딱딱한꿈

옷에게 하는 인사

공현 2008. 1. 11. 13:36
 

 흔히 인사는 인간 관계의 가장 기본적인 행위 중 하나로 생각된다. 인사는 관계의 표현일 뿐 아니라, 관계를 시작하려는 의도를 표현하기도 한다. 서로 무심코 지나치던 이웃 사이에 인사를 통해 정을 쌓자는 말 속에도 그에 대한 인식이 잘 드러나 있다.


 인간의 사회적인 것들 ─ 언어와 사회적 행동이 대개 그러하듯이 인사는 기호이다. 백과사전의 인사 항목을 보면 이렇게 기술되어 있다. "일상의 인간관계에서 말이나 태도로 존경·친애·우정을 표시하는 행동양식" 곧, 인사라는 행동양식, 그 기호의 기호형식(signifiant, 기표)이 담고 있는 기호내용(signifiè, 기의)은 존경, 친애, 우정 등이다.

 

 인사는 인간관계를 원활하게 하는 윤활유이다. 인사를 통해 이미 있는 친밀감도 더해지며, 없던 친밀감도 생기곤 한다. 그래서 인사는 인간관계를 의심하는 현대의 도시인들 중 일부에게는 다소 껄끄러운 일로 취급받기도 한다. 그러나 친한 사람을 아는 척하는 것은 대인관계의 기본 중의 기본이다. 다양한 인사 방식 ─ 눈인사, 손을 흔드는 것, 절, 악수, 경례 등은 친애, 우정, 존경과 같은 감정들을 여러 수준에서 다양하게 표현하게 해준다.


 그런데 때로는 내용을 위해서 형식이 창출되지 않고 형식이 우선되어 내용이 유도되기도 한다. 이에 대한 예로는 사고방식을 반영한 언어가 다시 사고방식에 영향을 미치는 피드백 작용을 하는 것을 들 수 있다. (이에 대해 다시 무지개의 색깔 따위의 예가 있다.) 마찬가지로, 존경심이나 친애, 우정의 감정이나 의도 등이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인사라는 형식을 반복하다보니 자신이 어떤 대상과 특정한 관계인 양, 구체적으로는 어떤 호의 - 존경, 친밀 등 - 를 가진 양 생각하게 되는 경우도 발견할 수 있다. 사람이나 상황에 따라, 진심으로 그러한 감정을 내면화하는 경우도 있고, 단지 그러한 행동을 반복하여 그 분위기에 익숙해지고 버릇이 되어 버리는 경우도 있다.

 예를 들면, 군대에서 상관에게 보내는 경례는 분명 존경의 표현이지만, 그 인사가 상대방에 대한 진정한 존경의 감정에서 우러나온 것인 경우는 오히려 드물 것이다. 차라리 상관에게는 인사해야 한다는, 의례적인 성격이 강하며, 또 그 의례는 상관에 대한 복종, 충성이라는 내용을 학습하는 데에 어느 정도 효과가 있는 것 같다. 의례적인 행위의 경우는 그 기호내용이 희미해져버리고 기호형식 자체가 습관적으로 반복된다. 실제로 존경심이 있건 없건, 인사를 한다는 행위 자체가 사회적인 관습이 된다.


 인사는 어떤 집단의 소속감이나 계급적 지위의 상하 관계와 연관되기도 한다. 따라서 인사는 권력 구조를 유지하는 이데올로기의 일부로도 기능할 수 있다. 위에서 예로 든 군대의 예도 그러하며, 학교에서 선후배 사이의 고개를 숙이는 인사도 그러하다. 인사는, 그 군대와 학교의 일원이라는 소속감, 그 질서에 편입되었다는 느낌을 유도하고, 그 집단 안에서의 계급적 상하를 표현하는 일상적인 형식이다.

 그러한 인사는 대부분 의례로서의 인사이며, 그렇기 때문에 그것이 표현하는 소속감과 상하관계의 내용물은 별로 중요하게 인식되지 않으며 또 잘 자각되지도 않는다. 자각되지 않기 때문에 그것이 철저하게 내면화 된다거나 하는 일도 많지는 않은 듯하다. 그러나 적어도 그러한 상징적 기능이 있는 것은 사실이며, 그것이 잘 자각되지 않기 때문에 위험한 면도 있을 수 있다.

 위험한 면으로는 사람이 개인으로서 평가 받는 것이 아니라 그 '옷'으로서 평가 받는 것에 대한 당연시를 들 수 있다. 낮은 계급의 사람은 높은 계급 사람의 계급장에 인사한다. 후배는 선배의 교복(혹은 명찰이나 학년을 드러내는 기타 상징물들)에 인사한다. 이는 파티장에 허름한 옷을 입고 갔더니 잘 대접해주지 않다가, 좋은 옷을 입고 갔더니 잘 대접해주었다는 저 유명한 이야기와 본질적으로 유사하다. 그 알맹이인 개인의 인격 등을 전혀 따지지 아니하고, 어떤 집단의 일률적인 평가 기준에 맞추어서 인간 관계의 기본적인 기호 중 하나인 인사가 이루어지는 것이 당연시되는 것은 다소 위험한 면이 있다. 그것은 하버마스가 말한, 행정체계나 경제체계가 생활세계를 잠식하는 현상을 연상시킨다. 형식적 지위에 대한 인사는 행정체계가 생활세계를 잠식한 것으로 볼 수 있다. 프롬이 「소유냐, 존재냐」에서 들고 있는 "권위행사"의 예도 생각해볼 만하다. 인간 자체가 아닌 인간이 소유한 지위에 대해 행해지는 인사는 소유양식적이지, 존재양식적인 것은 아니다. 이와 같은 인사는 오히려 비인간적이다. 사회적 윤활유로서 의례적인 인사의 기능을 도외시할 수는 없지만, 그것이 마치 전적으로 당연한 것인 양 생각하는 태도는 마땅히 재고해 봐야 한다.


 학교에서 이루어지는 인사 행위의 경우, 차라리 교사가 학생에게 받는 인사는 나은 편이다. 교사는 학생들을 교육한다는 면에서, 인격적으로 우월할 개연성을 이미 가지고 있다. 아니, 적어도 가지고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은 교사들도 쉽게 찾을 수 있기는 하지만, 적어도 지식과 인격의 전수자의 자격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므로, 조금 억지로나마 개연성을 둘러 붙일 수 있을 것이다.(분명 이건 억지다! 하지만 일단은 넘어가자, 젠장.) 그러나 선배들에게는 그런 성취지위가 있는가? 그저 나이 한 살 자연스레 더 먹은 귀속적인 지위 외에 후배들에게 내놓을 것은 뭐가 있을까? 내 인격이나 능력과는 별 관계가 없는 그런 자리 말고 다른 무엇이 있을까?


 나는 친분관계에 의한 인사가 아닌 인사 ─ 그러니까 나를 잘 모르는 사람이, 친해지려는 의도를 가진 것도 아닌데 의례적으로, 혹은 존중이랍시고 하는 인사 ─ 를 받을 때면, 간혹 나 자신이 이 인사를 받을 자격이 있는지 고민해보곤 한다. 분명 의례적으로 한 인사이니 그렇게 고민할 필요는 없을 텐데도, 형식만 있고 내용은 없는 빈 껍데기 뿐인 행동은 싫어하는 이상하게 깐깐한 성격이기 때문에 결국 거기에 내용을 갖다 붙이기 위해서 나는 낑낑대며 고민해본다. 그리고 항시 뇌물이라도 받아먹은 듯한 찜찜한 기분을 느낀다. 나는 나 자신이 내게 어느 정도 만족할 정도의 수준의 인간이 되지 않고서는, "후배가 선배에게 하는" 따위의 인사는 마음 편하게 받아먹지 못할 것 같다.


 나는 날 잘 알지도 못하면서 내게 인사를 하는 후배들에게 아래의 말을 들려주고 싶다.

"옷아, 이것들은 네가 먹어라. 사람을 보고 주는 음식이 아니라 옷을 보고 주는 음식이니까 말이다."

마찬가지로,

"교복아, 이것들은 네가 받아라. 사람을 보고 하는 인사가 아니라 옷을 보고 하는 인사니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