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10

『맛집폭격』 : 맛집 묘사 건너, 전쟁을 묻다

『맛집폭격』 : 맛집 묘사 건너, 전쟁을 묻다 《맛집폭격》 (배명훈, 북하우스, 2014) 주의 : 책에 관한 스포일러가 일부 있습니다. 《맛집폭격》의 첫 장을 열면 인도 요리에 대한 묘사가 기다리고 있다. 그 뒤에는 스페인 음식 차례다. 그 다음은 또 터키 음식……. 이 소설은 곳곳에서, 특히 전반부에 이런 묘사가 등장한다. 읽다보니 배가 고파지고 군침이 고일 지경이었다. 더군다나 여기에 등장하는 맛집들은 모두 실제로 있는 식당들이기 때문에, 당장 찾아가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하지만 사실 이 소설에서 중요한 것은 ‘맛집’보다는 ‘폭격’ 쪽이다. 맛집과 요리에 대한 이야기에 반응하는 위장을 달래면서 책을 읽어나가면 우리가 마주하는 것은 파괴되는 일상에 대한 이야기다. 그리고 전쟁에 대한 이야기다. 이 ..

흘러들어온꿈 2017.01.10

이방인 번역 논란, 출판사와 역자 등의 태도 변화를 바라며

일전에 새움출판사의 『이방인』 이정서역본의 논란에 대해서 http://gonghyun.tistory.com/1057 이런 관전평을 남겼던 적이 있습니다. 이후 더 진척된 여러 가지 상황들을 종합해서 역시 한 독자로 의견을 적고자 합니다. ● 이정서씨의 『이방인』 번역(또는 해석)에 관한 주장은 몇 단계, 몇 갈래로 나눠서 분석해볼 수 있습니다. 크게 논쟁이 되었던 것 중에 하나의 예를 들어보면 ① 『이방인』에서 레몽의 애인은 무어인("Mauresque")이라고 나오는데 이는 아랍인과는 인종적으로 다른 것이며 따라서 둘은 혈연관계의 남매일 수 없다. 둘은 실은 비밀 애인 관계인 것이다. (이른바 '기둥서방'설) ② 왜 다들 ①과 같은 해석을 도출하지 못했냐 하면, 그것은 김화영씨 등의 "오역" 때문이다. ..

흘러들어온꿈 2014.05.21

『소수의견』, 법, 재판

2010년 12월 25일, 그러니까 크리스마스 때부터 『소수의견』(손아람)을 읽었다. 대개의 독서가 그렇듯이 특별한 의미를 두고 정한 날짜는 아니었다. 하지만 그날은, 돌이켜보면 뭔가 의미가 있는 것처럼 보이는 날이었다. 내 눈 앞 책 속에서는 사람이 죽고 재개발은 계속되고 있었다. 그리고 다시 고개를 조금 들자, 내 눈 앞, TV 화면 속에서는 교황이 크리스마스를 맞이하여 억압자들을 비판하고 억압받는 사람들을 위해 기도한다고 하는 이야기를 발표하고 있었다. 12월 28일, 『소수의견』을 다 읽었다. 하지만 버스를 타고 돌아가는 길에 지나친 관악구 신림동에는, 여전히 철거민들의 저항의 목소리가 새겨진 벽들이 헐벗고 있었다. 용산참사 국민법정에 갔을 때를 생각했다. 두발규제를 헌법소원을 내자는 청소년들의 ..

흘러들어온꿈 2010.12.28

『오버 더 호라이즌』 : 지금 여기 삶에 대한 사랑

『오버 더 호라이즌』. 2004년. 지은이 이영도. 황금가지. 만일 나에게 이영도의 장편소설 중 사람 홀리기로 최고의 작품을 꼽으라고 한다면 나는 별다른 주저 없이 『눈물을 마시는 새』를 선택할 것이다. 그러나 장편 단편 가리지 않고 꼽으라고 한다면, 『눈물을 마시는 새』와 『오버 더 호라이즌』 사이에서 심각한 고민에 빠질 것이다. 『오버 더 호라이즌』은 이영도가 쓴 판타지 소설 단편집이다. '오버 더 ~' 시리즈 3편이 수록된 앞부분과, '어느 실험실의 풍경'이라는 카테고리로 3편이 수록된 뒷부분으로 나누어볼 수 있다. 「오버 더 호라이즌」, 「오버 더 네뷸러」, 「오버 더 미스트」 세 편으로 구성된 앞부분은 하나의 세계관과 같은 등장인물들, 같은 배경을 공유하고 있으며 시간적으로도 연속성을 가진 작품..

흘러들어온꿈 2010.04.24

청소년 소설이면서 디스토피아 SF : 우리들의 아름다운 나라

한겨레21에 실렸던 추천 글의 원본...이랄까 실제로는 분량 문제로 더 간결하게 줄였고 좀 덜 박하게 보냈다. 그리고 내가 순화한 버전 이후에도 문학동네->한겨레21을 거치면서 순화된 부분도 있는 듯 -_- 김진경 지음. 출판사 문학동네. 정가 10,000원 드문 청소년 SF 디스토피아에 대한 상상은 종종 현실의 문제점을 지적하기 위해 사용된다. 영화 데몰리션맨도 그렇고,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도 그렇지 않은가? 「우리들의 아름다운 나라」는 한국의 청소년 소설로서는 드물게도 이러한 디스토피아적인 상상력을 토대로 쓰여진 작품이다. 이 소설은 한국의 교육이, 사회가 계속 이런 방향으로 치닫게 되면 근미래에 어떤 끔찍한 세상이 도래할지를 현실에 밀착한 상상력으로 표현한 '리얼한 SF'이다. 「우리들의 아름다..

흘러들어온꿈 2010.01.05

영두의 우연한 현실은 우연하지 않다 & '오답 승리의 희망'은 진행형

영두의 우연한 현실 - 이현 지음/사계절출판사 1. 영두의 우연한 현실은 우연하지 않다 이현 씨의 청소년 소설 단편집 『영두의 우연한 현실』. 아니 세상에, 현실이 우연하단다. 이렇게 칼 같고 서늘하고 단단한 현실이 ‘우연한’ 것이라고 한다. 그러니, 어디 한 번 이 흥미로운 제목의 표제작 「영두의 우연한 현실」에 대한 것부터 이야기해보자. 소설 「영두의 우연한 현실」은 책 『영두의 우연한 현실』에서 「어떤 실연」에 이어 두 번째로 실려 있다. (사실 다 읽고 나서 이 배치 순서에 좀 의구심이 들었다. 「어떤 실연」은 괜찮은 내용이긴 하지만 제일 앞에 실리기엔 ‘끌림’이 좀 부족한 것 같고, 『영두의 우연한 현실』에 실린 다른 이야기들의 분위기와도 다소 이질감이 느껴진다. 혹시 소재가 비교적 무난하고 덜..

흘러들어온꿈 2009.07.26

태양이 빛나는 밤에, 추천 글-

문학동네에서 "태양이 빛나는 밤에"라는, 김진경 씨가 쓴 청소년소설의 추천글을 부탁해서 쓴 짧은 추천글... 솔직히 추천글은 거의 안 써보고 비평글만 써봐서, 비평처럼 되어버렸지만;;; 근데 이거 벌써 공개해도 되나? 에이 원고 본문 공개한 것도 아니고- 어차피 태양이 빛나는 밤에 뒤표지에 이 추천글이 다 실리는 것도 아니니, 이렇게 올려둬도 별 문제 없겠지;;; 문제 있으면 문학동네 분이 덧글이라도... 쿨럭 근데 문학동네가 생각해보니까 최근에 '혀' 표절 문제가 있고, 김진경 씨도 생각해보니까 예전에 전교조에 쓴소리한답시고 뻘소리 좀 했던 사람이고 -_-; 소설도 딱 100% 맘에 드는 건 아닌데 현재 이명박 정부 하에서 일정한 의미가 있고 뭐 그렇게 나쁘진 않아서 추천의 글을 썼는데 흠;; 쓰고 나..

어설픈꿈 2008.11.18

소설 - 신세기 수기

서기 2005 7/9 토요일 저녁 20시에 갑자기 머리를 때리는 느낌. 그 전까지 쌓여오던 짜증과 나 자신 및 세상에 대한 분노, 안타까움, 현대에 대한 애증이 한순간 끓어올랐다. PC방으로 달려가서 자판 앞에 앉아 21시 55분까지 자판을 두들긴다. 채 다 못 쓰고 다음날 다시 두들긴다. 그렇게 이틀만에 다 써버렸다... OTL 덧. 7/11 약간 불완전한 부분 수정. 8/21 상동 신세기 수기(新世紀 手記) 오늘밤은 검은 비가 내린다. 옛날에도 눈을 맞으면 옷이나 우산에 검은 자국이 남는 일은 있었지만, 요즘 내리는 비는 아주 노골적으로 검다. 풀잎 위에 맺힌 빗방울도 검고, 밖에 나가면서 썼던 우산도 온통 더럽혀져 있다. 그 검은 성분들은 대체 무엇으로 이루어져 있는 걸까. 에이치투에스오스리, 에이..

어설픈꿈 2008.01.13

소설 - 파본의 해탈

2005년 여름즈음에 쓴, "쨍!" 그러니까는... 문학상 마감일에 맞춰서 다 써보겠다고 열심히, 열심히 치면서 지금까지 써온 소설들을 마구 짜깁기한... 좋게 말하면 지금까지 작품들의 총체? -_-;; 풍자가 아니면 해탈이다...김수영의 이 선언(?)에 대해서 혹자는 "현실은 참여의 풍자, 무참여의 해탈 사이의 양자 택일을 요구한다"라고 해석하곤 합니다. 풍자가 아니면 자살, 같은 이야기도 있습니다.전 오늘도 풍자해내는 주인공을 만들어내지 못해서 결국 파괴와 죽음의 상태에 이르는, 해탈해서 미쳐버린 주인공을 만들어냅니다... 파본의 해탈 "쨍!" 박살남. 산산조각. 그런 느낌으로 하얗게 흩어지는 조각들. 땅에 널브러진 수박조각. 번지는 물기. 유리 깨지는 소리에 놀란 듯 잠시 멍하니 있던 소녀는 천천히..

어설픈꿈 2008.01.11

소설 - 날기를 잊지 않은 거북이에 부침

등장인물 두 명짜리 소설... 이라.자살시도를 안 해보고 썼다는 게 가장 마음에 걸립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무작정 해볼 수도 없잖아요...;; 날기를 잊지 않은 거북이에 부침 “그럴까?” 눈앞에 있는 이 사람은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다만, 좋은 카운슬러인지는 의문이다. “사랑, 이라… 글쎄,” 가끔은 어느 쪽이 상담을 해주는 쪽인지 모르겠다. 그는 마른 사람이었다. “너희와는 좀 세대가 안 맞겠지만 말야, 킬리만자로의 표범이라는, 노래 가사에도 사랑이 사람을 외롭게 만든단 말이 있는데 말야……” 몇 번 만나면서 알았다. 그는 묘한 인용을 즐겼다. 그는 마른 사람이었다. 유일하게 풍성하다는 느낌을 주는 곳은 긴 머리카락뿐이었다. “나도 자살은, 실제로 해본 적은 없거든? 그러니까, 대단하다고 생각..

어설픈꿈 2008.01.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