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어가는꿈

학생-교사-폭력-학생인권 문제에 대한 어떤 계산

공현 2010. 12. 25. 23:09


학생인권조례 제정 운동 서울본부 홍보팀에서 언론기고를 하자고 제안해서 쓰게 된 글입니다.  아직  초안이니까 여러 가지 고쳐야죠;;

근데 쓰다보니 너무 길어져서, 만약 지면에 기고를 한다면 앞부분만 해야 될 판이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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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인권 문제에 대한 어떤 계산

- 학생 0.1%와 교사 70%

  간단한 계산을 해보자. 산수를 잘 못하던 분들에게도 그렇게 어려운 것은 아닐 것이다. 자, 대한민국 초중고등학교의 교사 수는 몇 명쯤 될까? 찾아보니 대략 사십만명 정도 된다. 대한민국의 초중고등학교 학생 수는 대략 오백만명 정도 된다. 더 자세한 수치를 제시할 수도 있지만, 어차피 매년 변하고 있는 수치니까 이 정도를 잡고 얘기를 해보자.


‘교사를 폭행할 수 있는 학생’은 얼마나 될까?

  대한민국 초중고등학교 학생들 중에 어떤 이유로든 간에 교사를 폭행할 수 있는 학생들의 비율은 얼마나 될까? 교사가 학생을 모욕했거나 학생에게 폭력을 쓴 경우부터 그냥 순전히 학생 본인에게 정서적 문제가 있던 경우에까지, 이유를 불문하고. 냉정하게 따져보면 극소수일 것은 확실하다. 만약에 그 비율을 0.1%, 그러니까 1/1000이라고 해보면 어떨까? 5,000,000×0.1% = 5,000. 즉 5,000명의 학생들이 교사를 폭행할 수 있는 학생들이다. 만약 0.01%라고 하면 어떨까? 약 500명의 학생들이 교사를 폭행할 수 있다는 가정이 된다. 0.1%면 5,000명, 0.01%면 500명이나 되는 학생들이 교사를 폭행할 수 있는 것이다. 자 만약에, 최근 언론에서 교권이 무너지고 있다면서 보도하고 있는 몇몇 사례들은 그 0.01% 혹은 0.1%의 일부라고 한다면?


  상식적으로 0.1%라거나 0.01%라는 수치는 결코 큰 수치가 아니다. 우리가 일상 생활에서 “99.9% 그렇다.”라고 말할 때, 이 99.9%는 심리적으로는 100%와 같은 의미로 쓰인다. 어떤 집단의 0.1%가 문제를 일으킨다면 그 문제도 문제이긴 하겠지만, 적어도 0.1%를 가지고서 그 집단 전체를 문제집단으로 낙인찍거나 호들갑을 떨면서 체제의 위기를 예언하는 것은 오류이고 과장이다. 지금 몇몇 언론들이 눈에 불을 켜고 학생이 교사를 폭행한 사례를 찾아서 보도하며 교육의 위기를 부르짖고 “요즘 학생들”의 무서움을 설파하는 모습에서 나는 딱 그런 모습을 본다.

  앞서 설명했듯이 전체 초중고 학생들의 0.01%만 교사를 폭행할 수 있다고 가정하더라도 그 수는 약 500명이 된다. 물론 학생이 교사를 폭행하는 사례가 1년에 500건씩이나 일어난다는 뜻이 아니다. 이건 어디까지나 ‘상황에 따라 할 수 있는’ 확률을 가정해본 것뿐이니까 말이다. 하지만 지금 몇몇 언론들이 하는 것처럼 몇 년 전 몇 달 전 사건들까지, 지역을 막론하고 찾아다닌다면, 거의 1년 내내 그런 보도를 할 수도 있을 거라는 점을 지적하고 싶은 것뿐이다.

  자, 그럼 이제 교사가 학생에게 폭력을 가하는 경우는 어떨까? 2010년 10월 학생인권조례 제정 운동 서울본부와 참교육연구소에서 전국 교사 1478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교사의 약 70%가 체벌을 한다고 응답했다. “거의 하지 않는다”라고 답한 교사들을 제외하더라도 약 20%의 교사들은 체벌을 ‘자주’ 한다. 전체 교사 집단에 이 비율을 적용해보자. 400,000×70% = 280,000. 400,000×20% = 80,000. 이십팔만명의 교사가 체벌을 하고, 팔만명의 교사가 ‘자주’ 체벌을 한다는 계산이 나온다. 원칙이나 한계 없이 ‘자유롭게’ 체벌한다고 답한 교사도 3.8%나 되니까, 이 역시 1만명은 넘는다.

  게다가 교사가 학생에게 폭력을 행사하는 경우 교사 1명은 학생 수십명에게 반복적으로 폭력을 행사하는 경우가 많다. 반면에 학생 1명이 교사 여러 명에게 반복적으로 폭력을 행사하는 경우란 잘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그러므로 그 폭력의 영향력은 비교도 할 수 없다. 이런 상황에서 ‘서울 체벌금지 이후’에도 여전히 체벌이 벌어지고 있는 현장을 추적하기보다는 굳이 학생의 교사 폭행 사건들만을 부각시키려고 하는 언론은 얼마나 공정한 것일까. 교사가 학생을 때리는 것은 센세이션 하지 못하지만 학생이 교사를 때리는 것은 세간의 주목을 받을 수 있기 때문에 그렇게 한다면 그건 전형적인 황색 언론의 논리이다.

  나는 학생인권운동을 하면서 지난 몇 년 간 교사가 학생의 뺨이나 머리를 때린 사건, 체벌 중에 학생이 골절상을 입은 사건 등 수십건의 ‘선정적인’ 체벌 사례들을 접해왔지만 학생과 학부모의 사정이나 언론의 무관심 등으로 전혀 공론화하지 못한 사례들이 반을 넘는다. 일상적으로 학생들이 교사에게 맞는 것은 잘 문제가 되지도 않고 교사 집단 전체를 낙인찍을 이유도 되지 않고 교사들의 인권을 부정할 이유도 되지 않지만, 어쩌다가 교사가 학생에게 맞는 사건이 일어나면 문제가 되고 학생 집단 전체를 욕하고 학생들의 인권을 부정할 이유가 되는 세상. 그 모습이 이미 우리 사회가 학생들의 인권을 짓밟고 있는 사회라는 것을 증명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교사들이 학생들에게 폭력을 쓰고 있으니까 학생들도 교사들에게 폭력을 쓰는, 폭력과 폭력이 맞부딪치는 교실을 만들자는 것이 아니다. 학생의 교사에 대한 폭력이 정당하다고 주장하려는 것도 아니다. 학생이든 교사이든 학부모이든 누구든, 인간이 인간에게 폭력을 행사할 수 있다는 것은 문제이다. 그것은 예컨대 범죄자에 대한 경찰력 행사처럼 엄격한 요건 속에 예외적으로만 정당화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폭력에 대한 문제의식과 별개로, 일방적으로 선정적인 사례들만을 부각시키며 어떤 사람들을 문제집단으로 낙인찍고 공격하는 것은 공정하지도 않을 뿐더러, 그런 폭력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책임감 있는 자세라고 볼 수 없다. 때문에 지금처럼 선정적 사건들을 캐내서 계속 뿌려대기만 하는 그런 언론 보도들은, 불공정하며 무책임하다. 그 언론들은 정작 그런 식의 부풀리기 보도가 학교 교육에 대한 신뢰와 교사의 명예를 실추시킨다는 생각은 해본 적 없는 건지 진심으로 묻고 싶다. 혹시 그 몇몇 언론들의 보도 추세야말로 학생인권 보장을 요구하는 목소리를 꺾어놓기 위한 ‘계산’에 따른 것은 아닌가?


‘학교 붕괴’를 직시하라

  나도 한국의 학교 교육이 붕괴해가고 있는 것은 부정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것은 ‘요즘 애들이 선생님을 우습게 봐서’가 아니다. 오히려 진짜 문제는 더 조용히 일어나고 있다. 수업 시간에 잠을 자거나 딴 짓을 하는 학생들, 학교가 부여하는 과업과 수행하는 교육 활동에 냉소적이거나 불참하는 학생들의 모습은 이제 쉽게 찾아볼 수 있는 풍경이 되었다. 많은 수의 학생들이 학교 교육을 소극적으로 거부하고 있다. 극소수의 학생들이 교사를 폭행하는 것보다, 다수의 학생들이 학교 교육 자체를 보이콧하고 있는 이 현실이 더욱 큰 문제이다. 학생들의 교사 폭행은 그것이 극단적으로 드러난 단편에 지나지 않는다.

  그 원인은 비교적 명확하다. 이미 외국에서도 이런 현상에 관한 분석과 연구가 이루어졌다. 교육이 노골적으로 계급재생산의 도구가 되고 학교에 차별과 억압이 심할 때, 학교 교육과 사회 현실이 학생들에게 삶에 관한 희망을 주지 못할 때, 학교 교육에 열심히 참여한다고 해서 내가 잘 살 수 있을 거라는 믿음이 생기지 않을 때, 학교 수업이 학생들에게 동기를 주지 못하고 흥미를 유발시키지 못할 때 ― 이럴 때 학교 교육을 통해 ‘성공’할 수 있다는 희망을 가질 수 있는 학생들을 제외한 나머지 학생들은 교육 활동에 열심히 참여할 이유를 잃고 학교를 거부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현상은 나라마다 다르지만 이미 1980년대, 1990년대부터 이야기되어 왔다. 한국에서도 1990년대 후반에 집중적으로 ‘학교 붕괴’ 담론이 제기되었다. 그러나 그러한 위기의식에도 불구하고 계속되는 고용 없는 성장과 입시경쟁, 취업경쟁의 모순, 심각해지는 빈부격차는 ‘학교 붕괴’ 현상을 확산시키고 가속화시키고 있다. ‘승자독식’의 원리가 득세하고 학교는 입시․취업기관 혹은 졸업장 발급 기관이 된 현실에서 학생들이 학교 교육에 열의를 갖고 따르기를 바라는 건 어불성설이다. 나 또한, 교사들은 수업시간에 “부동산 투기나 해라.”라고 대놓고 말하고, 학생들은 성적으로 자신의 위치를 확인하고 좌절하고 체념하던, 그런 학창 시절을 보냈기 때문에 그런 학교의 현실을 조금이나마 알고 있다.


  이와 같은 ‘학교 붕괴’ 문제를 해결할 대책이 뭔지, 여기에서 딱 잘라 말하기는 어렵다. 입시경쟁 문제를 해소하기 위한 대학평준화라거나 복지정책 및 경제정책의 문제 등 여러 가지 커다란 것들이 얽혀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대안교육이나 탈학교론, 공교육 재편론 등 여러 가지 논의들이 모두 나름의 의미가 있기 때문이다. 다만 확실히 말할 수 있는 것은, 학생들에 대한 통제와 억압, 그리고 학교간 경쟁을 강화하는 것은 상황을 악화시킬 뿐이라는 것이다.

  반대로 학생인권조례 등 학생인권 보장을 위한 움직임 또한 ‘학교 붕괴’ 문제에 대처하기 위한 하나의 방법이다. 학생들이 차별과 폭력으로부터 좀 더 자유롭게 다닐 수 있는 학교를 만들고, 학생들을 위한 복지를 보장하고, 학생들이 학교 운영에 참여하면서 스스로 학교 생활의 주인이 되게 하는 것 ― 학생인권 보장이야말로 학교가 가기 싫고 믿을 수 없는 곳이 아니라 좀 더 재밌고 자발적으로 다닐 수 있는 곳으로 바뀌기 위한 최소한의 전제 조건 아닐까? 누구든 진정으로 학교 교육의 붕괴를 우려한다면, 학생인권 보장을 위한 진지한 논의와 대화를 거부해서는 안 될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