 초점을 맞추려고 한다. 나이주의는 청소년의 권력을 빼앗고, 청소년을 사회적 소수자로 만든다. 슬프게도, 나이주의는 이견이 없는 진실 내지 상식, 사회적 합의라고 받아들여질 만큼 전 세계적으로 만연한 상태이다. 그만큼 나이주의는 사고방식 속에, 사회 체계 속에 깊숙하게 침투해있고, 지금의 사회를 움직이는 근간이 되고 있다.

나이주의의 사례들

나이주의의 대표적인 예를 살펴보자. 가족은 대단히 나이주의적인 제도이다. 나이에 따른 올바른 행동양식이 있다거나, 청소년은 친권자(법적으로 청소년에 대한 친권을 갖는 사람, 소위 부모 등)의 경제적 사회적 법적 통제 하에 있으며, 친권자의 판단과 지시에 따라야 한다거나, 나이가 적은 사람은 나이가 많은 사람의 생각을 깨닫기에 부족하다는 고정관념이 널리 퍼져있는 경우가 많다. 이런 생각을 바탕으로, 친권자들은 청소년에게 이런 말을 하곤 한다.

- “애면 애답게 굴어라”
- “내가 시키는 대로 해” / “나한테 말대꾸 하지 마”
- “너도 나처럼 나이 먹으면 알게 될거야” / “너도 니 자식 키워보면 알 거다”

이는 친권자와 청소년 사이의 관계에서 나이주의로 인해 권력차가 생긴 것이다. 청소년이 이런 관계를 원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친권자는 나이주의로 인해 청소년의 입장보다는 청소년에 대한 자신의 판단을 우선시하며 기존의 관계를 지속시키려 한다. 국가는 친권자가 청소년을 ‘보호’하고 감독하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는 나이주의적인 제도로 기존의 관계를 뛰어넘을 수 없는 환경을 유지시킨다. 청소년의 특성에 대한 부정적인 판단은 이와 같은 협력(?)으로 계속 단단하게 유지되고 있다.

또한 청소년은 정치로부터 배제되어야 하고, 정치에 물들어서는 안 된다는 것도 나이주의를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이다. 여기에는 청소년이 아직 미성숙해서 정치적 결정을 함께할 시민이 아니라는 인식이 있다. 청소년은 미성숙한 존재라는 것은 나이주의 체계 속에서 청소년이 부여받는 주요한 위치이다.

그리고 거기에는 정치를 권모술수가 판을 치는 더러운 것으로 보며 청소년이 정치에 쉽사리 휩쓸려 희생당하거나 타락해선 안 된다는 인식도 더해진다. 청소년이 타인을 속이거나 이용해먹을 줄 모르는 순수한 존재라고 판단하는 것이다. 참정권 문제를 포함하여 청소년이 순수한 존재, 보호받아야 할 존재라고 하는 것은 청소년을 긍정적인 이미지로 그려내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청소년을 보호해야 한다며 정치를 금지시키자는 비청소년들에게, 어떤 청소년이 “배려해 주셔서 감사해요. 하지만 저는 괜찮습니다^^”라고 한다고 해서 그 사람에게 선거권을 돌려줄 리는 없다. 결과적으로 국가기관에서의 판단이 청소년의 정치 참여를 강제로 막고 있는 것이다. 청소년이 자신의 정치적 권리를 돌려받기를 원한다 하더라도, ‘정치로 인해 물들어버렸다’, ‘배후에서 조종하고 있는 사람이 문제의 근원이다’라는 나이주의적인 판단이 우선되면서 청소년의 요구는 묻힐 것이다. 그래서 청소년은 여전히 정치에 참여하지 못하고 있고, 국가는 청소년을 기르는 존재로 대할 뿐 청소년을 대변하는 정책을 내지 않고 있다.

이렇게 청소년인권운동은 나이주의를 통해서 ‘청소년이기에 받는 차별과 억압’을 더 체계적으로 설명할 수 있게 되었다. 그래서 청소년인권운동을 하는 사람들은 나이주의가 무엇인지, 나이주의가 어떻게 작동하고 어떻게 통용되고 있는지를 계속 연구하고 고민하고 있다.

청소년을 차별하는 나이주의 개념, Adultism

그런데 이건 한국에서만의 일이 아니었다. 외국에서도 마찬가지로 비슷한 고민이 이어지고 있었다. 미국의 'Freechild project’에서 모여있는 자료들은 나이주의를 ‘Adultism'이나 ’Pedophobia', 'Ephebiphobia’, ‘Adultcentrism' 등으로 부르며 청소년 프로그램 기획자나 유아의 친권자, 학생, 청소년인권 연구자 등 다양한 사람들의 관점에서 나이주의를 설명하고 설득하고 있다. 그 곳에서 발견한 청소년을 차별하는 나이주의(Adultism)의 정의를 간략하게 추리면 다음과 같다.

- 청소년을 어른이 아니라는 이유만으로 무시하고 침묵하고 얕잡아보고 탄압하는, 비청소년(이른바 ‘성인’)들의 습관적인 태도·사고방식·생각·믿음·행동.
- 비청소년이 청소년보다 더 나을 것이라고 가정하고 청소년 당사자의 동의 없이 청소년을 위한 행동을 할 자격이 있다는 생각.
- 비청소년들이 조직적으로 청소년을 무례하게 대하는 것, 청소년에게 귀 기울이지 않고 신뢰하지 않으며 의미 있는 결정과정에서 배제하는 것.
- 청소년들에게 삶의 권력을 부여하지 않는 것.
- 청소년 개인의 권익이 아니라 청소년 집단 전체를 대하는 일반적인 관점을 기준으로 청소년에 대한 결정을 내리는 것.


Freechild project의 자료들은 위와 같은 식으로 나이주의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증명하고, 나이주의의 특징을 분류하고, 나이주의가 끼치는 영향을 소개하고 있었다. 예를 들어, Paul Kivel에 의하면 청소년은 자신의 삶에 대한 권력을 가지지 못하기 때문에 끊임없이 규제당하고 통제당하고 학대당했고 그것이 청소년에게 무력감과 절망감으로 내면화되어 청소년이 겪는 모든 문제를 청소년 개인의 문제로 여긴다고 한다.

Freechild project를 운영하고 있는 Adam Fletcher는 나이주의로 인한 비청소년 중심적인 시선이 결국 청소년 본인에게까지 옮겨져 “나이 어린 비청소년(little adults, 청소년 본인이 아니라 ‘만들어진 어른’에 가까운 사람)”현상을 일으킨다고 주장했고, 청소년에 대한 차별을 언어 차별, 청소년활동에서의 차별, 학교에서의 차별, 사회에서의 차별로 분류하였다.

청소년 프로그램 스태프로 일하고 있는 John Bell은 청소년을 통제하려 하는 나이주의가 학생을 억압하는 교칙과 법률에 많은 영향을 끼쳤으며, 어린이 발달문학과 교육담론에도 영향을 끼친다고 지적했다. 또한 나이주의로 인해 존중받지 못하고 잘못된 대우를 받는 것은 점점 그 고통에 익숙해지게 만들고, 결국 다른 억압에도 마찬가지로 무감각해질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무엇보다 Freechild project는 나이주의를 뛰어넘기 위한 여러 실천사항들을 풍부하게 제안하고 있다. 나이주의와 청소년에 대한 편견을 소개하고 분석할 수 있도록 교육안까지 마련되어 있었을 정도였다. Freechild project의 자료 중에서 사람들이 청소년에 대한 차별과 나이주의를 줄이기 위한 방법을 찾았더니, 아래와 같이 정리할 수 있었다.

- 비청소년에게 하는 것처럼 청소년에게도 눈을 맞추며 성의를 다해 이야기하라.
- 비청소년에게는 쓰지 않을 말들을 청소년에게만 쓰고 있지는 않은지 되돌아보라.
- 타인에게 나이주의를 지양하는 자신의 방식을 드러내고 권유하라
- 나이주의에 저항하는, 특히 청소년 당사자의 커뮤니티를 만들어라
- 비청소년의 나이주의가 어느 수준인지, 어디의 문제인지를 파악하자.
- 나이주의를 고수하는 비청소년에게 청소년을 향해 분노를 표출할 필요는 없다고 말하자.
- 다른 비청소년들에게 나이주의에 대해 탐구하자고 요청하고 동료를 모으자.


한국에서도 청소년활동기상청 활기에서 주최한 ‘꼰대와 동지 사이, 나이주의를 고민하다’ 워크숍에서 나이주의 사전을 만들며 나이주의가 무엇인지를 면밀하게 밝힌 적이 있다(이에 대해서는 인권오름에서 기사 <[인권교육, 날다] 허깨비 같은 나이주의, 개념으로 잡아내다>로 다뤄졌고, 이 워크숍에서 만들어진 나이주의 사전은 다듬어 다시 발표되었다). 청소년인권운동을 하는 사람들은 계속 나이주의에 대한 연구와 조사를 거듭하고 있다. 다음 순서부터, 나이주의의 한 현상으로서 청소년혐오와 한국에서 특히 두드러지는 나이에 따른 서열과 ‘예의’ 문제 등을 소개할 것이다. Freechild project에서 나온 말처럼, 반(反)나이주의의 가치를 정리하고 전파하다 보면 청소년 억압의 뿌리가 분명 뽑힐 것이라고 믿는다.


* 여기서 말하는 청소년은 주로 0세부터 만 19세까지인, 실질적으로 ‘미성년자’ 취급을 받고 있는 모든 사람을 일컫는 말이다.
덧붙이는 글
필부 님은 노원지역청소년인권동아리 화야와 청소년운동 우물모임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인권오름 제 490 호 [기사입력] 2016년 06월 22일 13:40:23


저작자 표시 비영리
신고
Posted by 공현
걸어가는꿈2016.03.24 13:34

[공현의 인권이야기] ‘소비자’의 권리를 넘어서

공현
print
학생이 소비자여야 하는가 아닌가

“우리가 교육의 소비자인데 학교/교사가 우리를 이렇게 대해도 되는 거야?” 학생인권 문제를 이야기하면서 만나는 학생들 사이에서 간혹 듣게 되는 말이다. 사실 그렇다. 교육을 ‘서비스’로 보고, 학교도 ‘교육시장’에서 경쟁력을 가져야 한다고 이야기하고, 수요자(소비자)의 요구에 맞추라고 하는 시장주의적인 교육정책 속에서 학생들이 겪는 현실은 모순적이다. 어느 서비스에서 소비자, 고객을 그렇게 막 대한단 말인가.

물론 답은 명확하다. 어느 대학 총장이 “학생은 피교육자일 뿐”이라고 밝혔듯이, 교육의 그림 속에서 학생들은 소비자가 아니다. 그 친권자‧부모들이 소비자일지는 모르겠지만. 학생들은 차라리 ‘상품’에 가까운 위치다. 교육의 결과물로 Before(이전) After(이후)를 보여줘야만 하는 존재들. 노동자처럼 밤늦게까지 학교나 학원에 붙잡혀 공부를 해서 ‘스펙’을 높여야 하지만 그 과정에서 임금이나 노동3권을 보장받지는 못한다. 나중에는 자신들의 성적을 입증하고 전시해야만 한다. 그래서 학생들은 “제발 소비자 정도의 대우만 받아도 좋겠다.”라고 하소연한다.

그런데 다른 면에서는 과연 학생이 소비자가 되는 것이 바람직한 것이냐는 의문을 제기해볼 수도 있을 것이다. 특히 시장주의적인 교육정책을 반대해온 사람들은 교육소비자니 교육수요자니 하는 말 자체에 경계심부터 가지고 보고는 한다. 하지만 ‘그렇게 되면 교육을 시장적 모델로 보게 되고 경쟁과 차별이 만연하고…’ 하는 이야기 말고, 학생의 입장에서는 어째서 소비자이면 안 된다는 것인지 이해하게 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구매력에 따른 차별 이야기를 할 수도 있지만 공교육은 일단은 많은 부분이 무상이라서 와 닿는 소리는 아니다.

사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소비자, 고객으로서 서비스를 제공받는 경험은 대개가 ‘제법 괜찮은’ 것이다. “손님은 왕이다” 같은 말로 대표되듯이 많은 감정노동자들의 친절과 봉사도 받을 수 있다. 물론 불량한 제품과 서비스 제공, 알 권리 무시 등 고통을 받은 경험도 있겠지만 수는 적은 편이며, 소비자는 그런 서비스를 선택하지 않을 권리도 가지고 있다. 결국 ‘학생인권 보장’이라는 게 학교가 학생을 고객처럼 모시는 것, 또는 학생이 소비자처럼 행동할 수 있는 것으로 받아들여지는 오해도 생겨난다.

시장주의적 접근, ‘소비자’ 모델이 가지는 한계를 나는 이렇게 한 마디로 말하곤 한다. “소비자가 기업 경영에 참여하고 의결할 수 있나요?” 소비자는 구매력이 있다면 선택권을 행사할 수 있고 봉사를 제공받을 수도 있지만, 본질적으로는 이미 정해져 있는 것들 중에서 고르는 것밖에 할 수 없다. 소비자는 기업의 바깥, 결정과 생산 영역의 바깥에 있다. 만일 학생이 소비자라면, 학생은 학교가 어떻게 운영되는지 교육과정은 어떠해야 하는지 알고 참여할 권리도 없을 것이고, 학교의 편의에 따라 소비자 의견을 제시하는 정도밖에는 하지 못할 것이다. 바로 지금 정부가 ‘만족도 조사’를 실시하듯이. 우리가 민주적인 학교를 요구하고 학생들이 학교 운영에 참여해야 한다고 주장한다면 이미 그것은 ‘소비자’의 위치를 뛰어넘은 것이다. 애초에 ‘교육’이라는 과정은 교사에 의해 제공되는 서비스를 학생이 받기만 하는 형태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학생들이 주체가 되어 이루어진다는 점에서도 ‘소비자’라는 개념에는 한계가 있지만 말이다.

위 사진:교육청의 시각을 보여주는 홍보포스터

소비자에 머물지 말아야 할 이유

운동을 하다보면 자신의 권리를 이야기할 때도, 정부가 인권이나 복지를 이야기할 때도, 사람들을 ‘소비자’처럼 생각하는 많은 경우와 마주치게 된다. 여러 복지정책이 그렇고, 심지어 정치를 이야기할 때조차도 이제는 ‘정치 소비자’라는 말이 등장하고 있는 상황이다. 사람들이 소비자로서도 제대로 대접받지 못하고 있다는 문제의식과 소비자로서의 힘을 보여주겠다는 취지를 보면, 학생들이 소비자 대우라도 받고 싶다고 말하는 것이 연상된다. ‘정치소비자협동조합’을 표방한 조직이 직접민주주의와 능동적 참여를 주창하는 것을 보면 약간 역설적으로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그 문제점도 명확하다. 먼저 구매력이 적은 사람들은 제대로 권리를 보장받지 못한다. 일례로, 거대 정당들의 주류 정치인들은 이번 총선에서 상대적으로 ‘표가 적을 것 같아 보이는’ 성소수자보다는 혐오세력에 동조하는 쪽을 택하고 있다. 그리고 그밖에도 많은 소수자들, 표가 안 될 것 같은 사람들의 문제에는 침묵하고 있다. 아예 정치구매력이 없는 청소년들은 논외가 되어 버린다. 경쟁은 ‘공급자’만 하는 것이 아닌 것이다. 우리 표로 정치를 사고, 정치인들이 표를 받고 정책이나 정치적 행위를 ‘판매’하는 것이라고 이해한다면 보편적 인권 보장은 불가능하다. 그래서 <4.13 총선 인권올리고 가이드>에서는 이런 문제를 지적하며 “표의 주인을 넘어 정치의 주인”이 되어야 한다고 적고 있다.

또한 앞서 말했듯 ‘소비자’는 함께 참여하고 만들고 책임지는 주체가 아니다. 주어진 상품들 중에서 선택할 권리는 있지만, 함께 만들고 결정을 내리지는 않는다. 일견 소비자는 많은 권리를 가진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실은 선택할 권리 말고는 많은 권리를 제약당하고 있다. “손님은 왕”이라고 하지만, 본래 왕은 단지 좋은 대접을 받고 호화로운 의전을 받는 자리가 아니라 국가의 주권자이며 결정권자이다. 왕은 ‘고객’이 아니라 ‘주인’이다. 그런 의미에서는 ‘소비자’와 ‘왕’은 정반대의 위치에 있다. 많은 경우 인권 보장을 위해서는 소비자의 권리 이상으로 주인의 권리가 필요하고, 평등한 참여와 공동의 연대(책임)가 필요하다.

상품이나 노예, 없는 존재 취급을 받는 사람들에게 소비자의 자리는 신분상승처럼 느껴지기 쉽다. 모든 것이 시장화되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소비자의 위치는 익숙하고 편안한 것이기도 하다. 그러나 인권은 ‘소비자’의 권리와는 다르다. 인권운동이 ‘소비자 마인드’를 경계하는 것은 단지 시장이나 자본주의에 대한 거부감 때문이 아니다. 그 걸로는 인권이 제대로 보장될 수 없으며, 우리가 이야기하고 추구하는 인권은 그 이상을 꿈꾸기 때문이다.

덧붙이는 글
공현님은 청소년인권행동 아수나로 활동가입니다.
인권오름 제 478 호 [기사입력] 2016년 03월 23일 18:37:31


저작자 표시 비영리
신고
Posted by 공현
걸어가는꿈2016.02.18 15:57

[공현의 인권이야기] 청소년운동? 청소년‘인권’운동?

인권, 함께해서 좋지만 또 조금 부담스러운 그것

공현



“노동인권운동이라고 안 하고 노동운동이라고 하고, 여성인권운동보다는 여성운동이라고 더 많이 쓴다. 성소수자운동도 그렇고. 그런데 왜 우리는 청소년인권운동이라고 더 많이 쓰지?”

우 리가 하고 있는 운동을 소개할 때면 이런 소박한 의문을 느끼곤 한다. 그냥 단체의 이름에 인권이 들어간다거나 그런 차원이 아니다. 2000년대 중반부터 우리의 중요한 과제는 “청소년인권운동”이라는 진영을 만드는 일이었다. 2006년 만들어진 청소년인권활동가네트워크는, 그 목표로 “△청소년인권운동 내부의 일상적 소통 강화, △청소년인권운동의 전략 마련과 현안 대응, △청소년인권활동가 역량 강화를 위한 배움터 개설과 연구 작업, △민간 청소년인권운동 진영의 형성”을 꼽고 있었는데, 그 목표는 사실상 막연한 이미지와 말만 있던 ‘청소년인권운동’이라는 것을 내외적 실체를 가진 것으로 쌓아올리는 것이었다고 할 수 있다. 다른 소수자운동이나 정체성을 표방한 운동들은 인권 이야기를 주로 하더라도 굳이 ‘인권’을 넣지 않는 경우가 많다. 노동자의, 여성의, 성소수자의 권리에 대한 운동이라는 의미가 충분히 드러나기 때문일 것이다. 왜 우리는 ‘인권’을 운동의 정체성으로 표방해야 했던 것일까? 우리는 왜 “청소년인권운동”을 만들려고 했던 것일까?


청소년단체, 청소년운동의 ‘전통적’인 뜻

“청 소년운동”이란 단어로 책이나 논문 검색을 해보면, 청소년 운동(Sports) 선수에 대한 내용들 외에도 은근히 많은 내용들이 검색 결과에 나온다. 그것들 대부분은 대학 청소년학과나 청소년지도사에 관련한 것들이다. 여기서 말하는 청소년운동이 청소년들의 권익을 향상시키기 위한 사회운동을 말하는 것이 아님은 물론이다.

2004년에 나온 <새 시대 청소년운동의 방향>이라는 책 소개를 보자. “청소년관련 정책과 청소년문제, 청소년 육성 등에 대한 청소년운동의 지침서.” ‘청소년운동’이란, 오랜 시간 동안 청소년을 육성하고 선도하며, 청소년들의 건전한 사회 참여를 조직하고,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것을 가리키는 말이었다. 종교적으로는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선교와 종교적 훈련 활동을 가리키기도 했다. 다양한 청소년수련활동들이나 국제교류, 자원봉사활동 등이 대표적이다.

‘청소년단체’란 말도 마찬가지다. 한국청소년단체협의회라는 조직이 있는데, 이는 현재 청소년기본법에 의해 지원을 받는 특수법인의 지위를 가지고 있기도 하다. 말하자면 청소년운동의 대표격인 연합 조직인데, 그 회원단체 목록 중 눈에 띄는 몇 개만 나열해보자면 이러하다. 어린이재단, 서울가톨릭청소년회, 대한적십자사청소년적십자, 대한불교청년회, 한국기독학생회총연합, 한국스카우트연맹, 한국청소년순결운동본부, 한국해양소년단연맹, 한국화랑청소년육성회, 흥사단 등. 이런 이름들을 보면 알 수 있겠지만 청소년단체라는 개념 역시 청소년 당사자들의 조직 또는 청소년들의 권익과 해방을 위해 운동하는 단체를 가리키는 말이 아니었다. YMCA나 적십자, 보이스카웃 등 청소년들을 보호하고 육성하고 수련활동을 하는 단체들이 ‘청소년단체’라는 이름으로 불려왔다.

<청소년운동> (이하, 혼동을 피하기 위해 기존에 사용되어 온 의미의 청소년운동은 <청소년운동>으로, 내가 하는 청소년의 권익과 해방을 위한 운동은 청소년운동으로 표기하겠다.)의 이러한 의미와 용례는 유구한 역사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1920년대 ‘소년운동’ 속에서 소년보호/소년수양(계몽)/소년해방의 담론이 혼재했지만, 결국 청소년들을 보호하고 계몽하고 교육하는 운동이 주류가 되면서 소년운동의 맥을 이어받은 광복 이후의 <청소년운동> 역시 이러한 성격을 가지게 되었다. 이는 근대 국가가 청소년들을 관리하고 보호하고 사회화시키려는 기획과도 일치하는 것이었다. 마치 장애인의 인권을 주장하고 행동하는 운동이 대두되기 이전에, 장애인을 위한 시설을 만들고 복지를 제공하는 등의 활동을 하는 사람들이 ‘장애계’, ‘장애단체’라고 불리던 상황과 비슷한 셈이다.

따라서 청소년들의 인권을 이야기하는 새로운 흐름이 1990년대 후반에 나타난 이후로, 이러한 오래된 <청소년운동>과 선을 긋고 새로운 개념으로 운동을 정립하기 위해 여러 가지 개념들이 대두되었다. 일부에서는 1980년대 고등학생운동을 이어받은 ‘학생 운동’으로 이야기했고, 일부에서는 ‘진보적 청소년운동’이라는 개념을 사용하기도 했다. 그러한 과정 속에서 청소년인권운동이라는 개념이 살아남았고 계속 쓰이고 있는 것이다. 비록 ‘청소년인권’이라는 단어 역시 <청소년운동>이나 국가기구에 의해서 전용되기도 하지만, 청소년운동이 주로 인권/기본권의 언어를 사용해왔고 청소년인권 문제를 다룬다는 점, 인권 자체가 가지는 해방적인 의미, 그리고 인권운동의 연대에 힘입어 청소년인권운동이라는 단어가 자리 잡았다고 볼 수 있다.

위 사진청소년운동은 '인권', '우리도 인간이다' 등을 주된 운동의 언어로 사용해왔다

인권, 계속 붙이고 갈 것인가?

청 소년운동이 처음 등장했을 무렵에는 그 개념에 대해 많은 혼란이 있었다. <청소년운동>과의 구분점으로 청소년 당사자성을 내세우기도 했지만, 당사자성만을 강조하는 운동으로는 청소년 정체성의 특성상 운동이 연속성을 가지지 못했다. 우리가 스스로 청소년인권운동이라는 개념을 가지면서 어떤 운동인지 누구와 함께하는 운동인지 등이 더 분명해졌고 운동이 계속 이어져올 수 있었다. 인권운동의 이해와 연대와 지원 속에서 청소년운동이 성장해올 수 있었다는 것도 사실이다. 무엇보다도 ‘인권’이 담고 있는 자유와 평등, 해방을 향하는 지향성은 청소년운동의 소수자운동이자 사회 보편적 문제를 다루는 운동으로서의 주장을 벼리고 체계화할 수 있게 하는 원동력이었다. ‘인권’이 붙어 있었기에 청소년운동은 여기까지 왔으며 청소년운동에게 인권은 여전히 유효하다.

그러 나 청소년운동이 청소년인권운동으로 스스로를 부르고 인권을 주된 언어로 사용하며 운동을 하는 것이 과연 괜찮을지, 머뭇거리게 되고 부담스럽게 느끼게 되는 점들도 있다. 첫 번째, 인권이라는 단어로 운동을 규정하면 우리 사회가 인권에 대해 가지고 있는 여러 가지 이미지와 편견들도 함께 따라오게 된다. 그래서 청소년인권운동을 하는 사람은 왠지 훌륭하고 착해야 할 것 같다는 말도 나오고, 청소년 대중들에게는 뭔가 어려운 이야기를 하는 운동인 것 같다는 거리감도 가지게 만든다. 인권이 주로 헌신적인 구호활동이나 법에 관련된 활동이라는 이미지 때문에 도덕적이고 엘리트적인 운동인 것 같은 인상을 주는 것이다. 더 많은 청소년 대중들을 조직하고 함께하는 운동이 되기에는 사소하지만 무시할 수는 없는 그런 걸림돌이라고나 할까.

두 번째, ‘인권’의 언어로는 청소년운동이 다루는 문제들을 모두 다 포괄할 수는 없다는 점이다. 물론 청소년들의 자유와 평등의 문제는 대부분 인권 문제로 이야기할 수 있다. 하지만 청소년들의 권익에 관련되거나 의견을 내야 할 문제는 그밖에도 다양하다. 예를 들어, 학생들이 학교운영이나 교육정책에 대해 의견을 낸다고 할 때 학교의 학사일정이나 교과목 구성에 대해 판단하는 기준은 무엇이 되어야 할까? 인권의 언어만 가지고는 이런 것들에 대해서 여러 학생들이 민주적으로 의견을 반영할 수 있어야 한다거나 학생들에게 과도한 학습 부담이 가해져선 안 된다는 등의 원칙 정도만 말할 수 있다. 그 이상의 구체적 의견들은 여러 여건을 고려하며 학생들의 토론을 통해서 결정해야 한다. 그러므로 청소년운동이 더 조직화하고 발전하여 청소년들의 집단적인 요구와 의견을 표출하는 운동이 된다고 하면 ‘인권’ 외의 문제들도 다루게 될 것이고, 청소년인권운동이라고 부르기는 다소 어색할 수도 있을 것이다.

세 번째로는 주류적인 인권 담론이 청소년운동의 청소년인권 주장과 불일치하는 면들이 있다는 점이다. 보편적으로 통용되는 국제인권법 등의 내용이 현재 한국의 현실보다 훨씬 낫다는 것은 분명하다. 그래, 그만큼이라도 되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그런 국제인권법에는, 아직 크게 쟁점이 되지는 않았지만, 우리가 동의하지 않는 내용들도 있다. 예를 들면 가족을 사회의 기초 단위로 보고 보호하려는 관점이나, 청소년의 노동 금지 연령을 높여야 한다는 입장이나, 청소년보호를 위해서 문화를 규제해야 한다는 내용 등 말이다. 국제인권법의 규범과 해석은 역사적으로 만들어져왔고 그 안에도 다양하며 때로는 모순되는 입장들이 병존하고 있다. 청소년(아동)에 대해서도 근대적인 청소년(아동)관과 인권적 원칙에 따른 입장들이 동시에 존재하고 있는 실정이다. 그래서 인권 담론이 국제적이고 보편적인 권위를 얻을 수 있고 여러 유용한 지원도 받을 수 있지만, 인권을 밀고 나갔을 때 우리 운동이 미래에는 스스로 발목을 잡게 되고 가능성을 제한받게 되지는 않을까 걱정이 든다.

그래서 어느 때부터인가, 나 개인적으로는 적어도 운동을 가리키는 이름에 대해서는 ‘청소년인권운동’보다는 ‘청소년운동’이라는 말을 더 많이 쓰고 있다. 이는 <청소년운동>으로부터 ‘청소년운동’이란 말의 주도권을 가져오고 싶다는 욕망의 표현이기도 하다.(어느 활동가는 수십 년, 거의 100년 가까이 된 용례를 그렇게 쉽게 바꿀 수 없을 거라고 회의적인 입장을 보였지만.) 청소년운동은 인권과 계속 함께 가겠지만, 이름도 그렇고 인권이 청소년운동의 어느 위치에 어떤 모양새로 있어야 적절한 건지는 운동의 발전과 시대 상황에 따라서 달라질 것이다. 다른 소수자운동들이나 사회운동들은 어떤 고민과 역사들을 가지고 있을까 궁금하다. 여하간, 청소년인권운동에서 ‘인권’자를 빼고 청소년운동으로 부른다고 해서 다른 인권활동가들이 서운해 하지는 않았으면 하는 마음이다.

덧붙이는 글
공현 님은 청소년인권행동 아수나로 활동가입니다.
인권오름 제 474 호 [기사입력] 2016년 02월 17일 15:58:43


저작자 표시 비영리
신고
Posted by 공현
걸어가는꿈2016.02.09 16:15



[성명] 누리과정 예산 빵꾸나는 소리 좀 안 나게 해라~

- 무상교육은 인권이다! 정부는 교육재정을 책임지고 마련하라!


박근혜 정부의 억지 속에 누리과정(만3~5세 어린이집과 유치원에서 공통으로 운영하는 교육과정) 예산 문제가 여전히 해결되지 않고 있다. "무상보육 할 테니 낳아만 달라"라고 했던 대선후보 시절의 공약은 온데간데없고, 누리과정 예산을 편성하지 않은 교육청에는 수사에 감사까지 해가며 압박하고 있다. 막무가내로 교육청에게 예산 돌려막기(?)까지 종용하는 정부의 모습을 보면, 제대로 교육권을 보장하고자 하는 의지가 있기는 한지 의심스럽다. 정부의 이런 태도 탓에 교육재정과 교육자치 전반이 위협을 받고 있으며 당장 청소년들의 권리에도 악영향이 예상되고 있다.

박근혜 정부는 이미 누리과정 예산을 교육청들에 다 지원했다고 말하고 있다. 하지만 조금만 살펴봐도 그렇지 않음을 알 수 있다. 올해 정부가 교육청들에 분배한 '교부금'은 누리과정이 확대 시행되기 이전과 비교해서 거의 차이가 없다. 법령만 바꿔서 '이 중에 누리과정에 쓰라'고 적어놨을 뿐, 제대로 예산을 지원한 것이 아니다. 정부는 교육청들에 빚이라도 내라고 하고 있지만, 이미 지난 몇 년간 그런 미봉책으로 버텨오다가 한계에 이른 상황이다. 지역 교육청들을 대책도 없이 빚더미에 올라앉게 할 셈인가?

교육청들 중에는 이미 누리과정 예산을 편성한 곳들도 있기는 있다. 그러나 그렇게 편성한 5곳 중 4곳에서는 대신 방과후 학교 지원 등에 필요한 예산을 확보하지 못했고, 저소득층 지원 예산이나 인건비를 편성하지 못한 곳도 있다. '빵꾸난' 누리과정 예산을 무리해서 마련하다보니 다른 예산들에 문제가 생기고 있는 것이다. 이는 결국 교육재정이 부실해지고 청소년들의 교육권 상황이 열악해지는 결과를 초래할 위험성이 있다는 의미이다. 교육청들이 무리하게 빚을 낸다면 이런 위험성은 더 커질 것이다.

물론 중앙정부와 지역정부(교육청 등)는 누리과정을 포함해서 청소년들의 교육권을 보장할 공동의 책임을 지고 있다. 다만, 현재 제도상 재정에 대한 책임은 중앙정부가 더 많이 지고 있다는 것 또한 분명하다. 더군다나 박근혜 정부는 사태를 해결하기 위해서 제대로 된 소통과 협의도 없이 계속해서 막무가내로 교육청을 탓하고 윽박지르고만 있다. 박근혜 정부가 문제를 해결하고 누리과정 등이 잘 시행되게 하고 싶은 건지, 아니면 더 문제가 생기게 하고 싶은 건지 모르겠다. 정부가 예산에 관해 기초적인 산수도 할 줄 모르고 당장의 문제만 떠넘기려고 하는 것이거나, 아니면 악의를 가지고서 교육청들을 괴롭히고 교육자치를 약화시키기 위해 억지를 부리고 있다고밖에 보이지 않는다.

누리과정을 비롯한 각종 공교육은 우리의 권리이다. 그리고 이를 위해서는 제대로 된 공공의 재정 확보가 필수이다. 「경제적 사회적 문화적 권리에 관한 국제협약」은 청소년(어린이)의 양육과 교육에 대해 가능한 한 광범위한 지원이 부여되어야 함을 명시하고 있으며, 초등교육을 비롯하여 교육 전반을 무상으로 해나가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는 모든 청소년들이 차별 없이 교육권을 보장받기 위해서이다. 또한 누리과정을 포함하여 교육에 드는 비용을 공적으로 부담함으로써 부모 등 친권자·보호자들은 양육의 부담을 덜 수 있다. 청소년의 교육과 삶이 친권자 개인의 경제력과 의지에 달려 있을수록 청소년은 그들에게 삶을 의존할 수밖에 없고, 친권자 역시 자신이 청소년을 위해 많은 것을 투자하고 희생한다고 느낄수록 청소년들을 더 지배하려 들 위험성이 높다. 그러므로 양육과 교육을 사회가 책임지는 것은 친권자와 청소년 사이의 더 건강하고 평등한 관계를 위해서도 필수 조건이다. 

정부는 먼저 이러한 권리 보장의 의무가 자신에게 있음을 명확히 숙지하고, 진지하게 어떻게 예산을 편성하고 어떻게 무상보육‧무상교육을 실시해나갈지 논의하고 계획해야 한다. 선거 때는 표를 얻기 위해 그럴 듯한 공약을 걸고, 당선 후에 정부는 제대로 책임을 지지 않고 있는 지금 같은 상황은 매우 우려스러우며, 중요한 인권 문제를 왜곡시키는 행태이다. 이 때문에 어린이집·유치원·학교 등의 노동자들, 친권자들, 그리고 청소년들이 불이익을 입고 불안을 느끼고 있다. 지금이라도 남탓하기를 중단하고 누리과정 예산 등 교육재정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나서야 할 책임이 박근혜 정부에게 있다.

 - 정부는 교육청들에 대한 부당한 압박을 중단하고 누리과정 예산 문제 등을 해결하기 위한 소통과 협의에 나서라!
 - 정부는 무상보육‧무상교육 확대 등 보편적 교육권 보장을 위해 충분한 교육재정을 마련하기 위해 노력하라!


2016년 2월 9일

십대섹슈얼리티인권모임
청소년인권행동 아수나로


저작자 표시 비영리
신고
Posted by 공현
걸어가는꿈2015.10.12 13:52

[한글날 논평] 이게 한글이 아니면 두글이애오? 청소년 언어문화 그만 까새오

 

 

한글날, 우리가 전국적으로 다굴*을 당하는 날이다. “요즘 애들의 언어 파괴가 심각하다”, “알아먹지도 못할 은어를 쓴다”, “욕설을 한다”며 까대는 것이다. ‘한국어’와 ‘한글’도 구분을 못하는지 꼭 세종대왕을 들먹이며 학교에서나 인터넷에서나 하루종일 꼰대질을 시전하는데 어이가 1도 없음이다**. 우리가 쓰는 말도 분명 자음 14자 모음 10자로 조합하는 한글이다.

 

말 좀 줄여서 하는 게 어때서 그런가? 자기들도 줄임말로 ‘단통법’이니 ‘이태백’이니 ‘지자체’니 잘도 쓰던데 왜 ‘버카충’만 쓰레기냔 말이다. 그딴 기사 써대는 기자들도 자기들끼리 은어 많이 쓰기로 유명하지 않나. 너네가 하면 유식한 거고 우리가 하면 나대는 거냐.

 

욕 좀 하는 게 어때서 그런가? 우리가 욕하는 건 더럽고 폭력적인데 욕쟁이 할머니는 정감 있다고 하고, 자기들은 친구 만날 때마다 '이새끼 씨발 저년 씨발' 하는 건 이중잣대 오진다***고밖에 말할 수 없다. 욕설 중에 소수자 차별적인 말이 많은 것은 사실이다. 그런데 그건 쓰지 말아야 할 이유를 함께 이야기하는 방법이 맞는 거지 무조건 ‘어린 것들은 그런 말 쓰지마’ 하는 건 진짜 아니다.

 

언어파괴가 아니라, 언어문화다. 사람들은 언어를 만들고 변화시키고 사용할 권리를 가지고 있다. 많은 세대/집단들이 자신들의 언어문화를 만든다. 우리 청소년들의 언어문화에 대해서만 ‘언어파괴’라고 하는 건 우리가 만만하고 우리끼리 통하는 게 아니꼽기 때문 아닌가?


권력을 가지지 못했고 지배적 문화로부터 먼 사람들일수록, ‘고급진’ 언어가 낯설기 마련이다. 예컨대 빈곤계층이나 미국 흑인들 사이에서 비속어 등이 더 널리 쓰인다. 대부분의 청소년들 역시, 여러 공식적인 논의나 결정에서 배제되고, 발언할 기회도 존중받는 경험도 갖지 못한다. 청소년들은 비청소년들과 평등하게 소통할 기회도 적고 공식적인 자리에서 고급진 언어를 쓸 일도 별로 없으며 학교에 갇혀서나 거리에서나 청소년들끼리만 지낼 일이 많다. 이처럼 사회적 소수자인 청소년들 사이에서 비청소년들 사이의 주류적 문화와는 다른 문화가 만들어지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이런 건 생각하지도 않은 채 우리의 언어문화가 자기들과 다르다고 손가락질하는 모습은 그야말로 극혐****이다.

 

이 꼰대질도 참 오랜 역사와 전통을 갖고 있다. 1970~80년대에도 청소년의 언어생활이 “극히 거칠고 퇴폐적”이라고 우려하는 기사들과 함께 한글날에 청소년들이 “쌤통이다”, “피봤다”, “구라”, “공갈” 등의 신조어나 은어를 쓰고 맞춤법도 제대로 모른다며 걱정하는 기사들이 나온다. 겁나 우려먹은 소재라는 것이다. 새로운 말을 못 알아먹겠으면 검색을 하거나 우리에게 질문을 해라. 그 좋아하는 자기주도학습을 좀 해봐라. 괜히 만만하다고 우리만 까지 말고. 청소년들의 언어문화를 존중하고 소통하는 자세부터 가져라. 이제 한글날에는 새로운 이야기 좀 듣고 싶다. 좋은 문학작품도 한순간에 분석하고 외워야 할 글자더미로 만들어버리는 입시교육부터 같이 어떻게 해보는 게 어떨까? 인정하는 부분?*****




2015년 10월 9일

청소년인권행동 아수나로





*다굴 : 집단폭력, 린치

**1도 없음이다 : 하나도 없다

***오진다 : (감정이나 상태 등의 정도가) 엄청나다. 만족스럽다는 뜻의 전라도 사투리 ‘오지다’의 변형. ‘쩐다’와 비슷하게 쓰인다.

****극혐 : 매우 혐오스러움

****인정하는 부분? : 동의하는지 묻는 말


저작자 표시 비영리
신고
Posted by 공현
걸어가는꿈2015.08.06 00:51




청소년신문 요즘것들 제6호 2015.07.16.


커버이미지 :: 찜통교실 & Intro




  학교 끝나고 학원에 가기 전 편의점에 들렀다. 음료수를 사고 자리에 앉아, 폰으로 웹툰을 보려고 포털사이트에 들어갔는데 한 기사 제목이 눈길을 끌었다.
  "학교 10곳 중 8곳 공공요금 지출 줄어...찜통교실 무대책"
  엥? 뭔솔? 읽어보니 공공요금이란 수도, 전기, 가스 등을 이용하고 내는 돈이라고 한다. 특히 전기요금을 아끼려고 학교들이 에어컨을 제대로 안 틀고 있다고. 더워서 도저히 못 참겠다고 행정실에 하소연을 해도 에어컨을 안틀어주던 이유가 이거였구만. 아니 그럼 교무실, 교장실, 행정실부터 솔선수범해서 안틀어야 되는 거 아냐? 교실은 따닥따닥 붙어 앉아서 더 짜증나고 더운데.
  편의점의 에어컨 바람 덕분에 겨드랑이에 났던 땀이 마르면서 시원한 느낌이 들었다. 문득 입고 있는 교복이 한심스러워 보였다. 얇은 흰색 천으로 만들어져 비치기는 다 비치면서, 바람도 안 들어오는 블라우스, 땀 차서 다리에 붙는 치마. 교복을 편한 걸로 안 바꿀 거면, 다른 옷이라도 입고 다니게 해주든지. 체육복도 안되고 학교 안에서든 등하굣길이든 오직 교복만 입으라니 참 깝깝하다. 오늘은 땀 좀 말리려고 블라우스 단추 하나 풀고서 목 깃 좀 펄럭거리고 있었다고 교사에게 "여자애가 다 보이게 뭐하는 짓이냐"고 핀잔을 들었다. 내가 지 보라고 펄럭거린 줄 아나. 여자인거랑은 또 무슨 상관인데.
  땀이 다 마르고 나니 조금 서늘했다. 편의점은 에어컨을 튼 채 문을 활짝 열고 있었다. 어디서는 있는 에어컨도 못 틀고 헥헥거리고, 어디서는 펑펑 틀고. 참 불공평하다. 그런데, 요즘 발전소 때문에 환경오염 되고 위험하다고 난리던데 이렇게 전기 펑펑 써도 되는 건가? 그래도 우리 학교는 좀 너무한 것 같다. 어떻게 바깥보다 안이 더 덥담. 에어컨 안 틀고도 안 덥게 지낼 수 있으면 참 좋을 텐데. 옷이라도 좀 편하게 입었으면... 꼭 필요해서 에어컨 틀 때는 짧게 적당한 온도로 틀고... 방학도 2주밖에 안되던데 좀 길게 하면 좋겠다. 근데 이 이야기를 누구한테 해야 하지? 쌤한테 얘기하면 교육청 홈피에 올리라고 하고, 교육청 홈피에 올려도 아무 반응 없던데.
  뭐 다들 그냥 사는데, 나도 참아야지 별 수 있나. 편의점을 나오면서 문을 슬쩍 닫았다. 몇 발짝 걷자 등 뒤로 문을 다시 여는 소리가 들렸다.




청소년신문 [요즘것들] 제6호 순서



특집 : 찜통교실



[Special]


1. 에어컨도 못 트는 학교의 주인?


2. :: 더운 학교, 어쩔 수 없는 걸까 - 건물 설계, 일정 조정 등 해결책은 쉬운 곳에



[극한직업 청소년]


교복러



[소식]


한국 학생들의 학습시간은?


저항하자, 사랑하자, 우리의 레볼루션 




[청소년24시]


1. 인터넷을 막아라! - ㅅ홈스쿨센터의 반인권적인 규칙 등

2. 학교에서 세월호 추모 행동 탄압

3. 대법원, 학생인권조례는 정당하고 유효하다고 판결




[인터뷰]


핵발전소 없이, 입시경쟁 없이 살 수 있을까?

- 청소년 녹색당 준비모임 '녹갱이'씨





[청소년의눈으로]


학교, 수시가 중요해, 내 목숨이 중요해?




[만평]


불타는 교실



[광고]


저작자 표시 비영리
신고
Posted by 공현
흘러들어온꿈2015.07.30 02:22
대학거부 그 후대학거부 그 후 - 10점
한지혜 외 지음/교육공동체벗
『대학거부, 그 후』 : 행복하냐고 묻기 전에

나 역시 대학거부선언에 참여했던 대학거부자이다. "대학거부선언"을 하면서 가장 많이 들었던 질문은 대학을 거부한 이유였고, 두 번째로 많이 들었던 질문은 부모/가족은 어떻게 반응했는지였으며, 세 번째로 많이 들었던 질문이 바로 이거였다.

"대학거부해서 행복하게 살 수 있느냐" 혹은 "후회하지 않을 것 같으냐"

사람들은 사회에서 정해놓은, 주류의 길을 벗어나겠다고, 아니 단지 벗어나는 게 아니라 비판하고 거부하겠다고 선언한 사람들에게 다들 묻는다. 당신들은 과연 그렇게 해서 행복하게 살 수 있겠냐고...

그 질문의 의도는 아마 사람마다 다를 것이다. 누군가는 너네가 잘 살 수 있겠냐는 비웃음과 비아냥의 의미일 것이고, 다른 누군가는 정말 그렇게 행복하게 살 수 있을지 기대감을 갖고 묻는 것이리라. 하지만 어떤 의도이든 간에 번지수가 틀렸다. 대학거부선언은 "난 대학 졸업장 없이도 행복하게 얼마든지 잘 살 수 있어"라는 자신감의 표출이 아니기 때문이다.

대학을 거부한다고 선언한 이유는 우리 사회가 학력을, 출신 학교로 사람을 평가하고 차별하는 사회이기 때문이다. 교육의 목적이 대학 입시가 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런 것이 잘못되었으며 우리가 거부하고 바꾸어야 한다고 말하는 것이 우리가 '대학거부'를 외치는 일이다. 그러므로 대학거부자들은 이미 알고 있다. 우리 사회가 대학졸업장 없이는 차별을 받고, 불이익을 당하고, 어려움을 겪는 사회라는 것을 말이다.


대학거부자들에게 행복하냐고 묻는 것은 여전히 문제를 그들 개인의 몫으로만 돌릴 뿐이다. 그들에게 대학 없이도 잘 살 수 있다는 것을 스스로 증명해보라고 은연중에 요구하는 것이다. 대학거부선언이 담고 있는 정치적 의미를 잘라내는 태도이며, 거부선언을 한 입장에서는 벽 앞에 가로막히는 느낌이 들 수밖에 없다.

대학거부선언은 '말걸기'다. 함께 바꾸자는. 그리고 "행복해질 수 있느냐"는 질문은 그 말걸기에 대한 차가운 거절이다. 의도했든, 의도하지 않았든.


포장도 낭만도 하나 없이

그들은 대학거부자들에게 행복하냐고 묻지 말라고 한다. 사실, 그럼 대학을 다니고 졸업하는 이들은 행복한지부터 물어야 공정할 것이다. 『대학거부, 그 후』는 대학거부 이후의 삶에 대해 솔직하게 토로한다. 거부자들은 이미 짐작하고 있었지만 또 겪어보니 그 이상으로 단단한 사회의 벽에 부딪히며 살아나간다. 고민은 더 많아지고 불안은 더 커진다.

많은 고졸 성공담이나 고졸 청년들의 씩씩한 삶을 주제로 한 책들은 대개 대학을 안 가도 잘 사는, 혹은 성공한 모습을 보여주려고 애쓴다. 사회적 차별과 불안한 조건보다는, 그 속에서도 살아나가는 건강한 사람들의 모습을 보여준다. 그것도 나쁘지는 않다. 사람들은 어쨌건 이겨내고 살아나갈 테니. 하지만 그걸로는 충분하지 않다. 학력, 학벌 차별 속에서, 대학 중심의 사회 속에서 겪는 어려움에 대한 기록과 고백도 필요하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에는, 예뻐 보이려는 포장이 없다. 차라리 '진솔해 보이려고 하는' 포장이 있을지언정 말이다. 대학거부에 대한 낭만적 태도도 없다. 읽다보면, 뭐랄까, '건조한 슬픔' 같은 게 느껴진다.


『대학거부, 그 후』를 읽고, '역시 대학거부를 하면 힘들게 사는구나' 하고 동정하는 것은 부적절한 반응일 것이다. 책을 읽다보면 직접적으로 말하진 않더라도, 필자들이 대학거부자들의 존재를 기억하고, 함께하자고 제안하는 것 같다. 여럿이 함께할 때, 좀 더 행복해질 수 있는 조건을 만들 수 있다고 말이다. 행복하냐고 묻기 전에, 행복해져 보라고 요구하기 전에, 당신은 대학거부선언의 문제의식에 공감하는지부터 답해야 한다. 먼저 질문을 던진 쪽은, 자기 삶을 걸고 거부선언을 한 이들이기 때문이다.




http://gonghyun.tistory.com2015-07-29T17:22:240.31010



신고
Posted by 공현
걸어가는꿈2015.03.09 11:13






청소년활동기상청 활기 소식지 활력소입니다. 수신거부는 hwalgy@hanmail.net 으로 연락주세요.
http://cafe.daum.net/Life2010   |   http://hwalgy.tistory.com



저작자 표시 비영리


저작자 표시 비영리
신고
Posted by 공현
걸어가는꿈2015.02.08 15:02

[벼리] ‘2015청소년활동가선언’을 소개합니다①

검은빛, 공현, 쥬리
print

[편집인 주]

'2015 청소년활동가선언'은 청소년 운동이 지금 놓인 현재와 고민, 그리고 새롭게 청소년 운동을 시작하거나 알아가는 사람들에 대한 안내가 담겨있습니다. 인권오름에서는 선언에 담긴 내용과 그에 대한 설명과 맥락을 다양한 사람에게 들려주려 합니다. 다만 웹으로 글을 읽을 때의 한계로, 부득이하게 하나의 글을 두개의 글로 나누어 담습니다.

2015년 1월 13일부터 15일까지, ‘청소년활동가마당’이 열렸습니다. 지난 2014년에 처음 ‘청소년활동가마당’을 연 뒤 횟수로 두 번째였습니다. 청소년활동가마당은 청소년운동 단체들이 점점 더 다양해지고 청소년운동의 의제나 활동들도 늘어나고 있는 상황에서 여러 청소년활동가들이 모여 교류하고 토론하자는 취지로 열린 활동가대회 성격의 행사입니다. <2015 청소년활동가마당 - 여긴 어디? 나는 누구?>는 그 제목 그대로 청소년운동의 현주소와 청소년활동가들의 현재를 함께 확인하는 자리로, 청소년활동가들 30여 명이 각 단체의 활동을 공유하고, 질문과 고민을 나누고 토론을 했습니다. 2015 청소년활동가마당의 마지막 순서는 ‘2015 청소년활동가선언’을 만드는 것이었습니다. 2015 청소년활동가마당 셋째날에 기획단이 미리 준비해온 ‘2015 청소년활동가선언’ 초안을 놓고 수정 및 보완하는 토론을 했으며, 참여자 중 자신의 이름이 이 선언에 명기되는 것에 동의한 활동가들의 연명으로 선언을 채택했습니다.

기획단에서 굳이 선언을 제안하고 채택한 취지는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개별 단체 소속을 넘어 ‘청소년활동가’로서, 함께 청소년운동의 목표와 현재를 명문화된 형태로 발표하자. 둘째, 새로 청소년운동을 시작하는 사람들에게 청소년운동이 어떤 것인지를 안내해줄 수 있는 자료를 만들자. 셋째, 청소년운동과 부대끼고 있거나 청소년운동을 잘 모르는 다른 운동/활동가들에게 청소년운동에 대한 내용을 좀 더 합의된 형태로 제시하자. 청소년운동의 단체와 흐름들이 다양해지면서, 한 단체의 강령이나 운동원칙 합의 정도로 청소년운동의 문제의식을 공유하고 알리는 데 한계가 있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선언은 총 11개의 항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청소년운동이 그간 논의해온 수많은 의제들과 고민들을 모두 내용으로 담을 수 있었으면 좋겠지만, 청소년활동가들이 운동적으로 함께 인식해야할 중요성이 있는 내용들을 모아 만들게 됐습니다.

선언의 전반부는 주로 청소년운동이 무엇인지 정리하는 내용입니다. 청소년에 관련된 단체나 활동이 여러 종류가 있고 ‘청소년’ 자체의 개념도 모호한 까닭에 대체 무엇이 또는 어디까지가 청소년운동인지 혼란스러운 점이 있었습니다. 선언을 통해서 청소년운동의 정의와 방법론 등 그 중심에 있는 가장 핵심적인 문제의식들을 밝혔습니다. 그리고 그 다음은 청소년운동을 바라보는 시선, 또는 청소년운동과 다른 사회운동 사이의 관계 등을 다루는 내용이 있습니다. 운동의 정체성이란 다른 이들과의 관계나 외부로부터의 시선 속에서 만들어지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청소년운동을 보는 잘못된 관점을 비판하고, 청소년운동의 정치성과 독립성, 연대성 등의 원칙과 성격을 적었습니다.

‘2015 청소년활동가선언’은 그 이름 그대로 2015년 시점에서 청소년운동의 문제의식과 정체성을 표현하고 있는 것입니다. 바꿔 말하면, 앞으로 청소년운동이 변화하고 발전해가면서 새로운 문제의식과 발전한 내용을 담은 선언이 나올 가능성도 있을 것입니다. 많은 분들이 ‘2015 청소년활동가선언’을 통해 청소년운동에 대해 좀 더 깊이 알게 되길 바라는 한편으로 그런 변화의 여지 또한 염두에 두시길 청합니다.

2015 청소년활동가 선언

지 금 우리의 청소년운동은 새로운 기로에 서있다. 청소년운동은 쌓인 경험과 기억, 그리고 더 깊어지고 다양해진 목소리와 실천을 바탕으로 발전해가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세상을 바꾸기 위한 청소년운동의 새로운 모습은 무엇이어야 하는지, 우리가 어디로 어떻게 가야 하는지 등과 같은 새로운 과제와 마주하고 있기도 하다. 운동의 존속에만 급급하던 시대를 넘어, 이에 더해 발전과 변화 또한 요구되고 있는 것이다. 청소년해방을 위한 경로를 찾기 위해서는 현재 위치를 먼저 알아야 한다. 그러므로 지금이야말로, 우리의 청소년운동이 무엇이며 어디를 향해 있는지, 세상과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지 청소년운동 안팎으로 알리는 언어가 필요하다. 우리는 <2015 청소년활동가마당 - 여긴 어디? 나는 누구?>에 참여하여 청소년운동에 대한 다양한 대화를 나누었다. 그 자리를 마무리하며, 우리들은 각자의 소속 단체를 떠나서, 한 사람의 청소년활동가로서 청소년운동에 대해 생각을 공유하고, 함께 우리의 청소년운동이 서있는 위치와 걸어갈 방향, 그리고 걸음걸이를 밝히고자 한다.

1. (청소년운동의 목표) 청소년운동은 청소년의 해방을 지향하는 사회운동이다. 청소년운동은 청소년에 대한 사회적인 억압, 차별, 폭력, 착취에 저항하며, 청소년들이 인간적으로 존중받고 개인들이 자유로울 수 있는 평등한 공동체의 구성원으로 살 수 있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노력한다.
2. (청소년의 정의) 우리가 말하는 청소년은 사회에 의해 ‘미성년’이라고 구분되는 모든 사람들이다. 연령 기준은 절대적인 것이 아니며, 사회적・제도적․관습적․문화적 구분의 기준이 청소년운동의 당사자를 결정한다. 그 범위는 대개 만18세~20세 미만이 되며, 경우에 따라 더 적은 나이나 더 많은 나이를 기준으로 삼을 수 있다.
3. (청소년의 성격) 청소년은 소수자인 동시에 보편적인 집단이다. 현재 청소년인 사람은 사회적으로 억압과 차별을 받는 소수자의 위치에 있으나, 모든 청소년은 언젠가 청소년이 아니게 되며 모든 비청소년은 한때 청소년이었다. 또한 청소년은 청소년이라는 계급성을 가지지만, 그러면서도 속한 가족의 계급의 영향을 받는다. 청소년은 한 마디로, 사회의 구성원으로 온전하게 인정받지 못한 채 유예된 존재이다. 청소년운동은 단지 현재 청소년인 사람들의 권리를 신장하기 위해 투쟁할 뿐 아니라, 특정 연령의 사람들을 ‘청소년’으로 구분하고 억압하는 현상과 사회구조에 대해 문제의식을 갖는다.
4. (청소년억압의 성격) 이 사회에서 청소년은 국가와 자본을 위한 ‘인적 자원’으로 생각되며, 온전한 인간이 아니라 이윤을 위한 수단, 또는 미래를 준비하는 미성숙한 존재로 취급받는다. 청소년억압은 신체적・사회적 약자인 청소년들을 억압적인 사회구조에 맞춰 사회화시키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현상이다. 이 사회에서 청소년억압의 대표적인 사회구조는 학교와 가족이다. 학교제도는 청소년이 자본주의적인 경쟁 및 차별 논리, 능력주의를 내면화하고, 권력에 복종하는 국민이 되도록 교육하고 있다. 현 가족제도는 청소년을 친권자에게 종속된 존재로 만들고 양육과 생존을 개인의 책임으로 돌리며 계급을 재생산한다. 학교와 가족뿐만 아니라 비청소년 중심의 각종 제도와 문화 역시 청소년억압의 중요한 요소이다.
5. (청소년 안의 다양성) 청소년들은 단일한 존재들의 모임이 아니다. 청소년들은 계급, 성(性), 사상 및 이념, 신체적 상황, 그밖에 다양한 조건을 가지고 있으며, 이에 따라 각자 다른 억압을 경험한다. 청소년은 여러 차원의 중첩된 억압을 겪는 존재이다. 따라서 청소년운동은 다양한 청소년들이 경험하는 다양한 형태의 억압에 저항한다.
6. (청소년운동의 주체) 청소년운동은 청소년들이 스스로의 힘으로 사회의 주인이 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청소년운동의 가장 중요한 주체는 청소년 당사자이다. 청소년 당사자가 정치적인 힘을 가진 주체로 나서고 연대를 통해 집단적인 세력이 되는 것은 청소년해방을 위해 가장 중요한 방법이기도 하다. 소수의 엘리트나 ‘선한 어른들’이 청소년해방을 대신 이루어주는 것은 불가능하다.
7. (청소년운동과 나이주의) 청소년운동은 ‘나이주의’에 반대한다. 나이주의는 연령에 따른 위계, 나이에 따른 차별 등의 문화와 제도를 가리킨다. 청소년들은 나이주의에 의해 사회 전반에서 차별과 억압을 겪기에 청소년운동은 나이주의를 극복하는 운동이기도 하다. 나이주의는 운동사회에도 존재하며, 그로 인해 청소년활동가들은 동등한 활동가로서 존중받지 못하기도 한다. 청소년운동은 청소년이 나이를 이유로 운동의 참여가 제한되거나 업무에서 배제되는 현상에 문제의식을 갖는다. 청소년운동은 청소년들이 평등하게 참여하고 활동가로서 존중받으며 자신의 역할을 다할 수 있는 조직 구조와 문화를 지향한다.
8. (청소년운동의 정치성) 청소년운동은 정치적인 운동이다. 사회를 운영하고 사회적 문제에 대해 결정하는 모든 과정이 정치이고, 따라서 사회의 결정 과정에 참여하고 목소리를 내는 것 자체가 정치이기 때문이다. 청소년이 겪는 일상적 억압과 차별의 문제는 정치적인 문제이며, 이에 저항하는 청소년운동도 정치적인 운동이다. 청소년운동은 청소년의 정치적 권리 보장을 주장하며, 정치적 활동이 청소년이 접해서는 안 되는 것처럼 여겨지는 것에 반대한다.
9. (청소년운동의 독립성) 청소년운동은 다른 운동에 종속되지 않은 운동이다. 청소년운동에 ‘배후’가 있다고 여기거나, 청소년활동가들이 다른 비청소년의 이익을 위해 봉사하고 있다고 간주하는 것은 심각한 오류이자 거짓이다. 또한 청소년운동은 다른 사회운동의 ‘준비과정’이 아니다. 청소년들은 동등한 사회구성원이므로 청소년의 사회적 참여는 당연한 것이지 특별하거나 대견한 일이 아니다.
10. (청소년운동의 고유성) 청소년운동은 청소년운동만의 문제의식과 고유한 영역을 가진다. 청소년억압은 다른 구조의 문제가 해결되면 자동적으로 해결되는 것이 아니다. 청소년운동은 청소년의 관점에 의한 정세 판단과 가치 기준, 우선순위를 갖고 활동한다.
11. (청소년운동의 연대성) 청소년해방은 인간해방과 분리되지 않는다. 청소년억압은 우리 사회의 각종 억압적인 구조와 제도, 문화와 연관되어 있다. 따라서 청소년운동은 우리 사회의 인간해방을 위해 함께 투쟁한다. 그리고 인간해방과 우리 사회 전체의 변화를 위해 청소년운동으로서의 목소리를 내고 행동을 한다.

우리는 이상과 같은 청소년운동의 지향을 함께 선언하며, 이러한 문제의식 위에서 모든 청소년의 해방을 향해 투쟁할 것을 다짐한다. 우리는 각자의 자리와 단체에서 청소년운동을 하면서도, 해방을 위한 단결의 필요성을 잊지 않을 것이다. 또한 우리는 다른 운동과 구별되는 고유한 청소년운동을 하면서도, 청소년해방은 전체 사회구조의 변혁과 함께 온다는 것을 잊지 않고 다양한 사회적・정치적 투쟁에 연대할 것이다. 우리는 청소년활동가이고, 우리의 옆에는 청소년해방을 함께 이루어낼 동료가 있다. 우리는 더욱 많은 청소년과 함께하기 위해 노력하면서, 더 많은 청소년들이 더 나은 삶을 누릴 수 있도록 투쟁할 것이다.

2015년 1월 15일
※ 이름 뒤의 단체명은 참여자의 소속 단체를 참고삼아 알리기 위한 것이며,
해당 단체가 공식 입장으로 이 선언에 참여했다는 뜻이 아님을 밝힙니다.
검은빛(관악청소년연대여유), 공현(대학입시거부로삶을바꾸는투명가방끈들의모임․청소년인권행동아수나로), 난다(청소년인권행동아수나로), 델라(관악청소년연대여유), 둠코(청소년활동기상청활기), 루블릿(청소년인권행동아수나로), 마카롱(청소년인권행동아수나로), 목성돼지(청소년인권행동아수나로), 미쁨(청소년인권행동아수나로), 박씨(십대섹슈얼리티인권모임), 별다(청소년활동기상청활기), 선우(노원지역연합청소년인권동아리화야), 윤서(희망의우리학교), 이응이, 자유(대학입시거부로삶을바꾸는투명가방끈들의모임), 쥬리(십대섹슈얼리티인권모임), 쥰(노원지역연합청소년인권동아리화야), 최준호(중고생연대), 치이즈(청소년인권행동아수나로), 플린(청소년인권행동아수나로), 필부(노원지역연합청소년인권동아리화야), 하루유키(청소년인권행동아수나로), 호야(대학입시거부로삶을바꾸는투명가방끈들의모임)
덧붙이는 글
검은빛 님은 관악청소년연대여유 활동가 입니다. 공현 님은 대학입시거부로삶을바꾸는투명가방끈들의모임, 청소년인권행동 아수나로 활동가 입니다. 쥬리 님은 십대섹슈얼리티인권모임 활동가 입니다.
인권오름 제 425 호 [기사입력] 2015년 02월 05일 14:20:47


















[벼리] ‘2015청소년활동가선언’을 소개합니다②

검은빛, 공현, 쥬리
print

[편집인 주]

'2015 청소년활동가선언'은 청소년 운동이 지금 놓인 현재와 고민, 그리고 새롭게 청소년 운동을 시작하거나 알아가는 사람들에 대한 안내가 담겨있습니다. 인권오름에서는 선언에 담긴 내용과 그에 대한 설명과 맥락을 다양한 사람에게 들려주려 합니다. 다만 웹으로 글을 읽을 때의 한계로, 부득이하게 하나의 글을 두개의 글로 나누어 담습니다.

선언 해설

먼저, 선언의 앞머리에는 청소년활동가선언이 나오게 된 배경과 문제의식을 담았습니다. 짧게 보면 1990년대 중반부터 시작된 청소년운동은, 정치적 권리 부재와 경제적 독립의 어려움이라는 청소년 집단의 특수한 조건에도 불구하고 운동을 지속하고 성장시켜왔습니다. ‘지금 우리가 하지 않으면 이 운동은 사라질지도 모른다’는 불안과 결의로 성장해온 청소년운동은, 이제 불충분하더라도 어느 정도의 지속가능한 운영과 활동가 재생산이 이루어질 수 있는 기반을 갖추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는 동시에 지금이 앞으로 더 많은 청소년들이 함께할 수 있는 운동을 만들기 위해 새로운 전환이 요구되고 있는 시기라는 뜻이기도 합니다. 전문에서는 선언이 나온 그런 현실 인식을 알리고자 했습니다.

1. (청소년운동의 목표)
2. (청소년의 정의)
3. (청소년의 성격)
여전히 우리 사회에서 ‘청소년운동’이라고 하면, 청소년들을 선도․보호․육성하는 종류의 단체들이 많이 떠오르고 ‘청소년단체’라고 하면 여전히 그런 단체들이 주류입니다. 청소년의 인권을 이야기하고 청소년에 대한 억압에 저항하는 우리의 운동과는 상당한 거리가 있고 일부 충돌하기도 합니다. 이는 사실 1920년대에 ‘소년운동’이라는 이름으로 시작했던 운동이 청소년에 대한 보호․교육과 청소년 해방, 두 가지 상이한 입장을 함께 안고 있던 것에서부터 예언된 일이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우리는 선언 1항에서부터 청소년 해방을 운동의 목표로 명시하며, ‘청소년운동’이라는 이름을 재정립하기를 바랐습니다.
청소년운동에서 청소년이 무엇인가 역시 설명할 필요가 있지요. 우리는 그것이 어떤 자연적인 나이에 의해 정해지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 구분에 의해 정해진다는 것을 분명히 하려고 했습니다. 그리고 청소년운동이 특정한 세대의 성격이나 문화(청소년들은 순수하다, 정의롭다, 충동적이다, 발랄하다 등)로 인한 것이 아니라 청소년 억압이라는 사회구조에 맞서는 지속적인 운동이라는 것도 밝힐 필요가 있었습니다. 특히 청소년이라는 정체성은 시간이 흐르면 변할 수밖에 없다는 운명적 특수성이 있습니다. 한 시점을 기준으로 보면 청소년 집단은 소수자이며, 권력에서 배제되어 있는 집단이라는 점에서도 소수자이지만, 청소년기의 경험과 억압은 모든 사람들이 겪고 (보통은 미화되거나 왜곡되곤 하지만) 기억하며 살아간다는 보편적인 성질을 지닙니다. 청소년에게 가해지는 억압과 폭력을 철폐하는 일은 전체 인간의 해방과 직접적으로 연결될 것입니다.

4. (청소년억압의 성격)
5. (청소년 안의 다양성)
다음 4항에서는 ‘청소년억압’이란 무엇인가를 설명했습니다. 청소년운동은 청소년억압이 단지 비청소년들의 고정관념이나 의식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니라 사회구조적으로 만들어지는 것임을 논하는 방향으로 발전해왔습니다. 유교 문화, 신자유주의, 권위주의 문화 등 다양한 것들이 거론되었었지요. 이번 선언에서는 청소년억압의 원인을 국가와 자본에 의해 수단화되어 자본주의적 구조 하에서 자본을 위한 인적 자원으로 청소년기를 희생당하는 것을 핵심으로 꼽았습니다. 나아가서 억압적 사회구조에 맞춰서 사회화시키는 과정에서 보편적으로 나타나는 문제라고 짚어봤습니다.
청소년기는 특히 지배 이데올로기와 구조를 내면화하도록 요구받는 시기이기도 합니다. 학교에서 청소년들은 기본권을 억압당한 채 권력에 복종하는 법을 배우고, 경쟁과 차별 등을 내면화합니다. 또한 핵가족단위를 중심으로 한 시스템은 미성년 자녀의 권리를 그 보호자에게 양도하는 친권제도와 청소년의 성과 생활에 대한 통제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가족제도는 청소년들에게 계급재생산/상승을 위해 사회에 순응할 것을 종용하고, 양육의 책임을 부모 개인에게 떠넘기기도 하며, 여성들은 어머니라는 굴레 속에서 자녀의 삶을 책임지고 관리하느라 가정과 가부장에 종속되게 만듭니다.
5항에서는 청소년들이 여러 다른 조건에 놓여 있기에 여러 중첩된 억압을 겪는다고 적었습니다. 이는 청소년들이 겪는 다양한 억압에 복합적으로 대처해야 한다는 문제의식을 드러낸 것입니다. 즉 청소년들이 겪는 문제들이 단지 청소년억압에 대한 인식 하나만으로는 설명하거나 대처할 수 없다는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5항에 관해서는 무엇을 조건의 예시로 나열할지에 대해 토론이 이루어졌는데요. 초안에서는 일단 청소년운동이 지금까지 다루어온 경험이 있는 계급(경제상황)이나 성(성별, 성적 지향, 성별정체성 등)을 나열하자고 제안했고, 이에 더해 몸과 마음의 문제를 대표격으로 넣어서 사상 및 이념과 신체적 조건(예를 들어 장애, 외모 등이 얘기됐습니다.)을 명시하기로 합의했습니다.

6. (청소년운동의 주체)
6항은 청소년운동의 주체를 다룹니다. 준비 과정에서는 청소년운동의 방법론을 다룬 항과 주체를 다룬 항이 따로 있던 것을 논의 끝에 합쳐서 만들어진 항이기도 해서, 방법론에 대한 언급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청소년운동의 주체는 청소년해방을 지향하는 모든 이들이지만, 청소년 당사자가 주체가 되지 않으면 이룰 수 없다는 것이 그 내용입니다. 이에 관해서는 ‘청소년운동의 가장 중요한 주체는 청소년 당사자인가’에 대한 토론이 진행되었습니다. 실제로 많은 활동가들이 시간이 지나면서 비청소년으로서 청소년운동을 하고 있으며, 운동에서 늘 가장 중요한 주체가 ‘당사자’인 것은 아니라는 의견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비록 단체마다 회원 자격이나 운영 방식이 조금씩 다르더라도, 청소년 당사자의 주체적 활동은 청소년운동에서 중요하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7. (청소년운동과 나이주의)
7항은 ‘나이주의’에 대한 것입니다. 나이주의적 제도나 문화는 청소년이 미성숙·무능력하다는 편견에 따라 많은 억압과 차별을 가하며 보호라는 미명 하에 청소년의 경험과 참여를 차단하기도 합니다. 또한 많은 청소년활동가들이 운동사회 안에서도 이런 나이주의 문제에 부딪히고, 평등하게 대우받지 못한다고 느끼고 있습니다. 그동안 청소년활동가들은 이런 문제로 다른 운동에 몇 차례 항의를 하고 사과를 요구했던 역사가 있습니다. 서울교육감 후보를 뽑는 경선과정에서는 청소년들을 배제하는 결정에 반발하여 연대체를 탈퇴했던 적도 있습니다. 우리는 나이주의가 청소년운동이 다른 운동과 함께하는 데 최대의 걸림돌 중 하나라고 보고, 이런 청소년운동의 문제의식을 알리는 것이 꼭 필요하다고 생각해서 선언을 기획하던 과정에서부터 반드시 넣어야 할 내용으로 상정했습니다.
이에 대해서는 청소년 집단 내의 나이주의에 대해 특별히 더 언급할 것인가에 대한 토론이 있었습니다. 청소년들 사이에서도 나이의 차이로 인한 위계가 특히 심각하기도 하니까요. 청소년 집단 안의 나이주의에 대해서도 반대한다는 것에 관해서는 대체로 동의가 되었지만, 청소년 집단이 그러한 억압적 이데올로기를 내면화하는 현상은 나이주의 외에도 전반적으로 나타나는 일반적 현상이며, 나이주의에 관한 항에서만 특별히 언급할 필요는 없겠다는 의견에 따라 따로 담지는 않았습니다. 청소년운동 단체들의 여러 조건상 이를 바로 적용하기 어려운 단체들도 있었기 때문에 그런 점도 있지 않았을까 조심스레 추측해봅니다.

8. (청소년운동의 정치성)
청소년운동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생각에 관한 항 중 대표적으로 들어간 것이 정치성에 대한 것입니다. 청소년운동은 종종 비정치적이어야 한다는 요구를 받고 제도권의 정치 등에 참여하면 순수성을 잃는다는 비난을 받습니다. 그러나 청소년해방의 문제는 정치의 문제입니다. 넓은 의미의 정치도 그렇고, 좁은 의미에서 정부나 국회에서 이루어지는 정치도 그렇습니다. 예컨대 학교에서 벌어지는 체벌 사건 역시 국가의 정책과 법률, 예산 배분 등이 모두 관련된 사건인 것입니다.
그래서 청소년운동은 ‘청소년운동의 정치’를 할 것이고, 또 청소년들이 정치적 활동을 하는 것을 부정적으로 보는 태도에 반대합니다. 또한 청소년운동이 여러 정치적 문제들에 대해 목소리를 내는 것이 가능하고 필요하다고도 봅니다. 여러 단체와 활동가들은 각자 서로 다른 수준과 방식으로 정치적 문제를 다루겠으나, 적어도 청소년운동이 정치적인 운동이며 또 정치적이어야 한다는 원칙에 합의했습니다.

9. (청소년운동의 독립성)
청소년운동을 바라보는 관점 중에 가장 힘을 얻는 것은 사실 청소년운동을 다른 데 종속된, 독립되지 못한 것으로 보는 것입니다. 이는 청소년들이 미성숙하고 어른들에게 의존적이라는 편견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보수언론 등 한쪽에서는 청소년운동에 어떤 배후 세력이 있어서 청소년들을 조종하고 있다고 함부로 말하는 일이 많습니다.
또한 이른바 진보적인 운동을 한다고 하는 쪽에서도 사실상 궤를 같이 하여 청소년운동을 마치 다른 운동의 준비과정이고 청소년활동가들은 나이가 든 이후에 당연히 (대학생운동이든 청년운동이든 노동운동이든 뭐든) 다른 운동을 할 것처럼 말하기도 합니다. 그리고 청소년활동가들에 대해 대견하거나 기특하다고 말하며 우리를 아래로 내려다보는 무례를 저지르기도 합니다. 청소년들이 스스로 판단하고 행동하는 독립적이고 평등한 사람이라고 본다면 할 수 없는 이야기지요. 우리는 양쪽 모두에 문제제기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판단하여 선언 9항에 이와 같은 내용을 넣었습니다.

10. (청소년운동의 고유성)
11. (청소년운동의 연대성)
선언 중 마지막 항들은 청소년운동과 다른 운동 사이의 관계를 이야기하기 위한 것입니다. 청소년운동이 좀 더 청소년운동 자신의 이슈에 집중해야 하는가, 또는 좀 더 다른 사회운동들과 연대해야 하는가, 이는 청소년운동 내부에서 오랜 논쟁거리였습니다. 사실 하나의 정답이 있는 문제가 아니라 그때그때 다른 답이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선언에서는 청소년운동이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과 해석을 고유하게 가진다고 했고, 청소년억압의 문제가 독자적인 것이라는 것을 우선 강조하기로 했습니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청소년운동이 전반적인 사회의 변혁과 인간해방을 위해 타 운동과 연대해야 할 필요성 역시 간과할 수 없는 일입니다. 선언을 준비하는 과정에서는 청소년운동의 고유성과 연대성 중 어떤 것을 조금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가에 대해서 활동가마다 판단의 차이가 있었고, 이는 정도의 차이이고 강조점의 차이였기에 명쾌한 결론을 내릴 수는 없었습니다. 우리는 선언에서 “청소년운동으로서” 고유한 판단을 토대로 하여 연대가 이루어져야 한다는 취지로 고유성과 연대성에 관한 내용을 담았습니다.
덧붙이는 글
검은빛 님은 관악청소년연대여유 활동가 입니다. 공현 님은 대학입시거부로삶을바꾸는투명가방끈들의모임, 청소년인권행동 아수나로 활동가 입니다. 쥬리 님은 십대섹슈얼리티인권모임 활동가 입니다.
인권오름 제 425 호 [기사입력] 2015년 02월 05일 14:30:36


저작자 표시 비영리
신고
Posted by 공현
지나가는꿈2014.11.24 17:10

아수나로 10주년을 앞두고, 재미로 쓰는 나의 아수나로 비하인드 스토리 (1)

올해 가을은 <청소년인권연구포럼 아수나로> 시절부터 따져서 아수나로 10주년이고,
내년이면 내가 아수나로에서 활동을 한 지 10주년이 되고,
내후년 2월이면 <청소년인권행동 아수나로>로서 10주년이 되네요.


아마도 내년 말쯤에 10주년 행사를 하게 되지 않을까 싶은데...

그냥 재미로 써보는 나의 아수나로 비하인드 스토리.
개인적 기억과 정보들의 조합이고 편하게 일기 쓰듯(?) 쓰는 형식이에요.

시간 날 때마다 짤막짤막하게 써보려고 해요



-----------------------------------------------------------------------------------------------

고등학교 때,

나는 이른바 '자연발생'한 청소년인권활동가였다.

다니던 고등학교에서 체벌, 단체기합이나 두발규제나 강제야자 등에 대해 문제의식이 계속 있었고 혼자서 비판하는 글 같은 거 복사해서 돌리다가 CCTV(TV는 무슨. 감시카메라지.)에 걸려서 기숙사에서 벌점을 받은 적도 있었다.

자연발생체였던 나는 당연히 조직이고 뭐고 없었고, 내가 학교 다니던 그 지역에도 청소년운동 관련 단체라곤 한 개도 없었다. 2004~5년이 그런 시기였지... 서울에나 희망 뭐 이런 단체들이 있었고, 전국 단위 단체는 남아 있지도 않았고...... 그래서 나는 요즘 아수나로나 청소년운동 현황을 보면 격세지감을 느끼는 것 같다. ㅋㅋㅋ



그러다가 2005년 5월에 내신등급제 반대 촛불집회와 두발자유 운동(온라인서명+거리집회)이 다시 일어났다.
나는 언론을 통해 그 소식을 들었고 그때 처음으로 '청소년운동'이란 걸 알게 되었으며 내가 평소 생각하던 문제들을 사회운동으로 다룰 수 있단 걸 그때 알게 됐다.
물론 그 당시엔 그렇게 코가 꿰어서 10년을 올 줄은 상상도 못했지만... ㅠㅠ


여튼 내가 학교를 다니던 도시 전주는 그런 운동이고 뭐고 없었고,
나는 2005년 5월 집회 때 서울을 갈지 광주를 갈지 고민하다가 그나마 가까운 광주로 갔다가 집회가 취소되어서 토론회만 갔다가 오고 블라블라... 그때 광주YMCA청소년인권센터라든지, 전북평화와인권연대라든지, 고등학교 동창의 삼촌이 인권활동가였다든지..... 이것저것 또 스토리가 있긴 한데 이건 패스.


아수나로와 처음 만난 건 내가 8월, 여름방학 중에 전주에서 두발자유, 학생회 법제화 등을 요구하는 거리집회를 준비하면서였다. 거의 그냥 혼자서 맨땅에 헤딩하듯이 준비한 거였는데...


그때 노컷아이두(*당시에 두발자유 서명운동이 벌어지던 사이트다.)에 홍보를 했더니 아수나로(당시는 '청소년인권연구포럼') 사람이 쪽지를 보내왔던가 메일을 보내왔던가...

그러면서 자기들이 두발자유 뱃지를 공짜로 줄 수 있는데, 집회에 가도 되겠냐고 했다. 서울에서 온다고...

사실 그렇게 적극적인 반응을 보인 사람들이 그 사람들 뿐이라서 조금 감동했던 것 같음.

아수나로의 무직인꿈틀이, 제엠 등이 집회 전날에 와서 같이 밤을 새며 집회 준비를 해줬고 그때 처음 만났는데 음...

머리 빡빡 민 대머리(=무직인꿈틀이)와 시커멓고 덩치 큰 다 죽어가는 것 같은 사람(=제엠;)이 와서 꽤 당황했던 듯하기도 하고... 겁 먹었던 거 같기도 하고... 음.




집회는 깔끔하게 망했다ㅠㅠㅠㅠ 그때 교육청에서 집회 막고 뭐 하고 하는 것 때문에, 전단지 뿌리면서 종이엔 장소를 안 써놨고 온라인에만 게시했고....(지금 생각하면 바보 같음. 막을 거면 온라인 보고 막겠지...)

여튼 온 사람은 아는 사람 + 내가 발로 뛰어서 섭외한 지역청소년 무슨 센터의 사물놀이패 밖에 없었음.

거기다가 비까지 쏟아져서 집회 30분만에 접고.

첫 집회, 처음으로 기획해본 운동, 그리고 처음으로 좌절해본 운동이기도 했고, 그래서 나는 "언제나 시작은 눈물로~ 누구나 태어날 때 크게 울듯이" 하는 노래를 들으면 항상 그날이 생각난다.



그렇게 집회는 망했지만 나는 그 뒤에도 계속 운동을 했는데, 학교 안에서 모임도 만들고 같이 책도 읽고 어쩌구저쩌구.... 활동을 했고, 집회 때 이어진 아수나로와의 인연도 계속됐다.

아수나로 사람들은 <두발자유화 가이드라인>이라는 전단지를 주기도 하고, 당시 아수나로에서 내던 <청소년의 눈으로>(그래, 지금은 '요즘것들'의 한 코너 이름으로 오마쥬를 하고 있지...)라는 신문을 같이 만들자고 하기도 하는 등 계속 연락을 하고 활동 소식을 교류했다.


그 뒤, 2005년이 9월인가 10월인가에 아수나로 사람들이 "학생인권공동행동"이란 것을 만들어보겠다고 하면서 몇몇을 모았다. 아수나로 사람들은 다 20대였는데, 학생인권공동행동은 전국에서 청소년인권에 관심 갖고 자기 학교나 지역에서 활동을 해나가는 청소년들 몇을 모은 거였지... 그 중에 나도 껴있었고, 그 일을 계기로 온라인으로 여러 소통을 더 활발하게 하게 됐다. 

그래도 수가 많지 않았고, 4명인가 5명인가 됐던가??? 몇 개월 안 가서 흐지부지됐다...

아 맞다. 그거는 기억이 나는데, 11월 26일에 '청소년인권보장거리축제'라는 걸 했었다. 서울, 진주, 수원 등등에서 두발자유 등을 걸고... 캠페인 또는 거리집회 식으로 했는데, 그거 하느라 서울에 와서 당시 아수나로의 혁수 집에서 하루 잤지. 더럽게 추웠고, 집회가 사람이 별로 없어서 그냥 간소하게 했다. ... 한겨울에 괜히 집회 하지 말아야지, 하는 생각을 가지게 한 계기였을지도. 

그때 처음으로 사회당학생위원회의 코이라는 사람을 봤는데, 그때도 막 큰 소리는 치고 말로는 막 엄청 격식 차리고 하는데도 실속 있게 일을 못한다고 생각했다. 하하하;; 나중에 들은 건데, 11월 26일 집회는 코이가 적극적으로 제안하고 자기가 준비한다고 해서 한 건데 제대로 안 됐다고 아수나로 사람들도 투덜거렸다. -_-



<학생인권공동행동>이 어영부영 흐지부지~ 흘러가고

나는 대학교 진학 등 문제로 서울로 갔는데 그 뒤에 아수나로에 좀 더 본격적으로 발을 들이게 됐다.

거기에는 내가 서울을 간 영향도 있었고, 아수나로의 성격 변화도 있었다. 아수나로 사람들은 <학생인권공동행동> 등 몇 번의 청소년운동조직 만들기에 실패한 뒤에, 아수나로는 이론/지원조직이고 청소년당사자의 운동조직을 별도로 만든다는 모델 자체가 비효율적인 것 아닌가 생각하게 됐다. 그래서 2006년부터 청소년과 비청소년을 인위적으로 나누지 않고 아수나로를 청소년들이 주축이 되되, 비청소년도 참여하는 운동조직으로 만들기로 했다.

나는 그 타이밍에 맞물려서 아수나로에 참여하게 됐다가 그대로 슉~ 빨려들어온 거지, 뭐... 에 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도 계속 운동을 했을까 생각해보면, 이 운동 자체가 재미있기도 했고, 고등학교 졸업했다고 싹 빠지는 것도 영 별로인 거 같았고, 그리고 내가 생일이 빨라서, 아직 2006년까지는 만18세, 연19세니까... 아직 난 10대야! 하는 이상한 오기도 있었던 것 같고.





나 이전의 아수나로 사람들


사실 나는 내가 들어오기 이전의 아수나로, "청소년인권연구포럼" 시절의 아수나로를 잘 모르는 편인데, 그때 활동했던 당시의 결과물은 http://cafe.naver.com/asunaro/303 이런 걸 확인해볼 수 있다.

나를 가리켜 요새 아수나로의 화석이라고 놀리곤 하는데, 내가 화석이라면 나 이전의 사람들은 뭐 삼엽충이란 말이냐...



※ 참고

아수나로가 만들어진 것에 관해서 처음 만든 멤버인 피터의 말을 옮겨보자

처 음에 아수나로는, <전국중고등학생연합>, 진주지역의 청소년운동조직인 <행동하는청소년>, 그리고 <우리스쿨> 등에서 활동했다가 막 20살, 21살이 되어 청소년이 아니게 된 청소년활동가들이 은퇴(?) 이후 청소년운동에 계속 관심 가지고 참여하기에 적절한 성격의 단체로 만들어졌다. 그걸 피터는 "늙어버린 청소년활동가들이 모여들다."라고 적었었다.

그러니까 한 1년 반 남짓 되었던 <청소년인권연구포럼 아수나로> 시절의 의미를 찾아본다면 말이지... 비록 연구조직으로 별도로 만든다는 생각 자체는 잘못된 그리 현명하지 않은 것이었지만, 그래도 청소년운동을 하면서 얻은 경험과 교훈들을 숨고르며 정리하고 이론화하는 그 시간을 가졌기에 <청소년인권행동 아수나로>로도 만들 수 있던 것 아니었을까 

   --- 라는 게 피터의 생각.




아수나로의 초기 멤버, 그러니까 나보다 전에 들어왔던 멤버들 중 내가 자주 만난 건 피터, 무직인꿈틀이 둘이었던 듯.

제엠이랑은 오타쿠로서 많은 취미(대전지역에 두발자유 캠페인을 준비하러 갔던 나에게 '쓰르라미 울 적에'를 영업했던 것도 제엠이었다!)를 나눴지만 생각의 차이는 다소 있었지 않았나 싶다.



피터는 영화 데스노트에서 라이토 역을 맡은 일본 배우, 후지와라 타츠야(배틀로얄에선 슈야 역)랑 닮았는데... 음 타츠야의 얼굴을 좀 홀쭉하게 만들면 정말 비슷함. 날 자꾸 카페로 불러내서 수다를 떨던 게 기억난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청소년운동에 대한 자기 생각이나 경험들을 최대한 빨리 나에게 전달하고 싶어 했던 듯싶기도 하다.

쓸데없는 형식이나 절차를 싫어하면서도, 대중에게 어필하기 위해서는 멋있어 보이는 것, 매력적으로 보이는 것, 그런 건 필요하다고 했다.

그런데 그러면서도, 처음에 우리가 만든 두발자유 전단지에 관해서 내가 너무 글이 많고 설명조이고 그래서 처음부터 관심이 많고 공부 잘 하는 그런 학생들이나 읽을 것 같다고 부정적으로 평가했을 때는, 뭐 그런 사람들만 읽으면 된다는 식으로 대답을 해서.... ㅋㅋ 음 정말 대중성 그런 것에 대해 어느 정도로 생각했는진 솔직히 잘 모르겠다.

달변이었는데, 글을 차분하게 잘 쓰진 않았다. 말이 많았다. 여튼.

본인의 옷 입는 것 등도 (아마) 상당히 멋쟁이였다.  (아마) 인 이유는, 내가 그런 패션 등을 평가할 줄 모르거든.



무직인꿈틀이는 지역이 멀어서 자주 보진 못했지만 서울도 자주 와서 그럭저럭 봤다. 그리고 온라인에서 대화를 많이 했지. 글을 많이 썼고...

두피에 문제가 있어서 머리를 빡빡 밀었다고 했는데, 음 미안. 지금도 꿈틀이 하면 대머리가 먼저 떠올라... 하하 처음 만났을 때 인상이 강렬해서;;

아수나로에 초창기 멤버 중 가장 오래 남아 있었던 사람이기도 하고, 지금도 계속 직간접적으로 연락은 하고, 그리고 아수나로 관리 아이디가 이 사람 명의인 걸로, 아직도 그 흔적이 남아 있지. 이론적인 것? 문자로 정리된 정보? 그런 건 무직인꿈틀이를 통해서 많이 전달을 받았고, 청소년운동에 대한 관점, 청소년운동의 과거 등등도 많이 배웠다. 채팅방이나 카페 게시물이나 등등을 통해서.... 생태주의와 정치경제학 뭐 이런 주제로 석사 논문을 썼다고 들었고 지금은 진주 지역에서 지역운동 등을 하고 있다. 최근에 봤을 땐 살이 많이 쪄서 무슨 부처님 같았음. 아수나로 초창기 멤버 중엔 거의 유일하게 아수나로나 청소년운동에 현재도 계속 관심과 애정과 기여를 보내고 있다. 2010년 부산 총회 때도 왔음.



에또-

그때 아수나로는 처음 만들 때부터 대중운동, 대중조직을 지향한다고 했었는데,

지금 돌이켜보면 참 그게 뭔 소린지 스스로 알고는 있었나 모르겠다.

나 자신도 그렇지만, 일단 아수나로 초창기 멤버들이 말이지.


무직인꿈틀이가 썼던 글 같은 걸 보면, "대중운동"을 뭐 특정계층에게만 해당하지 않는 의제를 가지고, 다수의 청소년들의 자발적인 지지와 행동을 끌어낼 수 있는 운동... 정도로 생각했던 거 같다. 더 단순하게 보면 그저 많은 청소년이 참여하는 운동으로 생각했고.

대중조직화나, 대중조직/활동가조직의 조직 운영 문제 같은 구체적인 논의는 없었다. 그런 생각이 있었다면 아수나로를 지금 같은 식으로 조직 디자인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니까 현재의 대중조직에 대한 논의에서 참고할 만한 건 크게 없을 듯...


그렇게 뭔가 허술했던 조직인데도 어째 그럭저럭, 용케도 안 망하고 왔다.

저작자 표시 비영리
신고
Posted by 공현
흘러들어온꿈2014.11.15 23:43
페미니스트라는 낙인페미니스트라는 낙인 - 10점
조주은 지음/민연

『페미니스트라는 낙인』
 저는 이 책을 2007년에, 나온 직후에 집어들어서 읽게 됐었습니다. 그때도 꽤 깊은 인상을 받았던 걸로 아는데... 제가 갖고 있는 페미니즘에 관련된 관점이나 센스는 이 책에 영향을 많이 받았습니다. 이번에 다시 읽어보니, 생각보다 훨씬 큰 영향을 받았더군요. ㅎㅎ;
페미니즘 자체에 대한 관점도 가지게 됐지만, 이 책에서는 아동이나 청소년에 관련된 내용, 사회운동-노동운동 등에 관한 내용들도 많이 다루기 때문에 그런 것들도 큰 도움이 됐습니다. 또한, 페미니즘의 문제의식으로 가족 문제를 보고 교육 문제를 보고 청소년인권 문제를 유비추론해보자는 생각도 이 책 덕분에 했던 것 같습니다.

저는 조주은씨가 청소년운동이랑 굉장히 잘 맞을 거 같단 생각을 하면서 읽었습니다.

예를 들어 이런 내용들이 있습니다.

˝아이를 키우면서 부모들은 자녀에게 버릇이라는 것을 가르칠 때가 있다. 아이가 말문이 트여 제법 자기 의사를 표현하기 시작할 무렵 부모들이 먼저 가르치는 것은 존댓말이다. ˝~하셨어요?˝라는 높임말부터 ˝어른이 무슨 말을 하면 `네`하고 잘 듣는 거야˝처럼 순종적인 태도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더군다나 한쪽은 반말을 하는데 다른 한쪽에서는 존댓말을 한다면, 그 관계는 권위로 움직이는 권력관계가 된다. … 우리가 흔히 가정교육을 잘 받았다고 하는 예의 바른 어린이란 곧 어른들의 권위에 순응하고 복종하는 아이를 의미한다. 가족은 연령에 의한 권력관계가 작동하는 곳이기 때문에 그 안에서 상대적으로 나이가 적은 아동, 청소년(녀)들은 가족 안에서 보호와 숨막히는 통제를 동시에 경험하기도 한다. 혹시 우리는 저항과 비판 속에서 건강하고 평등한 사회가 이루어진다고 하면서도 가정으로 돌아가면 자기 아이를 어른 말 잘 듣는 아이로 키우려는 욕구는 없는가? 또는 말 잘 듣는 자녀이고자 하지는 않는가?˝(89~90쪽)

˝전시 현장에 있는 어린이는 전쟁 반대의 다양한 이유 중 하나가 되지만, 그 논리는 자본주의적 가부장제 사회에서 또 다른 착취를 빚어낼 수 있다. 그렇다면 과연 어떻게 아동에 대한 정의를 새롭게 내릴 수 있을까? 그리고 아동들에게 진정으로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아동기의 발명으로 아이와 어른의 세계가 분리되었지만, 아동이 어른의 세계에 통합된다면 새로운 세상이 가능하지 않을까?˝(124쪽)

조주은씨는 아동기 문제를 모성착취, 모성신화와 연관지어서 많이 풀어냅니다. 그리고 가족에 관련해서는 `정상가족`이라는 이데올로기, 또, 가족 안에서의 권위나 권력관계 문제에 대해서 지적하죠. 경험이나 사례에 근거하면서도 이론적인 고민, 일반화된 관점을 놓치지 않기 때문에 잘 와닿습니다.
가족 안에서의 권력에 대해서 어른-아동 문제도 이야기하지만, 역시 페미니즘이니까 남성-여성 문제도 많이 이야길 해요. `사랑`이라는 환상, 성폭력, 불평등한 가사노동이나 양육... 그리고 가족 안에서도 그렇게 폭력이 존재하고 이해관계가 다르다는 생각을 보여주는데, 저도 그걸 보고 가족 안에서 자식과 부모 사이에 이해관계가 일치하지 않을 수 있단 아이디어를 얻었던 거 같아요.

˝모순되게도, 단일한 계급이라고 치부되는 한 가족 안에서도 취향은 위계화되어 있다. 남성들이 자신만의 취미생활을 동호회 활동 등을 통하여 우아하게 지속하는 반면, 여성들은 결혼 전에 알았던 음악이 마지막인 경우가 많다. … 계급분류적 문화 행위의 상징성이 궁극적으로 계급구조를 재생산하는 역할을 한다는 부르디외의 지적은 의미심장하지만, 남성과 여성이라는 계급이 어떻게 차별적으로 재생산되는지는 분석하지 않았다는 점에서는 아쉬움을 남긴다.˝(229쪽)


조주은씨 본인의 논문 주제가 `대기업 생산직 노동자 가정`에 관련된 거였는데, 그래서 그런가 조주은씨는 가족의 문제도 잘 분석해내지만, 노동운동 내부의 문제도 적절하게 지적을 하더라고요. 칼럼을 모은 것 같은 책이기 때문에 그 시대의 여러 이슈들과도 관련지어서 쓴 글들이 많습니다. 그런 것도 읽어볼 만합니다.


다른 활동가 분들이랑 꼭 같이 읽고 싶은 책입니다!


물론 페미니즘이 오랫동안 다뤄온 주제인 젠더와 섹슈얼리티에 관해서도 좋은 글들이 많습니다.

딱 펼쳐보니까 ˝프리섹스주의자를 자처하는 여성 활동가들은 남성들에게 창녀로 이해되고 프리섹스주의자인 남성 활동가들은 섹스 파트너를 선택할 권리를 향유한다.˝(195쪽) 같은 통렬한 서술이 눈에 들어오네요.


다만 다양한 주제들을 간결하면서도 핵심적 문제를 짚으며 다루긴 하는데, 하나하나의 글들이 좀 짧은 편이라서 아쉽기도 합니다. 더 길게 이야기를 해보면 재밌겠다 싶은 게 몇 개 있었습니다.



아, 사소한 단점 하나. 책 편집상 쪽수 표기가 책의 제본 안쪽에 돼있는데요. 그거 때문에 쪽수 찾기가 힘드네요;;; 왜 이렇게 했지...

http://gonghyun.tistory.com2014-11-15T14:43:230.31010


신고
Posted by 공현
걸어가는꿈2014.09.16 03:27


저작자 표시 비영리
신고
Posted by 공현
걸어가는꿈2014.04.21 19:28



[청소년활동기상청 '활기']에서는 함께 공론화해서 논의하기는 어려웠고 혼자만의 고민으로는 답을 얻기 어려웠던 주제들에 대해 함께 얘기해보는 시간을 가지려 토론회보다는 가볍지만 수다회보다는 조금의 무게를 더한 시간을 준비했습니다.



개인적 고민들이 결코 개인만의 고민이 아니었기에...

병역의 문제, 대학의 문제, 가정의 문제, 연애의 문제....


어찌 생각해보면 지극히 개인적인 고민 일 수 있지만 ‘갈지, 말지’ ‘할지, 말지’라는 선택의 문제를 넘어서 이 문제들을 둘러 싼 마음의 불편함, 깜깜함, 미안함 들을 함께 마음 터놓고 얘기 해보고자 합니다.


자신의 문제를 과감하고 당당하게 헤쳐 나가는 ‘삐삐’처럼!


현재 고민 중인 사람, 고민을 끝 낸 사람, 고민을 안 해 봤지만 함께 얘기 나누고 싶은 사람 누구든 참여하실 수 있습니다.




2014 활기 고민덜기 프로젝트 ‘삐삐 롱수다킹’ 제1탄 병역? 거부?



언제? 매월 마지막주 월요일

     / 제1탄-2014.04.28.월 저녁 6시


어디서?   독립문역, 부귀빌딩, 전교조서울지부 건물


누구랑?   병역을 코앞에둔, 군대를 다녀온, 군대와 활동에대해 고민하는사람, 듣고싶은사람, 이야기하고싶은 남성 여성 등등 활동가 모두모두



참가신청 - 4/ 26일까지! 010 9691 9194 예솔 ( 인원파악을 위함입니다 간단하게 문자로도 신청 가능합니다! )


저작자 표시 비영리
신고
Posted by 공현
걸어가는꿈2014.03.30 22:48



청소년활동기상청 활기 소식지 활력소입니다. 수신거부는 hwalgy@hanmail.net 으로 연락주세요.
http://cafe.daum.net/Life2010   |   http://hwalgy.tistory.com
저작자 표시 비영리
신고
Posted by 공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