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설픈꿈

소설 - 날기를 잊지 않은 거북이에 부침

공현 2008. 1. 8. 01:26

등장인물 두 명짜리 소설... 이라.

자살시도를 안 해보고 썼다는 게 가장 마음에 걸립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무작정 해볼 수도 없잖아요...;;





날기를 잊지 않은 거북이에 부침

 

 


“그럴까?”

눈앞에 있는 이 사람은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다만, 좋은 카운슬러인지는 의문이다.

“사랑, 이라… 글쎄,”

가끔은 어느 쪽이 상담을 해주는 쪽인지 모르겠다. 그는 마른 사람이었다.

“너희와는 좀 세대가 안 맞겠지만 말야, 킬리만자로의 표범이라는, 노래 가사에도 사랑이 사람을 외롭게 만든단 말이 있는데 말야……”

몇 번 만나면서 알았다. 그는 묘한 인용을 즐겼다. 그는 마른 사람이었다. 유일하게 풍성하다는 느낌을 주는 곳은 긴 머리카락뿐이었다.

“나도 자살은, 실제로 해본 적은 없거든? 그러니까, 대단하다고 생각하기도 해.”

자살을 부추기는 것 같은 말이었다. 아무래도 카운슬러라는 입장에서 하기엔 부적당한 말이 아닌가 생각해보지만, 내가 참견할 일은 아니다.

그는 이제 묵묵히 앉아있었다. 붉은 석양에 물든 표정이었다. 역시, 그는 좀 지나치게 말라있다고 생각했다.

 

 


나 는 옥상이 오렌지빛 색조에서 어두운 남색 혹은 검은색으로 바뀌어 가는 것을 가만히 바라보며 옥상과 함께 오렌지빛에서 어둠으로 변해 가는 공기 속에 가만히 잠겨있었다. 시간의 흐름을 느낄 수 있는 황혼 무렵과는 달리 이젠 밤이라는, 시간이 영원토록 멈춰있는 듯한 느낌만이 나를 짓누르고 있었다. 흘러가는 구름도 없는 맑은 하늘은 더욱 그런 정체감을 느끼게 했다. 한국에서 일어나는 자살 중에는 투신자살이 많다고 한다. 왜일까. 의문이 일지만 내가 일일이 알아보러 다닐 수도 없고, 무엇보다 그럴 의욕이 없다. 습관적인 호기심에 의문이 떠오르지만 그 의문의 답을 찾고자 하는 의욕은 전혀 일지 않아서 의문은 물거품처럼 그저 피어올라 의식의 수면에서 팡, 하고 터지며 아무 것도 남기지 못했다. 옥상 입구 쪽을 돌아보았다. 문득 생각해본다. 지구에 묻혀있는 화석연료라든가, 여러 지하자원들은 나날이 소비되어 가고 있다고 하니, 언젠가는 인류가 쓸, 어떤 에너지도 남지 않는 건 아닐까.

 

 


오늘도 대강은 어제 같았다. 두서없는 상담이 이어졌다. 그럭저럭, 조금은 되는 대로 대답했다. 날이 맑았고 바람이 창문으로 불어 들어왔다. 주로 말하는 건 그 사람, 의사 쪽이었다.

“아아, 나도 남자친구가 있는데 말야, 요즘은 날 어쩐지. 데이트하자해도 잘 안 들어주고…”

오늘따라 푸념이 길었다. 사는 게 힘든 모양이다. 사람들은 다 사는 걸 힘들어하지만, 그래도 아직 푸념할 힘이라도 남아있다는 건 나쁘지 않은 거라고 생각한다. 창 밖에선 연못가에 심어진 키 큰 풀들이 바람에 휘청거리고 있었다.

푸 념이건 뭐건 이렇게 찾아와 주는 게 내심 싫지 않다. 이런 자그마한 대화도 없으면 질식해버릴지도 모른다. 혼자 있으면 그런 류 ― 무료와 권태의 공기가 병실 안에 가득 차는 것 같았다. 무엇보다 시간이 흐르지 않는 느낌이 싫다. 무섭다. 왜 독방을 준건지 사정은 잘 모른다. 아마 부모님이 정하신 거겠지만, 그 이유는 역시 모르겠다. 부모님은, 두 분 다 조금 차가우시다고, 생각한다.

“역시, 따분한 이야기인가?”

“아뇨, 좋아요.”

최소한 권태보다는.

“그런가. 흐음, 평소 지내는 건 더 따분한가보구나. 그럼 말야, 책이라도 읽어보는 게 어때?”

의사는 날카롭기도 했다. 가끔 아무렇지 않게 사람의 정곡을 찌르곤 했다.

책, 책이라.

 

 


이 런저런 것들을 생각해도 별로 느껴지는 게 없었고, 다만 그 아이를 생각할 때에만 구토감 비슷한 게 가슴으로부터 치밀어 올랐다. 그것은 역겨움 같은 게 아니라 다만, 차오르는 슬픔인지 절망인지 외롬인지 모를 감정이 너무나도 가슴을 꽉 채워버려서 목구멍을 넘어 입 밖으로 오열이 되어 튀어나올 듯하게 되어 버리는 탓에 느껴지는 것이다. 나는, 매번 태연한 척 있는 데에 너무 익숙해져버려서, 정말 울고 싶을 때에도 울지 못하고 멍하니 있곤 한다. 그건 어릴 때부터 들어온 질질 짜지 말라는 주위 어른들의 말 때문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눈물을 흘리지 않는다 해도, 아니 그렇기 때문에 더욱 속은 뒤엉켜버린다. 기분이 나쁠 땐 위염도 자주 일으키곤 했던 걸 생각해보면, 내 몸은 내 정신상태에 잘 반응하는 체질이었다. 고개를 들어 밤하늘에서 달을 찾아보았으나, 구름이 낀 것인지 그믐날인 것인지 달은 보이지 않았다. 나는 천천히, 쌀쌀한 공기 속에 꼼짝 않고 있느라 굳어버린 몸을 일으켜 난간 쪽으로 비틀비틀 걸어갔다. 명절에 큰집에서 술을 몇 잔 마셔봤을 때처럼 조금 어지러웠고, 몸에 힘이 잘 들어가지 않았다. 머릿속, 한 부분이 마비된 것 같다. 난간에 이르러서는 다시 문 쪽을 돌아보았다. 아무도 없었다. 걷는 데에, 그리고 이렇게 중얼중얼 생각하는 데에 쓰는 힘, 어쩌면 그것이 내게 남아있는, 마지막인 것이다.

 

 


오늘은 의사가 선물을 들고 왔다. 향기 풀, 허브 화분이었다.

“라벤더야. 저번에 안 좋은 꿈을 꾼다고 했었지? 라벤더 향이 숙면에 도움이 된다고 해서 한 번 가져와 봤지. 잘 기르라고. 그럼, 자, 오늘도 해볼까.”

그러고 보니, 저번에 악몽을 꾼다고 말한 적이 있었다.

의사는 의자에 앉아 있었다. 환자는 침대에 반쯤 앉아있었다.

“말 그대로, 그저 악몽이에요.”

얼 마 전부터였다. 의사는 카운슬러 같은 일을 하기 시작했다. 의사와 내가 처음 만난 건 5월이었다. 얼마 전은 6월이었다. 무슨 생각을 한 건지는 잘 모르겠다. 의사도 평범하다거나, 상식적이라거나, 그런 말이 어울리는 사람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나도 고분고분하고 성실한 환자의 역할을 성실히 수행하고 있었다. 읽던 책을 잠시 내려놓았다.

“뛰어내리던 그 날의 꿈이니까, 아무래도, 악몽이겠죠?”

의사가 살짝 눈살을 찌푸렸다.

난 간혹 그가 정말 제대로 상담을 하려고 하긴 하는 건지 의심스러웠다. 그러나, 제대로 상담을 해줄 생각이 없다고 한들 어떤가. 어찌되었건 누군가가 내 말을 들어주면 좋은 것이다. 상담보다는 말벗이 되어주는 것이 내겐 어쩌면 더 좋은 것이다. 모두가 날 비난하고, 또 아무도 내 말을 들어주지 않는다는 생각에 사로잡힐 때가 예전에 있었다. 그런 느낌조차 어느 샌가 익숙해져 버렸다고 생각했지만, 익숙하다고 해서 힘들지 않은 건 아니었다. 항상 위태위태했다. 그러니, 그런 것에도 굴하지 않고 꿋꿋하게 할 수 있다는 것도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나는 꿋꿋할 수 없었다.

엎어놓은 소설책의 표지가 눈에 들어왔다. 날개.

 

 


손 으로 잡은 난간은 차갑다. 내가 아무리 꽉 붙잡아 봐도 하얀 페인트가 칠해진 시멘트는 차갑다. 내 손이 아무리 따뜻해도, 난간은 차갑다. 차가운 난간 위에 서서 생각한다. 날지 못해서 죽는 사람들은 죽기 직전 몇 초라도 날아보고 싶은 마음이 들지도 모르는 일이며, 그렇기 때문에 자살 방법엔 투신자살이 많은 것이다. 정답은 아닐지도 모르지만, 아무래도 상관없다. 그렇게 생각되니까, 그거면 됐다. 하지만 그렇게 따지면 왜 꼭 한국에 투신자살이 많은 걸까? 그야 한국에는 날지 못해서 죽는 거북이들이 많으니까 그런 것이다. 아래층에는 불이 켜져 있었고, 아마 불 켜진 교실에서는 아이들이 거짓말과 진실이 적당히 뒤섞인, 다른 사람이 정해준 몇 권의 책에 매달려서 혹은 그 책을 또 늘여 써놓은 것에 매달려서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 소리 없이 발버둥치고 있을 것이다. 다들 거북이다. 하지만 날 것을 자기도 모르는 새에 포기해버린 거북이다. 꾸준히 달려서 토끼를 능가한다는 신화에 속아 난다는 것 자체를 잊어버리고, 경주로에 매여서 열심히 기어가는 거북이다. 바다에서 헤엄치는 것도, 하늘을 나는 것도, 자신의 본분도, 그리고 이상도 잊고, 이 획일적인 지상의 경주로에 매여 언제쯤 경주에서 이길까, 하는 거북이다.

 

 


“자살미수는 자살 자체와는 다르게 취급한다고 하지만, 글쎄 자살미수도 결국 자살을 하고 싶었던 것 아닐까?”

자기 멋대로 갑자기 진지한 이야기를 꺼냈다.

“자살미수엔 세 가지 유형이 있다지. 정말 자살할 생각이 없이 시위처럼 하는 경우. 잘 모르는 상태에서 어중간하게 한 경우. 정말 죽으려고 했다가 행인지 불행인지 살아난 경우. 그래서, 넌, 어느 쪽?”

“글쎄요.”

모르겠다. 겨우 세 가지 보기지만 자신이 없었다. 다섯 개 중 하나도 잘 찍었었는데, 지금은 선택한다는 것 자체가 망설여진다.

“음. 5층에서 뛰어내렸으니, 충분히 치명적이라고 생각해. 이 경우, 그러니까 세 번째 아닐까.”

자문자답하는 모습이 우스웠다. 그럴 바에야 내게 물어본 이유는 뭘까? 바람에 풀이 이리저리 흔들린다. 파리 한 마리가 창틀을 기고 있었다.

“무거운 이야긴 이만하자, 지겨워 보이네. 그래서, 네 꿈 이야기나 계속 들어볼까.”

지루해하는 걸 알아차리곤 화제를 돌린다.

“음, 그러니까. 그 날은, 수업이 끝나고부터 쭉 옥상 위에 있었어요. 가방이고 유서고, 다 들고서.”

어 느 날인가는 선생님과 싸웠었다. 그 선생님이 뭔가 애들에 대해 자기 멋대로 말했었고, 나는 그런 사소한 문제에도 기를 쓰고 따졌었다. 그 때, 나는 학교의 바람을 학생들의 의사인 양 위장하지 말라고 악을 썼었다. 사람들은 내가 싸우는 것 자체를 좋아한다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트집을 잡는 것으로 생각할 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그런 사소한 것이 내게는 무척 신경에 거슬렸을 뿐이다.

“멍하니 있다보니 해가 졌고 밤이 되고 야자도 시작되었고”

또 어느 날인가는 학생회장과 싸웠었다. 나는 학교의 개에 지나지 않는 학생회 따윈 차라리 없어지라고 말했다. 내 항의에는 응응, 하고 맞장구치면서, 정작 학교에는, 선생님들 앞에선 아무 말도 못할 바에는, 대체 왜 있느냐고 몰아붙였었다. 퇴학을 당하는 일이 있어도, 잘못되었다고 생각하는 것에 항의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그렇게 물었다.

“계속 멍하니 있다가 하늘을 한 번 보고”

날개. 날개는 하늘을 날기 위한 것이다. 넓은 하늘을 혼자 나는 것은 고독하겠지. 여하간에 나는 하늘을 바라보고 있었고, 또 할 수만 있다면 날고 싶기도 했었다. 되도록이면, 함께 말이다. 누군가와 함께. 하지만,

“뛰어내렸었죠.”

확실한 건, 날기 전에도 외로웠다는 점이다. 그래서 지상에서 고독할지언정 차라리 날고 싶었다. 나 따위와 함께 날아줄 사람 같은 건 없다는 것쯤, 알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날고 싶었다. 혹은, 날 수 없었다. 날 수 없다는 것도 알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숨 을 들이마시고 밥을 먹는다. 내 세포들은 태연히 호흡을 해낸다. 심장이 뛰고 피는 돈다. 하지만 내 안의 의욕은 학교 옥상에서 뛰어내릴 때 이미 다 죽었다. 아니, 사실은 그 전부터 거의 다 사라져 있었다. 남은 건 이산화탄소와 물과 같은 종류의, 특별한 냄새도 색도 맛도 없는 희미한 감정들뿐이었다. 더 이상 태울 수 있는 건 없었다. 그래, 언젠가는, 지구엔 자원이 남지 않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또 언젠가는, 우주도 산일(散逸)하여 열사(熱死)하는 것이다.

“꿈에서도, 비슷해요. 시작은 그 날, 옥상 문을 열면서부터죠. 뛰어내리면 이렇게 죽지도 못할 거란 걸, 저는 모르는 채죠. 전 그 날에 멈춰 있는 건지도 몰라요. 악몽이라지만, 사실은 별 거 없어요.”

잠시 꿈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나로선 잘 알 수 없는 이야기를 혼잣말처럼 한다. 그러다가 의사는 시계를 보더니 자리에서 일어섰다.

“아, 그런데 말야. 좀 잘 먹어둬. 그렇게 말라서야.”

걱정해주는 말에 힘없이 웃어 보이며 인사를 대신한다. 어느새 꽤 많이 자란 머리카락이 눈을 간질이는 게 조금 성가시게 느껴진다.

 

 


끓 어오르고 있다는 건―, 잔잔한 물 속에 용해되어있던 기체들이 하나하나 나오고 어쩌면 물 자체도 안에서부터 증발을 시작했는지도 모른다. 물거품은 물의 부력으로 떠오를 수 있지만 표면까지 와선 허무하게 터져 버릴 수밖에 없는 것은, 공기보다는 무겁기 때문이다. 그리고 펑. 나는 물거품과 같은 류이고, 지금은 터져 버리려고 하는 순간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물거품이 터져 버리면 그 껍질을 이루고 있는 물은 다시 물로 돌아와 버리고 속에 있는 공기만 날아가 버린다. 21g. 물거품에서 무엇이 태어난 때는 하늘의 피와 정액이 섞인 바다 물거품 같은 특별한 것에서 뿐이었고, 평범한 물거품의 운명은, 그것뿐이다. 거의 터지려는 순간이라 그런지 안의 공기들이 요동치는 것이 더욱 강렬하게 느껴졌고 기억들이 머리 속을 떠다녔다. 더욱 가슴이 답답하다. 처음 초등학교에 입학하였을 때가 있었고, 학교에 입학하고 나서 천진하게 교과서, 그래, 특히 도덕 교과서 같은 것을 곧이곧대로 믿으며 자라던 때가 있었고, 언제부터인가 애국심 같은 건 내팽개쳐버리고, 반항적이고 냉소적으로 사는 자신을 자각한 때가 있었다. 그리고 그 아이에게 고백 받았던 때가 있었고, 주위를 적으로 돌려가며 무모하게 싸우면서도 그 아이에게 기대었기 때문에 견딜 수 있던 때가 있었고, 그 아이가 나에게서 떠나던 때가 있었다. 나는 좀더 가벼워야 했던 걸까? 무거운 데도 날겠다고 하는 내가, 그렇게 자꾸 자기에게 기대는 내가, 부담스러웠는지도 모른다. 다시 문을 돌아보았지만 아무도 없었다. 십몇 년을 나름대로 치열하게 살아온 나, 이제는, 지쳤다. 그리고 지금.

 

 


“결국 말야, 이상이란 건 이룰 수 없는 걸지도 몰라.”

오자마자 불쑥 그런 소릴 한다.

“왜냐하면 이상이 이루어지면 현실이 되잖아. 그럼 이상주의자는 분명 또 다른 이상을 세울 거라고. 눈물을 마시는 새, 라는 소설에 나오는 말인데, 소망은 발전하는 거라잖아.”

오늘은 다른 때보다 더 휘청대는 모습이다. 마른 몸은 아무래도 위태로운 것이다.

“이상(理想)은 현실에 대한 이상(異常), 이라면 결국 현실과 이상은 대립하는 걸까. 하지만, 현실주의자가 되는 것도 재미없잖아. 난, 좀더, 좀더 짊어지고 싶을 뿐인데 말이지.”

한 오페라는, 여자의 마음은 갈대와 같다고 한다. 그리고 파스칼은 인간은 생각하는 갈대라고 했다. 둘의 의미는, 다르다지만, 결국 자의적으로 해석하면 둘 다 갈대다. 이런 이상한 소리를 남에게 지껄일 정도로, 인간은 갈대다. 휘청휘청.

“‘우리는 난장이라구요!’”

원래는 악을 써야 할 대사를, 작은 목소리로 말하자 이상한 속삭임이 되었다.

의사가 고개를 들어 날 보았다. 난 살짝 양 입 꼬리를 올려 보였다. 의사는 내 손의 책을 보았다. 난장이가 쏘아 올린 작은 공. 의사도 웃었다.

“거북이나 난쟁이나….”

그 혼잣말에, 기분이 이상해졌다. 불안하다. 내가 한 이야기를, 다른 사람이 반복한다. 나는, 지금 여기, 이 병실에서, 나는.

의사는 들고 온 자그마한 오뚝이 인형을 밀면서 장난을 쳤다. 나무를 깎아 만든 오뚝이는 작은 여자애 모습이었다.

“허브는, 잘 기르고 있어?”

그 말에 창가를 돌아보았다.

“이런, 이런. 시들시들하잖아.”

내 눈길을 따라 창가를 본 의사가 말했다.

“물을, 안 줬으니까요.”

왜, 하고 물어온다.

“그건”

부모들은 항상 자기가 낳을 아이에게 태어나고 싶은지 물어보고 낳을 수 없다. 분명, 나는 이 세상에 태어나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나 와 저 녀석은 말이 통하지 않는다. 저 녀석이 살고 싶다고 하면 물을 줄지도 모르겠지만, 우리 사이는 말이 통하지 않는 사이인 것이다. 부모와 자식처럼. 그러니 난 별수 없이, ― 그래 별수 없이 별수 없이― 내 멋대로 하겠다. 지금 난 저 녀석을 살리고 싶은 마음이 없으니까, 그걸로 충분하다.

“저 녀석이, 살아 있는 게, 좋은지 안 좋은지, 알 수 없으니까.”

 

 


어 쩌면 투신자살이란 날고 싶은 것 뿐 아니라 시위인 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투신자살이란 꽤나 화려한 죽음이기 때문이다. 그럼 왜 분신자살을 하지 않느냐, 하면 그 쪽은 더 아플 것 같으니까. 결국 그런 여러 가지 것들을 죽는 일에서도 저울질 해보는 것뿐이라고 생각하니, 인간이란 교활한 생물이란 생각도 들었지만, 결국 모든 생물이란 자기 살아가는 데 있어서 교활할 수밖에 없으리라. 죽는 일도 사실은 삶의 일부니까는. 뭐. 나는 내 죽음 또한 일종의 항의로 남아줬으면 했기 때문에 꽤 정성들여 작성한 장문(長文)의 유서 하나를 책가방 밑에 놔두고는 난간 위에 올라서서 다시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분명, 신문에는 또 뭐 잘못된 입시 교육의 스트레스를 이기지 못한 고교1학년 여학생 자살 어쩌구 하겠지만, 기사를 그렇게 쓰더라도 유서 정도는 제대로 전달해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작고 크고를 떠나서 시체는 꽤나 자극적이다. 사람들은 죽음이란 것에 쉽게 반응하는데, 그것은 그들이 삶을 긍정해야 한다고 믿기 때문에 삶을 부정한다는 상황이 매우 중대하다고 느끼기 때문일 터이다. 그러니까 유서란 것은 웬만한 사설 같은 것보다 감정적으로 큰 파문을 일으키기 마련이다. 별 것 아닌 푸념도 유서라는 제목이 붙으면 사람들은 고개를 저으며 혀를 찬다. 사실 나는 유서에 입시 스트레스니 하는 말은 써놓지 않았다. 다만, 두 발로 서있는 인간과 거북이에 대해 내가 할 수 있는 한 다 써놓았을 뿐이다. 지금, 나는 딱히 삶을 긍정해야 한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삶을 긍정해야 하는지, 부정해야 하는지조차 모르겠다는 것이 옳으리라. 다만 나는 지금 아무 것도 하고 싶지 않았고 살고 싶지도 않았고 또 내일이란 것도 두렵기만 했다. 날려고 하는 거북이는 날기를 포기하고 달리려는 거북이들을 대상으로 한 시스템에서는 명백한 오류였다. 모두가 외면했고, 나는 오류였다. 하늘 이곳저곳으로 눈길을 기웃거려보아도 달은 여전히 보이지 않는다. 달빛으로 광합성을 할 수 있다면 그것도 좋을 텐데. 뒤를 돌아본다. 옥상문은 내가 닫아놓은 그대로로, 여전히 열리지 않는다. 난간에서 싸늘한 감각이 올라온다. 내 체온은 쌀쌀한 밤공기 앞에 얼마나 미약한가. 다리가 떨리고 있다는 걸 이제야 알았다. 이를 악 물고 눈을 감았다. 마지막으로, 불교 쪽엔가는 이런 말이 있다고 한다.

백척간두에서, 진일보.

 

 


눈을 떴다.

결국, 뛰어내려버렸다.

아침햇살이 창문으로 흘러 들어오고 있었다.

나는, 꿈속에서는, 뭔가 다른 결말이 있기를, 기대하고 있던 걸까?

“엄마….”

무심코 중얼거렸다. 머리 속에서 울리는 이상한 노이즈 같은 게 느껴졌다. 이명(耳鳴)일까.

“여.”

문이 열리면서 의사가 들어왔다.

“흐음, 잘 잤어? 자고 있을 줄 알고 놀래키려고 했는데 벌써 일어나 있네. 아침 일찍부터, 부지런한데.”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왜 파리는 내가 눈을 돌릴 때마다 창틀이나 벽에 붙어있는 지 알 수 없었다. 며칠 전부터 보였는데, 볼 때마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가만히 앉아있는 이상한 파리다. 벌레 날갯짓이 들리는 것 같았다. 성가셨다. 지금은, 상대할 기분이 아니다.

“뭐야. 어제는, 항상 무표정으로 있다가 처음으로 웃어서, 좀 나아진 줄 알았더니 오늘 보니까 그것도 아닌 것 같잖아. 어쩐지, 전보다 더 기분 나빠 보이네. 그 뚱―한 표정. 혹시 몸이 안 좋아?”

그러고 보니, 어제는 웃기도 했던 것 같다.

“뭐, 됐어. 차차, 나아지겠지. 흐응, 아직도, 죽고 싶어?”

“그럴 힘도, 없는 것 같은데요.”

우울증 환자는 자살하기 쉽다고 한다. 우울증 환자에게 자살을 시도할만한 에너지가 없다는 식의 생각은 착각이라고 한다. 하지만, 난 우울증이 아니다. 하염없다. 이름하자면, 무력.

처 음, 병원에서 깨어났을 때는, 살았다는 것을 알고는 다시 죽으려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정작, 그럴 의지도 생기지 않았다. 나는, 어쩌면 절망할 힘조차 남아있지 않은 걸지도 모른다. 이런 게, 살아있다고 할 수 있을까? 묘하게 신경질이 났다. 꿈이 생각났다. 이명이 들린다.

시끄러워. 그만 앵앵대.

“음, 좋은 게 좋은 거지.”

하하.

오늘 의사는 어쩐지 유쾌해 보였다. 기분 나빴다.

“음, 저기 말야. 그러고 보니 난 네 상담자 주제에 네 부모님을 한 번도 뵌 적이 없는 것 같은데.”

부모? 파리가 움찔했다. 다리를 비비고 있었다.

“부모님은, 퇴원할 때까진 안 오실 걸요. 퇴원한 다음은, 글쎄 어쩌실까요? 오실지, 안 오실지.”

파리채를 휘둘러서 파리를 죽여 버리고 싶어졌다. 거슬려.

“처음, 입원했을 때, 한 번 찾아오셨어요. 그 때, 울면서 뺨을 한 대 때리시고는, 뭐라고 하시고는, 가버리셨어요. 그 뒤론, 안 오시네요.”

남의 일인 양 말한다. 날개가 부르르 떨렸다.

“아마 평소에도 학교에서 선생님과 싸웠다 어쨌다 일이 많았는데 자살 기도까지 하니까. 내놓으신 게 아닐까요.”

파리가 부들부들 떨고 있다고 느꼈다. 애써 침착하게 말한다. 세계가 가볍게 일렁거렸다. 아침 이슬은 연못가의 풀잎에 살짝 매달려서 곧 떨어질 것 같았다.

더 이상 묻지 않아 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속으로 화가 났다.

“저기, 괜찮아?”

아무 대답도 하고 싶지 않았다. 얼굴을 안 보이려고 고개를 숙였다. 왜 손 닿는 곳에 파리채가 없는 걸까. 잠깐 무거운 정적. 머리 속에선 노이즈가 계속 들린다. 가슴속에서, 일지도 모르겠다. 구토감.

“이제, 이제 그만둬요….”

제발.

참지 못하고 신경질적으로 말했다. 애초에,

“응?”

“어차피, 이렇게 멍청하게 앉아서 말 밖에 들어줄 수 없으면서. 그러면서…”

아무것도 아니면서.

신 경질. 이 사람은 나와 사실 별 관계도 아니면서 너무 가까이에 있다. 너무 많이 말했다. 의사와 환자란 입장. 외로움. 그리고, 비슷함. 그런 것들. 내가, 정말로, 내 이야기를 하고 싶던 사람들은, 따로 있는데, 결국 못한 말이 얼마나 많은데. 이 사람은 멋대로 아는 척, 결국 난 뛰어내려 버렸는데도, 아무도 날 잡지 않았는데도.

튀어나올 것 같다. 신경질이 났다. 이제, 아무 것도 하고 싶지 않은데도.

다시 무거운 공기.

창 밖에서 사람들의 말소리가 들려온다. 뒤섞인 말소리는 내용을 알아들을 수 없다. 병문안이라도 온 걸까. 병원은 밖과 유리되어있다. 병실은 또 병실 밖의 병원과도 유리되어있다. 나의 방은 유리되어 있다. 이중으로 갇힌 속에서 내게 그나마 허락된 면회는 대체 어떤 의미가 있을까.

“―그래, 난, 상담 정도가 고작이지만, 말야. 그래도, 그래, 그래도,”

숙이고 있는 머리에 하얀 가운이 닿았다. 가운에서는 냄새가 났다. 깨끗이 빨고 나서 햇볕에 널어 말린 빨래 같은 냄새. 풀잎에 맺혀있던 이슬이 굴러서 연못에 똑하고 떨어지며 파문을 남겼다.

 

 


옥상에 올라와 있다.

무엇 때문인지는 모르겠다.

그저 멍하니 있다.

그 날처럼, 오렌지빛에서 어둠으로.

거북이, 아니 자라였나. 일단 거북이라고 하자. 난 그 이름이 더 좋으니까.

거북이가 새에게 발톱에 매달고 날게 해달라고 했다가 떨어진 이야기.

누군가는 독수리가 일부러 그랬다고도 하고, 실수로 떨어뜨렸다고도 한다.

배신이냐, 아니면 단순히 좌절이냐. 어느 쪽이건…, 그래 어느 쪽이건 날고자 하는 데에 겪은 좌절이긴 마찬가지다.

그런데, 그런데 말이다, 혹시 떨어진 거북이가 요행히 살았다면, 그 거북인, 다시, 날려고 했을까?

 

 


“술, 많이 드셨나요?”

“아아.”

뭔가 안 좋은 일이 있었는지 의사는 술을 먹고 저녁 무렵에 와선, 푸념을 늘어놓고 있다.

“어제 아침엔 말야, 데이트 갈 예정이었는데 말야.”

혀는 꼬여있지 않았다. 그다지 많이 마신 것은 아닐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만나기로 한 장소에서, 그대로 차였어. 아우우. 이대로, 콱 죽어버릴까?”

이 사람은 말라 있다. 나만큼이나. 어쩌면, 술김에 저질러버릴 지도 모를 일이지.

“그런데, 뛰어내리면, 아프냐?”

“예.”

“역시, 그런가.”

내 어깨에 머리를 기대온 모습이 위태해 보였다. 내 어깨가 좁기 때문이기도 하다. 술 냄새가 코를 찔렀다. 흔들흔들 거리는 머리. 작게 웃음이 나왔다.

“뭐가 웃기냐.”

팔을 휘휘거리는 술주정이 어린애가 떼쓰는 같다.

잠시 투덜거리며 웅얼대는 소리가 들렸지만, 정확히 뭐라고 하는지는 알 수 없었다. 다만, 밤바람이 묘하게 쌀쌀했다. 술을 깬다며 열어놓은 창문이었다.

“선생님은 참 돌팔이시네요. 환자 방에서 주정이나 부리고.”

“상관하지 마, 임마. 의사라고 사람 아니냐.”

잠시 티격태격. 확실히, 의사치고는 이상한 의사다. 젊기 때문일지도.

의사의 머리는 여전히 내 어깨에 얹어져 있었다. 어지러우니까, 라고 말했다. 나, 사실은 술 잘 못 마시거든. 자주 마시긴 하는데. 술을 잘 마시지 못하는 사람이 술을 마셔야만 하는 세상이란 건,

“그거 알아요? 나도 이상한 여자애지만, 선생님도 충분히 이상해요. 의사 같아 보이지를 않는다구요.”

“자주 들어. 그런 말.”

묘하게 당당하다. 어른이란, 그런 걸까. 이런 사람을 만난 것도, 묘한 인연일 것이다.

“참. 며칠 전에 말야. 웬 남자애가 네 병실 앞을 얼쩡거리더라.”

의사는 아무렇지 않게 화제를 바꾸며 운을 떼었다. 살짝 고개를 숙인 의사의 얼굴은 볼 수 없었다.

“붙잡아서 이야기는 들었는데”

바람이 은근히 불어왔다. 창문을 닫고 싶어졌다.

“흐응. 뭐, 그랬어.”

그러고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또, 눈앞이 흔들거리는 걸 느꼈다. 살짝, 어깨에 닿아있는 의사의 긴 머리카락에 얼굴을 묻어봤다. 부드러운 머리카락에선 비누 냄새와 술 냄새가 함께 풍기고 있었다.

 

 


다시 날려고 했을 것이다. 적어도, 그 거북이, 그 거북이라면.

‘선생님은, 어떻게 살 수 있어요? 살 힘이 나요?’

‘글쎄, 살 힘이라. 어디선가 읽은 것도 같은데, 술에서 그런 힘이 난달까. 하하.’

의사와 언젠가 했던 이야기였다.

의사는 아침에도 여전히 힘이 없어 보였지만, 괜찮을 거라고 생각했다.

오뚝이를 살짝 밀어봤다. 그러고 보면 병원에 두 달 입원한 동안 선물을 두 개나 받았다. 오뚝이는 다시 일어섰다.

어쩌면, 대단한 거다.

난간 위에 앉아 봤다. 조금, 위태로웠다. 고개를 뒤로 젖히고 또박또박 혼잣말.

“괜. 찮. 아.”

하 늘을 봤다. 보름달이 떠있었다. 독수리는 일부러 떨어뜨린 건 아닐 거라고 믿는다. 그 아이는, 사람이 너무 좋았다. 그 사람 좋음이, 날 감당하지 못했을 뿐이다. 부모님도 마찬가지겠지. 그런 거다. 그래, 내가 삐뚤어진 거다. 하지만, 그래도 괜찮다. 괜찮다. 괜찮다.

오늘은 하늘에 보름달이 있다. 난간은 여전히 차갑다.

차가운 난간 탓에 검은 하늘에 달빛이 희뿌옇게 번졌다. 또 눈이 빨개지겠다고 생각했다. 요즘은 너무 자주 우는 건지도 모르겠다.

“아아.”

두 손을 위로 뻗었다. 구름이 흘러갔다. 보름달은 계속 있었다. 난간에서 내려와서 빙글빙글. 백척간두에서, 진일보다. 엔트로피라는 좀 지루한 책도 말하지 있긴 하지 않은가. 태양 에너지를 이용할 날도 오긴 할 것이다, 언젠가는. 언젠가는.

꽉 움켜쥔 난간이 차갑다.

집에 돌아가자.

내일은, 화분에 물을 줘야겠다고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