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설픈꿈 142

시 - 부러진 선풍기

부러진 선풍기 날개가 가출했다 어느날 문은 열려있지 않았지만 날개들은 가출했다 집을 나간 날개들이 어디를 갔는지는 하얗게 떨어뜨리고 간 바람의 자취도 가르쳐주지 않는다 누구에게 날을 세웠는지 어디에서 잠을 자는지 홀로 남은 날개만이 창살 속에서 궁금해 할 뿐 창살 속 허공이 외로운 날개를 흔든다 흔들리는 날개는 돌지 못한다 혼자 쓰게 된 방 안에서 제대로 숨쉬지 못한다 ---------------------------------------------- 2005.08 쓴 시. 어째서인지 난 썩 맘에 들어하지 않았는데, 다른 사람들은 꽤 싫어하지 않더라. 실제로 선풍기가 부러지면 버리거나 고치세요.

어설픈꿈 2009.12.11

시 - 겨울강을

겨울강을 겨울의 강에서 배가된다 나무배는 차가웁고 무르다 언강위에 발자국을 찍는다 푸른물빛 뱃길을 만든다 투명한 겨울이 깨지는소리 투명한 소리에 잠긴뱃전엔 나무색 상처들이 드러난다 겨울강 피부가 잘게 깨어진다 나무배 피부가 긁혀 찢어진다 흐르는 강위에 길만 남는다 상처, 상처, 그리고 저 건너편으로 닿은 뱃길 +개굴, 누리와 여행갔던 때, 청령포에서 배를 타면서 떠오른 이미지들을 정리해봤던 시인데 다소 조악하다는 생각이 든다. +2006년 12월에 쓴 시. +예전 블로그에서 옮겨오는 과정에서 약간 수정했다.

어설픈꿈 2009.12.07

시 - 낙엽 무게

낙엽 무게 나는 낙엽을 밟으며 걸어가지만 낙엽도 한 잎 한 잎 나를 밟는다 어느새 걸음이 무거워져 앞을 보던 눈을 돌려 주위를 돌아보면 밟고 지나친 낙엽들을 흘러버렸다 생각했던 낙엽들을 몇은 업고 몇은 끌며 나는 걸어가고 있다 내가 이 거리를 계속 걷게 해준 것도 나에게 밟혔던 낙엽들이었으니 낙엽이 발등을 밟는 소리는 어깨를 살쩍 두드리는 소리는 잠든 네가 내는 마지막 날숨소리처럼 언제나 너무나 은근해서 알 듯 모를 듯 나의 발자국을 숨결만큼씩 깊게 하고 나중에 이 거리 저 어디쯤 가서 낙엽 무게 너희들 숨결 무게가 너무 무겁다 싶을 즘이면 나도 조금 큰 낙엽이 되어 이 거리를 걸어가는 너의 어깨를 두드려주고서 그 발에 밟히고서 멈춰서고 싶다 옛날에 쓴 시들 옮겨오기-

어설픈꿈 2009.12.06

그것에도 끝이 있다는 것을

소나기는 세차지만 오래 가지 않는다 오래 가는 장마도 언젠간 그친다 아무 비도 내리지 않는 날이 더 많다 그런 날이면 하늘이 보이지만 하늘에선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끝나지 않는 것은 없을지도 모른다 끝나지 않더라도 없을지도 모른다 너의 품은 너무 넓어서 뛰어도 뛰어도 계속 갈 것 같았다 끝나지 않는 것은 없을지도 모른다 끝나지 않더라도 없을지도 모른다 시라고 하기에도 조악하다. 그냥 두세 가지 생각이 마음을 어지럽혀서.

어설픈꿈 2009.12.05

시 - 그래도 지구는 돈다

그래도 지구는 돈다 그 밤이 지나치게 늦어질 무렵 손톱발톱 홀로 깎는 소리 튀는데 그래도, 지구는, 돈다 괜한 꿈에 몸을 떨며 눈을 떠서는 괜시리 아푸아푸 세수하는데 그래도, 지구는, 돈다 쉽게 듣던 노래들이 텅빈 늑골에 모래처럼 알알이 박혀오는데 그래도, 지구는, 돈다 말라버린 사랑을 뽑던 때에야 심장까지 닿은 뿌릴 깨닫는데 그래도, 지구는, 돈다 나의 지구는 이미 한 번 부스러졌는데 그래도 지구는 돈다는 것 빼곡한 달력이 넘어간다는 것 나를 고독하게 하는 그것

어설픈꿈 2009.11.08

시 - 아 이런

아 이런 길 잃을 일도 없는 대로변에서 울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했다 안아주지도 달래주지도 못하고서 아 이런, 나는 그냥 집으로 데려와버렸다 집에서도 나 자신은 계속 울었다 파아란 하늘도 회색빛 하늘도 아랑곳없이 아무리 말 걸어도 달랠 수 없어 아 이런, 나는 그냥 나가서 삶을 던져댔다 아 이런 집에서 나 자신이 울고 있어서 이제 나는 울 수가 없게 되었다 아 이런 눈물 총량 불변의 법칙이 아 이런, 안구가 점점 건조해지고 있다 아 이런 ---------------------------------------------------------------------------------- 아 이런 아 이런 아 이런 아이러니 내용은 재미있지 않은 시지만 계속 읽다보면 뭔가 재밌어진다. 아 이런 아 이런 아이런 ..

어설픈꿈 2009.09.03

시 - 라일락보다 쓴

라일락보다 쓴 두 번째로 마셔본 소주 몇 잔은 처음으로 씹어본 라일락보다 썼다 까맣게 방울지는 독백을 삼켜가며 돌아오는 오르막길 위로는 하얀 별이 둘 있는데 멀다 별과 별 그 사이는 멀고 그 까만 거리가 소주처럼 씁쓸해서 눈물나게 씁쓸해서 자꾸만 방울지는 가락에 걸음은 더디기만 하다 몇 해 전이었나 인생을 알겠다며 라일락 잎을 씹던 게 이젠 왜 라일락보다 쓴 소주를 마시는지도 알게 됐지만 나는 아직 2006년 5월에 초안. 처음엔 '라일락보다 쓴 거리감'이었는데 그 뒤에 제목에서 '거리감'을 뺐다. 마지막 행의 "나는 아직" 다음에 "사랑을 한다"가 있었는데 초안을 쓸 때부터 고민하다가 뺐다. 뭔가 내가 하고 싶은 말은 그게 아닌 것도 같아서. 더 적당한 게 없는 이상은, "나는 아직"에서 끝나는 시로 ..

어설픈꿈 2009.08.16

시 - 구멍에는 무게가 있다

구멍에는 무게가 있다 손을놓고 걸어온지 아마6개월쯤 왼손을 주머니에 찔러넣으니 잡히는건 커다란 구멍뿐이다 가리지못한 손가락이 꼼지락대며 고개드는 허전히 찢어진 구멍 반지도 구멍으로 흘리고왔고 유에스비 메모리도 흘리고왔고 받지못한 답장도 잃어버렸다 무엇을 잃었는지 메모조차도 그리고 또, 또렷하진 않지만 햇살로 그리움을 그리는 방법이나 눈꺼풀 뒤쪽에 기록한 시간들도 잊어버렸다 주머니의 구멍을 움켜쥐고 더이상 널흘리지 않기위해서 천천히 조심조심 걸어가지만 어느새 구멍이 하나둘늘고 구멍들의 무게가 더해지면서 내 걸음은 점점 더 느려만진다 구멍들을 짊어지고 간다 구멍만큼 숨소리도 발소리도, 깊어진다 - 나를 흘리는 게 아니라 너를 흘리는 건데 내가 부서진다. 연기설? ... 이라는 메모가 달려 있다. 2006년 ..

어설픈꿈 2009.08.04

시 - 사춘기?

사춘기? 아이들이 달려서 내옆을 스쳐간다 홀쭉한 가방들 빵빵한 가방들 제각기 흔들리며 학생들의 휜등을 리드미컬하게 탁탁탁 때려가며 재촉한다 돌기둥 녹슨철문 반듯한 교문 교문을 지키고선 대머리 교사가 늦겠다 뛰어라 연거푸 소리쳐도 나는 태연하게 걷는다 교실에 도착하자마자 종이 운다 평소완달리운이좋네 감탄하건 말건 걷고 싶으니까 걸었어 어쩌면 그건 주위 사람들이 뛰고 있기 때문일지도 모르지만 여하간 난 걷고 싶어 특히 아침엔 수업이 시작하면 우리는 끝날뿐 난 창가에서 찾는 것이 있을 따름 집중집중 선생마다 시간마다 한마디씩 난 창틀에서 찾는 것이 있어서 하나둘 시체를 헤아려 본다 딱딱딱 경쾌하게 분필이 칠판에 우는 게 거슬린다 여기봐요다죽었어 딱딱딱 몇 명이 졸고 있다 짝이 교과서에 낙서를 한다 앞자리는 필..

어설픈꿈 2009.07.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