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어가는꿈

청소년 자살 모두의 문제

공현 2011. 11. 23. 17:57

[주먹밥]이라고 5.18재단에서 내는 소식지 같은 잡지에 쓴 글입니다.






청소년 자살, 모두의 문제



  얼마 전 교육과학기술부에서 2004~2008년 5년 동안 학생 623명이 자살했다고 발표하며, 학생 자살 문제가 심각해서 대책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특히 2011년 통계청의 발표에 따르면 청소년 사망원인 1위는 자살로, 인구 10만명당 청소년 자살자 수는 15.3명이라고 한다. 뭐, 교육과학기술부의 집계는 '학교에 재학 중인 학생'을 대상으로 한 것이고, 통계청의 발표는 청소년기본법에 따라 24세 미만을 청소년으로 본 것이라서 숫자를 좀 더하고 빼서 봐야겠지만, 절대 가볍게 볼 수 없는 숫자다.

  1980년대 후반, 연간 100여명의 학생들이 자살하는 경쟁적이고 차별적인 교육현실을 비판하며 교사들이 교원노동조합을 결성했고, 학생들이 그들과 함께 거리로 나왔던 적이 있었다. 그러나 지금도 현실은 별반 다르지 않은 것 같다. 앞서 언급한 2011년 통계청의 통계를 보면, 청소년들이 가장 많은 스트레스를 받는 고민거리는 공부(38.6%)로 나타났고 그 다음은 직업(22.9%)이었다.

  1980년대에 자살한 학생은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라고, 나는 공부하는 기계가 아니고 엄마의 로봇이 아니라고 유서에 썼다. 2007년에 자살한 학생은 유서에 같은 곳에서 각기 다른 재능을 지닌 아이들이 오직 한 가지 '대학 가는 법'만 배우고 있는 현실에 절망하고, 같은 머리 같은 옷 같은 공부만을 해야 하고 선생님들의 몽둥이를 원망하는 내용을 적었다. 바로 작년 한겨레 칼럼에서 김규항 씨는 부모가 요구하는 성적을 달성하고 다음날 "이제 됐어?"라는 유서를 남기고 아파트에서 몸을 던진 학생의 이야기를 실었다.
  20년의 시간 동안, 우리 사회는 어떻게 변화했나. 교육과 노동시장의 문제 등은 심해지면 심해졌지 결코 나아진 것 같지 않다. 입시경쟁교육만이 문제인 것은 아니다. 세계 최장시간을 자랑하는 노동시간, 해체된 지역 공동체, 더 팍팍해지고 불안해진 사회 현실 등은 청소년들의 고립과 자살을 부추기고 있다. 또래와의 소통도, 어른들과의 소통도 어려운 사회.

  내가 청소년운동을 하면서 계속 만나는 청소년들도 그런 이야기를 종종 한다. 성적에 대한 스트레스, 미래에 대한 불안과 압박감은 점점 심해지는데, 주변의 어른들 ― 부모들 등과는 소통이 잘 되지 않는다고 한다. 아니, 오히려 억압적이고 자식들을 자기 소유물처럼 대하고 존중하지 않는 부모들의 태도 때문에 죽고 싶을 때도 많다고 한다. 학교에서 인격을 짓밟히고 자존감이 낮아졌을 때는 더더욱 그렇다고 한다. 부모들에게 물어보면 또 일하는 게 너무 힘들어서 자식들과 대화하려고 하거나 친해질 시간도 없다고 변명하곤 한다. 청소년 자살은 청소년 개인의 책임이 아니라, 이런 총체적인 문제들이 중첩되어 있는 사회 문제인 것이다.


청소년 자살은 '충동적'?

  그러나 이런 청소년들의 삶의 문제를 걱정스럽게 바라보는 비청소년들, 어른들의 시선조차도 청소년들에 대한 편견을 담고 있을 때가 있다. 수많은 청소년 자살에 관한 언론 기사들이나 '전문가'들의 분석에는 "충동적", "일시적", "사소한" 등의 단어들이 공통으로 등장한다.

상담지원센터 관계자는 "청소년의 경우 빈곤.실업.가정불화 등 정형화된 중.장년층 자살과 달리 사소하며 일시적인 문제에 대해 충동적으로 자살을 생각하거나 시도하려고 하면서 그 위험성이 매우 높다"고 경고했다. (제주일보 2008-09-17)

하 원장은 청소년 자살에 대해서는 충동적이라는 얘기를 꺼냈다. “요즘 청소년들은 예전에 비해 잘 참지 못합니다. 뜻대로 되지않으면 바로 행동합니다”  … 청소년들의 이런 충동성 때문에 어른들이 무심코 넘기기 쉬운 사소한 이유들이 죽음을 부르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 청소년은 깊은 생각 끝에 결정하기 보다는 사건의 도피나 보복의 수단으로 죽음을 택한다. (아름다운교육신문 2011-05-13)

김미재 전문의는 “청소년들은 주변 환경의 영향을 많이 받아서 사소한 문제에도 충동적으로 자살을 생각하는 등 위험이 높기 때문에 청소년의 우울증 및 자살징후를 파악하고 예방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경기신문 2011-07-19)


  이처럼 어떤 어른들은 청소년들이 목숨을 끊게 되는 문제에까지 "청소년은 충동적"이라고 하고, 청소년들이 겪는 문제에 대해 "사소하며 일시적인 문제"라고 평가하고 있다. 물론 이렇게 말하는 취지가 "어른들 눈엔 사소하게 보이지만 청소년들에게는 아닐 수 있다."라고 가르치려는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청소년들이 충동적이라고, 청소년들의 자살 원인이 사소한 문제라고 말하는 것 자체가 청소년들의 삶과 선택을 가벼이 여기는 것은 아닐까? 청소년들이 목숨을 끊을 정도로 고민하고 괴로워하는 문제를 '사소한 문제'라고 하는 그 전제를 버리지 않는 이상, 청소년들의 이야기에 진정으로 귀를 기울이고 그 입장에 서는 것은 불가능하지 않을까.


함께 책임지기 위해

  사실 한국 사회에서 청소년들의 자살률은 '의외로' 그리 높은 편이 아니다. 그런데 이건 한국 청소년들의 자살률이 일반적으로 볼 때 낮아서라기보다는, 한국의 자살률이 전반적으로 높기 때문이다. 예컨대 노인과 20대의 자살률은 10대의 자살률보다 더 높다. 지금까지 내가 이야기한 여러 요인들 중 대다수는, 사실 청소년들의 자살 뿐 아니라 모든 사람들의 자살을 부추긴다고 해야 옳지 않을까. 청소년 자살은 그런 한국 사회 전반의 자살 문제와 같은 맥락에서 생각해야 할 것이다.

  때문에 우리가 청소년 자살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은 우리 모두의 문제를 함께 이야기하고, 함께 책임지자고 하는 것이다. 청소년들의 복지를 위해서 상담이나 지원을 강화하는 것은 가장 기본적인 전환일 것이다. 청소년들의 자살을 줄이기 위해서는 청소년들에게 '국가 경쟁력'을 위해서 입시경쟁의 전사가 되라고 윽박을 지르면서 정작 청소년들의 정신건강을 위한 상담 서비스를 위한 예산은 제대로 편성도 하지 않는 정부에 문제 제기해야 한다. 아이를 부모의 소유물처럼 생각하고 제대로 대화도 이루어지지 않는 팍팍한 현실을 넘어서, 부모들이 상담교육을 받고 청소년들과 대화할 줄 알게 만들어야 한다.  청소년들의 삶을 중심에 두고 생각하자고 해야 한다. 그렇게 교육이, 가정이, 사회가 바뀌어야만 한다.

  청소년 자살 문제를 단순히 '불쌍하고 충동적인 청소년들'의 문제로 생각하지 말자. 청소년 자살 문제를, 우리 사회 모두의 삶의 질의 문제라고 생각할 때 비로소 청소년 자살에 관한 해결책이 진정성 있게 나올 수 있지 않을까? 청소년들과 함께 우리 사회의 비인간적인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함께 하는 것, 개인이 문제가 아니라 우리 사회가 문제라고 이야기하는 것, 함께 그 속에서 살아남고 그걸 바꿔나가는 것이 필요하다. 그것이 우리가 지금 청소년 자살을 이야기하는 제대로 된 방식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