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어가는꿈

"미성년자 석방하라"의 함정

공현 2008. 6. 2. 14:32
"미성년자 석방하라"의 함정


  "고시철회, 협상무효", "이명박은 물러가라" 등 구호를 외치며 촛불집회의 사람들은 거리행진을 계속하고있다. 경찰은 이것이 신고하지 않은 불법집회라고 주장하면서 행진에 참가하는 사람들을 강제로 연행해가고 있다. 연행된사람들 중에는 청소년들도 포함되어 있는데, 얼마 전에 또 연행된 청소년들에 대한 기사가 뜨면서 인터넷이시끌시끌하다.
  기사의 내용은 주로 '울부짖으며 끌려가는 학생들', '"집에 가고 싶어요" 여중생의 눈물', '"미성년자는석방하라!"… 끝내 모두 연행' 등의 내용이다.
  나는 최근 촛불집회와 가두시위에 몇 차례 참가했던 청소년으로서, 그리고 자랑은 아니지만 시위 때 경찰에연행도 한 번 당했었던 청소년으로서 이런 것들에 대해 좀 다른 얘기를 해보려고 한다.
 
  지금 '미성년자 연행'에 대한 언론의 시선은, 무고한 사람들을 폭력적으로 강제연행해가는 상황에 대한 것보다는'연약하고 어린 여중생', '눈물 짓는 어린 학생'에 초점을 두고 있다. 사실부터 말하자면, 대부분의 기사를 보면,'여중생'으로 보이는 10대가 연행버스 창문을 통해 "집에 가고 싶다"라고 외쳤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경찰은 이들을연행해갔다, 는 내용인데 현장에 있던 당사자로서 말하자면 사실 그 때 그 청소년은 "집에 가고 싶다"가 아닌 "평화시위보장하라" 등 촛불집회의 정당함을 알리는 얘기를 외쳤다. 그런데 언론에서는 '여중생, 중학생'이라는 이미지(?)로"지켜주지 못해 미안해, 지못미"라는 목소리를 담고서 '중학생', 어린 학생' 등 '약한 자의 이미지'로 비치게끔 내용을보도하고 있다.
  이는 청소년을 그저 '우리가 지켜주고 보호해야 할 대상'으로 바라보는 것이다. 청소년을 청소년 그 자체로보는 것이 아니라 어떤 하나의 '대상'으로 바라본다는 것에서 나는 문제를 느끼고 있다. 청소년들이 직접 행동하고 직접자기 요구를 말하는 것에 "미성숙하니까", "위험하니까" 등등의 이유로 한계를 두고 비청소년들이 그걸 대신 해주려고한다거나 하는 것은 청소년을 주체로 인식하지 않는다는 것이고, 이는 어떤 면에서는 청소년들을 차별하게 되는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경찰의 부당한 연행 자체보다는 '저 어린 애들'까지 연행해가는 것에 더 분노하고 있다.마찬가지로, 많은 사람들이 청소년들이 집회에 참가하는 것에 대해 '저 어린 애들'까지도 거리로 나오게 내모는 정부를욕하며, 청소년들이 정치적인 목소리를 내는 것을 예외적인 상황으로 한정지으려 한다. 여성과 남성 등 성별의 차별이 부당한것처럼, 청소년과 비청소년도 차별당하지 않는 평등한 존재가 되어야 한다.
  또 집회에서 시간이 늦어지거나 전경과 대치하는 상황이 되었을 때 "청소년들은 그만 집에 가지 그러냐"고말하는 사람들도 있다. 이도 마찬가지로 '위험하니까' 못하게 하는 '보호주의'의 인식이 깔려있는 것이고, "아이들이 무슨죄냐, 우리들이 지켜주자"라는 자주 눈에 띄는 문구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그래서 내 친구는 "어른들이 무슨 죄냐우리들이 지켜주자"라는 피켓을 만들어서 집회에 참가하기도 했다.) 위험한 건 다 같이 위험하지 않은가? "미성년자는석방하라!"는 얘기도, 결국 '미성년자'에 대한 평소의 좀 차별적인 상식에 근거한 것일 뿐, '미성년자'만이 특별히석방되어야 할 논리적인 근거는 별로 없다.
 
  우리 이제 "왜 우리만 풀어주냐. 모두 다 석방하라."라고 청소년들이 피켓을 들고 참여하거나 "아이들이 무슨죄냐, 우리들이 지켜주자"가 아닌 "모두 함께 우리의 삶을 지키자", "서로를 지켜주자"는 구호를 함께 외칠 수 있었으면좋겠다.
 

난다
(성남 청소년인권모임 인지인, 5.17 청소년행동 공동준비모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