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나가는꿈

진지하지만 별로 중요하지 않은 잡담 몇

공현 2016. 10. 17. 16:17
진지하지만 별로 중요하지 않은 잡담 몇

- 모든 문제가 권리의 언어나 논리로 설명될 수는 없다. 최근에 백남기 님 농성장에서 일어난 사건은 '권리 주장'이나 '권리 충돌' 같은 도식으로는 이야기하기 어려운 문제인데, 이를 단순화해서 자기에게 익숙한 방식으로 받아들이려는 사람들이 '흡연권을 주장한다더라'는 식으로 요약을 해버린다. 다른 '익숙한' 방식으로도 이야기를 구성하는 것이 가능할 것이다.
현실에는 이미 '청소년 흡연자'는 존재한다. 청소년 흡연자의 존재 자체를 강제적으로 삭제할 수 있는가? 청소년 흡연자라는 이유로 정치적 활동이나 사회적 활동에서 제약을 받아야만 하는가? 많은 학교들과 사람들은 '그렇다'고 말하고 있다. 정말로?

- 그런 이들의 단순화와 허위사실 유포와는 달리, 청소년운동이 아직까지 조직적 운동으로 흡연권을 주장하거나 단체 공식 발표 입장으로 흡연권 같은 걸 주장한 적은 없는 것으로 안다. 좀 더 포괄적으로 청소년보호법 폐지/개정을 주장하거나 흡연에 관련된 질문을 던지는 정도의 이야기를 한 적은 있었던 것 같다. (요즘 시대에는 SNS에서 그냥 몇 마디 나온 개인 의견을 운동/활동가들의 의견으로 간주하는 일이 너무 자주 일어난다. 그런 데서 사회현상이나 특정 대중에게 공유되는 정서 정도를 읽어낼 순 있지만, 이를 조직적 운동의 입장으로 읽어선 안 된다. 커뮤니티/담론 연구자라서 키워드 분석이라도 할 생각인 걸까?)
 흡연권을 주장하는 운동을 할 날이 올지는 잘 모르겠다. 두 가지 이유에서이다. 하나는 청소년운동의 수준과 조건상 지지를 얻기 어려운 이슈인데, 그 이야기를 할 수 있을 정도까지 발전할 수 있을지 자신할 수 없기 때문이다. 다른 하나는 음, '비동식적인 것의 동시성' 문제라고 할까? 유럽의 페미니즘 운동은 여성에게 담배 마케팅을 하는 담배 자본을 규탄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고 들은 적이 있다. 물론 그럴 수 있게 된 것은 여성의 흡연이 사회적 공격을 적게 받게 만든 여건이 있었기에 가능할 것이다. 하지만 꼭 그렇게 단계적으로 변화해갈까? 동시에 할 수는 없을지? 만약 그렇게 된다면 담배에 관해 청소년보호를 이유로 규제하는 현행법을 비판하더라도 '흡연할 권리'를 주장하는 방식으로 주장과 운동이 굴러가지는 않을 것이다.
 어쨌건 흡연 자체에 관해서는 청소년운동 내에서도 정확한 주장이 합의되어 있지 않다고 생각하는데, '흡연하는 청소년'을 비윤리적인 존재로 대하고 강제적으로 제지해고 단속해야 할 존재라고 보는 것을 반대하는 것은 그와는 또 별개의 문제이다.

- '흡연은 건강에 해로우므로 청소년을 보호해야 한다'라는 주장과 '청소년이 담배 피우는 게 뭐가 그리 당당한가?'라는 주장은 서로 다를 뿐더러 어느 정도는 모순되기까지 한다. 건강에 해로워서 보호하려는 게 목적이라면, 그것은 윤리적인 거나 정당성, 당당함과는 아무 상관이 없는 문제일 것이다. 오히려 몰래 숨어서 하느라 건강에 생긴 증상도 발견하지 못하게 된다면 더 큰 문제 아닌가. 건강과 안전의 문제가 왜 도덕이나 존재의 당당함의 문제와 연결되는가? 청소년들이 담배를 피우는 것은 자기에게 해로운 일일지는 몰라도 부끄럽거나 윤리적으로 잘못하는 일은 아니다.
동성애를 에이즈와 연관시키며 단죄하려는 이들의 논리와 너무 닮아 있는 방식이고 잘못되어 있다는 생각은 안 드는지 모르겠다.

- 청소년보호법이 여러 맥락상 청소년은 스스로 판단하고 결정해선 안 된다는 전제를 깔고 있다는 점에서 청소년혐오를 읽어낼 수는 있지만, 표면적인 청소년보호법의 모든 주요 조문들이 청소년혐오를 그대로 담고 있는 것은 아니다. 또한 흡연을 걱정하거나 염려하는 심정이나 태도나 대화를 모두 청소년혐오라고 라벨링하는 것은 개념을 지나치게 확장하는 일일 것이다. 그러나 청소년이 담배 피우는 것을 일탈/비윤리적/무례한 행위라고 판단하고 (광의의) 폭력 행사를 통해서라도 통제하려고 하는 것은 청소년혐오가 반영되거나 청소년혐오와 연관된 언행이 맞다.
나는 '요즘 청소년들'의 일탈적 행동이 사회의 윤리와 기강을 무너뜨리고 있다는 식의 주장이 매우 전형적인 청소년혐오라고도 생각한다.

- 청소년이 담배를 어디서 구했느냐는 질문이 많던데, 참 궁금해 할 필요가 없는 일이다. 그로 인해 피해를 볼 수도 있는 무고한 슈퍼마켓 주인 같은 걸 상정하던데, 담배를 길에서 주웠는지, 청소년이라는 이유로 흡연을 금지당하는 것에 동의하지 않는 비청소년이 사서 주었는지 뭐 어떻게 안다는 말인가.
비청소년이 사서 준 경우에는 판매한 업주는 처벌받지 않고 건네준 사람이 처벌을 받게 되어 있으니, 무고한 피해자가 아닌 그런 확신범-공범이 있었다고 생각하는 것이 그들에겐 마음이 편할 것이다. 남의 담배 입수 경로를 궁금해하는 것이야말로 그냥 공격할 거리를 찾으려는 논점 일탈이다.

- 청소년보호법상 비청소년이 청소년을 제지하고 선도할 의무를 부과한 조항은 선언적인 것이며 그러한 의무를 수행하지 않는다고 해서 어떠한 강제조치가 취해지는 것은 없다. 또한 여기에서 제지와 선도의 구체적 방법이 규정되어 있지도 않다. '담배 꺼'라고 소리를 지르고 반말짓거리를 하라고 법에 정해져 있지 않다는 말이다. 설령 누군가가 법과 양심에 따라 청소년을 '선도'하려고 하더라도 그것이 폭력적이고 위압적인 방식이어야 하는 법은 없다. 굳이 그래야겠다면 정중하고 조심스럽게 질문과 걱정을 하시라. 보호라는 이름으로 폭력과 규제를 행사하도록 정당화하는 것이 청보법의 본질이라지만, 꼭 어느 개인이 그 본질 그대로를 보여주는 추악한 일을 할 필요는 없지 않은가.

- 다른 이슈로 모인 운동 현장에서 청소년 흡연을 왜 공론화하냐는 항의를 들은 적이 있다.
 다른 이슈로 모인 운동 현장인데 거기 있는 누군가들이 그저 담배 피우고 있었을 뿐인 청소년 흡연자들을 공격하고 시끄럽게 굴어서 그렇다.
참 그 이슈나 집중해서 할 것이지, 판단력이 미성숙하고 인내심이 없는 사람들이 우선순위도 생각 못하고 문제를 일으킨 것이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