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설픈꿈

12월 14일, 119가 학교에 온 이유

공현 2008. 2. 8. 16:30

12월 14일, 119가 학교에 온 이유
(이 글은 사건 당사자의 허락을 받고 썼음을 밝혀둡니다.)


 2005년 12월 14일 오전, 119 소방차 한 대가 학교에 들어온다. 그리고는 “쟤 수능 못 봤어요?” 같은 이야기를 신관 아래쪽에서 교감 선생님을 비롯한 선생님들, 몇 명의 아이들과 주고받더니 소방관 아저씨 한 분이 멋진 자태로 신관 옥상에서부터 로프를 타고 내려온다. 잘 보니 신관에 투신하면 여기 걸려서 멈추라고 해놓은 듯한, 아니, 창문에 비 들이치지 말라는 의도로 만든 듯한 3층 창문 위쪽 파란 돌출부에 한 학생이 앉아있다. 애초에 그 위에 어떻게 왜 올라간 건지도 수수께끼다. 소방관 아저씨는 그 학생에게 로프 묶는 옷을 입히고 로프를 묶어서 아래로 내려 보낸다. 이런 상황에 대한 가장 상식적인 해석은 역시 자살 소동. 하지만 세간의 상식을 벗어난 일은 너무나도 자주 있는 법이다.

 내가 그 사건을 목격하게 된 것은 할 일도 없는 고등학교 3학년생의 본분을 다 하기 위해 친구들과 모닝PC방을 뛰고 오던 길에서였다. 교감 선생님을 비롯하여 몇몇 선생님들이 신관 4층 언저리만 쳐다보고 계셨다. 웬 일인가 했더니 평소에도 미친 짓을 많이 하기로 이름 높은 3학년 ㅇ군이 그 파란 돌출부에 책상다리를 하고 앉아 있는 게 아닌가! 사실 그 순간 위험하다는 생각은 안 들고 “이젠 별 짓을 다 하는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는 것은 그 녀석이 얼마나 악명 높은지 단적으로 보여주는 부분이다.
 그러나 4층에 올라가서 창문으로 아래를 내려다보니 그런 생각도 싹 가셨다. ㅇ군이 앉아 있는 파란 돌출부는 예상 외로 좁고 게다가 경사져 있었으며, 높이도 목숨에 위협을 느낄 정도였다. 옆에서는 국어과 사무실에서 오신 국어 선생님들 몇 분이 계셨고 애들도 몇 명 있었다. 3층에서는 ㅍ 선생님과 그 반 아이들이 회화 수업은 안 하고 열심히 구경을 하고 있었다. 나중에 들으니 ㅍ 선생님은 디카로 그걸 찍기까지 하셨다고 한다.
 어떻게 내려간 것이냐고 묻자 402호 창문으로 해서 내려갔다고 하는데, 그 좁은 창문으로 몸이 통과한다는 것 자체가 매우 신기한 일이다. 창문으로 다시 못 끌어올리느냐고 했더니 아까 시도해봤지만 높이가 높고 벽면이 미끄러워서 무리라고. 지금 상황은 119에 신고는 해놓고 기다리는 중.
구조 받을 때 거추장스러울 거라면서 ㅇ군이 창문 쪽으로 올린 웃옷은 국어 선생님 중 한 분이 받으셨다. ㅇ군은 휴대폰으로 어디다가 문자를 보내면서도 “그냥 떨어져 뒈져라, ○○○!”를 외치는 ㅅ군에게 “죽을래~!?” 등의 답을 하며 말싸움을 하다가 ㄱ 선생님의 “너 조용히 좀 못 있어!” 호통 한 마디에 잠잠해졌다. 그러다가 심심한지 “이 몸이 새라면, 이 몸이 새라면, 날아가리― 저 멀리 보이는, 저 멀리 보이는, 흰 구름까지―” 같은 노래를 부르는 것도 사실 꽤 가관이었다.
 결국 119가 도착, ㅇ군은 무사히 구조되었다. 소방관 아저씨가 “공부 안 하려고 별 짓을 다 하는구만.”과 같은 꾸중을 하며 로프를 묶어 주셨다 한다. 내려간 뒤에 담임선생님, 당시 수업 담당이셨던 논술 선생님 등에게 꾸지람을 들을 때는 그리 마음 편하지는 않은 듯 보였지만 역시 ㅇ군은 상황을 즐기고 있었던 듯하다.
 나중에 거기 있던 이유를 물었더니 대답은, “거기서 보면 경치가 좋을 것 같아서 내려갔는데 벽면도 미끄럽고, 팔 힘이 부족해서인지 돌아올 수가 없더라. 그래도 거기 앉아서 본 하늘은 참 좋았어. 119나 선생님들한테는 죄송하지만 이런 이벤트라도 있어야 사는 게 재밌지.” ……. 세상에는 상식적이지 않은 놈들이 너무 많다.

 그래도 자업자득이라고 나중에 자살 소동이었다느니 그 위에서 시위한 거라느니 하는 여러 허황된 소문들 때문에 ㅇ군이 투덜거리는 소리를 들었다. 담임선생님조차 그냥 경치 보러 내려갔다는 이야기를 안 믿었다나 뭐라나. ㅇ군이 목숨 걸고 말하고자 한 교훈은 턱걸이 연습을 부지런히 해둬야 한다는 점, 색다른 경치를 보려다 죽을 수도 있다는 점, 그리고 소문은 어쨌건 상식적인 수준에 머문다는 점 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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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치 내 이야기가 아닌 척 쓰기 -_- 뭐 나중에 목격자한테 들은 이야기를 토대로 쓰긴 했지만...


사실 저 위험하다는 생각은 안 들고 “이젠 별 짓을 다 하는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는 이야기를 듣고 제가 평소에 다른 사람들에게 어떻게 인식되어왔는지 심각한 고민이...(안 들었다.)



2005년에 오승희에 실을 목적으로 썼던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