딱딱한꿈

'오타쿠위원회'(덕후위원회,오덕위원회)에 대한 소고

공현 2009. 5. 18. 14:37




- 글을 쓰는 위치

글을 시작하기에 앞서, 이 문제에 관해서 내가 이 글을 쓰는 위치를 밝히자. 별 관심 없는 분은 읽지 않아도 된다.

나는 초등학교 때는 통상의 또래들이 즐기는 매니악하지 않은 만화와 공중파 애니메이션을 즐기다가,
초등학교 6학년 때 포켓몬스터 팬클럽의 길로 접어들면서 오타쿠에 들어서는 길로 접어들었고,
중학교 때는 투니버스에서 해주는 만화들을 봤고, 어느 여름방학 때 카논, 에어 등 비쥬얼노벨(스토리가 좋았다, 라고 아무리 말해봤자 남성향 게임*임을 부정할 순 없다.)을 접하였고
고등학교 때는 만화동아리에서 그림을 가장 못 그린다는 이유로(-_-) 기장을 맡아서 이런저런 잡무를 처리했고,
마침 발간을 시작한 'NT novel' 덕분에 라노베(라이트노벨)에 빠져들어 부기팝 시리즈와 키노의여행을 특히 사랑했던...
또한 초등학교 때부터 이영도의 소설이라면 가능한 한 다 섭렵했고, 특히 눈마새는 10번이 넘게 완독한-
명실상부히 오타쿠였다. - 부정할 수도 없고, 부정할 생각도 없다.

지금 오타쿠가 아니란 건 아니다. -_-
지금도 나는 피로가 쌓이고 시간과 돈에 여유가 있을 땐 만화방에 틀어박혀서,
(비록 최신 조류에서는 다소 떨어져 있지만) 써전아이드(3X3Eyes)나 아다치미츠루나, 삘릴리불어봐재규어, 충사나 뭐 그런 걸 탐독한다. 집에 모셔놓은 총몽 9권과 눈마새와 라노베들은 삶의 활력소이고, 최근엔 대항해시대2를 비롯하여 고전게임으로 눈을 돌려보고 있다.
지금도 돈에 여유가 생길 때는 카도노 코우헤이(부기팝 작가)의 소설을 지른다. (이영도 소설도 지르고 싶지만 안타깝게도 좀 비싸서 눈마새와 폴랩만 좀 끼작거린...)
그러나 내가 고2-고3 즈음에 청소년인권운동을 시작하고 의식적으로 '정치'를 시작하면서 나의 오덕질은 매우 그 범위를 한정시켜야 했다.
옛날처럼 거기에 투자할 돈과 시간이 없으니까 그런 것도 있고,(돈 생기면 영세한 청소년인권단체들에 갖다 바쳐야 한다. 특히 내가 책임의식을 가지고 관리해야 할 재정은 세 개나 된다.-_-) 정치적 올바름과 불편함의 문제도 있다.

사상적 위치를 이야기하면 나는 '청소년인권주의자'(?)이고, 인본주의자이며, 여성주의자이고 싶고, 사회주의/아나키즘을 지지하는 편이다.

정당운동으로 이야기하면 청소년인권운동을 하는 차원에서 민주노동당 청소년위원회에서 활동한 적이 있지만 현재는 당적이 없고,
투표 때는 민주노동당이나 진보신당이나 사회당(셋 중에 그때그때 후보-정책이 맘에 들거나, 다 비슷비슷하다면 당선 가능성이 높은 쪽)을 찍을 용의가 있고,
민주노동당/진보신당/사회당의 교육-청소년 영역과 언제든 필요하다면 협력할 의사가 있으며, 교육-청소년 영역이 아니더라도 차별금지법 사안 등에서는 같이 한 적이 있다.

이 글을 쓰는 이유는 뭐, 사회당 덕후위원회(그리고 진보신당 오덕위원회) 자체에 대해 말을 하려는 의도는 아니고,
활동을 하면서 계속 부딪쳐 왔던 활동가-정치가로서의 공현과 오타쿠로서의 윤종의 갈등과 화해에 대한 고민들을 정리하기 위해서이다.

뭐 "오타쿠의 성지"라고 하는 관악구 주민으로서도


본문은 짧게 쓸 생각이라서, 왠지 이 서론이 더 길 것 같다 -_-




- 오타쿠의 정치는 가능한가?

이른바 '진보정당'에서의 부문위원회는 크게 세 종류가 있다.  (내 기준임.)

1. 여성위원회, 장애위원회처럼 특정 '정체성'을 가진 사람들이 있으며, 그 사람들을 위한 정치를 하고, 그런 활동과 당 전체의 활동을 결합시켜나가는 위원회.
2. 평화통일위원회처럼 특정 정책-이슈 분야에 대해 활동을 하는 위원회.
3. 학생위원회처럼 특정한 사람들을 조직화해서 당 활동에 참여시키기 위한 위원회.

(3번은 논란의 여지가 있다.
학생위원회는 그냥 여성위원회, 장애위원회랑 같은 분류여야 하는 것 아닌가?
그러나 현실에서 '진보정당'들의 (대)학생위원회는 학생들의 정치, 학생들에 의한 정치는 하더라도 학생들을 위한 정치의 기능은 그리 강하지 않았다. 최근 들어서야 '88만원세대'를 비롯하여 20대와 대학생들의 이해관계와 상황에 대한 담론들이 발달하면서 이런 기능들이 강해지고 있다. 3번과 1번의 차이는 '~를 위한' 정치가 있느냐 없느냐이다.)

그럼 오덕위원회는 저 세 개 중 뭘까?
1번이면 좋겠지만, 3번일 가능성이 높아보인다.


사회당 덕후위원회 건설과정(1)
사회당 덕후위원회 건설과정(2)
(슷캇님의 관련글)

슷캇님은 이에 대해 "오타쿠에 의한 정치"를 통해서 오타쿠에 대한 배제를 극복한다고 말하면서,
"오타쿠에 의한 정치"가 곧 "오타쿠를 위한 정치"의 수단 or 전제라는 식으로 이야기를 하고 있다.

특정한 사람들의 정치 주체화는 물론 그 사람들의 사회적 지위를 상승시킨다.
그러나 그런 정치 주체화는, 그 사람들이 직접 정치에 나서는 것만으로 성공하긴 어렵다.
무슨 말인고 하면, '오타쿠의 정치 주체화'는 '오타쿠인 시민/인민/당원의 정치 활동'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오타쿠' 정체성을 가지고 정치 세력화가 될 때 성공 가능성이 있다는 이야기다.
사회당 덕후위원회 또한 이런 인식 속에서 오타쿠 계층(뭐 집단이라 해도 되고)으로서의 정치 주체화라는 말을 쓰고 있는데,
그 오타쿠 계층으로서의 정치 주체화는 결국 '오타쿠를 위한 정치'가 결합되어야만 가능하다.
즉, '오타쿠의 정치'는 '오타쿠를 위한 정치'와 '오타쿠에 의한 정치'가 모두 갖추어져야 한다.


그럼, 과연 "오타쿠를 위한 정치"는 대체 무엇인가?  어떤 내용을 가질 수 있는가?
  ---> 이게 내 고민거리와 연결되는 부분이다.
내 생활 중에서 상당히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요소인 '오타쿠로서의 나'(즉 매니악한 문화 소비-향유자로서의 나)는 어떤 정치를 할 수 있는가?

오타쿠는 과연 문화적 소수자인가? 또는 비주류인가?
오타쿠에 대한 사회적 낙인은 과연 얼마나 유효하게 작동하고 있나? "오타쿠"와 "매니아"의 경계선은?

물론, 인디음악/영화 오타쿠라거나, 마이너한 오타쿠라면 자본주의 문화산업의 문제에 대해 할 말이 많을 수도 있다.
그러나 과연 스즈미야 하루히 오타쿠는 문화적 소수자라고 할 수 있는가?
세일러문 오타쿠는 문화적 소수자인가? 건담 오타쿠는?
토라도라 오타쿠와 키노의 여행 오타쿠는 같은 선상에서 이야기될 수 있는가?

사회당 당게를 살펴보면, 슷캇님은 "유인촌 퇴진하라"를 몇번 예시로 사용하고 있는데, 오타쿠들이 왜 유인촌을 퇴진시키라고 주장하는가? 그건 사실 오타쿠로서가 아니라 단지 '문화예술인'으로서 할 수 있는 말이 아닐까?

문화적 다양성을 근거로 오타쿠 정치의 정당성을 말할 수 있는 걸까?(즉, 문화적 다양성은 오타쿠 중에서도 극히 일부 오타쿠에게만 해당하는 말은 아닐까. 그리고 소비자인 오타쿠보다는 생산-유통 구조 부분에 더 초점이 맞추어지는 게 맞지 않을까.)

오타쿠에 대한 사회적 낙인은, 임금노동하지 않고 생산에 기여하지 않으며 소비만 하는 인간들을 '무능'하고 '찌질'하고 '음침'하며 어딘가 '비정상'이며 '병적인' 존재로 묘사하는 점에서 자본주의적 사회 구조에 기인하는 측면이 큰 것 같긴 하다.
그러나 이는 '건강하지 못한 오타쿠', 즉 히키코모리적인 인상과 결부된 오타쿠의 인상에 가깝다.
오히려 현실에서 오타쿠로 불리는 사람들은 그런 사람들이 적다.
그럼 이건 '히키코모리'에 대한 사회적 낙인이거나 '니트족'에 대한 낙인으로 생각하는 게 더 옳지 않을까? 고민고민.




나는 덕후위원회나 오덕위원회 등의 '오타쿠위원회'가 단지 정당 활동에 오타쿠들을 조직화해내고 참여시키는 3번 유형의 위원회가 되기를 바라지 않는다. 또한 오타쿠적 소양을 가진 당원들이 정당 활동에 자신의 소양을 적극 활용하기 위한 기구가 되기를 바라지도 않는다.
근데 그럼 어떻게 갈 수 있을까?



- 오타쿠 문화의 정치적 문제점들을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사실 그리 길진 않았지만) 꽤 긴 번민의 밤을 보내고 난 후에야 나는 카깃코/츠킷코** 의 길을 버리고 라노베 지름신을 끊을 수 있었다.(그전까지는 대디페이스 같은 문제적 작품도 꽤 질렀으니;)
그 과정은 수많은 여성주의적 성찰들과 정치적 문제의식에 의한 자기검열 속에서 가능했다.
오타쿠가 소비하는 문화는 기실 많은 부분 '주류문화'라고 생각한다.

설령 그게 숫적으로 '소수의 문화'일지라도 그 문화의 성격은 대안적이라기보다는 지배적인 경향이 강하고, 기존의 사회적 권력관계를 그대로 반영하거나 더 강화시키는 경우도 있다. --- 특히 여성주의와 평화주의적 맥락에서의 문제제기와 도전은 뻔히 예상되는, 피할 수 없는 지점이다.
(물론 일부 작가는 상당히 작가주의적이고 대안적인 정치 의식을 함의하고 있는 작품을 내놓지만 이는 소수다. 이건 어느 시장이나 대동소이한 듯.)
아무리 한국에서 그 문화를 소비하는 사람이 적다고 하더라도 일본의 문화 시장 속에서는 다수인 경우도 있다. (그럼 그건 다수 문화인가 소수 문화인가 싶은 생각도...)


그렇다면 과연 오타쿠가 '진보정치'(난 '인본주의' 개념을 더 선호하지만 읽는 분들에게 익숙한 표현은 이것일 테지?)를 한다면, 자신이 향유하는 문화 속에 배어 있는 정치적 지점들의 문제를 어찌 극복할 것인가 하는 게 중요한 화두일 수밖에 없다.

간단하게, 진보신당 오덕위원회 게시판을 보면 '밀덕은 전쟁에 반대하면 이상한가요?' '밀덕은 전쟁에 대해 어떻게 판단하는가! 좌빨 밀덕의 답변' 같은 류의 글들이 올라와있는데, 그런 게 대표적인 예가 되시겠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향유하는 여러 작품들 중에 '정치적으로 올바른' 아니면 최소한 '진보적 의미가 있는' 것들만을 소비하거나,  자신이 향유하는 것들 속에서 애써 '진보적' 함의를 발견해내려고 애쓰는 사람이 될 것인가?
하지만 그런 부자연스러운 공존 상태, 또는 정치-윤리가 지배적인 사람을 오타쿠라고 부를 수 있는 걸까?????

(나는 정치-윤리가 문화에 영향을 미쳐선 안 된다고 생각지 않는다. 영향을 미치는 게 당연하고, 이들은 분리될 수 없다. 그러나 한 개인이 자신의 정치-윤리의 기준과 잣대로 자신의 생활을 완전히 지배한다면 그 사람은 정치오타쿠일지언정 다른 오타쿠라고 하긴 어렵지 않을까?)

슷캇님은 이에 대해 이렇게 쓰고 있다.


2-2)사회당 덕후위원회는 사회당 내의 부문위원회입니다. 오타쿠가 자본주의적 소비문화에 의해 나타났다는 주장에 저는 동의하고 있으며, 그에 따라 오타쿠의 이익은 현재 좌파적 담론에서 충돌할 여지를 많이 가지고 있습니다. 가장 눈에 띄는 충돌지점은 여성주의와의 간극이겠지요. 아니메나 게임 오타쿠 문화가 여성의 성적 대상화라는 비료를 먹고 자랐다는 점을 생각해보면 말이지요. 이런 부분들이 정말 극단적으로 나가면 문화 자체를 폐기해야한다고 주장할 것인가, 아니면 사회주의를 버릴 것인가라는 부조리한 선택을 강요당하기도 합니다.
현 상황에서의 이러한 간극은 오타쿠의 태생 자체보다는, 반강제적으로 계층이 형성되었으면서도 오랜 시간 동안 정치적으로 유리되어 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사회당 덕후위원회는 여기에 대한 나름의 대답입니다. :D


나는 결국 활동가는 이런 문제 앞에서 자기가 소비하던 문화를 비판하고 반성하고 나아갈 수밖에 없다는 입장이다. 그 외에는 답이 안 나오거든 -_-;;

근데 그러면 이런 덕후위원회 하고 싶어할 덕후들이 얼마나 될까? ㄷㄷㄷ

오타쿠 내에서의 또 다른 소수 집단이 되진 않을까?



* 카논, 에어, 클라나드 등 Key사의 게임은 약간 초현실적인 요소가 있는 순애물로 유명한데, 장르로는 '비쥬얼노벨'이다. 지금도 이 게임의 기본 스토리 구조와 음악은 훌륭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성캐릭터로 자신을 동일시한 플레이어가 다수의 여성캐릭터(성격 외모별로 다양하게 상품화된)를 소비하는 '남성향' 구조임은 부인할 수 없고, 정치적 불편함은 피할 수 없다.

** 일어로 かぎ는 열쇠를 뜻한다. 카깃코는 Key사에서 나온 카논, 에어, 클라나드 등의 게임을 추종하는 무리를 가리킨다.
   마찬가지로 つき 는 달을 뜻하며, 츠킷코는 Type-Moon에서 나온 츠키히메, Fate/Stay Night 등을 추종하는 무리를 뜻한다.
  "열쇠빠", "달빠" 등의 표현도 있지만, "-빠"라는 말이 가지는 여성(-오빠부대)에 대한 비하적 의미 때문에 나는 좋아하지 않는다.


# 솔직히 말해서 기사 보고서 사회당이나 진보신당 가볼까, 하는 혹하는 마음이 안 들었다면 거짓말.
  그러나 그런 이유로 정당에 휙 가입하기엔, 청소년인권운동가로서 정체성이 훨씬 강하다는...
여하간에, '오타쿠위원회'가 당내 오타쿠 당원 모임, 당내 오타쿠 동아리가 되지 않고 '오타쿠위원회'가 되기 위한 조건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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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록)  -- 옛날에 메모했던 건데 부록으로...


『카노콘』, 여성주의, 성적 자유주의, 오타쿠.

활동하는 단체 안에서 한 회원이 보는 라노베 소설이 문제가 된 적이 있다.
문제의 소설은 『카노콘』.
알 사람은 다 아시겠으나, 상당히 성적 노출의 수위가 높은 라노베이고,
표지와 표지 바로 안에 속지의 일러스트들도 노출도 높은 여캐릭터들 + 야릇한 대사들로 구성된 경우가 많다.

이런 소설을 읽는 것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비판을 제기하자, 책을 읽던 회원은 보수주의적인 생각이라고 반박했었다.

요컨대 이 문제는 여성주의와 문화향유의 문제,
그리고 여성주의가 성적 보수주의와 연결된다는, 성적 자유주의의 입장에서의 비난의 전통 등등과도 연결된 사건이었다.



ㄱ. 일단, 나는 어떤 작품이든 간에 그것을 어느 정도 읽든 파악하든 하고 난 후에 비판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쪽이다. 표지 그림이 아무리 여성주의적 문제가 있더라도, 자본주의-가부장제 시장 속에서 생존 전략일 수도 있기 때문에 나는 안에 것도 본 후에 비판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단적인 예로, 우디 앨런 영화에 "내 남편의 여자도 좋아"라는 제목을 단 초 낚시성 마케팅은...)

ㄴ. 그런 맥락에서 단지 표지의 노출도가 높다는 것만 가지고서 해당 작품을 비판하는 것은 부당하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노출도가 높다는 것이나 성적 장면이 소설 중에 묘사된 것만으로 비판하는 것도 부당하다. 여성주의는 성적 장면을 묘사한다는 이유로 포르노를 반대하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어떤 성적 상황을 설정하고 어떻게 그것을 묘사하느냐가 문제다.

ㄷ. 카노콘은 물론 그런 맥락에서도 비판을 피할 수 없다. 카노콘은 마치 3인칭 시점을 취하고 있는 것 같지만, 주요한 성적인 장면 등에서는 반드시 남성인 코타로의 입장에서 서술/묘사를 진행한다. 코타로에게 적극적으로 대쉬(?)하는 여성들의 느낌에 대해서는 주체적으로 묘사하지 않으며 '관찰'의 대상일 뿐이다. 카노콘 속에서 여성주의적 맥락에서의 긍정적 부분을 찾는다면 기껏해야 '적극적인 여성상' 정도일 텐데, 여기서 적극적 여성들이란 것도 사실은 다분히 남성의 판타지를 실현시키는 도구일 뿐이다.-_-

ㄹ. 나는 카노콘이 비판을 받아야 하는 소설이라고는 생각하는데, 또 그 당시에 카노콘에 대해 비판했던 사람들의 이야기나 반응 속에는 보수주의적 요소도 있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성적인 장면이 상당히 노골적으로 묘사되었다는 이유만으로 어떤 작품을 비판할 수 있는 걸까? '야설'이라는 말을 사용해가며? 또는 표지의 그림을 보면서 어떻게 이런 걸 볼 수 있냐고 비판할 수 있는 걸까?

ㅁ. 사람들은 카노콘 같은 노골적인 작품을 보면 즉각적으로 반응한다. 그런데, 카노콘보다 성적 노출과 묘사가 적더라도 여-남 관계 설정이나 구도 등의 측면에서는 더 문제가 많은 작품들이 많은 것 같다. 하지만 사람들은 그런 작품들에는 즉각적으로 반응하지 못하며, 성적 노출 등의 측면에서 노골적인 작품에만 즉각적으로 반응한다.

ㅂ. 나는 여성주의는 궁극적으로는 좀 더 성적 자유주의와 연결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더 개방적으로 논의되고 대화하고 실천한다는 측면에서는. 그러나 현재 시점에서 성적 자유주의의 주장은 여성에게 적대적일 수 있다. 그렇기에 '성적 자유주의자'들은 종종 특정 상황에서 여성(그리고 여성주의자)들의 적으로 돌변하는 거지만 ㅠㅠ

ㅅ. 오타쿠 - 그러니까 대개 '그런 문화'의 상당히 적극적 소비자로서, 매니아들의 자기 반성과 성찰은 분명히 필요하다. 하지만 그런 반성과 성찰은 세심한 설명과 논의가 필요하다. '여성주의'의 그 문제의식이란 게, 전달하기가 쉽지 않은 일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