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교를 거부하고 나서
하지만 촛불은 그렇게 식어들었고 나에게 새로운 활동이 다가왔다. 그때 나는 중학교를 다니고 있던 평범한 중학생이었고, 일제고사를 반대한다는 것은 오히려 거부하기 쉬운 위치에 있었다고도 말할 수 있겠다. 그 지역에서 초등학교를 나오지 않았고 중학교 3학년 애매한 시점에 전학을 간 나는 공부에 대한 의욕도 없고, 내가 왜 이런 걸 주구장창 암기식으로 외워야 할까 지루함의 끝을 달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막상 등교거부라는 행동을 할 때엔 겁이 나서 선생님에게 병결 처리를 받고 그렇게 기자회견장으로 갔다.
잘 살고 있었다
나를 설득할 수 없었기에 선생님도 설득할 수 없었다. 그래서 한마디도 못하고 집에 오니 여러 가지 생각들이 들었다. 내가 보고 있는 것(즉 내가 경험한 것)이나 나와 만나는 사람들을 보니까 사실 학교를 다니지 않아도 잘 살고 있는 것이었다. 자기가 생각하는 나름의 신념이랄까 가치 있는 것이랄까 그걸 두고 움직이고 행동하려는 모습들이 나는 잘못된 것, 이 시기에 해서는 안 될 것이라고 생각되지 않았다.
즉 선생님이 나에게 던진 말은 너도 똑같이 경쟁해서 남들보다 더 높은 위치(권력자)가 되어 사회를 바꾸라는 말인 건데 나는 이 말에 동의하지 않는다. 이것에 대한 이야기는 너무 길어질 것 같으니 이만 줄이지만 선생님이 내던진 이 말 한마디가 당시 나에게 대학을 선택하는 데 있어서 많은 영향을 준건 사실이다.
사회의 시선들
하지만 대학을 안 간다는 것은 여러모로 이 사회 안에서 자기 자신에게 무책임한 결정으로 보는 시선이 있고, 대학을 안 간다는 것이 배움 자체를 포기하는 것이라고 연상시키는 것 같은데 어찌 보면 그러한 연상과 시선들은 아마 대학을 가지 않는 것은 곧바로 노동현장으로 간다는 그 다른 경로가 존재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공부 못하면 공장 가서 일해야 한다(공순이 된다)’거나 ‘기술이라도 배워야 먹고 살 수 있다’거나 하는 말들이 이미 이런 경로를 전제하고 있다. 돈 주고 공부하기 싫으면 기술이라도 배워서 사회를 유지시키는 노동을 해야 살아남을 수 있다는 인식이 그것이다.
내가 대학을 갈 수 없었던 이유 중 하나는 등록금을 낼 형편도 안 되며, 학자금을 빌리더라도 갚을 처지도 되지 못하는 형편 때문이었다. 그렇게 빚쟁이로 몰락해버리면 도저히 나 자신을 건져낼 수 없을 것 같았다. 그리고 또 하나는 수능이라는 시스템의 부당함에서 온다. 그것은 정말로 자기가 공부한 만큼 성적이 나온다는 환상과 무관하다. 소위 스카이(SKY)라고 불리는 상위권 대학을 가는 사람들의 대부분은 외고나 특목고를 다니고 강남과 청담 일대에 있는 비싸고 질 높은 학원들에 다닌다. 이미 특권이 주어지는 것이다.
집에 돈도 없고 ‘빽’도 없는 나 같은 사람은 일찍이 이 사회의 대학진학률이 80퍼센트를 넘어가고 있지만 포기하는 게 더 빠를 지도 모르겠다. 이쯤 되면 나에게 대학거부란 거부가 아니라 못 가는 걸지도 모른다. 하지만 ‘너네가 못 가는 걸 왜 거부란 말을 쓰며 거창하게 그러냐?’라는 말에는 분노가 치밀어 오른다. 난 지금의 대학, 내가 선택할 수 없는 대학을 원하는 게 아니다. 하지만 이것은 나의 문제만이 아니기에, 나와 같은 사람들이 너무나도 많기에, 불가능이라고 생각하는 것들을 요구해보려고 한다.
불가능한 것을 요구하자
대학까지 무상교육을 바라며 대학을 가지 않아도 비정규직으로 전락하지 않는 그런 삶을 상상할 수 있으면 좋겠다. 더 나아가 돈을 받으며 공부할 수 있는 세상을 요구하면 좋겠다. 나는 이제 사람들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하는 것을 요구하면 좋겠다. 그렇게 되기 위해서 나 또한 발 빼고 있지는 않을 것이다. 만약 그렇게 된다면 나도 나의 목소리를 애써 용기내지 않더라도 당연하게 낼 수 있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대학을 가지 않더라도, 못 가더라도 온전하게 살아남을 수 있는 공존할 수 있는 세상을 바란다. 그러기 위해 행동했고, 앞으로도 당신들과 직접행동으로 이 사회에 문제를 던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