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설픈꿈

기차에 대한 단상들

공현 2008. 1. 30. 23:48

기차에 대한 단상들

 2005.07.


KTX에 탈 때면 꼭 역방향석에
 ‘이제 돈으로 시간을 사는 시대일까.’ 역에서 KTX표를 사며 그런 생각을 했다. 그것이 특별히 나쁘다거나 좋다거나 하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그저 ‘그럴 수도 있지.’ 정도로 넘길 뿐이다. KTX를 타고 빠르게 다니는 것에 좋은 점도 있고 안 좋은 점도 있을 터.
 KTX가 시끄럽고 의자는 불편하니 어쩌니 하고 또 어느 정도는 사실이긴 하지만, 내가 KTX에서 좋아하는 것이 하나 있으니 바로 역방향석이다. 내가 역방향석에만 타는 것은 비행기만큼 널찍하고 빙글빙글 돌아가는 새마을호 좌석에 익숙해진 사람들이 역방향석을 꺼려서 역방향석 좌석이 곧잘 남는 탓도 있지만 역방향석에 앉아서 뒤쪽을 보며 가는 것을 좋아하기 때문이다. 어쩌다가 정방향석을 사더라도 역방향석의 빈 좌석에 가서 앉을 정도다.
 대개 우리는 앞을 보며 살아야 한다. “현자는 앞을 보면서 뒤를 생각한다.”고들 하지만 나는 한꺼번에 두 방향을 보며 살아갈 만한 능력이 없는지라 앞을 보며 걸을 때는 종종 뒤 같은 건 잊어버리고 살아간다. 잠깐 멈춰서 있을 때면 뒤를 돌아보다가 문득 한숨지을 뿐이다. 그래서 평소와 달리 오래오래, 달려가면서도 지나쳐온 뒤쪽을 오래오래 바라볼 수 있는 역방향석을 좋아한다.



입석 승객의 무소속감
 무궁화호에 탈 때면 곧잘 서서 가게 된다. 입석을 끊어서 그럴 때도 있고, 좌석을 끊었어도 서서 갈 때가 있다. 좌석을 끊어서 서서 가는 경우는 보통 내 자리에 누군가 다른 사람이 앉아 있을 때다. 그럴 때면 도저히 비켜달라고 말할 수가 없다. 숫기가 없어서 그렇다고 말할지도 모르겠지만 내가 저 사람 대신 서서 간다고 생각하면 별 불만은 생기지 않는다. 그저 당연하다는 듯이 서서 갈 뿐이다.
 객실과 객실 사이의 통로는 입석 승객들의 자리다. 가방을 짊어진 사람, 아이를 앉고 있는 사람, 술냄새가 나는 아저씨... 이런 사람들이 문 앞 계단에 앉아 있기도 하고, 마냥 화장실 앞을 서성이기도 한다. 환한 불이 켜 있고 히터 아니면 에어컨이 돌아가는 저 객실에 들어가지 못하는 사람들. 문 하나를 두고 공기조차 다르다. 통로의 공기에는 소음과 묘한 냄새가 가득 차 있다. 객실보다 객실 사이의 통로가 더 만원이다.
 그 ‘사이의 무소속’이 최고조에 달하는 곳은 바로 열차와 열차가 부딪는 곳, 검은 고무가 살을 비비는 곳, 그 틈새로 아래쪽 철로와 바깥 풍경이 언뜻언뜻 보이는 바로 그곳이다. 그 위에 서 있으면 발을 타고 전해지는 기차의 진동이 그대로 불안으로 이어진다. 어디에도 소속되지 못한 채 어중간하게, 불안한 발판 위에 서 있는 불안과 공포, 그리고...
 사람들은 그 불안한 곳을 지나쳐야할 경유지로 삼는다. 입석 손님들도 그곳은 지나칠 곳이다. 하지만 나는 그 위에 서 있곤 한다. 불안을 느끼며. 씁쓸함을 느끼며. 내가 살아가는 곳이란 어쩌면 그와 비슷한 불안한 발판, 떠있는 듯 흔들거리는 발판 위라는 점을 실감할 수 있다. 그것은 일상이란 게 얼마나 불안정한지 알아버린 사람의 자조다.



밤차, 창밖
 나는 기차를 탄다고 하면 보통 밤차를 타게 된다. 낮에 기차를 타는 일이 드물다.
  밤차에서 창문 밖을 보려드는 사람은 자신의 얼굴과 마주하게 된다. 기차 안은 밝은데 그 밖은 어두운 탓에 빛이 반사되어 버리는 것이다. 해서 문득 지어보았던 졸작이 창문이라는 녀석으로, 결국 우리는 바깥(다른 사람)을 보려고 하다가 자신의 얼굴만을 마주하게 된다는 이야기였다.
 어두운 창밖의 세상에서 보이는 것은 불빛들뿐이다. 외딴 길 가로등의 불빛. 어느 집의 불빛. 도시의 불빛. 기차가 도시를 벗어난 후 뒤를 보면 하늘 한 구석이 희미하게 밝은 것을 볼 수 있어서 그렇게 나는 불야성(不夜城)이라는 단어를 실감했다.
 밖을 보려면 좀더 마음속을 어둡게 해야 함을 깨닫는다. 불이 밝지 않은 객실 밖으로 나가 문에 달려있는 창문에 이마를 기대고 바짝 붙어 선다. 머리에 덜컹거리는 느낌이 전해진다. 문득 밤인데도 선로 곁에 피어서 휘청거리는 꽃들 몇이 눈에 잔상을 남기며 지나친다. 기차는, 그 꽃들을 거들떠보지도 않는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