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설픈꿈 142

시 - 감옥에서5 - 접속사

감옥에서 5 - 접속사 어느 시인은 시는 부사로 쓰는 거라 했고아마 동사라고 말한 누구도 있었을 법하다 이곳에선 접속사로 시를 쓰고 싶어진다진작부터 접속사를 사랑하긴 했지만은말과 말 문장과 문장을 잇는접속에의 욕망으로 시를 쓸 수 있다면좋겠다 그리고, 너와 나란히 서고그러나, 너를 마주보고그러면, 너를 꿈꾸고따라서, 너를 안고 하나만 더 욕심을 부려봐도 된다면거기에 의문사를 보태는 건 어떨까너에게 대답을 바라는 마음을더하는 게 (2012. 09. 26.)

어설픈꿈 2012.10.07

수필 - 버림 받았단 착각을 못 버린 사람의 미련

버림 받았단 착각을 못 버린 사람의 미련 업으로 삼고 있는 청소년운동의 성격상, 지금까지 적지 않은 사람들을 떠나보냈다. 여러 사람들이 청소년일 때 당사자로서 청소년운동에 함께하다가 나이를 먹고 청소년이 아니게 되면서 운동을 떠났다. 어떤 이들은 내게 또는 운동에 작별 인사를 남기고. 더 많은 이들은 인사도 없이. 내가 원체 사람 이름이나 얼굴을 잘 기억 않는 성격이라서, 그 사람들을 모두 기억하고 있단 식의 뻥은 차마 못 치겠다. 그러나 나로선 이례적이게도 많은 사람들, 수십명 단위로 헤아려야 할 만큼을 기억하고 있다. 나는 물론 안다. 알고 있다. 그 사람들 중 청소년운동이나 나를 ‘버린’ 사람은 아마 없으리란 것을. 그들은 대부분은 그저 자신의 삶을 살았을 뿐이고, 일부는 운동에 실망하거나 상처받고..

어설픈꿈 2012.09.26

시 - 감옥에서3 - 거미집

감옥에서3 - 거미집 붉은색도 검은색도 아닌색채는 모호하지만 그 존재는이곳에선 대지보다도 확고한철창살 사이에 거미들이 집을 지었다 창 밖 하늘을 조각내고내 시선조차 조각내는철창살 사이에 빛나는 거미집이 희다새집이다 삶은 그렇게 어디서든흰 거미줄을 뽑아내고붙이고 감고 잡아먹고 끊어지고이어진다 구속의 굴레도 누구에겐 집터가 되는데나는 어디에 줄을 붙이고 또 누구에 집을 지어야 할까빗소리처럼 후두두둑쉴새없이 떨어져내리는 질문들 - 2012. 07. 08.

어설픈꿈 2012.07.13

시 - 감옥에서2 - 방은 서향이다

감옥에서 2- 방은 서향이다 방은 서향이다아침에도 빛은 들지 않고밤이라고 어둡지도 않다오후 한때 발자국만한 햇빛이 비스듬히한두 시간 들러 안부만 묻고지나치는 응달이다사본 같은 상아빛 건물 십여채가 줄 맞춰노을빛조차 볼 수 없는 응달이다창살 새로 침입한 서풍엔아무 소식도 실려있지 않고아주 가끔 아카시아 향 같은 것이풍겨오지만 이내 반짝 꺼져간다밤이면 옆에 옆에 방쯤에서 누군가옆 건물 벽을 향해 서쪽을 향해큰 소리로 모르는 이름을 부르고나는 잠을 깨곤 한다방은 서쪽만을 향해있다나는 어디로도 향할 수 없다 - 2012. 05. 31.

어설픈꿈 2012.07.13

시 - 감옥에서1-오월

감옥에서 1- 오월 삼십분씩 공터에서 운동을 한다걸음걸음 점점이 민들레들이스치우던 작은 공터, 둘레 백걸음 어느 누가 심었을 린 없겠지만은장벽과 걸음길 새 갓길을 찾아무단 점거해온 민들레들주말 동안 하얗게 머리가 세었다. 오백 걸음 천 걸음 계속 걸어도 좁은 곳을 맴도는 시멘트 벽 안가늘어진 민들레 머리칼 뽑아바람에 흩어본다 머리칼들은 누구나 볼 수 없는 시간에또 이 작은 공터 변에몇몇은 새벽녘 세어진 바람을 타고자기 몸 앉을 자릴 무단점거해 갈 테지 나도 누구의 맘을 점거해보려 민들레 머리마냥 하얀 종이에 잉크 심어 부지런히 보내보지만누군가 바라보는 가운데에 여럿의 눈을 거쳐 겨우 닿겠지 그저 매일 밤 무단의 꿈을 꾸는 것이내게 허락된 오월이겠다 - 2012. 05. 08.

어설픈꿈 2012.07.13

시 - 과거형

과거형 나는 당신을 사랑했었다. 그것만은 거짓이 아니었다. 다만 한 가지. 이 말을 할 땐 꼭 었, 하고 혀로 잇새를 닫아줘야 한다. 더 이상 외롭지 않게 과거로 과거로 만들어야 한다. 했다도 아니고 했.었.다 하고 두 번 그 닫히는 순간이 나의 마침표다. 엇 하며 두근거리는 심장을 발견하는 것으로 시작해서 었 하고 한 음절을 덧붙여 발음하는 것으로 끝내는 것 나는 당신을 사랑했었었었었었다

어설픈꿈 2012.02.23

시 - 자유는 어째서

자유는 어째서 6년만의 친구와 작별의 인사 나누고 돌아보니 하늘이 보이고 푸으른 겨울 하늘 눈에 스민다 수감을 한달 앞둔 맘에 저민다 그래서 느낀다 자유는 어째서 푸른색인가 수십일을 광장으로 출퇴근하며 달리고 때리고 싸우고 외치고 충혈된 눈들이 새벽을 밝힌다 주홍색 촛불도 피를 흘린다 그래서 느낀다 자유는 어째서 붉은색인가 배우고 있다 자유는 어째서 청록색인지 노란색인지 보라색인지 검은색인지 살빛인지 민트향 껌에서 여행지의 흙에서 저녁놀 등진 새 그림자에서 영화관 조명에서 네 등의 까슬함에서 자유는 어째서인지 총천연색 낯빛의 서글픔으로 나에게 인사한다 수감을 앞둔 시간 시간마다 -------------------------------------------------------------- 부제로 병역거부..

어설픈꿈 2012.02.18

"예비 5세"

"예비 5세" 어느 날 점심을 먹으러 가던 중 횡단보도에서 신호가 바뀌기를 기다리고 있던 중, 신호등 앞에 서있는 봉고차를 봤다. 노란색 학원 봉고차인 듯한 그 차에는 이런 문구가 써있었다. "예비 5세 과정 신설" 한순간 무슨 말인지 이해가 안 가서 멍하니 그 글자들을 보고 있었다. 저건 뭐지? 예비 5세? 결혼 직전의 여자 사람을 예비 신부라고 하고 고등학교 가기 직전의 중학생을 예비 고등학생이라고 하고 진화하기 직전의 피카츄를 예비 라이츄라고 하는 것(그럴 리가 있냐)과 같은 건가? 그럼 4살을 말하는 건가? 근데 왜 4세라고 안 쓰고 "예비 5세"라고 쓰는 거지? 나이 먹는 것도 예비해야 한단 말인가? 뭐지 저건? 작은 혼란 속에 봉고차 옆에 있는 짤막짤막한 광고 문구들을 모아서 추론한 결과 그건..

어설픈꿈 2012.01.02

시 - 새치

새치 김광석의 그녀가 처음 울던 날 내 곁을 떠나갔노란 노래를 떠올리며 나는 맨날 웃어 보여야 했으니 떠날 만하다는 그런 하찮은 생각이 묻은 손으로 잠든 너의 눈꺼풀을 쓰다듬는다 너는 내 앞에서 참 많이도 울었다 나도 네 앞에서 참 많이도 울었다 하지만, 나는 내가 힘들 때 울었는데 너는, 내가 힘들 때, 울었던 거 같다 그래서일까 내가 사랑하는 사람에게는 새치가 딱 하나 숨어있다 머리칼을 뒤져봐도 없는 새치가 왼편 눈썹에 딱, 한 가닥 숨어있다 나 때문에 항상 애쓰는 눈물샘 눈꺼풀 그리고 눈동자 발갛게 물들곤 하는 흰자위 그 수고로움을 시위하듯 나 때문에 색이 바랜 새치가 네 왼쪽 눈썹에 피어 있다 ----------------------------------------------------------..

어설픈꿈 2011.09.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