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설픈꿈 142

수필 - 읽고도 알지 못하는 걸까

이건 '수필'이라는 생각조차 거의 하지 않고 휙휙 써내려간 문자 그대로의 수필(?) ( 2005년 9월) 읽고도 알지 못하는 걸까 『모모』를 읽어보았는가. 그래, 그 얼마 전에 모 드라마에 나왔다고 하여 유명해진 그 책 말이다. (그 책이 드라마에 나오기 전에 대단히 인상 깊게 읽었던 사람으로서는 좀 씁쓸하다.) 세상에 나온 지 몇십 년 된 미하엘 엔데씨의 동화인지 소설인지 애매한 책 말이다. 그 책에서 첫째로 인상 깊었던 것이 귀기울 줄 아는 모모와 한 번 쓸고 한 번 숨쉬는 청소부 베포, 이야기꾼 기기의 삶이었고, 두번째로 인상깊었던 것이 회색신사들이었다. 회색신사라는 존재는 미하엘 엔데씨가 사람들에게 던지는 날카로운 질문이었다. 그러나 사람들은 『모모』를 읽어도 알지 못하는 듯하다. 자기 안에 얼마..

어설픈꿈 2008.01.13

시 - 실마리

실마리 자그만 책상 위에 시간이 어지럽고 흩어진 연서 위엔 까실한 당신 숨결 거리에 별들이 불안한 섬들마냥 눈물도 없이 겨우 눈 뜨고 있을 때 우리도 잠을 이루지 못할 때 잠못이루어 내일이 없을 때 얼굴을 가리고 쓴 보라빛 편지들 천장을 서성이던 꿈으로 목에서 뛰던 숨결로 쓴 흔들리는 연서들 교과서를 찢어 쓴 연서들 경전을 찢어 쓴 연서들 연필심이 부러지면 또 깎아서 쓰면 된다던 당신 그리고 당신 발등을 밟던 낙엽들 낙엽이 쌓이면 쓸면서 걸어가면 된다던 우리들 어지러운 시간 속에서 부서진 밤 속에서도 그 고백을 들여다보면 그날 밤 당신이 보일까 지상의 별들이 불안하게 술렁일 때면 커튼을 치면 된다던 그도 안 되면 나가서 별을 확 꺼버리면 된다던 당신의 보라무늬 연서 위엔 희미한 어른거림

어설픈꿈 2008.01.13

수필 - 노년, 죽음이라는 한계상황 앞에서

본래 2004년 연세대 논술 문제 답안으로 쓴 것이지만... 아무래도 이건 논술이라기보단 수필 같지 않은가? 라는 생각이 드는군요. 노년, 죽음이라는 한계상황 앞에서 늙는다는 말은 일상적으로 사용되는 어휘이다. 그러나 막상 그 뜻을 정확히 하려고 하면 모호한 구석이 많은 어휘이기도 하다. 노화는 분명 세월이 흐르고 나이를 먹으면서 일어나는 현상이다. 하지만 나이를 먹는 것이 곧 늙는 것이라고는 할 수 없다. 똑같이 나이 육십인 사람들이라 해도 그 중에서 좀 더 늙은 사람, 좀 더 젊은 사람을 나누어 볼 수 있다. 나이 사십에도 세상 풍파에 시달려 폭삭 늙어버린 사람을 찾아볼 수 있다. 육체적인 노화의 경우에도 상당한 개인차가 있으며, 어느 정도 그에 발맞춰 진행되는 정신적인 노화도 개인차가 있기는 마찬가..

어설픈꿈 2008.01.13

시 - 새해

새해 들뜬 사람들의 웃음띤 어깨 위로 차갑고 하얀 눈송이가 앉고 날리는 눈 속으로 홀로 나온 난 눈쌓인 화려한 별의 거릴 걸었지 그렇게, 떨어져 나온 채 억지스런 새해인사들을 스치며 그렇게, 나는 홀로인 채 사람 사일 걸으며 노래했지 작년에 즐겨불리던 노래 귓가에 들리는데 해는 벌써 바뀌어 있고 다시 돌이키려 하여도 노랫소린 지나가 하얀 눈만 힘겹게 내릴 뿐 흙발에, 매연에, 네온사인에, 새해인사에, 밟혀가며 추억처럼 힘겹게 내릴 뿐 아마도 2학년 1학기 초에 부기팝 여는 노래인 소나기 한국어판을 가지고서 끄적거려본 시 같다. 이걸 쓰고나서 시에서 음보감이나 운율, 글자수를 맞추려면 노래 하나를 가져와서 글자수만 맞춰나가면 좋을 것 같다고 생각했었다. 나중에 약간 본래의 격을 파괴하며 새로운 내용을 넣거..

어설픈꿈 2008.01.13

수필 - 비를 맞고

비를 맞고 나는 비가 내려서 기분이 우울해진다거나 하는 사람은 아니다. 나름대로 감상적인 면이 있긴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단지 구름이 좀 꼈다거나 하는 이유로 우울해지는 일은 없다. 구름이 좀 꼈기 때문에 더 우울해진다거나 더 즐거워지는 일은 있지만. 비가 내리기 때문에 더 우울해진다거나 더 즐거워지는 일은 있지만. 비가 점심때부터 쏟아져 내렸다. 우산을 안 가지고 왔기 때문에 조금 난감했지만 곧 평소처럼 당당하게 제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떨어져 내려온 빗방울 속으로 걸어 들어갔다. 자, 구름으로서의 삶을 지탱하지 못하고 투신한 빗방울들이여. 요즘 유명해졌다고 하는 미하엘 엔데가 쓴 『모모』를 보면 비가 워낙 촘촘하게 내려서 산소 호흡기를 써야 할 지경이었다는 장면이 등장한다. 정말 그 정도로 세차게 내..

어설픈꿈 2008.01.13

시 - 접시

접시 나는 접시 하나를 떨어뜨렸다 어머니가 가족의 땀으로 사주신 손자국난 접시 꽃이 몇 송이 피어있는 퍽 푸른빛 접시 선물 받은 생일날부터 지금까지 나는 접시 하나를 떨어뜨려 왔다 깨진 조각은 멀리도 멀리도 튀어나갔고 그 조각들을 집어주던 친절한 비둘기들은 날개에 부리에 생채기가 나곤 했다 그렇게 주섬주섬 접시를 맞춰보면 항시 어딘가 이가 빠졌거나 무늬가 이지러져 있곤 했다 언제부턴가 접시는 꿈틀거린다 뜨겁게 꿈틀거린다 나는 뜨겁게 꿈틀대는 접시를 들고 살금살금 가다가 또 접시 하나를 떨어뜨린다

어설픈꿈 2008.01.13

소설 - 신세기 수기

서기 2005 7/9 토요일 저녁 20시에 갑자기 머리를 때리는 느낌. 그 전까지 쌓여오던 짜증과 나 자신 및 세상에 대한 분노, 안타까움, 현대에 대한 애증이 한순간 끓어올랐다. PC방으로 달려가서 자판 앞에 앉아 21시 55분까지 자판을 두들긴다. 채 다 못 쓰고 다음날 다시 두들긴다. 그렇게 이틀만에 다 써버렸다... OTL 덧. 7/11 약간 불완전한 부분 수정. 8/21 상동 신세기 수기(新世紀 手記) 오늘밤은 검은 비가 내린다. 옛날에도 눈을 맞으면 옷이나 우산에 검은 자국이 남는 일은 있었지만, 요즘 내리는 비는 아주 노골적으로 검다. 풀잎 위에 맺힌 빗방울도 검고, 밖에 나가면서 썼던 우산도 온통 더럽혀져 있다. 그 검은 성분들은 대체 무엇으로 이루어져 있는 걸까. 에이치투에스오스리, 에이..

어설픈꿈 2008.01.13

시 - 아이가 울고 있다구

아이가 울고 있다구 벽 밖에서 어린애의 울음소리가 들린다 책 위로는 불개미 몇 마리가 기어가고 나는 지금도 인형이다 인형을 내버리려 장롱에 기어든다 장롱 속은 까맣게 조용하고 나무 냄새와 옷 냄새가 조용한데 조그맣고 빨간 더듬이로 웃고 있는 불개미들이 손등을 기어간다 나는 지금은 창고 속의 인형이다 밖에서는 발정 난 고양이새끼 몇 마리의 시끄러운 울음소리가 가득하다 방은 조용하고 장롱 안도 조용하다 얼룩진 밤 나는 문을 열고 옆집으로, 또 그 옆집으로, 얼룩 너머로 달려가야 함을

어설픈꿈 2008.01.13

수필 - 산다는 것이 얼마나 위대한가를

2005년 6월17일 실시한 2005학년도 전북 중등 문예백일장 및 독후감 발표 도 본선대회에서 백일장 산문 부문 상 받은 녀석입니다. 아니, 그 작품 그 자체는 아닙니다만 최대한 기억을 살려서 복원해본 것입니다; 『공의 경계』까지 인용하면서, 상당히 일반론적인 이야기를 늘어놨습니다.-_- 주제가 내가 존경하는 사람이었는데 이런 글을 써내다니, 나도 참... 어찌 보면 튀고 어찌 보면 평범한 글이지요. 우어, 사실은 쓰면서 기분은 상당히 침체된 녀석이고, 또 쓰고 나니 제가 허가도 받지 않고 사례로 도용한 이야기들의 주인공 분들께 대단히 죄송한 마음이...; 으그.. 용서해주세요! 누구누구의 영향으로 저도 요즘 휴머니스트가 되나 봅니다.(笑) 아니, 원래부터 그런 경향은 있었지만, 직접적으로 드러내는 편..

어설픈꿈 2008.01.13