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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 황사주의보

황사주의보 난방비를 아낀다고 창문을 바꿔 달았지 그런데 새 창도 신통치가 않은걸 일기예보에선 별 얘기 없었는데도 황사가 종종 날아 들어오지 복도를 타고 울려오는 계집애도아닌데왜이리조잘대 몰려다니는 남자애들이 흘린 나이스바디미스코리아폭탄엉클장 상표만 없는 알록달록한 별명들 오분만더공부하면남편직업이달라진다 수업 시간의 노신사 분은 모래를 털기도 하지 목구멍에 걸리는 따끔따끔한 황사 먼지들 베란다에선 남자애들이 가래침을 카악대며 먼지를 일으키지 환상이 깨졌다며 눈살을 찌푸리지 햇볕 아래서 조잘대던 우리들 다리에 프라이팬 기름처럼 튀지 그렇게 황사는 계속 심하고 저 선생님은 페미니즘적이라 인기가 없지 그러고 보면 이모는 마흔이 넘게 시집을 안 갔지 어거지로 선을 보는 족족 차버리더니 발톱이라도 깨졌는지 황사에 ..

어설픈꿈 2008.01.11

시 - 편의점

편의점 24시 편의점은 노랗다 거기에서 노란컵라면이나 검은삼각김밥을 사먹을 수도 있다 졸지 못하는 카운터 위에 맴도는 잠이 없는 노릿한 컵라면 냄새가 숨막히게 배고프다 배가 고프지 않던 사람도 노랗게 물든 그 앞을 지나다보면 허기에 물든다 다섯 대의 소방차가 앵앵 언덕을 넘어간다 붉은 사이렌에 아랑곳 않고 편의점은 노랗다 뒤따르는 하얀 앰뷸런스에도 아랑곳 않고 편의점은 노랗다 오늘밤도 가로등 침침한 거리 편의점 노오란 불면증인데 충혈된 간판이 거리를 먹어치우고 있는데 2005년 봄인가, 여하간 초에 썼던 것-

어설픈꿈 2008.01.11

아브라함과 이삭의 수난, 그리고 부모의 독재적 권리

어슴푸레한 시야에 제일 먼저 들어온 것은 높은 천장에 하나 가득 그려져 있는 낯선 프레스코화였다. 주제는 '아브라함의 수난'. 창세기에 수록된 에피소드다. 아담의 자손인 아브라함은 어느 날 주님의 계시를 받고 아들인 이사악을 제물로 바쳐야 할 처지에 놓이게 된다. 두터운 신앙심을 지닌 그는 아들을 속여서 모리야 산 정상으로 데려간다. 아브라함이 제단에서 아들을 칼로 찌르려는 순간 주님은 아브라함의 신앙심을 칭찬하고 이것은 모두 너의 신앙심을 시험하기 위함이었다고 말한다…. 성서에서 이 이야기를 읽었을 때 알렉산드로는 이상하게 생각했다. 어째서 이 이야기가 '이사악의 수난'이 아니라 '아브라함의 수난'인 것일까. 가정교사에게 물어봤지만 그는 비웃기만 할 뿐 아무런 대답도 해주지 않았다. 아마 그런 의문을 ..

딱딱한꿈 2008.01.10

서구중심주의와 오리엔탈리즘

(2004년 12월에 썼던 글) 세계화란 것을 나는 그리 좋아하지는 않는 편이다. 게으른 사람인지라 '배워야 하는 언어가 많아져서' 와 같은 이유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보다는 "신자유주의의 확산"이라는 현재의 추세가 썩 마음에 들지 않기 때문이다. 신자유주의와 세계화는 지금 이 상태로는 적어도 얼마쯤은 실패한 담론이라고 생각한다. 신자유주의와 세계화는 국가 간 차별, 인간성 상실, 고용 없는 경제 성장, 같은 문제점들을 내포하고 있기 때문이다. "20:80의 사회"가 괜히 있는 말은 아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신자유주의나 세계화가 모두 거부할 체제라는 것은 아니다. "정부의 실패"가 무시할 만한 요소는 아니니까. 다만 상투적인 소리로, "비판적인 수용"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단순하게 말하면 문화적 ..

딱딱한꿈 2008.01.10

수필 - 전쟁 꿈

전쟁 꿈 어제 밤이던가 그제 밤 정도였다. 꿈에 전쟁을 만났다. 꿈에서 전쟁을 만날 수도 있다는 걸 나는 그날 처음 알았다. 명확한 기억은 나지 않지만 대강 기억나는 것에 약간의 살을 붙여보자면 이렇다. 대체 어디와의 전쟁이었는지, 그런 건 기억하지 못한다. 그리고 그런 건 중요하지도 않았다. 나는 참전 같은 것은 하지 않았고, 내가 있는 곳은 그저 후방이었을 뿐이었고, 나는 그저 민간인이었을 뿐이었다. 학교는 휴교 중이었고 하늘은 흐렸다. 후방. 전선은 저 멀리 있었고 이곳은 전쟁의 참혹함이나 끔찍함 같은 것과는 거리가 먼 도시. 하지만 전쟁이란 전선에서 총을 쏘고 미사일이 나는 그런 단순한 것은 아니었던 모양이다. 다행히 이 도시에는 폭격기가 날지 않았지만, 다른 주요 도시들은 종종 폭격을 받는다고 ..

어설픈꿈 2008.01.10

시 - 닿을 수 없는

닿을 수 없는 아이들이 베란다서 수다를 떨고, 잔디밭에 둘러쳐진 하얀 로프와, 들어가지 마시오! 푯말 화창한 점심시간 벤치에서 소소한 얘기소릴 엿들으며 손톱을 하나하나 깎았어요 잔디 깎기 훑고 간 잔디밭엔 싸한 피 냄새 나른한 한숨 같은 비행기 소리 서서히 주위를 덮었고 손을 뻗어 보았지만 닿지 않았고 공기만 한 움큼 또각또각 물어뜯긴 손톱이 화난 듯 내게 튀어 오르는 날.

어설픈꿈 2008.01.10

시 - 새벽녘, 방에서

새벽녘, 방에서 째깍 얼핏 들었던 잠이 초침 소리에 깼다 꿈속에 떠돌던 귀가 시계에 머문 때문이다 자리에 일어나 앉아 두리번대다 습관적으로 뻗은 손 깜빡대는 형광등 파르르 숨을 떠는 방 창 밖을 본다 북향방도 내일에 설렜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잠겨진 창문으로 내다본 어슴푸레 풍경은 희미한 얼굴에 가려질 뿐 거울이 된 유리창, 방이 흘린 웃음이 나가지도 못하고 잔향만 속삭이며 간질거린다 물러나서 몸을 기대면 등에 닿은 벽이 하얗게 시리다 벽에는 꽃들이 피어 있지만 꽃들도 떨고 있다 내가 잠들던 방은 이 방이 아닌가 내가 한숨을 내쉰 방은 이 방이 아닌가 내가 코를 풀고 뺨을 닦던, 자꾸만 나를 삼키던 그 방은 이 방이 아닌가 내 방은 이제 개미 같은 귀울림과 아련한 기시감에서만 겨우 엿볼 수 있는가 그래서 ..

어설픈꿈 2008.01.10

[인권오름] 돌아갈 수 있을까, 돌아가야 할까 - 가출소년 따이루, 자유를 찾아 집을 나오다

[내 말 좀 들어봐] 돌아갈 수 있을까, 돌아가야 할까 가출소년 따이루, 자유를 찾아 집을 나오다 기사인쇄 따이루 신발을 걸치고 도망쳐 나온 그날 난 2006년부터 청소년인권운동을 해왔다. 집에서는 '어린 것이 뭘 아냐, 학생의 본분은 공부다, 빨갱이들한테 휘둘리지 말고 학교나 열심히 다녀라, 쪽 팔린다' 이런 반응이었다. 가족들은 몇 달 저러다 말 거라고 생각했을 거다. 근데 몇 개월이 지나도 애가 점점 더 빨개지는 것 같고 머리만 커지는 것 같으니깐 태클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통금시간이 생기고, 컴퓨터를 할 때마다 감시를 받고, 통화 내역도 조회하고, 주변 친구나 활동가들 연락처를 여기저기서 모아서 연락망까지도 은밀히 만들었다. 난 이걸 블랙리스트라고 부른다. 학교에 전화해서 내 학교생활과 친구에 대..

걸어가는꿈 2008.01.10

[일다] “다 성장의 과정 아닌가요?” - 인권침해 견뎌내는 ‘착한 아이’들

이런 기사들을 써주기 때문에, 일다를 좋아한다 *_* http://www.ildaro.com/Scripts/news/index.php?menu=ART&sub=View&idx=2008010400001&art_menu=12&art_sub=26 “다 성장의 과정 아닌가요?” 인권침해 견뎌내는 ‘착한 아이’들 박희정 기자 2008-01-04 00:20:15 “학교에서 머리 길이를 규제하거나 체벌을 하는 것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해요?” 십대들이 거리에 나와 ‘십대에게도 인권이 있다’고, ‘십대 인권을 보장하라’고 집회를 열었을 때, 이를 취재하던 중에 집회를 지켜보던 한 십대 학생에게 질문을 건넸다. 잠시 머뭇거리던 학생은 이렇게 답했다. “기분은 나쁘지만, 성장을 위해서는 다 거쳐야 하는 과정 아닌가요?” 그는..

걸어가는꿈 2008.01.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