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나가는꿈

끌림과 사랑

공현 2015. 7. 6. 15:18



페이스북이 '알 수도 있는 사람' 목록에 띄워준 어떤 이름을 보고 멈칫했다.

고등학교 때 잠깐 모임을 같이 했었던 여성이었는데, 함께 아는 친구 1명이 있다면서 친구 후보로 추천이 된 모양이다.


몇 년 전에 집에 있던 내 일기장(매일 쓰진 않았고, 특별히 기록하고 싶은 게 있을 때만 띄엄띄엄 썼다.)을 들추어보던 중에 깜짝 놀랐던 적이 있다. 내가 고3이던 여름 무렵, 일기장의 몇 페이지는 그 사람을 보면 두근거리고 매력을 느끼던 심정에 대해서 기록하고 있었던 것이다. 페이스북이 띄워준 이름이 바로 그 사람이었다.


분명히 기억에 있기는 했다. 한동안 그 사람을 보면 끌렸던 것이. 하지만 지금 시점에 나의 기억 속에서 주류를 차지한 정보 꾸러미에서는 그것은 그저 휙 지나가버린 며칠 간의 끌림이었다. 기억 속에서 오히려 고3 시절 내 연모의 대상으로 주되게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사람은 다른 사람이었다. 그런데 내 일기장은 의외로 그런 며칠간의 끌림에 대해서 진지하게 괴로움을 기록해두고 있었다. 기억의 편집, 혹은 해석의 문제이리라.


여하튼 그때 일기장을 보고서 잠시 과거를 반추해보았다. 한동안은 그 사람을 보면 빛이 나는 것 같았고, 그 사람의 글이 좋았고, 목소리가 좋았다. 그래서 또 한번의 짝사랑이 시작되는 걸까, 했었는데. 하지만 그렇게 끌리는 감정이 채 한 달을 가지 않았던 것이다. 매력의 잔재 같은 것은 남아있어서 보면 반갑다거나 그런 흔적이 내 안에 남아있었지만, 별로 그 이상의 감정이나 욕망이 생기지 않았다. 그렇게, 끝.


어쩌면 서로 안 맞는 점이나 내 마음에 들지 않는 점들이 그 사이에 더 눈에 띄게 된 걸지도 모르겠다. 아니면, 첫 짝사랑을 어설프게 끝내고 1년쯤 지난 뒤의 일이라 잔뜩 움츠러든 내가 그 감정을 더 적극적으로 발전시키길 거부했던 걸지도...



이처럼 기간의 문제나 지속성의 문제로, 우리는 끌림, 매력을 느낌과 지속적인 사랑 혹은 좀 더 넓게 말해서 성애/연애감정을 구별할 수 있을 것이다. 누군가에게 매력을 느끼거나, 끌리는 일, 때로는 성욕을 느끼는 일은 여러 상황에서 가능하다.(매력이 욕망을 수반한다는 것은 자연스럽다) 그러나 그것이 더 지속적인 사랑이나 성애의 감정이 되는 것에는 다른 요소들이 필요하다. 본인의 의지이든 상황이든 희망이든, 무엇이든.


이제 그런 끌림을 느끼는 때에도, 일기장에 그걸 구구절절 써놓거나 표현하지 않는다. 순간적인 끌림에 쉽게 동요하지 않고 '뭐, 그래 그럴 수 있지. 좀 더 스스로를 지켜보자.' 하고 생각할 수 있게 된 것이 성숙일지 둔감일지는 잘 모르겠다. 그저 매운맛이나 쓴맛의 역치를 높여 나가는 것처럼 익숙해지고 있는 것뿐일 수도 있겠다.



뭐 그래서, 여전히 나는 페이스북에서 그 사람에게 친구 신청을 보낼지 말지를 고민하고 있는데, 그건 어떤 감정적 문제보다도 그저 고등학교 때 크게 친하지 않았던 지인들이 내 페이스북을 봐봤자 별로 유쾌하지 않을 거 같다는 걱정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