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설픈꿈2008. 1. 13. 22:41

고향

 (2005년 5월)


 고향이란 단순하게는 태어나서 자란 곳을 의미하지만, 고향이라는 한 마디가 지니는 함축적 의미는 그보다 더 크다. 근원, 원류, 바탕을 둔 땅, 가장 친숙한 곳…. 인간의 고향은 기본적으로는 10개월 가량을 자란 어머니의 자궁일 터이고, 또 자란 집, 자란 고장일 테지만, 사람들이 '고향'을 더 복합적인 의미로 사용한다는 점은 곧잘 확인된다. 고향은 주관적인 개념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고향을 결정짓는 데는, 거기에서 몇 년 살았노라는 객관적인 문제보다는 내가 그 곳을 어떻게 느끼는지 등, 주관적인 문제가 더 큰 비중을 차지하기도 한다. 평생을 한 곳에서 살더라도 그곳을 고향이라 말하기 어려운 사람도 있을 수 있다.

 이렇듯 고향은 주관적인 것이며, 한층 확장되면 고향은 영적이다. 예를 들면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를 읊은 천상병씨의 고향은 저 하늘이라고 해야할 것이다. 인간의 정신은 고향에 대한 그리움, 향수, 노스탤지어에 곧잘 지배당한다.

 이상을 추구하는 것, 이상 세계를 동경하는 마음도 향수와 같은 색조를 띤다. 노천명씨가 그리는 사슴을 예로 들자면, 슬픈 모가지를 하고 먼 데 산을 바라보는 것은 이상지향적이지만, 그것을 잃었던 전설에 대한 향수라고 하지 않는가. 유치환씨의 푸른 해원을 향한 깃발은 노스탤지어의 손수건이 아닌가. 사실 향수와 이상에 대한 소망은 친숙한 것(과거)에 대한 그리움과 새로운 것(미래)에 대한 소망이라는 점에서 오히려 대립되는 개념으로 볼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둘은 분명 비슷한 색조를 띤다. 인간이 추구하는 미래란 결국 과거로부터 온 것일까? 그렇다기보다는, '현재가 아닌 것'을 지향하는 측면에서 볼 때 그것들이 같은 류일지도. 과거는 추억으로 덧칠되고 미래는 기대로 덧칠된다.



 예전에, 주민등록초본을 동사무소에서 떼어 왔는데 두 장이나 나왔다. 변덕스러운 행정구역 변동 - 지방의회가 평소엔 특별한 일을 하지 않는다는 것을 숨기기 위한 조례들 말이다. - 도 기록되어 있지만, 대부분은 이사를 다닌 기록들이다. 다른 여러 사정상 나보다 더 많이 이사를 다닌 사람들도 이 세상에는 널려 있을 것이다. 주민등록초본을 떼면 수 장이 나오는 사람들 말이다.

 아무래도, 그런 사람들은 고향을 잃기 십상이다. 나도 고향을 잃었다고 할 수 있으려나. 내 고향은 어딜까?

 처음 태어난 곳은 서울이며, 아주 어릴 때를 보낸 것은 서울이었다. 가장 토속적으로 산 것은 군산이었다. 초등학교 고학년과 중학교, 고등학교 1, 2학년을 보낸 곳이 익산이다. 그나마 가장 익숙한 곳, 가장 오래 산 곳은 익산이겠지만, 익산이라는 장소에 대해 어떤 애착 같은 게 느껴지지는 않는다. 기차를 타고 익산을 지나칠 때도 나는 번번이 별다른 감흥을 느끼지 못하곤 한다. 다만 익산에 살고 있는 사람 몇 명을 떠올리며, 마치 어린 왕자가 있어서 밤하늘의 모든 별들이 반짝이듯이 익산이라는 곳에 약간의 색을 입혀볼 수 있을 뿐. 그건 전주건 서울이건 마찬가지다.

 역시 관습적인 고향의 이미지와 연관지어서, 향토적인 기억들을 끄집어낸다면 그 기억들은 군산시 대야면 내덕리에 집중되어 있다. 볏단들을 쌓아서 논에 기지를 만들던 일, 소 똥을 이리저리 피해 가며 종종걸음을 치던 일, 레밍턴이라고 새겨진 에어건을 들고 참새를 잡겠다며 다니던 일, 개미들에게 둘러싸인 일, 집 뒤 대나무숲에서 대나무를 베어다가 칼을 만들던 일, 옆집 형이 맨발로 다니다가 대못에 찔린 일….  나는 도시와 농촌을 모두 겪으며 성장한, 뒤처진 사람들에 속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나는 그곳에 대해서도 별 애착을 느끼지 못한다.

 이런 지리적인 의미에서 고향을 찾는 일은 그만두는 것이 좋겠다. 이미 앞에서 이야기했다시피 고향은 주관적인 것이라, 이런 식으로는 도저히 찾을 수 없을 것 같으므로. 좋게 보자면 지역색이나 지역감정에 휘둘리지 않을 것이란 이야기도 되고, 나쁘게 보자면 연고지가 별로 없다는 이야기다. 내 고향은 차라리 책들 속이거나 컴퓨터 통신망 속이라고 해도 괜찮지 않을까.

 극단적으로, 고향따위는 없는 게 나을 수도 있다. 하늘 아래 어디든, 내 마음에 드는 곳은 그 때 그 때 다 내 고향이라고 하기로 하자. 고향을 붙박아둘 이유는 없지 않은가. 내 고향은 저 미래에 있을지도 모를 일이고. 아니면,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 내게 소중한 사람들이 있는 곳이 내 고향일까? 아무래도 좋다는 기분이 든다.



 산업화니 도시화니 핵가족화니, 하면서 이제는 여기저기 옮겨다니면서 사는 사람들이 더 많아질 것이다. 여하간 지리적인 의미의 고향이란 점점 사라져가는 추세다. 그에 따라 심리적으로 이런저런 문제들도 나타나는 모양이지만, 고향이 없어서 좋은 점도 있다. 잃은 것도 있고, 얻는 것도 있다. 솔직하게 말하자면 그런 고향에 얽매이지 않고 온 세상을 다 고향으로 삼을 수 있는, 넓은 마음이 있는 게 좋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든다. 주민등록초본을 뗄 때마다 종이를 한 뭉치 써야 한다고 생각하면 조금 낭비 같기는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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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설픈꿈2008. 1. 13. 22:26

예쁘지가 않잖아!


(2005년 2월)

 내가 중학교 때 같이 돌아다녔던 몇 안 되는 동급생 중 한 사람은, 그 성격이 꽤나 재미있는 녀석이었다고 기억하고 있다. 그런데 그런 것이 다른 애들에게는 짜증나게 비쳤는지, 종종 구박이나 놀림을 당하곤 했기 때문에 그럴 때면 내가 또 나서서는 다른 사람과 대신 실랑이를 벌였었다. "정말, 좀 애들에게 그렇게 비굴한 모습을 보이지 않으면 좋으련만"이라고 항상 생각했었다. 나도 그런 때로는 애교스럽고 때로는 시끄러운 그를 다소 귀찮아 할 때가 가끔씩은 있었지만, 그래도 그럭저럭 웃으면서 지낼 수 있어서 싫지는 않았다. 만난 지 3~4년은 족히 지난 지금, 나를 기억하고 있으련지?

 그가 내게 하던 말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바로, "예쁘지가 않잖아!" 이다. 그 말에 특별한 의미가 있는 것은 아니고, 그저 무엇이건 간에 내가 해놓은 것을 보면 괜히 한 번 "예쁘지가 않잖아, 다시 해!"를 외치곤 했었다. 명백한 농담조였기 때문에 때때론 - 특히 내가 정말 열심히 뭔가를 해놨을 때는 말이다. - 그 말에 신경질이 나기도 했었다. 그 녀석이 그 말을 정말 깊은 의미를 가지고 한 건 아니었던 것 같지만, 지금 와서는 그 말이 또 내게는 지침이 되어주고 있는 것 같다. 습작으로 시를 쓰기 시작한 얼마 뒤, 그 말이 문득 와닿았던 것이다. 그 "예쁘지가 않잖아!"가 새삼 한 걸음 더 다가온 것은, 아래와 같은 글을 읽을 때였다.



모든 것은 아름다워야 한다

 "저 건물은 예쁘지가 않아. 왜 저렇게 지었을까? 너 보기엔 어떠니?"

 "내가 보기에도 맟나가지야. 조금도 예쁘지 않아."

 개선문에서 멀지 않은 파리의 서쪽 관문인 마이요문 광장에는 온통 파란 유리로 된 신형 건물이 하나 서 있다. 그 건물을 가리키며 일곱살 쯤 되어 보이는 두 소녀가 주고받는 말이다. 인형을 놓고 말하듯 건물을 대상으로 의견을 말하는 모습이 깜찍스러웠다.

 두 소녀는 특별난 아이들이 아니다. 눈에 보이는 모든 대상이 보기 좋아야 하는 사회환경, 가정환경에서 자라났을 뿐이다.

(홍세화 씨, 『쎄느강은 좌우를 나누고 한강은 남북을 가른다』(한겨레 신문사) 中)



 여하간, 세상에 아름다워서 좋지 않은 것은 없을 것이다. 간혹 '사랑하니까 아름다운 것인지 아름다우니까 사랑하는 것인지' 실랑이가 벌어지기도 하지만, 역시 제일 처음에는 아름다우니까 사랑하게 되는 것 아닐까? 그 다음 단계에서는 사랑하기 때문에 아름답지 않은 부분까지 사랑스럽게 보인다고 할지라도 말이다. 아름다운 것들은 사랑을 불러일으키기 때문에 사람의 정신을 풍요롭게 해줄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이 아름다움이라는 것도 여러가지 종류가 있어서, 한 사물을 놓고도 "백 명의 사람이 있으면 백 가지 사랑이 있"듯이, "백 명의 사람이 있으면 백 가지 아름다움"이 있을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어쩌면 모든 것은 아름다울 가능성이 있다. 이외수 씨의 소설 중에서 소년에게 세상에서 가장 더러운 것을 찾아오라고 하는데, 소년은 아무 것도 찾아오지 않고서는 이 세상에 더러운 것은 하나도 없었다고 답하는 장면이 있다. 그런 것이리라.

 하지만 설령 그렇다해도, 비슷한 문화권, 문화적 거리가 가까운 사람끼리 공유하는 미적 기준이라는 것도 있기 마련이다. 이를테면 민주주의적인 문화를 내면화한 사람들이 사상범 수용소나 학대받는 사람들을 보고 "아름답다"고 느끼고 찬탄할 가능성은 매우 희박한 것이다.



 그런데, 한국과 같은 경우에는 사회변동이 짧은 시간 동안 심하게 일어난 탓에 문화적인 세대의 차가 큼을 느끼곤 한다. 예를 들면 머리를 짧게 깎은 군인들이 군복을 입고 거수 경례를 올려붙이는 광경을 보고 누군가는 아름답다고 말한다. 질서정연하게 줄 서 있는, 같은 교복을 입은 학생들을 보고 예쁘다고 말한다. 비슷비슷한 스포츠 머리를 예쁘다고 말한다. 그렇지만, 내게는 그것이 정말 보기 싫은 것 중 하나이다. 적어도 그 광경 하나로 국한시켜 생각할 때, 북한 텔레비전 프로그램에서 간혹 나오는 그 '발맞춰 착착 걷기'와, 특별히 다른 게 무어란 말인가? 나름대로 민주주의자라고 생각하는 사람으로서, 나에게 그건 정말 "예쁘지가 않잖아!"의 대상이다. 내가 군대라는 조직을 싫어하는 이유는, 군대는 철저하게 관료제나 효율의 폭력이 지배하는 조직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지배는 "전쟁"이라는 목숨이 오가는 상황 속에서(혹은 그 상황을 가정한 상태에서), 오직 살아남는 것, 적을 잘 죽이는 것 등의 목적에 맞는지 여부, 곧 합목적성의 잣대를 통해 정당화된다. 나처럼 자유주의와 민주주의 쪽으로 기호가 편향된 사람으로서는, 거기에는 "미"이고, "선"이고, "정의"이고 뭐고 없다고 밖에는 생각되지 않는다.

 사실 주변에는 "예쁘지가 않잖아!"가 널려 있다. 와이셔츠에 양복을 입고, 혹은 작업복을 입고 출근하는 사람들, 매일 교복을 입고 머리를 깎은 학생들을 보면, 역시 참 "예쁘지가 않잖아!"다. 물론 그 얼굴의 표정들이란 것은 각자, 그래도 아직은 살아 움직이고 있지만, 그 아래, 혹은 위로 시선을 움직이기만 하면 금방 군대와 비슷한 본질을 가진 것들에 마주쳐버린다. 최승어 시인의 "북어"라는 시가 떠오른다. "북어들의 일 개 분대가/나란히 꼬챙이에 꿰어져 있었다./ (중략) /빛나지 않는 막대기 같은 사람들이/가슴에 싱싱한 지느러미를 달고/헤엄쳐 갈 데 없는 사람들이".... 대학 입시라는 목적에 맞는지, 그것만으로 판단되고 정당화되는 질서.


 얼마 전에 초등학교에서 전체 시험을 부활시킨다는 이야기를 들은 것 같다. 학력저하를 막겠다고 하는 것이란다. 그런데, 학력저하를 극복할 방법으로 생각할 수 있는 게 고작 객관식 문제나 단답형 문제로 일괄 시험을 쳐서 애들을 줄 세우는 것이라니, 참, 그 발상이라는 것을 가만히 보면, 한국의 교육부는 입으로만 '창의성', '다양성'을 외치고 실제로는 '획일성'을 원하고 있는 것 같다. 설령 그 성적을 발표하거나 하지 않는다고 해도, 하나의 답을 기준으로 내세워놓고 그 기준에 맞는지, 맞지 않는지로 학생들의 실력이란 걸 판단한다는 점에서 결국 그것도 줄세우기일 뿐이다. 등수를 내지 않는다고 해서 줄세우기가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은, 정말 짧은 생각이다.


 프랑스의 한 미술 교사는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왜 미술시간에 학생들에게 석고 데생을 시키지 않느냐구요? 그건 아주 쉬운 얘기입니다. 유치원생에게, 그리고 초등학생과 중학생에게 중요한 것은 테크닉이 아닙니다. 아동들에게 중요한 것은 아름다움을 보는 눈과 미적 상상력을 계발하는 것입니다. 나이가 어릴수록 그렇습니다. 석고 데생은 나중에 미술학교에 가서 하면 되고, 실제로 미술학교에선 많이 실시하고 있습니다. 아동들에게 석고 데생을 시켜선 안 되는 중요한 이유는 하나의 모델을 주입시켜선 안 된다는 것입니다. 석고상은 하나의 모델에 지나지 않습니다. 하나뿐인 진리가 아닙니다. 석고상을 보고 데생을 하라고 하면 가치관을 획일화시키는 위험이 있고 따라서 창조적 개성을 살릴 수 없습니다. 그리고 하나의 대상을 놓고 그리게 하면 아동들끼리 그린 것을 서로 비교합니다. 아동들끼리 우열을 서로 비교하는 것은 좋지 않습니다. 그리고 또 서른 명의 학생이 하나의 죽은 정물을 바라보는 모습은 전혀 아릅답지 않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홍세화 씨, 『쎄느강은 좌우를 나누고 한강은 남북을 가른다』(한겨레 신문사) 中)



 마찬가지로, 모든 학생들이 점수를 맞기 위해 하나의 답을 써내는 모습도 전혀 아름답지 않다. 어떤 사람은 아름답다고 생각할지도 모르겠지만, 적어도 다양함, 활기참, 어린이의 꿈, 자유와 같은 것들을 존중하고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그것을 아름답다고 여길 수는 없을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이 경우 교과서 텍스트는 하나의 석고상이고, 아이들은 시험이랍시고 그 석고상만 죽어라 데생하고 있는 셈이다. 모델일뿐인 것을 정답인 줄 알고서. 정말, 뭔가 새로운 교육 방법이란 것을 떠올리지 못하고, 그저 애들을 경쟁만 시키면 실력이 오른다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그야, 가시적인 실력은 오를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길러진 대다수는, 정물 데생 밖에 못하는 아이들일 것이다. 주관식으로 시험을 보면 그 점수 기준에 부모들이 난리를 친다고 하지만, 초등학교 때 성적이라는 것이 학원 다녀서 올릴 수 있는 게 아니며 또 인생을 결정짓지도 않는다는 것을 부모들이 깨닫도록 해줄만한 교육과정과 시험 방식을 만들어낼 결단력도 없단 말인가, 교육부는. 초기에 나오는 부모들의 항의 같은 것을 달래가며 그것을 정착시킬 능력도 없단 말인가.

 주관의 형태로 모든 아이들이 그 주장의 잘못이나 허점을 지적받고, 토론하고, 자기 의견을 말할 수 있는 교육이, 대화가, 적어도 초등학교라도 이루어졌으면 좋겠다. 우리들은 합목적성, 목적합리성이나 효율만 따지는 것을 보거든 한 번쯤은 진(眞)선(善)미(美)의 이름으로(사랑과 정의의 이름으로? -_-) 이렇게 외쳐 볼 수 있어야 하는 것 아닐까. "예쁘지가 않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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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0.07.09 00:05 [ ADDR : EDIT/ DEL : REPLY ]

어설픈꿈2008. 1. 13. 22:24

두 가지 죽음

(2005년 1월)

 눈이 내렸다. 본래 전주는 평야지대치고는 눈이 조금 많은 편인 도시인데도 불구하고, 다른 곳들은 폭설이라고 난리를 치는데 비하자면 눈이 그렇게 많이 오지는 않았다.
  눈이 내릴 때면, ‘애들은 좋아하고 어른들은 걱정한다.’라고 종종 말하는 듯한데, 그렇다면 나는 어디쯤 속하는 걸까. 문득 그런 생각에 머리를 긁적여본다. 얼음 가루 같은 눈이 천 원짜리 분홍색 우산에 맞아 튀어 오르는 소리를 들으며, 우산을 치우고 싶다고 생각하고 있었던 나는. 사실은 눈을 맞으면서 강아지마냥 빙빙 눈 내리는 속을 돌고 싶었지만, 그랬다간 곧 만날 ‘어른’이 또 눈을 맞고 왔다면서 호들갑을 떨 것 같아서 우산을 쓰고 가야 했던 나는.
 누군가가 눈이 쌓였다가 녹은 자리에는 검은 구정물이 나온다고 하며 눈 맞기를 기피하는 것을 본 적이 있는데, 확실히 과학이란 것은 비나 눈이나 아무래도 좋은 문제니 눈이라고 특별할 것 없다고 말해주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비는 산성비라고 맞는 것을 꺼리면서 산성이긴 마찬가지인 눈은 맞고 다닐 이유 같은 건 소위 그 “합리성”이란 것을 가지고는 찾기 어려운 것이다.
 

 잠시 다른 데로 이야기를 돌리자면, 눈 쌓인 날 아침, 언덕길에 연탄재나 흙이 뿌려져 있는 장면 같은 것도 인상적인 풍경 중 하나이다. 온통 하얗게 덮인 내리막길을 내려가는 꿈과 같은 것은 이루어지기 어려운 것이다. 약간 불쾌한 아쉬움 같은 것을 느끼며 내리막길을 내려갈 때, 그 ‘미끄럼 방지’야말로 인간의 딜레마라는 생각을 한다. “아름다운 것을 즐기면서 미끄러질래, 아니면 미관을 해치지만 미끄러지지 않을래?”

 인간이 예술이나 유희를 한다는 것은 의식주 같은 생존과 편의의 문제가 해결된 다음에야 가능한 일일지도 모른다. 칼 맑스에 따르면 경제와 같은 하부구조가 상부구조를 결정짓는 만큼, 법체계, 이념, 예술, 학문, 문화 같은 것들은 모두 그것보다 뒤에야 신경 쓸 것이 되는 것이다. ‘먹고 사는 문제’란 건 그리 간단한 문제는 아니라서, 대한민국에서 예술 계열이라거나 철학 같은 소위 ‘배고픈’ 공부를 하려는 사람들의 발목을 사정없이 붙잡곤 한다. 거기다가 인권운동이라거나 노동자, 환경 문제, 평화주의 같은 것들에 반발하는 사람들이 종종 하는 무장이, 그 소위 ‘현실주의’라는 것이기도 하다. 그에 대해서는 인간은 예술이나 유희, 이상이 없이는 심심해서, 허무와 무의미에 질식해서 살 수 없다는 식의 또 다른 현실주의로 반박할 수도 있겠지만, 그런 식으로 해서야 먹고 사는 문제 외의 것들이 어쨌든 그 아래로 밀려나버리는 것은 마찬가지이다.
 그래도 세상이 그렇게까지 단순한 것은 아니다. 하부구조론의 변형인, ‘중층결정’이라는 주장도 있다. 게다가, “'최종 심급'이라는 고독한 시간은 결코 오지 않는다.” 그렇게 생각하면 먹고 사는 문제 외의 것에도 그 나름대로 가치가 있는 것이긴 하다.

 
 ‘아무리 그래도 현실은 현실이야.’라는 둥의 소리를 한다면, ‘먹고 사는 문제란 건 무시하지 못해’라는 냉혹한 소리를 한다면, 나는 그 ‘사는 것을 위한 반론’에 대해 역시 생명을 말할 수밖에 없을 것 같다.
  아주 어린 아이에게는 특별히 ‘의식’이 없다고 한다. 그러나 살아가면서 ‘의식’은 형성되기 마련이다. 그리고 그 의식에는 ‘자의식’이란 것도 있다. 자의식은 자아에 대한 반성의식이라고 말하곤 하는데, 결국은 자기 자신에 대한 의식이란 소리이다.
  의식은 존재를 규정짓는다. 인간이라고 하는 세포의 집합체가 통일된 ‘개체’로 스스로 취급하는 이유는 의식 때문이다. 주체와 외부 세계를 구분하는 경계선, 그것은 의식이 제멋대로 만들어낸 것에 지나지 않는다. 내 몸이라고 하는 것은 결국 내가 먹은 음식물들이나 공기 같은 외부의 것들로 이루어진 것인데도, 그것을 따로 구분하는 것은 그 자의식 때문이다. 자기 자신에 대한 의식과 다른 대상에 대한 의식이 사실상 자기 존재와 다른 존재들을 만들어내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의식이 있는 생명은 두 가지 죽음을 가진다. 생명활동의 정지라는 형태의 죽음과, 자의식의 파괴라는 죽음이다. 전자의 경우에는 후자가 거의 필연적으로 동반되는 데에다가 그것은 가시적이기 때문에 전자가 항상 더 중요하게 보이지만, 후자의 경우 또한 그렇게 가볍게 여길 문제는 아니다. 자아라는 의식의 다발이 단절된다는 것은 곧 자기동일성의 상실을 의미한다. 어제의 내가 오늘의 나와 완전히 다른 존재라는 것이다. 아침에 눈을 뜬 순간, 어제까지의 내 기억들이 모두 타인의 기억처럼 느껴지고, 아침밥을 먹으면서, 세수를 하면서 과거를 부정한다. 그렇게 되면 자기 존재라는 것의 근거는 하나도 없이 부유하는 순간만이 남을 뿐이다. 설령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새 삶을 산다고 해도, 그것 또한 자신의 과거로부터 연속된 무엇이어야만 자의식은 ‘나’를 보장하는 것이다.
 따라서 의식이 없는 상태라면 모를까 이미 의식이 나라는 존재를 만들고 있는 이상, 존재는 그 의식의 지향성을 무시할 수 없다. 그러므로 예술이나 어떤 추상적인 가치, 의미 같은 것도 그러한 생명을 위해서 필요한 것이다. 그 삶을 위해서, 때로는 전(前) 의식적인 생명도 도외시할 수 있는 것이 ‘존재’이다. 생존권을 위협당하면서 자기 이상을 위해 싸우는 사람들, 시위를 위해 분신자살하는 사람들, 그런 사람들이야말로 그런 의미에서 ‘의식’의 생명이 전 의식의 생명을 압도해버린 경우라고도 할 수 있다. 어느 쪽의 생명이, 삶의 방식이 더 가치 있는지 같은 것은 딱 잘라서 말하기 어려운 문제이며, 그것이 개인의 ‘선택’의 문제인지조차 사실은 의심스럽다. 그저, 그건 그렇게 생겨먹은 것이기 때문인 것일 수도 있다.



눈이 내리고 있다. 우산을 치우고, 눈을 맞고 싶은 마음이라는 것은 죽음에 대한 바람과도 관련이 있는 것일지 모른다. 살기 위해 죽어야 한다는 식의 역설이, 꼭 터무니없는 것은 아니다. 사람이 정신을 차려봤을 때, 이미 사람은 살아 있었다. 움직이는 물체가 외력이 없는 한 움직이려고 하는 관성처럼, 사람이 살아가려고 하는 것은 일종의 관성이다. 하지만 그런 관성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아무래도 썩 유쾌하지는 않다. 따라서 그에 대한 반항은 두 가지로 나타난다. 삶에 대한 의지와 죽음에 대한 바람. 단순한 관성을 떠나서 삶을 가속하고 능동적으로 움직이려 하는 의지와, 그 관성 자체에 거스르는 방향으로의 소망. 그와 같은 삶의 관성에 대한 반항이 예술이라든가 이상 같은 것들을 만들어내는 원동력이 된다. 아무래도 완전한 어른이란 없을 것 같다. 꽤나 비뚤어진 노릇이긴 하지만, 그런 식으로 살아가는 모양이다, 사람들이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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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설픈꿈2008. 1. 11. 13:40

어린왕자, 가방, 짐


(2005년 3월에 쓴 "가방, 짐"이라는 수필을 제목만 고쳐서)


  생텍쥐페리의 「어린 왕자」에서, 어린 왕자가 자기 별로 돌아가기 위해 버려야 했던 몸뚱이. 긴 여행에 갖고 가기에는 너무나 무거운 짐인 그 몸. 「어린 왕자」를 처음 읽었을 당시, 그것이 내게는 대단히 인상적인 표현이었던 것 같다.
  의식이 있는 것들이라면 누구나 자기만의 짐을 짊어지고 걸어간다. 크리스트교의 「천로역정」에서는 그런 것이 "죄 짐"으로 표현되고 있지만, 꼭 그것을 죄라고 표현할 이유는 없을 터이다. 죄 짐을 벗기 위한 여행은, 불교나 힌두교의 업을 벗고 해탈하기 위한 수행과 비슷해 보인다. 일종의 신비주의적인 사상과 연관지어 볼 때에, 짐을 벗어놓는 비유는 아집을 버리고 근원의 신에게 귀의하는 것을 표현하는 데에 거의 관용적으로 쓰이는 듯하다.

   그 무엇이든, 아무 속박 없이 존재할 수는 없다. "∼로서 존재한다."라는 것 자체, 정체성이라는 것 자체가 이미 속박인 것이다. 우리에게 짊어지고 있는 짐의 무게가 없다면, 우리들은 땅 위에 발을 디딜 수도, 발자국을 남길 수도 없을 것이다. 짊어진 짐이 무거울수록 남겨진 발자국은 깊기 마련이다. 소위 위인으로 세인들의 기억에 남아 있는 사람들 중에는 어린 시절이 불우했던 사람들이 많았다고 하니, 무거운 짐을 짊어지고도 걸어갈 수 있는 사람만이, 정말로 세상에 크고도 깊은 발자국을 남길 수 있는 것이리라.

  별로 돌아가기 위해 뱀에게 물려 무거운 육신을 버리려 했던 어린 왕자. 날기 위해서는 육신이라는 짐조차 버릴 필요가 있겠지만, 한편으로 육신 없는 자들 - 유령이라던가. - 은 육신을 갖기를 원할지도 모르는 일이다. 사람들은 종종 자신이 끌어안고 있는 짐을 벗어버리고 홀가분해지기를 원한다. 그러나 그런 상태가 가능한지 자체도 의문일뿐더러, 정작 그런 상태에 이르면 사람들은 그 또한 견뎌내지 못할 것이다. 아무 짐도 지지 않겠다는 선택에 따르는 짐, 자유라는 이름의 부자유, 혹은 자유를 가장한 허무가 거기에서 기다리고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어린 왕자는 그저 지구 위의 육신만을 벗어놓으려 했을 뿐이다. 그는 장미와 소혹성의 무게를 짊어지고 있기 때문에 지구의 육신을 벗어 둘 수 있었다. 그러나 어떤 사람들은 그런 사정 같은 것은 고려하지 않고서는 어린 왕자가 부럽다고 말할지 모르겠다. 자기 편한 대로 그 때 그 때 멋대로 정한, '최소한의 짐' 을 바라거나 하는, 제멋대로의 욕심이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마음을 품고 있는 사람들 말이다. 그러나 어린 왕자가 뱀에게 물리는 고난을 짊어지고서, 또 저 별의 무게를 짊어지기 위해 돌아갔음을 기억해야 한다.

  욕망에는, 자유에는, 선택에는 책임이 따른다고 말하곤 한다. 그 말이 사회적인 의미에서 자유를 속박하려는 의도로 사용되는 것에는 반대하지만, 그 책임이라는 것에는 동감하는 바이다. 무엇을 선택하건 우리는 그만큼의 것을 짊어지게 된다. 방향성 없는 자유라는 잠재된 상태를 벗어나서, 자유가 구체화되는 순간, 선택이 이루어지는 순간부터 그 자유는 속박된 자유가 된다. 무위(無爲)를 선택하더라도 그만큼의 짐이 따라오니, 산다는 건 혹독하다고 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이를테면 고독. 만일 다른 사람과 인연을 맺는 것에 따라 감수해야 하는 위험이나 상처 같은 것들을 두려워하여 자기 자신을 완전히 고립시키고 고독하게 살려고 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대신 혼자 살면서 부딪힐 여러 문제들을 감수해야 한다. 그리고 외로울 때에도 전혀 위로 받을 수 없는 슬픔을 짊어져야 한다. 관계를 맺는다는 선택에 대해서도 짐은 따르지만, 관계를 맺지 않는다는 선택에도 짐은 따른다. 장미 한 송이의 아름다움을 감상하고 싶은 사람은, 장미를 위해 유리를 씌워 주고 물을 줘야 한다. 자생하는 장미를 보려는 사람 또한, 적어도 장미가 피어 있는 곳까지 가야 한다. 전능하지 않은 이상, 아무것도 짊어지지 않고 살 수 있는 자는 없으며, 자기 편한 만큼의 짐만 짊어지고 살 수 있는 자 또한 없을 것이다. 그래서 시인은 "아무래도 나는 무엇엔가 얽매여 살 것 같으다."(황동규, 「어떤 개인 날」) 라고 노래하나 보다.
 

  내가 곧잘 듣는 소리 중 하나가 바로 가방에 관한 것이다. 학교 가방 속을 거의 가득 채워서 다니기 때문인데, 키도 작은 편인 녀석이 가득 채운 가방을 들고 뒤뚱뒤뚱 걸어가는 모습이 제법 눈에 띄는 모양이다. 무겁지 않느냐는 소리부터 키가 안 큰다는 소리까지, 가방에 관해 이런저런 충고를 듣게 된다. 고등학교에 들어와서는 보조 가방까지 하나 옆에 달고 다니니 더욱 그렇다. 한 번은, 여행을 갈 때에 침낭, 코펠, 옷 등을 잔뜩 집어넣어서 가방을 너무 무겁게 하는 바람에 고작 몇 km 걷는 길에도 금방 지쳐버린 적이 있다.
  특별한 이유가 있는지 어떤지는 모르겠지만, 어릴 때부터 가방을 가볍게 싸들고 다니는 편은 아니었던 것 같다. 어른이 된다거나 키가 큰다는 것에 대해 거부감이 있었기 때문에, 정말로 키가 크고 싶지 않아서 가방을 무겁게 짊어지고 다녔던 것도 같다. 아니면, 단지 욕심만 많아서 이것저것 책을 많이 집어넣고 다니는 것일지도. 가학적인 발상, 혹은 학교 다니는 것이 좋아지고 싶지 않다는 비뚤어진 발상의 결과물인지도. 나도 내 속을 잘 모르니까, 명확한 답을 내기는 어려울 것이다. 다만 가방을 메고 있을 때, 그 무게를 느낄 때, 나는 내가 떠 안고 있는 이런저런 걱정거리나 가치 같은 것들을 실감하고 있는 듯한 착각에 빠지곤 한다.

  일전에 가방에 관해 내가 휘갈겨놓은 시 한 줄을 보니, "시집은 무거워서 두 권 밖에 못 넣었구요, 교과서는 여덟 권이나 넣었어요" 라고 되어 있다. 들고 다녀야 하는 교과서가 내게는 꽤 불만인 것은 사실이다. 가방이 무겁다는 것은 여러 가지로 불편하기 때문이다. 짐이 꼭 필요한 것이라 해도, 확실히, 가득 채운 가방을 등에 메고 걸어갈 때면 어깨와 등에 묵직한 압박감이 느껴진다. 호흡이라는 간단한 행동에도 부담이 걸려버린다. 어깨를 쓸어대는 가방 끈의 느낌, 가볍게 흔들리며 등을 두들기는 종이의 무게, 그런 것들은 때로는 나를 채찍질하는 것 같기도 하고 또 실제로도 나를 금방 지치게 하곤 한다. 하지만, 내가 그 가방을 가볍게 하려면 얼마든지 가볍게 할 수 있을 것이다. 그걸 벗어버리지 못하는 것은 내가 그것에 집착하고 있고, 그 집착을 놓아버릴 용기가 없기 때문일 뿐이다. 자기 스스로 짊어진 것들에 대해 때로는 싫증을 느낄 수도 있겠지만, 지칠 수도 있겠지만, 결국 자의로 짊어진 것에 대해서는 입으로만 불평할 수 있을 것이다. 자기 욕심에 짓눌리는 꼴이니 말이다.
  실제로 내 가방 속의 내용물에 대해 언급하자면, 교과서나 공책 같은 내용물도 반 이상 차지하고 있긴 하지만, 사상서, 시집이라거나 수첩, 잡상 공책, 습작을 인쇄한 종이 같은 물건들이 상당수를 차지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 것들은 모두 내게 소중한 것들이다. 교과서의 경우에도, 좀 덜 소중하더라도 결국 내가 그것들에 집착을 하고 있으니 가방에 넣고 다니는 것이리라. 소중한 것들이 들어 있으니, 가방의 무게가 아무리 무겁게 어깨를 파고들어도 나쁘지 않은 기분으로 걸어갈 수 있는 것이다. 그러니 자기가 짊어져야 하는 가방에는, 짐 보따리에는, 정말 소중하게 여기는 것들을 빠뜨려서는 안 된다. 혹 짐을 덜어내는 일이 있더라도, 행여 실수로라도 정말로 소중한 것들을 버려서는 안 된다.

 
  자기 자신이 미처 다 짊어질 수 없는 짐을 다 싸들고 나선다면 아마 몇 걸음 못 가 넘어지고 말 것이다. 가끔은 훌훌 털어 버리는 것도 좋은 방법이긴 하다. 허나, 그렇다고 자기 짐을 그 때 그 때 편한 대로 내팽개쳐버린다면, 그건 그것대로 깨끗하지 못한 일이다. 자살이 비난받는 이유 중 하나는 여기에서 찾을 수 있다. 자살은 죽는 이의 입장에서는 깨끗할지 모르지만, 남겨진 자, 살아남은 자의 입장에서는 전혀 깨끗하지 못하다. 그 사람이 남겨둔 찌꺼기를 짊어져야 하기 때문이다. 시체 처리나 장례식 같은 문제뿐 아니라, 친인을 잃은 슬픔, 빈자리의 공허감 등이 남겨진 자들의 짐에 더해진다. 자살이 용감한 행동이긴 하지만, 한편으로는 비겁하고 이기적인 행동으로 평가받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요는 '적당히' 다. 자신이 걷고 싶어하는 거리가 있다면, 그 거리를 걸을 수 있을만한 짐을 싸들고 걸어가는 것이 현명한 것이다. 그렇다고 오래 오래 걷겠다고 가방을 텅텅 비운다면, 그 사람의 삶에는 가치 있는 것, 유의미한 것들은 적어질 것이다. 대체 어디까지가 적당한 것이냐고 물으면, 역시 그것도 선택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자기 가방의 무게와 부피, 그리고 내용물을 어떻게 하느냐가, 그 삶을 결정짓는 데에 결정적인 것일 테니까는.

  결국 자기가 살아가면서 짊어질 짐에 대한 선택에 의해, 우리는 역시 그 만큼의 삶의 의미를 짊어지게 된다. 자, 조금 마음에 여유가 생길 때면, 시간이 날 때면, 혹은 지쳐서 쉬고 싶을 때면, 잠시 가방을 어깨에서 내려놓고 살펴보자. 그 곳에 들어 있는 사랑이나 이상, 꿈, 의무, 가치, 그런 것들 중에서, 거짓된 것들은 없는지, 괜히 무게만 더하고 있는 것은 없는지 살펴보자. 한때는 가치 있어 보여서 집어넣었던 것이 지금은 무가치해 보일 수도 있다. 그런 것들을 버리느냐 계속 간직하느냐 또한, 자기 자신이 선택할 문제이다. 자기별의 장미꽃이 자신에게는 소중하다는 것을 깨달은 어린 왕자처럼, 신중한 마음으로, 자신의 가방 속을 반성해보자. 계속 걸어가기 위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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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설픈꿈2008. 1. 10. 14:59

전쟁 꿈


 어제 밤이던가 그제 밤 정도였다. 꿈에 전쟁을 만났다. 꿈에서 전쟁을 만날 수도 있다는 걸 나는 그날 처음 알았다. 명확한 기억은 나지 않지만 대강 기억나는 것에 약간의 살을 붙여보자면 이렇다.


 대체 어디와의 전쟁이었는지, 그런 건 기억하지 못한다. 그리고 그런 건 중요하지도 않았다. 나는 참전 같은 것은 하지 않았고, 내가 있는 곳은 그저 후방이었을 뿐이었고, 나는 그저 민간인이었을 뿐이었다.

 학교는 휴교 중이었고 하늘은 흐렸다. 후방. 전선은 저 멀리 있었고 이곳은 전쟁의 참혹함이나 끔찍함 같은 것과는 거리가 먼 도시. 하지만 전쟁이란 전선에서 총을 쏘고 미사일이 나는 그런 단순한 것은 아니었던 모양이다. 다행히 이 도시에는 폭격기가 날지 않았지만, 다른 주요 도시들은 종종 폭격을 받는다고 했다.

 비단 폭격만이 문제는 아니었다. 부족한 옷가지. 자주 일어나는 단수. 정전. 배가 고플 정도는 아니었지만 식량도 그리 넉넉하지는 않았다. 사람들을 괴롭히는 것은 식량부족 자체가 아니라, 식량이 부족할지도 모른다는 불안이었다.

 TV에서 전해오는 전쟁의 소식 같은 것들도 믿을 만한 게 없었다. 보도는 계속 뒤집히곤 했다. 대통령이나 국회의원이 애국심을 고취시키는 지루한 연설을 늘어놓곤 했다. 몇몇은 거기에 열광하기도 했고, 몇몇은 거기에 지친 눈길을 보내기도 했다.

 나는 내내 거리를 돌아다녔다. 문 닫은 학교 주변, 집 주변. 치안은 그리 좋지 못했다. 소매치기가 극성이었고 계산대의 점원은 몽둥이를 들고 있었다. 친구들도 소매치기를 했다. 편의점에서 도둑질을 하기도 했다. 하늘은 내내 흐렸다.

 어떻게 별 탈 없이 전쟁이 끝나고, 우리는 다시 학교에 나왔다. 그날 아침, 우리는 교실에 들어가지 않고 학교 앞에서 서로의 얼굴을 보며 기뻐했다. 선생님도 기뻐했다. 친구가 내 얼굴을 보며 전쟁이 끝났는데 왜 즐거워하지 않느냐고 했다. 나는 대답 대신 말했다.

 "그거 알아? 이**군은 전쟁 중에 소매치기를 했어. 내가 봤지."

 친구는 당황하는 듯했다.

 "그때는, 시절이 험했잖아. 그걸 탓하긴 좀…"

 "그래. 시절이 험했지. 난 그걸 고발하거나, 뭐 탓하자는 게 아니야. 그저 우리에 대해 말하고 싶은 거야. 물론 나나 너는 소매치기를 하거나 도둑질을 하진 않았지. 하지만 말야. 전선에서는 이 나라가 소위 적군이라 부르는 사람들이 죽었고, 또 국군이라 부르는 사람들도 죽었지. 전선 근처의 도시에서는 민간인 사상자가 몇만 명이란 소문도 있지. 우린 그런 죽음을 딛고 여기 서있어. 우린 그런 죽음들을 막지 못했지. 오히려 그 희생을 발판으로 여기 서있지. 우린 모두, 죄인이야. ……. 그게 다, 시절이 험했기 때문이라고 하겠지."

 다들 모인 그날에도, 학교에 다시 나온 그날에도, 하늘은 흐렸다.

 "전쟁이 끝난 건 기쁜 일이야. 더이상 죄가 무거워지지 않으니까. 하지만 이미 짊어지고 있는 죄만 생각해도, 난 아직, 웃을 수 없을 것 같아. 그런 게 전쟁인 거야."

 그러면서 나는 카도노 코우헤이라는 작가가 쓴 소설에 등장하는, 부기팝이란 인물이 짓는 그 기묘한 좌우비대칭의 표정을 지어보였다. 왼쪽 눈을 가늘게 뜨고 오른쪽 입가를 올리는, 그 뒤틀린 표정을.

 친구의 대답은 듣지 못했다.

 그 꿈에 겪은 전쟁이 대체 어디와의 전쟁이었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나는 어쨌건 전후세대이다. 전후세대. 전후세대. 전후세대의 전후세대. 그 한참 후의 세대. 전쟁의 참혹함 같은 것은, 전혀 겪어보지 않았다. 커맨드&컨커를 하면서, 에이지 오브 엠파이어를 하면서, 화면 속에서 사람이 죽는 모습에서 재미를 찾고 영화 속 전쟁에서 박진감을 느끼지만, 어쨌건 진짜 내 목숨을 건 전쟁은 겪어보지 않은 세대다. 전쟁이 얼마나 비참한 건지 모르는 자이다.

 그래도 난 전쟁이 얼마나 슬픈 건지, 전쟁이 얼마나 괴로운 건지, 사진을 보고, 다큐멘터리를 보고, TV를 보고 조금은 느끼고 있다.

 한 급우에게 이 꿈이야기를 했더니 자신은 전쟁 꿈을 꿔도 전선에서 적을 죽이는 꿈을 꾸는데, 나는 그런 꿈을 꾸는 걸 보면 역시 성격 차이인 듯하다고 했다. 우리는 전쟁의 꿈을 꾸는데, 그 꿈이 슬픈 것인지 재미있는 것인지, 그 꿈 속의 하늘이 흐린지 맑은지, 그런 것은 사람마다 천차만별인 걸까….

 전쟁에 대해서, 현실이 아닌, 꿈만 꿀 수 있는 세상이기를, 뭐 그런 상투적인 방식으로 마지막 문장을 마무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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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설픈꿈2008. 1. 8. 11:58

 성장통

 (2004년에 처음 쓰고 2005년 초에 수정한 글)


 사람은 평생을 걸쳐 성장하는 걸까. 여하간, 배우고 자라난다는 것은 평생 동안 이루어지는 일이다. 요즘 유행하는 '평생 교육'이란 게 허언은 아니다.

 나는 기껏해야 17년 정도 산 것 뿐이지만, 그 기간이 그렇게 살아온 내게는 결코 짧게 느껴지지는 않는다. "국민(초등)학교 입학이 엊그제 같은데." 같은 소리를 하는 사람은, 내게는 어쩐지 이상해 보인다. 그렇게 삶을 헛되이 살아왔단 말인가? 물론, 순간적으로 떠오르는 추억들만 놓고 보면 지금까지의 삶이란 것도 짧게 느껴질지 모르지만, 그런 순간적인 상기를 떠나서 곰곰이 되짚어 보면, 아니 그 전에도 내게는 삶이란 가득 찬 느낌으로 다가오기 때문이다. 아마도, 소소한 일들도 다 나름대로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고 사는 나이기 때문에 그런 것일지도 모르겠다. 하루하루 학교생활이 즐겁다거나, 아침마다 자신이 살아있는 걸 느낀다거나, 피할 수 없는 건 즐겨야 한다는 둥의 것들을 "헛소리!"라며 일축해버릴 정도로 밝지 않은 편인 내가 이렇게 말하면 이상하게 들릴지도 모르겠지만, 그저 의미가 있다는 것이다. 좋든, 나쁘든. 모든 것에 의미가 있기 때문에 다른 극단인 모든 것에 의미가 없다는 허무주의와도 통하는, 그 극단. 그래서, 조금은 덤덤하게 내 삶은 가득 차 있고, 그 의미들로 나는 성장하고 있다.

 
새는 알을 깨고 나온다.
알은 새의 세계이다.
태어나려는 자는 세계를 파괴하지 않으면 안 된다.

여러 가지로 유명한,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에 나오는 말이다.


 그러고 보니, 몇 달 전에 '랑이'의 분갈이를 한 적이 있었다. '랑이'란 건 내가 데리고 있는 화초에게 붙여놓은 이름이다. 무슨 난이라고 들은 것 같은데 기억이 안 나서 난아, 란아, 등으로 부르다가 좀 더 귀엽게 '랑이'로 부르고 있다. 그 애를 주시면서 할머니께서 닷새나 일주일에 한 번 정도 물을 주라고 하셨는데, 한 사흘에 한 번 씩 주니 쑥쑥 커서 화분 두 배만큼 커서 더 자라지를 못하기에 분갈이를 해줬다. 확실히, 새롭게 성장하기 위해서는 세계를 벗어날 필요가 있다.


 주제넘게도 "더 이상 깨고 나올 세계는 없지 않을까"라고 생각한 시기가 있었다. "질적으로는 더 나아질 게 없어"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참 바보 같았다. 아직도 내 앞에는 과제가 산더미처럼 쌓여있는데도 말이다.

 

 어찌 되었건, 내 교우 관계는 전에도 좁았고 지금도 여전히 좁다. 다만, 전에는 더 좁았었고 지금은 그나마 비교적 넓다고 할 수 있다. 전국에 내 친우는 둘 뿐이란 말을 당당하게 했을 정도이니. 나머지는 그저 지인으로 남거나, 혹은 지인과 붕우의 중간쯤 되는 친구들이었다. 17년 살면서 진정한 벗이라는 소리를 붙일 만한 사람이 둘 뿐이었다는, 조금 건방진 소리다. 학급의 경우, 부모님이 담임선생님으로부터 "애들은 좋아하는데 걔가 애들을 피해요."라는 말도 들은 적이 있으니. 좋게 말하면 마이 페이스이고, 나쁘게 말하면 사회성 부족 정도 될 것이다. 쓰는 시를 가지고 자의식 과잉이라는 소리를 문학 선생님께 듣는 것도 당연했다. 나는, 어머니 말씀대로 "자기 세계에서 사는 것"이었다.

 지금, 나는 이래저래 불안하다. 내 행복을 타인에게 의존하면, 불안해진다는 자명한 이치 때문일 것이다. 그런 것에도 익숙해진다면 좋으련만, 아무래도 나에게 그런 식의 것은 새로운 세계이다. 또 하나의 사춘기, 라는 것이려나.


 내 사춘기라는 것은, 사실상 초등학교 때부터 "pre 사춘기"란 소리를 부모님이 하실 정도로 이르게 왔던 것 같다. 특히 자기 내부로 향하는 성향―내성적인 것과는 조금 다르다―은 일찍부터 발달했던 것 같다. 그것이 나만 그랬는지, 아니면 나는 모르는데 사실은 다들 그러는 건지, 여하간 나는 남의 인생 같은 것은 잘 모르니 그에 대해 함부로 말할 수는 없다. 위에서 말한 또 하나의 사춘기라는 것은, 2단계, 곧 타인에 대한 문제이다. 예전에는 꽤나 흐릿했던, 내가 향하고 싶지 않아 했던 불분명한 대상들을 향해 있는 것이다.
 이를테면 작년 체육대회 때, 나는 "심심함은 사람을 죽일 수도 있지." 따위의 말을 중얼거리며 쓰레기를 주우며 돌아다녔다. 그건 단지 교장 선생님이나 체육 선생님이 자주 하는 "버리지 말고 주웁시다." 같은 소리가 듣기 지긋지긋해서 한 것일 수도 있고, 정말 심심하고 눈에 거슬려서 한 것일 수도 있다. 내 마음 속에는 선생님들이 그렇게 말씀하시면 "여기 이렇게 주웠다."면서 대들고 싶은 마음이 꿈틀거리고 있기도 했고, 또 여기저기 널려 있는 과자 봉지나 아이스크림 봉지 같은 것들이 눈에 거슬리기도 했다. 그런 오기 비슷한 마음은 내게는 습관과도 같은 것이었고, 그것을 행동에 옮기는 것도 정말 순전히 내 마음 내키는 대로의 일이었다. 하지만, 종종 그런 식의, 다른 사람 말을 빌리자면 '기행'(?)을 해왔지만, 요즘 들어서는 아무래도 불안한 마음이 가시질 않았다. 쓰레기를 주우면서도 "내 몸에서 쓰레기 냄새가 나면 어쩌나."라든가 "내가 이상해 보이려나." 같은 생각들이 끊임없이 한편에서 나를 괴롭히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나는 마음 한 구석으로 타인에게 내 행복을 의지하는 방식을 알게 모르게 몸에 익히고 있는 것이다.
 그런 식으로 새로 배우는 방식이란 것은, 그 전까지의 마이 페이스와는 궁합이 잘 맞지를 않아서, 종종 이런 저런 곳에서 충돌하곤 한다. 그리고, 그 충돌이 만든 충격이 내 세계를 점점 부숴 나가는 것을 느낀다.
  예를 들자면, 언제부터인가 내 독백에 나타나기 시작한 "당신"이나 "그대" 같은 2인칭들. 그것들은 정확히 어디에서 온 것일까. 그 원형을 현실에서 찾자면 후보를 한두 명 들 수도 있겠지만, 나 자신도 딱 꼬집어 말하지는 못하겠다. 그저 그 사람들이 내게는 중요한 사람들이란 것말고는.


 인생의 얼마쯤은 연극이라고 생각한다. 아마, 최소한으로 잡아도 1/3이나 1/4 쯤. 하지만, 연극으로 맡겨진 일이라고 해도 죽을 때까지 내가 하고 싶은, 내가 애착을 가지는 역이라면 그것도 진실이라고 할 수 있을지 모른다. 그것 자체도 역할일지언정, 그렇게 느끼는 마음만큼은―. 그런 것들 중에 "타인과 직접 관계된 것"이 추가된 것뿐이라고 생각해보지만, 새로운 역을 소화해낸다는 건 그리 쉬운 게 아니다.


 화초가 자라고 자라서 화분 벽에 뿌리를 부딪쳐, 좁은 틈새에서 몸부림칠 즈음에야 분갈이를 해주듯이, 혹은 그 몸부림으로 화분을 깨고 나가듯이, 알을, 세계를 깨는 데에는 나름대로 아픔이 필요할 것이다. 뼈가 성장했는데 근육 등이 따라오지 못해서 느낀다고 하는 성장통처럼, 그 성장이라는 것이 약간 괴리가 있다면, 알게 모르게 부풀어올라 갑자기 터지려고 한다면, 아픔이라는 것은 반드시 따라올 수밖에 없다. 처음에는 이유 없는 아픔에 놀라거나 불안해하기 쉽지만, 그 아픔이라는 것도 나름대로 견딜 만한 맛은 있다. 아픈 것에도, 우는 것에도, 상처 입는 것에도 의미는 있으니까 말이다.
 특히 성장에 대한 불안감. 사실 타인에 대한 불안은 어릴 때부터 항상 내 안에 있어왔던 것 같다. 다만, 지금까지는 불안했기 때문에 피했지만, 요즘은 불안해도 부딪치는 식이랄까. 그래도 내 불안이란 녀석은, 나를 민감하게 만들고 평소라면 입지 않을 상처를 스스로 입어버리게 하곤 한다. 침대에 누운 채 "분에 넘치는 걸 바라고 있어." 같은 말을 자기 자신에게 중얼거려보기도 한다. 나는 결국 나 혼자임을 알면서도 타인에게 의지하고 행복을 바라고 있으니, 정말 분에 넘치는 욕심이라고, 상처만 입을 뿐이라고 말하는 목소리도 있다. 하지만, 산다는 건 매번 분에 넘치는 것을 바라보며 가는 것 같기도 하다. 미래라던가 꿈이라던가 하는 것은, 현재의 내게는 분명 분에 넘치는 것일지 모르니까는 말이다. 또, 새로운 의미, 성장이 없이 아프지 않은 것보다는, 아픔도 있지만 기쁨도 있는, 그런 성장 쪽이 더 풍요로운 삶인 것도 같다. 항시 무표정한 것보다는, 웃기도 하고 울기도 하는 쪽이 더 재미있을 것 같기도 하다.
"わたしの世界, 夢と戀と不安でできてる."(카드캡터 사쿠라 오프닝 플라티나 中) "나의 세계, 꿈과 사랑과 불안으로 만들어져 있어."랄까.

 

 이런 식으로 이야기를 써내려 가는 걸 보면, 내 어느 한 구석은 마치 내 삶을 이야기를 보듯이 바라보고 있는 듯하다. 이상한 소리이긴 하지만. 여하간, 이 성장통, 불안이 나를 불행하게 할지, 혹은 행복하게 할지(아마도 둘 다라고 생각하지만)는 아직 모르지만, 나는 계속 성장하고 싶다. 완성된 삶, 성장하지 않는 삶이 있다면, 그건 이미 사는 것도 아니고, 이야기가 될 수도 없는 재미없는 것일 것 같은 기분이 드니까 말이다. 어른이 되고 싶다는 것은 아니다. 솔직히, 나는 피터팬 신드롬 같은 구석이 조금 있어서, 어른이 되고 싶지는 않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나는 그래도 계속 성장하고 싶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랑이에게 신경 써서 물을 준다. 어린아이인 채로 성장하고 싶다는 건, 역시 억지로 들릴지 모르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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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설픈꿈2008. 1. 8. 01:40

장래희망

 (2005.04.)

 성장 과정에서 질리도록 받는 질문들로 이름, 나이, 취미, 특기, 그리고 장래희망 등이 있다. 이 중 특히 장래희망 같은 경우는, 대개는 장래에 되고 싶은 직업으로 국한되어 해석하는 듯하지만, 사실 글자 그대로 해석하면 한 인간의 인생 설계를 물어보는 포괄적인 질문이다. 그래서 장래희망에 "행복한 사람"이라고 쓰는 나 같은 인간도 나오는 것이다. 직업이건 무엇이건 장래희망은 자기 미래에 대한 다짐의 의미가 있다. 아니면 교육당국 입장에서는 지도의 편의를 위해서이기도 하다. 어쨌건, 적어도 '에잇 귀찮게' 하는 심정으로, 대강 칸 채우기로 장래희망란을 채워서 내는 일은 없는 게 좋을 듯싶다.

 교육상 지도의 편의를 위해서 장래희망을 조사한다고 하였는데, 이 교육에 관해 생각해보자. 교육은 사회 성원을 재생산하는 기능이 있다. 따라서, 근로는 의무이자 필수이며, 직업을 가진다는 것은 인생을 결정짓는 일이라고 교육은 가르친다. 이러한 진술은 어느 정도 진실을 담고 있다. 직업이 그 사람의 인생에서 커다란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옳다. 그러나 이러한 가르침에는 문제가 있다. 이는 마치 직업 선택이 인생 설계의 거의 모든 것인 양 가르친다. 장래희망에 장래에 되고자 하는 직업을 쓰는 것은 이와 같은 교육의 내용과 통하는 것으로 보인다.


 장래희망이란 좀더 가치에 근거한 무언가가 되어야 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그것은 자신이 소중하게 여기는 가치가 무엇인지를, 그 자신의 삶의 방향을 정하는 것이 되어야 한다. 하지만 우리는 10년 뒤 나의 모습 따위를 쓰면서 직업은 뭘 가지고 집은 어떤 곳에서 살고 자식은 몇을 낳고... 같은 것이나 끄적거리고 있는 것이다. 정의의 문제, 도덕의 문제 등은 전혀 언급하지 않고 단지 미래에 무엇을 해서 돈을 벌 것인지만을 묻는 장래희망이란 극히 산업적이며 공허하다. 어떤 구체적인 직업의 모습을 그리는 것은 물론 필요하지만, 그것만을 그리는 일은 그 무언가가 부족하다.

 장래의 직업을 그리는 것이 삶의 가치 또한 반영하고 있다고 반문할지 모르겠다. 그러나, 예를 들면 의사가 되고자 하는 사람이 사람의 생명을 살리기 위해 그런 목표를 설정한 것인지, 돈을 벌기 위해 그런 목표를 설정한 것인지는 알 수 없는 것이다. 이것이 너무 의심 많고 세상을 겪은 사람의 비뚤어진 생각으로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다른 예도 얼마든지 있다. 여하간, 인간상에 대한 어릴 때의 사소한 경험이 직업관에 영향을 미치기도 하기 때문에, 자기 삶의 방향성에 대한 의식이 전혀 없는 아이의 희망 직업이란 모호하고 즉흥적이다. 그 밑바닥에 어떠한 가치가 깔려 있는지는 알 길이 없으며, 또 그 자신도 그에 대한 자의식을 지니지 못하기 쉽다. 무엇보다 교육이 말하는 직업이 생계유지 수단의 의미를 포함하고 있는 한, 인권운동가(인권변호사가 아니라면)와 같은 가치를 직접적으로 반영하는 답변은 많이 튀어나오기 어렵게 된다.

 장래희망이 초등학교 - 중학교 - 고등학교를 거치면서 그 방향조차 계속 바뀌는 것은 바로 이러한, 전체적인 틀을 도외시한 진로 교육 때문이 아닐까 싶다. 물론 아이들이 자라면서 인생관이 바뀔 만한 경험을 많이 접하게 되는 듯도 하지만. 사람들은 어릴 때는 막연한 직업상만으로 직업을 선택했다가, 크면서 '현실'을 이유로 자신의 진로를 대폭 수정해버리기 일쑤이다. 안정적인 수입, 사회적인 명예 등을 생각하면서. 대학교 면접 때에 너무 모범적이고 상투적이며 뻔한 답은 면접관들에 의해 거짓말로 간주되곤 하는데도 불구하고 그런 답변이 곧잘 튀어나오는 것도, 이러한 방향성의 부재 탓이다.

 좋은 아빠나 좋은 엄마, 좋은 남편, 좋은 아내 등의 답변은 다소 낫다고 평가할 수도 있다. 이는 적어도 가족애라는 가치를 반영하고 있다. 가족이라는 범위 외의 가치에 대해서는 언급이 없는 것은 아쉽기도 하지만.


 그런 의미에서 나는 조금은 당당하다. 나는 어릴 때부터 '학자'가 꿈이었으며, 도덕과 학문이라는 명확한 가치를 세워놓고 있었다. 다만 초등학교 때는 자연과학이 최고의 학문인 줄 알고 과학자를 장래희망에 썼고 고등학교 때는 철학자를 썼을 뿐이다. 지금은 에리히 프롬 씨처럼 심리학과 사회학과 철학을 공부하려고 생각하고 있다.

 다만 나는 아직도 나의 장래 '직업'에 대해서는 거의 생각지 않고 있다. 나는 장래에 무엇으로 벌어먹어야 하는가. 그것은 그 때 가서 생각해볼 일이라고 밀쳐두고 있다. 무엇보다, 한 평생을 예술(특히 언어 부분)과 학문으로 보내리라 작정한 이상, 학과 선택이라는 것만으로 내 삶은 거의 다 결정된 것 같은 기분이 든다. 하지만 분명 먹고 살기 위해서라도 어떤 수입원을 얻기는 해야할 것이다. 작가를 생각해보긴 하지만, 작가가 될 수 있을지도 미지수일 뿐더러 전업작가라는 것은 썩 좋은 선택은 아닌 것이다. 그래도, 그런 것은 지금 생각해도 별 소용 없다는 생각이 든다. 일단 공부부터 한 다음에, 어떤 직업이 적당할지 정할 심산이다.


 아이들이 채우는 장래희망란이 좀더 본질적인 것이 되었으면 한다. 그 저변에 깔린 가치나 생각, 이유 등을 자세히 따지지 않는 것은 마치 결과로 나온 번호만을 묻는 오지선다 객관식 시험과도 비슷한데, 인간의 삶은 오지선다가 아닌 것이다. 어째서? 이것을 물어야 한다. 이를테면 나는 크리스트교의 교리, 불교의 교리를 따라 살고 싶다고 하는 것은 자기 가치의 명확한 표현이다. 인권이라던가, 아니면 전통 등, 지키고 싶을만 한 가치란 수없이 많다. 안정을 추구하는 것도 괜찮은 일이다. 진로교육이 산업사회의 부품을 찍어내는 것이 아니라, 한 인간의 삶의 방향을 결정짓는 것이 될 수 있을 때, 사회는 좀더 나아지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출처 : 네이바 이미지 검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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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설픈꿈2008. 1. 8. 01:34
이건 예전에 교내 백일장에서 썼던...
역시 2004년인가?




함성 바깥에서



 함성의 전제는 ‘함께’이다. 사전을 뒤적거려 보아도 ‘여럿이서’ 같은 말이 그 풀이에 꼭 붙어있다. 喊聲이라는 한자만으로는 그런 의미를 찾기 힘든데도 말이다.


 서기 2002년을 떠올려 본다. “아, 참 뜨거웠다”라든가 “굉장했지” 같은 소리나 늘어놓을 생각은 없을뿐더러, 그런 말은 과분하기도 하다. 그저 “참 시끄러웠지” 한 마디로도 족하다. 이 사람 저 사람 몰려다니며 함성을 질러댔던 해였다. ‘축구’가 무엇이기에, 라는 생각보다는 ‘우리’가 무엇이기에, 라고 먼저 물어본다. 텔레비전을 틀 때마다 방 안을 울리던 “필승 코리아”, “대한민국”의 함성, 그 경기장을 뒤덮은 응원소리가 소위 홈그라운드에 선 ‘우리’의 모습이었다. 약간 비약하자면, 그것은 또한 ‘자국 우선주의’라는 세계적인 추세가 질러댄 함성이기도 했다.
 

 고백하건대, 나는 월드컵 때에도 한국이 이기기를 진심으로 바랐던 적이 없었으며, 온 나라의 열기에 오직 냉소로 답했을 뿐이었다. 내가 애초에 축구를 좋아하지도 않거니와, 무리가 만들어 내는 열기를 두려워한 때문이었다. 사람들의 체온, 땀냄새, 그리고 함성이 만들어내는 시작도, 끝도 없는 듯한 공기의 미친 경련.... 그 모든 것이 나는 두려울 뿐이다. 그런 것에서 이미 숱한 실망을 겪어 보았기 때문이다. 춥다고 해서 불로 달려들어서는 안 된다, 불에 날개를 데어 더욱 차가운 땅바닥에 떨어질지니. 공명할 수 없는 소리는 독이요, 해(害)일 뿐이다. 열광하는 무리의 속에서 인간을 찾지 못했을 때, 그 쓸쓸함은 더욱 비참한 색조를 띠는 것이다.


 그런, 경험에서 나온 ‘비관’이, 내가 서기 2002년 그 온통 시끄럽던 해에도 쇼파에 멍하니 누워 옆집에서 간간이 새나온 함성만 듣고 있게 한, 급우들의 열심히 이겼네, 졌네, 하는 소리에 형식적인 장단만 맞추게 한, 심적인 이유였으며 주된 이유이기도 했다. 곧, 나는 함성을 지를 용기가 없는 사람인 것이다. 그 뿐이다.


 나와는 달리 많은 사람들이 함성을 지를 용기를 뱃속에 지니고 있다. 그에 대해서라면 충분하고도 남을 사례를 들 수 있을 것이다. 가깝게는 서기 2002년이다. 하지만, 어쩌면 그렇기에, 그들이 함성 밖에는 지르지 못하는 것은 아닐까?


 산에 올라가서 사람들은 종종 고함을 지르곤 한다. 대개는 “야호-”와 같은 감탄사들이다. 한 번은, 산에 올라서 이렇게 소리쳐 본 일이 있다.
 “나는 자유인이다-!”
  솔직히 말해, 막상 하고 보니 꽤나 부끄러워서 도망치듯 정상에서 내려왔었다. 그래도, 비록 텔레비전 광고에서 따온 진부한 새로움일망정 , 그게 어디인가, 하는 생각에 조금은 뿌듯했던 것도 사실이다. 자주 오르는 산도 아닌데, 매양 야호만 질러대기도 무언가 허망한 노릇 아닌가. 세상을 저 아래에 놓은 만큼, 하고 싶은 말 하나 정도는 던져보는 것도 좋지 않은가. 이런 게 진정한, “함성 아닌” 고함이지 않을까?
 

 예전에 ‘가슴을 열어라!’ 라는 프로그램이 방영된 바 있다. 학교 옥상에 올라가서는 평소에 하고 싶던 말을 목이 쉬어라 외치는 게 그 내용이었다. 비록 그 외침의 목소리들 상당수는 그저 웃음거리 이상이 되지 못할 것들이었다. 그러나 그렇다해도, 그런 곳에 ‘홀로’ 서서, 텔레비전 카메라와 전교생 앞에서 고함을 지를 수 있다는 것, 그것만으로 나는 그 사람들이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최소한 자기 몸으로 서서 제 목소리를 제 입으로 낼 수 있는 사람들이니 말이다. 그래, 어쩌면, 그것이 자연스럽고 바람직한 일이다.


 산 위에서 그렇게 고함을 지르고는 부끄러웠던 이유는 무얼까? 그건 당당하게 내 목소릴 내는 데에 익숙해져 있지 않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설령 군중 심리에 휩쓸리지 않는 사람일지라도, 그들이 지르는 함성의 바깥에서 그 위로 고함을 지르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극단적인 예를 들자면 월드컵 때 “한국 팀 져라!”를 당당하게 광화문에서 외쳤다간 성난 군중들에게 몰매를 맞았을지도 모를 일이긴 하다. 그러나, 함성 밖에 못 지르는, 고함은 지르지 못하는 용기라는 것이야말로 어쩌면 부끄러워할 일이다. 혼자서 고함을 지르는 일에 비교한다면 더욱 그렇다.



 나는 자유인이다, 괜히 현대, 대한민국이 다원주의이고 자유주의가 있는, 자유민주공화국인가. 감정도 생각도 없는 “야호-”가 아니라 내 목소릴 내자. 동조이건 반대이건, 함성에 휩쓸리지 말고, 함성 바깥에서. 사람들, 이제 홀로 고함 지를만한 키도 되지 않았는가. 멋들어진 말이 아니라도 좋다. 함성 바깥에 서서 여하간 제 목소리를 낼 수 있다면.

  진부한 명언-“너 자신이 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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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설픈꿈2008. 1. 8. 01:32
그냥 짤막하게...

2004년 여름즈음에 썼던 글인데요.

그 무렵에 나왔던 학교의 학생자치 신문, 혜윰에 기고된 글입니다.

혜윰, 은 생각하다의 고어인 혜다, 에서 나온 말로...
본래 혜염, 이 명사형인데...
혜윰이 되면 잡념이라거나 그런 느낌이라고 하더군요.
본 의도는 혜염, 이었는데 실수로 혜윰이 되었다나 뭐라나... 하지만 혜윰, 잡념도 잡념 나름이라는 게 제작진인 신문부의 변명 (-_-)


 

낭만주의적인 경향이라거나, 운동의 단초 같은 것도 보이는 글.
 

 

 

 

 

 

이상(理想) 없는 젊은이들에 고(告)함


  노벨상을 만든 알프레드 노벨은 자신의 유언장에서 노벨문학상 수상자 선정 기준을 이렇게 말했다. “이상(理想)적인 경향으로 가장 뛰어난 작품을 창작한 인물에게 줄 것.” 노벨상이 “인류 복지에 가장 구체적으로 공헌한 사람들”에게 주고자 하는 상임을 생각해보면, 노벨은 문학 분야에서 인류에 공헌하는 것은, 이상적인 작품이라고 생각한 셈이다.

  비단 문학 분야만이 아니다. 이상(理想)이 없었다면 시민 혁명도 없었을 것이고 민주화 운동도 없었을 것이다. 인간 역사에 생동력이 있는 것도 사람들에게 이상이 있기 때문이다. 인간이 움직이는 힘은 현실과 이상의 대립에서 나오는 것이다.

  한국 교육의 문제가 이거다 저거다 말이 많지만, 가장 큰 문제점 중 하나는 바로 현실주의자만 많이 길러내는 것이다. 주위를 둘러보면, 당장 현실에서 시험 보는 데에 필요한 공부만 하려하고, 또한 미래 목표도 너무나도 현실적인 학생들이 산재해 있다. 사실, 한국의 교육은 과거 “산업 일꾼” 찍어내기 교육에 근거하고 있고, 또 그 방식은 과거 독일 쪽의 “군인” 찍어내기 교육에 그 기반을 두고 있으니, 이상주의를 죽이려는 경향은 필연적인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우리는, ― 민태원 씨가 쓴 수필, 청춘예찬을 보면 알 수 있듯이 ― 청춘의 꽃은 이상이요, 청춘의 정열도 이상에서 나오는 것이고, 젊음의 찬양받을 점은 그러한 이상을 품고 있단 것임을, 또 낭만, 이상이 없이는 공부든 뭐든 무의미하고 수동적이며 강박적인 몸부림에 지나지 않음을 알고, 교육 현실에 저항하면서라도 이상을 간직해야 하는 것이다.

  이상이라고 해서 너무 거창한 것만 생각하진 말자. 사랑이 넘치는 가정을 꾸미겠다던가, 아름다운 사랑을 하겠다는 소박해 보이는 이상도, 물질 만능주의가 만연한 이 세상엔 얼마든지 훌륭한 이상일 수 있다. 이상이라 부를 수 없는 이상은 단 하나, “주어진 현실에만 잘 순응하며 사는 것”과 같은 ‘현실주의적 이상’ 뿐이다. 그런 건 아무 능동성도, 힘도 없다.

  현실을 도외시하라는 게 아니다. 다만 이상이 첫째고 현실은 둘째인 삶을 살자는 것이다. 우리는 청춘이다. 공부를 해도 이상을 위해 정열적으로 하는 것이 젊음이다. 가치 있는 이상 없이 살던 젊은이들이여, 그 이상이 세계 정복이어도 좋고 이런 허황된 글 쓰는 인간을 암살하는 것이어도 좋으니, 이상을 품자. 정체되고 잘못된 현실이 있다면, “어쩔 수 없는 건 수용하자”는 식으로 살지 말고 아무리 어려워 보여도 현실에 도전하자. 그것이 개인의 진정한 개성이 될 수 있을 것이고, 또 자타가 모두 의미 있다고 인정하는 삶을 만드는 첫 걸음이 될 것이다. 교육이 이상을 죽인다면, 그 교육에 도전하자. 현실을 바꾸는 건 바로 그 현실을 살아가는 우리라는 점을 항상 명심하길 바라고, 또 바라며 글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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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로디

    똑같은 말을 60대의 닝겐이 했으면 꼰대 ㅉㅉ 하고 싶어질 듯...하하..

    2015.06.07 01:49 [ ADDR : EDIT/ DEL : REPLY ]

어설픈꿈2008. 1. 8. 0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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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의 그림은 아즈망가 ost cd 중 오사카 테마 곡 표지의 그림...?)




 

낮은 눈높이

 (2004.09.)


  현대. 자연과학에서는 미시(微示)적인 분야들이 한창 각광받고 있다. 그러나 일상과 상식으로 무장된 우리들에겐, 유전자가 어떠니 원자가 어떠니 하는 이야기들이 실감으로 다가오질 않는다. 세포만 해도 실감이 안 날 정도로 작건만, 또 그 안에 들어있는 유전자라니. 차라리 완두콩이 쭈글쭈글하니 하면서 직접 보는 것, 겉으로 드러나는 형질을 관찰하는 쪽이 유전이라는 개념을 이해하기 쉽다. 마찬가지로, 사과가 산소와 반응해서 맛이 달라지느니 어쩌니 하는 것보다는 그냥 갈색으로 변해서 맛이 달라졌다고 생각하기가 쉽다. 아무리 현미경의 성능이 좋아져서 분자, 원자 단위까지 들여다볼 수 있다고 해도, 사정은 그리 달라지지 않는다. 바로 지금 살고 있는 우리 세계의 이야기가 아니라 전혀 알 수 없는, 다른 세계 이야기 같다. 아무리 유전자 연구가 어떤 성과를 올렸다는 소식이 들려도, 사람들이 주목하는 것은 유전자 연구로 인해 나온 결과, 즉 무슨 병을 치료하게 되었다, 노화를 방지하게 되었다, 와 같은 이야기이지, 유전자라는 그 조그마한 것을 다루는 그 자체는 아무리 유전자라는 개념이 친숙해져도 일상의 사람들에게는 여전히 이해할만한 것과는 조금 동떨어진 것으로 느껴진다. 일상과 상식의 울타리 안이 우리들이 실감하는, 현실이기 때문이다.


  눈의 위치―시점(視點)을 움직인다는 것은, 그런 것이다. 세계의 변화이다. 특히 횡적인 이동이 아니라 종적인 이동의 경우에는 더욱 그런 것을 두드러지게 느낄 수 있다. 종적인 이동이란 것은 단지 높이의 변화 뿐 아니라 대상에 대한 밀착도의 변화이기도 한데, 횡적인 이동이 비교적 비슷하고 대등한 관점 사이에서 변화를 주는 것이라면, 종적인 이동은 시야 자체에 변화를 주기 때문에 실감에 직결된다.


  몇십층 빌딩 위에서, 혹은 비행기를 타고 높은 시점에서 부감(俯瞰)한 광경도 비현실적으로 느껴지지만, 시점을 낮춰서 미시한 모습도 또 다른 느낌으로 비현실적인 모습을 던져주기 마련이다. 현미경과 같은 극단적인 경우를 들지 않더라도, 지금 당장 땅바닥에 엎드려 보기만 해도 어느 정도 알 수 있을 것이다. 계속 낮은 자세로 사람들을 올려다보는 것만으로도 평소의 일어선 시점에서 본 것과는 다른, 묘한 것을 느낄 수 있는 것이다. 어떤 사람은 구체적인 두려움, 어떤 사람은 단순하고도 막연한 이질감.


  그러나 그런 실감의 부재, 비현실감이 또한 매력으로 작용한다는 것도 사실이다.


  게으른 성격의 내가 유독 청소에 집착하는 것은, 강박적인 성격도 원인이긴 하지만, 무엇보다 청소가 즐겁기 때문이다. 청소를 할 때에도 낮은 시점을 느낄 수 있는 탓이다. 청소는 눈높이에 있어 일종의 일탈(逸脫)로서 매력적인 활동이다. 특히, 그 청소의 대상이 우리가 가장 일상적으로 생활하는 공간인 우리 자신의 방, 혹은 학교, 직장 등이라는 점이, 더욱 그런 면을 강하게 해준다.

  청소란 것은, 어느 정도 더러워지고 어지러워질 때까지 기다렸다가, 천천히 느긋하게, 하나하나 살펴가면서 하는 것이 좋다. 빨리 빨리 해치워버리는 건 그리 좋은 청소가 아니다. 빗자루에 걸리는 것들을 뭐든 신경 안 쓰고 쓰레기통에 몰아 넣어버리고, 걸레질도 휙휙 해버린다면, 청소의 맛을 제대로 살리지 못하는 것이다.

  청소를 하다보면 여러 가지 눈에 안 띄던 것들을 볼 수 있다. 바로 발 밑, 내가 그냥 건너다보던 창문, 책상 위, 여러 곳에 생각지도 못한 것들이 숨어있다. 걸레질을 하면서 창문을 보면 눈치채지 못했던 흠집이라거나 얼룩이 보이고, 걸레가 지나간 자국이라거나 손자국이 눈에 크게 들어온다. 허리를 굽히고 바닥을 쓸 때면, 바닥에 떨어져 있는 여러 가지 잡동사니들이 눈에 띄고, 분필자국이라거나 발자국, 같은 것들도 보이곤 한다. 튀어나오고 긁힌 자국들이 보이면, 그런 자국들이 생긴 사건들을 떠올려본다. 거무스레한 얼룩을 보고 아, 언제 먹물을 엎질렀었지. 난리도 아니었어, 참. 굴러다니는 빵 포장지라도 발견하면 아 저건 언제 먹었던 거였지, 한다거나 누가 먹었었어, 하면서 회상을 해보고, 또 영 기억이 나지 않을 때는 상상력까지 동원해서 이야기를 만들어본다. 그런데 저게 지금까지 남아있었나? 조금은 알쏭달쏭하다. 평소 별 생각 없이 밟고 다니던 바닥이 이렇게 생겼었나, 또 깨끗해 보이던 유리창이 이랬었나, 하는 생각도 든다.

  손에는 걸레나 빗자루를 들고 바닥에 무릎을 꿇어보면, 이미 거긴 다른 세계인 것이다. 우리가 살아가는 현재의 현실이 아니다.

  침대 밑을 뒤적거리면서 굴러가는 먼지 덩어리를 보면서 멍하니 있는 것도 즐거운 일 중 하나다. 잘 살펴보면, 먼지 덩어리들의 크기, 모양, 색깔도 제각각이고, 그 굴러가는 모습도 특색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어느 먼지 덩어리에는 긴 머리카락이 엉겨있고, 어느 먼지 덩어리에는 빵 부스러기가 묻어있다. 조금만 상상력을 곁들여보면 먼지 덩어리에게도 개성이 있고 나름대로 꽤나 파란만장한 과거가 있다.


  그렇게, 조금만 눈높이를 낮춰보면, 여러 모습들을 찾을 수 있다.


  고개를 숙이고 걷는 버릇이 든 것은 언제부터였을까. 우리가 매일같이 걸어다니는 길바닥이 매일같이 얼마나 많이 변하는지, 그리고 또 변할 때마다 얼마나 많은 것들을 우리의 눈에 던져주는지. 계절에 이르게 진 낙엽이라든지, 누군가가 떨어뜨리고 간 머리핀, 버리고 간 깡통, 달라붙은 껌자국. 져버린 꽃. 신발을 털어서 생긴 흙덩이들. 항상 같은 길을 걷고 있다고 생각하던 불변의 일상, 그 안정적이던 세계가 계속 변화하는 무언가였다는 사실.

  아침. 길을 걸으며 바닥을 잘 보면 지렁이들이 보인다. 때로는 무언가에 밟혔는지 ―아마 사람일 것이다. 납작하게 죽어있는 모습도 보인다. 때로는 꿈틀거리면서 어딘가로 열심히 가는 모습이다. 때로는 개미들에게 공격을 받으면서 바둥대는 모습이다.

  한낮. 개미떼들이 걸어가는 사람의 발 밑에서 우왕좌왕하고 있다. 어떻게든 밟혀 죽는 걸 피해보려는 듯, 사람의 발이 바로 근처에 떨어지기라도 하면 갑자기 뽈뽈대는 게 빨라지는 까만 덩어리들. 좀더 눈을 크게 뜨고 쳐다보면 표정까지 보일까?

  여름. 창틀 청소를 하면서 많은 벌레들의 시체를 보게 된다. 하루하루, 하루살이들의 시체들이 새롭게 창틀에 쌓인다. 그렇게 쌓인 수많은 하루들을 대수롭지 않게 빗자루로 슥 쓸어버릴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전에, 혹은 그러는 중에도 자세히 들여다보면 개중 몇 마리는 꿈틀거리는 것을 알 수 있다. 빗자루를 대보면 날갯짓을 해보는 녀석도 있다. 그러나 쓸지 않고 한동안 그대로 두어봐도 끝내 날아오르지는 못하곤 한다. 어제.

  겨울. 겨울의 길바닥하면 빙판이라거나 얼어붙은 휴지뭉치 같은 것도 기억에 남지만, 역시 가장 인상적인 것은 눈이다. 얇게 깔린 눈 위에 남은 발자국들의 제각각인 모양들. 신발의 모양도 모양이지만, 그 발자국에 남은, 밀린 모양이라든가 걷는 모양새, 흙. 누군가가 눈을 뭉쳤는지 쓸린 눈. 후―하고 분 듯 날린 눈. 눈 위에 쓴 낙서.


  인간의 세계 바로 곁에, 인간이 자기도 잊어버려가며 남긴 흔적들이 생생하게 남아서는 그것을 남긴 인간과는 별도로 존재하고 있으며, 또 미처 인간이 신경 쓰지 못한, 인간과는 거의 무관하기까지 한 여러 삶들이 펼쳐지고 있다. 매번 다른 모습, 다른 세월들이. 그것이 우리가 눈을 낮췄을 때 펼쳐지는 이세계요, 현실 아닌 또 다른 현실이다.


  인간적이란 말은 애매한 개념이지만, 기계적인 것, 무정(無情)한 것에 대비되어 쓰일 때를 생각해보면, 걸어 다니는 사람들의 발에 밟히지 않기 위해 도망 다니는 개미와, 몸부림치는 지렁이의 모습도 또한 인간적이라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그것은 인간 이전에 생명인 것이다. 우리가 그들에게서 느끼는 인간성은 사실상 생명으로서의 동질성일 것이다.


  높은 눈높이가 우리에게 신(神)적인, 초월적인 느낌을 준다면, 낮은 눈높이는 그런 미물(微物)적인, 지극히 지상(地上)적인, 또한 사소한 것에 대한 느낌을 준다. 낮은 눈높이에 익숙해진 인간은 보다 작고 근본적인, 또 개별적이면서 비재현성을 띤 모습들을 알 수 있다. 인간이나 벌레나 생명으로서는 크게 다르지 않고, 먼지덩어리도 존재라는 면에서는 인간과 그다지 다르지 않다는, 그러면서도 각자에게는 개성이 있다는, 그런 동정―공감을 느낄 수도 있다. 비현실적인 세계가 현실로, 기이한 실감으로 다가오는 순간이다.


  일상. 자신의 눈높이만으로 살면서 보는 좁은 세상에 비하면, 세상은 너무 넓다. 작아 보이는 책상도 그 주름 잡힌 부분을 모두 펴면 엄청나게 넓어진다고 한다. 그 주름 하나하나에 새겨진 세월들이 또 있다. 나무테처럼.

  현실이 조여온다고, 현실에 치이며 일상과 상식의 잣대만을 들이대다보면, 어느새 하고 싶은 일이 아니라 해야 하는 일을 하기에 바쁘다. 내가 하고 싶지 않은데도 해야 하는 일은 뭔가 재미가 없다. 의무란 것만 무작정 짊어지다 보면 지치기도, 지겨워지기도 쉽다. 그럴 때면, 눈을 돌려보는 것도 좋다. 미물이라거나 작은 것들이라고 하면서 무시하기에는, 우리의 바로 곁에서 일어나는 삶들이 너무나 많다는 것을 알면, 낮은 눈높이를 가져보는 것이 결코 바보 같은 것은 아니란 것을 알 수 있다. 삶은 경험으로 풍부해지는 법이니까는.

  풀잎 위에 맺혀있는 이슬을 보면, 하늘이 있고 그림자가 있다. 이외수 씨의 소설 『칼』에서는, 이슬 속에 온 세상이 비치고 있다고 말했다. 나처럼 눈이 나쁜 사람 같은 경우는, 온 세상까진 볼 수 없을지 모르지만, 조금만 주의를 기울여보면, 먼 산 그림자와 자신의 얼굴 정도는 볼 수 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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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1

    이글을 보고 3곳에다 2번 않올리면 부모님 돌아가심 아무서워 젠장

    2010.04.04 13:58 [ ADDR : EDIT/ DEL : REPLY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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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글을 보고 3곳에다 2번 않올리면 부모님 돌아가심 아무서워 젠장

    2010.04.04 13:58 [ ADDR : EDIT/ DEL : REPLY ]

어설픈꿈2008. 1. 8. 01:16
체온

(2004.08.)

 

 서기 2004년은 더운 여름이었다. 여름. 많은 사람들이 덥다고 난리를 쳐대고 있다. 40년만의 무더위. 낮이면 나는 어느 도시는 섭씨 33도, 어느 도시는 섭씨 35도까지 올라간다고 하는 아침의 일기예보를 상기하며 섭씨 36.9도 근처는 될 법한 공기 속에 가만히 앉아있고는 했다.
 
 체온이 남아있다는 것은 살아있다는 것을 뜻한다. 죽음은 많은 경우에 싸늘한 이미지로 다가오고, 차갑게 식은 몸은 섬뜩한 죽음이 깃든 몸, 시체를 의미한다. 냉기는 죽음이고 열기는 생명이다. 빛, 열, 생명. 이러한 집합의 반대편에는 어둠, 냉기, 죽음 등의 집합이 있다. 이것들을 묶는 것은 유(有)와 무(無)의 분류법이다. 빛의 부재는 어둠이고 열의 부재가 냉기이며 생명의 부재가 죽음이다. 그리고, 주위에 아무도 없는 것, 모나드(Monad)에 창이 없는 것이 고독이라면 그런 고독을 벗어나고자 하는 사람, 외로운 사람은 유(有)를 갈망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최인훈씨의 소설, 광장에서 지나가듯이 나오는 고독하니까, 라는 답변들이 터무니없게만 들리지는 않는다. 외로움을 느끼는 인간이란 무엇을 해서라도 부재의 상태를 벗어나고자 하는 것이니까 말이다.
 
 나는 한여름의 무더위가 시작될 때까지 긴소매의 점퍼를 입고 다녔다. 고행이니, 감기니, 여러 가지 이유를 남에게, 혹은 나 자신에게 꾸며 보았지만, 어쨌건 나는 일종의 노출기피증인 셈이다. 혹은, 잠들기 전 이불 속에 파묻혀 있는 그 나른한 느낌, 내가 좋아하는 그 느낌을, 점퍼를 입고 있으면 느낄 수 있기 때문에 좋아한 걸지도 모르겠다. 사춘기의 병적이고도 발작적인 불안과 외로움과 상처 앞에서 더욱 내 개인적이고 사적인 밀실 속으로 숨어들고자 했던 것일지도. 확실한 것은, 긴소매의 옷을 입고서 느껴지는 나 자신의 체온에 나는 안도감을 느끼곤 했다는 점이다. 그것이 주된 이유이건, 부수적인 이유이건, 그런 이유도 있었다는 것만은 어느 정도 확신할 수 있다. 어쩌면, 위에서 열거한 것들과도 근본적으로는 같은 맥락의 이야기일 것이다. 타인이 아닌 나 자신의 체온, 그런 곳에서 난 위안을 찾고 있던 것이다. 그런 식의 감정이 자위와 본질적으로 다를 바 없다는 것 또한 자각하고 있었고, 그런 자각은 간혹 더한 우울과 자괴로 나를 몰아넣곤 했지만, 그래도 긴소매를 포기하기엔…… 추웠다. 사실, 덥지 않느냔 질문을 받을 때에도 내가 하고 싶은 대답은 춥다, 란 것뿐이었다. 종래에는 나약해진 정신이 낳은 환각인지, 늦봄, 내지는 초여름의 날씨에도 가끔씩 몸이 정말로 춥다고 느끼고, 또 불안감에 휩싸여서는 나도 뚜렷이 알 수 없는 무언가를 갈구하며, 또 휘청거리며 눈을 감곤 했다.
 
 체온에 육박하는 기온 속에 앉아있을 때면 그런 점퍼는 더 이상 필요가 없다. 목욕탕에서 섭씨 36도 정도의 온탕에 몸을 넣은 다음, 눈을 감고 몸에서 힘을 빼면 육체의 경계가 희미해지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 마찬가지로, 기온이 36도에 달하는 더운 날이면 자연스러운 상태의 공기 속에 잠겨있는 것만으로도 사람의 체온에 둘러싸여 있는 듯한 착각에 얼마든지 빠져있을 수 있으니까 말이다. 땀이 조금쯤 흐른다고 해도 문제될 것은 없었다. 심리적 안정감만 얻을 수 있다면, 햇볕이 아무리 따가워도 괜찮은 것이다. 그늘에 앉아있는 것도 나쁘진 않은 일이다. 그런 면에서는 수많은 사람들이 여름의 무더위만 오면 그토록 찾는 현대 문명의 축복, 각종 냉방기기들이야말로 나에게는 적이었다. 냉방병에도 곧잘 걸리는 나의 튼튼하다고는 못할 몸도 몸이지만, 냉방기기가 만들어낸 인공적인 추위에 갇혀 있다보면 마치 안도현씨가 읊고 박경찬씨가 노래부른 추운 도시를 실감하고 있는 듯한 감각에 사로잡혀 버리고 마는 것이었다. 확실히, 봄이 왔으나 세상은 아직 춥다는 외침은 공허한 것만은 아니고, 또 그런 인공의 추위를 느끼는 사람들을 단지 도시에 적응 못한 낙오자라고 치부하기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그런 것을 느끼고 있는 것이다. 어쩌면 그런 추위는 진정한 자유주의, 개인주의는 어느 결에 상당부분 소실되어 버린 것을 느끼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나는 지금, 누군가 이 글에 공감하는 사람은 그런 사람일 것이다, 라고 막연히 상상해보고 있다.
 
 그런 추위를 벗어나기 위해 사람들 틈에 낄 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모래알 군중, 고독한 군중이라는 이야기가 괜한 것은 아니다. 그 속에서는 소실된 개인을 오히려 더욱 강력하게 느낄 수 있다. 군중 속에서는 추위를 벗어나기는커녕 군중이 내뿜는 열기에 자신의 체온까지 빼앗기는 기분이 들 것이다. 이를테면 나는, 2002년 월드컵이다 뭐다 해서 한창 시끄러울 때에도 멍하니 집 소파에 누워서 미친 듯이 소리지르는 군중들을 묘한 쓸쓸함을 느끼며 TV로 보고 있을 뿐이었고, 학교 여행을 가서 장기자랑이나 캠프파이어를 할 때에도 어울려야만 하는, 도망갈 수도 없는 상황과 휩쓸리기 싫은 마음 사이의 괴리 때문에 어색하기만 했다. 중앙에서 타오르는 캠프파이어의 열기에 취한 사람의 무리들. ― 사람들이 아니다. 무리일 뿐이다. ― 느껴지는 열기는 사람의 체온이 아니라 군중의 광기가 만들어내는 열기일 뿐이었다. 열띤 헐떡임, 미친 듯한 외침, 광신도, 웃음, 울음. 사실 그런 실망 아닌 실망을 겪기 전부터 그런 현실을 우리는 알고 있었을 테지만. 그런 집단의 광기 안에는 어설픈 개인주의자가 설 땅은 없는 것이요, 그런 사람은 애초에 그 속에 서있을 수가 없는 종자인 것이다. 개인적으로 미칠 수는 있어도 집단적인 광기에 취하는 것은 끝내 거부하는, 골칫덩이 고집쟁이인 셈이다.
 
 숱한 소설은, 시는 그런 골칫덩이, 외로운 사춘기 소년을 말했다. 어른이 되어서도 우리는 아이의 모습을, 사춘기의 모습을 안고 있다. 진정한 어른이 된다는 것은 모든 인간에게 요원한 일이고, 또 그런 것이 필요한 일일지도 생각해볼 문제다. 하지만, 분명 그래야 할 터인데 마치 그런 사춘기는 이미 멸종한지 오래라는 듯이, 내 주위는 온통 여자아이들 중 누가 예쁘니, 어느 사이트가 어쩌니, 어느 게임이 재미있니, 어느 축구 선수가 잘하니, 하는 소리 밖에 할 줄 모르는 아이들로 메워져 있었다. 소녀들 쪽은 잘 모르겠다. 함께 지내본 적이 거의 없었고, 같은 학교 안에서도 아는 아이를 손으로 꼽을 수 있을 정도로 내 인간관계가 좁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쪽도 사정은 비슷하지 않을까. 여하간, 내가 접촉하는 소년들의 경우 진지한 태도로 하는 이야기는 대개는 정치나 대학에 관련된 이야기가 대부분으로, 그렇게 주위는 온통 현실주의자들로 숨막히게 들어차 있었다. 사춘기 소년이란 것은 이미 기록에나 남아있고 이젠 거의 멸종해버렸는지도. 또는 저 깊은 곳으로 숨어서, 아이들의 외부엔 드러나지 않고 있는지도. 하긴, 사춘기 소년은 수줍음이 많다니까 아이들의 저 마음 속 깊은 곳에 틀어박혀서, 조용히 자신이 괴사 당할 날만 기다리고 있는 것일 수도 있다. 그래서 나는 아이들에게서 그 모습을 찾지 못하고 있는지도, 사실은 아이들은 혼자 있게 되면 떨어지는 꽃잎에 감상적이 되고 외로움에 떨고 있는지도, 그럴 지도 모를 일이었다. 만일 그렇다면 쓸쓸한, 그리고 또 씁쓸한 이야기이다. 나처럼 대놓고 휘청거리는 것보다 더 힘들 테니까 말이다. 조금만 더우면 에어컨디셔널을 불만스런 목소리로 외쳐대는 현대의 아이들이지만, 그래 그럴 수도 있는 것이다……. 아이들은 주위에서 요구하는 수많은 현실들 속에서 그렇게 강하게 자라났는지도 모르겠다. 나처럼 거짓에 지쳤다면서 온갖 강함을 던져버리고 나약만을 끌어안은 사람과는 달리. 짝사랑을 하면서도 부모님과 학업 때문에 사귀려는 생각도 할 수 없다는 어느 아이의 말에서, 그리고 시험 공부를 하다가 별안간 울면서 나무에 주먹을 쥐어박는 어느 아이의 모습에서 그런 흔적을 어렴풋이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설령 현대의 청소년이란 것이 과거의 사춘기 소년에서 현대 사회에 맞춰 진화한 결과라고 해도, 그들의 모습에 그들 조상의 모습이 어렴풋이 남아있는 것은 이상한 일은 아닐 것이다. 그런 어렴풋한 모습 밖에 찾을 수 없는 진화라는 것 또한, 쓸쓸하고도 씁쓸한 일이지만…….
 
 자연이 체온의 착각을 주는 철이 지나가면 난 또 점퍼와 제 체온에 기대어 버텨나가고, 인간에 대한 갈망을 견뎌 나갈 것이다. 어리석은 위안일지언정.
 
 우리는 고독이 적이 아님을 안다. 고독은 양날의 칼이라, 우리 스스로 그것을 감당할 힘이 없을 만큼 지쳤을 때는 우리를 짓누르지만, 또한 우리가 고독을 짊어지고 있기에 우리는 무언가가 될 수 있는 것이다. 고독에 대해 많은 것을 말한 시인, 라이너 마리아 릴케는 사랑하는 것이 사랑 받는 것보다 낫다고 말테의 수기에서 말하였다. 그렇다, 영영 사랑 받지 못하더라도 사랑할 수만 있다면 아직은 살아있을 수 있는 것이다. 고독한 짝사랑이건 뭐건. 그러나 살아가면서 우리가 품어왔던 인간과 세상에 대한 사랑, 희망은 계속해서 끈 끊어진 연처럼 추락해버리고, 그런 실망은 끝내는 절망으로 이어져버리기도 한다. 희망의 부재, 절망에 가까워진 지친 상태에서 고독은 외로움이라는 감당하기 버거운 것이 되어버리고, 그럴 때면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라는 고전적인 명구를 다른 의미에서 되새겨본다. 그것이 체온을, 인간을, 동종을 갈구하는 의미이다. 그런 상태에서 별 부담 없이 기댈 수 있는 대상 ― 친구라는 형태이건 가족이라는 형태이건, 그런 사람이 곁에 있는 사람은 어느 정도는 기뻐해도 좋은 일이다……. 우리가 쇼펜하우어의 고슴도치처럼 온전하게 접근하지 못하고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고 있건 어떻건 간에, 서로의 체온을 느낄 수 있는 대상이 있다는 것, 열원이 있다는 것, 그것은, ― 설령 그것이 가벼운 위안으로 보일지라도, 인간이여, 그대는 위안 없이 살아갈 수 있는가? ― 그래, 여하간에 좋은 일인 것이다. 그러니 인간을 갈망하고 체온을 갈망하고 부재를 두려워하는 어린아이 같은 모습을 비웃지 말지어다, 인간이여. 지친 사람의 나약함을 비웃지도 말을 일이다. 그런 사람은, 많은 짝사랑을 했고 또 많은 희망을 품어왔기에, 그만큼 많은 것에 지쳐서 추위에 떨고 있는 것일 테니까 말이다.
Posted by 공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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