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어가는꿈

치안, 정치, 청소년인권운동, 학생간폭력

공현 2012. 1. 6. 15:59

치안, 정치, 청소년인권운동, 학생간폭력


철학자 자크 랑시에르는 ‘치안’과 ‘정치’를 구별하며 대립적인 개념으로 정립합니다. (저도 번역된 책 하나 안 읽고 소개하는 글들만 읽은 잘 모르는 자크 랑시에르의 개념들을 여기서 무리해서 설명할 생각은 없지만... 감히 자크 랑시에르의 논의의 중요한 부분을 다 생략해버리고(?!) 개략화해서 이용해보겠습니다.) 자크 랑시에르에 따르면 치안은 이미 합의된 것 속에서 공백, 보충, 불일치를 제거하는 것이고, 정치는 지금의 사회와는 불일치를 일으키는, ‘몫 없는 자들’이 자신의 몫을 주장하고 보충하도록 하는 것입니다. 더 거칠게 요약하면 치안은 현재 사회의 ‘합의’ 속에서 지금의 사회를 유지하는 작용이고, 정치는 ‘불일치’를 일으키며 지금의 사회를 변화시키는 작용입니다.


자크 랑시에르는 인권 역시 마찬가지 관점에서 봅니다. ‘성문화된 인간의 권리’로부터 배제된 사람들이 자신들 또한 인간이며 그 권리가 자신의 권리임을 주장할 때, 그 실천과 불화 속에 인권의 의미가 있고 그러므로 인권은 곧 정치 문제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랑시에르는 인권을 이렇게 정의합니다. “인권은 자신들이 가진 권리를 가지지 않고, 자신들이 갖지 않은 권리를 가진 자들의 권리”라고.


학생인권조례 제정 등을 포함한 청소년인권운동 역시 그러한 관점에서 ‘정치’라고 할 수 있습니다. 청소년인권운동은 인간의 권리로 성문화되어 있는 것들이 어째서 현실에서는 청소년들에게 보장되지 않는지 질문하는 데서 출발합니다. 청소년은 어째서 가정이나 학교에서 폭력을 당해도 그것을 폭력이라 부를 수 없지? 청소년은 어째서 자기 사생활의 자유를 제대로 보장받지 못하지? 청소년은 어째서 학교 운영 같은 의사결정 과정에 참여할 수 없지? 청소년은 어째서 공부해야만 하는 존재로만 생각되고 놀 시간도 여가도 제대로 가지지 못하지? 이처럼 ‘미성숙한 존재’로 규정당하고 사회적 합의의 과정에서 배제당한 청소년들이 권리를 주장하며 사회의 변화를 요구하는 것이 청소년인권운동의 본질이라고 할 수 있으며, 그러므로 청소년인권운동도 분명 ‘정치’의 일종입니다.


그렇다면 최근에 집중적으로 언론의 조명을 받고 있는 소위 ‘학교폭력’ 문제, 더 정확한 용어를 사용한다면 ‘학생간 폭력․차별․괴롭힘’(너무 기니까 앞으로 그냥 ‘학생간 폭력’이라고 부르겠다.)은 청소년인권운동의 문제일까요? 결론부터 말한다면 반은 그렇고 반은 그렇지 않습니다. 우선 ‘학생간 폭력’은 이미 사회적으로 합의된 문제인 것처럼 보입니다. ‘학생간 폭력’은 폭력이고 범죄이며 근절되어야 한다는 것이 말이지요. 그리고 ‘학생간 폭력’에서 가해자가 처벌을 받는다거나 하는 과정 역시 이미 사회적으로나 제도적으로나 합의되어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즉 ‘학생간 폭력’에 국가․사회가 대처하는 것은 현재 합의된 사회를 유지하기 위한 ‘치안’ 활동이며, 정치와는 반대되는 활동이고, 청소년인권운동의 영역이 아닙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학생간 폭력’에는 합의되지 않은 부분들, 불일치가 존재합니다. 그것은 ‘학교폭력’이라는 명명에 대한 문제제기에서부터(“왜 ‘학교폭력’은 ‘학교에 의한 폭력’이나 ‘학교에서 일어나는 폭력’이 아니고 ‘학생들에 의한 학생에 대한 폭력’만을 뜻하는가?”), ‘학생간 폭력’의 피해자가 실질적으로는 제대로 된 보장을 받지 못하고 있다는 것(학교가 은폐하는 문제, 피해에 대한 구제의 미흡함, 그밖에 학생간 폭력 사건에 대한 대응 방식이나 관행의 문제점 등), 또는 ‘학생간 폭력’ 중에서도 장애․성소수자․이주민․경제력 등 다른 사회적 차별의 요소가 포함된 경우들, 그리고 ‘학생간 폭력’의 성격을 규정하고 대응하는 방식에 대한 문제 등에까지 이르는 다양한 쟁점들을 가리킵니다. 그러한 쟁점들은 초중고등학생들이나 청소년들 일반의 사회적 조건과 권리 문제와 연관되어 있거나, 또는 그 안에서도 다시 또 다른 소수자인 이들이나 폭력 피해자들의 권리 문제와 연관되어 있기 때문에 정치의 영역에 속합니다.


좀 더 부연하자면 국가가 ‘학생간 폭력’ 문제를 ‘치안’의 문제로 접근하고 있다면, 청소년인권운동의 차원에서는 비교적 ‘학생간 폭력’ 문제에서 ‘정치’적 문제들에 좀 더 초점을 맞추고 있다는 것입니다. 또한 청소년인권운동은 ‘학생간 폭력’의 문제가 치안의 방식만으로 해결 불가능하며 (치안 역시 필요하지만) 정치의 영역에서 해결되어야 하는 부분이 있음을 역설합니다. 조악한 비유를 들자면, 예를 들어 절도 등 ‘생계형 범죄’가 증가한다면 국가는 그 범죄를 제거하고 처벌하고 대응하는 데 중점을 둘 것이고, 좌파나 빈민운동 단체 등에서는 이 문제에 대해 구조적 해결책(부의 재분배나 빈곤층, 노동자계급의 권리 문제 등)을 이야기할 텐데, 그와 대충 비슷한 차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냥 ‘학생간 폭력’ 문제가 모두들의 머릿속을 어지럽히는 듯해서 ‘학생간 폭력’ 문제를 접할 때마다, 어줍잖게도 자크 랑시에르의 ‘치안’과 ‘정치’ 개념이 떠오르는지라 적어보았습니다. ^^;; 운동 단체에 ‘치안’적 역할을 요구하는 사람들 때문에 짜증날 때가 있는가 하면, ‘정치’ 차원에서만 학생간 폭력 문제에 접근하는 게 너무 공허해보일 때도 있지요. 사안을 정리하는 데 좀 더 도움이 되길 바라면서;


그리고 학생간 폭력 관련해서 (개인적으로) 좀 더 구체적인 이야기는 다시 정리해보겠습니다. 저 말고도 다른 활동가 분들도 좀 더 구체적으로 정리해서 올리고 논의를 할 수 있으면 좋겠네요.



(매우 짧은 지식으로 쓴지라 호...혹시 자크 랑시에르 공부하신 분께서 태클을 걸어오셔도 뭐라 할 말이 없는 글이니;; 랑시에르의 개념 자체을 가지고는 '지적질'해주시면 겸허히 받아들입니다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