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설픈꿈2010. 5. 5. 02:05


나의 분노

나의 분노에는 답이 없다
구부러진 골목길 아무런
낙서조차 없는 벽 앞에 선
갈색 고양이처럼

나의 분노에는 꿈이 없다
더러워진 일기장을 팔랑이다
알람시계를 맞추고 곯아떨어진
자동입출금기보다도 잠이 부족한
알바생의 얼굴처럼

나의 분노에는 이름이 없다
희미한 눈썹의 꿈틀거림
더부룩한 뱃속의 뒤틀림
낙상한 적도 없이 눈두덩에 앉아서
술잔을 기울이던 눈물방울처럼

나에게는 분노가 없다
내 손으로 부숴버린 휴대전화와
슬픔으로 부어있는 몸뚱아리 말고는
나에게는 분노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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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진짜로 휴대전화 부순 거 아니지??

    2010.05.05 02:39 [ ADDR : EDIT/ DEL : REPLY ]

어설픈꿈2010. 3. 16. 22:17


도시의 생활

도심에서 숨쉬기란 얼마나 모호한가
먹는 일도 걷는 일도 앉는 일도 구르는 일도
한발짝 떨어져서 흘러가는 일들

도심에서 말하기란 또 얼마나 뻑뻑한가
걸레처럼 쥐어짜는 한마디 두마디도
건조한 피로로만 돌아온다

서걱거리는 나날들이 한줌씩 퇴적된다
끝에서는 검은 아스팔트가 솟아오른 벽을
만날지도 모르지만
이 시간은 결코 끝나지 않는다, 우리 걸음만큼이나
Posted by 공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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흘러들어온꿈2010. 1. 19. 01:30





2007년 11월에 썼던 글. 비평이라기엔 좀 덜 본격적이지만...........
미완성 교향곡 등등 지금도 읽으면 좋다.







창틀 위의 시집 - 김행숙 『사춘기』


  저번 주말에 결국 김행숙 시인의 『사춘기』를 샀다. 사기 위해서 이 서점 저 서점을 돌아다녀봤지만 도무지 없고 어디에는 '절판'이라고 떠서 좌절하다가 5번째로 찾아간 서점에서 겨우 발견한 것이었다. 찾아 헤매던 책을 찾았을 때의 그 기쁨이란, 음 그렇게 크거나 격렬하지는 않지만 길을 걸으면서 자꾸만 히죽거리게 되는, 뭐 그런 거랄까나. 우훗.


  김행숙 시인의 『사춘기』는, 고2 때 전북대에서 열린 어느 작은 백일장에서 가작을 받으면서 그 부상으로 내게 찾아왔다. 사실 그때 다른 약속 때문에 수필을 써서 휙 내놓고 직접 시상식 참가하지도 않고 다른 친구한테 혹시라도 받게 되면 대신 받아달라고 부탁해놓고 나와버렸기에, 처음으로 글을 써서 받은 책이라서 애착이 간다느니 하는 감정은 별로 없다. 그렇기에 그때 받았던 시집을 내기에 져서 다른 친구에게 줬을 때도(소중한 것 하나씩을 건 내기였다.) 그렇게 아까운 마음은 들지 않았나보다. 다만 시를 쓰다가 막막한 느낌이 들 때면, 정말 간절히 이 『사춘기』를 펴고서 시들을 읽고만 싶었다. 그런 갈증이 내가 시집 하나를 찾아서 서점들을 돌게 만든 거겠지.

  <문학과 지성>에서 나온 278번 번호가 붙은 이 『사춘기』가 내게 대체 어떤 의미가 있냐고 물으면, 글쎄…. 내가 여러 시집들을 문득 사모으는 계기가 되었고, 또 고1 내내 100편이 넘게 써오던 습작 시들의 표현이 얼마나 유치하고 조악한지 깨닫고 새로운 조탁에 골몰하게 해준 책이라는 말만으로는 부족한 게 있다.
  예컨대 시적 표현만으로 이야기하자면, 「우는 아이」라는 시에서 "표면으로 올라온 물방울들이 잇달아 터지고 있어요. 공기가 가시처럼 찌르나 봐요. 애들이 너무 오래 물속에서 놀고 있어요."라고 표현된 행은 내가 시를 쓰다가 막힐 때마다 떠오르는 부분이다. 내가 저렇게 쓸 수 있다거나 저렇게 써야 한다고 생각하진 않지만, 그런 인상깊은 느낌을 주는 표현을 한 번 빚어보고 싶다는 감정이랄까. 하지만 『사춘기』의 의미는 그런 표현기법 상의 문제만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표현기법을 배우고 싶다면 시중에 몇 안 되지만 나와있는 시창작에 대한 교과서(?)들을 보면 될 일이다. 거기에는 더 다양한 시들의 다양하고 인상깊은 표현들이 인용되어 있을 것 아닌가.

  말하자면, 정서다. 그러니까, 나는 「오늘밤에도」라거나, 「입맞춤-사춘기2」라거나, 「친구들-사춘기6」이라거나,「천국의 아이들1」이라거나, 「미완성 교향악」 같은 시에서 느껴지는 정서가, 느낌이 좋았다. 그건 분열하고 있었고 때로는 집착하고 있었고 여하간 세상과 섞이지 못하는 양 붕 떠있었으며 여기저기로 튀어 나가는 삶과 같은 느낌이었다. 자살하고 싶었고, 사랑하고 싶었고, 살고 싶었고, 사라지고 싶었다. 완성되지 않았고 그런데 그것을 부끄러워 하지도 않지만 동시에 불안해하면서, 그래 그것은 '냉정'했다. 그걸 뭐라고 표현해야 할까? cool하다는 말과는 전혀 다른, 그렇지만 cool함의 요소도 있는, 그러면서도 집착하고 흔들리고 메마른─ 어떻게 말하면 '문득'이란 말이 참 어울리고, 또 그렇게 말하기에는 너무 지저분하고 부서져 있는 흐름들.



 미완성 교향악

  소풍 가서 보여줄게
  그냥 건들거려도 좋아
  네가 좋아

  상쾌하지
  미친 듯이 창문들이 열려 있는 건물이야
  계단이 공중에서 끊어지지
  건물이 웃지
  네가 좋아
  포르르 새똥이 자주 떨어지지
  자주 남자애들이 싸우러 오지
  불을 피운 자국이 있지
  2층이 없지
  자의식이 없지
  홀에 우리는 보자기를 깔고

  음식 냄새를 풍길 거야
  소풍 가서 보여줄게
  건물이 웃었어
 
  뒷문으로 나가볼래?
  나랑 함께 없어져볼래?
  음악처럼

 



 오늘밤에도

  오늘밤에도 소년들 소녀들 전화를 한다. 오늘밤에도 하늘은 푸르스름하고 해는 떠오르지 않는다. 소년들 소녀들 오늘밤에도 총총하다.
  낮에 소년과 소녀는 같이 아이스크림을 먹지 않고, 아이스크림은 햇빛에 녹지 않고, 오늘밤은 아이스크림 같아서 달콤하다. 딸기 시럽같이 성수대교를 흘러가는 자동차들은 어디서
  어디서 스르르 녹겠지. 12층 아파트 베란다에서 소년은 전화를 한다. 난 달리지 않을 거야. 달려가서 누군가를 만나고 덜컥, 아빠가 되고 싶지 않아.
  난 오토바이족을 동경하지도 않고 여자애를 엉덩이에 붙이고 싶지도 않아. 나는 무섭게 세상을 쏘아보지 않지. 그런 눈빛은 이제 아주 지겨워. 몇 명의 소년 소녀 오늘밤에도 머리를 너풀거리며 추락하고,
  그 몇 초에 대해 오늘밤에도 명상하는 소년들 소녀들 전화를 한다. 오늘밤도 쉽게 깊어진다. 우리는 어디서도 만나지 않을 거야. 이렇게 말하면 항상 오늘밤이 아주 달콤해지지. 딸기 시럽같이
  성수대교를 흘러가는 자동차들은 어디서, 어디서, 스르르 녹겠지.




 친구들
 - 사춘기 6

  주소록을 만들기로 한 날이었어요. 애들은 종이에 썼어요. 여기에 내가 있고 여기에 내가 없고 저기에 내가 있고 저기에 내가 없고 3시에 바닷가에 있었고…… 정말 시들을 쓰고 있더라구요. 우린 모두 일목요연해지려고 모였다구.

  우리에겐 특별한 날이잖아. 실용적인 주소록을 만들기로 해. 우린 모두 지쳤기 때문에 동의했어요. 무섭게 조용해졌는데, 전화벨이 울렸어요. 내가 모임에 빠진 거 애들이 아니? 이해해. 우린 너무 많아졌으니까. 나는 앰뷸런스에 실려 가는 중이야. 지옥행을 시도했거든.

  네가 대신 아무렇게나 써줘. 폭신한 침대에 내가 누워 있고 지옥문 앞에 내가 있고 다시 약국에 내가 있고 엄마 손에 잡혀 나는 어디론가 끌려가고 있고 꽃잎이 떨어져서…… 근데 절대 시 쓰진 마. 그냥 아무렇게나 쓰면 돼.

  걘 멋진 데가 있었어. 우린 모두 조금씩 그래. 애들은 종이에 썼어요. 얘들아, 우린 추억하려고 모인 게 아니잖아. 3시에 바닷가에 있었고 모레에는 기차를 탈 거야. 가끔 우리는 여기에 있을 거야. 우린 천천히 조용해졌어요.



 
  실로 그런 것들이 내 길디 긴 사춘기(=인생)의 단면들과 공조하고 있기에, 나는 그 시집을 사랑한다. 김행숙 시인처럼 쓰고 싶다는 생각은 하지 않지만, 그래도 나는 김행숙 시인의 『사춘기』의 시들을 사랑한다. 문득 김행숙 시인이 어느 인터뷰에서, "<당신은 사춘기 아닌가요?>이렇게 물어보면 다들 사춘기라고 얘기하던데요."라고 한 게 생각난다.

  최근에 김행숙 시인이 새로 낸 『이별의 능력』을 읽어보았다. 이 시집에서도 김행숙 시인의 표현 능력이라거나 시에 반영된 정서의 흐름 같은 것은 그대로 살아있다. 하지만 그 시집은 『사춘기』와는 다른 방향으로 밀고 간 시들의 느낌이 난다. 비유하자면, 이영도의 『드래곤 라자』와 『폴라리스 랩소디』 중에 『폴라리스 랩소디』가 이영도의 초기 판타지 소설에서 그 구성이나 내용 전개로 볼 때 하나의 정점을 이루고 있다고 할 수 있음에도, 독자들에게는 『드래곤 라자』가 더 인기있는 그런 것? 하긴, 항상 같은 느낌 같은 어조 같은 색깔의 시집만을 낼 수 있는 시인이란 건 얼마나 재미 없을지.


  나한테 앞으로 누군가에게 시집을 선물할 기회가 주어진다면, 나는 별다른 주저 없이 『사춘기』를 주고 싶다. 그게 이해하기 쉽든, 이해하기 어렵든 간에. 『사춘기』를 구하는 게 점점 더 어려워질 것 같아서, 아쉬울 따름이다. 제본이라도 해둘까?









한 때, 내가 되고 싶었던 건 투명인간이었다. 선일여자고등학교 복도에서 뿌연 운동장을 내다보면서 이런 공상으로 뭔가를 견디곤 했다. 만약 내가 단 하루만이라도 투명인간이 될 수 있다면, 무조건 달리고 또 달릴 거야. 다만 멀어지기 위해. 내가 사라지는 곳으로부터 더 멀리에서 나타나고 싶었다. 길을 잃어버리고 싶었다.

그 리고 2003년, 나는 이렇게 중얼거린다. '위기'니 '죽음'이란 말은 '이동'과 '탄생'을 우울하고 과격하게 예언한다. 문학이 사라지는 곳에서, 문학은 새로운 육체로 또 다른 생을 살기 시작할 것이다. 나는 이 새로운 육체의 운명과 더불어 나의 생을 실천하고자 한다. 개인적으로 나는 흔들리는 자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나는 '위기'와 '죽음'의 징후만을 드러내는 데서 끝날지도 모르겠다. 그렇다 해도 '죽음' 쪽으로 나는 달려 나갈 수밖에 없다. 내가 사라지는 곳으로부터 나는 더 멀리에서 나타나고 싶다. '주어지지 않은 역사'이므로 내가 아는 건 아무것도 없다. 다만, 내가 알았던 것에 기댈 수 없을 뿐이다. 그리고 다만, 나의 무지의 힘으로 으으으 달릴 뿐이다.

 - 『사춘기』 뒷표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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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설픈꿈2010. 1. 4. 03:41




신도림역을 걷는 것이 두렵다

모든 것이, 잃은 것 같았다
눈을 감는 것이 괴로웠다
눈을 뜨는 것은 외로웠다
신도림역을 걷는 것이 두려웠다

문에 기대어 있었다 벽이 아닌
신문지들처럼 넘어졌다
아니 글자조차 잃고서
그냥 어느 종이조각처럼 휴지처럼
넘어지고 있다

넘어진 종이조각을 주워 말을 거는 이들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않겠다
글자를 보여주지 않겠다
테두리만 남은 점선들을 쏟아놓지 않겠다

신도림역을 걷는 것이 두렵다
지하로 전철이 달리는 것이
지상으로 전철이 달리는 것이
네가 없는 것이

아무것도 갈아탈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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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럴듯한데... 싶으면서도
마음에 들지 않는다
너무 직설적이기 때문일까?
호흡이 짧다는 것이 더 다루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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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설픈꿈2009. 12. 14. 12:05



어느 저녁 무렵


불그스레 어둠이 스멀스멀 기어오면
힘이 빠진 사람은
계단가나 길바닥에 주저앉아도 좋다.

해지기 얼마 전 공원가,
머리칼 없이 뽀얀 두 살배기가
젊은 엄마를 보채며 앙앙대고 있으니까,
벤치에 앉은 양복이 펴든 신문뭉치엔
빽빽한 활자가 날카로운 모서리를 갈아놓고 있으니까,
검푸른 잠자린 물결에 구겨지는 연 위에서 꼼짝도 않고 있으니까,

그 건너엔,
호수와 백조보트와 다리와
물결에 흔들리며 저무는 텅 빈 하늘이
침묵하니까

힘이 빠진 사람들
불야성의 도시에 등을 보인 사람들은
공원을 거쳐, 저녁을 거쳐,
다시 불빛 아래로 걸어 들어간다

해돋이와 해거름 사이에
유리파편 같은 가래를 목이 따갑도록 삼켜
보고는 하는 사람들은
아무데도 닿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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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잘 안 쓰는 스타일의 시인데, 2005년에 썼던 시를 여기로 옮겨오면서 다시 다듬은 거다.
원래는 실제로 어느 저녁날에 전주 덕진공원에서 썼다.
원래는 좀 더 군더더기도 많고 호흡도 꼬여 있었다.
여전히 미묘한 부분들이 있기는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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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설픈꿈2009. 12. 11. 15:17



부러진 선풍기

날개가 가출했다 어느날
문은 열려있지 않았지만
날개들은 가출했다

집을 나간 날개들이
어디를 갔는지는
하얗게 떨어뜨리고 간 바람의
자취도 가르쳐주지 않는다
누구에게 날을 세웠는지
어디에서 잠을 자는지
홀로 남은 날개만이
창살 속에서 궁금해 할 뿐

창살 속 허공이 외로운 날개를 흔든다
흔들리는 날개는 돌지 못한다
혼자 쓰게 된 방 안에서
제대로 숨쉬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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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8 쓴 시.

어째서인지 난 썩 맘에 들어하지 않았는데,
다른 사람들은 꽤 싫어하지 않더라.





실제로 선풍기가 부러지면 버리거나 고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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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우리집은 스카치테이프로 열댓번 칭칭 감아서 쓴다는..... ;;

    2009.12.11 19:45 [ ADDR : EDIT/ DEL : REPLY ]

어설픈꿈2009. 12. 7. 17:23

초겨울

날카로운 잠을 잔다
날카롭지않은 꿈을 꾼다
사라져간 가을 같은


추석 때도 새파랗던
은행은 이틀만에
노랗게 떨어지고

겨울옷을 사지 못한
사람은 이틀만에
감기에 걸린다

단풍놀이 갈 틈도 없이
엔진을 낮게 울리며
시간이 살을 뺀다, 날카롭게







겨울에 쓴 시들 이사 시즌. 역시 2006년 12월에 쓴 건데-
좋아하는 시 중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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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겨울옷을 사지 못한
    사람은 이틀만에
    감기에 걸린다
    /////캐공감.. 어쩔거야..

    2009.12.07 22:28 [ ADDR : EDIT/ DEL : REPLY ]
    • 지나치게 빨라진 현대 사회의 시간에 맞춰갈 수 없는 사람, 맞춰갈 자원(돈 등)이 없는 사람은 고통을 겪게 된다는 느낌의....-ㅂ- 내 시를 내가 해설하니까 이상하군.

      2009.12.08 13:22 신고 [ ADDR : EDIT/ DEL ]
  2. 시간이 살을 뺀다 ...........*_*

    2009.12.08 16:32 [ ADDR : EDIT/ DEL : REPLY ]

어설픈꿈2009. 12. 7. 17:20


겨울강을

겨울의 강에서 배가된다
나무배는 차가웁고 무르다

언강위에 발자국을 찍는다
푸른물빛 뱃길을 만든다
투명한 겨울이 깨지는소리
투명한 소리에 잠긴뱃전엔
나무색 상처들이 드러난다

겨울강 피부가 잘게 깨어진다
나무배 피부가 긁혀 찢어진다
흐르는 강위에 길만 남는다

상처, 상처, 그리고
저 건너편으로 닿은
뱃길

 

 

 

 

 

 
+개굴, 누리와 여행갔던 때, 청령포에서 배를 타면서 떠오른 이미지들을 정리해봤던 시인데 다소 조악하다는 생각이 든다.
+2006년 12월에 쓴 시.
+예전 블로그에서 옮겨오는 과정에서 약간 수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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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설픈꿈2009. 12. 6. 01:05




낙엽 무게

나는 낙엽을 밟으며 걸어가지만
낙엽도 한 잎 한 잎 나를 밟는다

어느새 걸음이 무거워져
앞을 보던 눈을 돌려 주위를 돌아보면
밟고 지나친 낙엽들을
흘러버렸다 생각했던 낙엽들을
몇은 업고 몇은 끌며
나는 걸어가고 있다
내가 이 거리를 계속 걷게 해준 것도
나에게 밟혔던 낙엽들이었으니

낙엽이 발등을 밟는 소리는
어깨를 살쩍 두드리는 소리는
잠든 네가 내는 마지막 날숨소리처럼
언제나 너무나 은근해서
알 듯 모를 듯 나의 발자국을
숨결만큼씩 깊게 하고

나중에 이 거리 저 어디쯤 가서
낙엽 무게 너희들 숨결 무게가
너무 무겁다 싶을 즘이면
나도 조금 큰 낙엽이 되어
이 거리를 걸어가는 너의 어깨를
두드려주고서
그 발에 밟히고서 멈춰서고 싶다









옛날에 쓴 시들 옮겨오기-
Posted by 공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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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설픈꿈2009. 12. 5. 00:11




소나기는 세차지만 오래 가지 않는다
오래 가는 장마도 언젠간 그친다
아무 비도 내리지 않는 날이 더 많다
그런 날이면 하늘이 보이지만
하늘에선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끝나지 않는 것은 없을지도 모른다
끝나지 않더라도 없을지도 모른다

너의 품은 너무 넓어서
뛰어도 뛰어도 계속 갈 것 같았다
끝나지 않는 것은 없을지도 모른다
끝나지 않더라도 없을지도 모른다













시라고 하기에도 조악하다.
그냥 두세 가지 생각이 마음을 어지럽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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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태그가 참;; supernova??

    2009.12.05 15:53 [ ADDR : EDIT/ DEL : REPLY ]

어설픈꿈2009. 11. 8. 10:23

그래도 지구는 돈다

그 밤이 지나치게 늦어질 무렵
손톱발톱 홀로 깎는 소리 튀는데
그래도, 지구는, 돈다

괜한 꿈에 몸을 떨며 눈을 떠서는
괜시리 아푸아푸 세수하는데
그래도, 지구는, 돈다

쉽게 듣던 노래들이 텅빈 늑골에
모래처럼 알알이 박혀오는데
그래도, 지구는, 돈다

말라버린 사랑을 뽑던 때에야
심장까지 닿은 뿌릴 깨닫는데
그래도, 지구는, 돈다

나의 지구는 이미 한 번 부스러졌는데
그래도 지구는 돈다는 것
빼곡한 달력이 넘어간다는 것
나를 고독하게 하는 그것

Posted by 공현
TAG , 이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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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설픈꿈2009. 9. 3. 14:59



아 이런

길 잃을 일도 없는 대로변에서
울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했다
안아주지도 달래주지도 못하고서
아 이런, 나는 그냥 집으로 데려와버렸다

집에서도 나 자신은 계속 울었다
파아란 하늘도 회색빛 하늘도 아랑곳없이
아무리 말 걸어도 달랠 수 없어
아 이런, 나는 그냥 나가서 삶을 던져댔다

아 이런
집에서 나 자신이 울고 있어서

이제 나는 울 수가 없게 되었다
아 이런 눈물 총량 불변의 법칙

아 이런, 안구가 점점 건조해지고 있다
아 이런


----------------------------------------------------------------------------------

아 이런 아 이런 아 이런 아이러니
내용은 재미있지 않은 시지만 계속 읽다보면 뭔가 재밌어진다.
아 이런 아 이런 아이런 아이런...... 아이런은 iron이기도 하고 irony이기도 하지

그런 기분이거든.
20분도 안 되어서 시 하나가 나온 건 오랜만이야 -_-

Posted by 공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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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설픈꿈2009. 8. 16. 15:47



라일락보다 쓴

두 번째로 마셔본 소주 몇 잔은
처음으로 씹어본 라일락보다
썼다 까맣게

방울지는 독백을 삼켜가며
돌아오는 오르막길 위로는
하얀 별이 둘 있는데
멀다

별과 별 그 사이는 멀고
그 까만 거리가 소주처럼
씁쓸해서 눈물나게 씁쓸해서
자꾸만 방울지는 가락에
걸음은 더디기만 하다

몇 해 전이었나
인생을 알겠다며 라일락 잎을 씹던 게
이젠 왜 라일락보다 쓴 소주를 마시는지도
알게 됐지만

나는 아직











2006년 5월에 초안. 처음엔 '라일락보다 쓴 거리감'이었는데
그 뒤에 제목에서 '거리감'을 뺐다.

마지막 행의 "나는 아직" 다음에 "사랑을 한다"가 있었는데 초안을 쓸 때부터 고민하다가 뺐다. 뭔가 내가 하고 싶은 말은 그게 아닌 것도 같아서. 더 적당한 게 없는 이상은, "나는 아직"에서 끝나는 시로 남겨둘 것이다.

나는 아직, 이다.
Posted by 공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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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나는 아직.. 좋네요

    2009.08.16 23:58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2. 바람

    라일락은 씹으면 쓴가보네요
    냄새는 지나치게 향기로운데

    2009.08.17 07:34 [ ADDR : EDIT/ DEL : REPLY ]

어설픈꿈2009. 8. 4. 02:11



구멍에는 무게가 있다

손을놓고 걸어온지 아마6개월쯤
왼손을 주머니에 찔러넣으니
잡히는건 커다란 구멍뿐이다
가리지못한 손가락이 꼼지락대며
고개드는 허전히 찢어진 구멍

반지도 구멍으로 흘리고왔고
유에스비 메모리도 흘리고왔고
받지못한 답장도 잃어버렸다
무엇을 잃었는지 메모조차도

그리고 또, 또렷하진 않지만
햇살로 그리움을 그리는 방법이나
눈꺼풀 뒤쪽에 기록한 시간들도
잊어버렸다

주머니의 구멍을 움켜쥐고
더이상 널흘리지 않기위해서
천천히 조심조심 걸어가지만

어느새 구멍이 하나둘늘고
구멍들의 무게가 더해지면서
내 걸음은 점점 더 느려만진다

구멍들을 짊어지고 간다
구멍만큼 숨소리도 발소리도, 깊어진다

 

 

 

-
나를 흘리는 게 아니라
너를 흘리는 건데
내가 부서진다.
연기설?

... 이라는 메모가 달려 있다. 2006년 9월에 쓴 시.

--- 옮겨오면서 좀 더 손질했다.
자주 그런 시가 있다. 주제가 되는 모티브, 발상, 이미지는 꽤 마음에 드는데
그 주제를 내가 제대로 표현하고 변주하고 전개하고 정리하지 못한 것 같은 시... 내 내공의 부족을 느끼게 하는 시.


----- 아주 어릴 때부터 지금까지 도시-근대가 나에게 안겨준 구멍의 무게를 선명히 느끼고 있다.
그 무게를 견디기 위해 사랑을 하고, 운동을 하고, 글을 쓰고, 맛있는 것을 먹고, 책을 읽지만
그런다고 해서 그 무게가 가벼워지진 않는다는 것을 안다.
자꾸 기댈 곳을 찾게 된다.
Posted by 공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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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시 잘 읽고 갑니다.

    2009.08.09 00:00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어설픈꿈2009. 7. 28. 00:53
 

  사춘기?

  아이들이 달려서 내옆을 스쳐간다 홀쭉한 가방들 빵빵한 가방들 제각기 흔들리며 학생들의 휜등을 리드미컬하게 탁탁탁 때려가며 재촉한다 돌기둥 녹슨철문 반듯한 교문 교문을 지키고선 대머리 교사가 늦겠다 뛰어라 연거푸 소리쳐도
  나는 태연하게 걷는다 교실에 도착하자마자 종이 운다 평소완달리운이좋네 감탄하건 말건
  걷고 싶으니까 걸었어 어쩌면 그건 주위 사람들이 뛰고 있기 때문일지도 모르지만 여하간 난 걷고 싶어 특히 아침엔

  수업이 시작하면 우리는 끝날뿐 난 창가에서 찾는 것이 있을 따름 집중집중 선생마다 시간마다 한마디씩 난 창틀에서 찾는 것이 있어서 하나둘 시체를 헤아려 본다 딱딱딱 경쾌하게 분필이 칠판에 우는 게 거슬린다 여기봐요다죽었어 딱딱딱 몇 명이 졸고 있다 짝이 교과서에 낙서를 한다 앞자리는 필기한다 난
  무엇을 찾고 있니 그런 것도 모른 채. 여기봐요다죽었어 여기봐요다죽었어

  적자생존이라고자연도태는아니 청소년은 진화해왔다 사춘기는 도태되어 멸종돼왔다 아무도 보호지정 따위 해주지 않았다 희귀종이라 해도 모기를 보호지정하고 싶어 하는 사람은 드물기 때문일지도 모기약이 치익 뿌려진다 시대가 변했다구 칙칙 침을 뱉는

  비가 내린다 빨간 비 함박눈이 내리지 않는다 씁쓸해하지 마 나의
  은하수 밖에서도 별은 반짝인다 어라흘러내렸네
  배가 고파 저녁 식산 이미 끝이 났어 목이 말라 자판기에서 빼먹지 날 뱉어줘
  밥은 먹었으려나 아아 걱정할 필요 따위 없지 좋은 애니깐 나를 걷어차렴 사랑 사랑 달콤한 미사여구 따위 동원하기 싫어졌다 별은 때론 너무 빨리 흘러내리니까 나를 걷어차렴

  별이 흘러서 꽃이 시들었다 지는 꽃을 보고 우는 나이라지 하지만 구르는 낙엽을 보고 웃는 나이라고도 해 날씨만큼 변덕쟁이구나 구름이 꼈네 눈을 감아도 햇빛이 빨개 구름이 껴도 햇빛이 느껴져 머리가 아프게 더 따갑고 부셔
  목욕탕에서 온탕물이 열탕물보다 뜨거울 때처럼 기분이 나빠졌어 날 뱉어줘 찢어졌어 짜졌어 흘러내리고 있지 그냥 미련없이 날 뱉어줘 난 버렸어 진통을 버렸어 흰자위를 부릅뜬 아스피린이 위를 할퀴기 전에 아 토하고 싶어

  엉뚱한걸 난
  청소시간 우린 벌레 시첼 치워내야 하는 걸까 거미집도 걷어내야 하는 걸까 생일날을 축하해야 하는 걸까
  그런 거 물어봐야 하니 꼭?
  그래 그러니까 난 열등한걸








2004년인가에 초안을 썼고 뜯어고친 건 아마 2006년. 그리고 다시 중간에 한 연을 삭제한 게 2007년.
여러 버전이 있는 시다.

계획적으로 쓰기보다는 거의 손 끝에서 펜이 흘러가는 대로 쓴 시.
사실 내가 쓴 것 중에서도 상당히 좋아하는 거다. 그렇게 '잘 쓴' 거라고 생각하진 않더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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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설픈꿈2009. 7. 20. 23:02
 

 

종소리

종은 울리지 않아요
상표를 달지 않은 종
푸른 리본을 빼입은 종
둔탁한 금색 종
문에 달아둔 기다림

3월로 달려나간 당신은 돌아올 생각이 없는 듯
창 틈으로 웃음소리만 찔끔찔끔 흘려 보내고 있더군요
늑장부린 눈 속에서
눈을 쓰는 싸르락싸르락 소리만
귓등을 스쳐가더군요

문에 달아둔 종을 잠옷바람으로 무릎 꿇고서 바라보고만 있어요

사실
오래 전부터 종은 숨도 쉬지 않고
먼지가 굳어진 얼룩 곰팡이만
퇴적되고 있음을
밤이 되고야 별빛 덕에 알아버렸죠
문에 달린 침묵

이젠 멀리서 흩날려오는 소리
보이지 않는 당신의 모습
아직 거기에 있나요? 거기에 있어줄 수 있나요?

발돋움하여 문에 달아뒀던 웃음을 떼어내요
숨을 불어 먼지를 털어내요
지문이 얼룩 위에 남고
긴 잔향이 발자국 위에 맴돌아요
길게 기지개를 늘어뜨리는 종소리
종소리 종소리…





------------------------------------
이것도 역시 옛날에 쓴 시... 2005년에 쓴 건데...
"아직 거기에 있나요? 거기에 있어줄 수 있나요?" 이런 구절은 너무 직설적이라서 맘에 들지 않는다.

근데 어떻게 고쳐야 할지 모르겠는 것도 있고
고치고 싶지 않은, 그런 아픔 같은 것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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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잘 읽었습니다.

    2009.08.09 00:03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어설픈꿈2009. 7. 13. 17:54



길이 걸어간다

길 앞에는 신호등이 노란색의 비보호를
깜빡이고 있다
붉은 길은 내 명치를 스치듯이 관통하고
약간 더 붉은 길은 내 가슴을 지나치고
길들은 생일처럼 어느날 주어졌다
빨간신호 횡단보도 그 위로 나의 길들이
비보호를 드리운다
길 곳곳에서 불쑥 튀어나오는 추억처럼
하얗게 돌출하는 과속방지턱 페인트를
횡단보도를 밟으며

나를 지나쳐간
길들의 속력은 늦춰지지 않는다
길이 걸어간다
길들이 걸어간다


=--------------------------------------


2005년에 쓴 시.

길과 나의 분리와 비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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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설픈꿈2009. 7. 4. 21:34


구두, 장화, 샌달


이 어깨를 선뜻선뜻 스치는 것은
시간인가 바람인가 빗방울인가
뜨겁게 기침하며 힘들게 빗은
머리칼도 비바람이 드나드는데

계절에 어긋나게 검은 구두엔
비가 젖어오고 발가락이 불어가고
막아보려 해도 네가 스며오고
너는 몸을 던져온다, 모든 방향에서

그래서, 그들은 샌달을 신나보다
비바람 앞에 맨발을 내놓고
시간 앞에 맨살을 드러내고
합성수지 장화로 삶을 가두느니
세계 속에 발톱을 내놓고 걸어가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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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설픈꿈2009. 6. 13. 01:54


소크라테스 파스타


1
열아홉살

그녀의 그림에는
파스타가 잠을 자네
웅크리고 잠을 자는
순진한 파스타들

키가 크기 싫어서 벽에 기대선
노래를 불러주는 불면 파스타들
몇이서만 미아 같은 눈을 하고는
노크 같은 노래를 부르고 있네

크림소스를 덮어쓰고 쑥쑥 자라려고
잠을 청하던 파스타들이 화를 내고서야
불면 파스타들은 자장가를 부르네
크림처럼 끈적이는 자장가를 부르네
어딘지 방울맺힌 자장가를 부르네


2
어른들이 그녀에게 제목을 물어보자

그녀는 "먹음직스런 파스타"라며,
웃어보이네

노크할 줄 모르는 어른들이,
노크할 줄 모르는

다 자란 파스타들을 먹네










*


이 시는 어쩌면 계몽적으로 읽힐지도 모르고, 저급한 동화로 읽힐지도 모른다.
하지만 어쨌건 이건 계몽적인 의도를 갖고 쓴 시는 아니다.
이건 오히려 자조적인 시에 가깝다.




2007년 12월에 썼던 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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흘러들어온꿈2009. 5. 28. 17:31
천주교인권위원회 뉴스레터 교회와 인권 2009년 5월 156호

 
[칼럼] 시인과 법

2009년 05월 27일 (수) 21:59:28 좌세준(인권위원, 변호사) chrc@chol.com

세상이 몽둥이로 다스려질 때 / 시인은 행복하다
세상이 법으로 다스려질 때 / 시인은 그래도 행복하다
세상이 법 없이도 다스려질 때 / 시인은 필요 없다
법이 없으면 시도 없다

시 인 김남주의 <시인>이라는 시입니다. 세상이 몽둥이로 다스려지던 시절, “네 벽에 가득 찬 것은 모두 어둠뿐인” 광주교도소에서 종이와 연필이 주어지지 않아 빈 우유곽에 못으로 시를 쓰면서도 시인은 “행복하다”고 했습니다. 요즘 세상을 볼라치면 세상이 다시 몽둥이로 다스려지는 듯합니다. ‘법’은 또 어떤가요. ‘법’ 축에도 못 드는 ‘고시’라는 놈이 법 중의 법 ‘헌법'에 나와 있는 국민의 건강권을 유린하더니, ‘마스크를 쓰고 집회하면 처벌한다’는 법을 만든다고 합니다. 인터넷에 글을 올린 사람은 업무방해요, 전기통신기본법 위반이니 구속이랍니다. 설을 일주일 앞둔 서울 한복판 재개발 철거현장에는 ‘법치질서의 확립을 위해’ 경찰특공대가 투입되었습니다. 100여일이 지났음에도 희생된 가족들을 땅에 묻지 못한 유족들의 울음이 그치지 않습니다. 김남주 시인이 세상을 떠난 지 벌써 15년입니다. 세상이 법으로 다스려지는 것을 보지 못하고 눈을 감은 시인이 다시 살아온다면 유족들의 손을 붙잡고 이렇게 한마디 하실 지도 모르겠습니다. “이게 법이지요 / 목에 걸면 그것은 / 부자들에게는 목걸이가 되고 / 가난뱅이들에게는 밧줄이 되지요”

요즘은 시집이 잘 팔리지 않는다고 합니다. 세상이 몽둥이로 다스려지던 시절에는 그래도 시집이 베스트셀러가 되기도 했던 것 같은데요. 시인들이 다 사라져버린 것일까요. 법 없이도 다스려지는 세상이 된 것도 아니요, 시인이 필요 없는 세상이 온 것 같지도 않은데, 참으로 이상한 일입니다. 해방 공간의 전위시인 유진오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고 합니다. “시인이 되기는 바쁘지 않다. 먼저 철저한 민주주의자가 되어야겠다. 시는 그 다음에 써도 충분하다. 시인은 누구보다도 먼저 진정한 민중의 소리를 전하는 사람이어야 할 것이다.” 세상이 법으로 다스려질 때가 참 민주주의 세상이요, 그런 세상을 먼저 만들어 놓고 나서 시를 써도 늦지 않다는 말입니다. 인간의 존엄과 이상을 파괴하는 억압이 존재하는 한 시인은 언제나 시대의 어둠을 가르는 전령(傳令)이 되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시와 민주주의의 통일 선언입니다. 그러하니 세상이 몽둥이로 다스려질 때에도 시인들은 민주주의를 노래할 수 있어 ‘행복한’ 것입니다. 법이 아니라 총검과 몽둥이가 세상을 다스리던 시절, 김남주 시인은 자신의 시가 억눌린 자와 민중들의 손에 건네져 읽혀지기를 소망하였습니다. “나는 바란다 총검의 그늘에 가위 눌린 / 한낮의 태양 아래서 나의 시가 / 탄압의 눈을 피해 손에서 손으로 건네지기를 /......./ 그들이 나의 시구를 소리내어 읽을 때마다 / 뜨거운 어떤 것이 그들의 목젖까지 차올라 / 각성의 눈물로 흐르기도 하고 / 누르지 못할 노여움이 그들의 가슴에서 터져 / 싸움의 주먹을 불끈 쥐게 하기를”

김남주 시인이 노래한 것처럼 법 없이도 다스려지는 ‘더 좋은 세상’이 온다면 ‘민중의 소리를 전하는’ 시인은 아예 필요 없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그런 세상이 온다면 판, 검사나 변호사는 다 실업자가 되겠지만, 모든 이들이 ‘행복한’ 세상일 것이니 그런 세상도 한 번 꿈꾸어 볼만하지 않습니까. 그런 세상보다는 덜하지만 우선은 법보다 상식이 통하는 세상이 되었으면 합니다. 그도 아니면 법이 본래의 모습을 되찾는 세상이 되었으면 합니다. 말 그대로 ‘물처럼 흐르는’ 법. 결코 낮은 곳에서 높은 곳으로 거슬러 흐르지 않으며, 때론 굽은 모래톱을 곧게 펴기도 하고 “오뉴월 더운 날에는 농부의 시름 덜고 / 타는 들녘 벼포기를 적시는” 고마운 물과 같은 법으로 다스려지는 그런 세상 말입니다. 시인이나 우리들 모두 ‘그래도 행복한’ 그런 세상 말입니다.

Posted by 공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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