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어가는꿈

징병제와 나

공현 2008. 1. 8. 12:21
징병제와 나


  “건장(?)한 남성은 모두 군대를 가야 한다.”라는 대한민국의 법칙을 알게 된 게 언제인지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다. 외계인이 납치했었는지 초등학교 2학년 이전의 기억이라곤 거의 없는데도, 이미 나는 군대를 생각하고 있었고 가기 싫다는 생각을 품고 있었다. 어쩌면 아빠한테 들은 걸지도 모르겠다. 아빠는 누차 나한테 군대는 되도록이면 가지 말라는 이야기를 했으니까 말이다. 집단과는 잘 맞지 않는 아빠한테는 그게 상당히 끔찍한 기억이었던 것 같다. 자기가 실연당하고 도피하듯이 군대를 갔었는데 정말 괜히 갔다나 뭐라나. 아빠는 항상 나를 자신과 많이 닮았다고 평가했는데, 그런 맥락에서 나도 군대를 가면 끔찍해 할 것이라고 판단한 것이었던 듯하다. 그리고 나도 그런 판단을 어릴 때부터 받아들였고….
  가족 중에 군대에 갔다온 사람 이야기를 더 해보자면, 군대에 ‘군목’으로 갔다 온 이모부가 있다. 내가 현실의 ‘군인’으로서 가장 긴 시간 접해봤던 것은 사실 이모부인데, 나는 아직도 이모부의 권위적인 태도가 목사이기 때문인지 군인이기 때문인지 모르겠다. 다만 한 가지 기억나는 건, 군목이기 때문에 가족들이 모두 군인 아파트에서 살았는데, 집에 군인들이 많이 드나들면서 5살인 내 사촌동생이 욕들을 참 많이 배웠던 것이다. 물론 그런 욕을 한 마디라도 했다가는 권위적인 이모부의 강력한 체벌이 반복되었다고는 하지만.
  외할아버지는 여순반란 때부터 17세인가 18세 나이로 징집되어서 군대에 있다가 한국전쟁 때 다리에 총을 맞았다고 한다. 20명인가 30명을 죽여야 받는 어떤 훈장을 받았다고 하는데, 그 훈장을 자랑스러워하지 않고 오히려 굉장히 상처로 여기시는 것 같다. 한 번도 본 적이 없을 뿐더러, 그것에 대한 언급을 하면 굉장히 화를 내신다고 하니까. 여하간 국가유공자라서 공무원도 하고 연금도 꽤 받으시는데, 전쟁 때 상처 때문에 다리 길이가 각각 다르셔서 다리를 저신다. 엄마를 통해 전해들은 이야기들인데, 나한테는 뭔가 먼 이야기 같다.
  같이 인권운동하던 사람 중에 하나가 작년 9월에 군대를 갔는데, 편지에다가 “청소년인권운동은 11월 3일 학생의 날에 이러이러한 걸 준비하고 있다.”라고 썼다가 옆에 있던 애가 군대에서 편지 검열해서 그 사람이 기무사인가 끌려가면 어쩔 거냐고 해서 다 버리고 새로 애매모호한 말들로만 썼던 기억도 난다. 그러고 보면 그 사람은 군대 가기 한 6개월 전부터, 자기 사촌 형이 직업 군인으로 기무사에 있어서 만약 자기가 운동한 사실이 들키면 사촌 형한테 불이익이 있을 수도 있으니 자기는 언론에는 안 나가겠다고 했었다. 기무사가 무서운 건가.
  간혹 휴가 나오거나 해서 만나거나 전화통화를 해보면 공군 취사병이 되었는데 군대가 애들 세뇌교육 시킨다는 이야기랑 절대 오지 말라는 이야기 외에는 맛스타 병 주변에 바퀴벌레들이 드글거린다는 이야기나 밥솥 들다가 허리 다쳤다는 이야기만 한다. 군대 안에서의 다른 구체적인 경험들에 대한 이야기는 해주지 않고 그냥 끔찍하고 힘드니까 절대 오지 말라는 말만 하는데, 아빠가 나한테 군대에 대해 말하는 방식이랑 비슷하다는 생각도 든다.

  초등학교 6학년 때인가 중학교 무렵부터 이전의 순진한 애국심과 준법정신을 떠나 사상적 전향(?)을 하면서 군대는 ‘가기 싫은 것’ 이상으로 적극 가지 않아야 할 것이 되어버렸다. 초등학교 때부터 “과학자”가 장래희망이었는데, 중3 정도 되니까 그 장래희망이 군대랑 결부되어서 이공계의 대체복무에 대한 정보를 알아보고 다니게 만들었고 내 진로를 결정하는 데 상당한 영향을 미쳤다. 방위산업체가 뭔지도 모르고 방위산업체에 가면 군대를 안 갈 수 있다는, 그리고 이공계에서는 좀만 열심히 하면 방위산업체를 갈 수 있다는 부모의 말을 믿고 물리, 화학을 참 열심히 했다. 그래도 화학은 나름 일반화학까지 팠다 -0-
  군대가 진로에서 내 발목을 잡은(?) 가장 직접적인 일은, 고등학교 2학년 12월 무렵에 있었다. 화학이나 수학을 공부하는 한편으로, 당시 나름 베스트셀러(-_-)였던 『소피의 세계』를 읽으면서 철학에 입문하고 에리히 프롬을 읽고 박노자를 읽고 시민불복종을 읽으며 사회과학으로 관심을 키워가던 나는, 결국 고2 12월이라는 수험생이라는 입장에서 보면 참 늦은 시기에 ‘전과’를 결심하게 되고 이과가 아니라 문과로 가겠다는 말을 부모에게 꺼냈다. 그리고, 평소에 내가 바라고 행복할 수 있는 진로라면 어디를 가건 간섭하지 않겠다고 말했던 부모에게 완전히 배신당했다.
  진로를 놓고 부모랑 며칠을 싸워댔었는데, 그때 가장 화제가 되었던 게 바로 군대 문제였다. “군대는 어떻게 할 거냐.”라고 해서 “그냥 감옥이라도 가면 되는 문제 아니냐. 진로에 그게 중요하냐.”라고 했다가 엄마가 “어떻게 부모한테 감옥 간다는 소리를 하느냐.”라며 누워버려서 어찌나 골치가 아팠는지. 방위산업체 이야기할 때도 “방위산업체가 예전엔 뭔지 몰랐는데 결국 무기 만드는 곳 아니냐. 난 무기 만드는 것도 싫으니까 나는 이공계로 가도 군대 문제 소용없다.”라고 해서 부모랑 또 한바탕 언쟁을 치러야 했다. 군대라고 하면 내가 “진로”와 “부모”가 먼저 떠오르는 건 그 때문이다. 사실은 그 무렵에 열심히 인터넷질을 하다가 오정록 씨의 병역거부 이유 글을 읽고서 감동 받아서, 참 아무렇지 않게 그런 말을 했었을지도.
  군대에 대한 이야기는 매듭을 짓지 못한 채로 결국 문과로 옮기긴 했지만, 요새도 집에 가면 군대 이야기가 잠깐씩 언급되곤 한다. 부모가 다 군대를 안 가는 방향으로 고민하고 있긴 하지만, 아빠는 “그래도 합법적인 방법으로 할 거지?”라고 나를 압박하기도 하고 엄마는 내가 감옥 가면 감옥 앞에서 목매달아 죽을 거라고 한다. 근데 군대 가면 내가 목매달아 죽을 거 같다 뷁. 부모들은 나한테 차라리 KOICA인가 하는 것 해외봉사를 나가라고 하는데, 그렇게 해서 생길 내 공백도 걱정스러울뿐더러 그 해외봉사에 뽑히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라서, 거기 뽑히기 위해서 외국어 공부하고 시험 준비하느니 차라리 병역거부하고 싶다는 생각도 든다.

  병역거부 자체에 대해서도 일종의 압박감이 있다. 뭔가 내 신념을 표현하기 위해서는 병역거부를 할 수밖에 없고 해야만 한다는 생각? 병역거부자들의 글, 이야기를 접할 때마다 나도 그래야만 한다는 느낌이 왠지 팍팍 드는데, 별로 바람직한 압박감은 아닌 것 같다.
  지금 막연한 생각은 버틸 때까지 버텨보고 그때까지 대체복무제나 징병제/군대 폐지가 안 되면 감옥을 가건 도발이(-_-)를 치건 하자는 건데, 뭐 혹시 아나 9년 안에 혁명이 일어날지 어떨지. 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