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동인권'에 해당되는 글 29건

  1. 2015.09.29 [논평] 청소년인권을 현관문 안으로! - 가족 내 체벌 금지를 환영하며, 청소년인권 발전의 한 걸음이 되길 바란다
  2. 2015.03.30 체벌이 인권침해일 수밖에 없는 이유들
  3. 2014.05.14 자꾸 '아이들'을 부르는 것에 대한 투덜거림 (1)
  4. 2013.08.30 타도! 보호 독재, 어른 독재
  5. 2013.08.25 ‘청소년운동론’ 예고편
  6. 2011.11.23 청소년 자살 모두의 문제 (1)
  7. 2011.11.17 UN아동권리위3.4차최종견해 : 한국에 성적 지향, 비혼모 등 차별금지, 체벌금지, 정치활동 보장, 경쟁적 교육 개선 등 권고
  8. 2011.08.29 잘못된 교육을 거부하고, 잘못된 사회를 바꾸는 93/고3들의 대학입시거부선언과 행동을 제안합니다.
  9. 2010.09.08 [페미니즘인(in)걸?] "부모님 모셔와"가 무섭지 않은 세상을 만들려면?
  10. 2010.08.13 [세계의 인권보고서] 아동에 대한 법률상 폭력을 근절하기(2009) 모든 형태의 아동체벌근절을 위한 지구적 행동 (2)
  11. 2010.07.20 [아수나로 서울 논평] 서울시교육청의 체벌 금지 조치야 그냥 기본이지 (4)
  12. 2010.07.19 [인권오름] 인권문헌읽기 - 쉽게 쓴 유엔아동권리협약 (1)
  13. 2010.02.13 [페미니즘인(in)걸?] 왜 소수자들은, 여성/청소년들은, 오지랖이 넓은가
  14. 2009.11.25 MB정부, 유엔사회권위원회 권고 이행하세요 ^^
  15. 2009.11.11 [페미니즘인(in)걸] 괴물들과 공주님들? - 아동 성폭력 사건을 대하는 우리의 자세 (12)
  16. 2009.10.10 [인권운동사랑방 논평] 조OO 아동 성폭력 사건에 대하여
  17. 2009.10.07 가해자 인권 논의의 오류 & 좀 더 겸손해지길 (14)
  18. 2009.09.30 나XX 사건이라고 부르지 맙시다 (3)
  19. 2009.09.02 세이브더칠드런 아동권리협약20주년이벤트에다가... 아동에게는 성행위를 할 권리가 있습니다 ㅋ (2)
  20. 2009.08.19 [인권오름 : 페미니즘인(in)걸] 신데렐라이길 거부한다 - 청소년에게 밤길을 다니고 외박을 할 자유를 (2)
걸어가는꿈2015.09.29 11:37

 

[논평] 청소년인권을 현관문 안으로!

- 가족 내 체벌 금지를 환영하며, 청소년인권 발전의 한 걸음이 되길 바란다



  드디어 한국도 가족 안에서 친권자/보호자에 의한 체벌과 언어폭력이 금지되었다. 9월 28일부터 시행되는 아동복지법 개정안에 따라, “아동의 보호자는 신체적 고통이나 폭언 등의 정신적 고통을 가해서는 안 된다.” 우리는 이러한 법률의 시행을 환영하는 한편, 이것이 단지 법문구의 변화만이 아니라 실질적인 청소년인권 개선의 중요한 기회가 될 수 있기를 바란다.

  체벌금지는 청소년이 인간임을 인정하는 이상 당연히 지켜져야 할 인권 규범이다. 유엔아동권리위원회는 오랜 시간 동안, 여러 차례에 걸쳐서, 가족과 학교 그리고 모든 곳에서의 체벌을 금지하도록 권고해왔다. 2011년에도 유엔아동권리위원회는 체벌을 명시적으로 금지하도록 관련 법률을 개정하고, 체벌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을 바꾸도록 교육과 캠페인을 실시하고, 체벌의 피해를 입은 청소년이 사건을 알리고 구제받을 수 있는 제도를 마련할 것을 한국 정부에게 권고한 바 있다. 이제라도 한국 정부가 그러한 국제인권규범의 일부라도 따르는 것은 긍정적인 변화이다. 사람이 사람에게 폭력을 당해서는 안 된다는 당연한 기준에서 청소년만 예외여서는 안 된다. 그러나 동시에, 우리는 한국 정부가 그동안 청소년에 대한 체벌을 금지하는 일에 소극적인 태도를 보였던 것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한국 정부는 학교에서의 체벌도 완전히 금지한 것이 아니라는 애매모호한 입장을 고집하고 있다. 정부는 이후 청소년에 대한 학교와 가족 그리고 모든 곳에서의 체벌을 완전히 금지한다는 것을 분명히 해야 할 것이다.

  우리는 이번 가족 내 체벌금지 시행을 환영하지만, 그러면서도 그 실효성에 대해 우려하는 마음을 밝힌다. 지난 2012년, 서울시에서 제정한 어린이‧청소년인권조례에도 “보호자는 양육하는 어린이ㆍ청소년에게 체벌을 포함한 신체적, 정신적, 언어적 폭력을 해서는 아니 된다.”라고 하여 가족 내 체벌을 금지하는 내용이 들어가 있었다. 그러나 서울시민 중에 이러한 내용을 아는 사람이 얼마나 있었을까? 서울시에 사는 청소년 중 가족 내 체벌을 당했을 때 이 조례의 도움을 얻을 수 있었던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될까? 법은 그 내용을 사람들에게 명확히 알리고 집행해야만 의미가 있다. 개정된 아동복지법 역시 널리 알려지고, 또 실제로 체벌이 일어날 때 관련 기관들이 적절하게 개입하지 못한다면 유명무실한 것이 되고 말 터이다. 한국 사회처럼 청소년인권에 대한 인식이 미비하고, 가족주의가 강고하며, 청소년에 대한 폭력에 관대한 사회에서는 더욱 그럴 위험성이 크다. 널리 이루어지고 있는 청소년에 대한 폭력 — 체벌을 근절시키기 위해 더 적극적으로 행동하고 실효성 있는 제도를 마련해야 한다.

  지난 십몇 년 간 한국 사회에서 청소년인권에 대한 인식은 분명히 개선되어 왔다. 그러나 가족 안에서 일어나는 신체의 자유 문제나 사생활의 자유 문제 등, 여러 청소년인권 문제들은 사적인 문제이거나 부모‧보호자의 친권 등을 이유로 제대로 문제로 생각되지 않았다. 가족 사이의 일을 권리의 문제나 권력관계의 문제로 논하는 것 자체가 금기처럼 여겨지기도 했다. 그러나 가족은 청소년들의 생활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이자 청소년인권침해가 일어나는 주요한 무대이기도 하며, 보편적 인권 보장의 치외법권이 될 수 없다. 청소년인권은 교문만이 아니라 현관문 안으로도 들어가야 한다. 청소년인권행동 아수나로는 최근 가족 안에서의 아동학대 문제에 대해 높아지는 사회적 관심과 더불어 가족 내 체벌금지가 그 한 걸음이 될 수 있기를 기대한다. 가족 안에서도, 체벌만이 아니라 청소년인권 침해가 모두 사라지는 세상을 만들어가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2015년 9월 29일

청소년인권행동 아수나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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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공현
걸어가는꿈2015.03.30 15:05

어린이책시민연대 소식지 원고로 청탁받아서 쓴 글이에요







체벌이 인권침해일 수밖에 없는 이유들



공현 (청소년인권행동 아수나로)



체벌금지 관련 현황

  UN아동권리위원회가 한국 정부에 대해 아동체벌금지를 처음으로 권고한 것이 약 19년 전, 1996년의 일이다. 그 뒤에도 ‘모든 곳에서의 체벌금지’는 한국 정부에 대한 단골 권고 사항 중 하나다. 그러나 21세기에 들어서도 한국에서 체벌금지 문제는 제대로 진전을 보이지 못하고 제자리걸음을 반복하고 있는 느낌이다.

  우선 학교 체벌의 경우 1990년대 후반에 김대중 정부에서 학생인권에 대해 최초로 논의를 했으나 교사 등의 반발로 실현되지 못했고, 오히려 체벌을 정당화하며 체벌 도구 등을 지정하는 규정이 만들어졌다. 그 뒤 수많은 학교에서의 체벌 사건과 희생자들, 그리고 체벌금지를 요구하는 행동들 위에 학교 체벌금지가 공론화됐다. 2011년에는 초중등교육법 시행령 개정을 통해서 “도구, 신체 등을 이용하여 학생의 신체에 고통을 가하는 방법을 사용해서는 안 된다”라는 학교 체벌금지 조항이 명시됐다. 경기도, 서울, 광주, 전북에서 시행 중인 학생인권조례 역시 학교에서의 체벌금지를 명시했다.

  이런 제도 변화에도 불구하고, 학교 체벌금지도 뭔가 딱 떨어지지 않는 불투명한 점이 많은 실정이다. 교육부는 시행령을 개정해놓고도 직접 때리는 방식이 아닌 다른 체벌은 가능하다는 유권해석을 고수하고 있다. 이에 따라 학교들에선 체벌이 일어나고 있고 ‘때리는’ 형태의 체벌 역시 교육청과 교육부가 적극적으로 조치하지 않음에 따라 사라지지 않고 있다. 학생인권조례의 체벌금지가 상위법 위반이라 무효라는 주장까지 공공연히 나오는 상황이다. 실제로 중고등학생을 대상으로 한 여러 조사에서 50~60% 가량은 체벌을 경험한다고 답한다. 경험 빈도나 정도는 시간이 흐르면서 약해지는 경향이 있으나 경험 비율 자체는 여전히 상당히 높아서, 체벌의 근절에는 전혀 이르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다른 한편 학교에서 체벌과 달리 거의 논의조차 되지 않고 있는 것이 가정에서의 체벌이다. 가정에서의 체벌 경험 비율은 학교에 비해 낮은 편이기는 하지만, 부모나 친권자의 지도권 행사로 정당하다고 여겨지는 점으로는 학교 체벌 이상이다. 그것이 적절한 양육 수단인지 여부에 대한 논의는 있지만, 이를 금지한다거나 아동-청소년의 인권 문제로 접근하는 경우는 드문 것이다. 2012년 제정된 서울어린이청소년인권조례에는 가정에서의 체벌도 금지하는 조항이 있지만 서울시에서는 전혀 홍보를 하지 않아서 그 존재감이란 없는 거나 마찬가지다. 그나마 최근에 각종 아동학대 관련 제도가 강화되면서 그 해석을 두고 가정체벌도 학대법 적용 대상인지 말이 나오고 있는 정도다. 이에 관해 정부의 입장은 역시나 불투명한데, 법무부 등은 ‘체벌은 ‘학대’와 구분해야 한다‘, 즉 체벌은 허용된다는 입장에 가깝다. 반면 검찰과 경찰은 아동학대 관련 법을 체벌 사건에도 일부 적용한 사례가 있었다.

  학교와 가정 외에 학원이나 교습소, 그밖의 장소에서도 어린이․청소년에 대한 체벌은 가해지고 있다. 예컨대 거리에서 흡연을 하고 있는 청소년을 어른이 ‘훈계’ 차원에서 체벌하는 것에 대해 우리 사회는 상당히 우호적인 분위기를 갖고 있는 것이다. 학원에서도 조사에 따라서 25~40% 정도의 청소년들이 체벌을 당한 경험이 있다고 한다. 학원에서의 체벌 등은 아무런 법적 근거가 없는 폭행일 뿐이나 사회적으로 용인되고 있다. 일부 지역 교육청에서는 조례에 학원에서 학원생의 인권을 존중해야 한다는 내용을 포함시키고 학원체벌 금지 입장을 천명했으나, 사회적 용인 분위기 때문에 단속은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

  이처럼 한국에서 체벌금지가 제대로 되고 있는 영역이란 거의 없다시피 하다. 실질적으로 체벌을 없애는 문제로 들어가면 더 심각하다. 한쪽 편에서 미디어 등이 체벌이 사라져서 문제인 것처럼 호들갑을 떠는 것과는 대조적이라 할 것이다. 체벌에 대한 대중적 논란은 “그래도 뺨을 때리는 건 좀 아니지”라든지, 좀 심각한 수준의 체벌이 되냐 안 되냐 하는 감정적인 판단에 그치고 있다. 종종 ‘체벌’과 ‘처벌/징계’ 자체를 혼동하는 모습마저 보이는 것은 체벌에 대한 대중적 공론화가 얼마나 빈약했는지를 방증한다. 그리고 체벌이 사라지거나 금지되지 않고 있는 가장 중요한 이유는 바로 사람들이 체벌 그 자체에 긍정적이고 관대하기 때문일 것이다.



폭력과 인권침해의 기준


  체벌의 대략적인 정의는, 어떤 잘못에 대해 징계하거나 개선시키기 위해서 신체적 고통이나 불편함을 주는 처벌이다. 유엔아동권리위원회는 체벌 외에도 모욕적이고 비인간적인, 수치를 주는 처벌 역시 체벌과 같은 범주에서 반(反)인권적인 것으로 다루고 있다. 국제인권기준에서 체벌이 인권침해이며 사라져야 한다는 것은 이미 수십 년 전부터 인정되어온 내용이다. 2009년 유엔고문방지협약 특별보고관은 고문 금지를 규정하고 있는 국제 규약이 ‘교육 또는 훈육수단으로서의 체벌에도 적용되는 것으로 확대해석해야 한다’는 의견을 보고서에 담았다.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 인간에게 신체적 고통을 가한다는 점에서 체벌을 고문과 같은 범주로 놓은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특별보고관은 “국제법적으로 체벌은 가장 예외적인 상황에서조차 더 이상 정당화될 수 없다.”라는 의견도 덧붙였다.

  어린이․청소년에 대한 체벌이 금지되어야 하는 이유는 논리적으로는 단순 명확하다. 일반적으로 인간에게 신체적 고통을 가하는 처벌은 인권을 침해하는 것으로 사라져야 한다. 형법에서도 태형 등의 신체형이 사라지고, 징역형 등 자유형/감금형이 일반화된 것도 그와 같은 맥락에서이다. 인간 존재의 근거이자 존재 자체인 신체에 고통을 가하고 폭력을 가하는 것이 인권의 본질, 인간의 존엄을 훼손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만일 어린이․청소년 역시 평등한 인간이며 인권을 보장받아야 한다는 것을 인정한다면, 어린이․청소년에게 체벌을 가하는 것 역시 금지되어야 한다.

  우리가 폭력, 특히 약자에 대한 폭력을 반대한다면 체벌은 허용될 수 없다. 직접 폭행을 하는 것이든, ‘손 들고 서있기’나 ‘엎드려뻗쳐’, ‘오리걸음’ 등의 신체적 고통을 주는 벌을 가하는 것이든 모두 폭력에 해당한다는 것은 명확하다. 이러한 행위를 예컨대 상사가 부하에게, 선배가 후배에게, 손님이 서비스노동자에게 한다고 하면 그것이 폭력이라고 판단하는 데에 별다른 주저함이 없을 것이다. 유행하는 말로 ‘갑질’이라고 불릴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유독 특정한 관계나 신분 속에서만 폭력이 폭력처럼 보이지 않곤 한다. 어린이․청소년이 대표적이다. 그리고 그 착시 속에는 어린이․청소년들을 온전하고 동등한 인간으로 보지 않는다는 전제가 숨어 있다.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어떤 잘못’을 했냐가 아니라 ‘어떤 사람’이냐 하는 것이다. 신체적으로 근력이 약한 어린이․청소년은 반격 가능성이 적다는 것이나, 미성숙한 그들에 대한 폭력이 사회적으로 허용되고 있다(=비난받지 않는다)는 점이 더 크다.

  앞서 체벌이 고문과 같은 범주로 해석되어야 한다는 입장을 소개한 바 있다. 다른 차원에서도 체벌 문제는 고문 문제와 닮아있다. 가령 고문을 없앰으로 인해 경찰 등 수사기관의 수사에 여러 가지 어려움이 생기고 증거 수집과 처벌에 실패하는 일도 있을 것이 분명하다. 하지만 우리는 그렇다고 해서 고문을 부활시키자고 주장하지는 않는다. 과학수사나 다른 수사기법을 발전시켜서 해결하려고 한다.

  마찬가지로, 체벌을 없앰으로 인해 교사나 부모(친권자) 등의 훈육과 통제에는 여러 가지 어려움이 생길 것이며 바라는 대로 통제와 교육 효과를 내지 못하는 일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과연 체벌을 옹호할 이유가 되는가? 다른 교육 방식이나 기술을 통해 해결해야 하는 문제가 아닌가? 고문과 체벌의 차이는, 단지 고문은 불가능한 것이지만 체벌은 얼마든지 선택 가능한 것이라고 인식하고 있다는 것뿐이다. 결국 체벌을 긍정하느냐 부정하느냐 하는 것은 저울질의 문제가 아니다. 우리가 인권침해와 폭력에 대해 어떤 기준을 갖고 있고, 어린이․청소년의 인권을 얼마나 중요하게 보고 있느냐 하는 문제인 것이다.



체벌과 학대 : 누구의, 어떤 관점에서 볼 것인가

  체벌은 학대의 한 유형이며 사회통념상 허용되어온 체벌이란 약한 수준의 학대라고 할 수 있다. 여러 연구들에 따르면, 사람들이 체벌이라고 여기는 행위이든, 학대라고 여기는 행위이든, 부정적 자아정체성과 공격성 및 폭력선호도를 증가시키는 등의 부작용은 동일했다. 그러나 여전히 체벌이 학대의 부분집합이라는 규정을 받아들이는 데에 거부감을 가지는 경우가 많다. 설령 그 둘을 구별할 수 있다고 믿어보더라도 곰곰이 따져보면 행위만을 가지고 학대와 체벌을 나누는 기준선을 제시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해 보인다. 체벌과 학대를 나누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정말로 기준으로 제시하고 싶은 것은 ‘가해자의 의도’이다. 아이를 위해 선의를 가지고 한 것은 교육적인 체벌이고, 아이를 괴롭히거나 악감정을 가지고 한 것은 학대라는 식인 것이다. 그래서 학대 가해자는 종종 악마화된다.

  이런 논변은 일견 설득력 있어 보일지도 모르지만, 애초에 행위의 정당성을 행위의 내용이나 피해자의 경험이 아니라 가해자의 의도를 기준으로 삼으려고 하는 데서부터 커다란 잘못이다. 가해자의 의도는 참고 사항일 수는 있어도 폭력의 옳고 그름을 가르는 것일 수는 없다. 마찬가지로 학대인지 아닌지를 논할 때 재판에서는 주로 ‘사회통념’이 언급되곤 하는데, 그 내용이 매우 애매모호하다는 것도 문제이지만 ‘사회통념’이 판단 근거가 되는 것 자체가 부적절한 노릇이다. 거기에서도 역시 폭력을 경험한 피해자의 입장에서 그 폭력이 어떤 것이었는지에 대한 고려가 없거나 부족하다. 특히 우리 사회의 통념과 상식 자체가 비청소년들 위주로 만들어진단 걸 생각하면 이는 가해자 중심의 논리가 될 수밖에 없다. 그 행위가 인간의 존엄성과 인권을 침해하는 폭력인가, 피해자가 신체적 고통이나 모욕감을 느꼈는가, 그런 관점에서 사건을 바라봐야 한다.

  현재 개념상 아동학대는 어린이․청소년의 ‘정상적 발달’을 저해할 수 있는 행위라고 규정되고 있다. 그런데 이 ‘정상적 발달’이라는 것은 무엇일까? 소극적으로 해석한다면 눈에 띄는 신체 손상이나 질병 없이 자라는 것일 터이다. 그러나 폭력을 경험하고 폭력에 우호적인 성격이나 공격성을 가지게 되거나, 차별과 폭력을 내면화하게 되거나, 인격의 존엄성을 짓밟히는 경험을 하는 것은 비정상적인 것이 아닌가? 우리 사회가 어린이․청소년이 인간과 인권에 대한 존중을 가지고, 비폭력적이며 자유로운 사람으로 자라게 하는 것을 ‘정상적인 발달’의 목표로 삼는다면, 체벌은 충분히 ‘정상적 발달’을 저해할 수 있는 행위, 곧 학대라고 판단할 수 있다.

  사실 의학적인 영역에서든 교육학적인 영역에서든 체벌이 부작용이나 위험이 크고, 기대할 만한 효과가 별로 없다는 연구 결과는 교과서적인 이야기이고, 상식이 되어 있다. 그럼에도 체벌이 사라지지 않고 있는 것은 그것이 손쉬운 방법이고, 어린이․청소년이 그만큼 우리 사회에서 존중받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어린이․청소년에 대한 폭력에 우호적인 우리 사회 속에서, 그리고 연대 없이 뿔뿔이 파편화된 관계 속에서, 어린이․청소년 당사자들도 자신에게 피해를 입히는 저들을 좀 때려주라며 서로를 손가락질하고 있는 모습도 볼 수 있다.(체벌에 찬성한다는 사람 중에 바로 자신이 체벌당하는 경우를 상정하는 경우는 거의 보지 못했다. 대개 다른 누군가에게 체벌을 해달라는 것이었지.) 체벌은 인권침해일 수밖에 없을 뿐더러 다른 면에서도 정당성을 찾아보기 힘들다. 이런 체벌 문제에 대해 우리 사회가 어떤 조치를 취하느냐 하는 것은, 이 사회가 어린이․청소년을 어떻게 대우하고 있는지, 그리고 우리가 어떤 세상, 어떤 사람들이 사는 사회를 만들고 싶어 하는지를 가늠할 수 있는 지표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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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공현
걸어가는꿈2014.05.14 10:28
(5월 13일에 있었던

세월호 참사에 대한 인권단체 간담회에서 '평등한 애도'라는 주제로 발제했던 글을, 한두 줄 보완했습니다.)





자꾸 '아이들'을 부르는 것에 대한 투덜거림



공현 (청소년인권행동 아수나로)


감정


  다른 사람의 일에 대체로 무덤덤하고, 모르는 사람의 죽음에는 슬퍼하지 않는 나지만, 세월호 참사 이후 며칠간 마음이 무겁고 착잡했다. 끊임없이 소식을 전해오는 미디어 때문일까. 마치 모든 사람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배가 뒤집히고 가라앉고, 사람들이 죽는 장면을 바로 옆에서 목도한 것 같은 착각. 그 과정에서 정부가 보여준 행태들에 대한 분노. 그리 슬프지 않은 나도 충분히 안타까움과 암울한 감정을 느낄 만했다.

  그리고, 왠지 그럴 것 같았지만, 참사 이후부터 또 다른 스트레스 요인이 생겼다. “미안해 아이들아”, “채 못 피어보지도 못하고 떨어진 꽃”, “어른으로서 우리 아이들에게 너무 미안하다” 등등, 속이 뒤틀릴 것 같은 말들이 온 사회를 덮기 시작했다. 내 트위터 타임라인만 해도, 도대체 내가 팔로잉한 사람 중에 이렇게 짜증나는 사람들이 많았나 싶을 정도였다. 내 눈에는 무례 또는 오만 또는 차별로 보이는 말들이 아무런 문제의식 없이 유통되는 것을 보면서, 웃었다. 야, 이렇게 할 일이 많구나. 하하.

  그래도 간간이 한 마디씩 투덜거린 것을 제외하면 아직까지는 무언가 비판을 하거나 목소리를 내지는 않았다. 유족들을 비롯해서 많은 사람들이 슬퍼하고 애도하고 참담해하고 있는데 굳이 선을 긋는 것이 효과적이지 않을 것 같기 때문이었다. 욕 먹을까봐 무서웠던 것도 맞다. 그렇게 타이밍을 보면서 한 달이 되어가고 있다. 그 와중에 언론에서, 온라인에서, 거리에서, 청소년활동가인 내 속을 뒤틀리게 하는 이야기들을 숱하게 접하고 있다. 청소년들이 6만원을 받고 동원됐다는 허위 주장부터, “미안하다 애들아”하는 현수막까지. 그렇게 참으면서 쌓은 짜증과 분노가 밖으로 폭발을 할지, 속병이 될지는 나도 모르겠다.


설명


  저런 것이 왜 문제냐고 물으실지도 모르겠다. 이해하기 쉽게 유비추론이 가능한 예시를 들어보겠다. 장애인들이 목숨을 잃은 사건에 대해 “비장애인으로서 똑바로 하지 못해서 장애인들에게 미안하다.”라고 하는 말을 들으면, 상당히 기이할 것 같지 않은가? 성폭력 피해 생존자에게 “남자들이 지켜주지 못해서 미안하다.”라고 하고 성폭력을 가리켜 “꽃이 짓밟혔다” 같은 표현을 쓰면, 거슬리지 않는가?

  본래 “미안하다”라는 말 자체가 너무 이 상황 저 상황에서 쓰이는 것이기는 하다. 어쩔 때는 죄책감, 어쩔 때는 안쓰러움, 어쩔 때는 부끄러움 등, 미안하다는 말이 담고 있고 대표하는 감정은 많다. 그런데 그런 감정들이 어떤 경우에 어떤 틀을 거쳐서 "미안하다"라는 말과 형식으로 표현되는지 살필 필요가 있다. 현재와 같은 맥락에서라면, 나는 “미안하다”라는 말이 주체가 객체에게 하는 말이라고 생각한다. 책임을 가진 사람이 하는 말이지만, 동시에 권력을 가진 사람이 하는 말이기도 하다. ‘권력’을 가진 사람이 가지지 않은 사람에게 내가 이렇게 해주지 못해서 미안하다고 하는 말인 것이다. 이것이 실제로 잘못을 하고 구체적인 책임이 있는 책임자가 하는 말이라면 별로 위화감이 없다. 하지만 그렇지 않고 추상적인 집단이 집단에게 하는 말이라면 한 번 더 따져봐야 하지 않을까?

  물론 비청소년들은 더 많은 권력을 가진 만큼, 더 많은 책임이 있다고 느낄 수도 있다. 이 거대한 사회 속에서 개개인들의 권능이 얼마나 된다고 책임이 있다고 하겠냐만…. 계량과 비교는 불가능하겠지만, 일단 비청소년들에게 더 많은 권력과 책임이 있다는 평가에는 타당성이 있다고 인정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그런 평가와 사람들이 “미안하다 아이들아”라고 그것을 표현하는 것 사이에는 간극이 있다. 어쩌면 그 간극은 '정치적인' 문제일 것이다. 비청소년들이 더 많은 권력을 가진 것을 긍정할 것인가, 아니면 그것을 바꿔야 할 문제 상황으로 인식하고 청소년들을 평등하게 간주(가정)하고 대우할 것인가.

  다시 예를 들어보겠다. <한국 사회에서 남성은 분명히 여성보다 권력이 크다. 특히 각종 의사결정 과정인 정부나 의회, 그리고 조직들의 상층부는 남성 비율이 압도적이다. 그러니까 남성들은 더 큰 책임이 있다고 평가해도 타당할 것이다. 따라서 여성들이 목숨을 잃거나 폭력에 희생되는 사건이 일어났을 때 남성들이 “남자로서 지켜주지 못해 미안하다.”라고 하는 것은 당연하다. 남성과 여성의 자리에 비장애인과 장애인, 자본가와 노동자(또는 돈이 많은 사람과 돈이 적은 사람), 미국이라면 백인과 흑인을 넣어도 마찬가지이다.>

 ― 이 주장이 이상하게 보인다면, “어른으로서 아이들을 지켜주지 못해 미안하다.”라는 말에도 위화감을 느껴야 마땅하다. 집단 전체를 볼 때 사회적으로 더 책임이 있다고 평가할 수 있느냐 없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 비주체화하는 논리와 맥락을 바탕으로 나오는 말이라는 것이 문제인 것이다. 사회적으로 권력이 조금 더 있다는 이유만으로 사회적 소수자에게 자신이 뭘 해주지 못해서 미안하다고 하는 것은, 평등을 선언한 관계에서라면 좀 어색한 모양새다. 세월호 참사에서 드러난 이 사회의 이런 문제를 함께 바꿔가자고 말하는 것과 ‘어른들이 못해줘서 미안하다’고 말하는 것은 분명히 다르다. 나는 ‘어른들’이 뭘 해주고 못 해주고 할 권력이 있기나 한지, 어떤 오만인 것은 아닌지도 의심스럽지만.

  참사 희생자에 대한 구도를 “어른”과 “아이”로 설정하는 것 자체가 이해하기 어렵다. 더군다나 “아이”를 “못 다 핀 꽃”이라고 하는 것도 설령 자연스러운 생각일지 몰라도, 잠자코 수용할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아무리 선의에 의한 것이라도 문제나 잘못이 있을 수는 있고, 그대로 받아들여야 하는 것은 아니다. 감정 그리고 그 감정을 해석하고 표현하는 것은 사회적으로 만들어진다.

(희생된 사람들을 가리켜서 '착한 아이들' 등으로 이름 붙이고 묘사하는 것도 상당히 거슬리는 부분이다.)

  나는 세월호 참사 이후 ‘우리 아이들’, ‘미안하다’ 구도가 청소년들을 평등하지 않게 대하는 사회의 산물이고 표출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런 사회 문제에 대해 제대로 문제의식이 공유되지 않고 있기 때문에 널리 받아들여지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청소년운동은 이런 문제의식을 ‘청소년보호주의’ 문제라고 명명하고 논의하고 있다. 이와 연관해서 나이주의나 가족주의 구도도 별도로 살펴볼 필요가 있겠다. 그러므로 이 애도 역시 평등하지 않다. 불이익을 주는 방식으로서가 아니라, 다른 방식으로 말이다.

  아마도, 청소년 대중 일반 역시 이런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지는 않을 것이다. 넓은 의미의 청소년운동 안에서도 과연 이런 문제의식이 공유되고 있는지 묻는다면, 다소 회의적이다. 이런 문제의식을 널리 공유하고 조직화하는 것이 청소년운동의 지난한 숙제이다. “아이들이 무슨 죄냐 우리들이 지켜주자”, “미성년자 석방하라” 등의 구호가 튀어나오던 2008년 촛불집회 때부터, 아니 그 이전부터, 눈앞에 떨어진 숙제.


첨언

  청소년보호주의는 비청소년들 입장에서도 억울한 면이 있다. 세월호참사의 사망자 중 50여명은 단원고등학교 학생이 아니며, 분명히 비청소년들도 수십 명이 목숨을 잃었다. 그러나 사회적으로 세월호 희생자들이 ‘아이들’로 주로 불리고 기억될 때, 그 많은 사람들은 한 켠으로 밀려나게 된다. 이 사건은 더군다나 단순히 청소년들이 많이 죽은 것이 아니고 단원고등학교 학생들과 교사들이 단체로 여행을 가다가 일어난 사건이라서 주로 단원고 학생들만 부각이 되고 단원고 학생이 아닌 사람들은 청소년이든 아니든 다소 밀려나는 경향이 있다. 정부나 언론이나 눈에 띄는 집단을 먼저 챙기고 있는 것이다.

  각기 다른 다양한 사람들을 모두 그냥 ‘희생자’, ‘생존자’, ‘사람’으로만 묶는 것이 능사는 아니다. 각각의 다른 역사와 이야기들을 찾아내고 기억하는 것도 좋다. 하지만 세월호 참사를 대할 때 “아이”와 “어른”이라는 위치가, 꼭 필요한가? 또는 바람직한가? 그것이 자연스럽고 그대로 수용해도 좋은 것인가?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도 않고, 그런 걸 접할 때마다 부자연스럽고 무례하게 느껴져서 마음이 삐그덕거린다. 다른 청소년활동가들 중 상당수도 그런 마음을 호소한다. 특별히 민감한 것이 아니라, 그 구도에 깔려 있는 차별과 불평등을 읽어내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청소년운동의 종착지는 어쩌면 ‘미성년자’, ‘청소년’이라는 말과 구분이 없어지는 세상일 것"이라고 활동가들끼리 이야기하곤 한다. 이번 세월호 참사에 대한 이 사회의 애도 방식을 보며, 다시 한 번 그 말이 떠올랐다.


(노파심에서 이야기하지만, ‘아이’라는 어휘 자체에는 나는 아무런 불만이 없다. 어쩌면 ‘청소년’이라는 말보다 더 포괄적이고 중립적인 느낌의 말일 수도 있다. 사회적 용례에서는 ‘아이’라는 말이 아무래도 더 아래로 내려다보는 듯한 때가 많지만, 쓰임새와 맥락이 문제이지 ‘아이’라는 말 자체가 문제라고 생각지 않는다. “아이들아 지켜주지 못해 미안하다”이든 “청소년들아 지켜주지 못해 미안하다”이든 상관이 없는 것이다. 아니 근데 그러고 보니 왜 저런 현수막 등은 다 반말질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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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공현
걸어가는꿈2013.08.30 02:12

2012년에 옥중에서 썼던 글인데 이제야 올리네요

보호주의 비판 글이긴 한데

동시에 약간 정치적 권리 운동으로 연결되는 부분도 있구요. "어른 독재 타도"라는 문구의 발상 자체가








타도! 보호 독재, 어른 독재





  얼마 전 아이건강국민연대라는 단체가 ‘학생 스마트폰 규제 법안’을 추진 중이라는 소식을 들었다. 이 단체는 몇 년 전엔 청소년 게임 중독 대책이라며 청소년 온라인게임 셧다운제를 주창했었는데, 이번에는 스마트폰이 문제란다. 언론들이 청소년에게 스마트폰은 마약이나 마찬가지라는 식의 보도들을 쏟아내는 것도 게임 때와 판박이다. 새삼 놀랄 일은 아니다. 우리 사회에서 그런 ‘청소년 보호’는 오랫동안 상식이었으니까. 때론 만화로부터, 때론 술․담배로부터, 때론 성(性)으로부터, 때론 정치로부터, 아동․청소년은 ‘보호’를 받아야만 했다.


청소년들에게 이 사회는 독재 사회

  그리고 그 상식이 나를 화가 나서 미치고 팔짝 뛰고프게 만든 적이 많다. 당하는 입장에서 그 ‘보호’란 높은 확률로 금지와 규제와 차별의 형태이기 때문이다. 미성숙한 청소년들은 보호의 대상일 뿐이므로, 어른들은 마음대로 무언가를 규제해도 된다. 설령 그것들이 어른들은 아무 규제도 당하지 않는 것들이더라도.


  솔직히 나는 담배가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라도 청소년 어른 할 것 없이 일반적으로 유해한데 청소년의 흡연만 금지시키는 것은 이상하다고 생각한다. 솔직히 나는 어른들에게도 게임․인터넷 과몰입 문제가 큰데도 청소년들에 대해서만 규제 논의가 쏟아지는 건 치사하다고 생각한다. 우리 사회는 언제나 청소년들에겐 너무나 쉽게 금지와 규제를 들이민다. 청소년운동은 몇 년 전부터 이러 문제들을 ‘청소년 보호주의’라 이름 붙이고 반대하는 활동을 해왔다.


  청소년 보호주의가 지금껏 일방적으로 득세할 수 있었던 이유는 간단하다. 청소년들이 자신들의 권익과 의견을 발언할 사회적 힘이 없는 존재들이기 때문이다. 가정이나 학교에서부터 입법이나 정책 결정 과정까지, 청소년들은 우리 사회의 결정 과정 전반에 참여할 수 없다. 심지어 자신들이 직접적 당사자인 사안에서조차 발언할 수 없다. 설령 발언할 기회가 주어진다 하더라도 제대로 목소리를 모으고 권리를 행사할 조직화된 세력도 전혀 없다시피 하다. 그러므로 엄밀히 말해, 다른 많은 약자들에게 그러하듯, 청소년들에게 이 사회는 민주주의가 아니다. 독재 주체로 말하면 ‘군부 독재’ 대신 ‘어른 독재’, 형태로 말하면 ‘개발 독재’ 대신 ‘보호 독재’ 치하에 청소년들은 살고 있는 셈이다. 이게 다 너희를 위한 거라는 그 흔한 말, 경제발전을 위해 유신독재를 한 거란 얘기와 참 닮은 꼴 아닌가?


  청소년을 규제하는 형태의 정책이 아니더라도 또는 소위 진보적이라 분류되는 정책이더라도 ‘보호 독재’의 혐의로부터 자유로운 건 아니다. 예컨대 무상급식이 그렇다. 무상급식 논쟁에선 정작 당사자인 학생들의 목소리가 주인공으로 표출되고 고려된 적이 없다. 학생들은 항상 수혜자나 피해자로, 차별적 급식 때문에 불쌍하게 피해를 입는 존재 같은 것으로만 나타났을 뿐이다. 또한 학생들이 급식운영 등에 참여할 권리, 음식의 질을 함께 관리할 권리, 스스로 선택하여 먹을 권리 등은 빼놓고 급식을 공짜로 주는 것만 얘기될 때, 그 밥은 어른들이 먹여주는 게 될 뿐이다. 먹는 게 아니라 먹이는, 먹여지는 밥. 인권이나 민주주의와는 거리가 있다.



민주주의여 만세

  개발 독재 비판이 개발이나 발전 자체를 부정하는 게 아니듯, 나 역시 보호 그 자체를 부정하지는 않는다. 사실 모든 사람은 폭력, 차별, 착취, 궁핍 등으로부터 사회적 보호를 필요로 한다. 신체적 약자이며, 사회적 약자로 만들어지는 아동․청소년은 어떤 경우엔 더 많은 보호가 필요할 수도 있다. 그러나 당사자의 의사를 무시하는 보호, 그리고 규제와 금지로 당사자를 수동적 존재로 만드는 보호는 차별과 억압의 세련된 얼굴 아닐까. 그래서 미국의 작가이자 현대 사회의 틀을 벗어나려 시도한 사상가인 리 호이나키는 ‘아동기’를 가리켜 “근대적 형태의 면역결핍증”이라고 비판하기도 했다.


  나는 아이건강국민연대 같은 사람들이 ‘아이들’을 진심으로 위하고 있다는 것은 의심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들이 아이들을 인간으로 생각하고 있는지는 좀 의심스럽다. 그리고 아이건강국민연대의 “국민”에 아이들은 포함되지 않는 것이 분명한 것 같다. 하긴 그 단체만의 문제는 아니다. 우리 사회가 독재 사회인 것을, 어쩌겠는가. 그러니 다시 한 번 타는 목마름으로, 민주주의여 만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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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어가는꿈2013.08.25 12: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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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운동론’ 예고편.hwp





『오늘의 교육 2013년 3․4월호』


‘청소년운동론’ 예고편
지난 호 특집 <연습인 삶은 없다>에 대한 어떤 답변


공현


지난 호 《오늘의 교육》 특집이었던 <연습인 삶은 없다>, 그중에서도 특히 정용주의 ‘이제는 전교조 교사가 된 한 고등학생운동활동가의 고백’을 읽고 청소년운동에 대해 글을 써야겠단 생각에 펜을 들었다. 오해는 마시길. 이 글은 그 특집의 내용에 직접적으로 대답을 하는 것은 아니니까. 이 글은 내가 오래전부터 막연하게 품어 오다가 최근에야 구체화된 어느 욕심의 부산물이다. 바로 청소년운동이 무엇이며 어떤 것인지를 제시하는 글, 말하자면 ‘청소년운동론’을 쓰고 싶다는 욕심이다. 여기에서는 그 ‘청소년운동론’에 관한 구상 몇 가지를 보여 드리려고 한다. 따라서 이 글의 어떤 부분은 아직 채워지지 않은 미완성의 밑그림처럼 읽힐 수도 있다. 그럼에도 이런 글을 내놓는 것은, 지난 5~6년간 청소년운동에 빠져 살아온 한 사람의 청소년운동에 대한 생각들을 늘어놓는 것이 어쩌면 다른 사람들이 청소년운동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지도 모르겠다 싶기 때문이다. 또, 청소년운동이 지금 어떤 상태인지 소개하는 내용도 덧붙임으로써 청소년운동의 과거, 현재, 미래에 관한 약간의 답도 드리고 싶다.


청소년운동? : 독자성, 주체성

기본부터 시작해 보자. ‘청소년운동은 무엇인가?’ 청소년운동론은 바로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일 것이다. 흥미로운 것은 1980~1990년대 고등학생운동을 빼고 계산하더라도 청소년운동의 역사가 거의 20년이 다 되어 가고 있음에도 청소년운동이 무엇인지에 대한 정리가 정식으로 이뤄진 사례가 별로 없다는 것이다. 학술 영역에서도 청소년운동을 설명해 줄 만족스런 이론 등을 찾아보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사실 청소년운동에 관해 가장 흔히 접할 수 있는 이야기는 청소년운동에 적대적인 보수 언론 같은 데서 만들어 내는 ‘좌파 세력에 의한 청소년 세뇌의 결과물’, ‘좌경화된 청소년들의 위험한 활동’ 같은 것들이다. 이런 좌우 이분법에 기댄 해석은 광범위한 영향력을 보여 주고 있다. 아마도 청소년운동에 우호적이라는 이들, 또는 보수 언론들의 논조에 동의하지 않는다는 이들 속에서도 청소년운동을 교육운동에 딸린 부록 같은 걸로 생각하거나 민주·진보·개혁·혁명·변혁·좌파...... 적 사회운동의 청소년판이라고 이해하고 있는 경우가 적지 않을 것이다. 청소년운동에 대한 감정은 좀 다르더라도 청소년운동을 더 큰 운동에 딸린 운동, 다른 운동에 의해 정해지는 운동으로 보는 점은 같다.

청소년운동 내부에선 어떨까? 과거 고등학생운동에선 추측건대 ‘변혁운동의 한 주체로서 (중)고등학생, 그리고 그들의 주체적 운동’이라는 답이 주류였던 것 같다. 2000년대에 청소년활동가들은 청소년운동의 주체적, 저항적, 정치적 성격을 명확히 하며 ‘진보적 청소년운동’ 같은 개념을 제안하기도 했다. 국제적으로 확립된 아동인권 규범을 차용하면서, 또 급진적 인권운동의 성격을 부각시키면서 ‘청소년인권운동’이란 개념이 통용되고 있기도 하다.

내가 추구하는 ‘청소년운동론’은 청소년운동을 독립적이면서도 담백하게 정의한다. 청소년운동은 청소년들의 권리와 해방과 행복을 위한 운동이다. 좀 더 말을 붙여 본다면 ‘청소년(아동, 미성년)에 대한 억압, 차별, 배제, 착취, 무권리의 문제에 맞서 청소년들이 더 자유롭고 평등하게 살 수 있는 사회를 만드는 운동’정도로 정리할 수 있겠다.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청소년운동을 오직 청소년들이 겪는 경험과 청소년들이 사회에서 놓이는 자리에 관련된 것으로, 즉 청소년들의 문제를 중심에 두고 그것에 의해 정의하는 것이다. 굳이 그걸 강조하는 것은, 그래야만 청소년운동이 청소년들의 현실과 이해관계를 더 잘 반영할 수 있고 자율적이고 독자적인 입장과 관점을 가질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여성들이 하는 사회운동이 곧 여성운동인 건 아니듯이, 장애인운동이 주로 보건·복지 분야의 의제를 다룬다고 해서 복지운동에 딸린 운동이 아니듯이, 청소년운동은 청소년들이 하는 좌파적·변혁적 운동도 아니고, 교육운동에 딸린 운동도 아니다. 청소년운동을 이야기하기 위해 ‘진보성’ 같은 잣대를 갖다 대거나 인권 규범의 보조를 받을 필요도 없다. 청소년운동의 출발점은 청소년들의 현실과 그에 대한 비판적 인식만으로 족하다. 나는 운동의 보편적 가치는 어떤 거대담론 속에 운동을 자리매김함으로써가 아니라, 운동의 고유한 이야기를 통해 세계를 재구성함으로써 생겨난다고 믿는다. 가장 독자적인 것이 가장 보편적인 것이랄까? 청소년운동은 청소년운동만의 이야기를 할 수 있을 때 가장 의미 있는 운동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또 한 가지 쟁점은 청소년운동을 청소년이 하는 운동으로, 즉 주체에 의해 정의하는 방식이 적절한가 하는 점이다. 다르게 말하면 ‘청소년운동은 청소년만 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으로 요약되는 문제인데, 여기에는 역사적인 맥락이 있다. 지난 수십 년간 비청소년들이 청소년들을 훈육·선도·선교하는 활동들이 있어 왔고 이들은 ‘청소년운동’이란 표현을 선점하여 사용하고 있었다. ‘청소년들의 건강한 성장 및 육성’, ‘청소년들을 바람직한 국민/시민으로 길러 내기’ 등을 목표로 하는 청소년지도단체들, 청소년 유해 환경 감시 활동이나 그와 비슷한 일들, 종교적 단체들의 청소년 활동 등이 그 예이다. 지금도 ‘청소년단체협의회’나 ‘청소년계’ 같은 명칭이 가리키는 것은 그런 운동, 그런 단체들인 게 현실이다. 그래서 청소년운동은 발전 과정에서 그런 것들과 선을 긋기 위해 운동에서 청소년들의 주체성 문제를 강조했다. 비청소년과 청소년 사이의 권력관계를 경계하며 청소년만이 청소년운동을 해야 하고, 활동을 하던 사람들도 나이를 먹으면 청소년운동에 관여해선 안 된다는 주장이 나온 적도 있었다. 비청소년들이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하는 운동이 아니라 청소년들이 직접 주체로서 하는 운동이야말로 진짜 청소년운동이라는 것이었다.

물론 청소년 해방을 위해선 청소년들의 자력화와 조직화가 필요하다. 청소년운동의 목적을 달성하려면 청소년 대중이 주체가 되어 만들어 내는 힘이 없어선 안 된다. 비청소년과 청소년 사이의 권력관계가 반복되는 것을 경계하는 일도 중요할 것이다. 그렇지만 이를 청소년운동은 청소년만 할 수 있고 비청소년은 해선 안 된단 식으로 받아들이는 건 지나친 확대해석이다. 청소년운동에서 청소년들은 주체의 자리에 있어야 하고 청소년 당사자들이 운동의 핵이 되어야 하나, 그것이 비청소년들을 따돌림으로써 이룰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비청소년이든 청소년이든 청소년운동에 널리 참여하고 긍정적 역할을 하게 하는 것은 청소년운동 발전에 필수적이다. 청소년운동은 운동의 내용에 의해 주로 정의되는 것이고, ‘누가’ 하느냐 하는 문제는 의미 있지만 부수적인 요소일 뿐이다. 동시에, 청소년운동에서 청소년과 비청소년 사이의 관계 문제, 비청소년들의 적절한 역할 등은 앞으로 ‘청소년운동론’이 풀어야 할 과제일 것이다.


청소년? : 나이 대, 계급성, 소수자

내가 만들려는 ‘청소년운동론’이 청소년들의 현실에 그 근거를 둔다면, 다음으로는 ‘청소년’이 어떤 존재인지가 정리되어야 할 것이다. 익히 아시다시피 청소년을 정의하는 기준은 ‘나이’다. 만 18세 또는 만 20세 등 그 사회에서 성년으로 인정받는 나이보다 나이가 적은 사람을 청소년이라 한다. 청소년은 생애 중의 한 시기로, 한 나이 대로 이해된다. 이에 더해 여러 과학들은 청소년을 성장 중이고 발달 중인 존재로 보고, 2차 성징이나 심리적이고 신체적인 특성들로 설명한다. 사회적으론 청소년에 ‘어른 혹은 본격적인 삶을 준비하는 나이 대’, ‘미래의 꿈나무’ 등의 의미를 씌운다. 이처럼 통시적인 관점에서 생애 중의 한 시기로 청소년을 파악하고 미래에 종속된 존재로 보는 것이 이 사회에선 지배적인 인식이다. 사회운동 안에서도 청소년운동의 활동가들을 예비 청년/대학생활동가로 보거나, 청소년들의 권리 문제를 장래에 좋은 시민이 되기 위한 훈련 또는 학습의 문제로만 이해하는 경우가 드물지 않다.

나는 이러한 통시적인 관점을 벗어나 바로 지금 당장 청소년들이 겪는 경험에 초점을 맞추자고 제안하고 싶다. 미래를 위한 일시적인 나이 대가 아니라 ‘지금 여기’에 살고 있는 한 사람으로 청소년을 파악하고, 우리 사회의 한 집단으로 청소년 집단을 분석하자는 것이다. 이는 그동안 무시되고 평가절하되고 낭만화되어 온 청소년의 삶을 말하기 위해 먼저 이뤄져야 하는 관점의 전환이다. 이렇게 접근해야 청소년을 하나의 정체성으로, 소수자로 이해할 수 있고 청소년의 계급성이라는 문제도 포착할 수 있다.

이제껏 청소년과 계급 문제를 연관 지을 때는 청소년이 속한 가족의 계급을 곧 청소년의 계급으로 간주하거나, 청소년이 이후에 비청소년이 되었을 때 어떤 계급에 있느냐 하는 문제만 관심을 받아 왔다. 그렇지만 정용주의 글에서도 “청소년은 계급”이란 이야기가 등장하듯이, 청소년들이 처한 사회적 조건을 살펴보면 청소년들 자체가 계급성을 가지며 청소년들만의 이해관계도 따로 존재할 수 있음을 알게 된다. 지금 청소년들은 정치적·경제적으로 무권리 상태에 있고 가족에 딸린 존재로서만 사회에서 생존할 자리를 인정받을 수 있는 형편이다. 예컨대 청소년이 친권자로부터 독립적인 삶을 꾀하려 할 때, 혹은 가족의 테두리 밖으로 나오게 될 때 청소년의 계급성은 선명하게 드러나곤 한다. 물론 청소년의 계급성이란 문제는 더 꼼꼼하게 연구되어야 할 주제이다. 가령 성별, 젠더에 따라서 계급성은 다르게 경험될 것이다. 신자유주의 시대의 불안정한 삶의 조건 등 변화하는 사회적 상황 역시 청소년 계급의 현실에 영향을 미칠 것이다. 청소년이 속한 가족의 계급과 계층에 따라서도 달라질 수 있다. 청소년의 계급성, 이해관계가 가족의 계급적인 관계와 어떨 때 일치하고 어떨 때 충돌하는지 등 밝혀야 할 문제들이 많다.

청소년을 ‘소수자’로 보는 것 역시 통시적인 관점을 벗어나야 가능하다. 청소년을 일시적인 나이 대로만 본다면 청소년은 소수자일 수 없다. 누구나 한땐 청소년이었고, 누구든 계속해서 청소년인 사람은 없는 탓이다. 그러나 딱 지금 이 순간 청소년들의 현실을 놓고 보면 얘기가 달라진다. 수적으로 청소년은 전체 인구의 1/4 정도, 10대로만 좁혀서 보면 1/8 정도에 지나지 않는 소수 집단이다. 청소년들이 정치적으로 과소 대표되는 것이나 사회적으로 차별받고 배제당하는 것은 청소년들도 우리 사회에서 일종의 ‘소수자’임을 말해 준다. 사회적 소수자로서 청소년들이 위치해 있는 권력관계의 동학動學, 청소년들의 현실을 분석하는 작업이 앞으로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청소년을 나이 대가 아닌 사회적 집단으로 보게 될 때 우리는 청소년 집단이 영속적이라는 점을 알 수 있다. 이 사회가 미성년에 대한 구분, 억압, 차별을 계속하는 한 청소년 집단은 언제나 존재한다. 그것은 청소년운동이 계속될 수 있는 근거이고 조건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청소년이 지닌 나이 대로서의 성격도 완전히 간과할 수는 없다. 오늘을 사는 사람으로서 청소년을 강조한다 해도, 그 오늘을 사는 일 중에는 내일의 삶을 생각하고 이어 가는 일도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오늘’ 청소년들의 욕구와 관심 중에는 ‘내일’의 일, 장래의 생계, 노동, 진로 등에 관한 것이 포함되어 있는 게 당연하다. 청소년운동은 이 역시도 운동의 의제로, 조직화 과정의 일부로 적절하게 다룰 수 있어야 한다. 덧붙여 청소년 집단은 영속적이더라도 그 구성원은 비교적 짧은 시간 동안 끊임없이 변화한다는 것도 청소년운동이 고려해야 할 조건이다.


자본주의? : 청소년 억압의 문제

청소년에 대한 억압, 차별, 배제, 착취, 무권리의 원인과 성격을 해석하는 것도 청소년운동론에서 중요한 논점이다. 과거 고등학생운동은 반민주적 군부독재, 민족 분단, 제국주의, 자본주의와 계급 모순 등의 사회문제에서 청소년에 대한 억압도 비롯된다고 보았던 듯하다. 이는 변혁운동으로서 고등학생운동의 특징이었고, 나는 이런 특징이 시사하는 바가 여러모로 많다고 생각한다. 다만 그 성격상 고등학생운동에선 청소년 억압 자체에 집중하여 그 문제를 폭넓게 다룬 이야기를 찾기가 어렵다. 청소년운동의 경우 초기엔 청소년 억압의 원인으로 유교적 문화나 식민지 잔재, 비청소년들의 권위 의식 등 문화적 요인들을 지목하곤 했다. 그러다 청소년운동이 좀 더 이론적 자원들을 흡수하면서 경쟁 중심의 교육 및 사회, 국가주의, 신자유주의 등에 청소년 억압의 구조적 원인이 있는 것으로 이야기가 발전했다. 여기서 더 나아가 청소년 억압에 관해 좀 더 다듬어진 이론은 청소년(아동)을 따로 구분하는 인식이나 핵가족 중심의 제도, 학교 제도 등이 근대 자본주의, 국민국가의 시대에 발명된 것이므로 청소년 억압은 자본주의의 역사적 산물이라고 본다. 이러한 논의는 자본주의의 지속과 재생산을 위해 경쟁적인 교육 체제 등을 통해 청소년을 억압하고 있다고 보며, 경제 재생산, 문화 재생산 이론 등을 인용하기도 한다.

나도 현재의 청소년 억압이 자본주의 체제에서 비롯되고 있다는 데 동의한다. 그러나 한편으론 청소년 억압을 자본주의의 문제로 한정 짓는 것에 의구심을 갖고 있다. 지금과 양상이나 연령의 차이 등은 있겠지만 과거에도 많은 사회에서 성년/미성년의 구별을 두었다. 미성년에 대한 훈육 체제, 차별, 억압 등도 존재했다. 계급, 신분, 성별, 직업에 따른 차이가 두드러지긴 했겠지만 말이다. 어쩌면 청소년 억압은 가부장제―여성 억압만큼이나 긴 역사를 가진 것 아닐까?

모든 사회는 지속과 재생산을 위해 새로 태어나는 사람들을 기성 사회체제에 맞게 훈육할 필요가 있다. 새로 태어나 성장하는 사람들은 항상 기성 사회에 대해 약자인 동시에 타자의 성격을 가진다. 그들을 기성 사회에 성공적으로 동화시켜야만 사회가 안정적으로 유지될 수 있다. 특히 기성 사회체제가 차별, 억압, 착취 등에 의해 이루어져 있다면 동화의 과정은 더욱 억압적일 수밖에 없다. 이것이 청소년 억압의 뿌리라 볼 수 있지만, 청소년들을 일방적인 피해자인 양 묘사하는 건 아마 오류일 것이다. 그러한 동화의 과정은 청소년들의 입장에선 생존을 위한 과정이기도 하며, 청소년들은 다양하게 기성 사회와 협상하면서 동화에 참여하기 때문이다.

이처럼 청소년 억압을 보편적 문제로 파악한다면, 청소년운동은 반자본주의적 운동이긴 하되 반자본주의운동으로 속하지만은 않는 독자적인 위상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청소년 억압 문제를 개선하거나 극복할 수 있는 전망 또한 별도로 나올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이는 아직 하나의 가설일 뿐이다. 이 가설을 증명하기 위해선 자본주의사회 이외의 여러 사회의 미성년/성년 제도, 훈육 제도 등을 청소년 억압이란 문제의식을 가지고 검토해 봐야 한다. 그런 사례들에 대한 청소년들의 개인적·집단적 저항 사례 역시 분석해 봐야 한다. 이 가설이 설득력이 있는지는 그런 역사학적·인류학적 연구를 통해 검증될 수 있을 것이다.

이 문제 못지않게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자본주의사회에서 청소년 억압이 어떤 것인지 정리하는 것도 ‘청소년운동론’의 중요한 과제이다. 간략히 말해 한국과 같은 자본주의사회에서 청소년을 억압하는 가장 대표적인 제도는 가족과 학교로 나타난다.

청소년들은 가족과 학교에 속해 보호받고 교육받는 존재로서만 사회적 인정을 받을 수 있다. 가족과 학교는 대다수 청소년들의 생활 전반을 통제하고 결정짓는다. 가족 제도는 개인들에게 사적으로 양육을 부담시키면서 청소년에 대한 친권자의 지배를 가능케 하고, 학교 제도는 청소년들을 ‘학교화’하며 경쟁과 능력주의 이데올로기로 차별 및 억압을 정당화한다. 이 둘 ― 가족과 학교 ― 은 별개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학교는 가족으로부터 양육의 책임을 위임받았다는 것으로 여러 권력을 정당화한다. 가족은 학교의 입시 경쟁 등에 참여하고 동조하며 청소년들을 학교에 집어넣는 압력으로 작용한다. 자식을 ‘관리’하고 ‘경영’하는 신자유주의적 부모상 등 가족은 학교 제도에 여러 모양으로 참여하는 단위가 되며, 경제적 지위나 여건에 따라서는 학교에서 청소년이 탈락하고 배제당하는 원인이 되기도 한다. 이처럼 가족과 학교는 서로 밀접하게 얽혀서 청소년의 삶을 규정하고 있다. 이런 가족과 학교 제도를 변화시키거나 폐지하는 게 청소년운동의 장기적 과업이다. ‘청소년’ 하면 ‘양육’과 ‘교육’이 항상 같이 따라다니는 것도 극복해야 할 문제일 테다. 그 밖에도 청소년을 미성숙한 존재, 덜 된 인간으로 간주하는 여러 제도나 관행들이 청소년 억압을 이루고 있다. 노인 차별 등을 포함한 ‘나이주의’ 역시 청소년운동이 싸워 가야 할 문제이고, 불안과 경쟁이 지배하는 사회적·경제적 현실도 청소년 억압의 중요한 부분이다. 더 욕심을 내 본다면 청소년 노동착취, 전쟁 동원 등 주된 문제의 양상이 다른 외국의 청소년운동과 연대하는 일도 가능하지 않을까?


다시, 청소년운동?

돌이켜 보면 청소년운동에 대해 이만큼 논의가 가능해진 것 역시 청소년운동이 지금까지 발전해 온 덕분이다. 요즘엔 주류적인 ‘청소년학’이 청소년에 대한 비청소년 중심의 관점 일색인 현실에서 어쩌면 청소년 해방을 지향하는 새로운 ‘청소년주의’ 이론을 만들어 내는 것도 가능하지 않을까, 그런 생각도 든다. 이대로 조금 더 밀고 나간다면 말이다. 그런 소망을 가지고, 일단은 글을 마무리하는 차원에서 한국의 청소년운동이 어디까지 왔는지 짚어 보려고 한다.

청소년운동은 1990년대 중후반에 학생인권 문제를 비롯해 청소년들의 삶의 문제를 나누는 온라인 모임들로 출발했다. 이런 자생적인 움직임들이 운동의 꼴을 갖추기까진 많은 시행착오와 부침을 겪어야만 했다. 두발 자유 등 학생인권 의제들이나 여러 청소년 억압 의제들은 제기되는데 운동의 중심은 형성되질 못하고 몇 년의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청소년운동 조직들이 2~3년을 못 가고 생겼다 없어지기를 반복하는 걸 두고 ‘하루살이운동’, ‘도돌이표운동’ 같은 표현도 나왔다. 그러면서도 한쪽에선 청소년운동 주체들의 의식이 계속 발전하고 변화해 왔다. 여기엔 청소년들의 자생적 투쟁 사례들이나 2002년 이후 몇 차례 있었던 대중적 촛불집회, 진보정당운동의 등장 등 여러 사건들도 영향을 미쳤다. 청소년운동의 정치적 성격에 관한 토론, 운동 방법론 및 ‘대중운동’에 대한 논의, 역사 정리 작업 등도 이루어졌다.

2004년에 ‘청소년인권연구포럼 아수나로’로 시작해 2006년에 ‘청소년인권행동 아수나로(이하 아수나로)’로 본격적인 활동을 개시한 아수나로는 그런 역사를 반영하고 있는 단체이다. 아수나로는 그 이전의 운동에 대한 평가와 반성 속에서 만들어지고 성장했다. 아수나로의 특별함은 올해로 적어도 만 7년, 포럼 시절부터 따지면 약 9년을 존속하고 있다는 바로 거기에 있다. 내가 청소년운동을 시작한 지 얼마 안 됐을 2006년, 배경내 활동가가 내게 아수나로가 10년만 안 망하고 가게 하라고 약속(?)을 시켰을 정도로 오래 살아남는 것 자체가 청소년운동에선 숙원이었던 것이다. 아수나로만큼 긴 시간 활동을 해 온 단체가 그 전에는 없었기에, 아수나로를 통해 축적된 자료와 경험은 청소년운동에 귀중한 자산이 되었다. 그리고 그렇게 몇 년간 연속성이 담보된 덕에 청소년운동은 이제 겨우 운동의 주체 집단이 형성되고 운동론도 내다볼 수 있을 만한 단계에 이르렀다. 물론 아수나로는 청소년운동의 종착지가 아닌 씨앗에 불과하다. 대중 조직도 활동가 조직도 아닌 어중간한 형태, 넓은 활동 영역 등은 청소년운동의 발달 속에서 아수나로가 맡아야 했던 역할을 반영하고 있는 것이다. 아수나로가 어떻게 발전하고 변해 가느냐도 중요하고, 이후에 다른 청소년운동 조직이나 흐름들이 아수나로가 축적한 자원들을 어떻게 잘 활용하느냐도 중요하다. 아수나로 말고도 ‘청소년인권활동가네트워크’에서 ‘청소년활동기상청 활기’로 이어지는 조직과 사람들 또한 청소년운동의 소중한 자원이다.

의제나 외적 성과의 측면에서도 살펴보자. 청소년운동이 그간 사회적으로 공론화시킨 의제는 주로 학생인권, 그리고 좀 더 쳐 주자면 교육 문제, 청소년 노동, 청소년의 정치적 권리 정도이다. 이 중 학생인권은 1998년 학생인권선언, 2000년 두발자유화운동 이후 적어도 13~15년은 계속되어 온 청소년운동의 핵심의제이다. 현재까지 학생인권운동은 학교에서 학생인권 상황이 개선되는 데 기여하고, 법적으론 ‘때리는 체벌’을 금지시키고, 경기도·광주광역시·서울시에서 학생인권조례 제정, 서울시·경남·충북에서 학생인권조례 주민발의를 성공시키는 등 눈에 보이는 성과들을 내고 있다. 학생들이 학교 현장에서 학생인권 문제에 관한 운동을 좀 더 만들어 가고, 다양한 시민들의 지지와 참여를 조직해 낼 수 있다면 학생인권 문제는 부족하나마 더 의미 있는 변화를 이룰 수 있을 듯싶다. 오랜 기간 끌어온 학생인권 의제에서 성과를 내는 것은 청소년운동의 발전에도 발판이 되어 줄 것이다. 또한 이를 통해 청소년 중 다수인 초·중·고생들이 좀 더 시간적 자유를 얻고 정치적·문화적 활동을 할 여지를 얻고 탄압의 위험을 줄이는 것도 청소년운동 확대에 필수적이다.

학생인권 외의 의제는 성과가 거의 없는 상황에서 여러 의제들로 운동을 다채롭게 채워 가는 것도 당면 과제다. 교육 문제, 청소년의 정치적 권리 등은 그동안 몇 번 운동이 있었지만 아직 제대로 공론화를 시키지도, 운동으로 만들지도 못한 의제들이다. 이는 청소년 다수가 쉽게 공감하고 관심을 가질 만한 내용이므로 운동으로 잘 다듬어서 폭발력 있는 활동이 되도록 해야 할 것이다. 성소수자, 장애인 등 청소년 안의 소수자 집단에 관한 운동도 빼놓을 수 없다. 이 운동은 당사자를 조직화하고 다른 소수자운동과 연대하고 교류하는 것을 통해 그 발판을 마련해 갈 수 있겠다. 탈학교, 탈가정, 주거권과 같이 다소 생소할 수 있고 아직 충분히 구체화되지 않은 의제들도 운동으로 만들어 가기 위한 기획이 요구된다.

청소년운동은 앞으로 양적 확대만이 아니라 질적으로 다양성이 늘어나야만 할 것이다. 여러 방향, 여러 방식의 조직화를 통해 다양한 대중 조직과 활동가 조직들이 생겨나야 청소년운동이 더 활력 있는 운동이 될 수 있다. 이런 조직들은 자생적으로 생겨날 수도 있고, 기획적으로 육성될 수도 있다. 한편으론 청소년운동 연구소, 청소년운동 언론, 청소년 주거 지원이나 협동조합 같은 모임, 청소년운동의 역량을 강화할 교육 기구 등도 만들어져야 한다. 할 일이 참 많아서 몸이 열 개여야 겨우 안심이 될 것 같다.

청소년운동은 지금 많이 잡아 봐야 수백 명 정도의 청소년들이 참여하는 작은 운동이다. 청소년운동이 운동 외부의 미조직 청소년들과 잘 접촉하고 소통하고 있는 것도 아니다. 정용주가 말한 “열광적 진동”도 “운동의 민주성”도 자신하진 못하겠다. 솔직히 말하면 슬슬 청소년운동의 구조 개편이 있어야 운동이 더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상황이 아닌가, 그런 생각도 든다. 그래도 너무 조급해하진 않으련다. 예전엔 불가능하고 막연하게만 느껴졌던 많은 일들이 지금은 구체적인 그림도 그려 볼 수 있게 됐으니까. 이제 씨앗은 만든 것 같으니까. 아마 곧, 본격적으로 ‘청소년운동론’도 만들 수 있을 것이고 몇 가지 싹도 틔울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되도록 이 씨앗에 양분을 많이들 주시길 부탁드려 본다. 스스로 씨앗이 되시는 것도 물론 환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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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공현
걸어가는꿈2011.11.23 17:57

[주먹밥]이라고 5.18재단에서 내는 소식지 같은 잡지에 쓴 글입니다.






청소년 자살, 모두의 문제



  얼마 전 교육과학기술부에서 2004~2008년 5년 동안 학생 623명이 자살했다고 발표하며, 학생 자살 문제가 심각해서 대책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특히 2011년 통계청의 발표에 따르면 청소년 사망원인 1위는 자살로, 인구 10만명당 청소년 자살자 수는 15.3명이라고 한다. 뭐, 교육과학기술부의 집계는 '학교에 재학 중인 학생'을 대상으로 한 것이고, 통계청의 발표는 청소년기본법에 따라 24세 미만을 청소년으로 본 것이라서 숫자를 좀 더하고 빼서 봐야겠지만, 절대 가볍게 볼 수 없는 숫자다.

  1980년대 후반, 연간 100여명의 학생들이 자살하는 경쟁적이고 차별적인 교육현실을 비판하며 교사들이 교원노동조합을 결성했고, 학생들이 그들과 함께 거리로 나왔던 적이 있었다. 그러나 지금도 현실은 별반 다르지 않은 것 같다. 앞서 언급한 2011년 통계청의 통계를 보면, 청소년들이 가장 많은 스트레스를 받는 고민거리는 공부(38.6%)로 나타났고 그 다음은 직업(22.9%)이었다.

  1980년대에 자살한 학생은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라고, 나는 공부하는 기계가 아니고 엄마의 로봇이 아니라고 유서에 썼다. 2007년에 자살한 학생은 유서에 같은 곳에서 각기 다른 재능을 지닌 아이들이 오직 한 가지 '대학 가는 법'만 배우고 있는 현실에 절망하고, 같은 머리 같은 옷 같은 공부만을 해야 하고 선생님들의 몽둥이를 원망하는 내용을 적었다. 바로 작년 한겨레 칼럼에서 김규항 씨는 부모가 요구하는 성적을 달성하고 다음날 "이제 됐어?"라는 유서를 남기고 아파트에서 몸을 던진 학생의 이야기를 실었다.
  20년의 시간 동안, 우리 사회는 어떻게 변화했나. 교육과 노동시장의 문제 등은 심해지면 심해졌지 결코 나아진 것 같지 않다. 입시경쟁교육만이 문제인 것은 아니다. 세계 최장시간을 자랑하는 노동시간, 해체된 지역 공동체, 더 팍팍해지고 불안해진 사회 현실 등은 청소년들의 고립과 자살을 부추기고 있다. 또래와의 소통도, 어른들과의 소통도 어려운 사회.

  내가 청소년운동을 하면서 계속 만나는 청소년들도 그런 이야기를 종종 한다. 성적에 대한 스트레스, 미래에 대한 불안과 압박감은 점점 심해지는데, 주변의 어른들 ― 부모들 등과는 소통이 잘 되지 않는다고 한다. 아니, 오히려 억압적이고 자식들을 자기 소유물처럼 대하고 존중하지 않는 부모들의 태도 때문에 죽고 싶을 때도 많다고 한다. 학교에서 인격을 짓밟히고 자존감이 낮아졌을 때는 더더욱 그렇다고 한다. 부모들에게 물어보면 또 일하는 게 너무 힘들어서 자식들과 대화하려고 하거나 친해질 시간도 없다고 변명하곤 한다. 청소년 자살은 청소년 개인의 책임이 아니라, 이런 총체적인 문제들이 중첩되어 있는 사회 문제인 것이다.


청소년 자살은 '충동적'?

  그러나 이런 청소년들의 삶의 문제를 걱정스럽게 바라보는 비청소년들, 어른들의 시선조차도 청소년들에 대한 편견을 담고 있을 때가 있다. 수많은 청소년 자살에 관한 언론 기사들이나 '전문가'들의 분석에는 "충동적", "일시적", "사소한" 등의 단어들이 공통으로 등장한다.

상담지원센터 관계자는 "청소년의 경우 빈곤.실업.가정불화 등 정형화된 중.장년층 자살과 달리 사소하며 일시적인 문제에 대해 충동적으로 자살을 생각하거나 시도하려고 하면서 그 위험성이 매우 높다"고 경고했다. (제주일보 2008-09-17)

하 원장은 청소년 자살에 대해서는 충동적이라는 얘기를 꺼냈다. “요즘 청소년들은 예전에 비해 잘 참지 못합니다. 뜻대로 되지않으면 바로 행동합니다”  … 청소년들의 이런 충동성 때문에 어른들이 무심코 넘기기 쉬운 사소한 이유들이 죽음을 부르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 청소년은 깊은 생각 끝에 결정하기 보다는 사건의 도피나 보복의 수단으로 죽음을 택한다. (아름다운교육신문 2011-05-13)

김미재 전문의는 “청소년들은 주변 환경의 영향을 많이 받아서 사소한 문제에도 충동적으로 자살을 생각하는 등 위험이 높기 때문에 청소년의 우울증 및 자살징후를 파악하고 예방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경기신문 2011-07-19)


  이처럼 어떤 어른들은 청소년들이 목숨을 끊게 되는 문제에까지 "청소년은 충동적"이라고 하고, 청소년들이 겪는 문제에 대해 "사소하며 일시적인 문제"라고 평가하고 있다. 물론 이렇게 말하는 취지가 "어른들 눈엔 사소하게 보이지만 청소년들에게는 아닐 수 있다."라고 가르치려는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청소년들이 충동적이라고, 청소년들의 자살 원인이 사소한 문제라고 말하는 것 자체가 청소년들의 삶과 선택을 가벼이 여기는 것은 아닐까? 청소년들이 목숨을 끊을 정도로 고민하고 괴로워하는 문제를 '사소한 문제'라고 하는 그 전제를 버리지 않는 이상, 청소년들의 이야기에 진정으로 귀를 기울이고 그 입장에 서는 것은 불가능하지 않을까.


함께 책임지기 위해

  사실 한국 사회에서 청소년들의 자살률은 '의외로' 그리 높은 편이 아니다. 그런데 이건 한국 청소년들의 자살률이 일반적으로 볼 때 낮아서라기보다는, 한국의 자살률이 전반적으로 높기 때문이다. 예컨대 노인과 20대의 자살률은 10대의 자살률보다 더 높다. 지금까지 내가 이야기한 여러 요인들 중 대다수는, 사실 청소년들의 자살 뿐 아니라 모든 사람들의 자살을 부추긴다고 해야 옳지 않을까. 청소년 자살은 그런 한국 사회 전반의 자살 문제와 같은 맥락에서 생각해야 할 것이다.

  때문에 우리가 청소년 자살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은 우리 모두의 문제를 함께 이야기하고, 함께 책임지자고 하는 것이다. 청소년들의 복지를 위해서 상담이나 지원을 강화하는 것은 가장 기본적인 전환일 것이다. 청소년들의 자살을 줄이기 위해서는 청소년들에게 '국가 경쟁력'을 위해서 입시경쟁의 전사가 되라고 윽박을 지르면서 정작 청소년들의 정신건강을 위한 상담 서비스를 위한 예산은 제대로 편성도 하지 않는 정부에 문제 제기해야 한다. 아이를 부모의 소유물처럼 생각하고 제대로 대화도 이루어지지 않는 팍팍한 현실을 넘어서, 부모들이 상담교육을 받고 청소년들과 대화할 줄 알게 만들어야 한다.  청소년들의 삶을 중심에 두고 생각하자고 해야 한다. 그렇게 교육이, 가정이, 사회가 바뀌어야만 한다.

  청소년 자살 문제를 단순히 '불쌍하고 충동적인 청소년들'의 문제로 생각하지 말자. 청소년 자살 문제를, 우리 사회 모두의 삶의 질의 문제라고 생각할 때 비로소 청소년 자살에 관한 해결책이 진정성 있게 나올 수 있지 않을까? 청소년들과 함께 우리 사회의 비인간적인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함께 하는 것, 개인이 문제가 아니라 우리 사회가 문제라고 이야기하는 것, 함께 그 속에서 살아남고 그걸 바꿔나가는 것이 필요하다. 그것이 우리가 지금 청소년 자살을 이야기하는 제대로 된 방식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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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공현
걸어가는꿈2011.11.17 16:51



몇날 며칠을 매달린 번역 작업 등이 겨우 끝났다.
정부가 해야 할 일을 왜 우리가 ㅠㅠ
우리에게 월급을 달라!

아래는 배포하면서 보낸 청소년인권활동가네트워크의 보도자료 부분




UN아동권리위, 한국에 성적 지향, 비혼모 등 차별금지,

체벌금지, 정치활동 보장, 경쟁적 교육 개선 등 권고

- FTA 체결에 인권영향 평가가 없는 것 등에 대한 우려도 포함


1. 안녕하세요? 저희는 청소년인권활동가들의 모임인 청소년인권활동가네트워크입니다.

2. 대한민국 정부는 지난 2011년 9월, UN아동권리위원회에서 한국의 3․4차 통합 정부보고서에 대한 심의를 받았습니다. 심의는 대한민국 정부가 제출한 정부보고서를 대상으로 했으며, 세이브더칠드런이 NGO보고서를 제출했습니다.(해당 보고서는 정부와 해당 단체의 웹사이트 등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저희 청소년인권활동가네트워크 역시 위원들에게 비공식적으로 의견서를 전달했습니다.

3. 지난 10월 6일, UN아동권리위원회는 대한민국에 대한 심의를 마치고 최종견해를 채택했습니다. 최종견해 안에는 많은 유의미한 우려와 권고 등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청소년인권활동가네트워크는 이러한 내용들이 최근 학생인권조례에 관한 논란, FTA에 관한 논란, 그밖에 여러 정부 정책 등에 대한 논란에서 중요한 시사점을 가지고 있다고 봅니다.

이번 최종견해에서 대표적인 내용을 소개하자면 다음과 같습니다.

● 차별금지법이 제정되지 못한 것, 특히 차별금지 사유로 성적 지향, 국적이 명시되지 않은 것, 이주아동, 난민아동, 장애아동, 청소년 비혼모 등에 대한 차별을 우려하며, 모든 소수자 아동에 대한 차별적 태도를 근절하고 방지하기 위한 모든 조치를 취하고 청소년 비혼모를 포함한 비혼모들에게 적절한 지원을 제공할 것을 권고함.

교육체제가 심각하게 경쟁적인 것을 우려함. 교육과정 이외의 추가적 과외 사교육에 아동들이 많이 참여하고, 그 결과 지나친 스트레스와 신체적 정신적 건강에 부정적인 영향을 겪는 것을 우려함. 사회경제적 불평등이 그때문에 증대되는 것과, 아동의 여가 및 문화 활동에 대한 권리를 방해하는 것에 우려함. 현재의 교육 체제 및 시험 제도를 교육의 목적에 관한 협약 내용에 근거해서 평가하고, 사교육에 대한 의존과 고등교육 진학의 불평등의 근본적 원인에 대처하기 위해 공교육을 강화하고, 아동의 여가, 문화 및 오락 활동을 향유할 권리를 보장하고, 학교 접근에서 평등을 이루기 위해 구체적 성과에 대해 정보를 모아서 보고할 것을 권고함.

종교기관이 운영하는 사립학교에서 학생들의 종교 자유를 실제적으로 제한하는 것에 대해 우려함. 실제적으로 모든 상황에서 아동의 사상, 양심 및 종교의 자유가 완전히 보장될 수 있도록 조치들을 취할 것을 권고함.

● 학교들이 학생들의 정치적 활동을 금지하는 것에 대해 유감을 표함. 학교운영위원회에 학생들의 참여를 배제하고, 아동이 표현과 결사의 자유를 실천할 때 기회가 제한되어 있는 것에 대해 우려함. 학교 안팎에서 의사결정과정과 정치 활동에 아동의 능동적 참여를 촉진할 것, 학교운영위원회에 학생들의 참여를 허용할 것, 결사와 표현의 자유를 아동이 누릴 수 있도록 법률, 교육부 지침, 학교 교칙을 수정할 것을 촉구함.

● 가정, 학교 및 대안 양육 등에서 체벌이 지속적으로 만연해있는 것에 대해 우려함. 가정, 학교, 모든 기관에서 체벌을 명시적으로 금지하도록 할 것을 권고함.

국내외 기업 활동의 반인권적 영향을 예방하고 완화할 법률이 없다는 점에 대해 우려함. 강제아동노동, 아동권에 대한 심각한 침해와 연루된 국가들로부터 상품을 수입하고 있는 것, 한국이 하는 사업들이 여러 국가들에서 물․주거에 대한 권리에 부정적인 계약을 맺거나 계획을 가진 것으로 보고된 점, 체결했거나 보류 중인 FTA 협상에 관해서 인권 영향 평가가 선행되지 않은 것에 우려함. 강제아동노동으로 생산된 상품 수입을 막고, 한국 기업들이 물․주거 등에서 원주민, 아동의 권리를 존중하도록 하고, FTA를 체결하기 전에 아동 권리를 포함한 인권 영향 평가를 수행하고 침해를 방지하기 위한 조치를 취할 것을 권고함.

● 장애 아동에 대한 지원이 저소득층 가족에게만 제공되고 물리치료, 직업 훈련은 포함하고 있지 않은 것에 우려함. 특수 교육 교사 등이 부족해서 장애 아동이 교육에서 어려움을 겪으며, 비장애아동과 분리 교육을 하는 것에 대해 우려함. 모든 장애아동에게 적합한 지원을 제공하고, 장애아동의 교육권 보장을 위해 특수 교육 교사 수를 늘리고 교사들에게 적절한 훈련을 제공하고, 적절한 예산과 인력을 배치할 것을 권고함.

왕따(집단괴롭힘)의 가혹함과 빈도가 증가하는 것, 외국 출신 아동들에 대한 왕따가 증가하고, 이러한 왕따를 행하는 데 인터넷과 휴대전화를 이용하는 것에 대해 우려함.

● 이주 아동의 학교 출석률이 여전히 낮다는 점을 우려함. 불법이주자의 자녀를 포함한 이주아동이 실질적으로 교육에 접근하고 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정책과 전략을 개발할 것을 권고함.

● 노동하는 아동의 증가, 일하는 아동이 야간노동과 최저임금 이하의 임금을 받는 것 등 근로기준법상 기준들을 자주 어기는 것, 쉬는 시간을 무임금으로 처리하는 등의 변칙적 노동 관행을 규제하는 법이 불충분함, 광범위하게 언어폭력, 성폭력, 폭행으로 인해 일하는 아동의 상황이 악화됨, 연예인과 성적 대상으로 고용되는 아동의 증가를 우려함.

만18세 미만 아동에 대한 강제 징집 또는 적대행위 관여를 범죄화하는 법이 전혀 없는 것에 대해 우려함.

● 피해 아동 또는 만16세 미만의 증인을 비디오 녹화를 통해 증언하게 하는 것이나 적절하게 그들을 배려하지 못한 상황에서 반대심문 대상이 되는 것, 동의 없이 가해자와 재회시키는 것, 프라이버시에 대한 안전 장치 부족, 의료 또는 법 전문가에 의한 언어폭력 등, 심문, 법적 절차 등이 부적절함.

4. 한국 정부는 이 최종 견해를 신속하게 한국어로 번역하여 배포, 홍보할 의무가 있습니다. 그러나 1개월이 넘도록 한국 정부에서는 이를 번역, 배포하지 않고 있습니다. 이러한 정부의 태만함과 무관심에, 어쩔 수 없이 청소년인권활동가네트워크의 활동가들 외 몇 명이 자체적으로 번역하여 이를 배포합니다.

5. 많은 관심과 보도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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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3,4차 정부보고서에 대한
아동의 권리에 관한 협약 최종 견해: 대한민국(CRC/C/KOR/CO/3-4)
배포
일반
국2011년 10월 6일
ADVANCE UNEDITED VERSION
원본: 영어

한글 번역: 청소년인권활동가네트워크
(공현, ㅁㅅ, 수수, 최종욱, 한낱)

감수: 인권연구소 창 류은숙

아동권리위원회
58차 회기
(9월 19일 - 10월 7일)


1. 유엔아동권리위원회(아래 위원회)는 2011년 9월 21일 개최된 1644차 및 1645차 회의(CRC/C/SR.1644 및 1645)와 2011년 10월 7일 개최된 1668차 회의(CRC/C/SR.1668)에서 대한민국의 제 3, 4차 통합 정부 보고서(CRC/C/KOR/3-4)를 심의하였으며, 다음과 같은 최종 견해를 채택한다.


Ⅰ. 도입

2. 위원회는 위원회의 보고서 가이드라인에 부응하여 3, 4차 통합 보고서(CRC/C/KOR/3-4)와 위원회가 제기한 이슈 목록(CRC/C/KOR/Q/3-4/Add.1)에 대한 서면답변을 제출해준 것을 환영한다. 위원회는 분석적이고 자기 비판적인 성격의 보고서에 대하여 감사한다. 위원회는 나아가 당사국의 다양한 부문의 대표단과 나눈 건설적인 대화에 감사를 표한다.


Ⅱ. 한국 정부가 취한 후속조치 및 성취된 진전사항

3. 위원회는 다음과 같은 입법 조치를 환영한다.

a. 2011년 8월 입양특례법 개정
b. 2011년 9월 민법 개정
c. 2011년 3월 초중등교육법 시행령 개정
d. 2011년 자살 예방과 생명 존중 문화 조성을 위한 법률안 제정
e. 2010년 3월 가사소송법 개정
f. 2011년 장애아동복지지원법 제정
g. 2011년 아동복지법 개정
h. 2011년 다문화가족지원법 개정

4. 위원회는 다음과 같은 비준 또는 가입에 대해서도 환영한다.

a. 2008년 12월 11일 장애인권리협약 (CRPD)
b. 2006년 10월 18일 여성차별철폐협약 선택의정서

5. 위원회는 다음의 제도적․정책적 조치 또한 환영한다.
a. 2010년 학교폭력 예방 및 대책을 위한 제2차 5개년 기본계획 수립


Ⅲ. 주요 문제영역 및 권고사항

A. 협약이행을 위한 일반조치 (협약의 4조, 42조 그리고 44조 para. 6)

위원회의 이전 권고사항

6. 대한민국 정부의 제2차 국가보고서(CRC/C/70/Add.14, 2002년 6월 26일) 심의에 따른 위원회의 우려와 권고사항(CRC/C/15/Add.197, 2003년 3월 18일), 아동 매매․ 아동성매매 및 아동 포르노그라피에 관한 선택의정서(CRC/C/OPSC/KOR/CO/1, 2008)와 아동의 무력분쟁 관여에 관한 선택의정서(CRC/C/OPAC/KOR/CO/1, 2008)에 관한 제 1차 보고서에 대한 우려와 권고사항에 대한 당사국의 노력을 환영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위원회는 일부 우려와 권고 사안들이 충분히 다루어지지 않았거나 전혀 다뤄지지 않았음에 유감을 표한다.
 
7. 위원회는 제 2차 정부보고서에 대한 최종 견해에 포함되었으나 아직 이행되지 않은 사안들, 특히 국가인권위원회 산하 아동권리소위원회의 설립, 포괄적인 체벌금지, 아동이 받는 높은 학업 스트레스를 줄이기 위한 교육정책의 재고에 대하여 필요한 모든 조치를 취할 것을 대한민국 정부에 촉구한다.


협약에 대한 유보조항

8. 위원회는 대한민국 정부가 2008년 10월 협약의 제9조 3항(자녀의 부모면접권 보장)에 대한 유보를 철회한 것을 환영한다. 그러나 협약의 제21조 (a), 아동의 최선의 이익이 최우선적으로 고려되도록 입양을 관계당국에 의하여만 허가되도록 보장한 조항, 그리고 협약의 제40조 2항 (b)(v), 형사피의자 또는 형사피고인인 아동이 법률에 따라 권한 있고 독립적이며 공정한 상급 당국이나 사법 기관에 의해 심사받을 권리를 보장한 조항에 대한 유보를 유지하는 데 유감을 표명한다.

9. 위원회는 대한민국 정부가 협약의 완전한 적용을 방해하는 제 21조(a)와 제 40조 2항 (b)(Ⅴ)에 대한 유보의 철회를 고려할 것을 권고한다.


입법

10. 위원회는 대한민국의 헌법이 협약을 자국법에 직접 적용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놓고 있다는 점을 환영한다. 그러나 협약의 조항들을 이행하기 위한 국내 법규가 불충분하며 법원이 협약을 직접적으로 적용하는 경우가 매우 드물다는 점이 우려스럽다. 위원회는 더욱이 임신중절에 대한 법적 금지에 대해 우려한다. 아주 협소하게 규정된 예외사항이 있긴 하지만, 그런 법적금지는 임신한 청소년들의 최선의 이익을 적절하게 고려하지 못하고 있고, 위험한 불법적인 낙태의 위험에 처하게 하거나 학업의 강제적 중단 또는 입양을 목적으로 한 (자녀의) 강제 양도 등 임신한 청소년이 당면한 어려움을 악화시키는 상황을 야기할 수 있다는 점에서 우려스럽다.

11. 위원회는 협약의 모든 조항이 사법적 결정에 충분히 적용될 것을 보장하기 위하여 관련 입법의 확충을 포함하여 조치를 취할 것을 권고한다. 위원회는 나아가 청소년 비혼모들이 안전하게 임신 중절을 할 수 있고 불법 임신중절이나 강제 입양의 위험으로부터 적절한 보호받을 수 있도록 보장하는 것을 포함하여, 아동의 최선의 이익원칙에 완전히 부응하도록 낙태에 대한 법률을 재고할 것을 권고한다. 


조정

12. 위원회는 당사국의 협약 이행에서 조정이 줄어든 것에 우려한다. 이것은 특히 2008년 이래 아동정책조정위원회(CPCC)가 작동하고 있지 않다는 것에 기인한다. 한국의 아동‧청소년 정책은 개별 부처별로 이행되고 있는데 특히 보건복지부와 여성부로 각각 나뉘어져서 정책의 분열을 초래하고 있다. 범정부청소년정책위원회(Youth Policy Intergovernmental Council)의 설립을 주목하면서도, 청소년 정책에 있어 조정의 증진이 요구된다는 우려는 남아있다. 

13. 위원회는 당사국에 다음과 같이 권고한다. :
a. CPCC를 복구하고 강화하거나 가급적이면 충분한 권위와 적절한 인적‧기술적 및 재정적 자원을 갖춘 적합한 기구를 설립하라.
b. 보건복지부나 여성부 등 정부 부처 간에 그리고 관련된 전국 및 지방자치체 기구들간에 아동 권리 관련 업무와 관계를 명확히 하라. 그렇게 함으로써 협약의 이행을 위해 당사국이 취하는 모든 활동을 효과적으로 조정하라.


국가행동계획

14. 위원회는 2007년 5월 ‘2007-2011 국가인권정책기본계획(NAP)’의 채택에 주목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협약 전반을 포괄하는, 아동을 위한 포괄적인 권리에 기반한 국가행동계획이 부족하다는 위원회의 우려는 여전하다. 더욱이 위원회는 현 NAP의 종료 이후 후속작업이 부재하다는 것에 대해서도 우려를 표한다.

15. 위원회는 대한민국 정부가 관계자들과의 협의와 협력속에서 협약 전반을 포괄하는 아동을 위한 국가행동계획을 채택하고 이행할 것과 감시 기제를 비롯해 충분한 인적‧기술적‧재정적 자원을 제공할 것을 권고한다. 더불어 위원회는 시민사회와 아동과의 투명하고 충실한 협의를 통해 2011년 이후의 NAP 준비를 서두를 것을 촉구한다. 이를 위해 위원회는 아동에 관한 유엔 특별 총회의 결과문서인 “어린이에게 살기 좋은 세상”(A world fit for children)과 그 중간 점검 보고서를 참작할 것을 권고한다.


독립적인 모니터링

16. 위원회는 한국아동권리모니터링센터(KMCCR)의 설립과 그에 동반된, 현장에서 활동하는 아동권리 옴부즈퍼슨을 환영된다. 하지만 위원회는 이 제도가, 아래 언급한 사항을 포함하여, 국가적 차원에서 협약의 이행을 모니터할 수 있는 독립적이며 제 역할을 하는 기제를 결여하고 있음에 우려한다.
a) KMCCR이 법적 지위를 가지고 있지 않으며 보건복지부가 통제하는 예산에 종속돼 있음.
b) 아동의 권리 그리고 아동권 침해를 적극적으로 모니터하거나 조사하고 진정을 접수할 수 있는 옴부즈퍼슨 체계에 대한 KMCCR의 권한이 부재함.
c) 당사국이 취하는 연례 수행 평가에 KMCCR의 권한이 종속돼 있음. 여기에 KMCCR의 독립성과 지속성의 의미가 잠재적으로 함축돼 있음.

위원회는 국가인권위원회의 규모가 2009년 3월에 21% 축소되었고, 위원회의 이전 권고에도 불구하고 국가인권위원회가 아동 권리에 대해서 특화되지 않고 그대로임에 더욱 우려한다.

17. 위원회는 당사국이 KMCCR의 법적 지위를 명확히 정의할 것을 권고한다. 그 목적은 KMCCR에 명확한 권한을 주는 것이며, 센터 뿐 아니라 옴부즈퍼슨 체계 둘 다가 협약에 대한 침해를 효과적으로 모니터하고 조사할 수 있도록 효과적인 작동을 보장하기 위한 충분하고 독립적인 인적‧기술적‧재정적 자원을 제공하기 위한 것이다. 더욱이 위원회는 독립적인 인권 기구의 역할에 관한 위원회의 일반논평 2(2002)를 고려하면서, 국가인권위원회의 독립성과 지속성, 그리고 아동권의 특화를 위한 적절한 조건을 제공할 것을 당사국에 촉구한다.


자원 할당

18. 위원회는 사회적 부문의 이행을 위해 할당된 재정 자원의 증가(2008년에 비해 16.5% 향상)를 환영한다. 하지만 당사국의 경제 발전의 진전 상태란 맥락에서 보았을 때, 현 재정 자원의 할당은 가용 자원에 비례해서는 여전히 낮은 수준임을 위원회는 깊이 우려하며 주목한다. 2009년 OECD 가족 데이터베이스에 따르면, 대한민국은 26개 회원국 중 최하위를 기록했다. 위원회는 협약의 이행을 위한 지자체 당국들의 가용자원의 수준에 심각한 차이가 있는 것에 대해서도 우려한다.

19. 위원회는 당사국에 다음 사항을 권고한다:
a) 당사국의 경제발전의 진전 상태와 OECD 수준에 보다 근접하도록 협약 이행을 위해 할당된 재정 자원의 수준을 재평가하고 늘릴 것.
b) 아동의 권리를 충분히 실현하고 상이한 지자체 또는 지리적 위치에 사는 아동들 간의 격차를 방지할 수 있도록 보장하기 위하여 아동권리의 관점에서 중앙과 지역의 재정자원할당을 평가할 것. 이 효과를 위해서, 부문과 지자체의 예산 요구에 대한 포괄적인 평가를 수행하고 아동권리 관련 지표에서의 격차를 점진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영역에 예산 할당을 할 것.
c) 예산 전반에서 아동에 대한 할당과 자원의 이용을 추적하는 시스템을 이행하고 그에 따라 아동에 대한 투입에 가시성을 제공함으로써, 국가 예산의 작성에 아동권의 접근을 활용할 것. 위원회는 또한 이 추적 시스템이 소년과 소녀에게 그러한 투입이 끼친 상이한 영향의 측정을 보장함과 더불어, 어떤 부문에 대한 어떤 투입이 “아동의 최선의 이익”을 위해 복무하는지에 대한 영향 평가를 위해 사용될 것을 촉구함.
d) 가능하다면, 자원 할당의 효과성을 점검하고 평가하기 위해서 성과관리예산(budgeting-by-results)에 착수하라는 유엔의 권고를 따를 것.
e) 공적인 대화, 특히 아동들과의 대화를 통해 투명하고 참여적인 예산만들기를 보장할 것.
f) 차별해소를 위한 사회적 조치를 필요로 하는 불리하거나 취약한 아동에 대한 전략적 예산 수준을 정하고 경제위기, 자연 재해 또는 기타의 긴급상황에서도 그 예산의 수준이 보장되도록 할 것.
g) “아동 권리를 위한 자원들 – 국가의 책임”에 관한 2007년 위원회의 일반 토론의 날에 위원회가 채택한 권고를 고려할 것.


자료 수집

20. 위원회는 당사국에서 자료 수집 수행에서의 방법론적 일관성의 결여와 협약이 포괄하는 영역별 자료의 부재에 대해 우려한다. 상대적 빈곤 및 극빈 상태의 아동을 줄이기 위한 다양한 정책과 프로그램에도 불구하고, 빈곤상태의 아동에 대한 자료가 전혀 없다는 것과 빈곤 감소를 위한 지방 정부의 예산과 역량간의 격차를 줄이려는 조치가 없음에 우려한다.

21. 위원회는 특히 민족, 성, 나이, 지리적 위치 및 사회경제적 배경을 고려하면서 협약의 전 영역을 포괄할 수 있도록 분산된 자료를 포괄적으로 수집할 수 있는 일관된 시스템의 수립을 당사국에 강력히 권한다. 위원회는 자료에서 감지할 수 있는 경향에 대해 당사국이 여러 분야에 걸친 연구를 수행할 것을 또한 권고한다.


유포, 인식향상 그리고 훈련

22. 교과 과정에 인권의 내용이 부분적으로 포함된 것을 긍정적으로 주목하는 한편, 아동, 일반대중 및 아동과 더불어 또는 아동을 위해 일하는 전문가들 사이에 협약에 대한 인식의 수준이 낮다는 것에 대한 위원회의 우려는 여전하다.

23. 위원회는 특히 다음과 같은 조치로써 인식향상을 위한 추가적 조치를 취할 것을 권고한다.
a) 학교 교과 과정에서 아동 권리와 인권에 관한 교육을 더 많이 포함할 것.
b) 아동과 더불어 또는 아동을 위해 일하는 모든 전문가 집단에게 협약에 대한 적절한 교육을 보장할 것.
c) 협약에 대한 대중의 인식 향상을 위한 조치를 강화할 것.


국제협력

24. 위원회는 한국이 국제원조에 대한 기여를 늘려왔음을 인정하지만, 국민총생산(GNP) 대비 국제원조는 약 0.13%에 머물러 있으며 이것은 국제적으로 합의된 목표인 2015년까지 0.7%보다 상당히 낮다는 점에 주목한다.

25. 위원회는 2015년까지 국제적으로 합의된 목표인 GNP의 0.7 퍼센트를 달성할뿐더러 가능하다면 그 목표를 초과할 것을 장려한다. 또한 아동 권리의 실현이 한국과 개발도상국들이 맺은 국제협력협정의 취우선 사항이 되도록 보장할 것을 장려한다. 그렇게 함에 있어서, 위원회는 수혜국에 대한 위원회의 최종견해를 한국이 고려할 것을 제안한다.


아동 권리와 기업 부문

26. 위원회는 세계에서 가장 역동적인 경제 중 하나로 꼽히는 당사국의 기업 부문이 기업의 사회적 책임에 관한 관심을 높이고 있음을 환영한다. 그 관심은 지금으로서는 환경 문제에만 집중하는 것으로 보인다. 특히 노동 기준과 최저임금을 다루는 당사국의 법률의 성격에 주목하면서 위원회는 자국영토에서나 외국에서나 기업 활동의 반인권적 영향을 예방하고 완화할 포괄적인 법률 구조가 없다는 점에 주목한다. 특히 위원회는 다음과 같은 점을 우려하며 주목한다.
a) 당사국은 강제 아동 노동을 사용한 것으로 보고되며 따라서 아동권에 대한 심각한 침해와 연루된 것으로 국제노동기구(ILO, 그리고 유럽의회)의 조사를 받고 있는 국가들로부터 상품을 수입하고 있다.
b) 당사국에서 발주된 사업들은 여러 국가들에서 특히 물에 대한 권리와 주거권에 부정적인 의미를 가진 토지 임대 계약을 맺거나 계획 중인 것으로 보고되었다.
c) 당사국이 체결했거나 보류 중인 자유무역협정(FTAs)에 대한 협상에 대하여 어떠한 인권영향평가도 선행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27. “보호, 존중 그리고 구제”라는 기본 보고서를 채택한 2008년 유엔인권이사회 결의안 8/7과 그 문제에 관한 워킹 그룹의 신설을 요청한 2011년 6월 16일의 결의안 14/7, 두 결의안 모두 기업과 인권의 관계를 탐색할 때 아동의 권리가 포함되는지를 주목하고 있다는 점에 비추어, 위원회는 당사국에 다음과 같이 권고한다.
a) 공급망 또는 협력 업체에 의해서건 간에 국내외에서 벌어지는 기업의 활동에서 반인권적인 영향을 방지하고 완화하기 위한 조치를 취할 것을 한국에 근거지를 둔 기업들에게 요구하는 법률 구조를 제공함으로써 효과적인 기업 책임성 모델의 채택을 증진할 것. 보고에 아동권 지표와 변수들을 포함시키는 것이 증진돼야 하며 아동권에 대한 기업의 영향에 대한 구체적 평가가 요구될 것.   
b) 강제 아동 노동으로 생산된 산물의 수입을 방지하고 자국 시장에 들어오는 생산물이 아동노동을 사용하지 않은 것이도록 요구하는 무역 협정 및 국내법을 이용하도록 생산물 반입을 모니터할 것.
c) 자국 기업들이 외국의 프로젝트에 참여할 때 아동의 권리를 존중하도록 하며 프로젝트가 원주민에게 영향을 끼치거나 인권/아동권리 평가에 영향을 끼칠 때에는 사전에 인지된 동의의 과정을 수행하고 있는 외국의 정부와 협력하도록 조치를 취할 것.
d) 자유무역협정(FTAs)을 협상하고 결론을 내리기 전에 아동 권리를 포함한 인권 영향 평가가 수행되고 침해를 방지하기 위한 조치가 취해지도록 보장할 것.


B. 일반적 원칙(협약 2, 3, 6, 12조)

비차별

28. 위원회는 2007년 12월에 당사국의 차별금지법안이 국회 논의를 거치지 못한 채 폐기된 것과 차별에 대한 입법적 정의가 성적 지향이나 국적으로 인한 차별 금지를 명시하지 않은 것을 유감스럽게 여긴다. 더구나 위원회는 다문화‧이주자‧탈북자 출신의 아동에 대한 차별, 난민아동, 장애아동, 비혼모, 특히 청소년 비혼모에 대한 정부의 지원 조치로부터의 배제를 포함하여 당사국에서 끈질기게 지속되고 있는 차별의 복합적인 형태에 대해 우려한다.

29. 위원회는 당사국에게 다음과 같이 촉구한다.
a) 협약 제2조를 충실히 따르는 법률을 채택할 것을 목적으로 차별금지법을 신속히 제정할 것.
b) 인식향상, 대중 교육 캠페인을 포함하여, 취약하거나 소수자 상황의 아동을 향한 차별적 태도를 근절하고 방지하기 모든 조치를 취할 것.
c) 청소년 비혼모를 포함한 비혼모들에게 적절한 지원을 제공할 것.


생명, 생존 그리고 발달의 권리

30. 위원회는 ‘자살방지에 관한 기본계획(2004)’을 포함하여 아동과 청소년 자살문제에 임하는 당사국의 노력을 호의적으로 존중한다. 그러나 대한민국의 심각하게 높은 자살률에 대한 깊은 우려는 여전하다.

31. 위원회는 구체적인 정책, 제도적 및 행정적 조치들의 지침으로 그 연구결과를 사용할 것을 목적으로, 영향받는 아동의 가족과 교육체계 둘 다에서 아동의 자살 위험 요인에 관한 연구를 수행할 것을 당사국에 촉구한다. 위원회는 또한 그러한 정책과 수단에는 영향받는 모든 아동을 위한 사회복지사의 적절한 제공과 심리상담서비스로 지원돼야만 하는 적절한 예방적 조치와 후속절차가 포함될 것을 권고한다.


아동의 최선의 이익

32. 위원회는  당사국의 아동관련 법률에서 아동이익 최선의 원칙에 관한 명시적 언급이 부족하며 아동에 관한 당사국의 정책과 프로그램 뿐 아니라 사법적 및 행정적 결정에서 아동이익최선의 원칙이 잘 적용되지 않는다는 것에 우려한다.

33. 위원회는 아동과 관련되고 아동에게 영향을 끼치는 모든 정책, 프로그램 및 프로젝트에서 뿐 아니라 모든 입법적, 행정적 및 사법적 절차에 아동이익 최선의 원칙이 적절히 통합되고 지속적으로 적용될 것을 보장하려는 노력을 강화할 것을 당사국에 촉구한다.


아동의 견해에 대한 존중

34. 아동과 청소년이 자신의 견해를 표현하도록 국가가 조직한 회의의 성립을 환영하는 한편 당사국의 법 절차나 사회적 태도에 관한 맥락이 아동에게 영향을 미치는 결정들에 관한 아동의 견해, 특히 15세 미만 아동의 견해를 고려하지 않는다는 것에 대한 위원회의 우려는 여전하다.

35. 위원회는 아동이 자신의 견해를 표현할 권리와 아동에게 영향을 끼치는 모든 결정에서 아동의 견해가 고려되도록 할 권리를 가졌다는 것을 보장하도록 당사국이 법률의 개정을 고려할 것을 권고하며 당사국은 협약 12조에 따라야 한다는 이전의 권고를 반복한다.
(a) 아동에게 영향을 끼치는 모든 문제에 대해 자유롭게 자신들의 견해를 표현할 아동의 권리를 포함하도록 아동복지법을 개정하고, 학교와 교육 체제 속에서의 훈육절차를 포함하여 법원과 행정 기구에 의한 아동의 견해에 대한 존중을 증진하고 아동에게 영향을 미치는 모든 문제에서 아동의 견해가 청취될 것을 촉진하기 위하여 입법을 포함한 효과적인 조치를 취할 것.
(b) 아동에게 영향을 미치는 모든 문제에서 아동의 견해가 고려되고 청취될 아동의 권리에 대하여 특히 부모, 교육자, 정부행정공무원, 사법부 및 광범위한 사회에 교육 정보를 제공할 것.
(c) 아동의 견해가 고려되는 정도와 아동의 견해가 정책, 프로그램 및 아동 자신에게 미치는 영향의 수준에 대하여 정기적으로 검토할 것. 
(d) 아동의 청취될 권리에 관한 위원회의 일반논평 12(2009)를 고려할 것.       


C. 시민권과 자유(협약 7, 8, 13-17, 19, 37조)

출생 등록

36. 위원회는 당사국의 현재의 법률과 관행이 어떤 상황에서건 생물학적 부모에 의한 보편적 출생 등록을 제공하기에는 부적절하다고 우려한다. 특히, 위원회가 우려하는 바는 양부모 또는 공적인 권한을 가진 사람에 의해 출생등록이 취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런 경우엔 청소년 비혼모의 상황을 포함하여, 적절한 사법적 감독 없이 사실상의 입양으로 귀결될 수 있다. 위원회는 출생 등록이 난민과 비호처를 구하거나 비정규 이주 상황에 있는 사람들에게 실제적으로나 지속적으로 이용가능하지 않다는데도 우려한다.

37. 협약의 7조에 합치되도록, 위원회는 부모의 법적 지위나 출신에 상관없이 모든 아동에게 출생 등록이 가능하도록 보장하기 위한 조치를 취할 것을 당사국에 촉구한다. 그렇게 하는 가운데, 출생등록이 아동의 생물학적 부모를 정확히 지시하고 검증하도록 보장할 것을 또한 당사국에 촉구한다.


사상, 양심 그리고 종교의 자유

38. 학교에서의 강제 종교교육에 대한 당사국의 금지를 긍정적으로 주목하는 한편, 위원회는 종교기관이 운영하는 사립학교에서 그 학교에 자발적으로 등록하지 않을 수 있는 학생들을 포함하여 학생들의 종교의 자유를 실제적으로 계속 제한하고 있음에 우려한다. 또한 위원회는 현행 조치들이 종교의 다양성에 우호적인 환경을 적절히 촉진하지 못하거나 식사 시 지켜야 할 것들을 포함하여 특정 종교를 가진 아동의 특별한 요구나 제한을 충분히 고려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에도 우려한다. 

39. 위원회는 협약의 14조 3항에 합치되도록 당사국이 실제적으로 모든 상황에서 아동의 사상, 양심 및 종교의 자유가 완전히 존중될 수 있도록 보장하기 위한 조치들을 더 취할 것을 권고한다. 그런 조치들은 식사 시 지켜야 할 것을 포함하여 특정 종교의 특수한 요구나 제한을 정당하게 고려하며 유의하는 것으로 종교적 다양성에 대한 이해에 이바지하는 환경을 촉진할 수 있도록 취해져야 한다.


표현과 결사, 평화적 집회의 자유

40. 위원회는 이전의 권고(CRC/C/15/Add. 197, para. 37)에도 불구하고 학교들이 여전히 학생들의 정치적 활동을 금지하고 있다는 것에 대해 유감을 표한다. 또한 학교운영위원회에 학생들의 참여를 배제하고, 아동이 표현과 결사의 자유를 실천해 볼 수 있는 도시 및 농촌 지역에서의 학교 밖 기회가 제한되어 있다는 데에도 우려를 표한다.

41. 위원회는 이전의 권고를 반복하며, 협약의 12-17조의 견지에서, 학교 안팎 모두에서 의사결정과정과 정치적 활동에서의 아동의 능동적 참여를 촉진하고, (i) 학교 환경을 포함하여 정치활동에 참여하거나 주도하고, (ii) 학교 위원회의 운영에 의미있는 참여를 학생들에게 허용하는 것을 포함하여, 결사와 표현의 자유에 대한 권리를 모든 아동이 완전히 향유할 수 있게끔 보장하도록 법률과 교육부의 지침과 학교 교칙을 수정할 것을 당사국에 촉구한다.


체벌

42. 위원회는 가정, 학교 및 대안적인 보호 상황에서 체벌이 지속적으로 만연돼 있다는 것에 대한 이전의 우려(CRC/C/15/Add.197, para. 38)를 반복한다.

43. 위원회는 이전의 권고를 다음과 같이 반복한다.
a) 가정, 학교 그리고 모든 기관에서 체벌을 명시적으로 금지하도록 관련 법률과 규율을 개정하라는 국가인권위원회의 권고를 이행할 것.
b) 체벌에 대한 태도를 바꿀 수 있도록 아동에 대한 잘못된 처우의 부정적 결과에 대한 공공 교육 캠페인을 시행할 것. 그리고 학교에서 체벌에 대한 대안으로서 그린 마일리지 제도를 통한 지도를 포함하여 학교와 가정에서 긍정적이며 비폭력적인 형태의 훈육을 증진할 것. 
c) 체벌의 피해자인 아동이 그 사건을 알릴 수 있는 장치를 만들 것.


학대와 방임을 포함한 아동에 대한 폭력

44. 위원회는 당사국 내에 아동에 대한 물리적 및 심리적 학대와 방임의 증가와 그런 학대를 보고해야 할 법적 의무가 협소하게 정의되어 있는 것을 우려한다. 또한 위원회는 학교 내에서 왕따(bullying)가 그 빈도와 심각성에 있어서 늘어나고 있다는 데에 대해서도 우려한다. 지역 아동 보호 센터의 설립을 환영하는 한편, 위원회는 여전히 센터의 수가 제한적이며 재정적 및 인적 자원이 불충분하다는 점을 우려한다. 위원회는 또한 학대와 방임의 피해자의 외상 후 스트레스와 재활을 위한 지원의 제공이 불충분하다는 점을 우려한다.

45. 위원회는 당사국에 다음과 같이 권고한다.
a) 학대 보고자의 안전과 프라이버시를 정당하게 고려하는 적절한 보고 장치를 제공함으로써, 학교에서의 왕따에 대한 고려를 포함하여 아동 학대와 방임을 보고할 법적 의무를 강화하고 확대할 것. 
b) 지역 수준에서 적절한 인적, 기술적 및 재정적 자원을 할당하여 더 많은 보호기관을 설립할 것. 이런 자원할당은 보호기관의 효과적인 역할을 보장하기 위해 필수적이며, 여기에는 학대와 방임의 피해자를 위한 적절한 외상 후 스트레스와 재활 지원을 위한 제공이 포함된다.
c) 모든 형태의 폭력으로부터 자유로울 아동의 권리에 관한 위원회의 일반권고 13(2011)을 고려할 것.

46. 아동 폭력에 관한 UN 사무총장의 연구(A/61/2009)를 참조하여, 위원회는 당사국에 다음을 장려한다.
a) 특히 젠더에 유념하면서, 아동 폭력에 관한 UN 연구의 권고를 이행하는 것을 포함하여  아동에 대한 모든 형태의 폭력의 근절을 최우선시할 것.
b) 다음번 정부 보고서에는 UN 연구의 권고에 대한 당사국의 이행에 관한 정보를 제공할 것. 특히 아동폭력에 대한 유엔사무총장의 특별 대표가 강조된 내용을 포함할 것. 즉, 
(i) 아동에 대한 폭력의 모든 형태를 예방하고 다룰 수 있는 포괄적인 국가 전략을 각 국에서 개발할 것. 
(ii) 모든 상황에서 모든 형태의 아동 폭력에 대하여 명확한 국내법적 금지를 도입할 것.  
(iii) 아동 폭력에 대한 데이터의 수집‧분석‧유포 및 연구 의제을 다루는 국가 시스템을 공고히 할 것.
c) 아동폭력에 대한 유엔 사무총장의 특별대표, 유엔아동기금(UNICEF), 유엔인권최고대표 사무소(OHCHR), 세계보건기구(WHO) 및 기타 관련 기구들, 특히 국제노동기구(ILO), 유엔교육과학문화기구(UNESCO), 유엔난민기구(UNHCR), 유엔마약및범죄사무소(UNODC)와 민간단체들과 협력하고 기술적 지원을 구할 것.


D. 가정 환경과 대안 양육 (협약 5조, 18조(paras. 1-2), 9-11조, 19-21조, 25조, 27조(para. 4) 및 39조)

가정 환경 상실 아동

47. 위원회는 요보호 아동에게 가족 유형의 돌봄을 제공하고 그런 돌봄을 제공하기 위한 추가적 시설을 설립한 당사국의 노력을 환영한다. 그러나 그런 대안 양육 기관에 대한 평가가 단지 그러한 시설의 행정적인 운영만을 평가하고, 양육의 질, 기술과 전문적인 훈련, 제공된 처우를 평가하지 않는 것에 우려한다. 더불어 위원회는 그런 기관에서의 학대 또는 방임 사건을 다루기 위한 진정 절차에 대한 정보가 부족함에 대해 우려한다. 또한 위원회는 부모와의 교류가 단절된 아동을 위한 추적 시스템의 부재에 대해 우려한다.

48. 위원회는 당사국에 다음과 같이 권고한다. 
a) 양육의 질, 관련 전문가들에 대한 아동의 권리를 포함한 정규 훈련, 협약 제25조에 부합하여 대안 양육을 제공하는 공적 및 사적 기관에서 아동에게 제공되는 처우의 유형에 대한 체계적이고 정기적인 점검을 보장할 것.
b) 대안 양육 환경에서의 아동 학대에 대한 진정 접수와 조사 및 기소를 위한 절차를 보장할 것. 그리고 학대의 피해자가 진정 절차, 상담, 의학적 치료 및 기타 적절한 회복을 위한 지원에 접근할 수 있도록 보장할 것. 
c) 대안 양육 환경의 아동에게 부모와 교류하고 교류를 유지할 수 있기 위한 적절한 지원을 제공할 것.
d) 2009년 11월 20일 채택된 유엔 총회 결의안 A/RES/64/142에 포함된 ‘아동의 대안 양육에 관한 지침’을 충분히 고려할 것.


입양

49. 발효되면 입양에 대해 가정법원의 승인 결정을 요구하도록 한 당사국의 입양특례법과 민법의 개정을 긍정적으로 보는 한편, 위원회는 해당 법이 시행되기 이전의 중간 기간 동안 아동의 입양에 대해서 우려된다. 위원회는 또한 다음에 대하여 우려한다.
a) 입양에 관해 규제 감독하도록 명확하게 위임받은 중앙 당국의 부재와 해외입양 절차에 개입할 당사국의 소관 당국의 의무를 명시한 법률의 부재
b) 입양아동이 13세 미만일 경우 아동의 의사청취의 부재
c) 청소년 비혼모로부터 태어난 아동의 압도적인 대다수가 입양 보내진다는 점 그리고 청소년 비혼모의 부모 또는 법적 후견인이 청소년 비혼모의 동의 없이 입양을 위한 아동의 양도를 승인하도록 허용되어 있는 점
d) 입양 후 가용서비스의 결핍, 특히 해외 입양된 아동 그리고 그들의 생물학적 출신에 관한 정보를 찾고 있는 사람들이 맞닥뜨리는 언어적 어려움에 관련된 것을 포함한 조치의 부족
e) 당사국이 해외 입양과 관련 ‘아동의 보호와 협력에 관한 1993년 헤이그 협약’에 가입하지 않은 것

50. 위원회는 당사국이 위에 언급한 해당 법의 시행 이전의 입양에 대해 적절하고 상당한 보호가 제공되도록 보장하기에 필요한 조치를 신속하게 취할 것을 권고한다. 또한 위원회는 당사국이 협약의 원칙과 조항에 완전히 부합되도록 법률을 개정할 목적으로 해외 입양 제도를 재고할 것을 촉구한다. 특히 협약 21조와 다음 사항에 대해서 그러하다.
a) 헤이그 협약의 6조에 부합하도록 한국의 ‘중앙입양정보원’이 효율적으로 그 역할과 기능을 수행할 수 있도록 적절한 인적, 기술적 및 재정적 자원과 더불어 명확한 권한을 규정할 것. 그리고 해외에 입양되어 한국어에 익숙지 않을 수 있는 사람의 이러한 시설에 대한 실제적인 접근을 보장할 수 있는 입양 후 서비스의 제공에 관한 것을 포함할 것. 
b) 입양 과정에서 나이와 성숙도를 고려하여 아동의 견해에 합당한 비중이 주어지고 아동의 최선의 이익이 최우선의 고려사항이 되도록 보장할 것.
c) 자녀를 입양 보낼 때 청소년 비혼모의 동의가 필수적이도록 보장하고 그러한 동의가 사실상 또는 실제적인 강요하에서 획득되지 않도록 보장하는 조건을 제공할 것.
d) 해외 입양의 경우를 포함하여 모든 입양이 사법적 감독과 규제를 제공할 수 있는 적절한 역량을 가진 명확한 권한의 중앙 당국에 의한 승인을 따르도록 보장하는 조치를 이행할 것.
e) 해외 입양과 관련 ‘아동의 보호와 협력에 관한 1993년 헤이그 협약’의 비준을 고려할 것.


E. 장애, 기초 보건 및 복지 (협약의 6조, 18조(para. 3), 23조, 24조, 26조, 27조(paras. 1-3))

장애 아동

51. 위원회는 장애아동복지지원법과 장애 아동 재활 프로그램 및 장애 아동이 있는 가족을 위한 양육지원 프로그램을 환영한다. 그러나 위원회는 정부의 장애 아동 지원이 단지 저소득층 가족에게만 제공되고 물리치료와 직업 훈련을 포괄하지 못하고 있는 것을 우려한다. 위원회는 특수 교육 교사와 지도자가 부족하여 장애 아동, 특히 여아가 교육을 받을 때 당면하는 어려움과 장애 아동 대다수가 비장애아동과 분리된 특수학교나 학급에서 교육을 받는다는 것에 대해 더욱 우려한다. 

52. 위원회는 2006년 채택된 장애아동의 권리에 관한 위원회의 일반논평 9호(CRC/C/GC/9)를 고려할 것을 당사국에 촉구한다. 그리고 다음 사항을 촉구한다.
a) 모든 장애 아동에게 적합한 지원을 제공할 것.
b) 장애아동의 교육에 대한 접근을 촉진하고 특수 교육 교사의 수를 늘릴 조치를 취하며 나아가 장애아동의 교육적 필요가 완전히 채워지도록 보장하기 위하여 교사와 학교 감독자에게 적절한 훈련을 제공하는 조치를 강화할 것.
c) 특히 적절한 예산과 인력을 제공함으로써, 장애인특수교육법을 보다 효과적으로 시행할 것.
d) 가능하면 언제든지 통합교육이 장애아동에게 제공될 것을 보장할 것.


건강과 보건 서비스

53. 위원회는 당사국의 건강관리 예산과 건강 보험의 제공을 위한 특별예산의 할당이 증가한 것을 환영한다. 또한 영유아 건강 검진 및 예방접종을 강화하려는 노력 뿐 아니라 저소득 가정을 위한 의료 지원 프로그램과 공공 금연 캠페인 역시 환영한다. 그러나 위원회는 이러한 증가에도 불구하고, 당사국의 건강관리 예산이 전체 예산 중 낮은 비율에 머물러 있는 것에 대해 여전히 우려한다. 더욱이 위원회는 대형 의료 센터와 작은 지역 병원간의 소아 의료 및 응급 의료의 가용성과 질의 격차에 대해서 우려한다.

54. 위원회는 건강 할당 재정을 의미있는 수준으로 높이고 저소득층 가족이 무상으로 의료 체계를 이용할 수 있도록 보건 및 공공 의료 시설 체계를 수립하라는 당사국에 대한 이전의 권고(CRC/C/15Add.197, para. 49 (a))를 반복한다. 위원회는 나아가서 전국적으로 소아 의료 및 응급 의료의 제공을 위하여 중소규모의 지역 병원들에게 재정적, 기술적 및 인적 자원을 늘려서 제공하는 조치를 취할 것을 당사국에 권고한다.


정신 건강

55. 위원회는 아동의 정신 건강을 증진시키기 위한 당사국의 노력, 특히 전국적으로 32개의 정신보건센터를 설립한 것을 환영한다. 그러나 위원회는 당사국의 전반적인 아동의 정신 건강 상태가 악화되어온 것 그리고 아동사이에서, 특히 여아들 사이에서 우울증과 자살률이 증가해온 것에 대해 우려한다. 위원회는 또한 자살의 조기 발견 및 예방을 용이하게 하기 위한 진단 도구의 실행에 주목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진단 도구가 아동의 프라이버시권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칠 수 있음에 대해서 우려한다.

56. 위원회는 아동들의 우울증과 자살의 근본적 원인에 대한 연구에 기반한 아동 정신 건강 관리 정책을 개발하는 조치를 취할 것, 그리고 자살충동 행동, 특히 여아들의 자살충동 행동의 효과적 예방을 보장하기 위하여, 정신건강의 증진과 예방 활동, 외래 및 입원 환자의 정신보건서비스를 포함하여 종합적인 서비스 체계를 발전시키는데 투자할 것을 당사국에 권고한다. 그렇게 함에 있어서, 위원회는 아동의 시설 수용을 최대한 삼갈 것을 당사국에 장려한다. 더 나아가, 자살의 발견 및 예방을 위한 진단 도구를 사용함에 있어서, 위원회는 당사국이 그 진단도구가 아동의 프라이버시권 및 적절하게 진찰 받을 권리를 전적으로 존중하는 방식으로 적용될 것을 보장하기 위한 적절한 안전장치를 수립할 것을 권고한다. 상기의 것들을 시행하는 한편, 위원회는 정신보건적 접근에 부가적으로, 또는 적절한 경우에는 대안적으로 자살에 관련된 사회적 및 가족적 요인들을 검토하는 것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청소년 보건

57. 위원회는 한국의 식품의약품안전청장이 텔레비전 아동 프로그램 방영 시간에 다과류를 생산, 가공, 수입, 유통, 또는 판매하는 기업의 고열량 저영양 식품에 대한 광고 방영을 금지할 수 있다는 점을 호의적으로 주목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수의 아동이 건강에 해로운 영양 섭취로부터 초래되는 아동기 비만 및 여타의 건강상 문제들을 겪고 있는 것에 대해서 우려된다. 위원회는 한국의 아동과 청소년의 흡연율과 음주율이 계속해서 상승하고 있으며 인터넷 중독이 심각한 문제가 되고 있는 것에 대해 한층 더 우려한다.

58. 더욱이 위원회는, 성교육 프로그램의 의무적인 시행 계획에도 불구하고, 실제로는 학교에서 성 및 출산 보건에 대한 체계적이고 정확한 교육이 부족한 상황이 계속되고 있음에 우려한다. 이러한 맥락에서 위원회는 또한 청소년들 사이에서 계획되지 않은 임신율이 높은 것과 이에 상응하여 그러한 상황에 처한 청소년들 사이에서 임신중절의 비율이 높은 것에 대해 깊이 우려한다.

59. 위원회는 대중매체를 이용하는 것을 포함하여, 담배와 술, 인터넷 중독의 건강상의 위험에 대한 인식을 증진시키기 위한 정보와 교육 캠페인을 증진시킬 것을 당사국에 촉구한다. 그런 가운데, 당사국은 그러한 캠페인이 청소년의 구체적 상황을 고려하며 건강한 생활양식을 이끌고 균형잡힌 소비 양식을 실천할 청소년의 역량을 키우는 데 도움이 되도록 보장할 것, 그리고 아동의 건강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는 건강에 해로운 음식의 매매를 규제하기 위한 추가 조치를 취할 것이 장려된다. 또한 위원회는 당사국이 학교 교육과정에서의 성교육 프로그램이 체계적이고 신뢰할 만한 방식으로 수행되도록 보장하기 위한 조치를 취할 것을 권고한다.


사회 보장과 생활수준

60. 위원회는 헌법 제 34조 3, 4, 5항에 따라, 여성과 노인, 청소년의 복지를 증진시키려는 당사국의 계획을 환영한다. 하지만 위원회는 헌법이 아동의 복지를 증진할 의무를 명문화하고 있지 않다는 점에 우려한다.

61. 위원회는 아동의 복지를 위해 적절한 수준에서 명확하고 의무적인 재정 할당을 포함하도록 법 개정을 고려할 것을 촉구한다. 당사국은 빈곤을 줄이고 모든 아동의 생활수준을 개선하기 위한 프로그램에서 평등과 형평성을 보장해야만 한다. 


F. 교육, 여가 그리고 문화 활동 (협약의 28, 29, 31조)

직업 훈련 및 생활지도를 포함한 교육

62. 당사국의 학생의 스트레스를 낮추기 위한 노력과 아동의 놀이와 오락과 문화 활동의 가능성을 보장하려는 프로그램의 채택에도 불구하고, 위원회는 당사국의 교육체제에서 여전히 현저한 심각하게 경쟁적인 환경에 대해 우려한다. 위원회는 또한 교육과정 이외에서 이루어지는 추가적인 과외에 아동들이 광범위하게 등록하고 있는 것, 특히 그 결과 아동이 심각한 과잉의 스트레스와 신체적 및 정신적 건강에 부정적 영향을 겪고 있음에 대해 우려한다. 나아가서, 위원회는 이미 존재하는 사회경제적 불균형이 그러한 과외의 재정적 비용 때문에 증대되는 것과 과외가 아동의 여가 및 문화 활동에 대한 권리의 충분한 실현을 방해하는 것에 대해 우려를 담아 주목한다. 위원회는 또한 왕따(bullying)의 가혹함과 빈도가 증가하는 것, 특히 외국 출신의 아동들에 대한 왕따, 그리고 이러한 왕따를 행하는 데 인터넷과 휴대전화를 이용하는 것에 대해 우려한다.

63. 위원회는 당사국에 다음과 같이 권고한다.
a) 현재의 교육 시스템과 관련된 시험 제도를 교육의 목적에 관한 협약 29조와 위원회의 일반논평 1호(2001)에 근거하여 평가할 것.
b) 교육과정 외 사교육에 대한 광범위한 의존과 그 귀결인 고등교육에 대한 접근의 불평등의 근본 원인에 대처할 목적으로 공교육을 강화하기 위한 노력을 증진할 것. 
c) 협약의 31조에 부응하여, 적절한 여가, 문화 및 오락 활동을 향유할 아동의 권리를 보장할 것.
d) 당사국의 다음 번 보고서에, 포함(inclusion)을 위한 학교 접근성에서의 평등 성취와 관련된 구체적 성과에 대한 정보를 체계적으로 수집할 것. 
e) 외국 출신의 아동에게 관심을 기울이면서 왕따에 대처하는 조치와 왕따의 감소를 목적으로 한 계획에 아동의 참여를 보장할 조치를 강화할 것. 이러한 조치들은 휴대전화와 온라인 가상 만남에 의한 것을 포함하여, 교실 밖 또는 학교 운동장에서의 새로운 형태의 왕따와 괴롭힘(harassment)을 또한 다뤄야만 한다. 


G. 특별 보호 조치 (협약의 22, 30, 38, 39, 40, 37 (b)-(d), 32-36조)

비호 신청과 난민 아동

64. 위원회는 당사국의 법률이 그 영토 내에서 태어난 난민과 비호 신청 아동에게 시민 지위의 서류를 제공하지 않는다는 점 그리고 비호 신청자와 인도적 지위 보유자의 아동의 취약한 상황이 노동시장 접근에 제약이 있고 생계 지원이 부족한 그 부모의 상황 때문에 더욱 악화되는 것에 대해 우려한다. 위원회는 또한, 학교 입학이 부모(들)의 이주민 지위에 영향을 받는 것 때문에 난민과 비호 신청자의 아동이 교육 접근에 제한을 받는 것을 포함하여, 난민의 사회통합을 지원하기 위한 프로그램의 부재를 우려한다. 나아가서 위원회는 난민 또는 비호 신청자들과 직접 접촉하는 공무원들에게 제공되는 난민의 권리에 관한 훈련이나 교육 프로그램이 부족한 점에 대해 우려한다.

65. 위원회는 난민과 비호 신청자의 아동을 포함하여, 당사국의 영토 안에서 태어난 모든 아동에게 주민등록을 제공할 것을 당사국에 촉구한다. 또한 위원회는 비호 신청자와 인도적 지위 보유자의 가족들에게 충분한 재정적 및 사회적 원조를 제공할 것과 그러한 상황의 아동이 당사국의 국민과 동등한 교육 접근성을 제공받도록 보장할 것을 장려한다.
더불어 위원회는 당사국이 공무원들에게, 특히 난민과 비호 신청자와 접촉하는 있는 경우에, 난민의 권리에 관한 특별한 훈련을 제공할 것을 촉구한다.

66. 더욱이 위원회는 당사국의 이주법 하에서는 난민과 비호 신청자와 동행 없는 아동이 구금될 수 있다는 것을 깊이 우려한다. 위원회는 그러한 구금이 발생했을 때, 아동에게는 부적합한 시설이며 송환 명령의 집행이 지연될 경우 법적인 시한이 없는 그러한 구금에 대한 주기적이고 시기적절한 재심을 보장할 법조항이 전무한 것에 대해 더욱 우려한다.

67. 위원회는 당사국이 난민과 비호 신청자나 동행 없는 상태의 아동의 구금을 삼갈 것을 촉구한다. 송환시키는 경우에는, 그러한 상황의 아동이 가능한 최상의 정도로 아동의 권리에 민감하며 권리를 존중하고 시기적절한 정기적 재심과 명확하게 규정된 시한을 따르는 시설에 수용되도록 보장할 것을 촉구한다.


이주 상황의 아동

68. 위원회는 한국 생활에 외국인의 통합을 촉진하는 2007년 재한외국인처우기본법의 채택과 불법이주자 아동의 학교 입학과 전학을 허락하는 2008년 초중등교육법시행령의 개정을 환영한다. 그러나 위원회는 이주 아동의 학교 출석률이 여전히 낮다는 점을 우려한다. 위원회는 자녀의 초중등 교육 이수를 부모에게 보장하도록 하는 당사국의 법률이 한국의 국민이 아닌 부모에게는 적용되지 않는다는 점을 우려한다.

69. 위원회는 불법이주자의 자녀를 포함한 이주아동이 실질적으로 교육에 접근하고 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보장하는 정책과 전략을 개발하고 채택하길 당사국에 권고한다. 위원회는 또한 당사국이 “모든 이주노동자와 그 가족의 권리보호에 관한 국제협약”을 비준하고 국내법이 그 협약의 조항과 합치하게 만들것을 장려한다. 


아동노동을 포함한 경제적 착취

70. 위원회는 아동을 착취로부터 보호하기 위한 ‘2005년 청소년 노동 보호 종합 대책’의 마련을 환영한다. 그러나 본 위원회는 다음에 관해서 우려한다.
a) 노동하는 아동의 증가
b) 아동을 고용하는 고용주가 만 15세 이상의 아동의 야간노동과 최저임금 이하의 임금을 받는 것을 포함하여 근로기준법상의 미성년 노동자를 위해 만들어진 기준을 흔히 충족시키지 않는 것.
c) 쉬는 시간을 무임금으로 처리하는 등의 변칙적인 노동 관행을 규제하는 법 조항의 불충분
d) 노동 감독이 불충분한 것.
e) 광범위하게 벌어지는 언어폭력과 성폭력, 폭행으로 인해 더욱 악화되는 노동 아동의 문제
f) 연예인과 성적 대상으로 고용되는 아동 수의 증가.

71. 위원회는 당사국에 권고한다.
a) 아동 노동을 유발하는 사회경제적 근본 요인을 다루는 조치를 취할 것.
b) 야간노동 금지에 대한 효과적인 법률시행과 최저임금 지급을 포함하여 만 18세 미만자의 노동 조건에 대해 수립된 기준이 엄격하게 시행되도록 보장할 것.
c) 변칙적인 노동 관행을 규제하는 추가적인 법 조항을 제정할 것.
d) 노동환경의 모든 측면에 대한 포괄적인 감시를 보장하기 위한 노동 감독을 증진할 것.
e) 노동환경에서 폭력과 성적 괴롭힘을 다루고 방지할 수 있는 효과적인 조치의 제공을 보장하고 그러한 문제가 부각되는 경우 책임성과 재활을 위한 효과적인 장치의 가용성을 보장할 것.


성적 착취

72. 위원회는 2008년 청소년 성 보호법의 개정을 환영한다. 이 개정안은 아동 성착취에 대한 자료를 정기적으로 수집하고 피해지에게 긴급 생활 지원과 법적 및 의료 지원과 직업 훈련을 제공하고 있다. 위원회는 또한 아동 성폭력 피해자를 위한 해바라기아동센터와 원스톱지원센터의 설립과 상담, 보호 및 치료의 제공을 환영한다. 그러나 본 위원회는 다음에 대해 여전히 우려한다.
a) 당사국에서 아동에 대한 성폭력의 급격한 증가와 높은 비율의 포르노그라피의 소비
b) 아동성착취에 대한 낮은 기소율
c) 남성, 소년 또는 외국어 사용자를 위한 피해자 재활 서비스의 부족
d) 성폭력 발생률의 증가에도 불구하고 범죄 방지와 피해자 지원을 위한 예산 할당의 삭감.

73. 위원회는 당사국의 국내법이 본 협약 35조와 아동매매, 아동 성매매, 그리고 아동 포르노그라피에 관한 선택의정서의 2조와 3조에 합치되도록 필요한 모든 조치를 취할 것을 권고한다. 위원회는 특히 다음 사항을 권고한다. 
a) 아동에 대한 성폭력을 방지할 적절한 조치를 취할 것
b) 아동을 성적으로 착취할 목적으로 한 제공, 전달 또는 갖은 수단을 통한 수락에 해당하는 모든 행위를 처벌함으로써 아동에 대한 성착취를 효과적으로 기소하기 위해 더욱 노력할 것.
c) 아동성범죄자에 대한 제재가 범죄의 심각성과 균형을 이루고 형사사법시스템 내에서 이뤄지도록 보장할 것.
d) 형사 책임으로부터의 어떠한 면제 없이, 성범죄자의 재활을 위한 노력을 계속할 것.
e) 인신매매와 성착취 피해자의 가장 공통적인 출신국을 고려하여 다언어 체제를 포함하여 소녀 뿐 아니라 소년에게도 재활 서비스를 제공할 것.


인신매매

74. 위원회는 성적 인신매매 방지를 위한 종합계획의 채택을 환영한다. 그러나 위원회는 당사국의 법률이 모든 종류의 인신매매를 처벌함에도 불구하고, 상당수의 여성과 아동이 성적 착취와 강제 노동을 목적으로 한국으로부터, 한국을 경유하여, 또한 국내에서 계속 인신매매되고 있다는 것에 우려한다. 위원회는 특히 인신매매자에 대한 기소와 유죄율이 낮은 것에 우려한다.
   
75. 위원회는 한국정부가 아동 매매, 인신매매, 유괴를 저지른 자들이 그 범죄에 대해 책임질 수 있도록 하기 위한 적절한 조치를 보장할 것을 촉구한다. 더 나아가 위원회는 한국정부가 유엔의 ‘초국가적범죄조직협약’을 보충하는 ‘인신매매 특히 여성 및 아동의 매매 예방, 억제, 처벌의정서’의 비준을 고려할 것을 촉구한다.


아동의 매매, 성매매 및 아동 포르노그라피에 관한 아동권리협약 선택의정서

76. 위원회는 의정서 2조와 3조에 해당하는 모든 위법행위가 한국정부의 법률에 적절하게 포함되지 않는다는 사실에 대한 우려(CRC/C/OPSC/KOR/CO/1, para. 30)를 반복한다. 나아가, 위원회는 앞서(35번 문단) 언급했듯이 제 3자에 의한 아동의 출생신고를 방지할 조치의 부재가 아동 매매로 귀결될 수 있음을 우려한다. 위원회는 의정서 3조 1항에 관련된 위법행위가 대한민국 국적자나 대한민국 거주자에 의해서 발생했을 때, 혹은 위법행위의 피해자가 한국인일 때 그 범죄에 대해 역외관할권을 수립하기 위한 조치에 관해 어떤 정보도 제공되지 않았다는 우려(CRC/C/OPSC/KOR/CO/1, para. 38)를 반복한다.

77. 위원회는 다음과 같은 권고를 반복한다.
a) 한국의 국내법이 의정서 2조와 3조에 완전히 합치되도록 보장하도록 필요한 조치를 취할 것.
b) 의정서 4조 2항의 견지에서, 의정서에 언급된 범죄행위가 대한민국 국적자나 거주자에 의해서 자행되거나 혹은 그 피해자가 한국인일 때 역외관할권을 수립하기 위해 필요한 입법 조치를 취할 것.


아동의 무력분쟁 관여에 관한 선택의정서

78. 위원회는 만 18세 미만자의 강제 징집 또는 적대행위 관여를 범죄화하는 구체적인 조항이 전혀 없다는 것에 대한 우려(CRC/C/OPAC/KOR/CO/1, para.12)를 반복한다.

79. 위원회는 당사국에 대한 권고를 다음과 같이 반복한다.
a) 아동의 징집과 적대행위 관여에 관한 의정서의 조항 위반을 법으로 명확하게 금지할 것. 
b) 모든 법률이 의정서 조항에 완전히 부응할 것을 보장할 것(CRC/C/OPAC/KOR/CO/1).
c) 모든 군사 규범, 교범 및 여타의 군사적 명령이 의정서의 조항과 정신에 부합되도록 보장할 것(CRC/C/OPAC/KOR/CO/1, para.13).


소년 사법 행정

80. 위원회는 높은 재범률을 포함하여 청소년 비행과 높은 범죄율의 지속적인 증가에 대해 우려한다. 위원회는 또한 이런 상황전개에 대한 정부의 대처가 그러한 상황에 처한 아동이 발생하는 근원을 다루기보다는 아동 범죄자의 사회 재통합을 목표로 한 효과적인 조치 대신에 성인들이 구금되는 구금 시설에 아동을 구금하는 것을 포함하여 오로지 징벌적인 조치에만 치중하는 방식을 취했다는 것에 우려하며 주목한다. 
더불어 위원회는 청소년 전담 검사의 임명을 긍정적으로 바라보지만, 소년사법에서 그들의 효과적인 전문화를 허용하는 상황이 제공되지 않기에 청소년 전담 검사의 기능을 적절하게 수행할 수 없다는 것에 우려한다.

81. 위원회는 높은 재발률과 청소년 범죄에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적절한 조치를 제공할 것을 당사국에 요구한다. 그렇게 함에 있어, 위원회는 특히 협약 37, 39, 40조와 소년사법집행에 관한 유엔 최소기준(베이징 규칙), 소년비행방지를 위한 유엔 지침(리야드 가이드라인), 자유를 박탈당한 소년의 보호에 관한 유엔 규칙(하바나 규칙), 형사법시스템에서 아동에 대한 조치에 관한 비엔나 지침, 그리고 소년사법에서 아동의 권리에 관한 위원회의 일반 논평 10호(2007) 등 여타의 관련 기준들에 소년사법체제가 부합되도록 할 것을 당사국에 요구한다. 특히 위원회는 다음 사항을 촉구한다.
a) 당사국 전역에 적절한 인적, 기술적 및 재정적 자원을 갖춘 소년 전문 법원을 설립할 것.
b) 형법 위반으로 고발된 아동에게 소송절차의 초반과 법적 절차 전반에 걸쳐 적절한 법적 원조와 기타의 원조를 제공할 것.
c) 자유를 박탈당하거나 재활 센터, 혹은 구금시설에 있는 아동을 절대로 성인범과 함께 있지 않도록 하며, 그들이 안전하고 아동 배려적인 환경을 보장받을 수 있도록 하고, 정기적으로 가족과 연락을 유지할 수 있도록 하며 음식, 교육, 그리고 직업 훈련을 제공받을 수 있도록 할 것.
d) 자유를 박탈당한 아동의 거취 결정에 대한 정기적인 재검토를 보장할 것.
e) 구금을 최후의 수단으로 사용할 것을 보장하며 가능한 한 전환, 보호관찰, 상담, 사회봉사, 집행유예 등 자유를 박탈하는 것 외의 다른 대안 조치들을 활성화할 것.
f) 유엔 청소년사법정의에 관한 기구 간 패널과 UNODC, UNICEF, OHCHR 및 비정부기구들을 포함한 패널의 구성원들이 개발한 기술적 지원수단들을 사용하고, 패널의 구성원들에게 소년사법의 분야에 있어 기술적 지원을 구할 것.


범죄 피해자와 증인에 대한 보호

82. ‘성매매 방지 및 피해자 보호법’에도 불구하고 피해아동 혹은 만 16세 미만의 증인을 비디오 녹화를 통해 증언을 하게 하는 것, 성범죄 피해아동에 대한 심문과 법적 절차는 다음의 이유로 부적절하다.
a) 피해자와 증인은 공무원들이 녹화에 익숙지 않기에 증언을 빈번히 반복해야 하고
b) 법원은 비디오의 유효성을 자주 인정하지 않으며
c) 피해자와 증인은 적절하게 그들을 배려하지 못한 상황에서 자주 반대심문의 대상이 되며
d) 가해자와의 재회가 피해자의 동의 없이 요구되기도 하며
e) 피해자의 프라이버시에 대한 안전장치가 부적절하며
f) 피해자는 자주 경찰관이나 의료진 등 공무원에 의해 진지하게 받아들여지지 않으며
g) 피해자를 다루는 의료 또는 법 집행 전문가에 의한 피해자에 대한 언어폭력의 사례가 보고된 바 있기 때문이다.

83. 위원회는 더욱 아동 친화적인 절차상 규칙을 개발하고, 피해아동이 그들의 프라이버시와 존엄성에 대해 보다 큰 존중을 받게 보장하길 권고하며, 한국정부가 적절한 법 조항과 규칙을 통해 학대, 가정 폭력, 성적 혹은 경제적 착취, 유괴, 인신매매 등과 같은 모든 범죄의 피해자이자 증인인 아동에게 협약이 요구하는 보호를 제공할 것을 보장할 것, 그리고 한국정부가 ‘아동피해자와 증인이 관여된 사건 사법에 관한 유엔지침’(경제사회이사회 결의안 2005/20에 첨부)을 충분히 고려할 것을 촉구한다.



H. 국제 인권 조약의 비준

84. 위원회는 한국 정부에게 아동 권리의 실현을 더욱 강화하기 위하여, “모든 이주노동자와 그 가족의 권리보호에 관한 국제협약”과 “강제실종으로부터 모든 사람을 보호하기 위한 국제협약”을 포함한 모든 핵심 인권 조약을 비준하기를 장려한다.


I. 지역 및 국제 기구와의 협력

85. 위원회는 한국 정부를 포함한 동남아시아국가연합(ASEAN) 회원국에서 본 협약과 여타 인권 조약의 이행을 위해 한국 정부가 아세안 여성과 아동 위원회와 협력할 것을 권고한다.


J. 후속 조치와 배포

86. 위원회는 특히, 적용 가능할 때마다, 적절한 고려와 더 나은 행동을 위하여 이 권고를 정부의 구성원, 국회, 지방 의회 및 기타 지방 정부에 보냄으로써, 이 권고들이 완전히 이행될 것을 보장하도록 모든 적절한 조치를 취할 것을  권고한다.

87. 위원회는 더 나아가 본 협약과 그 이행에 대한 토론과 인식을 불러일으킬 수 있도록, 한국 정부가 제출한 3, 4차 합본 정기 보고서와 서면 답변, 그리고 위원회가 채택한 관련 권고(최종견해 포함)들이  광범위한 대중, 시민사회조직, 청소년 단체, 전문가 집단과 아동에게 인터넷(그러나 인터넷에 국한되지 않는)을 통하는 등 한국어로 널리 이용 가능할 수 있도록 하길 권고한다.


K. 차기 보고서

88. 위원회는 5차와 6차의 합본 정기 보고서를 2017년 6월 19일까지 제출할 것과 그 보고서에 이 최종 견해의 이행상황에 관한 정보를 담을 것을 부탁한다. 위원회는 2010년 10월에 채택된 보고서 작성 지침(CRC/C/58/Rev.2)에 유념할 것과 차기 보고서가 지침에 따라 60쪽을 넘으면 안 된다는 것을 상기시킨다. 위원회는 당사국에게 지침에 맞춘 보고서를 제출할 것을 촉구한다. 분량 제한 이상의 보고서가 제출될 경우, 당사국은 위에 언급된 지침에 맞춰 보고서를 재고하고 다시 제출할 것을 요청받게 된다. 위원회는 당사국이 지침에  맞추지 않은 보고서를 재검토 뒤 다시 제출하지 않는다면, 조약 기구의 검토를 목적으로 한 보고서의 번역이 보장될 수 없다는 점을 상기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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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어가는꿈2011.08.29 04:25



잘못된 교육을 거부하고, 잘못된 사회를 바꾸는

93/고3들의 대학입시 거부선언과 행동을 제안합니다.


더 좋은 성적, 더 좋은 학교, 더 좋은 직장, 더 안정적인 삶, 더 행복한 삶을 얻기 위해 달리고 달리는 경쟁 속에서 허덕이며 언제 벗어날지 모를 쳇바퀴를 돌리고 있는 우리들. 그 안에 우리의 행복, 다양성, 상상력 그리고 오늘은 존재하지 않는다. 교육은 자신이 배우고 싶은 것을 배우는 것이 아니라 오직 진학과 취업을 위한 것으로 전락한 지 오래고, 입시정보를 쑤셔 넣는 와중에 '비효율적인' 토론과 소통은 존재하지 않는다. 의지와 열정이 아무리 크다 한들, 능력이 아무리 뛰어나다 한들, 인서울․SKY 이른바 ‘명문대’ 간판이 없으면 기회 한 번 제대로 주어지지 않는다. 그렇게 거대한 학벌의 벽에 좌절하고 자신의 무능력과 의지부족을 탓하며 또 다시 무한경쟁의 쳇바퀴를 돌린다.


우리는 너무나 불안하고 불행하다. 88만원 비정규직 쓰나미와 학벌의 벽이 가로막은 미래에 어른들이 약속한 더 나은 삶과 행복이 존재하는지, 우리는 너무나 불안하다. 그래도 더 좋은 미래를 위해서는 오늘의 행복 ‘따위’는 포기해야한다는 압박에 쫓겨 살아갈 수밖에 없는 현실. 오늘도 쳇바퀴를 돌린다. “내가 무엇을 위해 이렇게 살아야 하는 거지?” 질문할 시간도 이유도 없이 우리는 달린다. 모두가 달리는데 나만 혼자 멈춰서면 나의 삶도 멈춰버릴 것만 같은 두려움에 쫓겨….


하지만 우리는 용기를 내본다. 입시에 학벌에 쫓겨 교육의 목표도 인간관계의 기준도 점수가 되어버린, 무한경쟁의 쳇바퀴에서 벗어나 대학입시를 거부한다. 우리는 어른들과 이 사회기득권층이 말하는 ‘미래 성공’의 환상을 버리고 불행하고 불안한 우리의 오늘과 내일을 바꾸고자 한다. 그리고 이 글을 읽고 있는 전국의 93/고3들이 함께 용기를 내주길 감히 제안해본다. 이 사회가 이 교육이 그리고 우리들이 더 이상 경쟁과 학벌에 미쳐버린 괴물이 되기 전에 이 쳇바퀴를 벗어던지자!


이 견고한 학벌사회에서 대학을 거부한다는 것은 말도 안 되는 무모한 행동일 수도 있다. 가방끈 짧은 우리들을 향할 차별적 시선과 편견을 감당해야 할 수도 있다. 그럼에도 우리는 용기 내어 이 불편한 길을 걸어가려 한다. 이 길이 어른과 사회기득권층이 말하는 거짓된 장밋빛 성공스토리보다, 우리의 오늘과 내일을, 나아가 우리가 함께 살아가는 이 사회와 교육을 좀 더 행복하고 의미 있는 것으로 만들 수 있으리라 믿기 때문이다.


입시와 취직을 위한 교육이 아니라 학생을 위한 교육, 돈이 없어도, '명문'학교가 아니어도 누구나 자유롭게 배우고 싶은 것을 배울 수 있는 교육, 주입과 강요가 아닌 토론과 소통이 꽃피는 교육, 학력/학벌로 사람을 단정 짓고 차별하지 않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우리는 목소리를 낼 것이다. 잘못된 교육과 사회에 침묵하지 않는 우리의 작은 용기와 실천은 우리 사회를 지금보다는 조금 더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곳으로 바꿔낼 혁명이다. 주저하지 말자, 침묵하지 말자, 잘못된 교육을 거부하고, 잘못된 사회를 바꿔보자!


2011년8월27일

제안자 : 공기, 다영, 둠코, 따이루, 쩡열



<이렇게 함께해보아요>


1. 9월3일(토) 낮2시30분부터 서울서대문에 위치한 민주노총본부회의실에서 '대학입시거부 런칭기념회의'가 열립니다. 관심 있는 누구나 자유롭게 참여 가능합니다. 함께 무엇을 외치며, 어떻게 잘못된 교육과 사회에 저항할 것인가 수다도 떨고 계획도 세우고 요구안도 만들어봅시담!


2. 93,고3들의 대학입시거부선언과 행동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9월3일 런칭회의후에 공지될 예정입니다! 카페와 트위터를 확인해주세요



카페: cafe.daum.net/wrongedu1 / 트위터: @wrongedu / 문의: 010-7270-1900(따이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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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공현
걸어가는꿈2010.09.08 23:15

[페미니즘인(in)걸]"부모님 모셔와"가 무섭지 않은 세상을 만들려면?

청소년과 여성, 가족 제도에 스크래치 내기

공현


학생들에게, 학교에서 뭔가 규정을 어기거나 학교 눈 밖에 나는 짓을 했을 때 가장 두려운 조치는 뭘까? 그야 당연히 체벌이나 욕설, 또는 퇴학 같은 징계들 모두 다 무섭긴 무섭다. 그런데 내 경험상 가장 손써볼 도리가 없으면서도 껄끄러웠던 것은 “집에 전화하는 것”, “부모님(혹은 집안 어른, 보호자) 불러오는 것”이었다. 뭐 이런저런 집안 사정에 따라 다들 조금씩 느끼는 정도 차이야 있겠지만… 부모/보호자 소환은 공식적인 징계도 아니고 직접 두들겨 패는 폭력도 아니라서 학교 입장에서는 부담될 것 없으면서, 학생 입장에서는 참 대응하기도 어렵고 압박스러운 스킬 중 하나다. 실제로 많은 청소년인권운동을 하는 청소년들이 학교의 탄압은 버텨냈으면서도 이 집안의 압박 ― 가정탄압 앞에 굴복해야 했다.

교사들의 이 “부모님 모셔와” 스킬이 무서운 이유는, 바로 청소년들의 일상적인 생활 전반을 모두 규율할 권력이 부모/보호자에게 있기 때문이다. 심지어 학교에서 교사의 권한을 정당화하는 주된 논리 중에서 “부모/보호자로부터 교육을 위임받았기 때문”이라는 것도 있지 않은가. 부모/보호자에게는 청소년들이 어디에 있어야 하는지를 결정할 수 있는 권리가 법적으로 보장되어 있다. 또 부모/보호자는 자신들의 가치관에 따라 교육하고 지도할 권리와 자신들의 말을 듣지 않았을 때 벌을 줄 권리를 가지고 있다. 청소년들은 먹고 살 만큼 돈을 벌기가 힘들고 독립적으로 생활할 수 없는 세상이기 때문에, 부모/보호자들은 청소년들에 대한 경제적인 지배력도 가지고 있다. 부모-자식 관계에서는 대놓고 대들고 반항하기가 껄끄러운 문화적 심리적 장벽들도 관련되어 있다. 따라서 학교에서 집에 전화를 하고 부모/보호자를 부르는 일은 청소년들에게 가장 큰 힘을 행사할 수 있고 청소년들 입장에선 저항하기도 힘든 권력자를 불러들이는 조치인 셈이다. 학교보다 더 강력한 권력은 가족에 있는 것이다.



게다가 학교에서라면 문제제기를 할 거리가 되는 일들도, 부모/보호자에 의해 집안에서 이루어지면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곤 한다. 예컨대 학교 안에서 교육제도를 비판하는 전단지를 나눠줬다고 해서 징계를 하는 건 문제가 될 수 있지만, 자식이 그런 전단지를 나눠줬다고 어머니가 자식을 혼내거나 용돈을 깎거나 외출금지를 내리는 건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 만약 학교가 학교에 반항적인 학생의 생활을 감시하기 위해 휴대전화 위치추적을 하거나 하면 사회적 논란이 일수도 있겠지만, 부모가 자식을 걱정해서 휴대전화 위치추적을 하는 것은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래서 이런 부모/보호자와 자식/청소년의 관계가 권력관계임을 드러내기 위해서, 또 ‘부모’라는 엄마와 아빠가 있는 정상가족 중심적인 용어를 벗어나기 위해서 언제부턴가 청소년인권운동을 하는 사람들 몇몇은 “친권자”라는 말을 사용하고 있다.



페미니즘 : 가족 비판의 동지

우리 사회에서 가족은 끊임없이 좋은 곳, 회복되어야 할 곳으로 일컬어진다. 학교에서도 음악시간이면 “즐거운 곳에서 나 오라 하여도 내 쉴 곳은 내 집뿐”이라는 노래를 배우고, 동요도 엄마, 아빠와의 추억이나 화목한 가정을 소재로 한 게 많다. (“우리 아빠 꿈속에 오늘 밤에 나타나 내 얘기 좀 전해줄 수 있겠니. 먹고 싶은 것이나 놀고 싶은 것이나 모두모두 할 수 있게 해줄래.”라고 노래하는 「피노키오」라거나 “우리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어른들은 몰라요”라고 하는 「어른들은 몰라요」가 가장 투쟁적일 정도?) 영화에서 공익 광고에서 신문에서 법에서 가족은 계속 건강하게 회복되어야 할 곳, 삭막한 사회에서 마지막 안식처 정도로 묘사되곤 한다. 그런 한편 ‘정상 가족’이 아닌 가족에 속한 청소년들은 ‘정상 가족’을 당연한 걸로 전제하고 있고 가족에게 과도한 부담을 지우고 있는 사회에서 ‘정상 가족’을 가지기를 소망하고는 한다.

하지만 실제로 청소년들의 삶을 살다보면 과연 가족이 그런 것인가 의문을 가지게 된다. 청소년들은 가족에서는 정(情) 같은 것 말고도 생활을 하나하나 규율하고 명령하는 권력도 경험할 수 있다. 가족이 안식처라는 것은 노동에 지친 남성 가부장을 위한 판타지는 아닐까? 청소년에게 가족은 등을 누이고 쉬는 곳이 되기도 하지만 공부하라는 압박을 받는 곳, 또 다른 일터, 친권자에게 잘 보이고 생활비를 받는 곳이기도 하다. 가족에서는 친권자들에 의해 사랑과 교육의 이름을 달고 체벌이나 감금 같은 폭력도 빈번하게 일어난다. 때로는 소유욕과 의무감이나 권력의 행사가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정당화되기도 한다. 진로나 생활을 놓고 가족 안에서 벌어지는 청소년과 친권자 사이의 갈등은, 가족이 순전한 ‘공동체’가 아니라 그 안에서도 이해관계의 차이가 있음을 보여준다. 우리 사회에서 가족 시스템이 흔들리고 있어서 생기는 문제들도 있겠지만, ‘정상적인 가족’ 안에서도 충분히 많은 폭력과 권력관계, 사회적인 문제들이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페미니즘은 이러한 가족 비판의 영역에서 청소년운동의 ‘선배’인 셈이다. 페미니즘은 결혼이 불평등한 계약이고 가족이 여성을 억압하고 있으며 여성의 희생에 의해 이루어지고 있다고 지적한다. 가족 안에서 여성들은 폭력에 노출되어 있고, 가족 제도에 의해 여성들의 성은 통제받는다. 페미니즘은 그동안 일터와 사회는 남성들의 공간이고 가족은 여성들의 공간이라는 이분법 속에서 여성들에게 가사노동, 양육노동, 감정노동 등을 부담시킴으로써 가족이 유지되고 있다는 것을 밝혀왔다. 여성들에게 가족은 안식처이자 보금자리가 아니라 일종의 일터이다. 그것도 그 일의 가치가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는. 이처럼 가족이 자연스러운 운명공동체가 아니라 그 안에도 서로 다른 이해관계들과 권력관계들이 얽혀 있는 사회적인 제도라는 관점이 만들어진 것에는 페미니즘의 기여가 컸다. (사회주의-공산주의나 아나키즘 역시 이러한 관점을 만드는 데 일부 기여했다.)

페미니즘에 따르면 아이를 양육하고 교육할 책임을 어머니-여성에게 떠맡기는 걸 정당화하는 ‘모성’ 역시 자연스러운 게 아닌 사회적인 이데올로기이다. 이러한 비판은 청소년들에게도 중요한 시사점을 주는 이야기이다. 친권자들이 가진 양육의 책임은 동시에 청소년들의 삶을 지배하고 규율할 권력이 된다. 그렇기 때문에 ‘모성’ 이데올로기 등을 비판하는 것은 청소년들이 가족 안에서 겪는 억압과 갈등을 어느 개인의 문제 또는 자연스러운 현상이 아니라 사회적인 문제로 이해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주는 것이다.



청소년들의 이야기와 여성들의 이야기는 가족이라는 사회 제도에서 가장 많은 부분 맞물려 있다. 체벌이나 가정폭력,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이루어지는 폭력과 억압 등은 거의 비슷한 방식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또한 여성과 청소년 모두가 집에 있어야 할 존재로 취급받는다는 점, 사회 활동과 정치 활동에 제약이 따르는 존재라는 점도 동일하다. 양육의 책임과 그 권력의 문제에서는 여성-어머니와 청소년의 경우 서로 입장이 다르지만 같이 극복해야 할 얼키고설킨 굴레가 된다. 여성 청소년들이 남성 청소년들에 비해 가족 안에서 더 많은 억압을 받는 현실에서도 페미니즘과 ‘청소녀니즘’(청소년+이즘ism)이 만나는 교차점을 볼 수 있다.

물론 남성 가부장 역시 가족 제도 안에서 마냥 행복한 것은 아니다. ‘고개 숙인 아버지’ 등의 담론을 보면 지금의 가족 제도가 남성 가부장에게 어떠한 부담을 주고 있고 또 가족의 판타지가 이를 어떻게 은폐하고 있는지 알 수 있다. 하지만 좀 더 적극적으로 지금의 가족 제도를 바꾸기 위해 의미 있는 문제제기를 하고 거기에 저항할 동기가 있는 주체는 여성-어머니와 청소년이다. 가족을 비판하고 스크래치를 내고 바꾸려고 한다는 점에서는, 페미니즘 운동과 청소년운동은 동지 관계에 있다.


연대가 가능하든 말든

그러나 현실을 보면 여성-어머니와 청소년이 연대해서 가족을 바꿀 수 있을지, 나는 좀 의문스럽다. 이른바 ‘정상 가족’ 속에서 청소년들은 여성-어머니와 많은 충돌과 갈등을 겪는 일이 많다. 아버지는 좀 더 무게 있는 라스트 보스 급, 권력자로 존재하면서 중요한 순간에만 나서서 권력을 휘두르고, ‘정상 가족’ 안에서는 어머니가 청소년들의 일상생활 속에 권력자로 등장한다. 권위적인 아버지에게 저항할 때는 청소년과 여성-어머니가 같은 목소리를 내기도 하지만, 아버지와 여성-어머니가 연합하여 청소년의 삶을 자기들 마음대로 주물럭거리려고 하기도 한다. 또 어떤 경우에는 남성 청소년과 아버지가 여성-어머니를 착취하기도 한다.

여성-어머니와 청소년은 지금의 가족이 가지고 있는 문제를 직접 체험하기도 하지만, 그 안에서도 이해관계의 차이가 있기 때문에 쉽사리 연대할 수 없다. 하긴 애초에 가족을 당연하고 정당한 것으로 보는 이데올로기가 강고한 이 사회에서는, 가족의 문제를 느끼더라도 그걸 가족 제도를 바꿔야 한다는 생각으로 연결 짓는 사람들 자체가 드문 판이니 이 또한 하나의 탁상공론일 수 있다.

확실한 것은 페미니즘 운동과 청소년운동에게 가족은 같이 넘어야 할 산이라는 것이다. 역사가 짧은 청소년운동은 말할 것도 없고, 페미니즘 운동 역시 그동안 우리 사회의 가족을 충분히 비판하고 바꾸는 데 성공한 것 같지는 않다. 우선은 가족을 당연하고 정당한 것으로 포장하는 사회에서 가족을 하나의 상대적이고 사회적인 제도로 보고 그 제도의 문제들을 드러내는 데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가족끼리 서로 존중합시다.”, “서로 대화하는 가족을 만듭시다.” 같은 류의 캠페인을 넘어 가족이 사회적인 운동과 정치의 대상으로 생각되기 시작할 때 변화가 가능해질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청소년들과 여성들의 가족 안에서의 이야기를 공론화하고 우리의 다른 이해관계를 내세워 가족 제도에 스크래치를 내고 태클을 검으로써 가능할 것이다.


덧붙이는 글
공현 님은 청소년활동가네트워크 활동가 입니다.
수정 삭제
인권오름 제 218 호 [기사입력] 2010년 09월 08일 17:4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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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공현
걸어가는꿈2010.08.13 02:02

[세계의 인권보고서] 아동에 대한 법률상 폭력을 근절하기(2009), 모든 형태의 아동체벌근절을 위한 지구적 행동/세이브더칠드런 스웨덴

류은숙




[세계의 인권보고서] 아동에 대한 법률상 폭력을 근절하기(Ending legalized violence against children, global report 2009), 모든 형태의 아동체벌근절을 위한 지구적 행동/세이브더칠드런 스웨덴(Global Initiative to End All Corporal Punishment of Children/Save the Children Sweden)


모든 형태의 아동체벌근절을 위한 지구적 행동은 2001년 제네바에서 시작됐다. 유엔아동권리협약의 실현이라는 과제 속에서 모든 형태의 아동체벌을 근절하기 위한 행동을 촉구하고 있다. 세이브더칠드런 스웨덴은 1979년 세계최초로 스웨덴이 체벌을 명시적으로 금지하도록 하는데 기여했다. 두 단체가 공동으로 발간한 2009년 보고서에는 체벌금지를 향한 세계적 동향이 담겨있다. 이 보고서의 원문은 www.endcorpralpunishment.org에서 볼 수 있다.(역자 주)


아동폭력에 관한 유엔 특별대표, 마르타 산토스 페의 메시지

아동이 자신들의 인간 존엄성과 신체적 안전, 법 앞에 평등한 보호를 존중받을 권리는 현재 법률로 존재하는 모든 폭력을 끝낼 것을 요구한다. 유엔아동권리위원회가 체벌 및 모든 형태의 잔인하거나 굴욕적인 형태의 처벌로부터 보호받을 아동의 권리를 일반논평 8(2006년)에서 강조한 것처럼, 체벌금지에는 타협의 여지가 없다.

분명하고 명시적인 국가적 인권 규범의 기초가 필수적이다. 체벌금지 입법은 필수적이지만, 그것만으론 충분치 않다. 긍정적인 훈육과 사회적 지지와 행동 변화를 증진하기 위해서는, 꾸준한 홍보와 인식 개선 노력 및 (체벌이 아닌 대안적) 역량 만들기 노력을 통해 법적 개혁을 지원할 필요가 있다. 부모를 비롯해 아동을 돌보는 이들과 교사들이 긍정적이고 비폭력적인 형태의 훈육으로 옮겨갈 수 있으려면, 교재와 프로그램에 대한 지속적인 투자가 필요하다.

위 사진:유럽평의회 체벌금지 캠페인 포스터

체벌금지를 위한 인권적 기초

유엔아동권리협약이 제정된 지 20여년 동안 계속 유엔아동권리위원회는 모든 체벌을 법으로 금지할 것을 요구하는 것으로 협약을 해석해왔다. 대표적인 것이 유엔아동권리위원회가 2006년 채택한 일반논평 8이다. 아동폭력에 대한 유엔연구의 독립전문가인 파울로 핀헤이로 교수는 유엔총회에 제출한 보고서(A/61/299)에서 모든 국가는 체벌금지법을 제정해야 한다고 권고했다.

다른 국제인권조약 기구도 마찬가지로 체벌금지를 권고했다. 가령 고문에 관한 특별보고관은 2009년 보고서에서 “범죄에 대한 처벌로 명령되건 교육적 또는 훈육적 조치로서 관리되건 간에” 체벌은 금지돼야만 한다고 했다.

2008년 12월 유엔총회는 아동권리에 관한 결의안을 채택하고 모든 환경에서의 아동에 대한 폭력을 금지하고 근절하기 위한 법률적 조치를 취할 것을 국가들에게 촉구했다. 유엔인권이사회도 마찬가지의 권고를 2008년에 채택했다. “아동에 대한 체벌을 포함하여 체벌은 잔인하고, 비인도적이거나 굴욕적인 처벌 또는 심지어 고문에 해당할 수 있다”고 상기시켰다.

국가별 인권상황 정기 검토제도(Universal Periodic Review, 모든 유엔 회원국의 인권상황을 정기적으로 검토하는 제도)를 처음으로 시행하면서 유엔인권이사회는 아동에 대한 체벌을 적법화한 국가들을 되풀이하여 검토했다.

지역인권기구도 점차 체벌문제를 강조하고 있다. 아동의 권리와 복지에 관한 아프리카 헌장에 따른 국가보고서를 검토한 위원회는 최초의 결론적 의견에서 체벌금지를 권고했다. 유럽인권재판소는 점진적으로 아동에 대한 체벌을 반대하는 결정을 해왔고, 유럽 사회권위원회는 모든 형태의 체벌을 금지하지 않는 국가는 유럽사회헌장을 수행하지 않는 것이라고 봐왔다. 2008년 유럽평의회는 “아동구타에 반대하여 당신 손을 들라”는 캠페인에 착수했다. 이 캠페인은 모든 회원국에서 체벌을 금지하고 근절하기 위한 지역적 정부간 조직의 최초의 캠페인이 될 것이다. 47개 회원국 중 20개국이 완전금지를 입법했고, 더 많은 수가 법률초안을 논의 중에 있다. 미주인권위원회는 아동체벌 금지와 근절을 회원국의 인권증진에서 우선순위의 문제로 확정했다. 2008년 미주인권위원회는 미주인권재판소에 자문을 요청했다. 아동체벌금지가 미주인권협약과 인권선언에 부합하는지 아닌지에 대한 의견을 밝혀달라는 요청이었다. 이에 미주인권재판소는 자문의견은 불필요하다고 밝혔다. 왜냐하면 회원국들이 비준한 국제인권협약 하의 의무내용이나 미주인권재판소의 기존 관할사항에서 너무나 명확하게 드러나기 때문이라고 했다. 미주인권재판소는 아동은 “권리를 가지며 단순한 보호의 대상이 아니다”고 강조하면서 아동은 모든 인간과 마찬가지의 권리를 가지며, 국가는 사적영역에서나 공적영역에서나 이들의 권리를 보호해야만 하며 입법적 조치 뿐 아니라 여타의 조치가 요구된다고 했다.

위 사진:"폭력은 답이 아니라고 얼마나 얘기를 해야 되겠니?" <사진 출처; www.bhutanobserver.bt>

2009년 성취된 것, 성취되지 못한 것

모든 형태의 체벌(부모와 여타 보호자들에 의한 체벌을 포함하여)을 금지하는 법을 제정한 국가들은 세계적으로 25개국이다. 적어도 23개국이 완전한 체벌금지를 약속했고 그것을 위한 법 초안을 적극적으로 논의하고 있다.

전체적으로 109개국이 모든 학교에서의 체벌을 금지했다. 150개국은 법원에서 체벌형을 선고하는 것을, 109개국은 형벌기관에서 훈육적 조치로 사용하는 것을, 36개국은 거주시설과 보육시설, 수양보호 등 모든 보호기관에서의 체벌사용을 금지했다.

법 개혁 비율은 최근 몇 년 동안에 극적으로 증가했다. 1999년부터 2009년까지 17개국이 아동에게 폭력으로부터 동등한 보호를 제공하는 법률을 제정했다.

하지만, 여전히 세계 아동인구 중 단 3.2%만이 부모나 다른 보호자들에게 맞는 것으로부터 법적으로 보호된다. 4.6%만이 모든 형태의 대안양육기관에서 폭력으로부터 보호받을 수 있는 국가에서 산다. 체벌금지를 약속한 정부들이 법개혁을 이루고, 현재 논의 중인 법 초안들이 통과된다할지라도 세계아동인구의 1/5만이 법적으로 보호받게 될 것이다.

150개국 이상의 정부가 가정에서의 체벌금지에 대해 어떤 약속도 하지 않았다. 체벌이 학교에서 적법한 국가가 거의 90개국이다.

체벌 완전 금지를 성취한 국가들

1979년 스웨덴/1983년 핀란드/1987년 노르웨이/1989년 오스트리아/1994년 사이프러스/1997년 덴마크/1998년 라트비아/1998년 크로아티아/2000년 이스라엘/2000년 독일/2003년 불가리아/2003년 아이슬란드/2003년 우크라이나/2004년 루마니아/2004년 헝가리/2006년 그리스/2007년 네덜란드/2007년 뉴질랜드/2007년 포르투갈/2007년 우루과이/2007년 베네수엘라/2007년 스페인/2008년 코스타리카/2008년 남수단/2008년 몰도바공화국/2008년 룩셈부르크



스웨덴 - 체벌금지 30주년을 기념하다

스웨덴은 체벌금지법 30주년을 맞아 법의 효과와 스웨덴 사회의 변화를 기술하기 위한 보고서 <폭력은 결코 다시는 안돼-스웨덴의 체벌폐지 30년>을 발간했다.

스웨덴에서 1979년 부모에 의한 체벌을 금지하는 법이 제정됐을 때 대규모 선전 캠페인이 있었는데 그에 따르면 아이를 때리는 것이 더 이상 적법하지 않다는 것을 1981년까지 모든 가정의 90%이상이 인식하도록 하는 것이었다. 1960년대의 조사에 따르면 대부분의 취학 전 아동은 부모에게 맞았는데, 1970년대에는 50% 미만으로 1980년대에는 1/3로 줄었다. 2000년 이후로는 이 수치가 단지 몇 %에 지나지 않았다. 맞은 경험이 있는 아동도 빈도가 흔치않으며 아주 경미하게 체벌을 경험한 것으로 나타났다.

“지구상의 어떤 나라도, 얼마나 부자이고 잘 운영되던 간에, 아동에게 폭력과 학대로부터의 자유와 안전이라는 권리를 쉽사리 제공할 수는 없다. 이런 목표를 현실로 만들기 위해서는 아동에게 가까운 모든 어른들-부모, 교사, 이웃, 친척, 친구 등-의 헌신과 용기가 필요하다.
그 중심에서 아동에게 경청하는 시민사회, 그리고 법으로 아동의 권리를 지키고 부모를 지원하고 돕는 국가는, 신체적 및 정신적 폭력을 경험하지 않고 자랄 수 있는 모든 아동의 권리를 보장할 끝없는 과제를 수행하기 위한 전제조건이다.”(체벌폐지 30년 기념 보고서 중에서)
덧붙이는 글
류은숙 님은 인권연구소 '창' 연구활동가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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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오름 제 215 호 [기사입력] 2010년 08월 11일 16:35: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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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공현
걸어가는꿈2010.07.20 12:03


[논평] 서울시교육청의 체벌 금지 조치야 그냥 기본이지


학교 정문 앞에 ‘학교폭력 예방’ 현수막을 걸어놓고 그 밑에서 교문지도를 하며 학생들에게 기합을 주고 폭력을 가하는 아이러니한모습이, 서울에선 오는 2학기부터 좀 사라질 수 있을 것 같다. 서울시교육청이 2학기부터는 ‘체벌 전면 금지’를 취할 것을 발표한 것이다. 모 교사가 학생들을 폭행하는 동영상이 이슈가 된 것이 계기가 되었다. 청소년인권행동 아수나로 서울지부는 일단 서울시교육청의 체벌 금지 조치를 환영한다.

물론 엄청나게 뒤늦은 조치다. 글로벌 스탠다드 운운하는 이 정부에선 더더욱 그렇다. 한국 정부가 비준한 지 20년이 다 되어가는유엔아동권리협약에서는 19조에 아동에 대한 모든 형태의 폭력을 금지해 두었다. 유엔아동권리위원회는 논평이나 보고서 등을 통해서도 학교, 가정 등 사회 전 영역에서 체벌을 근절해야 한다고 해왔으며, 심지어 한국에 직접적으로 체벌을 금지하라고 권고하기도 했다. 초중등교육법을 2008년에 개정하면서 국제인권조약에 명시된 학생의 인권을 보장해야 한다고 명시했음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학교들에서 체벌 규정을 유지해 온 것은, 사실상의 불법이었다고 해야 하는 게 아닐까. 서울시교육청의 체벌 금지 조치는 교육의 기본, 인권의 기본을 이제야 내놓은 것뿐이다.


폭력에 관대하고 인권에는 무딘 학교에서는 학생간 폭력이나 성폭력, 차별 등 약자에 대한 폭력들에 대처하는 것도 어려운 법이다. ‘합법화된 폭력’이었던 체벌을 금지하는 것은 비폭력적인 학교, 인권적인 학교, 성적이 아니라 인간을 중심에 둔 교육을 만드는 데 필수적이다. 또, 우리는 체벌 금지의 대안이랍시고 상벌점제를 도입하는 등 학생들에 대한 통제를 강화할 우려가 있는 조치를 취해선 안 된다는 걸 분명히 해둔다. 학생들을 일방적으로 통제하는 방식을 극복하고 자율적인 방식, 소통하는 방식이 자리잡게 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이 와중에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에서 체벌 금지에 반발하며 “단계적으로 하라”고 한 것은… 그저 콧방귀가 절로 나온다. 첫 학기에는 성폭력을 금지하고, 둘째 학기에는 발바닥 때리기를 금지하고, 셋째 학기에는 손바닥 때리기를 금지할 텐가? 체벌 금지는 어떤 형태로 어떤 양의 폭력을 행사하든, 그 폭력이 당사자에게 잊지 못할 상처를 입힐 수 있음과 동시에 ‘교육적’ 효과도 거의 없고반교육적이기까지 하니 아예 그만 두라는 거다. 폭력 없이는 가르칠 수 없다면, 그건 더 이상 교육이 아니다. 체벌은 교육을 핑계로 한 약자에 대한 폭력이고 청소년들을 인간 이하의 존재로 보는 관점을 그 밑에 깔고 있다.

체벌 금지는 어쩔 수 없이 폭력의 가해자가 되어온 교사들을 위한 것이기도 하다. 체벌 금지라는 확실한 방침이 있어야, 교사들은폭력을 행사할 것인가 말 것인가 교사 개인이 고뇌하고 압박받고, 혹시라도 사고가 생기면 또 교사 개인이 책임져야 하는 상황에서 해방될 수 있다. 체벌 금지 조치는 교사들이 폭력에 의존하여 주먹구구식 교육을 유지하는 게 아니라, 제대로 된 교육을 할 수있도록 지원받기 위한 계기가 되어야 한다. 폭력교사를 근절하기 위해 교원평가가 필요하다는 헛소리(교원평가를 시행하고 있는 지금도 체벌, 학생인권침해가 끊이지 않는 걸 보라구!)도 더 이상 듣지 않아도 될 테고.


다시 한 번 서울시교육청의 체벌 금지 조치를 환영한다. 다만 과거 교육부에서도 체벌 금지를 추진하려 했다가 흐지부지 되었던 적이 있었음을 기억하기 바란다. 체벌 금지 조치가 폭력 동영상 파문에 대응하는 일시적인 립서비스가 되지 않기 위해서는 학교 현장에서 확실한 후속조치들을 취해 나가야 한다. 체벌 금지라는 기본 중에 기본에 만족하지 말고, 학생들을 강압적으로 통제하는 반인권적 학교 운영을 바꾸기 위해 두발복장자유, 강제야자폐지, 학생참여 보장, 표현의 자유, 집회․시위․결사의 자유 등 제대로 된학생인권조례 제정과 같은 종합적인 정책이 있어야 한다. 학생들의 인권을 존중하여 올바른 교육권을 보장하는 학교를 만들지 못한다면, 체벌 금지도 학교 현장에서 그리 의미 있는 것이 되지 못할 것이다.


서울시교육청의 이번 조치가 전국 모든 지역에서의 체벌 금지를 이끌어낼 수 있기를 바란다. 또한 학교 뿐 아니라 학원과 가정에서의 체벌도 근절해나가는 첫 걸음이 되기를 바란다. 아수나로 또한 서울시교육청의 체벌 금지 조치가 학교 현장에서 힘을 가질 수 있도록 학생들의 주체적 행동을 만들어내고 또 앞으로도 학생인권 신장을 위한 행동을 계속해나갈 것이다. 학교에서 교육의 이름으로 가장 약한 이들에게 폭력을 가하던 때가 있었으리라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그래서 ’체벌’이라는 말의 뜻을 모르는 청소년들이 점점 많아지는 미래를 상상해본다. 다시 한 번 서울시교육청의 체벌 금지 조치를 환영한다.



2010년 7월 20일

청소년인권행동 아수나로 서울지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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흘러들어온꿈2010.07.19 02:52



[인권문헌읽기] 쉽게 쓴 유엔아동권리협약

류은숙


최근 학생인권조례 제정을 둘러싸고 ‘내전’ 비슷한 것이 시작됐다. 입만 열면 사랑의 대상이라고 말하던 아이들에게 전쟁을 선포한 어른들과 그 어른들의 애독지가 나서서 아이들더러 ‘홍위병’ 운운한다. 사실 홍위병의 뜻이 뭔지 아는 어른들이 얼마나 될 런지도 모르겠다. 중국 역사 운운하며 이 단어의 뜻을 캘 의욕은 없다. 아무튼 그 단어를 아이들을 대상으로 써댄 어른들의 생각은 자신들의 각본에 맞는 아이들의 캐릭터를 만들어낸 건 아닌지 묻고 싶다.

그럼 소위 ‘홍위병’들의 요구사항을 보자. 함부로 머리 자르지 말고,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이 잡듯 훑어내지 말고, 때리지 말고 모욕 주지 말라고, 갖은 이유로 차별하지 말라고, 함부로 소지품 뺐지 말고, 억지로 새벽부터 한밤중까지 붙잡아두지 말라고, 1등부터 꼴찌까지 줄 세우는 교육 말고 좀 다른 식의 교육을 받게 해달라고, 자신들의 생각에 대해 말할 권리를 달라고 하는 것 등이다. 요즘 아이들 표현대로 하자면 ‘안습’한(슬프고 안타까운) 요구사항들이다.

위 사진:한줄 세우기를 강요하는 '일제고사'에 관해 청소년들이 반대하고 나섰다.


오늘 읽어볼 인권문헌은 이미 널리 알려진 것이지만, ‘유엔아동권리협약’을 골랐다. 지금 시기에 꼼꼼히 다시 봐야 한다는 생각에서다. 전문과 54개조에 이르는 방대한 문헌인지라, 쉽게 고쳐 쓴 것을 골랐다. 누가 쉽게 고쳐 썼냐하면 영국의 9살 아동이 협약을 읽고 자신의 말로 쓴 것을 내가 몸담았던 인권단체에서 교육활동을 위해 번역하고 가다듬은 것이다.



내가 인권운동을 시작하면서 처음 맡은 일이 유엔아동권리협약을 국내에 알리는 일이었다. 1991년에 유엔아동권리협약을 한국 정부가 비준했다. 비준한 당사국은 2년 내에 최초보고서를 그 후 5년마다 추가보고서를 유엔아동권리위원회에 제출해야 한다. 정부가 이 협약을 비준한 일도 최초보고서를 유엔에 제출한 일도 당시에 국내에선 전혀 몰랐다. 정부는 입을 다물었고 어떤 언론도 보도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어느 날 내가 일하던 인권단체에 편지 한통과 함께 두툼한 영문 자료가 날아들었다. 편지의 요지는 이러했다. 자신들은 유엔아동권리협약의 실천을 위해 일하는 국제인권단체인데, 얼마 전 대한민국 정부가 유엔에 보고서를 제출했다는 것, 한국의 인권단체들에게 이 사실을 알리고자 자료를 보낸다는 내용이었다. 정부가 얼마나 충실한 보고서를 제출했는지, 즉 유엔아동권리협약을 국내에서 실현하기 위해 어떤 노력을 했는지에 대해 검토하고 비판의견을 제시하는 것이 인권단체의 역할이라는 당부도 함께였다.

그 후 1년여 20여개 인권사회단체 사람들과 유엔아동권리협약을 공부했다. 없는 자료를 구해 한자 한자 번역해가며 공부했다. 토론회도 열었고, 협약을 알리기 위한 캠페인도 했다. 그런 과정을 통해 의견을 모아 유엔아동권리위원회에 민간단체 보고서도 제출했다. 정부대표들과 유엔아동권리위원회가 마주하는 회의를 지켜보러, 없는 돈 털어 제네바에도 가야했다. 그런 과정에서 나온 얘기들을 녹음하여 녹취록도 남기고, 국내에서 기자회견도 하고, 유엔이 내놓은 권고안을 놓고 토론회도 했다. 유엔아동권리위원회의 한 위원이 “한국의 아동에겐 아이일 권리가 없는 것 같다”고 개탄하던 모습이 떠오른다. 1차 보고서 이후 2차 보고서 때도 마찬가지의 일을 했다. 이런 과정을 통해 교사, 학부모, 청소년 등에게 ‘아동 인권’, ‘학생 인권’이라는 말이 퍼져나갔다. 어떻게 하면 협약에 담긴 인권존중의 원칙을 실현할 것인가를 각계에서 고민하게 됐다.

이건 그동안 있어온 수많은 노력들 중의 하나에 불과하다. ‘학생인권조례’ 제정은 이런 과정을 포함하여 사회각계의 오랜 고민과 실천을 통해 한국 사회에 출현한 과제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청소년 본인들의 목소리가 등장하고 활발해진 것이 그 진짜 의미를 살리는 소금구실을 하는 것이다. 아무리 갖은 양념과 장식으로 치장한 음식이라도 소금이 없으면 아무 맛도 낼 수 없다. 아동과 청소년의 의견, 관심과 참여야말로 학생인권조례건 무엇이건 이들 당사자에게 영향을 끼치는 모든 일에서 고려돼야 할 필수요소이다. 이게 유엔아동권리협약의 핵심원칙이다.

사실, 유엔아동권리협약의 존재를 전혀 모를 때에도, 한국의 청소년들은 여러 방식으로 인간다운 권리를 외쳐왔다. 헌법소원을 시도하기도 하고, pc통신 모임을 통해 두발자유를 위한 모임을 조직하기도 하고, 종교의 자유를 위해 학교의 강제 종교 활동을 거부하기도 했다. 이런 행동들이 불온한 것이라면 누구에게 어떤 기준으로 불온하다는 것일까? 미성숙해서 위험하다고? 모든 사람은 평생 공부해야 하고 평생 학생이라 하지 않는가? 우리 모두는 언제나 미성숙하고 위험하다. 그러나 감수한다. 실패와 실수를 감수한다. 그리고 또 시도하고 또 나아간다. 아동과 청소년도 마찬가지다. 실패하고 실수할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모든 가능성을 봉쇄할 이유는 될 수 없다. 당장 해야 하는 일은 불온한 것을 때려잡는 일이 아니라 불량한 것을 바로잡는 일이다. 옳지 못한 것을 그냥 감수하라고 가르치는 것은 교육이 아니다. 밤 10시까지 혹은 새벽 2시까지 공부만 하라고 학교(학원)에 감금하다시피하고, 머리카락을 자르고, 원치 않는 종교행사를 강제하는 것이 불량한 것이다. 불량한 것을 바로 잡으면 될 일이지, 강도를 잡지 않고 피해자를 비난하는 일은 그만둬야 하지 않을까?

독재자는 시민들이 모이고 얘기하는 것을 엄청 두려워한다. 아이들이 모이는 것 자체에 부들부들 경기를 일으키는 어른들은 교육자일까? 존경할 만한 어른일까? 아이들과 인격적으로 대화할 수 있는 상대방일까? 아이들이 모이거나 뭉치거나 의견을 교환하고 표현하는 것, 즉 시민․정치적 권리라는 인권이 호환마마보다 두려운 것은 시민의 권리행사를 감시하고 억압하는 독재자와 뭐가 다를까? 당신들이 제일 싫어하는 공산주의가 그런 것 때문에 망했다고 지적하지 않았던가, 자유세계는 그런 것을 보장하기 때문에 자유세계라고 자랑하지 않았던가, 정치가 그렇게 위험하고 나쁜 것이라면 왜 수많은 어른들은 기를 쓰고 정치를 하려할까, 왜 정치를 위해 아이들과 사진을 찍어대고 볼을 부벼댈까, 그런 여의도 정치 말고 우리의 생활세계에서 벌어지는 일들에 의견을 내고 변화를 가꾸는 것이 진짜 정치라고 여기는 것이 그렇게 무섭나, 그렇게 되면 직업정치인들과 논평가들의 밥그릇이 위태로워지기 때문에 아이들에게 X자 마스크를 씌우려는 것일까?

사실, ‘학생인권조례’에서 논의되는 내용이나 그간 아동․청소년 인권으로 얘기돼온 내용들을 떠올리면 미안하고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 과연 우리가 옹호하는 것이 ‘인권’이라 할 만한 수준의 것인가? 때리지 말라는 등등의 요구가 과연 21세기를 살아가는 ‘인간’에게 ‘권리’로서 요구될 만한 수준의 내용인가? 고통 받고 학대받는 동물을 구원하자는 얘기 같아서 미안하다. 학대로부터의 자유와 보살핌의 권리를 넘어 ‘사회구성원으로서의 권리’를 얘기해야 마땅한 마당에 ‘아동과 청소년은 동물수준을 벗어난 권리를 요구하는 게 사치인가’하는 한숨이 난다. 한 영화 평론가는 한국 영화에서 유괴당하고 살해당하고 중병에 걸리고 학대당하는 어린이 캐릭터의 역할에 대해 “고통에 붙박인 아이들의 캐릭터”라 한적 있다. 현재 아동인권, 학생인권에서 얘기되는 권리항목의 주인공들은 그저 고통에 붙박여 있다.

고통 받는 캐릭터를 벗어나 사회구성원으로서 누려야 할 권리로 향상시키는데 학생인권조례의 의의가 있을 것이다. 그런데 사상․양심의 자유, 집회의 자유, 학교의 의사결정에 참여할 권리 등 유엔아동권리협약의 핵심조항들로 거론되는 것들을 입에 올리기 무섭게 홍위병이란 이름을 뒤집어씌우는 것은 아이들을 고통의 캐릭터에 붙잡아 놓는 것이다.

나는 청소년 활동가들을 볼 때마다 오히려 그들로부터 배우고 의식화된다. ‘나이 어린 애들이….’, ‘대학이나 나온 후에 하면 안 되나’하는 불온한 생각들이 40대 중반이 된 내 속에서 슬금슬금 기어오를 때가 솔직히 있다. 그럴 때마다 방글․쌩글․화통하게 말하고 행동하는 모습들에 내속에 긴 세월 묵혀져온 위계니 뭐니 하는 것들과 현실주의로 둔갑한 배반의식이 뒷구멍을 찾게 된다. 청소년 활동가들은 기존의 틀에 구멍을 내고 있다. 있는 그대로 깁는다고 메워질 구멍이 아니다. 이미 새로 짜여 지고 있고, 실과 직조기를 손에 든 것도 그들이다. 불안한 어른들이 뭐라 하든, 그들은 고통의 캐릭터를 벗어나 자신의 이미지를 창조하고 있고, 불안과 공포가 지배하는 1등 독식의 교육문화를 벗어나 공감하고 어우르는 관계 맺기를 시도하고 있다.

나를 비롯하여 내 주변에는 나이 먹는 게 싫지만 젊어지는 것도 싫다는 사람들이 많다. 그 이유는 다시 학교를 다녀야 한다는 것이다. 아무리 젊은 게 좋아도 학교를 다시 다니기는 싫다는 것이 공통점이다. 그런 우리에게 청소년활동가들이 다른 생각을 자극하는 것 같다. 다시 젊어질 수 있다면 청소년 인권운동을 하고 싶다고, 신나게 다니고 싶은 학교를 만들고 싶다고…….

쉽게 쓴 유엔아동권리협약

우리에게 권리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나요? 유엔아동권리협약이란 법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나요?

우리의 권리란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려 줍니다. 또 우리가 행복하고 건강하고 안전하게 살 수 있도록 우리를 책임지는 어른들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알려줍니다. 물론 우리 자신에게도 다른 아이와 어른들도 똑같은 권리를 가질 수 있도록 도와야 할 책임이 있습니다.

협약(조약)이란 같은 법을 지키자는 나라들 사이의 약속입니다. 한 나라의 정부가 협약을 ‘비준한다’는 말은 그 협약에 쓰여진 법을 지키겠다는 뜻입니다.

우리나라는 1991년 11월 20일에 유엔아동권리협약을 비준했습니다. 이 말은 우리의 정부가 이 협약에 적혀있는 권리를 모든 아동과 청소년이 누릴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이 협약의 각 조항들은 우리의 권리를 하나씩 설명하고 있습니다. 협약은 법률가들을 대상으로 쓰여졌기 때문에 어른들도 이해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이제부터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조항들을 골라서 쉬운 말로 설명해 보려 합니다.

우리에게는 우리의 권리가 무엇인지 알 권리가 있습니다. 이 협약의 제 42조에 그렇게 쓰여 있습니다.

제1조
18세가 되지 않은 모든 어린이와 청소년은 이 협약에 적혀있는 모든 권리의 주인이다.

제2조
우리가 누구이든지, 우리의 부모님이 누구이든지, 그리고 백인이건 흑인이건 간에, 남자이든 여자이든 간에, 영어를 쓰든지 한국어를 쓰든지 서울말을 쓰든지 사투리를 쓰든지, 무슨 종교를 믿든지, 또한 장애인이건 아니건, 부유하건 가난하건 간에 상관없이 우리 모두는 이 협약에 적혀있는 권리를 가지고 있다.

제3조
어른이 우리에게 해 주어야 하는 것이 있을 때, 그 어른은 최선의 것을 주어야 한다.

제6조
모든 사람은 우리들, 아동과 청소년 모두가 생명을 누리고 건강하게 살아갈 권리가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제12조
어른이 우리에게 어떤 방식으로든 영향을 주는 결정을 내릴 때 우리에겐 우리의 의견을 말할 수 있는 권리가 있다. 그리고 어른은 우리의 의견을 진지하게 받아들여야만 한다.

제13조
우리는 말과 글과 예술 등을 통해 여러 가지 것을 알고 우리 생각을 말할 권리가 있다. 하지만 다른 사람의 권리를 해치지는 않는지 잘 생각해서 해야만 한다.

제14조
우리는 우리가 원하는 대로 생각할 권리가 있고, 우리 자신의 종교를 정할 권리가 있다. 부모님은 무엇이 옳고 그른지 배울 수 있도록 우리를 도와주셔야 한다.

제15조
우리는 다른 사람들을 만나서 사귀고 모임을 만들 권리가 있다. 물론 다른 사람에게 해를 끼치기 위한 모임은 안 된다.

제16조
우리는 사적인 삶(프라이버시)을 누릴 권리가 있다.

제17조
우리는 라디오, 신문, 텔레비전, 책 등을 통해 세계 곳곳의 정보를 모을 권리가 있다. 어른들은 우리가 이해할 수 있는 정보를 얻을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한다. 

제18조
우리의 부모님은 우리를 기르는 노력을 두 분이 함께 해야 하고, 우리에게 최선의 것을 해 주어야 한다.

제19조
아무도, 어떤 식으로든 우리를 해쳐서는 안 된다. 어른들은 우리가 매 맞거나 무관심 속에 내버려지게끔 놔두지 말고 우리를 보호해줘야 한다. 우리의 부모님에게도 우리들을 해칠 권리가 없다.

제22조
우리가 망명자인 경우, 우리는 특별한 보호와 도움을 받을 권리가 있다.

제23조
우리가 정신적으로나 신체적으로 장애인인 경우, 다른 아이들처럼 자라날 수 있도록 특별한 보살핌과 교육을 받을 권리가 있다.

제24조
우리는 건강할 권리가 있다. 우리는 아플 때 전문적인 치료와 보살핌을 받을 수 있어야 한다. 어른들은 우선적으로 우리가 아프지 않도록 먹이고 보살피는 데 최선을 다해야 한다.

제27조
우리는 적절한 생활수준을 유지할 권리가 있다. 부모님은 우리에게 먹을 것, 입을 것, 살 곳 등을 주어야 하고 만일 부모님이 어렵고 힘든 경우에는 나라에서 부모님을 도와주어야 한다.

제28조
우리는 교육을 받을 권리가 있다. 초등교육은 무료여야 한다. 또한 그 이상의 교육에도 무료 교육을 도입하여 우리 모두에게 기회가 주어질 수 있게 해야 한다. 학교 규율은 우리 모두가 귀한 사람이라는 데 어울리는 것이어야 하고, 뭐든지 이 협약에 맞도록 운영돼야 한다.

제29조
우리가 교육을 받는 것은 우리가 가진 사람됨, 재능, 정신적·신체적 능력을 맘껏 키우기 위해서이다. 또한 교육을 통해 우리는 자유로운 사회에서 다른 사람들의 권리를 이해하고, 깨끗한 환경을 생각하며, 책임질 줄 알고, 평화롭게 살아가는 법을 배워야 한다.

제30조
소수집단(예를 들어 미국의 인디언이나 우리나라의 이주노동자에 속하는)의 아동과 청소년에게도 자신만의 문화를 즐기고, 자신들의 종교를 믿으며, 자신들의 언어를 사용할 권리가 있다.

제31조
우리에겐 쉬고 놀 수 있는 권리가 있다.

제32조
우리가 일을 해서 돈을 벌 때는 건강에 안 좋거나 학교에 가지 못할 상황에서 일하지 않도록 보호받아야 한다. 우리가 일을 해서 누군가 돈을 번다면 우리는 우리가 일한 대가를 받아야 한다.

제34조
우리는 성적 학대로부터 보호받을 권리가 있다. 아무도 우리 몸에 우리 자신이 원하지 않는 것을 할 수 없다. 곧 누군가가 함부로 우리 몸을 만지거나 사진을 찍거나 말하고 싶지 않은 것을 말하게 할 수는 없다.제37조우리가 큰 잘못을 저지를 수가 있다. 잘못을 하면 벌을 받아야 하지만 그렇다고 우리에게 심한 창피를 주거나 상처를 주는 벌을 내릴 수는 없다. 최후의 방법인 경우를 빼고는 우리를 감옥에 들어가게 해서는 안 된다. 만일 감옥에 들어갔을 경우 우리는 감옥에서 특별한 보호를 받을 권리와 정기적으로 가족을 만날 수 있는 권리가 있다.

제38조
우리는 전쟁이 일어났을 때 보호받을 권리가 있다. 15살까지는 절대로 군대에 들어가거나 전쟁에 참여해서는 안 된다.(이 나이는 나중에 만들어진 국제협약으로 18세로 바뀌었다.)

제40조
우리가 범죄를 저질렀다는 혐의를 받을 경우, 우리 자신을 보호할 권리가 있다. 경찰과 변호사와 법관은 우리를 존중하여야 하고 모든 일을 우리가 이해할 수 있게 해 주어야 한다.

제42조
모든 어른과 아이는 이 협약에 대해 알아야 한다. 우리는 우리의 권리에 대해 배울 권리가 있고 어른들도 역시 이 권리들에 대해 배워야 한다.

아동권리협약에는 모두 54개 조항이 있는데, 나머지 조항들은 모든 아동과 청소년이 자신의 권리를 가질 수 있으려면, 어른들과 정부가 어떻게 협력해야 하는지에 대해 얘기하고 있습니다.

협약을 직접 읽어보는 것도 좋을 것입니다. 친구들, 부모님, 선생님과 협약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어 보세요. 다른 사람들에게 아동․청소년의 권리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은 곧 다른 아이들을 돕는 일이 됩니다. 아동과 청소년이 권리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더 많은 사람들이 알게 될수록, 사람들은 모든 아이가 건강하고 안전하고 자유롭게 자라나기 위해 해야 할 일들을 도와주려고 할 테니까요.

덧붙이는 글
류은숙 님은 인권연구소 '창' 연구활동가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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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오름 제 211 호 [기사입력] 2010년 07월 14일 21:0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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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어가는꿈2010.02.13 15:04

[페미니즘인(in)걸?] 왜 소수자들은, 여성/청소년들은, 오지랖이 넓은가

‘그래도...’의 반복

난다


학교를 그만두기 전, 학교 친구들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할 때, 늘 어느 순간 벽 같은 것에 부딪히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신나게 학교 욕, 선생 욕을 하다가도 누군가는 꼭 “너무 우리들 생각만 하지 말고, 선생님 생각도 좀 하자.”라고 이야기하곤 했다. 이를테면 체벌에 대해 수다를 떨 때, “어떻게 사람이 사람을 그렇게 때리냐? 진짜 그 선생 너무 심하게 때리는 것 같아.”라고 얘기하면, “에이, 그 선생님이 좀 심하게 때리긴 했지만 그래도 어느 정도의 체벌은 허용되고 그래야, 우리도 스스로를 통제하고 학교도 잘 굴러갈 수 있는 거 아니겠어?” 그리고 친구들의 끄덕거림이 따라온다. 늘 답답했었다. 왜 이 친구들은 자신들을 억압하고 통제하는 것들에 대해 그냥 그대로 수긍하는 거지?

비슷한 경험은 학교를 그만 두고서 인권활동이라는 걸 하면서도 자주 접했던 것 같다. 인권교육을 가서 학생들의 권리나 인권에 대해 얘기하면 청소년들은 ‘아무리 그래도’ 하면서 ‘선생님들’ 걱정을 했다. 고된 하루를 마치고 돌아온 아빠는 회사 뒷담화를 까다가 내가 발끈하자, ‘그래도’하면서 ‘사장님’을 옹호한다. ‘사장님’도 나름의 고충과 어려움이 있어서 그러는 거라고. 내가 보기엔 아빠가 훨씬 힘들어 보이는데.


구조적 무감각과 ‘착하게’ 길들여지기

사람들은 쉽게 이 사회의 기준을 받아들인다. 그래서 주류적인 기준을 흔드는 것들에 대해 불편함을 느낀다. 곧잘 ‘인권’을 이야기하고, ‘차별’을 이야기하고, ‘변화’를 이야기하지만 어떤 ‘선’을 넘어가지 않으려 한다. 그 ‘선’을 넘어가는 것은 기존 사회의 질서를 흔들고 침범하는 것이라 여긴다.

처음부터 그랬을 것 같진 않다. 청소년들이 “아직 어린 것들이”라는 말에 맞춰 “그래, 우린 아직 어리니까 좀 더 통제 받아야 해.”라고 생각하거나, 여성들이 이 사회 ‘미’의 기준에 맞춰 자신을 더욱 꾸며내고 혹독한 다이어트를 감행한다거나, 혹은 자신에게 상처를 준 남성들을 먼저 이해하고 배려하는 방식으로 상처를 치유하려고 한다.

같은 사회적 약자로 닮은꼴인 청소년과 여성, 그리고 약자들은 웃기게도 강자를 먼저 걱정한다. 그러한 여성성과 약자성(먼저 배려하고 먼저 이해하고)은 약자가 강자에게 훨씬 더 많이 잘 발휘되고 있다. 이는 성인/교사/남성-강자 중심 사회에서 그들 중심의 질서가 학생/여성 속에도 깊이 뿌리를 내려, 자신들을 둘러싼 억압마저 그들의 시선으로 보게 되기 때문이다. 또한 어렸을 때부터, 아주 예전부터 ‘남성/비청소년의 이야기’가 자연스러운 것으로 인정받는 사회를 살며 쌓아온 경험들이 우리들 마음 곳곳에 눌러 붙어 ‘내면화’되었기 때문이다.


생존하기 위해 강자 입장 내면화하기

소수자/약자들이, 권력 있는 자/강자들을 위하도록. 그래서 이 사회가 뒤틀리지 않고, 뒤집어지지 않게 고정시킬 수 있도록. 그렇게 사회는 우리들을 오랫동안 ‘착하게’ 길들여왔다.

그렇게 길들여진 ‘착한’ 사람들은 착하게 살아야 한다는 걸 받아들이고 산다. 고등학교 시절, 나는 착하고 착실했다. ‘야간자율학습’은 한 번도 빼먹지 않았고, 성적도 그럭저럭 유지했다. 학교의 온갖 규제가 고통스러워도, 선생님들이 우리를 때려도, 나는 그 순간순간을 흘려보냈다. 그런 것들을 그만두라고 말하고도 싶었지만, 그 순간에는 착실하게 참아냈다. 그 순간만 넘기면 되니까. 또는 그 순간에 내 목소리를 내기라도 하면, 눈앞에 징계나 탄압이 떨어질 테니까.

하지만 그런 시간을 보낼수록 선생님들이 우리를 때릴 때마다 그걸 계속 지켜보고만 있어야 한다는 게, 그럴 수밖에 없다는 게 괴로웠다. 나는 왜 아무 말도 못하는 거지? 나는 왜 이렇게 힘이 없지? 이런 고민을 하다가, 그냥 거기에 그럴 만한 의미를 부여해버렸던 것 같다. 어쩔 수 없어, 라고. 선생님도 그만한 이유-학생들을 대학에 많이 보내야 할-가 있어서일 테고, 그건 선생님도 어떻게 할 수 없는 일이니까, 라고.

먹고 사는 것, 여성들의 경우에는 사회적 인식도 그렇고, 학생들은 학교에서의 눈앞에 보이는 탄압이나 징계에 대한 문제 때문에 쉽게 바꿔내야겠다는 생각을 더 못하게 되는 것 같다. 나는 나의 생존을 위해서 이 체제에 편입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이렇게 편입되는 자기를 정당화하기 위해서는 강자의 입장을 이해해야 했다. 그리고 이 사람들을 정당화 시켜야 했다. 나한테 고통을 준 사람도 어느 정도 합당한 이유가 있었기 때문인 것이고, 이 사람들을 이해하게 되면 나는 덜 불편할 수 있으니. 그리고 그럴 때에야 나는 이 사회의 질서를 어지럽히거나 혼란스럽게 하는 나쁜 사람이 되지 않을 수 있으니. 그래서 나도 그러한 나 자신과 학교와 체벌하는 교사에 어떤 의미를 부여했던 것이다.

그래서 대부분의 사람들이 학창시절을 추억할 때처럼. 대학에 가고 나서, 자유시간이 많아지니, “아 그래도 고딩 땐 할 게 있었는데~”하는 생각이 드는 것처럼. 수능 보기 전에는 수능공부=쓸모 있는 짓/나머지 전부=휴식이라는 ‘공식’이 있었는데, 수능이 끝나고 이게 허물어지고 나니, 참 허무하더라는 것처럼.

너무 힘든 시절이었지만, 그렇게 힘든 시간만 있었다고 생각하기엔 내가 너무 비참하니까. 그래서 소소하고 시시콜콜한 일들을 더 크게 기억하고 추억하면서 그 때는 그래도 좋았지, 그래서 좋았지, 라고 생각하게 되는 것이 반복되고 반복되어 이 체제를 구성한다.


그래서, 그러니까

이 단단한 구조를 직시하는 것은 여성으로, 청소년으로, 약자로 살아가고 있는 나를 온전히 바라보는 것만큼 어렵고 힘든 일이다. 하지만 우리를 더욱 ‘착한 아이’로 길들이는 국가의 통제가 점점 더 검은 그림자를 펼쳐오는 이 때, ‘착한 아이’가 아니면 무차별적인 폭력으로 쫓아내버려도 된다고 생각하는 이 때, ‘국가’를 위해서는 권리를 주장하는 것도 멈춰야 한다고, ‘모두가 똑같은 손을 들어야 한다고’ 말하는 이 때. 우리 이제 더 이상 착해지지 않아도 되었으면 좋겠다. 이 커다랗고 단단한 기준을 뒤집을 만한 발칙함과 깐깐함이 우리에겐 더 많이 필요하다.


덧붙이는 글
난다 님은 청소년인권활동가네트워크 여성주의 팀 활동가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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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오름 제 190 호 [기사입력] 2010년 02월 09일 23:3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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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어가는꿈2009.11.25 22:02































[연합] 시민단체, 유엔 권고 이행 정부에 촉구(종합)
[경향]“경제규모는 세계 12위, 사회안전망은 부실투성이”



유엔사회권위원회에서는 특히 용산참사(강제퇴거는 최후의 수단, 주거권 보장을 위한 다양한 방안 강구), 일제고사(학교간 불필요한 경쟁을 유발하는 일제고사 시스템 재검토), 한예종(문화적 학문적 자율성 보장) 등을 직접 언급했습니다.(번역본 초안은 첨부.. 초안이고 불완전한 번역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밖에도 노동3권의 실질적 보장을 위한 방안 등에 대해서도 주목할 만한 권고입니다.
 



청소년인권활동가네트워크가 NGO반박보고서 작성에 참여했기 때문에...
아래는 제가 발언하려고 정리, 메모한 겁니다. 아동, 청소년의 권리와 관련된 권고사항에 대한 거예요 ^^;
발언 시간 부족으로 다 이야기하진 못했지만;
참 날씨가 추웠어요 흙 ㅠㅠ

아동권/청소년인권 관련해서 권고된 내용은 대충 다 언급했구요.
그외의 것은 직접 보시어요 ㅎㅎ




(교육권)
우선, 유엔사회권위원회에서 한국의 교육 현실, 청소년들의 인권 현실에 대해 권고를 한 것을 환영합니다. 특히 사회권위원회가 이명박정부 이후 만들어진 일제고사가 학교간의 불필요한 경쟁을 유발하고 있으므로 재검토하라고 한 것은, 이명박 정부가 시행하고 있는경쟁적인 교육 정책의 문제점을 국제사회 또한 인정한 것이라고 봅니다. 유엔사회권위원회는 경쟁적 교육으로 인한 학생들의 건강권침해, 주입식 학원, 학교에서 심야에 운영하는 강제적인 야간자율학습 등의 수업, 주입식 수업 운영을 억제하라고 권고했습니다.그리고 과도한 학습의 폐해를 알리라고 권고했습니다. 이는 몇 년 전 2차 권고 때는 교육비, 사교육비 문제에 대해서만 집중적으로권고가 나온 것에 비해 한국 현실을 더 반영한 것으로, NGO보고서 등을 통해 청소년들의 목소리가 반영된 결과라고 생각합니다.이러한 권고를 한국 정부는 귀담아 듣기 바랍니다.
야간자율학습, 보충수업, 0교시 등 과도한 학습은 과거부터 몇 십년동안 한국 교육에서 학생들을 죽어나게 만드는 범인 중 하나로 지목되어 왔습니다. 그러나 이는 억제되기는커녕 현 정부의학교자율화, 일제고사 등의 정책들로 조장되고 있습니다. 얼마 전 발표된 학생인권실태조사나 국정감사에서는 중학교, 초등학교도보충수업을 하고 0교시를 하는 곳이 생기고 있다는 현실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번 유엔사회권위원회의 권고는 이런 정부 정책에제동을 거는 것입니다.


(체벌/그린마일리지)
유엔사회권위원회의 위원들은 지난번에 한국에 방문했을 때 한국의체벌 현실에 대해 많은 관심을 표했던 적이 있습니다. 유엔사회권위원회는 체벌을 억제하기 위한 노력으로 그린마일리지제도를긍정적으로 평가했습니다. 이는 그린마일리지-상벌점제가 체벌 억제에 큰 효과가 없다는 지난 경남에서의 조사 결과나, 상벌점제로인해 40% 이상의 학생들이 더 많은 통제를 받고 있다고 느끼는 것 등 한국 학교의 현실에 대해 유엔사회권위원회가 잘 알지못했기 때문이라고 생각되며, 아쉬움을 느낍니다. 그러나 이는 유엔사회권위원회가 아동, 청소년들에 대한 체벌을 정부가 금지하고억제하기를 바라는 권고일 것입니다. 정부는 현재 법적으로 사실상 허용되어 있는 학교에서의 체벌을 금지시키고, 가정과 사회 모든곳에서의 체벌 금지와 억제를 추진할 것을 요구하는 바입니다.


(성교육, 청소년노동 등)
 유엔사회권위원회는교육권 외의 분야에서도 아동, 청소년들의 인권 상황에 대해 우려를 표했습니다. 성교육을 실질적으로 시행할 것, 비혼모에 대한사회적 편견을 없앨 것, 아동 성매매 근절, 학교에서 청소년노동, 직업에 대한 교육을 할 것 등이 최종권고에 포함되었습니다.이는 교육 분야 외에도 사회 전반적으로 청소년들이 인권을 침해당하는 한국의 현실을 반영한 것일 겁니다.
여전히 성교육이형식적으로만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 다들 알고 있습니다. 유엔사회권위원회는 10대 비혼모나, 아동청소년에 대한 성폭력이나 성매매에대해서도 지적했습니다. 청소년들이 양질의 일자리를 얻지 못하고 있고 청소년노동자들의 인권이 침해당하고 있는 현실도 심각합니다.청소년노동자들은 저임금과 많은 건강권 침해, 부당대우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경제위기 이후 청소년노동자들의 일자리, 노동환경은 더열악해지고 있습니다. 정부는 아동, 청소년들을 문제 해결의 당사자이자 인권의 주체로 보고 유엔사회권위원회의 권고를 귀담아 들어실효성 있는 방안을 내놓아야 할 것입니다.



유엔사회권위원회는 이밖에도 빈곤 문제의 개선 등 많은 것을권고했으며, 이번 심사와 권고에서는 한국의 경제, 사회, 문화적 권리의 현실이 열악하다는 것을 반증하고 있습니다. 아동,청소년들 또한 빈곤이나 의료 등 여러 사회권 문제의 당사자입니다. 최저생활기준 이하에서 생활하는 많은 가정에도 아동들이 있을것입니다. 보편적인 사회권이 보장되어야 하는 것은 아동 청소년들의 입장에서도 중요한 일입니다. 한국 정부가 이번 권고를곱씹어보며, 교육 예산, 복지 예산, 특히 교육재정의 삭감은 심각한 수준인데요, 이러한 공공 재정들을 축소하려고 하고 있는자신의 모습, 교육의 경쟁성을 더욱 강화시키고 있고 청소년들의 인권은 안중에도 없는 스스로의 모습을 반성해보기 바랍니다.
이번 유엔사회권위원회의 권고를 한국 정부가 반드시 반영하길 바랍니다. 몇년 동안 여러 국제인권기구 등이 한국 정부에 많은 권고를내왔지만, 거의 지켜지지 않았습니다. 한국 정부가 성의있게 이 권고를 수용하고 이행하길 바라는 바입니다.






유엔사회권위원회 3차권고 한글번역본과 이행촉구 시민사회단체 기자회견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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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공현
걸어가는꿈2009.11.11 12:50

인권오름 기사 원문


원래 난다가 쓰기로 한 건데, 땜빵으로 이틀만에 써내려간... 글
뭔가 잘 쓴 거 같으면서도, 그래서 뭐 어쩌자는 건지 딱 정리하는 부분이 누락된 기분이 드는 글이다.








[페미니즘인(in)걸] 괴물들과 공주님들?

아동 성폭력 사건을 대하는 우리의 자세


공현


‘몬스터’(우라사와 나오키 지음)라는 만화가 있다. 제목부터가 ‘괴물’인 이 만화에는 진정으로 천재적이면서 잔혹한 살인자, 요한이 등장한다. 그러나 절대악인 요한을 추적하면서 드러나는 진실은, 그 요한조차도 ‘인간병기’를 만들어내려고 한 어른들의 실험에서 비롯된 괴물이라는 것이었다. 결국 이 만화에서 요한이 사실상의 자살로 사라진 후, 남겨진 질문은 이것이다. “괴물은 누구인가?”


괴물이 되어버린 가해자

사형, 종신형, 거세, 신상정보 공개, 전자발찌……. 최근에 아동 성폭력 범죄의 가해자에게 가해져야 하는 처벌이라면서 거론되는 것들이다. ‘조 아무개 씨’의 여성 아동에 대한 성폭력 사건이 TV 시사 프로그램을 통해 알려지면서 가해자를 비난하는 목소리들이 봇물처럼 쏟아져 나오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가해자에게는 인권이 없다”라면서 “그런 새끼들은 쳐죽여야 한다”라고 외치고 있다. “가해자에게 인권은 없다.”, “짐승만도 못한 놈” 같은 말들 속에 숨은 뜻은 무엇일까? 그건 아동 성폭력의 가해자(줄여서 가해자)는 자신들과 다른 사람, 아니 다른 존재라는 것이다. 그런 말을 하는 사람들에게 있어 가해자는 자신들과는 무관한 존재, 이해할 수 없으며 제거되고 박멸되어야 할 ‘괴물’들이다.

그러나 아무리 끔찍한 성폭력 가해자라 하더라도 그 사람들은 체포되어 감옥에 격리되기 전까지 이 사회 안에서 살아온 사람들이다. 범죄는 사회적인 사건이며, 끔찍한 사건의 가해자도 이 사회의 일부이다. 아동 성폭력과 성폭력에 대한 연구를 보자. 아동 성폭력 범죄 가해자들은 학력이 낮고, 자아존중감이 낮고, 성적 좌절을 많이 경험한 사람들이 많다. 그들은 자신들의 열등감을 해소하기 위해 신체적/사회적 힘이 약한 아동을 대상으로 폭력을 저지르는 것이다. 뿌리 깊은 남성 중심적 문화와 음주에 관대한 문화도 원인이 된다. 애초에 남성으로서의 열등감을 해소하기 위해서 여성에게 성폭력을 가한다는 심리 자체가 남성 중심적 사회 문화에서나 가능한 일이다. 여성/아동의 사회적 지위가 높지 못하고 여성/아동이 약한 존재, 무력한 존재로 묘사되고 만들어지는 것 또한 하나의 원인일 것이다. (관련하여 더 자세한 내용은 한겨레21 제781호(2009.10.16.) 안수찬 기자의 「아동 성폭행범 처벌 ‘무겁게’보다 ‘확실하게’」를 참고하시라.)

사진설명여성단체가 조두순 사건에서 음주를 이유로 감형된 것을 비판하는 캠페인을 하고 있다.

너무 많은 사람들이 사건의 사회적 맥락이나 원인들을 외면한 채, 그리고 평소에는 폭력들에 관대한 모습마저 보이면서, ‘비정상적인 것’들로 돌출된 부분들을 잘라내려고만 한다. 마치 이백 대, 삼백 대를 때린 교사들에게는 ‘부적격 교사’라는 딱지를 붙이면서 한 대, 다섯 대를 때리는 교사들에게는 관대한 것처럼 말이다. 그러나 체벌은 학교의 폭력적인 시스템과 규제, 체벌에 관대한 문화에서 비롯되는 것이며, 한 대를 때리든 이백 대를 때리든 체벌은 근절되어야 한다. 성폭력은 사회의 문화와 구조에서 비롯되는 것이며, 30대를 강간하든 아동을 강간하든, 강간을 하든 성추행을 하든, 성폭력 과정에서 피해자가 입은 상해가 크든 작든, 성폭력은 근절되어야만 한다. 아동과 여성의 사회적 지위가 낮고 차별과 폭력, 성적 대상화에 노출되어 있는 이 사회가 바뀌어야 한다. 바로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사회가.

이러한 생각은 하지 않으면서 그저 조 아무개 씨를 죽여버려야 한다고 외치며 ‘가해자에게는 인권이 없다’고 하는 사람들의 모습은, 심하게 말하면 위선적이다. 술 때문에 일어난 일이라면서 자기 당 국회의원이 저지른 성폭력을 무마하려고 술잔을 깨는 퍼포먼스를 하며 성폭력에 관대한 모습을 보였던 한나라당 의원들이 성폭력 처벌을 강화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는 모습을 보라. 컴퓨터 앞에 앉아서 조 아무개 씨를 죽여 버려야 한다고 댓글을 달고서 바로 다음날에 성매매 업소에 가는 남성들, 여직원에게 성희롱을 하는 남자 상사들, 강간 포르노를 보면서 하악거리는 남성들, 소녀시대나 원더걸스의 ‘섹시함’에 속으로 야릇한 긴장감을 느끼면서 뮤직비디오를 보는 남성들이, 없을 것 같은가? 다시 한 번 묻자면, “괴물은 누구인가?”


아이들은 공주님이 아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아동 성폭력에 특히 더 분노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물론 신체적, 사회적으로 더 약자인 아동에게 가해지는 폭력은 더욱 더 비난받을 만하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부분들이 있다. 사람들이 아동에 대한 다른 폭력보다 성폭력에 특히 더 거부감을 가지며 분노하는 이유, 그리고 아동이 아닌 경우에도 신체적으로 저항할 만한 힘이 없는 여성이나 장애인이 당한 성폭력보다 아동의 경우에 특히 더 분노하는 이유 등등…….

일단, 실제 그 사건에서 피해자와 가해자 사이의 권력 관계가 어떤지를 떠나서, 피해자가 아동이라는 것만으로 우리는 더 많이 분노하도록 프로그래밍되어 있다. 그것을 종족을 보전하고자 하는 유전자 프로그램으로 설명할 수도 있겠지만, 근대 이후로 형성된 아동관도 한 몫 하고 있음은 부정할 수 없다. 아동은 교육받고 보호되어야 할 존재이며, 무력한 존재라는 아동관 말이다.

그래서 이러한 ‘끔찍한’ 아동 성폭력 사건이 공론화될 때마다 가해자에 대한 비난과 동시에 아이들을 보호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늘어간다. 보호자들의 불안감을 이용하여 위치추적 서비스나 CCTV 등을 다루는 업체들은 광고를 한다. 아이들의 휴대전화에 위치추적 서비스를 달고, 조금이라도 연락이 안 되거나 보호자(부모, 후견인, 교사 등)의 시야를 벗어나면 안절부절 못하는 어른들이 늘어난다. 안전을 생각하는 그 마음이야 잘 알겠지만, 그 결과는 아이들의 행동반경을 제한하고, 아이들에 대한 감시를 늘리는 것으로 나타나기 십상이다.

사진설명정부에서 발벗고 나서 제공해주는 위치확인 서비스. 아동이든 장애인이든 본인의 동의 의사를 확인하는 것은 필요하지 않고, 보호자가 서류만 갖추면 신청할 수 있다.

다른 한편으로, 아동 성폭력 사건에 분노하는 사람들 중에는 아동과 성을 연관짓는 것 자체에 거부감을 느끼는 사람들도 있다. 그 사람들은 사건의 끔찍함에도 분노하지만, 아동을 대상으로 성욕을 느낄 수 있다는 것만으로 가해자를 ‘괴물’ 취급하고, 아동을 성과 연관지어 생각하기를 꺼려한다. 아동은 성과 무관한 순수한 존재로 남아야 하며, ‘성으로부터’ 보호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육체적 성을 얘기하기를 꺼려한 나머지 이렇게 말하기도 한다. “성폭력은 영혼을 파괴하는 범죄다.” 성폭력은 지극히 신체적인 범죄인데 말이다.)

이런 태도가 아동을 성적으로 무력하고 무지한 존재로 만들고 성폭력 사건이 일어났을 때 사건의 매듭을 푸는 것을 더 어렵게 만든다는 것은 참으로 역설적인 일이다. 아동이 성적인 존재이자 주체일 수 있음을 인정하지 않고, 체계적이고 내실 있는 성교육이 이루어지지 않는 사회에서는, 성폭력 피해를 입은 아이들이 자신에게 일어난 사건을 명명하고 인식할 언어와 지식을 갖지 못하기 십상이다. 조 아무개 씨가 가해자인 이번 사건에서는 상해와 폭력의 정도가 심하여 피해 아동이 자신의 피해를 명확하게 인식할 수 있었다. 그러나 예를 들어 작년에 대구의 초등학교에서 집단적으로 일어났던 성폭력 사건의 경우, 어떤 경우에는 성폭력의 피해/가해를 특정하기도 어려웠고 때로는 그것이 성폭력인지 여부를 가리기 어려운 측면조차 있었다. 사건의 당사자인 초등학생들이 자신의 경험을 명확히 규정하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최소한 신체적인 측면에서 근력으로나 지구력으로나 아이들이 약자일 수밖에 없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일이다. 그러나 이러한 보호주의의 결과 아이들이 더욱 더 사회적인 약자로 인식되고 일방적으로 보호받아야 할 존재로 인식된다면, 또 아이들이 성에 대해 더 무지한 채로 남게 된다면, 그것이 과연 아이들에 대한 범죄나 폭력, 차별을 줄이는 데 얼마나 효과적일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아이들의 삶을 완벽한 감시 하에 두고 아이들의 자유를 박탈할 생각이 아니라면 말이다. 어째서 아동에 대한 폭력 사건이 공론화될 때마다, ‘피해자’라는 아이들이 자신들의 자유를 제한당하는 결과가 초래되는 것인지 이 불합리함은 참 설명하기 힘들다.

아이들 자신을 포함하여 이 사회의 모두가 해야 할 일은 성폭력 범죄 자체를 줄일 방법을 강구하는 것이 아닐까? 아동이 스스로를 지킬 힘을 줄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하지 않을까? 아이들이 성에 대해 더 많이 알고 더 잘 대처하고 성폭력 피해를 입더라도 스스로 그것을 이야기하며 극복할 수 있게 해야 하지 않을까?

아이들은 성에 살고 있는 공주님이 아니며, 아름다운 동화 속에 사는 존재도 아니다. 아이들은 이 사회에서 당신들과 같이 살고 있는 사람들이다. 우리가 기억해야 하는 것은, 아동 성폭력 사건은 어느 설명 불가능한 괴물이 우리가 지켜줘야 할 순수한 공주님을 납치한 동화 속 이야기가 아니라 이 사회의 현실이며, 괴물을 쓰러뜨리고 공주님을 성 안에서 보호함으로써 해결될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덧붙이는글
공현 님은 청소년인권활동가네트워크 여성주의 팀 활동가입니다.
인권오름 제 178 호 [입력] 2009년 11월 10일 22:4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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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공현
흘러들어온꿈2009.10.10 03:26

[논평] 조OO 아동 성폭력 사건에 대하여


1. 우리는, 성범죄가 특히 여성에게 신체적, 정신적, 사회적으로 큰 피해를 주는 반인권적이고 반드시 근절되어야 할 범죄라는 점을 확인합니다.


1. 우리는, 아동의 인권 보장은 사회의 중요한 의무이며, 아동의 권한 강화라는 맥락에서 아동에 대한 특별한 지지와 지원, 보호가 필요하다는 점을 확인합니다.


1. 우리는, 성범죄 가해자에 대해 법률에 따른 엄격한 법 집행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점을 확인합니다. 하지만, 가해자에게 가해지는처벌이 권력자의 자의적인 판단에 의해 이루어지거나, 합리적인 수준을 넘어서 이루어지거나, 사법절차에 의하지 않고개별적/개인적으로 이루어져서는 안된다는 점 역시 분명히 합니다. 이러한 원칙은 우리 모두의 인권을 지키기 위해 필요한, 매우중요한 기준입니다.


1. 우리는, 조OO 아동 성폭력 사건 역시 피해아동에 대한 심각한 반인권적 범죄라고 판단하며, 가해자는 엄격한 처벌을 받아야 한다고생각합니다. 더불어 아동 성폭력을 근절하기 위해서 우리 사회 전체가 사회 모든 영역에서 함께 노력해야 함을 뼈저리게 느낍니다.


1. 동시에 우리는, 대통령을 포함한 정부기관과 보수적인 언론들이, 형벌의 경중 문제만을 부각시키면서 지금까지 지속적으로문제제기되었던 성범죄 예방 및 피해자 지원, 남성 중심의 사회문화 개혁 등 종합적이고 근본적인 대책을 수립하고 실행하는 것에대한 책임을 회피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더욱이, 지금까지 남성의 각종 성범죄에 대해서 매우 관대하고 제대로 된 처벌조차이루어지지 않았던 사회적 경향에 대해 언급하지 않은 채 개별 아동 성범죄 사건의 ‘처벌’에 대해서만 치중하는 것은 위선이라고평가합니다. 또한 이러한 과정에서 그들이 보이는 반인권적인 인식과 행동, 정치적 의도에 대해 우려를 느낍니다.


1. 우리는, ‘아동 성폭력에 대한 <처벌>’에만 초점이 맞춰질 뿐, 실제로 성범죄 예방을 위한 정책 수립 및 교육,피해자에 대한 지지와 지원 등이 거의 이루어지지 않는 사실을 지적합니다. 정부기관이 그저 분노한 여론에 편승하여 전자발찌의무기한 착용이나 보호관찰제도의 확대, 화학적 거세 등의 자극적이고 손쉬운 ‘처벌 강화’의 방편들, 하지만 근본적이지도인권적이지도 않은 미봉책들을 꺼내어놓는 모습은 실망과 우려를 동시에 갖게 합니다.


1. 또한 우리는, ‘<아동> 성폭력에 대한 처벌’에 초점을 맞추려는 정부기관과 언론들이 성인 여성에 대한 성범죄에대해서는 관대하면서, 아동에 대한 성범죄에 대해서는 매우 엄격한 입장을 취하는 모습이 굉장히 모순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는,술에 취한 상태에서 동석한 여성을 성추행했던 최연희(현 18대 국회의원, 무소속, 당시 한나라당 국회의원)에게 2심에서벌금500만원의 선고를 유예함으로써 사실상 무죄를 선언했던 사법부의 판결과, 그 성추행이 술 때문이라며 술잔을 망치로 깨는퍼포먼스를 보여줬던 박진(현 18대 국회의원, 한나라당, 당시 한나라당 국회의원), 그리고 그러한 상황에 관대했던 언론들을기억합니다. 우리는, 언뜻 엄격해보이면서도 사실 전체적으로 남성이 저지르는 성범죄에 대해 매우 관대한 이러한 사회분위기 속에서아동에 대한 성범죄 역시 절대로 예방할 수 없다는 사실, 또한 그런 사회 속에서 피해자 아동은 성장하는 동안 점점 더 심한신체적, 정신적, 사회적 상처를 받을 수 밖에 없다는 사실에서, 현재 정부기관과 언론의 무책임함과 위선적인 모습을 확인하게됩니다.


1. 우리는, 이런 반인권적인 ‘처벌’ 중심의 논의가 일정한 정치적 흐름 속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현재 정부는, 몇몇 특정한불법행위에 대해서만 형벌을 과도하게 강화하고 있습니다. 정부와 한나라당은 집회 또는 시위, <아동> 성범죄 등에대해서는 매우 엄격하게 법을 적용하고 형벌을 강화하려고 하지만, 기업이 저지르는 부당노동행위나 탈세 등의 불법행위, 고위공직자의 위법행위나 업무상 책임 등에 대해서는 법을 느슨하게 적용하고자 하는 모습을 보입니다. 이렇게 자의적인 기준에 따라차별적으로 법을 이용하는 것은, 결국 돈과 권력을 가진 사람들의 입맛에 맞게 사회를 통제하려는 의도일 수 있습니다. 이러한의도는 결국 광범위한 인권침해를 낳게 됩니다.


1. 우리는, 성폭력의 근절이 매우 어려운 과정이라는 사실을 통감합니다. 남성 위주의 권력사회 속에서 성폭력은 곳곳에서 일어나며,단순히 처벌을 강화하는 것을 통해 막을 수도 없기 때문입니다. 성폭력 사건을 정치적으로 이용하거나, 분노를 부추기는 것은 더더욱성폭력의 예방을 어렵게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번에 아동 성폭력 사건이 또 한 차례 공론화된 것이, 부디 정부기관과 언론,그리고 모든 사람들이 성폭력의 본질과 예방에 대해 책임감을 가지고 진지하게 모색하는 계기가 되기를 바랍니다.


2009년 10월 8일


인권운동사랑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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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공현
딱딱한꿈2009.10.07 11:39


쉽게 쓰라고 뭐라 할지 모르겠지만-
애초에 다른 분들이 이 논의에 있어서 구사하는 "짐승만도 못한"이니 "베풀 인권"이라느니 "영혼"이라느니 하는 언어 자체가 제가 이해하기엔 너무나 고난도의 것이기에, 저도 거리낌 없이 저에게 가장 쉬운 언어를 택하여서 짧게 씁니다.



@ 인권에는 '인간'이라는 것 외엔 아무 자격도 필요없다

최근에 새로 나온 책인 『인권의 문법』(류은숙) 서문을 보면 '자연권' '시민권' '인권'을 구별하여 설명하는 부분이 있습니다.

뭐 간추려 말해서 자연권이니 시민권이니 하는 것은 그 권리의 '자격'을 따지는 속성이 있지만 '인권'은 자격을 묻지 않는 권리라는 겁니다.
인권은 풀어 쓰면 그냥 '인간의 권리'니까요. 인간이기만 하면 어떤 자격도 묻지 않고 자명하게 인정되는 것이 인권입니다.(여기에서 '자명'하다는 것은 인권의 역사성이나 사회성을 부정하는 것이 아닙니다. 인권은 인간에 의해 만들어진 것(하긴, "권리"라는 발상 자체가 다분히 인조적인 건데)이니까요-. 다만 인권 자체의 논리 안에서 인권은 자명하다는 말입니다.)

* 인권의 실제적 보장은 결국 국가-사회에 의한 법이나 질서에 의한 보장이므로 결국 인권은 국가에 의해 보장되는 개념이며 시민권이다... 라는 아렌트식 논의는 그냥 넘어가구요. 이건 정말 정치학자스러운 논의니까.


그래서 인권을 이야기할 때 가장 처음 문제가 되는 건, 어쩌면 '인간인지 아닌지'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단적으로 말해서, 여성, 장애인, 흑인 등은 '인간'이 아니던 사회가 있었지요. (뭐, 이 경우엔 사실 '시민권'에 가까운 개념이지만 은유적으로 넘어가고...)
그러나 그런 자격 조건을 모두 넘어서가면서 선언된 것이 '인권'입니다. 그리고 그런 자격조건에 따른 차별들을 넘어서는 투쟁들에 정당성을 제공해온 것이 인권입니다.
(- 태아가 인간이냐, 사이보그가 인간이냐 등의, 애초에 '인간'이라는 경계 그 자체가 철학적이거나 생물학적이거나 유물(唯物)적인 면에서 모호해지는 영역들이 존재할 수 있지만요.)

누군가가 인간인 이상 그 누구도 그 사람의 인권을 박탈한다고 선언할 수 없습니다.
그 누구도 그 사람의 행위에 대한 가치판단을 가지고 그 사람의 존재에 대해 인간이 아니네 맞네를 판단할 수 없습니다.
뭔가 생물학적이고 유물(唯物)적 차원에서 인간이 아닌 경우가 아니라면요


"넌 인간인데 인간이 아냐 ㅋ"는 말이 안 되잖아요? -_-

예를 들어, 명제로 표현하면-
: 살인범은 살인을 한 사람이다.
  사람이면 인권을 가지고, 인권을 가지면 사람이다.
  살인을 하면 인권을 박탈당해야 한다.
  인권을 가지지 못하는 살인범은 사람이어서는 안 된다.

이건 진중권이 거창하게 비트겐슈타인까지 인용해가며 쓴 명문 중 하나인 "반대를 위한 문법적 착각"의 한 부분을 연상시키는 논법입니다. 
"나는 당신이 남자인 것을 반대한다." 
"나는 당신이 인간인 것을 반대한다."



 만일 살인범이 정말로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한다면 사람의 법률로 살인범을 처벌하는 것도 우스운 일입니다. 사람이라는 전제 하에서 법률이 적용되고 책임을 묻고 처벌을 하는 거니까요.


애초에 누군가가 인간인 이상, 인권이 있네 없네를 논하는 것 자체가 무의미한 모순입니다.




@ 범죄자의 인권제한은, 의무를 어겼기 때문이 아니다.

인간에게는 인권이 있고 그 인권을 보장하는 것이 사회의 목적이다 라는 것은 프랑스 혁명 등의 역사적 과정 속에서 근대 사회가 성립되면서 이루어진 기본적인 약속입니다.
물론, 어느 사회든지 범죄자들의 인권을 제한(처벌)합니다.

하지만 그 제한의 논리는 "사회의 약속인 법을 어긴 당신들은 인권이라는 약속을 누릴 수도 없다!"가 아닙니다.

"많은 사람들의 인권을 보장하기 위해서 어쩔 수 없이 필요최소한으로 타인의 인권을 침해하는 자들을 처벌한다 / 또는 그런 일이 다시 일어나지 않도록 예방, 교화한다."입니다.

(즉 "범죄자는 인권이 없다", 가 아니라 - "범죄자도 인간이라서 기본적 인권을 누려야 하지만, 더 큰 인권침해를 막기 위해 어쩔 수 없이 필요최소한으로 인권을 일부 제한하는 조치를 취한다.", 입니다. 일종의 '필요악'일까요.)


'인권'이라는 약속은 사회 구성의 가장 첫번째 원리이자 약속이고 다른 법이 만들어지는 기초입니다.
더군다나 그 '첫번째 약속'은 '보편적인 인권'에 대한 약속입니다. 일부 범죄자에 대해서만 '인권'을 인정하지 말자고 하는 식의 논리는 사실 사회의 기본 원리로서의 인권의 성격을 무너뜨리는 겁니다.
처음 한 약속에 근거를 두고 두 번째, 세 번째 약속을 했는데 - 여섯 번째 약속을 어겼다고 해서 처음 한 약속까지 싸그리무효가 되는 게 더 이상하지 않습니까.
여섯번째 약속 속에는 첫번째 약속의 요소가 포함되어 있어서 여섯번째 약속을 어기는 것은첫번째 약속의 일부를 무시하는 효과가 있다고 하더라도 말이죠. 그것이 이 사회를 만들고 운영하는 '첫번째약속'인 인권의 기본 성질과 근간을 모두 무효화시킬 수는 없습니다.
(사실... 애초에 법률이든 사회적 합의이든 - 그 약속 안에는 그 약속을 어겼을 때의 처벌까지 약속되어 있다고 봐야 한다는 게 제 생각이기도 한데)

"약속을 어긴 너는 인권을 보장받을 자격이 없다" 그런 식으로 생각하게 되면, 결국 그 논리의 기본 골격은, 선언으로서의 인권이 아니라 의무가 선행한다는 식의 유치한 권리론으로 후퇴하게 됩니다. "니 의무를 다하지 않으면 너의 권리는 없다."라는 식의 암울한 권리론 말입니다.


예, 뭐 저도 12년형이 사안의 정도에 비추어볼 때 그리 쎈 형벌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동안 한국의 사법부가 성폭행에 대해 지나치게 관대한 판결을 내려온 것에도 불만이 많습니다.(인권단체, 여성단체 모두가 꾸준히 지적해온 문제입니다. 술을 마셨다는 것 등을 이유로 심신미약으로 감형되는 것에 대해서도요. [일다] 취중 성폭력은 감형? 가중처벌해야)
그러나 그런 판단이 "성폭행범 새끼에게는 인권이 없다"라는 생각에서 나온 건 아닙니다. 성폭력이라는 인권침해의 종류와 상해의 정도에 비해 형벌이 더 무거운 게 좀 더 적절할 것 같다는 것뿐입니다.

(사람들은 아마도 "조XX 같은 놈들의 인권은 더 많이 제한받아야 한다, 거의 없을 만큼"이라고 말하고 싶은 거겠죠? 하지만 거칠게 "성폭행범에게 인권은 없다."라는 식으로 말하는 순간, 그 말은 너무나 위험한 말이 되어 버립니다.)

그리고 스팀받은 사람들에게 던질 떡밥으로 성폭행범에 대한 형벌을 강화하는 입법안이나 내고 있는 국회의원들이 한심스럽고, 예방을 위한 다른 조치들을 더 강구하는 것도 중요하다는 겁니다.

뭐, 애초에 감옥에 처박아놓기만 하면 된다는 식의 한국의 형벌 시스템 그 자체에 대해 문제의식이 있고 그 위에서 몇 년형을 때렸느냐를 논해야 하는 상황에 불만이 있지만요.




@ 범죄는 사회적 문제 + 겸손함

인권, 이라고 하면 다분히 개인주의적인 주장일 것 같은 생각이 꽤 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생각하는 분들에게는 의외일지 모르지만,
소위 '진보적(좌파적?) 인권운동'을 고민하고 실천하는 인권운동 단체/활동가들은 사회주의적으로, 구조주의적으로 사고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인권 자체가 굉장히 사회적, 구조적, 공동체적 논의이기야 하지만요.
 
범죄에 대해서도 그렇습니다. 범죄는 개인의 문제이지만, 동시에 사회의 문제이기도 합니다.
범죄를 저지르는 사람들은 그 사람들이 성품이 원래 나빠서, 유전자가 안 좋아서, 별자리가 개떡 같아서, 무슨 공의 경계 기원각성/살인고찰 편처럼 그 사람의 '기원'에 문제가 있어서, 범죄를 저지르는 것일까요?

대부분의 범죄는 사회적인 문제입니다. 인권운동가들이 사형을 반대하는 이유 중 하나는, 사형은 어떤 범죄를 그 범죄자 개인의 책임으로만만드는 방식이라는 것입니다. 그 사람 하나를 제거함으로써 범죄에 대한 모든 책임을 그 사람의 존재에 떠넘긴다는 거지요.
(사형이 생명권 자체를 박탈하는 국가의 살인이라거나 사형이 가지는 여러 폐해들에 대한 우려가 가장 기본적인 이유긴 합니다)


제가 놀라는 것 중 하나는 말이죠...
사람들은 "내가/당신이 피해자의 가족이라면"하는 식으로 스스로를 피해자 측과 동일시하거나 피해자의 입장에 한 번 서보라고 요구하는 경우는 엄청나게 많지만, "내가/당신이 가해자라면"하는 식으로 가해자와 동일시해보는 경우는 전혀 없다는 겁니다. 가해자는 자신과는 전혀 별개의 존재이고 자신은 가해자가 될 수도 없다는 듯이 말입니다. 이 얼마나 오만한 근자감인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세상 모든 사람들이 어느 부분에선가는 소수성이 있다" 운운하는 이야기들을 저는 제법 많이 들어왔는데, 그 말을 뒤집으면 "세상 모든 사람들이 어느 부분에선가는 다수성(majority, 주류성)이 있다"라고 해도 큰 문제 없을 거라 생각합니다.
성폭력 범죄자들에게 열폭하면서 그런 놈들은 인권이 없다, 처참하게 죽여야 한다, 전자팔찌를 채워야 한다, 등등의 말을 내뱉는 분들을 보면 좀 당황스럽습니다. 자신은 그런 범죄자가 되지 않을 거라는 믿음. 자신감. 그런 게 팍팍 느껴져서요.

(어떤 범죄는 전자팔찌를 채우고 어떤 범죄는 안 채우고 이런 기준 자체가 사실 좀 모호한 일이라는 위험성을 고려하고)

첫 번째로, 병역거부를 준비하고 있어서 이미 '범죄자'가 될 채비를 하고 있고, 집회및시위에관한법률이나 공무집행방해죄나 무단침입죄나 국가보안법 등으로 잡혀갈 가능성이 높은 삶을 살고 있는 저로서는 그런 자신감은 무리이기도 하고-

두 번째로 꼭 그런 정치범으로서가 아니라도, 저는 저 자신도 살인자, 강도, 사기꾼, 성폭력 가해자가 될 수 있다고 느끼고 있기 때문에 그렇게 가해자들을 타자화시키는 일은 잘 못하겠습니다.


범죄자 한 명에게만 열폭하는 사람들 중 몇몇 분들의 모습은 범죄가 사회적 책임이라는 것을 외면하고,  철저하게 타자화되고 괴물처럼 그려진 범죄자 한 명을 사회에서 배제함으로써 자신들을 만족시키려는 것 같습니다.

그 속에는 '피해자화'의 논리도 들어 있지요. 피해자를 어떻게 '회복'시키고 피해자를 어떻게 지원할 것인가에 대한 장기적이고 세심한 고려는 포기했으니까요. 피해자는 피해자로 남아야 하지요. '영혼의 파괴' 어쩌구저쩌구 하면서(저는 적어도 그런 식의 영혼이란 것의 존재를 믿지 않습니다. 귀신이라면 어떨지 몰라도.).
그 '영혼의 파괴'라는 비유가 심리적 상처, 트라우마에 대한 비유라면 그건 굳이 성폭력이 아니라 하더라도 남습니다. 폭력, 집단적인 따돌림이나 괴롭힘, 방임, 사고, 그런 것들 대부분이 트라우마를 남깁니다.
성폭력은 구체적이고 신체적인 폭력입니다. 성폭력 피해는 신체적 (그리고 신체 일부로서) 심리적 피해입니다. 굳이 성폭력만을 특정해가며 '영혼의 파괴'니 운운하는 것은, '성'이라는 것을 사람들이 어떻게 받아들여야할지 곤혹스러워 하는 것과 동시에, 성폭력 피해-생존 여성들을 피해자화하려는 맥락이 읽힙니다. 그러나 많은 성폭력 피해-생존 여성들이 '잘'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건 피해를 축소하려는 의도가 아닙니다. 


어쨌건, 요는 좀 더 겸손해져야 하지 않을까 하는 겁니다.
누군가가 인간인지 아닌지를 내가 내 도덕과 가치판단으로 판단을 내릴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든
나는 절대로 그런 가해자/범죄자가 되지 않을 것이고, 범죄는 오직 그 이상한 몇몇 놈들의 문제라는, 나는 책임이 없다는 의식이든





0.
가해자가 인권이 있냐 없냐 같은 류의 얼토당토 않은 '문법적 착각'스런 논의에 빠져 있기보다는
좀 더 구체적인, 아동성폭력을 포함하여 모든 성폭력의 예방, 그리고 그 성폭력에 대한 적절한 사후조치(처벌을 포함한)에 대한 논의가 가능해지길 바라면서.
그리고 영혼에 상처가 어쩌구 하며 이야기하는 분들 중에 체벌에 반대하는 사람들은 얼마나 되는지 사소하고 짓궂은 궁금증을 남기고서.
아동인권-여성인권 보장, 아동과 여성의 사회적 지위(성적 실천 / 섹슈얼리티를 포함하여)의 신장이라는 좀 더 장기적인 방안에 대한 고민을 담아서.





p.s. 당신이 피해자의 가족이나 친구라도 가해자에게 인권이 있다, 범죄자도 인간이다, 라고 말할 수 있겠냐고 물으면 저는 아마 그럴 거라고 답할 텐데, 어떻게 답하든지 '위선자' 아니면 '현실을 모르는 놈' 아니면 '냉혈한' 아니면 '탁상공론'이 될 그런 류의 질문이긴 하지만, 어쨌건 그렇게 답할 겁니다.

p.s.2. 더 추가적인 보충 내용들은 아래 링크한 글들을 읽어보시면 좀 더 명확해지는 부분들이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 참고 문헌 -------------------------------------------

'피해자 인권' VS '가해자 인권'? - 김슷캇 (사회당 덕후위원회) 님 블로그

" 이들은 인권은 보편적으로 보장되어야 한다는 기준을 무시한 채 마치 '피해자 인권'과 '가해자 인권'이 따로 존재하는 것 처럼대립화 시키고, '가해자 인권'을 박탈할 수록 피해자 인권이 보장되는 것처럼 이야기한다. 또한 가해자에 대한 인권 박탈을주장하는 이유로 피해자의 참혹함을 '어떠한 연결고리의 설명 없이' 근거로 들면서, 실질적으로는 스스로 피해자 인권도 침해한다."



"신속하고 통렬한 복수? 부질없다" - 레디앙 신민영님 글

"하지만. ‘12년형 사건’의 후폭풍은 어떠한가? 신속한 전개, 통렬한 복수만을 생각할 뿐. 챙겨야할 디테일에는 전혀 관심이 없는 듯하다. 사건이 터지자 마자 나온 한나라당의 ‘유기징역 상한 폐지’ 주장. 그리고 ‘응징하고 싶지만, 화학적 거세는 너무하다’라는 인터뷰를 한 진중권씨의 글에 ‘찢어죽인다는 둥’ ‘악마 조가놈을 사형 시키자는 둥’ ‘진중권 딸도 똑같이 당해봐야 한다’는 둥 리플들.

사건의 원인이 무엇이었는지, 이것을 막기 위해 어떤 조치가 필요한지에 대한 세심한 고려는 온데간데 없고, 강력한 처벌을 해야한다는 주장만 일방적으로 나오고 있고, 한 술 더떠 유화적인 의견을 내놓은 진중권 씨에게 때려죽일 듯 달려들고 있다.

진정한 해결을 위해서라면, 다양한 논점에 대한 다양한 주장이 나와야 할 텐데 이러한 논의가 원천봉쇄되고 있는 형국이다."




취중 성폭력은 감형? 가중처벌해야 - 일다 조이여울님 기사

"성폭력 양형 실태 통계에 따르면 피해자가 학생인 경우보다 유흥업소 주인이나 종사자인 경우 집행유예율이 높았고, 범행 이전에 가해자와 성관계가 있었던 경우 선고형량이 낮아졌다. 피해자가 음주상태였던 경우와 사건 전에 가해자와 함께 음주, 유흥 등을 한 경우에도 모두 집행유예 비율이 높고 선고형량이 낮아졌다.
 이경환 군법무관은 이 같은 법원의 판단이 ‘피해자 유발설’과 같은 성폭력에 대한 통념과 편견을 암묵적으로 반영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진중권씨의&quot;반대를위한문법적착각&quot;&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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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공현
지나가는꿈2009.09.30 02:16



사건을 다룬 취재 동영상을 봤는데
피해자의 부모는 가명 처리가 되는데
정작 피해자 본인은 버젓이 실명으로 해서
온갖 언론에서 나XX 사건이라고 불러대는 건지 모르겠습니다


아동-피해자에게는 자기 이름이 안 드러날 권리도 없나요?


그리고 사건을 왜 자꾸 나XX 사건이라고 피해자의 이름으로 붙이는 건지,,,
이건 뭐 괴상한 피해자중심주의.

정작 피해자가 아니라 뭇 사람들(주로 네티즌)의 자기만족, 공분이 중심에 있는. -_-
피해자인 분과 그 피해자의 가족 되시는 분들도 별로 원하지 않을 것 같습니다.

(사람들의 반응에서 가끔은 나는 저런 파렴치한 놈이 아니야 라는 안도 같은 게 읽히는 거 같을 때가 있는데 그건 역시 나만의 착각이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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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드는 성-인권교육용 책 만들기 등에 참여하면서 하는 생각이, 성폭력은 참 '보편적인' 폭력이라는 것입니다.

학교에서 학생간 폭력이라거나 연쇄살인 같은 경우에는 차라리 계급적 요소나 심리적 요소를 찾아서 개연성 같은 걸 부여해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발생 양태의 차이, 빈도의 차이,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은,
이토록 무차별적이고 광범위하게 남성-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발생가능한 폭력이라니...

이번에 나XX 사건을 보면서는 최근에 읽은 소설 중에 '채소마누라'(지은이 펫 머피)라는 SF소설이 떠올랐습니다.
(내용이 궁금하면 읽어보세요-;)

만일 아동을 대상으로 한 성폭력에서 제가 느끼는 더 특별한 분노가 있다면,
그것이 물리적으로 전혀 저항할 수 없는 신체적인 약자라는 이유로 더 잔인하고 손쉽게 벌어진다는 것 때문일 겁니다.




하지만 솔직히 말하면, 저에게 얼마나 분노할 자격이 있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그러니 이것은 분노할 자격이 있는 사람들에게 남겨두겠습니다.
이것저것 마음에 걸리는 일들투성이인 저는, 적어도 그런 사람이 아니니까요.





얼마 전에 강연에서도 이야기했지만
피해의 심각성이 부각될 때에만, 피해의 심각성이 기존 사회의 '상식'을 넘어설 때에만 격렬하게 반응하는 것은 전혀 인권적이지 않습니다.
'미친개새끼' 한 명에게 징역을 몇 년 때리냐를 가지고 난리치는 거, 물론 중요할지도 모르겠습니다.(처벌을 강화한다고 범죄가 근절된다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처벌이 지나치게 경미한 것보단 나을 수도 있으니까요.)
하지만 그것만큼이나, 너무나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는 성폭력들에 대해 생각하고 개선책을 생각해야 하지 않을까요?

"'범인에게 어떤 고통을 줄 것인가'가 아니라 '어떤 대책을 세울 것인가'를 고민해야 합니다." - 틈새의 미투데이에서




추신 : 어쨌거나, 이 사건이든, 최근에 논란이 된 인종차별금지법 건이든, '인권단체 드립'은 아주 그냥 지긋지긋하기도 하고 짜증이 나기도 합니다.
 
참고할 글 - stcat님의 '피해자 인권' VS '가해자 인권'?


추신2 : 술 취한 상태였기 때문에 성폭력에 대한 처벌이 감형되는 것은 어쩌면 논리적으론 맞는 걸 수도 있습니다. 술이 취해서 책임 능력이 부족했다고 주장한다면요. 음주운전이랑은 좀 범주가 다른 것 같긴 합니다.
뭐, 좋습니다. 감형하든지요. 대신 이렇게 합시다. "책임도 못 질 거면서 술을 과하게 퍼마신 것"을 처벌하는 추가조항을 둬서, 만취상태에서 살인 강도 성폭력 등 범죄에 대해서는 그 범죄에 대해 죄를 적용하고, 거기에 더해서 술 퍼마신 죄를 추가하여 가중처벌하는 거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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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공현
걸어가는꿈2009.09.02 15:35



http://www.sc.or.kr/1_sc/06/0601.php?Kind=sc0301&Code=sc03&No=11097&No2=11097&Thread=A&Type=edit&Page=1&Next=view&Category=&mgbn=


천원이 아깝긴 하지만, 세이브더칠드런에 저런 문구를 박아놓을 수 있다는 것에 만족할래요 ㅋㅋㅋㅋㅋㅋㅋㅋ

근데 장난이나 농담이 아니라, 진짜로 아동권리협약에는 성(性)에 대한 권리가 없어요.
대부분의 국제인권협약들이 그렇긴 한데, 이건 정말 잘못된 거임.

성폭력이랑 성차별에 대한 규약만 있고, 성소수자나 성적 자유의 문제에 대해서는 그다지 협약도 선언도 없음.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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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공현
걸어가는꿈2009.08.19 16:03


뭔가 오랜만에? 조-금 맘에 들게 쓴 글이에요.
메시지의 전달과 나라는 개인의 표현이라는 두 가지 목적을 다 포착하는 데 약간 성공한 것 같은 글.





[페미니즘인(in)걸] 신데렐라이길 거부한다

밤길을 다니고 외박을 할 자유를


공현


기숙사 통금시간은 8시? 10시?


나는 기숙사가 있는 고등학교에 다녔다. 기숙사는 당연히 여남 공용…일 리는 없고 여자 기숙사와 남자 기숙사가 마주 보고 따로따로 있었다. 어느 가을날, 내가 속해 있던 만화동아리는 중간고사가 끝난 걸 축하하며 동아리 회식을 했다. 그 다음에는 자연스레 노래방으로 고고씽. 주구장창 일본음악에 애니메이션 OST를 불러대서 ‘일반인’들과는 도무지 눈치 안 보고 노래방을 즐길 수 없는 인간들이 많았던 동아리 특성상 회식 후 노래방은 나름 필수 코스였다.

그렇게 노래방까지 갔다가 기숙사 근처까지 왔을 때 시간은 대략 저녁 7시 반쯤. 조경이 잘 되어 있는 학교를 다닌 터라, 기숙사 옆에는 나무들과 잔디가 살고 있는 공터가 있었다. 해가 붉은 색조를 띠기 시작하고 조금씩 어둑어둑해져갈 무렵, 그 공터에서 만화동아리 사람들 10여 명이서 얼음땡과 술래잡기가 벌어졌다.

그런데 채 30분도 하기 전에 여학생들이 가야 한다면서 빠지는 게 아닌가! 왜 가야 하냐고 물어보았을 때 돌아온 대답. “기숙사 통금이 8시.” 남자기숙사에만 살아봐서 통금 시간은 여남 기숙사 똑같이 10시인 줄만 알았던 나는 그야말로 깜놀했다. 8시에 방별로 점호를 하고, 8시 이후에는 기숙사 바깥으로 나갈 수 없다니. (물론 남자 기숙사의 10시 통금이라고 해서 좋다는 건 아니지만) 아무리 그래도 8시는 너무하지 않나? 토요일에 학교 끝나고 회식하고 수다 좀 떨다가 노래방 갔다 오면 8시는 눈 깜짝할 새 아닌가. 이처럼 성차별은, 결코 다른 어디 먼 곳에 있지 않았다.


위 사진:6회 밤길 찾기시위에 참가한 청소년들


밤길을 되찾자, 달빛시위


달빛시위라고 혹시 아시는지 모르겠다. “달빛 아래 여성들, 밤길을 되찾다!”라는 캐치프레이즈를 내걸고 매년 하는 시위다. 여성들에게 위험하니까 밤중에 밖에 돌아다니지 말라고 하는 여성 단속(?), 성폭력 피해는 ‘야한 옷’을 입고 밤에 돌아다닌 피해 여성에게도 책임이 있다고 하는 식의 헛소리들, 그리고 여성들은 보호받아야 하는 수동적인 존재로 보는 사회에 맞서서 “밤길을 되찾자”라고 외치며 달빛 아래를 누비는 것이다.

청소년의 경우는 어떨까? 문득 작년에 있었던 촛불집회 때가 떠오른다. 경찰들은 밤이 깊어지면 촛불집회에 모인 사람들에게 “밤 10시가 넘었으니 청소년 여러분은 귀가해주십시오.”라고 방송을 해댔다. 한 촛불단체는 집회를 열면서 밤 10시 이후에 청소년들을 자진 귀가시키겠다는 공지를 올리기도 했다. 꼭 촛불집회를 들먹이지 않더라도, 평소에도 피씨방도 노래방도 찜질방도 모두 밤 10시 이후 청소년 출입금지다. 무슨 청소년들이 신데렐라고 밤 10시가 마법이 풀리는 시간인 것도 아니고. 청소년들이 위험한 밤길을 돌아다니지 못하게 하기 위한 조치들은 집요하다.(유일한 예외는 학원, 자습 등 ‘공부’뿐이다.) 여성들의 경우에 맞먹을 정도다. 아니, 적어도 여성들의 경우는 밤 10시 이후에 출입금지 이런 게 제도적으로 존재하지는 않는다.

그럼, 여성 청소년들은? 여성이면서 청소년인 그들은 더 많은 제약에 마주해야만 한다. 남자기숙사는 통금 시간이 밤 10시인데 여자기숙사는 밤 8시인 바로 그 차이처럼. 사소해 보이는 차이처럼 보일지 몰라도 실제로 살아보면 이게 그렇게 사소한 차이가 아니라는 걸 알게 된다. 기숙사 통금시간 뿐 아니라 집집마다 있는 ‘통금시간’도 보통 여성 청소년의 경우에 더 이르다. 그냥 밤길을 돌아다니는 데에도 많은 제약이 따르는데, 혹시 외박이라도 하겠다고 하면? 청소년들의 외박이 대체로 잘 허락이 안 되지만 여성 청소년들이 외박하겠다고 하면 집에서는 더 난리가 날 공산이 크다.

청소년인권운동을 하면서도 체감하게 된다. 같이 밤늦게까지 집회를 하거나 회의/토론을 하거나 놀려고 하면 청소년들은 꼭 집과 실랑이를 해야 한다. 그냥 알아서 집에 잘 들어오라고 하는 경우는 아주 드물게 너그러운 집이다. 외박이 까다롭기 때문에 MT를 가기도 힘들다. 여성 청소년들은 그게 더하다. 밤 9시만 되어도 자리를 떠나는 청소년들은 여성 청소년들이 더 많다. 일반적으로, MT나 밤샘일정을 소화할 수 있는 청소년 활동가들 중에는 남성이 많다.


위 사진:6회 밤길 찾기 시위 홍보 웹자보



신데렐라이길 거부한다

고미숙은 “이팔청춘 꽃띠는 어떻게 청소년이 되었나?”라고 질문하고 청소년이라는 존재를 비판적으로 추적하면서 이렇게 지적한다. “청소년의 존재 기반은 학교와 가족이다.”(김현철,고미숙,박노자,권인숙,나임윤경『이팔청춘 꽃띠는 어떻게 청소년이 되었나』, 60쪽) 이 사회에서 청소년들은 집(가족)과 학교(그리고 학교의 연장선상인 학원)에만 있어야 하는 존재이다. 청소년들이 밤길을 돌아다녀선 안 되고 외박을 해서는 안 되는 것 속에는 청소년들은 가족(부모, 보호자) 또는 학교(교사, 학원)의 감독과 보호 하에 있어야 한다는 이 사회의 룰이 있다. 외박은 이런 가족의 테두리를 벗어나서 그들의 권력이 미치지 않는 다른 곳에 몸을 맡기는 일이기에 아주 제한적으로만 허용된다. 허락받지 않는 외박을 이렇게 부르지 않던가? 가출(家出:가족으로부터 나감.)이라고.

사실 여성들에게 밤길을 금지하는 논리와 청소년들의 밤길을 금지하는 논리는 고만고만하다. 여성들/청소년들에게 밤길은 위험하니까. 여성들/청소년들은 약하고 보호받아야 하니까. 그리고 여성들/청소년들은 집에 있어야 하니까. 마지막 세 번째 이유는 여성들의 자립도가 높아지면서 여성들의 경우에는 다소 약해진 듯하다. 꾸준한 여성운동의 결과로 여성이 남성 가부장의 소유물이라는 생각이 약해진 것이다. 하지만 아직도 자식/청소년들은 부모/보호자들의 소유물이라는 식의 생각이 강고한 것 같다. 그리하여 우리는 신데렐라가 되어간다. 밤 8시, 10시, 혹은 12시에.

우리는 우리가 원치 않는 신데렐라가 되길 거부한다. 80년대에 사라진 통금이 여성&청소년들에게만 존재하는 현실에 저항한다. “밤길을 되찾자!”는 여성들만의 구호가 아닌 청소년들의 구호가 되어야 한다. 그리고 여성 청소년들에게 이르러서 더욱 강고해지는 이 ‘밤길 금지’, ‘외박 금지’ 논리에 맞서서, “밤길을 되찾자!”는 누구보다도 여성 청소년들의 구호가 되어야 한다. 여성주의(페미니즘)와 청소년인권은 바로 이런 지점들에서 만나며 서로 힘을 더해가는 것이다.



덧붙이는 글
공현 님은 청소년인권활동가네트워크 여성주의팀 활동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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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오름 제 166 호 [기사입력] 2009년 08월 19일 13:03: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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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공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