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어가는꿈2016.07.30 13: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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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르장머리와 ‘아무 말 대잔치’

워커스 19호 왕년의 이야기


행사장 겉모습부터 이게 뭔가 싶었다. 건물 이름도 무슨 회관이었는데, 장내에 들어서니 탁자마다 하얀 식탁보가 깔린 결혼식장 같은 분위기의 홀이 눈앞에 펼쳐졌다. 앞에는 ‘두발 제한과 청소년 인권’이라는 현수막이 어색하게 걸려 있었다. 주최는 국가청소년위원회. 이 이름에서부터 이 이야기의 시대 배경을 눈치챈 독자도 있을 것이다. 국가청소년위원회는 이명박 정부가 들어서면서 없어진 정부 조직이다. 대략 10년 전, ‘대한민국 청소년 헤어스타일 쇼’와 두발 제한 관련 토론회가 함께 열리던 어느 행사장 풍경이다.
그때는 한창 두발 자유를 요구하는 청소년들의 거리 집회, 서명 운동, 학내 행동 등이 이어진 직후였다. 국가청소년위원회가 토론회를 열 법한 상황이기는 했다. 그러나 행사 기획안을 몇 번이나 읽어 봐도 도무지 두발 자유 문제를 진지하게 토론해서 정책으로 추진하려는 정부 기관으로서의 의지는 느껴지지 않았다. 채 1시간도 되지 않는 토론회 시간부터 그랬고, ‘헤어스타일 쇼’를 열고 청소년의 꿈과 좌절과 희망을 표현하며 “청소년 헤어스타일의 객관적이고 타당한 대안”을 제시하겠다는 1부 기획에서는 유머 감각마저 느껴졌다.



......


  ‘아무 말’을 제대로 거르지 않고 여기저기서 마이크를 쥐여 주니까, 귀중한 공론장의 자원도 낭비되고 있다. 공들여서 가치 있는 말을 하려는 이들이 되레 손해를 보는 셈이기도 하다. 심지어 대통령과 국회의원, 장관부터 ‘아무 말’을 하는 것 같을 때가 많아졌다. 하긴, 정부 기관이 “객관적이고 타당한 청소년 헤어스타일의 대안” 같은 소리를 하면서 헤어 쇼와 토론회를 열던 것을 떠올려 보면 아무 말 대잔치의 조짐이야 진작부터 있긴 했다만.
나는 그런 아무 말이야말로 심각한 무례이고 잘못이라고 생각한다. 나와 서른 살 정도 차이 나는 것 같은 교사에게 같은 위치의 토론자로서 인권 교육 좀 받으면 좋겠다고 한 것과 그 교사가 발언권도 얻지 않고 마이크를 잡고 청소년들에 대한 자신의 편견과 혐오감만을 쏟아 낸 것 중 과연 어느 게 더 ‘버르장머리 없는’ 일이었을까? 2014년 1월의 그 서울시교육청 공청회에서 한 여성 인권 활동가는 단상에서 다리를 꼬고 앉아 있다는 이유로 예의가 없다고 야유를 받았다. 학생 인권과 별 상관이 없는 자신의 ‘뇌 내 망상’을 소재로 한 일장 연설로 토론의 시간과 기회를 빼앗은 사람과 단상 위에 다리를 꼬고 앉아 있던 사람 중에 누가 더 무례했을까? 그런 토론회나 공청회 등의 자리에서 ‘아무 말 대잔치’가 얼마나 큰 해악인지, 부디 우리 사회가 진지하게 인식해 주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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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공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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