흘러들어온꿈

『대학거부, 그 후』 : 행복하냐고 묻기 전에

공현 2015. 7. 30. 02:22
대학거부 그 후대학거부 그 후 - 10점
한지혜 외 지음/교육공동체벗
『대학거부, 그 후』 : 행복하냐고 묻기 전에

나 역시 대학거부선언에 참여했던 대학거부자이다. "대학거부선언"을 하면서 가장 많이 들었던 질문은 대학을 거부한 이유였고, 두 번째로 많이 들었던 질문은 부모/가족은 어떻게 반응했는지였으며, 세 번째로 많이 들었던 질문이 바로 이거였다.

"대학거부해서 행복하게 살 수 있느냐" 혹은 "후회하지 않을 것 같으냐"

사람들은 사회에서 정해놓은, 주류의 길을 벗어나겠다고, 아니 단지 벗어나는 게 아니라 비판하고 거부하겠다고 선언한 사람들에게 다들 묻는다. 당신들은 과연 그렇게 해서 행복하게 살 수 있겠냐고...

그 질문의 의도는 아마 사람마다 다를 것이다. 누군가는 너네가 잘 살 수 있겠냐는 비웃음과 비아냥의 의미일 것이고, 다른 누군가는 정말 그렇게 행복하게 살 수 있을지 기대감을 갖고 묻는 것이리라. 하지만 어떤 의도이든 간에 번지수가 틀렸다. 대학거부선언은 "난 대학 졸업장 없이도 행복하게 얼마든지 잘 살 수 있어"라는 자신감의 표출이 아니기 때문이다.

대학을 거부한다고 선언한 이유는 우리 사회가 학력을, 출신 학교로 사람을 평가하고 차별하는 사회이기 때문이다. 교육의 목적이 대학 입시가 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런 것이 잘못되었으며 우리가 거부하고 바꾸어야 한다고 말하는 것이 우리가 '대학거부'를 외치는 일이다. 그러므로 대학거부자들은 이미 알고 있다. 우리 사회가 대학졸업장 없이는 차별을 받고, 불이익을 당하고, 어려움을 겪는 사회라는 것을 말이다.


대학거부자들에게 행복하냐고 묻는 것은 여전히 문제를 그들 개인의 몫으로만 돌릴 뿐이다. 그들에게 대학 없이도 잘 살 수 있다는 것을 스스로 증명해보라고 은연중에 요구하는 것이다. 대학거부선언이 담고 있는 정치적 의미를 잘라내는 태도이며, 거부선언을 한 입장에서는 벽 앞에 가로막히는 느낌이 들 수밖에 없다.

대학거부선언은 '말걸기'다. 함께 바꾸자는. 그리고 "행복해질 수 있느냐"는 질문은 그 말걸기에 대한 차가운 거절이다. 의도했든, 의도하지 않았든.


포장도 낭만도 하나 없이

그들은 대학거부자들에게 행복하냐고 묻지 말라고 한다. 사실, 그럼 대학을 다니고 졸업하는 이들은 행복한지부터 물어야 공정할 것이다. 『대학거부, 그 후』는 대학거부 이후의 삶에 대해 솔직하게 토로한다. 거부자들은 이미 짐작하고 있었지만 또 겪어보니 그 이상으로 단단한 사회의 벽에 부딪히며 살아나간다. 고민은 더 많아지고 불안은 더 커진다.

많은 고졸 성공담이나 고졸 청년들의 씩씩한 삶을 주제로 한 책들은 대개 대학을 안 가도 잘 사는, 혹은 성공한 모습을 보여주려고 애쓴다. 사회적 차별과 불안한 조건보다는, 그 속에서도 살아나가는 건강한 사람들의 모습을 보여준다. 그것도 나쁘지는 않다. 사람들은 어쨌건 이겨내고 살아나갈 테니. 하지만 그걸로는 충분하지 않다. 학력, 학벌 차별 속에서, 대학 중심의 사회 속에서 겪는 어려움에 대한 기록과 고백도 필요하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에는, 예뻐 보이려는 포장이 없다. 차라리 '진솔해 보이려고 하는' 포장이 있을지언정 말이다. 대학거부에 대한 낭만적 태도도 없다. 읽다보면, 뭐랄까, '건조한 슬픔' 같은 게 느껴진다.


『대학거부, 그 후』를 읽고, '역시 대학거부를 하면 힘들게 사는구나' 하고 동정하는 것은 부적절한 반응일 것이다. 책을 읽다보면 직접적으로 말하진 않더라도, 필자들이 대학거부자들의 존재를 기억하고, 함께하자고 제안하는 것 같다. 여럿이 함께할 때, 좀 더 행복해질 수 있는 조건을 만들 수 있다고 말이다. 행복하냐고 묻기 전에, 행복해져 보라고 요구하기 전에, 당신은 대학거부선언의 문제의식에 공감하는지부터 답해야 한다. 먼저 질문을 던진 쪽은, 자기 삶을 걸고 거부선언을 한 이들이기 때문이다.




http://gonghyun.tistory.com2015-07-29T17:22:240.310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