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설픈꿈

시 - 구멍에는 무게가 있다

공현 2009. 8. 4. 02:11



구멍에는 무게가 있다

손을놓고 걸어온지 아마6개월쯤
왼손을 주머니에 찔러넣으니
잡히는건 커다란 구멍뿐이다
가리지못한 손가락이 꼼지락대며
고개드는 허전히 찢어진 구멍

반지도 구멍으로 흘리고왔고
유에스비 메모리도 흘리고왔고
받지못한 답장도 잃어버렸다
무엇을 잃었는지 메모조차도

그리고 또, 또렷하진 않지만
햇살로 그리움을 그리는 방법이나
눈꺼풀 뒤쪽에 기록한 시간들도
잊어버렸다

주머니의 구멍을 움켜쥐고
더이상 널흘리지 않기위해서
천천히 조심조심 걸어가지만

어느새 구멍이 하나둘늘고
구멍들의 무게가 더해지면서
내 걸음은 점점 더 느려만진다

구멍들을 짊어지고 간다
구멍만큼 숨소리도 발소리도, 깊어진다

 

 

 

-
나를 흘리는 게 아니라
너를 흘리는 건데
내가 부서진다.
연기설?

... 이라는 메모가 달려 있다. 2006년 9월에 쓴 시.

--- 옮겨오면서 좀 더 손질했다.
자주 그런 시가 있다. 주제가 되는 모티브, 발상, 이미지는 꽤 마음에 드는데
그 주제를 내가 제대로 표현하고 변주하고 전개하고 정리하지 못한 것 같은 시... 내 내공의 부족을 느끼게 하는 시.


----- 아주 어릴 때부터 지금까지 도시-근대가 나에게 안겨준 구멍의 무게를 선명히 느끼고 있다.
그 무게를 견디기 위해 사랑을 하고, 운동을 하고, 글을 쓰고, 맛있는 것을 먹고, 책을 읽지만
그런다고 해서 그 무게가 가벼워지진 않는다는 것을 안다.
자꾸 기댈 곳을 찾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