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처럼 '자치'가 이뤄지질 않으니, '참여'는 꿈도 꿀 수 없는 일이다. 초중고 학생들이 학교 운영에 동등한 주체로서
실질적으로 참여할 길은 거의 전무하다. '노동자들의 기업 경영 참여'와 비교해보면 어떨까. 노동조합은 '단체협약' 등으로 경영에
참여할 수 있으며, 단체 행동을 통해 압력을 행사할 수 있다. 노동계나 과거 민주노동당은 노동자들의 경영 참여가 가능하도록 해야
한다고 지속적으로 주장해왔고, 최근엔 민주통합당에서도 "노동자경영참가법"을 논한다. 비교적 사적 성격이 강한 기업에서도 이럴진대,
공교육의 장 학교에서는 학생들의 학교 운영 참여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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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이 속한 공동체의 의사결정에 대해 알고 참여할 권리, 민주주의의 권리는 인권이다. 예컨대 내가 사는 동네에서 지자체가
공사 하나를 하더라도 나는 그 일에 대해 알고 의견을 내고 참여할 권리가 있다. 민주주의는 바로 이렇게 생활에서부터 이뤄져야
한다. 학교에서부터 이러한 권리를 너무나 당연하게 박탈당하기 때문에, 우리는 그런 권리가 있다는 것도 잊고 사는 것 아닐까?
학교의 민주주의 수준은 한국 사회의 민주주의 수준과 직결되는 듯하다. 이럴 때는 루소의 말이 떠오른다. "국민들은 투표할 때만
주인이 되고, 투표가 끝나면 노예가 된다." 그런데, 아뿔싸. 청소년․학생들에게는 사실, 투표할 권리조차 제대로 없다.
대표적인 게 이 두 문단... 실린 것과 비교해보시라;
담당 기자의 잘못이라기보다는, 애초에 분량 조절에 실패한 내 잘못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그렇지만 기자분이 전화해서 "예시로 든 것 같은 걸 좀 줄이겠다"라고 했을 때는 난 학생회 탄압 사례 같은 걸 좀 줄일 줄 알았지... 저 잘린 부분은 '예시'가 아니지 않나염...
다음 호에는 짧고 간결하게 확실하게 써야겠다.
학생회와 노동조합과 민주주의
나는 초중고등학교 학생회를 곧잘 "노동조합"에 비교하곤 한다. 실제로 학생회는 영국 등에서는 "Student Union"이라고
불린다. 즉 노동조합(Labor Union) 같은, 구성원들의 권익을 대변하기 위한 조합인 것이다. 학생회를 "Student
government"라고 하기도 하는데, 학생 정부라는 뜻이 된다. 즉 학생회란 학생들의 뜻을 민주적으로 모아서 학생들의 권익을
위해 활동하는, 학생들의 조합이자 정부인 것이다.
자치도 참여도 없다
그런데 한국에서
학생회는 구성 과정에서부터 뭔가 이상하다. 학생회장 선거에 출마할 때, "품행이 방정하고 타의 모범이 되는 자"여야 한다는 규정을
대개의 학교들이 가지고 있으며, 교사 추천서를 요구하는 학교들도 많다. 심지어 내신 성적이 상위 몇% 이내여야 한다는 따위의
기준을 둔 학교들도 있다. 노동조합으로 치면 노조 위원장 선거에 출마하기 위해서는 "근무 태도가 성실한 자"여야 하고, 기업
이사의 추천서를 받아야 하고, 근무 성적이 상위 몇 % 이상이어야 하는 셈이다. 노동조합의 간부를 뽑는 데 이런 식으로 간섭할
수는 없는 법이고, 그런 식으로 한다면 '어용 조합'이 되기 십상일 것이다. 그런데 초중고교 학생회에서는 당연한 일인 것처럼
여겨지고 있다.
초중고등학교 학생회의 자치 현실은 처참하다. 학생회 회의 안건을 교사가 자르는 사건, 학생회에서 신문을 발간하려고 했는데
제지당한 사건, 학생회 부회장이 강제 자습에 반대하는 서명운동을 했단 이유로 징계받고 부회장에서 '잘린' 사건, 학칙 개정을
위해 학생회에서 설문조사를 하려는데 교사가 불허한 사건 등 매년 탄압 사례들이 끊이질 않는다. 학생회에 권한이 없으니, 학생들도
학생회를 전혀 의미 있게 생각지 않는 지경에 이르렀다. 결국 대학 입시에서 스펙으로 삼기 위한 사람들의 친목모임이 되어버리는
경우도 있고, 학생회에서 나서서 교장이나 교사들 편을 들며 선도부 역할을 하는 곳들도 있다.
이처럼 '자치'가 이뤄지질 않으니, '참여'는 꿈도 꿀 수 없는 일이다. 초중고 학생들이 학교 운영에 동등한 주체로서
실질적으로 참여할 길은 거의 전무하다. '노동자들의 기업 경영 참여'와 비교해보면 어떨까. 노동조합은 '단체협약' 등으로 경영에
참여할 수 있으며, 단체 행동을 통해 압력을 행사할 수 있다. 노동계나 과거 민주노동당은 노동자들의 경영 참여가 가능하도록 해야
한다고 지속적으로 주장해왔고, 최근엔 민주통합당에서도 "노동자경영참가법"을 논한다. 비교적 사적 성격이 강한 기업에서도 이럴진대,
공교육의 장 학교에서는 학생들의 학교 운영 참여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
초중고교 학생회의 권리를 요구해온 역사는 결코 짧지 않다. 2000년대엔 학생의 학교운영위원회 참여 요구, 학생회 법제화
운동 등이 이어졌다. 1980년대 중고생들은 "대통령부터 반장까지 직선제로!"라는 구호를 내세우며 투쟁하여 학생회 직선제를
이뤘다. 1920년대도 항일독립운동을 하던 고등학생들도 자치권, 학내 언론․출판․집회․결사의 자유, 직원회에 학생 대표 참가 등을
요구했다. 그러나 지금도 교육계에선 이를 절대 받아들일 수 없다는 분위기가 강하다. 경기, 광주, 서울 등지에서 학생인권조례가
제정되고 학생들의 자치권과 참여권을 조금이라도 보장하려고 하자, 교육부는 아예 대놓고 제동을 걸기까지 한다. 독일, 핀란드 등
선진국에서는 학생회의 자율성 보장과 학생들의 학교 운영 참여가 자연스러운 일인 것에 비교해보면 창피한 노릇이다.
학교 민주주의는 사회 민주주의로 직결
자신이 속한 공동체의 의사결정에 대해 알고 참여할 권리, 민주주의의 권리는 인권이다. 예컨대 내가 사는 동네에서 지자체가 공사
하나를 하더라도 나는 그 일에 대해 알고 의견을 내고 참여할 권리가 있다. 민주주의는 바로 이렇게 생활에서부터 이뤄져야 한다.
학교에서부터 이러한 권리를 너무나 당연하게 박탈당하기 때문에, 우리는 그런 권리가 있다는 것도 잊고 사는 것 아닐까? 어쩌면 학교의
민주주의 수준은 한국 사회의 민주주의 수준과 직결되는 듯하다. 이럴 때는 루소의 말이 떠오른다. "국민들은 투표할 때만 주인이
되고, 투표가 끝나면 노예가 된다." 그런데, 아뿔싸. 청소년․학생들에게는 사실, 투표할 권리조차 제대로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