흘러들어온꿈

이방인 번역 논란, 출판사와 역자 등의 태도 변화를 바라며

공현 2014. 5. 21. 02:45





일전에 새움출판사의 『이방인』 이정서역본의 논란에 대해서

http://gonghyun.tistory.com/1057 이런 관전평을 남겼던 적이 있습니다.



이후 더 진척된 여러 가지 상황들을 종합해서 역시 한 독자로 의견을 적고자 합니다.






이정서씨의 『이방인』 번역(또는 해석)에 관한 주장은 몇 단계, 몇 갈래로 나눠서 분석해볼 수 있습니다. 크게 논쟁이 되었던 것 중에 하나의 예를 들어보면

   ① 『이방인』에서 레몽의 애인은 무어인("Mauresque")이라고 나오는데 이는 아랍인과는 인종적으로 다른 것이며 따라서 둘은 혈연관계의 남매일 수 없다. 둘은 실은 비밀 애인 관계인 것이다. (이른바 '기둥서방'설)

   ② 왜 다들 ①과 같은 해석을 도출하지 못했냐 하면, 그것은 김화영씨 등의 "오역" 때문이다. 오역 때문에 한국인들은 지금까지 이런 점을 눈치채지 못하고『이방인』을 잘못 이해해왔던 것이다.


(예컨대 이런 글에서 이정서씨는 반복해서 이를 "김화영의 오역으로 인해" "김화영 번역의 이미지" 등의 표현을 쓰고 있다.http://saeumbook.tistory.com/424 )


(새움 출판사 측이 종종 글을 수정하거나 지우곤 하기 때문에 부득이하게 캡쳐를 첨부해둡니다.)



이 둘은 상당히 다른 층위입니다. 이정서씨든 어느 누구든, ①이라고 『이방인』을 이해하고 해석할 수야 있습니다. 그런 주장을 내놓을 수도 있습니다. 그 해석이 얼마나 설득력 있느냐와는 별개로 말입니다.


그러나 다른 한국인 독자들이 ①을 눈치채지 못하고 '오해'해온 것이 '번역' 때문이었다고 주장하는 것은 또 다른 차원의 문제인 것이며, 또 이는 다른 언어권 또는 프랑스어를 쓰는 독자가 이를 어떻게 이해하느냐와 교차 검증해볼 수 있는 문제인 것입니다.


그리고 이미 여러 프랑스인들, 심지어 카뮈를 연구하는 프랑스인들마저도 ①의 해석에 동의하지 않는다는 것이 드러났습니다.

indifference님과 고마해라님 등이 프랑스의 카뮈연구회에 문의하여 답변을 받아냈고, 여기에서 카뮈연구회 측 역시 『이방인』에 등장하는 '아랍인'이 레몽 전 애인과 혈연관계인 남매라는 의견을 밝혔기 때문입니다.


"첫 번째 쟁점은 명백하다고 봅니다. 아랍인들 중 한 명이 레몽 옛 정부의 남자 형제입니다. 텍스트 어디에도 그 "무어 여성" 외에 다른 무어인이 특정되어 등장하지 않습니다. 카뮈는 그 아랍인에게 "정부"나 "연인"이 있을 수 없다는 점을 아주 잘 알았을 것입니다!"

(그 자세한 과정은 여기서 보시기 바랍니다. http://indindi.egloos.com/7134167   http://indindi.egloos.com/9001556


저는 굳이 카뮈연구회의 '권위'에 기대어 이정서씨의 '해석'이 틀렸음을 인정하라고 하고 싶진 않습니다. 그러나 적어도 카뮈의 이방인을 꼼꼼하게 읽은 프랑스인들 역시 '기둥서방'설을 부인한다는 것은, 이정서씨의 ②번 주장이 틀렸다는 것만은 아주 충분하고도 남을 만큼 확실하게 증명한다고 생각합니다.

즉, 해석의 차이는 번역/오역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닌 것입니다.


이는 '정당방위'설에 대한 논란 등에서도 마찬가지로 적용될 것입니다.






사실 이정서씨와 새움출판사측은 이미 이런 문제들이 '번역의 문제가 아닌 해석의 문제'임을 인정한 적이 있습니다.


"해석의 여지를 남겨두기 위해서이기도 하다. 난 해석자가 아니고 번역자이므로"

"그런 것들은 해석의 문제이지 번역의 문제는 아니라고도 하십니다."



( http://saeumbook.tistory.com/424 에서)


(http://saeumbook.tistory.com/440 의 댓글에서)


물론 번역과 해석은 완전히 분리되어 있지는 않습니다. 역자가 그 상황, 그 장면, 그 메시지를 어떻게 머릿속으로 해석하느냐에 따라 번역에 영향을 미치고, 번역 능력과 방향에 따라 해석도 차이가 생깁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그 둘이 완전히 같은 것은 아닙니다. 분명히 별개의 면이 있지요.

하지만 이정서씨는 이것이 번역의 문제가 아니라고 말하면서도, 계속해서 이것이 오역으로 인해 비롯된 오해라는 입장을 고수하는 모순된 태도를 보이고 있습니다.

한창 레몽에 대한 논쟁이 벌어지던 중, 해석의 문제를 좀 더 제대로 다투지 않고 엉뚱하게 김화영씨의 번역을 비판하는 연재를 개시한 것에서도 엿보이는 태도입니다.






이정서씨 번역본의 여러 가지 오역들, 그리고 역자노트에서 '오역'이라며 지적한 것들의 오류나 과잉에 대해서 지적들이 나오고 있습니다. 알라딘서재에서는 jaibal 님이 조목조목 지적을 하고 있으시고, (http://blog.aladin.co.kr/717050193) indifference님이나 고마해라님 등도 댓글과 블로그 등에서 몇 가지 지적을 하셨습니다. (http://indindi.egloos.com/9008511)


이는 대체로 이정서씨 번역에 오역이 존재한다는 지적과, 이정서씨가 김화영 등의 오역이라고 지적한 역자노트 내용이 오류이거나 과잉이라는 지적으로 나눠서 볼 수 있습니다.

특히 그 중에서도 후자의 지적이 압도적으로 많아 보입니다.






저는 새움출판사의 태도에 분노를 느끼고 있습니다.

새움출판사와 이정서씨 측은 이 논쟁에서 합리적인 태도를 보이지 않고 있으며, 이미 설득력 있게 검증된 문제들에 대해서도 제대로 수용하지 않고 있고, 명백하게 자신들의 오류로 보이는 것에 대해서도 책임지고 사과하지 않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법적인 조치' 등의 언급을 하며 논의를 위축시키려고 하고 있습니다.


(이정서씨 개인 블로그에서 행해지길 바랐다고 하지만, 그 뒤에도 정작 이정서씨 개인 블로그에 올라오던 글들을 출판사 공식 블로그로 그대로 복사해오던 것은 새움출판사 측입니다... -_-)



새움출판사와 이정서씨가 자신들의 행동에 책임을 지기 위해서는, 적어도 앞서 언급한 ②가 잘못되었다는 것은 인정해야 한다고 봅니다.

해석의 차이가 과거 역자들의 번역-오역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주장은 거짓임이 이미 거의 확실하게 검증되었습니다. 그렇다면 이 부분에 대해 자신과 다른 독자들의 작품 해석 차이가 과거 다른 역자들의 오역으로 인한 것이었다는 주장을 철회하고 공격대상이 되었던 역자들 등에게 사과해야죠.

그리고 적어도 이런 인식("해석의 차이는 오역 때문이었다")에 어느 정도 근거한 것으로 보이는, "카뮈의 이방인이 아니었다"라는 홍보 문구나 역자 인터뷰의 내용, 역자노트의 일부 내용 등을 수정하고 이미 이를 구매한 독자들에게 공개적으로 사과해야 할 것입니다.


단순히 자신의 작품해석이 옳다고 주장하는 것과, 자신과 다른 사람 간의 작품해석의 차이가 생긴 것이 오역에 의한 것이었다는 주장은 완전히 다른 차원의 문제인 것입니다.



또한 새움출판사 『이방인』의 역자노트가 많은 오류와 과잉, 인격적 모욕 등이 있다는 설득력 있는 지적이 많습니다. (뱃고동 논란, 몽삐스 논란, 기타 등등)

그러므로 이후의 판에서는 최소한 이 '역자노트'를 빼거나, 아니면 이정서씨가 번역과정에서 찾은 유의미하고 오류가 아닌 내용 일부만 역자의 말 형태로 남기는 것이 온당한 처신이라고 생각합니다. (출판사로서도 이렇게 하고 책 값을 내리는 편이 더 낫지 않겠습니까?) 그 과정에서 잘못된 지적 등에 대해서는 인정하고 사과하는 것은 당연하구요.

이정서씨가 애써 번역한 책 자체를 전량회수하는 것까지는 바라지도 않습니다. (이 말도 이정서씨가 먼저 꺼냈지만) 그러나, 본인이 애써 번역했다고 하는 소설 본문에 들어간 노고를 인정하는 것과는 별개로, '역자노트' 부분은 심각한 문제를 갖고 있으며 이를 이정서씨 등이 고집할 이유도 없어 보입니다. 본인이 자신의 번역이 더 낫다고 자신하신다면 그냥 그렇게 본문만 내면 될 문제입니다.

다만 이는 제가 프랑스어 등을 잘 알지 못하기 때문에 제가 상세하게 이야기할 것은 아닌 듯하고 프랑스어나 프랑스어-한국어 번역을 잘 아는 분들이 더 잘 말씀해주시리라 기대합니다.






새움출판사는 이미 자극적인 홍보로 많은 수익을 올렸을 것이며, 이 중 상당수는 정당하지 못한 것이었다고 평가해야 옳습니다.


이제 와서 팔려나간 책들을 회수하거나 환불시키기도 어렵다면, 적어도 새움출판사측이 이 사건으로 인해 어느 정도 사회적 평판이 떨어지거나, 공개적으로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하는 정도의 대가는 치러야 마땅합니다.

사람들이 새움출판사나 이정서씨의 잘못을 명확히 알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정서씨나 새움출판사가 번역자이자 출판사로서 책임감과 윤리적 관념이 있다면, 제발 부디 언행과 태도를 바꾸고 잘못을 인정하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다른 여러 독자 분들도 이 문제에 대해서 잘 이해해주시길 바랄 뿐입니다.


10대 때 카뮈의 『이방인』과 사르트르의 『구토』 등을 인상깊게 읽었고 좋아했던 독자로서 한달 정도 이 논쟁을 쫓아다니며 보았습니다. 며칠 정도 일이 바빠서 제대로 못 보고 있었는데 많은 일이 일어났더군요. 더 많은 분들이 이 문제에 대해 적절한 목소리를 내주길 기대해봅니다.




첨언하여, 아동에 대한 폭력, 여성에 대한 폭력 등 가정폭력에 반대하는 이야기를 해온 사람으로서,

여성에 대한 폭력을 대수롭지 않은 것으로 여기는 이정서씨의 레몽에 관련된 여러 발언들은 아주 불쾌하고 또 번역/해석 논쟁과 별개로 이야기해볼 만한 문제라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