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설픈꿈

시 - 비의 이유

공현 2009. 4. 15. 14:53



비의 이유

내 한때 묵묵히 무거운 몸 이끌고
이곳저곳 떠돌면서 햇살과 바람과
발작소리 말소리 웃음소리 울음소리
모두를 내속에 담아두려만 했다

그러나 끝내 끝끝내
후두둑 무너지고 만 것은

무너져내리고 만 것은
어제밤 달무리가 유독 아름답게 번졌기 때문도 아니요
개구리들 그토록 서럽게 서럽게 울었기 때문도 아니요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괴롭게 흔들렸기 때문도 아니요
새들조차 고개 숙인 채 낮게 날기 때문도 아니었다

그건 단지 내 혈관 하나
하나에 번져있는
누군가의 눈물들 증발한 눈물들
알콜섞인 오줌발로 튀어오르고
거리에서 물대포로 뿜어지고

땅 밑을 흐르며 들어야 했던
소리들 비명소리들 울음소리들
그런 것들이 너무나 무거웠기 때문일 뿐이었으니

후두둑 무너지는 것
그건 단지 다시 무너지기 위해서일 것이다
떠돌고 떨어져내리고 만나고 다시 떠도는
슬픈 과정을 위해서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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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에 착안해서 이러쿵저러쿵 살을 붙여본 것인데
사실은 바람과 구름에 대한 인상이 먼저였고... 그 다음에 자연스레 비가 연결된 건데
어느새 비가 주인공이 되어버렸다.

처음 쓰기 시작할 때는
구름이 비가 내리면서 점점 줄어드는 모습을 형상화해보려고
아래로 올수록 행의 길이가 짧아지고 음보가 줄어드는 걸 구상했는데
쓰다보니까 너무 귀찮아서 포기 -_-;;;

물에 대해 좀 더 풍부한 이야기를 풀어낼 수도 있겠지만
그러면 초점이 흐려질 것 같기도 하고 그렇게까지 길게 끌고 가기엔 내 내공도 딸려서... '물' 자체에 대한 이야기는 길게 넣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