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어가는꿈2013.08.25 12:55


[특집| 2008년의 ‘촛불 청소년’]그들은 2013년에 다시 촛불을 들었을까




[특집| 2008년의 ‘촛불 청소년’]촛불 경험이 어떤 영향을 미쳤나




2008년의 촛불 청소년의 현재 2013년의 촛불 집회 참가 여부,

그 청소년들의 현재 상황 등을 추적한 기사.


흥미로운 시도라고 생각한다.

촛불집회가 조직적, 운동적 현상이 아니라 개인적 참여 경험으로 해석되어야 하는 건 슬픈 일이지만.



아, 두 번째 링크한 기사는 연구의 어려움을 토로한 기사이니 참고 삼아 보시길.

저작자 표시 비영리
신고
Posted by 공현
걸어가는꿈2009.05.01 15:00

개인적인 감상과, 이번 5월 2일에 '급' 있을 청소년 집회를 홍보할 목적 두 가지... 모두입니다.

개인적으로는 촛불집회...를 그렇게 긍정적으로 생각지는 않습니다.

대중적 자발성이라는 말은 굉장히 그럴 듯해 보이기도 하고, 그리고 그런 자발성은 굉장히 값진 것이긴 하지만- 그것이 일상적인 차원으로 그리고 동시에 조직적인 차원으로 발전하지 못한다면, 또는 그런 것을 '비정치성'이라는 이름으로 거부한다면...

또한 촛불집회는 사람들에게 이상한 기대를 심어놨습니다. 무슨 일만 있으면 촛불 들고 모이자고 하더라구요. 그것 외에도 다양한 정치적 사회적 해결 방식들을 모색하고 시도해봐야 하는데, 촛불집회를 전가의 보도처럼 여기게 되었달까요...

- 그리고 촛불집회 내부에서도, 우리는 많은 보수성을 발견했다고 생각합니다.


-------------

반이명박 세력의 결집이 현실화되고 있다고 합니다. 재보선이나, 경기도교육감 선거도 그렇고... 정책적으로나 다른 면에서도 그렇습니다.

하지만, 작년 같은 명확한 이슈가 없이 너무나도 많은 이슈들이 떠오르고 있는 지금,
작년처럼 큰 촛불집회를 기대하는 건 아마도 무리일 것 같습니다.
작년 촛불집회 이후에 많은 사람들에게 자리한 무력감 같은 것도 한 역할을 하겠지요.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시점에서 우리는 모이는 수밖에 없는 것도 사실입니다.
모여서 외치고, 이야기하는 것이 지금 시점에서 시작점인 동시에 최선일 것입니다.


---------------

최근에 충격적인 기사를 하나 봤습니다. 중학생 분들이 시험이 보기 싫어서 제초제를 마셨다는 기사였죠.
이분들은 자살할 의도까지는 없었다고는 하지만, 실제로 시험성적이나 입시경쟁에 관한 문제 때문에 자살을 기도했거나 자살한 청소년들도 여러 명 보도되고 있습니다.



작년 촛불집회가 청소년들에게 어떤 거였나... 하는 것에 대해서, 저는 사실 그리 긍정적인 입장은 아닙니다만-; (이것저것 다 긍정적이지 않군요.)
촛불집회에 참가한 청소년들 중 다수가 '국민'으로서 참가했다고 생각하지 '청소년'으로서의 입장으로 참가했다고 생각하진 않거든요.

하지만 그럼에도 그 어느 때보다도 '집회'가 필요한 게 지금인 것 같기도 합니다.
조금이라도 더 모이고 외쳐야 하는 시기인 것 같기도 합니다.

-----------------------

5월 2일에 '급' 잡게 된 청소년 집회는 '정치적' 목적인 게 맞습니다. ('급' 잡게 된 과정에는 타의가 좀 반영되어 있습니다. 그 복잡한 과정은 나중에 후기로;;)

촛불1주년을 빙자해서
조금이라도 더 청소년들의 현실을 개선하고 싶어하는 청소년들이 모이고,
그런 청소년들이 좀이라도 조직화되게 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마음에서 준비하는 것입니다.
제가 준비를 열심히 하고 있는 건 아니고 다른 사람들에게 떠맡기고 있는 입장이긴 하지만, 조금이라도 더 알려져서 조금이라도 더 오면 좋겠습니다.

(지금 정국에서는 이런 솔직함이 차라리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촛불 1주년 행사가 2시부터입니다. 준비부족은 그 행사에 적당히 묻어가는 걸로 커버하려고 합니다.
그러나 동시에 그 행사 전에, 청소년들의 요구를 따로 모아내는 몸부림을 해보려고 합니다.



조금이라도 더 알려질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현실을 바꿀 수 있는 힘이 우리에게 조금이라도 더 모이도록...
저작자 표시 비영리
신고
Posted by 공현
지나가는꿈2009.01.02 02:09

1월 2일부터 울산에서 청소년인권행동 아수나로 총회입니다.
그래서 총회에 제안할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정리해보고 있습니다.
아, 아수나로 북 수정에 대한 제 의견도 정리 중이구요...

그래서 이런 밤에-  쓰다보니 밤이 깊어가고 있습니다.

7시에 일어나야 하는데-


그동안 블로그도 거의 못 썼죠;

그냥 짧게... 변명 같은 겁니다.


원래 이걸 24일 안티크리스마스가 끝나면 곧장 블로그에도 몇 가지 쓰고, 일도 다 하려고 했습니다-만.

25일은 그간의 피로 때문에 푹 퍼져서 자면서 보내버렸고

26일, 27일,,, 쉴 날이 없더군요, 은근히.
아수나로 서울지부 모임도 하고, 여기저기서 송년회도 하고, 오승희도 부치러 다니고, CMS 기부금 영수증 발행하고...

좀 개인적으로 심란한 것들도 있고 해서 빨리 쓰지를 못했습니다.
(이 심란한 것들에 대해서 블로그에 쓰고 싶었는데, 짬이 안 나더라구요)

그러다가 31일에는 기필코 서울지부 활동 정리랑 이런 걸 다 하려고 했는데...



31일 저녁엔 보신각에 갔었습니다.
(그 전날인 30일에는 송년회하느라 밤 샜습니다 -_-;)


인권단체들이나, 뭐 아는 활동가들이랑 같이

활동하는 단체 차원으로 간 건 아니고 그냥 어떤 식으로 될지 반은 궁금해서 나온 거였으니- 특별히 계획은 없었습니다.


보신각에서는 7시부터 피켓, 깃발, "선생님을 돌려주세요" 풍선을 든 여러 사람들이 많이 나와있었고

경찰도 많이 나와 있었습니다.

사람들이 하도 많고 경찰들이 계속 길을 여기저기 막아둬서 돌아다니는 게 무지 힘들었는데요.

그래도 돌아다니는 요령은 터득했습니다.
경찰들 줄 서서 다니는 거에 묻어서 다니는 게 제일 빠르더라구요 -_-;;
경찰들은 막 신호도 무시하고 건너다니거든요. 거기에 슬쩍 끼어들어서 가면,
앞뒤에서 경찰들이 이상한 눈으로 쳐다보긴 하지만 그래도 돌아다니는 데 큰 지장이 없습니다.
물론 연행될 수도 있느 ㄴ상황에서 그렇게 다니는 건 자폭행위겠지만-
아직 특별한 충돌도 없고 그냥 서로 서있기만 한 상황에서는 문제 없는...
(-_-; 뭘 주저리주저리...)



여하간에-

8시반 쯤일까, 9시 무렵에 말이죠.
조계사 근처의 평화박물관에서 "선생님을 돌려주세요" 풍선을 대량으로 만들어서 전교조 교사들과 다른 활동가들이 나오고 있었드랬습니다.
그런데 경찰이 풍선이 "위험한 물건"이라면서 막더래요.

따이루에게 연락을 받아서 누리, 사랑(전청모) 등등과 갔었죠.

근데 누리가 저는 다른 집회 대오에 알리고 와달라고 해서 열심히 뛰어다니며 안단테와 기타 등등 사람들과 같이 가려고 하는데-
평화박물관이 어딘지 모르겠는 거예요 -_-

그래서 조계사 주변을 거의 20분을 헤매다가 겨우 도착했어요.

난리더라구요.

막 풍선을 경찰들에 둘러싸인 바깥으로 빼낼려고 무거운 걸 달아서 묶은 걸 들고 높은 대로 올라가서 던지고...
그걸 무슨 농구에서 리바운드하듯이 빼앗고;

저 도 뒷문 쪽에서 경찰 분들이랑, 마치 리바운드할 공간을 확보하려고 스크린아웃하듯이 몸싸움을 벌이고 -ㅂ-; 막 풍선 잡으려고 경찰 분들이 손을 위로 뻗으면 잡으면서 "아이 저도 팔짱 끼고 싶어서 끼는 건 아니구요~" 그러면서 막 끌어내리고...

여하간 막 경찰 분들에게 강제로 뜯겨져서 끌려 나오고 ;;

손이랑 여기저기 많이 긁히고 까졌어요. 이럴 줄 알았으면 장갑 낄걸...;; 하면서도

풍선을 많이 밖으로 빼내긴 했는데, 최혜원 씨(도둑괭이) 등이 연행되었고...

(관련기사 링크)  
(관련동영상 링크)

둘다 오마이뉴스에용


그리고 더 빼내는 건 포기하고 안에 사람들만 나오기로 하고 경찰이 물러났습니다.

그 고생을 하고 나서... 다시 집회하는 보신각 앞으로 돌아와서, 종 치는 것까지 딱 보고서 나왔습니다만...

(KBS 썩을... 집회 대오는 하나도 안 비치고 무대만 줄창 비치고, 모인 사람들 찍을 때도 사람들 거의 안 보이게 엄청 멀리서 샷 잡고... 그러면서 사회자 멘트에서는 종 치는 걸 보려고 7만이 모여서 환호하고 있다고 그러대 -_- "명박퇴진 독재타도"가 환호인가;; 공정택이랑 오세훈 나올 때는 공정택 물러가라, 우우우, 집어쳐, 등의 구호도 많이 했는데... 그런 게 환호라면 환호지만? 냐핫
그 자리에 시위하러 나온 사람, 시위가 아니라 그냥 타종행사 보러 온 사람들, 마구 섞여 있어서 누가 많았다 적었다 그런 건 그 속에 있던 저는 알 수가 없었습니다. 하지만 확실한 건, 예전에는 타종행사 보러 온 사람들도 종종 인터뷰 따고 사람들 얼굴도 하나하나 잡고 그랬던 방송이, 행여나 시위하는 모습이 찍힐까봐 사람들 모습은 아예 잡지도 않더군요 -_- )


집에 오니까 몸이 완전 뻐근하더라구요. 팔에 쥐도 나고.. 허리도 아프고.. 격한 몸싸움의 흔적이 곳곳에..
그래서 쓰러져서 자버렸습니다 -_-;;





변명이 너무 긴가요

에휴


밤이 깊었네
춤추며 노래하는 키보드?
신고
Posted by 공현
걸어가는꿈2008.09.08 12:29



옛날에 썼던 글들 짜깁기 혹은 재정리에 가까운 글들이네요;

흠...

시민운동가 대회에 낼 원고로 쓴 거예용.

총총.







촛불소녀, ‘도전’과 ‘희석’의 줄다리기




잠시 옛날이야기

  청소년들의 정치 참여라거나 사회 참여에 대해 이야기할 때, 혹은 청소년들의 주체성에 대해 이야기할 때, 많은 사람들/단체들이 종종 1920년대 학생들의 항일독립운동이라거나 1960년의 4.19, 1980년 광주, 1980년대 후반의 민주화운동 등을 이야기하곤 한다. 그러나 청소년인권운동을 하는 입장에서 세상을 해석하는 나로서는, 이러한 운동들이 과연 얼마나 유의미했는지 다시 질문하지 않을 수 없다. 이런 방식으로 과연 청소년들의 권리가 인정되거나 쟁취되었는가? 혹은 이런 방식으로 청소년들(만)의 이해관계가 얼마나 공론화되었는가? 항일독립이나 민주화의 문제가 청소년들의 삶과 무관하다는 것이 아니다. 거기에 더해서 청소년들이 이야기하고 요구안으로 내걸었던 교육과 학교와 청소년들의 삶의 문제는 어디로 갔느냐는 질문이다.
  ‘성인’들의 역사는, 1920년대 항일독립운동이나 80년대 후반 민주화운동에 청소년들이 참여하면서 내걸었던 교육에 대한 요구, 청소년들의 정치적 권리에 대한 요구 등은 잊어버렸다. 그들의 운동은 단지 독립운동이고 민주화운동일 뿐이었으니, 사학재단의 비리와 교사의 체벌폭력까지도 독재정권과 연관 지으며 투쟁했던 80년대 고등학생 분들에게는 죄송한 말씀이지만, 묻혔다고 밖엔 할 말이 없다. 묻힐 수밖에 없었던 사회적 조건이었다고 할 수도 있겠지만, 여하간 묻혔다는 건 확실하다. 청소년들의 정치적 권리에 대한 선명한 주장 없이 청소년들이 거대담론(민족독립이든 광복이든) 속에 뛰어들면서 했던 정치적인 활동들이, 청소년들의 정치적 권리나 지위를 증진시키는 데 명확하게 기여한 것 같지도 않다.




다시 지금 이야기 : “촛불소녀”

  그리고 나는 2008년 촛불집회의 현장에서도 그런 복잡한 문제를 생각한다. 광우병 이슈에 묻혀서 청소년들의 다양한 요구들이 묻혔다는 것에 대해서도 할 말은 많지만, 그래도 일단은 촛불집회 자체에서 사람들이 청소년들의 정치적 행동을 해석하는 방식에만 집중하도록 하자.
  많은 사람들이 5월에 촛불집회를 처음에 시작한 주역은 청소년들이었다고 말하며, 청소년들이 역사적 주체이고,(독립운동, 4.19, 광주, 민주화운동 등등의 양념과 함께) 대단하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동시에, 많은 사람들(여기서 ‘어른들’이나 ‘비청소년들’이라고 하지 않고 ‘사람들’이라고 한 것은 실수가 아니다.)이 이야기한다. 오죽하면 청소년들까지 나오겠느냐고 말하고, 청소년들이 기특하고 미안하다고 말하며, 아이들이 무슨 죄냐고, 어른들이 해주겠다고 말한다.
  이처럼 집회현장에는 아이들/청소년들에 대한 이중적 시각이 혼재해있다. 한편으로는 청소년들의 ‘힘’, ‘역할’을 인정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청소년들의 역할을 축소시키고 그들을 대상화하려고 한다. 내 눈에는, 청소년들의 정치적 힘과 역할을 인정할 수밖에 없지만 그래도 그것을 축소시키고 청소년들의 정치적 활동을 예외적인 것으로 한정하고 이를 기존 사회의 틀이 통제할 수 있는 범위에 두려는 마음들이 엿보인다. 청소년인권운동을 하는 입장에서 볼 때 촛불집회 현장에서의 청소년들에 대한 태도는 기존의 틀을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그리고 그런 의미에서 그것은 보수적이다.
  ‘미성년자’(차별적인 표현이다.)는 부모 동의서를 가지고 나와야 한다는 촛불집회 웹홍보물, 밤 10시 이후에 ‘미성년자’는 자진 귀가시키겠다는 방침, “아이들이 무슨 죄냐 우리들이 지켜주자”라는 나눔문화의 종이피켓과 집회현장에서의 구호들, 중고등학생들의 등교거부는 백안시하면서 대학생들의 동맹휴업은 지지하는 ‘여론’, 등교거부를 포함하여 청소년들의 행동을 알리는 홍보물을 삭제하는 안티명박카페와 정책반대시민연대 카페 운영진, 예비군이라고 칭하는 남성들의 여성과 청소년 등은 뒤로 물러나라는 폭력적인 행동 방식들, 집회가 경찰과의 충돌로 좀 위험한 상황이 될 거 같으면 가끔씩 다가와서 말을 걸며 위험하니까 그만 집에 가라고 ‘반말로’ 말하시는 어르신들, 연행자들 중에서 ‘미성년자’는 석방하라는 구호들, 연행되는 여성 청소년의 사진에, 사실과 다르게 “‘집에 보내주세요’라고 말하며 눈물을 흘리고 있다”라는 캡션을 다는 신문 기사들(이건 청소년과 여성이 중첩된 보호주의의 발로일 것이다.), 초등학생 연행에 분개하며 항의하기 위해 거리로 나오는 사람들….
  청소년들에 대한 차별과 배제, 대상화는 완고했다. 거기에 대한 청소년들의 직접적인 ‘도전’조차도 흡수할 정도로. 마치 청소년들이 그런 문제에 대해 도전할 거라고는 상상조차 못했다는 듯이. 밤샘시위를 할 때 만들어진 토론의 장에서 한 청소년이 청소년들에게 함부로 반말을 쓰는 사례라거나 “아이들이 무슨 죄냐 우리들이 지켜주자” 구호 등에 대해 문제제기를 했지만, 그 발언에 대해 사람들이 보인 반응은 박수와 환호였다. 박수와 환호가 무슨 문제냐고? 그 박수와 환호가, 그 ‘도전’을 진지하게 받아들이는 것이라기보다는 청소년이 나서서 그런 이야기를 하는 것을 기특하게 생각하고 응원하는 듯한 분위기였기 때문이다. 또한 나눔문화의 구호를 패러디해서 “어른들이 무슨 죄냐, 청소년이 지켜주자”라는 문구를 락카로 새기곧 다녔지만, 그 문구를 본 한 촛불집회 사회자는 “자신들이 지켜줄 테니 어른들은 마음 놓고 촛불을 들라고 하는 아이들에게 미안하다. 어른들이 더 열심히 해서 우리 아이들을 지켜주자.”라고 발언했다. 몇몇 사람이라도 그런 청소년들의 문제제기에 생각을 다시 해보게 되었는지 어떤지는 정확히 알 수 없다. 그러나 다수의 사람들, 전반적인 분위기는 변하지 않았다.

  촛불소녀는 촛불집회 속에서 청소년들의 지위를 나타내는 아이콘이었다. 간단하게 해석하면, 촛불소녀는 청소년들(특히 여성 청소년들)이 적극적으로 촛불집회의 공간을 열고 촛불집회에 참여하는 것을 나타내는 아이콘이다. 또한 촛불소녀가 계속해서 다양한 방식으로 발언되고 다양한 표정의 이미지들이 만들어진 것을 볼 때, 촛불소녀는 청소년들의 적극적인 활동에 따라 변화하고 발전하는 이미지였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런 긍정성에도 불구하고 촛불소녀는, 청소년들의 정치적인 도전을 희석시키는 많은 지점들을 가지고 있었다. 촛불소녀는 학교의 두발규제와 복장규제에 딱 맞는 머리 모양과 단정한 교복을 갖춰 입고 있으며, 순수하면서 또 당찬 ‘소녀’의 이미지를 어필하고 있었다. 촛불소녀는 현재 집회현장이나 운동 속에서의 청소년들의 지위에 관한 문제의식이 결여된 문제작이었으며, “촛불”이라는 상징(비정치적인, 순수한, 소망 기타 등등의 표현들과 연결되는)과 “소녀”라는 이미지를 내세움으로써 지켜줘야 할 약자, 혹은 순수한 존재로서의 (여성) 청소년들의 이미지를 재생산하는 기획이었다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덧붙여서 ‘촛불소녀’를 만들어서 유포한 나눔문화가 촛불소녀를 만들기 전부터 “아이들이 무슨 죄냐 우리들이 지켜주자”를 구호로 띄웠다는 점, 또한 촛불소녀 기획에서 이런 부분에 대한 문제의식이나 반성은 찾아볼 수 없었다는 점, <촛불소녀의 코리아> 카페의 공지에 올라가 있는 글 중에는, 우리 10대 아이들을 지켜주고 싶었다며, 청소년들의 행동을 깜찍하다고 표현하는, 시선들을 그대로 담고 있는 글들이 있었다. 사람들이 “촛불소녀”라는 상징의 내용과 뉘앙스를 받아들이는 그 속에 청소년들에 대한 보호주의적/차별적인 인식이 반영되어 있는 경우가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것이 촛불소녀 자체의 죄이건, 아니면 사회적 현실의 죄이건. 촛불소녀는, 청소년들의 도전과 이 사회(청소년들 자신도 포함한)의 희석이 만난 결과물이며 줄다리기 과정에서 나온 흔들리고 변화하는 아이콘이다.




뒤늦게 설명하는 “왜”

  여기까지의 내용을 잘 따라오지 못하신 분들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왜냐하면 이 글에서 나열한 여러 사례들이 문제의 소지가 있다는 것은 청소년 보호주의에 대한 비판이라거나 그런 인식들을 어느 정도 공유하는 사람들이 아니라면 잘 알아보지 못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좋은 게 좋은 건데 뭘 그리 까칠하게 구는지 불쾌해 할 사람도 있을지도 모르겠다.
  일단 청소년들의 정치적 권리 문제만으로 한정해서 말하자면, 청소년들의 정치적 행위를 특별하고 예외적인 것으로 해석하는 방식, 그리고 청소년들의 정치적 행동에 일정한 제한을 두면서 통제하려고 하는 방식(밤늦게 들어가라고 하는 거라거나, 등교거부-휴교시위에 대한 반감이라거나)들은 너무나 한계가 많다. 딱 잘라 말해서, 청소년들의 정치적 권리를 증진시키고 청소년들에게도 해당하는 제대로 된 민주주의(물론 지금의 한국 사회는 비청소년들에게도 제대로 된 민주주의가 아니다.)를 실현하는 것은 그런 방식으로는 불가능하다.
  계속 억압받아 왔기에 2000년대 이후로 종종 드러나고 늘어나고 있는 청소년들의 행동이 지금 시점에서 특별히 소중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이 예외적이거나 특별한 것으로 해석되어서는 안 된다. 청소년들의 정치적 권리를 인정한다면, 또는 청소년들의 정치적 권리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청소년들의 정치적 행동을 비록 지금까지는 부당하게 유보되어 왔지만 당연한 것, 잊혀진 권리가 자신을 주장하는 것으로 이해해야 한다.(여기서 “잊혀진”이란 표현은 물론 비유이다. 권리는 되찾아지기보다는 창조된다. “잊혀진”이 이중피동이며 “잊힌”이 옳다는 딴지는 보류한다. “잊힌”보다는 “잊혀진”이 더 멋있지 않은가?)
  일반적으로, 청소년들은 분명 정치적(사회적, 경제적) 약자이다. 그러나 약자이기 때문에 보호해주고 약자이기 때문에 행동을 제한해야 한다고 말하기보다는, 약자인 청소년들을 어떻게 약자가 아닌 지위로 만들 수 있을지를 고민할 수 있길 바란다. 그것이 보호주의가 내재하고 있는 한계이다. 지금, 청소년들의 권리를 위해서는 더 많은 도전이 필요하다. 이 사회의 희석과 한계선 긋기와 충돌하는 도전이 필요하다. 따라서 나는 감히 “청소년은 촛불소녀가 아니다”라는, 자칫하면 촛불집회에 반대하는 뉴라이트가 쓴 것처럼 보이는 문구를 택할 것이다. 청소년은 촛불소녀가 아니다. 청소년은 촛불소녀의 프레임과 이미지를 넘어 더 나아가야 할 존재이며, 훨씬 더 정치적인 존재이다.





신고
Posted by 공현
걸어가는꿈2008.07.16 12:24
사용자 삽입 이미지



인민주권은....(;)

휴 -_-

촛불이 꺼져간다, 꺼져간다, 하지만

아직 사람들의 저력이 끝나지 않았다고 생각하고

민주주의의 문제-

음... 역시 민주당을 비롯해서 야당들이 싹 국회의원 사퇴를 해서 국회를 정지시켰어야 한다는 생각이 드는 요즈음이다.

그냥 비만 안 오면 좋겠다. 저번 주말에는 비를 쫄딱 맞으며 집회장을 헤맨...


(근데 홍보물에서 저 광우병국민대책회의 깃발은 좀 거슬린다)
신고
Posted by 공현
흘러들어온꿈2008.07.16 11:58

인권오름 기사입니다.

좋은 글이에요 ^^*





에이즈보다 무서운 광우병? 광우병보다 무서운 에이즈?

불안을 경쟁하는 정치를 넘어

미류

미국산 쇠고기 수입협상에 반대하는 초기 집회에서 발언을 할 기회가 있었다. 우리가 왜 싸우고 있을까를 물었더니 큰 목소리로 “죽기 싫어서!”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촛불의 시작은 ‘불안’이었다. 비정규직이 확산되고 집값은 치솟고 병원비는 점점 비싸지고 몸으로 체감하는 경기가 바닥을 치는 동안 불안은 점점 심화되어왔다. 그러나 간난신고한 삶도 언젠가 ‘나의 노력’으로 필 것이라는 기대가, 그리고 그 노력이 빛을 발할 기회를 이명박이 만들어줄 것이라는 기대가 불과 반 년 전만 해도 불안에 장밋빛 커튼을 드리우고 있었다. 그 ‘불안’이 밥상으로 성큼 기어들어오자 결국 폭발했다. 먹고살기 힘들어 죽겠어도 쥐 죽은 듯이 살고 죽을 둥 살 둥 일하면 ‘죽을 건 환갑집 돼지’일 줄 알았는데 현실은 그렇지 않다는 점을 더 이상 외면할 수 없게 된 것이다.

광우병에 의해 호출되는 에이즈

촛불이 번져나가며 대중의 ‘불안’이 ‘불만’으로 전화된 지는 오래다. 분위기 파악이 늦은 정부는 한동안 ‘불안’을 가라앉히려는 대응만 하다가 오히려 ‘불만’을 키웠고 이제야 조금씩 불만을 인식하며 경계하고 있는 모습이다. “국가 정체성에 대한 도전”을 읽어냈으니 말이다. 그러나 ‘불안’은 여전히 남아있다. 안전을 입증하려는 세력에 의해서든, 불안을 줄일 수 있는 조치를 요구하는 세력에 의해서든 광우병 쇠고기의 위험은 지속적으로 환기되고 있다.

이때 에이즈에 대한 비유가 심심치 않게 등장한다. 질병에 대한 지식이 쌓이고 20여 년 넘게 정확한 정보를 전하려는 노력이 이어져왔지만 여전히 에이즈는 인류에게 현존하는 공포다. 그 공포의 결과는 무참한 인권침해와 차별이었고 차별은 다시 공포를 강화하며 반복되어 왔다. 촛불시위의 “건강성”을 묻는 인터넷언론의 한 칼럼은 HIV 감염인의 시위 참여를 문제삼으며 부정의 근거로 들었다. “미친소 문제가 아닌 상황에서 에이즈보균자가 정상인과 어깨를 걸고 피를 토하는 구호를 내갈기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며 “에이즈 보균자라는 광우병 보균 소(미친소) 못지않은 무서운 존재”를 만나면서 광우병에 걸렸을 가능성이 있는 쇠고기 수입을 반대한다는 것은 “진정성”이 없다고 역설한다.

불안은 어디에서 증폭되는가

HIV 감염인과 어깨를 거는 것은 전염의 위험이 없다는 상식을 알려주기에도 아까운 칼럼을 굳이 인용하는 것은 불안을 경쟁하는 담론이 언제든 빠질 수 있는 함정이 드러나기 때문이다. 진보적인 언론이라고 일컬어지는 언론들과 소위 ‘진보적 인사’들도 에이즈 비유를 종종 유포한다. 에이즈보다 무서운 광우병, 에이즈만큼 무서운 광우병 등의 비교는 촛불의 요구를 정당화하는 긍정의 근거로 사용되면서 우회적으로 에이즈에 대한 공포를 강화하고 있다. 그러나 공포와 불안은 비교될 수 없으며 증명될 수도 없다. 다만 통계적으로 예측되는 ‘위험’이 있을 뿐이다.

현대 사회에서 ‘위험’은 도처에 널려 있고 끊임없이 만들어진다. 불안은 어떤 위험이 예상 가능할 뿐만 아니라 위험을 막을 경로도 예상 가능한 지점에서 증폭된다. 수 명의 남성들이 알 수 없는 질병으로 시름시름 앓다가 죽어나가던 것이 ‘게이돌림병’으로 정체화 하는 순간 불안은 증폭되었고 소떼들이 갑자기 비틀거리다 쓰러져가는 ‘알 수 없는 일’이 프리온을 통해 전염되는 병으로 밝혀지면서 불안은 제자리를 얻었다. 프리온은 어떤 방법으로도 사라지지 않아 광우병에 걸린 쇠고기를 먹으면 인간이 ‘변종 크로이츠펠트-야콥병’을 얻게 된다는 사실이 드러나면서 쇠고기 거래가 국제무역의 주요의제로 등극했다.


불안은 불안을 벗어나야 한다

그러나 크로이츠펠트-야콥병은 광우병 쇠고기를 먹지 않고도 자연발병할 수 있으며 인류에게 여전히 불치의 병으로 남은 질환은 이보다 훨씬 많다. 불안을 잊자는 주장을 하려는 것이 아니다. 불안을 직시하는 것은 중요하다. 그러나 불안이 불안에 머무를 때 그것은 나와 타인을 경계 짓고 나의 안전을 위해 다른 모든 가치가 희생될 수 있다는 인식을 정당화하하며 연대를 훼손하게 된다. 에이즈인권의 역사가 이를 증명하며 광우병에 의해 에이즈가 호출될 때마다 우려스러운 것도 이 때문이다. 불안은 불안을 벗어나야 한다.

에이즈는 누구나 걸릴 수 있지만 누구나 예방할 수도 있다. 하지만 여성이, 가난한 사람들이 더 많이 감염되고 더 많이 죽는다. 예방을 위한 정보와 수단은 불평등하게 접근되며 의약품에 대한 접근도 차별적이기 때문이다. 이윤만을 추구하는 제약자본은 질병의 예방과 치료보다는 질병에 대한 공포가 의약품의 비싼 가격을 지탱해주기를 바란다. 바이러스의 전염을 완벽하게 통제하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하더라도 질병의 확산을 막고 감염인들의 인권을 보장하기 위해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는 분명하다. 개인적 수준에서의 콘돔 사용뿐만 아니라 의약품 접근권의 실현, 여성의 권리 증진 등이 ‘위험’을 줄일 방안이다.

광우병이 에이즈와 비교되어야 한다면 바로 이 지점에서 비교되어야 한다. 위험의 크기 자체를 저울질하며 불안을 경쟁할 것이 아니라 위험이 불평등하게 분배되며 그 위험을 막을 방안이 ‘있다’는 점에서 비교되어야 한다. 미국산 쇠고기가 수입될 때 그 위험의 대부분은 가난한 사람들의 몫으로 돌아간다. 또한 인간다운 삶의 권리를 학교에, 군대에, 사회복지시설에 저당잡힌 이들에게 더 많이 돌아갈 것이다. 위험의 불평등한 분배가 무역규제를 통해 완화될 수 있다는 점이 우리가 싸우는 근거다. 크로이츠펠트-야콥병으로부터의 안전을 보증받는 것보다 인류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노력으로 위험과 불평등을 줄이는 것이 싸움의 목표가 되어야 한다.


비유는 재구성되어야 한다

보수언론만 HIV 감염인과 어깨 거는 것을 상상 못하는 것이 아니다. 촛불의 흐름도 HIV 감염인과 함께 하는 것을 상상하지 못한다. 광우병을 에이즈에 비유하는 반복되는 수사는 보수언론의 노골적인 논리보다 강하게 HIV 감염인을 배제한다. 광우병이 에이즈에 대한 공포를 불러내는 공간에서 HIV 감염인이라는 이유로 겪었던 차별과 인권침해를 고통스럽게 기억해내야 하는 사람이 있을 수 있다는 점을 깨닫는 것만으로도 일반화된 광우병과 에이즈의 비유를 멈춰야 할 이유는 충분하다.

시민들의 저항을 근거 없는 불안으로 치부하며 ‘위험’조차 부정하는 정부와 보수언론에 대해서도 불안으로 경쟁할 필요가 없다. 증폭된 불안은 근거 없는 불안이 아니라 답을 아는 불안이다. 광우병 위험이 있는 미국산 쇠고기 수입이 촛불의 흐름을 촉발할 수 있었던 것은 불안 그 자체가 아니라 위험을 막을 수 있는 방안의 구체성에 기인한다. 여전히 광우병과 에이즈의 비유가 필요하다면 ‘위험’을 확산하는 구조를 폭로하고 ‘위험’을 줄일 수 있는 정답을 우리가 알고 있다는 점에서 비유되어야 한다. 지금 필요한 것은 불안을 사라지게 할 힘이 우리 안에 존재한다는 점을 확인하는 것이며 우리의 삶에 영향을 미치는 모든 것들을 판단하고 결정할 권한을 우리 안에 귀속시키는 것이다. 죽기 싫어서 싸우기보다, 죽도록 싸워보는 것이 어떤가.



덧붙이는 글
미류 님은 HIV/AIDS 인권연대 나누리+, 인권운동사랑방 활동가입니다.
수정 삭제
인권오름 제 109 호 [기사입력] 2008년 06월 25일 5:44:03
신고
Posted by 공현
걸어가는꿈2008.07.16 02:57
사용자 삽입 이미지


7월 19일 오후3시

서울시청광장

청소년 대토론회
이명박정부에 대처하는 청소년의 자세


~_~

잘 해야 하는데... 에휴
신고
Posted by 공현
흘러들어온꿈2008.07.12 00:59
2MB는 물민영화 계획은 애초부터 없었다고 했지만, 물민영화는 몰래 차근차근 진행중이다. 벌써 13개 지자체가 민간위탁을 했고, 2MB는 물을 기업에 바치기 위해 당근을 차례차례 꺼내고 있다.

-------------------------------------------------
인권단체들이 만든 동영상!!!
신고
Posted by 공현
흘러들어온꿈2008.07.08 16:09
사용자 삽입 이미지


어청수. '어'용 경찰'청'의 수'장이어서인지 집회 참석자 수를 셈할 때도 정치적 고려가 들어간다. 비슷한 장소에 비슷한 인파가 모였는데도 2002년 월드컵 축구 때는 165만명이랬다가, 2008년 촛불대행진 때는 5만명이라고 팍 줄인다. 33배나 줄였다. 주최측 집계 50만보다 열배 적다.

5일 청계광장 우익단체 맞불집회는 실제 3백명이 참석했는데 주최측이 말한 그대로 1천명으로 집계했다. 조중동이 1년 전 노무현 시절 광우병 위험에 대해 겁나게 따지다 정권이 바뀐 후 180도로 돌아선 것과 같은 이치다.


2008년 07월 07일 (월) 14:58:45 이창우





레디앙에 실린 만평 ㅋㅋ
http://www.redian.org/news/articleView.html?idxno=10347

보고서 막 웃었어요 ㅠ

신고
Posted by 공현
걸어가는꿈2008.07.05 02:22
오답 승리의 희망(오승희) 8호에 실을 글







투덜리즘 : 명박이 치하의 꿈높현시


  청소년들은 아프다. 명박이 정부는 청소년의 삶을 학대하고 있다. 아니다. 명박 이전부터 청소년 학대는 벌어져왔다. 다들 모른 체하고 있었을 뿐이다.

  많은 사람들이 ‘4.15학교자율화’ 조치가 어쩌구 떠들지만 이미 ‘수준별 이동수업’이라는 과목별 ‘우열반’, 0교시, 보충수업, 강제종교수업 등은 공공연한 비밀이었다. 교육인적자원부는 언어영역 쉽게 내서 1교시 끝나고 자살하는 일 없게 한 거 말고는 한 게 없었다.
  입시경쟁으로 많은 청소년들이 자살할 동안에, 많은 학교에서 버젓이 강제야자와 강제보충수업이 시행되는 동안에, 정답과 경쟁을 강요하는 교육이 계속되는 동안에, ‘노간지’(놈현)는 어디서 뭘 하고 있었나? 그래, 어쩌면 교육/청소년인권문제에서는 노무현도 X놈이었을 뿐이었다. 쥐박이보다야 낫겠지만, 그래도 쥐보다는 좋았다고 칭찬 듣는 게 기뻐할 일은 아닐 듯싶다.
  한 교사는 4.15학교자율화 조치를 비판하며 없애버린 규제들 대부분이 ‘전봇대’(명박이가 쓸데없는 규제에 붙인 은유)가 아닌 ‘신호등’이라고 했다. 틀린 말은 아니다. 4.15학교자율화 등등 때문에 학교들이 더 학생들을 막 다룰 수 있게 된 것도, 전반적으로 경쟁이 더 심해진 것도 사실이다. ‘학교자율화’는 ‘학생타율화’요 ‘학생노예화’였다. 그러나 어쨌건 그 이전부터 존재했던 ‘신호등’이 고장 난 신호등이었다는 건 짚고 넘어가야겠다. 적어도 그 규제들은, 청소년들의 인권을 보장해주는 데 그리 효과적이지 못했다. 더구나 이 도로 시스템의 치명적인 문제들은 신호등 몇 개로 될 문제가 아니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이제는 지난 정권을 욕하고 있을 시간조차 별로 없다. 우리는 돌팔이 명박이 시대에 대처해야 한다. 지금까진 삽으로 조금씩 사람들을 입시경쟁 속에 파묻어가더니, 이젠 불도저로 그대로 밀어버리려고 하는 꼴이다. 4.15학교자율화를 하고, 본고사를 허용하고, 중고등학교도 서열화시키고, 기타 등.등.등.

  그리하여, 기어코, 가설라무네, 불도저에 밟히는 게 조낸 아팠던 청소년들이 꿈틀하기에 이르렀다. 광우병 위험 쇠고기가 급식에 올라올지도 모른다는 위기감이, 안 그래도 불만이 높았던 청소년들을 거리로 나오게 했다.
  그런데 글쎄, 이 무식한 것들이 더 때리고 밟으려고만 든다. 집회신고했다고 경찰이 학교로 찾아왔고 교육청들이 장학사 대군을 동원했다. 경기상고 교사는 학생이 미국산 쇠고기 수입에 반대하는 의견을 말했더니 절대폭력권을 발동하여 그 학생을 쥐어 패버렸다.
  게다가 정부는 학생노예화 정책에 대한 비판에 아랑곳하지 않고 계속 ‘학교자율화’를 밀어붙이고 있다. 사람들의 촛불을, 행동을 그저 ‘광우병&미국산쇠고기’에 관한 이야기로만 한정지으면서 말이다.(재협상도 안 하고 있지만.)
  청소년들은 무시당해서, 경쟁당해서, 학대당해서 아프고, 맞아서 아프다. 그러나 아프면 아플수록, 죽기 전까지는 더 꿈틀대고 더 비명을 지르는 게 인지상정이다. 그리고 청소년들의 비명소리는 이렇게 분명한 형태를 띠고 있다.
“학교자율화는 학생노예화! 집어쳐!”
“청소년의 정치적 권리 보장하라!”
“광우병급식&식품 명박이나 처먹어!”


  지금의 상황을 딱 한 마디로 표현하자면, 꿈높현시다. 꿈높현시는 “꿈은 높은데 현실은 시궁창”이라는, 영화 『8마일』에 나오는 유명한 대사다. 저번 호의 ‘지못미’에 이어 2탄은 ‘꿈높현시’다.
  왜 지금 상황이 꿈높현시냐 하면, 예를 들어, 작년까지만 해도 입시폐지와 대학평준화를 적극적으로 말해보려 했던 사람들도 명박이 때문에 ‘4.15학교자율화’ 막기에도 급급해졌다는 것이다.(지금도 말하고 있지만 묻히고 있다.)
  또한 급식운영에 민주적 참여, 생태적인 식량 생산과 직거래 시스템 등등을 꿈꾸고 있지만, 현실은 광우병 위험 쇠고기 수입되는 거 막기도 막막하다는 것이다.
  또또한 정당가입, 선거운동, 표현의 자유, 학생회, 대의제와 선거연령 등등 청소년들의 정치적 권리를 제한하는 온갖 것들을 없앨 것을 꿈꾸고 있지만, 집회장에서 장학사들 쫓아내기도 바쁘다는 것이다.
  게다가 예를 들면, 나는 ‘4.15학교자율화’는 욕하고 명박이를 싫어하지만 “입시폐지”를 쓴 피켓이나 낙서에 대해서는 반대하고 눈살을 찌푸리는 상당수의 사람들을 촛불집회 현장에서 만나보았다. 따라서 지금의 촛불은, 그다지 꿈높현시를 극복시켜줄 것 같진 않다.

  정녕 꿈은 높은데 현실은 시궁창이다. 하긴 현실이 시궁창인 건, 쥐가 대통령으로 뽑히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는 일 아닌가? 이 시궁창인 현실에서 좀 더 나아가기 위해서는, 쥐박이부터 퇴치할 수밖에. 끈질기게, 우리의 꿈을 이야기하는 것을 잊지 않으면서 말이다.

 
신고
Posted by 공현
걸어가는꿈2008.07.01 14:09
걸어가는꿈2008.06.30 01:46
촛불이 낳은 고민들 속에서



촛불과 청소년인권 사이

  청소년인권행동 아수나로가 여러 지역에 지부를 두고 있다는 것은 이 글을 읽는 분들도 알고 있으실 겁니다. 그 중에서도 아수나로서울지부가 청소년인권활동가네트워크에서 함께하고 있는데, 어차피 제가 서울지부 외의 다른 지역 사정 같은 걸 잘 아는 것도아니니까 아수나로 서울지부의 이야기만 하도록 하겠습니다.

  아수나로 서울지부에서 최근 집중하고 있는 문제는 단연그 촛불집회 문제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학교자율화가 청소년들의 인권을 보장할 정부의 의무를 포기한 인권침해라는 내용의국가인권위원회 진정을 제출하고, 퀴어퍼레이드에 참가하고, 청소년인권활동가네트워크의 빨강물고기 인권교육에 참여하는 등의 활동도있기는 했으나 거의 대부분의 활동이 촛불집회에 관련된 것이었다고도 할 수 있겠지요. 그래서 이 글의 제목을 "촛불과 청소년인권사이"라고 달아보았지요.

  아수나로(서울지부 뿐 아니라)가 처음에 초점을 맞춘 것은 청소년들의 정치적 권리를부당하게 침해하는 경찰이나 교육청 그리고 학교들의 행태에 대한 문제제기였습니다. 하지만 동시에, 촛불집회를 주최하고 있는 여러단체들이 청소년들을 차별적으로 대하거나 보호주의적으로 대하는 것에 대한 문제제기도 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아수나로차원에서 <현재의 미국산 쇠고기 반대 운동에 대한 청소년인권단체로서의 우려>라는 글을 써서 촛불집회를 주도하는 단체들이나 카페들에 보내기도 했습니다. 좀 까칠한 글이었는지 어땠는지 모르겠지만 반응이 그리 좋았던 거 같진 않습니다. ㅋㅋ;
  (참 관련 글로 <청소년들을 평등한 정치적 주체로 인정하라!>  요런 성명서도 썼었습니다.)

  이런 문제의식은 5월 17일에 '휴교시위'를 하자는 문자메시지가 돌면서, 그쪽으로 방향을 틀었습니다. 어째서 사람들은 청소년들의등교거부에 대해 그토록 알레르기, 과민 반응을 보이는 걸까요? 광우병 위험 쇠고기 수입에 찬성하건 반대하건, 이 사회는전반적으로 청소년들의 불복종 행동에 대해 강한 거부감을 보이고 있었습니다. 대학생들의 동맹휴업을 반겼던 것에 비하면 잘 이해가가지 않는 모습이지요. -_-
  그래서 우리는 청소년들의 자발적인 저항 의지의 표현이었던 5월 17일 휴교시위문자메시지를 구체화시키기 위해서, 교육공동체 나다 및 여러 활동가들과 함께 "5.17 청소년행동 공동준비모임"을 꾸리고 열심히준비를 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다른 단체들과의 의견 충돌이나 마찰도 좀 있었구요. 여하간 이러쿵저러쿵 말도 많고 탈도 많고 했던5.17 청소년행동을 끝냈습니다. 정말 죽는 줄 알았어요. 흑흑... (휴교시위 문자 처음 돌린 사람을 잡아서 집회 준비에동참시켜야 합니다!!!)

  그 이후에도 아수나로 서울지부는 5.17 청소년행동 공동준비모임에서, 이 이른바'촛불정세' 속에서 청소년들의 정치적 권리와 청소년들만의 목소리를 어떻게 하면 낼 수 있을지 고민해왔습니다. 촛불정세는 분명청소년인권에 관한 여러 이야기들을 다양하게 전개시키고 소통할 수 있는 광장인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동시에, 촛불정세는 여러 가지이야기들을 모두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 또는 "광우병" 또는 "반 이명박"에 묻히게 만드는 것이기도 했으며, 더 많은청소년인권에 대한 이야기들을 묻어버리는 것이기도 했습니다. 촛불집회 안에서도 청소년들에 대한 여러 가지 차별이나 보호주의적인시선들은 여기저기서 드러났습니다.
  그래서 5.17 청소년행동 공동준비모임(in 서울)은 "거리를 학교로 도로를칠판으로"라는 표어와 함께 거리에 락카칠을 하고 사람들과 함께 분필로 아스팔트에 글씨를 쓰며 놀았습니다. 그러면서 전단지와선전물 등으로 청소년들을 평등하게 대우할 것을 요구하는 홍보활동을 했습니다. 효과는 얼마나 있었을지 모르겠지만요-.



"촛불소녀"

  아수나로 서울지부가 활동한 것에 대한 이야기는 이쯤 해두고, 이제 이 촛불정세가 던져주고 있는 고민에 대해 이야기해보겠습니다.이 촛불정세는, 청소년들(10대들)이 그 처음을 주도했다는 사실을 비롯해서 청소년들의 적극적인 정치/사회 참여와 그런 정치/사회참여를 이 사회가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는지에 대한 고민들을 던져주고 있습니다. 그런 복합적인 측면이 모여 있는 상징적 아이콘이바로 "촛불소녀"입니다.

  "촛불소녀"는 처음에는 나눔문화라는 단체가 만든 것이었습니다. 그 기획의도가 청소년들의주체성, 적극성을 드러내기 위한 것이었는지 아니면 청소년들을 보호해야 할 존재로 그려내는 것이었는지는 분명 논란의 여지가있습니다. 제가 나눔문화 사람들의 마음을 읽을 순 없는 노릇이니까요.

  그러나 나눔문화가 촛불소녀를 만들기 전부터"아이들이 무슨 죄냐 우리들이지켜주자"("우리들"이란 표현도 문제지요.)라는 종이피켓을 나눠주고 있었고 촛불소녀 기획에서는 이런 부분에 대한 문제제기나비판은찾아볼 수 없었으며, 촛불소녀를 만든 이후에도 그런 종이피켓들을 아무 문제의식 없이 나눠주고 있었다는 점은 지적해야 합니다.또한 <촛불소녀의 코리아> 카페의 공지에 올라가 있는 글 중에는, 우리 10대 아이들을 지켜주고 싶었다며, 청소년들의행동을 깜찍하다고 표현하는, 기존 비청소년들(어른들)의 여러 차별적 시선들을 그대로 담고 있는 글들이 있었습니다. 사람들이"촛불소녀"라는 상징의 내용과 뉘앙스를 받아들이는 것 또한 청소년들에 대한 보호주의적/차별적인 인식이 반영되어 있는 경우가 있는것도 사실입니다.

 그런 점에서 촛불소녀는 현재 집회현장이나 운동 속에서의 청소년들의 지위에 관한 문제의식이 결여된 문제작이었으며, '촛불'이라는상징과 함께 '소녀'라는 이미지를 내세움으로써 지켜줘야 할 약자, 혹은 순수한 존재로서의 (여성) 청소년들의 이미지를 재생산하는기획이었을지도 모릅니다. 즉, 이런 측면에서 볼 때 "촛불소녀"는 이 촛불정세 곳곳에서 눈에 띄는 청소년들에 대한차별적/보호주의적 시선들의 표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촛불소녀의 이미지는 그렇게 단순하지가 않은 것같습니다. 촛불소녀가, 청소년들이 주체적이고 적극적으로 나서는 현상을 표현하기 위해 나타난 상징이라는 것은 분명한사실이었습니다. 그리고 촛불소녀는, 처음 그 아이콘과 단어를 만들어냈던 기획 의도가 어떤 것이었든지 간에, 촛불정세 속에서두드러지는 청소년들의 활발한 활동 속에서 청소년들의 적극성을 표현하는 아이콘으로 사용되어 왔습니다. 동시에 집회 현장에서"촛불아줌마" "촛불노동자" "촛불대학생" "촛불회사원" 기타 등등의 표현들이 등장하면서, 처음에 '촛불'과 '소녀'를결합시킴으로써 강조되었던 촛불소녀의 그 '특별한' 이미지를 어느 정도 희석되기도 했습니다.

  촛불소녀는 요컨대청소년들의 적극적인 활동과, 촛불집회 안에서도 강고한 청소년들에 대한 차별/보호주의 사이에서 변화하고 움직이고 있는이미지입니다. 청소년들은 그리고 그런 변화하는 면들, 이중적인 면들이 아수나로와 같은 청소년인권단체를 고민하게 만드는 부분인것이지요. 청소년들의 평등한 정치적 권리나 지위에 초점을 맞추고 촛불정세와 청소년 사이의 관계를 이야기하려고 할 때, 이런이중적인 부분들은 피해갈 수 없는 부분입니다.

  다만 확실히 말씀드릴 수 있는 건, 청소년인권행동 아수나로서울지부는, 함께하는 단체들과 함께 더욱 더 집회 현장과 촛불정세 속에도 고집스레 자리잡고 있는 '미성년자' 보호주의나 차별들에도전하려 할 것이라는 점이겠군요. ^^; 청소년인권에 관심을 갖고 있거나 청소년인권운동을 하는 모든 분들과 함께 이런 고민들을더 나누고 심화시킬 수 있길 바라며 글을 마칩니다.









(청소년인권활동가네트워크 소식지에 넣을 글로 쓴 것입니다.)
신고
Posted by 공현
걸어가는꿈2008.06.23 01:26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사용자 삽입 이미지



어른들이 무슨 죄냐  우리들이 지켜주마 -_-;


-“기특하고 장한 우리 아이들에게 미안하다. 미래의 희망인 아이들을 보호해야 한다. 아이들이 무슨 죄냐 우리들이 지켜주자.”

-“집회장에는 정치적 선동 등 청소년이 보고 들어선 안 되는 내용들이 많다. 청소년들은 판단 능력이 떨어지므로 특별히 보호해야 한다.”


  두 대사 중에, 위의 것은 촛불집회에 참여하고 있는‘민주시민’이 할 거 같은 말입니다.  그리고 아래의 대사는 촛불집회에 반대하는 ‘미쳤는갑제’가 할 거 같은 말입니다.
  하지만, 어딘가 묘하게 닯은 것 같지 않나요?
  우리는 촛불집회를 하는 사람들 사이에서도 청소년들에 대한 직간접적인 차별이 많다는 것이, 별로 맘에 들지 않습니다. 많은‘어른’들은 종종 청소년들을 단지 보호받아야 하는 약한 존재, 행동에 나서는 게 특별한 존재인 것처럼 취급합니다. 청소년들을 미래의 희망이라는 식으로 말하며, 현재에 살아있는 인간이 아니라 미래로 유예된 인적 자원이라는 생각을 무비판적으로 떠들기도 합니다.


  우리는 단지 보호를 받아야만 하는 그런 존재가 아니라, 인권이 있고 생각이 있고 의지가 있는 평등한 인간입니다.

  안 그래도 공부 압박에, 어떤 X같은 학교에서는 집회 나가면 징계한다고 공갈협박하고, 경찰에서 찾아와서 협박하고, 미쳤는갑제는 헛소리하고, 부당한 탄압에 충분히 힘듭니다.

  그런데 열심히 집회하러 나와도 미성년자는 부모동의서 갖고 오란 홍보물에 좀 그렇고,“아이들이 무슨죄냐 우리들이 지켜주자”라는 종이피켓에도 좀 그렇고, 예비군복 입은 아저씨들이 뒤로 가라고 하는 것에도 좀 그렇고,“미성년자 석방하라”라고 외치는 것에도 좀 그렇습니다. 차라리 청소년들이 “왜 우리만 훈방하냐 모두 석방하라”라고 외치는 건 어떨까요?


  청소년 여러분~_~ 함께 요구합시다. 우리를 보호 대상으로만, 기특한 애들로만 보지 말라구요. 우리는 당당한 우리의 주장을 가진, 동등한 정치적 주체들입니다.









촛불소녀에 거는 은근 태클



  나☆문화라는 단체에서 처음 만든“촛불소녀”가 유행하고 있습니다. 촛불소녀가 설령 만든 사람 입장에선 청소년들의 적극성을 드러내기 위한 기획이었다고 하더라도, 촛불소녀는 그런 식으로 보이지만은 않습니다. 오히려 촛불과 함께‘소녀’라는 이미지를 내세움으로써 기존의 약자로서의 이미지를 답습하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더군다나 나눔☆화 분들은 여전히 “아이들이 무슨 죄냐 우리들이 지켜주자”라는, 청소년들을 대상화하는 종이피켓을 나눠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촛불소녀에서 이런 부분에 대한 반성은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촛불소녀 카페의 한 공지 글에는, 청소년들을 순수하고 특수한 존재로 대상화시키고 있었고,“우리 10대 아이들”을 지켜주려고 촛불소녀를 만들었다고 하고 있었습니다.

  왜 이렇게 열심히 촛불소녀를 까냐구요? 우리는 촛불소녀가 오히려 청소년들을 보호해줘야 할 대 상의 이미지로 만드는 면이 있진 않을까 걱정됩니다. 또 우리는 촛불소녀가 청소년들의 활동을 특 별한 것으로 만드는 역할을 하지는 않을까 우려스럽습니다.


  그리고 또 혹시 기억나시나요? 청소년들 사이에 등교거부(휴교시위)를 하자는 문자가 돌았을 때 많은 사람들이 부정적인 의견을 보였습니다. 그중에는 대학생들이 동맹휴업할 때는 지지하던 많은 사람들도 있겠죠. 그건 어쩌면 청소년들이 정치적 의견을 가지고서 행동하고 불복종하는 것에 대한 알레르기 반응은 아닐까요?

  많은 어른들이 청소년들이 행동에 나서는 것에 대해 “미안하다”라고 합니다. 마치 모든 책임은 어른들에게 있고, 어른들이 할 일인데 청소년들이 나오게 만들어서 미안하다는 듯이 말이죠. 그리고 촛불집회를 처음에 청소년들이 시작한 것에 대해 기특하다고 말합니다.
  그건 어쩌면 청소년들의 행동의 의미를 축소시키고, 결국 정치와 사회의 주체는 어른들이라고 하는 것은 아닐까요?
  어른들이 좀 죄가 많은 건 사실이긴 하지만(-,.-) 이런 집회나 시위가 어른들만 해야 하는 일인 건 아닙니다.

  우리는 우리의 권리를 위해, 우리의 삶을 위해, 우리의 의지로 나선 겁니다. 우리의 행동은 예외적이거나 특별한 게 아니라, 너무나 당연한 것입니다.
  함부로 기특하다거나 미안하다고 말하는 것은 잘못 아닐까요?


  우리 모두, 평등한 관계로 만나고 행동합시다. 그리고 그렇게 하도록 요구합시다.



청소년인권행동 아수나로 cafe.naver.com/asunaro
신고
Posted by 공현
걸어가는꿈2008.06.19 16:16


“미성년자”, “아이들이 무슨 죄냐”, “촛불소녀” 그 공통점



완고한 청소년 차별/대상화/보호주의

  ‘그들’은 이야기한다. 촛불집회를 처음에 시작한 주역은 청소년들이었다고. 청소년들은 대단하다고. 청소년들은 역사적인 주체라고. 그러면서 동시에, 그들은 이야기한다. 청소년들이 기특하고 (마음 놓고 공부하게 해주지 못해서) 미안하다고. 아이들이 무슨 죄냐고. 어른들이 해주겠다고.
  집회현장에는 아이들/청소년들에 대한 이중적 시각이 혼재해있다. 한편으로는 청소년들의 ‘힘’, ‘역할’을 인정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청소년들의 역할을 축소시키고 그들을 대상화하려고 한다. 내 눈에는, 청소년들의 정치적 힘과 역할을 인정할 수밖에 없지만 그래도 그것을 축소시키고 청소년들의 정치적 활동을 예외적인 것으로 한정하고 ‘어른들’이 통제할 수 있는 범위에 두려는 마음들이 엿보인다. 반드시 어른들만 그렇다는 게 아니다. 집회현장의 많은 청소년들도 그런 사고방식들을 내면화하고 있다.
  그렇다. 청소년인권운동을 하는 입장에서 볼 때, 촛불집회 현장에서의 청소년들에 대한 태도는 기존의 틀을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그리고 그런 의미에서 그것은 보수적이다.

  처음부터 지금까지 쭈~욱 그랬다. ‘미성년자’(차별적인 표현이다.)는 부모 동의서를 가지고 나와야 한다는 촛불집회 웹홍보물, 밤 10시 이후에 ‘미성년자’는 자진 귀가시키겠다는 방침, “아이들이 무슨 죄냐 우리들이 지켜주자”라는 ☆눔문화의 종이피켓과 집회현장에서의 구호들, 중고등학생들의 등교거부는 백안시하면서 대학생들의 동맹휴업은 지지하는 ‘여론’, 등교거부를 포함하여 청소년들의 행동을 알리는 홍보물을 삭제하는 안티명박카페와 정책반대시민연대 카페 운영진, 예비군들의 여성과 청소년 등은 뒤로 물러나라는 폭력적인 방식들, 집회가 경찰과의 충돌로 좀 위험한 상황이 될 거 같으면 가끔씩 다가와서 말을 걸며 위험하니까 그만 집에 가라고 반말로 말하시는 어르신들, 연행자들 중에서 ‘미성년자’는 석방하라는 구호들, 연행되는 여성 청소년의 사진에 사실과 무관하게 “집에 보내주세요”라고 말하며 눈물을 흘리고 있다는 캡션을 다는 기사들….

  청소년들에 대한 차별과 배제, 대상화는 완고했고, 그 완고함은 청소년들의 ‘도전’조차 ‘흡수’해버렸다. 밤샘 가두시위가 경찰의 연행 등으로 대충 소강상태에 빠지고 시청 광장에 마련된 소규모 자유발언-토론의 장에서 한 청소년이 청소년들에게 반말을 쓰는 사례, “아이들이 무슨 죄냐 우리들이 지켜주자”라는 구호, 위험하다고 ‘미성년자’는 가두시위 중에 일찍 집에 가라고 하던 사람 등을 예시로 들면서 청소년들을 평등하게 대할 것을 요구하는 발언을 했다. 그 발언에 대해 모여 있던 많은 사람들이 박수를 치며 환호(?)를 보냈다. 그러나 그 자리에 있을 때 내가 받았던 느낌은, 그 박수와 환호가 그 ‘도전’을 진지하게 받아들이는 것이라기보다는 청소년이 나서서 그런 이야기를 하는 것을 기특하게 생각하고 응원하는 듯한 분위기였다.
  “아이들이 무슨 죄냐 우리들이 지켜주자”라는 나☆문화의 손피켓을 패러디하여 “어른들이 무슨 죄냐, 청소년이 지켜주자”라는 구호를 외치고, 락카로 거리에 글씨를 새겼다. 그러나 거기에 대한 반응은 예상 밖의 것이었다. 그 문구를 본 촛불집회 사회자는 “자신들이 지켜줄 테니 어른들은 마음 놓고 촛불을 들라고 하는 아이들에게 미안하다. 어른들이 더 열심히 하자.”라는 식으로 진행 중 발언을 했다. 연행되었던 청소년이 쓴 「“미성년자 석방하라”의 함정」이라는 글을 비롯하여, 청소년들이 자신의 주체적인 면을 강조하고 촛불 속에서의 차별과 보호주의, 대상화를 비판한 표현들은 오히려 어른들이 더 미안해하고 더 지켜줘야겠다는 생각을 하는 데 도움이 될 뿐인 것 같았다. 몇몇 사람이라도 그런 청소년들의 문제제기에 생각을 다시 해보게 되었는지 어떤지는 정확히 알 수 없다. 그러나 다수의 사람들, 전반적인 분위기는 변하지 않았다. 좀 우회해서, 패러디해가면서, 웃으면서 이야기하는 게 그들에게는 ‘도전’이 되지 않았던 모양이었다. 기특한 행동이거나 재롱이었을지는 몰라도.

“촛불소녀”에 거는 태클

  이런 상황에서 나눔☆화의 “촛불소녀”가 등장했다. 촛불소녀가 설령 청소년들의 주체성을 드러내기 위한 기획이었다고 하더라도, 촛불소녀는 그런 식으로 읽히지 않았다. 오히려 ‘소녀’라는 이미지를 내세움으로써 기존의 여성 청소년들의 약자로서의 이미지(‘촛불’이라는 상징물과 결합하여 더욱 강화된)를 재현하고 있는 것 같았다. (촛불소녀, 촛불백수, 촛불노동자, 촛불대학생, 촛불국회의원… 이런 말들을 만들어서 나열해보면 “촛불소녀”가 ‘소녀’로서 가지는 독특한 이미지가 어떤 것인지 좀 더 선명하게 알 수 있을 것이다.)

  더군다나 나눔문☆는 여전히 “아이들이 무슨 죄냐 우리들이 지켜주자”(“우리들”이란 표현도 문제다.)라는 종이피켓을 나눠주고 있었고, 촛불소녀에서 이런 부분에 대한 문제제기나 비판은 찾아볼 수 없었다. 촛불소녀는, 현재 집회현장이나 운동 속에서의 청소년들의 지위에 관한 문제의식이 결여된 문제작이었다.
  ≪촛불소녀의 코리아≫ 카페의 공지에 올라가 있는 <촛불소녀에 대해 많이 궁금하셨죠? 질문이 많아 올립니다^^>라는 글에는, 촛불소녀가 만들어진 것이 청소년들을 대상화하는 입장에서 비롯된 것임을 알게 해주는 말들이 많다. 그들은 “우리 10대 아이들”을 “지켜주고 싶었”다고 하며, “우리사회에서 가장 순수한 정신과 민감한 감성을 가지고 / 정의와 용기를 간직한 촛불소녀들은 우리의 미래이고 마지막 희망”이라면서, “아이들의 깜찍하고 용감한 행동 앞에 부끄럽지 않”고 싶다고 말하고 있다. 그들은 아이들을 지켜주자고 말하는 것과 KBS를 지켜주자고 말하는 것 사이의 차이에 대해 고민해보지 않은 것 같았다. 우리 아이들이 무슨 죄냐고, 아이들을 지켜주자면서 “촛불소녀”라는 이름으로 카페를 만드는 것이 가지는, 청소년들을 대상화하는 입장을 청소년(촛불소녀)의 이름으로 표방하는 것이 가지는 모순에 대해 생각하지 않은 것 같았다. 그들은 청소년들을 순수하고 특수한 존재로 신비화시키고 있었고, 청소년들을 미래의 존재로 만드는 담론을 비판적으로 검토해본 적이 없는 것 같았다. ‘아이들’의 행동을 “깜찍하다”라고 ‘어른’이 말하는 것 속의 권력을 성찰하지 않는 것 같았다.

이제는 진짜 도전이다.

  그래서 나는 이제 눈치 보면서 빙 둘러 말하던 방식을 포기하겠다. 그들은 그렇게 이야기해서는, 그것을 성년/미성년(어른/아이) 구도에 대한 도전으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청소년들을 대상화시키고 보호주의적으로 대하는 것에 대한 문제제기라고 생각하질 않는다. 왜냐하면 애초에 그들은 이 사회의 주체는 기본적으로 ‘어른들’이라고 생각하고 있으며, 청소년들의 행동은 예외적인 것이라고 규정하고, 청소년들에게는 미안하고 기특해 하는 태도가 당연하다고 느끼고 있기 때문이다.
  이제는 직접 도전하겠다. 그런 차별과 대상화에 맞서서 직접 비판하고 도전하겠다. 촛불집회에 나오는 이른바 ‘시민’들은, 이명박 반대를 외칠 때는 함께하는 사람들일지 몰라도, 청소년인권의 문제에서는 단지 ‘시민’들일 뿐이다. 그리고 그걸 나는 너무 늦게 깨달았다.
신고
Posted by 공현
걸어가는꿈2008.06.18 18:53
재수강은 이명박 시키자!


  우리는 이 땅의 수백만 대학생들을 대표하거나 대변할 생각은 코딱지 만큼도 없으나, 그래도 적어도 몇 명의 대학생들의 심경을 표현할 수 있으리라는 희망으로 이 글을 쓴다. 결론은 간단하다. 재수강은 이명박이 하게 하자! ㅠㅠ

  5월 초부터 시작된 촛불집회는, 광우병 위험 쇠고기에 대한 우려와 대운하를 비롯한 각종 정책에 대한 반대, 국민주권과 민주주의의 문제, 정부의 '소통'의 문제, 경찰폭력의 문제, 언론의 문제 등으로 계속 확대되면서 아직도 이어지고 있다. 장마 기간이 시작되었고 촛불집회 참가자 수가 줄었네 어쩌네 하는 이야기가 돌고 있으나, 이 촛불은 그리 쉽게 꺼질 것 같지 않다.

  초기에는 참가자들 중에 청소년들 비중이 컸으나, 5월 중순을 지나면서 대학생들과 20대 이상의 다양한 사람들이 참여하고 있는 촛불집회에, 우리 또한 대학생으로서 시간과 체력이 허락하는 한 참여해왔다. 그러나 비극은 이명박 정부가 사람들의 외침에 닭장차도 모자라 명박산성까지 동원하며 귀를 막고 버티고 있었다는 데 있으며, 6월은 대학생들의 기말고사 기간이었다는 데 있다.

  이번 학기 학점을 살려야 하는지, 아니면 눈앞에 생생히 펼쳐지는 민주주의의 발전에 함께해야 할지 갈등이 없었다고 하면 거짓말일 것이다. 그러나 사람들이 경찰의 폭력에 노출되고, 정부가 여전히 귀를 틀어막고 있는 상황에서 나만 살겠다고 학점에 매달릴 수는 없었다. 우리는 학점을 추구하는 대학생이기 이전에 인간이고 유권자이며 이 땅의 시민이었다.

  1987년 6월항쟁 때는 총학생회들이 결의하여 시험 거부, 또는 시험 연기를 결정했다고 하던데, 20대의 정치적 무관심이 어쩌구저쩌구 하는 이 2000년대에는 그럴 만한 배짱과 실력과 의지를 지닌 총학생회도 없었다. 결국 우리는 일종의 기말고사 보이콧을 선택했다. 우리는 기말고사 시험에 아예 들어가지 않거나, 혹은 기말고사 공부를 하기보다는 집회에 나가면서 최소한의 공부만 하고 시험을 보는 길을 택했다. 우리가 전혀 노력을 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우리는 노트 필기한 것과 교재를 들고 가서 집회장에서 밤을 새며 나름 밤샘공부를 했다. 그러나 그런 걸로 때워질 만큼 요새 대학교 시험이 만만하지 않았다. 뷁!!!

  이 땅의 민주주의와 우리의 건강한 삶을 위한 소극적 기말고사 거부의 결과는 장렬했다. 이제 우리 중 몇몇은 이번 학기에 때아닌 F 몇 개를 각오해야 할 지경이며, 설령 그렇지 않더라도 학점 평균은 학자금 대출이나 장학금신청 등에서 최소 기준으로 제시되는 점수도 넘기기 어려운 지경이다.

  우리는 이 책임이 1차적으로 우리들이 거리로 나가고 밤샘시위를 할 수밖에 없도록 막장 무개념 정치를 한 이명박 정부에 있다고 생각한다. 또한 이명박 정부는 한달 동안 계속된 촛불집회에도 불구하고 귀를 틀어막고 있으며 종래에는 우리가 소극적 기말고사 거부를 택할 수밖에 없게 만들었다. 올해 대학생 학력 저하의 주 원인은 이명박 정부다!

  그렇기에 우리는 주장한다.
  우리의  성적은 이명박이 책임져라. 재수강은 이명박이 직접 해라. 그게 싫으면 이명박 정부는 즉각 우리의 목소리에 진지하게 귀를 기울여라.
   이명박 정부의 무개념에 희생당한 우리의 2008년 1학기 성적에 조의를 표하며, 더 이상의 무개념은 용납할 수 없다.


대학생 공현

2008년 6월 18일 수요일


동의하시는 분들은 퍼날라주시길 -_-;;;

리포트 쓰고 써본 글입니다. 에휴
신고
Posted by 공현
걸어가는꿈2008.06.11 23:37
사용자 삽입 이미지
청소년은 예비시민이 아니라 시민이다
청소년의 시민의 권리 보장하라


사용자 삽입 이미지
"아이들이 무슨죄냐 어른들이 지켜주자?"

어른들이 지켜줬냐, 투표나 좀 잘하셈



사용자 삽입 이미지
이명박을 잡아라 하나 둘 셋

사용자 삽입 이미지
최저임금에도 못 미치는 시급 2000원 3000원 알바비 그렇게 번 우리 알바비가 촛불집회 초값과 교통비로 다 날아가고 있습니다. 피같은 알바비 돌리도~~


사용자 삽입 이미지
부당한 집시법은 나가뒈져


사용자 삽입 이미지
MB에게. 100일이야, 헤어져.


사용자 삽입 이미지
청소녀는 촛불소녀가 아니다.
(여러 가지 질문이 많이 들어올 피켓이긴 한데-
"촛불소녀"라는 식으로 여성 청소년들과 청소년들의 정치 활동을 표상하는 방식에 대한 문제제기)



사용자 삽입 이미지
청소년을 동등한 투쟁의 주체로



사용자 삽입 이미지
미친 0교시 강제야자 폐지하라!
대한민국 청소년이 무슨 대역죄인이라도 되나요?

새벽엔 아침도 못 먹게 수갑(0교시) 채우고
낮에는 꼼짝도 못 하게 칼(8교시) 씌우고
밤에는 집에도 못 가게 차꼬(야자) 채우다니요!



사용자 삽입 이미지
예비군 여러분
청소년과 여성을 물러나라고 하지 마십시오. 정작 방패에 찍힐 때는 어른 남자들도 다치긴 마찬가지입니다. 아무도 다치지 말아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더 많은 사람들이 힘을 합해야 합니다. 필요한 것은 보호가 아니라 동등한 사람으로의 인정입니다. 여러분이 말하는 보호란 것은 함께 싸울 때만 가능해집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때..때리면 아...아프다네 쥐...쥐새끼나 때려잡으시게
경찰님들 불복종 추천!



사용자 삽입 이미지
어떤 쥐 이야기

영어만 좋아하는 너는 어륀쥐
거짓말로 쇠고기 수입하는 너는 미친쥐
땅 파는 데만 환장한 너는 두더쥐
여기저기 왔다갔다 하는 너는 박쥐
자꾸 그러면 뒤지쥐
그만하쥐~~


사용자 삽입 이미지
입시경쟁 알바착취 미친축산업 이명박 그만


사용자 삽입 이미지
아픈 소 아픈 교육 아픈 정부
치료는 쥐박이 퇴치부터

표현의 자유 가로막을려는 어른들(공정택, 이명박, 예비군... ㅋㅋ) 사절!!



사용자 삽입 이미지


한 자리에 모여서 쥐덫놓기, 쥐를 잡자 퍼포먼스를 하는 중
신고
Posted by 공현
걸어가는꿈2008.06.09 14:01
*
6월 7일, 종로에서 "쥐덫놓기" 1인시위를 하고 나서(사진은 사진기를 다른 사람 가방에 맡겨뒀는데 못 찾아서 나중에 업로드)
시청광장에서 문화난장도 같이 하고
인권단체 천막에서 경찰폭력 대응 카드도 접고
청소년 피켓도 들고 있고 오승희 호외 등도 나눠주고 하면 노닥거리다가
저녁에 행진을 했다.
사람이 끝도 없었다. 숭례문 어귀에서 다른 일행을 만나려고 잠시 행진 옆에 비켜서서 서있었는데,
원래 우리가 가장 뒤에 처져 있는 쪽이었는데 우리 뒤에도 사람들이 끝도 없이 꾸역꾸역 나왔다.

행진을 하면서 아수나로&나다 사람들은 "어른들이 무슨 죄냐 청소년이 지켜주자" "두발자유 체벌금지" 등의 구호도 (우리끼리만) 열심히 외쳤고
뭐 그랬다.
안국동까지 갔다가 경찰차 막혀 있어서 세종로까지 돌아왔다.
돌아와서 할 일도 없어서 맥주 마시고 컵라면 먹으면서 수다를 떨고 있는데 앞쪽이 매우 시끄러워져서
마시던 맥주만 마저 다 마신 다음에 세종로 중심 쪽으로 갔고,
그렇게 언론과 인터넷에서 난리를 떠는 그놈의 '폭력시위' 현장에 있었다.

있다가 나왔다.


*
폭력이라는 말은 너무나 단순하고 선명하다.
폭력시위, 평화시위. 폭력/비폭력. 폭력반대. 얼마나 간단하게 구분짓는 말들인가. 그리고 얼마나 많은 것들을 생략하고 삭제한 말들인가.

우리는 구체적인 현장에서의 수많은 맥락들과 기준들을 읽어내야 한다.

*
이 글이 누군가를 가르치려 들거나 누군가에게 책임을 묻는 글이 되지 않길 바란다.
나는 서울 광화문의 그 현장에 같이 있었던 한 사람으로서 내 감정과 내 논리와 내 질문들을 제기하고 싶을 뿐이다.

그러나 이 글이 누군가를 '추궁'하는 글인 것은 맞다. 이 글은 누군가에게 답을 요구하는 글이다.



*
6월 7일에서 8일로 넘어가는 새벽, 세종로 사거리 현장은 소화기분말이 마치 안개처럼 떠다니고 있었고
닭장차는 온통 유리창이 깨지고 바퀴가 빠져서 주저앉아 있었다.

의료진은 소화기 분말을 맞은 사람들은 물 안 마시면 위험할 수도 있으니 어서 물을 억지로라도 마시라고 하면서 생수통을 들고 다니고 있었고
인권단체들의 인권침해 감시단은 사람들에게 물병 던지지 말라고, 물병 던진 거 주워서 경찰들이 다시 던져서 시위하는 사람들이 다친다고 외치고 있었다.

몇몇 사람들은 쇠파이프인지 깃대를 부러뜨린 것인지 나무막대기인지를 들고 버스 안을 막고 있는 전의경들의 방패를 (심각하게, 진지하게, 깨지라는 듯이) 두드리고 있었고
버스 위에 올라가 있는 전의경들에게 호스로 물을 "찌끄리는"(이정도 표현이 적절해보일 정도로, 애처로운 물줄기였다;;) 사람도 있었다.


*
폭력의 책임이 누구에게 있냐고?
그런 질문에 반드시 대답을 해야 한다면 나는 1차적 책임은 이명박에게, 그리고 경찰에게 있다고 말할 것이다.
청와대로 가는 길만 무조건 사수한다는 방침인지 뭔지,
애초에 행진이 시작되기 훨씬 전부터 바리케이트 같은 걸로 닭장차 지붕 위까지 방어하며 세종로를 막아둔 경찰들,
그리고 전의경들을 위험한 곳에 배치해두고, 시위하는 사람들이 전의경들이 위험한 곳에 있으니 배치를 바꾸라고 아무리 가서 이야기해도 듣지 않는 '지휘관들',
소화기를 미친듯이(정말 미친듯이) 뿌리고 무조건 사람들을 막으려고만 하는 사람들...


*
사실 나는 닭장차를 부수는 게 폭력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행진하는 걸 막으려고 닭장차를 세워두는 게 폭력일지는 몰라도, 지나가기 위해서 닭장를 끌어내거나 닭장차 철창을 뜯어내고 넘어가려고 하는 게 폭력이라고 생각하진 않는다. (물론 여기서 '폭력'이라는 건 '협의의 폭력'이다. 폭력은 매우 광범위하고 다의적인 개념이다.)
그리고 호스로 물을 뿌리는 건 정말 살수차-물대포에 맞서는 자그마한 저항이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물병을 던지고(그리고 그 물병이 위치에너지까지 더해서 돌아오고-_-)
쇠파이프 등으로 직접 전의경들을 공격하고
그러는 것을 나는 견디기가 어려웠다.

단순히 이름붙여진 행위들로 폭력을 부른다는 것은 부당하다.
오히려 그 현장이 폭력적이었다고 내가 말하는 것은,
사람들(전의경들과 시위하는 사람들을 포함해서)이 감정적으로 매우 '흥분'되어 있었고, (사실 상황상으로 그럴 만도 하지만)
전의경들이 물병을 던질 때 시위하는 사람들은 온갖 욕을 다 했고 시위하는 사람들이 밧줄을 던지고 물을 뿌리고 깃대를 휘두를 때 전의경들은 온갖 욕설을 다 했고
그런 것들에 대해 다른 의견을 제시하는 사람들에게 냉소하거나 욕을 했기 때문이다.
현장의 분위기는, 어떠한 민주적인 통제나 소수의 의견이 개진될 여지조차 없는 분위기였기 때문이다.
또한 '적'과 '아'를 너무나 분명하고 선명하게 구별짓고 있었기 때문이다.
쇠파이프로 때리고 방패로 찍는 것도 폭력이지만, 이러한 상황 그 자체가 광범위한 폭력을 구성하고 있었다.



*
그러나 폭력의 책임을 묻는 게 대체 어떤 의미가 있단 말인가? 그런 상황에서-
차라리 우리가 물어야 하는 것은 이 사회가 왜 이 꼴인지부터 물어야 할 텐데

나는 촛불시위가 '변질'되었네 어쩌네 하는 이야기에 동의하지 않는다.
다만 나는 그때 그 상황을 내 스스로 견디기 어려웠을 뿐이다.



*
나는 동기에 대해 묻고 싶다.

안국동에서 경찰버스에 막혀서 행진이 답보 상태에 빠져 있을 때,
민주노동당 깃발이 많이 펄럭이던 곳에 있던 사람들이 '골목으로 청와대에 가자'라고 외쳤고
나와 같이 있던 사람들 중에 두 사람도 그쪽을 따라갔다.
그때 상황이 정신이 없어서 묻지 못했지만

나는 그 사람들에게 왜 어떤 생각에서 그들과 함께 갔는지 묻고 싶다.

또한 세종로에서 상황이 점점 가열되고,
사람들은 점점 줄어들고, 그런데도 닭장차는 끌어내려고 하고 (더 위험하다.)
경찰이 직접 진압(또는 연행/체포)될 가능성이 높아가는 상황에서
시청으로 돌아가자고 했고 시청으로 다 같이 돌아가려고 하는데
도중에 세종로 중심에서 환성이 터지자(아마 닭장차를 끌어낸 거라고 추측한다.)
다시 거기로 돌아간 사람들이 있었다.
또, 그 사람들은 전화를 해서 시청광장으로 오라고 이야기했을 때는 좀 더 "구경"한다고 하거나 좀만 더 "보고" 있겠다고 했다.

나는 그 사람들에게 왜 어떤 생각에서 거기로 돌아갔는지, 그리고 어떤 구경을 하고 싶었는지 묻고 싶다.

항상 폭력의 최전선에서 '몸빵'을 하고 있는 동지에게, 거기에서 너는 무엇을 하고 싶은지, 무엇을 하고 있는 건지 묻고 싶다.



*
폭력의 현장에서 우리는 무엇을 하고 싶어하는가?
폭력의 현장의 최전선에서, 폭력을 온몸으로 받아내거나 폭력의 한 관련자가 되면서 '살아있음'을 느끼고 싶어 하는가?
혹은 자극적인 어떤 폭력에 대한 흥미와 관심과 호기심 - 그것이 직접적인 '쾌'이건 일종의 '숭고'(sublime)이건, 혹은 비탄이건 - 의 충족을 욕망하고 있진 않은가?
일상과 다른 것, 색다른 것을 원하고 있진 않은가?
어떤 '역사적'(역사가 종종 폭력적이라는 것은, 폭력적인 것은 역사라는 역으로 대치된다. 역사를 구성하는 강렬한 '사건'은 종종 폭력적인데, 사람들은 종종 폭력적인 것을 강렬한 '사건'으로 오해한다.) 순간에서 폭력에 대한 두려움과 기타 등등의 이유로 도망쳤다는 자책감을 회피하기 위한 것인가? 현장에 있기 위해서인가?
무력감을 극복하는 방식으로 또 다른 폭력을 택하기 위해서인가?

나는 앞서 열거한 이런 것들이 정치적으로 바람직하지 않은(여기에서 나는 "올바르지 않은" 이란 말의 사용을 피한다.) 자기만족감 추구라고 생각한다. 폭력의 관망자, 혹은 폭력의 행위자로서 동참하는 방식이기 때문이다.
(나는 폭력 현장을 동영상이나 사진으로 찍어서 기록하는 자체에 부정적이진 않다. 그러나 그런 것들만을 두드러지게 편집하고, 그 편집된 것들을 향유하는 방식에 반대한다.)

정확히 말해서 나는 그 사람들의 동기를 이해하거나 공감할 수 없다. 그렇기에 나는 이런저런 추측을 해볼 뿐이다.
나의 동기는 폭력적 현장을 최대한 피하는 것이 우선이기 때문이다. 나에게도 폭력을 '즐기려는'(여기서 즐긴다는 말은 단순한 '쾌'가 아닌 복합적인 뜻이다.) 마음이나 현장에서 도망침에서의 '죄책감'이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나는 대개는 그렇게 행동한다.




*
현장을 기록(혹은 기억)하고 전달하기 위해서
다친 사람들을 돕기 위해서,
폭력을 막기 위해서,
(그러나 그 현장에서 폭력을 막는다는 게 가당키나 한가? 폭력은 보통 매우 압도적인 힘으로 존재한다. 그 폭력을 막는 것은 또다른 압도적인 힘일 수밖에 없다. - 그 힘이 폭력의 형태를 띠건 좀 더 민주적이고 인권적인 형태를 띠건. 그렇기에 우리는 다수의 거대한 힘을 원한다. 전의경들을 넘어서서 나아갈 수 있는.)
그런 이유로 그 현장에 머무는 사람들을 비난하고 싶진 않다. 그런 일들은 괴롭고 '끔찍'하더라도 해야 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현장에서 구경하기 위해 혹은 좀 덜 노골적인 표현으로 보고 있기 위해 있던 사람들에게, 보고 싶어하던 사람들에게, 그러한 목적 의식이 있었는지 나는 묻고 싶다. 모르니까 묻고 싶다.
신고
Posted by 공현
걸어가는꿈2008.06.06 04:30
문자 그대로 호외.
딱 2면으로 작성된- 일종의 긴급 찌라시랄까 --;;
내용은 대충 이명박은 그만 GG쳐라, 라는 거랑 약간의 선동 같은 것.


이런 것도 들어가 있다 ㅎㅎ



촛불용사 시민들
(원곡 : 지구용사 선가드 한국 주제가)

쥐박이 귀 뚫으러 가고 싶어도
닭장차 가로막은 광화문 광장
미친협상 대운하 학교자율화
국민 의견 쌩까는 독재의 세계

우지쾅쾅 살수차
백골단에 경찰특공대
암흑대왕 쥐박이어스

평화를 파괴하는 독재 사기꾼
나가자 행진하자 정의는 이긴다

비폭력 비폭력 촛불용사 시민들




사용된 글씨체는  한겨레결체, MD이솝,  고딩L, 은방울체였나...



자세한 내용은 다운 받아서 보시라
신고
Posted by 공현
걸어가는꿈2008.06.02 14:32
"미성년자 석방하라"의 함정


  "고시철회, 협상무효", "이명박은 물러가라" 등 구호를 외치며 촛불집회의 사람들은 거리행진을 계속하고있다. 경찰은 이것이 신고하지 않은 불법집회라고 주장하면서 행진에 참가하는 사람들을 강제로 연행해가고 있다. 연행된사람들 중에는 청소년들도 포함되어 있는데, 얼마 전에 또 연행된 청소년들에 대한 기사가 뜨면서 인터넷이시끌시끌하다.
  기사의 내용은 주로 '울부짖으며 끌려가는 학생들', '"집에 가고 싶어요" 여중생의 눈물', '"미성년자는석방하라!"… 끝내 모두 연행' 등의 내용이다.
  나는 최근 촛불집회와 가두시위에 몇 차례 참가했던 청소년으로서, 그리고 자랑은 아니지만 시위 때 경찰에연행도 한 번 당했었던 청소년으로서 이런 것들에 대해 좀 다른 얘기를 해보려고 한다.
 
  지금 '미성년자 연행'에 대한 언론의 시선은, 무고한 사람들을 폭력적으로 강제연행해가는 상황에 대한 것보다는'연약하고 어린 여중생', '눈물 짓는 어린 학생'에 초점을 두고 있다. 사실부터 말하자면, 대부분의 기사를 보면,'여중생'으로 보이는 10대가 연행버스 창문을 통해 "집에 가고 싶다"라고 외쳤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경찰은 이들을연행해갔다, 는 내용인데 현장에 있던 당사자로서 말하자면 사실 그 때 그 청소년은 "집에 가고 싶다"가 아닌 "평화시위보장하라" 등 촛불집회의 정당함을 알리는 얘기를 외쳤다. 그런데 언론에서는 '여중생, 중학생'이라는 이미지(?)로"지켜주지 못해 미안해, 지못미"라는 목소리를 담고서 '중학생', 어린 학생' 등 '약한 자의 이미지'로 비치게끔 내용을보도하고 있다.
  이는 청소년을 그저 '우리가 지켜주고 보호해야 할 대상'으로 바라보는 것이다. 청소년을 청소년 그 자체로보는 것이 아니라 어떤 하나의 '대상'으로 바라본다는 것에서 나는 문제를 느끼고 있다. 청소년들이 직접 행동하고 직접자기 요구를 말하는 것에 "미성숙하니까", "위험하니까" 등등의 이유로 한계를 두고 비청소년들이 그걸 대신 해주려고한다거나 하는 것은 청소년을 주체로 인식하지 않는다는 것이고, 이는 어떤 면에서는 청소년들을 차별하게 되는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경찰의 부당한 연행 자체보다는 '저 어린 애들'까지 연행해가는 것에 더 분노하고 있다.마찬가지로, 많은 사람들이 청소년들이 집회에 참가하는 것에 대해 '저 어린 애들'까지도 거리로 나오게 내모는 정부를욕하며, 청소년들이 정치적인 목소리를 내는 것을 예외적인 상황으로 한정지으려 한다. 여성과 남성 등 성별의 차별이 부당한것처럼, 청소년과 비청소년도 차별당하지 않는 평등한 존재가 되어야 한다.
  또 집회에서 시간이 늦어지거나 전경과 대치하는 상황이 되었을 때 "청소년들은 그만 집에 가지 그러냐"고말하는 사람들도 있다. 이도 마찬가지로 '위험하니까' 못하게 하는 '보호주의'의 인식이 깔려있는 것이고, "아이들이 무슨죄냐, 우리들이 지켜주자"라는 자주 눈에 띄는 문구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그래서 내 친구는 "어른들이 무슨 죄냐우리들이 지켜주자"라는 피켓을 만들어서 집회에 참가하기도 했다.) 위험한 건 다 같이 위험하지 않은가? "미성년자는석방하라!"는 얘기도, 결국 '미성년자'에 대한 평소의 좀 차별적인 상식에 근거한 것일 뿐, '미성년자'만이 특별히석방되어야 할 논리적인 근거는 별로 없다.
 
  우리 이제 "왜 우리만 풀어주냐. 모두 다 석방하라."라고 청소년들이 피켓을 들고 참여하거나 "아이들이 무슨죄냐, 우리들이 지켜주자"가 아닌 "모두 함께 우리의 삶을 지키자", "서로를 지켜주자"는 구호를 함께 외칠 수 있었으면좋겠다.
 

난다
(성남 청소년인권모임 인지인, 5.17 청소년행동 공동준비모임)
신고
Posted by 공현
흘러들어온꿈2008.06.02 05:38
지금 87년 6월 항쟁에 대해 과제 때문에 조사 중입니다.
조사 중에 최근의 시위에 관해 참고할 만한 글을 발견해서 올려둡니다.

먼저, 경찰력을 마비시키려면 독하게, 질기게, 길게 싸울 수밖에 없습니다.

아래는 6월항쟁 인터넷 기념 페이지에 있는 87년 6.26 평화대행진을 기록한 글 중 일부입니다.




전국 50개가 넘는 지역에서 150만 인파가 거리를 넘쳐흘렀다. 전국 34개 지역에 6만 전투
경찰이 전국 43개 지역에 배치되어 있었다. 당시 경찰은 두 가지 문제가 있었다. 하나는
잦은 전국적인 시위로 최루탄 재고가 바닥나 있었던 점이다. 건조 과정을 거치지 못한 쓸
모없는 최루탄조차 생산이 달렸다고 한다. 또 하나는 무더운 날씨와 장기간의 시위진압
작전으로 경찰들의 체력 또한 바닥나 있었다.
민통련 간부들은 가두시위의 베테랑들이었는데, 가두시위에서 시위대와 맞선 경찰의
취약점을 찾아냈다. 경찰은 앞에는 하급자들이 서고 뒷줄에는 상급자들이 배치되기 때문
에, 항상 병력의 후면이 취약하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이 정보를 학생들에게 알려주자,
학생들은 거꾸로 기동대의 후면을 치고 빠지는 전술을 채택했다. 게다가 운동화를 신고
가볍게 뛰는 학생과 중무장한 경찰의 기동력은 상당한 차이가 있었다.
이명준은 석동일의 자가용을 타고 함께 시위현장을 두루 살펴보았다. 석동일은 모 일
간지 사진기자로 있던 동생의 보도완장과 깃발, 표시판을 차에 붙이고 길 한가운데로 질
주했다.
국민운동본부의 주력들은 동대문에서 시위를 하고 있었지만 이명준은 서울시내 전역
을 고루 살펴볼 수 있었다. 치고 빠지는 시위대와 이들을 지원하는 시민들 속에서 경찰은
무력화되고 있었다. 마침내는 시위대가 경찰을 무장해제시키는 지경에 이르렀다.
이해찬은 무장해제되는 경찰을 학생들이 때리지 못하도록 지침을 내렸다고 할 지경이
었다.
전두환 정권에게는 두 가지 선택밖에 없었다. 군대를 동원하거나 무조건 항복하거나,
둘 중의 하나였다. 비상조치로 군을 동원하면 일시적 진압은 가능할 몰라도 사태는 돌이
킬 수 없다고 판단한 전두환 정권은 6∙29선언이라는 위장된 항복카드를 뽑아들었다.
6∙29선언은 기만적인 사기극이었으나, 직선제를 얻었다고 만족한 정치권은 이미 선
거로 달려가고 있었고, 전국을 뒤끓었던 투쟁의 열기도 서서히 가라앉고 있었다.
직선제를 중심으로 한 ‘민주화의 길’은 그렇게 열리고 있었고, 7월 노동자투쟁은 따로
마련되고 있었다.

----------------------------------------------------------------------

그리고 시위는 동시다발로 여러 곳에서 진행되어야 합니다.

5월 31일 밤에 보니까 막 전북에서 올라와서 '전북도민여러분'어쩌구 하는 플래카드를 그대로 건 닭장차도 있더군요. 여러 지역에서, 그리고 서울에서는 여러 장소에서 동시다발로 진행해야 경찰을 무력화시킬 수 있습니다.

아래도 같은 글 중에 일부입니다.


최저의 행동강령수준은 쉽게 합의되었다. 불끄기, 경적, 종 치기1) 등 큰 이의 없이 합의
되었다. 86년 필리핀의 2월혁명과 국내 신민당 개헌현판식 때의 시민 참여를 고려하여
쉽게 정리되었다.
전국동시다발도 쉽게 합의되었다. 이해찬은 87년 2∙7대회와 3∙3대회의 경험과 함께
정보과 경찰들과 커피를 마시면서 흘려들은 정보를 정리하여 설명했다.

“시위를 막는 데 동원되는 경찰기동대는 3~4만이다. 이 기동대를 서울에 집중시키면 안 된다.
2∙7 때 세종로에서 집회를 하려다 기동대에 봉쇄당하자 시위는 막혀버렸다. 물리적으로 한 지역
에 집중하는 시위로는 경찰 병력을 뚫을 수 없다. 그래서 3∙3대회 때는 시위 전략을 전환시켜 동
시다발적 거점시위로 경찰 병력을 분산시켜 성공을 거두었다. 따라서 6월항쟁은 전국동시다발로
전국적인 거점을 마련하면 경찰 병력이 이동을 못 한다. 작은 시 단위, 예를 들어 천안, 안동처럼
시 단위 대학이 있는 곳은 시위가 벌어지면 최소한 1개 편제 480명을 묶어둘 수 있다. 이 전략으
로 대학이 있는 곳은 모두 시위에 참가하면‘시’자가 붙은 곳은 최소 5백 명~1천5백 명의 경찰
병력이 지역을 지키기 위해 이동을 하지 못한다. 지방으로 경찰 병력이 분산되어 서울은 2만 명이
넘지 못하게 한다. 160명 단위로 1개 중대가 편성되고, 3개 중대 480명이 1개 편제로 된다. 이 기
본편대 70개, 총 3만3천6백 명이 경찰기동대 총병력이다. 2만 명 정도의 경찰 병력으로 동시다발
적 시위를 서울에서 막을 수 없다. 서울역, 회현동(6∙10대회 당시 최대 격전지), 동대문, 신촌을
거점으로 시위를 하면 한 지역에 3~4천 명밖에 배치할 수 없다. 그 사잇길은 거의 무방비로 뚫릴
수밖에 없다.”

이것이 이해찬이 분석한 경찰기동대 내막이었다.





------------------------------------------------

이건 같은 사이트의 다른 글에 있는 내용입니다. 당시 실제 참가했던 사람들의 좌담회 중 일부입니다.

우상호 :실제로 학생들이 네 군데로 나뉘어서 집결하다 보니까 경찰력이 분산됐고, 처음
에는 수백 명 나중에는 1천여 명 정도가 안정적으로 집회를 할 수 있게 됐다. 7시 30분경부
터 앞으로 밀고 쭉 나갔는데, 신세계 백화점 앞이 확 뚫리면서 적게 잡아도 2만여 명 이상
이 그 일대를 완전히 점령했다. 퇴계로 쪽에서도 학생들이 밀려왔다. 전경들이 일시적으로
남대문 쪽으로 밀려난 사이에 엄청난 수의 사람들이 백화점 앞 분수대로 모여들었다.
야, 이겼구나 하는 생각과 자신감이 밀려들었다. 사방에서 환성이 터져나왔다. 현장에
서 시위대에 의해 고립됐던 전경 1개 소대가 무장해제 당했다. 헬멧과 방독면을 벗겨놓
고 보니 다 같은 또래의 젊은이들이었다. 시위대는 최루탄 연기에 눈을 못 뜨는 그들을
분수대로 데려가서 세수를 시켰다. 그리고 모든 무기를 내려놓게 한 뒤 <아침이슬>을 함
께 불렀다. 노래를 따라 부르던 일부 전경들이 눈물을 흘리다 고개를 숙였다. 지켜보던
시위대의 눈에서도 눈물이 흘러내렸다.


김정수 실제로 지역별로 분산해서 집결하고 여기저기서 산발적인 시위가 진행된 것이
도리어 열린 공간을 만들어준 측면도 있다.




http://www.610.or.kr/ 인터넷 6월 민주항쟁 기념관의 "6월항쟁을 기록하다" 자료 중에 있는 내용입니다.



최근 일어나고 있는 2008년 민주화 촛불항쟁(정확한 명칭은 역사가 정해주겠지요)에 시사점이 많습니다 @_@
신고
Posted by 공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