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그런 거 있잖아요. 머릿말, 작가의 말 뭐 그런 식으로 책에 보면 흔히 들어가 있는 것.
그런데 이 책에는 그런 게 없어요.
왜냐면 시간도 없었고, 모든 저자들에게 검토를 받은 머릿말을 만들기도 어려웠고, 안 그래도 두꺼운 책에 페이지수를 더 늘리고 싶진 않았거든요.
그래서 이 글은 제작에 중요하게 참여한 한 사람으로서 못다한 이야기들, 책을 읽는 분들에게 드리고 싶은 말들... 그런 것들을 많이 쓰려고 합니다.
자랑질 + 많이 읽어주시면 좋겠다는 추천... 뭐 그런 것도 섞여 있구요.
책을 기획했던 배경
청소년인권운동은 이미 그 역사가 10년을 넘었고, 그 와중에 많은 고민들이 발전해왔습니다.
하
지만 대외적으로, 그리고 그 주장이 공표되고 정리되어온 걸로 볼 때, 청소년인권운동은 두발자유, 체벌, 학생회, 입시경쟁,
강제야자 (그리고 청소년노동과 청소년성소수자 - 이건 청소년인권운동을 한다고 표방하는 단체/사람들이라기보다는, 노동관련 활동을
하는 단체들과 성소수자운동을 하는 단체들이 주로 제기해온..) 등 몇 가지 의제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출판된 책으로 이야기하면...
대학교재나 정부에서 발간한 자료집 같은 책을 제외하면 청소년인권 문제에 집중해서 다룬 책은 거의 없었습니다.
개굴(배경내;)의 『인권은 교문 앞에서 멈춘다』 정도가 전부일까요?
물론, 청소년들의 생활이나 생각, 현실 등을 다룬 책은 꽤 있습니다.(예를 들어 『저요, 할 말 있습니다』 같은) 그 속에 청소년인권에 대한 챕터도 분명히 있죠.
그러나 청소년인권 그 자체를 내세우고, 다양한 청소년인권 사안에 대해 인권의 언어로 분석하고 비판하고 주장한 책은 없었습니다.(『인권은 교문 앞에서 멈춘다』도 학교 안에서의 학생인권침해 사안에 한정되어 있었지요)
그런 현실에 대한 문제의식에서 '청소년인권행동 아수나로'가 〈아수나로BOOK〉프로젝트라는 걸 구상하게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우리가 당장 생각나는 청소년인권의 주제들에 대해서는 글을 하나씩 다 써보자! 얘기가 있었던 건 정리하고, 얘기가 충분히 없었던 건 글을 쓰면서 토론하자!" 뭐 이런 생각이었죠.
"청소년인권"에 대해 알고 싶다면 꼭 읽을 만한 책을 만들자! 그 책을 읽어서 청소년인권에 대한 모든 걸 알 수는 없더라도 최소한 청소년인권이 이러이런 거구나... 하는 감은 잡을 수 있게 하자!
이런 욕심이었습니다.
(뭐, 좀 더 큰 욕심을 말하자면, 2000년에 나왔던 『인권은 교문 앞에서 멈춘다』를 계승하면서 넘어서는 책을 하나 만들어야 하지 않냐 뭐 이런 게 있었죠 ㅋㅋ)
그렇게 책 기획을 시작해서...
아수나로에서 청소년인권운동을 하는 청소년/비청소년 활동회원들이 글을 나눠서 쓰고, 그 글들을 모으고, 펑크난 부분 땜빵하고, 아수나로 활동회원 중에서 쓸 사람 없는 글은 청소년인권활동가네트워크 활동가한테 부탁도 하고 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청소년인권운동의 역사가 정리된 성과가 좀 있어서 그걸 정리해서 포함시켰습니다.
그렇게 완성된 원고로- 2008년 7월쯤에 아수나로 자비로 샘플 100부 정도를 찍었었습니다.
그런데 그 샘플이 메이데이 출판사 눈에 띄어서, 메이데이 출판사와 같이 기획해서 책을 만들기로 하게 된 거였죠 ^^
아쉬운 점
뭐 책 안에 오자라거나 사진 캡션 잘못 단 거나 이런 건 아쉽긴 하지만 그냥 넘기구요;;;
그밖에 주로 아쉬웠던 점은...
우선 청소년인권운동 역사 정리가 페이지 사정상 빠졌습니다. 그걸 넣으면 페이지 380페이지, 책 가격 18000원 ㅎㄷㄷ ㅠㅠ
저 개인적으로 많은 공을 들인 부분이라 좀 아쉬웠습니다. 그래서 이부분만 따로 자료집이나 책으로 기획해볼까 하는 생각도 있습니다.
두번째로, 처음에는 쓰려고 생각했지만 누락된 이슈들입니다.
예컨대 '장애청소년의 인권' 같은... 이건 원래 아수나로에서 활동하던 장애청소년 당사자 분이 써주시기로 했는데, 그 분이 건강이 악화되어서 입원하는 등 악재가 겹쳐서 펑크가 났습니다.
역사 교과서 수정이 한창 이슈가 되면서 '교과서' 문제도 넣을까 하다가 다른 부분과 겹치는 부분도 있고 하여 빠졌고...
'이주청소년의 인권' 같은 문제도 다루고 싶었지만 별로 운동의 성과나 고민된 내용이 없어서 빠졌습니다.
그밖에도 우리가 미처 생각하지 못해서 빠진 이슈들도 있을 겁니다.
마지막으로, 글들의 수준이 불균등한 문제입니다.
원래 이 책이 처음 기획된 게 청소년인권운동을 하려는, 혹은 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읽히려는 게 목적이었기 때문에
'대중서'로서 충분하ㄴ 고려를 못한 부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최종 원고 수정 작업을 할 때 손댔어야 할 부분인데, 일제고사 투쟁의 바쁜 와중에 수정을 하다보니까 제대로 고치진 못했습니다.
요컨대 이 책은 앞부분은 쉽다가 뒤로 가면 어려운 글들이 군데군데 섞여 있습니다 -_-;;;;
이런 문장들인데요
"이렇게 볼 때, 청소년들은 모두 (굳이 빈곤 계층의
가정에 속해 있지 않더라도) '잠재적인 무산 계급'(재산이나 생산수단 등이 없는 계급)이라고 간주할 수 있을 것이다.
가정·가족이 제공하는 보호·통제·지배·지원의 테두리를 벗어나는 순간, 헐벗은 몸뚱아리만 가지고 아무런 경제적 권리도 없이
살아남기 힘든 존재가 될 테니까 말이다."
"연장자 남성은 연장자 여성의 가사노동을 착취한다. 그리고 자식인 아동에게는 자신의 노후 보장을 위한 지식노동을 강요한다.
따라서 그는 가사노동의 이득과 지식노동의 이득을 누리는 셈이며, 연장자 여성은 남성에게 착취당하지만 노후를 위해 자식에게 특정한
지식노동을 강요한다는 점에서 이중적 입장에 처해있다."
특히 <페미니즘과 청소년인권운동의 다면적 만남> 챕터는, 애초에 구상부터 청소년인권운동을 어느 정도 한 사람들에게 페미니즘의 고민들을 풍부하게 결합시킬 수 있도록 제시하는 걸로 생각한 거라서요.
청소년인권운동을 하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조금 읽기에 까다로울 수도 있습니다;; 이런 걸 생각했어야 했는데 미처 생각 못하다가 출판되고나서야... ㅠ
이 책에 관심 있는 분들, 또는 이 책을 읽으시려는 분들에게
많이 부족한 책입니다. 그냥 겸손의 의미가 아니라 진짜루요. 하지만 그래도 의미있는 책이라고 자부합니다. 읽을 가치가 있는 책이라고 생각합니다. 청소년인권에 대해 알고 싶은 분들이라면 꼭 읽어야 할 책이라고 생각합니다.
청소년인권의 모든 것을 담지는 못했지만 저희가 아는 청소년인권의 75% 정도는 담은 것 같습니다.
이 책에 담긴 내용은 '일반적인' 청소년들(이런 게 있기나 한 건지는 차치하고라도...)의 생각은 아닐 수도 있습니다.
청소년인권운동을 하는 청소년들의 생각이니까요. 감히 이 책을 쓰는 데 참가한 청소년/비청소년들이 모든 청소년들의 생각을 대변하거나 대표한다고 말할 생각은 없습니다. 다만 '청소년인권'의 목소리라고 하고 싶을 뿐입니다.
그러나 이 책 중 많은 부분은 꽤 많은 수의 청소년들이 바라는 것이기도 할 겁니다.
어떤 부분들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생각도 안 해본 '껀수'일 수도 있지만요.
책의 앞부분에는 주로 비교적 익숙한 이야기들을 많이 넣었습니다. '교육'과 '학교'에 관한 이야기들이죠.
아, 그렇다고 해도 개중엔 낯선 이야기들도 많습니다. "수업시간에 꼭 수업에만 집중해야 해?"라거나, "학교를 없애자!"라거나, 소지품검사와 감시카메라(CCTV)에 대한 이야기들도 낯설게 받아들여질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래도 비교적 1부 2부에는 익숙한 이야기들이 많습니다. 입시경쟁, 학원, 두발자유, 체벌 같은 이야기들 말이죠.
3부 4부는 아주 조금 덜 익숙한 이야기들이 있습니다. '학생회'에 대한 이야기는 익숙할지도 모르지만, 정치적 권리, 경제적 권리, 그리고 청소년보호주의와 청소년보호법에 대한 비판은 좀 낯설게 들릴 것 같습니다. 그리고 성(性)적인 권리를 보장하라고 하는 목소리와 가정에서 '부모'의 '친권'을 약화시키자고 말하는 목소리는 거부감이 들기도 할 것 같습니다.
하지만 전반적으로 이 책은 상당히 '불온'하고 '급진'적(radical : 근본적)입니다.
감히 '미성년자'이고 '머리에 피도 안 마른' 주제에 인권을 넘보니까요.
인권을 말하다도, 인권을 바라다도 아닙니다. 인권을 허락해주기도 전에, 우리가 먼저 인권을 '넘보는' 겁니다.
이 책을 읽고 불쾌함-불편함을 느끼시는 분도 있을 것이고, 통쾌함을 느끼는 분도 계실 겁니다.
그 어느쪽이건 의미있는 감정이라고 생각합니다.
다만 불편한 마음이 들 때는 약간만 더 열린 마음으로 읽어주시면 좋겠습니다. 상상력을 양념으로 해서요.
지금 사회와 다른 사회는 가능하다... 그런 다른 세상에서는 청소년들도 전혀 다르게 살 수 있지 않을까...
그런 상상과 함께 읽어주시면 의외로 거부감 없이 읽을 수 있을 겁니다.
아 그리고 또 하나 팁을 드리자면... 이 책을 앞에서부터 순서대로 주르륵 읽어나가는 것보다는, 목차를 보시고 관심 가는 주제부터 하나하나 읽어나가시는 게 더 나을 수도 있습니다.
그치만 이 책을 모두 다 읽으시고 나면, 청소년인권이 보장된 세상이란 게 어떤 모습일지 대~충은 감이 잡힐 수 있도록 꾸미려고 노력했으니까 다 읽어주시면 좋을 듯합니다. ^^
이 책이 되도록 많은 분들의 청소년인권에 대한 생각을 바꾸는 계기가 되길 바랍니다.
그리고 되도록 많은 청소년들이 청소년인권운동에 관심을 가지는 계기가 되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