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어가는꿈

경기도 학생인권조례, 학생들의 요구가 낳은 당연한 제도

공현 2011. 6. 2. 14:29

작년 2월에 열린전북에 실었던 글입니다. 까맣게 잊고 있다가 다른 일 때문에 검색 중에 발견해서 올려둡니다....




경기도 학생인권조례, 학생들의 요구가 낳은 당연한 제도

공현

최근에 경기도교육청이 학생인권조례를 추진하고 있다는 이야기는 다들 웬만하면 한 번씩은 들어보셨을 것이다. 언론 보도만 수차례 되었으니까 말이다. 나는 청소년인권활동가로서이래저래 경기도 학생인권조례 추진 과정에 발을 걸치고 있지만, 내가 경기도 학생인권조례와 관련해서 했던 역할을 소개하기란 쉽지가 않다. 그나마 가장 설명하기 쉬운 것은 학생인권조례 연구용역팀 소속이었다는 것 정도? 그 외에는 뭔가 학생참여기획단 운영에 참여하고 잡일을 거들었다거나, 학생인권조례에 관련한 단체들의 공동 논평을 제안했다거나, 기자회견을 같이 준비했다거나, 내가 속한 청소년인권단체에서의 대응 계획을 짜고 있다거나 등등…. 그렇게 조례를 만드는 과정 안쪽과 바깥쪽을 넘나드는 곳에서 나는 경기도 학생인권조례를 만드는 데 일조해왔고, 학생인권조례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지켜보았다.

그래서 그런 것일까. 나는 왠지 경기도 학생인권조례가 김상곤 경기도 교육감의 업적이라고 하는 말을 들을 때면 살짝 심사가 꼬인다. 거기에는 학생인권조례를 추진하는 데 있어 아직까지는 김상곤 교육감이 구체적으로 한 역할이 그리 크지 않은 이유도 있을 터이다. 하지만 가장 큰 이유는 따로 있다. 청소년인권운동을 계속 해온 사람의 한 명으로서 경기도 학생인권조례가 만들어지기 위해서 얼마나 많은 청소년인권운동의 역사가 축적되어 왔는지를 알고 있고, 또 직접적으로 학생인권조례 초안을 만들어가는 과정에서 청소년인권활동가들이 많은 노력을 기울인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그렇다.

분명히 말해서, 경기도 학생인권조례는 김상곤 교육감이 훌륭해서 어느 날 갑자기 튀어나온 것이 아니다. 그 배경에는 학생인권을 요구하며 몇 년, 몇십 년 동안 외쳐온 사람들의 역사와 요구가 있는 것이다. 학생인권조례는 경기도교육청이 추진하기 시작한 그 몇 개월의 기간 동안 준비되었던 것이 아니다. 좁게는 2005년 광주 학생인권조례 제정을 위한 논의나 국회에서의 학생인권법안 추진 등과, 넓게는 국가인권위원회가 학생인권에 대해 내려온 여러 결정들(물론 이 결정이 나오도록 진정을 제기한 학생 당사자들도 중요하다.)과 ‘인권교육센터 들’과 같은 인권단체들이 작업한 학생인권에 관한 종합 가이드라인, 유엔아동권리협약 등이 모두 경기도 학생인권조례 안에 녹아 있다고 할 수 있다. 따지고 보면 주경복 서울시 교육감 후보나 김상곤 경기도 교육감 후보의 공약에 ‘학생인권조례’가 포함되었던 것도 학생인권운동의 결과물이라고 할 수 있지 않겠는가?



경기도 학생인권조례 제정의 의의

경기도 학생인권조례는 경기도 지역 초중고등학교들에서 학생들의 인권을 보장하기 위해서 추진되고 있는 조례이다. 그 내용에는 두발복장자유(특히 두발 길이에 대한 제한은 금지한다고 되어 있음.), 체벌금지, 강제적인 자율학습․보충수업 금지, 여러 차별들에 대한 금지, 학생들의 쉴 권리, 급식에 대한 권리, 교육환경에 대한 권리, 표현의 자유, 집회․결사의 자유, 학교운영에 참여할 권리 등이 명시되어 있다. 또한 이러한 학생인권의 내용들이 단순한 선언에 그치지 않게 하고 실현시키기 위한 방안으로 의무적인 인권교육, 학생인권심의위원회, 규정개정심의위원회, 학생인권옹호관(구제기구. ‘옴부즈퍼슨’), 학생참여위원회 등을 규정하고 있다.

이러한 경기도 학생인권조례의 의의는, 무엇보다도 우선 경기도 지역 학생들의 인권 상황을 개선하는 의미 있는 방안이 될 수 있다는 점이다. 경기도 지역은 평준화 지역, 비평준화 지역, 부유층 거주 지역, 빈곤층 거주 지역 등이 뒤섞여 있으며, 두발규제, 강제적 자율학습, 체벌 등의 대표적 학생인권 문제에서도 상대적으로 심한 지역 중 하나로 꼽혀 왔다. 학생인권조례 제정 과정에서 학생들이 보여준 열렬한 환영의 분위기는 이러한 현실을 보여준다. 또한 경기도 지역에는 한국 전체 인구의 약 1/4 정도가 살고 있다. 따라서 경기도 학생인권조례 제정은 한국의 약 1/4이 그 적용을 받게 될 학생인권에 대한 법을 만드는 것과 마찬가지인 셈이다.

두 번째로, 학생인권조례의 제정은 그동안 국가인권위원회의 결정, 판례, 국제기구의 권고, 인권단체의 주장 등을 통해서 개별적으로 제시되었던 학생인권에 대한 기준을 통합된 형태로 제시한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한때 국가인권위원회가 추진했었으나 아직 나오지 못한 ‘학생인권 지침(가이드라인)’ 같은 역할을 할 수도 있다는 뜻이다. 많은 학생인권을 옹호하는 주장들이 제대로 인정조차 받지 못하고 있고 학생인권이 무엇인지에 대한 사회적 합의조차 부실한 한국 사회 실정에서, 학생인권에 대한 세부 항목을 담은 학생인권조례의 제정은 학생인권의 구체적 내용과 최소한의 기준을 공식적으로 확인시키는 효과를 낼 것이다. 이처럼 공식 확인된 학생인권의 기준은 학생들이 학교 안에서 인권침해 문제를 제기하고 싸울 때 큰 힘이 되어줄 수 있으며, 공식적인 규범의 제정은 그 자체로 사회 전체에 대한 인권교육적 효과가 있다. 경기도 뿐 아니라 전국적으로도 학생인권 문제를 인식하고 해결하려고 하는 노력에 박차를 가하는 계기가 되어줄 수 있다는 것이다.

세 번째로, 학생인권조례는 학생들을 교육의 주체, 사회의 주체로 만들 수 있는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다. 현재 발표된 학생인권조례 초안을 살펴보면 학생들의 학교 운영 참여, 교육 정책 수립에 참여 등을 보장하고 있다. 이러한 통로를 통해 학생들이 일상적인 학교 운영을 비롯하여 교육 현안에 참여하고 목소리를 내는 것은 교육 변화의 실마리가 될 수 있을 뿐 아니라, 학생들을 교육의 주체, 사회적 주체로 만드는 것이기도 하다. 좀 더 적극적으로 보자면 학생 참여를 보장하기 위해 만들어질 조직과 기구 등은 학생들의 조직화, 세력화를 촉진시킬 수 있다. (뭐, 경기도 학생인권조례는 이미 학생참여기획단 등 몇몇 학생들에게 사회 참여의 필요성을 환기하고 동기를 부여하는 계기가 되어주고 있기도 하다.)



언제까지 인권은 교문 앞에서 멈춰야 할까?

사실 경기도 학생인권조례는 그렇게 특별할 것이 없다. 보편적인 인권을 학생들도 보장받게 하기 위해 이를 재확인하고, 그것을 실현하기 위한 방안들을 마련한 것에 불과하다. 법적으로는 초중등교육법 제18조의4(“학교의 설립자·경영자와 학교의 장은 「헌법」과 국제인권조약에 명시된 학생의 인권을 보장하여야 한다.”)와 유엔아동권리협약 등에 근거를 두고 있는 것으로, 문화일보나 동아일보 등이 열심히 좌파의 음모라고 몰아붙이고 있는 학생인권조례 중에 집회․결사의 자유나 표현의 자유, 학교운영에 참여할 권리 등은 유엔아동권리협약에 조항으로 대놓고 명시되어 있는 것이다. 두발자유나, 표현의 자유, 집회․결사의 자유 등을 비롯하여 학생인권조례에 명시된 온갖 권리들 또한 국제협약과 인권선언 등에 근거를 둔 인간의 보편적인 인권이며, 인간이라면 누구나 자연스레 원하게 되고 요구하게 되는 기본적인 자유와 평등의 내용이라고 공인된 것들이다.

내가 학생인권조례가 학생인권운동의 결과물이라는 것을 강조한 것은, 그것이 단순히 김상곤 교육감의 정치적 계산이나 교육적 소신의 문제가 아니라 학생들의 요구와 행동의 산물임을 분명히 하기 위해서이다. 언제까지 “인권은 교문 앞에서 멈춘다.”라는 말이 한국 학교의 인권 현실을 표현하는 데 쓰여야 할 것인가? 학생들은, 학교에 다니는 학생이기 이전에 인간이다. 그리고 학교는 인간으로서의 기본적 인권들을 실현하기 위해서 존재하는 것이다. 인권을 침해하며 (교육답지도 않은) ‘교육’을 강요하겠다고 하는 것은 목적과 수단이 뒤바뀐 것이다. 학생인권조례가 당연하고도 필요한 것임을, 학교 현장에 가서 인권 문제의 당사자인 학생들의 목소리에 귀기울여본다면, 누구나 알 수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