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어가는꿈

청소년운동으로 먹고살 수 있을까요?

공현 2017. 12. 1. 23:57

청소년활동기상청 활기 후원행사를 맞이하여 쓴 글 2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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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운동으로 먹고살 수 있을까요?

한때, 청소년운동에 참여하는 청소년들의 궁핍함을 상징하는 것은 교통비, 컵라면, 삼각김밥 등이었습니다. 경제적 약자인 청소년활동가들은 밥을 사 먹고 대중교통을 이용하기 위한 돈조차도 없어서 어렵게 연명한다는 이야기입니다. 이는 당장의 돈이 없어서 활동을 못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는, 넉넉한 이들만이 활동을 할 수 있어서는 안 된다는 문제의식이 깔려 있는 것이기도 했습니다.

이런 문제의식은 물론 지금도 유효하고, 청소년활동가들에게 교통비, 외식비, 통신비와 같이 활동에 드는 최소한의 실비를 보장하는 것은 아직도 다 풀지 못한 과제입니다. 하지만 청소년운동의 발전에 따라, 그리고 청소년활동가의 확대에 따라 좀 다른 문제도 부상하고 있습니다. 그 문제를 한 문장으로 요약하면 “청소년운동으로 먹고살 수 있을까?”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청소년운동의 역사가 길어지면서 청소년운동을 길게 하는 이들도 늘어났습니다. 20대가 되어도 계속 청소년운동을 하면서, ‘청소년운동의 활동가’라는 정체성을 갖고 살려는 이들도 많아졌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그들이 청소년운동에 전념하면서 살 수는 없는 상황입니다. 월 150만 원(2018년 최저임금으로 따지면 주 40시간 일했을 때 월급은 1,573,770원입니다.) 이상의 돈을 지급하며 상근활동가를 둘 수 있는 청소년운동 단체는 없기 때문입니다.

청소년운동을 하면서 생계를 해결할 수 없다는 사실을 활동가들은 다들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처음에 계속 청소년운동을 하기로 마음먹을 때는, 앞으로 몇 년 후에는 그래도 운동이 확대되고 발전해서 좀 다른 길이 생기지 않을까 생각하곤 합니다. 하지만 청소년운동의 성장은 더디고 특히 재정적 열악함은 심각합니다. 2005년에 운동을 시작한 제가 그때 이미 “앞으로 몇 년 안에 청소년운동에서 상근비를 받을 수 있게 만들겠다”라고 생각했지만, 12년이 지난 지금도 최저임금 수준을 받는 전업 활동가를 둘 수 없는 상황이니, 더 말할 것도 없지요.

청소년활동가들은 처음에는 다른 파트타임 임노동을 병행하면서 운동을 하거나, 가정 사정이 좀 나으면 부모나 양육자의 생계 보조를 받으며 운동을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경제적 독립과 생계 문제는 삶을 압박해 옵니다. 청소년운동에 생계 보장 전망이 안 보인다는 느낌이 짙어지면 전업 운동을 지향하는 것을 지속할 수 없는 순간이 옵니다. 19살에서 20대 초반 시기가 청소년기를 벗어나면서 청소년운동을 떠나는 사람들이 많은 첫 번째 시기라면, 이처럼 생계에 대한 불안과 고민이 턱 밑까지 차올 때가 사람들이 운동을 떠나게 되는 두 번째 시기입니다.

그러므로 청소년운동에 필요한 지원이 최소한의 교통비, 식비를 해결하기 위한 돈이라는 것은 틀린 말은 아니지만, 우리가 그렇게 말할 때 상상하는 청소년활동가들의 모습이 어떤 것인가 다시 점검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사람들이 청소년활동가들을 주 생계 책임자, 또는 부양 가족이 있는 경제 생활 인구로 은연중에 잘 생각하지 않았던 것은 아닌가, 그런 의심을 품곤 합니다. 지금 청소년활동가들이 운동을 지속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정말 최저임금 수준으로라도 ‘소득’을 가질 수 있는 단체입니다. 또는, 본인이 당장 그렇게 벌지는 못하더라도, 청소년운동을 계속하면 그런 식으로 삶과 운동을 이어갈 수 있다는 ‘전망’이라도 갖기를 원합니다. 그것이 단 1명이나 2명이라도 청소년운동에서 전업 활동가 자리를 마련해야 한다는 절박함을 느끼는 이유입니다.

청소년운동에만 전념할 수 있는 청소년활동가는, 청소년운동의 이후 발전을 위해서도 꼭 필요합니다. 운동의 역사가 길어지고 영역이 확대되고 담론이 축적되면서, 운동에 대해 전문성과 역량을 가진 활동가의 존재는 점점 더 중요해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지금 청소년운동에서는 이런 전문성과 역량을 길러나가면서 활동에 집중할 수 있는 활동가들이 턱없이 부족합니다. 그런 활동가를 운동 차원에서 둘 수도 없습니다.

사실 청소년운동이 돌아가는 대부분의 매커니즘은, 공식적 용어로 말하면 ‘자원봉사’라고 해야 할 것입니다. 그래서 간혹 연대체 회의 같은 데 가서 주위를 둘러보면 속으로 쓴웃음을 짓습니다. 바로 옆에서 같이 이야기하는 다른 운동의 ‘활동가’들은 상근활동가들인 경우가 대부분인데, 청소년운동 활동가들은 다들 ‘자원활동가’ 내지는 ‘자원봉사자’인 거니까요. 거의 대부분을 무급-봉사에 의존해야 하는 운동의 안정성이나 깊이는 떨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만약 청소년운동으로 먹고살 수 있다는 게 확실해진다면, 막 운동을 시작한 다른 청소년활동가들 역시 자신의 진로로 청소년운동을 계속하는 걸 더 적극적으로 고려할 수 있을 것이고 운동을 더 오래할 수도 있는 선순환이 만들어질 수 있을 것입니다.

과거에 고등학생운동 또는 청소년운동을 하면서 더 발전하고 커지는 운동을 한 번이라도 꿈꾸었던 분이라면, 저희의 절박함에 한층 더 공감하실 수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연대할 청소년단체, 섭외할 청소년 주체를 찾아 헤맨 적이 있는 사회운동가라면 왜 청소년활동가들이 청소년운동으로 먹고사는 게 필요한지 이해하실 것입니다. 1-2명이라도 전업 활동가가 있는 게 운동의 발전에 얼마나 중요한지 경험해보신 분들도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꼭 부탁드리고 싶습니다. 청소년활동가들이 청소년운동으로 먹고살 수 있도록, 청소년운동을 후원해 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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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는 아수나로 10주년 후원행사를, 올해는 활기 후원행사를 준비하면서 후원을 여러 차례 호소드렸습니다.
한낱 님이 이런 문장을 썼지요. "이 운동의 처량함이 아니라 이 운동의 정당성으로 당신에게 가닿고 싶습니다."
그래서 청소년활동가들은 어떤 일들을 하는가 우리 운동이 평소에 무엇을 하고 왜 필요한가 그런 이야기를 담아 보았습니다. 청소년활동가들이 만들어온 변화에도 주목해주시고, 또 잘 보이진 않더라도 계속 만들고 있는 움직임의 의미를 알아주시기를 바랍니다.
보통 사람들은 눈에 잘 띄고, 변화를 당장 만들고 있는 운동에 더 관심을 두고 후원을 해줍니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눈에 잘 띄지 않고, 공론화조차 잘 하지 못하고, 큰 투쟁을 벌일 수도 없는 여건의 운동이야말로 더욱 많은 이들의 관심과 지지와 연대가 필요한 운동일지도 모릅니다. 청소년운동도 그중 하나이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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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 청소년활동가의 하루는 이보다는 덜 빡빡한 일정이고 좀 더 분담이 되긴 합니다만, 실제로 오전에 기자회견 - 오후 면담 - 저녁에 생계 관련 일 등의 일정을 소화하는 경우를 최근에 본 적이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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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의 어느 청소년활동가의 하루

아침 7시 반. 휴대폰 알람을 황급히 끈다. 다른 방에서 자고 있는 활동가가 어제 일정이 늦게 끝나 밤 11시에야 들어온 것을 알고 있다. 나도 조금 더 자고 싶고 팔다리가 뻐근하다. 하지만 오늘은 10시에 국회에서 청소년 정당 가입 보장을 위한 정당법 개정에 대한 토론회가 있다. 사무실에 들러서 자료집이나 단체 소개 브로셔 등을 챙겨 가려면 8시 반에는 집을 나서야 한다.

짐을 싸들고 전철을 타고 국회의사당역에 내린다. 택시라도 탔다면 좋았으련만, 짐이 그렇게 많은 것도 아니라서 택시비 지원을 단체에 요청하기도 좀 그렇다. 시간이 빠듯해서 종종걸음 친다. 국회는 왜 이렇게 쓸데없이 넓은지... 의원회관에 들어가서 신분증으로 청소년증을 내니 안내 직원이 "고등학생이니? 국회 견학 왔어?" 하고 말을 건다. 기분이 상했지만 우물우물 입 속으로만 몇 마디 하고 만다. 마음도 급했고, 한마디 쏘아 붙여 줄 기력도 없다. 아직 하루가 시작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왜 이렇게 지칠까.

지난 주말에도 단체 회원들과 청소년인권과 페미니즘에 대한 공부모임을 가지고, 캠페인을 했다. 그런 식으로 제대로 쉬는 날 없이 13일째. 휴일이 시급하다. 공부모임에서는 회원들이 겪는 차별 발언이나 경험들을 나누었고, 그중 어떤 것들은 문제 제기를 하기 위한 계획도 세웠다. 잘 준비해야 할 텐데...

토론회가 끝나고 간담회실을 나와 로비에 앉아 노트북을 주섬주섬 꺼내든다. 토론회 보도자료를 배포해야 하기 때문이다. 벌써부터 기자들 몇 명한테서 보도자료를 보내달라고 연락이 왔다. 직접 취재하고 써주면 좋을 텐데... 하지만 기사라도 실어주는 언론사가 많지 않으니까 고마운 마음이다. 발언 내용들을 정리하면서는, 사심을 가득 담아서 학교에 체험학습신청서를 내고 시간을 내서 온 청소년 토론자 발언을 가장 길게, 가장 앞에 넣는다. 그 다음 순서는 법안 발의를 다짐하는 국회의원들의 발언이다. 청소년 참정권 문제도 참 오랫동안 씨름해 왔는데 아직 뭐 하나 제대로 된 게 없다. 해묵은 과제인데도, 여전히 '18세 선거권'이 전부인 줄 아는 국회의원들을 설득하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이다. 점심을 먹으러 간 이들이 기다리고 있으니 얼른 끝내야지.

같이 토론회를 한 사람들에게 점심을 얻어먹고 사무실로 돌아왔다. 그 덕에 오늘은 도시락을 안 싸와도 되었다. 잠시 뒤 오후 2시에는 소지품 압수 사례 문제에 대해 교육청 조사관을 만나기로 했다. 경기도, 광주, 서울, 전북 4개 지역에서 학생인권조례가 시행되고 있고 변화한 것도 많고, 조례에서는 안전을 위해 긴급한 경우가 아니면 소지품을 압수하는 행위가 금지되어 있기도 하다. 하지만 여전히 학생의 소지품을 함부로 압수하는 경우들이 많다. 우리 단체 조사에서 수집된 것 중에는 학생들의 악세서리를 압수해서 눈앞에서 부숴버리는 등 모욕적인 행위들도 열 건이 넘는다. 서울시교육청에 학생인권조례조차 지키지 않는 이런 문제들에 대해 대책 마련을 요구하기 위해 면담을 요청했다. 조사관은 관심과 노력을 약속했지만, 교육청이 많은 반발에 직면하고 있다며 어려움을 토로하기도 했다. 조례나 교육청 권한의 한계, 그리고 사회적 인식의 한계가 분명히 있을 것이다. 그래서 우리가 법을 만들기 위한 운동도 하고 있는 것이지만, 교육청이 당장 할 수 있는 일이라도 좀 최선을 다해 주길 바랄 뿐이다.

면담을 끝낸 뒤 시계를 보니 3시가 넘어가고 있다. 단체에 회원 가입 신청을 한 사람들 목록을 정리해서 연락을 돌린다. 중고등학생인 분들은 학교에 있는지 대부분 통화가 되질 않아서 문자메시지를 남겨두고, 몇몇 연락이 된 분들에게는 단체에 대한 안내를 하고 활동 참여 방식을 알려드린다. 저녁 때 연락을 할 수 있으면 좋겠지만, 6시부터 나도 빵집에서 아르바이트를 해야 한다.

단체 페이스북 페이지에 새 메시지가 있다고 알림이 뜬다. 아, 어제 밤 11시에 왔는데 미처 답을 못 한 메시지다. 학교에서 교사가 방과후학교 참여를 강요하는데 인권침해가 아닌지, 어떻게 해야 하는지 묻는 메시지다. 문의해온 학생분이 사는 지역은 마땅히 활동하는 청소년 단체가 없어서 어떻게 대처할 수 있을지 고민하다보니 아직 답변도 못 하고 있다. 아르바이트에 가려면 5시엔 나가야 하고, 이제 1시간밖에 안 남았다. 해야 할 일들이 머릿속에 떠오른다. 후원 회원 배가를 위한 연락을 돌리기 위해 계획은 짜뒀는데 진행을 못 하고 있고, 현장실습 중 사망한 청소년 노동자분 사건에 대한 단체 성명서도 작성해야 하는데... 메시지가 온 것을 그냥 못 본 체하고, '읽음' 표시 안 뜨게 한 채 지나치고 싶은 마음마저 든다. 그래도 기다리고 있을 학생분을 먼저 생각해야지 싶어서, '그건 인권침해가 맞지만 학교에 항의해도 묵살할 가능성이 높고 우리 단체에서는 어떤 걸 도와드릴 수 있고 학교 안에서 학생들이 목소리를 모아 문제제기하는 게 가장 좋고...' 그런 장문의 메시지를 답변으로 보낸다. 답장은 아마 이 학생분이 학교 일과가 끝나고 밤에야 올 것이다. 이런 일들은 보통 사건을 공개하지 않고 학교 안에서 싸우고, 단체에서도 비공개로 공문을 보내 압박하거나 교육청 민원을 내는 등의 형태로 진행될 가능성이 높다.

아르바이트를 끝내고 집에 돌아가는 밤 10시, 세상은 벌써 캄캄하다. 집에 도착하면 방 청소도 해야 하고 성명서도 써야 한다. 버스 안에서 휴대폰으로 단체 게시판을 확인해보니, SNS에 무슨 학교에 성추행과 혐오/차별발언으로 대자보를 붙였던 사건이 올라왔다고 연락해봐야하지 않겠냐는 글이 올라와있다. 가능하다면 그 학교 앞에 가거나 학생분들을 온라인으로 연락해보고 만나서 대처를 해야 할 것이다. 그나마 내일 오전에는 일정이 없어서 다행이다. 30분이라도 머리를 좀 쉬게 하기 위해, 버스 창가에 기대어서 눈을 감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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