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어가는꿈

학생인권이 던지는 질문과 교사의 역할

공현 2011. 7. 18. 12:36
안양교육지원청에서 혁신학교 부장교사들 대상으로 하는 학생인권 교육에 원고로 낸 거예욤
교사들용으로 쓴 거라 좀 많이 부드럽지요




학생인권이 던지는 질문과 교사의 역할

실내화 이야기

경 기도 학생인권조례가 제정되고 서울, 강원도 등에서는 체벌금지와 '생활지도 혁신'이 한창 이야기되던 중, 올해 2월 교사들이 모이는 자리가 있었다. 교사 집담회 <학생인권조례 시대, 교사 입 열다>였다. 학생인권이 교권을 무너뜨린다고 언론들이 목소리를 높일 때,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 교사들, 그와는 다른 학교 현실을 체험한 교사들이 모여서 이야기한 자리였다.
여러 가지 경험담과 에피소드들이 나왔는데, 그 중에서 기억에 남는 이야기가 하나 있었다. 한 교사가 들려준 자기 학교의 실내화 규정에 대한 이야기였다. 사실 실내화를 신고 밖에 나가는 등의 문제는 두발규제 못지않게 학생들과 교사들이 학교에서 '전쟁'을 벌이는 이유 중 하나가 되어왔다. 그러나 경기도 학생인권조례가 시행되면서 '복장규제'를 바꾸기로 했고, 그 과정에서 그 학교에서는 실내화 단속을 그만두기로 했다. 하지만 실내화 단속을 그만두고 난 이후에 오히려 실내화를 신고 학교 밖을 출입하는 학생들은 더 줄어들었다고 한다.
물론 그냥 단속을 중단하기만 했는데 학생들의 실내화 출입이 줄어든 것은 아니었다. 학생들에게 실내화를 신고 밖에 드나들면 얼마나 위생상 문제가 있고 병균을 옮기게 되고 먼지가 나게 되는지 몇 차례 설명하고 교육한 결과였다. 실내화를 신고 드나들면 안 되는 이유를 제대로 설명하지 않고 단속하고 처벌하는 것보다, 학생들에게 그 이유를 설명하고 소통하는 것이 더 효과적이었던 것이다.


학생인권이 던지는 질문 1 - 무엇이 '문제행동'인가?

생활영역

번호

벌점(지도) 내용

점수

용의 복장

1

두발불량(규정 외 두발상태, 염색, 퍼머)

2

2

용의규정 위반(화장, 각종 액세서리 : 반지, 귀걸이, 피어싱 등)

3

3

복장규정 위반(교복 변형 개조 착용: 치마, 조끼, 바지, 브라우스, 교복 미착용 등)

5

4

교표 및 명찰 미부착

2

5

기타 규정 위반(학생용 가방, 스타킹, 겉옷 등)

1

준법

6

무단 지각(정문 08:30분 이후 등교), 수업지각,

무단 결과, 무단조퇴

2

7

무단결석(1회)/ 장기해외 체류에 의한 결석 제외

4

8

교내․외 행사 및 단체 활동 무단 불참

2

9

청소 및 주번활동에 지속적으로 불참

2

10

월담 행위, 무단외출

4

11

학생 출입 금지 장소 출입

5

12

사행성 오락(카드, 화투, 동전치기 등)

3

13

음란물 반입․탐독․시청(만화, 사진, 잡지, 비디오, 인터넷 등)

3

14

교내에서 불건전한 이성교재(포옹, 입맞춤, 무릎위에 앉기, 남여 같은 화장실 이용하기)

4

15

술, 담배 소지 및 교내 반입/음주 또는 흡연

7

16

오토바이를 타고 등교 하거나 폭주

7

예절 및 공중도덕

17

실내소란(뛰기, 공놀이, 말 타기 놀이, 고성방가, 휘바람 등)

2

18

껌․침뱉기, 오물, 쓰레기 버리기, 낙서 행위

3

19

교사 또는 어른에게 불손한 언행

7

20

실내화 및 실외화 미구분 착용

2

21

급우 또는 선후배에게 욕설, 후배에게 심부름

1

22

교내외 공공기물 훼손 및 파손

7

23

실내 음식물 관련 쓰레기 반입 및 취식보행

1

학습활동

24

수업분위기 저해

(취침, 지시거부, 늦게 입실, 껌, 과자 등 음식물 섭취 등)

3

25

수업시간 전자기기 무단 사용(mp3, 휴대폰 등)

3

기 타

26

상기 내용에 포함되지 않는 사항

2

(서울 모중학교 벌점표)

이 실내화 이야기에는 학생인권이 학교를 향해 던지는 여러 가지 질문들이 녹아 있다. 먼저, 학생인권은 "무엇이 '문제행동'인가?" 학교에 질문을 던진다. 과연 실내화를 신고 학교 밖을 출입하는 건 학생들을 처벌할 만한 '문제행동'인 것일까? 머리카락을 염색하는 것은 '문제행동'인 것일까? 학생들이 교내에서 연애를 하는 것은 '문제행동'인 것일까? 교사의 의견과 다른 자기 의견을 거칠게든 부드럽게든 표출하는 것이 '문제행동'인 걸까? 학교에 대한 비판 글을 인터넷에 올리는 건 '문제행동'인 걸까?
학교에는 분명 지나치게 많은 것들을 '문제행동'으로 규정해온 경향이 있다. 권장하거나 교육해야 할 사안에 대해서도 금지와 처벌로 일관해오는가 하면, 불합리한 규칙에 따라서 왜 '문제행동'인지 알 수 없게 '문제행동'이 되어버리고 만 것도 있었다. 심지어 학생들이 억울함을 호소하거나 부당한 처벌에 대해 항의하는 것 자체를 '문제행동'으로 규정하고, 교사의 지시에 불응한다거나 말대답을 한다는 등의 이유로 벌점을 부과하는 경우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학교가 규정하고 있는 '문제행동'의 기준이 가지고 있는 '문제점'은 많다. 예컨대 학생․청소년들의 금기로 여겨지는 '흡연' 문제만 해도 그렇다. 흡연이 건강에 좋지 않고 또 학교가 금연 구역이라는 면에서 학교내 흡연이 일단 문제행동이라고 치더라도, 과연 흡연은 그렇게 강력한 처벌과 중징계를 받아야만 하는 '문제행동'인 걸까? 많은 학교들이 흡연을 거의 학교내 폭력이나 부정행위 등과 비슷한 수준으로 처벌하고, 흡연이 3~4회 이상 적발되면 바로 퇴학이라는 학교들도 있을 지경이다. 또 다른 예로, 어떤 학교의 규정을 보면 애인과 학교내에서 손을 잡거나 포옹을 하는 행위가 약물 사용이나 도박 등과 비슷한 수위의 '문제행동'으로 처벌을 받도록 되어 있는 것을 찾아볼 수 있다. 앞서 예시한 한 중학교의 벌점기준에서도, '복장규정 위반'이 공동체 구성원들이 같이 책임져야 할 청소 활동 등에 지속적으로 빠지는 것보다도 더 많은 벌점을 받는 것을 알 수 있다. 과연 이런 기준들이 온당하다고 할 수 있을까?
학생인권을 이야기하는 일은, 이처럼 지금까지 학교가 굳게 지켜온 '문제행동'의 기준들에 대해 의문을 가지고 다시 한 번 이야기해보자고 제안하는 일이다. 인권의 기준에 맞게 폭력이나 차별 등의 '문제행동'에는 좀 더 엄격해지고, 대신에 불합리하고 인권침해적인 규칙에 따라 '문제행동'으로 취급되어왔던 것들을 '문제행동'이 아닌 것으로 바꾸자고 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문제행동'을 정하는 기준을 교사들이 일방적으로 정하지 말고 학생들과 함께 논의해가면서 민주적인 절차를 거쳐서 정하자는 것이다. '문제행동'을 단지 '행동'으로만 보지 말고 그 맥락과 이유를 같이 살피자는 것이다. 학생들을 보는 눈을 바꿀 때, '실내화 출입' 문제를 처벌해야 할 문제행동이 아니라 학생들과 소통해야 할 문제로 이해할 때, 학생들이 좀 더 존중받는 교육다운 교육이 가능해지지 않을까?


학생인권이 던지는 질문 2 - 어떻게 교육해야 하는가?

학 생인권이 던지는 두 번째 질문은 "어떻게 교육하고 소통해야 하는가?"이다. 설령 교사나 학교가 교육하고자 하는 내용과 의도가 아무리 좋은 것이더라도, 학생에게 이를 전달하고 교육하는 방식에 따라 그 효과는 달라진다. 실내화를 신고 출입하면 안 된다는 것을 단속과 처벌로 교육하려 하지 않고 이유를 설명하고 소통하고 설득할 때 더 큰 효과가 있는 것처럼 말이다. 예컨대, 학생들에게 폭력은 나쁜 것이라는 것을 가르치고자 친구를 괴롭히거나 때린 학생들을 '엎드려뻗쳐' 시켜놓고 때린다면, 과연 폭력이 나쁜 것이라는 가르침을 잘 전달할 수 있을까? 학생들이 잘못한 것에 대해 반성하길 바라는 마음이더라도, 학생들이 자발적으로 반성하는 마음에서 쓰는 반성문이 아니라 교사가 요구하는 대로 강제적으로 쓰는 반성문은 과연 교육적일까?
학생들이 교사가 하는 말을 수용하기 위해서는 서로 간에 최소한의 존중과 신뢰가 있어야만 한다. 교육학으로 말하면 '라포'라고 해야 할까. 교사가 학생을 대하는 태도에서 학생이 모욕감이나 거부감, 두려움부터 느끼고 들어간다면 이미 그 관계는 교육적인 작용이 일어나기 어려운 관계가 되어버리고 만다. 교사가 불공정한 처벌이나 대우를 한다거나 불합리한 규칙을 힘으로 강요하는 권력자처럼 보인다면 더더욱 그렇다. 인터넷을 검색해보면 넘쳐나는 학생들의 '반성문 작성 노하우' 등을 보면 그런 관계에서 강요된 반성문이 얼마나 비교육적, 반교육적일 수 있는지 확연하게 드러난다. 학교가 학생들의 소지품을 불시 검사할 때 학생들은 음주나 흡연이 나쁜 것이라는 배움을 얻을까 아니면 학교가 자신들을 범죄자 취급하고 존중하지 않는다는 모멸감을 느낄까?
또한 그동안 학교에서 '문제행동'은 단지 그 행동으로만 받아들여질 때가 많았다. 지각을 자주 하는 학생이 있다면 그 학생이 왜 자주 지각을 하는지, 아침잠이 많은지, 집이 먼지, 교통편이 불편한지, 생활습관은 어떻게 되는지 아니면 학교에 오기가 싫은 건지 차근차근 살펴보고 함께 해결하려고 하기보다는 교문에서 지각한 학생들을 떼로 세워놓고 벌을 주는 데 바빴다. 흡연을 하는 이유가 주변 친구들의 영향인지 학교가 흡연을 금지하고 단속하는 것 때문에 생겨난 반발심이나 영웅심리인지 다른 어떤 스트레스가 있거나 가정 환경의 영향이 있는지 살피기보다는 흡연 학생들을 단속하고 처벌하기에 급급했다. 법정에서라면 사람이 아니라 '행위'가 먼저겠지만, 교육에서는 '사람'이 먼저여야 하지 않을까? 학생인권을 이야기하는 것은 '문제행동'을 '행동'으로만 보지 말고 '사람'인 학생의 상황으로 보고 학생과 '대화'를 먼저 하자는 제안이다.
두려움과 배움은 함께 춤출 수 없다는 말이 있다. 대부분의 경우, 일방적인 '명령'보다는 상호적인 '대화'가 더 교육적일 것이다. 단순히 지식을 전달할 때는 꼭 그런 걸 고민하지 않아도 좋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교사가 학생들에게 '생활지도/교육'(최근에 서울시교육청 등은 '생활지도'라는 말이 일방적이고 강압적인 과정을 연상시킨다고 하여 이를 '생활교육'으로 대체하려고 하고 있다.)을 할 때, '인성/사회성 교육'을 할 때는 짚고 넘어가지 않을 수 없는 문제이다.


이만주 교사(경기 흥덕고) 입학식 할 때 아이들을 만났는데 눈에 불신과 분노가 가득하더라. 우리를 어떻게 대할 것인가 의심을 가진 거다. 이런 아이들이 학교와 선생님들을 신뢰하게 만드는 게 가장 큰 과제였다. 그래서 제일 먼저 학생들을 제약하는 요소로 작용하던 생활규정을, 용의복장규정을 빼고 학생들의 인권, 권리를 보장 쪽으로 개정했다. 그리고 고등학교이다 보니 진학의 문제나 학력의 문제가 역시 주요 관심사 될 수밖에 없는데, 우리가 선택한 건 ‘진학문제가 진로문제’라는 거다. 이 아이가 고등학교 과정에서 어떤 자기 비전을 갖고 또 자존감을 지키게 할지 고민했다. 그리고 학교에서 지속적으로 진로교육이나 성취를 높이는 역동적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투입하려고 했다. 그럴 때 아이들은 선생님과 학교가 진짜 우리를 생각해준다는 믿음 갖고 아이들 내면의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다. 그리고 이런 과정 속에서 그들의 인권이 보장되고 자존감도 회복된다.
(참세상, 「학생인권조례 시대, 교사의 소통 방식은?」(2011-02-17))

용인 흥덕고등학교 공동체 생활규범
원칙 학생을 인정하고 존중한다/ 공동체가 해야 할 것과 하지 말아야 할 것을 분명히 한다/ 참여, 소통, 희망, 신뢰의 배움 공동체 가치를 구현한다.

각 구성원의 생활원칙
 교사 : 체벌을 절대 하지 않는다. 욕설, 비속어, 증오발언 등 학생인권을 침해하는 어떤 행위도 하지 않는다. 수업에 최선을 다한다. 한 명의 학생이라도 배움에서 소외되지 않도록 한다 등
 학부모 : 내 아이 중심에서 벗어난다. 학교교육과 가정교육이 연계성을 가지도록 한다 등
 학생: 자신을 가꾸는 데 게을리하지 않는다. 타인을 존중하고 배려한다. 함께 성장한다(기다리기보다는 협조를 청한다/ 도와주기보다는 함께 해결한다)

인권친화적 학생생활지도 방향
 학생생활인권규정 마련의 민주성, 합리성 추구

유의사항
 – 학생인권 존중 및 교사-학생 간 신뢰 구축 : 순간 감정 조절하기/ 교무실 호출 안 하기(벤치, 함께 걷기 등 활용)/ 무릎 꿇리기 안 하기/ 증오발언 안 하기/ 다수 앞에서 모욕주지 않기
 - 지도 전에 먼저 상담하기


물 론 이런 시도가 처음부터 성공적인 것은 아니다. 그동안의 '역사'가 있기 때문이다. 학생인권에 중점을 둔 혁신학교인 용인 흥덕고등학교의 교사 역시 처음에 학생들을 만났을 때 학생들의 불신과 의심, 분노 때문에 어려움이 있었음을 호소하고 있다. 그동안 학생과 교사 사이에 그러한 존중과 신뢰가 부족한 경우가 너무 많았기 때문에, 학교와 교사에 대해 불신을 가지고 있는 학생들은 학교가 변화하려고 하더라도 여전히 학교와 교사를 불신하고 삐딱선을 탈 수도 있다. 그동안 자신들을 때려왔던 교사에게 체벌금지 됐는데 정말 안 때릴까? 하는 불신의 눈초리를 보내며 "때려보세요." 하며 인내심을 시험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그 모습은 학생인권 존중의 결과가 아니라, 그동안 학생들과 교사들 사이에 존중과 신뢰가 형성되지 않아왔던 역사의 결과물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그걸 극복하기 위해 필요한 건 다시 과거로 돌아가는 게 아니라, 이제는 존중과 신뢰가 가능하도록 노력하는 것이다. 학생인권은 학생과 교사 간에 최소한의 존중과 신뢰가 싹트기 위해서 반드시 지켜져야 하는 조건이다.


교육 현실의 틈바구니에서

학 생인권은, 좀 더 정확히 말하면 학생인권조례는, 만병통치약이 아니다. 당연한 이야기다. 우리의 교육 현실은 많은 어려움들이 얽혀 있고, 학생인권조례가 그런 어려움들을 모두 해결해줄 수 있는 답을 가지고 있지는 못하다. 입시제도의 문제, 그밖에 여러 교실환경의 문제(학생인권조례는 교육환경 개선 또한 '인권'이라고 보고 보장하도록 하고 있으나 중앙정부의 의지와 예산 편성에 좌우될 수밖에 없다.), 그리고 "수업 중에 떠들고 자는 애가 수업에 참여하게 할 방법" 같은 것들이 그렇다.
그리고 학생인권조례 이전에도 그런 것에 대한 뾰족한 방법은 없었다. 학교가 학생인권을 노골적으로 무시한다고 해서 입시제도의 문제에 대해 어떤 대처방안을 갖고 있던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입시제도의 문제를 심화시키는 데 기여했을지언정. 또한 수업 중에 자는 학생을 체벌한다고 해서 그 학생이 수업에 흥미를 가지고 참여하게 되는 것은 아니었다. 그저 눈에 보이는 형태로 자거나 떠드는 걸, 눈치를 보면서 덜하게 될 뿐.
학생인권조례에는 분명히 한계가 있다. 그리고 학생인권조례가 해결하지 못하는 문제 중에는 어떤 것은 수업 방식을 바꿈으로써 좀 나아질 수도 있고, 어떤 것은 교육 제도가 바뀌어야 해결될 문제가 있으며, 또 어떤 것은 단순히 교육 제도가 아니라 경제 구조나 불평등의 문제가 개선되어야만 해결의 실마리가 보이는 문제도 있다. 입시제도에서 '승자'가 될 희망이 별로 없는 학생들, 학교를 졸업하더라도 불안정한 일자리와 불안한 미래만이 기다리고 있는 학생들, 가정에서부터 불안정한 삶을 살고 있는 학생들, 학교 수업이 시간 낭비이고 지루하기만 한 학생들의 문제가 대표적이다. 그런 현실들은 학교 현장에서 총체적인 '교육불가능' 상황을 낳고 있다. 이른바 '교실붕괴'는 학생인권 보장이 아니라 그런 식으로 학생들에게 학교 수업이 무의미하고 괴로운 일이 될 때 일어나는 것이다. 학생인권조례는 학생들이 좀 더 학교 생활을 즐거워할 수 있도록, 학교에 좀 더 신뢰를 가질 수 있도록 애쓰고 있다는 점에서 오히려 '교실붕괴'를 막으려고 하는 쪽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 그 모든 문제들이 해결될 리 없다.
그 래서 교사들은 더 많은 것을 요구해야 한다. 그리고 요구할 수 있어야 한다. 학생인권을 놓고서 안 그래도 지금도 힘들다고 볼멘소리를 하는 대신에, 그 힘든 걸 정부가 사회가 같이 해결해줘야 하며 그걸 해결하기 위해 필요한 게 뭔지 내세울 수 있어야 한다. 얼마 전에 교사들을 교육할 기회가 또 있었는데, 그 자리에서 학생인권 이야기를 하기 전에 교사로서 학교 생활에서 필요하다고 느끼는 걸 먼저 적고 이야기해보자고 했더니 "두발자유화금지"가 교사로서 필요하다는 답들이 나왔다. 교사로서 교육하는 데 필요한 게 두발자유화금지라니, 지나치게 소박할 뿐더러 뭔가 핀트가 어긋나 있는 느낌이다. 교사들이 더 많은 자율성과 권한을 가지고 더 많은 것을 요구할 줄 알아야 하지 않을까? 혁신학교도 그래서 만드는 것이 아니었던가? 이런 관점에서 볼 때, 교권과 학생인권은 상보적 관계가 된다. 국제적으로도 교사의 역할이 크다는 것은 공인된 것이다.

"교사는 인권에 기반한 학교 시스템을 갖추는 데 핵심적인 역할자이다. … 어떤 교육 개혁도 교사의 능동적인 참여와 주인됨 없이는 성공할 수 없다. 모든 단계의 교육체계에서 교사는 존중받고 적절한 보상을 받아야 한다."
(유네스코 세계교육포럼 채택, 다카르(Dakar) 행동계획 69-70항)

학 생인권에 관한 토론회에서 한 교사가 이런 이야기를 했다. "지금 교사의 역할은 둘 중 하나다. 학생의 편에 설 것이냐. 부조리한 사회(제도)의 편에 설 것이냐. 그 둘 사이에는 깊은 골짜기가 있다." 그동안 대부분의 교사들은 학생의 편보다는 부조리한 사회(제도)의 편을 선택해왔다. 아니, 적어도 학생들의 입장에서 볼 때는 그런 교사들이 더 많아 보였다. 인터넷에 떠도는 어느 학생들의 비유처럼, 교사가 감옥의 '간수' 역할을 하는 것처럼 보였다. 때문에 학생인권을 이야기하는 것은, 단순히 학생인권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다. 더 멀리 내다봐서 교사들에게, 학생들 편이 되어달라고 부탁하고 있는 것이다. '간수'가 아니라 학생들의 옹호자, 지원자가 되어달라고 하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